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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23 [공감]당신의 ‘홀레 아주머니’를 만나길
  2. 2018.05.23 [사설]지방선거 무관심, 피해자는 지역주민이다
  3. 2018.05.23 [노명우의 인물조각보]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영세자영업자
  4. 2018.05.23 [강금실 칼럼]‘버닝’, 갈망의 결핍과 좌절
  5. 2018.05.23 [기고]상 줄 사람에게 징역 5년 구형이라니
  6. 2018.05.23 보텍스 시대의 대학입시 개혁
  7. 2018.05.23 [학교의 안과 밖]대입제도개편, 숙의자료가 중요하다
  8. 2018.05.23 [속담말ㅆ·미]하릅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9. 2018.05.23 왕제비꽃
  10. 2018.05.23 [하태훈의 법과 사회]국민청원, 약자의 목소리
  11. 2018.05.23 [사설]홍문종·염동열 체포안 부결, 방탄국회에 분노한다
  12. 2018.05.23 [사설]송인배 연루된 드루킹 사건, 특검이 철저히 밝혀야
  13. 2018.05.23 [사설]‘하천 관리’ 뺀 물관리 일원화도 일원화인가
  14. 2018.05.21 [NGO 발언대]‘물관리 일원화’ 재합의를 요구한다
  15. 2018.05.21 [정동칼럼]‘위헌국회’ 비판 면하려면
  16. 2018.05.21 [기고]나라 밖의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는 방법
  17. 2018.05.21 [사설]한·미 정상회담 더욱 중요해졌다
  18. 2018.05.21 [사설]국회 최저임금 논의, 무분별한 산입범위 확대 경계해야
  19. 2018.05.21 [사설]‘강원랜드 외압’ 무혐의, 검찰 조직문화 혁신 계기로
  20. 2018.05.21 [시선]가난은 농민의 얼굴을 하고 있다

대학원 시절 좋은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교수 아닌 학생이 그 연구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된 것은 모교 최초라는 연락도 받았다. 이른 아침이었다.

소식을 들은 지도교수님은 오전 일정을 미루고 곧장 학교로 오셨다. 지금 태연하게 공부가 되겠냐며 교내 커피가게로 향하시더니, 주문하다 말고 주인아주머니께 “얘가 제 제자인데 이번에 하버드 가요. 좋은 장학금 받고.” 자랑을 하셨다. 아주머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핏 보면 선생님은 얼음 같은 이미지였으니까. 그러다 뒤늦게 “아유 교수님, 얼마나 자랑스러우시겠어요!” 덧붙였다. 민망해하며 엉거주춤 있던 나는 원두를 갈던 알바생과 시선이 마주쳤다. 안경 너머로 빙글 웃는 그녀 눈길엔 ‘저런 팔불출 선생님이 다 있나요’ 쓰여 있었다. 덩달아 쿡 웃다 다음 순간 뭉클했다. 살면서 누군가 나를 위해 팔불출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대학 합격했을 때 부모님조차 그러시지 않았다.

그로부터 여러 해 지나서였다. 단짝친구가 유학에서 돌아와 유수 대학에 임용되었다. 교수가 된 것이다. 세부전공은 달랐어도 서로의 지도교수님을 알던 터라 친구는 인사드리러 찾아뵈었다고 했다. 참 잘되었다고 기뻐하시며 선생님이 말미에 이렇게 덧붙이셨단다. “근데 우리 소영이도 그 전공 자리가 워낙 안 나서 그렇지, 곧 교수 될 거야”라고. “으아, 음성자동지원 된다”며 친구 앞에서 킥킥 웃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자다가 깨어나 울었다.

오래전 ‘내 제자 하버드’ 하신 그날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이제 주위에서 축하인사 건넬 텐데 유심히 관찰해보라고, “근데 난 언제쯤” 혹은 “근데 우리 애도 곧” 식으로 말미에 한마디씩 얹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상대를 축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저렇게 덧붙이는 건 산뜻하지 못하다고, 그런 못난 사람이 또 없다 하셨다. 나로 인해 선생님이 부지불식간에 산뜻하지 못한 부류가 되셨구나 싶어 마음 아팠다. 당시 난 비정규직으로도 좋은 선배 연구자들과 즐겁게 공부하던 중이었지만, 그날 하루는 선생님이 다시금 팔불출 되실 현실여건이 주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홀레 아주머니’(Frau Holle)라는 독일 옛이야기에는 우물가에서 날마다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베를 짜는 소녀가 등장한다. 핏물 든 실타래를 씻다 물에 빠뜨린 소녀는 의붓어머니 질책에 못 이겨 그것을 찾으려 우물로 뛰어든다. 그 아래에서 그녀는 친어머니 손길을 지닌 홀레 아주머니를 만나 살뜰한 보살핌과 가르침을 얻는다. 내겐 대학원 진학이, 말하자면 그 우물이었다. 소녀가 우물 아래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예상 못한 채 현실이 고통스러워 무작정 뛰어들었듯 나 역시 그랬다. 고시공부만큼은 싫었고, 자정까지 입시학원 알바를 하지 않아도 조교일 하며 학비 벌 수 있다기에 발을 떼었다. 시작은 그랬다. 그리고 거기서 나의 홀레 아주머니들께 닿았던 것이다. 모교 울타리 안과 밖, 전공 내부와 외부, 학생시절과 이후를 넘나들며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았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많이 받았다.

아주머니 품을 떠나 다시 세상으로 나온 소녀가 먼저 들른 곳은 아무도 반기지 않을 의붓어머니 집이었다. 좋은 대체부모를 통해 채워지고 성장한 아이는 이렇듯 상처의 근원을 찾아 묵은 실타래를 풀고 한 발 더 내디딘다고, 옛이야기를 연구해온 분이 알려주셨다. 수많은 메르헨이 이 서사구조를 갖는다고 말이다. 이른 시각 깨어, 풀어야 할 실타래에 관해 생각해본다. 그러자 여기 미처 못 적은 고마움들이 기억 저편에서 아침 해처럼 솟아난다.

가정의달을 맞아 “스승의 은혜는 어버이시라” 노랫말을 되뇌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경우 부모마음, 혹은 자녀가 갖는 애틋함이 일반적으로 어떠한가를 스승들과의 관계에서 비로소 유추하여 헤아려볼 수 있었다. 처음부터 갖지 못했던 원형이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내면에 만들어진 셈이다. 찾아갈 가정이나 애착할 가족 없는, 그래서 이웃이 무심코 던진 “성장배경이 중요해” 같은 말에 마음 다쳐본 다른 누군가도 기억의 방에서 자신만의 홀레 아주머니를 찾아내기를, 그(그녀) 역시 고마움을 품고 한 발 더 내딛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소영 |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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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투표일이 2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들의 표심잡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초대형 이슈로 시민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은 저조하다. 경기와 경남, 제주 등지에서는 과열양상을 띠고 있지만 나머지대부분 지역에서는 낮은 투표율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선거운동도 정책이나 공약을 둘러싼 건강한 토론보다는 후보들 간 비방이 중심이 되고 있다. 풀뿌리민주주의 실현은 요원한 구호가 되고 있다.

지방선거는 지역의 현안을 점검하면서 향후 4년 동안 지방정치를 이끌 일꾼을 뽑는 과정이다. 지역의 특성에 부합하고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정책과 대안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후보들이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이번 선거는 지방분권 실현이라는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다. 지역주민이 지역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되는 것을 넘어 지역 주도로 국가발전을 모색하는 단계로 도약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지방선거의 핵심 의제는 지역이 아닌, 중앙 정부와 관련된 것들뿐이다. 여당은 국정을 힘있게 이끌어나갈 힘을 달라고 하고, 야당은 지도부건 후보건 모두 독주하는 정부를 견제하자는 말만 외치고 있다. 정당정치를 통한 풀뿌리민주주의 구현, 또는 민주주의의 훈련이라는 취지도 바래고 있다. 지방의 발전이 중요하다면서 모두가 중앙을 지향하는 지방자치의 역설적 현실을 웅변하고 있다. 1995년 전면적인 지방자치제 실시 후 20년 넘게 발전시켜온 지방자치 전통이 무의미해질 판이다.

