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진 교수가 작년에 펴낸 <신자유주의시대의 교육 풍경>은 사교육시장의 소비자이자 관리자인 ‘매니저 엄마’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이에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하는 기업가가 되라고 다그친다. 이에 발맞추어 매니저 엄마는 자녀의 자아를 기업가로 만들기 위해 어릴 때부터 자녀의 모든 것을 관리경영한다. 든든한 남성 부양자 덕분에 매니저 엄마가 계층상승을 위한 자녀교육에 몰입할 수 있다. “효율성과 경쟁을 중시하면서 ‘남성 부양자와 여성 전업주부’와 같은 가부장적 성별분업을 강화하고 자녀의 (교육) 성공을 중시하는 ‘성별화된 세대 간 전략’을 통해 사회 이동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저자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모성 담론이 계급을 불문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보고한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지방대생과 그 부모를 연구하고 있는데 내가 수집한 자료에서는 이런 담론이 잘 통하지 않는다. 지방에서는 남편이 가족을 온전히 지원할 경제 능력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가부장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죽어라 일하다 집에 돌아오면 바로 쓰러진다. 아내는 무능한 가부장 때문에 집 밖에 나가 임금 노동에 시달린다. 일 마치고 집에 와서도 ‘전업주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다시 가사노동에 돌입한다. 중산층도 아니면서 가부장적 핵가족 모델을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려니 둘 다 과잉 노동에 죽을 맛이다. 그러는 사이 자녀들은 경영되기는커녕 돌봄 공백 상태에 빠져 살다 결국 지방대에 간다. 이런 상황에서 ‘가모장’은 자녀가 공무원이나 되었으면 하고 막연하게 바라는 ‘공무원 엄마’가 된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요즘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공무원 엄마가 볼 때 공무원이야말로 이 표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지방대생은 좀 괜찮다 싶은 사기업에 지원하면 서류전형부터 떨어진다. 공기업에서는 힘들게 1차 전형을 통과한다 해도 최종면접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공무원시험은 기회가 평등하게 열려있다. 시험 자체가 계량화, 표준화되어 있어 시험 과정도 공정하다. 얼마나 시간을 성실하게 투자했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의롭지 못하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자아를 경쟁 밖에 놓는 것에 익숙한 지방대생은 애초부터 낮은 급수의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 그나마 돌봄 공백 상태에서 매사 ‘적당하게’ 살아왔기에 시험 준비도 느슨하게 한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다 해도 관료제 안에서 자율성 없는 조직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공무원 엄마는 자녀가 공무원이 되었으면 한다. 자녀가 자신과 같은 고된 삶 대신에 평범한 가정을 꾸려 살아가면 좋겠다. 하지만 이 바람은 사실상 자녀가 중산층 이상으로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계층상승 언어’를 대놓고 사용할 수가 없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지방에서는 계층상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가 공무원이 되어 가늘지만 길고 안정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자녀에게 공무원이 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지 못한다. 지원해준 것이 변변찮아 오히려 미안할 따름이다. 자녀 역시 고생하는 부모를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자이언티의 노래가 떠오른다. 아플까봐 가족끼리 걱정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서로 아프게 하지 말자는 강렬한 상호 다짐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가족이 무리하게 요구할 때 나는 아프다. 시험에 붙을 자신이 없는데 공무원 되라고 막 요구하면 지방대 자녀가 아프다. 경제 지원 능력이 없는데 사교육시켜달라거나 서울에 가 취업 준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심하게 요구하면 공무원 엄마가 아프다. 잘못하다가는 관계 자체가 끝장날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상대방의 요구에 적당히 맞춰주거나, 아니면 늘 하던 대로 성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상호 연민에 바탕을 둔 ‘자녀의 적당주의’와 ‘부모의 성실주의’가 서로를 증폭시킨다. 어쩌랴, 지방에 만연한 이 연민의 공동체를!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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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 전무의 물컵 던지기로 촉발된 대한항공 3세 자녀들의 갑질이 일가족 전체로 번지고 있다. 급기야 조 전무의 어머니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자신을 할머니라고 부른 인천하얏트호텔 정원 관리 직원에게 폭언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공항 라운지에서 식은 음식을 내던지고, 자택 리모델링 공사 작업자에게까지 폭언을 일삼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의 70대 노인 폭언·폭행, 장녀 조현아 칼네트워크 대표의 ‘땅콩 회항’ 등을 떠올리면 일가족이 ‘갑질은 어디까지 해봤어’라고 경쟁하는 듯한 모습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4월17일 (출처:경향신문DB)

총수 일가가 비행기 타는 날은 모든 부서에 비상이 걸리면서 사내에 “대통령 전용기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미국 국적의 조 전무는 2010년부터 6년간 대한항공 자회사인 진에어 등기이사로 재직, ‘외국인은 국적 항공사의 등기이사가 될 수 없다’는 항공사업법을 어겼다. 이 이사장 등은 해외에서 고가 제품을 구입한 뒤 세관을 거치지 않고 밀반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관세법상 밀수입에 해당한다. 오너 일가가 법 위에 군림하며 제멋대로 사익을 추구했다는 사실에 말문이 막힌다. 국토부, 관세청이 조사에 들어갔으니 조만간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이런 일가족에 국적사인 대한항공을 맡겨야 하느냐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금수저라는 것만 빼면 한번도 능력을 검증받은 적이 없다. 3남매는 시험도 치르지 않고 입사해 단기간에 임원 자리에 올랐다. 동시에 그룹 내 여러 계열사 경영도 병행하고 있다. 이들 계열사는 일감 몰아주기로 성장하면서 그들에게 천문학적인 급여와 배당을 챙겨주면서 승계구도도 완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재벌개혁이 필요한 이유를 이보다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때맞춰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항공사 업무와 관련된 법 위반자의 경우 항공사 임원 자격을 더욱 엄격히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마땅한 조치이다. 국민연금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 11.67%를 가진 2대 주주이다. 오너리스크에 따른 대한항공 주가 하락은 국민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의 손실과도 직결된다. 기업가치 훼손 우려가 있을 경우 지배구조 개선 요구 등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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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의 댓글 활동은 선거개입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고 사법부가 결론지은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일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원 전 원장이 재판에 회부된 지 약 5년 만이자 1심, 2심, 상고심, 파기환송심, 재상고심 등 다섯 번의 재판을 거친 결과다. 합리적 상식에 비춰보면 판단이 어렵지 않은 사안이 ‘법적 사실’로 인정받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장도리 원세훈 캐릭터 (2017년 8월 3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들이 지위를 이용해 특정 후보나 정당을 찬양·지지하거나 비방·반대하는 활동을 집단적·동시다발적으로 했다”며 “(국정원의) 사이버활동은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원 전 원장이 이 같은 선거개입을 지시하거나 관여한 사실도 인정했다.

