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는 8월 하순의 월요일이었다. 오전에는 흐렸지만 오후에는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높게 걸려 있다. 게다가 공기도 선선해져 가을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물씬 났다. 늦은 오후에 솔부엉이를 탐조하러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꾸룩새연구소’를 찾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마을 주변의 새들을 관찰하고 기록해온 정다미 소장과 그의 어머니인 부소장이 운영하는 연구소이다. 하루가 다르게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파주이지만 그래도 꾸룩새연구소와 그 주변은 아직도 전형적인 농촌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솔부엉이. 정다미 꾸룩새연구소 소장 제공

4월 초부터 제비를 시작으로 후투티, 솔새, 숲새, 꾀꼬리, 솔부엉이 등의 여름철새가 순서대로 고향인 파주로 돌아온다. 솔부엉이는 5월 말에 우리나라에 도래하는데 다른 여름철새에 비해 늦게 오는 편이다. 늦게 번식을 시작하는 새에도 자연은 기회를 준다. 솔부엉이는 나무 구멍에서 둥지를 틀 수도 있지만 번식을 마친 까치의 빈 둥지를 재활용하기 좋아한다. 솔부엉이는 보통 6월 초에 산란을 시작하여 8월 초면 이소한다. 솔부엉이의 새끼는 부모의 둥지를 바로 떠나지 않고 가을에 이주할 때까지 부모와 같이 지낸다. 그래서 8월 하순 즈음은 어미와 새끼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아직 어두워지지 않아 꾸룩새연구소 주변을 둘러보았다. 꾸룩새연구소를 내려다보는 참죽나무 두 그루가 눈에 띈다. 솔부엉이가 이 나무의 죽은 가지를 횃대로 이용하기 좋아한다고 설명해 준다. 참죽나무 뒤로는 바로 장명산과 연결되어 있다. 꾸룩새연구소 앞쪽으로는 논이 넓게 펼쳐져 있고, 산도 있다. 장명산이나 앞에 있는 산은 참나무와 밤나무가 우거져 있고, 여기에는 사슴벌레, 하늘소, 나방 등과 같은 대형 야행성 곤충이 많이 살고 있다. 솔부엉이는 매년 이 숲에 찾아와서 대형 야행성 곤충을 잡아먹으면서 번식을 한다. 솔부엉이의 발톱은 다른 부엉이처럼 날카로운 고리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곤충은 미끈한 외골격으로 보호받고 있어서 이런 발톱으로 곤충을 잡으면 미끄러져 도망가기 쉽다. 그래서 솔부엉이의 발에는 뻣뻣한 털이 잔뜩 나있다. 이런 털이 있는 발톱으로 잡으면 곤충은 쉽게 도망가지 못한다. 그래서 솔부엉이의 ‘솔’은 발톱에 있는 뻣뻣한 털에서 유래한다.

이날 꾸룩새연구소에서 경험한 탐조는 특별했다. 탐조는 보통 망원경이나 필드스코프를 이용하여 멀리서 새를 관찰한다. 그러나 꾸룩새연구소 소장은 솔부엉이를 우리 가까이 불러들일 생각이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연구소장은 양손을 모아 “호~호~” 하며 솔부엉이 소리를 흉내 냈다. 그러나 솔부엉이의 화답은 없었다. 계속 불어봐도 반응이 없어 우리는 망원경을 들고 앞산으로 이동하였다. 솔부엉이가 번식했던 까치둥지에서도 솔부엉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직 이주할 때가 아닌데…’ 하며 살짝 걱정이 스쳐지나갔다. 그때 갑자기 우리 머리 위를 지나 숲속으로 새가 날아갔다. 그리고 “호~호~” 하고 소리를 냈다. 연구소장은 반가워서 같이 화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꾸룩새연구소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솔부엉이를 불렀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솔부엉이는 꾸룩새연구소 앞의 전봇대 위에 내려앉아 우리를 경계하듯 계속 소리를 냈다. 이때 또 다른 솔부엉이 한 마리가 날아와 참죽나무에 내려앉았다. 어미 솔부엉이 소리를 듣고 온 새끼 같았다.

우리는 망원경으로 전봇대 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전봇대 위에 검은 물체가 있지만 주위의 어둠으로 스며들어 정확하게 구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끔뻑끔뻑하는 눈을 보니 솔부엉이가 분명하다. 옆에서 다시 “호~호~” 소리를 내며 솔부엉이를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솔부엉이가 전봇대에서 뛰어내려 내 앞으로 날아왔다. 순간 망원경은 날아오는 솔부엉이로 가득 차서 마치 나를 덮치려는 것 같아 깜짝 놀라 물러섰다. 다행히도 솔부엉이는 우리 머리 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전봇대로 날아갔다.

솔부엉이 같은 올빼밋과 새들은 번식을 할 때 영역을 가지고 있다. 영역을 보유하고 있는 새는 그 영역에 존재하는 자원을 독점할 수 있다. 그러나 영역을 유지하는 일은 비용이 따른다. 영역 보유자는 끊임없이 자기의 영역을 다른 새들에게 알리고, 침범하는 새를 쫓아내야 한다. 새들은 주로 소리를 이용하여 영역행동을 한다. 솔부엉이의 “호~호~” 소리는 바로 영역을 주장하는 신호이다. 만약 영역 내에서 다른 솔부엉이의 소리를 들으면 영역 보유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바로 침입자를 찾아 나서고, 소리로써 대응한다. 침입자가 물러서지 않을 경우 싸움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영역을 보유한 새는 영역 밖에서 발생하는 소리에 대해 점차로 구분하여 반응한다. 예를 들면 이웃하는 새의 소리에는 처음에는 민감하게 대꾸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습관화(habituation)되어 덜 공격적으로 된다. 심지어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꾸룩새연구소 근처에 사는 솔부엉이는 지난 몇 주 동안 매일같이 불러도 어김없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은 솔부엉이가 경계를 게을리할 수 없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새끼의 존재가 그런 요인이 될 수 있다. 새끼가 침입자의 소리를 듣고 다가간다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미는 침입자의 소리가 들리면 매번 확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 이 가설을 검증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날은 여름밤 탐조의 백미였다.

<장이권 | 이화여대 교수·에코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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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에서 ‘장애인복지론’과 ‘문화복지론’을 가르치고 있는 여성장애인 방귀희입니다. 지난 30여년간 KBS에서 방송작가로 일을 하면서 휠체어에 의지해 무난히 사회생활을 해왔으나, 두 번 다시는 이 같은 삶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450만 장애인 가운데 2%에 해당하는 장애예술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힘겹게 예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으며, 또 저를 포함한 1000여 장애예술인들이 합심해 한국장애예술인협회를 창립하여 함께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사무국 회의실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오른쪽)을 만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을 선물하고 있다._ 연합뉴스

장애인 선수들은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획득하면 일반 선수들과 같은 액수의 연금을 받습니다. 그리고 전국대회, 세계대회, 종목별 대회 등 출전 기회도 많습니다. 이에 비해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장애예술인들은 82.18%가 자신의 창작물을 발표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어 경제적 어려움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일자리위원회가 출범하자마자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예술인들을 위해 장애인예술공공쿼터제도와 장애예술인후원고용제도 등 장애예술인 일자리 방안을 청원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한꺼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사회 변화에는 계기가 필요한데 마침 우리 단체에서 내년 3월9일 개막하는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 G-100일(11월30일) 기념으로 ‘한·중·일 장애인예술축제’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예술의 수월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목표가 있습니다.