대선이나 지방선거나 뽑는 대상이 다를 뿐 주권행사라는 점에서 우열이 있을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지방을 위한 정책으로 승부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지방선거에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선 안된다. 적어도 지방선거에서만큼은 지역의 정책이나 의제들이 부각되어야 한다. 우선 후보들의 면면과 주요 공약을 꼼꼼하게 살펴서 투표하려는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지방선거에서 지방논리가 실종되면 그 손실은 1차적으로 지역주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중앙당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방을 부축해 국가 전체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야당 지도부는 철 지난 이념공세나 일방적인 정부 공격을 자제하고 지역주민을 다독이는 정책과 의제를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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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들 상품이 아니겠는가. 훔치면 절도가 되고 소유하려면 구매해야 하니 책 또한 영락없이 상품이다. 그런데 책을 무료로 빌려주는 공공도서관이 있는 걸 보면 책은 다른 상품과는 좀 다른가 보다. 세상 사는 데 인간에게 필요한 물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개인에게 무료로 빌려주는 상품으론 책이 유일하다. 냄비와 옷을 거저 대여해주는 기관은 어디에도 없다. 

책도 상품인 한 다른 상품처럼 판매되고 구매되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곳을 책을 파는 가게, 즉 서점이라 부른다. 공산품에 비유하자면 책이 생산되는 곳이 출판사라면, 서점은 생산된 책이 판매를 위해 전시되는 상점이다. 서점이 있어야 생산된 상품인 책이 전시되고, 책이 전시되어야 소비자인 독자는 책을 고를 수 있다. 선택권은 서점의 소비자인 독자에게 있는 듯하다. 그러나 소비자의 선택권은 현실에서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엄청난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기차역과 백화점을 끼고 있는 영화관이 있다고 하자. 그 영화관에 10개나 되는 스크린이 있어도, 스크린 중 무려 8개를 한 영화가 독점하고 있다면 그 영화의 흥행은 보증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관객의 자유로운 선택은 이미 제한되어 있다. 새로운 쇼핑몰이 들어설 때마다 어김없이 매장을 확대하는 대형 체인 서점도 영화관 체인을 흉내 내고 있다.

몇 안되는 대형 서점 체인이 책과 소비자가 만나는 플랫폼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매장이 넓으니까 선택할 수 있는 책도 다양해 보인다. 매해 7200개가 넘는 출판사라는 공장에서 7만5000종이 넘는 책이라는 신상품이 출시된다. 하지만 정작 전국에 체인망을 갖고 있는 대형 서점에 7만5000종이 넘는 책이 빠짐없이 전시되지 않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대형 서점에는 책이 전시되는 장소인 매대를 구매한 출판사의 책이 주로 전시된다. 아는 사람은 아는 비밀, 대형 서점은 책이라는 상품이 아니라 책이 전시되는 장소, 이른바 매대를 생산자인 출판사에 파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러하니 대형 서점에서 소비자인 독자가 고를 수 있는 책의 폭은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대형 서점에는 판매된 매대를 관리하는 직원은 있지만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점원조차 없다.

작은 서점 혹은 독립 서점이라는 곳은 그래서 생겨났다. 힘든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책이 판매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 있는 대형 서점에서 제대로 전시되지 않는 상황, 잘 팔리는 책에 질식해 양서가 사라지는 현실이 아쉬워 용감한 사람들이 작은 서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독서인구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작은 서점은 다행스레 늘어 가고 있다.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에게 왜 서점을 열었는지, 서점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수원에 있는 작은 서점 ‘마그앤그래’의 운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고르는 일을 좋아하고, 그걸 권해주는 일을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열심히 읽어도 한 사람이 꼼꼼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란 한계가 있는데요. 저를 거쳐간 책들을 통해서 굉장히 여러 가지의 독서 인생을 살고 있는 기분입니다.” 서울 서촌 이상의 집 근처에 있는 ‘서촌 그 책방’의 운영자는 대형 서점과 달리 작은 서점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 생각한다. 작은 서점의 꽃은 독자들이 모여 함께 책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이다. “독서모임을 통해 아무데서도 말하지 못한 자신의 치부나 고민을 털어내고 살짝 눈물을 보일 때, 다달이 회원들의 표정이 밝아질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작은 서점에서는 책이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책을 읽고 지식을 공유하는 독자로 변신하는 마법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자본이 운영하는 서점과 달리 이러한 작은 서점은 자영업의 방식으로 보통 운영된다. 서점 운영자는 한국의 자영업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모든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굳이 묻지 못했고 굳이 서점 주인도 털어놓지 않은 서점업의 장사 내막을 궁금해하는 분을 위해 <출판하는 마음>이라는 책에 실린 작은 서점 주인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기본적으로 서점은 음식점이나 옷가게처럼 원가의 두세 배를 남기는 장사가 아니다. … 책 팔아서 남는 돈은 빤하고 매달 나가는 월세는 비싸다. … 가령 월세 50만원에 관리비 등 한 달 유지비 50만원, 인건비 100만원이라고 하면 매월 수익이 총 200만원은 발생해야 한다. 책을 팔아 월 200만원을 마련하려면 하루에 열여덟 권을 팔아야 가능하다. 책의 평균 정가를 1만5000원으로 잡았을 때, 공급률 75%에 받아서 한 권 팔면 3750원이 남는다.”

작은 서점에는 대자본이 운영하는 대형 서점의 현대식 시스템은 없다. 그 대신 단순 소비자가 독자로 변신하도록 돕는 사람, 책에는 단순한 상품 그 이상의 가치가 들어있다고 믿는 사람이 거기에 있다. 대전에 있는 한 작은 서점의 상호는 ‘You are what you read’이다.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책 읽는 사람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제 하나를 덧붙여야 한다. 우리는 책이라는 상품의 소비자도 될 수 있고, 책의 독자도 될 수 있다. 그런데 당신은 소비자입니까, 독자입니까? 아니면 책과 서점을 사진으로 찍기에 바쁜 인스타그래머입니까?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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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영화감독은 1993년에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조연출로 데뷔해서 1997년에 첫 감독 작품으로 <초록물고기>를 내놓았다. 그후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밀양>(2007), <시>(2010)에 이어 이번에 8년 만에 신작 <버닝>을 선보였다. 데뷔 후 25년 동안 6개의 작품을 만든 셈인데, 작품 수가 적은 편에 속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40대 초반에 데뷔해서 그나마 50대에 작품활동을 왕성히 한 셈이고, 60대에 접어들어서는 중반에 이르러 신작을 선보인 게 됐다. 그의 이력을 보면 영화계 데뷔 전 1992년에 한국일보 문학상(소설)을 수상한 게 눈에 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는 <밀양><시>에 이어 이번 작품 <버닝>을 몇몇 친구와 함께 극장에 가서 봤다. 그의 영화에는 전통시장의 뒷골목, 작은 읍내 미장원, 허름한 호프집 등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의 적나라한 일상의 장면들이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담긴다. 그 장면들 속의 배우들도 평상 생활의 화법, 행동방식, 일상적 습관들을 그대로 리얼하게 연기한다. 특히 이번 영화 <버닝>에는 법정 장면이 나오는데 판사가 어찌나 말투까지 현실적으로 연기하는지 영화를 보고 나온 친구가 진짜 판사인 줄 알았다는 말을 했다. 지난 작품들에 비해 <버닝>은 한국 사회 부의 상징인 서울 강남이 등장한다는 것이 새롭다.

주인공 청년 종수(유아인)의 아버지는 강남에 부동산을 사서 부를 축적할 기회를 놓친, 파주에서 소를 키우는 사람인데, 공무원을 폭행해서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다. 종수와 대척지점의 청년 벤(스티븐 연)이 강남에 살면서 외제차를 몰며 초호화생활을 하는 사람인지라 이 영화에서는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의 생활공간과 벤의 강남 공간이 번갈아가며 어우러져 등장한다. 여주인공 해미(전종서)는 종수의 어릴 적 동네 친구인데, 그 중간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서울 남산자락 후암동 고지대 원룸에서 산다. 해미의 방 창문으로 남산타워가 보이고, 여주인공이 여행을 가거나, 나중에 실종된 후에도 종수는 그 방에서 창밖으로 남산타워를 바라본다. 함께 영화를 본 Q는 남산타워와 해미 원룸방의 대비를 눈여겨보고 감상을 얘기하기도 했다.