격세지감이다. 2015년 7월 ‘양승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는 원 전 원장의 대선개입을 유죄로 인정한 항소심 판결을 ‘13 대 0’ 전원일치로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대법원은 쟁점이 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유무죄 판단을 하지 않았다. 대신 항소심에서 선거법 위반 판단의 근거로 삼은 핵심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교묘한 법률적 기교를 동원해 정권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뒤늦게 ‘김명수 대법원’이 구부러진 정의를 바로 세우기는 했으나, 사법부의 독립이 흔들렸다는 오명은 남았다. 김명수 대법원은 실추된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3년 전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게 된 배경과 진상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일컬어진다. 대의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핵심적 장치라는 뜻이다. 그 때문에 힘과 정보를 가진 국가기관이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국기문란이자 헌정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원세훈 대선개입 유죄 확정’의 의미는 원 전 원장 한 사람을 단죄하고 징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나라의 어떤 권력기관도 다시는 선거개입을 꿈꾸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가 있다. 마침내 마무리된 ‘원세훈 재판’이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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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9일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며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언론사 사장단 오찬간담회에서 “북한은 대북 적대시정책의 종식, 그다음에 자신에 대한 안전보장, 그것을 말할 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저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나 평화체제, 북·미관계 정상화, 북한의 경제 발전 지원 등에 대해 큰 틀의 원론적인 합의는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남·북·미가 비핵화와 북 체제보장에 접점을 찾았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비핵화를 거론했지만 회의적인 반응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과 보수층을 중심으로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하면서 핵동결이나 핵확산 금지를 제시하는 선에서 협상하려 할 것이라는 의심이 제기됐다. 북한의 절대적인 핵 의존성을 고려할 때 핵포기의 진정성을 믿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48개 언론사 사장들을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주재하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네 번째는 경향신문 이동현 사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방안에 대한 인식 차도 관건이었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를 의미하는 비핵화를 원하지만 북한은 ‘동시적·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비핵화 소요 시간도 1년 안팎의 단기간으로 잡고 있는 미국의 복안을 북한이 수용할지 미지수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전언대로라면 비핵화를 둘러싼 이런 우려들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지 않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핵개발의 명분으로 삼아왔고, 그 핵심으로 주한미군을 지목했다. 그러나 미국에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 견제라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이해가 걸려 있다. 따라서 비핵화가 이뤄진다해도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주한미군에 대한 입장 변화는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과거에도 남북 및 북·미 간에는 어렵게 합의해놓고 이행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면서 합의 자체가 틀어진 경우가 허다했다.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용과 대가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현실적인 세부 방안들을 마련하고 긴밀히 조율하는 작업도 긴요하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소중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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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23일은 세계책의날이다. 1995년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위대한 작가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1616년 같은 날 세상을 떠난 우연에 주목하여 정했다. 두 작가의 기일은 당시 스페인과 영국이 상이한 달력을 썼기 때문에 실제로는 다르다고 한다. 이 기념일의 정확한 명칭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World Day of Book and Copyright)이다. 그만큼 저작권은 저자의 창조적 산물인 책에 관한 핵심적 권리이다. 2016년 작가들의 국제 조직인 펜(PEN International)도 저작권 보호 선언을 발표했다. 그 전문(前文)은 “저자의 경제적 독립과 자율성은 표현의 자유에 핵심적이며, 그것은 다양한 목소리를 장려하고 다양한 목소리는 민주주의를 촉진한다”고 밝힌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 비춰 옮기면 저작권 보호는 촛불시민혁명의 성공을 위해 긴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저작권의 적용범위는 책에 한정되지 않는다. 음악, 미술, 과학기술 등 창조적 인간활동의 모든 분야에 해당되며, 정보기술혁명의 시대에 책 역시 전자책 등 과거에 없던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아우르게 되며, 미처 상상하지 못한 새 쟁점들이 생겨나면서 신속한 정책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저작권법이 시대를 앞서가기는커녕 1986년 전두환의 제5공화국 시절에 들어간 독소조항 때문에 혼란과 갈등을 부추긴다면 쉽게 믿을 수 있을까? 지난 3월13일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사무소 앞에서 수백명의 출판인은 ‘문화국가 건설을 위한 출판적폐청산 제1차 출판인대회’를 열었다. 이들의 으뜸가는 요구는 저작권법의 독소조항 62조 2항 개정이었다.

매우 복잡한 문제를 짧은 지면에 담기 어렵지만 핵심만 간추려 보자. 대학가에서 수업목적으로 “저작물의 일부분을 복제·배포·공연·전시 또는 공중송신”(저작권법 25조 2항)하는 것을 보상하기 위한 ‘수업목적보상금’ 제도 시행이 계속 미뤄지다 4년 전부터 대학들이 학생 1인당 연 1100~1300원을 납부하고 있다. 그런데 62조 2항에 따라 보상금 수혜 대상은 저자에 국한되고 출판사는 배제된다. 여기서 비롯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두 가지만 따져보자.

첫째, 수업목적으로 행해지는 저작물의 복제나 전송은 저자뿐만 아니라 출판사에도 피해를 입힌다. 이대로 가면 저자를 발굴하고 도와가며 땀 흘려 책을 만든 출판사는 전혀 보상받지 못한다. 실제 경제적 피해는 저자보다 출판사가 더 심하며, 복제나 전송 기술의 고도화에 따라 출판산업의 기반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 결국 이 독소조항은 책을 사랑하는 시민과 독서운동에 힘쓰는 이들, 각급 도서관, 서점과 인쇄업의 광범위한 피해를 초래하며 사회 전체의 지적 활력을 망가뜨리게 되어 있다.

둘째, 문체부가 수업목적보상금 수령단체로 지정한 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이하 복전협)는 저자들에게 보상금을 제대로 분배하지 못하고 있다. 복전협은 신문 공고 등 나름의 방식으로 저자의 보상금 신청을 받고 있지만, 그 운영이 투명하고 탄탄하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 쌓여 있는 수십억원의 미분배 보상금이 큰 액수는 아니다. 그러나 점점 규모가 커질 보상금을 저자에게 분배할 공정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행법을 고집하는 측은 문제를 저작권자와 출판권자 사이의 밥그릇 싸움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저자에게도 보상금을 제대로 배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 갈등이 저작권자와 출판권자의 이해 다툼이 아니라 양쪽이 동시에 피해를 입는 문제임을 입증한다. 하지만 문체부와 복전협은 낡은 법조문에 매달리며 아직 5공화국 시절에 머물고 있다.

다행히 문체부가 지난 3월의 출판인대회 후 조금씩 사안의 중대함을 인식하는 듯하다. 민관의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것으로 기대한다. 독소조항 개정만이 아니라 출판 선진국이 도입한 공공대출권, 사적복제보상금 제도 등도 공론화하여 저작권법 전체를 시대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아울러 지식과 가치를 창조하는 이들에게 합당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저작권에 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불합리한 관행을 일신해야 한다. 한국저작권보호원 등 관련 기구의 투명성과 민주성 강화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지난 정권이 벌인 국정농단의 주무대가 문체부와 산하기관이었음을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나온다. 그러나 아쉽게도 출판산업을 문화 선진국들처럼 국가 기간산업으로 바라보는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비전은 빠져 있다. 지금부터 민관이 함께 이 약점의 보완을 시작해야 한다. 마침 올해는 딱 25년 만에 민관이 함께하는 ‘책의 해’이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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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1회용품·비닐 사용 등 이명박 정부 이후 업계부담 완화를 내세워 풀어준 폐기물 발생 억제 정책을 되돌리기로 했다. 환경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에게 제출한 ‘폐기물 정책 변경내용 및 계획’ 자료를 보면 정부는 1회용 컵 보증금을 재도입하고, 비닐봉지 사용과 과대포장의 규제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폐기물 대책을 마련 중이다. 업계부담을 이유로 대거 후퇴시킨 폐기물 정책의 기조를 발생량을 줄이는 정책으로 회귀한다는 측면에서 당연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출처:경향신문DB

폐기물 정책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후퇴를 거듭했다. 2002년부터 도입된 1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2008년 3월에 폐지했다. 음식점 등의 1회용 종이컵과 도시락용기, 백화점 등의 종이봉투와 쇼핑백 관련 규제도 풀었다. 2009년엔 칫솔·치약·샴푸 등 숙박업소 1회용품 무상제공도 허용했다. 2010년엔 플라스틱 폐기물 부담금 면제와 경감 범위가 완화됐고, 2013년에는 테이크아웃 1회용품 규제마저 사라졌다. 2010년 이후 3차례에 걸쳐 화장품·음료류 등의 포장기준을 완화했고 이는 과대포장을 부추겼다. 이렇게 경제논리로 규제의 끈을 풀어준 대가는 컸다. 1회용 컵의 소비량은 2009년 4억3226만개에서 2015년엔 6억7240만개로 급증했다. 비닐 사용량은 2015년 기준으로 1인당 420개에 달했다. 핀란드(2개)와 아일랜드(20개)는 차치하고 그리스(2010년 기준 250개)와도 견줄 수 없다.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98.2㎏)과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64.1㎏)은 세계 1·2위(2017년)이다. 법적·제도적 규제가 사라지자 시민의 불감증도 커졌다. 오히려 정부가 앞장서서 1회용품 사용 억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경각심을 느슨하게 풀어준 꼴이다.

