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3가 지하철역에서 낙원상가로 가는 길은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다. 식당들은 문 열 채비를 하고 있고, 땅콩과자를 파는 포장마차도 벌써 장사를 시작했다. 짐을 나르는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오가는 틈으로 노인들이 바삐 걸어 다녔다. 옛날 영화 속에서나 봤을 법한 흰 양복에 흔히 백구두라 불리는 구두까지 갖춰 신은 노인을 마주치고는 문득 둘러보니 낙원상가 앞은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았다. 허름한 4층 건물에는 1980년대에 흔히 있었던 의상실, 기원, 도장 파는 집이 있었고, 식당의 낡은 간판들은 언제부터 매달려 있었는지 감감해 보였다.

그 길모퉁이를 돌아 낙원상가 4층으로 올라가면 허리우드 실버극장이 있다. 영화 첫 상영 시간에 맞추려고 종종걸음쳤는데, 이미 10분이나 늦어버려 그냥 갈까 말까 망설이면서 극장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보니 지각한 관람객이 꽤 많았다. 모두 노인들이었다. 한 노인은 영화표를 사면서 굳이 뒷자리를 달라고 했다. 표를 내주는 이는 영화가 시작되었으니 빈자리에 앉으시라고 해도 뒷자리에 앉아 좀 쉬려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극장 안에 들어가 보니 그럴 일이 아니었다. 앞이고 뒤고 빈자리가 많아서 어디든 앉을 수 있었다.

스크린에 비치고 있는 영화는 1960년대 만들었다는 흑백영화였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단조로운 색만큼이나 무료했다. 그런데도 내 앞에 앉은 노인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쉬려고 왔다던 노인은 어처구니없는 장면에서 가장 크게 웃었다. 졸다가 그 웃음소리에 잠이 깼다. 괜한 일에 화를 내고 헤어지려는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을 맥없이 따라가다 보니 오래전 텔레비전으로 보던 명화극장이 생각났다. 그때 본 영화들의 감동적인 장면들과 작은 창문으로 옆집 대추나무가 보이던 기와집과 그 숱한 밤의 풍경이 흑백 영상으로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어쩌면 그 극장에 앉아 있는 노인들은 영화가 아니라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과거를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진 뒤 주춤주춤 일어서는 노인들의 모습이 쌩쌩했다. 영화 보는 내내 크게 웃었던 노인은 팔을 휘저으며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아무래도 졸았던 건 나뿐인 듯했다. 그들의 과거 여행은 즐거웠던 것인가.

<김해원 | 동화작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백은 시선(詩仙)이다. 신선은 인간 세상에 무심하다. 아래는 ‘월하독작(月下獨酌)’의 일부다.

“꽃밭 가운데서 한 병 술을/ 친한 이 없이 홀로 마신다/ 술잔 들어 밝은 달 맞이하고/ 그림자 바라보니 셋이 되었다.”

이백은 술을 마신다. 술벗은 달과 자신의 그림자뿐이다. 이백의 독작은 외롭다기보다는 고즈넉하다. 이런 시를 읽으면 여럿이 어울리는 술자리에서 도주해 고요한 가을밤 옥상에 올라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맥주라도 한 캔 따고 싶다.

이백은 관직에 나갔으나, 나라나 가문이 아니라 개인의 명예를 위하는 마음이 컸다. 현종 황제 역시 이백을 실무에 능한 관료가 아니라 음풍농월하는 도사에 가깝게 대우했다. 장안에서도 이백은 늘 술에 취해 있었다. 시를 지어 올리라는 명을 받았을 때 양쪽의 부축을 받고서야 붓을 드는 일이 잦았다. 결국 천자는 속세에 어울리지 않는 이백에게 “산으로 돌아가라”고 명했다. 이백은 그렇게 평생 떠돌며 살았다. 반란에 연루돼 투옥됐다가 유형을 떠나기도 했는데, 1개월이면 도착할 길을 1년이나 걸려 유유자적했다. 유형이라기보다는 여행이었다. 여러 차례 아내를 맞았지만, 가족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지는 않은 것 같다. 배 위에서 술을 마시다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는 와중에 익사했다는 전설도 이백다운 최후다.

두보는 시성(詩聖)이다. 성인은 세상의 고통을 제 한몸으로 끌어안는다. 아래는 ‘등악양루(登岳陽樓)’의 일부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편지 한 통 없으니/ 늙고 병든 내게는 외로운 배 한 척 있을 뿐/ 관산의 북쪽에는 전쟁이 한창이니/ 난간에 기대어 눈물을 흩뿌린다.”

늙고 병든 두보는 외롭다. 잔혹무도한 전쟁의 불길은 세상의 인연을 모두 불태웠다. 제 아무리 시를 잘 지어도 전쟁 앞에선 무력하게 눈물 흘릴 뿐이다. 두보의 시는 그렇게 눈물이 많다. 고향 생각하면서 울고, 늙고 지친 처지 생각하면서 울고, 멀리 떨어진 가족 생각하면서 운다. 잔혹한 세상에 가장 크게 슬퍼하는 것은 공감능력이 탁월한 성인의 몫이다.

두보는 첩을 두지 않고 평생 아내와 해로했다. 큰아들은 어린 시절 아사했다. 당시 관행과 달리 벼슬을 받아 세상에 나아갈 때에도 아내, 어린 아이들과 동행했다. 두보는 평생 고질병을 앓았다. 폐결핵과 신경통에 시달렸고, 말년에는 중풍까지 맞았다. 마을 관료가 내려준 쇠고기를 허겁지겁 먹다가 급체해 그날로 세상을 떴다는 전설은 두보의 서민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백은 두보보다 열 살 연상이었다. 둘은 만난 적이 있고, 술에 취해 한 이불을 덮고 잘 정도로 금세 친해졌다. 한자 문화권을 대표하는 최고의 시인 둘이 한 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이 놀랍거니와, 둘이 시인의 두 가지 측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도 흥미롭다. 거칠게 표현하면 이백은 로맨티스트, 두보는 리얼리스트였다. 이백이 호방하게 풍류를 노래하며 탈속의 경지로 다가섰다면, 두보는 세상의 모순과 비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시인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되, 때로 초인간의 경지를 엿본다. 고대의 영매가 산문으로 세상의 비의를 전했을 리 없다. 시인은 그렇게 탈속적이면서 세속적인 존재다.

최근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최영미 시인이 세간의 입길에 올랐다. 월세 계약 만기를 맞이한 그는 한 고급호텔에 홍보의 대가로 1년간의 숙박을 타진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시인은 지난해에는 자신이 연소득 1300만원 미만의 무주택자이며 생활보호 대상자라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갑질’ 프레임으로 최 시인의 제안을 비난했다. 과연 ‘생활보호 대상자’가 우리 사회에서 ‘갑’의 위치에 설 수 있느냐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보통 사람의 생활감각으로 볼 때 최 시인의 제안이 기묘하게 들리는 건 사실이다. 웬만한 사람은 최 시인과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땅에 발 딛고 하늘을 보는 사람들이다. 민주사회에서 특정 직업군에 특권을 부여할 수는 없지만, 가장 도발적이고 과감하게 상상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시인이다. 그 생각과 행동이 법을 어기거나 공동체에 결정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말릴 이유가 없다. 최 시인의 제안은 엉뚱하게 들릴지언정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호텔이 시인의 거주가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면 받아들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거부하면 그만이다.

최 시인의 주거 문제는 집주인이 월세 계약을 연장해주기로 하면서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고 한다. 최 시인이 이번의 세속적 경험을 탈속적 언어로 풀어내줄 날을 그린다. 안정된 주거 환경에서 비범한 언어를 벼려내주길 바란다.

<백승찬 문화부 차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얼마 전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제발 허락해 달라며 무릎 꿇고 호소하는 장애아 어머니의 사진이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가운데는 장애인 관련 시설이 들어서게 되면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고, 범죄율이 상승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니 여간 씁쓰레하지가 않다.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특수학교 먼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필자는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두 가지 있다.

첫째, ‘당신의 자녀가 장애아동이어도 학교 설립을 반대할 것인가?’와 둘째, ‘장애 발생은 특정인에게 국한된 것으로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장애는 자신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 알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세상의 누구도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 또는 ‘잠재적 장애인’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통계에 의하면 선천성 장애는 10~15%에 불과하고,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재해 등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는 무려 85~90%에 이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인간은 누구나 장애를 입을 수 있다. 따라서 평생 장애를 입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다시 말해, 현재 내 가족 중 장애인이 없다 해서 장애인의 문제를 결코 강 건너 불로 여기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된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마저 누리지 못하는 그런 사회라면,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중요한 건, 장애인의 불편과 고통을 장애를 가지지 않은 쪽에서 먼저 배려하고 이해하며 도와주는 것이다.