배우 유아인이 출연한 영화 '버닝'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세 청년의 이야기를 줄거리로 한다. 감독은 “지금 젊은이들은 자기 부모 세대보다 더 못살고 힘든 최초의 세대다. 지금까지 세상은 계속 발전해왔지만 더 이상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 없다. 요즘 세대가 품고 있는 무력감과 분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한다. 주인공 종수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작가가 되는 게 꿈이지만 택배 알바로 힘들게 살면서 재판받는 아버지 뒷바라지하느라 쫓아다닌다. 눈은 조금 풀어져 있고 무표정하게 고개를 갸웃하고 무기력감을 드러내는 모습으로 나온다. Q는 종수가 계속 (불안한 듯) 몸을 흔들더라고 예리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P는 종수에게 감정이입이 된다고 했다. 이 영화를 본 다음날 아침에 나 역시 이 세 명의 청년들을 떠올리며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세 청년 모두 무기력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주인공 해미는 어렵게 살면서도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와서 부시맨들의 문화 속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뜻있는 배고픔)를 얘기하며 그들의 춤을 추기도 하지만, 영화 속에서 결국 ‘실종’되는 걸로 처리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우리 삶 속에 의미를 찾는 갈망의 결핍과 좌절을 표현하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벤도 젊은 나이에 어찌 그런 호화생활이 가능한가 의아함을 불러일으키고 해미의 실종과 연관된 다소 사이코패스적 인물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계속 불러일으키지만, 마지막에 가서 그가 보여준 너무 슬픈 눈빛 연기가 잊히질 않는다. 돌이켜보면 한 세대 전에는 힘들었어도 공장에서 일하며 현실과 싸우는 노동자, 정치상황에 항거하는 운동가라는 의지와 열정의 건강한 청년상이 있지 않았던가.

이 영화는 철저한 사실주의 영화이면서도 장면 하나하나가 매우 철저하게 기획되고 공들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실감이 전달될 정도로 깊이가 묻어난다. 배우들의 연기와 미스터리한 스토리, 현실적 장면들과 그 안에 묵직하게 담겨 있는 의미망들, 섬세한 상징들, 긴장감을 더하는 음악, 새벽빛과 노을의 아름다운 풍경 등 영화의 모든 것이 하나로 조화롭게 무르익어 잘 녹아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넘지만, 장면 장면이 속도감 있게 전환하면서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영화를 보고나서는 이창동 감독이 지금의 한국을 대표하는 정신적 삶의 전형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고, 또 그가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구나 하는 평가를 하게 됐다.

주인공 종수는 어릴 적 어머니가 가출했고 아버지가 어머니 옷을 모두 불태우게 해서 그 불타는 장면을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종수를 통해 드러나는 ‘버닝’은 단순히 소멸시키는 행위이거나, 잔혹한 파국에 불과하거나, 종수 내면에 갇혀 있던 복잡한 좌절과 분노, 고조되는 강박을 표출하는 것만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프랑스 신학자 테야르 드 샤르댕의 말에 의하면, ‘버닝’-불은 ‘존재가 발원한 샘’이며, 태초에 불이 있었다. 우주 시작의 빅뱅은 최초의 불꽃으로 묘사된다. 그러기에 ‘버닝’은 한 젊은 청년이 삶에 주어진 트라우마와 모든 대내외적 장애를 활짝 벗어던지고 존재의 근원적 샘으로 솟아오르는 적극적 행위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어떠한 인간의 현실에서도 인간은 존재의 근원을 꿈꾸며 현실의 몰락을 정신적 상승으로 전환하며 비약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강금실 | 법무법인 원 변호사·포럼 지구와사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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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는 마을의 위법적인 난개발을 막겠다고 나선 주민이자 환경운동가인 최병성 목사가 검찰로부터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 산등성이를 깎아 난개발을 추진하는 업체의 일방적 주장을 검찰이 엄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받아들인 결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백보를 양보해도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 수사와 재판을 방해한 혐의를 받은 남재준 전 국정원장과 같은 형을 구형받을 정도로 최 목사가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최 목사가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믿는다.

나는 약 20년 전 언론사 기자 시절부터 최 목사를 알아왔다. 1990년대 후반 영월 동강의 댐건설 문제로 여론이 들끓었을 때 동강과 짝을 이루는 강줄기인 영월 서강 살리기 운동을 펼치는 최 목사를 처음 만났다. 그때 최 목사는 서강을 오염시키는 주범인 시멘트회사들의 무분별한 개발에 맞서고 있었다. 나는 당시 최 목사의 도움을 받아 서강의 오염 실태 등에 관해 크게 기사를 쓸 수 있었다.

2007년 미국 유학에서 귀국한 뒤에 만난 최 목사는 산업용 폐기물이 잔뜩 들어간 이른바 ‘쓰레기 시멘트’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서울시 정책전문관으로 일하게 된 나는 최 목사의 도움을 받아 서울시에서 ‘쓰레기 시멘트’ 사용을 억제하는 정책을 입안할 수 있었다. 이후 최 목사는 이명박 정부 4대강사업의 문제점을 전국 곳곳을 돌며 고발하는 활동을 열정적으로 펼쳤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활동해온 탓에 건강이 악화됐다.

악화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찾아들어간 곳이 지금 그가 사는 용인시 지곡동이다. 하지만 그는 쉬지 못했다. 각종 위법적인 방식으로 초등학교 옆 산등성이를 깎아 들어서는 시멘트혼화제 시설 건립 반대 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개발을 추진하는 업체 측으로부터 소송을 당했고, 검찰이 업무방해 혐의와 명예훼손 혐의로 그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나는 검찰의 판단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위법적 행위를 저지르고 행정기관과 주민들을 기만한 업체는 처벌받지 않고, 그런 업체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한 환경운동가는 중형을 구형받는다? 법리와 일반인의 법감정이 항상 같을 수는 없다고 해도 이번에는 그 괴리가 너무 크다.

업무방해 혐의부터 보자. 개발추진 업체의 자금을 받아 진행되는 국내 환경영향평가는 법적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주문자’의 입맛에 맞춰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사건에서도 사업추진 업체 측에 유리하도록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진 정황이 여러 건 드러났다. 그런데 이에 대해 최 목사가 “허위로 환경영향평가서를 조작했다”고 주장한 것이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5년을 구형받을 정도로 중한 범죄인가. 또한 일부 잘못된 사실(검찰 출신이 아닌 업체 대표를 검찰 출신으로 표현)을 포함했다고 해도 페이스북에 짧게 업체 측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것이 그토록 중한 범죄인가. 정말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 중에 누가 자신의 마을에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검찰이 이번에 최 목사에게 구형한 형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최 목사는 오히려 상을 받아야 한다. 그는 남들이 나서기 꺼리는 일을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수십년간 해온 사람이다. 모두 합쳐 30여억원의 벌금을 요구하는 업체와의 소송전에 휘말려 지곡동 주민들은 큰 심적 압박을 느끼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열심히 싸웠던 최 목사는 육체적 피로와 심적 부담으로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말랐다.

그런 그에게 우리가 격려는 못할망정 이렇게 가혹한 형사처벌을 받게 해서는 안된다. 검찰이 지금이라도 잘못된 판단을 수정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검찰의 잘못된 판단을 법원이라도 바로잡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최 목사를 응원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최 목사에게 빚진 게 너무 많다.

<선대인 |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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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등록일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선거 이슈가 별로 떠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공약 1호가 ‘미세먼지 해결’이고, 그 다음이 ‘집값 상승’이라고 합니다. 미세먼지 해결은 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이지 지방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리고 집값이 좀 오른다고 모든 일이 해결될까요? 그럼 어떤 이슈가 좋을까요? 2012년의 대통령 선거 직전에는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교육은 어떤가요? 더구나 이번에 교육감 선거도 함께 있으니까요! 요즘은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잘 키우고, 은퇴해서 연금으로 편안한 노후생활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은 아닙니다. 정신건강전문의 하지현은 <불안 위에서 서핑하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인도에 홀로 서 있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그 스트레스는 “예측 가능성과 조절 가능성”에 의해 움직이는데 “세상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흐름이 지속될 때에는 삶의 예측 가능성과 조절 가능성을 올리려는 개인의 노력이 효과적으로 결과에 반영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라는 존재가 컵이라고 합시다. 컵 안에 물이 담겨 있어요. 이 물이 넘치지 않게 하려고 나는 열심히 컵 안의 물을 관리하면서 컵이 흔들리지 않게 잘 잡고 있는 방법을 배웁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컵이 놓인 테이블의 다리 하나가 짧다면? 그때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컵이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겠죠?”

테이블의 다리 하나가 짧아진 이유는 뭘까요? 인공지능의 출현 때문이 아닐까요? 인간의 지능지수(IQ)는 평균 100이지만 인공지능은 1만이나 됩니다. 100배나 머리가 좋은 비서를 활용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비서를 잘 활용하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키워야만 합니다.

