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도래했다. 연일 정치권에 대한 기사들로 넘쳐나고 있다. 기존 정치인들의 이동 소식과 새로이 정치권에 합류하는 사람들의 이모저모가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정치에 대한 이런 관심은 사실 당연한 것이다. 자연환경을 제외하고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콜린 크라우치(Colin Crouch)가 쓴 <포스트 민주주의>란 책을 읽고 있다. 크라우치가 ‘포스트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민주주의가 확대되다가 그 정점을 지나 퇴조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렇다. 민주주의의 퇴조를 초래하는 것으로는 규제를 거부하고, 이를 위해 정치세력에 대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로비하는 거대 기업, 통제를 받고 싶어하지 않고 대중의 정치적 이해를 조작하는 방법을 배운 정치세력들을 들고 있다. 민주주의가 퇴조되면 정치와 사회 혹은 시민 사이의 거리는 점차 멀어지고, 민주주의가 선거제도라는 절차적 제도와 동일하게 될 정도로 위축된다. 따라서 ‘적극적 시민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며, 실제로 참여할 경로와 방법도 불분명한 상황이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어서 ‘포스트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포스트 민주주의하에서는 정당 역시 포스트 민주주의적으로 바뀐다. 포스트 민주주의적 정당은 유권자들이 아예 관심을 잃거나 아무런 정치자금도 기부하지 않는 사태를 두려워하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통제하는 것 역시 바라지 않는다. 따라서 당원 확대를 위해 마케팅은 하지만 당원이 되었을 때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포스트 민주주의가 만연하여 정치와 사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정치세력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부패가 만연하고 서민과 동떨어진 정책들만 생성되게 될 것이다.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적 결과를 얻는 데 흥미를 잃었다는 증거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가 바닥을 칠 때까지 더욱더 강화될 것이다.

좌파연합 ‘아호라 마드리드’의 마누엘라 카르메나 마드리드 시장_AP연합뉴스


우리 사회가 서구와 같이 ‘포스트’ 민주주의를 걱정해야 할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보수적 정권이 들어서고 1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시점에 <포스트 민주주의>에서 크라우치가 지적했던 민주주의 퇴조현상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정치와 사회가 괴리되어 가는 현상을 타개하고 다시 민주주의가 확장되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얼마 전 국내 언론에 의해 소개된 ‘아호라 마드리드’의 사례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시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풀뿌리 모임과 온라인 기반 신생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가 느슨하게 결합한 ‘아호라 마드리드’가 만들어졌다. 2011년 5월15일 있었던 지방선거를 앞두고 스페인 젊은이들이 ‘진짜 민주주의를 돌려달라’는 구호를 들고 광장으로 몰려들었고 이날부터 확산된 운동을 사람들은 5월(May)15일을 뜻하는 ‘15M 운동’이라 불렀다.

15M 운동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여 강제퇴거를 막거나, 공교육에 대한 지출 삭감을 반대하고,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런 운동에 정치권은 철저히 무관심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시민운동이 정당과 연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아호라 마드리드’는 인터넷에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 플랫폼을 활용해 선거 후보자와 주장할 정책을 결정하는 작업을 했다. 이러한 실험은 큰 반향을 일으켜 지방선거에서 시장을 배출하고, 57석의 시의원 중 20석을 차지했다. 이후 ‘아호라 마드리드’의 마드리드 정부는 시민참여 웹사이트 ‘마드리드 디사이드’(decide.madrid.es)를 열어 16살 이상의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정책을 제안하고, 시장 등에게 질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도 이런 정치를 해봤으면 한다.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그 방법을 분명하게 밝혀주었으면 한다. 당장 안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단초들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민주주의가 확장되고 정치와 시민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은 부패를 막고, 서민들도 살 만한 사회를 만드는 기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주민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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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지리적 상상력이 풍부한 것은 아니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지리학자처럼 고정관념에 갇힌 이들도 의외로 많다. 아마도 지리적 상상력이 필수인 직업은 도둑이 아닐까? ‘값진 물건이 어디에 많이 있고, 어떻게 귀중품을 몰래 훔쳐올 수 있는지’ 지리교과서는 절대 가르쳐주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뛰는 도둑 위에 나는 명탐정이 있는 법! 교묘하게 감시의 눈길을 피해 도망 다니는 범죄자의 위치와 경로를 추적·체포해 결국 이들을 감옥에 보내고야 마는 베테랑 형사들은 지리적 상상력의 진정한 달인 같다. 한편 수감자 중에는 감옥에서 만난 동료로부터 신기술을 배우고 전문성(?)을 높여 출소한 이후 더 큰 범죄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다 하니, 일반인들에게 감옥은 나쁜 이미지로 가득한 부정적 공간으로만 인식될 것 같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감옥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통찰력을 기르는 깨달음의 장소, 세상을 보다 정의롭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지리적 상상력의 특별훈련소가 되기도 한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아웅산 수지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은 모두 장기간의 가택연금과 수감생활을 거치며 위대한 정치인으로 단련되었다.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체험한 고통과 절망을 승화시켜 <마지막 하나의 자유>라는 명저를 집필하고 ‘로고 테라피’를 창시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 역시 죽음의 공포로 가득한 좁은 공간에서 탁월한 학문적 성취의 기초를 닦았다.

27세에 사형수가 되어 20여년 옥살이를 거친 후 석방된 고 신영복 교수에게 감옥은 ‘인생을 공부하는 대학’이었다. 긴 수감생활 동안 자신의 내면을 깊게 성찰하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기르며 공존의 철학자로 거듭난 고인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삶의 용기를 북돋워준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글 ‘변방을 찾아서’에서 고인은 ‘경직된 중심부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 생명력이 넘치는 변방을 창조 중심지로 바꾸는 지리적 상상력을 발휘하자’고 제안하며 자신이 쓴 글씨가 있는 해남 땅끝마을의 초등학교를 찾아가 어린 학생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던 천진난만한 어른이기도 했다.

청년기부터 감옥을 들락날락하는 가운데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미래를 바꿀 힘을 기른 대표적 인물로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도 유명한 그는 게릴라 활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13년간 독방에 투옥되기도 하였다.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매트리스 한 장만으로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 능력을 기른 그는 특히 독서를 금지당한 수감생활 초창기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집중적으로 기를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50세에 감옥에서 나와 자유를 되찾은 그는 시골로 내려가 땅을 일구는 농부의 삶을 선택했다. 이후 상원·하원의원과 농축수산부 장관을 거쳐 2010년 75세의 나이에 우루과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고 신영복 교수와 무히카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고생할 때 이들의 석방을 대가 없이 도와주고 끝까지 힘이 되어준 한 단체가 있었다. 독재 권력에 의해 자유를 잃은 양심수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캄캄한 절망 속에서 희망의 빛을 밝혀준 작은 촛불,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다. 세계 각지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고 국가의 운명까지 바꾼 앰네스티의 기적은 한 영국인이 쓴 신문 칼럼에서 비롯됐다. 40대 인권 변호사 피터 베네슨은 포르투갈에서 자유를 외치다 투옥된 학생들을 돕기 위해 ‘잊혀진 수인’이란 제목의 글을 1961년 5월28일 ‘옵서버’지에 기고했다. 칼럼의 취지에 공감한 독자들이 힘을 보태면서 앰네스티의 나비효과는 조금씩 확산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답답한 감옥처럼 느껴지는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을 헤매며 힘들어하는 그대가 어쩌면 세상을 바꿀 새로운 상상력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안락한 중심부에 익숙한 금수저들은 변방을 찾아 나서야 할 절박한 이유도 없고 모험을 감행할 용기도 부족해 지리적 상상력을 키우기에는 오히려 불리한 조건이다. 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쏘다니며 다양한 만남과 체험을 통해 더불어 성장하는 기쁨을 한 번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불쌍한 존재로 말이다.

■지리 꿀팁

앰네스티 본사는 런던 중심부에 있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암울했던 20대 시절, 런던 앰네스티 본사에서 일하며 세계 곳곳에서 자유와 인권을 위협받는 약자들의 고통을 떠올리며 상상력을 길러 둔 것이 해리 포터 이야기를 쓸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원래 촛불은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에서 더 환하게 빛을 발하는 법이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150여개국에서 700만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특별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앰네스티의 촛불을 함께 들고 있다.

김이재 | 문화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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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메기탕, 하면 떠오르는 식당이 있다. 전북 부안 상설시장 안에 있는 변산횟집이다. 간판은 횟집인데 활어가 헤엄치는 수족관 같은 건 없다. 생선회를 찾는 손님에게는 가까운 생선가게에서 회를 떠다 준다. 시장 안에 있는 생선은 뭐든지 손님이 찾는 대로 요리해주는 이 집은 어물전 한쪽에 숨어 있는 허름한 식당이다.