이번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계기로 재활용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재활용 대책 마련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원천적으로 발생량을 줄이는 쪽에 집중해야 한다. 예컨대 비닐봉지는 “방수가 되고 가볍지만 자신의 무게보다 수천배가 더 무거운 것도 담는 놀라운 물건”(수전 프라인켄의 <플라스틱 사회>)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놀라운 물건’의 평균 사용시간은 단 25분인데,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0~500년이다. 그런데도 이 환경파괴의 주범인 1회용 컵과 비닐봉지, 플라스틱을 무시로 들고 다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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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에서 두 달째 1인 시위를 하던 할머니가 쓰러졌다. 응급실로 실려간 할머니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곧장 다시 돌아가서 시위를 계속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비로소 사람들은 그의 주장이 무엇인지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인공지능 로봇을 동물보호법의 대상으로 인정하라!”

로봇을 동물로 인정하라니… 대부분 헛웃음을 짓고는 이내 관심을 돌렸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그 할머니의 사연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시간을 들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할머니는 40대 초반에 가족을 모두 잃고 홀몸으로 30년 넘게 살았다. 그러다가 실험적인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대상자로 선정되어 대화형 인공지능 로봇 하나를 들이게 되었다. 그 뒤로 5년 넘게 함께 살면서 할머니는 로봇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여길 만큼 아끼게 되었다.

말벗이 되어주는 것은 기본이고, 집 안팎에서 로봇이 주는 도움은 점점 커져서 이제는 생활환경의 일부가 아니라 할머니와 일심동체나 다름없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집 안의 온도와 습도, 상하수도, 주방의 조리 및 세척기, 식사 메뉴와 영양, TV, 보청기, 침대조정, 컴퓨터와 스마트폰, 이웃과의 소통, 달력과 알람, 안마기, 화장실 변기와 세면대, 건강검진 센서, 방범 등등 일상의 모든 것을 인공지능 로봇이 세심하게 관리하거나 보조해 주었다. 로봇은 모든 기기들을 사물인터넷으로 연결해서 할머니에게 최적화된 조건으로 서비스하도록 관리한 것이다. 또한 로봇에게는 간단한 조작을 할 수 있는 기계팔과 바퀴가 달려 있어서 할머니에게 돋보기를 찾아서 갖다주는 정도의 심부름은 직접 할 수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봇이 저 혼자 집 밖으로 나가더니 사라져버렸다. 할머니는 당황해서 스마트폰으로 계속 로봇을 불렀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다음날 경찰에 신고를 했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야 연락이 왔다.

독거노인들의 반려 로봇들만 골라서 해킹한 다음 집 밖으로 나오게 해서 훔쳐가는 일당들의 짓이었다. 로봇의 인공지능 모듈 등 핵심 부품만을 빼내어 해외로 팔아버리곤 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새 로봇을 받았지만 모든 환경을 처음부터 다시 세팅하고 학습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도둑들이 훔쳐간 로봇의 인공지능을 초기화해버린 바람에 할머니가 그동안 쌓아왔던 기록들은 모두 사라져버렸고, 로봇 회사에 남아 있던 백업 데이터도 초기화와 동시에 영구 삭제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몸체도 산산조각이 나서 친숙한 로봇의 몸체조차 회수할 길이 없었다.

할머니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도둑들이 재산권 침해에 대해서만 유죄 처벌을 받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반려동물들을 학대하면 동물보호법에 의해 처벌받듯이 로봇을 박살낸 놈들도 가중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하소연에 주변 사람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할머니는 고민 끝에 1인 시위에 나선 것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몇몇 노인들이 할머니에게 연락을 해오고는 돌아가면서 1인 시위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동물보호법에 로봇을 포함시키는 것이 곤란하다면 동물과 로봇을 포함하는 모든 반려존재에 대한 보호법을 제정하라고 주장했다.

인공지능 로봇은 단순히 재산권의 대상이 아니라 소유자와 정신적 유대관계를 지닌 정서적 반려체이며, 따라서 반려동물처럼 마땅히 보호해야 하고 박해나 손상을 가하면 그에 따른 처벌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로봇을 도둑맞은 피해자 위주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점점 더 모여들었다. 그들은 법적으로 로봇을 반려동물과 동등하게 인정하고 보호할 수 없다면, 별도의 법인격으로 정의해서라도 적절한 보호조치를 보장하라고 외쳤다.

일상에서 인공지능 로봇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

우리나라에서 동물보호법이 제정, 발효된 것은 1991년이다. 그전까지는 예를 들어 개를 훔쳐가서 잔인하게 도살해도 단지 재물손괴에 해당되는 명목으로만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동물보호법은 제정된 뒤에도 오랜 세월 유명무실한 상태였고, 동물에 대한 학대와 상해 행위에 실질적으로 죄를 따져 묻게 된 것은 근년에 들어서야 이루어진 일이다.

인공지능 로봇도 비슷한 단계를 밟게 될까? 로봇이 반려동물과 같은 법적 지위를 갖는 것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기술 발달과 이용자 정서를 고려해 보면, 위와 비슷한 시나리오가 금세기 중에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상당히 높을 것이다.

대화식 소통형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할수록 이용자와 맺는 유대관계는 깊어질 것이고, 이런 로봇에 대해 도난이나 상해가 발생할 경우 이용자는 단순히 재산상의 손해 차원을 넘어 상실감 등 정신적 피해도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이런 부분에 대한 법적 고려는 필요하다. 지금부터 이런 문제를 생각하고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결코 이르지 않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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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8일, 경기도 남양주 이마트 도농(다산)점에서 무빙워크를 수리하던 직원이 기계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스물한 살, 협력/하청업체 직원’, 이 프로필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2011년에는 이마트 탄현점에서 냉동기 점검 및 보수 작업을 하던 22세 협력업체 직원이, 2016년에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세 협력업체 직원이 세상을 떠났다.

젊은 사람의 죽음은 더욱 슬프고 안타깝게 다가온다. 어느 누구의 죽음이 그렇지 않겠느냐만, 아직 제대로 피어보지 못한 꽃의 떨어짐은 모두의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

그런데 사고 다음날 이마트 도농점의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안내문이 붙었다.

‘무빙워크 이용 안내, 현재 무빙워크 이용이 불가합니다. 지상 1층으로 이동하시는 고객께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빙워크를 이용할 수 없다면 1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안내해 두어야 한다. 당연히 붙여야 할 안내문이다. 그런데 이마트 측은 거기에 작은 글씨로 한 문장을 덧붙여 두었다.

‘쇼핑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마트라는 쇼핑몰, 그들에게 한 청년의 죽음은 ‘쇼핑하는 데 준 불편함’으로 규정되었다. 나는 누군가가 직접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안내문 사진을 보면서 몹시 참담했다. 동시에 모욕적이기도 했다. 이마트를 찾는 사람들이 모든 감정을 잘라내고 쇼핑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어디에서든 감정을 가진 하나의 자아로서 존재한다. ‘쇼핑에 불편을 드렸다’고 사죄하는 것보다, 그 자리에 국화라도 몇 송이 놓아두었다면, 마트를 찾은 사람들은 그를 애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한 문장을 덧붙이지 않았다고 해서 항의할 사람은, 내가 짐작하기로는 많지 않다. 만약 그러한 이들이 있다면 거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면 된다. 고객을 위해 그러한 문구를 적었다는 것은 염치가 없는 핑계다.

