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 입학 때, 그리고 직장에 들어갈 때 입학·입사 서류를 만들면 거기에는 반드시 취미란이 있었다. 적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공연히 적지 않으면 뭔가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꼬박꼬박 채워 넣었다. 요즘도 그런 난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서류를 만들어야 했던 때는 주로 70, 80년대라 먹고살기 바쁜 가난한 시절이었다. 무슨 취미를 기를 여유가 있단 말인가. 또 대학생 때는 ‘음주’ ‘흡연’이 취미였지만, 그것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제일 만만한 것이 ‘독서’였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지만, 이제는 담뱃값이 올라 흡연의 즐거움도 쉽게 누릴 수가 없는 형편이 되었다. 어쨌거나 왜 남의 취미는 묻는단 말인가. 나는 취미란의 취미들이 어떤 효용가치가 있는지 지금도 모른다.

취미가 독서라면 이런 질문도 반드시 받았을 터이다. 가장 감명 깊었던 책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도 상당히 곤란하다. 나는 책 읽기와 관련하여 지금도 ‘감명’이란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국어사전은 ‘감격하여 마음에 깊이 새김. 또는 새겨진 그 느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정말 사람마다 그런 감격해 마지않아 마음에 깊이 새겨진 그런 책이 있을 것인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도 대부분 없으리라 생각된다.

질문은 지금까지도 계속된다. 얼마 전에는 강연을 마친 뒤 “감동을 받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언제나 답할 말이 애매하다. 애써 머릿속을 뒤적여보지만 그런 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감동 받은 책이 없다니, 무언가 게으른 사람 같기도 하고, 성의 없는 책 읽기로 이제까지 살아온 것 같아서 약간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감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온몸이 전율할 정도로 감동을 받은 적이, 그리하여 내 생에 큰 영향을 끼친 그런 감동이 있었는가 말이다. 그건 아마도 그런 질문을 받는 순간 머리에 그냥 떠오르는 그런 것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런 감동적인 순간은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도대체 왜 이런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가? ‘당신이 감명 깊었던 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내게만 던져진 것도 아니고, 요즘 새로 생긴 것도 아니다. 이 질문은 나의 어떤 정치적 성향을 알아내려는 불순한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찌 보면 우리는 책을 읽으면 무언가 감동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식으로 변명하자니 마음이 한결 수월해진다.



사실 그렇게 뜨거운 감동을 받은 책은 없지만, 내게 약간의 영향을 끼쳐 기억하는 책은 있다. 물론 그것이 내 인생의 행로를 바꾸었다든지 하는 그런 책은 아니다. 또 이름만 대면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런 묵직한 고전도 아니다. 먼저 떠오르는 책은 중학교 3학년 때 본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이다. 소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랭클린이 17세에 가출하여 인쇄소 직공이 되어 거기서 책을 읽으며 스스로 지식을 쌓아나가고, 24세에 ‘펜실베이니아 가제트’의 경영자가 되는 등의 과정은 중학교 꼬맹이에게는 찬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더 충격을 받았던 것은, 프랭클린의 엄격한 자기 관리였다. 자신의 도덕적 결함, 고쳐야 할 약점의 목록을 만들고 하루하루 반성하여 지키지 못한 경우 동그라미로 표시를 해 그 동그라미가 없어지도록 노력하는 프랭클린의 노력이 내게 희한한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사회와 학교, 나라가 내게 박아 넣은 이상한 도덕률에 대한 반성적 사고가 전혀 없는 상태였으니, 프랭클린의 계획이야말로 나를 온전한 인간으로 이끄는 지침이었던 것이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잠시 나는 그것을 흉내 내었다. 하지만 물어보나마나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이상하게도 비슷한 일은 반복되었다. 프랭클린에 대한 연모가 끝난 뒤 다시 유사한 책에 매료되었다.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의 <준주성범(遵主聖範)>이 그것이었다. 프랭클린은 엄격한 청교도 쪽이었지만, 켐피스 쪽은 경건하기 짝이 없는 가톨릭 신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준주성범>이 내 마음을 끌었다. 손바닥만 한 책을 한 동안 가지고 다니며 흉내를 내보려 했지만, 그 결과는 프랭클린의 <자서전>과 다르지 않았다. 이 책으로 얻은 소득이 있다면, 내가 ‘경건’과는 아주 길이 다른 속된 삶을 사는 인간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소득은 절제하는 경건한 삶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뒤에 공부하는 길로 접어들면서 자기 욕망을 절제하는 삶의 길이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종교가 동일하게 지향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교와 성리학 역시 인간의 욕망에 대한 깊은 성찰, 욕망의 절제 없이는 결코 만족스러운 삶에 도달할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본래적 종교일 뿐이고 제도화된 종교, 곧 교단을 형성한 제도적 종교는 그런 절제와 아무 관련이 없거나, 절제를 팔아서 돈과 권력을 향유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이후로 종교 서적에서 무언가 느낌을 얻은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감명 받은 책을 떠올릴 수 없게 된 것은 별로 아름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인다. 프랭클린의 <자서전>은 서문당의 문고본으로 읽었다. 1970년대 서문당의 문고본은 꽤나 좋았다. 값도 저렴하여 고등학생 신분으로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서가 맨 아래쪽 한쪽에는 그때 책 몇 권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남아 있다.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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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긴 해도 만지거나 잡을 수 없는 것이 그림자다. 느낌이 들긴 해도 보거나 알 수 없는 것이 유령이다. 그림자와 유령이 배회하는 세계에서는 정체불명과 실체 없음의 풍문이 지배한다. 불과 두 해 전이었다. 세월호의 침몰을 똑똑히 보았지만 그 원인과 책임은 그림자처럼 잡을 수 없었다. 한 해 전이었다. 메르스의 공포에 지독히 떨었지만 그 경로와 전모는 유령처럼 볼 수 없었다. 이렇듯 우리는 무엇이 가상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가상현실의 수상한 세월을 살고 있다.

두 달 열흘 남긴 선거가 그렇다. 교과서, 위안부, 핵, 사드, 누리과정, 청년수당 등 역사의 기억과 공동체의 안전 그리고 삶의 수준은 한없이 누추해졌다. 이런 사태를 해결하고 공동체의 운명과 우리 아이의 미래를 밝혀야 할 선거는 “그림자와 유령의 싸움”이 되어 있다. 이 말은 작년에 개봉한 <분노의 질주 7>에 나온 대사다. 영화는 카레이서 주인공들의 활극으로 관객의 눈길을 붙잡지만 싸움의 구도는 “그림자와 유령”이 기획한다. 신출귀몰하는 전직 암살 특수부대원은 사적 복수의 괴력을 발휘하고, 신원 모를 정부조직의 최고 책임자는 전지전능한 권력을 행사한다. 이 싸움에서 엑스트라 군상은 속속 죽어나간다.

이번 선거에서 “그림자와 유령”은 무엇일까. 51 대 49의 여야 기반이 콘크리트라는 전제, 야당 분열은 곧 필패라는 구도, 지역과 세대 대결 및 투표율이 변수라는 상식이다. “그림자와 유령”이 연출한 선거에서 언론이 제공하는 화제는 카레이서 출마자들의 활극이다.

이어 승자 독식의 전국지도 색칠이 끝나면 언론은 투표 결과의 배경을 국민의 정치 환멸로 단정한다. 그럼 우리는 ‘일상으로 복귀’해서 엑스트라 유권자의 그 권리가 선거에서 얼마나 속절없는지 한탄하다가 언론이 불러준 대로 행인 1과 2의 정치 환멸이라는 대사를 보잘것없이 읊조리고 퇴장한다.



20대 총선의 나에게 다_경향DB


“그림자와 유령”의 선거 각본은 이렇게 반복되면서 유권자의 그 유권(有權), “권리 있음”이 사전적 정의와 다르다는 것을, 즉 ‘국민에게 권리와 권력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누락시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담대한 선언은 4, 5년에 하루뿐인 선거인 투표로 이체된다.

그러나 4, 5년씩 누적된 환멸의 몸이 단 하루의 투표로 희망의 마음을 되살릴 수는 없다. 해서 선거철마다 “그림자와 유령의 싸움”은 할리우드를 뺨치는 저들만의 활극이 된다.

그 기획을 “그림자와 유령”한테서 찾아오길 원한다면 국민이 직접 기획해야 한다. 4, 5년에 한 번이 아니라 매년, 매월, 매주 참여하고 결정하고 투표하기를 거듭할 때 국민 주권을 국민 기획으로 실현하는 길이 열린다. 단언컨대 그 출발은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내 손으로 뽑는 것만이 아니라, 아니 그것에 선행해서 내가 사는 우리 동네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투표하는 일상의 행동이다. 이 점에서 서울시가 작년부터 시작한 ‘찾아가는 동 복지’ 정책은 헌법 제1조 제1항과 제2항에 화답하는 정직한 발상이다.

이 정책의 초점은 동사무소를 마을센터로 만드는 민관 협치에 있다. 작년엔 서울시 4개 구가 했다. 성북구는 월곡2동과 길음1동이 했다. 올해엔 서울시 17개 구에서 하고 계속 늘어날 추세다. 무엇을 하는가. 동 단위로 전 세대에 안내문을 보내고 자발적 추천으로 마을계획단을 꾸린다. 이들은 동사무소를 카페나 도서관처럼 사용하면서 마을 조사를 하고 3인 이상이면 제출할 수 있는 마을계획을 모집한다. 그 후 추첨과 숙의 민주제를 결합한 총회를 열고 투표한다. 결정된 마을계획은 예산 배정과 함께 실행에 들어간다.

주민 기획과 주민 주권을 실천하는 이런 담대한 도전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고 성패를 말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나 이런 노력이 없다면 인구절벽, 재정절벽, 고용절벽에 처한 이 땅에서 더는 정의와 자유의 민주주의를 논하기 어렵다. 주민 주권의 뿌리를 살려 시민과 국민의 주권을 강화하는 하방주권(下方主權)의 흐름이 만들어지면 국가의 대의 민주주의도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경제도 이제는 중앙의 국가와 재벌에서 지역과 마을로 하방해야 성장할 수 있다.

하방주권과 하방성장은 “그림자와 유령의 싸움”판에 행인 1과 2이기를 멈추고 국민 스스로 국민 주권이라는 행복을 기획하는 길이다. 예의 영화에서 “그림자와 유령”은 “신의 눈”이라는 해킹 프로그램을 독차지하려고 싸운다. 휴대폰과 CCTV와 위성을 연결해서 순식간에 표적을 찾는 “신의 눈”은 그러나 프로그램이기 전에 우리 동네의 친밀한 이웃 관계를 기획하는 ‘근린 협치’여야 한다. 맞은편 집에 수저가 몇 개고 아이는 누구며 어디가 아픈지 알고 지내는 동네에서는 “그림자와 유령”이 발붙일 데가 없다. 안전을 바란다면 마을 만들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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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두 눈을 가지고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인간은 응시의 대상인 ‘밖’을 파편적이며 왜곡된 눈으로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 시선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불어나 자신을 지배하는 괴물이 된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 괴물의 하수인이 되어 세상에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입힌다. 이 순간 응시의 대상은 ‘있는 그대로의 나’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덤덤하게 보는 것’이다. 그 대상을 자신의 구태의연함으로 보지 않고 생경하게 바라보기를 연습해야 한다. 일상과 구별된 나만의 시공간에서 나를 멀찌감치에서 관찰하기를 수련하다 보면, 그런 나를 적나라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런 행위가 회심(回心)이다.

내 안에는 ‘과거의 나’ 그리고 ‘과거의 나’가 고착화되고 있는 ‘현재의 나’, 혹은 ‘과거의 나’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미래의 ‘또 다른 나’가 존재한다. 오래된 나, 원래의 나를 ‘첫번째 나’라고 부르자. ‘첫번째 나’는 흘러가버린 과거에 안주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지금 이 순간의 삶에까지 영향을 준다. 자기혁명(自己革命)은 이러한 나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그것으로부터 결별하려는 의지다. 우리는 대부분 매일 매일 버려야 할 오래된 자아를 벗어버리기보다는, 그것을 붙잡고 강화하려 한다. 배움이란 나로부터 과감하게 탈출하려는 과정이다. 자아를 치장하고 강화하는 교육은 재미없는 세상을 구축할 뿐이다.

