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8일 박효종 서울대 교수가 “5.16은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는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을 두둔했습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FM 98.1) 인터뷰와 tbs <열린아침 송정애입니다>(FM 95.1)에서입니다. 라디오 인터뷰 전문을 전합니다.

 


“5.16은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대표의 발언을 두고 논란이 분분합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5.16에 대한 각기 다른 입장 들어보죠. 먼저 박근혜 대선캠프의 정치발전위원이세요. 서울대 박효종 교수 연결되어 있습니다.

◇ 김현정> 박효종 교수님께서는 교과서 초안에다가 ‘5.16은 혁명’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으셔서 질문 드립니다만, 아직도 혁명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 박효종> 저는 5.16이 쿠데타이면서도 혁명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이게 무슨 얘기인가 반문을 하시겠지만 5.16 그 자체는 쿠데타죠.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민주질서의 중단 아닙니까? 그런 차원에서 그 자체로는 쿠데타인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줬다.

물론 경제적인 기적을 가지고 원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 문제보다 결국 우리의 국민 의식, 우리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 그간 패배의식이 젖어 있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바꾸는 혁명적인 변화라고 하는 거,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인정해야 된다. 그런 의미에서 ‘5.16은 쿠데타이면서도 동시에 혁명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 김현정> 그런데 쿠데타는 쿠데타고 혁명은 혁명이지, 어떻게 두 가지가 동시에 적용될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쿠데타와 혁명 모두 무력으로 정권을 바꿔버리는 건 같지만 쿠데타는 권력투쟁 과정에서의 정권탈취의 의미이고, 혁명은 아래로부터의 민중봉기의 의미인데요. 이 두 가지를 어떻게 동시에 놓고 이름을 명명할 수 있을까요?

◆ 박효종>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대개 학계라든지 이런 데서 정의할 때는 반드시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민중혁명만 가지고는 혁명이라고 하지 않거든요.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커다란 변화, 정말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를 가져왔을 때에 그것을 우리가 혁명이라고 얘기하는 것이지, 위로부터의 혁명도 얼마든지 혁명이라고 얘기할 수 있고, 또 밑으로부터의 혁명도 물론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사물을 가지고 평가를 할 때 아주 딱 이분법적으로 이것 아니면 저것이냐, 이렇게 묻기보다는 정말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정치?사회적인 변화라는 것이 한 두 마디의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때는 이 두 가지의 용어를 같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 김현정> 그런데 이것은 말이죠. 분명히 정부가 존재하는데 군인들이 탱크를 앞세워서 그 정부를 무력으로 총, 칼로 누르고 정권을 탈취한 거 아닙니까? 민중들이 거기에 함께 참여한 것도 아니고요. 그것도 혁명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까?

◆ 박효종> 그러니까 5.16에 대해서 얘기할 때 저도 그런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건 분명히 쿠데타죠. 지금 그렇게 말씀하신 대로. 그런데 수많은 쿠데타가 아시아나 아프리카 나라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정말로 그와 같은 것들은 예를 들면 총, 칼로 헌정질서를 정지시키고 했는데 권력을 위한 쿠데타로 끝나고 말았죠.

그러나 지금 5.16은 정말 어떻게 보면, 세계적으로 봤을 때 굉장히 놀라운 대한민국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단순히 이것은 한 두 사람의 권력 의지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엄청난 변화를 이루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또 그런 변화는 제3세계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거의 없는 것이죠. 그런 차원에서 혁명이라고 하는 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조금도 과장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김현정> 과장이 아니라는 말씀? 그럼 이렇게 정리하면 되나요. 시작은 쿠데타였지만 결론적으로는 혁명이었다?

◆ 박효종> 네. 그렇죠. 좋습니다.

◇ 김현정> 그럼 쿠데타니, 혁명이니 호칭 문제는 차치하고 박근혜 전 대표가 말한 부분, “5.16은 최선의 선택,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라는 부분에도 당연히 동의하시겠군요?

◆ 박효종> 우리 박 후보가 그런 말씀을 하셨죠. 그렇지만 이것은 사실 박 후보의 개인적인 평가일 수 있어요. 그래서 결국은 최종적으로 어떤 얘기를 했느냐 하면, “여기에 대해서 논란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국민과 역사에 맡기겠다” 저는 그 표현이야말로 굉장히 역사 앞에 겸손하고 정직한 표현이 아닌가. 우리 역사를 가지고 평가할 때 한 두 사람의 의견을 가지고 이것이 평가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김현정> 우리는 아버지의 딸 박근혜를 보는 게 아니고 대통령 후보로서의 박근혜를 보는 건데, 자꾸 아버지의 딸 입장으로서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좀 불편해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토론 자리에 나섰을 때는 분명 대통령 후보로서의 박근혜 후보를 보는 것인데 말입니다. 어떻게 답하시겠어요?

◆ 박효종> 제가 볼 때 박 후보로서는 아버지에 관한 문제가 유리하냐 불리하냐, 그런 문제보다는 하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저도 사실은 박근혜 후보의 경우에는 정말 표로 평가를 받고 해야지, 이것이 박 전 대통령의 그런 것을 가지고서 평가받는 것은 사실 타당하지 않다,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역사를 바라보는 그런 시각이 있어서 그래도 박 후보는 어쨌든 “자신으로서는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 전체적인 평가는 아니다. 국민과 역사에게 맡기겠다” 라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점에 대해서 너무 한 개인의 의견이 어떤 역사나 혹은 모든 현대사를 갖다가 다 이렇게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김현정> 역사의 평가 얘기로 좀 넘어가 보죠. 아까 전에 “시작은 쿠데타였지만 결과는 혁명이었다. 혁명적인 변화를 우리 사회에 가지고 왔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런데 다른 입장은 이런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한 데는 우리 국민들의 피나는 희생과 노력의 대가지, 그게 5.16이나 유신 덕택은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 박효종> 저는 그것을 같이 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죠. 우리 국민들이 정말 땀을 흘리고 참 이렇게 했죠. 그래서 한 나라가 발전한다고 했을 때는 어떻게 한 두 사람 지도자의 힘만으로 발전을 했겠습니까? 문제는 그 국민들의 힘과 리더십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대선도 앞두고 있는데 왜 우리가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집니까? 그것은 역시 대표자를 뽑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국민들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그 상수죠. 국민들의 저력, 창의성, 이런 게 당연히 있고요.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견인해 나가야 하느냐 하는 데 있어서 리더십의 역할이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 김현정> 또 이런 반론도 가능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성과가 있었을지 몰라도 그 정권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상당히 역행했다. 그런데 5.16 덕분에 사회가 발전했다고 말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답하시겠어요?

◆ 박효종> 민주주의라고 얘기할 때는 단순히 우리가 민주적인 규칙이나 선거를 하자, 이렇게 해서 민주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민주주의에도 정말 토대가 필요하다. 경제적인 토대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요. 특히 5.16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정말 두터운 중산층이 사실 출현했죠. 이 중산층이야말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등뼈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요.

◇ 김현정> 중산층의 출현이 5.16부터 시작이 된 거다, 그게 기초를 마련했다는 말씀인가요?

◆ 박효종> 아니죠. 제가 그런 말씀을 한 건 아니고 중산층은 어떤 사회나 어떤 시대에나 항상 있죠. 그러나 중산층이 다이아몬드형으로 두터워졌느냐 하는 이 문제를 가지고 따져야 되는데요. 경제가 발전함으로 인해서 우리의 중산층이 가난을 탈피하면서 정말 많아지고 두터워지지 않았습니까? 결국 이 사람들이 민주주의는 반드시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에 5.16은 단순한 민주주의의 역행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결과로 봤을 때 그런 민주주의의 보루를 갖다가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것이죠.

◇ 김현정> 5.16이 가난을 탈피하게 해서 경제성장을 갖고 왔고, 그게 중산층을 두터워지게 하는 역할을 했고, 또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민주주의도 생각하게 됐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 박효종> 네.

◇ 김현정> 그런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장기간에 걸쳐 유신정권이 지속됐고 그 당시 어떤 고문이 있었다든지 등등의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들을 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을 하시겠습니까?

◆ 박효종>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죠. 그러니까 박 후보도 “진심으로 고통을 받은 분들에게 사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문제는 정말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또 못한 것은 못했다고 해야지, 그렇지 않고 두 가지를 섞어서 얘기를 한다면 그것은 정말 상식과 순리에 맞는 판단은 아니죠.

◇ 김현정> 잘한 거, 못한 거 다 섞어놓고 총평했을 때도 이건 혁명이다?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보시는 거예요?

◆ 박효종> 그러니까 저는 이렇게 보고 싶어요. 정말 박정희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볼 것이냐. 어제도 김문수 지사가 “공이 7이고 과가 3이다” 이렇게 얘기 했거든요. 그런데 원래 그 얘기는 등소평이 모택동을 놓고 평가를 했을 때 그런 얘기를 한 것이죠.

저는 우리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를 가지고 평가할 때는 그것보다는 더 낫다. 왜냐하면, 모택동은 문화대혁명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고통스럽게 했습니까? 그러나 우리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7, 과3보다는 훨씬 더 나은 평가를 받아야 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제가 오늘 드린 질문은 청취자들이 제기하는 반론 위주로 드렸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요. 박근혜 캠프의 정치발전위원인 박효종 교수님, 오늘 입장 고맙습니다.

 



“5.16은 돌아가신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야권뿐 아니라 여권의 경선주자들까지 맹공에 나서면서 논란은 더욱 커져가고 있는데요. 서울대 박효종 교수 연결해서 자세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신율 : 교수님 안녕하세요?
 
박효종 : 네. 안녕하십니까.
 

 

신율 : 제가 다른 방송에 나오시는 걸 봤는데요. 교수님께서 “5·16은 쿠데타이기도하고 혁명이기도 하다”라고 하셨는데요. 우선 그 부분에 대한 설명 좀 해주시죠.
 
박효종 : 네. 어쨌든 5·16은 그 자체로 봤을 때는 쿠데타죠. 어쨌든 헌정질서를 중단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5·16 자체는 쿠데타라는 사실은 우리가 항상 쓰는 말이고요. 그런데 문제는 이 5·16을 통해서 이뤄진 변화라고 하는 것이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혁명적인 변화라는 것이죠. 특히 혁명적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경제적인 차원에서 ‘한강의 기적’ 같은 것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우리 국민의식을 ‘우리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만들었고요. 그러한 차원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아울러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거죠. 5·16에 대해서 얘기할 때 단순히 그 이름만 가지고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이 질문만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평가를 묻고 있는 것이죠. 그러한 차원에서 5·16 자체는 쿠데타이지만 또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차원에서 혁명이라고 우리가 얘기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신율 : 제가 궁금해지는 것이요. 소련이 지금 완전히 망하지 않았습니까?
 
박효종 : 그렇죠.
 
신율 : 그런데 러시아혁명이라고 우리가 부르죠. 우리가 그것은 혁명이라고 부르지만 끝에는 결국 망했어요. 그러면 이것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러시아혁명은 쿠데타적 혁명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잖습니까?
박효종 : 물론이죠. 우리가 혁명이라고 얘기할 때..
 
신율 : 결과가 좋을 때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해서 여쭤본 겁니다.
 
박효종 : 그런데 그 결과를 평가할 때요. 지금 볼세비키 혁명도 얘기 하셨습니다만 그 결과라는 것을 과연 우리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결과라는 것은 시간을 두고서 변화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동안은 좋았다가 나빠질 수도 있고요. 나빴다가 좋아질 수도 있고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분명히 볼세비키 혁명, 물론 혁명이라는 용어 자체도 따지고 보면 중립적인 용어로 봐야겠죠. 우리가 3·1운동도 사실은 3·1혁명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지만 그냥 3·1운동이라는 언어적인 관행으로 부르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혁명이라는 것 자체도 중립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미리 단언할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신율 : 교수님께서 혁명이라는 단어, 혁명적 변화를 가지고 긍정적인 영향을 줬기 때문에 혁명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하셔서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좋은 것만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해서요.
 
박효종 : 그렇죠. 그런데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5·16으로 부터 시작된 혁명적인 변화가 지금 우리 사회에 정말 지금까지도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니냐 , 그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신율 : 그러면 교수님, 10월 유신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박효종 : 10월 유신도 헌정중단이죠. 긴급조치로 운영되어온 정치체제 아닙니까? 그런 차원에서 역시 유신이라고 하는 것은 헌정질서에 심각한 훼손을 초래했다고 봅니다.
 
신율 :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박근혜 캠프의 정치발전위원회로 계시잖아요. 그래서 여쭤보는 건데요. 박근혜 후보의 5.16관련 발언과 유신에 대한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효종 : 박 후보는 사실 유신이라든지, 그때 고통 받았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를 이번에도 한 것이고요.
 
신율 : 역사적 평가라는 단어가 들어가죠?
 