<배연일 | 경안신학대학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정부의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통일부는 21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열고 관계기관과의 논의를 거쳐 지원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고 한다.

논란의 주된 이유는 타이밍으로 보인다. 교추협 개최 계획 발표가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일본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인도적 지원 시기를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북 제재에 대한 ‘한·미·일 동맹에 이상기류가 감지된다’는 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과거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무분별한 퍼주기’ 논란이 다시 등장하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로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 제공

요즘 유행어로 하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처럼 들리기도 한다. 같은 행동도 어느 정부가 하느냐에 따라 ‘퍼주기’ 또는 ‘원칙에 부합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이른바 인도적 지원의 정치화이다. 힘을 모아 이 난국을 돌파해야 하는 시점에서 비생산적인 소모적 이념 논쟁으로 타이밍을 놓칠까 우려가 된다.

이럴 때일수록 ‘팩트’와 ‘원칙’에 따른 결정이 중요해진다. 먼저 팩트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과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여전히’ 필요한가”라는 질문이다. 최근 북한의 경제상황에 대한 평가가 국내에서 엇갈려 객관적 평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375호는 “영양실조 위험에 처한 상당수의 임신·수유 중인 여성 및 5세 이하의 아동과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전 인구의 거의 4분의 1에 달하는 주민들을 포함하여, 주민의 절반 이상이 식량 및 의료 지원에 있어 중대한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유엔인도지원조정실(UNOCHA)의 조사 결과에 주목하며, 이러한 차원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민들이 처한 심각한 어려움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답하고 있다. 초강력 경제제재를 결정한 유엔 안보리의 ‘객관적’ 평가이다.

둘째, “왜 하필 지금인가”라는 논란이다. 이번 지원 결정은 세계식량계획과 유니세프의 연례 요청에 따른 것이다. 핵실험과 경제제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번주에 결정을 하더라도 곧바로 원조가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국제기구의 내부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시기 조절이 충분히 가능하다.

셋째, 인도적 지원의 효과성에 대한 질문이다. 원조가 북한의 군사비로 전용되지 않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취약계층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느냐는 것이다. 이 또한 이제는 원조 분야에서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은 이미 엄격한 투명성 기준에 따른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현금이 아닌 현물,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없는 의약품과 아동 영양식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원칙의 문제를 살펴보자.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고려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1860년대 국제적십자가 창설된 이래 국제적인 원칙을 넘어 상식이 되었다. 이번 2375호 결의안이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하여 만장일치로 채택된 이유는 북한의 무모한 핵실험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지만 결의안 내용에 이러한 인도적 지원 조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유엔은 경제제재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다. 인권과 인도적 지원은 국제평화와 안보와 함께 유엔이 추구하는 핵심적 가치이자 원칙이기 때문이다.

과거 경험에서 보듯이 경제제재는 의도와 달리 제재 대상국 아동과 산모 등 취약계층에게 우선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힌다.

과거 진보와 보수 정부 모두 국가안보 논리로 북한 인권과 인도적 지원 문제를 다루곤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안보에서는 적국의 위협 수준과 의도에 따라 자국의 방어 수준과 대응 방식을 결정한다. 즉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권과 인도적 지원은 다르다. 인도적 지원은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미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독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연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핵실험과 같은 안보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은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그러한 행동이야말로 만장일치로 채택된 안보리 결의안을 가장 성실하게 이행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성훈 |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경희대 겸임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구하면 얻을 수 있고 버려두면 잃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사랑, 정의, 지혜 같은 내면의 가치들이다. 이런 것은 구하면 구할수록 유익하지만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고 버려두면 영영 그 길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반면에 구할 때 그것이 정당한지 늘 되물어야 하고 얻는 데에 집착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재력, 지위, 명망처럼 남들이 볼 때 나를 규정하는 외면의 가치들이다. 맹자의 말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18세기 조선의 문인 황경원은 어느 날 아침, 그 전날 시행된 과거시험에 왜 응시하지 않았냐는 지인의 핀잔을 들었다. 

몸이 아파서 그랬다고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뭔가 숨기는 것 같은 찜찜함에 해명의 편지를 쓴다. 그 이전 시험에는 정말 몸이 아파 응시하지 못했는데, 그 시험을 관장한 대제학 이덕수가 자신을 천거할 생각이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 사실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이번 시험도 이덕수가 관장하는데 병도 나았으니 좋은 기회라며 응시를 권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황경원이 응시하지 않은 이유였다.

황경원은 이덕수와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는 사이였다. 황경원의 문장을 읽어본 이덕수가 그 재능을 인정하여 높은 자리에 천거할 뜻을 가지게 된 것뿐이다. 황경원이 청탁을 한 것도 아니고 이덕수가 부정하게 천거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경원은, 결정권을 쥔 상대가 자신을 천거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응시하는 것 자체가 떳떳하지 않다고 여겼다. 과거시험은 내면이 아니라 외면의 가치를 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하는 방법이 정당한지를 철저하게 따져야 마땅하다. 천거될 실력이라면 이덕수가 없어도 천거될 것이므로 그의 의도를 알면서 굳이 이번에 구할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때라 해서 청탁과 부정이 자행되지 않는 군자들의 시대였던 것은 물론 아니다. 외면의 가치들을 향한 욕망에 휘둘리는 것은, 별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이것만은 구하고 지키겠다는 최소한의 무엇이라도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황경원은 편지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5대째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가난에 시달리는 저의 집안을 생각해주시는 마음 잘 압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바꿀 수 없는 내면의 소신이 있기에 드리는 말씀이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송혁기의 책상물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할 것과 구하지 않을 것  (0) 2017.09.20
수레의 방향  (0) 2017.09.06
부끄러움의 권면  (0) 2017.08.23
애완과 공경의 갈림길  (0) 2017.08.09
좋은 뜻과 식견  (0) 2017.07.26
평판을 대하는 자세  (0) 2017.07.1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미국의 가수 존 바에즈와 배우 제인 폰다는 베트남 전쟁 당시 “아메리카의 양심”을 외치며 반전운동의 선봉에 섰다. ‘도나 도나’ ‘메리 해밀턴’ 등의 노래로 유명한 바에즈는 1961년 밥 딜런과 함께 인종차별 철폐운동을 벌이며 미국 사회의 모순에 눈떴다.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반전평화운동에 나선 그는 ‘요주의 인물’로 분류돼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에도 바에즈는 “베트남 정권의 인권탄압을 막아야 한다”며 문화계 인사 83명의 서명을 받아 뉴욕타임스 등 5개 일간지에 의견광고를 실었다.

배우 문성근씨가 블랙리스트 의혹의 피해자 조사를 받기 위해 18일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폰다는 영화 <클루트>(1971)와 <커밍 홈>(1978)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한 은막스타였다. 그는 베트남 전쟁 기간 반전운동에 적극 참여해 ‘하노이 제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1980년대에는 원전건설 반대운동에 나섰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는 “사담 후세인보다 더 무서운 게 미국의 패권주의”라고 비판했다. 미국 언론은 바에즈와 폰다를 ‘좌파그룹 연예인’으로 지칭했다.