30년 전에 개최된 1988 서울 장애인올림픽으로 물리적 장벽이 제거되었듯이,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을 통해 인식의 장벽, 즉 문화의 장벽이 없어져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거나 배제당하지 않는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장애인들은 국회는 물론 각종 위원회에서 ‘장애인 패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많이 서운해하고 있습니다.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이 소외당하고 있고, 그 어느 곳에서도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 평창올림픽 홍보대사를 하시는 등 올림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고 있습니다. 올림픽을 통해 국가 브랜드를 높일 수 있다면, 장애인올림픽을 통해서는 그 성과 여부에 따라 복지국가라는 더 큰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이미 두 차례나 동계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하였고, 중국은 한국 다음에서야 동계장애인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이번 평창대회가 한·일 양국을 비교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중·일 3국의 장애예술인들이 한국에 모여서 예술을 통해 장애인의 능력과 꿈을 보여주는 축제를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이 축제는 사회지도층이 관객이 되어야 합니다. 장애인예술은 아쉽게도 아직까지 보편화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 늘 말씀하신 ‘사람이 먼저다’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가 더 먼저라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래야 힘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기다릴 수 있을 테니까요.

사회학자 수전 웬델이 “인간은 어느 한 시기에는 장애적인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듯이 장애는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장애는 미리 알아두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경험적 상식이기에 ‘장애인 먼저’ 사회를 만드는 것은 모든 국민을 위한 일입니다.

하여 대통령께 2018 평창 동계장애인올림픽을 고령자나 장애인을 위해 문턱을 없애자는 뜻의 문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가 실현되는 문화올림픽으로 만들어주십사 하는 청을 드립니다.

<방귀희 |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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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보자. 연상된 단어는 당신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당신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해외여행, 휴가, 신난다” 등이 먼저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해외 출장이 잦은 사람이라면, “시차, 피곤하다, 울고 싶다” 등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 저마다 다른 뇌 속 사전

이처럼 단어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데 실험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보트, 호수, 물, 시내”처럼 서로 관련된 단어들의 목록을 피험자에게 보여주고 기억하게 하는 실험을 생각해보자. 잠시 후 목록에 있던 단어와 없던 단어를 섞어서 보여주면서, 목록에 있던 단어만 고르게 한다. 그러면 목록에는 없었지만, 목록에 있었다고 잘못 기억하는 단어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물, 강, 컴퓨터”를 보여주면 목록에 있었던 “물”뿐만 아니라 “강”도 목록에 있었다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사람들에게 “강”은, “강”이 목록에 없었다고 생각한 사람들보다 “보트, 호수, 물, 시내”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런 차이는 뇌 활동에도 나타난다. 측두엽의 앞쪽 끝부분은 단어의 의미를 처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작년에 출간된 한 연구에서는 피험자들이 단어를 하나씩 보는 동안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해서 측두엽의 앞쪽 끝부분의 활동을 관측했다. 그리고 목록에 있는 단어를 볼 때의 뇌 활동과 목록에 없는 단어를 볼 때의 뇌 활동이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했다. 연구자들은 두 경우의 뇌 활동이 비슷할수록 목록에 없던 단어를 목록에 있었다고 착각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자들은 이 방법을 사용해서 사람마다 뇌 속에서 단어들이 다르게 표현됨을 알 수 있었다.

■ 경계의 언어

필자는 심리학, 생물학, 인지과학, 인공지능 등 여러 분야들이 얽혀있는 학문인 뇌과학에 종사하면서, 뇌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과도 자주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보니 사람에 따라 단어의 뜻이 다른 상황을 자주 경험한다.

“기억”을 예로 들어보자. 일상적인 상황에서 “기억”이라고 하면, 어제 있었던 일, 학창시절에 있었던 일처럼 과거 사건에 대한 기억을 의미한다. 하지만 심리학이나 뇌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필요한 내용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작업 기억, “우리나라의 수도는 서울”처럼 말로 진술할 수 있는 지식에 대한 기억, 자전거 타기처럼 행동에 대한 절차 기억 등 여러 종류의 기억이 모두 “기억”의 의미에 포함된다.

한편, 신경세포 수준의 뇌 활동을 연구하는 뇌과학 전공자라면 “기억”의 의미는 훨씬 더 포괄적이다. 신경세포에 전해진 입력이 신경세포의 구조, 유전자 발현 등에 영향을 미쳐서 나타난 신경세포의 현재 상태에 가깝다. 신경세포의 상태는 신경세포의 작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컴퓨터에서는 기억장치와 처리장치가 구분되어 있는 반면, 뇌에서는 기억장치와 처리장치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단어의 용법이 다른 경우도 있다.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된 신경망에서는, 신경망의 한 부분을 활성화시키면 이 부분과 강하게 연결된 부분들이 연쇄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 패턴 속의 일부 정보(예: 비행기)만으로도 패턴 속의 나머지 정보들(예: 해외여행, 휴가)이 연달아 활성화된다는 의미에서 이 과정을 패턴 완성이라고 부른다. 패턴 완성은 기억 회상의 원리이기에 기억의 회상과 동시에 일어난다. 하지만 행위의 주체를 염두에 두는 사고에 익숙한 우리는 “기억을 회상함으로써 (주체의 의도 때문에) 패턴 완성이 일어난다”고 잘못 말하기도 한다. 이런 표현은 주체를 염두에 두는 사고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기 전까지는 바뀌기 어렵다.

말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한 분야에서 중요한 단어가 다른 분야에서는 논의되기 힘들 때도 있다. 예컨대 뇌과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기 전부터 서구 철학에서는 의식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의식은 본질적으로 내면적이고 주관적이다. 어떤 사람이 사고로 뇌가 손상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어있음을 알릴 방법이 전혀 없다고 해도, 그가 생각하거나 느낄 수 있으면 의식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객관적인 관측과 실험을 중시하는 과학에서는 이토록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특성이 강한 의식을 다루기가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의식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의식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토론을 하기 전에는 단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좋다고들 한다. 하지만 의식의 사례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르면 단어를 정의하는 것부터가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단어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세상을 보는 특정한 방식을 규정하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분야 간의 교류가 늘어나는 요즘에는, 정의에 연연하다가 의미 있는 논의를 못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정의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되, 소통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용어를 정하기도 한다. 의식을 연구하는 토노니, 공감의 부정적인 효과를 다룬 폴 블룸, 김재인 교수의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에서 이런 사례를 보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엄밀한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문가들이 이럴 정도라면 일상적인 소통에서는 말해 뭘 할까. 정확한 소통을 위해서 가능하면 일반적인 용례를 따르는 것이 좋겠지만, 각자의 경험에 따라 ‘일반적인 용례’라는 것도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말이 통해서 뜻이 통하지 않는 줄 모르지 않도록,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달을 가리지 않도록,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과 뜻이 통하는 말을 하고 있는지 한번 더 돌이켜본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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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추리소설계의 황제라 할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들을 섭렵하고 있는데, 마쓰모토의 작품 중에는 픽션 외에 논픽션들도 꽤 있습니다. 지금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처럼 미궁에 빠진 실제 사건을 추적하여 재구성한 것이죠. 그 가운데 <두 사람의 진범>이란 미스터리 논픽션이 있습니다. 살해 용의자로 체포한 사람이 죄를 자백했지만 공판에 가서는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며 무죄를 주장합니다. 사건이 떠들썩해지자 진짜 범인이 화가 나서 자수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끝까지 애초의 용의자를 진범으로 밀어붙입니다. 경찰의 위신을 지키고 조작한 증거물들을 감추기 위해서 말입니다. 결국 ‘진짜 진범’이 형을 받게 되었지만 경찰은 그 뒤로도 자신들이 ‘만든 진범’을 한동안 석방하지 않습니다.