자본이 사람을 애도하는 방식이 대개 이와 같다. 무언가 세련되어 보이지만 보는 이들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문구를 하나 걸어두고 책임에서 이탈한다. 그것은 희생자가 아닌 자신을 위한 비열한 방식의 애도이고, 비판을 피해가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일 뿐이다.

며칠 전, 세월호 참사 4주기가 지났다. 나는 그날, 그 바다에, ‘관광에/낚시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는 것을 잠시 상상했고, 그러다가 곧 그만두었다. 물론 관광지와 쇼핑몰을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다. 특히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일은 가족의 저녁 밥상을 위해서 어떤 재난이 있더라도 계속되어야 한다. 다만, 안내판을 읽을 그들을/우리를, 계속 삶을 살아가야 할 우리를 애도할 감정마저 없는 존재로 격하시키면 안된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 감정에서 멀어지거나 무디어져서도 안되겠다. 누군가의 죽음을 두고 당신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함을 운운하는 안내판이 보이면 그 즉시 항의해야 한다. 마트든 어디든, ‘고객센터’라는 공간은 그럴 때 찾으라고 있는 것이다.

2018년 4월16일에도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도했다.

그것은 SNS의 프로필 사진에 노란색 리본을 더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잠시 희생자를 떠올리며 기도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이달에 문을 닫는 안산의 합동분향소를 찾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나에게도 내 나름의 애도 방식이 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서명을 할 때, 리본 모양을 그리는 것이다. 4년 동안 그것을 나의 서명으로 사용해 왔다. 그러는 동안 단 한 번 어느 점원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서명인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저, 그게… 추모의 의미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나에게 영수증을 건네며 “저도 앞으로 이 서명을 사용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정말로 리본 모양의 서명을 사용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물건을 살 때마다 리본을 그린다. 그 외에 내가 하는 것은 별로 없다. 다만 그렇게라도 일상에서 이 세월을 애도할 여유를 남겨두고 싶다.

사실 큰 재난을 애도하기는 쉽다. 우리가 아는 자본도 이때는 애도의 물결에 동참하거나 그것을 선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잔잔한 일상에도 재난은 찾아온다. 크고 작은 세월호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애도해야 할 대상은 자본에 종속되어 천박해진 이 세계 자체이고, 어쩌면 애도에서 점점 무디어져 가는 우리들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스물한 살 이명수씨의 명복을 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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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미혼모를 위한 히트앤드런 방지법을 만들어주세요”라는, 답변 대기 중인 청원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지난 2월부터 3월 한 달 사이에 무려 21만명이 서명을 한 것이다. ‘히트앤드런 방지법’이라는 말만으로는 그저 농담으로 생각할지도 모르나, ‘미혼모’라는 딱지를 떠안기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리는 아이 아빠들에게 법적으로 경제적 책임을 부과하자는 진지한 청원이다.

덴마크에서는 이미 실시되고 있는데, 미혼모가 되게 한 남성에게 매달 약 60만원의 양육비를 내도록 강제하는 제도로 발뺌하거나 도망치기 어렵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임신을 피하려 노력한다고 한다. 이런 제도가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인 어려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미혼모를 줄이는 데 나름대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내가 일하고 있는 단체에서는 지난 수년 전부터 ‘미혼모를 위한 숲태교’를 진행해오고 있다. 미혼모의 경우 대체로 청소년이 많기 때문에 주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출산 전에는 미혼모 시설에 입소하여 지내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관계가 활발한 때에 닥쳐온 고립, 미래에 대한 불안, 신체적 변화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숲태교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모처럼 자연휴양림의 맑은 공기와 싱그러운 녹음을 접하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고 한다. 숲태교는 산림자원을 매개로 전통적인 태교와 현대의 과학적 태교 이론을 수용하여 재창조한 신개념 프로그램이다. 우리 단체에서 숲태교의 개념을 세우고, 세미나를 열고, 프로그램을 다듬어온 지도 7년이 넘었다. 이제 임신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가 있고, 전국의 휴양림에서도 서비스하고 있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이다.

인간 최초의 학교가 자궁이라면, 인류 최초의 학교는 숲이다. 숲에서 길어올린 사유의 힘이 오늘날 인류문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학교인 숲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최초의 학교 프로그램인 태교가 바로 ‘숲태교’이다. 몇 년 전 리우+20 정상회의에서 다루어진 많은 의제 중 하나로 세계태교연맹에서 주관한 ‘세상을 구하는 9개월’이라는 테마가 있었다. 인간 최초의 학교인 자궁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야말로 세상을 구하는 길이라고 의제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는 숲태교가 세계보건기구(WHO)가 주창한 영적 복지의 시초이며, 산림복지의 첫 단추가 되고, 지구 환경을 구하는 지혜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구의 날, 지구의 미래를 구할 생명을 위해 우리는 또 숲태교를 준비하고 있다. 특별히 이중삼중 겹겹으로 소외된 ‘미혼모들을 위한 숲태교’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연간 발생하는 미혼모, 미혼부 3만여명 중에서 우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미혼모들은 기껏해야 몇 백명도 안된다. 99%의 미혼모들은 새 생명을 낳는 과정에서 단 한번도 자연의 둥지를 접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1박2일 프로그램을 연간 10회로 구성했으나, 올해는 5회로 줄였다. 이것은 생명을 오로지 예산이라는 산술적인 숫자에 대입한 결과이다. 저출산이니 인구절벽이니 탁상공론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의 새 생명이라도 귀하게 대접하자. 그러자면 우선 생명들의 둥지, 인간 최초의 학교를 다시 숲에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자연휴양림과 같은 훌륭한 둥지에 대해서는 임신부 쿼터제를 도입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예산은?’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생각보다 돈이 많기 때문이다.

<유영초 풀빛문화연대·(사)산림문화콘텐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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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70주년 추념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제주와 서울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고, 12년 만에 대통령이 위령제에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유족과 생존 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밝혔으며, “4·3의 완벽한 해결을 위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했다. 이렇게 보면 제주가 정권교체의 성과를 가장 두둑이 누렸다고 하겠다.

그러나 4·3유족회 등 4·3운동 쪽에서 70주년의 투쟁목표로 삼은 ‘정명’과 ‘미국의 사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4·3사건 당시 한국은 미군정 치하에 있었으며, 제주 민중에 대한 경찰의 포악질은 미군정의 감독 아래 이루어졌다. 1948년 한라산 입산 금지령이 반포된 이후에는 미 군함이 제주를 에워싸고 해안에서 5㎞ 이상의 입산 금지지역에 대한 함포사격으로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주도했다. 민중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묻게 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정명(正名)은 원래 공자가 한 ‘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리에 맞지 않으며, 말이 순리에 맞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가 없다)에서 나온 말이다.

논어에는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이상적인 정치를 공자에게 묻자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답하는 대목이 있으니, 제각기 자기 명분에 따라 행동하라는 말이다. 각자가 분수를 알고 틀을 넘지 말라는 봉건적인 신분윤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주 4·3운동에서 말하는 정명은 김석범 작가가 말하듯이 ‘민중의 역사’의 관점에서 4·3사건에 정당한 이름을 부여하고 “제주 평화공원에 누워있는 4·3 백비에 (정당한)이름을 새기고 바로 세우는 것”을 뜻한다.

93세의 재일동포 김 작가는 “제주 4·3 정명운동이 바로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 했다. 그 내용인 즉 ‘미군정 3년과 이승만이 정권을 잡기 위하여 친일파들을 끌어들인 엉터리 역사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자리매김’이라고 했다.