한국에선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거나 활동에 나서는 대중예술인을 ‘소셜테이너’로 부른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해결을 촉구했던 배우 김여진씨, 재능기부 모임을 만들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자녀들을 도운 가수 박혜경씨, 진보적 정치인들과 순회공연을 했던 방송인 김제동씨가 소셜테이너의 원조 격이다. 배우 문성근·권해효씨, 방송인 김미화씨, 가수 이승환·이은미씨도 기득권 세력의 외압에 기죽지 않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소셜테이너들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에 ‘좌파연예인 대응 TF’를 만들어 이들을 탄압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비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배우 김규리씨는 영화와 방송 출연을 금지당했다. 김제동·김미화씨는 진행하던 프로그램 하차를 통보받았다. 심지어 국정원은 문성근씨와 김여진씨의 누드 사진을 합성해 온라인에 유포하기도 했다. 소셜테이너에게 좌와 우는 중요하지 않다. 그른 것을 비판하는 최소한의 상식을 추구할 뿐이다. 이를 모르고 소셜테이너들을 옥죈 이명박 정부의 수준이 어떤지 요즘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문성근씨의 말마따나 저열한 ‘일베’ 수준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명박 정부 시절 여론조작을 위해 민간인을 동원해 댓글부대를 운영한 민병주 전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장이 19일 새벽 구속됐다. 원세훈 원장 시절인 2010~2012년 외곽팀을 운영하면서 불법 선거운동과 정치관여 활동을 하도록 하고 수십억원의 활동비를 지급한 혐의다. 그는 2013년 박근혜 정부 검찰 수사에서 구속을 면했지만 4년 만의 재수사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 때 광범위하게 진행된 추악한 여론 공작 실태는 도대체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이번엔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작업을 직접 지시하고 보고받았다는 증거가 담긴 군 내부 문건이 새롭게 공개됐다. 국방부 2급 비밀문서인 ‘2012 사이버 심리전 작전 지침’이란 문건에는 ‘총선·대선 개입’이라는 활동 목표가 분명히 적시돼 있다. 국정원 외에 국방부 장관까지 군 댓글공작을 진두지휘한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9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가진 민주당 적폐청산TF(태스크포스) 회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고발한 취지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수준일 줄은 몰랐다.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알몸 합성사진에 얼굴이 오른 배우 김여진씨는 “그 추함의 끝이 어딘지 똑바로 눈뜨고 보고 있기가 힘들다”고 했다. 시민들의 생각도 그와 똑같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합성 사진 제작·유포 계획을 상부에 보고하면서 ‘특수공작’이란 표현까지 썼다. 좌파 낙인을 찍은 문화예술인을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식의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와는 전혀 다른 악질적 행태이다. 시민 세금으로 민주주의의 기초를 파괴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난도질했으니, 국가기관의 탈을 쓴 범죄집단이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무슨 법적 권능과 근거로 국정원 기밀사항을 뒤지느냐. 제대로 하려면 국정원이 도청했던 이전 정권 때 일도 공개해야 한다”며 반발했다고 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만 봐도 청와대와 국정원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대통령의 지시가 없었다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정원의 문화예술인 퇴출공작은 ‘VIP(대통령) 일일보고’ 형태로 청와대에 보고된 사실도 드러났다. MB의 수족인 원세훈 전 원장은 이런 혐의로 이미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도대체 뭐가 더 나와야 순순히 범죄를 인정할 것인가. 재임 중 입만 열면 ‘국격’ 타령이더니 정작 자신이 나라를 망신시킨 대표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송영무 국방장관이 또 사고를 쳤다. 그제 국회에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에 대해 “학자로서 떠드는 느낌이지 안보특보로 생각되지는 않아 개탄스럽다”며 “상대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핵 위기 속에 국방장관이 공개 석상에서 인신공격성 비하발언을 하는 자중지란이 벌어진 것이다. 급기야 청와대가 개입해 엄중 주의 조치를 내리고 송 장관이 사과했지만 여기서 끝낼 일은 아닌 것 같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 장관의 원색적 비난은 자신의 ‘김정은 참수작전’ 표현을 부적절하다고 비판한 문 특보에게 작심하고 되받아친 것이라고 한다. 물론 한솥밥을 먹는 외교안보라인이라 하더라도 정책적 이견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내부 조율을 통해 이견을 해소하지 못하고 갈등을 거칠게 드러냈다면 외교안보라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송 장관의 좌충우돌은 이미 호가 나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의 회담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언급해 평지풍파를 일으켰고, 국회에서 이를 추궁하자 “다양한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가 며칠 안돼 “검토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미국의 핵확산 억제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협상용으로 얘기했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보다 앞서 지난 7월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도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배치 지역이 바뀔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가 수정한 적도 있다. 북한의 전자기펄스(EMP) 공격에 대응한 레이저무기를 “비밀리에 개발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밀이라며 공개하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없다. 송 장관은 자신이 입을 열 때마다 국론이 분열되고 정책 혼선을 빚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핵심 정책에 대해 사전에 조율되지도 않은 사적 견해를 밝히는 그의 행태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는 그제 국회에서 800만달러 대북 인도적 지원 시기를 통일부가 늦출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지원에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표출한 것인지, 왜 그런 의견을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했는지는 그만이 알 것이다. 어쨌든 통일부는 그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송 장관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월 3000만원의 자문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지만 국방개혁의 기대 속에 장관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국방개혁은 차치하고 주요 현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국무위원으로서 최소한의 자질이 있는지, 부처 간 정책조정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언행을 계속해왔다. 누란의 한반도 위기 속에 국방장관의 좌충우돌과 그를 둘러싼 자중지란은 이제 새로운 안보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우리는 지구가 생긴 지 45억년이 넘었다고 배운다. 얼추 100마이크로미터인 머리카락 한 올의 지름을 1년이라 치면 지구의 나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인 약 450킬로미터에 해당한다. 우리의 머리카락 45억개를 빈틈없이 잇대 세우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일직선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퇴하긴 했지만 한때 나와 동종업계 사람처럼 보였던 한 장관 후보자는 지구의 나이가 6000년 정도라고 ‘신앙적으로’ 주장했다. 여기저기 뒤져보니 1650년대 아일랜드의 주교 어셔(James Ussher)라는 사람이 성서를 꼼꼼히 해석한 뒤 지구가 기원전 4004년 10월23일에 탄생했다고 말했단다. 이 주장에 따르면 2017년인 현재 지구는 6021년에서 한 달 정도가 모자란 세월을 살았다. 앞의 비유를 적용해보면 지구의 나이는 머리카락 6000개가 나란히 선 거리, 60센티미터에 불과하다. 이는 성인의 보폭보다 짧고 어릴 적 우리 집 마당에 있던 우물의 반지름 정도가 될까 말까 한 길이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런데 과학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45억년 정도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발을 딛고 선 이 지구라는 땅덩어리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는 불편함이 책을 쓰는 계기였다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나 광물과 지구가 함께 진화해왔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지구 이야기>에는 지구의 나이를 캐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17세기 이후 유럽의 과학 혁명 시기에 지구의 나이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척 많았다. 꼬리 달린 혜성을 발견하고 그것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에드먼드 핼리는 바닷물 속에 들어있는 소금의 총량과 강을 통해 매년 바다로 흘러드는 소금양을 측정하면 지구의 나이를 알 수 있다고 추론했다. 1715년의 일이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머금은 산성비가 대륙을 침식시켜 지각의 염분을 쓸고 바다로 갈 것이기에 이런 추론은 상당히 그럴싸하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로 민물은 고사하고 바닷물에 녹아있는 소금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을 증명할 실험적 방법이 없다면 그 어떤 가설도 상상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한다.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던 5년 동안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를 탐독했던 다윈은 영국 남부 지역의 지질학적 변화가 얼추 3억년에 걸쳐서 완성되었다고 <종의 기원> 초판에서 한때나마 주장했다. ‘한때나마’라고 쓴 까닭은 <종의 기원> 3판에서 다윈이 슬며시 그 내용을 빼버렸기 때문이다. 극심했던 종교계의 반대로 인해 자신의 이론이 훼손될까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다. 19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사람인 켈빈 경도 지구 나이를 추산하는 데 합세했다. 하지만 그도 당대에 축적된 과학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지구를 먹여 살리는 태양이 수천만년 동안 꺾이지 않고 그 기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켈빈은 4억년에서 1억년으로 계속해서 지구의 나이를 줄여나가다가 최종적으로는 2400만년이라고 말했다. 1897년의 일이다. 20세기가 다 되었을 당시의 과학자들은 축적된 과학 지식과 인류의 이성에 기반을 둔 지구의 나이를 수천만년까지 늘려놓았다.

지질학적 변화나 화석을 통해 드러난 증거는 지구의 역사가 다윈이나 지질학자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길다는 점을 암시했지만 그 사실을 증명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19세기 후반 지구의 나이를 추정하는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동위원소의 발견이다. 서랍 속 포장된 사진판 위에 우라늄 광석 덩어리를 던져두었던 프랑스의 앙리 베크렐은 나중에 사진판에서 빛에 노출된 듯 우라늄 광석의 흔적이 새겨진 모습을 발견했다. 베크렐에게 우라늄 광석을 받은 마리 퀴리는 특정한 암석이 일정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성질을 방사능이라고 불렀다. 여세를 몰아 라듐, 폴로늄이라는 방사능 물질을 발견한 퀴리는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연거푸 받았다. 얼마 뒤 물리학자 러더퍼드는 방사능 원소가 붕괴되면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고 그 때문에 지구 내부가 뜨겁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게다가 그는 우라늄 원소가 납 원소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제 인류는 지구의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과학적 기반을 한껏 다졌다. 20세기 초 우라늄 원석 연구를 파고든 러더퍼드는 그 암석이 7억년이 넘은 물체라고 발표했다. 21세기인 현재 우리는 우라늄 원소의 반감기가 약 45억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구 탄생 초기에 우라늄 원소가 100개 있었다면 지금은 50개 정도가 남았다는 뜻이다. 이는 우라늄 50개가 납 원소로 변했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45억년이 지나 지금보다 태양의 온도가 더 떨어지게 되면 25개의 우라늄과 75개의 납 원소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 예측은 들어맞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과학적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50살이 넘은 나더러 사실은 당신이 49살에 태어났으니 고작 1년을 산 것에 불과하다고 속삭인대서 믿을 내가 아니다. 믿음의 세계에서 과학적 질문이 설 자리는 비좁다. 지금껏 인류의 역사는 과학적 질문이 자신의 영토를 확장해 온 기록이 아니었던가?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과학의 한귀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45억년  (0) 2017.09.20
포유동물의 사치스러움  (0) 2017.08.23
나무는 죽음을 품고 산다  (0) 2017.07.26
방광은 왜 거기에 있게 됐을까  (0) 2017.06.28
산소와 숨쉬기  (0) 2017.05.31
밥을 먹는다  (0) 2017.05.0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계속 진행 중인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문제는 문화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 문화예술은 평화와 민주주의 안에서 제대로 숨 쉬며 산다.