벽에 붙은 메뉴판에는 물메기탕, 갈치탕, 생태탕, 우럭탕, 서대탕이라는 글자만 보인다. 그때그때 가격이 다르다는 것이고, 아는 사람만 오는 집이라는 뜻이다. 주인아주머니는 말이 별로 없는 분이다.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벼운 목례로 맞이하는 게 인사의 전부다. 살가운 미소 따위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끼니때에는 워낙 바빠서 말 한마디 걸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변산횟집은 특이하게도 장성한 아들 둘이 오래전부터 어머니 옆에서 같이 장사를 하고 있다. 첫째 아들 윤광윤씨(43)와 셋째 광희씨(38)가 그들이다. 셋째 아들을 통해 집안 뒷조사 좀 했다. 둘째 광준씨(40)는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고, 막내아들 광진씨(36)는 군청 공무원이다.

주인아주머니의 이름은 장순철. 1950년생이니 올해 65세다. 전쟁의 와중에 태어나 대여섯 살 무렵 부안의 안동 장씨 집성촌으로 입양되었다. 성도 이름도 거기서 얻었다. 말이 입양이지 식모살이나 다름없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아들 넷을 낳았지만 가난은 쉽게 물리칠 수 없었다. 남편마저 술로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떴다. “가난이 원수로다. 형편이 된다면 남들처럼 더 공부를 할 수 있을 텐데.” 남편이 읽던 책의 뒤표지에는 삶을 한탄하는 이런 메모도 적혀 있다. 그걸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장순철 여사는 안 해 본 일이 없다. 벽돌공장과 두부공장에서 고된 일을 하며 혼자 어린 자식들을 키웠다. 다방이 성시를 이룰 때는 주방에서 오래 일을 했다. 여자로서는 무뚝뚝한 편이었지만 손님들에게는 꽤 인기도 있었다. 약삭빠르게 사람을 대하지 않은 탓이다. 거기서 돈을 모아 ‘소라찻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찻집을 개업했다. 인삼을 사러 진안이나 금산을 오가기도 했고, 직접 배달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통찻집이 호황을 누리던 때가 지나자 수입이 시원찮아졌다. 누군가 시장에서 장사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해서 부안시장 모퉁이에 의자 몇 개 놓고 자그마한 식당을 열었다. 30년 전이었다. 나는 1980년대 후반 무렵부터 이 식당을 가끔 기웃거렸다. 아이스박스에 금방 죽은 생선이 가득했고, 그걸 회나 탕으로 만든다고 했다.

처음 간 것은 주꾸미가 한창일 때였다. 2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는 알이 꽉 찬 주꾸미가 제철이다. 냉이를 넣은 육수에 데쳐 먹거나 고추장 양념으로 볶아 먹는다. 입천장에 살아 있는 주꾸미 다리가 쩍쩍 달라붙는 맛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12월부터 2월 중순까지는 물메기탕에 홀려 변산횟집을 찾는다.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물메기탕을 가장 잘 끓이는 집이다. 냄비가 아니라 대야만 한 뚜껑 없는 양푼에다 끓여낸다. 여기에다 참기름 몇 방울을 넣으면 더욱 감칠맛이 난다. 겨울에만 먹는 이 음식에 매혹되어 ‘물메기탕’이라는 제목의 시 한 편도 얻었다.

“변산 모항 쪽에 눈 오신다 기별 오면 나 휘청휘청 갈까 하네// 귓등에 눈이나 받으며 물메기탕 끓이는 집 찾아 갈까 하네// 무처럼 희고 둥근 바다로 난 길 몇 칼 냄비에다 썰어 넣고// 주인이 대파 다듬는 동안 물메기탕 설설 끓어 나는 괜히 서럽겠네// 눈 오신다 하기만 하면 근해(近海)의 어두운 속살 같은 국그릇에 코를 박고// 한쪽 어깨를 내리고 한 숟가락 후루룩 떠먹고// 떠돌던 눈송이 툇마루 끝에 내려앉는 것 한번 보고// 여자가 옆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겠네// 변산 모항 쪽에 눈 오신다 하기만 하면”


겨울이 제철인 물메기탕_경향DB



물메기탕 옆에 숭어회가 빠질 수 없다. 겨울에는 살이 볼그레한 숭어회를 한 접시 같이 주문해야 제격이다. 소주도 물론 빼놓으면 안되겠지. 햇살이 따뜻해지고 냉이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에는 주꾸미와 도다리탕이 좋고, 여름철엔 갑오징어회, 가을에는 전어회와 꽃게무침이 그만이다.

장순철 여사의 식당이 문을 닫는 일은 거의 없다. 장 여사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수영장으로 향한다. 운동을 마치면 7시에 아침밥을 먹고 한 시간쯤 숙면에 든다. 큰 병치레 한 번 없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규칙적인 운동과 철저한 시간 관리인 것 같다고 아들들이 귀띔한다.


9시에 가게에 정시 출근해서는 그날 손님들에게 내놓을 밑반찬을 준비한다. 변산횟집의 밑반찬은 그때그때 다른데, 잘 익은 배추김치, 갓김치, 갈치속젓, 나물무침 두어 가지, 꽃게무침 등이 다 푸짐하고 맛깔스럽다.

장 여사는 11시까지 시장을 돌며 그날 나온 생선이 뭐가 있나 둘러본다. 시장 상인들은 장 여사를 ‘순철이’ ‘철이’ ‘변산 언니’로 부른다. 변산횟집의 영업 비결 중 하나는 값싸고 물 좋은 생선을 잘 골라 손님들에게 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온 손님은 반드시 두 번, 세 번 발걸음을 들여놓게 된다. 혹시라도 이 집을 처음 들르게 되거든 그날은 뭐가 좋은지 물어봐야 한다.

아들들의 말에 의하면 점심때는 그야말로 매일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라 한다. 1층과 2층에 손님들이 꽉 들어찬다. “한바탕 장사를 하죠. 저녁 장사까지 마치면 밤 10시쯤 돼요.”

장순철 여사는 아들 둘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준다. 형과 동생이 받는 월급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연봉으로 따지면 각각 3000만원을 웃돈다. 한 달에 쉬는 날은 단 하루다. 그렇다고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불편한 노사관계는 없다.

마흔 살 전후의 아들 둘이 어머니 옆에서 일을 거들면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흔치 않은 진풍경 중 하나다. 마늘도 같이 까고 파도 같이 다듬는다. 시장에서 들려오는 소문이나 미담도 똑같이 공유한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비밀을 만들 시간도 없다. 마치 오랜 친구 사이 같고 때로는 아들들이 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항상 든든하고 고맙지만 아직은 젊은 아들들을 가게에 묶어두는 것 같아 안쓰러울 때가 많지요.”

장 여사에게는 금쪽같은 손주가 넷이 있다. 셋째와 넷째가 어서 결혼을 해서 살림을 꾸리는 게 소망 중 하나다. 다행히 아직은 건강해서 손에 물을 더 묻혀도 문제가 없다. 올겨울에도 변산횟집 물메기탕을 두어 번은 더 먹어야 겨울이 물러갈 것 같다.


안도현 |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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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교회 살 때 현판 글씨가 필요해서 우이(쇠귀) 선생님께 부탁드렸는데 며칠 만에 써주셨다. 간판집에 부탁해 예배당 입구에 걸었는데 할매 교인들이 글씨가 왜 삐툴빼툴 하냐고 배래부렀소 그 양반헌티 다시 써달라 그라시쑈 막걸리 자시고 쓰셨는갑소, 땡깡을 놓는 것이었다. 주동자 할매한테 염빙하시네 해부렀지. 예배가 끝나면 조용히 살다가 죽어 천국에나 가자는 찬송가 말고 김민기와 한대수 금지곡들을 주로 틀었는데 그 노래들이 찰지게 귀청을 울리고는 하였다. 옥이라는 끝자를 가진 그 할매 뒤통수에 대고 한대수는 ‘옥의 슬픔’을 불러줬는데 귀엽고 쓸쓸했던 그 할매, 궁둥이를 삐짝빼짝하면서 늙은 바둑이랑 동무하며 소리길 따라 멀리 사라지고는 하였다.

