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지방선거 이후 진보 교육감들이 이번 선거에 이르기까지 계속 약진하고 있다. 2010년 6명, 2014년 13명, 2018년 14명의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불안하다.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는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진보와 보수, 경쟁과 협력의 가치가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다.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와 욕망이 얽혀있기에 부동산 문제만큼 풀기 어려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한번쯤은 진보의 약진이 꺾이고 보수의 반격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학생인권조례, 무상급식, 혁신교육으로 대표되는 진보의 교육은 최근 새로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정체되는 느낌이다. 새로운 꿈을 꾸던 교사들의 실천이 학부모의 지지를 통해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민원과 학생안전, 학교폭력 문제에 포위되고 있는 상황이다. 삶을 통해 교육혁신을 꿈꾸던 교사들이 모여 학교 변화의 다양한 시도들을 했었다. 혁신학교를 이끌어가는 교사들의 고군분투가 있지만 지쳐가고 있고, 새로운 에너지원이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의 갈등이 점점 거세지고 있고, 갈등이 새로운 교육개혁 에너지로 승화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에 남을 2번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의 여파로 교육계의 이슈는 사라지고 대통령을 지지하고 평화의 노력에 발목을 잡는 야당과 보수세력을 심판해야 한다는 표심이 교육감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진보 교육감의 무능에 대한 심판이 주춤한 것일 뿐 없어진 게 아니란 점을 교육감 당선인들이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4년간의 새로운 기회를 주었으니 이 기간 동안 교육감들이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다음 선거의 결과가 결정될 것이다.

교육감마다 지역 상황에 맞게 혹은 선거기간 동안 국민들과 한 약속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시대적 과제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현장 교사로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는 교육의 질 개선이다. 교육의 질 개선의 핵심은 ‘최소인의 최소고통’이다. 교육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학생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다. 4.5%에 해당되는 난독증이나 난독증 위험군 아이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감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일들은 시·도 교육청 자치에서 시·군·구 교육청 자치로 발전해야 가능하다. 새로 당선된 기초자치단체장들과 시·군·구 교육지원청이 함께 지역의 학령기 청소년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돌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혁신학교가 혁신지구로 발전해야 하고 혁신지구사업이 마을교육공동체의 핵심 사업이 되어야 한다.

둘째는 교육청 안에 존재하는 소위 전문직(교사 출신)과 일반직(교육행정공무원)의 갈등구조 해소이다. 교사 출신의 장학사나 장학관들과 교육행정공무원들 사이의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어느 조직이나 파벌과 계파가 있지만 파벌과 계파를 서로 화합시켜 조직의 목표를 달성시키는 것이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교육청 안의 두 그룹 간 갈등이 심화되어 학교를 지원하는 조직인 사실을 잊어버리는 상황이다. 인수위 과정에서 대부분의 교육감 당선인들은 조직개편을 하게 되는데 이때 업무의 효율성과 학교교육의 지원이라는 사명보다는 두 조직 간의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서는 안된다.

셋째는 학교에서 교사의 역할과 학부모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학교교육의 권위주의가 상당히 해체되고 있다. 언제나 권위주의의 해체는 한번에 균형이 맞춰지기보다는 좌우로 비틀거리면서 전진하기 마련이다. 권위주의의 해체 과정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경계를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위의 세 가지 제안은 교육감들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좋은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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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줄곧 야권이 우세했다. 대개 정권 중반에 치르는 지방선거는 중간평가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선거는 ‘여당의 무덤’으로 불렸다. 엊그제 끝난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여권 압승으로 끝났다. 기존 지방선거 결과와는 딴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남짓이어서 중간평가로는 이른 감이 있지만 시민은 현 정권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imgtbl_start_1--><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align=RIGHT width=200><tr><td><!--imgsrc_start_1--><img src=http://img.khan.co.kr/news/2018/06/14/l_2018061501001653800136361.jpg width=200 hspace=1 vspace=1><!--imgsrc_end_1--></td></tr><tr><td><font style=font-size:9pt;line-height:130% color=616588><!--cap_start_1--><!--cap_end_1--></font></td></tr></table><!--imgtbl_end_1--> 여권은 선거결과에 자만할 것이 아니라 시민이 표를 몰아준 이유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사실 문재인 정부 이후 경제정책 측면에서만 보면 시민 삶의 질이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서민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청년 일자리는 여전히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구조조정 여파로 일부 지역경제는 몸살을 앓고 있다. 저소득층 소득이 뒷걸음질하는 등 분배가 악화했다는 지표도 나왔다. 지금 청년은 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퍼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권이 지방선거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착한 정부’에 대한 시민의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무능이라는 기저효과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반사효과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올린 것은 경제정책의 핵심인 소득주도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공정한 경제질서를 세우기 위해 갑을관계 개선과 재벌개혁에 매달렸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추가로 예산을 편성했다. 노동자의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했다. 한결같이 경제적 약자 편에 서서 불평등을 줄이겠다는 정책이다. 부정과 무능, 특혜로 얼룩졌던 과거 정권과 차별화된다.

오는 19일 열리는 경향포럼 참석차 방한하는 세계적인 석학들도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201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단순히 ‘누군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으니 최저임금을 올리면 안된다’는 식의 이야기는 바보 같은 소리”라고 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던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역시 “수요가 충분하지 않을 때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좋은 방식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런 평가를 받는 소득주도성장을 놓고 최근 청와대와 내각이 갈등을 빚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분배 악화 지표를 둘러싸고 이견을 드러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소득주도성장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의견을 내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비판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가보지 않았던, 어쩌면 실험적인 소득주도성장 길을 가고 있으니 진통이 따르는 게 당연하다. 건전한 논쟁이라면 환영한다. 바짝 엎드린 게 아니라 대통령 면전에서 경제부총리와 정책실장이 격론을 벌였으니 발전적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갈등은 더 이상 증폭되지 않고 조용히 봉합되는 듯한데, 그 과정이 수상하다. 이후 청와대와 정부는 논쟁을 촉발했던 소득주도성장은 접어두고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혁신성장장관회의가 처음 열렸고, 기재부 안에 별도의 본부를 설치한다고 한다. 혁신성장은 소득주도성장 등과 함께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 과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혁신성장의 초점이 규제완화에 맞춰져 있는 것은 문제다. 규제를 풀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 투자가 늘어나 경제가 성장한다는 뜻 아닌가. 만약 과거 정부에서 추진했던 것과 같다면 소득주도성장과는 궤가 전혀 맞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주창했던 창조경제, 무역투자진흥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 일부 현실화한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제대로 된 통계나 분석조차 없이 최저임금 인상을 단행했고, 부정적 효과도 예측하지 못했다. 6개월 전 이 칼럼을 통해 지적했던 ‘디테일에 숨은 악마’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여당 또한 직무유기한 책임이 큰 데도 시치미를 떼고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반성하고, 왜 그런지 면밀히 살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처럼 한다면 소득주도성장은 공염불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전부는 아닌 만큼 소득주도성장을 훼손하지 않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소득과 노동, 복지, 조세 등 각 분야에서 촘촘하게 정책을 짜야 할 것이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실행할 정책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다. 여권이 지방선거에서 이긴 것은 잘해서가 아니다. 정부의 선한 의지를 믿는 시민이 아직은 많다. 제대로 못했어도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민의 희망을 저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안호기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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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이전에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가리왕산이 순간의 기쁨을 위한 화장을 걷어내고 벌거벗은 맨몸으로 장마와 폭우를 기다리고 있다. 며칠간의 짧은 흥분의 마취제를 처방받은 것처럼 잠시 잊고 있었던 올림픽의 경제효과 허상이 사라져갈 즈음, 지역주민의 불안과 사회적 갈등이 마취에서 깨듯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지방정부는 지킬 생각조차 없었으면서 마치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킬 것처럼 복원약속을 하고, 축제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왕 만든 것이니 계속 사용하자’는 철지난 개발경제논리의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마치 그 약속이 철저히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허가를 내준 중앙정부는 지난 10년간 뒷짐을 지고 있다가 새빨간 거짓말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지금에 와서야 이 논란을 남 탓으로 돌리며 응급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 가리왕산의 복원을 생각했다면 이미 10년 전부터 수많은 것들을 준비했어야 했다. 훼손하기 이전, 주변을 포함한 자연환경의 정밀조사를 통해 복원에 필요한 수목을 기르기 시작해야 했으며, 토양을 준비해야 했고, 변화된 환경에서 어린 식물의 적응 가능성을 검토했어야만 했다.