가끔 방송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하고 몇 십 년 만에 누명을 벗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봅니다. 공권력의 강압적이고 무리한 수사로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과 그 가족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가정이 무너진 채 비참하게 살아온 것이죠. 증거가 없고 정황만 있는 상황이거나 오리무중으로 시간만 흘러 상부의 질책이 내려올 때, 적당한 누군가를 사건에 꿰맞춰 협박과 고문으로 자백을, 그렇게 범인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속담에 ‘늦게 잡고 되게 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늑장 부리다 다급해져 함부로 서두르거나 애를 많이 먹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서 ‘되게 친다’는 ‘심하게 때린다’는 뜻 같지만, 사실 ‘(사건이/범인이) 되게 때린다’는 것이 숨은 맥락입니다. 당장의 자기 면피를 위해 범인 아닌 사람을 범인으로 모는 일이 있었을 겁니다. 일상의 평범한 사람을 사건의 지도와 동선에 올리고 구색 맞춘 증거와 시나리오대로 강제로 자백하게 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닌 오로지 어제의 일이어야만 하겠지요. 죄가 되게 만드는 건 공권력 범죄니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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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사랑이야.’ 드라마 같은 제목의 기사에 눈길이 끌렸다. 훈훈한 로맨스 이야기인가 싶어 클릭해 몇줄 읽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욕설을 쏟아내고 말았다. 여중생을 성폭행해 임신까지 하게 만든 40대 연예기획사 대표가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내용. 법원은 피해자였던 여학생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 했고, 순수한 사랑을 나눴다는 남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에는 무수한 댓글이 줄을 이었고 분노로 들끓었다. 2년 전의 일이었다.

며칠 전 같은 사안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이 확정됐다. 달라진 건 없다. 아니, 통념상 납득되기 힘들거나 상식의 기준을 넘어서는 관계라도, 경우에 따라 위계나 강압에 의한 성폭행일지라도 법률가들이 사용하는 게임의 룰만 잘 파악한다면 ‘순수한 사랑’으로 포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천하에 확인시켜 줬다.

이 무게를 짊어지는 것을 도와줘요.’ 2014년 10월29일 대학 캠퍼스 성폭행 반대를 위한 전국 행동의 날 시위의 포스터.

물론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건의 개요만을 본 나는 이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모른다. 또 다른 극적인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건지, 정말 그들의 관계가 순수한 사랑이었던 건지 단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40대의 유부남이 15세의 여자 중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뭐가 정상이고 상식인지 뒤죽박죽인 세상이 됐다지만 적어도 이건 아니지 않나.

법적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근거로 해야 함도 옳다. 하지만 이번 사안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법을 다루는 이들 사이에 뿌리내린 성폭행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다. 행위가 발생한 그 순간의 위력이나 협박 유무, 피해자의 대처 정도가 처벌과 판단의 주된 근거가 된다는 점 말이다. 어린 여학생이 쓴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와 문자메시지는 판결의 중요한 증거가 됐다. 그런데 첫 만남에서부터 임신, 가출, 출산까지의 과정에서 그 여학생이 겪었을 무력감과 고통의 무게는 그 판단에 얼마나 작용했을까. 같은 판결문이 여학생에게는 “왜 그 정도 나이 먹고 앞가림도 못하냐”는 질책으로, 40대 남자에게는 “순애보의 주인공”이라는 감탄으로 들리는 것은 나뿐만일까. 성폭행 피해 여성을 두고 ‘흔들리는 바늘에 실을 꿸 수 없다’는 식의 가공할 망언을 일삼으며 능멸하던 우리 사회의 수준은 여전히 한발도 진전하지 않은 것 같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의제강간 연령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강해지고 있다. 의제강간은 사랑이나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강간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현행 법령에선 만 13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적용된다. 즉 이 나이 미만은 성적 행동이나 성관계에 동의할 능력이 없으므로 이런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관계는 처벌받는다. 정치권이나 시민단체에서는 이 연령을 16세로 높이자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왔고 개정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논란은 분분하다. 그렇다면 성숙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적절한 연령대는 몇살인가. 문득 드는 의문은 정치적 결정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연령의 판단기준이다. 투표권과 같은 정치적 결정권은 19세, 성적 자기결정권은 14세다. 둘 다 중요한 판단력이 필요한 일인데 그 차이가 너무 커 종잡을 수 없다.

성폭행에 대한 처벌은 엄정해야 하고 법적 장치도 잘 정비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에 앞서 청소년이 성폭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이 시급하다. 위계관계에서 권력이나 경제력을 무기로 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일은 너무나 흔한 일상이 됐다. 그 기반엔 “어릴수록 좋다” “딸 같아서…”라는 말로 통용되는 남성들의 그릇된 성적 가치관이 도사리고 있다.

얼마 전 코미디언 유병재씨가 낸 <블랙코미디>에 실린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맘 같아선 국회의사당과 법원, 검찰청, 경찰서마다 붙여놓고 싶다.

‘딸 같아서 만졌다니, 딸 치려고 만졌겠지.’(‘딸 같아서 만졌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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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성폭행

필기구로 한 일생을 요약할 수도 있겠다. 가갸거겨를 쓰고 구구단을 외울 무렵엔 연필이다. 이 컴컴한 지하자원은 그 품질이 울퉁불퉁해서 가끔 침을 묻혀야 했다. 중학교 땐 만년필이었다가 손가락이 제법 굵어지면서 모나미 볼펜을 잡았다. 귀퉁이에 볼펜똥을 닦으며 공책을 갈아치웠다. 칠판을 등지자 꿈도 떨어져 나갔다. 건조하고 메마른 일상의 연속이었다. 크게 변화할 일도 꾸중 들을 일도 없는 시기. 습관은 딱딱해지고 고집은 힘이 세졌다. 그동안 각종의 볼펜을 사용했고 드물게 만년필을 가까이했다. 이제 육필은 멀어지고 필기는 손가락 담당이다. 쓰는 게 아니라 구타하듯 자판을 때린다.

꿈 대신 꽃을 좇아 산에 출몰하기를 여러 해. 골짜기의 기운을 쬐고 꼭대기에서 고개를 숙이며 먼 곳을 본 효과일까. 부드러운 것은 부드러운 것으로 대접하는 게 마땅하고 옳을 것 같았다. 몸에서 흘러내리는 생각을 받아 적는 것으로 부드러운 붓을 택했다. 요즘 이동할 때를 제외하고 의사표시는 주로 붓으로 한다. 잘 쓸 수는 없지만 그저 많이 쓰고 싶다는 욕심은 낸다. 먹이나 벼루는 그런대로 갖추었는데 마음에 드는 붓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마음에 착 감기는 애인 같은 붓은 어디에 있는가.

우연한 기회에 유필무 붓장을 알게 되었다. 마침 가평의 취옹예술관에서 전시회를 한다기에 단풍 나들이를 겸해서 찾아갔다. 족제비나 토끼의 털만 알았는데 칡, 억새 등 식물을 소재로 한 붓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천하의 기운이 붓 끝으로 고스란히 수렴되고 있는 듯했다. 붓대에 조각을 넣은 것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그중에서 갈대로 만든 붓에 마음이 쏠렸다.

갈대는 갈대. 왜 갈대는 이름이 갈대인가. 왜 갈대는 이 시기에 누군가의 가슴을 깊게 찌르는가. 왜 갈대는 흐르는 강가에 늘 우두커니 서 있는가. 왜 갈대는 항상 저런 특별한 동작을 취하는가. 갈대붓을 만나고서 쬐끔 알게 되었다. 지금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허공에 ‘제 조용한 울음’을 필기하는 중이란 것을! 갈대, 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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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박근혜’ 하나로 돌리면서 우리의 정치의식은 또 후퇴하고 있었다. 단 하나의 예만 들어보자. 밀양의 송전탑이 박근혜의 작품인가, 또 박근혜 아닌 전임정부들은 정말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았을까? 김대중은, 노무현은? 그렇다면 농민시위에서 경찰에 맞아죽은 농부는, 태안반도는 어찌 가능했을까?