‘첫번째 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심히 관찰하고 그 문제점을 절실히 느끼고 파괴하고자 하는 ‘또 다른 나’ ‘두 번째 나’가 필요하다. 이런 ‘또 다른 나’를 라틴어로 ‘알터 에고(alter ego)’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기원전 1세기 로마에서 활동한 사상가인 키케로가 처음 사용했다. 그는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변화하는 중요한 시기에 등장한 정치철학자이며 문필가로 로마문명과 유럽문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 키케로는 흉금을 터놓고 무엇이든지 토로할 수 있는 친구 ‘앗티쿠스’가 있었다. 키케로는 그를 ‘알터 에고’, ‘또 다른 나’라고 불렀다.‘알터 에고’는 친구를 넘어서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의미하기도 한다. 문학작품과 심리학에서 차용되어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용어가 되었다. 문학작품에선 저자의 심리와 행동을 의도적으로 표현한 인물이다. 연극무대 위에선 자신에게 맡겨진 배역의 심리와 몸짓을 연구하여 완벽하게 구현해야 할 대상이다. 배우는 부단히 연습하여 ‘또 다른 나’가 되어야 한다. 배우들은 ‘또 다른 나’에 몰입하기 위해 ‘가면’을 썼다. 자신의 몸짓과 목소리만으로 그 배역을 충분하게 표현해야 한다. 이 가면을 라틴어로 ‘페르소나(persona)’라고 불렀고, 후에 ‘사람’이란 의미의 영어단어 ‘person’이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는 ‘또 다른 나’를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그는 ‘첫번째 나’를 파괴시키는 괴물이다. 한 인물 안에서 선과 악이 끊임없이 투쟁한다. 하이드는 지킬 박사 안에 숨겨져 있는, 문명화된 세계를 경험하지 않아 어쩔 줄 모르는 ‘정신이상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만화로 시작하여 후에 영화로 만들어진 <슈퍼맨>에서 ‘또 다른 나’는 긍정적이다. 신문사 기자 클락 켄트는 진정한 자신을 감춘다. 그의 원래 이름은 ‘칼엘(Kal-El)’이다. ‘칼엘’은 고대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로 ‘신의 목소리’다. 칼엘의 부모는 자신들이 거주하는 ‘크립톤’(비밀스러운 땅이란 의미)이란 은하계가 파괴되기 직전, 칼엘을 살리기 위해 그를 바구니에 넣고 은하계를 연결하는 공간인 상상의 나일강에 띄워 보낸다. 성서에 등장하는 모세의 탄생 이야기와 유사하다. 칼엘이 도착한 장소는 미국 캔자스주의 한 농가다. 그는 이 후미진 곳에서 평범한 소년으로 성장하지만, 그 흔한 햇빛의 세례를 받으며, 자신이 평범한 클락 켄트가 아니라 한 걸음에 높은 빌딩을 건너뛸 수 있는 ‘또 다른 나’ 슈퍼맨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햇빛은 누구에게나 내려오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이 거주한 장소와 시간을 넘어서는 영웅은 슈퍼맨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항상 관조하고 넘어설 때, 영웅이다.

내 삶의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미국이란 미지의 땅에서 만난 인생 멘토와의 만남이었다. 그를 찾아가 물었다. “당신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는 내게 덤덤하게 말했다. “Show yourself!” 번역하자면 “당신 자신을 내게 보여 주십시오”이다. 그가 원한 나의 모습은 그 앞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서 있는 ‘과거의 아’가 아니라, 나를 넘어선 ‘또 다른 나’였다. 그의 목소리는 내 영혼을 울리는 신의 소리와 같았다.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나를 찾는 수행을 시작했다. 매일 매일 새로운 ‘또 다른 나’를 찾는 시간만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음력설이 진짜 새로운 해의 시작이다. 2015년에 아직도 머물고 있는 오래된 나를 과감히 버리고 ‘또 다른 나’를 찾는 여정을 새롭게 떠나고 싶다.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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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해운대 달맞이 언덕으로 오신 것은 팔순을 넘긴 이듬해였다. 달맞이 언덕은 달이 제일 먼저, 그리고 휘영청 밝게 떠오르는 곳으로 유명하다. 달과 마찬가지로 하늘과 바다 사이, 해가 떠오르는 순간과 빛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마디로 빛이 충만한 공간이다. 엄마는 4년 반, 햇수로 5년 동안 달맞이 언덕에 머무르시다 큰 오라버니 곁인 일산 호숫가로 옮겨 가셨고, 반년 후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향년 86세, 봄이었다.

엄마가 떠나시고, 두 번의 봄이 왔다 갔지만, 아직도 나는 엄마한테 제대로 “잘 가요”라는 인사를 못 드리고 있다. 이 시대, 딸로서, 인간으로서 도리를 하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끝나지 않는 자문과 죄책감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달맞이 언덕으로 오셨지만, 내 집에서 함께 사신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엄마가 이 바닷가 언덕으로 오시기 1년 전, 서울에서 내려온 신임 교수이자 외지인이었고, 중학생 아들을 둔 엄마였고, 논문과 신작 소설을 계속 써서 발표해야 하는 연구자이자 현역작가였다. 엄마를 집에서 500m 떨어진 요양병원에 모셨다. 그리고 4년 반 동안, 매주 주말이면 엄마 곁에서 보냈다.


해무가 낀 달맞이언덕의 고층빌딩들_경향DB


요양원 시스템은 가족들의 생활을 원활하게 보장해주었다. 이곳에 엄마를 모시기 전, 십 년 가까이 전국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의 생활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엄마의 이상 행동으로 좌불안석의 연속이었다. 달맞이 언덕은 누구라도 살아보고 싶은 아름다운 곳이고, 게다가 내 곁이었지만, 요양병원에 모셨다는 사실 때문에 자식들은 죄송함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갈수록 아득해지고 혼미해지는 엄마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온갖 놀이와 재롱을 벌이고, “잘 자라”고 다독여 잠재워 드린 뒤,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내 몸도 마음도 다 무너져내렸다.

소설가는 자신이 처한 가장 절박한 현실을 어떤 식으로든 꺼내 쓸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내가 한 인간의 ‘잘 사는 법(웰빙)’보다 그 삶을 ‘잘 마무리하는 길(웰다잉)’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한 것은 엄마 인생의 마지막 시기인 4년 반의 요양원 생활을 지켜보면서였다. 이 시기 나는 ‘환대’와 ‘구름 한 점’ 등 생애 마지막 시기를 화두로 삼은 단편 소설들을 썼다. 이때 내가 가장 고통스럽게 매달린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고, 그 핵심은 인간에 대한 도리, 또는 예의, 곧 ‘윤리’였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2000년대 이후, 나뿐만 아니라 여러 한국 작가들이 이 주제에 천착했다.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 작품인 김경욱의 단편 ‘천국의 문’은 그 흐름에서 읽을 수 있는 최근작이다.

4년 반을 곁에서 보냈건만, 나는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식이다. 요양원에 모셨다는 것 이상으로 죄책감이 내 심장에 박혀 있다. 엄마 없이 맞는 세 번째 설이다. 이번 성묘에서는 “잘 가요, 엄마”라고, 미뤄온 인사를 제대로 드릴 수 있을까.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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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당신의 근황을 전해주지 않으니 당신의 요즘 형편이 더욱 궁금합니다. 당신의 트위터는 2014년 12월24일에 멈춰져 있군요. 헌법재판소(헌재)가 통합진보당(통진당)의 해산을 결정한 지 닷새 뒤입니다. 통진당 해산은 그보다 두 해 전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당신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세차게 몰아세웠을 때 이미 결정된 것이었을까요?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직후, 저는 통진당의 ‘종북주의’와 ‘위헌성’을 묻는 한 인터뷰어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좀 길지만 인용하겠습니다. “통진당 구성원들 가운데 종북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 있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러나 통진당은 엄연한 합법정당이고, 더구나 원내정당입니다. 만약에 통진당이 대한민국 헌법이 정한 민주적 기본질서를 어기고 있는 정당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정부가 헌재에 통진당의 해산심판을 청구하면 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엔 헌재도 통진당을 위헌정당이라 판단할 것 같지 않습니다. 통진당이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합니까? 복수정당제와 선거제도를 부정합니까? 의회제도와 권력분립을 부정합니까?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정합니까? 그 당 구성원들 개개인의 생각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통진당이 그런 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개적으로 부정한 적은 없습니다. 따라서 정당해산심판이 청구되더라도, 헌재는 이것을 기각할 것입니다.”

그로부터 두 해도 지나지 않아, 제가 박근혜 정권의 몰상식을 과소평가하고 헌재의 양식을 과대평가했다는 것이 또렷해졌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법무부는 그 해 11월5일 헌재에 통진당 해산심판을 청구했고, 박근혜씨의 대통령 당선 2주기인 그 이듬해 12월19일 헌재는 인용 8, 기각 1이라는 압도적 다수의견으로 통진당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저는 이 판결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뿌리째 뽑아버렸다고 생각합니다. 헌재는 법의 지배를 외면하고, 여론재판을, 그러니까 일종의 인민재판을 한 것입니다. 정권이 통진당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을 뿐만 아니라, 세간에도 통진당은 종북정당이라는 인식이 넓게 퍼져있었습니다. 헌재는 이 여론에 편승한 정치재판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정치재판이 시작된 것은 법무부가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국무회의가 심의·의결한 2013년 11월5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작은 2012년 4월11일 치러진 제19대 총선 직후 벌어진 통진당의 내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분당으로 마무리된 그 내분의 전말을 되돌아보면 입이 씁쓸합니다. 내분의 씨앗이 된 부정경선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이 스스로 부정경선을 저지른 옛 국민참여당(국참) 계열 당원이었다는 것도, 당신이 이끄는 소위 당권파에게만 부정경선 책임을 온전히 뒤집어씌운 국참당 계열이 거의 모든 언론의 십자포화 지원을 받아 부정경선 논란을 종북논란으로 바꿔치기해 당권파를 여론에서 고립시킨 것도, 결국 국참계와 옛 진보신당계가 탈당을 해 진보정의당(지금의 정의당)을 만들면서 자파 비례대표 의원들의 직을 유지하기 위해 소위 ‘셀프제명’을 한 것도 죄다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국참계와 언론이 저지른 종북몰이에다가 중앙위원회에서의 폭력사태가 포개지면서, 여론은 통진당 내분 사태를 ‘사악한 이정희 대 정의로운 유시민’의 구도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통진당에 씌워진 부정경선의 올가미와 종북의 올가미 가운데 더 힘이 셌던 것은 후자였습니다. 당권파 역시 부정경선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은 당신도 인정할 테지만, 그 혐의를 오로지 당권파에게 씌운 것도 모자라 당신과 당신의 동지들을 종북으로 모는 전략으로 제 몸의 때를 씻어내려 시도한 국참계의 술수는 역겨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통진당에 짙게 드리워진 종북 이미지는 뒷날 헌법재판관들이 비겁하게도 법의 지배 대신 인민재판을 선택한 동력의 일부가 되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저는 지금 통진당 해산과정을 법치주의와 거리가 먼 인민재판으로 만든 것은 박근혜 정권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선정적 언론과, 한때 당신과 한 둥지에 있던 지금의 정의당 사람들이기도 했다고 말하고 있는 중입니다. 말하자면 당신과 당신의 동지들은 법리에 따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이스태블리시먼트(Establishment)의 비토에 의해, 우리 사회에서 박멸해야 할 병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통진당 해산을 통해서 대한민국은 일단 그 멸균에 성공한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위생처리한 대가로 우리는 법의 지배라는, 민주공화국의 커다란 원칙을 훼손해 버렸습니다. 통진당 해산은 대한민국 헌재 역사의 가장 커다란 치욕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지하거나 방치한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시민 자격을 그 순간 잃었습니다. 통진당 해산이 결정됐을 때 당신이 느꼈을 공적 절망감에 저는 깊이 공감합니다.

그러나 저는 한번도 통진당 지지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인터뷰에서 저는 “통진당 구성원들 가운데 종북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의 북한 체제를 고금동서 최악의 전체주의 체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체제는 절대악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허물어지거나 바뀌어야 할 체제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절대악에 너그러운 사람들을 품고 있던 통진당이 위헌정당이 아니라고 제가 주장한 것은, 통진당 안의 그 세력이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일탈자들의 최소 수준, 곧 잔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 세력이 통진당의 정책에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 미미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북 체제에 너그러운 사람들이 통진당의 다수파라고 제가 판단했다면, 그 당이 북한과 협력해 대한민국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혁명정당이라고 판단했다면, 저는 당연히 통진당이 위헌정당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저는 결코 당신이 종북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을 다소 열정적인 민족주의자라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을 기원하는 평화통일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사람들에게 오해의 빌미를 준 것도 사실입니다. 6·25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묻는 사상경찰의 수준 낮은 질문에 ‘남침’이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지 못한 당신이 안타깝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그 전쟁이 1950년 6월25일 새벽에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수정주의가 하나의 학문적 견해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의적 사상경찰들을 포함해 대한민국 시민 대다수가 당신에게 듣고 싶어 했던 것은 복합적 성격을 지닌 그 ‘한국전쟁’의 ‘기원’이 아니라, 남과 북 사이의 전면적 전쟁을 시작한 것이 어느 쪽이냐였을 뿐입니다.