알파인 경기장 주변, 지난달 상대적으로 적은 비에도 불구하고 재난관리기금으로 응급복구를 진행해야 할 만큼 큰 피해를 입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60조원이 넘는 경제효과와 32조원의 관광수익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 많은 수익을 내고도 수익의 1%도 되지 않는 가리왕산의 복원비용은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지 모를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지금부터 벌어질 손해는 또 고스란히 우리의 세금으로 메꿔야만 한다. 그렇게 자본은 권력과 결탁해 이익을 사유화하고 자신들이 메워야 할 손해를 공유화한다.

교육의 힘은 위대하다. 바르건 바르지 않건 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실시간으로 미디어에 의해 전달되며 훌륭한 학습효과로 각인된다. 멀게는 일제강점기의 친일매국자들,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이 만들어낸 엇갈린 삶의 역사, 29만원밖에 없는 사람이 살아온 역사, 가까이에는 갑질 재벌가가 만들어내는 일그러진 풍경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살아 있는 학습의 효과는 정말 대단하다. 학자적 양심으로 4대강을 반대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까지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반면, 그 부역자들은 정부의 막대한 연구지원을 기반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현실에서 어느 누가 공익과 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낼 것인가? 교과서보다 더 중요한 이 살아 있는 교육에서 우리가, 특히 앞으로 사회를 이끌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훈은 무엇일까? 공무원이 되기 위해, 법관이 되기 위해, 시험에서는 교과서에서 외운 정의로운 죽은 답을 찾겠지만, 공무원이건 판사건, 검사건 현실에서 마주한 이 살아 있는 학습결과를 따르는 지금의 사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복원을 포함하여 하천이나 계곡의 복원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 강물의 거대한 힘이 스스로 복원의 기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반면 산림, 그것도 고산식생 복원은 수십 년의 노력으로도 효과를 보기 어려운 까다로운 작업이다. 이미 가장 중요한 10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해 제대로 된 복원을 위해서는 더욱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하지만 그래도 지금이 가장 빠른 시작이기에 하루빨리 체계적 계획을 수립해야만 한다. 아울러 재해 방지를 위한 조치는 확실히 하되 반드시 임시적이어야만 한다. 재해방지를 위한 시설물이 고착화되는 순간 복원은 영영 사라지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났다. 촛불혁명의 사후약속은 정의로운 삶이 훨씬 고귀하다는 것을 새 역사로 만들어가야 할 시대적 책무일 것이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후진적 지방자치는 사라져야 할 때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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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서 성실하게 답변하겠습니다.” 2016년 11월6일 검찰 포토라인에 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기자를 노려보며 쏘아붙인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2017년 3월21일 검찰 포토라인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구한 표정으로 내뱉는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2018년 2월26일 검찰청에 들어서던 안태근 전 검사장이 무심한 표정으로 내던진다.

“성실히 조사를 받겠습니다.” 2018년 5월2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하던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포토라인에 서서 읊조린다.

한국 사회에 때아닌 ‘성실인’이 넘쳐나고 있다. 성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정성스럽고 참됨’, 한국어기초사전에는 ‘태도나 행동이 진실하고 정성스러움’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근데 성실인의 면면을 살펴보면 기가 막힌다. 하나같이 위법, 편법, 탈법, 불법, 초법을 요리조리 저지르며 권력, 금력, 위력을 마구잡이로 휘둘러왔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성실을 다짐하고 나서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위기에 처하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줄 보다 근원적인 문화 코드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이들이 활용하는 성실 코드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는 뉴스에 나오는 성실인을 볼 때마다 의문을 품곤 했는데, 지방대생 부모를 연구하다가 불현듯 성실 코드의 ‘한 기원’을 발견했다.

내가 연구한 지방대생 부모는 공교롭게도 차남과 딸이 대부분이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가부장의 권위에 짓눌려 살아왔다. 가부장과는 상호 공감을 바탕으로 한 쌍방향적 의사소통을 해보지 못했다. 차남은 형처럼 서울로 보내달라고 떼를 쓰다 된통 혼났고, 딸은 대학 보내달라고 졸랐다가 ‘지지배’가 쓰잘 데 없는 소리 한다며 지청구를 들었다. 울분이 솟구쳤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성실하게 고된 노동을 하는 가부장을 보고 마음을 다스렸다. 게다가 무능한 가부장 탓에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집안 살림을 성실히 꾸려나가는 가모장을 보고 연민을 품었다.

자신이 존중할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 상황에 적당히 관여하며 설렁설렁 살거나, 상황이 요구하는 정해진 규칙만을 따라 성실히 사는 것. 어릴 때는 반항심으로 ‘적당’히 살았지만, 부모에 대한 연민이 생긴 후부터는 ‘성실’히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지만 부모처럼 되지는 않으리라. 경제 능력을 키워 진정한 가부장의 길을 가리라. 경제 능력이 있는 가부장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리라. 차남과 딸 모두 가족 밖 세상과 담쌓고 주어진 ‘가족인’의 삶의 행로를 따라 성실하게 살아간다.

온 가족의 성실을 발판 삼아 서울로 진출한 장남. 위법, 편법, 탈법, 불법, 초법을 통해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둔다. 기고만장 살다 어느 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그제야 떠나온 고향의 성실 코드를 떠올린다. 아예 죽으라는 법은 없지.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 봐봐. 가진 게 변변찮은데도 엄청 성실히 살았잖아. 하나씩 실타래가 풀려 지금은 나름 잘 살잖아. 나도 성실히 조사를 받다보면 살길이 열릴 거야.

현재 한국 사회에는 성실 코드에 기대어 위기를 벗어나려는 ‘예비 성실인’이 가득하다. 실제로 최근 검찰 포토라인에 선 유명 인사들은 하나같이 성실 코드에 의지한다. 그만큼 성실 코드가 지방사회는 물론 한국 사회 전반에서 문화적 호소력이 크다는 거다. ‘성실’이란 무엇인가?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묻지 않고 그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사는 것. 그게 개인에게 ‘자율’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강제하는 조직 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방책이 아니다. 세상에 대해 ‘모르려는 의지’로 넋 놓고 살다보면 위법, 편법, 탈법, 불법, 초법을 일삼는 조직 사회의 우두머리에게 ‘직싸게’ 당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 참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라. 이제 우리 모두 잠시라도 멈춰 서서, ‘가치론적 질문’으로 자신의 삶을 톺아볼 때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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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들이 참패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겨우 대구·경북 두 지역에서만 광역단체장 당선인을 냈다. 텃밭이었던 부산·울산·경남도 내줬다. 기초단체장 역시 민주당이 226곳 중 151곳을 석권했다. 경북 구미시 등 보수의 아성이었던 상당수 지역에서도 민주당이 당선인을 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여러분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지도부와 함께 사퇴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대표도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6년 총선과 지난해 대선에 이어 보수당이 이렇게 연달아 크게 패배한 사례는 없었다. 한국의 주류가 바뀌는 것 아닌가 하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공고하다는 점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보수세력을 철저히 심판했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집권세력의 사회·경제 정책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야당이 참패한 것은 보수당들이 대안세력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음을 웅변한다. 특히 보수의 맏형 격인 한국당이 민심과 괴리된 정도는 심각하다. 북한과 미국이 70년 적대관계를 청산하겠다고 나서는 초유의 상황에서도 낡은 안보관을 고집했다. 최저임금 인상, 복지 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축하려는 정부의 정책도 세금을 쏟아붓는 포퓰리즘으로 치부했다. 합리적인 대안은 내놓지 않으면서 강경 일변도의 대여 투쟁을 벌였다.