박효종 : 네. 그런데 그 역사적 평가는 저는 이제 박 후보가 그런 얘기를 한 것에 주의하는데요. 역사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평가하는 몫은 국민과 역사 자체에 몫이 아니겠는가, 이것을 가지고 한 두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개인적인 소신이나 의견을 해줄 수 있겠지만 결국 평가는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거기에 맡기겠다고 하는 발언은 정말로 정직한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율 : 교수님께서도 5·16 유신이 전부 헌정질서의 중단이라고 말씀 하셨는데요. 시간이 암만 흘러도 헌정질서 중단 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든 것 아닙니까?
 
박효종 : 그렇죠. 헌정질서의 중단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민주주의의 커다란 타격이죠. 그 점을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사실 우리가 쿠데타라고 하는 것이..
 
신율 : 아뇨. 저는 유신도 포함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박효종 : 그렇죠. 제가 볼 때는 어제 김문수 지사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만 ‘공칠과삼’ 이러한 평가,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신율 : 그런데 일부에서는 그게 참 위험하다고 하더라고요. 결과론적으로 공이 많으면 헌정질서를 중단해도 괜찮다는 뜻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건 절대로 안 되는 일 아닌가요? 민주주의에서는 과정이 더 중요한 거죠?
 
박효종 :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은 알아야 합니다. 결과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도외시할 수 없습니다. 볼세비키 혁명이라는 것도 결국은 결과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지 않았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결과에 대한 평가를 우리 정치사회에 살면서 그것을 도외시할 수 없다, 과정이라든지 의도라는 것, 물론 이것도 평가를 받아야 하겠지만요. 그래서 그 결과라는 것을 어떤 결과를 놓고 보느냐는 것이 논란의 쟁점이 되겠죠. 그렇지만 결과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안 되지만, 그렇다고 결과라고 하는 평가를 우리가 엄정하게, 정말 공정하게 장기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신율 : 교수님은 결과와 과정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박효종 : 저는 결국 결과와 과정, 사실 평가를 할 때는 두 가지를 다 고려해야죠. 과정이 좋았다고 해서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것을 가지고 과정에 대해서는 우리가 좋다고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은 좋다, 이렇게 평가할 순 없는 것이죠.
 
신율 :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결과보다 과정이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 예를 들면, 학벌중심의 사회, 학력중심의 사회, 이런 것도 결국은 과정만을 중시해서 그런 것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교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는 군요.
 
박효종 : 저는 두개를 같이 봐야한다고 보거든요. 아무리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그 과정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결국 그것은 “과정도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평가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이고요.
 
신율 : 네. 또 한 가지 여쭤볼 것이요. 박근혜 후보로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버지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딸이 아버지로서 아버지를 옹호해주는 것은 좋다’아마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할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대선후보로서의 역사인식이 문제가 아닌가’ ‘대선후보로서의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대통령을 역대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하는 것 아닌가’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효종 :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그래도 박 후보가 상당히 정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본인의 평가를 분명히 얘기했죠. 그렇지만 결국 이것은 국민과 역사의 몫입니다. 사실 역사나 국민 앞에 겸손한 모습이 아닌가, 물론 자기 자신의 역사관을 전적으로 옳다, 개인으로서는 나름으로써의 평가를 내렸지만 결국 이것은 여러 사람들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는 역사에 맡기겠다는 발언은 굉장히 역사 앞에 겸손한 발언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신율 : 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여쭙겠습니다. “불가피한 선택이다”라는 단어 속에 불가피 하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두는데요. 5.16 시작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민주적인 헌정질서를 지켜야하는 대통령 후보로서 문제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간단히 얘기해주시죠.
 
박효종 : 네. 불가피라는 말을 가지고 여러 가지 말이 나올 수 있는데요. 당시대 상황은 참담한 상황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때의 상황과 비교하면 지금은 ‘상전벽해’같은 상황인데 그 당시 1960년대 초의 상황을 불가피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결코 부적절한 표현이 아닙니다. 물론 다른 상황과 빗대서 다른 것들도 불가피 한 것들이 많은데요. 그럼 불가피 하면 모든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이렇게 우리가 얘기를 한다면 그것은 ‘견강부회’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신율 : 네. 잘 알겠습니다. 시간이 좀 더 있으면 더 얘기 나누고 싶은데요.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효종 : 네. 감사합니다.
 
신율 : 지금까지 박근혜 캠프 정치발전위원, 서울대학교 박효종 교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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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인 | 에세이스트


 

아기가 잠잘 때를 틈타 동요를 다운받았다. 아기는 귀가 트인 이래로 ‘코끼리 아저씨’를 좋아했고 ‘떴다떴다 비행기’나 ‘송아지’ 같은 노래를 불러주면 웃었다. 어느 정도 성장한 요즘 허밍으로 ‘산토끼’를 부르면서 돌아다닌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수준 높은 동요를 불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고음불가라서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신중하게 선별해 20곡 정도를 받았다.


관찰 결과 아기는 멜로디가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이왕이면 된소리가 들어가는 동요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아직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조금 더 크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나아가 가사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확립해 나가리라 믿는다. 그러자면 동요 가사에 따라 신중하게 들려주어야 하는데, 특히 인상 깊은 동요가 몇 곡 있다.


(경향신문DB)


 우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 하는 유명한 ‘고기잡이’란 곡이다. 이 노래의 2절 가사는 이렇다. “선생님 모시고 가고 싶지마는/ 하는 수 있나요 우리만 가야지/ 하는 수 있나요 우리만 가야지/ 라라라라라라라라 간다나.” 어린이가 옆에서 “하는 수 있나요 우리만 가야지” 하고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는데 같이 안 가는 선생님도 독하다. 그럼에도 어린이는 3절에 이르러 쏴쏴쏴 쉬쉬쉬 고기를 몰아서 결국 선생님한테로 가지고 온다. 선생님이 존경받던 시절의 노래라 그런가보다. 어쨌든 능청스러운 2절 때문에 고기잡이는 애창곡이 될 것 같다. 나중에 애가 커서 “저도 커피가 먹고 싶지마는 하는 수 있나요 우유나 먹어야지” 등의 대사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불러줄 생각이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하는 노래도 있다. 예전에 남편이 이 노래를 흥얼거리기에, 가사 바꿔 부르지 좀 말라고 일갈했는데 이번에 들어보니 진짜 가사였다. ‘사는 건 다 힘드니 얼굴 좀 피시라’고 풀이되는데, 동요 가사가 너무 성숙하지 않은가. 설마 ‘네 찌푸린 얼굴 보는 게 힘들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건 너무 불손하니까. 나중에 “우리 가는 길이 결코 쉽진 않을 거예요 때로는 모진 시련에 좌절도 하겠지만”이란 가사가 나오는 걸 봐서 전자가 확실한 듯하다. 가사가 실존적이다. 


‘작은 동물원’이란 노래도 인상적이다. “삐약삐약 병아리~” 하면서 시작하는 이 노래에는 차례로 송아지, 물오리, 개구리, 가재, 물풀, 그리고 소라가 나온다. 동물원이라고 하면 사자와 코끼리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물풀과 소라가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인 생물들에게 관심을 가진 동요가 내 어릴 적에도 있었던가. 왠지 이 동요의 작사가는 좌파일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코끼리와 거미줄’이다. 가사는 이렇다. “한 마리 코끼리가 거미줄에 걸렸네/ 신나게 그네를 탄다네/ 너무너무 재미가 좋아좋아 랄랄라/ 다른 친구 코끼리를 불렀네.” 이 코끼리는 친구 코끼리를 네 마리 더 부른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 다섯 마리 코끼리가 그네를 타다가 결국 거미줄이 끊어지면서 끝이 난다. 남편은 노래를 듣더니 “거미줄이란 난관에 부딪혀도 그네 타기로 승화시키는 낙천적인 코끼리들을 보라”며 “이 시대 놀이가 된 집회문화와 새로운 연대의식을 표현한 동요”라고 흥분과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코끼리도 걸리게 만드는 거미줄을 뽑아낸 거미에 대해서도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요라고 다 재밌지는 않다. 많은 노래가 노골적으로 계몽적이다. “제일 먼저 이를 닦자 윗니 아랫니 닦자” 또는 “건너가는 길을 건널 때 빨간불 안돼요” 하는 노래들이 그렇다. 어린이들을 교화시켜 보려는 심산인 것이다. 물론 이런 노래도 다운받았다. 작품성은 좀 떨어지지만 그 실용성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는 실존주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연대의식과 같은 것만 안다고 밥 먹여주는 세상이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장마철 놀이터에 가자고 조르는 아기에게 유용한 “아기돼지 바깥으로 나가자고 꿀꿀꿀~” 하는 노래를 빼먹었다. 뭐, 하는 수 있나요. 다음에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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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하루는 찜찜한 기분으로 출근을 했다. 아침에 본 방송 프로그램에서 들은 ‘불치병’이란 말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관련 기사를 검색해 봤다. ‘불치병에 걸린 소녀…’ ‘희귀병으로 시한부 인생…’이란 내용의 수많은 기사들이 떴다.


‘불치병’은 사전에 올라 있는 표준어이긴 하다. 하지만 의미가 영 마뜩하지 않다. ‘불치병’은 말 그대로 고칠 수 없는 병이다. ‘불치병’은 대개 ‘난치병’으로 쓰면 뜻이 통한다. ‘난치병’은 고치기 어려운 병을 말한다. 한 글자 차이지만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너무나 다르다.


(경향신문DB)


병과 관련해 ‘희귀병’이란 말도 자주 쓴다. 아직 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진 않지만 언론을 통해서나 일상생활에서 접해온 지는 꽤 오래다. ‘희귀(稀貴)’는 드물어서 매우 진귀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희귀병’은 ‘드물어서 매우 진귀한 병’이란 뜻이 된다. 끔찍한 병과 싸우고 있는 환자나 가족에게 ‘보배롭고 보기 드물게 귀한 병에 걸렸다’고 말할 순 없다. 애초 단어 조합이 잘못된 말이다. ‘희귀병’은 보통 난치병으로 바꿔도 뜻이 통한다. 아주 드물다는 뜻을 강조하고 싶다면 ‘희소병’이나 ‘드문 병’이라고 쓰면 된다.


“네가 뭔데 사전에 있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하느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게 글쓴이의 생각이다. 더더욱 달리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말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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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 |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분석

 


런던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경쟁해서 올릴 성과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공장에서는 오늘도 직원들이 세계 일류 제품들을 만들려고 땀 흘리고 있다. 오늘 밤에도 세계 유수 학술지에 발표할 논문을 위해 대한민국 연구원들은 밤새 실험에 매달릴 것이다. 모두 경쟁이다.

고통스럽지만 사람들은 경쟁에 뛰어들고 때론 즐긴다. 남보다 잘할 수 있으면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취를 통한 우월감은 개인이 노력해 이루는 결과물이지 국가가 제공해 줄 순 없다.

경쟁 없는 사회가 진정한 복지사회이자 낙원일까? 경쟁이 없는 사회가 아니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사회가 아마도 우리가 꿈꾸는 복지사회나 낙원에 더 가까울 것이다. 유인원 조상 이래 문명을 세워 지금까지 발전시켜 온 인간에게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세칭 일류 대학에 들어간 학생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부모에게 그 아이는 평생의 자랑거리가 된다. 다른 사람들은 이들을 부러워하면서 질시한다. 대학에 들어가는 일만이 삶에서 부딪치는 경쟁은 아니다. 세상은 경쟁으로 넘쳐난다.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오늘날 각종 고시나 자격시험 제도로 이어지고, 거기에 뽑히면 장래가 꽤 보장되니 치열한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 정당에서 대표나 대선주자를 뽑는 경선, 대통령을 뽑는 대선도 치열한 경쟁의 공간이다.

서울대학교 정문 모습 ㅣ 출처:경향DB

 

세상이 이렇게 경쟁으로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양극화, 서열화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대학들 사이의 경쟁적 구도에서 비롯된다고 믿고 싶어 한다. 모난 돌은 쉽게 정을 맞는 분위기에서 최근 서울대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에서 일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정당의 대선 전략 중 하나라는 말이 들린다. 말은 복잡한데 서울대와 전국 국립대학들을 묶어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공부를 시키고 연구를 하는 대학의 가치를 밖에서 보고 측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대학을 다니던 시절 대의를 위해 소신 있게 학생의 길에서 벗어나신 분들이 다수 포함된 정치인들께서 매일 고리타분하게 공부하고 연구나 하는 교육기관인 대학들의 혁신적 구조조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교육을 바로 세우는 것이 국가의 백년대계임을 절절하게 가슴으로 느끼고 계시기 때문일까?

경쟁을 흑백사고로 보면 이긴 사람과 진 사람만 보인다. 그런데 경쟁의 결과를 제대로 결산하려면 뒤에 선 사람이 경쟁 과정에서 얻고 배운 것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또한 앞에 선 사람이 지고 가는 부담과 스트레스도 고려해야 한다.

경쟁에 지면 내 생각에도, 남의 생각에도 스스로 패배자가 되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도록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서 자신을 경쟁구도 안에 넣고 남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경쟁이 불필요한 일들도 많다. 화가와 성악가가 노래하는 능력을 놓고 경쟁한다면 웃기는 일이 될 것이다. 변호사와 의사 중 누가 환자를 잘 치료할 수 있는지를 겨룬다면 말이 안되는 일이다.