당신이 열정적 민족주의자로서 북의 동포들에게 깊은 연대감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연대감은 북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인권과 복지에 대한 관심으로 발현해야 합니다. 물론 북한 동포들의 인권 신장을 위한 접근에는 여러 길이 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당신의 견해가 주류 반북주의자들의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북의 동포들에 대한 당신의 연대감이 최악의 전체주의 왕조 체제에 대한 너그러움으로 발현한다면 당신은 남쪽의 악이 싫어서 북쪽의 더 큰 악을 보듬어 안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그런 의미의 민족주의자는 아니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당신의 목소리가 문득 그립습니다.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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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 중반을 지나면서 몸에 큰 고장이 났다. 한동안 병원신세를 진 것은 물론이다. 퇴원해서 집에서 요양하면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였다. 꼬박 1년 반을 집에서 보냈다. 의사 선생의 지시는 책을 보지 말고 무조건 쉬란다. 책을 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아예 볼 수가 없었다.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누워서 TV를 보는 것이다. 대한민국 TV가 얼마나 볼 것이 없는지는 일주일 만에 뼈저리게 깨우쳤다. 어느 날 선배 교수님께서 경과가 어떠냐고 전화를 하셨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너무나 무료하다고 했더니, 웃으시면서 비디오방에 가서 무협비디오나 빌려다가 보라고 하신다. 그냥 소일거리로 켜 놓고 있으란다.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생각도 말고 그냥 시간을 보내는 데는 그만이라며 웃으며 하시는 말씀에 혹시나 싶어 아파트 상가에 있는 비디오가게로 가서 스무 개를 빌렸다. 가게 주인은 좋아라 하면서 30% 할인을 해 준단다.

돌아와 몇 편을 연속 상영했는데 얼마 안 가 볼 수가 없었다. 요즘의 막장드라마와 비슷했다. 아니 막장드라마 같은 중독성도 없었다. 빌려온 돈이 아깝지만 다시 무료한 시간으로 복귀했다. 무협비디오에 실패한 뒤 옛날 생각이 났다. 나 역시 무협소설을 꽤나 보았던 것이다. 주로 중학교 때였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군협지>란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읽은 책 중에는 <정협지> <비룡> <비호> 등이 떠오른다. 10년 전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군협지> 5권을 팔고 있었는데, 옛날 기억이 나 사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른이 되어서 무협소설을 본 것은 김용의 소설이 나오면서부터였다. 하도 신문지상에서 김용, 김용, <영웅문> <영웅문> 하니까, 궁금증이 나서였다. 그 시리즈 중 어떤 것을 읽었는데, 중간에 포복절도할 일이 있었다. 어떤 여주인공의 이름이 공손대낭(公孫大娘)이었는데, 다음 권을 보니 ‘공손 큰 아가씨’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대낭’을 ‘큰 아가씨’로 번역한 것이었다. 아마 책을 찢어 나누어 주고 번역을 시킨 뒤 거두어 모았을 것이다. 역자로 이름을 내 건 사람이 전체적으로 다시 문장을 다듬어야 마땅한 일이지만, 그게 귀찮아 팽개친 것이 아닌가 싶다. 공손대낭이라면 두보의 시 ‘관공손대랑제자무검기행(觀公孫大娘弟子舞劍器行)’에 나오는 무녀(舞女)로 꽤나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던 말이었다. 어쨌거나 ‘공손 큰 아가씨’가 나오고 난 뒤 책을 덮고 말았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이야기를 들자면, 무협소설은 어른의 판타지다. 미남미녀에 자신을 투사하고, 도저히 극복이 불가능할 위기도 우연에 의해서, 예컨대 동굴 속에서 비급을 얻어서 절세의 고수가 됨으로써 해결된다. 신체적 약점도 어떤 약을 먹고 내공이 갑자기 증진되며, 또 칼도 창도 꿰뚫을 수 없는 갑옷을 입고, 또 무엇이든 끊을 수 있는 칼과, 또 언제나 주인공을 돕는 탁월한 능력의 조력자들이 있다. 그를 사랑하는 미인은 항상 여럿이다. 이게 무협소설의 문법이다. 그야말로 판타지가 아닌가. 독자들은 잠시나마 그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 현실의 고달픔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무협소설이라 해서 저급한 것은 없다. 판타지라면 톨킨의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다. 무협이란 제재 속에 결국 무엇을 담아 인간과 사회, 세계에 대한 어떤 통찰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루쉰의 <중국소설사>에 의하면, 무협소설은 청대 의협소설의 후예다. 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마천이 <사기> <유협열전(遊俠列傳)>에서 형상화한 협객들, 곧 형가(荊軻)와 같은 사람과 만나게 된다. 협객은 강한 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 것을 덕목으로 삼되, 무(武) 곧 폭력을 그 방법으로 택한다. 유협은 다른 것이 아니라 깡패다. 의리 있는 깡패, 핍박받는 민중을 위해서 폭력(절제된 폭력)을 쓰는 자다.

무협소설이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여기에 대한 비평서도 있다. <무림백과>(양수중 저, 안동준·김영수 옮김, 서지원, 1993)가 그것인데, 무협소설의 역사, 특히 구무협(舊武俠)과 신무협의 차이, 무림의 문파, 무술, 무기 등에 대해서 소상히 정리해 놓았다. 또 하나는 진주교육대 송희복 교수가 쓴 <무협의 시대>(경성대출판부, 2008)인데 주로 1966~1976년 사이의 무협영화 계보와 영화의 주인공과 배우에 대해 상설한 것이다. 나는 이 두 책으로 무협소설과 무협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자세히보기 CLICK

전근대 사회에서 약자를 착취하는 자들, 법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자들(아니 법을 넘어 있는 자들), 주로 관료나 토호(土豪) 같은 자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때 민중은 유협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따라서 유협이 횡행하는 세상, 예컨대 <수호지>의 108명의 협객이 영웅으로 대접을 받는 세상은 분명 썩은 사회인 것이다. 아마도 내가 무협비디오를 보고 실망했던 것은, 그런 사회 현실에 대한 통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터이다.

한국의 무협소설은 아마도 <홍길동전>이 최초일 것이다. 물론 도술 운운하는 것이 무술은 아니지만, 무협소설의 무술이란 것도 사실 도술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실례되는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장길산> 같은 것도 무협소설의 기미가 있다. 김홍신의 <인간시장>도 현대판 무협소설로서 썩 괜찮은 작품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아직 읽을 만한, 한번 손에 쥐면 놓을 수가 없는 그런 흥미진진한 한국판 무협소설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세상이 이 모양이면 좋은 무협소설이 나올 만도 한데, 그러지 못하니 이 역시 작가의 가뭄인 셈인가.

사족. 무협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정파건 사파건 할 것 없이 고수가 아닌 졸개들을 죽일 때면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 같았다. 졸개들은 늘 고수가 칼을 한번 휘두르거나 주먹을 휘두르면 그냥 쓰러져 죽곤 했다. 주인공은 언제나 인명의 귀중함, 의리 등을 들먹이고 있는데 정말 웃기는 일이다. 하기야 이렇게 따지고 들면 무협소설과 영화는 아예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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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고, 면세점 거리를 통과할 때면, 향수 매장에 오래 머물곤 한다. 그곳이야말로 세계 향수 시장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향(香)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대학시절 보들레르의 시편들을 만나면서부터이다. 그의 ‘상응’이나 ‘이국의 향기’ 같은 시들을 읽으며 이국적인 향들과 맞닥트렸다. ‘바람에 떠돌고 내 코를 부풀리는, 타마린드 나무의 푸르른 향’, 안식향(때죽나무 수액), 용연향(향유고래 수컷 창자 속 이물), 사향(수컷 노루나 수컷 고양이) 등 다채로운 향들을 단어로 접할 뿐 맡아볼 수 없어 상상력의 한계를 느끼곤 했다.

향에서 향수로 생각을 확장해 나간 것 역시, 보들레르의 산문시 ‘개와 향수병’을 읽으면서이다. 화자(話者)는 파리에서 가장 좋은 향수 가게에서 산 것이라며 개에게 병마개를 열어 향을 맡게 한다. 개는 주인이 부르자 꼬리를 흔들며 먹을 것을 주는 줄 알고 코를 댔다가 이내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을 치고는 비난하듯 화자를 향해 사납게 짖어댄다. 개와 향수는 대중과 예술의 관계를 빗댄 우화이다.

내 생애 첫 향수는 ‘독’이라는 뜻의 ‘푸아종’이다. 그때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문예지 기자로 일하면서, 프랑스대사관 문화과와 한·불 도서 소개 책자 업무에 참여했는데, 누군가가 파리에 다녀오면서 내게 선물로 사다준 것이다. 향이 이름 그대로 뇌 속까지 마비시킬 정도로 독하게 고혹적이었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함부로 열면 안 되는 물건인 양 모셔만 두었지 사용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뒤, 남프랑스와 지중해 지역을 여러 차례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그곳의 태양과 향초들을 접했고, 다채로운 색과 향에 익숙해졌다. 그 과정에서 향이란 각자 고유성에 따라 날씨와 계절, 추억에 따라 다르게 존재하고, 만나고, 발현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래 내가 파리 샤를 드골 공항 향수 매장을 순례하고 마지막으로 찾은 것은 롤리타 렘피카라는 브랜드이다. 향수는 화학과 생물, 문학과 철학, 미술과 패션이 정교하게 융합된 미학의 결정체이다. 롤리타 렘피카는 샤넬, 디오르, 에르메스 등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조르조 아르마니), 스페인(파코라반), 영국(조 말론), 미국(프레시) 등이 펼치는 향수 산업에 발을 들여놓은 한국의 브랜드이다. 철저히 한국명을 베일에 감추고 롤리타 렘피카라는 디자이너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 향수의 각축장인 프랑스 현장에 뛰어들었다기에 관전하면서도 응원하는 마음이 크다. 에르메스의 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의 표현에 의하면, “향이 단어라면, 향수는 문학이다”. 롤리타 렘피카만의 고유한 문학 세계를 기대한다.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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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1.24 20:23:46 수정 : 2016.01.24 20:29:03

1992년 10월 직업적 이유로 라이프치히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의 웅장함과 우아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지요. 역사(驛舍)를 나오니 오른쪽으로 아스토리아 호텔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저는 ASTORIA라는 글자 뭉치를 보며 크리스토프 하인의 어떤 소설을 떠올렸고, 그 연상의 행로는 크리스타 볼프나 슈테판 하임 같은, 그 무렵 한국에서 읽히기 시작한 동독 출신 작가들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괴테거리를 따라 내려가니 라이프치히 대학이 보였습니다. 유럽의 대학들이 흔히 그렇듯, 라이프치히 대학도 캠퍼스라기보다는 그저 건물들이더군요.

저는 그 대학 건물들을 둘러보며 철학자 빌헬름 분트와 에른스트 블로흐,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구스타프 헤르츠 등 이 학교에서 가르쳤던 지성사의 거장들을 떠올렸습니다. 또 라이프니츠와 괴테를 비롯해, 작곡가 슈만과 바그너, 철학자 니체 같은 이 학교의 유명한 학생들도 떠올렸습니다. 저는 한때 언어학도였던 터라, 라이프치히 대학이 19세기 역사비교언어학의 둥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년문법학파라는 이름으로 한 세대를 풍미하던, 그러나 앞서 거론한 사람들보다는 덜 알려진, 헤르만 파울과 카를 부르크만 같은 이 학교의 언어학자들도 떠올렸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재학할 때 카를 마르크스 대학이라고 불렸던 당신의 모교를 둘러보면서도, 저는 당신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그즈음, 통일된 독일의 헬무트 콜 내각에서 여성청년부 장관으로 일하고 있었지요.

그로부터 여덟 해 뒤인 2000년 당신은 야당으로 물러난 기민련의 대표가 되었고, 그보다 다섯 해 뒤인 2005년에는 독일연방공화국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정 파트너를 바꿔가며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비교 대상이 되기를 매우 꺼리실 테지만,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집권기간 11년6개월을 곧 넘어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최장기 여성 최고권력자가 될 참입니다. 아니 남자까지를 포함해도, 12년을 집권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추월할 것이 분명하고, 운이 좋다면 14년을 집권한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까지 제칠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신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최장기 최고권력자가 되는 셈입니다. 대통령과 총리를 오락가락하는 푸틴의 러시아를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면 말입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여자입니다. 어쩌면 남자를 포함해도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일지 모릅니다. 임기를 한 해 남겨놓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나 국내외에 정적들이 수두룩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나 일종의 집단지도 체제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의 실제적 힘이 당신보다 약할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독일의 총리를 넘어서 유럽연합의 총리입니다. 한때 유럽연합은 프랑스와 독일의 양두마차 체제로 굴러갔지만, 이제 프랑스의 힘은 독일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쇠약해졌습니다.