“바람찬 바닷가로 옥이는 나서서 밀려오는 파도에 넋을 잃은 채 인생의 실망 속에 자신 찾을 수 없이 꽃잎도 파도 위로 수평선을 따라서 저 초원도 가고요 저 눈물도 썰물로 아아 슬픈 옥이여”. 해창이라는 동네가 있었는데 자전거 타고 심방을 가면은 파도가 무너지고 없는 갯벌의 시간, 거기 옥이 할매가 바지락을 파고 주저앉아 계셨다. 남녘사람들은 그렇게 갯일도 하고 논밭일도 하면서 대처 나간 자식들을 고생스레 갈쳤다. 찬바람에 시린 눈물이 썰물과 함께 사라졌기를. 남녘 현판의 주인공 쇠귀 선생님도 감옥 없고 국가보안법 없는 좋은 세상 가셨기를.

나는 옥자가 붙은 이름을 들으면 엄마 같단 생각에 살가워진다. 내게도 옥이라는 끝자를 지닌 이름의 큰누님이 있는데, 누나는 지금도 돌아가신 엄마 자리를 꿰차고 계신다. 고등학생 시절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갈 곳 없어진 내게 방 한 칸 내어주셨지. 슬펐던 가난은 그러나 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심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요 며칠 눈이 어마무시하게 내렸다. 나는 여행보따리를 싸고 그 눈길을 뚫고서 기어 마을을 빠져나왔다. “권태에 못 이겨서 집을 떠났다.” 옥의 슬픔 노랫말처럼 그리되는 중이렷다. 우쿨렐레와 하모니카도 둘러멨으니 당분간은 유랑악사다. 옥의 슬픔을 불러보리라. 슬픔이 우리 곁에서 멀리 사라지는 그날까지.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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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60년 전인 1956년 미국의 지질학자 킹 허버트는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1970년대에 정점을 찍었다가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나자 국제적인 미래연구기관인 로마클럽은 “석유는 이제 약 30년간 쓸 정도의 매장량만 남았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아버지는 낙타를 탔고, 나는 자동차를, 내 아들은 비행기를 타겠지만 손자는 다시 낙타를 탈 것”이라는 우습지만 슬픈 이야기가 돌았다.

이 예측대로라면 2000년대 들어 석유자원은 완전히 고갈됐어야 한다. 한데 이상한 일은 무슨 화수분도 아닐진대 석유의 확인매장량은 해마다 늘고 있다. 영국국영석유회사(BP)의 자료를 보면 2014년 현재 전 세계 석유의 확인매장량은 1조7000억배럴이었다. 연간 생산량(324억배럴)을 계산하면 향후 52년은 끄떡없다는 뜻이다. 매장량 1조2379억배럴로 42년은 걱정없다던 2007년보다 오히려 10년이나 더 늘어났다. 대체 무슨 조화인가. 일단 2013년 호주에서 2330억배럴 규모의 새로운 유전이 발견된 것처럼 매장량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미국지질조사소는 지난 2000년 석유의 궁극매장량(경제성과 상관없이 묻혀있는 양)을 3조배럴로 추정했다. 석유추출 기술이 향상되면 확인매장량(현재의 기술로 경제적으로 뽑을 수 있는 양)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경제성이 없어 확인매장량으로 계산되지 않았던 석유의 매장층도 개발되고 있다. 퇴적암의 한 종류인 혈암(셰일)과 기름을 머금은 모래에서 추출하는 셰일 오일과 오일샌드 등도 있다. 당장 석유고갈을 염려하는 것은 ‘기우(杞憂)’일지 모른다.


석유 생산량 순위, 세계 석유 생산량과 소비량 추이_경향DB

하지만 인류는 그 석유를 얻기 위해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땅의 피’라 했던 것은 놀라운 혜안이었다. 게다가 석유는 대기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요즘 석유의 미래를 논하면서 ‘어디 돌멩이가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것이냐’고 비유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창의성을 발휘해서 삶의 가치에 알맞은 더 좋은 도구를 찾아낸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 후손 역시 더 이상 다투지 않고도 깨끗한 에너지를 찾아야 할 책무가 있다.

이기환 논설위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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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 길거리에 나붙은 ‘일본 공산당’ 포스터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중에는 너무 놀란 내가 ‘독재국가 출신’ 티를 내는 것 같아, 마음속으로만 사상의 자유에 감격했다. 그러나 현재 일본 공산당은 이름뿐, ‘자이니치(재일동포)’ 문제에조차 소극적인 평범한 군소 정당이다.

우리나라 정당의 잦은 분당과 창당, 당명 바꾸기는 뉴스가 아니다. 내가 처음 들어본 정당은 초등학교 때 (민주)공화당이었다. 그때는 야당 이름을 몰랐다. 이후 민정당, 민자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평민당,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정치민주연합,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정의당, 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허경영씨의 민주공화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弟夫) 신동욱씨가 총재로 있는 공화당까지 변화무쌍하다. 새누리당을 한나라당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정당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열린우리당이다. 특정 지역을 배제함으로써 전국 정당을 만들겠다는 발상.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상처로 남아 있으며 최근 야당 분당의 근원으로도 지목받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갈라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흥미롭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더하기”라는 의미면 좋겠지만, 영어의 정관사(定冠詞)를 붙인 ‘더(The)민주’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번역하면 ‘그(the) 당이 그 당이다’.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은 급진적이다. 영문명은 민중의당, 인민의당으로 번역할 수 있는 ‘The People’s Party’다. 북한의 국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의 그 ‘인민’이다! 남북 화해 차원에서 ‘인민의당’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영미의 전통적인 양당 체제를 정상국가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분당과 창당, 사당(私黨)화된 우리 정당의 일상을 후진적이라고 개탄한다. 틀린 의견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정당은 1963년 현 대통령의 아버지가 주도한 민주공화당이다.

민주공화당 창당_경향DB

주지하다시피 자체 쿠데타로 1980년에 사라졌다. 그들의 17년8개월은 장기 집권이었지 정당 발전사가 아니었다. 1823년 창당된 미국의 민주당, 180년에 이르는 영국의 보수당, 130년의 독일 사회민주당은 다르다. 이들은 수차례 다른 정당과 권력을 분점, 교대해왔다.

지금 우리 정치의 시급한 과제가 서구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념과 정책에 기초한 양당 체제” 혹은 “진보 정당의 필요성”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걱정은 다음 대선 결과에 따라 남한사회가 일본처럼 일당 체제로 굳어질 가능성이다. 일본의 자민당은 2차대전 후 영구 집권하고 있다. 그들의 세습 시스템은 북한보다 정교하다. 일본이 경제력에 비해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낮고 전후 책임 방식에서 언제나 독일과 도덕성을 비교당하는 이유는, 일본 사회 내부의 세력 교체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김대중, 노무현. 두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일본은 놀라고 부러워했다. 그 사회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배경의 인물, 캐릭터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우리가 그나마 10년 동안 ‘다른 사회’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광주의 희생과 이후 1980년대 사회운동, DJP연합, 이인제씨와 이회창씨의 ‘도움’, 간발의 표차 등 기적에 가까운 정권 교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양당 정치는 꿈이다. 정확히 말하면, 서구 모델을 본받으려는 식민주의다. ‘북한’과 ‘전라도’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를 둘러싼 차별 구조를 고려하는 우리만의 모델이 나와야 한다. 보수세력보다 야권의 분당이 훨씬 잦은 이유는 야당 스스로 여당의 논리대로 ‘경상도당’은 전국정당이고, ‘전라도당’은 지역정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보 정당은 북한에 대한 입장에 따라 갈등과 분화를 반복해왔다.

분단과 지역 차별. 두 가지 구조로 인해 지금처럼 ‘일당 대 다당’ 체제가 고착된다면? 그마저도 야당 2개, 진보 정당 3~4개라면? 평화통일도, 경제민주화도, 세월호 진상규명도 절망이다.

끝으로 녹색을 사용하는 ‘인민의당’에 항의한다. ‘인민의당’은 자기 색깔을 설명해야 한다. 녹색당은 2011년, 먼저 창당되었다. 한국 정당사에서 4~5년은 매우 긴 시간이다. 녹색당의 녹색은 새누리당의 빨간색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 전자는 정책이고, 후자는 아무 색이나 사용할 수 있는 기득권이다. ‘인민의당’의 녹색 사용은 재고되어야 한다. 다른 정당이 사용하면 피해가는 것이 기본 아닐까. 동료 정당 무시가 국민 무시로 연결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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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이란 용어가 널리 쓰이는 데에서 볼 수 있듯이 사적인 감정이 교환가치를 갖는 시대다. 사람들은 웃음과 친절에는 헤퍼지는 반면, 부끄러움의 감정과 연관된 사과 행위에는 점점 더 인색해진다. 사과 행위는 종종 물질적 보상에 대한 책임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동차사고가 나면 일단 상대에게 목소리부터 높여야 한다는 게 이 사회의 격률이 된 지 오래다. 요즘에는 그조차도 감정 낭비일 뿐, 차분하게 보험사에 전화하는 것이 세련된 해법이 되었다. 사과가 필요하다면 모든 문제가 정리된 후에 보험사에서 대신 해주는 것이다. 물론 그 사과의 형식은 보상금 지불이다.