한국문학이 한반도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국경 바깥 코리아 민족의 정신과 감성, 그리고 ‘나은 삶’을 위한 투쟁의 문화적 정수였다는 사실을 여전히 믿는다. 물론 이때 문학이란 단지 제도 문단에 한정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말·글 활동과, 시·소설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글쓰기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국가정보원이 만든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출연 프로그램 퇴출 등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방송인 김미화씨가 19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김영민 기자

그런데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언젠가부터 한국문학은 스캔들이나 외국 문학상 같은 바깥의 자극이 아니면 긍정적인 화제를 만들 수 없는 무엇인가가 되었다. 특히 근래의 잇단 큰 추문, 즉 신모 작가의 표절 사건과 문학권력 문제, 성폭력과 여성혐오 문제 그리고 또 불거진 서정주의 친일·독재 부역 논란은 제도문학과 한국문학사의 한계와 그늘이 무엇이었는지를 너무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처리과정은 한국문학이 대단히 고루하고 조로했거나, 청산되지 못한 부끄러운 과거를 그대로 안은 채 ‘자기들만의 리그’를 묵수하는 답답한 제도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하여 일련의 사태는 기성 한국문학의 권위와 정당성 자체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다. 교실에서 기성의 ‘대가’와 ‘정전’으로 이뤄진 한국 현대 문학사를 가르치기가 심히 민망하고 어렵다. 많은 연구자와 독자들의 자긍심과 애정이 식어가고 있다.

물론 사태의 큰 책임은 문단을 담당해왔던 주류들과 나 같은 기성세대 연구자들에게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사태의 전개 과정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권위와 권력의 편에 선 사람들이 제기된 비판을 ‘흠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성과가 크다’는 식의 변설로써 무마하려 든다는 점이다. ‘일부’ 표절에도 불구하고, 친일과 독재 부역에도 불구하고, 여성혐오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문학적 성취’나 ‘문학성’이란 마치 불변하는 절대가치이자 권위주의의 원천 같다. 식민, 전쟁, 분단의 참화를 겪어온 한반도에서 이는 꽤 유례가 깊은 교의다. 이는 ‘예술의 자율성’ 명제에 대한 매우 순진한 해석과 문학적 자유주의와 문학성의 성립 요건을 당파적이고도 안일하게 사고한 데서 비롯했다. 물론 거기에 냉전과 분단상황이 개재해 있었지만, 안이함은 늘 파시즘이나 가장 반문학적인 정치행위가 틈입할 밭이 되었다.

그래서 서정주의 사례는 중요하다. 그의 오류는 단지 일제와 전두환을 찬양한 몇 편의 시에 있지 않다. 그는 수십년간 문인협회·시인협회 등의 대표적 문인단체에 군림한 권력자로서, 한국문학을 극우·냉전 문화정치의 일부로 만든 장본인의 하나였다. 한국 문단 특유의 ‘시인의 순진성·탈속성’이라는 신화가 윤리적 무책임과 정치적 파시즘, 여성혐오를 옹호하는 데 악용돼온 사실도 재차 상기하고 싶다. 서정주의 어떤 아름다운 시편들은 문학과 정치의 복잡한 모순이나 역설성에 대한 교훈적 사례이지, 비천한 정치행위를 덮고 가릴 알리바이가 될 수 없다.

문단은 종종 문학성을 사적이고 작은 것 또한 형식적인 것으로 정의하고,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열정이나 역사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에 대비시켰다. 가장 편하고 소시민적인 방법으로 문학과 정치 사이의 다가적 모순을 해소하려 했다. 냉전시대뿐 아니라 1990년대 이후에도 재생산된 정치적인 것·사회적인 것과 문학성의 이항대립적 사고는 민주주의 문화에도 장애가 되었다.

오래 묵은 한국문학의 문제들이 충분히 자기비판 또는 토론되지 못한 상태에서 오늘날 문학사 공부와 교육, 그리고 현장 문단은 큰 난경에 처해 있는 것이다. 협소한 문학주의나 민족주의 외에 문학사를 다시 사유할 인식의 틀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고, 현실의 문학문화에는 세대 장벽과 젠더 분계가 공고해지는 모습도 나타난다.

새로운 한국문학을 위한 공동의 과제를 생각해본다. 우선 문학사의 재해석·재서술과 문학의 생산·수용구조의 재편성이 동시에 시도되어야겠다. 즉 연구자·교육자·비평가가 새로운 이념과 문학성에 관한 합의를 함께 다시 토론해야겠다. 문학과 정치의 관계를 이항대립적이고 우파적인 것으로부터 구제하는 유연한 원칙과 논리가 필요하다. 한국문학이 탈분단·탈식민 그리고 차별 없는 민주주의의 옹호자여야 한다는 원리는 변함없을 것이다.

또한 달라진 문화환경에 맞는 매체·플랫폼의 개발, 탈제도·탈장르 운동이 확산될 필요도 있는 듯하다. 이때 물론 여성혐오 등 나쁜 행태의 완전한 지양과 함께 독자들의 참여, 세대 간의 소통은 기본 과제가 된다. ‘현장’에서 분투하는 젊은 작가·비평가·교육자들에게 격려와 지지의 마음을 보낸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소성리는 처음 가십니까? 골짜기라예, 산골짜기.”

KTX 김천 구미역에서 나를 태운 택시 기사는 비닐하우스들이 늘어선 좁은 마을 길을 달리며 그렇게 말했다. 참외 수확철이 지나 텅 빈 비닐하우스의 겉면에는 여기저기 붉은 래커로 ‘사드 반대’라고 쓰여 있었다. 

가을하늘이 높고 푸르던 토요일 오후, 동행 하나 없이 숨어들 듯 소성리를 찾아 나선 이유는 내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해서였다.

6차 핵실험을 한 지 채 2주일도 안돼 불꽃놀이하듯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쏘아올리는 북한 앞에서, 사드의 전쟁 억지력이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 같은 것들은 말 많은 페이스북 담벼락에서조차 뜸해졌다.

사드 발사대 4기가 추가 배치되는 성주군 소성리 마을 입구를 6일 주민들이 농기계로 막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 반대쪽에 사는 브라질인 친구가 “탈출 계획이라도 세워 놓았냐”고 걱정스레 보내온 메시지에 “괜찮아, 우린 이런 종류의 불안을 머리 밑에 베고 살아온 지 60년이 넘었어”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했지만,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에 주둔하지 않은 미국 전략자산으로 북한을 공격하는 것은 국제법상 남한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발언(‘미국의 소리(VOA)’ 8월25일 보도)을 공공연히 하는 상황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식으로 마음이 한가롭지는 않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사드 배치는) 현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문을 발표했을 때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던 것이…. 사드는 어느새 설령 그것이 위약효과라 하더라도 나의 불안을 다스려줄 하나의 방패막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드 4기가 소성리에 추가 배치되던 6일 밤부터 7일 아침까지 18시간 동안 400여명의 주민과 반대자들이 8000여명 경찰 병력과 대치하다가 한 사람씩 사지가 들려 나가는 장면을 비춰주는 TV뉴스 화면을 지켜보며 나는 누구의 희생 위에 내가 발을 뻗고 누워 잠을 청하는가를 불편한 마음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성리의 그 밤은 촛불 이후의 강정이었고, 밀양이었다. 마을 입구에 이르자 택시 기사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며 차를 세웠다. 마을회관 입구를 가설무대 역할을 하는 큰 트럭 한 대가 막고 서 있었다. 트럭을 빙 둘러 돌아가니, 집회가 진행 중이었다.

무대 아래 맨 앞쪽에 앉은 이들은 소성리 주민인 할머니들. 500여명의 참석자들 중에는 세월호의 상징으로 익숙한 노란 리본 곁에 파란 리본을 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평화를 뜻하는 것이라 했다. 집회가 진행되는 와중에 휴대전화 창에 ‘21일, 미국 뉴욕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라는 뉴스 속보가 떴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소성리 사람들의 절절한 구호가 닿기에 뉴욕은 너무 멀었다. 집회가 끝난 뒤,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에게 안부 인사를 여쭈었다. 사드 배치 당일의 진압 이후 넋이 나가 있었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하니까 몸을 추스르고 나왔다고 했다.