일본의 교육계는 이런 변화에 발 맞춰서 2020년부터 4지선다형 대학 입시인 ‘센터 시험’을 폐지하고 ‘대학 입학 공통 테스트’를 도입했습니다. 새 시험에는 마크 시트 방식의 문제에 서술형 시험이 추가되고, 영어에서는 ‘읽기·듣기’에 ‘말하기·쓰기’가 더해진 4개의 기능을 시험하고, 영어검정시험, 토익, 토플 등 민간시험이 도입됩니다. 수학에서도 서술식 문제가 출제되고, 국어에서도 소논문을 쓰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대학입시부터 이렇게 바꾼 것은 아동과 학생이 주체적으로 액티브 러닝(배우는 쪽이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형태의 수업)을 통해 사고력이나 표현력을 기를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초연결사회에서 개인이 가능성을 열어가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직업이 자주 바뀔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어려서부터 주체적인 학습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따라서 교육은 그런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이걸 효과적으로 반영하려면 객관식 대학입시부터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생산자인 기업이 대량생산한 제품을 되도록 많은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프레임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만들어진 프레임도 ‘보텍스(vortex)’라는 소용돌이가 한 번 일어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이제 개인은 어떤 소용돌이가 일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 교육도 그런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마땅합니다.

교육 평론가 이범은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에서 “일생 동안 직업을 여러 번 바꿔야 할 확률이 높아졌고, 그때마다 본인이 뭘 배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4차 산업 혁명이 우리 교육에 던지는 화두”가 되는 세상에서 “교육의 초점은 창의력 자체보다는 자기 주도 학습 능력, 특히 본인이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에 맞춰야 한다며 교과서 자유발행제 도입을 주장합니다.

이범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답이 나오는 시대에 “자꾸 ‘출제자의 의도’만 따지게 되니 자기 생각을 구성하는 힘을 기르기 어렵”게 만드는 객관식 시험문제도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도 펼칩니다. 객관식은 교권침해의 소지도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제로섬 경쟁”으로 “협력적인 인성을 키우는 것을 방해하는 제도”인 상대 평가도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주장도 전개합니다. 회사에 입사하면 경쟁의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인 사회에서 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게다가 이범은 최근 학벌과 스펙의 중요성이 낮아진 이유를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경제 구조의 변화, 즉 정부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학연과 같은 ‘연고’의 중요성이 낮아진 것, 둘째는 고용 형태의 변화, 즉 정기 채용해서 교육·훈련 후 배치하는 모델에서 수시 채용해서 즉시 배치하는 모델로의 변화, 셋째는 기존 채용 방식의 결점으로 간주되는 기술적인 문제들, 즉 도련님·공주님의 증가라든가 이직률이 높다는 점 등. 이 세 가지는 서로 상당히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동시에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학벌과 ‘스펙’의 가치가 예전에 비해 낮아졌다는 느낌이 들죠.”

최근 교육부는 대학입시 개혁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스스로 개혁안을 만들지 못하고 하청, 재하청으로 임해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심각한 학력사회인 일본이 대학입시 개혁을 통해 교육을 근원적으로 개혁하는 것에서 우리도 타산지석의 지혜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학벌과 학력보다 개인의 생존 능력이 중요해지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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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중3 학생부터 적용되는 2022학년도 대입제도는 사실상 국가교육회의가 결정한다. 정확히는 국가교육회의 산하의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 산하의 공론화위원회 산하의 시민참여단이 결정한다.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방식에 대한 시시비비는 뒤로 미루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금은 시민참여단이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또는 최악의 결정만은 피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지금으로선 시민참여단에 제공하는 ‘숙의자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16일 “시민참여단이 대입제도에 대해 잘 모를 수 있어 숙의자료를 충분히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공론화위원회는 정말 중요한 숙의자료를 확보했을까.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어떤 자료를 말하는 건가?

첫째, 한국사와 영어에 대한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조사자료다. 그동안 이들 과목에서는 학교의 수업·시험과 학생의 공부내용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한국사·영어에서는 이미 수능 절대평가제가 시행됐다. 한국사는 수능필수로 지정될 때부터 절대평가제였다. 영어는 작년부터 시행됐지만 학교의 수업·시험을 기준으로 보면 3년 예고제로 인해 이미 2015년부터 절대평가제가 시행됐다. 한국사·영어 수능 9등급 절대평가제는 수업·시험·공부내용에 어느 정도의 변화를 일으켰는가?

둘째,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에 대한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조사자료다. 이들 과목에서는 학교의 수업·시험, 학생의 공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현 고1 학생들에게는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고 있다. 이전과 크게 다른 점은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두 신설과목을 모든 학생이 배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능 개편안이 1년 연기되면서 생긴 우연한 결과로 인해 고1 학생들은 입시제도 개편안이 어떻게 결정되든 수능에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치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상 처음으로 수능의 영향이 완전히 배제되고 내신의 영향만을 받게 된 주요과목의 수업·시험과 학생의 공부내용에 나타난 변화를 알아볼 수 있게 됐다. 시행기간이 짧은 한계가 있지만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 정도의 숙의자료가 제공돼야 시민참여단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수능제도 개혁을 우선해야 하는지, 내신제도 개혁을 우선해야 하는지, 아니면 둘 다를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인지, 그 어떤 판단이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목소리 큰 소수가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를 토대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한데 이런 조사가 가능할까?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미 교육청-학교에는 잘 구축된 조사 시스템이 존재한다. 수천·수만 교사의 의견을 1주일이면 알아볼 수 있다. 학교폭력실태조사 시스템 등을 활용하면 수십만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도 한 달 이내에 알아볼 수 있다.

이러한 조사자료는 단순히 시민참여단을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진 대입제도를 둘러싼 사회갈등을 완화하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 예컨대 수능에 전 과목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면 그에 반대한 사람들이, 지금처럼 상대평가제를 유지하면 그에 반대한 사람들이 반발할 것이다. 내신제도에 절대평가제를 도입하거나 도입하지 않거나 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반대 입장의 사람들을 승복시킬 수 있을까. 최선의 조사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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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릅, 두습, 세습, 사습, 다습, 여습, 이롭, 여듭, 구릅, 담불. 옛날에 소나 말, 개 등 주요 가축의 나이는 이렇게 별다르게 불렸습니다. 100세 인간은 10년 단위로 희비가 갈마드나 10세 남짓으로 한살이 마치는 가축은 1년 단위로 성장을 가늠했겠지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에서 ‘하룻강아지’로 잘못 쓰이는 ‘하릅강아지’는 생후 1년 된 개입니다. 그런데 하릅강아지는 정말 범 무서운 줄 모를까요? 네, 진짜 무서운 줄 모릅니다.

사냥개는 생후 1년은 돼야 비로소 사냥터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습니다. 개의 한 살은 사람 나이로 치면 15세 정도로, 그때부터 성견다운 면모를 보이기 시작합니다-사람도 과거에는 16세부터 성인으로 쳤지요. 그리고 이 시기는 사람도 개도 질풍노도 혈기왕성한 ‘청소년기’입니다. 힘과 혈기가 넘쳐나 무엇도 두렵지 않을 때죠. 그래서 곰이나 호랑이 같은 거대 맹수를 사냥하러 갈 때는 바로 이 겁 모르는 1년생 개, 즉 하릅강아지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혈기 넘치고 호랑이를 겪어본 적 없으니 덩치 큰 맹수에게 겁 없이 달려들며 맹렬히 몰아붙일 수 있거든요.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젊은 혈기나 어쭙잖은 실력만 믿고 주제도 모른 채 함부로 실력자에게 덤비거나 철없이 날뛰는 사람을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릅강아지에 비유하게 됩니다.

하릅강아지들은 자신이 가진 것, 아는 것이 최고고 전부인 양 자만합니다. 상대가 가만있으니 이빨 빠진 호랑이쯤으로 얕보고 잽 날려대다 카운터펀치 한 방에 뻗어버립니다. 물 만났다 교만 떨다 임자 제대로 만나 영혼까지 탈탈 털립니다. 무람없이 굴다 큰코다치고 깨갱 합니다. 하룻강아지든 하릅강아지든 피차없이 경험 없는 강아지일 뿐입니다. 지피지기 해보면 세상에 만만한 사람 별로 없습니다. 만만해 보였다면 어쩌면 상대를 잘못 골랐을 것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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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매미는 언제쯤 귓전을 두드릴까, 생각하다가 그보다 먼저 개미와 나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했다. 순결한 지면에 먹물로 개미, 개미, 개미라 쓰면 검은 행렬이 꼬물꼬물 어디로 진군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 길에서 만나면 그냥 꾹꾹 눌러 밟기가 일쑤였다. 아파트에는 개미가 없는 줄로 알았지만 이사하고 방바닥을 쓸면 한두 마리의 개미가 쓰레받기에 얼씬거렸다.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창문 너머로 휙 던져버린 경험이 여러 번이다.