사람들은 공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과에 피상적으로는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서비스센터 감정노동자들의 의례적 사과가 그렇듯, 그것은 감성적 주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실질적 사과 행위가 아니다. 수년 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섰던 어느 유력 후보는 막바지 선거유세장에서 비장한 사과의 말을 공개적으로 남겼다. ‘교육감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친딸의 SNS 폭로로 지지율이 폭락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가 한 손을 높이 치켜들면서 비명을 지르듯 “못난 애비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을 때, 그 과장된 제스처와 목소리로 표현된 작위적 메시지는 대중들에게 수많은 패러디 작품들을 만들게 하는 영감을 주었다. 그 가운데에는 그의 음성이 절묘하게 편집되어 헤비메탈 기타 반주와 결합된 음악작품, 일명 ‘애비메탈’도 있었는데, 사과라는 표피적 행위 속에 감춰진 모종의 분노와 격정을 풍자적으로 드러냈다.

정치적·경제적 이해득실에 따라 공적 무대에서 연출되는 사과라는 게 대개 이런 ‘애비메탈’ 수준을 넘지 못한다. 최근 동아시아 정치계를 뒤흔들기까지 한 대만 출신 K팝 걸그룹 멤버 쯔위의 대만 국기 사건에 대한 소속사 대표 명의의 홈페이지 사과문도 그랬다. 그에 곁들여진, 화장기 없이 수수한 학생 복장으로 묵묵히 반성문을 읽는 쯔위의 사과 동영상도. 소속사 대표는 “못난 애비…” 수준의 사과(“쯔위의 부모님을 대신하여 잘 가르치지 못한 저” 운운)를 중국인들을 향해 국제적으로 행한 셈이다. 그 사과는 ‘중국 활동 잠정 중지’로 인한 기회비용을 보상금 형태로 지불하면서 ‘불가역적’ 해결이기를 요구하는 표정 없는 제스처일 뿐이었다.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_경향DB

쯔위의 사과가 소속사에 의해 강제된, 사실상 하지 말았어야 할 사과라면, 했어야 하는데 끝내 하지 않은 사과도 있다. 지난 연말 정식 사퇴를 선언하고 프랑스로 떠난 정명훈 서울시향 전 감독의 경우다. 마지막 공연에서 관객들에게 눈물의 호소문을 전한 서울시향 단원들을 포함하여 정 전 감독이 박현정 전 대표의 정치적 물타기 전략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이 있지만, 정 전 감독 가족에 대한 서울시향의 편법적 특혜 논란으로 그간의 악화된 여론이 최근 그의 부인의 사건개입 정황이 밝혀지면서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식의 결말은 정명훈 정도의 거장 음악가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임에 분명하지만, 단원들에게 쓴 공개편지를 통해 그 모든 책임을 타인에게, 나아가 한국사회 전체에 던지고(“문명화된 사회에서 용인되는 수준을 훨씬 넘은 박해” 운운) 홀연히 외국으로 사라져간 그의 뒷모습은 결코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지 못했다.

타자에 대한 배려와 성찰,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 소통이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사과 행위는 예술을 닮았다. 정치인은 지지층의 움직임에만, K팝 기획사 대표는 영향력 있는 글로벌 시장의 동향에만, 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은 자신을 추종하는 음악인들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사과 여부를 약삭빠르게 저울질했다.

결국, 그의 가족이 아닌, 중국인들이 아닌, 악단 단원들이 아닌, 그렇지만 그들의 권력과 부, 명예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은 그들로부터 책임감 있는 해명과 사과를 받지 못했다. 당혹감과 모멸감을 얻었을 뿐. 사과하지 않는 사회, 어느덧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일도 받는 일도 모두에게 낯선 탓인지도 모른다.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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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전 부총리 외에도 국회의원 및 전·현직 경제관료 등 8명이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에 취업을 청탁했다는 의혹이 제기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고위직의 금수저 취업 청탁이 만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쉬 넘길 사안이 아니다. 사회의 최대 고민이 청년취업인 점을 감안하면 이런 공생은 젊은이들을 좌절에 빠트리는 범죄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중진공은 2012~2013년 3차례 채용과정에서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의원 3명과 현직 차관급 부처장 1명, 전·현직 경제부처 고위관료 4명 등 8명의 취업 청탁 정황을 확인했다. 인사 담당자가 작성한 입사지원자 비고란에는 청탁자의 이름과 직책이 명기돼 있다. 현직 차관급 인사는 부하 직원을 중진공에 보내 노골적으로 사전 합격 여부를 물어봤다. 2013년 채용과정에서 청탁을 받은 지원자 3명은 인·적성 검사에서 탈락권(80~120등)이었으나 면접을 거치면서 합격권으로 진입, 최종 합격했다. 청탁 정황이 드러난 최 전 부총리와 신원미상의 인물 등을 포함하면 2년 동안 10명이 취업을 청탁했고, 이들이 청탁한 12명이 모두 합격했다. 이는 중진공의 전체 합격자 104명 중 11%가 넘는 숫자다. 이들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사이 다른 응시자들은 채용 들러리를 선 꼴이 됐다. 중진공은 “의혹이 제기된 지원자 3명은 각각 전형단계에서 채용배수 범위 내에 포함되면서 정당하게 합격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비고란에 이름이 왜 명기됐는지 등 정작 규명해야 할 청탁 여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이임식을 마친 뒤 차량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_연합뉴스


최근 들어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유사 사례가 빈발한 점을 감안하면 고위직 금수저들의 취업 청탁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청탁자와 피청탁자 간에는 서로 ‘잘 봐주겠다’ ‘잘 봐달라’는 교감이 전제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은 공범이다. 중진공은 “엄정한 수사를 받은 사안으로 기소 사실 이외의 부당행위는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 부총리건 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감사원과 검찰의 태도를 보면 겉핥기 조사에 그쳤을 공산이 크다. 지금이라도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다시 파헤쳐야 한다. 청탁방법이 교묘해지는 상황에서 청탁자를 밝혀내지 못하면 채용 비리는 근절되지 않는다. 일자리를 늘린들 금수저 몫으로 돌아간다면 청년들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채용의 공정성은 정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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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한 일자리를 잡지 못해 방황하는 청년에게 내집 마련은 언감생심일 것이다. 국민은행 부동산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5억2475만원, 전세가는 3억7800만원이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2인 이상 도시근로자 가구의 근로소득은 연간 4600만원이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서울에서는 전셋집 마련에 8년 넘게 걸리고, 내집을 사기까지 11년 반을 견뎌야 한다. 보통 사람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얘기다. 그럼에도 내집 보유자의 사례를 보면 38.9세 때 생애 첫 내집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 사는 집은 소형이어서 가격이 낮고,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기에 내집을 살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저성장시대 청년층 주거안정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 보고서는 서울에서 내집 갖기가 청년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 됐음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2014년 25~29세인 청년이 10년 뒤 서울에서 구입 가능한 주택은 56.4%에 그친다고 밝혔다. 서울에만 360만가구 이상이 있지만 은행 대출을 최대한 받더라도 돈이 부족해 3억8421만원 이하 집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11~2020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3.6%로 그만큼 소득도 늘어난다는 가정에 따른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저성장으로 소득증가율이 둔화하고 월세가 보편화해 자산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 경우 10년 뒤 서울에서 살 수 있는 집은 3억953만원 이하로 집값 하위 40.8%에 해당한다. 그러나 보고서는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고 가정했다. 현실은 집값이 소폭이나마 꾸준히 오르고, 성장률도 가정보다 낮은 1~2%대 저성장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교통부 '2016년 업무보고' 중 '주거 안정 강화' 방안 주요 내용_경향DB