시민들은 사소한 범법행위도 처벌받는데 전직 대통령들의 엄청난 비리를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고 방탄국회로 동료를 감쌌다. 겉으로는 민의를 받든다고 했지만 여론조사와 언론 탓을 하며 숨은 표에 기댔다. 이런 당을 지지해달라는 것 자체가 염치가 없는 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국정농단을 한 책임을 탄핵으로 물었는데도 경고를 외면하니 유권자들이 더 큰 매를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확인됐듯 지금 시민들은 정치권을 향해 새로운 가치와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은 경제성장과 그에 따른 부의 편중보다 공정한 분배, 복지를 통한 삶의 질 향상, 지방분권 등에 더 주목하고 있다. 전통적인 보수의 덕목보다는 진보적 가치에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보수가 이런 가치를 등한히 하는 한, 또 시대정신을 반영한 새로운 철학으로 무장하지 않는 한 보수 재건은 요원하다. 보수당들이 진정 정치적으로 재기하고자 한다면 기득권을 버리고 보수의 철학과 노선을 재정립하는 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한·미동맹이 중요하지만 동맹 만능주의에만 의존하는 안보관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시장이 만능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시장의 실패에도 대비할 줄 알아야 한다. 제대로 된 복지정책을 펴 보지도 않고 과잉복지를 외치는 것은 기득권을 강화하겠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비현실적이라면 비판만 하기에 앞서 시민을 향해 대안을 내놓는 자세가 필요하다. 청년 실업률 해소를 위해 보수적 해법이라도 내놓으면서 비판해야 설득력이 생긴다.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건강한 토론을 통해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를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보수 재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통한 새 리더십 구축에서부터 당의 전면적 쇄신, 나아가 당의 해체까지 거론됐다. 보수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혁신을 외쳤지만 시민들이 다 시늉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 바뀐 세상에 맞는,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보수의 가치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합을 외치기 앞서 비전을 세우고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시민들은 어떤 보수냐를 묻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나라가 통째로 (민주당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탄핵의 분노가 가시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아직도 참패 원인을 바깥에서 찾고 있다. 성찰이 먼저다. 보수 없는 정치는 위험하다. 지금이 보수 재건의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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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교육감 열풍이 4년 만에 재연됐다. 13일 치러진 전국 시·도교육감 선거 개표 결과, 17곳 가운데 서울·경기·부산 등 최소 12곳에서 진보 성향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대거 탄생한 진보 교육감들의 교육혁신 성과에 유권자들이 합격점을 매긴 것으로 평가된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 추진에도 탄력이 붙게 됐다. 과거 누리과정 예산, 혁신학교 확대 등을 두고 보수 정부와 진보 교육감 사이에 빚어진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은 낮아졌다.

선거 과정을 살펴보면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4년 전만 해도 일부에서 ‘포퓰리즘’이라며 깎아내린 무상급식 등 교육복지 공약이 이번에는 진보·보수 후보를 불문하고 ‘대세 공약’이 됐다. 교육의 공공성 강화가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당선된 교육감들은 물론 교육부도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줄이고 ‘배울 권리’를 보장하는 교육복지 확대 요구에 적극 부응해야 할 것이다.

교육감은 예산 편성과 인사, 학교 설립·폐지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 ‘교육 소통령’이다. 그럼에도 선거는 주목도가 떨어진다. 정당 공천이 없는 데다 초·중·고생 자녀를 두지 않은 유권자들은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교육의 주체이자 이해당사자인 청소년들은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이런 모순이 없다. ‘깜깜이 선거’ 문제를 개선하려면 선거연령을 낮춰 학생들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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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에서 예상대로 여당이 압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중 대구·경북·제주를 제외한 14곳을 석권했다. 국회의원 재·보선 12곳 중에서도 민주당은 후보를 낸 11곳 모두 당선됐다. 보수야당의 궤멸적 참패다. 역대 선거에서 보수정당이 이렇게까지 패한 것은 처음이다. 시민들은 야당을 철저히 심판했다. 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여당과 치열한 정책 경쟁을 벌이는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사사건건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으며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한 데 대한 반발이 컸다. 한국당은 급기야 역사적인 한반도 데탕트 흐름조차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며 냉전보수의 몽니를 부렸다. 홍준표 대표는 연이은 막말로 보수의 품격을 떨어뜨렸고, 대안 없는 비판으로 시민을 짜증나게 했다. 무엇보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무참한 패배를 맛보고도 구태의연한 수구정당 행태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던 게 많은 시민의 등을 돌리게 했다. 한술 더 떠 시·도지사 후보마저 흘러간 ‘올드보이’를 줄줄이 기용했으니 유권자의 감동이 있을 리 없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 국정성과를 평가받는 첫 심판대라 할 수 있었지만 시민들은 되레 야당에 회초리를 들었다. 

이제 보수야당은 당의 존폐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총체적 위기에 처했다. 홍 대표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했는데 당연한 얘기다. 관심은 향후 보수야당의 재편이다. 지금 한국당 지지율은 11%, 바른미래당은 5% 안팎 정도다. 두 정당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민주당 53%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선거 결과 한국당은 ‘TK(대구·경북) 자민련’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 국정은 여당과 야당의 두 축이 균형을 잡아야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지금은 그 한 축의 작동이 멈춘 상태나 마찬가지다. 보수진영은 통렬한 반성으로 재기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종북 이데올로기로 시민을 편가르기했던 극단적인 정치로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새로운 보수의 구심점이 되겠다는 바른미래당도 울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바른미래당은 광역단체장과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전패했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는 한국당 김문수 후보에게조차 밀려 3위에 그쳤다. 대통령과 각을 세워 보수 표심을 끌어모으겠다는 손쉬운 정치로는 새로운 보수를 갈망하는 시민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선거 승리에 도취해선 곤란하다. 민심은 냉정하다. ‘불패 신화’로 오만해진 집권세력의 독선에 시민들이 등을 돌린 사례는 허다하다. 정부·여당은 총선·대선·지방선거 3연속 승리라는 타이틀은 내려놓고 국정에 전념해 경제와 개혁, 협치에 성과물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지역주의의 단단한 벽에 의미 있는 균열을 냈다. 민주당 불모지인 부산·울산·경남에서 처음으로 단체장을 배출한 것은 수십년간 지속된 일당의 지역주의 패권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전체 투표율이 60.2%로 23년 만에 마의 60% 벽을 돌파한 것도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선거를 거듭할수록 높아지는 시민의 성숙한 주권의식과 참여 열기가 발휘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선거는 끝났다. 남은 것은 준엄한 주권자의 뜻을 정치권이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수구보수의 몰락은 한국 사회에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건강한 보수의 출현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진보와 보수 간 선의의 경쟁 속에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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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 청문회 취소되고 바로 검찰 조사 받는다면서?

- 어 그래. 나도 들었어. 의사가 증거를 공개했다지.

- 그런데 그거 공소시효가 지난 일 아니야?

- 아니래. 다른 일로 싸우다가 의사가 엿 먹이려고 확 불어버린 거래.

- 예전부터 소문이 돌더니 진짜였구나.

- 순진하긴, 당연히 진짜지. 아마 지금 떨고 있는 사람들 많을걸?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유전자 맞춤 아기가 제한적이나마 허용되기 시작하고서 채 10년도 안 지났다. 선천적으로 특정 질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지녀 아이 갖기를 망설이던 부모들에게는 복음과 같은 조치였다. 집안 대대로 심장이 약하다, 간이 안 좋다 등의 얘기를 하던 사람들은 환호했다. 더 심한 유전병 때문에 아예 결혼조차 포기했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좋지 않은 유전자들을 미리 제거한 유전자 맞춤 아기로 2세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유전자 조작을 하는 과정에서 지능이나 신체 기능들이 남들보다 우수하도록 하는 편법이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정부에서는 절대 그럴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감독, 관리하겠다고 했으며, 실제로 매우 엄격한 절차와 인증 과정을 거치도록 해 놓았다. 그렇게 해서 시행된 유전자 맞춤 아기는 의료 복지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찬사와 함께 빠르게 제도적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

그런데 유전자 맞춤 아기들이 취학 연령에 들어설 즈음부터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재벌이나 유력 정치인들 집안에서 태어난 몇몇 유전자 맞춤 아기들이 처음부터 ‘유전자 마사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애들은 원래 집안에 내려오던 선천적 유전 질환이 인정되어 유전자 맞춤 아기로 태어났는데, 그 과정에서 몰래 지능도 더 높고 근지구력이나 골격 등도 훨씬 뛰어난 유전자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전자 시술 과정은 모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의무였지만 사실 의사를 매수하거나 병원 차원에서 조작한다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결국 한 종합병원의 의사가 양심선언이라는 명분으로 유전자 맞춤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이면 거래가 있었다는 점을 폭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목된 당사자는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지낸 유명 정치인이었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단호하게 잡아뗐지만 의사의 증언이 워낙 구체적이라 결국 청문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폭로했던 의사가 그 정치인과 다른 일로 법적 분쟁을 하는 중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정치인에게 우호적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가 유전자 맞춤 시술과 관련된 비밀 의료 기록을 모두 공개하면서 일거에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 우리 어쩌지? 그냥 아이를 낳으면 유전병에 걸릴 확률이 50%인데….

- 괜찮을 거야. 설마 이번 일로 유전자 맞춤 시술 그 자체를 다시 전면 금지시키기야 하겠어?

- 바로 두 달 뒤가 총선이라서 그래. 선거 때마다 다시 금지시키겠다는 공약이 계속 나왔잖아.

- 하긴 그 정당이 이번에 의석수가 많이 늘어날 거라고 하지. 정말 어떻게 될까 불안하네.

- 만약 다시 금지된다고 해도 법률안 통과되고 그러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우리 그 전에 바로 아이를 갖자.