1999년에 성립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사건법)’에는 광주 5·18의 ‘민주화운동’처럼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말이 없다. 다만 2조(정의)1항에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했을 뿐이다. 즉 해당 기간에 일어난 폭력사태로 사람들이 죽은 사건이며,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무엇 때문에 폭력사태가 일어났는지 명시하지 않았다.

“친일파와 이승만 정권 같은 엉터리들의 역사인 해방공간 3년의 역사의 절반은 엉터리다.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바로 통일 조국, 친일파 척결이란 대한민국의 첫 번째 민주주의 운동이 제주4·3이었다는 정명을 백비에 새기는 것이다”라고 김 작가는 말한다.

그러니 정명운동이란 역사인식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 4·3사건은 오랜 역사를 통해 금기의 영역에 봉인되어 왔다. 유신독재가 무너지고 신군부정권이 막을 내리는 1990년대에 겨우 논의를 시작하고 1998년의 ‘냉전과 국가테러리즘’ 국제심포지엄을 거쳐 1999년에 4·3사건법이 성립하면서 4·3사건이 비로소 공식공간에 등장했다.

그러나 입법을 추진한 4·3운동 측의 입장은 4·3사건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고한 백성들이 느닷없이 학살당한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4·3운동 내부에는 두 가지 입장이 있었다. 하나는 무고한 양민학살설이고, 두 번째는 미군정의 민족분단과 반공 친일파 등용정책에 맞서는 ‘자주통일, 반미’ 항쟁이었다는 설이다.

실상은 당시 500여명으로 추산되는 남로당 제주지부 및 무장대의 지도핵심은 해방공간의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제주인민위원회 결성 등 정치운동을 주도하는 등 깨어있는 집단이었으며, 3만명이라는 4·3 희생자의 많은 부분은 무고한 사람들이었을 텐데, 4·3사건법 성립 당시 자유민주주의(반공) 체제하에서 합법공간의 확보가 선결 문제라는 현실주의에 밀려 ‘양민학살설’이 주류를 차지하고 통용되어 온 것이다.

70주년 추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습니다. …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습니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 제주에 많은 선물을 가져다주었으나, 역사인식에서는 낡은 ‘양민학살설’에 머물고, ‘양민’이라는 잘못된 용어를 사용한 점이 아쉽다. ‘양민’이란 지배자의 눈높이에서 백성을 양민과 비‘양민’으로 나누어 비‘양민’은 죽여도 된다는 함의가 있어서, 요즘 학회에서도 운동권에서도 ‘민간인’이라고 하지, ‘양민’이란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제주에서 학살이 자행되어 그 기억까지 말살된 다음에 4·3이 명맥을 유지해 온 곳이 2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정치난민들이 피란 간 일본이었다. 1950년대 재일동포사회에서는 4·3을 ‘인민봉기’ 또는 ‘인민항쟁’이라고 하는 선구적인 간행물들이 나왔다. 김석범 작가는 4·3사건을 인민(민중)항쟁이라는 데 초지일관하고 있으니, 이번 ‘민중항쟁’설의 부활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20년 전에 김석범 작가와 몇몇이 도쿄 신주쿠에서 술자리를 함께했다. 거기서 한 재일제주인이 “제주 4·3 비극의 책임은 군사모험주의에 치달은 남로당에 있다”고 하자, 김 작가는 그 말을 가로막고 “남로당도 책임이 있겠으나, 제주 4·3의 학살을 용인하고 제주에 함포사격을 가한 미국놈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열화와 같이 화를 내고 꾸짖은 것을 기억한다. 그 후에도 4·3운동의 선각자 김명식씨 등의 입장도 ‘인민항쟁설’이다.

‘항쟁설’은 그간 권력에 의해 압살되어 왔으나, 운동 측의 자기 검열과 자기 규제에 의해 금압되어 온 면도 있다.

그러니 4·3운동의 목표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전면적인 재인식과 연동되는 장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하겠다.

<서승 평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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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신발 뒤축이 닳아서 구둣방을 찾았다. 뒤축을 새로 붙이면 새신처럼 신을 수 있단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나귀나 되는 것처럼 수선한 신발을 신고 발길질을 해 보고, 푸륵푸륵 콧김도 날려봤다.

중동 지방이나 인도, 네팔, 머나먼 남미 안데스 산길을 여행하면 당나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돌길을 오를 때 당나귀를 타기도 하는데 힘이 천하장사. 당나귀와 몇날 며칠 같이한 적도 있었다. 짐을 나르기도 하고 나를 태우기도 하면서 산골마을 트레킹을 도와주었던 당나귀.

프란츠 카프카의 <꿈>에도 당나귀가 나온다. 꿈속 당나귀는 네 발로 걷지 않고 두 발로 일어서서 걷는데 은색 가슴 털과 배를 내놓고 다닌다던가. 도심에서 졸졸 따라다니며 짐도 들어주고, 폐지 줍는 할머니 언덕 오를 때 리어카도 밀어주는 이런 당나귀 한 마리 있었으면 좋겠다.

거짓 없는 투명한 세상을 이야기할 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이야기가 맨 먼저 떠오른다.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진실. 들을 귀가 당나귀 귀처럼 자란 사람들. 아무리 덮거나 속이려 들어도 당나귀 귀를 가진 사람들은 밝은 귀를 종그리며 금방 알아차린다. ‘잘 알아듣고, 잘 알아차린’ 사람들만이 진실의 세상을 사는 주인공들. 거짓의 세상을 밀고 가는 기계들과 달리 당나귀는 진실의 세상을 끌고 앞으로 간다. 주인 말을 잘 알아듣는 당나귀와 함께 산길을 걷는 즐거움. 자라다가 멈추는 손톱처럼 기운이 빠진 당나귀에겐 잘 익은 당근을 먹이자. 불쑥 또 힘이 자라면 다시 길을 출발. 오래오래 소금밭을 걸어왔는지 짠물이 고인 눈. 잔등을 쓰다듬어 가면서 당나귀와 함께 걷는 인생길.

시인은 당나귀 귀를 가진 사람들이다. 잘 들어야 잘 쓸 수 있지. 글을 쓰는 데 있어 경청만 한 비법은 없다. 사람의 말은 물론이고 자연의 언어도 알아듣는 시인. 영매처럼 다른 세상의 이야기까지 술술 들려주는 신비한 능력. 진실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우리 곁의 수많은 시인들 가운데 바로 당신. 어제보다 더 자란 귀를 만져보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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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건 컴퓨터야! 빌어먹을 평범한 컴퓨터!”

“…랩톱을 쓰셔야겠죠?” “아니. 난 ‘랩톱’을 원하는 게 아냐. 컴퓨터를 원한다고.”

“랩톱이 바로 컴퓨터예요.” “너 내가 그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지?”

태블릿이 ‘컴퓨터냐 아니냐’를 놓고 매장 직원을 진땀나게 하고 있는 이 남자는 <오베라는 남자>의 깐깐한 원칙주의자 ‘오베’다. 자신이 보기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젊은이들에게 밀려 40여년을 일한 회사에서 해고당한 오베는 랩톱이 컴퓨터를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임을 짐작 못한다. 태블릿은 키보드가 없어도 화면에서 조작 가능하다는 말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이 대목을 읽었을 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에게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상상하지는 않았다. 제품 설명을 이해 못해 물건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든다며 툴툴대는 ‘구닥다리’는 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계속 그런 착각 속에 살기란 쉽지 않다. 나이를 더할수록 내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늘어남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때때로 불안해진다. 이대로 나이를 더 먹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연령차별’(에이지즘)이라는 말이 있다. 나이에 근거한 사회적 차별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이 들 때 찾아오는 변화를 수치스러워하도록, 무수한 걸림돌을 용인하도록 부추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노인에 대한 연령차별은 자신 역시 나이 들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데서 출발한다. 문제는 연령차별이 교묘하게 내면화돼 있다는 것이다. 성차별·인종차별과는 달리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는 데는 “너 몇 살이야?”라며 어깃장을 놓는 것 말곤 별 도리가 없다. 물론 나이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노인들은 연령차별의 수혜자일 수도 있다. 이는 세대 간의 반목을 조장한다. 노인들 뒷바라지하느라 젊은 세대 허리가 휠 것이란 우려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나이 든 세대가 겪는 궁핍과 적대감은 결국에는 우리 모두에게 닥칠 일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고령화를 피할 수 없게 된 지금, 세계는 노인을 위한 도시를 건설 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9년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위해 ‘국제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스위스 제네바, 미국 뉴욕, 일본 도쿄, 중국 상하이 등 37개국 500여개 도시가 회원도시로 가입했다. 한국은 서울시가 2013년 처음 가입한 데 이어 전북 정읍, 경기 수원, 부산 등이 회원도시로 가입했지만 아직 개념조차 생소하다.