정부는 공공임대 주택인 행복주택 공급을 늘리고 입주자격을 확대하는 등 청년층의 주거안정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대상을 신혼부부와 대학생, 취업준비생 등으로 한정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또 취약계층 복지 차원의 일시적 정책이어서 주택시장 안정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생산인구인 청년이 향후 주택수요를 떠받치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중장기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청년 소득증가율 둔화와 집값 상승은 향후 자산 및 주택수요 감소로 이어져 집값 폭락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청년이 내집 마련 꿈을 가져야 미래 주택시장도 안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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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삼성전자 서울 서초동 사옥에선 진풍경이 연출됐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수요 사장단회의를 마친 뒤 로비에 마련된 ‘경제 입법 촉구 서명운동’ 부스에 들러 줄줄이 서명을 했다. 현대자동차·LG 등 다른 대기업들도 회사 차원에서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계뿐이 아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온라인 서명 장면을 담은 사진을 언론에 배포했고,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도 서명을 마쳤다. 다른 국무위원들도 서명 대열에 동참할 것이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두서명 참여로 사실상의 총동원령을 내리자 관료와 재벌이 총대를 멘 것이다. 부끄럽고 참담하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와 참여연대 등이 공개한 문서들을 보면, 경제단체·협회들의 서명운동이 반강제적·무차별적 동원 양상으로 흐르고 있음이 드러난다. 한 협회가 회원사들에 보낸 공문에는 ‘매일 16시까지 각사에서 취합된 (서명)숫자를 회신해달라’ ‘서명운동 대상은 각사 임직원 및 설계사, 대리점 등 보험업계 종사자와 계약자’라는 등의 ‘협조 요청사항’이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은 서명운동을 두고 “오죽하면 국민들이 그렇게 나서겠는가, 얼마나 답답하면 서명운동까지 벌이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개된 문서들은 서명운동의 실체가 ‘관제 캠페인’이자 ‘여론 조작’에 불과함을 생생히 보여준다. 답답해서 서명운동에 나선 것은 ‘국민’이 아니다.


삼성사장단, 서명 동참…사옥 로비엔 부스까지 설치 삼성전자 사장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 1층 로비에 마련된 부스에서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이 주도하는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명 서명운동’에 서명하고 있다._연합뉴스


본래 서명이나 청원 운동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표명하고 여론에 호소하기 위한 수단이다. 다양한 정책적·정치적 수단을 보유한 대통령이 거리로 나가 ‘선동 정치’를 벌이고, 총리와 장관이 충실히 뒷받침하고, 해당 입법에 이해관계를 가진 재계가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용인하기 어렵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세력이, 정당한 절차와 과정을 건너뛰고 손쉬운 방법으로 의사를 관철하려 할 경우 민주주의는 위험해진다. 국회의 입법권이 부정당하고 의회민주주의 원칙이 외면당하면 모든 계층·집단이 거리에서 직접 충돌할 수밖에 없다. 관제 서명운동은 마땅히 중단돼야 한다.

독재정권 시절 중·고교에 다닌 이들은 비슷한 기억을 공유한다. 결의대회·궐기대회류의 대규모 집회에 참가해 구호를 복창하던 풍경이다. 이러한 ‘국민 동원’은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진 후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박근혜 정권이 역사의 유물을 되살려내고 있다. 한국은 ‘관제 데모’가 횡행하던 30~40년 전으로 퇴행했다. 설 연휴 귀성길, 박 대통령이 ‘경제 입법 촉구’ 어깨띠를 두른 채 서울역 광장에 나타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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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전태일이 있다면 미국엔 로자 파크스가 있다.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버스비가 없어 걸어서 집으로 가던 청년노동자 전태일. 그는 1970년 11월13일, 무용지물인 근로기준법 책과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면서 한국 사회 민주주의 운동의 분기점이 되었다. 전태일을 따르는 수많은 이들에 의해 한국 사회에 민주노조 운동이, 진보정당 운동이 어렵사리 자리를 잡게 되었다.

미국 몽고메리에서 전태일처럼 재봉사로 일하던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1955년 12월1일 버스 좌석을 평소처럼 백인에게 양보하라는 버스 기사의 인종차별에 맞서 ‘싫습니다’라고 저항하곤 감옥으로 끌려갔다. 그를 따라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몽고메리의 흑인들이 집단적인 버스 승차거부 운동에 나섰다. 로자 파크스가 체포된 지 1년 가까이 지난 1956년 11월13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결국 그간 인종 분리와 차별을 불법이라고 인정하고, 공공시설 내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연방 민권법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로자 파크스는 풀려나 흑인 민권 운동의 어머니가 되었다. 전태일이 죽고 한국 사회가 다시 태어난 ‘11월13일’, 로자 파크스가 풀려나고 미국 사회가 다시 태어난 ‘11월13일’. 우연이었겠지만 날짜도 같다.

미국의 로자 파크스 `버스 차별 철폐' 운동


‘일어나요. 로자’는 그의 이야기를 니키 지오바니라는 흑인 여성 시인이 동화로 재구성한 책 이름이기도 하다. 니키 지오바니는 내가 문학청년이던 시절, 하나의 알을 내가 깨고 나오는 데 큰 영감을 주었던 시인이기도 하다. 지금도 다음 시 구절을 잊지 못한다. ‘나는 어떤 백인도 나에 대한 얘기를 대신 써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가난과 절망을 노래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주체성이 허락되는 세상이면 좋겠다. 아니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이 사회의 주인으로 당당히 일어서서,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면, ‘싫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세상이면, 차라리 잡아가라고 집단적으로 일어설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특히 요즈음처럼 ‘비정상의 정상’이 판을 치는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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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과정이 끝내 파국을 맞았다. 오늘부터 누리과정 비용이 지원돼야 하건만 서울, 경기는 아예 책정돼 있지 않고, 비수도권 다수 지역은 기약도 없는 중앙정부 지원을 전제로 일부 배정했을 뿐이다. 무난한 조정을 원할 땐 양자에게 한발씩 양보를 권하는 게 미덕이겠지만 누리과정 사태는 이 선을 넘었다. 명명백백 원인을 가려야 해법도 찾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누리과정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책임이 낳은 난리이다. 원인과 해법 모두 자신에게 있건만 대통령은 이를 모르거나 혹은 모른 체한다. 연두 기자회견에서 “아이들을 볼모로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삼고 있다”며 교육감들을 비판하는 걸 보면 자신의 책임을 모른 체하는 게 아니라 아예 망각한 듯하다.

대통령은 후보와 당선인 시절까지는 무상보육에 대한 중앙정부의 역할을 인식하고 있었다. 공약집 1쪽에 실린 ‘국민 행복 10대 공약’의 두 번째 약속이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 만 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및 무상유아교육”이다. 당시 누리과정 어린이집 몫이 교육청으로 이관될 것을 감안해 “3~5세 누리과정 지원비용 증액”(68쪽)을 재확인했다. 별도로 발표한 ‘재원 없이 공약 없다’ 제목의 재정공약 1쪽에선 ‘재원조달 3대 원칙’의 두 번째로 “지방재정 부담 충분히 감안한 재원조달”을 제시했다. 대선후보 TV연설에선 “국가 책임 보육체제를 구축하고 5살까지 맞춤형 무상보육을 실시하겠다”며 표를 호소했고, 당선인 시절 시·도지사 간담회에선 “보육사업과 같은 전국 단위로 이뤄지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는 소신을 거듭 밝혔다. 교육부도 대통령의 뜻을 성실히 따랐다. 2015년은 누리과정이 모두 교육청으로 이관되는 해이다. 이에 교육부는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2015년 예산요구안에 누리과정 어린이집 몫으로 2조2000억원을 편성했다. 어린이집을 떠맡게 된 교육청에 해당 비용을 지원하는 건 무상보육 국가책임 공약에 따른 당연한 조치였다.



여기까지다. 대통령이 자신의 약속을 기억하는 시간이. 태도가 돌변했다. 교육부의 증액 요구안이 전액 삭감됐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은 교육청 소관이니 알아서 해야 한다’, ‘법률이 정한 내국세의 비율만큼 교육교부금을 교육청에 이전했으니 중앙정부는 책임을 다했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교육청이 이에 저항하자 작년 10월에는 지방재정법 시행령에 어린이집 누리과정을 교육청 의무지출로 못 박는 조항을 추가하며 교육청을 압박했다.

무리한 국정운영이다. 어린이집 누리과정을 넘기면서 예산은 제공하지 않는데 사업이 진행될 수 있을까? 작년엔 누리과정 중단은 막아야겠기에 지방채를 발행하는 쓴잔을 마셨지만 올해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고 교육감들이 나선 까닭이다. 법치국가에서 아무리 시행령을 고친들 교육교부금을 ‘교육기관 운영에 필요한 재원’으로 정의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제1조)을 넘을 수 없다. 정녕 대통령이 시행령을 들고나온다면 우리는 상위 법에 따라 교육기관이 아닌 어린이집(보육기관)에는 교육교부금을 사용할 수 없다고 교육감들이 배수의 진을 친 배경이다.