ⓒ이해복

요즘 개미에 관해 실감나는 게 있다. 그것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발짝 이내에서 개미와 맞닥뜨린다는 사실이다. 이는 내가 완벽하게 그들에게 포위된 형국임을 뜻하는 게 아닐까. 노벨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무크의 소설, &lt;내 이름은 빨강&gt;의 첫 문장은 파격적이되 명징하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뉘라서 주인공의 저 운명을 피할 수 있으랴. 언젠가 나도 그 신세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올 손님은 아마 개미일 것이다. 혹 오래전 나에게 당했다가 몇 생을 거듭난 그 녀석일지도 모를 일!

평창을 찾았다가 정선으로 넘어가는 어느 길목에서 희귀한 꽃을 만났다. 물소리가 은근한 공터에 차를 대고 개울을 건너니 멸종위기식물 안내문과 철조망이 있었다. 왕제비꽃 자생지였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제비꽃은 종류가 많다. 제비꽃만을 다룬 단행본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 게 제비꽃의 세계이기도 하다. 제비꽃은 원줄기의 유무에 따라 크게 구분된다. 대부분의 제비꽃이 앉은뱅이 방석처럼 지면에 도톰하게 퍼져 있는 것에 비해 왕제비꽃은 원줄기가 뚜렷하다. 흰 꽃은 잎의 겨드랑이에서 나온다. 제비꽃 중에서 키가 가장 커서 무릎을 때릴 정도이다. 그래서 왕을 이름 앞에 얹었나 보다.

왕제비꽃은 그 경계를 간단히 뛰어넘어 바깥으로 진출해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왕제비꽃을 보는데 개미 한 마리가 꽃과 잎을 드나드는 게 아닌가. 제비꽃을 퍼뜨리는 데 개미가 큰 역할을 한다. 개미와 나는 오늘 또 이렇게 얽혔다.

내가 매미를 기다리듯 성질 급한 개미는 벌써 씨앗을! 왕제비꽃, 멸종위기 2급,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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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뜨겁다. 국민적 관심사가 주류지만 개인적 감정이나 분노 표출도 있는 모양이다. 지난 8개월간의 국민청원을 정리해 보니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 대통령, 아기, 여성, 처벌, 정책, 학생 순이고, 국민의견이 수렴된 분야의 순서는 인권·성평등, 보건복지, 안전·환경이라고 한다. 이를 결합해보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특별한 배려를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그때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반응이 많았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사회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으로도 읽힌다.

헌법 제34조에 규정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열거된 특정 계층과도 거의 일치한다. 헌법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천명하면서 국가의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 의무, 여자의 복지와 권익 향상,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 정책실시 의무,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이 ‘사회국가’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제10조), 평등권(제11조) 등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및 사회적 기본권 등을 합해보면 사회국가와 복지국가의 이념이 헌법에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사회국가를 ‘사회주의국가’와 혼동하거나 ‘사회’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은 달리 해석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가 사회적 안전과 사회적 정의를 지향하는 국가임은 부인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도 인정한 바 있다. ‘사회’라는 단어를 좌파나 빨갱이로 인식하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노동권, 주거권, 경제민주화 등 사회복지와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기본권 강화를 특징으로 하는 대통령 개헌안을 좌편향 사회주의 개헌안으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사회국가란 사회적 안전과 사회적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국가다. 복지국가와 혼용해 쓰기도 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인해 야기된 폐해를 시정하여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체제를 말한다. 산업화로 왜곡된 사회경제구조 속에서 희생되거나 불이익을 받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사회적 정의가 실현된다. 공동체 내에서 상대적으로 지위가 약하거나 경제적으로 빈곤한 이들이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유지해야 실질적 평등이 실현될 수 있다. 양극화와 소득불평등이 어느 정도 해소되어야 계층 간 불화와 적대감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줄어들고 공동체의 평화가 유지되어 사회적 공존이 가능해진다. 의료체계, 최저 생활 보장, 질병·고령화·사고·실업에 대한 공적 보험 등과 같은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것이 사회국가의 주요 과제다. 국가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공동체 구성원도 사회적 연대성과 기독교적 형제애를 발휘해야 한다.

국민청원에 등장하는 여성, 학생 또는 청소년, 아기 등은 사회적 약자다. 여기에는 노인, 장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 북한이탈주민 등도 포함된다. 물론 이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의 구성원이거나 본인의 경제적 형편이 좋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 모두가 사회적 약자는 아니다. 경제적 사정과 무관하게 질병이나 고령 등으로 인하여 사회적 지원과 보호가 필요한 계층도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법률과 제도가 구비되어 있고 사회정책도 시행되고 있지만 사회적·경제적 양극화는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다. 사회적 안전과 사회적 정의를 지향하는 사회국가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고,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정의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사회주의국가의 계획경제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사회국가 내지 복지국가 원리가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분배보다는 성장을 우선시하는 보수층에 깔려 있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국가의 목표는 민주적 및 법치국가적 기본 원리 속에서 추구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국가와 다르다. 법치국가 안에서의 사회적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경제성장은 자유시장에 맡긴다고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정책을 통하여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기 위하여 사회현상에 국가가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임무를 잘 수행해야 한다”고 헌법재판소도 결정한 바 있다.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하여 사회국가원리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수용하고 있는 헌법 정신을 다시 새겨야 한다. 헌법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지향하고 있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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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문종·염동열 두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표결에 참석한 의원 275명 중 홍 의원은 141명, 염 의원에 대해선 172명이 반대표를 행사함으로써 과반 찬성을 요하는 체포동의안 가결을 무산시켰다. 민생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과 특검법안 심의는 한 달 넘게 방치하면서 동료의원 감싸기에는 재빠른 정치권의 이율배반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번 표결을 분석해보면 한국당 113명뿐 아니라 다른 야당과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도 20명 이상 부결에 가세했다. 겉으론 싸우는 척하면서 뒤에선 서로 감싸주는 정치권의 온정주의가 확인된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5월22일 (출처:경향신문DB)

이번 체포동의안 부결은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국회가 대표권을 위임해준 주권자 시민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홍 의원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재단을 통해 불법자금 19억원을 빼돌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염 의원은 강원랜드 교육생 선발 과정에서 수십명의 지원자를 부당 채용하도록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평범한 시민이라면 볼 것 없이 쇠고랑을 차야 하는 사안이다. 특히 강원랜드 채용비리는 특권층의 개입으로 수사가 지지부진해 시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 수사 방해의 원인 제공자 중 한 사람이 바로 염 의원이다. 이런 사안을 두고 동료의 체포를 막는 데 앞장선 한국당 의원들의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안이하게 표결에 임한 민주당의 태도도 유감스럽기는 매한가지다. 홍영표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권고적 가결 당론을 정하는 것으로 그쳤다. 적극적인 표 단속을 했어야 한다. 혹여 추경예산안 처리를 위해 한국당의 부결에 묵시적으로 동의했다면 용서할 수 없다.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야는 정치개혁을 외칠 때마다 의원 불체포특권 폐지를 거론해왔다. 하지만 지난 4년 가까이 이를 행사하지 않아 그 논의가 잦아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처럼 불체포특권을 방패막이로 쓰면 폐지론에 다시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현역 의원의 구속을 봉쇄하는 특권을 인정할 시민은 없다.

강원랜드 채용청탁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한국당 권성동 의원 체포동의안이 곧 국회로 넘어온다. 권 의원은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이번 수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의심받는 ‘몸통’이다. 방탄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여야는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 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또다시 부결된다면 국회를 향한 시민의 분노가 어디까지 갈지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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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등 댓글조작 사건’(드루킹 사건)이 결국 특별검사 수사로 넘어갔다. 국회는 21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특검법인 ‘드루킹 특검법안’을 의결했다. 특검 수사의 초점은 ‘드루킹’ 김모씨(구속 기소) 등이 지난해 대선 전부터 불법 댓글조작을 했는지, 그 과정에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 등 정치권이 개입했는지 밝혀내는 일이다. 특히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대선 전 드루킹을 만나고, 드루킹이 이끈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에서 사례비를 받은 사실까지 드러나 파장이 확산되는 터다.