“7일 이후로 마을 사람들끼리는 쳐다보기만 하면 울어예. 어떤 할매는 자다가 경찰이 쳐들어오는 꿈에 놀라서 맨발로 마을회관으로 뛰쳐나왔는데, 시간을 보이 새벽 4시더랍니다. 다들 수면제 안 묵고는 잠을 못 자요.”

밤낮없이 사드가 들어오는지, 경찰이 들어오는지 보초 서기에 바쁜 나날을 살다보니 내버려둔 밭에는 잡초가 그득하고, 추수를 해야 할 벼는 시들시들하다. 2년 전만 했어도 추석에 내려올 자식들에게 들려 보낼 밑반찬 만드는 일로 집집이 바빴을 시기인데, 지금은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이 마을회관 앞에 모여 미사일방어(MD)체계 공부를 한다. 환경영향평가가 없어도, 이들의 삶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는 웃음기 걷힌 그들의 얼굴이 증명한다.

좌든 우든 안보를 위해 사드 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눈 돌리지 말아야 한다. 나의 안녕을 위해 이 순간 대신 전쟁을 치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여든 두 살 할머니가 새댁 소리를 듣는 작은 마을의 100여명 주민들이 동북아 냉전이라는 태산 같은 짐에 눌려 밤잠조차 편히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서울역에서 KTX로 두 시간이면 닿는 곳. 그곳에 소성리가 있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앳된 얼굴의 키가 작은 여자 손님이 카스 두 캔과 감자칩 한 봉지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홍미영 교수님 아니세요? 그녀는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어수룩하게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다행히 여자 손님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편의점을 나섰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나이가 어려 보이는 손님이 편의점으로 들어설 때마다 반사적으로 긴장하는 몸의 습관을 갖게 되었다.”

조해진의 소설 <산책자의 행복>에는 구조조정 여파로 대학 강사직을 잃고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홍미영이 등장한다. 그녀는 실직 이후 함께 사는 아픈 어머니의 병원비와 은행 빚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서 빈곤층으로 추락한다. 힘들어하던 제자의 손을 잡고 “살아 있는 동안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던 다정한 스승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학 철학과 강사에서 편의점 알바가 된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읽을 때만 해도 ‘너무 극단적인 상황 아닌가’ 싶었는데 웬걸, 한국의 현실은 소설보다 더 나쁘다.

얼마 전 인터넷을 달궜던 최영미 시인의 ‘호텔 투숙 편의 요청’이 바로 그렇다. 일전에도 최영미 시인은 “연간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근로소득장려금 대상이 되었다”는 고백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내게는 편의점에 들르는 제자들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전전긍긍하는 소설 속 홍미영 교수보다 자신의 궁핍한 경제적 상황을 솔직하게 알리고 농담 반 진담 반의 글을 올렸다가 홍역을 치른 ‘(전) 베스트셀러 시인’ 최영미가 훨씬 소설 속 인물처럼 느껴졌다. 시인의 현실이 소설이면 얼마나 좋겠냐만, 김명인 교수의 지적대로 이번 논란의 본질은 “시인이라는 돈 안되는 타이틀을 가진, 의식주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50대 중반 빈민 독신여성”의 문제다. 논란 이후 최 시인은 집주인의 월세 계약 연장과 함께 한 호텔에서 투숙 제공 의사까지 전달받은 상태다. 훈훈하게 끝났으니 해프닝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최 시인의 상황이 결코 특수하지 않다는 현실이 문제다. 최근 <반지하 앨리스>라는 시집을 내고 사진전을 연 신현림 시인도 하루에 한 시간만 햇빛이 들어오는 반지하에서 10년간 살았다고 하니 비슷한 처지다.

한국 사회가 돈 없는 사람에게 유독 가혹하다는 현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여성, 비혼, 소속 없음’으로 살다 보면 가난 혹은 빈곤이라는 단어와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은 처참하다. 취업 시장에서 ‘남성이 최고의 스펙’이라는 말은 취업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정규직 근로자 중 여성 비율은 38.7%로 남성 62.3%에 한참 못 미치고, 여성 가구주의 절대 빈곤율은 20.1%인 데 비해 남성 가구주의 절대 빈곤율은 5.1%다. 여성 전체 노동자의 약 40%가 ‘일을 해도 가난한’ 근로 빈곤계층이고, 전문직 내 여성 집중 상위 6개 직업의 월평균 임금조차 214만원에 불과하다.

해외에서는 같은 커피를 팔면서 남성 손님에게 돈을 더 받는 카페까지 등장했다. 호주 멜버른의 ‘핸섬 허(Handsome Her)’ 카페는 같은 일을 해도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구조적 격차(Gender Gap)를 가격표에 반영, 남성에게 가격의 18%를 더 내게 한다. 15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인 한국의 남녀 간 임금 격차는 36.3%이니, 한국에도 이런 카페가 생긴다면 남성들은 37%쯤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여성의 인생이 동화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처럼 결혼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삶은 계속되는데, 한국은 결혼하지 않은 가난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아무런 답도 갖고 있지 않다. 30~40세 미혼 여성 인구는 10년 새 2배 넘게 급증한 반면 국가는 결혼하지 않는 여성에는 무관심하고 출산하지 않는 여성을 걱정하느라 바쁘다. 소설 속의 홍미영 교수와 현실의 최영미, 신현림 시인은 ‘열심히 일하지만 가난’하다는 점에서 꼭 닮았고, 그래서 슬프지만 이렇게라도 가시화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기도 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혼자라서 더 괜찮지 않은 여성의 가난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이야기가 필요하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제주도 남서쪽 노을해안로 해안에 출현한 남방큰돌고래.

금등이와 대포는 서울대공원의 최장기 쇼돌고래였다. 무려 20년 동안의 수족관 생활을 마치고 올해 5월에 제주도로 이송되었다. 이 두 남방큰돌고래는 함덕 정주항 근처에 있던 가두리에서 약 두 달간의 방류적응훈련을 마치고 지난 7월18일 방류되었다. 안타깝게도 방류 이후로 이들은 한 번도 목격되지 않고 있다. 한 번에 다섯 팀이 나서서 동시에 모니터링을 시도하기도 하였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나는 남방큰돌고래를 보러 9월 초에 제주도를 찾았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었다. 걱정하는 나에게 마중 나온 이화여대 장수진 연구원은 비가 오지 않는 지역으로 간다고 안심을 시킨다. 늦은 아침을 먹고 제주시에서 해안을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래를 찾아 나섰다. 바다는 아주 잔잔했고, 날씨도 덥지 않았다.

남방큰돌고래는 일년 내내 제주도 바다에서 살고 있다. 가끔 3~4㎞ 앞바다까지 나가기도 하지만 제주도에 있는 남방큰돌고래는 해안에서 2㎞ 이내에서 자주 출현한다. 이들은 고등어와 전갱이 같은 군집성 어류 또는 오징어를 쫓아 연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자주 발견된다. 덕분에 제주도에서 남방큰돌고래 모니터링은 해안에서 관찰만으로 가능하다. 이날은 제주도 서쪽에 있는 애월읍에서 시작하여 한림, 고산, 신도, 무릉, 영락을 거쳐 일과리까지의 해안도로로 이동하였다. 이 중 신도리에서 일과리 사이에 있는 ‘노을해안로’를 따라 해안을 돌다보면 돌고래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모슬포에 있는 한 돌고래 관광업체는 무려 85%가 넘는 발견율을 자랑하기도 한다.

제주도 북동쪽에도 돌고래가 자주 출현하는 경로가 있다. 신촌리에서 시작하여 함덕, 행원, 세화, 종달을 거쳐 성산읍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도 돌고래를 보고 싶다면 가볼 만한 곳이다. 2015년 이전에도 북동쪽과 남서쪽 연안에서 남방큰돌고래가 자주 발견되었지만, 제주 다른 해안에서도 종종 출현하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거의 이 두 해안 지역에서만 돌고래들이 발견된다.

이것은 다른 지역이 돌고래가 활동하기에 적당하지 않아 대부분의 돌고래들이 이 두 지역에 쏠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장 연구원은 전방과 바다를 능숙하게 번갈아가며 주시한다. 연안에서 수평선까지 훑으면서 떠 있는 건 다 본다. 가마우지, 부표, 쓰레기, 파도, 해녀, 모자반 등이 주로 보인다.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숭어도 자주 본다. 그렇지만 우리가 찾는 것은 남방큰돌고래의 삼각형 등지느러미이다. 가끔 차에서 전망이 좋은 지점으로 가서 조사하기도 한다. 우리는 오전 내내 찾았지만 돌고래를 보지 못했다.