대통령이 왜 망각에 의지하는지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누리과정에서 이루려면, 교육교부금을 어린이집에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고치고, 어린이집만큼 교육교부금 교부율을 올려야 하건만 중앙정부에 돈이 없다. 교육청도 빚더미에 앉아있지만 중앙정부도 처지가 심각하다. 재정적자가 작년 46.5조원이고, 올해도 36.9조원으로 예상된다. 지출개혁, 지하경제 등에서 예산을 조달하면 좋겠지만 여기서 나올 돈은 제한적이고 당장 나오기도 어렵다. 빈약한 세입이 근본 원인이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GDP 17.9%로 OECD 평균 25.1%에 비해 약 7%포인트 적다. GDP 1500조원을 적용하면 무려 한해 100조원이 부족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해법도 대통령의 공약집에 담겨있다. 공약집 349쪽엔 ‘복지지출 증가 등으로 재정수입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므로 세입 확충의 폭과 방법에 대해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국민대타협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국민대통합의 기회로 삼겠다’는 약속이 적혀 있다. 제발 공약집을 펴보기 바란다. 쪽수까지 적은 이유이다. 어려운 과제이지만 증세를 진지하게 이야기할 때이다. 대통령은 어떤 세목을 어떻게 조정할지 국민들과 토론하는 세금 논의의 장을 제안하라.


오건호 | 내가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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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부터 “지잡대 갈 거면 대학 안 가는 게 낫지”라는 말을 듣고, 공부를 완전히 손에서 놓아버린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흥미를 좇아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저 말을 듣고 포기했다. 부모의 입장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사회가 어떤 곳인지 말해주고 싶었고 아이가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부모는 그 말이 아이에게 그렇게 큰 타격을 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는 말 한마디에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고 한동안 무기력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는 자기가 ‘멘털’이 약하다고, 자존감이 낮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그게 비단 그 아이만의 문제일까.

진료실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절실하게 깨닫는 건, 그들의 자존감이 낮은 게 그들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자존감의 높고 낮음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의 지위가 불안정해서 그들이 실질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더해 타인으로부터 계속 평가절하를 당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자신의 가치를 낮춰 보게 되는 게 낮은 자존감 문제의 핵심인 경우가 많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가 종종 있다. 갑 중의 갑이 있다면, 갑 중의 갑 중의 갑도 있다. 우리 각자는 누군가의 갑인 동시에 을인 셈이다. 한쪽에서는 떵떵거리며 꼰대질을 하다가도, 다른 쪽에 가면 슬슬 눈치를 보는 게 우리 자화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존감 이야기가 나오면, 많은 이들이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나도 자존감이 그리 높진 않은데…’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 답답하게 행동하는 아이가 눈에 들어오면 자기도 모르게 “지잡대 갈 거면 대학 안 가는 게 낫지” 같은 말을 내뱉게 된다. 타인을 향한 날선 말들은 자신의 낮은 자존감의 반영인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 험한 말을 던지는 부모도 자존감이 낮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이 역시 비단 그 부모만의 문제는 아니다.

베스트셀러는 그 사회에서 가장 결핍된 것을 호출한다. 정의가 결여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찾았다. 벌써 몇 년 전 얘기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로부터 크게 변화한 것 같지가 않다. 한동안은 ‘힐링’이 유행이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같은 감성적인 단문들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안정을 못 찾고 있다. 작년과 올해 서점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책은 <미움받을 용기>다. 처음 제목을 보고는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정의’를 원하지도, ‘힐링’을 바라지도 않는구나 깨달았다. 그런 건 마치 세상에 존재한 적 없다는 듯, 사람들은 이제 미움을 견딜 ‘용기’를 찾고 있다.

사적인 미움이라면 견디거나 감출 수 있다. 대판 싸우고 털어버릴 수 있는 감정이라면 차라리 낫겠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면서 경험하는 ‘미움’의 또 다른 이름은 ‘차별’과 ‘무시’다. 그래서 ‘미움받을 용기가 있느냐’는 물음은, ‘차별과 무시가 계속될 때 어떻게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바꿔볼 수 있다. 그저 일상을 살아갈 뿐인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용기란, 창업을 통해 창조경제에 이바지할 대단한 기백이 아니다. “지잡대 갈 거면 대학 안 가는 게 낫지” 같은 말에 허물어지지 않고 하루하루 자신의 자존감을 지켜나갈 정도의 허약하지 않은 ‘멘털’이다.

어쩌면 낮은 자존감은 사회적인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자존감이 낮은 걸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건 가난은 모두 자기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청년실업, 비혼, 저출산, 이 모두가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자율성의 윤리와 공동체의 윤리가 충돌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자율성의 윤리는 개인의 욕구와 필요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인생을 기획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지향한다. 한편 공동체의 윤리는 가족, 군대, 회사, 국가와 같이 더 큰 사회의 구성원으로 기여할 것을 우선적으로 요구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공동체의 윤리가 우세했다. 개인이 중시되는 사회가 아니었다. 무리에 녹아들어야 생존에 유리했던 시절, 자존감은 별문제가 안됐다. 앞으로는 어떨까. 중요한 건,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자율과 소속감 모두를 필요로 한다. 생존과 자존이 같이 가야 하는 것처럼, 자존과 공존 역시 함께 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융화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연대’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 같은 것이 가능할까. 우리 모두의 자존감을 위해 새로운 사회운영체제의 모색이 필요한 때다.


김성찬 |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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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갈 때면, 관람하는 주 대상이 바뀐다. 파리의 현대미술관인 퐁피두 미술관의 경우, 어느 때에는 미국적인 장면과 추상 표현을 실현한 에드워드 호퍼와 마크 로스코의 회화들을 중심으로 돌아보고, 또 어느 때에는 일상 풍경을 환각적으로 묘사한 프랑스 화가 발튀스의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관람하기도 한다. 부연하자면, 이런 것이다. 극작가 앙토냉 아르토와 작가 알베르 카뮈에 의해 발튀스의 회화 세계를 새롭게 발견한 뒤라면, 또 최근 일본의 사진작가 히사지 하라의 <발튀스 회화의 고찰>을 접한 뒤라면, 발튀스가 단연 관람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발튀스의 에로틱하면서도 섬뜩한 사춘기 소녀 연작과 기묘한 일상의 장면들은 고착된 삶의 국면들을 뒤흔들고,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이번 파리 체류 중에 퐁피두 미술관에 갈 생각을 한 것은 파울 클레의 그림들을 다시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몇 년째 유대계 독일인 미학자 발터 벤야민의 파리에서의 족적을 쫓는 과정에 그가 가깝게 지내며 경의를 표했던 파울 클레의 그림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스위스 출신의 이 화가는 음악과 그림에 공히 천부적인 재능을 물려받았고, 두 세계를 연마해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화가로 활동했다. 그의 그림들은, 전쟁 중이었음에도, 음악적인 리듬감이 선과 색으로 이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추상적이고 단순한 이미지를 형성했다. 퐁피두에 소장되어 있는 그의 다수의 그림들 ‘리듬 속에’ ‘피렌체 빌라’ ‘사슴’ 등이 그것이다.



클레의 그림 중 벤야민이 특별히 주목한 것은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1920)이다. 수채화로 그려진 천사는 곁눈질로 뒤돌아보고 있고, 앙상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려는 형상이다. 벤야민은 이 천사의 시선과 날갯짓을 통해 역사 개념에서 진보를 논하고, 미래의 희망을 설파했다. 새로운 천사는, 눈은 과거의 끝없는 자료, 폐허를 돌아보지만, 거역할 수 없는 폭풍이 미래로 등을 세차게 밀어낸 존재, 곧 역사의 진보를 이끄는 천사를 뜻한다.

프랑스에는 현재 60만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 연달아 테러의 타깃이 되면서 최근 상당수가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있다.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는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3년째 파리 연구를 이어가던 벤야민은 좁혀오는 나치의 추적을 견디다 못해 아메리카로 떠나기 위해 스페인의 국경 포구 포르부에 이르렀다가 극적인 죽음을 맞기까지 분신처럼 이 그림을 품에 간직했다. 벤야민은 이 그림과 함께 비극적 최후를 맞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이후 이 그림은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그림 중의 하나가 되었다.

퐁피두에서는 ‘새로운 천사’ 대신 ‘예언자’와 마주할 수 있다. 백색의 초상이 언뜻 외계인의 형상이다. 인류는, 역사는, 새로운 천사, 메시아는 어디로 향해 가는가. 예언자는 말이 없다.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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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 종영된 날, 모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혜리가 해낼 줄이야! 무시해서 미안해.” 제대로 연기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걸그룹 가수가 인기시리즈의 주인공 역할을 해낼지 걱정했는데, 그게 기우였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응팔>이 기록한 20%의 시청률은 공중파에서도 잘 보기 힘든 수치다.