청와대 설명에 따르면 송 비서관은 2016년 6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드루킹 등 경공모 회원들을 네 차례 만났다. 처음 두 차례 모임에선 각 100만원씩 모두 200만원을 간담회 사례비 명목으로 받았다. 김경수 후보가 드루킹을 알게 된 것도 송 비서관이 만날 때 동석했기 때문이다. 송 비서관은 텔레그램을 통해 드루킹과 정세분석 글 등을 주고받기도 했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후 송 비서관은 민정수석실에 접촉 사실을 알리고 두 차례 대면조사를 받았다. 그는 매크로 등을 사용한 댓글조작을 알았는지에 대해선 “상의하지 않았고 시연을 본 적도 없다”고 진술했다.

민정수석실은 대선 시기 지지자를 만나는 것은 통상적 활동이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엔 드루킹과 연락한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조사를 종결했다고 한다. 당시 조사 결과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에게만 보고됐다. 송 비서관은 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최측근이다.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의 시험통화도 맡았다. 그런 핵심 참모가 드루킹에게 김경수 후보를 소개해주고 경공모 돈을 받은 사실을 파악하고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조사를 마치고도 20여일간 공개하지 않다가 송 비서관 관련 내용이 보도된 뒤 밝힌 것도 석연찮다.

부실수사 여론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송 비서관과 드루킹의 접촉에 대해 “저는 (언론 보도 전에) 몰랐다”고 했다. 기자들이 ‘몰랐다면 부실수사고, 알고도 조사 안 했다면 눈치보기 아니냐’고 했다는데, 이 말 그대로다.

댓글조작은 공론장을 왜곡해 민주주의 토대를 흔드는 행위다. 특검이 한 점 티끌 없이 의혹을 규명해야 할 이유다. 특검 후보자 4명을 추천하게 될 대한변호사협회와 이들 중 2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할 야당의 책임도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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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여야 합의로 정부조직법과 물관리기본법, 물산업육성법 등 ‘물관리 일원화 3법’을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의 수자원국을 환경부로 옮기고, 총리실 산하에 국가 물관리위원회를 두어 수량·수질을 통합관리하며, 정부가 물시설 및 산업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수량은 국토부, 수질은 환경부라는 이원화 체계가 20여년의 논쟁 끝에 환경부로 일원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정부조직법에 ‘하천관리법은 제외’라는 단서조항이 붙은 것을 두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우선 ‘하천관리법을 국토부에 남긴다’는 여야 원내대표들의 합의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하천관리법’은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 원내대표들이 현행 ‘하천법’을 ‘하천관리법’으로 착각했는지, 합의문 작성상의 단순 오타인지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든 합의 과정이 얼마나 어이없는 졸속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일각의 우려처럼 하천과 관련된 모든 법, 즉 하천법은 물론 수자원조사법 및 공사법 등까지 그냥 국토부에 남겨둔다는 의미라면 ‘빈껍데기 일원화’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하천관리법이 기존의 ‘하천법’을 지칭했다 해도 ‘반쪽 합의’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천법을 국토부에 남겨둔 채 물관리 일원화 업무를 환경부에 넘기는 것은 실속은 그대로 두고 앙상한 뼈대만 넘겨주는 격이기 때문이다. 즉 국토부가 하천법에 따라 하천시설인 제방·댐·호안·하굿둑·수문·홍수조절지·지하하천의 관리권을 행사하면 4대강 재자연화 등 환경친화적인 물관리는 또다시 난항을 겪을 수 있다. 보의 수문개방 등을 통해 4대강의 수질과 수생태계의 복원을 꾀하려면 국토부의 협조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의 물산업육성법 또한 도마에 올랐다. ‘물산업 허브’의 기치를 내세웠다가 암초에 부딪힌 대구만을 위한 특혜예산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짙다. 정치권이 ‘물관리 일원화’라는 대의를 내세우면서 특정 지역을 위한 선심성 예산을 끼워넣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물관리의 패러다임은 과거 개발시대의 수량 중심에서 건강과 친수, 행복을 강조하는 수질 중심으로 바뀌었다. ‘하천 관리’만을 뚝 떼어 국토부에 남겨놓을 명분은 부족하다. 따라서 수량과 수질을 통합관리할 주체는 오롯이 개발 위주인 국토부가 아니라 환경 및 생태를 강조하는 환경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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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도사업에 대한 지도·감독 체계가 국토교통부(광역상수도)와 환경부(지방상수도)로 이원화됨에 따라… 이미 투자된 설치비용 4조398억원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감사원이 2014년 발표한 ‘지방상수도 건설사업 집행 실태’의 총론 일부이다. 상수도 시설의 중복·과잉 투자로 인해 전체 이용률은 60.9%로 저조하고 수도시설 노후화로 누수율은 10.4%로 높아 상수도사업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지난 20년간 수량과 재해 관리는 국토부, 수질과 수생태는 환경부로 물 관련 업무가 이원화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정책학회는 물관리 일원화를 이룰 경우 ‘향후 30년 기준으로 약 15조7000억원의 경제적 기대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일례로 하천사업은 환경부의 생태하천복원사업과 국토부의 지방하천정비사업으로 나뉘면서 설계비, 감리비, 공사비 등 약 23%의 중복이 있었다. 이대로 둘 경우 향후 30년 기준 약 3조7000억원의 재정 낭비가 발생한다. 상수도는 앞으로도 약 7375억원의 과잉 투자 우려가 있다. 국토부는 수자원계획과 하천 유량관리, 환경부는 오염총량제를 위해 별도의 조사 장비와 인력을 운영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예산 낭비도 연간 약 20억원, 향후 30년 기준 600억원이다. 물 관리 행정이 통합되지 못하면서 매년 5000억원 이상의 국민 혈세가 줄줄 새는 셈이다.

폐단은 예산 낭비만이 아니다. 하나의 물을 관리하는데 국토부와 환경부의 목표가 다르다. 녹조라떼와 같은 최악의 수질오염이 발생해도 환경부는 댐과 보의 수문 개방을 통한 수질 관리를 할 수 없다. 댐 건설과 수문 개방은 국토부 소관이기 때문이다. 국토부가 수량 확보와 재해 예방을 명분으로 과다하게 댐을 건설하고 하천을 직강화해도 환경부는 발언권이 없다. 환경부는 상수원 수질 보전을 위해 인접 강가를 수변구역으로 지정하지만, 국토부는 친수구역 개발 특별법으로 4대강 강가에 뉴타운형 신도시 개발, 대규모 관광단지와 향락단지를 허가한다. 심지어 친수구역 사업은 수자원공사가 4대강 사업에서 입은 손실을 만회하려는 의도로 추진되었다. 국토부도 인정한 내용이다.

물관리 일원화는 물 이용과 재해 관리, 수질과 생태 보전 등 물 관련 주요 정책을 유역 중심으로 통합·관리하자는 제안이다. 20개 이상의 물 관련 법률과 50여개의 세부 계획을 환경부로 일원화해 중복 투자 등 예산 낭비와 업무 비효율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수질과 수량으로 나뉘어 있는 국내 물관리 정책은 한계점에 도달했고 그 증거가 바로 4대강 사업이다. 수량 확보가 절대 명제인 개발시대는 지나갔다. 문재인 정부도 국정과제로 물관리 일원화와 유역관리위원회 설치, 4대강 재자연화를 제시했다.

‘5월 국회 여야 합의사항’으로 물관리 일원화 관련 3법을 5월28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하천법은 국토부에 존치한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얼핏 보면 이번 국회 합의가 물 관련 법률과 시행 계획을 통합하고 예산과 인력의 중복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은 다르다. 물관리 일원화라고 할 수 없는 졸속 합의다. 여전히 국가 예산은 중복·낭비되며, 4대강 사업의 주역인 수자원 마피아는 건재할 것이다. 4대강 사업의 책임 규명도 4대강 재자연화도 어렵거나 더딜 것이다. 물관리 일원화에 다시 합의해야 한다. 언제까지 대한민국 국회는 국민 혈세를 잡아먹는 괴물이 될 것인가.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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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6일에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안을 발의하고 공고했다. 헌법은 개헌안 공고 후 60일 이내에 국회가 이를 의결하게 하고 있다. 국민투표에 앞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의결을 먼저 거치게 한 것이다. 이번 목요일인 5월24일이 60일째가 된다. 이에 대해 24일까지 개헌안에 대한 국회 의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번 개헌안이 자동 폐기되게 된다는 주장이 들린다.