대학의 서열화 문제는 통합이 아닌 공정한 경쟁으로 풀어야 한다. 대전의 카이스트, 포항의 포항공대가 이미 서울대 공과대학과 어깨를 겨루게 됐다면 지방대학들의 특성화를 지원할 문제이지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전시연합대학(戰時聯合大學)을 흉내 낼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 교육경쟁력의 진짜 문제는 우리 대학들 중에 국제적으로 봐서 정을 맞을 만한 모난 돌이 아직 없다는 현실이다. 서울대조차도 세계 일류로 가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참고로 말하면 대한민국 국회는 서울대의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 2010년 12월에 법인화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러니 그나마 어렵게 국가를 대표하는 고등교육기관을 나무 위에 올려놓고 밑에서 흔들 일이 절대 아니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매버리면 바늘은 바느질을 제대로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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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지난 2월 나는 이 시평에서 ‘문재인의 운명, 안철수의 선택’이라는 연속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대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문재인 민주당 고문과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선 자리와 갈 길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다. 이유는 간명하다. 여전히 두 사람이 대선으로 가는 길에 야권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변화가 없지는 않았다. 4·11 총선 결과가 문 고문에겐 다소 불리한 정치적 조건을, 안 교수에겐 다소 유리한 정치적 상황을 형성했다. 총선은 진보결집 못지않게 중도통합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이런 국면은 중도층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은 안 교수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켰기 때문이다.

문 고문은 6월17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문 고문의 슬로건은 ‘보통 사람이 주인인 우리나라 대통령’이다. 이를 위해 그는 정권교체·정치교체·시대교체를 내걸고, 4대 성장전략·경제민주화·강한 복지국가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김두관 경남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민주당 안에선 문 고문, 김 지사, 손학규 전 대표의 3강 구도가 형성됐지만, 문 고문은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린다. 여기엔 더없이 인간적인 문 고문의 성품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자(嫡子)라는 그의 정치적 위상이 크게 기여해 왔다.

문 고문이 박근혜 새누리당 전 대표와 대결한다면 현재로선 불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예상되는 대선 구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박정희 대 노무현’의 대결이며, 다른 하나는 ‘보수적 미래 대 진보적 미래’의 대결이다. 문 고문이 대선 후보가 될 경우 ‘민주화된 박정희’에 대응하는 ‘미래지향적 노무현’을 어떻게 제시하고 설득할 것인가가 관건일 것이다. 여기서 미래지향적이란 노무현 정부의 미완의 과제인 양극화 해소와 복지국가 구축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함축한다.

 

문재인과 인철수 그래픽 ㅣ 출처:경향DB

총선 이후 안 교수의 행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선택을 심사숙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 교수가 봄학기가 진행 중인 6월 말까지 정치 참여를 선언할 수 없었던 것은 책임감을 중시하는 그의 성품을 생각할 때 공감할 수 있는 태도다. 지난해 9월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이사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했듯 그는 여의도식 정치문법의 밖에 존재한다. 유권자들의 피로감이 쌓이곤 있지만, 선택한 것에 철저히 책임지려 하는 안 교수의 태도는 말만 무성한 정치현실에선 외려 신선한 것일 수 있다.

안 교수가 시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은 그의 삶에 있다. 대선 후보에게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게 시대정신이라면, 안철수연구소로 상징되는 혁신·공공성, 청춘콘서트로 상징되는 공감·소통의 삶을 통해 그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앞장 서 실천해 왔다. 최근 홍사덕 박근혜 캠프 선대위원장이 안 교수를 루이 나폴레옹과 비슷하다고 비판한 것은 대선 구도가 지나간 산업화 시대의 적자인 박근혜 대(對) 새로운 미래 시대의 주역인 안철수로 형성될 가능성에 대한 보수 세력의 두려움이 반영돼 있다.

안 교수가 정치 참여를 자신에게 부여된 역사적 소명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선택을 넘어선 이제 운명으로 봐야 한다.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넘어선 곳에 중도층과 2030세대를 대변하는 정치적 상징으로서 그는 위치한다. 바로 이 점에서 안 교수가 운명으로서의 정치에 대해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인가, 야권과 어떤 정치적 연대를 모색할 것인가는 올 대선에서 진보개혁 세력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 고문은 살아남은 자의 책무로서 운명을 넘어선 선택으로 나아갔다. 안 교수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선택을 넘어선 운명을 수용할 것인가를 고뇌하고 있다. 시간이 안 교수에게 많은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고 그를 지나치게 압박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야권에 중요한 것은 문 고문이 감행한 ‘선택의 운명’과 안 교수가 고뇌하는 ‘운명의 선택’의 생산적 결합이며, 바로 이것이 진보개혁 세력이 승리하는 방정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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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국민’학교 2학년 때였던가, 어머니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종이뭉치를 받아와 집에서 봉투를 접었다. 종이를 재단하고 밀가루 풀을 쑤어 봉투를 만들면, 이것으로 싸전에선 쌀을 담고, 구멍가게에선 과일을 담았다. 요즘이라면 인형에 눈알을 박거나 구슬을 꿰는 일처럼 장당 얼마씩 수공을 받았다. 동네 아이들은 학교를 파하면 우리 집 마루에 앉아 옥수수 얻어먹을 요량으로 봉투를 붙이고, 여름에도 군불을 지피고 방바닥에 봉투를 깔아 말렸다. 풀이 잘 마른 봉투의 수량을 세어 100장씩 끈으로 묶는 일은 내 몫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유신헌법’ 홍보물을 주었다. 십년 후에는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과 더불어 마이카 시대가 열린다는 복음을 알리는 리플렛인데, 문화공보부에서 신동우 화백에게 그림을 맡겼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라는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며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애국자’가 되고 싶었을까? 아무도 시킨 사람이 없었건만, 그날부터 옆집 3학년 형과 신동우 화백의 그림을 도화지에 베끼기 시작했다. 그림에 재간이 있던 나는 포스터를 만들고, 10월유신을 찬양하는 표어도 숱하게 만들었다. 집에는 종이도 많았고, 포스터와 표어를 붙일 풀은 언제나 잔뜩 남아 있었다.

수줍은 탓이었을까, 아님 자랑하지 말고 숨어서 기도하라는 성경 말씀 때문이었을까, 그 ‘장한’ 일을 숨어서 하느라 밤에만 동네 골목을 누볐다. 손으로 풀을 집어 남몰래 포스터와 표어를 붙이면서 얼마나 가슴이 조이면서도 설레었는지. 그러나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우리를 잘살게 해준다는 ‘미신’을 신앙처럼 간직했다. 그러나 우리 집 살림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고, 그게 독재정권의 시작임을 나는 몰랐다.

 

헌법재판소가 유신헌법 긴급조치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을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이른바 ‘유신헌법’은 일본 메이지유신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과 국회 해산권을 가지며, 임기 6년에 연임할 수 있으며, 대통령도 국민투표가 아니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행정·입법·사법권을 모두 대통령에게 집중시킨 독재정권을 허용하는 법이었다. 유신헌법 아래서 중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내게 성당에서는 ‘괴담’ 같은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문학의 밤’이라 해서 가톨릭센터에 갔다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를 처음 접하고 무서워하던 중학생이었고, 주보와 함께 성당 입구에서 나눠주던 ‘가톨릭농민회 오원춘 사건’에 대한 등사본 유인물을 받아들고 경악하던 고등학생이었다.

지난 4월30일 안동교구 정호경 신부의 장례미사에서 만났던 오원춘씨의 모습은 그야말로 ‘착하고 선량한 농부’였다. 내가 ‘애국심’을 발휘했던 나라는 선량한 백성을 고문하고 회유하고 다시 협박하는 나라였다. ‘대통령을 반대하면 나라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강요하는 나라였다. 엄마 등에 업혀서 성당에 다니던 내게는 ‘주교님도 삐끗하면 감옥에 보내는’ 나라였다.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에 다니면서 10월유신 포스터를 붙이던 것은 ‘독재에 대한 예방주사’였을까, 그 뒤로 ‘애국가’와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에 담긴 국가주의를 체질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광주항쟁 이후에 대학생이 되고나서는 ‘준법정신’이라는 말이 제일 싫었다. 그래서 교통신호를 일부러 어기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10월유신이 예방주사라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내게 ‘국가주의에 대한 백신’으로 작동했다. 부족동맹의 자유롭고 평등한 삶에 익숙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주변국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을 때 사무엘 선지자는 “왕이 너희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알려주겠다”며 자녀들을 군대에 동원하고 “너희마저도 종으로 삼으리라”고 전한다. 그때에 가서 “스스로 뽑아 세운 왕에게 등을 돌리고 울부짖겠지만” 하느님은 들은 체도 하지 않을 것이라 전했다. 예수도 이른바 ‘국가보안법’에 걸려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으니, 이처럼 국가권력에 의해 밀려난 백성들에게 마음을 두는 게 예수의 제자 된 도리다.

황지우 시인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시에서 예전에 영화관에서 듣던 ‘애국가’ 감상문을 적었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날아가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데,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고 했다. 여전히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 하고 묻는 이들이 많은데도, 30년 이상 시공을 넘어서 또다시 박정희 시대를 사모하는 이들이 출몰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나저나 국책사업으로 해군기지를 만든다고 나서는 바람에, 제주 강정 바닷가를 떠나지 못하시는 문정현 신부님의 안부가 궁금하다. 장마전선이 예고되고 태풍이 불현듯 엄습하는 제주에서 부디 안녕하시라 여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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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어떤 자양강장제 광고에 나오는 장면. 포장마차에서 직장인 둘이 소주를 마신다. 사표를 내겠다고 한 남자가 큰소리를 치고 친구가 그를 말린다. 갑자기 이 장면은 텔레비전 속에 담기고 이를 지켜보던 취업준비생은 “취직을 해야 사표를 쓰지”라며 부러워한다. 역지사지해보면 우리 모두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교훈을 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증언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드디어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출마선언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1970년대 경제 발전의 장소 중 하나였던 타임스퀘어에서 출마선언을 하면서 박 전 위원장이 내건 구호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였다. 굳이 1970년대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출마선언을 한 박 전 위원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말하는 ‘꿈’이 사실은 ‘나의 행복’을 이루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 꿈은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197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나의 행복’을 실현하겠다는 노력이 국가를 발전시키고, 또한 국가의 발전이 다시 ‘나의 행복’으로 순환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경향신문DB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박 전 위원장의 출마선언문에 유독 가족에 대한 언급이 많다는 사실이다. 비극적이었던 자신의 가족사뿐만 아니라, 1997년 IMF 구제금융 시기를 언급하면서 고통받는 ‘국민들’을 보고 안타까워서 정치를 시작했다고 강조하는 대목이 그렇다. 알다시피, 1997년 경제위기를 상징하는 것은 바로 가족의 해체이다. 숱한 가장들이 가출하고, 가정이 산산이 부서진 경험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출마선언의 내용이 표상하고 있는 것이 ‘가족의 안전’이라는 사실은 곱씹어 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이 문제에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들이 누구인지 물어본다면 상황은 명확해진다. 말할 것도 없이 ‘단란한 가정’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중산층’일 것이다. 설령 경제적인 처지에서 ‘중산층’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에 준하는 가치를 지향하는 이들 모두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박 전 위원장의 출마선언이 노리고 있는 대상은 바로 이렇게 ‘중산층 의식’을 가진 이들, 정확히 말해서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처지가 ‘중간쯤’ 간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박 전 위원장이 그려내는 한국 사회는 앞서 언급한 광고에 나오는 ‘사는 것은 모두 힘들다’는, 이른바 피로사회의 윤리를 체득하고 있는 세계이다. 이 세계에서 취업자와 실업자는 결코 불평등하지 않다. 계급 따위가 이 완벽한 윤리의 공동체에 발붙일 수는 없다. 또 자양강장제만 있으면 피로가 풀리듯이 모든 문제가 풀릴 수 있는 세계이다.


그러나 이런 세계는 ‘꿈’에나 존재할 뿐, 실현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국가의 꿈’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꿈’으로 중심 이동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꿈’을 실현해야 하는 책임이 ‘국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있다는 의미로 말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충을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박 전 위원장이 암시하는 그 세계는 ‘중산층 의식’이 만들어낸 상상의 장소이다. 이 장소에서 비정규직이나 실업자, 또는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는 시민권을 획득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박 전 위원장의 반대편에 있는 이들은 이런 사정을 자세하게 헤아리고 있을까? 화제가 되고 있는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의 예를 들어보자. 출마선언 당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정책 슬로건을 내놓아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슬로건은 자매품이라고 할 ‘맘(mom) 편한 세상’이라는 슬로건과 같이 놓고 보면 그 의도가 분명해진다. 저녁에 가장이 일찍 귀가해서 단란한 시간을 나누는 ‘행복한 중산층 가정’의 풍경을 이 슬로건은 전제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앞서 이야기한 광고가 잘 보여주듯이 ‘저녁 있는 삶’을 바라는 직장인들도 있겠지만, ‘저녁 없는 삶’을 한 번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실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 슬로건 역시 계급에서 유래하는 ‘격차사회’가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문학적인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 이외에 손 고문의 슬로건에서 박 전 위원장과 뚜렷한 차별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 삶에 대한 대책으로 ‘단란한 가정’이라는 좋았던 시절을 회고적으로 불러들인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당연히 앞으로 다가올 현실에 대한 적절한 전망은 없다. 