이명박 정부하에서 우리는 전임 정부와의 연속성에 대해 자각하게 됐다. 괴물정부 하나의 존재에 분노하면서, 그들이 하는 수많은 일들이 전임정부에서 결정되고 후임 이명박 정부에서 집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명박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은 그 이전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정과 반민주성을 비판하는 것과 같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그렇고, 제주 해군기지가 그렇고 정보통신법이 그렇고 자본 통상법이 그렇고 나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그렇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에서 이를 기념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 나란히 놓아둔 종이컵들에서 촛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한 시민이 ‘촛불은 계속된다’고 적힌 종이컵을 놓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은 유신의 악령이 깃든, 웬 야만과 변종의 지도자 박근혜와 그의 옆에 인의 장벽을 치고 있는 꼴통 소수가 문제였다. 새누리당도 들러리인 양 취급됐다. 그리고 심지어, 자본들- 박근혜의 배후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와 노동정책을 좌지우지했던 자본은 눈에서 멀어졌다. 노동자 투쟁만이 자본의 그림자를 언뜻언뜻 보여줄 뿐이다. 그런 현실에 대한 쉬운 표현이 바로 ‘적폐’란 단어다. 아이러니는 이 단어를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씨가 처음 쓰고 우리는 그 단어의 사용을 조롱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 그 단어가 전부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프레임이 향할 방향은 어디인가? 이명박 시절에 그 전임 김대중·노무현의 자유주의정부의 공과를 깨닫게 됐다면, 박근혜 시절에서는 고작 차라리 전임 이명박이 더 낫다거나(실제로 그런 말도 했었다) 혹은 그러니 박근혜와 그 정치일당이 아니면 다 괜찮다는 앙상한 결론이면 될까?

내가 박근혜 정부하에서 바란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전과 14범 이명박 전 대통령 앞에서 처절하게 선거민주주의의 한계를 목도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바로 앞선 자유주의정부의 공과를 함께한다는 점도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각성과 절망의 상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 어떻게 할 것인가와 누가 주체가 될 것인가는 더욱 오리무중이었다. 자유주의정치가 민주주의를 배반했던 30년의 역사를 꿰뚫어보면 희망의 그림자는 더욱 멀어져갔다.

우파와 자유주의 세력이 함께 망친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적인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바꾸어 나갈, 즉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이 주체라는 믿음은 없었다. 그것이 노무현 정부의 말기였다. ‘진보개혁세력의 위기.’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다. 우리는 이제 알 만큼 안다. 우파의 국가통치철학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선거만 민주주의가 얼마나 무늬만 민주주의인지. 민중과 노동과 결합하지 않은 정치엘리트, 선거엘리트, 운동엘리트들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그러니 박근혜 정부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이것이었다. 박근혜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래서 유신체제만 벗어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1980년, 혹은 87년을 재탕하지 말길. 좌절과 절망을 모아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잡길. 진정 민중과 노동자와 서민의 이해가 정치적인 힘이 되길.

하지만 촛불이었다. 짱돌도 아니고 스크럼도 아닌 촛불을 들자고 했다. 촛불은 절묘하게 법과 제도와 타협하면서 박근혜를 퇴진시켰다. 그 프레임은 결국 우려한 대로, 박근혜를 모든 ‘적폐’의 화신으로 삼는 것이었다. 이제 박근혜가 남긴 적폐를 청산하자고 한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구자유주의세력이 공유하는 적폐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에 대한 모호함, 노동에 대한 모호함, 미국에 대한 모호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촛불은 자유주의정치를 위기에서 구출하였다. 그러나 과연 민주주의는 위기에서 구출하였을까? 촛불 1주년을 맞아, 의문은 이 지점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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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을 이번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 수석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 윤모씨 등은 2015년 4월 전 수석이 명예협회장이던 한국e스포츠협회를 통해 롯데홈쇼핑에서 3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주 구속됐다. 전 수석은 당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으로 홈쇼핑 재승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이 전 수석을 직접 만난 것으로 파악된 점, 롯데홈쇼핑이 일개 의원 비서관인 윤씨를 의식해 e스포츠협회에 거액을 후원할 가능성은 낮은 점 등으로 미뤄 검찰은 이 돈이 전 수석에게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전 수석 가족이 롯데홈쇼핑 기프트카드를 사용한 정황도 포착했다고 한다.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10일 오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며 시계를 보고 있다. 김기남 기자

전 수석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과거 일부 보좌진의 일탈에 유감스럽고 송구하게 생각하지만 저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논두렁 시계 상황이 재현되는 것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2009년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상황에 빗대 억울함을 호소했다. 전 수석 주장대로 그는 결백한지도 모른다. 검찰이 안팎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현 정부 실세인 전 수석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둥, 정부가 성역 없는 적폐청산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둥 뒷말도 많다. 그러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이 임박한 상황이라면 전 수석은 자리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서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이다. 전 수석이 기업으로부터 돈 한 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측근이 비리를 저질렀다면 그것만으로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청와대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국회 및 정치권과 소통하는 업무 등을 담당한다. 가뜩이나 여야 관계가 경색돼 있는데 정무수석이 검찰 수사까지 받고 있으면 국정이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 게다가 정부·여당의 각종 개혁법안과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다. 대통령이 후임을 임명할 수 있도록 전 수석이 길을 터줘야 한다. 대통령 수석비서관이 현직 신분으로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대대적인 적폐청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한다. 전 수석은 사퇴하고 겸허하게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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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13일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됐다. 대선에서 낙선한 후 당 운영에서 뒤로 물러나 있다 보수통합 논의로 당이 흔들리자 전면에 나선 것이다. 그가 마주한 현실은 험난하다는 말로도 다 표현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당장 보수통합론으로 반쪽이 된 당을 수습해야 한다. 통합파 의원 9명이 탈당해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는 과정에서 남은 의원들끼리도 갈등의 골이 생겼다. ‘시한부 동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여서 유 대표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면 당의 존립 자체가 어렵다. 어제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에서 제외된 데서 보듯 교섭단체 자격 상실에 따라 축소된 입지 회복도 그의 몫이다.

바른정당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유승민 의원이 1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진행된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지명대회에서 당 깃발을 흔들고 있다. 권호욱 기자

여기에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가 유승민 자신의 리더십이다. 유 대표는 의원들이 탈당하는 과정에서 대안은 내놓지 못한 채 ‘원칙 있는 통합’만 강조해 지나치게 경직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통합파의 집단탈당을 막으려고 전당대회를 연기하자는 중재안을 내놨을 때도 단호히 거부했다. 유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마저 그의 태도에 실망해 등을 돌렸다고 한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함께할 세력을 모으지 못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결정적인 흠결이다. 이번에 당 소속 의원들이 ‘한 달 안에 중도보수 통합 논의를 진전시킨다’는 데 합의함으로써 당의 공중분해는 가까스로 막았다. 앞으로 유 대표 자신이 한국당, 국민의당과 연대·통합 논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당과 다를 바 없는 유 대표의 고루한 안보관 역시 문제다. 합리적 보수를 주장하려면 달라진 현실을 반영한 안보정책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유 대표는 “낡고 부패한 기득권 보수, 철학도 정책도 없는 무능한 보수의 과거를 반성하고 진정한 보수의 길을 열겠다”고 선언했다. 대선공약을 재점검하고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겠다고도 했다. 그의 말대로 바른정당을 정책과 지향점이 분명한 정책정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유 대표도 유연한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중도정당에 대한 시민의 수요는 분명히 있다. 다당 체제에서 시시비비를 명쾌하게 가리고 협치를 주도한다면 바른정당의 보수개혁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반면 유 대표의 독선이니 사당화니 하는 말이 나오면 당의 미래는 물을 것도 없다. 합리적 보수당의 성공을 고대하는 마음으로 유 대표의 진화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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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1월이면 교사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연례행사가 돌아온다. 학교폭력 예방 승진 가산점 대상자 심사다. 말은 좋다. 학교폭력을 예방하자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리고 학교폭력 예방에 헌신한 교사가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문제는 보상의 종류가 승진가산점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주어지는 방식이 경쟁이라는 것이다.