미국 등에서는 이미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사업이 활발하다. 뉴욕은 일부 구역을 노령자를 위한 개발지구로 선정해 상점 안내판이나 메뉴판 글자를 크게 인쇄하는 등 사소한 것부터 횡단보도 보행 신호 시간 연장 등 고령층을 배려한 인프라 구축을 시도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시범 사업으로 선보인 고령 친화상점 ‘오래오래’도 이와 비슷하다. 상점 출입구 턱을 없애고, 돋보기나 지팡이 거치대 등의 물품을 비치했다. 인근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는 속도를 늦추고, 지하철 노선 안내도와 지도 크기는 키웠다. 서울시는 올해 고령친화 상점을 더 늘릴 계획이지만 갈 길이 멀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누구나, 공평하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이 듦에 대해 ‘프로불편러’가 되자. 좌석에 앉기 전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면 기사에게 기다려 달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일찌감치 “한 인간이 노년에도 인간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이 항상 인간으로 대우받는 사회여야 한다”고 했다. 연령차별은 우리 자신의 미래에 대한 편견이다. 우리 안에는 노인이 산다.

<전국사회부 ㅣ 이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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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미술은 타지역의 미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당히 역동적이고 뜨거운 편이다. 그만큼 한국의 근현대사가 격동 그 자체였고 지금도 매일이 그야말로 드라마틱하지 않은 날이 없으니 이러한 현실로부터 발아하는 미술이 그런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식민지 현실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 이인성의 그림을 시작으로 이후 1950,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암울한 현실과 빈곤을 정면으로 응시한 박수근, 이중섭의 경우가 그런 선구적인 예로 떠오른다. 오윤과 손장섭, 신학철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첨예한 모순을 고발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남관과 권순철은 한국전쟁 때 죽은 이들의 얼굴, 넋을 형상화했다. 박생광의 작업도 그런 예에 속한다.

그들만큼이나 이런 작업의 선구적인 사례가 바로 김영덕의 그림이다. 지금 그의 미수전이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1949년 그는 어린 학생이었는데도 경찰에 연행돼 심한 고문과 고초를 겪은 후 겨우 살아남은 경험이 있었는데, 이른바 남로당의 조직원, 빨갱이로 몰렸던 것이다.  그는 당시 사회구성원들의 생애에 깊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시대적 모순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그의 평생의 작업 화두는 바로 어린 나이에 보고만 온갖 불의와 압제, 한국전쟁과 군사독재로 인한 무수한 죽음과 피의 냄새였다. 그리고 그 장면, 상처가 평생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그것들은 수시로 출몰하면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유령처럼 맴돌고 있었다. 따라서 김영덕의 그림은 그렇게 떠도는 이미지를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하려는 지난한 시도에 가깝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이른바 ‘인혁당 사건’을 그린 ‘인탁-인혁당의 사람들’(1976)이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망자들에 대한 애도와 비애의 감정을 진하게 담고 있는 그림이다.

인혁당 사건이란 1964년 8월, 이른바 국가변란을 기도한 대규모 지하조직인 인민혁명당(이하 인혁당)이 ‘북괴의 지령’을 받고 한일회담 반대 학생데모를 ‘배후조종’한 것으로 중앙정보부에 의해 발표된 ‘인민혁명당사건’(1차)과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발표된 ‘인혁당재건위원회 사건’(2차)으로 나뉜다.

박정희 정권이 1972년 영구 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을 제정하자 재야세력은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유신정권에 저항하였고 유신정권은 대통령긴급조치를 선포하고 위반자들을 비상군법회의에서 처단하려 했다.

1974년 4월25일, 당시 중앙정보부장 신직수는 “이른바 ‘민청학련’의 정부전복 및 국가변란기도사건 배후에는 과거 공산계 불법단체인 인민혁명당 조직과 재일조총련계의 조종을 받은 일본 공산당원과 국내 좌파 혁신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들은 정부전복 후 공산계열의 노농정권 수립에 이르기까지의 과도적 통치기구로서 ‘민족지도부’의 결성을 계획하기까지 하였다”는 이른바 ‘인혁당재건위 사건’을 발표하였다.

1974년 1월 대통령긴급조치 제2호에 의해 설치된 비상보통군법회의는 1974년 7월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여정남 등 8인에 대하여 사형 선고를 내렸고 그들의 항소는 모두 기각되었으며 1975년 4월8일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이 확정되자마자 곧바로 다음 날 4월9일 형을 집행하였다. 채 20시간도 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였으며 이 사건은 유신체제하의 대표적인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한다.

김영덕의 그림은 몇 개의 층위로 구분되는데 화면 상단은 눈부시게 하얀빛으로 물든 공간에 흰색의 한복을 입은 망자들이 이제 막 시선에서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을 설핏 보여준다. 하단에 그려 넣은 군모는 비극적 상황을 초래한 핵심을 지시하고 있다. 당시 엄혹한 정치 현실 속에서 미술인 대부분이 서구의 전위미술이나 단색주의회화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당시의 참혹한 사건을 형상화한 이가 바로 김영덕이란 작가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이 그림은 철저하게 망각되어 있었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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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오는 27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 때 비무장지대(DMZ)에서 병력과 중화기를 철수하는 등 실질적인 비무장화 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DMZ의 실질적인 비무장화도 관심사인데 실무회담에서 결론 내기 어렵다”고 밝혀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비무장지대 중화기 및 병력 철수방안이 합의된다면 남북관계에 새로운 획이 그어지게 된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실질적으로 완화되는 것은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를 예비하는 토대가 구축되는 의미도 있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은 군사분계선(휴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2㎞ 이내 구역을 비무장지대로 설정해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를 금지했다. 비무장지대 출입은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 목적으로 한정했고, 출입자는 각각 1000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협정에도 아랑곳없이 남북이 진지와 초소, 철책 등을 구축하고 중화기를 반입하면서 ‘중무장지대’가 됐다. 남북은 요소요소에 전방감시 초소(GP)를 설치하고 수천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반입무기는 유사시 방호를 위한 개인화기로 한정돼 있음에도 남북은 박격포와 고사총, 중기관총 등 각종 중화기를 배치해 놓고 있다. 게다가 비무장지대에는 100만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대인·대전차 지뢰가 매설돼 있다. 2015년 8월에는 추진철책 통로에 매설된 목함지뢰가 터지면서 육군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기도 했다.

남북은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군사적 신뢰조성을 위해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원칙에 합의했지만 병력과 중화기 철수 등은 논의하지 못했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 당시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방안을 제안했지만 북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다만 개성공단 조성과 금강산 관광사업을 하면서 해당 구역 비무장지대의 일부 구간에서 남북이 병력과 중화기를 동시철수한 전례가 있다.