물론 이런 유사성은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둘 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충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당연히 차별성을 부각하기 어렵다. 정책과 슬로건에서 여야가 비슷해졌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만큼 정당정치가 이념에 따라 선명하게 편가르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승패는 정책 실현의 능력을 어떻게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신선한 방식으로 증명하는가 여부에 달렸다. 정치가 점점 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바뀌어가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제 정치는 기존 질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변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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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우리가 늘 쓰는 말글이지만 그 말뜻을 자세히 뜯어보면 잘못된 곳이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한자말은 더 그렇다. 한자말은 잘 쓰면 양념이 잘 버무려진 음식처럼 우리말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엔 망신을 불러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논어의 선진편에 나오는 말로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란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말은 ‘지나친 것은 모자람과 같다’란 의미이다. ‘과유불급’의 유(猶)는 ‘~보다 못하다’가 아니라 ‘~와 같다’란 의미다.


(경향신문DB)


‘타산지석(他山之石)’도 본래 쓰임새를 무시하고 엉뚱하게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새 경영진은 ○○의 성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처럼 쓰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타산지석’은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일지라도 자신의 학덕을 연마하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앞말이 부정적인 상황일 때만 쓴다. 비슷한 말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있다. 남의 훌륭한 점을 보고 배우는 것을 가리킬 때는 ‘귀감(龜鑑)’이나 ‘본보기’ 따위의 말을 써야 한다. “새 경영진은 ○○의 성공을 귀감(본보기)으로 삼아야 한다”처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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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 소설가


 

매일 가던 지하철역이 어느 날 잘나가는 여배우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한 면 전체에 실물보다 큰 크기의 사진이 붙었으니 ‘도배’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또 다른 역에서는 밖으로 나가는 계단 옆면마다 시트지가 붙어 있다. 뭔가 해서 거리를 두고 다시 봤더니 은행 로고다. 지하철에 타도 마찬가지다. 선반 위, 출입문 양옆은 모두 광고를 위한 자리다. 바닥에는 파도그림이 승객들의 발밑에서 넘실거린다. 휴가철을 겨냥한 여행사의 광고다. 눈의 피로감에 못 이겨 출입구 유리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집중하려던 찰나, 유리창에 붙은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기대지 마세요. 이곳에 광고하세요. 광고 게재 원하시는 분은….”


 걸어가는 곳마다 광고가 보인다. 요즘에는 눈과 귀가 피곤한 정도를 넘어서 엄연한 피해라는 생각마저 든다. 건물이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타면 쉴 새 없이 영상광고가 나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없던 마케팅 방법이다. 거의 모든 공간은 사실 광고를 위해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경향신문DB)


광고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기분에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각적 효과까지 차단할 수는 없다. 사실 광고에 시선을 뺏기는 건 참 피하기 힘든 일이다.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2004년 광화문 촛불집회 때 일이다. 사람들이 모여 구호에 따라 박수도 치고 노래도 불렀다. 그런데 가끔 구호가 끊긴다거나 무료해진 틈에 사람들의 고개가 한쪽으로 일사불란하게 향하는 것을 보았다. 시선이 향한 곳은 회사건물 위에 있는 옥외광고 스크린이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이미지들을 외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쩐지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영화를 한 편 보려고 해도 십분 이상의 광고를 보아야 한다. 씨네큐브처럼 정책적으로 광고를 받지 않는 곳을 제외하면 영화를 보기 전 지루한 시간을 참아내야 한다. 요즘에는 일부러 십분쯤 늦게 상영관에 들어가고는 하는데 어두워진 상영관에서 사람들의 발을 밟아가며 자리를 찾아가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그러다 팝콘이라도 엎지르면 좋은 기분으로 영화를 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인터넷 기사를 볼 때면 각종 팝업창과 광고창이 업보나 되는 양 나의 시선을 따라다닌다. 기사를 보는 건지 광고를 보는 건지 모르겠다. 귀퉁이에 있는 것도 모자라서 본문을 덮는 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이제 광고의 영역, 비광고의 영역이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선택할 수 없기에, 피할 수도 없기에 광고는 때로 더욱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간접광고는 정교하게 진화하고 있다. 드라마 속의 간접광고(PPL)는 은근하게 일상의 틈을 파고드는 광고방법이다. 드라마 속 배우들이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상품을 이용하는지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드라마 속 중후한 매력을 발산하는 남자배우의 면도 모습에 감탄하기 전에, 나는 의심한다. 대체 왜 저 장면에서 굳이 면도를 해야 하는 걸까. 그것도 면도기가 아주 잘 보이는 각도로 말이다. 스토리에 필요치 않은데도 협찬 때문에 넣은 게 분명한 장면 앞에서 나는 불편하고 불쾌해진다.


언제부턴가 옷에 새겨진 로고도 모자이크로 지워버린다. 광고비를 내고 간접광고를 하는 업체에 혜택을 주기 위해서이다. 모자이크가 있어도, 없어도 시청자인 내가 거슬리는 건 마찬가지다. 모자이크가 있으면 오히려 모자이크만 보여 불편하고, 모자이크가 없으면 분명 협찬일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올라 불쾌하다. 예전에는 우리 아빠는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나오는 광고가 싫어서 채널을 이리저리 정신없이 바꾸며 TV를 보곤 했는데, 이제는 통째로 광고인 셈이다. 요즘 광고의 습격에서 소비자가 주권을 찾기란 이다지도 힘들다.


광고비가 절실한 수입원인 소규모 미디어일수록 노출은 더욱 노골적이다. 광고주를 ‘주님’(광고주님)이라고 부른다는, 홍보 쪽에서 일하는 친구의 말이 농담은 아닌 것 같다. 광고 포화 상황에 다다라 더욱 요란해지는 상황에 광고 규제를 외치는 건 요원한 일일까. 하지만 난무하는 광고는 미디어와 광고 모두에 해가 될 수 있다. 화려한 간판으로 도배된 곳은 오히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불쾌감만 주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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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 철학자

 

TV를 틀면 유명 원로 연예인의 익숙한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여러 가지 조건에서 보험을 들기가 만만치 않은 노년층을 상대로 보험에 가입하도록 유혹하는 광고의 한 대목이다. 장례비 등 자신이 갑자기 떠날 때 자식들이 떠안아야 할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자식에 대한 마지막 사랑이 아니냐는 은근한 훈계도 뒤따른다. 미래에 대한 염려를 조장하고 그 염려를 보험으로 완화시키라는 자본의 유혹이 무섭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돌아보자. 과연 노인들만 미래를 염려하고 있는가? 초등학생에서부터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특목고나 자사고에 갈 수 있을지를 염려하고, 고등학생들은 명문대에 갈 수 있을지 염려하고 있으며, 대학생들은 취업을 할 수 있을지를 염려하고 있다. 심지어 직장인들은 실직이나 당하지 않을지, 혹은 너무 이른 은퇴 뒤의 삶이 어떨지 염려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온통 미래에 대한 염려로 가득한 사회, 즉 염려사회에 살고 있다.

염려가 과도할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내일 일정에 대한 염려가 지나치면 그는 오늘 하루를 제대로 보낼 수가 없다. 애인을 만나 행복을 느낄 수도, 고뇌에 빠진 후배의 하소연을 들을 수도, 길거리에 누워있는 노숙자의 삶에 비통할 수도, 심지어 지금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의 맛을 음미할 여력조차도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통째로 오늘 하루를 내일 일정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일 일정이 끝나면 그는 미래에 대한 염려를 그치게 될까. 그렇지 않다. 내일이 되면 그는 모레를 염려하게 될 것이다. 오늘이 수단이 되고 내일이 목적이 되면, 우리의 현재는 항상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은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는 좌우명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모든 행복은 내일로 연기된다. 물론 그는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다. 오늘 고생하는 것은 모두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말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는 좌우명, 그러니까 오늘은 힘이 들지만 내일은 행복할 것이라는 신념에는 심각한 아이러니가 잠복해있다. 내일이 오늘이 되는 순간, 모레가 또 내일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를 지나치게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은 잡을 수 없는 파랑새와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행복을 약속해준다던 내일이 계속 고통스러운 오늘로 변할 테니까. 결국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은 죽을 때까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머리가 온통 내일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잔인한 사람이다. 노숙자의 비참한 삶도, 그리고 생계에 위협을 느끼는 이웃의 불안도 그에게는 별다른 느낌도 매력적인 이성과의 데이트도, 근사한 지역으로의 여행도 그에게는 별다른 기쁨을 줄 수 없으니까. 또한 이 사람은  줄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처럼 염려는 우리를 불행하고 잔인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독한 자아로 만드는 심리적 메커니즘으로서, 우리의 사랑과 유대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일러스트 _ 김상민

내일을 지나치게 염려하면 할수록, 그만큼 우리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애인, 친구, 후배, 그리고 가난한 이웃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없는 법이다. 당연히 이 상태에서 우리는 그들의 말에 화답할 수도, 그래서 사랑과 우정이란 관계를 형성할 수도 없다. 이처럼 염려는 누군가 함께 있으면서도 그와 공감하고 유대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항상 억압 체제는 다수의 사람들을 깨알처럼 분리시키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체제가 이런 좋은 계기를 간과할 리 만무하다. 체제는 우리보다 더 똑똑하다. 소수가 다수와 전면전을 벌여서는 승리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체제 입장에서 미래를 염려하는 인간의 심리는 너무나 유용한 것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미래만을 신경 쓰면 쓸수록 우리에게는 사랑과 연대의 가능성은 그만큼 사라질 테니까 말이다. 잊지 말자. 외부의 타자와 만나고 공감할 때, 우리는 자신이 바로 현재에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는 것을. 결국 현재는 타자와의 공감과 연대가 가능해지는 시제라는 점이 중요하다.

체제가 염려를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사실 체제는 고민하고 다시 고민한다. 염려를 어떻게 하면 더 증폭시킬 수 있을까,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깨알처럼 고독한 자아로 파편화할 수 있을까? 위대한 현대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가 나치라는 파시즘 체제와 연루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인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나중에 불가피했던 일이라고 부인하기는 했지만 하이데거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일련번호 312589를 받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던 진성 나치 당원이었다. 흥미롭게도 그의 철학을 관통하는 개념이 바로 ‘염려’, 즉 조르게(Sorge)였다. 결국 하이데거는 당시 독일인이 서로 유대하고 연대하여 독일의 산적한 정치경제적 난제들을 해결하는 데 뛰어들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일조했던 것이다. 삶을 옥죄는 난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의 미래만을 염려하고 있는 독일인들이 모든 난제들을 한방에 해결해 준다는 히틀러의 약속에 환호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염려가 깊을수록 파시즘적 체제가 도래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아니 정확히 말해 파시즘적 체제는 미래에 대한 우리들의 염려를 증폭시키지 않는다면 탄생할 수도 없다. 그래서 어느 사회가 얼마나 파시즘에 노출되어 있는지의 척도는 항상 사회 성원들이 자신의 미래를 불안해하는 염려의 정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파시즘적 체제만 인간의 염려를 증폭시키는가? 그렇지 않다. 파시즘보다 더 노골적으로 염려를 증폭시키는 체제가 있다. 바로 우리 시대의 자본이다. 주변을 돌아보라. 불확실한 미래상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금융상품들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거대자본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이웃들의 고용 조건을 불안하게 만든 당사자가 누구인가? 그런 그들이 다시 미래를 염려하는 우리 이웃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여 다양한 연금과 보험에 가입하도록 유혹하고 있다.

우리의 염려를 증폭시키는 정치 체제나 경제 체제를 바꾸는 것은 시급한 일이다. 물론 체제의 구조를 바꾸는 일은 고독한 개인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 이웃들 사이의 공감과 유대가 없다면, 어떻게 압도적인 구조를 넘어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불행히도 지금 우리는 체제가 증폭시킨 염려라는 심리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완전 딜레마다. 억압 체제가 극복된다면 우리의 염려 상태는 완화될 것이다. 우리의 염려 상태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억압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공감과 연대를 불가능하다. 여기가 바로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야 한다. 억압 체제가 없어지기를 기다리지는 말자.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증폭된 염려 상태를 완화시키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염려가 전제하는 시제인 미래를 부정하는 것이 그 출발점일 것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말이다. 사랑과 우정을 진정으로 나누고 싶은가? 이웃들과 공감과 연대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타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시제, 즉 현재,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을 꽉 잡을 일이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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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석 | 전농 강진군농민회 정책실장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뿐이라 배웠습니다. 신념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킨다는 건 중심을 갈무리하고 의지의 곁가지를 실천의 힘으로 키워나간다는 걸 의미합니다. 신념의 강자는 주변의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황소처럼 뚜벅뚜벅 천리를 갑니다. 신념의 강자는 신념을 키우는 강자입니다. 사색과 공부를 늦추는 법이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충고를 겉귀로 듣지 않습니다.