- 유전자 맞춤 아기 낳으려면 아직 저축을 더 해야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당신 말대로 서두르는 게 낫겠어.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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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밝히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된 지는 이미 15년이 지났다. 섬세한 유전자 편집을 가능하게 해 주는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인 크리스퍼(CRISPR)가 이미 등장했으며, 작년에는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편집 시술이 시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듯이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인류의 의료 복지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나 세기적 과학기술은 늘 세기적 윤리 문제와 쌍둥이로 태어난다. 이런 유전공학 기술들이 사회에 전면적으로 수용된다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유전적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일어날 것도 틀림없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늘 우리에게 어려운 선택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윤리적 상상력은 계속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21세기는 무엇보다도 거대한 시행착오의 시대로 기억될 것 같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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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생 청년 김정은은 53년생 문재인을 만났고 46년생 트럼프를 만났다. 83년생인 나보다 한 살이 어린 그는, 좋든 싫든 한반도 현대사의 중심에 놓였다. 내가 그라면 많이 두렵고 외롭고, 막막할 것 같다. 그래서 정상회담에 나선 그의 발걸음, 표정, 단어 선택 같은 것을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어 지켜보았다. 젊은 그가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역사적 개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냈다. 젊은 사람 치고는 잘하네, 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실정치에 나선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내고 있다. 기성세대 정치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수를 놓으며 어떻게든 함께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분투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북한에 84년생 김정은씨가 있다면, 2018년의 대한민국에서 이름을 알린 80년대생 청년은 아마도 82년생 김지영씨겠다. 그는 실존 인물은 아니고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다. 연예인들을 제외하고는 그만큼 눈에 띄는 청년도 별로 없었다. 78년생인 작가가 친구나 선후배들, 그리고 자신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고 후기를 남겼지만, 그 무수한 김지영씨와 그 친구들은 소설 바깥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경계에만 계속 머물러 있고 중심부로 나오지 못한다.

주로 보이는 것은 82 ‘학번’들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더욱, 80년대생을 찾아보기는 어렵고 그 시기에 대학을 다닌 80년대 학번들만이 주류를 이룬다. 이른바 386세대들이다.

‘386’은 1990년대라는 특정 시기에 ‘3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이라는 조건을 그럭저럭 만족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기성세대의 동의어처럼 인식될 만큼 이 사회의 중추를 이룬다. 이번 2018년 지방선거에도 386을 비롯해 그 선배 세대들이 많이 출마했다.

반면 20·30대 출마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의 범위를 넓혀 만 39세 이하까지로 설정하더라도 9300여명 중 656명, 전체의 7%에 불과하다.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은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나면 이들의 당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개는 몇 %의 지지를 받느냐에 관심이 맞추어져 있는 수준이다.

단순히 청년을 위해서만 청년정치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우리 사회를 진보시키고 혁신을 불러온 여러 발견들은 청년의 호기심과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 경험이나 관록 같은 미덕들도 중요하겠으나, 주변을 둘러보면 그것이 별로 좋은 방향으로 쌓이는 일도 없는 듯하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는 식의 발화는 거의 틀림없이 좀 더 나은 제안들을 없던 일로 만드는 힘을 가졌다.

지금의 386세대가 30대 젊은 날에 한국 사회를 변혁시켜왔듯 지금의 30대에게도 그러한 힘이 있다. 386이라는, 20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어느 특정 세대만을 지칭해 온 그 용어는 이제 그 권력과 함의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때가 되었다. 이른바, 포스트 386을 맞이할 때가 된 것이다. ‘30대·80년대 출생·60세가 된 부모를 둔’, 그런 청년들이 존재한다.

80년대에 태어난 이 386들은 이제 사회 초년생의 모습을 막 벗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했고, 오전에는 반공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평화통일 포스터를 그릴 만큼 무언가 계속 좌우의 중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 사회를 감각했다. 중·고등학생이던 90년대에는 전에 없던 무한경쟁의 시기를 거쳤고, 대학생이거나 사회인이 된 2000년대 이후에는 자기계발의 서사와 함께 찾아온 최악의 취업난을 맞이해야 했다. 2018년의 386들은 거기에서 살아남은, 당사자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역량을 갖춘 세대다. 그에 더해, 이제 환갑이 되어 은퇴를 준비하는 그들의 부모들은 청년 이상의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자식-부모 간 부양의 역전을 걱정해야 할 만큼,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조력자이기도 하다. 포스트 386은 20세기의 386들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한 구조 안에 놓여 있다.

어느 시대에나 2030의 나이에 5060의 부모를 둔, 평범한 청년들이 있다. 386에서 의미를 갖는 숫자는 3과 6이다. 특정 세대에게 굳이 부여하지 않고도 계속해서 보편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는 이 3N6과 2N5들을 조금 더 현실정치로 끌어내야 한다.

386을 비롯한 기존의 세대들이 이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은퇴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김정은과 문재인이 손을 맞잡았듯, 그들이 정상회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동등한 눈높이로 만났듯, 길을 열어두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적어도 이번 지방선거처럼 93 대 7이 아니라, 비슷한 숫자가 되어 만나야 한다. 여기에는 만 25세 이상에게만 주어지는 지방선거 피선거권 연령이나 200만~5000만원에 이르는 선거기탁금을 낮추는 방안이 함께 고민되어야 하겠다.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분야에서든 마찬가지다. 그 시대의 가장 평범한 청년들이 주변의 문화와 제도를 바꾸기 위해 고민하고 직접 움직일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들이 동등한 권력을 가지고 발화할 수 있을 때,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 하고 정중하고 힘 있는 제안을 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386들의 분투를 기억하며, 건투를 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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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왕실의 금기를 깨트린 파격이자 세기의 결혼으로 전 세계의 관심을 모은 영국 해리 왕자와 할리우드 여배우 메건 마클의 결혼식. 결혼식 전 언론에서는 신랑과 신부의 복장에 관심이 쏠렸다. 해리 왕자의 예복은 다름 아닌 군 예복이었다. 7년 전 윌리엄 왕세손도, 그 아버지 찰스 왕세자도 결혼식에서는 모두 군의 제복을 택했다.

왕가의 남자들이 나라와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 솔선수범하겠다는 뜻을 제복으로 내보인 것으로 필자는 이해한다. 제복에는 공익을 위한 헌신, 명예 그리고 책임정신이 깃들어 있고 또한 이를 구현할 권한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제복에 대한 국민적 존경과 무한한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같은 달, 우리나라에서는 안타까운 제복공무원 사고가 발생했다. 119 구급대원이었던 고 강연희 소방경이 응급 이송 중이던 주취자의 이유 없는 폭력으로 생명을 잃었다.

비단 소방공무원뿐만 아니라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을 신고자가 흉기로 찌르고, 불법조업 단속에 불만을 품은 선원이 해양경찰관을 바다로 밀어버리는 등 이유 없는 제복공무원에 대한 폭행 사례가 연평균 700여건에 달한다.

특히, 해양경찰의 경우 이런 폭력 행위가 주변 시선이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지고 바다라는 공간적 특수성으로 인해 더욱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현장 직원들이 이러한 이유 없는 폭력을 ‘감수해야 할 일’로 여겨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존경하는 부모이고 자랑스러운 자녀이며 사랑스러운 친구이자 연인이기도 한 제복공무원이 멱살을 잡히고, 물리고, 뺨을 맞으며 ‘이놈, 저놈’으로 취급받는데도 말이다.

마침내, 도를 넘어선 제복공무원에 대한 폭력과 사망사고 발생으로 지난 4일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사회 안전을 지키는 제복공무원의 적법한 공무수행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제복공무원에 대한 폭력은 어느 한 개인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사회 안전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다. 공공서비스를 받아야 할 대다수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로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인식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국민들에게 존중과 격려를 요구하기 전에 제복공무원 스스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정하고 정당한 공무집행이 우선 되어야 한다.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에게는 보다 따뜻하고 친절하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우리 해양경찰은 제복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먼저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신뢰는 싸라기눈과 같아 쌓이기는 어렵지만 흩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조심스러운 심정으로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다짐한다.