아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개헌안에 대해서는 시한 경과로 인한 자동 폐기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우리 헌법 제130조가 개헌안 공고 후 60일 이내의 국회 의결을 의무사항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24일까지 대통령 발의 개헌안은 국회 본회의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어야 하고, 국회의원들은 표결을 통해 찬성이나 반대 의사 표시를 하든가, 아니면 하다 못해 기권 의사 표시라도 해야 한다.

헌법 제128조부터 규정된 헌법개정 절차조항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이번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 대한 국회 대응의 몇 가지 문제점들을 짚어보자.

첫째, 개헌안 발의 절차다. 헌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나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선거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두 축인 국회와 대통령에게 헌법개정안 발의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국민의 여론을 수렴한 국민헌법자문특위의 자문안을 참고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적법하게 이루어졌다. 헌법이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권을 규정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적법한 개헌안 발의는 국회에 의해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고 또 존중받아야 한다.

둘째, 개헌안 공고 절차다. 헌법은 대통령이 제안된 개헌안을 20일 이상 공고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의 최고법이자 기본법인 헌법이 어떤 이유로, 어떤 내용이 이번에 개정되는지를 국민들에게 충분히 주지시키고 국민들 사이에 개헌안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단계인 것이다.

셋째, 이 20일 이상의 공고기간을 포함해 공고 후 60일 이내에 개헌안에 대한 국회 의결을 거치게 한 것이 개헌안 의결 절차이다. 국회 의결에 앞서 최장 60일 동안 국민의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 토론 및 비판을 통해 국회가 국민 참여를 유도하고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낸 후, 거기서 드러난 민의를 확인하고 이를 반영해서 그 개헌안에 대한 가부를 엄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단계인 것이다.

그러나 지난 60일 가까운 기간 동안 국회가 개헌안과 관련해 이러한 노력들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추경안이니, 특검 법안이니 하는 당파적 쟁점들로 소모적 정쟁을 일삼느라 60일이 거의 다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기류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고, 급기야 개헌안에 대한 국회 의결이 24일까지 이루어지지 않아 개헌안이 자동폐기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 제130조 제1항은 대통령이 발의했건, 국회가 발의했건 국회가 개헌안이 발의되고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지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즉 공고 후 60일 이내의 의결은 국회의 헌법상 의무인 것이다. 본회의 상정 없이 60일의 기한 마지막 날인 24일이 지나면 개헌안은 자동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헌법상의 의무를 방기한 위헌상태가 시작되는 셈이다. 이것은 어떤 식으로도 변명이 불가능한 국회의 중대한 직무유기일 수밖에 없다.

특히 국회법 제112조 제4항에 의해 개헌안에 대한 국회 의결을 기명투표로 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헌안에 대한 개별 국회의원들의 의사표시는 이름을 걸고 하는 ‘기명투표’ 방식을 통해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야 할 만큼 헌법적으로 중대한 사안이고, 따라서 국회의원 각자에게는 개헌안 표결이 무엇보다 중요한 헌법상 의무인 셈이다. 더욱이 국회 의결이 없으면 나머지 개헌절차인 국민투표나 대통령의 공포절차로 나아갈 수 없다. 국회의 직무유기가 개헌안에 대한 주권자 국민의 정당한 의사표시권 행사 자체를 가로막는 셈이다.

2014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과 입법촉구 결정으로 효력을 상실한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개정안이 아직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국회 의결이 있어도 어차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들린다. 헌재가 제시한 법 개정 시한이 2년 반 가까이 지나도록 국회가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지 않고 있는 것도 직무유기다. 직무유기가 또 다른 직무유기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국회는 개헌안 의결 안건을 이번 24일까지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헌 국회’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국회도 헌법 아래에 있다는 진리를 국회 스스로가 되새겨야 할 때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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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은 국경 밖에서 또 하나의 역사가 되살아나는 날이다. 이날은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강제 매각된 뒤 108년 만에 우리 대한민국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2012년 대한제국 옛 공사관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인 부부로부터 건물을 사들여 지금까지 공들여 복원해왔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자주국가를 꿈꾸던 고종이 최초로 서양과 수교를 맺으면서 큰 기대 속에서 등장했다. 서양 진출의 발판이 된 공사관은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참가해 대한제국을 알리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오래지 않아 대한제국과 함께 그 역할을 잃었다. 그 뒤 100여년 동안 군 휴양시설, 화물운수노조 사무소, 미국인 거주지 등으로 쓰이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워싱턴DC에 세워진 외국 공사관 중 유일하게 1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외교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로 손꼽힌다.

최근 문화재청은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이 건물에 대한제국 당시 공사관의 접견실, 집무실, 공사 서재, 침실 등을 과거의 모습대로 복원했다. 3층에는 대한민국 발전상과 한·미 관계사, 공사관 변천사 등을 함께 전시해 교민은 물론 현지인들에게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리는 소중한 공간으로 활용될 것이다. 백악관과도 불과 1.5㎞ 거리의 가까운 곳에 있어 미국의 중심지에 남아있는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국외에 존재하는 우리 문화재는 약 17만점이다. 그중 1만여점이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당사자 간 협의, 외국 수사기관과의 공조, 기증, 구입 등 여러 방법을 통해 2015년부터 덕혜옹주 유품, 이선제 묘지, 문정왕후어보, 현종어보, 강노 초상,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등 46점의 소중한 국외 문화재를 환수했다. 다른 기관·단체의 환수 실적까지 포함하면 총 73점이 국내로 돌아왔다.

국외소재 문화재를 환수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기증을 받기 위해서는 소장자와 장기적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적정한 매입 대상을 찾아내 적정한 가격으로 사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외국 수사기관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는 그 문화재가 불법 반출됐다는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우리가 제시해야 한다. 국외 문화재들을 하루빨리 환수해오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은 잘 알지만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어려움들이 있다.

불법·부당하게 반출된 국외 문화재는 마땅히 환수되어야 한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나 국내로 들여오기 어려운 부동산문화재는 오히려 현지에서 활용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내 우리 문화를 해외에 홍보하는 자료로 쓰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바람직하다.

문화재청은 국외에 있는 동산문화재뿐 아니라 이번에 개관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경우처럼 구한말 외교공관이나 독립운동사적지 같은 부동산 문화재들을 현지에서 잘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들을 하고 있다. 국외 부동산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조사·연구하고 보존 및 활용하기 위한 중장기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훼손이나 철거 위기에 있는 중요 부동산문화재도 구입하고 관리해나갈 예정이다. 국외 부동산문화재 관련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 국민들에게 멀리 있는 우리 문화재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국경 밖에 있는 우리의 역사,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서는 누군가 끈기 있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lt;밤에&gt;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한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은 멀리서 또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한다. 그래야 손실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국외에 있는 문화재들의 안녕을 살피는 일, 또 찾아가 말을 걸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오거나, 현지에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일, 이러한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김현모 | 문화재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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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코앞에 두고 북한이 연일 한국과 미국을 향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 19일 적십자 중앙위원회 대변인 명의로 2016년 4월 중국 내 북한식당에서 일하다 집단탈북한 북한 종업원들의 송환을 요구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국회 발언을 비난한 데 이어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북한의 공세에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가 연기된 데 이어 남북 정상 간 핫라인 통화도 당분간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22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관저 소회의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연합뉴스

북한의 공세가 비핵화 판 자체를 흔들겠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위성관측에 따르면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에 폭파 관측을 하기 위한 전망대를 설치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한국 취재진의 접수를 거부했지만 다음주 핵실험장 폭파를 예정대로 하겠다는 신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내놓는 북한의 강경 조치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 분위기에 적지 않은 우려를 던지고 있다. 북한은 이미 미국이 ‘선 핵포기, 후 보상’을 강요할 경우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역시 한편으로 북한을 달래면서도 언제까지 인내할 수만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이틀 앞두고 긴급통화한 것이 상황의 절박성을 잘 말해준다. 이런 점에서 한·미 정상이 20분간의 통화 후 곧바로 비핵화 달성 의지를 재천명한 것은 적절한 대응이다.