사람들 대하는 데 진지하고 실천에서는 물러서지 않으며 학습목표에 철저한 사람은 어지간한 바람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옳고 정당한 일을 한다는 자기긍정과 헌신과 실천으로 세상을 떠밀고 간다는 자긍심이 없으면 가족들의 고생과 생활능력이 없다는 주변의 비아냥을 참고 견디며 자신의 길을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념의 강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듣기 거북한 말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적으로 너는 나쁜 놈이라는 비판입니다. 인간적으로 나쁜 놈은 뭘 해도 정당한 방법으로 하지 않습니다. 전체의 이익보단 자신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언제나 꼼수를 쓰고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기보다 자기 편의 이해에 충실합니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발단은 이것이었습니다. 선거가 총체적 부실·부정이었고 이렇게 당선된 사람은 다 사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다 나쁜 놈들입니다. 대의는 없고 출세만 있는, 목표를 위해서는 부정을 가리지 않는 집단과 사람으로 낙인되었습니다.

 

종북 백과사전 들어보이는 이한구 ㅣ 출처:경향DB

‘내 정녕 서서 죽더라도 무릎 꿇고 구걸하지 않겠다’는 기개와 의지는 한 방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짧게는 10년 많게는 30년 이상의 세월이 단칼에 허공에 사라졌습니다. 맞아죽을 각오, 굶어죽을 각오, 얼어죽을 각오로 살았던 인생의 신념이 한순간 부정한 것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했어야 합니다. 나도 이런 잘못을 했다, 선거시스템이 이런 문제가 있었다, 인터넷투표의 근본적 한계는 이런 것이다라고. 서로 잘못을 인정하고 당 체제를 개선할 것을 논의했으면, 그 과정에서 책임이 나오고 그 방법이 사퇴였으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는 부정이 없는데 사퇴한다, 너는 총체적 부정의 당사자인데 왜 사퇴하지 않느냐 이렇게 접근한 겁니다. 흔히 당권파라는 이름으로 한 물의 한 고기로 싸잡아 도매금으로 팔았습니다. 신념을 밥처럼 먹고사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나쁜 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죽음이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않습니다. 박영재 당원이 그렇게 죽었습니다.

두 번째 참기 힘든 비판은 너는 머리가 없는 놈이라는 비판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며 자신의 몸으로 노동합니다. 나라가 사대를 하면 식민지가 되고 개인이 사대를 하면 머저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큰 나라에 자신의 운명을 기대고 이전에 고루한 이론과 논리를 비판 없이 따라하는 것을 사대와 교조라고 합니다. 종북이라는 말은 사대와 교조를 한다는 것입니다. 꼭두각시처럼 종처럼 산다는 겁니다. 나쁜 것도 북한이 시키면 해야 되고 좋은 것도 북한이 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야 된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종북은 무뇌아의 다른 표현입니다.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북한과 같은 말입니다. 이것이 종북입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 종북입니다. 이명박 정부에 6·15 선언을 준수하라고 말하면 종북입니다. 북한의 인권, 핵무기 개발, 권력승계에 대해 일본의 산케이신문이나 한국의 조선일보처럼 말하지 않으면 종북입니다.

종북이라는 말의 폭력성은 상대방을 바보로 만듦과 동시에 그 반대편의 줄에 서지 않으면, 내가 당신 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다 척결대상이 되는 집단 이성의 마비에 있습니다. 농협 비료창고에 가서 남들이 한 배미에 비료를 몇 포대 뿌리느냐고 직원에게 묻고 그것대로 사가서 그것대로 뿌리는 농부는 바보입니다. 모내기한 시기가 다르고 흙의 성질이 다르고 품종이 다르고 밑거름이 다른데 남들 하는 것처럼 하면 농사를 망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해외 건설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거리 청소를 하시는 미화원들도 다 애국자입니다. 최전방 철책선에서 근무하는 군인도 남도 끝자락 강진에서 고추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도 애국자입니다. 강진 성전면 청년회에서는 월례회의 때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합니다. 그것도 애국입니다. 성전면 농민회에서 영농발대식을 할 때는 ‘농민들의 영원한 애국가’ 농민가를 부릅니다. 그것도 애국입니다. 장차관들이 국무회의때 부르는 애국가는 애국이고 공무원 노동자가 행사 때 ‘임을 위한 행진곡’를 부르는 게 반국가적 행위라고 헌법에 나온 것은 아닙니다. 나라사랑하는 방법까지 내 방식과 관점이 아니면 다 틀리다고 말하는 것은 독재적 발상입니다. ‘이 글을 보니 당신도 당권파군’, 누군가 말하면 저는 당권파임을 자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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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비가 내렸다. 농지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마음도 촉촉이 적셨다. 그야말로 단비다. 우리말에는 비 이름이 참 많다. 대체로 비 이름은 모양이나 상태, 시기 등에 기초해 만들어진다.


(경향신문DB)

예를 들어 ‘실비’는 빗줄기가 실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늘고 잘게 내리는 비는 ‘가랑비’이고, 끄느름하게 오랫동안 내린다고 ‘궂은비’다. 요긴할 때 내리는 비가 ‘약비’다. 여름비는 ‘잠비’다. 여름에는 바쁜 일이 없어 비가 오면 잠을 많이 자게 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장대처럼 굵고 거세게 좍좍 내리는 비가 ‘장대비’ 또는 ‘작달비’다. 일기예보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집중호우’의 순우리말이다. 상당한 기간에 걸쳐 많이 쏟아지는 비를 일컫는 ‘호우’는 우리말로 ‘큰비’다.


가을비를 ‘떡비’라고도 한다. 가을걷이 후 비가 오면 떡을 해먹으면서 쉴 수 있다는 뜻이다. 모낼 무렵 한목에 오는 비를 ‘목비’라 한다. 좍좍 내리다가 잠시 그친 비는 ‘웃비’다. 아주 가늘게 내리는 비가 ‘이슬비’다. ‘색시비’는 ‘이슬비’의 또 다른 이름이다.


물을 퍼붓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는 ‘억수’다. ‘눈보라’는 알아도 ‘비보라’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세찬 바람에 불려 흩어지는 비가 ‘비보라’다. 가뭄으로 농지가 타들어갈 때 해갈에 도움을 주는 비는 단비다. 꼭 필요할 때 알맞게 내리는 비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올 여름비는 ‘잠비’가 아니라 ‘단비’인 셈이다.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주는 ‘단’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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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 | 한예종 영상원생


 

지난 주말 나는 고교시절의 수학여행 이후 처음으로 경주엘 갔었다. 그곳에서 열린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KTX에 올라탔다. 그 열차는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들로만 가득 찬 신기한 열차였다. 서울에서 올 하객들을 위해 통째로 빌린 모양이었다. 몇 년 만에 보는 동기, 후배들, 처음 본 신부 측 사람들 모두 번듯한 정장 차림이었지만 나는 달랑 티셔츠에 청바지, 싸구려 운동화, 그리고 작은 우산뿐이었다.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잘도 살아왔건만 경주로 내려가는 내내 내 처지가 너무 초라하다고 느꼈다. 바보 같은 생각임에 틀림없었다. 동대구역을 지나고 나서야 나는 차창 너머에 펼쳐진 초록 들판의 풍경에 간신히 몰입할 수 있었다.



(경향신문DB)



 결혼한 내 친구는 나와 대학 동기로 이라크전쟁 반대시위에 가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며 함께 활동했었다. 우리는 우리가 알던 세계가 어딘가 거짓투성이임을, 그리고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에게는 더더욱 착취를 강요하고 있음을 느끼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 환희와 격정, 슬픔, 고독, 불안, 조급함에 사로잡혀 있던 시간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종종 윗세대 어른들이 품는 그런 얄궂은 낭만에 빠지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온 후 느낀 어떤 두려움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언젠가 나는 기성세대가 겪는 온갖 풍파, 불화들, 권태로운 표정을 보며, 그리고 그네들이 스스로 희생과 단념으로 얼룩진 지난날의 결정들에 대해 후회의 말을 뱉는 걸 들으며 그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다. 내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용기가 지속되기를 희망하며 말이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온 나는 여전히도 고졸이다. 이렇다 할 자격증도 없으며, 통장 잔액은 매일 0원을 향해 달린다. 내가 별다를 것 없이 세속적인 인간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이런 사소한 순간마다 추락하는 내 마음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어떤 두려움을 확인하게 될 때마다 자신이 끊임없이 왜소해지는 걸 느끼지 않던가. 직장을 얻을 수 있을까? 편안하고 따뜻한 집에서 살 수 있을까? 밥은 굶지 않으며 살 수 있을까?


서울에 돌아와 소문난 감자탕 집엘 갔다. 제각각 어리바리한 신입사원, 앞날이 막막한 대학원생, 비영리단체 활동을 마치고 곧 다른 직장에 출근할 직장인, 영화란 걸 한답시고 아직도 빌빌거리며 대학에 다니는 답답한 놈인 우리들은 소주를 마시며 각자가 지닌 불안과 초조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사회초년생 친구는 월요일이 되면 다시 출근해야 하는 삶이 끔찍하게 싫다고 했다. 자신이 마주한 더러운 꼴들에 대해서 나지막이 말하면서 말이다.


다음날 나는 도심 한복판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감을 내뿜는 황당무계한 극우 인종주의 기자회견을 목격했다. 세종로 곳곳마다 “종북 빨갱이 척결”을 외치는 현수막들이 걸려있었고, 새로 세워진 서울시청의 쓰나미와 같은 형상은 우리를 모두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이틀 만에 찾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분향소에선 두 죽음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난 6월27일에는 미국계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보워터코리아의 한 해고노동자의 아내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신문지상에서 신나게 임원 감축 등을 통해 경영난을 극복했다며 상찬했던 바로 그 회사였다. 또 당일 아침에는 한 택시운전사가 사장과의 면담 끝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분신, 끝내 세상을 떠났다. 다음날 아침 어느 신문도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분향소 앞에서 듣는 죽음의 전갈들이 무기력한 마음에 빠지게 만들었다. 세상 모든 풍경이 폐허처럼 다가왔다. 


분향소 앞에서 마침 꽃다지의 공연이 있었다. 도심에서 울린 ‘노래의 꿈’들은 내게 상실된 용기를 되찾게 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두려움을 넘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말이다. 공연이 끝나도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엔 모두 험악하고 두려운 일들뿐인데 오직 그 외딴섬 같은 자리만이 우리들의 갈 길을 안내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가 이 ‘노래의 꿈’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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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서울대 교수·정신분석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존 볼비의 업적은 ‘애착’에 관한 연구이다. ‘애착’이란 아이가 자기를 돌보고 키워주는 사람과 지속적이고 정서적이며, 행동적인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현상을 말한다.

애착이 잘 형성되게 하기 위해서는 아기가 원할 때 엄마 또는 같은 사람이 늘 곁에 있으면서 적절한 반응을 제때에 보여야 한다. 배가 고프면 먹여주고 아프면 안아주고 달래주어야 한다. 그러면 언제나 도움이 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믿음이 아기에게 생긴다. 그래야 아기가 외부 세계를 탐험할 호기심과 의욕을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애착이론은 지금 발달심리학적 연구뿐 아니라 소아, 청소년, 성인의 정신적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보육 지원 정책의 방향과 내용이 논란이 되었다. 결혼은 안 하려 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면 국가가 사라질 위기가 오지 않는다는 법도 없으니 아이들을 잘 키우도록 국가가 도와야 한다. 거기까지는 옳다.

 

출처:경향DB

집에서 양육하는 아이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지만 보육시설로 옮기면 받을 수 있다고 하자. 전국의 보육시설에는 예약이 넘쳐나겠지만 언뜻 보면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 살이 안된 아이들을 집이 아닌 보육시설에서 주로 키우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애착관계가 불안정한 아이들을 많이 키워낼 위험이 크다. 아이와 부모들을 돕고자 하는 목적은 좋으나 너무 일찍 보육시설에 맡겨진 아이가 애착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정서적·행동적 문제가 있는 국민으로 자란다면 부담은 가족과 국가에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애착 형성이 잘된 사람은 마음이 평안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애착 형성이 불안정하게 된 사람은 자주 불안해하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이는 적어도 만 세 살이 될 때까지 같은 사람이 맡아 키워야 한다는 체계적 연구의 결과를 정책이 뒤집을 수는 없다. 여기서 ‘같은 사람’이란 엄마, 할머니, 또는 집에 같이 사는 아주머니 등이다. 물론 최상의 선택은 엄마가 직접 키우는 것이지만 그러기에는 삶이 너무 힘들고 복잡해졌다.

세 살 이내의 아이라도 보육시설에 보내면 지원금을 주고 집에 데리고 있으면 주지 않는 경우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보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설익은 애착관계가 견고하게 형성되지 않고 흔들리게 될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부모들만 지원금 때문에 세 살 이전의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보내야 한다면 이는 사회 정의도 아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녀의 문제로 인해 더 형편이 어려운 부모를 만들어내는, 불공정 행위가 될 것이다.