먼저, 바다 안전을 온전히 책임지는 해양경찰이 될 것을 약속하며, 우리 제복공무원들이 명예와 긍지를 갖고 국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격려와 응원을 부탁드린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책임을 완수할 수 있다는 용기와 사명감은 오로지 제복공무원을 믿고 따라주는 국민들의 응원과 격려 때문임을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

그 어떤 화려하고 값비싼 예복보다 국민의 신뢰와 응원을 받는 제복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평가받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박경민 해양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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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미국의 정상 간 첫 만남이었다. 70년이나 이어온 전쟁이 종결되고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의 시대가 열리는 시점이다. 제재 속에서 고립되어 세계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고슴도치처럼 바늘을 곤두세웠던 나라가 드디어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역사적 대사변’을 눈앞에 두고, 통일의 열망에 불타던 젊은 날처럼 내 가슴은 뛰지도 않고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지도 않았다. 이번 조·미(조선과 미국) 회담은 통일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고, 통일의 전제인 평화를 논하는 자리였다. 겨우 6·25전쟁 종결의 문턱에 들어섰다. 싱가포르에서 조·미 합의가 이루어졌어도 앞으로 핵무기 해체의 길고 지루한 실무교섭이 이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 트럼프의 변덕을 비롯해 무수한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비핵화 대 안전보장이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톱니바퀴가 맞물리듯이 순조롭게 돌아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미국이라는 거인의 패권에 맞섰던 다윗이 너무나 힘겨워서 싸우기를 그만두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위세를 부리고 고개 숙인 조선을 밟으려고 한다면 자존심을 걸고 결사 저항을 할 수도 있다. 미국이 조선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 대하면서 공동의 안전과 평화를 실현하려고 하는 겸허하고 진지한 자세가 요망된다.

그러나 트럼프가 그런 성인군자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부서지기 쉬운 싱가포르 합의를 확고하게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을 보증인으로 세우는 방법도 검토해볼 만하지만, 무엇보다도 남북이 일체가 되어 분명한 평화의지로 미국의 변덕이나 갑질을 누르는 것이 가장 유효할 것이다. 또한 그것을 위한 남북의 깊은 신뢰구축과 공조의 실행이 한국이 오랜 대미 종속에서 벗어나고 참된 주권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남북이 합심하면 미국이 기를 쓰고 방해하는 명분도 없어질 것이다. ‘스스로 욕되게 한 연후에 남에게 욕을 먹는다’고 했다. 외국에서 미군의 주둔과 군사적 농단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면 미국은 늘 “여러분들이 와달라고 해서 온 거지, 나가라고 하면 언제든지 나가주겠다”고 큰소리치곤 한다. 그러니 우리 남북이 힘을 모아 이 땅의 전쟁과 평화를 결정하는 주권자는 ‘우리’임을 상기시키고, 불가침, 평화, 남북교류와 협력사업의 추진, 조·미(한·중) 평화조약 체결, 통일의 길로 나가는 순서를 밟아야 한다.

해방과 더불어 우리 머리 위에 분단이라는 부조리가 마른 하늘에 번개처럼 떨어졌다. 그러기에 그 부조리와 분단의 현실에 분노하여, 통일을 열망했다. 통일이라는 대사변으로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에게 통일에로의 길은 앞을 내다보기도 어려운 길고도 머나먼 길이다. 따라서 통일은 남북의 소통과 협력으로 민족적 응집력을 제고하고, 통일에 대한 희망을 젊은이들과 공유하면서 남북을 아우르는 우리 역량을 증대시켜 나가는 일이 급선무다. 그 과정이 바로 통일이다. 통일이란 두 개로 깨진 그릇을 다시 붙이는 것이라기보다, 실질적으로 분단의 고통을 하나하나 해소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젊은이들의 통일 의식이 희박해져 가고 있다고 하니 큰일이다. 한구영은 ‘한겨레 프리즘’ ‘청년, 왜 평화에 냉담한가’에서 “지금의 청년세대에게 남북 화해와 통일은 당연한 정언명령이 아니다”라고 한다. 판문점선언 다음날의 조사를 보니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보인 행동이나 발언에 신뢰가 가느냐’라는 질문에 ‘신뢰가 간다’는 응답이 전체 평균 77.5%인 데 비해 20대는 65.3%로 가장 낮았다. 지난 1월의 조사도 비슷했다. “북한에 대해 압박보다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전체 61.8%가 동의하는데, 20대는 54.8%로 가장 낮았다. 평창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에 거부감을 나타낸 것도 20대였다.

젊은이들의 이 반응은 오랜 세월 속에서 분단의 아픔의 기억도 희미해졌으며, 분단이 일상화되어 무감각해진 탓도 있겠으나, 한구영 기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방을 열렬히 맞이한 원인을 일제와 일본지주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는 경제이익에 구하고 있으며, “통일이 열망의 대상이 되려면 독립이 약속했던 ‘자기 땅’에 대한 희망 정도의 약속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인간의 행동 동기 중에서 물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물론적인 과학적인 사고다. 그러나 해방에 대한 열광을 물질적인 동기에서만 구하는 것은 왜소화가 아닌지? 나는 해방의 열망을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생존본능에 있으며, 인간적인 자존심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을 통째 말살하려 한 일제에 대한 당연한 항거다.

한 기자는 젊은이의 통일 의식에 대해서도 “재벌들의 돈잔치로 귀착될 한반도 비전 앞에서 청년의 가슴은 뛰지 않는다. 공동의 자산을 나눌 비전 없이 청년의 냉소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경제적 동기부여만 하면 젊은이들의 통일 의식은 고조될까?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젊은이들은 한 푼의 이득도 없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진 사례도 많다. 그리고 2030세대의 개인주의적이고 취미적인 성향은 왜곡된 교육이나 정보기기에 지배당한 문화환경 탓도 있다. 무엇보다 인간을 극도로 소외시키고 분단하는 신자유주의에 그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가상적인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젊은이들은 소모적인 학력이나 스펙 획득 경쟁에 내몰린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항상 지극히 소수만이 성공할 수 있고 대다수가 탈락해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체제 속에서는 우리가 통일된다 해도 무한경쟁이 확대되어 인간소외와 파괴가 확산될 뿐이다. 상대평가나 업적주의의 폐해를 바로잡아, 모두가 함께 승자가 될 수 있는 공동체주의적인 ‘윈윈’(win win)의 원리로 모두 함께 통일시대를 지향해야 한다. 아울러 분단시대가 얼마나 처참하고 비인간적이었는가 역사교육도 해야 한다. 전쟁과 군대가 없는 사회의 전망이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과 기회를 줄 수 있는가! 거기서 통일된 미래에 희망을 품은 젊은이들을 배출할 수 있는 것이다.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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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이맘때는 통일부 출입기자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는 ‘약간 과장을 보태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자생활 중 보람도, 재미도 없던 시기를 딱 1년만 꼽으라면 이때다. 부지런히 기사를 쓰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도 기억에 남는 기사는 없다. 단지 남북관계를 다룬 기사 대부분에서는 ‘단절’ ‘중단’ ‘폐쇄’ ‘불허’ 등의 단어가 핵심을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경향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내 이름과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의 이름을 함께 넣어 검색해보았다. 2010년 5월24일에는 ‘통일부, 대북 신규투자 금지…방북도 불허’란 기사를 썼고, 그 다음날에는 ‘통일부, 체류목적 방북 25일부터 불허’란 기사를 썼다. 두 달 뒤에는 ‘개성공단 체류 80~90명 증원, 실익 없는 생색내기’란 제목으로 위기에 빠진, 그러나 폐쇄까지는 되지 않았던 개성공단의 소식을 전했다. 같은 해 3월 일어난 천안함 침몰사건이 그나마 남아 있던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해 5월24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홀을 결의에 찬 표정으로 걸어나와 대국민담화를 읽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상황에서는 북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도 쉽지 않았다. 현재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8년 전에는 ‘미지의 인물’이었다.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의 셋째아들에게 후계자 자리가 돌아갔다는 소식까지는 나왔으나 얼굴도 몰랐다. 심지어 이름도 김정은인지 김정운인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을 정도였다.

김 국무위원장의 후계자 지위가 공식 확인된 것은 2010년 9월28일이었다. 북한은 이날 개최된 당대표자회의에서 김 국무위원장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3대 세습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했다. 김 국무위원장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이후에야 전면에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었다. 어느 것 하나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었다.

김 국무위원장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것도 2012년 4월이 되어서였다. 그달 15일 북한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을 맞아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인민군 열병식에서 김정은 당시 노동당 제1비서가 연설을 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김 국무위원장의 목소리와 외모, 행동을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생전 모습과 비교하는 분석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김 국무위원장은 대외적으로 ‘잔인한 면모’를 먼저 보여줬다. 2013년 12월 고모부인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전격적으로 처형했다. 지난해 2월에는 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공항에서 독살됐다. 김 국무위원장은 도저히 상종할 수 없는 인물로 전 세계에 각인됐다.

북한의 차기 지도자로 알려진 뒤에도 10년 가까이 ‘미지의 인물’이었고 ‘미친 독재자’였던 김 국무위원장이 지난봄부터는 한국의 언론에 쉴 새 없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 4월27일과 지난달 26일에 연달아 열린 남북정상회담, 지난 12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대화가 가능한’ 북한의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어보이지만, 그는 어쨌든 밖으로 나왔다. 남북관계는 지난해에 비하면 상전벽해 수준이 됐다. 최소한 당장 내일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사라졌다.