당신은 신비한 사람입니다. 그 신비감이 당신의 매력을 강화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막 연구자 생활을 시작한 양자물리학자가 정치로 방향을 튼 것도 그렇고, 동독 출신의 여성이 통일 독일의 최고권력자가 돼 이리 길게 집권하는 것도 그렇고, 공인으로서 사생활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사실 공인으로서의 사생활만이 아니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당신이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동독으로 이주한 뒤에 보낸 35년의 세월도 봉인돼 있습니다. 당신이 동독으로 이주한 것은 1954년, 당신이 태어나고 몇 주 뒤였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이기는 하지만, 서독의 어떤 젊은 목사가 목회활동을 하기 위해 동독으로 이주했다는 것이 분단국에 사는 저로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35년의 동독 생활에 대해 거의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이 통일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지금 물리학자가 돼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연과학에 대한 당신의 갈증은 독일의 가장 뛰어난 화학자 가운데 한 사람일 당신의 남편이 채워주고 있겠지요. 당신이 뛰어난 물리학도였다는 건 알려져 있지만, 어쩌면 당신의 재능은 물리학보다도 정치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총리가 되기 전 한 인터뷰에서 당신은 “권력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예전 같으면 정치를 통해 뭔가를 이루는 묘미라고 대답했을 거예요. 이제는 상대로부터 뭔가를 빼앗는 맛이라고 말하고 싶네요”라고 너무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그 몇 해 뒤, 당신은 늘 당신을 깔보았던 사민당 출신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로부터 총리직을 빼앗았지요.

그러나 당신은 정치를 통해 많은 것을 이뤄냈습니다. 당신은 일본의 3·11 대지진이 일어난 지 사흘 만에 물리학자로서의 오랜 신념을 거두고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기한 연장을 취소함으로써 독일의 에너지 정책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당신은 네타냐후가 집권한 뒤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냉각시키고 팔레스타인의 정치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한다는 뜻을 명확히 했지만, “독일 총리인 나에게 이스라엘의 안전은 결코 협상 대상이 아닙니다. 유대인 민주주의 국가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한 동참은 독일의 국가이성에 속합니다”라는 발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저지른 반인도 범죄를 끊임없이 참회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집무실 전화를 도청하는 우방국 지도자 오바마와, 당신이 개를 무서워한다는 걸 알고 크림반도의 대통령 별장에서 당신 앞에 래브라도를 풀어놓은 푸틴 사이에서 유럽연합의 홀로서기를 시도해왔습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푸틴은 2006년의 그 사건에 대해 거듭 자신은 당신의 개 공포증을 몰랐다고 변명하더군요.

유로화를 지키려는 당신의 노력은 유럽연합 내부에서 많은 적을 만들었습니다. 당신을 히틀러로 묘사하는 일부 그리스 사람들을 포함해, 남유럽 국가들의 시민들에게 당신은 인기가 없습니다. 유럽연합에서 나가자는 여론이 우세한 영국도 결국 독일의 구심력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나 적이 없는 정치인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정치인으로서 당신이 이룬 가장 큰 업적은 시리아를 비롯해 분쟁지역에서 오는 난민을 최대 규모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분쟁에는 옛 식민주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원죄가 바탕에 깔려 있는 만큼, 그런 원죄가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 같은 나라들보다 훨씬 덜한 독일이 난민들에게 이처럼 관대하다는 것은 독일이라는 나라의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그 위대함은 “내가 조국이라는 말을 쓴다면, 그것은 과도하게 높여진 위상의 조국이 아닙니다. 나는 독일이 형편없이 나쁘다거나 군계일학처럼 훌륭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는 케밥과 피자를 아주 좋아하고, 거리에서 만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훨씬 아름답다고 여기며, 스위스의 태양이 더 오래 빛을 비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당신의 발언에서 더 높은 차원을 얻습니다.

지난 세밑에 쾰른에서 난민들이 여성들에게 가한 성폭력과 거기에 대한 반동으로 독일 전역에 번지고 있는 반난민 시위 때문에 당신의 처지가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도 정치인인 만큼 반난민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나쁜 선택은 당신의 난민정책에 ‘컨트롤 알트 딜리트(Ctrl-Alt-Del)’를 누르는 것입니다. 당신은 독일과 유럽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과 같은 호모사피엔스로서 저의 자부심이기 때문입니다. Ich bin stolz auf Sie, Frau Bundeskanzlerin!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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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박시백 선생의 만화 <조선왕조실록>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만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릴 적 만화를 보는 것은 마치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았다. 내놓고 보기에는 뭔가 좀 애매한 책이었다. 집안의 어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가 만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 경우만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남들도 그랬던 것인지 지금도 모른다.

어른들이 싫어하거나 말거나 나는 만화 보기에 푹 빠진 아이였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는 박재동 선생의 부모님이 하던 만홧가게 ‘문예당’이 있었고, 그곳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사람들은 어떤 유명한 분이 있으면 공연히 자신과 어떤 관계라고 엮는 습성이 있는데, 나 역시 그런 습성을 충만히 가지고 있다. 박재동 선생은 나와 절친한 친구의 형의 친구이다. 좀 복잡하지만 그렇다.

재작년인가, 박시백 선생이 그린 만화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서평을 써 달래서 써 주었더니 연말에 <실록> 간행을 기념하는 자리에 박시백 선생과 박재동 선생,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열렬한 팬임을 고백하는 이희재 선생 등이 모인다고 나에게 오라고 했다.

하지만 일정이 겹쳐 가지 못해 너무나 아쉬웠다. 박재동 선생의 <실크로드 여행기>와 이희재 선생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가지고 가서 사인을 받는 건데 정말 아쉬웠다.

각설하고, 문예당에는 지나간 만화 중에서 아주 좋은 만화를 따로 튼튼하게 묶어 두었다. 나는 그 책들을 보며 오후를 보내곤 했다.

지금도 그때 본 만화 하나는 또록또록하게 기억이 난다. 임창 선생의 <땡이의 사냥일기>던가? 동물의 습성에 대해 소상히 밝히고 있어 재미와 함께 공부도 퍽 되었던 아주 유익한 책이었다. 자연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보다 이 책에서 동물에 대한 유익한 지식을 훨씬 많이 얻었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번지지만, 이희재 선생이 그린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J M 데 바스콘셀로스의 소설 원작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주인공 제제와 뽀르뚜까의 형상은 이희재 선생의 붓끝에서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1994년에 이 책을 사서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2학년이었다)에게 읽으라고 주었다.


며칠 뒤 어딜 갔다가 지하철을 타고 같이 오는데, 아이는 그 책을 읽고 있었다. “아빠, 이 책은 재미있는데, 읽으면 이상하게 절로 눈물이 나요.” 아이는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청년이 되었다. 아마 그 책과 눈물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 터이다. 아쉽게도 2권으로 된 그 책은 없어졌고 뒤에 양장본을 구입해 갖고 있다. <악동이> <아홉살 인생> <간판스타> 등도 구입했는데, 아마 서가 어디에 있을 것이다(<간판스타>의 리얼리즘이야말로 한국 만화의 새로운 경지다!).

대학교수가 만화를 즐겨본다니, 이상하게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나는 만화를 좋아한다. 너무나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짬이 나지 않아서 실컷 보지 못하는 것이 유감일 뿐, 시간만 허락된다면 좋은 만화를 구해서 하루 종일 보고 싶다.

돌이켜보면 좋은 만화가 적지 않았다. 중학교 때 너무나 좋아했던 고우영! <수호지> <삼국지> <서유기> <십팔사략> <일지매> 등 수많은 작품이 있었지만, 나로서는 <수호지>가 단연 으뜸이다. 그것은 아마도 <수호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일 것이다. 근자에는 허영만, 강풀, 윤태호 등의 작품도 한때 꼬박꼬박 읽었다. <미생>은 연재할 때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보았다. <미생>은 암울한 시대의 정직한 풍경이다! 나는 <미생>이 충실한 리얼리즘으로 끝나기를 고대한다.

최근에 읽은 작품으로 가장 묵직했던 것은 조 사코의 작품이었다. 그의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은 이스라엘의 억압, 학살에 의해 일그러지고 분쇄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 좌절의 삶, 기억을 그리고, 불러내고 있다. <안전지대 고라즈데>보다 보스니아 내전을 생생히 전하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최근에 번역된 <저널리즘>에서 그가 전한 인도 쿠시나가르의 불평등한 신분제, 가난에 몰려 죽음 직전에 있는 빈민들의 처참한 생활은, 명상과 신비의 대척점에 있는 인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르포와 만화가 어울린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처럼 미국 자본주의의 황폐함을 고발한 책도 없을 것이다. 아, 물론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말하면서 우리나라 작가 원혜진의 <아! 팔레스타인>을 말하지 않는다면 실례가 될 터이다. 이 책으로 우리도 좁은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얻었다.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스페인의 아나키즘과 스페인 내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아나키스트 안토니오 알타리바! 그는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했다.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자살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주체적 인간의 주체적 판단이다.

어떤 경우 나는 만화에서 쉽지만 깊이 있는 지식을 얻기도 했다. 장 피에르 필리외가 글을 쓰고 시릴 포메스가 그림을 그린 <아랍의 봄>에서 나는 2011년 일어났던 이른바 ‘아랍의 봄’의 이유와 경과에 대한 요령 있는 지식을 얻었다.

체르노빌의 사고를 다룬 <체르노빌>은 어떤가? 이 책만큼 체르노빌의 비극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책이 있을까? <맛의 달인>의 작가 카리야 테츠가 쓰고 슈가 사토가 그린 <일본인과 천황>은 일본 천황제의 역사와 허구성, 천황제가 일본인을 지배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한국 만화의 역사도 이제 짧지 않다. 훌륭한 젊은 만화가도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조 사코의 코믹 저널리즘, 알타리바의 그래픽 노블에 필적하는 작품은 드물지 않나 한다. 앞으로 깊이 있는 좋은 만화가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앞으로 그런 작품을 읽는 안복(眼福)을 충만하게 누렸으면 한다.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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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몫’이란 단어는 신비하다. 내게 맡겨진 절체절명의 임무이자 나만이 할 수 있고, 나의 개성이 마음껏 드러나는 어떤 것이다. 글자 모양으로 보아, 한글인 것 같고 추측하자면 ‘목숨’을 줄여서 간단하게 표현한 말인 것 같다. ‘몫’이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일생을 통해 추적해보고, 만일 그것을 발견한다면 정말 행복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과업이 아닐까? 나의 몫은 무엇인가? 내게 맡겨진 고유한 몫이 무엇인지 모르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게 유일한 몫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정한 교육을 받고 자신의 힘으로 사고할 능력이 생기면 자기 스스로에게 만족할 만한 일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배움의 길에 들어선다. 학교에선 우리하곤 상관없는 남 이야기만을 학습하기만 한다. 오늘날 미국을 정신적으로 독립시킨 19세기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무식이며 흉내 내는 것은 자살행위다”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인류는 이 몫을 추구하고 소중하게 여김으로써 문명을 구축했다. 기원전 3100년 아프리카 북동부 나일강을 중심으로 인류 최초의 문명이 등장했다. 이집트 문명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세상의 삶은 잠시라고 생각했다. 특히 파라오들은 죽은 후에 영원히 거주할 안식처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사후세계가 있다고 가정하는 인간의 상상력이 문명을 탄생시켰다. 기원전 2650년경 이집트 고왕국시대 파라오인 쿠푸는 자신이 영원히 안식할 피라미드 건설을 주문했다.

피라미드 건축의 총괄 책임자는 임호텝이다. 그는 재상이면서 수학자였다. 임호텝은 이집트 전역에서 하얀 석회암을 나일강을 이용해 배에 싣고 와 피라미드를 지었다. 오늘날 이집트 기자에 우뚝 선 세 개의 피라미드 중 중간에 있는 가장 높은 피라미드가 임호텝이 쿠푸왕을 위해 지은 것이다. 이 피라미드의 원래 높이는 147m, 정사각형 밑단은 230m이고 흰색 석회암 230만개가 사용됐다. 지금은 세월에 의해 빛이 바랬지만, 당시에는 강렬한 햇빛에 눈부시게 빛나는 거대한 보석과 같은 피라미드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어떻게 이 피라미드는 4600년이 지난 지금도 원래 그 모습대로 서있는 것일까? 피라미드 앞에서 편안히 앉아 있는 스핑크스는 그런 질문을 하는 인간을 응시하고 있다. 기원전 3200년경 처음으로 문자와 도시를 만들어 문명을 구축한 이집트인들은 나일강 상류에 거주하던 누비아와 에티오피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건물을 지을 때 그 중심에 타조 깃털을 놓고 의례를 행하곤 했다. 이집트어 성각문자에서 타조 깃털 모양을 ‘마아트’라고 발음한다. ‘마아트’란 흔히 ‘정의, 진리, 조화, 질서, 법’ 등으로 번역된다. 유교의 도(道)나 힌두교의 르타(rta)처럼 우주 삼라만상의 운행 원칙과 같은 철학적인 개념이다.