승진가산점이란 교사가 교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경력 평정에 부여하는 것으로 10년을 부지런히 모으면 만점이다. 그런데 교감은 수업을 하지 않는 교원으로 교육행정직에 가깝다. 그러니 이 승진이라는 말 속에는 교사들에게 교육을 직접 담당하는 자리에서 한발 비켜난 행정직으로 옮겨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라는 반교육적인 메시지가 숨어 있다.

게다가 학교폭력 예방 승진가산점은 전체 교사의 40% 이내에게 부여하도록 되어 있다. 교사들더러 이 40% 안에 들어가기 위해 학교폭력 예방 경쟁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경쟁의 보상이 승진가산점이기 때문에, 이는 마치 10년간 부지런히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경쟁하면, 그 보상으로 애들 안 가르쳐도 되는 자리로 보내주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교육에 대한 사명감이 높고 헌신적인 교사들에게는 상당히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말이다. 교육당국이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지도하는 교육행위를 마치 경쟁에서 탈락했거나 나태하기 때문에 받는 벌처럼 바라보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육 열의가 높은 교사일수록 이 승진가산점이라는 유인에 별로 반응하지 않는다.

학교폭력 예방은 승진가산점을 놓고 경쟁하는 몇몇 교사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올베우스나 살미발리 같은 학자들도 학교폭력에 대해 가해학생을 제재하고 피해학생을 치유하는 정도로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학교폭력은 학생들의 경쟁 밀도, 스트레스, 빈부격차, 가정, 학교, 사회의 폭력에 대한 둔감성 같은 것들이 모두 어우러져 발생하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학교폭력은 승진가산점을 놓고 경쟁하는 몇몇 교사들의 노력 봉사가 아니라 학교 전체가, 교육 체제 전체가, 나아가 사회 전체가 협력해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 적기로 유명한 북유럽 학교들의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아도 가해학생, 피해학생뿐 아니라 모든 학생과 교원들이 함께 참여하도록 되어 있다. 일부 가해자나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학교 전체, 학생들의 상호작용 전체를 개선함으로써 학교폭력을 예방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학교폭력 예방에는 학교 공동체 전체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40%에게만 가산점 등의 보상을 줄 테니 선생들더러 경쟁하라는 발상은 사실상 학교폭력 예방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교육당국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에 불과하다. 교사들에게 교육에서 멀어지는 것이 보상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교사들을 무의미한 경쟁으로 몰아넣으며, 학교폭력 예방에 필수적인 전체 학교 공동체의 협력을 훼손하는 학교폭력 유공교원 가산점은 백해무익하며 그 존재 자체가 폭력이다. 즉시 폐지해야 한다. 다행히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가산점 신청자가 전체 40%에 미달되어 난감한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난 3년간 학교폭력이 꾸준히 줄어들었다.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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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취미를 알게 됐다. 일명 ‘돈 되는 취미’. 방법은 간단하다. 식당이나 핫 플레이스를 갈 때마다 영업시간, 테이블 수, 주력 메뉴 객단가, 손님 평균 체류시간, 직원 수, 입지 등을 관찰하면서 그 가게의 매출과 이익을 계산해보는 것이다. 취미를 넘어선 놀이도 있다. 동네 상가 건물에 빈 곳이 생기면 앞으로 어떤 업종이 들어올지 맞혀보는 ‘상가 맞히기 놀이’다. 주변 상권을 분석하고 가게가 몇 평인지, 보증금이나 월세는 얼마인지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생각했던 업종이 입점하면 자신의 부동산 감각을 확인할 수 있고, 틀렸다면 반성하는 기회로 삼고 그 가게가 잘되는지 지켜보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유튜브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실소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넘어가려는데 슬그머니 호기심이 일었다. 한 번 해볼까? 그래서 작정하고 며칠간 매의 눈으로 들르는 가게들을 관찰해 보기로 했다. 공교롭게 구도심의 공간들을 돌아다니며 음악 공연을 볼 수 있는 행사와 시기가 딱 맞았다. 이틀간 다양한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공연들을 신나게 관람했는데, 결과는 대실패. 나 자신이 워낙 그쪽으로 감이 없기도 했지만 계산 자체가 불가능했다. 들렀던 가게들이 소극장, 카페, 재즈클럽, LP카페 같은 문화공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2시간은 기본으로 앉아있는 손님들이 가득한 곳, 평소에 술을 판다고 해도 객단가와 테이블 회전 수를 따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곳들이다. ‘돈 안되는’ 공간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관찰하면서 돌아다닌 결과, ‘돈 되는’ 취미 계발에는 실패했지만 대차대조표로 계산할 수 없는 공간들의 소중함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페스티벌처럼 한 곳에 집중된 대규모 행사가 아니라, 동네의 작은 공간들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보는 기획 그 자체다. 그래서 관객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서 그 동네를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며 군것질하는 즐거움은 옵션, 지도를 들여다보고 계단을 오르고 골목골목 숨어 있는 작은 가게들을 찾아다니는 발품은 필수다. 관객들은 자기 돈을 내고 티켓을 사서 낯선 동네를 돌아다니는 수고를 즐겁게 감수한다. 뮤지션들은 연극 무대에 쓰인 소품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드럼을 두드리고 기타를 친다. 좋아하는 뮤지션을 기다리다가 새로운 뮤지션을 우연히 발견하는 기쁨도 누린다. 새로운 무대에서 내 노래가 누군가에게 가 닿는 그 느낌을 통해 ‘한 번 더 음악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뮤지션의 ‘사운드(sound)’가 무대 위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의 경험으로 일상을 충전한 관객들과 만나면서 ‘바운드(bound)’한다.

이처럼 공간에는 역사가 남고, 뮤지션과 관객들에게 기억이 남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누군가 공들여 가꾸고 매만지던 공간, 구석구석 쓸고 닦고 만지면서 생긴 생활의 결이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가게만이 가진 세월의 무게든, 새로 문을 연 가게의 반짝반짝한 설렘이든 애정이 담긴 일상의 공간과 만날 때 비로소 음악은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다. 아무 데나 버려져 있던 공간에 큰 무대 세우고 의자 깔아서 사람들을 앉혀 놓는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실 ‘돈 되는’ 걸로 따지고 들자면야 이런 행사는 애초에 계산기를 두드릴 견적도 나오지 않는다. ‘돈 되는’ 취미를 가진 이들이 보기에 이런 공간들은 운영 자체가 말이 안되는 곳이니까. ‘돈 주는’ 높은 분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수많은 관객이 한군데에 모여 장관을 연출하는, 소위 ‘그림이 되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인사할 큰 무대도 없으니 말이다. 취미마저 ‘돈 되는’ 세상에서 ‘돈 안되는’ 일을 하려니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실적도 안되고 돈도 안되는 게 사실이지만 이런 ‘돈 안되는’ 일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새로운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건 아닐까? 나는 ‘돈 되는 취미’ 갖기에 실패했지만, 이런 ‘돈 안되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의 시도만은 실패하지 않았으면, ‘돈 안된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 안되는’ 즐거움에도 “슈퍼울트라그뤠잇!”을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그날까지 ‘돈 안되는’ 음악여행이 계속되길 응원한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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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될 수 있을까? 관계, 나이, 위치, 상대방의 동의 등 맥락을 지우고 발달장애인을 지칭할 때 흔히 쓰이는 ‘우리 친구들’ 말고 동료로서 ‘친구’. 발달장애여성과 함께하는 활동이 많아질수록 내게 드는 고민이다. 그러나 발달장애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현실, 나와의 차이를 눙치고 친구가 되기엔 서로가 직면해야 할 과제가 많다.

지난 10월27일 5회 전국발달장애인자조단체대회 한국피플퍼스트대회가 열렸다. 피플퍼스트는 발달장애인이 주체가 되어 활동하는 조직과 운동을 말한다. 1974년에 미국 오리건주 자기권리주장대회에서 한 발달장애인이 자신을 ‘mentally retarded(정신지체)’로 부르는 것에 문제제기 한다.