차귀도에서 점심을 먹고 노을해안로에 들어섰다. 무릉리를 지날 무렵 장 연구원은 연안에서 돌고래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바로 길가에 주차했다. 나도 뛰어내려 갯바위 끝으로 다가갔다. 반짝이는 하얀 바다에 대조하여 검은색의 뚜렷한 삼각형이 보인다. 그리고 곧 아치를 그리면서 물 위로 올라갔다 내려가는 돌고래 무리가 보였다. 나는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장 연구원은 한 15마리의 돌고래 무리라고 알려준다. 내 눈에 보인 것은 대여섯마리 정도인데 이 숫자에 2, 3을 곱하면 무리의 수를 가늠할 수 있다. 모든 돌고래가 숨을 쉬러 동시에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날 나는 2013년에 방류한 제돌이를 보았다. 돌고래 무리 중에서 살짝 바랜 숫자 ‘1’이 있는 등지느러미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에 출산하여 새끼와 같이 있는 삼팔이도 있었다. 이제 새끼도 제법 성장하여 삼팔이를 따라가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또 작년에 방류한 복순이도 보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금등이와 대포는 이 무리에서 찾을 수 없었다.

수족관에 오래 있었던 돌고래들은 생리나 행동이 야생의 개체와 다르다. 그래서 해양포유류의 방류는 방류개체의 선정에서부터 야생적응훈련, 방류 및 모니터링까지 국제적인 권고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방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야생에서 스스로 먹이를 추적하여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 포식자에 대해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야생의 돌고래와 비슷한 운동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만약 이런 절차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 방류는 유기와 다름없다.

이런 방류 기준을 모두 통과했더라도 금등이와 대포의 방류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수족관에서 오랜 기간을 보냈기 때문에 제주도 해안에 대한 지식이나 필수적인 생존기술이 부족할 수 있다. 금등이와 대포같이 수족관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돌고래들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있다. 또 이런 돌고래를 야생으로 방류해야 하는가에 많은 논란이 있다. 그래서 금등이와 대포의 방류 결과는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

돌고래는 인간과 비슷하게 가족이나 친구들과 끈끈한 정을 나누며 산다. 가두리에 갇힌 돌고래나 죽은 돌고래에게 보이는 반응을 보면 우리가 가까운 친구나 가족과 이별할 때의 반응과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돌고래는 우리 인간만의 전유물로 여겨왔던 자의식이나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돌고래는 이제 인간은 아니지만 인격체로 인정한다. 돌고래는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격체로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해가 지는 노을해안로를 벗어나면서 금등이와 대포가 저기 어딘가 살아있기를 기원했다.

<장이권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최근 주말에 한강공원에 나가 보면 자전거를 세워놓고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자료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의 자전거 음주운전 경험률이 12.1%로 밝혀졌는데, 이는 자전거를 타는 성인 8명 중 1명꼴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한 경험이 있다는 말이다.

자전거 음주운전은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져 부상의 위험이 큰데도 그 위험성이 지나치게 과소평가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자전거 음주운전에 대해 단속이나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상의 금지규정은 처벌규정이 아니라 단지 권고사항이나 훈시규정으로, 이런 유명무실한 규정으로는 결코 자전거 음주운전을 근절할 수 없다.

일본의 경우는 음주운전 등 운전자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자전거 이용자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엔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등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고 한다.

자전거 음주운전의 기준과 금지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 근거 마련 등 실효성 있는 조치가 조속히 뒤따라야 할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자전거 사고는 2배로 늘었고, 지난해에만 100명 넘게 사망했다고 한다. 자전거 인구 1200만명 시대의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음주주행 등 자전거 사고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처벌규정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현실에서 시민들의 불안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제도적인 보완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운전자의 의식 전환이다. 자전거 역시 일종의 자동차로서 음주운전하면 인명사고 등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식 전환과 성숙한 자전거 운행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김은경 | 주부·서울 동대문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여름휴가 말미에 <파밍 보이즈(Farming boys)>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주인공은 대학은 졸업했지만 평범한 회사원은 거부하는 20대 후반의 취업준비생들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던 세 청춘은 농촌일손돕기 경험을 통해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한국의 농업은 힘들다고들 하는데 다른 나라 농부들의 삶은 어떨지 궁금했다. 2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다양한 형태의 농장을 체험해본다. ‘땅을 파서 꿈을 캐보자’는 청년들의 패기가 통했는지 긴 여정을 마친 농사꾼 유망주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영화 <파밍 보이즈> 스틸 이미지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지성인 이어령 선생은 정책자료집 ‘농설(農設)’에서 “다음 세대를 이끌 혁신은 생명의 신비를 가장 자주 그리고 가까이서 지켜보는 농부들이 이끌어낼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근래에 새로운 생각과 기술을 갖추고 미래 생명산업인 농업의 변화를 주도하는 청년 농업인들이 늘고 있다. ‘2016년 기준 귀농·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30대 이하 귀농·귀촌 가구 수는 최근 3년간 증가 추세다. 젊은층의 귀농·귀촌이 확산되면서 농업이 새로운 일자리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고, 농촌의 환경·생태·문화적 가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지금의 열기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농업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 농업·농촌에는 기회의 창이 활짝 열려 있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부터 청년농업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활용이나 가공·관광 등의 분야에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농업인을 선발하고 그 아이디어에 신기술을 접목해 농촌에 정착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사업장이 전국에 총 40개소 운영 중이고, 2021년까지 500개소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농촌진흥청은 청년농업인 육성에 지속적으로 힘을 쏟을 계획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청년들의 농촌 유입이 농가인구 감소, 농촌지역 고령화, 농산업 정체 등 현재의 농업이 직면한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 각 시·군의 농산물 가공센터를 거점으로 농식품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경영이나 마케팅, 세무 분야의 민간 전문가로부터 컨설팅을 받을 수 있게끔 도울 예정이다. 또한, 청년농업인에게 전문적인 기술교육도 제공한다. 올해 한우를 시작으로 기술 수요가 많은 품목인 쌀, 양돈, 버섯, 채소, 사과, 배 등으로 교육이 점차 확대된다. 농촌진흥청의 전문가들이 멘토로 나서 맞춤형 영농상담도 실시해 전문 농업인으로 육성시킨다. 그 첫걸음으로 지난 8월 전국에서 한우를 키우는 청년농업인들의 연구모임이 꾸려졌다. 그들만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유도하여 관련 정보와 기술을 교환하는 등 자생적인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울러 청년 창업농 개개인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경영능력을 겸비한 전문 농업인으로 키우기 위해 조직체도 육성, 지원한다. 이에 힘입어 올해 1월과 3월에는 ‘전남청년농업인협동조합(지오쿱)’과 ‘전북청년농업CEO협회’가 발족하였다. 농업의 미래성장 산업화를 주도할 유망 일자리 발굴에도 주력해 ‘농작업안전보건기사’ ‘치유농업사’ 등 농촌진흥사업 분야의 국가기술자격 신설에도 적극 나선다. 예비 농업인의 저변 확대 차원에서 2022년까지 청년 4-H 회원을 5000명까지 육성하고 지역사회를 이끌어갈 핵심 청년리더로 양성한다. 

취임 이후 필자는 충남 홍성, 경북 성주, 전남 영광을 찾아 청년농업인들을 만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농업현장에서 체득한 젊은이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미래 농업을 내다보는 혜안에 내심 놀랐다. 이들의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다 보면 어느새 힘찬 기운도 받는다. 고백하건대, 청년농업인과 함께 농업을 이야기할 때 가슴이 뛰고 행복하다. 청년농업인을 잘 살리는 일이 농업을 살리는 일이며, 결국에는 우리 농업·농촌과 국민의 행복지수도 높이는 길이라고 믿는다.

<라승용 | 농촌진흥청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햇볕도 좋고 바람도 좋은 가을이다. 날씨 좋은 주말 오후가 되면 고양이처럼 나른해지기 일쑤다. 하지만 아름다운 가을도 주중의 사무실 안으로는 찾아오지 않는다. 일에 쫓겨서 동분서주하다 보면 나른하던 주말의 고양이는 사라지고 없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뇌는 하나뿐인데도 상황에 따라 이토록 다르게 동작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 신경조절물질

뇌과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도파민, 세로토닌, 아세틸콜린 같은 단어를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단어들은 ‘신경조절물질’의 이름이다. 신경조절물질은 신경세포들의 활동 패턴을 조절함으로써, 뇌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도 뇌가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한다. 신경조절물질은 뇌 속의 특정 영역에 있는 신경세포들에서 생성되어, 뇌 속의 여러 곳으로 보내진다. 예컨대 도파민은 중뇌에서 생성되어 전두엽과 변연계의 여러 영역으로 분비된다. 이처럼 뇌 속의 여러 곳으로 두루 분비되기 때문에 신경조절물질은 몸 안팎의 상황에 맞춰 뇌의 전반적인 활동 패턴을 조율하기에 적합하다.