임호텝은 울퉁불퉁한 모래사장 위에 하얀색 석회암을 230만개 올릴 셈이다. 이 바위들이 무너지지 않고 영원히 건재하게 하기 위한 중요한 의식이 있다. 바로 타조 깃털인 ‘마아트’를 그 무게 중심을 찾아 정확하고도 단호하게 놓는 의례다. ‘마아트’란 정사각형의 중심이 아니라 주어진 지형에서 가장 적당한 최적의 장소다. 임호텝이 발견한 그 유일한 장소는 230만개 바위들을 충분히 지탱할 수 있는 역동적인 오메가 포인트다.

마아트는 피라미드 건축의 핵심일 뿐 아니라 인간 삶의 궁극적인 비밀이다. 고대 이집트의 <사자의 서>는 사람이 죽은 후 영원한 사후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를 묘사한 책이다. 기원전 13세기 이집트 파라오 세티 1세의 가축들을 관리하던 고관 휴네페르는 자신이 죽은 후 지하세계에 내려가 받는 심판과정을 정교하게 그렸다. 그는 자칼 머리를 한 시체 방부처리를 관장하는 신인 아누비스에 이끌려 심판대로 간다. 심판대의 오른편에선 문자의 신인 토트가 휴네페르가 살아생전에 한 생각, 말, 행동을 기록한 생명 책을 들고 읽고 있다. 토트신 밑에는 휴네페르를 잡아 먹으려는 괴물 암무트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가장 중요한 장면은 휴네페르와 토트신 사이에 있는 천칭이다. 천칭의 오른쪽 그릇에는 ‘마아트’가 올려져 있고 왼쪽 그릇에는 휴네페르의 심장이 올려져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심장에 그 사람의 모든 행위가 기록돼 있다고 생각했다. ‘마아트’와 ‘심장’이 저울질을 할 동안 휴네페르는 특별한 고백을 암송해야 한다. 이 고백은 42가지 부정 고백으로 “나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나는 폭력으로 강도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훔치지 않았습니다” 등이다. 자신이 생전에 해야 할 운명적인 일을 찾으려면 우선 자신이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자신에게 부차적인 일을 잘라내야 한다. 42가지를 암송하는 동안 ‘마아트’와 ‘심장’이 평형을 이뤄야 한다.

신이 휴네페르에게 물어본 내용은 열심히 일해 돈을 벌었느냐, 훌륭한 정치가가 되었느냐, 명예를 가졌느냐와 같은 것이 아니다. “당신은 자신이 꼭 행해야 할 마아트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저절로 목숨을 바칠 정도로 몰입했는가?” ‘마아트’는 나에게 유일무이한 나의 몫이다.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입니까?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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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제 국가에서 차기 대통령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대권주자 지지율을 거의 매일 발표하고 그것이 뭇사람들에 의해 회자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런 현상은 분명히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체가 하나의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에 박근혜 당시 의원은 차기 대통령 지지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했지만 2011년 말부터는 안철수 의원이 그 자리를 위협하곤 했다. 박근혜 당시 의원의 높은 지지도는 이명박 대통령의 위상을 위협했지만 동시에 정권이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에 여권 차기 주자로 가장 근접해 있는 사람은 물론 김무성 대표이다. 김 대표는 청와대의 의중이 담겨 있던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당 대표로 선출됐는데, 요즘 상황을 보면 현직 대통령과의 사이가 나쁜 여당 대표의 한계를 보는 듯하다. 전두환 대통령의 지지를 받았던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같은 지위도 아니고, 임기 말의 김영삼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와 같은 모습도 아닌 것이 김 대표의 요즘 사정이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 대표 경선, 원내대표 선출 등에서 친박 후보가 줄줄이 고배를 마시자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이 전과 같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김 대표의 판단 착오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안대희 전 대법관을 향한 험지출마론이 당사자들에 의해서 무시되는 데서 보듯이 김무성 대표의 리더십은 붕괴 직전에 와 있다.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김 대표가 총선 과정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총선 후에는 더욱 그러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종인 박사를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고 자신은 대표직을 사퇴하고 전권을 선대위원회에 이양하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런 극약 처방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과 문 대표의 지지도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같은 지지도 상승은 고정지지층의 결집이란 측면이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문재인 대표는 자신이 대표가 된 후에 치른 재·보선에서 패배하자 김상곤 전 교육감을 초빙해서 혁신위원회를 만들었다. 당내 문제를 정치적 대화로서 해결하기보다는 외부인사가 주도하는 위원회가 만든 제도로서 해결토록 한 셈인데, 결국에는 혁신위원회가 마련한 혁신안이 당내 갈등을 증폭시켜서 비주류 의원들의 탈당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용섭 전의원이 문재인 대표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 배석한 가운데 복당을 선언했다._경향DB


문 대표가 김종인 박사를 영입해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 역시 앞서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극약 처방이 성공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100만표 차이로 석패한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지만 그 자산을 지난 1년 동안 많이 소진해 버렸다. 이유야 어찌 됐든 자신이 당 대표로 있을 때 당의 분열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문 대표의 리더십은 큰 손상을 입은 셈이다. 어떠한 이유로도 지난 1년 동안 당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선주자로서의 문 대표의 입지는 위축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국민의당 창당을 추진하는 안철수 의원은 탈당 후에 지지도가 상승세를 보였으나 한상진 창준위 위원장의 불필요한 발언, 추가 탈당 및 외부인사 영입의 부진으로 동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창당준비대회를 치르고 나서 지지도가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안철수 의원의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영국 자유민주당의 경우에서 보듯이 소선거구제하에서 제3당이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호남이란 지역지반을 갖고 있으면 새로운 정당이 성공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관건은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 있는 인적 기반이 얼마나 있느냐인데, 국민의당은 이 점에서 심각한 난관에 처해 있다. 안철수 의원이 여전히 대선주자로서 남을 수 있느냐는 국민의당이 총선에서 얼마나 선전하느냐에 달려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국민의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인지도와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당 대표로 영입해서 총선을 치러야 하는데,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의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정치는 한 달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김무성·문재인·안철수 세 사람이 총선 후에 대선주자로서의 위치를 여전히 유지할 수 있을지가 의심스럽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2016년 정치게임에서 진정한 승자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시중의 루머에 머물던 개헌론이 힘을 얻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있어 일대 비극이 되고 말 것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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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갈 때면, 관람하는 주 대상이 바뀐다. 파리의 현대미술관인 퐁피두 미술관의 경우, 어느 때에는 미국적인 장면과 추상 표현을 실현한 에드워드 호퍼와 마크 로스코의 회화들을 중심으로 돌아보고, 또 어느 때에는 일상 풍경을 환각적으로 묘사한 프랑스 화가 발튀스의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관람하기도 한다. 부연하자면, 이런 것이다. 극작가 앙토냉 아르토와 작가 알베르 카뮈에 의해 발튀스의 회화 세계를 새롭게 발견한 뒤라면, 또 최근 일본의 사진작가 히사지 하라의 <발튀스 회화의 고찰>을 접한 뒤라면, 발튀스가 단연 관람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발튀스의 에로틱하면서도 섬뜩한 사춘기 소녀 연작과 기묘한 일상의 장면들은 고착된 삶의 국면들을 뒤흔들고,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이번 파리 체류 중에 퐁피두 미술관에 갈 생각을 한 것은 파울 클레의 그림들을 다시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몇 년째 유대계 독일인 미학자 발터 벤야민의 파리에서의 족적을 쫓는 과정에 그가 가깝게 지내며 경의를 표했던 파울 클레의 그림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스위스 출신의 이 화가는 음악과 그림에 공히 천부적인 재능을 물려받았고, 두 세계를 연마해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화가로 활동했다. 그의 그림들은, 전쟁 중이었음에도, 음악적인 리듬감이 선과 색으로 이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추상적이고 단순한 이미지를 형성했다. 퐁피두에 소장되어 있는 그의 다수의 그림들 ‘리듬 속에’ ‘피렌체 빌라’ ‘사슴’ 등이 그것이다.



클레의 그림 중 벤야민이 특별히 주목한 것은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1920)이다. 수채화로 그려진 천사는 곁눈질로 뒤돌아보고 있고, 앙상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려는 형상이다. 벤야민은 이 천사의 시선과 날갯짓을 통해 역사 개념에서 진보를 논하고, 미래의 희망을 설파했다. 새로운 천사는, 눈은 과거의 끝없는 자료, 폐허를 돌아보지만, 거역할 수 없는 폭풍이 미래로 등을 세차게 밀어낸 존재, 곧 역사의 진보를 이끄는 천사를 뜻한다.

프랑스에는 현재 60만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 연달아 테러의 타깃이 되면서 최근 상당수가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있다.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는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3년째 파리 연구를 이어가던 벤야민은 좁혀오는 나치의 추적을 견디다 못해 아메리카로 떠나기 위해 스페인의 국경 포구 포르부에 이르렀다가 극적인 죽음을 맞기까지 분신처럼 이 그림을 품에 간직했다. 벤야민은 이 그림과 함께 비극적 최후를 맞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이후 이 그림은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그림 중의 하나가 되었다.

퐁피두에서는 ‘새로운 천사’ 대신 ‘예언자’와 마주할 수 있다. 백색의 초상이 언뜻 외계인의 형상이다. 인류는, 역사는, 새로운 천사, 메시아는 어디로 향해 가는가. 예언자는 말이 없다.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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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현 정권 다섯 해는 제가 한 신문사의 논설위원으로 일하던 때와 거의 포개집니다. 그 시절은 당신의 정치역정 중 가장 화사한 시기였습니다. 당신은 여당 대표를 지냈고, 대통령 다음의 2인자로서 대한민국의 외교 안보 통일 정책을 관장했으며, 마침내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습니다. 그 전시기를 통해, 제가 그 신문이나 다른 지면에서 당신을 언급한 글 가운데 당신에게 호감을 표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이 소위 친노의 둥지 안에 있었을 때도, 당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결별하고 대선 출정에 나선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 다수가 당신에게서 이탈한 것이 틀림없는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나는 당신 대신에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제가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투표한 것은 그 당의 이념에 공감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거의 확실해진 바에야, 소수정당에 제 한 표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 선택 때문에 제가 비판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박한 자유주의자로서 제가 당신에게 투표하는 것이 자연스럽기는 했지만, 노 정권 5년 동안 당신은 저를 너무 실망시켰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가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그 선거에서 당신에게 투표하지 않은 친노 유권자들은 훨씬 더 큰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열린우리당을 계승한 정당임은 명확했으므로,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마땅히 당신을 지지했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 정권 5년 동안, 당신을 비판한 것만큼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대통령도 적잖이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극보수언론이 어이없는 이유로 청와대를 힐난할 때는, 과감히 나서서 대통령을 옹호했습니다. 실제로 제 글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옮겨 실어도 되겠느냐는 물음이 청와대로부터 와서 그러라고 말한 적이 두 번 있습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를 번갈아 비판하고 방어하면서도, 당신을 한번도 옹호한 적이 없다는 것은 얄궂습니다. 더구나 당신의 잘못을 추궁하는 제 언어는 때로 너무나 벼려져 있어서, 제 협량을 드러내는 듯도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을 무시로 방어한 제가 당신에게는 왜 그리 모질었을까요? 그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제 잠재의식에 당신이 제 동향인이라는 사실이 깔려 있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한때는 어떤 신문에서도 쓰지 못하던 ‘영남패권주의(영패)’라는 말이 이제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말이 태어난 것은 꽤 오래전이지만, ‘영패’는 좌우 보혁을 가로지르는 대한민국 주류사회에서 금기어였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불편한 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제도권 언론에서 이 말을 거침없이 사용한 사람은 저 말고 거의 없을 것입니다. 최근 이 말이 제도권 언론에 나풀거리게 된 것은 서남대 김욱 교수가 쓴 <아주 낯선 상식>이라는 책 덕분입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사회에 미만한 영패를 분석하고 그것의 해소를 모색한 책입니다. 당초 이 책은 제도권 언론 카르텔의 의도적 무시 때문에 ‘금서 아닌 금서’가 될 뻔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책이 됐습니다.



제 판단에, 노무현 정권은 새누리당 정권과 영남패권주의를 공유했습니다. 제가 노 정권을 비판한 것은 삼성그룹에 기대는 그 정권의 계급적 성격이나 어설픈 외교 안보 정책 때문이기도 했지만, 핵심권력자들이 영남패권주의를 무람없이 추구하고 행사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존경받아 마땅할 점이 노 전 대통령에게는 많았습니다. 반면에 저는 그이가, 비록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영패주의자였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노 전 대통령 처지에서 판단하자면, 고향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과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를 몰표로 지지한 호남 유권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러고도 결국 그는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노 전 대통령의 욕망을 이해할 만한 것이라 판단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달랐습니다. 당신은 고향에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고도 고향을 배신했습니다. 당신과 저의 동향인들은 2002년 대선 국면에서 당신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똑같이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노 전 대통령에게 똑같이 배신당했습니다. 똑같이 호남을 배신했지만, 제가 노 전 대통령보다 당신을 더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당신이 호남인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당 분당에 앞장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난닝구’라는 말이 태어났습니다. 이 ‘난닝구’라는 말은 당초 열린우리당에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은 정치인들이나 그 지지자들을 가리켰지만, 이내 호남 사람 전체를 경멸적으로 가리키는 비하어로 뜻이 확장되었습니다. 이것은 한국 정치의 참사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문단의 한 선배는, 이 ‘난닝구’라는 말의 탄생이 결국 노 전 대통령을 자살로까지 몰고 갔다고 말합니다. 그 판단이 옳든 그르든, 지금 야권의 온갖 분열과 무기력의 뿌리가 당신이 주도한 민주당 분당이었다는 것은 당신도 인정할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에 따라가지 않은 민주당 사람들을 ‘잔민당’이라는 말로 경멸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오늘날 ‘민주당’이라는 이름에 그토록 애착을 보이는 것은 일종의 소극입니다.