21일 방미길에 오르는 문 대통령이 우선 해야 할 일은 북·미 간 이견을 좁히는 것이다. 북한의 압박을 미국이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를 고집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트럼프 대통령도 비핵화 합의 시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과 한국형 경제발전모델 등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이 제공할 체제안전 보장과 경제적 보상책을 명확히 하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뒤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있다는 미국의 비판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식의 ‘중국 책임론’은 북핵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은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역할을 해야 하는 중요한 나라라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북한과 중국이 연대해 한·미와 대결하는 구도가 연출되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의 표현대로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럽게 처신하되 대담한 발상으로 난국을 돌파하고 비핵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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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21일부터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에 들어간다. 환경노동위원회 산하 고용노동소위원회가 이날부터 심의할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무분별한 확대를 경계해야 한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노사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이다. 정부와 최저임금위원회가 논의를 벌였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국회로 공이 넘어온 이유다. 특히 정부 태스크포스(TF)가 매달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을 포함하는 권고안까지 만들었으나 이후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가 생산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은 노사가 기존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해야 한다는 원칙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임금체계의 불합리성을 감안하더라도 연봉 4000만원 이상인 노동자가 최저임금의 대상이 된다면 말이 안된다. 최저임금 인상 취지를 감안할 때 정부 TF의 권고안은 타당성이 있다. 권고안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킨 대법원의 2013년 판결과도 맥이 닿아 있다.

하지만 산입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하다보면 최저임금 인상효과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한다는 최저임금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매달 받지 않는 상여금이나 식대·교통비·숙박비 등 복리후생 성격의 급여까지 기본급에 포함시키자는 재계의 주장이 지나친 것은 이 때문이다. 기본급을 줄이고 상여금이나 수당을 늘려온 임금체계의 왜곡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과 연결시키는 것은 부당한 왜곡일 뿐이다. 이런다고 기업의 애로가 해소되고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런 오산도 없을 것이다. 국회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를 계기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사회적 노력이 요구된다.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의 수입과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기업의 이익과 긴밀히 연결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언제까지고 논란만 계속할 수는 없다. 노사정 모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피하고 저임금 노동자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합심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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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전문자문단이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외압 의혹을 받아온 김우현 대검찰청 반부패부장 등 2명에 대해 ‘혐의 없음’ 결론을 냈다. 앞서 ‘강원랜드 채용비리 관련 수사단’(이하 수사단)은 ‘압력을 행사한 검찰 간부들을 기소하고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문무일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행사로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일선 수사팀이 현직 검찰총장을 사실상 외압의 장본인으로 지목한 것이어서 파장이 컸다. 그러나 자문단이 대검의 수사지휘가 적법했다고 하면서 문 총장은 치명상을 면하게 됐다. 수사단도 자문단 심의결과를 수용하고 권 의원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퇴근하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는 현직 대검찰청 고위 간부의 기소 여부를 결정할 전문자문단 회의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문 총장은 ‘판정승’을 거뒀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문단 결정의 취지는 김 부장의 수사 관여가 법적으로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휘권 행사에 도덕적 정당성까지 부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 총장이 스스로 도입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제쳐놓고 전문자문단을 구성토록 한 점은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수사심의위는 외부인사 250명으로 구성되며 회의 때마다 이들 중 무작위로 15명을 뽑아 진행한다. 지난달 수사심의위는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부당인사를 한 혐의를 받는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해 ‘기소 및 구속영장 청구’ 결정을 한 바 있다. 이번에 구성된 전문자문단은 총원이 7명에 불과하다. 구성 과정에서 대검과 수사단 사이 갈등이 빚어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수사심의위 거부에 대한 문 총장의 진솔한 설명이 필요하다.

일선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가 사건 처리 방향을 두고 견해차를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견이 외부로 노출되기 전 내부적으로 수평적 소통과 치열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검사의 이의제기권 보장이 절실한 이유다. 지금도 관련 지침이 시행되고 있지만 충분치 않다. 인사에 민감하고 상명하복이 체질화된 조직의 특성을 감안해 검사의 이의제기를 의무에 가깝게 규정하고 불이익은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독일은 연방공무원법에서 ‘공무원이 직무상 명령의 적법성에 의문이 생기면 지체없이 상급자에게 주장해야 하고, 명령이 지속되면 (명령을 수행하더라도) 자신은 책임에서 면제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잘못을 바로잡는 기관이다. 다른 어떤 기관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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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서, 가난은 농민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주 가난에 찌들어서, 먹고살 걱정에 날마다 인상 쓰고 화내고 슬퍼하는 것도 농민이고. 가난한데도 늘 자기 일에 열심이고, 꿋꿋하고 활기찬 사람도 농민이고. 그리고 더 가난한 이웃들까지 챙기고, 늘 웃는 낯에 무슨 말이든 입만 열었다 하면 유머와 비유로 사람들을 웃겨재끼는 것도 농민이다. 그렇게 지금도 가난의 얼굴을 한 농민들이 시골에 살고 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긴 것이 아니어서, 지금도 마을 할매들은 한번씩, 어린 것들 데리고 마을 한가운데 살아줘서 고맙다는 인사치레를 한다. 이사 잘 왔다 하는.  처음에는 여 들어와서 우예 먹고살꼬 하시던 양반들이 그래도 이제 그 걱정은 많이 덜으셨다. 며칠 집에 틀어박혀서 출판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보면 누군가는 우리집 얘기를 꺼내면서, 날마다 집에서 저렇게 놀아서 어쩌냐고 이야기가 나오게 마련이었다. 그러면 옆에 누군가가 농사 그기야 집에 묵고, 조금 나누고 할 만치고, 돈 버는 거는 따로 있다 카대. 집에 가만히 들앉아 가지고 노는 게 아이고, 요즘은 그래 하는 일이 있다 하면서 거드는 사람이 있고.

사실은 마을에 아직 젊은, 거의 모든 사람들은 농사가 주업이어도, 공사장이든 공장이든 식당이든 어디 품을 팔러 다니든 몇 가지 일을 한다.  농사보다 다른 데서 벌어오는 돈이 많은 집도 몇 집 있다. 그래도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고 하는 때만큼은 농사일 이야기다.  농사일로 얼마나 벌어들였는가, 나물값, 과일값이 요즘 얼마나 나가나 하는 이야기가 목청 높게 한 바퀴 돌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농사일을 어찌 했는가 하는 것으로, 어느 자리에서나 열띠게 이야기를 나눈다. 일하는 데에서 기뻐하고, 자존감이 생기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아쉽고 하는 마음도 생겨난다. 우리집 농사라는 것은 그저 식구들 먹을 만큼, 거기에 몇 집 더 밥상을 차릴 만큼이지만, 그래도 농사일이 조금 있다고 그 이야기들을 알아듣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제법 으쓱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농사일 이야기를 할 때 그렇게 총기 있고, 재미지고, 사리가 밝던 사람들은, 자식들만큼은 가난에서 멀어지길 바란다. 손에 흙 묻히지 않게끔. 가난에서 멀어지려면, 농부에서 벗어나 농사일하고는 아주 딴판인 일을 하고, 시골에서는 아주 먼 데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시골 마을 어귀에는 농부로부터 가장 멀리 벗어난 자식의 합격과 승진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린다. 아마도 그 이름 당사자는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이름이 난 사람일수록 고향을 돌아보는 일에서도, 부모의 삶을 헤아리는 일에서도 가장 멀리 벗어나 있기 쉽다. 어느 집 자식이 부모가 짓던 농사를 물려받았다고, 키우던 소를 함께 키운다고, 도시 나갔다가 돌아왔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가 번듯하게, 자랑하듯이 내걸리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이야기들은 혹시 망해서 그런 거 아닌가,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은 걱정과 함께 두런두런거리기만 한다.

마을에는 젊은 사람이 없다. 어느 한쪽으로는 늘 어수선하게 공사판이 널브러져 있다. 무슨 체험, 무슨 관광 이름 붙은 마을들 동사 앞엔 뚱딴지 같은,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법한 시설물들이 서 있다. 살고 있는 사람들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축제 따위가 달마다 끊이지 않고 열린다. 제 논밭에서 꼿꼿하게 일하던 사람들은, 물건 팔아주는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조아린다.

그러나, 며칠 봄비가 맞춤하게 내렸다. 완두가 익고, 감자 순이 쑥쑥 크고 있다. 모종 낸 것들 하루가 다르다. 밀 이삭이 익고, 물이 찰랑한 논이 하나둘 생긴다. 깍딴지게 매만지는 손길이 어디에나 있다. 마을 어른들, 볼 때마다 농사일 놓치지 않고 있는가 한마디씩 거들어 주신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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