그의 “I wanna be known to people first(나는 우선 사람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라는 발언에서 PEOPLE FIRST(피플퍼스트)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한국은 2009년 한·일 피플퍼스트 교류대회를 열었고, 몇 년 전부터 피플퍼스트 운동이 확산되어 도전과 토론의 과정을 겪어가고 있다.

“장애인도 사람이다. 때리지 마라! 발달장애인에게도 일자리를 달라! 발달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다! 말로만 시설을 폐쇄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라! 모든 사람들에게 평평한 길을 만들어 달라!” 이번 대회 슬로건이다.

피플퍼스트 대회에서 발달장애인들은 권리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행사를 직접 준비하여 치른다. 공적 공간에서 밀려났던 사람들이 대회라는 큰 행사를 그들의 속도와 방식으로 만들어간다. 그러나 이 시간이 사회통합을 목표로 규범과 태도를 학습하는 자리라고 기대해선 곤란하다.

발달장애인으로서 자기다움을 존중받는 곳. 때론 갈등이 생겨 조율이 필요해 혼란스러워하고, 감정을 드러내거나 파악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표현하기도 하는 실패의 경험을 보장하는 곳. 그렇게 공적 공간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지지와 갈등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경험을 쌓는 네트워크. 눈치보고, 허락받아야 했던 몸은 말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몸으로 변화한다. 비록 대회장 밖 사회의 변화는 더디지만 말이다.

단순한 삶은 없다. 하지만 발달장애라는 의학적 진단과 장애인복지법상 장애개념으로만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면, 발달장애인의 삶은 단순할 거란 편견이 생기기 쉽다. 발달장애인 중에서 지원, 조력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는 것은 맞지만, 도움을 받는 이로만 여긴다면 그들의 주체성과 욕구를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장애여성 학자 수전 웬델은 ‘한 사람이 혼자 많은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 도달하기 어려운 수행에 대한 기대치의 표준이 장애를 사회적으로 구성한다’고 했다.

그 표준이라는 기대치에 발달장애인만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고, 표준의 기대치로 압박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거 알아요.” 한 발달장애여성의 말이다. 정말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동의, 나이, 성별, 취향 여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우리 친구들’ 말고, 동료 시민으로서 발달장애인의 삶에 다가가고 관계맺기를 연습하는 것부터 사회구성원들이 시작해야 할 때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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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9월23∼24일) 222년 만에 처음으로 완벽하게 재현된 ‘정조대왕 능행차’를 아시리라. 서울시와 수원시, 화성시가 공동 주최하고 6개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여 59.2㎞의 대장정에 연인원 4580명과 말 690필이 동원된, 역대 최대 규모의 문화행사.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과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 참배를 위해 연 행사였지만, 수원 화성 축성의 점검 및 장용영 군사력을 재정비하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속내도 있었던 듯하다. 조선왕조가 남긴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번역했기에 이 같은 재현행사가 가능한 것은 불문가지.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대제’(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행함)도 <종묘의궤>를 번역했기에 의식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네스코에서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조선왕조 의궤>도 익히 아시리라. 의궤는 조선왕조 500여년 중 300년간의 각종 왕실의례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이다. 의례 준비, 시행, 사후 처리 등과 관련한 왕명, 공문, 논의 내용, 동원 인원, 업무 분장, 소요 기물과 비용, 제작과 조달, 의식의 제도와 절차, 시행방법 등이 글과 그림으로 요즘 말로 엄청 디테일하게 기록돼 있으므로 오늘날의 ‘백서’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가례, 국장, 연회, 궁궐 건축, 왕릉 조성 등에 관한 630여종의 기록물이 서울대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여기에는 일본 궁내청에서 반환한 의궤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의 의궤도 포함돼 있는데, 1975년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처음으로 확인하여 영구임대방식으로 반환되기도 했다.

의궤는 왕실사, 생활풍속사, 사회경제사, 미술사, 음악사 등을 망라한 조선시대 역사연구의 기초사료이자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원천 자료로 가치가 높다. 하지만 현재 전체 630여종 가운데 38종(전체의 6%선)만이 번역되어 있는 실정이다.

국가적 차원의 종합적 계획 없이 개별 기관이나 연구자의 단발성 번역 추진 등으로 인해 동일 서종을 중복 번역하거나 번역 품질이 균일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또한 소장기관과 번역 추진기관과의 협조체계가 원활치 못하여 제때 번역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의궤는 관련 분야 연구자의 번역에 대한 수요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심이 지대하므로, 현재의 어지러운 번역 상황을 개선하려면 국가적으로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관련 예산을 지원하고, 그 계획을 바탕으로 관련 기관들의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만시지탄이라 하겠지만, 지금이라도 630여종 중에서도 번역이 시급한 중요 의궤 200종 400책을 선정하여 우선적으로 번역, 출간하는 것이 ‘제2의 한류’를 추동할 뿐만 아니라 인문학 인력의 고용 창출효과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영록 | 한국고전번역원 홍보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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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 나리 개나리

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

시 낭독이 이 대목에 이르자 청중들 사이에서는 짧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지난주 어느 저녁 일산 호수공원 옆의 작은 책방에서였다.

김이듬 시인이 본인 표현대로 ‘겁도 없이’ 차린 책방이듬에 그날 모인 사람들은 서른 명이 넘었다. 평론가 임우기 선생이 먼저 기형도의 시들에 대해 길안내를 하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한 편씩 그의 시를 읽는 모임이었다. 어깨를 맞대거나 무릎을 부딪치지 않고는 도저히 서른 명이 앉을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사람들은 기형도의 ‘나리 나리 개나리’에서 시작하여 두 시간이 넘는 동안 꼼짝 않고 자리를 지켰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여름 막바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시인이 자문을 청해왔을 때 나는 무작정 말렸다. “책도 팔고 커피도 팔고 강연회도 열고 하는 중고책방 겸 카페예요.” 책방인지 북카페인지 정체부터가 아리송한 카페를 하겠다는 시인의 낭만주의에 나는 어줍지 않게 ‘고상한 밥벌이’라는 말을 써가며 훈수를 두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여도 결국은 온갖 잡일과 세무서와 식품위생법과 월세에 관련된 일들에 몸과 마음을 탕진해야 하는 밥벌이라면서 비관적인 말만 잔뜩 늘어놓았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나서 시인은 정말로 책방 겸 카페를 열었다.

책방이 자리 잡은 곳이 출판사 인근인 탓에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그곳을 드나들었다. 점심 먹고 들어오는 길에 커피 한잔 청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고, 와인코르크가 막혀 발을 구른다는 소리에 부리나케 가서 마개를 따주고 돌아왔다. 늦은 저녁 술이 조금 더 필요해서 들른 작가와는 처음 인사를 나누는 주제에 흰소리를 늘어놓으며 맥주 몇 잔을 비우기도 했다.

책방이듬을 드나들며 몇 가지 놀란 점들이 있다. 책을 만들고 팔면서 나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몰랐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버릇이 입에 밴 출판인으로서, 나는 어디서 이렇게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지 새삼 놀랐다. 마치 다 아는 것처럼 책의 판매지수와 독자연령대와 지역별 분포를 늘 분석하면서도 정작 그 사람들이 어떤 기대와 요구와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믿을 만한 누군가가,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런 경험을 제공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시인의 책방은 안성맞춤이었다. 풍광이 좋은 공원 옆의 우리 동네에 시인이 작은 책방을 열었다고 하자 사람들은 신기해서 들어오고, 궁금해서 들어오고, 들어와서는 한 시간씩 책을 읽다 갔다. 동네주민도 들어오고, 작가들도 찾아오고, 시 한 편을 낭독하겠다고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늦은 시간의 책방을 가득 채웠다. 자율방범대로 봉사하는 엄마들 셋은 밤거리를 순찰하다가 이 동네에 20년 넘게 살았는데 이런 모습 처음이라며 사진을 찍어갔다.