애착관계가 불안정한 아이는 커가면서 부모에게 늘 매달리고 관심과 사랑을 지나치게 요구한다. 그런 아이들은 흔히 정신적 문제를 보인다. 정서가 불안정하고, 행동이 반항적이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과도하게 예민한 어른들은 어려서 애착 관계의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애착관계가 안정적이 되도록 키운 아이들은 커서 어려운 일들을 겪어도 잘 극복해서 가족이나 국가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자존감이 높고 대인관계가 원만해서 직장에서 잘 지내고 결혼을 잘하고 아이들을 잘 키운다.

양육과 보육 모두 다 적절한 때가 있다. 세 살 이전의 아이는 안정적 애착을 위해 집에서 엄마와 지내고, 더 크면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보육시설에서 낮 시간을 보내야 한다.

건강한 국민이 있어야 건강한 국가가 있다. 그러니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에 대한 투자 전략은 현명하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주려면 집에서 키워도 당연히 지원금을 줘야 하고, 부모들도 세 살 이전까지는 힘들어도 아이를 집에서 키워야 한다.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면 국민이 국가에 느끼는 애착관계도 흔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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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ㆍ“우물쭈물하는 사람을 희극의 힘으로 한 발짝 나가게 할 것”

지난해 밀양연극제에서 민족극 계열인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 <그와 그녀의 옷장>이 대상과 연출상을 받은 것을 두고 미디어는 ‘이변’이라 표현했다. 그게 이변이라면 시작은 지난해 봄 걸판 단원 오세혁의 <아빠들의 소꿉놀이>와 <크리스마스에 삼십만원을 만날 확률>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동시 당선된 것부터일 것이다. <그와 그녀의 옷장> 역시 오세혁 작품이다. 그러나 정작 오세혁은 그런 소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작품이 고단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작은 용기를 주는가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

김규항=자신을 오플린이라 부를 만큼 채플린을 좋아하는데요.

오세혁=어릴 때 채플린 영화를 보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포착해내는 걸 보고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김규항=어릴 때 채플린 영화를 보며 그런 걸 보다니 유별났네요.

오세혁=배경이 있는데요. 어릴 때 부모님과 떨어져서 할머니 집에서 좀 살았거든요. 초등학교 1학년 어버이날에 어머니가 오셨어요. 그런데 어머니랑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할머니가 낙상으로 돌아가셨어요. 엄마랑 이모들이 난리가 났죠. 그런데 이제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가야 하는데 엄마랑 이모들이 막 울면서도 거울을 보며 단장을 하는 거예요. 드라이하고 얼굴에 분도 바르고. 그게 너무나 우스워서 막 웃었어요. 엄청 맞았죠(웃음). 그런데 그때 느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이 웃길 때만 웃는 게 아니라 진지하거나 심각할 때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빈틈이 생길 때가 있거든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죠. 그런데 좀 더 지나서 채플린 영화를 보는데 바로 그런 걸 그리더라고요.

 

연극인 오세혁 ㅣ 출처:경향DB

김규항=채플린도 그랬지만 희극을 하는 사람들은 현실이 희극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슬픔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치유할 수 있지요.

오세혁=저 역시 그렇고요. <그와 그녀의 옷장>을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보고는 정말 고맙다고 했습니다. 주변에서 우리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면 힘들게만 그려놔서 가뜩이나 힘든데 그걸 보고 있으면 더 힘들다. 우리 이야기를 재미있고 아름답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극단 걸판의 목표가 ‘가장 의미있는 일을 가장 재미있게’이기도 합니다.

김규항=세간의 표현을 빌리면 ‘작년 이후 제도권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 극작가이자 연출가’입니다.

오세혁=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나 강정마을 이야기 같은 건 걸판에서 책임감을 느끼고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저는 개인적인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 같은 것도 하고 싶었거든요. 그걸 신춘문예에 내본 건데 생각지도 않게 동시 당선이 되었죠.

김규항=제도 연극계에서 작업하고 활동할 기회가 많아졌는데 어떤가요.

오세혁=고마운 경험이고 공부도 되었지만 가장 큰 소득은 걸판 활동이 저에게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준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겁니다. 걸판에서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는 게 많고 제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게 걸판 식구들이고.

김규항=작품이 매우 쉬우면서도 캐릭터 묘사에 희한한 구석이 있어서 연출자와 소통이 쉽진 않을 것도 같아요.

오세혁=제가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하는 걸 참 좋아하는데요. 이를테면 노동자들이 싸움을 위해 다 모여 있는데 ‘왜 다 모여 있는 거야. 혹시 힘을 합쳐서 뭔가 하자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한다든가, 어떤 조합원이 ‘내가 가겠습니다’ 그러면 ‘불과 5분 사이에 노동자 의식이 급성장했구나!’ 한다든가. 그런데 다른 연출가들은 대본을 보고 이게 뭐지 싶으니까 빼버리기도 합니다(웃음).

김규항=걸판은 안산의 지역극단이고 현장 공연을 위주로 활동해왔습니다. 단원들에게 주류 연극계에 대한 심리적인 불편 같은 건 없었나요.

오세혁=저나 김태현, 최현미 같은 창단 멤버들은 목적을 갖고 시작했으니 그렇지 않았는데요. 그냥 연극을 하려고 들어온 사람들은 걸판이 대학로 공연을 안 하는 것에 대해 은연중에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 현장에서 저희를 부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경우가 있었고요.

김규항=지난해 밀양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게 도움이 되었겠군요.

오세혁=밀양연극제에 나간 이유이기도 했어요. 우리 작품을 제도권 연극제에 올려 관객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을 보고 싶었죠.

김규항=격찬을 받았고 ‘오세혁이라는 천재의 발견’이라는 기사도 나왔죠(웃음). 그런데 걸판의 김태현씨는 “세혁이더러 천재라고 하는데 세혁이가 얼마나 노력하는 사람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적었더군요.

오세혁=제가 유일하게 자부하는 게 노력입니다. 처음 몇 년 동안 연기는 안 하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극본도 쓴다고 썼지만 늘 부끄러운 수준이었어요. 극복하려고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쓰고. 주변에 뛰어난 사람들이 워낙 많기도 하지만, 노력파인 주제에 목표를 채플린으로 잡아놔서 더 힘들죠. <모던 타임즈> 같은 작품을 생각하면 잠도 안 와요(웃음).

김규항=선생 작품엔 ‘사람이란 게 다 비슷하다’는 시각이 있어요. 특별한 건 그게 냉소나 회의가 아니라 새로운 힘을 만들어냅니다.

오세혁=장기투쟁하는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조끼를 늘 입고 있는 걸 보면 예쁘게 차려입고 싶을 텐데 조끼가 지겹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파업하는 중년의 건설노동자들이 술 취한 모습 보면 용역들이 무서워서 저런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고요. 거꾸로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비정규직 이야기를 할 때는 용역깡패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광주항쟁 이야기를 할 때는 시민군보다는 진압군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는 식이죠.

김규항=사실 특별한 행동이 있을 뿐 특별한 사람이란 없죠. 평범한 속성과 이면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용기도 내고 함께 일어서고 하면서 특별한 행동이 만들어지는 거죠.

오세혁=말씀대로 사람은 다 그렇잖아요. 뭔가를 하려고는 하는데 겁이 나거나 소심하거나 우물쭈물하거나. 연극의 시작이라고도 하는 원시 동굴벽화도 짐승이 무서우니까 그림을 그려 용기를 낸 거잖아요. 같이 이렇게 찌르면 된다고. 지금 그 짐승이 지배체제일 수도 있고 자본일 수도 있지만 항상 시작은 그런 것 같아요. 제 작품이 하는 일은 우물쭈물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한 발짝 나갈 수 있지 않겠냐’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한번 힘을 내보자’ 말하는 거죠.

김규항=현장의 반응이 생생하겠군요.

오세혁=연극을 난생처음 본다는 중년의 금속노조 노동자가 “이걸 보니까 내가 한동안 안이하게 산 것 같다.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싸워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여성 청소노동자가 대기실에 들어와서 1만원짜리 한 장을 주시면서 우셔요. ‘나도 노동자라서 그렇다’면서. 아직은 사회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소중한 순간들이죠.

김규항=지금 현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작은 용기를 만들어주는 것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기륭전자 투쟁 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통합할 때 반대하고 탈당했을 만큼 급진적인 사람들이잖아요. 물론 노동자로서 상식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지만 근래 한국에선 그런 상식도 교조주의니까요(웃음). 그럼 사람들이 고맙다고 했다면 깊이 있는 이야기 맞습니다(웃음). 근래 걸판엔 ‘민족극과 대학로 제도 연극계를 아우르는’이라는 수사가 붙곤 합니다.

오세혁=저희도 그렇지만 보면 민족극 계열과 대학로가 서로를 닮아가고 있는 것도 같아요. 사회적인 이야기들을 대학로에서 많이 하고 있어요. 용산참사 이야기도 대학로 작가가 제일 먼저 했거든요. 민족극 계열은 예전엔 노동이나 통일 같은 금기시되는 소재를 다루는 것만으로 통했는데 이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되니 좀 더 예술적인 노력이 필요해졌다고 할까요.

김규항=1990년대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민중연극이나 문화운동 쪽 청년들이 대학로에 진출한 흔적일 수도 있겠군요. 연극하면 먹고살기 어렵다는 건 다들 하는 이야기인데 걸판은 어떤가요.

오세혁=연극하는 사람은 돈 벌려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건데요. 그게 쉽진 않죠. 가장 큰 문제가 집 문제고 이따금 큰일 생겼을 때 곤란하죠. 그런 면에서 걸판은 참 좋습니다. 고정 급여를 받고 단원 숙소도 있고 밥도 같이 먹으니까요. 연극 꿈을 가진 청년들에게 입단을 권합니다(웃음).

김규항=상업극을 하는 것도 아니고 운영과 운동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요.

오세혁=창단부터 8년 동안 대표를 맡아온 김태현 형의 기여가 큽니다. 지난해에 공연을 148회 했는데 그 중 3분의 2 정도가 집회나 농성장 같은 현장 공연이었습니다. 현장 공연은 공연비를 조금 받거나 거의 안 받거나 하지만 그 감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죠.

김규항=아우구스토 보알의 활동이 떠오릅니다.

오세혁=보알 선생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하나입니다. “관객 스스로가 연극의 주인공이 되게 하자. 그러려면 관객이 연극을 직접 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연극이 없는 이들에게 연극을 나누어주기 위해’ 어디든 달려갔다는 거죠. 빈민가, 오지, 정글,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 그곳에 가서 그들에게 난생처음으로 연극을 보여주고, 또 처음으로 연극을 할 수 있게 만들고. 걸판도 그런 활동을 지향합니다.

김규항=보알은 희극 전문은 아니었죠(웃음). 한가한 논평가들은 슬랩스틱 코미디가 유행하면 스탠딩 코미디를 상찬하고 스탠딩이 유행하면 슬랩스틱을 상찬하기도 해요.

오세혁=슬랩스틱은 몸으로 느끼는 웃음이고 스탠딩은 머리로 느끼는 웃음인데 저는 두 가지를 모두 쓰는 것을 좋아해요. 작품의 인물들이 우스꽝스럽게 자빠지고 구르고 날고 뒹굴면서 관객의 몸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쉴 새 없이 재치가 넘치는 말을 뒤집고 비틀고 꼬아서 관객의 머리를 자극시켜 주는 걸 좋아합니다.

김규항=현장 밖의 대중, 오늘 한국의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은 어떤가요. 한 예술가의 관점에서.

오세혁=다들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아요. 뭔가에 꽂혀 있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단계랄까요. 게임에 꽂혀 있건 <나꼼수>에 꽂혀 있건 안철수에 꽂혀 있건. 이명박 욕하기에 꽂혀 있건. 요즘엔 밤에 시내를 못 나가겠더라고요. 술들 많이 먹는데 기분 좋게 취한 사람들은 거의 없고 너무나 악에 받친 모습이랄까, 건드리면 처참하게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랄까.

김규항=시장이라는 게 무섭긴 무서워요. 군사독재 시절에도 사람들이 최소한의 꼴은 유지했잖아요. 이웃 간의 정도 있고 너무 탐욕을 부리면 죄를 받는다는 생각도 했고. 그런데 그런 게 시장 원리로 재편되고 도무지 자기 존중을 유지할 방법은 없고 말씀대로 뭔가에 꽂혀 있지 않으면 살 수가 없죠.

오세혁=6학년짜리 조카가 너무 게임을 많이 해서 게임이 재미있는 거지만 너무 많이 하진 말라고 했더니 그러더군요. ‘재미로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나는 어른이 되어도 잘살 가능성이 없다. 이미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런데 온라인게임 세계에는 아직 평등이 있다. 열심히 하면 이 세계 안에서는 레벨을 올리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김규항=어릴 적 제 삼촌만큼이나 유별난 아이군요(웃음). 문제는 그 아이 말이 전적으로 사실이라는 거죠.