이 드라마에 나온 출연자들의 연기는 다 출중했지만, 극중 주인공 ‘덕선이’를 위해 태어난 듯 보이는 혜리가 아니었던들 <응팔>이 이렇게 화제가 됐을까 싶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혜리가 천재 바둑기사 최택과 함께 중국에 갔을 때였다. 말이 안 통하는 호텔직원에게 몸짓 발짓을 동원해가며 “방이 너무 추워서 입이 돌아갔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은 나처럼 혜리를 불신했던 모든 사람을 겸연쩍게 만들었다.

혜리가 빛나는 연기를 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극중 배역이 혜리의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 아닐까. <응팔>의 ‘덕선’이 그랬듯 실제의 혜리 역시 상대가 누구든 기죽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염치 불구하고 일단 먹고 봤을 것 같다. 만약 김태희였다면, 지금보다 나이가 십년쯤 더 젊다 해도, 이 배역을 소화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지금 난 김태희가 연기를 못한다고 하는 건 아니다. 그녀의 연기력은 작년 후반기의 화제작 <용팔이>를 비롯해 수없는 히트작을 낸 것으로 이미 증명됐다. 그럼에도 김태희에게 ‘덕선이’가 어울리지 않다고 한 이유는 그녀의 삶이 엄청난 자기관리로 점철됐으리라는 추측 때문이다.

한창 놀고 싶은 중·고교 때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나처럼 못생겨서 할 수 없이 공부한 거라면 모를까, 빛나는 미모를 가진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유혹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그녀의 자기관리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김태희가 데뷔 이후 16년째 톱 탤런트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다 그 덕분이리라. ‘덕선이’에 김태희가 어색한 것처럼, 혜리 역시 <용팔이>에서 김태희가 맡았던 ‘한여진’ 역을 소화하는 건 버거울 것이다. 드라마마다 요구하는 스타일이 다른 만큼, 혜리 같은 천방지축도, 김태희로 대변되는 진중한 연기자도 꼭 있어야 한다.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다는 아니라도 정치인 중 일부는 혜리처럼 좌충우돌하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줘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려 보자. 5공비리를 다룬 청문회 때 모르쇠로 일관한 전직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졌고, 3당합당이란 폭거가 자행될 때는 자신의 정치적 아버지와 절연했다. 번번이 지면서도 지역주의에 맞서 싸웠고, 그래서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검사와의 대화 때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한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했다.

이런 그를 보수세력은 품위가 없다며 비판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재임 기간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가 많은 매력을 지닌 정치인이었던 건 분명하다. 그가 ‘노사모’라는, 정치인 최초의 팬클럽을 거느린 것도 그 덕분이다.

노 전 대통령 이후 혜리형 정치인을 보는 건 힘들어졌다. 새누리당을 보자. 명백한 불의가 자행돼도 다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아예 체질이 됐다. 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은 국회의 권위를 지키려다 대통령에게 야단을 맞자 90도로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당 대표 김무성은 납작 엎드리는 것도 모자라 대통령에게 아부를 해댄다. “이렇게 개혁적인 대통령은 앞으로 만나기 힘들 것이다”라니, 이렇게까지 해서 대표직을 유지해야 하는지 한숨이 나온다. 혜리형 정치인이 없는 건 야당도 마찬가지다. 차기 대선주자로 유력한 문재인을 보자.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낼 당시 부인을 백화점에 못 가게 하고, 청탁을 안 받으려 친구도 일절 만나지 않는 등 자기관리가 뛰어난 점은 십분 인정하지만, 그 이외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안철수는 어떨까? 입대 전날까지 백신을 만드느라 바빠 가족들에게 군대 간다고 말도 안한 채 입대했을 만큼 자기관리의 화신인데, 너무 말을 아끼느라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럼 지금 정치판엔 혜리형 정치인이 없는 것일까. 혜리형 정치인의 덕목이 ‘좌충우돌’이라면, 딱 한 분이 생각난다. 교과서 국정화로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자신의 일을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 유체이탈화법을 즐겨 쓰는 데다, 바람같이 사라졌다 7시간 만에 나타나는 분, 이 정도라면 혜리형이 되기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차이는 있다. 혜리의 좌충우돌은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반면, 이분의 좌충우돌은 주변을 어둡게 한다는 것. 아무렴 어떻겠는가? 있으면 그만인 것을.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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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제 국가에서 차기 대통령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대권주자 지지율을 거의 매일 발표하고 그것이 뭇사람들에 의해 회자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런 현상은 분명히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체가 하나의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에 박근혜 당시 의원은 차기 대통령 지지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했지만 2011년 말부터는 안철수 의원이 그 자리를 위협하곤 했다. 박근혜 당시 의원의 높은 지지도는 이명박 대통령의 위상을 위협했지만 동시에 정권이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에 여권 차기 주자로 가장 근접해 있는 사람은 물론 김무성 대표이다. 김 대표는 청와대의 의중이 담겨 있던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당 대표로 선출됐는데, 요즘 상황을 보면 현직 대통령과의 사이가 나쁜 여당 대표의 한계를 보는 듯하다. 전두환 대통령의 지지를 받았던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같은 지위도 아니고, 임기 말의 김영삼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와 같은 모습도 아닌 것이 김 대표의 요즘 사정이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 대표 경선, 원내대표 선출 등에서 친박 후보가 줄줄이 고배를 마시자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이 전과 같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김 대표의 판단 착오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안대희 전 대법관을 향한 험지출마론이 당사자들에 의해서 무시되는 데서 보듯이 김무성 대표의 리더십은 붕괴 직전에 와 있다.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김 대표가 총선 과정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총선 후에는 더욱 그러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종인 박사를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고 자신은 대표직을 사퇴하고 전권을 선대위원회에 이양하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런 극약 처방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과 문 대표의 지지도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같은 지지도 상승은 고정지지층의 결집이란 측면이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문재인 대표는 자신이 대표가 된 후에 치른 재·보선에서 패배하자 김상곤 전 교육감을 초빙해서 혁신위원회를 만들었다. 당내 문제를 정치적 대화로서 해결하기보다는 외부인사가 주도하는 위원회가 만든 제도로서 해결토록 한 셈인데, 결국에는 혁신위원회가 마련한 혁신안이 당내 갈등을 증폭시켜서 비주류 의원들의 탈당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용섭 전의원이 문재인 대표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 배석한 가운데 복당을 선언했다._경향DB


문 대표가 김종인 박사를 영입해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 역시 앞서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극약 처방이 성공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100만표 차이로 석패한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지만 그 자산을 지난 1년 동안 많이 소진해 버렸다. 이유야 어찌 됐든 자신이 당 대표로 있을 때 당의 분열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문 대표의 리더십은 큰 손상을 입은 셈이다. 어떠한 이유로도 지난 1년 동안 당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선주자로서의 문 대표의 입지는 위축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국민의당 창당을 추진하는 안철수 의원은 탈당 후에 지지도가 상승세를 보였으나 한상진 창준위 위원장의 불필요한 발언, 추가 탈당 및 외부인사 영입의 부진으로 동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창당준비대회를 치르고 나서 지지도가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안철수 의원의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영국 자유민주당의 경우에서 보듯이 소선거구제하에서 제3당이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호남이란 지역지반을 갖고 있으면 새로운 정당이 성공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관건은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 있는 인적 기반이 얼마나 있느냐인데, 국민의당은 이 점에서 심각한 난관에 처해 있다. 안철수 의원이 여전히 대선주자로서 남을 수 있느냐는 국민의당이 총선에서 얼마나 선전하느냐에 달려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국민의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인지도와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당 대표로 영입해서 총선을 치러야 하는데,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의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정치는 한 달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김무성·문재인·안철수 세 사람이 총선 후에 대선주자로서의 위치를 여전히 유지할 수 있을지가 의심스럽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2016년 정치게임에서 진정한 승자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시중의 루머에 머물던 개헌론이 힘을 얻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있어 일대 비극이 되고 말 것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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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이렇게 시작하는 김민기님의 ‘봉우리’는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등수에 들지 못해 절망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만든 노래라고 알고 있다. 그저 정상의 기쁨만을 바라보며 힘겹게 올랐지만, 막상 오르고 보면 더 높은 봉우리가 이어진다. 높음과 강함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인생에게 이 노래는, 봉우리가 아니라 바다를 말한다. “거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이 노래를 들으며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떠올리곤 한다. 물은 높은 데로 오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어, 남들이 다 싫어하는 가장 낮은 데로만 흘러간다. 모두를 이롭게 해주면서도 공로를 드러내거나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는다. 막히면 돌아가고 빈 곳은 채우며 흐르는 물, 다투지 않고 그저 담긴 그릇의 모양에 순응하는 물을 통해서 노자는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도를 말하고자 했다. 낮은 데로만 흐르고 흐른 물이 결국 이르는 곳은, 바다다. 바다가 바다일 수 있는 이유는 가장 잘 낮추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유독 좋아하고 그렇게 사셨던 신영복 선생이 이 땅을 떠나셨다. 선생은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길 수 있는 이유로, 강자가 지배하는 구도에서 약자는 늘 다수라는 점을 드셨다. 쉬지 않고 흐르기 때문에 단단한 것도 뚫을 수 있고, 다수가 가는 곳에 정의의 길이 생긴다고 여기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낮은 곳에서야말로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다고 하셨다. 낮음이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는 가르침을 새기는 데서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바다’다”라는 선생의 말씀은,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