당신은 마땅히 영남패권주의라 불러야 할 것을 지역주의 내지는 지역감정이라 부르며, 그것을 없애는 방법은 그것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라는 기묘한 처방을 내놓았습니다. 노 정권 초 당신이 ‘대구사랑모임’이라는 것을 만들었을 때, 저는 기함했습니다. 1961년 박정희 장군의 군사반란 이후 대구는 애정결핍 상태였던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호남정권 아래서도 대구는 충분히 사랑받았습니다.

당신이 처음으로 영남패권주의라는 말을 쓴 것은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민주당 계열 정당을 통합하자는 당신의 요청을 노 전 대통령이 거부한 이후입니다. 당신은 대선 국면에서 노 전 대통령과 갈라지고 나서야 영패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고, 노 전 대통령이 영패주의자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없다고 아무리 우겨도 있는 것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너무 늦게 영패의 울타리를 넘었습니다. 사실은 영패 서클에서 쫓겨났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 당신에게 살가운 말을 건넬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의 이 편지는 당신에 대한 질책을 되풀이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당신을 향해 겨눈 펜촉들이 너무 날카로웠음을 인정하고, 당신의 정치 일선 복귀를 권유하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제가 던진 말의 돌멩이들이 비례의 원칙을 깨고 너무 많았던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지금의 정치권은, 특히 위기에 놓인 야권은 당신의 경륜을 필요로 합니다. 그 경륜은 당신이 맡아온 고위 직책들로부터만이 아니라, 정치권에서 때론 스스로 저지르고 때론 가슴 아리게 당한 배신의 염량세태에서도 축적되었을 것입니다. 영패에 협력했다가 영패에 핍박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영패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에 당신의 역량을 보태십시오. 저는 당신에게 대통령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통령이 되지 않고서도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고향에 틀어박혀서 고구마나 만지작거릴 때가 아닙니다. 나오십시오.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정치권입니다. 한때 당신이 상처를 줬던 고향을 위해서, 그리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재건을 위해서 나오십시오.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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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실을 빗대 부르는 ‘헬조선’ 또는 ‘지옥불반도’라는 말에서 어떤 정치적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가 봇물을 이루는 것 같다. 바야흐로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런 시도가 성공적일 것이라고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다. 물론 통계적으로 청년이 야당에 투표할 확률이 높고, 지금 당장 코앞에 닥친 현실에 대한 불만이라면 무엇이든지 동원해야 하는 기성 정치권으로서 청년세대가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헬조선’ 현상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용하는 것까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헬조선’이라는 말을 근거로 지금 사회에 대한 청년세대의 불만이 극에 달해서 마치 금방이라도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 같다는 진단은 어딘가 석연치 않을 뿐만 아니라 충분하지도 않다. 특히 ‘헬조선’을 ‘헤븐조선’으로 만들기 위해 청년들이 투표장에 가야 한다는 식으로 구태의연하게 늘어놓는 ‘어르신들’의 설교는 왜 지금 청년세대가 다른 수많은 비판적인 표현을 두고 한국의 현실을 비꼬아 ‘헬조선’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려고 하지 않는 기성세대의 오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이런 움직임은 사실상 청년세대를 대상화해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보다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는 일이라면 결과야 어떻든 일단 지르고 보겠다는 얄팍한 속내를 드러내는 징후에 불과하다. 솔직히 ‘헬조선’이라는 말은 이런 가식적 제스처 자체를 조롱하는 표현에 가깝다. ‘헬조선’이라는 표현에서 중요한 의미는 ‘헬’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에 숨어 있다. 진보나 보수를 막론하고 기성세대는 ‘헬’의 뜻을 되새기지만, 사실상 ‘헬조선’은 한국이 전근대적이었던 조선처럼 후져서 헬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칼럼니스트 박권일이 정확히 지적했듯이 ‘헬조선’은 ‘미개’라는 말과 쌍을 이루는 말이다.

‘헬조선’에서 작동하고 있는 프레임은 ‘진보 대 보수’라기보다 ‘문명 대 미개’이다. 한때 한국에서 진보세력에 의해 보수세력은 ‘미개’로 간주되기도 했지만, 오늘날 ‘헬조선’에서 진보세력은 또 다른 ‘미개’로 분류되고 있을 뿐이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헬조선’이라는 표현은 과거의 냉소주의가 변형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냉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미개’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냉소주의라고 할 수 있다.

헬조선_경향DB


독일 철학자 슬로터다이크가 분석했듯이 현대의 냉소주의는 “계몽된 허위의식”이기 때문에 계몽의 전통 자체에 대한 불신을 포함하고 있다. 계몽의 이중성에 근거한 이런 냉소주의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의식을 허위라고 스스로 깨닫고 있기 때문에 지탱된다. 그러나 지금 유행하고 있는 ‘헬조선’의 논리는 이런 냉소주의의 역설을 한 번 더 뒤집어 놓은 것 같다.

‘헬조선’은 ‘죽창’이라는 저항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허위를 방패로 삼는 냉소주의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자신의 삶에 닥친 조건들이 ‘노오력’만으로 극복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른바 ‘수저론’은 이런 불가항력적 물질성을 표현하는 수사라고 볼 수 있다. ‘헬조선’은 정치가 좌절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헬조선’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문명’을 찾아서 ‘탈조선’하거나 아니면 ‘미개’를 끝까지 밀어붙인 ‘죽창’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헬조선’의 논리는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아시아에서 빈번하게 확인할 수 있는 근대화의 논리에서 ‘헬조선’과 유사한 사고방식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사회다윈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역사를 민족 간의 약육강식으로 설명했던 근대 아시아 지식인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조국은 말 그대로 ‘헬’이었다. 역사를 이렇게 진화의 문제로 파악하는 순간, 돌연 정치는 소멸하고 자연 상태의 생존경쟁만이 중심 문제로 남게 된다. 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오직 삶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사실 정치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이런 ‘먹고사니즘’의 악무한일 것이다. 정치는 생존경쟁에 빠져 있는 삶을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계기이다. 지금 ‘헬조선’이라는 말에 들씌워져 있는 ‘문명 대 미개’라는 프레임을 ‘진보 대 보수’의 대결로 바꾸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과연 이런 ‘사건’이 이번 선거철에 일어날 수 있을까. 많은 것이 그 누구도 아닌 정치인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달려 있다. 더 이상 국민을 탓하면서 수준 낮은 정치를 비난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이미 한국은 충분히 ‘헬’이다. 한국이 ‘헬’인 이유는 국민이 ‘미개’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보가 더 이상 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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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때 화가라는 멋진 직업을 포기”한 이가 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다른 직업을 찾아 “비행기 조종”과 “지리”를 배웠고, 세계를 날아다녔으나 “진심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이 혼자 살아오던 끝”에 사건을 겪었다. “여섯 해 전”의 비행 중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것이다. 그곳에서 열흘을 보낸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슬픈 풍경”을 그렸다. “어린 왕자가 이 땅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그림. 어린 왕자는 여섯 개 별을 거쳐 지구별에 당도해 꼬박 한 해를 여행했다. 그 마지막 열흘간 둘은 친구가 됐다.

황현산 선생의 번역으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접한 게 근 25년 만이다. 처음 읽었을 때나 지금이나 민망한 궁금증은 같다. 어린 왕자와 비행사는 몇 살일까? “삶을 이해하고 있”다면 “숫자 같은 것이야 우습다” 여기고 “상자를 꿰뚫고 그 속에 있는 양을 볼 줄”은커녕 화자가 비꼰 대로 “그 앤 나이가 몇이지?” 묻는 어른 행세지 싶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본문엔 어린 왕자 그림이 22회 나온다. 이를 두고 비행사는 “영 딴판”이라거나 “너무 크고 너무 작다”고도 썼으나 엉성한 듯 강렬한 그림에 빠진 난 ‘음, 어린 아이네’ 하고 퉁쳤다.

반면 비행사가 생텍쥐페리라고 믿었던 나는 “여섯 해 전”의 단서를 이번에 연보에서 찾았다. “파리~사이공 간 비행시간 신기록”을 위해 비행한 그가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 5일 동안 사경을 헤매며 걸은 뒤, 한 대상에게 발견되어 극적으로 구조”된 때가 35세다. 사하라 사막 동부에 떨어진 이때라면 글을 쓰고 책이 나온 42~43세의 6년 전과 안 맞았다. 화가이길 포기한 여섯 살이 생생해서 6년 전으로 각색하고 5일간의 사막 체험 역시 열흘을 채우고도 남았을 터라 그리 됐겠지, 하고 또 퉁쳤다. 그러고서 35세의 그 무렵 나에게 온 “한 아이”를 회상했다. 묻는 것엔 “대답하지 않으면”서 “별들이 아름다운 것”과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와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속삭여준 어린 왕자를 떠올리려 했다. 하나 나는 “그 애가 누구인지 여러분은 잘 알리라”던 “여러분”이 아니었고 “그때는 친절을 베풀어 달라”던 “그때”와 “친절”도 몰랐다. 나는 어린 왕자가 다녀간 여섯 개 별의 “우둔한 어른들”이자 지구별의 전철수나 장사꾼 또는 “정원 하나에 이렇게 똑 닮은” 5000송이 장미꽃이었다.



다행히 나는 여섯 해 전에 어린 왕자를 만났다.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오던 열 달의 여행 중엔 “서두르지 말고 바로 별 아래에서 잠시 기다리라”는 비행사의 충고를 따랐다. 그러자 아이가 다가오는 순간 “그 애가 누구인지” “알리라”던 “여러분”이 되었다. 이 기적은 우리 아이가 어린 왕자이기 때문이다. 태어나 세 번의 심장 수술과 한 번의 심장 정지를 겪고 지적 장애 판정을 받은 어린 왕자는 과연 누구에게 장애가 있는가를 알려주며 “바로 여기”에 있다. 선생은 어린 왕자가 여우를 통해 ‘길들인다’를 배운 뒤 “뱀에게 물리기로 결심”하는 “극단적으로 과격한 귀향의 방법”을 통해 “제 별로 갔다”고 썼다. 나는 이 대목을 “사랑으로만 권태를 치료할 수 있을 때” 우리 아이가 같은 방법으로 “제 별”에서 ‘지구별의 우리에게 왔다’로 읽었다. 마침 아이가 여섯 살이다. “멋진 직업”을 포기할 때라서 여우의 ‘길들인다’에 조바심이 났으나 선생의 글 덕에 진정됐다.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요청되는 사막”이니 “긴 시간을 거쳐 공들여 만들어”지는 것이 사랑이라고.

“우둔한” 나에겐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나잇값도 못하는 주제’의 어른은 반드시 불시착해야 하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것’은 철새들에게 연결된 줄을 잡고 날아가야 한다. 44세의 생텍쥐페리는 “마지막 정찰 임무”차 비행하다 적군의 정찰기라는 뱀을 통해 “제 별로 갔”을 것이다. 훗날 독일군 비행사는 자신이 그를 격추시켰으며 <어린 왕자>의 애독자인 자신은 그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작년엔 할리우드가 애니메이션 <어린 왕자>를 흥행시켰다. 나의 어린 왕자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리하다가 “멋진 직업”부터 되찾아야겠구나, 하고 책장을 덮었다.


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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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7일 목요일 저녁,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렸다. 2년 만이었다. 입국 수속을 간단히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어두웠고, 대기는 음울했다. 고속전철(RER)을 타고 시내로 향했다. 한창 이동이 많을 8시쯤이었는데, 예상외로 전철 안이 한산했다. 전철은 축구경기장 스타드 드 프랑스역에 정차했다가 출발했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짧은 사이 1월의 음습한 밤바람이 한 움큼 들어왔다 나갔다. 도심으로 들어오는 동안 플랫폼에서, 전철 안에서, 환승역 지하도에서 나도 모르게 사람들 표정을 살피고, 그림자 꼬리를 자르듯 두려움을 떨쳐 내며 걸음을 빨리했다. 예전에 하지 않던 행동이었다.