신경조절물질은 글루타메이트나 가바 같은 ‘신경전달물질’과는 다르다. 뇌 속의 특정 영역에서만 생성되는 신경조절물질과 달리, 신경전달물질은 뇌 전역의 다양한 신경세포들에서 생성된다. 또 표적 신경세포의 활동을 직접 흥분시키거나 억제함으로써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 신경세포의 신호를 전달한다. 이는 신경세포의 활동 패턴을 조정하는 신경조절물질과 다른 점이다.

신경조절물질은 ‘호르몬’이라고 잘못 불리기도 한다. 예컨대 도파민을 ‘행복 호르몬’이라고 잘못 부르는 경우가 있다. 호르몬은 몸의 한 부분에서 분비되어 혈관을 타고 몸 전체를 돌아다니다가, 이 호르몬과 결합하는 단백질 분자(수용체)를 가진 표적 기관에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인슐린은 췌장에서 분비되어 혈관 속을 돌아다니다가 간과 근육, 지방 조직에 있는 인슐린 수용체와 결합하여 포도당의 흡수를 촉진한다. 뇌 속에서 생성되고 분비되는 신경조절물질에 비해 호르몬은 활동 범위가 훨씬 더 넓은 셈이다.

■ 도파민의 다양한 역할

신경조절물질은 여러가지 작용을 한다. 예컨대 도파민은 학습, 동기, 충동, 탐험, 움직임, 선택, 위험 추구, 주의 집중 등 다양한 일에 관여한다. 도파민이라는 한 가지 물질이 이토록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첫번째 이유는 도파민이 여러 뇌 영역들에 분비되고, 이 영역들이 저마다 다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업 기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에서 도파민은 주의 집중에 관여하지만, 사건 기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에서 도파민은 기억에 관여한다.

이는 한 뇌 영역(예를 들면 전전두엽)에서의 도파민 활동이 다른 뇌 영역(해마)에서의 도파민 활동과 완전히 무관하다는 뜻은 아니다. 도파민은 생존에 필요한 보상(돈, 음식 등)이 예상될 때 분비된다. 보상을 잘 획득하려면, 보상에 관련된 정보에 주의를 집중하고, 보상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며, 보상에 관련된 내용을 학습하는 등의 활동이 필요하다. 도파민은 주의 집중, 움직임, 학습에 관여하는 뇌 영역들에 분비되어, 이 영역들의 활동이 보상을 획득하기에 유리한 패턴이 되도록 조정한다.

■ 같은 작용 다른 이름

도파민이 다양한 역할을 하는 두번째 이유는 도파민의 작용을 맥락에 따라 다르게 부르기 때문이다. 줄무늬체(striatum)의 도파민을 통해 좀 더 알아보자. 도파민의 분비를 받는 대표적인 뇌 영역은 줄무늬체인데, 줄무늬체에서 도파민의 농도가 낮아지면 움직임을 일으키기가 어려워진다. 파킨슨병에 걸리면 동작을 시작하기가 힘들어지고 움직임이 느려지는데, 이는 파킨슨병이 줄무늬체 도파민의 농도가 극도로 낮아질 때 발병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줄무늬체 도파민의 농도가 높아지면 움직임을 일으키기 쉬운 상태가 된다. 그래서 줄무늬체의 도파민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동기)과도 관련되어 있다. 재미있게도 줄무늬체의 높은 도파민은 지나친 쇼핑, 도박, 범죄처럼 충동적인 행동과도 연관된다.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동기와 나쁘다고 여겨지는 충동의 뇌 속 원리가 유사한 것이다.

실제로 동기와 충동에 대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연구들을 살펴보면, 양쪽 연구가 둘 다 도파민을 언급하고 있으며, 줄무늬체도 양쪽 연구에서 대체로 활성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줄무늬체의 도파민이 움직임에 관여하고, 동기와 충동이 둘 다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동기와 충동의 뇌 속 원리가 본질적으로 유사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렇게 보면, 뇌 속에서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일이 일어났는데도 어떨 때는 충동적이라고 표현하고, 어떨 때는 ‘추진력 있다/동기부여가 되어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비슷한 경우가 또 있다. 도파민의 높은 활동은 탐험에 대한 선호, 새로운 것의 추구, 위험을 추구하는 태도와도 연관된다. 탐험과 새로운 것의 추구는 진취적으로 느껴지고, 위험의 추구는 무모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이 세 가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활동이 탐험이고, 미지의 대상에 대한 탐험은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충동과 동기 사이 어디쯤

뇌 속의 동작 원리는 비슷한데도, 우리는 행동의 결과와 상황에 대한 해석에 따라 다른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참 묘하다. 빠르게 변해가는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숙고를 위한 시간은 종종 부족하고, 우리는 감에 따라 뭔가를 선택하곤 한다. 내가 내렸던 그 많은 선택들은 동기였을까, 충동이었을까? 지금 나의 선택은 무모한 위험일까, 진취적인 도전일까? 동기와 충동 사이, 무모함과 도전의 사이로 하루가 또 지나간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어릴 적에 개가 달밤에 늑대처럼 우는 걸 많이 봤습니다. 애먼 달을 보고 우는 개가 늑대의 후손이라 그런 걸 모르던 때라 그저 저 개가 미쳤나 싶어 시끄럽다고 툴툴거렸지요. 늑대들은 목청 길게 우는 걸 하울링(Howling)이라고 합니다. 긴 울음소리로 자신과 무리, 사냥감의 위치 따위를 알리는 신호법이죠. 개들 중에는 간혹 그 본능이 남아 확성기 켜고 돌아다니는 차장수나 트로트, 클래식같이 일정하거나 단조로운 소리에 반응해 우는 녀석이 있습니다. 생각해보시면 차장수 확성기 소리에 한 마리가 울고 동네 개가 다 따라 울던 걸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옛날 서당 개도 마당에서 학동들이 일정한 운율로 책 읽는 소리를 줄기차게 듣습니다. 그렇게 내리 삼 년을 듣던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조상의 본능과 들리는 운율에 따라 풍월 읊듯 워어어얼~ 한다면 사람들이 ‘세상에 이런 일이’ 개가 유식해졌다 하겠지요. 서당 개 월~이 따라 읽고 흉내 내는 것처럼 비춰졌을 겁니다. 여기서 풍월은 바람을 읊으며 달을 희롱한다는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준말이자, 짧은 시조를 길게 늘여 부르는 시조창을 말하기도 합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은 어리석고 부족한 사람이라도 훌륭한 사람이나 좋은 환경에 오래 있다 보면 저절로 얻어 배우거나 좋은 영향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같은 속담으로 ‘큰 나무 덕은 못 봐도 큰 사람 덕은 본다’가 있습니다. 사람과 달리 나무는 다른 나무를 알아주지도 키워주지도 못하니 자기보다 큰 나무 그늘 밑에서 있는 나무는 결코 빛을 보지 못하지요.

큰 사람은 항상 지금보다 큰 사람을 지향합니다. 그러니 이 자리로 어서 올라오라고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밉니다. 하지만 큰 나무는 애써 올라온 자리를 빼앗길까 다른 나무들을 제 그늘 밑에만 두려 하고요. 혼자 큰 나무만 있고 같이 큰 사람은 귀한 요즘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요 근래 정치권의 동성애 호들갑을 보노라니 좀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하다. 마치 오랫동안 외항선이라도 타다 내린 것 같다. 언제부터 동성애 문제가 고위 공직자의 역량과 자질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됐나 싶어서다.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라고 거칠게 다그치는 국회의원, 곤혹스러운 표정의 대법원장 후보자, 그리고 21세기 한국 사회에 등장한 황당무계한 ‘후미에’(17세기 일본 에도막부가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을 국민들. 이미 후미에의 피해자도 나왔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졸지에 ‘동성애 옹호자’로 몰렸다. 군형법의 ‘군대 내 동성애 처벌’ 규정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위헌 의견을 냈던 것이 동성애 찬성으로 ‘둔갑’한 것이다. 모호한 법으로 피해 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단이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 주최로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군 형법 92조의6 폐지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군대 내에서 합의에 따른 동성 간 성적 관계까지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군 형법 제92조 6항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당 군형법을 보면 ‘군인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 밖의 추행’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거나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 ‘동성애를 퍼뜨릴 위험인물’이라는 증거가 됐다. 비약도 이런 비약이 없다. 이 같은 논리가 별문제 없이 통용되는 분위기, 게다가 급격히 퇴행하는 정치인들의 수준을 보노라면 다음과 같은 문답이 오가는 청문회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후보자, 항문성교를 연상하게 하는 후배위를 선호하죠? (녹취 파일을 흔들며) 그동안 관계했던 여성의 증언이 확보돼 있어요. 인정하세요.”