오세혁=쿠바에 농업 견학 갔던 농민들이 땡볕에 일하는 쿠바 청년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지금처럼 농부로 살아가는 거’라고 해서 울었다고 해요. 한국에서 살아가기 힘든 이유는 쿠바보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노동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김규항=우리는 오랫동안 ‘노동의 건강함’을 이야기해왔지요. 그런데 이젠 노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생각해야 할 세상이 된 것 같아요. 일은 더 이상 세상을 유지하고 세상에 필요한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극소수 지배자들의 이윤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되어버렸지요. 노동이 세상을 파괴하고 오염시키고 필요하지 않은 걸 필요한 것처럼 만들어냅니다. 이론으로는 막막하지만 예술의 힘으로, 특히 희극의 힘으로 시원하게 드러내주길 기대합니다.

오세혁=세계의 본질을 해석할 수 없다면 우물쭈물하는 사람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도 없을 겁니다. 희극의 힘으로 해보겠습니다(웃음).

※극단 걸판은 13일부터 29일까지 <그와 그녀의 옷장>을 공연한다. 대학로 게릴라극장. 010-8356-8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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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봄학기에 ‘진보와 보수’라는 교양강좌를 열었다. 500명이 넘는 학부생들이 신청한 만큼 나름 신경쓰면서 강의를 진행했다. 강좌 말미엔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이상돈 중앙대 교수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했다. 강의를 통해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20대들의 정치적 감각이었다. 20대들은 대체로 진보적이긴 하지만 진보적 성향과 보수적 성향, 그리고 이념적 경향과 탈이념적 경향이 공존한다.

대선의 해를 맞이해 새삼 생각해보는 것은 이념의 역사다. 세계사회의 이념구도는 진보의 시대(1950년대~1970년대 중후반)와 보수의 시대(1980년대~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거쳐 새로운 전환의 시대에 들어와 있다. 미국·일본에는 진보적 정부가, 독일·영국에는 보수적 정부가 존재하는 현실을 지켜볼 때 어느 이념이 우세하다고 주장하긴 어렵다. 다만 보수가 내세운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처한 만큼 정치적 국면은 진보에게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선 민주화 시대 이후 10년을 단위로 보수적 정부와 진보적 정부가 교체돼 왔다(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진보적 정부로 볼 수 없다면, 중도개혁 정부라고 봐도 좋다). 주목할 것은 정권교체에서 나타나는 ‘열광과 환멸의 사이클’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이를 증거한다. 노무현 후보가 내건 ‘낡은 정치 청산’이나 이명박 후보가 내건 ‘경제 살리기’에 대한 국민 다수의 열망은 집권 말기에 모두 환멸로 귀결됐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이상돈 중앙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ㅣ 출처:경향DB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구적 흐름과 국내적 흐름이 갖는 유사점 및 차이점이다. 최근 지구적 흐름이 갖는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의 불안정성이다. 신자유주의는 위기가 분명한데, 유럽 경제위기가 보여주듯이 그 전망이 극히 불투명한 암중모색이 계속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실용주의적 사고다. 보수가 진보적 정책을 추진하고 진보가 보수적 정책을 수용하는 탈이념적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적 흐름은 사뭇 다르다. 후발 산업화 국가인 우리 사회는 뒤늦게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쳐 이제 복지국가 시대의 문턱 위에 올라서 있다. 선발 산업화 국가가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에 복지국가를 일궜다면, 우리 사회는 상이한 시대적 환경인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복지국가를 이뤄내야 하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다.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를 특징짓는 것은 저성장 시대다. 제로성장에 가까운 구조적 강제 아래 지속가능한 재정정책과 시대적 요구로서의 복지정책 간의 최적 조합을 찾아내기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여기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 세계경제의 위기, 돌이키기 어려운 저출산·고령화 경향과 이와 연관된 노동시장의 변동,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른 참여민주주의 확산 및 문화의 군도화(群島化) 경향이 결합함으로써 우리 사회 이념지형은 보수 대 진보라는 정치적 대립의 이념화와 기존 구도로부터의 탈이념화가 동시에 진행돼 왔다.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이념과 탈이념의 이러한 이중 구도다. 문제는 포스트 신자유주의적 정책 콘텐츠를 마련하는 데 기존 이념 구도의 해법이 갖는 강점과 한계에 있다. 지구적 수준의 탈이념적 흐름과 국내적 수준의 복지국가 구축이라는 진보적 흐름 사이에 우리 사회는 놓여 있으며, 상반된 이 두 경향을 적극 고려한 국가전략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차기 정부는 또 한 번의 열광과 환멸의 사이클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시대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기반을 둔 포스트 신자유주의 국가전략을 모색하는 시대정신 탐구가 역시 문제의 핵심이다.

대통령의 권력이 국민들로부터 위임된 만큼 대선 후보들은 국민들의 질문에 응답할 의무가 있다. 박근혜·정몽준·김문수든, 또 안철수·문재인·손학규·김두관이든 대통령을 꿈꾼다면 묻고 싶다.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우리 사회를 어디로 이끌려고 하는가. 새롭게 출범할 정부는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와 무엇이 다른가. 당신들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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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


야구를 하다가 코와 눈을 심하게 다쳤다. 윤동주문학상 시상식에 작년도 수상자로 참가했었다. 행사장은 인왕산에 자리 잡은 윤동주언덕이었다.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사람 10여명을 비롯하여 꽤 많은 문인들이 참가했다. 행사 중에는 전년도 수상자가 금년도 수상자에게 선물을 주는 순서도 있었다. 나는 연필 모양의 젓가락을 선물로 준비했다. 시인의 영혼의 젓가락은 연필 아닌가, 하는 발상이 떠올라서였다.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가 이어졌다. 반가운 사람들이 많았다. 자리를 옮기며 술자리가 길어졌다. 마지막 술자리 끝에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새벽이었다. 택시를 타고 오던 중 김포에서 글을 쓰고 있는 후배 작업실이 생각났고 그 후배의 작업실로 갔다.

작업실에는 그 후배와 다른 후배가 있었다. 그들은 글 쓰는 사람들의 야구 모임 회원들이었는데 전날 시합을 하고 와서 야구복을 입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야구복을 보자 고향에서 초·중학교 때 야구하던 일이 생각나 왕년에 야구를 좀 했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분당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날이 밝고 후배들을 선동해 인근 야구연습장이 있는 학교로 향했다. 한 후배가 포수를 보고 내가 투수 역할을 했다. 다른 한 후배는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고 있었다. 공 던지기가 좀 나아질 때쯤 포수 보는 후배가 던진 공에 얼굴을 정면으로 맞았다. 공이 날아왔고 나는 적시에 장갑을 움켜쥐었는데 이상했다. 내가 전에 한쪽 눈을 다쳐 원근감이 살아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이 바로 공을 받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후에, 후배가 찍은 동영상을 보고 너무나 어이없었다. 공을 당연히 잡을 수 있는 것처럼 태연하게 장갑을 접고 난 후 공이 날아와 눈과 코를 때렸다. 흠칫 놀라 몸을 조금만 움츠렸어도 공 부딪치는 소리가 그리 크게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흉하게 부어오른 얼굴로 전날 만났던 일본 손님들을 맞았다. 바다와 절을 안내하고 어판장에서 회를 먹으며 윤동주 이야기를 나눴다. 올봄 나는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 사람들의 모임에 초청을 받아 일본에 갔었다. 도쿄에 있는 릿쿄대학에서 행사를 했는데 일본 사람들의 윤동주에 대한 사랑은 예상보다 더 열광적이었다. 행사 중에 지진이 일어나 강당이 흔들리는데도 어느 한 사람도 동요하지 않고 행사에 집중했다. 불안한 마음이 일던 나는 그들의 진지함에 내심 부끄러워지기까지 했었다.

손님들이 돌아간 후 읍내에 잘 알고 있는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에 맞아서 코뼈가 함몰되었는데 그냥 내버려둬도 다시 솟아오르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일요일이라 병원이 쉬니까 일단 내일 와보라고 했다.

“몸이 많이 마른 노인들 내시경할 때는, 뱃가죽이 얇아 불빛이 바깥으로 비쳐 렌즈가 어디까지 들어가 있는지 알 수도 있어요. 하도 내시경을 많이 하다 보니까, 어떤 사람은 그가 누군지 떠오르지는 않다가, 그의 내장 건강 상태가 먼저 떠오르고 나서, 그 사람이 누구라는 사실을 알기도 하죠.”

한 시인이 내시경을 하고 나서 ‘너 내장 속에 불 켜본 적 있니?’라고 노래한 시 구절이 있다고 하자 의사인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내시경을 꽤 여러 번 했다. 내시경을 할 때마다 나는 수면내시경을 하지 않았다. 마취가 두렵기도 했고 친분관계가 있는 그가 내시경을 하며, 이 부위는 어디고 상태는 어떻다고 설명해주는 것을 듣는 게 좋아서였다.

다음날 병원에 들렀다. 엑스레이를 판독해 본 그가 소견서를 써주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큰 병원에서 CT 촬영을 하고 눈 검사를 했다. 다행히 눈 밑에 있는 뼈는 괜찮아, 코뼈 세우는 수술만 하면 된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러 가는 날 잠이 오지 않았다. 전신마취를 한다는데 혹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어서였다. 집사람 모르게 컴퓨터에 간단하게 유서라도 써 놓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방정맞은 생각 같아 그리 하지는 않았다. 수술이 끝나고 의식은 돌아왔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 환자 왜 이렇게 깨어나지 않지, 하며 의사들이 몸을 흔들었다. 의식은 돌아왔다고, 최선을 다해 신호라도 보내보려고, 눈이라도 껌벅거려보려고 해도 이도 말을 듣지 않았다. 몸과 의식의 단절이 불안하고 두려웠다. 다음날 퇴원을 하며 담배를 한 대 피워보았다. 양 코를 틀어막아서 냄새를 맡을 수 없으니까 담배 맛도 없었다. 코를 막고 입으로만 숨을 쉬니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전신마취를 통해 나는 몸과 정신의 분리를 경험했다. 정신이 몸의 멈춤을 허락한 사실에 몸은 얼마나 실망했을까. 배신감을 느꼈을 몸이 예전처럼 정신을 따르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근감의 상실로 나는 야구공에 맞았고 자유로운 호흡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체득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함이 우리 생활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가를 되새겨보는 계기도 되었다. 내일이면 긴긴 가뭄이 끝나고 비가 온다고 한다. 우리가 멀리 내다보지 못해 이 땅에 민주정신이 가뭄 들은 지도 벌써 5년이 다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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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방한한 슬로베니아 철학자 지젝과 함께 비무장지대(DMZ)를 갔다. 그곳에서 그가 보고자 했던 것은 분단 상황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의 현장이었다. 평소 주장해온 역설의 장면들을 발견할 때마다 그는 흥미로워했다. 한국에서 북한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보기 위해 그는 기념품점에서 북한 상품을 찾았다. 기념품점에 진열되어 있는 북한 상품은 주로 술이었는데, 그 중에 약간 포장이 다른 것이 있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경향신문DB)



눈썰미가 보통 아닌 지젝은 바로 그 술의 정체를 물었다.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보니, 탈북자들이 제조한 술이었다. 지젝은 파안대소하면서 “변절자들이 만든 술이군”하고 농담을 했다. 순간 얼마 전에 논란이 되었던 임수경 의원의 발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산 경험이 있는 지젝이 ‘변절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패러디라고 볼 수 있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이기에 농담 삼아 당시에 횡행했던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지젝이 한국인이었다면, 임수경 의원 해프닝이 잘 말해주듯 ‘변절자’라는 용어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을 테다. 탈북자를 ‘변절자’라고 부르는 순간, 사상에 대한 의심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농담이 통하지 않는 심각한 상황이 가로놓여 있는 셈이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현실 공산주의에서 태어나서 자란 지젝에게 이미 철지난 의미를 가진 ‘변절자’라는 말이 왜 자유민주주의를 체제이념으로 삼는다는 한국에서 문제가 되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 발언으로 탈북자들이 모욕감을 느꼈다면, 당사자들끼리 사과하고 지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상황은 종북 논쟁으로 비화되어 급기야 공당의 원내대표라는 분이 종북주의자 명단을 거론하며 전형적인 매카시즘의 행태를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젝에게 농담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과거의 이데올로기가 한국에서 여전히 맹렬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도 전체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특정 세력들을 ‘제거’하는 것을 정의의 기준으로 설정하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합리적인 논리로 설명하기 곤란하다.


지젝이 ‘변절자’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조건 덕분이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가장 열심히 주장한 이들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자들이었는데, 결과적으로 탈이데올로기의 상황이 초래한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곤경이었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지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파들에게 그 무엇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혼란은 기대하지 않았던 ‘고양이의 선물’이었다. 이런 까닭에 현실 공산주의권의 붕괴를 자유민주주의의 완성으로 간주하고 역사는 끝났다고 선언했던 미국의 정치학자 후쿠야마가 더 이상 자신을 후쿠야마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데올로기 없는 세상은 우파들에게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잃어버린 10년’을 회복하자고 이명박 정부를 선택했던 한국의 우파들은 지난 4년간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자신들의 무능력을 입증할 수밖에 없었다. 천안함 사태는 그렇다 치더라도, 연평도 포격이라는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한국의 우파들은 독자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세계 이목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복수혈전을 펼쳤던 과거 이스라엘 우파들과 비교되는 실력인 셈이다. 걸핏하면 북한 공산당을 때려잡자고 외치던 한국의 우파들이지 않은가? 그런데 정작 기회가 왔을 때 이들은 아무것도 때려잡지 못했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임수경 의원 발언으로 불거진 종북 논쟁은 이런 우파들의 무능력을 만회하기 위한 회심의 반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이라는 ‘실질적 공포’를 회피하기 위해 촉발시킨 우파들의 반공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는다. ‘실질적 공포’와 대면하기에 한국의 우파들은 너무 지켜야 할 것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종북 논쟁은 결코 북한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북한이라는 ‘절대 악’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이 상황에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탈이데올로기의 시대에 다시 이데올로기의 숭고를 불러들이려는 푸닥거리가 바로 종북 논쟁이라고 하겠다.