1월10일 일요일 오전 10시, 파리 10구 레퓌블리크(공화국) 광장에는 작은 가설 무대가 설치되었다. 전자 기타 사운드가 흐리고 축축한 대기를 가르며 흐느끼듯 울렸다.

이어서 72세의 샹송 가수 조니 할리데이가 읊조리듯 운을 떼었다. “수백만 사람들의 시선, 고통의 눈물, 거리의 수백만 발걸음, 1월의 어느 일요일.” 1월과 11월 테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노래였다.

원래는 2015년 테러 직후인 1월11일 일요일, 시민 연대 군중들이 대로를 꽉 메운 채 행진하고, 광장에 모여 희생자를 추모하는 마음을 기려 지은 것이었다. “나는 내 마른 손 위에 네 작은 손을 잡았지. 우리의 심장은 점점 더 빨리 뛰었지. 1월의 어느 일요일에.” 그리고 2016년 1월10일은 그로부터 1년 뒤, 일요일이었다.



노래가 울려 퍼지는 광장 하늘 위로 공화국을 상징하는 여인, 마리안이 한 손을 번쩍 치켜들고 서 있었다. 손끝으로 비둘기들이 내려앉았다 날아갔다. 마리안 발아래에는 꽃과 메모, 국기와 사진, 촛불들이 첩첩이 에워싸고 있었다. 추모장에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주민, 아이를 안고 온 젊은 부부, 여행자, 희생자 유족, 파리시장과 대통령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비장한 얼굴로 모였다. “우리는 군중 속에서 침묵하면서 걸었지.(중략) 온 나라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공포와 증오를 버리고 왔지. 1월의 어느 일요일에.”

희생자들의 이름이 광장에 새겨졌고, 추모의 나무로 참나무가 심어졌다. 무고한 수백명이 바닷속에 수장되고, 테러리스트들의 총에 잔혹하게 시민들이 희생당하고, 인류를 공멸에 빠트리는 핵실험이 자행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달래기 위해”, “공포와 증오를 버리고” 모여드는 사람들, “두렵지만, 여기에 있다!”고 연대하며 저항하는 사람들. 여기는, 광장과 혁명의 도시, 파리이다.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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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반세기도 전에, 저명한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은 ‘지구촌’이라는 말로 이 행성의 미래를 간추렸습니다. 역사적 사회주의가 가뭇없이 사라져 국경의 벽이 더 낮아진 1990년대 이후에는 ‘지구제국’이라는 은유도 나풀거립니다. 그 제국의 메트로폴리스가 바로 아메리카합중국입니다. 냉전 시기가 미소(美蘇)체제(Pax Russo-Americana)였다면, 포스트 냉전 시대는 미국체제(Pax Americana)입니다. 중국의 급작스러운 부상으로 미중체제(Pax Sino-Americana)라는 말이 더러 쓰이기도 하지만, 이 말은 심한 과장입니다.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추월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나, 군사력이나 문화적 헤게모니나 정치적 민주주의의 난숙도에서 중국을 미국에 견줄 수는 없습니다. 당신들 미국인은 할리우드 영화와 CNN 뉴스와 맥도널드 햄버거와 코카콜라로 지구인의 취향을 지배합니다. 인류는 그가 어디에 살든 당신들의 나라와 관련을 끊을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지구제국의 운명, 인류의 운명은 워싱턴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프랑스 외무부 장관을 지냈던 위베르 베드린이 매우 적절히 명명했듯, 냉전 종식 뒤의 미국은 슈퍼파워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하이퍼파워인 것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인류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신들이 조지 부시 주니어 대신 앨 고어를 확고히 지지했다면, 그 뒤 이 행성의 역사는 사뭇 달라졌을 것입니다. 문명의 충돌이 설령 피할 수 없는 경로였다고 하더라도, 부시가 일으킨 이라크 전쟁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테러그룹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미국을 휘젓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현상이 우려스러운 것은 그래서입니다. 물론 저는 세계민주주의의 젖줄이라 할 당신들의 나라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그 모든 공적 비도덕성에 당신들 가운데 상당수가 환호하는 현실에 저는 지레 겁이 납니다.

트럼프는 지난해 6월 멕시코 이민자들을 마약사범이자 강간범이라고 비난하는 것으로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사실 출마 선언 전에도 트럼프는 자신이 인종주의자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미 2013년 그는 트위터에서 “대도시의 폭력범죄 대부분은 흑인과 히스패닉이 저지른다”고 했습니다. 대선 출마 선언 뒤 아이오와에서 가진 기자회견 도중엔 자신의 이민정책을 추궁하는 히스패닉계 기자 호르헤 라모스를 쫓아내버렸습니다. 아내가 히스패닉계여서 스페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젭 부시에 대해선 “그는 아내 때문에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젭 부시는 미쳤다. 그가 멕시코말을 한다는 것에 누가 신경 쓰나. 여긴 미국이라고! 영어!”라고 조롱했습니다.

트럼프는 멕시코 정부가 의도적으로 범죄자들을 미국으로 보낸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멕시코 정부는 우리보다 훨씬 스마트하고, 날카롭고, 교활하다. 멕시코 정부가 악한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내는 것은 그들을 위해 돈을 쓰지 않기 위해서다. 그들을 돌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히스패닉 이민자들을 범죄자, 특히 강간범이라고 낙인찍었지요. 그 발언의 진의를 CNN 기자가 묻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멕시코계 이민자를 비롯한 유색인 이민자들은 살인자들이자 강간범들이라고 다시 못박았습니다.



공화당 후보들의 첫 텔레비전 토론회 진행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폭스방송의 메건 켈리가 트럼프에게 과거의 여성혐오적 발언들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그녀의 질문이 우스꽝스럽고 근거도 없다며, “그녀의 눈에서 피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덧붙여, 켈리가 생리 중이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는 식으로 대꾸했습니다. 트럼프에게 여성은 이민자들과 함께 늘 경멸과 조롱 대상이었습니다. 롤링스톤지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칼리 피오리나 공화당 대통령 예비후보의 외모를 노골적으로 비웃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을 보라. 누가 저 얼굴에 투표하겠는가. 저 얼굴을 우리 다음 대통령으로 상상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지요. 트럼프의 공격 대상은 마침내 장애인으로까지 번졌습니다. 관절만곡증을 앓는 뉴욕타임스의 서지 코발레스키 기자를 그가 기이한 몸짓 흉내로 비하하던 것을 당신들도 기억할 것입니다.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미국의 많은 아랍인들이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된 후 환호했다”고 주장해 아랍계 미국인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겼을 뿐만 아니라, 드디어 지난해 12월에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무슬림들의 미국 입국을 완전히 금지하겠다고 선언해 세계를 경악시켰습니다. 그의 이 발언엔 위헌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얄궂게도 그의 지지율은 더욱 치솟았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같은 극우 선동 막말꾼이 공화당 후보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지구제국의 메트로폴리스가 도덕적으로 극히 허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들도 살기가 팍팍한 모양이라고 저는 짐작합니다. ‘미국의 꿈’은 이제 사라져버렸습니다. 당신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불만을 배출할 대상으로 인종적 성적 신체적 소수파를 고른 것은 프랑스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가 발설한 ‘희생양’을 연상시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차별의식을 지닐 수 있습니다. 인격의 그런 부정적 측면을 완전히 씻어내는 것은 누구에게도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두지 않고 공적으로 발설하는 것은, 그리고 그런 공적 발설에 환호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제 차별주의에 대한 부끄러움을 잃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에 대한 열광적 지지가 특히 백인 남성 저소득층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염려스럽습니다. 그들은 미국이라는 인종의 도가니에서 백인 남성이라는 사실밖에 내세울 게 없는 일종의 ‘피해자’들입니다. 그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을 공격하는 대신 소수인종, 여성, 장애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 양극화에서 오는 경제적 불안과 무슬림 테러에 기인한 위기감을 미국 사회의 가장 약한 이들을 공격하며 쓰다듬고 있는 중입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트럼프는 대뜸 히틀러를 연상시킵니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세계인들에게 우스꽝스러운 것 이상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그것은 그가 유럽인들의 지지도, 아프리카인들의 지지도, 아시아인들의 지지도 아닌 제국의 메트로폴리스 거주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외교 문제나 경제 사회 문제를 무조건 “지금 정치인들이 멍청해서 +그렇다”는 말로 요약하고 “나는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사업을 해왔으므로 정치도 잘할 수 있다. 내가 하면 다 잘한다”고 우겨대는 선동가에게 당신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열광한다는 사실이 무섭습니다.

미국과 맥락이 고스란히 포개지지는 않지만, 이민과 테러가 중요한 원인이 돼 당신들 가운데 일부처럼 극우화하는 시민들을 보게 되는 나라로 프랑스가 있습니다. 지난해 파리 테러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프랑스 극우정당 민족전선은 집권 사회당과 제1야당 공화당을 집어삼킬 듯 보였습니다. 2차 결선 투표에서 사회당과 공화당의 연대로 민족전선이 패퇴하기는 했지만, 그 정당의 당수 마린 르펜은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 유권자 네 사람 가운데 셋이 차기 대통령으로 사회당 소속의 현직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도, 공화당 소속의 전직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도 원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최근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린 르펜이 대통령이 되는 프랑스보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자리를 넘보는 미국이 훨씬 더 두렵습니다.

프랑스는 비록 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고만고만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 나라에서 극우정파가 힘을 떨치고 심지어 집권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인류에게 치명적 위협이 되지는 않습니다. 작은 몸집으로 할 수 있는 악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구제국의 메트로폴리스에서 극우정파가 힘을 떨친다면, 그것이 지금처럼 제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 인류에게 측량할 수 없는 재난을 불러옵니다. 당신들은 메트로폴리스 시민으로서 누리는 특권에 비례하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원주민들의 학살과 노예 제도, 거듭된 정복전쟁으로 이뤄진 나라 만들기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미국은 결코 위대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기실 에이브러햄 링컨에서 로자 파크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국인들이 위대했습니다. 부디 당신들이 위대해지기 바랍니다.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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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 끓인 커피는 식기 마련이고 피라미드도 언젠가 무너질 것이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저 하늘의 별들도 수명이 다하면 장렬히 빛을 내뿜으며 사라질 것이다. 과학자들은 ‘지구’라는 별도 50억년 후엔 멈추거나 파괴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우주 안에 ‘시간’이라는 괴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시간은 활에서 당겨져 날아가고 있는 화살처럼 돌이킬 수가 없다. 과거로 돌아갈 줄 모르고 미래(未來)라고 부르는 미지의 경계를 향해 만물을 강제로 진입시킨다.

인간에게 남겨진 것은 ‘과거’라는 기억뿐이다. 이 ‘과거’라는 기억은 10년 전이나 하루 전이나, 혹은 이 글을 읽기 시작한 1분 전도 지금(至今)이라고 불리는 한순간(瞬間)일 뿐이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씨줄과 공간이라는 날줄이 만나는 지점에서 존재한다. 순간이란 봄의 약동으로 싹이 트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그 찰나(刹那)다. 흔히들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을 한다. 찰나는 75분의 1초(약 0.013초)에 해당하며,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찰나마다 생겼다 사라진다고 가르친다.

우주는 137억년 전 인간은 상상할 수도 없는 빅뱅이라는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10만분의 1초의 찰나에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로부터 터져 해일처럼 사방에 퍼지더니 물질, 에너지, 공간과 시간으로 구성된 우주가 생성되었다. 빅뱅은 137억년 동안 수천억개 이상의 은하수를 우주에 수놓으며 계속 팽창한다.

왜 빅뱅이 일어났을까? 인간은 우주가 생성된 맨 처음을 저마다 상상해왔다. 여기 기원전 6세기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온 한 전쟁 피란민이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에 살던 유대인 지식인이자 사제였다. 그에게 기원전 10세기 솔로몬 왕이 건축했다는 예루살렘은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영원한 신전이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천상의 장소라는 의미로 ‘시온’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농업의 순환에 맞추어 절기를 만들어 지킨다. 신은 1년 단위로 삼라만상을 열친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순식간에 지고 말았다.


기원전 6세기 어느 날, 바빌로니아 군인들은 예루살렘을 침공한 뒤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었다. 유대 지식인은 깨달았다. 신은 장소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바빌론이라는 낯선 땅으로 잡혀와 하염없이 흘러가는 유프라테스 강을 한참 보았다. 매일 밤 어김없이 떠올라 검푸른 밤하늘을 수놓는 압도적이면서도 신비한 별들과 달에 넋을 잃었다. 이 천체들은 계절에 따라 가장 적절한 시간에 어김없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우주의 처음을 상상했다. 그의 이야기는 성서의 첫 번째 책 ‘창세기’ 1장에 등장한다. “태초에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라고 흔히 번역한다. 이 첫 구절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처음이란 순간을 통해 신이 혼돈 상태의 우주에서 쓸데없는 것들을 쳐내기 시작했다”라고. 혼돈에서 질서로, 없음에서 있음으로의 질적인 변화는 ‘처음’이라는 특별한 순간을 통해 가능하다. ‘처음’이란 이전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상태로 진입하기 위한 경계의 찰나다. 이전에 습관적으로 흘러가는 양적인 시간과는 다른 충격적이면서도 압도적이어서 전율을 느끼게 하는 문지방이다. ‘처음’은 삼라만상을 존재하게 하는 137억년 전의 빅뱅과 같은 순간이다. ‘처음’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등장한다. 새로운 경험은 한순간의 경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137억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아직도 팽창하듯이 매순간 처음을 유지해야 한다.