“저는 상식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하지 말자, 애매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법조문을 정비하자. 현재 동성애와 관련한 논의의 수준은 이 정도다. 그런데 이에 대한 동의가 군대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와 동일시된다. 또 이것이 물꼬가 되어 소아성애, 수간, 시체상간까지 비화되리라 단언하고 군대 가야 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안감을 강변한다. 

듣다 보면 동성애자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다. 페스트 저리 가라 할 만한 치명적 역병이다.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그 순간부터 동성만 보면 흥분해서 들이댈 좀비 같은 존재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통제불능 성도착자들이다. 좀 있으면 ‘나는 동성애자가 싫어요’ 외치다 죽임을 당했다는 군대 괴담까지 나올 기세다. 이렇게 끔찍한 존재들이 널렸는데 그동안 사우나는 어떻게 다녔으며 화장실 소변기는 어떻게 이용했나. ‘항문성교하면 처벌한다’는 얄팍한 보호막 하나로 안심하고 살아왔다는 말인가. 같은 논리라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이성애자들은 이성만 보면 흥분해서 껄떡거리는 존재들이다. 남녀가 함께 모이는 학교, 회사, 각종 공동체는 언제든 난교파티가 벌어질 공간이다.

우려해야 하는 것은 남의 성적 지향이 아니다.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물리력이나 지위 등을 이용해 상대에게 가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다. 기득권, 다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과 탄압이다.

동성애가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데는 보수 개신교계가 큰 몫을 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죄악에 물들어가는 세상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떨쳐 일어날 만큼 ‘순수’한 신앙심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냉전·반공체제를 발판으로 함께 성장했던 수구보수체제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헤게모니를 되찾으려는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유통기한 지난 색깔론과 종북 타령을 대신해 혐오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한 동성애를 선택했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게 아니라면 성경에 언급된 그 수많은 죄들이 지금도 도처에서 횡행하는데 왜 동성애에만 목숨 거는 건지 이해할 길이 없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초등교원 임용률이 반토막 나자 교대생들은 교육부와 교육청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이를 지켜본 사범대학 학생들이나 교수들은 교대생들의 요구가 지나치게 비상식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20 대 1에 달할 정도로 극심한 임용 경쟁에 시달려온 사범대생들의 입장에서는 교대생들의 요구가 투정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사범대학은 교원 양성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교원 임용률이 10%도 안될 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재수 삼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의 유명 사범대의 경우 학생들이 아예 교직을 포기하고 고시나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사범대학이 이렇게 붕괴된 이유는 교육부가 교원 자격증을 무차별적으로 남발했기 때문이다. 사범대학은 중등교사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되었지만 비사범계열 학과에서 더 많은 중등교사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 2016년도를 기준으로 보면 사범대학 정원은 403개 학과 총 1만284명이다. 그런데 일반대학의 2331개 학과에서 교직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2015년도에 승인된 인원만 해도 8707명이다. 기존에 승인된 인원을 합하면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산되는데 전체 정원이 교육통계에서조차 정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교육대학원은 교사의 재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나 정원 1만3887명 중에서 중등교사 자격증을 부여하는 양성과정이 1만38명에 이르고 있다.

이것을 보면 사범대학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학의 모든 학과에서 중등교사를 양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대학이나 교육대학원은 중등교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사범대학처럼 교직 전담 교수를 채용해서 교육과정을 엄격하게 운영하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교육대학원의 경우 선발과정도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등록만 하고 과정만 이수하면 누구나 중등교원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모든 대학에서 중등교원을 양성한다는 것은 중등교원 양성 전문기관으로서의 사범대학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사범대학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교원의 전문성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중등교원의 전문성을 무시한 결과는 중등교원의 양성 및 임용 과정의 왜곡과 전반적인 교원의 질 저하로 나타나고 있다. 공립 중등 임용시험이 해마다 20 대 1이라는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양성기관이 교사의 수업 전문성 향상보다 임용시험 준비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중등교원 자격증의 남발은 사립학교의 교원 채용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립학교에서는 학교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중등교원 자격증만 갖고 있으면 누구나 사립학교 교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중등교원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채용을 미끼로 사립학교에서 어떤 요구를 해도 비정규직 교사는 이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사립학교 채용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기간제 교사에 대한 갑질이 기승을 부리는 것도 모두 수요·공급의 균형이 무너진 시장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교육부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교원 양성기관 평가를 실시하여 정원 감축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4주기 평가에서 대대적으로 중등 임용 정원을 감축한다고 했으나 사범대 및 일반대 교육과 418명, 교직과정 1368명, 교육대학원 1434명 정도에 그쳤다. 3~5년에 한 번씩 하는 이런 평가 방식으로는 교육대학원 정원을 모두 정리하는 데도 20년 이상 걸릴 것이다. 교원 양성기관 평가를 통해 정원을 감축하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등교원 자격증 남발의 책임을 대학에 돌리는 것이다.

 이제라도 교육부는 정책 실패의 책임을 인정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일반대학 교직과정이나 교육대학원 양성과정을 통하여 중등교사를 양성하는 것은 설립 목적에 어긋나기 때문에 이를 즉각 폐지하고, 중등교사 양성을 사범대학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 다음에는 학교 현장의 수요를 고려해서 사범대학 정원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면 된다.

의대 졸업하면 의사가 되는 것처럼 사범대 졸업하면 중등교사가 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사범대학 정원만으로도 공급 초과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일반대학이나 교육대학원에서 중등교사 양성을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중등교원 자격증이 대학으로서는 충분히 장사가 된다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교육부는 더 이상 책임을 대학이나 학생들에게 돌리지 말고 정책적 결단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등교원 자격증 장사, 이제 좀 그만할 때가 됐다.

<김주환 | 안동대학교 사범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바닥의 돌이 콧등을 칠 만큼 가파른 길이다. 고개를 숙이고 오르고 오른 끝에 겨우 서북능선을 붙잡을 수 있었다. 조금 한숨을 돌리며 둘러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나무 이름을 불러주었다. 길은 쉬는 법이 없다. 신발끈을 조이고 다시 출발을 한다. 실새풀, 조릿대 등등이 만들어주는 길은 그 어떤 숙연함이 고여 있는 깊숙한 웅덩이 같다. 바람이 몰려가고 나뭇잎의 그림자가 빼곡하게 바닥에 일렁인다. 흑백의 그림인데 그 어떤 총천연색보다도 더 생생하고 환한 세계. 나는 못 보는 나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얼룩처럼 내려앉았겠다.

막걸리라도 한 사발 마신 듯 초록에 취해 나아갈 때 이런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경기민요 ‘창부타령’의 한 급소. “우연히 길을 갈 적에 이상한 새가 울음을 운다. 무슨 새가 울랴마는….” 꼭 이희완 명창의 소리로 들어야 제맛이 나는 이 대목을 읊조리면 정말 내가 이상한 길로 순간이동한 것 같고 무슨 기운에 휩싸이는 것 같다. 흥에 겨워 팔을 가지처럼 뻗으며 한 바퀴 돈다고 갑자기 새가 찾아와서 울 일은 없겠다. 하지만 새벽 3시에라야 건질 수 있는 문장이 있듯 설악산의 높은 길모퉁이에 당도해야만 만날 수 있는 기운이 있어 겨드랑이까지 들어찼다.

정밀한 고독과 정교한 산색이 궁합을 맞추려는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기분을 알아차려 설악이 산새라도 보냈나 싶었는데 인기척이었다. 오른쪽은 대청봉으로 왼편은 귀때기청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산중의 소박한 번화가에서 사람들이 쉬고 있다. 바로 그 삼거리길의 입구에 세잎종덩굴이 앉아 있다. 종처럼 생긴 짙은 자줏빛의 꽃은 이미 지고 열매가 도드라진다. 머리를 풀어헤친 듯한 열매 모양이 퍼뜩 할미꽃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확인해보니 둘 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집안들이다. 세잎종덩굴은 이름 그대로 덩굴식물이라 다른 의지처에 기대거나 서로 얽히고설키며 한 무더기로 자라는 나무이다. 열매에서 할미꽃을 보아서 그랬나. 멀어지면서 뒤돌아보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할머니 모습도 얼핏 보이는 듯한 세잎종덩굴. 미나리아재비과의 낙엽 덩굴성 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잎종덩굴  (0) 2017.09.19
미역취  (0) 2017.09.12
산비장이  (0) 2017.09.05
닻꽃  (0) 2017.08.29
난쟁이바위솔  (0) 2017.08.22
[이굴기의 꽃산 꽃글]나무수국  (0) 2017.08.1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