따지고 보면 이런 변화는 지난해 5월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시작됐다. 대부분의 정치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북한의 독재자를 비난할 때 누군가는 희망을 이야기했고, 유권자들은 그 희망을 선택했다.

13일 1년여 만에 다시 선거가 치러졌다. 지방선거를 통한 선택은 어쩌면 대통령보다 우리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유권자들의 이번 선택은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홍진수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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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판결로 말한다.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건만, 오히려 법관이 판결로 말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으로 말미암아 비판대에 올라서이다. 관련자 검찰수사 여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이 자리에선 작금의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대법원장 1인에게 집중된 권한과 사법관료주의, 그리고 이와 맞물린 법관인사 특히 대법관 인사가 문제이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대법원장이 제청한 자를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관으로 임명한다. 대법원장의 독단적 제청권 행사를 제한하고자 법원조직법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규칙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두고 있다. 개인이나 단체는 대법원장에게 후보자를 비공개 천거하면, 대법원장은 명백한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을 추천위에 제시한다. 추천위는 적격 여부를 심사한 후 3배수 이상을 대법원장에게 추천하고, 대법원장은 그중 1인을 제청한다.

5월29일자 개정규칙은 대법원장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자를 독자적으로 추천위에 제시하도록 한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대법원장의 권한을 일부 축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법원장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위원 10명 중 3명만 변호사 자격이 없는 각계 전문가이고, 나머지 위원은 법조인과 법학교수이다. 위원의 구성 면면이나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하고 있는 의사결정구조를 감안했을 때, 대법원장이 원하는 자를 최종적으로 후보자로 제청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대법원장의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장의 권력은 비대해진다.

대법원 판결이 국민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막대한 파급력과 영향력을 고려할 때, 대법관 인사를 1인 내지 소수가 좌지우지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판사들이 판결보다는 대법원장의 의중과 동향에 더 신경을 쓰기 쉽고, 재판을 하는 것보다는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며 사법부의 고위직들과 연줄을 맺는 걸 선호할 공산이 크다.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형식적인 권한에 머물 때, 대법관의 위상도 더욱 올라가고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이 확고하게 보장된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대법원장의 권한을 견제하기 어렵다. 문호를 개방하자. 천거를 받을 것이 아니라, 대법관의 자격을 가진 자라면 자유롭게 공모할 수 있어야 한다.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자. 10인의 위원을 포섭하는 것은 비교적 쉬울 수 있다. 위원회의 규모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위원회에 비법조인과 무작위 추첨된 일반인의 참여를 늘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심사를 할 필요가 있다.

위원회는 판사의 일생을 판결로 평가해야 한다. 출신학교, 출생지역, 사법시험 성적, 사법연수원 등수, 도덕성 등도 대법관 추천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그보다는 판사 재직 동안 행했던 수많은 판결로 법관을 판단해야 한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하지만, 각양각색의 판결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기득권을 위한 판결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판결, 단순히 튀기 위한 판결과 사회변화와 현상을 잘 담아내는 판결, 고루한 판결과 시대를 선도하는 판결. 전문가와 일반인이 후보자들의 판결들을 면밀하게 평가하고 대법관 후보자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치열하게 거쳐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특정 정치세력이 제도를 악용하여 대법관을 독식하려고 할 것이란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세 차례의 정권교체를 이뤄낸 국민들의 수준을 감안하면, 한쪽에 치우친 대법관들이 득세할 것이란 우려는 기우에 가깝다. 오히려 자유로운 공모방식과 일반인이 심사에 참여하는 후보자 추천방식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대법관을 만들어갈 것이다. 대중영합적인 판결이 늘어날 것이란 걱정도 있을 수 있다. 하나 대법관은 튀는 판결로 인기몰이를 했다고 해서 쉽게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위원회에 전문가집단의 심사가 중요한 과정이므로 집단지성이 작동할 것이다.

법원 내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다. 게임의 규칙이 변하기 때문이다. 대법관 중 일정 수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도입하고, 시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보완해가며, 대상자를 확대해가는 방식도 고려해 봄직하다.

법관은 판결로 말해야 한다. 법정 내에서 판결이 권위를 갖는 것을 넘어서 판사의 일생이 판결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래야 법관은 판결에 더욱 심사숙고할 테고, 진정한 의미에서 법관이 판결로 말하는 것이 된다.

<김정현 전북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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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말 줄임 사자성어가 유행. 이부망천이라던가. ‘이’혼하면, ‘부’부가 더 잘되고, ‘망’하면, 알바 ‘천’국에 가면 되징.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수박은 먹고 헤어지자구. 바야흐로 수박이 제철 아닌가. 아점수저. 아침 점심 먹고 수박도 먹고 저녁까지 먹으면 하루가 끝. 저녁 먹고 나서 수박을 먹었다간 자다가 오줌 마려워 깨야 되니까, 수박은 각오하고 먹어야 해.

웅성웅성 모여 나눠 먹을 땐 수박만 한 과일이 없지. 요샌 평화의 길로 접어든 북녘 친구들이 넘 예뻐서 무등산 수박을 한 트럭 보내주고 싶을 정도. 미안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얼굴이 잘 여문 수박을 닮았다. 어떨 땐 백두산 호랑이 같기도 하고 말이지. “동무! 최고 존엄에게 이런 말 해도 되는기오?” 힝. 여긴 자유대한이오. 우리 한번 잘해봅시다잉!

나는 사이다를 넣은 수박화채를 잊지 못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 최루탄 연기를 뚫고 대학가 모퉁이 누나랑 둘이 자취하던 친구에게 갔다. 골목 입구 부식점에서 값싼 쬐고만 수박을 한 통 샀다. 대학생 누나는 마침 일찍 들어와 감은 머리를 선풍기에 말리고 있었다. 사간 수박은 덜 익었나 맛대가리가 영 없었다. 누나는 냉장고에서 얼린 얼음을 꺼내고 사이다를 부어 화채를 만들어 주었다. 우린 박수를 치며 집어먹었다. 마침 기타가 있어 뽐낼 겸 ‘시 코드, 에이 마이너’ 어설픈 노래를 불렀다. 누나가 내 곁에 당겨 앉았다, 나는 숨이 가빠졌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국….”

식당을 하는 엄마에게 꼬맹이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개밥을 주자며 조르자 엄마 왈 “저 손님 남은 밥으로 주자. 조금만 기다려봐.” 얼마 있다가 아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 저 손님이 개밥까지 다 묵어버렸어요.” 헉. 수박은 개밥이 못되어 다행인 과일. 그날 다 먹어버리길 잘했지 정말. 누나의 키다리 남자친구가 불쑥 나타났다. 친구는 자리를 비켜주자며 눈치를 줬다. 거리엔 수박 같은 가로등이, 밤하늘엔 수박 같은 보름달이, 내 가슴엔 수박만 한 눈물이 쿵쿵 떨어졌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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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왔다. 아이와 부모의 행복에 대한 의견 차이가 집안 싸움이 된 가족이 또 왔다. 최근 이런 유의 상담이 꽤 비중을 차지한다. 아이는 ‘행복하게 살고 싶으니까 자신을 그냥 내버려둬달라’고 하고, 부모는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너의 무기력일 뿐이고, 결국 삶을 포기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로 행복이 찾아오는 길은 그 길이 아니라고 한다. 아이는 작은 가게로부터 행복이 온다고 하고 부모는 대기업이 행복을 키워준다고 한다. 아이는 래퍼로 데뷔하는 것이 행복이라 하고 부모는 취미 이상일 수 없다고 한다. 젊은 아들은 버스킹으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 행복이라 떠난다고 하는데, 부모는 그런 만행을 저지르기 전에 뼈빠지게 일해서 집부터 사놓는 것이 할 일이라고 한다.