방한한 지젝이 보고 싶어 했던 것도 이런 역설 아니었을까? 다른 곳에서는 화석이 되어버린 이데올로기가 살아 숨쉬는 모습이 이방인의 눈에 신기하게 보였을 것이다. 물론 DMZ가 외국인에게 훌륭한 관광지가 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지젝이 특별해서 한국의 분단현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말로는 분단을 극복하자면서, 실제로 그 분단을 이용하고 있는 세력이 이런 상황을 지속시키고 있다. 이 세력이 남아 있는 한, 앞으로도 지젝 같은 이들이 한국에 오면 으레 DMZ에 가고 싶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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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섭|성공회대 대학원 박사과정


여기 두 개의 문이 있다. 하나의 문은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하고 있는 망루로 통한다. 다른 하나는 막혀 있다. 경찰은 우왕좌왕했다. 어느 문이 망루로 통하는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 1월20일 새벽 용산4구역 남일당건물, 세입자들과 전국철거민연합의 회원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벌인 점거농성이 시작된 지 하루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급작스레 들이닥친 경찰의 강경진압은 농성자 5명과 경찰관 1명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대법원은 경찰에게는 무죄를, 농성자들에게는 4~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두 개의 문>은 집요한 영화다. 농성자들이 건물을 점거하고 망루를 짓기 시작한 때부터, 그 망루가 검은 연기에 휩싸이며 불에 타오를 때까지의 경과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러나 이 추적에서 감독들은 농성자의 시선이 아니라 경찰의 시선을 쫓는다. 크레인 기사가 잠적하는 바람에 두 대가 필요한 컨테이너는 한 대만 올라가고, 건물의 구조를 설명받지 못해 두 개의 문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몇 층으로 되어 있고 어떤 인화물질들이 있는지, 몇 명이 어떤 태세로 있는지 모르는 채 파란색 망루로 무작정 밀려들어가는 진압대원들의 증언과 기록이다.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개의 문>. ㅣ 출처:경향DB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특공대원들은 그날의 망루를 생지옥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위험을 느꼈지만 이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얘기할 순 없었고, 자신들은 오로지 진압을 할 뿐 그 이외의 권한은 없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그들은 불에 타는 망루 속에서 들렸던 “다 죽어!”라는 의문의 외침이 위협이 아니라 경고였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그날의 참상을 떠올리며 머뭇거리기도 한다. 이런 대원들에게 검사는 국가의 이름으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강조하며 난데없는 사상검증을 벌인다.

하지만 결국 토해내듯 이 사건의 책임을 농성자들에게로 돌리는 대원의 목소리는 그다지 단호하지 못했다. 영화는 관객들을 용산참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화급하게 사건에 대한 진실을 결정지어버린 국가를 대신하여, 감독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그 불길은 무엇이었는가,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지만 영화는 대체 누가 이 진압을 이토록 서둘러 밀어붙였는지, 이 사건은 왜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했는지,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일이 벌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물론 이것은 그날의 진실에 집중하기 위한 영화의 전략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도, 그리고 그것을 보는 우리도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우리는 다만 두렵거나, 불안하거나, 주어진 삶을 헤쳐나가는 것에도 너무 벅찬 나머지 차마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했던 것이리라.

지난 몇 년간 ‘뉴타운’ ‘디자인 서울’ ‘재개발’ ‘재건축’ 같은 단어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단어들은 그 사람들을 밖으로 몰아대기 시작했다. 자본과 국가권력은 서울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복잡하게 얽힌 삶의 장소들을 유리와 대리석과 콘크리트와 ‘친환경’ LED로 뒤덮인 반듯한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 대통령이 와서 풀빵을 굽던 노점에서부터 사람들이 멀쩡히 살아가던 주택들과 한때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구시가지에 이르는 광범위한 구역이 그 대상이었다. 이들은 편리하게도 아웃소싱된 공권력인 용역으로 사람들을 괴롭혔고, 매수와 회유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불신을 심었으며, 법과 질서를 돈으로 물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용산의 불길이 지나간 다음에도 이들은 반성하지 않았다. 두리반과 마리에서, 그리고 북아현동과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곳에서 이들은 여전히 같은 짓을 반복 중이다. 그럴 때마다 두 개의 문은 조용하게 나타나 그 그림자를 드리운다. 얼마나 더 많은 불길이, 얼마나 더 많은 주검이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용산은 우리가 수십년간 에둘러서 중산층이라고 부르며 동일시해왔던 무언가가 찢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거대한 파열음이었다. 그 불길한 소음은 쌓여가는 가계빚과 밀려나는 사람들 속에서 더욱 커지는 중이다. 용산은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누구도 이 불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시대를 알리는 사건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집값을 떨어뜨리는 이웃이 아니라 진짜 맞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있다. 그 불타는 물음에 대하여 우리는 스크린 밖에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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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 경향시민대학장·고려대 명예교수


지금의 민주당에는 두 개의 진보 노선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가 ‘민주 대 반민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진영 간 대립의 노선’이라면 다른 하나는 어떤 정부를 만들 것인지를 준비하는 ‘대안 정부 노선’이라 할 수 있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진영 간 대립노선은 반권위주의, 반부패, 반권력과 같이 도덕적 가치나 이념적 담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상주의적 열정과 정조를 불러일으키고 ‘운동의 정치’를 되살리고자 하는 경향도 강한데, 그러다보니 이 노선은 자주 반정치의 태도와 정조를 동반한다. 또한 반엠비, 반박근혜, 반새누리당의 슬로건이 말하듯 적대적 대립의 축 내지 두 블록 간의 전선을 상정한다. 격렬한 언사를 동원해 상대를 공격하고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것을 지향하기도 한다. ‘독재 회귀’, ‘신공안정국’ 등을 외치면서 보수정부가 권위주의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동원할 때도 많다. 이러한 노선은 상대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얼마나 강하냐가 진정한 진보를 가늠하는 척도인 것처럼 인식되는 현상을 만든다. 그러나 내가 볼 때 민주당은, 그런 종류의 공격에 시간과 당의 에너지를 쓸 만큼 여유를 즐길 수 없다. 그런 노선을 지속하는 한, 당 체질의 정비를 통해 대안 정부로서 실력을 쌓는 일을 등한히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었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하고 당력을 기울이는 데 있다. 이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유능함을 인정받고 신뢰를 얻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공익에도 기여할 뿐만 아니라 선거 전략으로서도 더 효과적이다.

안타깝게도 4월 총선 이후 민주당은 지난 총선 전략이 왜 잘못되었나를 평가하고, 다가오는 대선에서는 어떤 전략으로 임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토론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오히려 총선 패배를 하루라도 빨리 잊고 싶어서였는지, 공격적 노선을 더 강화했고 그 경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추상화되고 도덕화된 반대담론이 강해질수록, 정치의 방법으로 일을 성사시키는 ‘진지한 정치’는 필요치 않게 된다. 뜨거운 열정의 동원에 몰두하는 정치는 실제의 사회 현실과 괴리되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당연히 내용적으로 더 얄팍해지는 일은 불가피하다. 지난 총선의 가장 큰 특징은,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 축을 불러들여 야권연합을 성사시켰지만 기대했던 승리는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소외세력의 소리는 대표되지 못했고 노동 문제 역시 주요 이슈에서 배제됐다는 점일 것이다. 한·미 FTA 폐기, 재벌개혁, 보편적 복지 등 개혁적인 것을 넘어 급진적이기까지 했던 주장과 수사들이 소리 높여 외쳐졌던 것을 생각하면 커다란 패러독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진보적 슬로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고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통해 실천 가능한 아젠다로 설정되지도 못했다. 유권자들은 정치 슬로건을 단순히 선악으로만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그러한 개혁 사안들을 야당이 실천할 능력과 진지함이 있는지를 점점 더 중시하기 시작했다. 지난 총선은 민주당이 집권당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수 시민들이 강한 의구심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서도 시민들이 제기하는 핵심 질문은 ‘민주당은 정부가 될 수 있는가?’에 있다. 민주당이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하는 것은 여기에 있다.

 

최장집 교수 강연, 2012 민주당의 과제 ㅣ 출처:경향DB

열린우리당 이후로 민주당은 작동 가능한 당내 권력구조를 제도화하고 리더십을 창출하는데 지속적으로 실패했다. 그 결과 현재 민주당은 일정한 정치적 자원을 가진 여러 명의 개인과 세력이 각각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파당들의 느슨한 집합체에 불과한 구조를 갖게 됐다. 선거 때 그것은 ‘캠프’가 된다. 이 캠프에 정당 안팎의 정치인, 정치지망자, 지식인, 전문가그룹들이 참여해 대선을 치르는 것이 오늘의 한국정치가 됐다. 정당의 공적 조직이 아니라, 캠프가 대통령을 만들고 청와대를 지배하고 정부를 주도한다. 이는 선거 이후 정부들이 한결같이 실망스러운 실적을 보이게 되는 것과 분명하고도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갖는다. 캠프 혹은 캠프 내 특정 팀이 구성한 청와대, 정부가 제대로 된 것일까? 나아가 그런 정부가 진보적인 성취를 이룰 수 있을까?

정당정치의 허약함은 지금도 계속해서 나쁜 문제들을 만들어낸다. 그 가운데 하나는 대선 후보 선출이 계속해서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빨라야 10월 늦으면 11월에 후보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통령선거 캠페인은 길어야 두 달밖에 가능하지 않다. 누가 어떤 정부를 만들게 될지는 이 짧은 기간 동안에 판단되고 결정되어야 한다. 여론조사, 개방형국민경선, 모바일투표로 이어지는 후보 선출 방식의 변화 역시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도 정당의 역할을 필요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원이 아니라 정당의 역사와 이념, 노선과 무관한 일반 투표자들이 당의 공식 후보를 결정한다는 발상은, 부정적인 의미로 가히 혁명적이다. 이처럼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결핍현상은 점점 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시민-투표자들은 좋은 대통령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의 기회를 충분히 향유하지 못한다. 엄청난 권력, 권한을 갖는 대통령을 우리는 너무나 즉흥적으로 선출한다. 그렇게 선출한 이후에는 합당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정당의 기반 또한 약하다. 정당이 정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과 무관한 대통령, 정당과 무관한 정부가 되는 길이 급진적으로 넓어지고 있는 현상은 한국 민주주의의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 기존의 진영 간 대립구도에 기초한 전투적 대결노선이 아니라 좋은 정당정부를 준비하는 노선이 강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이 가능할 수 있다.

첫째, 의제 설정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한국 정당정치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당이 사회경제적 문제를 다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야당이 특히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어떤 정부가 될 것인지를 준비한다는 것은 경제운용에 대안을 갖고자 노력한다는 것을 뜻한다. 야당도 유능하고 실력 있는 정부를 만들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여야 간 정치경쟁의 중심축을 이동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치와 열정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타협이 어려워 대결의 정치를 불러오는 민족문제 내지 이념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부터, 협상과 타협이 가능한 부의 분배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문제로 갈등 축을 이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집권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투입과 산출 측면에서 각각 당의 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누구를 대표하나? 민주당이 허약한 가장 큰 이유는 사회경제적 기반에 구체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이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당 내부로 그에 상응하는 사회경제적 힘이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된다. 이해당사자 집단의 참여를 동반하는 투입측면이 강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채널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와 동시에 당의 산출측면의 능력이 또한 제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당의 선출직 대표와 비선출직 전문가그룹이 함께 정책을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실력을 조직화하고 집단화하는 노력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셋째, 당 리더십과 대선후보 선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그동안 권력, 권위의 분산을 통해 당의 중심성과 리더십의 해체를 목표로 한 제도 개혁을 추진해왔다. 일종의 자해적 정당개혁이라 하겠는데, 이는 민주주의와 정당의 역할을 잘못 이해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정당 조직이 약해지면, 정치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들의 참여와 대표성이 약해진다. 응당 행정 권력과 경제 권력을 견제할 힘도 약해진다. 현재와 같은 당의 구조를 리더십이 중심이 되어 일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것이 요구된다. 모바일투표를 포함해 완전개방형 경선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맹목적 주장들에 대해서도 견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지금도 약해서 문제인 정당의 정체성과 리더십을 더욱 해체시킨다. 모바일 기제에 친숙한 그룹이 과다대표되는 문제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이 대표하고 뿌리를 내려야 할 사회경제적 기반으로서 중산층과 서민 내지 소외계층과의 괴리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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