처음이란 무엇인가? 작년과 다른 올해, 어제와 다른 오늘을 어떻게 내가 잡을 것인가? ‘창조하다’라는 단어를 피상적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다. 서양인들은 ‘창조하다’를 ‘점점 불어나다, 자라다’라는 의미를 지닌 ker-이란 어근에서 찾았다. 영어 ‘크리에이트(create)’, 라틴어 ‘크레아레(creare)’, 고전 그리스어 ‘크레초(kritzo)’ 모두 이 어근에서 파생했다. ‘창세기’ 1장을 저술한 유대학자는 ‘창조하다’를 ‘바라(bara)’라는 히브리 단어를 사용한다. ‘바라’라는 동사의 피상적이며 거친 의미는 “(빵이나 고기의 쓸데없는 부위를) 칼로 잘라내다”이다. ‘창조하다’라는 의미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요리사나 사제가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의 쓸데없는 것을 과감히 제거하여 신이 원하는 제물을 만든다. ‘창조’란 자신의 삶에 있어서 핵심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자신의 삶의 깊은 관조를 통해 부수적인 것, 쓸데없는 것, 남의 눈치, 체면을 제거하는 거룩한 행위다.

그 유대 지식인은 양적인 시간에서 벗어나 특별한 시간을 경험하기 위해선 일상에서 벗어나 그 일상을 새롭게 관조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일년 단위가 아니라 일주일 단위로, 일상으로부터 습관적으로 해오던 일을 멈추고 자신을 ‘처음’의 순간으로 진입시키는 행위를 ‘안식일’이라고 부른다. 영어로 안식일을 뜻하는 ‘사바스(sabbath)’는 원래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는데, 그 본래 의미는 “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다”이다.

2016년이 벌써 7일이나 지났다. 하던 일을 멈추고 처음을 경험해야겠다.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이 내가 목숨을 바칠 만한 일인가? 아니라면 과감히 잘라내야겠다.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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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바닷가 언덕의 서재에서 등대로 내려가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조촐하게 떡국을 끓여 아침식사를 한 뒤, 어제와 다름없이,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원고를 썼다. 오후에는 서재에서 잠시 벗어나 광안대교를 건너 이기대 기슭에 있는 작은 미술관으로 나들이 갔다. 바다를 건너기 전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앤디 워홀 전시가 대대적으로 진행 중이었다. 영화의 전당에서는 빔 벤더스 감독의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이 막 상영을 시작했다. 고은갤러리에서는 <사진 미래색(色)>전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에는 드넓은 바다와 마주할 수 있는 전망대가 해운대와 태종대 말고도 여럿 있다. 석양이 아름다운 낙동강 하구 몰운대,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신선대, 그리고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이기대. 이기대 끝자락에 오륙도가 떠 있다. 오륙도에서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동백섬을 가운데 두고 해운대와 광안리 앞바다가 펼쳐져 있고, 바다를 가로질러 7㎞가 넘는 광안대교가 백색의 눈부신 자태를 뽐내고 있다.

새해 첫날, 앤디 워홀의 팝 아트도, 빔 벤더스의 영화도, 미래 사진의 색감도 따돌리고 이기대로 향한 것은 그곳 P&O갤러리에 선보인 새로운 형태의 책 여행을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독서나 글쓰기 행위와는 달리, 그림이나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현장으로의 여행을 의미한다.



스마트폰으로 즉석에서 영화를 찍고, 언제 어디에서든 원하는 영화를 호출해 감상할 수 있는 초고속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내가 작품을 만나는 방식은 빛과 공기, 여백과 고요가 최적의 환경을 이루도록 설계된 갤러리나 영화관에서의 감상을 전제로 한다. P&O갤러리는 옛 동국철강 자리였던 용호동 선착장 기슭에 최근 문을 열고 있었다.

‘독자의 여정(The Journey of Readers)’은 책을 오브제로 고고학, 철학, 문학, 공예, 사진과의 만남을 시도한 전시이다. 프랑스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공한 아티스트 나준기의 책을 향한 정신적, 물질적 오마주가 인상적이었다. 미디어의 디지털적인 속성인 속도를 버리고, 아날로그의 원천인 책을 질료로 천지창조, 피에타, 병마용갱, 햄릿, 아이다, 한자(漢字), 마그리트의 파이프까지 동서고금의 문화유산을 다양한 형태와 질감으로 재현하고 있었다. 독서 중에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들을 찰나적으로 포착하여, ‘영원’에 각인 찍듯 붙잡아 놓은 형국이었다.

불교에서 책 보시는 최고의 덕목으로 꼽힌다. 작가, 에디터, 북디자이너, 인쇄 제본 제작자, 서점 운영자, 독자로 연결되는 수많은 인연들의 결합체이기 때문이다. 나준기의 ‘독자의 여정’은 책종사자와 독자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책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놓아보고, 갈아보고, 붙여보고, 찍어봄으로써 과감하게 책과 만나 상상하고 표출하는 능동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하루하루 책과 함께 숨을 쉬는 독서가, 책애호가, 책수집가, 책생활자들에게 권한다.


함정임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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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편지의 수신인으로 당신들을 불러낸 것은 올해에 총선이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총선도 총선이지만, 대한민국 정치시스템에 대한 제 근본적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이제 당을 서로 달리하고 있지만, 당신들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한 당의 울타리 안에 있었습니다. 그 당의 이름은 새정치민주연합이었고,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이라고 불립니다.

안 의원은 자신의 신당을 만드느라 분주하신 걸로 압니다. 저는 올해 총선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선 가늠도 못하겠습니다. 분열된 야당으로는 여당과 싸워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이 상식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선거의 역사를 볼 때 그것이 철칙은 아닙니다. 1988년 총선에서 야당은 분열돼 있었지만, 한국에서 여소야대가 처음 이뤄진 것은 그 총선에서입니다.



한 당에서 몹시 불편한 관계였던 당신들 가운데 어느 쪽의 잘못이 더 컸는지에 대한 판단은 삼가겠습니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크든, 당신들의 분열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당신들의 분열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그 분열을 재촉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들 지지자들 사이의 적대감은 그들과 새누리당 지지자들 사이의 적대감보다 오히려 더 크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것은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질 개연성을 크게 낮추고 있습니다.

당신들 가운데 한 사람은 반드시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고, 어쩌면 두 사람 다 출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권에서 또 다른 후보가 나설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다가오는 4월 총선 결과에 크게 달려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대선 정국에서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고, 안 후보가 사퇴한 뒤에는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 것도,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한 것도 당신들 가운데 한 사람이 꼭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판단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안 후보를 지지한 것은 박근혜 후보의 청와대 입주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안 후보뿐이라는 판단 때문이었고, 안 후보의 사퇴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거의 확신했음에도 제가 선호했던 어느 여성 노동자 후보가 아니라 문 후보에게 투표한 것은, 세상에는 기적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결국 제가 지녔던 비관적 확신은 현실화했고, 제가 바랐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민주주의를 파괴한 독재자의 딸이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대통령이 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뒤에 밝혀지기로는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가 개입했으니, 그것이 순수하게 민주주의적인 방식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그 개념을 흔쾌히 받아들이든 그러지 않든, 당신들은 ‘영남패권주의’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당신들은 영남 출신이고, 제 판단에 문 의원은 영남패권주의를 꽤 표나게 실행해오셨습니다. 서남대 김욱 교수가 지난해 말 출간한 <아주 낯선 상식>(개마고원)이라는 책을 당신들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영남패권주의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한국의 지역모순을 명쾌하게 파헤친 책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정치인들 모두가, 더 나아가 지식인들을 포함해서 되도록 많은 한국인이 이 책을 읽기 바랍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도 대한민국에 영남패권주의가, 지역모순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역모순은 대한민국 국가의 주요 모순입니다. 이 모순의 해소에 눈감는 개혁이나 진보담론은 죄다 거짓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말의 올바른 의미에서 사용되는 개혁이나 진보는 차별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재향 출향을 싹 쓸어 모아도 영남인은 대한민국 인구의 반에 크게 못 미치지만,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 패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1961년 이후 지금까지 55년 동안, 영남 출신 인사가 최고권력자로 군림한 기간은 50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은 더 길어질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재벌 대부분은 영남 출신이거나 영남과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습니다.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기관과 재벌기업에서는 영남방언이 표준어 행세를 합니다. 이것은 극히 비정상적인 일입니다. 저는 당신들이 이런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적으로 바꾸는 데 진력해주기를 곡진한 마음으로 기대합니다. 영남패권주의의 소멸은 영남인들의 도덕적 성찰이나 너그러움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님을 저는 잘 압니다. 공평한 제도에 기반을 둔 물리적 강제가 없으면, 어떤 종류의 패권주의도 스스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분열돼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개헌저지선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야권이 합해서 100석을 얻지 못하면, 새누리당이 개헌을 통해서 영구집권을 꾀할 거라는 음모론이 나돕니다. 저는 반-새누리당 자유주의적 유권자로서,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선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선전을 하더라도, 저는 오히려 야권에서 개헌투쟁을 벌여주기 바랍니다. 이것은 제가 <아주 낯선 상식>을 읽으며 굳히게 된 생각입니다. 지금의 변형된 대통령 중심제와 결합된 국회의원 단순다수대표제 아래에서는 영남패권주의가 사라질 수 없습니다. 이 제도가 승자독식 체제이고, 영남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개헌은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고, 그 의원내각제 아래서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입니다. 이 방향의 개헌은 영남패권주의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사표를 거의 완전히 없애서 표의 등가성을 이룰 수 있는 효과를 낳아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크게 신장할 것입니다.

정당이 유권자들에게서 받은 지지율에 정확히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독일식 비례대표제에는 당신들도 찬성하시리라 믿습니다. 집권당에만이 아니라 거대 야당에도 불리한 제도이지만, 저는 민주주의에 대한 당신들의 신념에 비추어 그리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원내각제는 당신들 두 사람 다에게 아마 맞갖지 않으리라 짐작합니다. 그것은 당신들이 대통령 중심제 아래서의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던 제2공화국의 정치적 불안정이 5·16 군사반란을 불러왔다는 경험에도 근거하고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현행 대통령 중심제 헌법을 유지하거나,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와 결선투표제로 개헌을 하자는 의견인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의원내각제를 견뎌낼 만큼은 넉넉히 근육을 키웠습니다.

게다가 현행 대통령 중심제든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든, 넓은 의미의 대통령 중심제는 독일식 비례대표제와 궁합이 맞지 않습니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표의 등가성에 바탕을 두어 소수파의 원내진입을 보장하고 연립정부의 구성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제 아래서는 원칙적으로 연립정부가 불가능합니다. 김대중 정권 전반기의 DJP연합이나 노무현 정권이 구상했던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은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의 권한을 제도 바깥의 영역에서 나누거나 넘기는 것이었지, ‘제도적’ 연립정부는 아니었습니다. 대통령 중심제 아래서의 그런 ‘유사연정’은 대통령이 원하면 아무 때나 거두어들일 수 있는 불안정한 제도입니다. 게다가 대통령 중심제가 여소야대와 결합하면, 야당은 늘 대통령 탄핵소추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올 것은 자명합니다.

제6공화국 헌법에 완전히 만족하지는 않으면서도, 저는 최근까지 견결한 호헌론자였습니다. 그 이유의 첫째는 개헌이라는 것이 1960년 4월혁명 직후나 1987년 6월항쟁 직후처럼 시민의 정치적 진출이 극적으로 활발해진 시기를 빼놓고는 예외 없이 집권세력의 권력연장을 위한 헌법개악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수마발 국회의원들보다는 역사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 중심제의 대통령이 더 높은 정치윤리를 지닐 것이라는 추론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6공화국 들어서 거의 모든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의 평균적 정치윤리보다는 더 높은 정치윤리를 지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이명박 정권 들어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완전히 사그라지고 말았습니다. 대통령 중심제 아래서의 대통령이 정치윤리에서 국회의원들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오랜 호헌론을 접고 개헌론자로 전향했습니다. 저는 의원내각제 독일식 비례대표제로의 개헌을 원합니다. 이번 총선 이후 개헌 투쟁에 들어가든, 아니면 차기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개헌을 내세우든, 당신들이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의원내각제 아래서의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영남패권주의를 약화하거나 없앨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제7공화국을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다가가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하신년(謹賀新年)! 대한굴기(大韓 起)!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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