아이는 문신을 해서 멋진 몸을 만들면 행복해질 것 같다는데, 부모는 ‘드디어 범죄조직으로까지 진출하는구나’라고 한다. 아이는 대학을 가지 않고 차라리 그 돈으로 자신의 작은 식당을 열고 싶어한다. 이른바 심야식당을 열어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하는데, 부모들은 TV에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과 현실은 다르다고 말한다. 차라리 그 열정으로 공부해서 어디라도 대학을 나오라고 한다. 젊은이가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나의 행복에 부모가 너무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자, 부모들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며 밉다고 역정을 낸다. 그러면서 ‘도대체 요즘 아이들은 자신이 행복하게 살 준비를 하는 것일까? 이런 삶의 자세로 아이들이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 온통 걱정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은 세대도 달라지고, 시대도 변하여 우리의 행복은 부모들의 행복과 달라졌다고 말한다. 좋아하지도 않는 밥 사주면서, 마치 지금처럼 살면 굶어죽을 것처럼 말하는 부모는 단지 꼰대일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세대들 중 일부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다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단지 순간의 기분일 뿐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얼마전 언론에서 전한 ‘사토리(득도)’는 진정한 깨우침이 아니라 욕망하지 않기, 무책임하게 살기에 다를 바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멀리 덴마크에서 왔다는 ‘휘게’, 스웨덴의 ‘라곰’, 프랑스의 ‘오캄’ 등 작은 행복은 아이들이 생각하는 그 방식으로 가볍게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행복은 하드워크이고 고생 끝에 찾아오고, 고진감래의 맛으로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상담 장면에서 행복의 방향을 놓고 다투는 부모와 젊은이들은 조금 낫다. 아예 이번 생에 태어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그룹의 친구들은 행복에 대해 묻지도 않고 행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헬조선, 흙수저의 이생망 그룹에게 다음 생에는 어떻게 태어나기를 바라는지 물었더니,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다음 생에는, 돌이나 나무 혹은 무생물로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부모, 기대, 행복… 이런 단어가 없기를 바란다고 한다. 행복은 평화로운 죽음이라고나 할까, 큰 고통 없이 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생각보다 빨리 죽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다는데 이유는 살면 살수록 고통만 커지고 해야 할 고생의 숫자만 느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증거가 바로 부모들의 삶이라고 한다. 살아갈수록 행복하다고 하는 어른들보다는 ‘헛살았다, 괜히 살았다, 헛고생했다’는 어른들을 더 많이 만났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한국에서 자살을 많이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고 한다. 불행하기 때문이고 행복할 가능성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마음은 부모의 식민지이고, 부모의 마음은 옆집의 식민지, 친족들의 식민지라고 한다.

무라카미 류라는 소설가가 자신의 조국인 일본에 대하여 다 있는데, 희망만 없는 나라라고 했듯이 지금의 젊은이들은 우리나라에 대하여 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여기는 행복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 기대, 갑질, 태움, 무시, 혐오, 차별 등으로 인하여 행복으로부터 멀어진 사회. 의무와 부담만 가득한 불행한 나라가 바로 이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문재인 정부에. 지금 우리는 새롭고 다양한 행복에 대해 논하기 시작해야 한다. 국민행복회의를 열고 국민행복의 다양한 모델을 함께 제시했으면 한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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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지방의원, 교육감 등 향후 4년간 지역살림을 이끌어갈 시민대표를 뽑는 지방선거일이 밝았다. 이번 선거는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이후 7번째 맞는 것이다. 지난 23년의 성과를 토대로 풀뿌리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책무가 유권자에게 있다.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유독 시민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예고된 데다 여당의 압도적 우세로 판세가 일찍 기운 까닭도 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원인은 여야 정치권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당과 후보들은 민생을 튼튼히 하면서 시민의 삶을 향상시킬 비전과 지역 특성에 맞는 발전 공약을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선거 막바지 무분별한 정치 공세와 도덕성 검증을 빙자한 추문 들추기 등으로 유권자를 실망시켰다. 교육감 선거는 유권자들이 출마자가 누군지조차 모른다고 할 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현실정치가 아무리 실망스러워도 한탄만 한다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시민의 권리는 포기해놓고 비판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사전투표율 20.14%의 열기를 이어가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전진시키는 좋은 방법은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다. 잘못된 선택을 하면 그 대가는 온전히 유권자가 치러야 한다. 마지막까지 공약을 따져서 조금이라도 낫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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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예산 편성 과정에서 부처예산을 기획재정부가 가위질하는 것을 두고 남북경제협력을 위한 재원마련에 따른 조치가 아니냐는 풍문이 관가에 돈 적이 있었다. 진위 여부야 당장 확인하기는 어렵겠지만 기실 그간의 격변하는 한반도 정세 탓에 남북관계에서 돈 문제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그러나 어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출한 비핵화에 관한 합의가 이행되고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체제를 보장받는다면 북한의 개방은 서서히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남북경협에 따른 재원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일찌감치 우리 정부는 남북이 종전의 대결구도를 청산하고 공존구도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미리 준비해놓은 바 있다. 남북협력기금법에 따라 설치된 남북협력기금이 바로 그것이다. 처음 기금이 조성된 1991년에 250억원으로 시작하여 올해 4월까지 총 13조원가량이 조성되었다. 모으기만 한 것은 아니고 법에서 정하는 용도에 따라 기금에서 꾸준히 집행되어왔다. 그래서 쓰고 남은 적립금은 2017년 말 기준으로 대략 8200억원 정도가 된다. 한편, 기금 외 다른 재원조달 창구로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의 활용을 생각해볼 수 있다. 법적인 걸림돌이 있긴 하나 이를 해소한다면 남북경협사업에 투입이 가능하다. ODA 전체 예산은 올해 3조원가량이 잡혀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재원수준으로 앞으로의 남북경협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물론 경협비용이란 것이 사업의 주체, 내용과 규모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어 적정 재원규모도 딱 부러지게 내놓을 순 없다. 그렇지만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기 전의 지출 추세로 보자면 현재 수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다. 개념상 적지 않은 논란이 있긴 하나 아무튼 통일비용을 계산해 이를 필요재원의 최대치로 잡고 협력단계에 따른 재원규모를 거꾸로 가늠해볼 수도 있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통일비용이 20년간 대략 3000조원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남북이 통일된다고 가정했을 때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0년 8·15 광복절 축사에서 통일세 도입을 제안해 통일비용에 관한 논의가 잠시 활발히 이루어진 적이 있다. 당시 연구기관 등에서 내놓은 통일비용은 적게는 수십조원에서 많게는 수천조원으로 제각기였다. 이러한 편차는 가보지 않았던 길에 대한 예측이 그만큼 쉽지 않음을 방증한다.

이 전 대통령이 통일세 문제를 끄집어냈을 때 각계에서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먼 훗날을 미리 대비하자는 뜻으로 아무리 좋게 받아들이려 해도 당시 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관계에 비춰본다면 제안이 너무나도 뜬금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급변한 한반도 정세만큼 남북경협을 위한 재원조달이 예상보다 시급해질 수 있다. 남북협력기금과 ODA 예산뿐만 아니라 국채 발행, 국내외 민간부문의 투자, 국제사회·기구의 공여 등도 자금조달 창구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모름지기 경협의 초기 단계에서는 우리 정부의 자금이 주된 돈줄이 될 터다.

이 말은 결국 증세를 포함한 재정개혁에 관한 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매사에 철저하기로 소문난 독일도 통일비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낮게 잡아 재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여러 심각한 문제와 갈등을 호되게 겪은 바 있다. 우리는 독일의 사례를 지렛대 삼아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재정개혁의 틀 안에 경협에 따른 재원소요가 반영돼야 한다. 또 증세가 필요할 때가 반드시 도래할 것이므로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불필요하거나 새고 있는 재정지출을 반드시 도려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남북경협을 위한 재원조달 논의가 심도 깊게 시작돼야 할 시점이다.

<김현동 | 배재대 교수·조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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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장면이다. 지구상 가장 오랜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두 나라의 지도자가 세계 앞에 함께 섰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무실 책상의 핵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상대를 절멸시킬 수 있다고 장담하던 군 최고 사령관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했던 이 땅을 한동안 전쟁위기의 불꽃이 튀는, 더 위험한 곳으로 바꿔 놓았던 적국의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이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나 손잡고 대화하고 중요한 합의에 이를 수 있음을 증명했다. 가짜뉴스 같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운명의 여신은 치명적인 무기가 없을 때가 아니라, 그걸 손에 쥐었을 때, 북·미 양측에서 노련한 지도자가 나타났을 때가 아니라, 경험이 부족하고 불안정하며 과격해 보이는 지도자가 등장했을 때를 기다려 고난도·고위험 과제를 안겼다. 이 운명의 장난으로 두 사람은 정상회담 쟁점을 충분히 협의하지도 못한 채 마주 앉아 주요 의제를 담판해야 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가 세부 사항을 다 이해했는지도 불확실했다. 트럼프는 아직 북한 문제를 원만하게 다룰 참모진용을 다 갖추지도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두 사람이 정말 북한 비핵화와 체제 보장 문제를 해결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싱가포르 회담 전 미국 주류, 혹은 워싱턴 기득권이 쏟아낸 비핵화 비관론과 트럼프 비판은 문제가 많다. 우리 한국인은 트럼프가 회담을 수락할 때 절묘하게 기회를 포착했다고 평가했지만, 미국 주류는 회담 자체가 보상해주는 거라며 취소를 다그쳤다. 우리는 트럼프의 북한 체제 보장 약속을 당연시했지만, 미국 주류는 ‘어떻게 독재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우리는 트럼프가 비핵화를 위한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비로소 그가 북핵 문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지만, 미국 주류는 그가 뒷걸음치기 시작했다고 비난했다. 우리는 트럼프가 회담 성공을 빌 때 함께 빌었지만, 미국 주류는 회담 실패를 장담했다.