동네에 책방이 하나 생기면 무표정하던 그 거리에 ‘의미’가 생겨난다. 내가 사는 동네에 뭔가 마음을 줄 만한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음식점이 하나 생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건이다. 공간적 동질성 외에는 아무런 공감대도 없는 지역이 책방 하나로 인해 뭔가 의미의 공동체로 바뀐다.

사람들이 책읽기를 힘들어하는 것은 그것이 혼자서 수행해야 하는 어렵고 고립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생각을 나누는 방식의 책읽기, 믿음직한 큐레이터로서 주인장이 길잡이해주는 책읽기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갖게 한다. 좋은 동네책방은 그런 역할을 한다. 그곳이 시인의 책방이라면 더할 게 없다.

나부터가 시집을 안 읽은 지 10년은 넘은 것 같다. 원래 문학에 대해서는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낭비가 싫어서 그다지 가까이하지 않는 터였다. 이성의 사도 플라톤이 시인과 문학을 폴리스로부터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차라리 동감하곤 했다. 그러나 마사 누스바움은 <시적 정의>에서 플라톤과는 반대로 ‘감정의 합리성’이란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공리적 계산에 따른 정의가 아니라 공감과 연민에서 나오는 정의가 더 합리적일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른다면 공동체적 가치는 문학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나는 문학의 효용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산 한구석에 자리 잡은 시인의 책방에서 말이다.

그날 내가 10년 만에 펼쳐든 시는 기형도의 ‘늙은 사람’이었다.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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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얼마 전 ‘제3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안)’을 발표하고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열었다.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따라 5년 주기로 마련하는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은 앞으로 정부의 외국인 정책을 종합한 밑그림에 해당하는데, 올해 결정되는 ‘제3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적용된다. 법무부는 이번 3차 기본계획의 정책 비전을 ‘국민 공감! 인권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선언하고, ‘상생’ ‘통합’ ‘안전’ ‘인권’ ‘협력’을 정책의 핵심가치로 발표했다.

일단 ‘인권과 다양성 존중’을 기본계획의 정책 비전으로 선언하고, 핵심 가치 중 하나로 ‘인권’을 강조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국내에 체류하는 이주민의 취약한 인권 상황은 지난 10년 동안 국내 인권단체뿐만 아니라 국제노동기구(ILO),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유엔 자유권위원회 및 유엔 사회권위원회 등 국제적으로도 매번 지적되어온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후보시절 외국인 노동자 사업장 변경 불이익 없는 법 개정,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강제노동 철폐를 위한 ILO 핵심협약 비준,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 외국인 인권침해에 대한 점진적 개선을 약속했다. 나아가 과거 어느 정부보다 ‘인권’을 국정의 중심 가치로 강조하고 있어 그동안 지적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이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에 발표된 ‘제3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안)’은 이주민의 인권과 노동권을 개선할 수 있는 변화된 정책으로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많다. 우선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부터 아쉬움이 남는다. 공청회를 마련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이나 단 한 번의 공청회 이후 한 달 만에 기본계획을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하니 공청회를 통해 수렴된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지 의문이다. 시민들의 참여를 바라는 온라인 설문 문항을 살펴보면 국가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설문 수준이라기엔 너무 부끄러울 정도로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적인 질문들로 가득하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가 지적된 외국인 노동자 운영제도(고용허가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치료해야 할 병의 원인을 그대로 둔 채, 올바른 생활 습관만 강조한다고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앞으로 5년의 미래를 그리는 정부의 ‘기본정책’이라면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이 아니라 사회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직장) 변경을 제한하고, 체류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권한을 사업주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직과 퇴사의 자유가 있는 한국 노동자들도 직장에서 사업주에게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힘이 약한 노동자들이 뭉칠 수 있는 노동조합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직의 자유가 없는 외국인 노동자는 사업주에게 찍히면 퇴사가 아니라 한국을 떠나야 하는 위험에 처한다. 제도의 설계 자체가 노동권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의 ‘선의(善意)’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열악한 제도에서조차 밀려나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인권과 노동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해외투자기업연수생, 농축산업노동자, 어업노동자, 선원노동자, 계절노동자등 법 밖의 이주민이 많다는 것이다.

다문화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기를 맞아, 장기적인 정부정책의 바탕이 될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에는 고용허가제 문제뿐만 아니라 사각지대에 있는 수많은 이주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고민도 담겨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주민의 인권과 노동권이 존중되고, 공존을 위한 우리 사회의 지혜가 담긴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조영관 | 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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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뒤에 숨어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비좁은 장롱 속에 들어가는 것은

더없이 쉬운 일이다

이불 밑에 납작하게 누워 있어도

피아노의자 아래 네 발로 기어들어가

새끼 고슴도치로 웅크려 있어도

금세 웃음소리를 찾아낼 수 있다

발코니 구석에서 은빛 물방울이 되고

유리창에 달라붙은 햇빛이 되고

발가락까지 오그린 투명한 숨소리가 되는 아이들

그렇게 아무리 숨어 있어도

가면을 몇 개씩 찾아 쓰고 있어도

얘들아 이 집에서만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단다

물풀 같은 하얀 종아리가 다 자라고 나면

굳이 숨으려 하지 않아도

이 세상은 너희들을 사라지게 할 거야

보이지 않게 만들 거야

다른 그 무엇이 될 수 없게 서류 속에 집어넣을 거야

그때까지만이라도 숨은 그림을 그려야지

유령과 싸워야지 커튼 뒤에서 장롱 속에서

 - 김태형(1970~ )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술래가 되어 어디 있는지 모르게 사라지는 즐거움. 그러다 갑자기 몸을 입고 나타나 사람들 놀래어 주는 즐거움. 숨고 싶은 마음과 들키고 싶은 마음 사이에 술래잡기의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숨는 즐거움보다 들키는 즐거움이 더 크지 않을까. 들키는 순간의 놀람과 희열,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던 긴장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맛보고 싶어 유령도 되어 보고 투명인간도 되어보는 것 아닐까. 그러나 시인은 아이가 어른이 되어 겪을 슬픈 술래잡기를 예감한다. ‘나’라는 고유한 존재는 없어지고 명함이나 서류에 이름으로만 존재할 때, 있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될 때, 그래서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술래 ‘나’를 찾아야 할 때,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두려움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정신이 없을 그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셰익스피어, <리어왕>)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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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 <로보캅> 주인공 머피는 일종의 ‘킬러로봇’이다. 치안활동을 벌이다 최악의 경우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그런데 개인적인 감정을 말소하지 않은 프로그램이 실수로 삽입돼 정체성의 혼돈에 빠진다. 방아쇠를 당길 때 인간처럼 머뭇거리는 행동을 보인 것이다. 이것은 머피가 인간과 기계의 하이브리드라는 ‘출생의 비밀’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013년 4월 23일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킬러 로봇을 멈춰라’ 캠페인에 등장한 로봇. 출처: Gettyimages이매진

감성(윤리의식)이 거세된 킬러로봇은 이와 다르다. 무고한 인간을 ‘아무런 감정 없이’ 적으로 인식해 공격할 수 있다. 로봇이 인간을 곤경에 빠뜨리는 묵시론적인 장면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섬뜩하게 그려진 적이 있다. 이를 예견했던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라이어>에서 로봇의 3대 원칙을 만들었다. 요약하면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되고, 인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며, 이들 두 가지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도 모자랐는지 <로봇제국>에서 ‘로봇은 인류에 해가 가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추가했다.