비무장지대는 정전 이후 수십년 동안 남북 간 크고 작은 충돌로 수많은 군인들이 희생된 곳이다. 지금도 언제 충돌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긴장에 휩싸여 있다. 그런 만큼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는 체감도 높은 긴장완화 조치가 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비무장화 방안이 합의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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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최근 방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비핵화 등 핵심 의제를 조율하는 수준까지 진척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역시 열흘 앞으로 다가온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다룰 핵심 의제에 관해 적지 않은 진전을 이룬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남북한과 미국이 서로 교감하면서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남북한)은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나는 이 논의를 정말로 축복한다”고 말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한반도 안보 상황을 궁극적으로 평화체제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검토,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전은 비핵화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실질적인 비핵화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할 수 있다. 남북한과 미국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 문제를 핵심 의제로 삼은 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결정이다.

남북은 휴전협정으로 전쟁을 일시 중지한 상태이다. 항구적으로 전쟁을 중단하고 북한이 주변국과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종전선언에 이어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북·미 수교를 하기 위한 법률적·현실적 여건이 마련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논의 지지발언은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그 정도의 반대급부는 줄 수 있다고 제안한 셈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만 요구해왔을 뿐 그에 따른 보상조치를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일방적인 항복선언이나 다름없는 협상에 북한이 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고사하고 회담 개최 자체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발언은 북한이 체제보장에 관한 우려를 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종전 문제를 해결하려면 휴전협정의 또 다른 당사국인 중국의 참여와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18일 공개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 계획 소식이 주목된다. 비핵화가 절실한 상황에서 북·중관계 발전은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길잡이 역할을 거쳐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를 도출하고,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 실천을 촉진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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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바른미래당 소속 비례대표 국회의원 3명이 소속 정당에 “민주평화당에 가겠다는 비례대표들을 볼모에서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공직선거법 제192조 제4항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소속 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변경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규정의 취지는 비례대표 의원은 지역구 의원과는 달리 선거인에 의해 직접 선출된 것이 아니고 정당에 의해서 작성된 후보자명부를 매개해서 선출되기 때문에 비례대표 의원이 당적을 임의로 변경하는 경우 정당이라고 하는 당선기반이 상실된 것으로 간주하여 의원직을 상실케 하고, 이를 통해 효율적인 정당기속과 건전한 정치풍토 및 정당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규정은 위헌이다.

첫째, 이 규정은 헌법상 자유위임의 원칙에 반한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국민의 대표자를 통한 대의제도에 의해 실현되는데, 이는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권력을 대표자에게 자유위임한 것을 기초로 한다. 이러한 자유위임의 원칙은 대표자인 의원 개개인이 자신을 선출해준 선거인이나 정당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따라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자유위임의 원칙은 의원의 선출 과정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선출 후의 대의활동과 관련되는 것이고, 이는 지역구 의원이건 비례대표 의원이건 관계없이 양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이러한 국회의원의 자유위임에 관한 헌법상 근거로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한 제46조 제2항 등 다수가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민주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해서 국가이익 실현을 위한 독자적인 정책결정을 하는 하나의 독립한 헌법기관이다. 따라서 국회의원은 지역구 의원이건 비례대표 의원이건 자유위임의 원칙에 따라 일단 선출된 후에는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나 자신을 공천한 정당에 기속됨이 없이 국민 전체를 대표하여 국가이익을 위하여 독자적인 의정활동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적 변경 시 의원직을 상실시키는 규정은 이러한 헌법상 자유위임의 원칙에 위반된다.

둘째, 이 규정은 평등 원칙에 위반된다. 즉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이다. 비례대표 의원은 정당명부를 통해 당선되었으므로 그 선출의 기초가 된 정당을 이탈할 경우 그 정당기속으로부터 벗어난 결과 의원직을 상실해야 한다면, 지역구 의원도 자신을 공천한 정당을 이탈할 경우 그 정당기속으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의원직을 박탈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다.

결국 국민의 신의를 저버린 의원들에 대한 통제와 심판은 선거 등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선진국에서와 같은 건전한 정치윤리와 풍토가 조성됨으로써, 즉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의 노력 끝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건전한 정치질서 확립과 의원 자질의 향상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처럼 정당투표제가 실시되고 있는 독일 등 법치선진국의 경우에는 우리의 선거법 제192조 제4항에 해당되는 의원직 상실 규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연주 | 성신여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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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물컵을 집어던졌다고 사람들이 분개하고 있다. 어느 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고, 경찰은 재벌 3세를 잡겠다며 수사에 들어갔다. 유명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재벌들의 가정교육이 문제라는 말도 한다. 경제신문들은 인성검증이 안된 재벌 3세의 갑질이 기업에 부담이라고 썼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조현민 전무가 경찰 포토라인에 설지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끝날 일이다. 더구나 마흔을 바라보는 어른에게 가정교육 운운하는 것도 듣기 민망하고, 인성만 검증되면 3세 경영도 문제없다는 논조는 의도를 의심케 한다.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과 말뿐인 반성이 반복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3년 전 ‘땅콩 회항’에 대해 사과했고(왼쪽 사진) 장본인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항공사고 조사위원회에 출석했다(가운데). 이번에는 ‘물벼락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고개를 숙였다. 경향신문 자료사진·MBC 화면 캡처

머지않아 조현민 전무에 대한 소박하지만 적절한 결론이 나올 때쯤이면 우리는 유전무죄다 전관예우다 하면서 막연하게 세상을 욕하다가 또 다른 사건을 찾아내 지금 하는 것처럼 남의 집 가정교육이나 탓하다가 잠들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영화 대사가 어쩌면 나를 향한 것이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술자리나 인터넷에서 씹어댈 안줏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적당히 씹어대다가 싫증이 나면 뱉어버리겠죠. 이빨도 아프고 먹고살기도 바쁘고.”

그들에게 개·돼지 같은 대중이 되지 않으려면 현실을 차갑게 직시해야 한다. 조현민 전무의 물컵 투척 따위는 갑질도 뭐도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경미한 폭행 사건에 불과하다. 한진그룹이 저지른 진짜 갑질은 지금 대법원이 심리하고 있다. 조현민 전무의 형제자매 3명이 주식 100%를 소유한 회사에 대한항공이 일감을 몰아주다 적발된 사건이다. 이런 방법으로 대한항공은 고객과 주주, 경쟁 납품업체에 손해를 끼쳤다. 그래서 시정명령과 과징금 14억3000만원을 공정거래위원회가 2017년 1월 부과했다. 하지만 곧바로 9월에 서울고법 행정2부(재판장 김용석 부장판사)가 모두 취소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4월17일 (출처:경향신문DB)