이들 미국 주류 상당수는 과거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룹, 즉 민주당,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진보적 싱크탱크들이다. 그런데 이처럼 이율배반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트럼프가 싫어서 트럼프의 한반도 정책도 싫어하게 된 결과로 보인다. 자신들도 풀지 못한 북핵 문제를 트럼프가 해결할 것 같은 불안감, 시기심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당은 그럴 자격이 없다. 민주당과 오바마는 날로 악화하는 북핵 상황을 방치하다 트럼프에게 떠넘긴 책임이 너무 크다. 오랜 세월, 불안과 전쟁위험을 짊어지고 살아온 우리 한국인에게 평화는 김정은과 트럼프의 호오(好惡)로 좌우될 수 없는, 절실한 삶의 문제이다. 우리가 싱가포르 회담이 다시 없는 기회임을 본능으로 알아채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북한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 주류는 감지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피부로 느끼는 몇 가지 변화가 있다. 모두 북한의 새 지도자 등장과 관련이 있다. ‘완전한 비핵화.’ 지도자가 바뀌지 않았다면 공허한 구호로 끝날 수도 있는 약속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비핵화를 토대로 새로운 국가발전 전략을 세움으로써 불가역적 성격을 부여했다. 트럼프가 회담을 취소했을 때 굴욕을 감수하며 회담 개최를 요청한 것은 비핵 발전 전략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우리 한국인이 ‘완전한 비핵화’ 한마디에 속은 것이 아니다. 트럼프도 속지 않았다. 미 대통령 가운데 그만큼 북핵 폐기 가능성을 믿고 집요하게 파고든 이가 없다.

남다른 감각으로 북한 변화를 눈치챈 그는 적시에 손을 뻗어 기회를 낚아챘다. 미국 주류는 모르지만 트럼프는 알고 있는 것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미국 주류가 비핵화를 믿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 주류의 시선을 따라 북한만 바라보면 비핵화는 불가능하다. 비핵화를 평화체제 및 북·미관계 정상화와 엮은 공동성명이 확인해주듯이 비핵화는 북·미 협상의 종속변수이다. 김정은의 손을 떠난 것이다. 비핵화는 미국에 의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공동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핵화에 실패하면 미국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그걸 알기에 협상에 전력투구했고, 회담 이후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미국 주류처럼 그걸 모르고 회담 이후에도 계속 북한만 쳐다보거나, CVID가 공동성명에 없다는 사실에 집착하면 비핵화는 여전히 속임수로 보인다. 역사는 항상 최선의 인물에 의해 최적의 경로를 가지 않는다. 역사는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놓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는 우연과 사건으로 점철되어 있다.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은 트럼프라는 사건이 기회의 창을 여는 줄도 모른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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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두 다리 뻗고 평온하게 잘 수 있는 이 순간을 지키고 싶습니다.” 방글라데시 쿠투팔롱과 발루칼리 지역에서 로힝야 난민 지원을 위한 현장조사를 하던 중 들었던, 아직도 잊히지 않는 로힝야족 난민 압둘라의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 중 하나로 알려진 로힝야족은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 거주하는 이슬람교도들이다. 불교도가 다수인 미얀마에서 로힝야족은 종교를 이유로 차별받고 방글라데시계 불법 이민자로 불리는 등 박해를 받아왔다. 미얀마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로힝야족을 미얀마의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이들은 국적이 없는 신세나 마찬가지다.

로힝야족에게 국적뿐 아니라 거주지까지 잃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2016년 10월 라카인주에서 국경초소 습격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수백명의 괴한들이 라카인주 마웅토 등 국경지대에 있는 3개 초소를 습격해 9명의 경찰관을 살해했고, 사건의 배후로 로힝야족의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지목되었다. 이로 인해 미얀마 군부와 로힝야족 사이의 갈등은 심화됐고 미얀마 군부가 무장단체를 소탕하는 도중 로힝야족 민간인들에게도 끊임없는 위협과 폭력, 학살을 자행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지역으로 피신했고, 작년 8월27일 이후 이곳으로 넘어온 로힝야족 난민들만 현재 약 91만5000명에 달한다. 방글라데시 내 난민들이 급증하자 난민 주거지역에서는 여러 문제가 생겨났다. 난민들은 방수천막으로 만든 5평도 안되는 임시주거지에서 5~6명이 함께 살고 있다. 하나의 재래식 화장실을 9~10가구가 공용으로 사용해야 하며, 하수도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악취가 진동한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위한 식량·식수뿐 아니라 보건·위생시설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굿네이버스 방글라데시는 이들을 돕기 위해 수차례 현장조사를 했고, 지방 공무원, 로힝야족의 인도적 지원을 위한 업무 조정 및 정보 관리를 담당하는 유엔 담당자, NGO 이해관계자들과 회의를 가졌다. 회의 이후 우리 단체는 초기 대응으로 작년 10월 초부터 식량과 생필품들을 7회에 걸쳐 5740가구에 배분했다. 또한 식량·생필품과 같은 일시적인 자원 배분을 넘어 이후 난민들을 지속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계획하고 있다.

그중 하나로, 굿네이버스는 현장의 사업 전문성을 바탕으로 난민 중 가장 취약한 계층인 아동과 여성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돕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난민캠프 내 아동들은 아동노동, 조혼, 유괴 및 아동학대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난민캠프 내 아동친화공간에서 아동권리 교육 및 재난 후 심리정서지원 사업을 진행하며 아동들이 신체적·정신적 안정을 갖도록 돕고 있다. 또한 여성들은 난민캠프 내에서 성희롱·성폭력 및 인신매매 등과 같은 성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에 모든 여성들이 언제든 편히 쉴 수 있는 여성친화공간을 마련하고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 성인지 개선 프로그램, 여성 역량강화 프로그램 등을 제공해 여성들이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6월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에서 여전히 억압받고, 고통받고 있는 로힝야족을 응원하며 함께 도움을 줄 수 있는 세계 시민들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한다.

<김양희 | 굿네이버스 방글라데시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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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 지하철 2호선 사당역에서 내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였다. 가장 쉽게 찾아가려면 8차선 찻길을 끼고 가다가 샛길로 빠지는 길목에 세워둔 표지판의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되었다. 그 길에는 이런저런 가게가 늘어서 있었고, 때때로 장이 섰다. 할머니들이 직접 키우고 캐왔다는 채소나 나물 따위를 들고 나와 시끌벅적했다. 그 길 끄트머리에 보육원이 있었다. 보육원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고, 아이들은 수시로 들락거렸다. 꽤 자유로워 보였지만, 그곳에는 나름대로 엄격한 규율이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이모들보다 언니와 형들이 동생들을 무섭게 다그쳤다. 특히 남자아이들 방에서는 서열이 확실하다고 했다.

그래도 그 아이는 한 살 많은 형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도리어 형들이 버릇없이 까부는가 싶으면 가만있으라고 했다. 같이 가게에 가면 형들이 군것질거리를 너무 많이 고른다고 타박하기도 했다. 아이는 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는 가게에 갈 적마다 흰 우유 하나만 집어 들었다. 더 고르라고 해도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이는 과묵했다. 하지만 사당역에서 보육원으로 오는 지름길을 알려준 건 그 아이였다. 아이는 다세대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뒷골목이 큰길보다 훨씬 빠르다고 했다. 그날 아이는 비탈진 좁은 골목길을 앞서 걸으며 길잡이를 해줬다. 뒤따라오는 형들이 떠들며 장난을 치면 아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보육원에 가지 않게 된 뒤로도 간혹 아이를 밖에서 만나곤 했다. 여전히 아이는 형들보다 의젓한 데다 공부도 꽤 잘하고 있었다. 말썽을 부리던 형들도 잘 자라고 있으니, 아이는 걱정할 게 없어 보였다. 아이는 수월하게 4년제 대학에 들어갔고, 그 핑계로 오랜만에 만나 같이 밥을 먹었다. 그날도 아이는 가장 싼 음식을 주문했더랬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아이가 휴학한 뒤로 형들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껏 그 아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그 아이도 서른네 살이 되었다. 그가 찾은 길이, 걷는 길이 행복한 길이길…. 민기야, 정말 보고 싶구나.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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