킬러로봇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미국 국방부는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고위 군 사령관인 카리 야신을 드론 공습으로 살해했다고 밝혔다. 전투용 드론은 원격지에서 조종사들이 조종하는 로봇이다. 또한 미 해병에서는 기관총과 센서를 부착한 무인전투로봇을 실전배치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최근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공지능(AI)의 잠재적인 리스크에 대비하지 않으면 그것은 강력한 자동화 무기나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13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 회의에서 킬러로봇을 주제로 해 논의한다고 한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구글 딥마인드의 무스타파 술레이만 등 기업인 100여명은 지난 8월 킬러로봇 금지요청 서한을 유엔에 보낸 바 있다. 킬러로봇이 독재자·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거나 해킹을 당하면 대형참사를 빚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AI가 탑재돼 스스로 움직이는 킬러로봇이 출현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섬뜩할 뿐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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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자 수가 5000명을 넘었지만 우리나라 공중 보건망은 개선된 것이 없다. 속칭 햄버거병, 계란 살충제 오염, 생리대 화학물질 등 일상생활에서 소비하는 수많은 생활용품과 식료품이 초래하는 위험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는 계속되지만 (화학)물질 중독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거의 없다. 또 다른 특정 제품, 특정 화학물질로 인한 건강영향 사고는 계속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고의 공통점을 보면 정부가 허가한 제품을 소비자가 사용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고, 정부가 피해 위험을 먼저 알아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 개인이 알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위험들이다. 이들 사고는 제품 사용으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 사례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나 조직이 없는 데에서 오는 일련의 사고다.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계란, 생리대, 휴대폰 케이스…. 생활 속에서 흔히 먹거나 쓰는 것에 유해한 독성물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속속 이어져 시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화학물질 위험은 표준적인 동물실험만으로 충분히 알아낼 수 없다. 모든 화학물질은 동물실험에서 발견하지 못한 치명적인 건강 영향을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입는다.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DDT의 암과 생식 독성, 탈리도마이드의 태아 기형은 동물실험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PHMG, PGH, CMIT, MIT에 의한 폐 손상, 천식 등도 우리나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대부분의 화학물질 독성은 해당 물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경험하지 않고는 알아낼 길이 없다.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 제품을 사용할 때 입은 피해사례를 모으고 감시하는 국가 조직은 물론 감시망이 없다.

미국에는 소비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 조직인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가 있다. 이 위원회는 1990년에 가습기 사용으로 인한 호흡기 건강영향 위험을 알렸고, 가습기에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국에는 소비자가 입은 작은 사고나 건강영향을 모니터링하는 56개의 물질중독센터(Poison Center)도 있다. 누구나 경제 소비 활동에서 입은 사고, 불편, 중독 경험을 자유롭게 신고할 수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실시간으로 물질중독센터의 자료를 종합, 분석하여 피해 사례의 원인 규명, 추가 확산 차단은 물론 치료에도 활용한다. 예측하지 못한 사고 등을 사용과정에서 모니터링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공중 보건망이다. OECD 모든 나라와 WHO 회원국의 50%에 달하는 나라에도 이러한 목적의 물질중독센터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물질중독을 감시하는 체계가 없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과학기술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위험을 직접 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이 말은 화학물질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4만종이 넘는 화학물질을 다양한 환경에서 사용하고, 지금도 인공 화학물질이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학물질이 들어있는 제품의 위험을 모두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으로 하여금 가능하면 안전한 제품을 만들도록 억지하는 것이 화학물질이 야기하는 건강 피해 예방의 첩경이다. (화학)물질이 일으키는 건강영향 사고를 차단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위험을 스스로 관리하게 할 수 있는 정부 감시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국민들이 물질중독으로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전국에 퍼진 주요 지역 보건소와 병원을 연결하는 가칭 ‘물질중독정보센터’로 공중 보건망을 짜자. 물질중독정보센터 설립 및 신고된 피해사례 통계만으로도 기업의 악의적인 위험관리 방기를 억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실험에서 발견하지 못한 위험도 알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게 된다.

<박동욱 |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환경보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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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학원 소속인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들이 재단체육대회에 동원되어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요구받았다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시민단체인 ‘직장갑질 119’의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간호사들이 해마다 ‘일송가족의 날’ 장기자랑 코너에 짧은 바지나 배꼽티 차림으로 춤을 추는 동영상과 함께 그동안 자행된 인권침해 사례를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긴 테이블에 앉아있는 재단의 고위인사 앞에서 짧은 의상을 입고 어떻게 하면 유혹적인 표정과 제스처를 지을 수 있는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하기 싫다고 하면 “유난을 떤다”는 식의 핀잔을 들었다. 장기자랑에 참여하지 않은 간호사들도 근무를 마친 뒤 응원연습에 동원됐다. 병원 측은 해마다 열리고 있는 재단행사 중 하나인 장기자랑에서 간호사들이 그런 인권침해를 당했는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간호사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환자들을 최일선에서 돌보는 전문 의료인이다. 자칫하면 의료사고에 노출될 수 있는 고위험 직업군이다. 더욱이 병 때문에 약해진 환자들의 투정까지도 늘 웃는 낯으로 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만성적인 인력부족 때문에 임신 및 육아까지도 남편이 아닌 동료와 상의해야 할 정도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업무에 몰두하고, 나머지 자투리 시간을 쪼개 휴식을 취해야 할 판에 해마다 재단 체육행사에 참석해서, 그것도 선정적인 춤까지 춰야 했다. 이것은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절대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간호사들의 고발과 병원 측의 해명은 한국 사회가 조직 내 인권침해 문제에 얼마나 무지몽매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장기자랑인데 뭐 어떠냐는 인식은 여성을 눈요깃감으로 표현해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받아들여지는 시대착오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웅변해준다. 싫으면 거절하면 되지, 왜 끌려다니다가 이제와 고발하냐는 시선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남이 아닌 제 자식, 제 손녀가 당한 이야기라면 이런 몰염치한 말을 생각 없이 툭툭 내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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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의 국군 사이버사령부·국가정보원 댓글공작 수사 등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 활동을 정치보복으로 규정했다. 이 전 대통령은 12일 “지난 6개월간 적폐청산을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며 “새로운 정부가 들어오면서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사회 모든 분야에 갈등과 분열이 깊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우리는 안보외교 위기를 맞고 있는데 군 조직이나 정보기관 조직이 무차별적이고 불공정하게 다뤄지는 것은 우리 안보를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불성설이고 적반하장이다. 적과 싸워야 할 국군 조직, 국가·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인 국정원을 정권의 통치기구로 전락시킨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이 전 대통령은 사이버사와 국정원 불법 활동의 결정권자이자 책임자다. 종범격인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 구속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도 부족한 이 전 대통령이 반성이나 사과 한마디 없이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고 있으니 기가 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2일 초청 강연차 바레인으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국정농단의 원조는 사실 이명박 정권이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재벌·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보수단체를 지원했으며, 공영방송 등 언론을 탄압했다. 정치보복을 한 세력도 이명박 정권이다. 검찰과 국정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이용해 전임 정부 인사 뒤를 캐고, 야당을 탄압했으며,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2012년 12월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정권이 갖은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박근혜 후보를 지원한 것은 도둑이 제발 저린 경우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지은 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 전 대통령으로서는 문재인 후보 당선 시 후환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전 대통령은 군과 정보기관의 댓글을) 시시콜콜 지시한 바가 없다”며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렇게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 전 국방장관은 사이버사 활동을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관련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사이버사가 댓글조작을 하면서 청와대와 공모한 물증도 이미 나왔다. 법원은 “주요 범죄 혐의인 정치관여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지난주 검찰이 청구한 김 전 장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제 이 전 대통령이 설명해야 할 차례다. 떳떳하다면 검찰 수사를 피할 이유가 없다. 시간이 많지 않고, 국민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국민은 이명박 정권이 과거 5년간 저지른 반민주적·반헌법적 행위에 대해 실체 규명을 원하고 있다. 적폐청산 작업은 정치보복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다.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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