공정위에 따르면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3남매인 현아·원태·현민씨가 주식 100%를 가진 싸이버스카이와 90%를 가진 유니컨버스는 대한항공 일감으로 손쉽게 대규모 이익을 올렸다. 기내 면세품 인터넷 예약 사업을 받아 업무대행 수수료로 매출액의 14%를 챙긴다거나, 국내선 면세품 카탈로그 제작을 하고 판매액의 15%를 수수료로 받는 등이었다. 대한항공 콜센터 운영 업무 계약을 하고, 시설사용료와 유지보수비 명목으로 거액을 받기도 했다. 외국에서는 구멍을 뚫는 일이라고 해서 터널링(tunneling)으로 부른다. 기업 관계자가 내부거래를 통해 자신과 가족에게 기업의 부를 넘기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에게 회사의 재산을 빼돌리는 것을 막는 공정거래법 23조의2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 조항을 공정위는 적용했다. 이 조항은 2014년 2월 신설된 것으로 다른 부당지원과 비교해 가족 등에 대한 부당지원은 규제가 쉽도록 했다. 국회가 제시한 개정이유에도 “현행법상 부당지원행위는 (회사 간 거래에 주로 인정되는)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로 한정돼 있어 (가족 등) 특수관계인을 지원하는 경우에는 입증이 곤란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특수관계인이 대상이면) 공정거래 저해성이 아닌 부당이익 제공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규정을 신설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서울고법 김용석 재판부는 ‘경제력 집중 발생 우려’라는 또 다른 기준을 만들어 한진그룹에 대한 과징금을 취소했다. 그러면서 “이 정도 규모의 거래를 통해 대한항공과 싸이버스카이가 사익을 편취하고 경제력의 집중을 도모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러한 판결에 공정위는 “총수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더라도 경제력 집중을 우려할 정도로 부당이익이 크지 않으면 제재할 수 없다는 뜻이어서 재벌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게 됐다”고 했다. 서울고법의 한진그룹 판결은 23조2항이 만들어지고 나온 첫 해석이고,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공정거래 저해성이니 경제력 집중 우려니 하는 법률용어들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변호사들 중에도 공정거래법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렇지만 관심을 가지고 기사라도 읽으면서 사람들과 의견을 모아야 한다. 군사독재가 정치민주화로 끝났듯이, 재벌 갑질은 경제민주화로 사라진다. 그렇지 않고 물컵 투척에만 분노하면서, 경찰서로 재벌 3세를 불러내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공동체의 부를 빼앗는 진짜 갑질은 조용히 면죄부를 받아낼 것이다. 법원에는 갑질 제재를 취소하라는 재벌 3세들의 재판이 예정돼 있다. 하이트진로 3세 박태영 부사장이 부당이득을 챙기다 받은 과징금 107억4000만원 사건 등이다. 효성 3세 조현준 회장도 최근 받은 과징금 29억9000만원에 소송할 예정이다.

재벌 3세가 던진 물컵에 나의 가족이 맞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고 울화가 치민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한다. 우리의 열정을 아껴서 정확한 목표에 쏟아야 한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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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안산 분향소에는 ‘곁’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해 봄의 아픔을 눈물로만 보내지 않은 사람들, 유가족의 곁에 서고, 진실의 곁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회였다. 전시회장 입구에 줄을 선 아이가 제 부모에게 곁이 뭐냐고 물었다. 아빠가 머뭇거리는 사이 두어 살 많아 보이는 오빠가 얼른 대답했다.

세월호 참사 4주기인 16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안산화랑공원 야외광장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에서 유가족인 한 아이가 손을 들어 영정에 인사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네 옆에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오빠도 있잖아. 그게 곁이야.”

아이 입에서 흘러나온 ‘곁’은 무심코 옆에 있음이 아니다. 곁은 우주가 맺어준 필연이며, 멀어진다 해도 멀어지지 않아 기필코 옆에 있음이다.

그의 곁에도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동생 별이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졸라대서 그러라고 했어요. 단, 돈을 주고 사는 건 안 된다고 했지요. 생명체를 거래하는 건 안 된다고요.”

그의 엄마는 그리 말하면 굼뜬 딸이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포기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곧바로 유기견 보호소를 알아보더니 집에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이나 가야 하는 보호소에 가서 강아지를 데려왔다. 그 강아지 이름이 별이다. 그의 블로그에 적힌 이름은 ‘별이 언니’다. 별이 언니는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의 팬이었다.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블로그에 팬픽을 연재했다. 일주일에 두세 편을 일 년 동안 꼬박꼬박 올렸다. 학교에서 연극반 활동을 한 그의 소설은 희곡처럼 대사가 많았다.

“연극반 활동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공연을 앞두고는 밤새워 학교에서 연습을 했지요. 뭐든 마음만 먹으면 잘하는구나 싶었는데, 블로그에 그리 오랫동안 글을 쓴 줄은 몰랐어요.”

2014년 5월30일, 그의 블로그에는 마지막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의 엄마가 올린 글이었다.

‘다인이가 세월호를 타고 영원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우리 다인이 영원히 기억해주세요.’

그가 걸었던 길은 그해 봄처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봄이 오고 벚꽃이 피는 한 잊지 못할 것이다. 그가 우리 곁에 있었다. 그들이 우리 곁에 있었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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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의날이 제정된 지 서른여덟 번째가 되는 해다. 장애인의날은 국민들로 하여금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념일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노력의 일환인 다양한 행사가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38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오늘, 장애인 복지와 권리 보장은 과연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섰을까. 안타깝게도 장애인을 위한 정책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장애인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 보장에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버려진 장애아동들은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기본적인 권리조차 침해받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운영하는 한사랑장애영아원에는 60여명의 장애아동들이 생활하고 있는데 이 중 장애로 인해 버림받아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동이 72%(43명)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베이비박스를 통해서 발견되었다.

버려진 뒤 시설에 오는 아동의 가장 큰 문제는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제도권 내 사회보장서비스를 신속하게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동의 출생신고는 복잡한 절차와 제도적 한계로 짧게는 4개월에서 1년여가 소요되고 그로 인해 다양한 사회보장서비스 이용에 제한이 있다. 조기 재활치료가 필요한 장애아동에게는 이 문제가 치명적일 수도 있어 그 기간 동안 필요한 대부분의 서비스는 전적으로 시설의 몫이 되고 기간이 길어질수록 지원하는 데 한계가 오기도 한다. 

일례로 2016년 12월부터 영아원에서 생활하게 된 유기아동이 온전하게 이름을 갖고 출생신고를 해서 주민번호를 부여받기까지 1년여가 소요된 경우가 있다. 이 기간 동안 아동은 의료급여를 제외한 장애아동 재활치료바우처를 포함해 다양한 사회보장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장애아동에게 있어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는 아동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사회보장제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제도의 문제사항들이 하루속히 개선되어 누구 하나 소외되는 이 없는 복지사회가 실현되길 바란다.

제도의 개선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관련 부처와 더불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함께해야 할 것이다. ‘4월20일 장애인의날’, 단 하루의 반짝 관심보다는 이 날을 계기로 소외된 장애아동들이 차이는 있으나 차별의 대상이 아닌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불합리한 제도 개선과 장애인 복지 향상을 기대해 본다.

<김미애 |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한사랑장애영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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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영국 가디언은 미세플라스틱이 14개국 수돗물의 83%에서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24개 정수장을 조사했는데 일부 시설의 상수원수 및 수돗물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다. 플라스틱은 장난감, 포장지, 의자, 옷, 비닐봉지, 페트병, 링거백, 필기구, 타이어 등 우리 생활 속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플라스틱은 값이 싸고 편리하게 원하는 모양과 형태로 만들 수 있고 다양한 색상을 입힐 수 있어 선호도가 높다. 이들이 작은 알갱이로 쪼개지거나 떨어져 나와 미세플라스틱이 되기도 하지만 치약과 화장품은 직접 미세플라스틱 입자를 사용하여 배출되기도 한다.

선별, 세척, 분쇄한 뒤의 PET. 김영민 기자

이렇게 사용된 미세플라스틱은 생활하수를 통해 배출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직 배출 특성에 대해 상세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하수 이외에도 도로에 떨어진 자동차 타이어 미세입자, 농촌 폐비닐 입자 등 다양한 배출원이 존재하며 제거되지 않고 강우를 통하여 하천이나 호소로 유입된다. 정수장에서는 응집·침전·여과를 거치기 때문에 매우 작은 입자도 제거할 수 있지만 미세플라스틱은 수십㎛ 크기의 매우 작은 입자로도 존재하므로 완전하게 제거하기 어렵다. 우리 생활 속에서 미세플라스틱을 어떻게 줄여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생활에서 배출되는 미세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서는 일회용품이나 생활제품으로 편리하게 사용되고 있는 플라스틱에 대한 사용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환경이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외부 비경제효과를 가지고 있다.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버리는 것은 환경과 생태계에 피해를 주게 되어 결국 무임승차하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한다.

플라스틱 제품은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유지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이러한 플라스틱은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결국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을 줄이는 것이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스틱 제품의 소비를 줄이는 것은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등을 완화시켜 장기적으로 환경을 보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정동환 | 국립환경과학원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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