바다처럼 사신 선생이 가신 곳도 바다일 것만 같다. ‘봉우리’의 노랫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우리 인생에는, 또 이 세상에는 여전히 더 깊고 많은 아픔들이 닥칠 것이다. 그 아픔이 유난히 저며 올 때마다 바다를, 그리고 선생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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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추위는 안방 문고리로 왔다. 세수한 뒤 문고리를 잡으면 자석에 못 달라붙듯 손이 쩍 달라붙었다. 수분이 차가운 물체에 닿아 얼어서 접착제 역할을 한 것인데, 짜릿한 느낌에 장난을 치다 피부가 찢어진 적도 있다. 어제 서울 기온이 영하 14도였다. 올겨울 처음으로 한파주의보가 발령됐다. 체감온도는 서울이 영하 25도, 태백은 30도였다. 체감온도가 영하 24~32도엔 단시간 내 노출피부가 동상을 입는다고 하니 야외활동을 삼갈 일이다. 특히 저체온증을 주의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 집계 결과 최근 1개월여 사이에 저체온증 환자가 167명 발생했으며 이 중 6명이 숨졌다. 환자의 절반가량이 음주 상태였다. 1주일가량 지속될 이번 추위 기간만이라도 금주하는 게 좋겠다.

하지만 이번 추위는 역대 기록에 비하면 추위 축에도 못 낀다. 서울만 해도 1927년 12월31일엔 영하 23.1도였다. 남한 역대 최저기온은 1961년 1월5일 양평의 영하 32.6도이다. 러시아 오미야콘 마을은 가장 추운 인간 거주지로, 영하 71.4도까지 내려갔다. 물을 뿌리면 땅에 떨어지기 전에 허공에서 얼고, 동사 사고도 잦다고 한다. 이런 한파를 가장 원망한 사람은 아마 나폴레옹일 것이다. 러시아 침공 때 동장군 탓에 병사 수십만명이 얼어죽었기 때문이다. 영하 38도의 추위에 4일간 병사 4만명을 잃는 등 55만2000명 가운데 겨우 1600명만이 프랑스로 살아 돌아왔다.


세대별 마음의 온도_경향DB


공교롭게도 한국인의 ‘마음의 온도’는 이미 영하 14도였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지난해 1000명에게 ‘심리적 체감온도’를 묻는 아웃도어 업체 네파의 설문조사 결과 전체 평균이 영하 14도였다. 세대별로는 취업준비생 그룹이 영하 17도로 가장 춥다고 느끼고 있었다. 문제는 앞으로 더 낮아질 것이라는 응답이 압도적(79%)이었다는 점이다. 이번 추위는 1주일쯤 견디면 되지만 심리적 추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하다. 설문조사 응답자들은 주변에서 감동적인 일을 접할 때 마음의 온도가 높아졌다고 답했다. 어제 출근길에 환경미화원들에게 따뜻한 차나 커피를 내주는 시민이 평소보다 많았던 것이 눈에 띄었다. 이들이야말로 차가워져 가는 공동체를 녹여주는 난로들 아닌가 싶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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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 대한 사랑, 즉 효는 도덕적 현상으로 이해되는 데 반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본능으로 여겨진다. 인간이 만 3세까지는 부모의 절대적 사랑에 의존하기 때문에, 공자는 그에 대한 도덕적 답례로 부모 삼년상을 주장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효는 부모의 본능적 헌신에 대한 도덕적 답례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후 생물학에서는 종의 번식이 생명활동의 목적이라고 설명해왔다. 이런 설명에 따르면 부모의 자식사랑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러한 자식사랑의 본능을 의심케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고 토막 내 냉동고에 보관한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과거에도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살해한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극심한 생활고에 아이들을 먼저 죽이고 자살하려는 부모들이 있었고, 어린 미혼모나 미혼부가 갓난아기를 유기하거나 죽이는 경우가 있었다. 또는 출산 후 우울증으로 아이를 죽인 엄마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인해 아이를 죽이는 것이 오히려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여겨서 일어난 일이거나, 아니면 병증이 불러온 비극이었다.

이번 경우와 가장 비슷한 사례로 몇년 전 서래마을에서 있었던 프랑스인 엄마의 자녀살해사건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범죄자가 외국인이어서 우리 사회에 주는 충격이 이번만큼 직접적이지 않았다. 자식사랑의 본능을 의심하게 하는 또 다른 사건들은 예컨대 술을 마시거나 게임중독에 빠져서 자녀에게 폭행을 가하는 아버지들이나, 친딸을 성폭행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폭력을 곁에서 묵인하는 어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들이다. 이런 경우에도 대부분은 생활고 또는 자식사랑보다 더 강하다는 성욕본능이나 술, 중독 등과 같은 소위 ‘불가항력’ 때문인 것으로 설명되어, 부모의 자식사랑이라는 숭고한 본능에 대한 믿음을 뿌리부터 흔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정말로 ‘비정상적’이어서, 사건조사를 위해 범죄심리분석관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비정상적’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이번 사건은 정말로 ‘심리적인’ 현상인가? 과거에 존속살인이나 존속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사회적으로 도덕적 울분이 끓어올랐다. 효는 본능이 아니라 도리라는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에, 도리에 대한 위반은 도덕적 분노를 불러 마땅하다고 여겨졌다. 또한 앞서 열거한 자녀에 대한 부모의 학대나 살해와 같은 여타 사건들의 경우에도, 사회 한쪽에서 도덕적 분노가 표출되더라도 대개의 경우 그것은 ‘불가항력’에 의한 것으로 무마되곤 했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신고율_경향DB


그런데 이제 정말로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비정상’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것은 심리적으로 비정상적인 어떤 개인에게서만 특수하게 나타날 수 있는 개별적인 사건인가? 아니면 우리는 과거에 자식을 폭행하거나 살해한 사건들을 이번 사건과의 연결성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만일 첫째, 부모의 자식사랑이 본능이라면 둘째, 자식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경향이 이미 예전부터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해 이제 우리의 규범적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면, 우리는 자식사랑이라는 생물체의 본능을 위협하는 ‘사회적 힘’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비정상’ 상태를 설명하는 심리학적 관점뿐만 아니라, ‘정상’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사회학적 질문도 제기해야 한다. 또 우리 머릿속의 ‘정상’이 사회적 현실로서의 ‘정상’과 일치하는지도 물어야 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부모의 ‘정상적인’ 자식사랑이란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가? OECD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과 아시아 최저 수준의 청소년 행복감, 두 자릿수를 향해 달려가는 청년실업률, 하늘 높을 줄 모르는 사교육 비용과 심화되는 부모에 대한 의존성 등이 현재 우리가 ‘정상적’으로 체험하는 자식사랑의 형태이다. 아마도 ‘정상적’인 많은 부모들이 이미 그들의 자식사랑이 ‘사회적 힘’들 때문에 위협받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을 터이다.

홍찬숙 |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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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문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야권) 통합의 물꼬를 틔우기 위해 제가 비켜서는 것이 필요하다. 선대위가 안정되는 대로 빠른 시간 안에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는 백의종군 각오를 밝히며 ‘김종인 선대위’ 중심의 단결을 촉구했다. 합법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의 중도하차는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문 대표의 선택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당내에서 ‘친노 패권주의’라는 말이 실체와 무관하게 횡행하며 분열의 명분으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문 대표의 결단이 제1야당의 환골탈태와 범야권의 각성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제 더민주는 김종인 선대위원장 중심으로 총선을 치르게 된다. ‘구원투수 김종인’이 등장한 뒤 더민주의 탈당 흐름은 수그러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1등공신이었다는 전력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반발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김 위원장과 더민주 본류가 이질적 요소를 극복하고 화학적 결합을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각자 쳐놓은 울타리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면, 노선 갈등이나 리더십 위기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민주는 재창당 수준의 변화를 감내하고, 김 위원장은 전통 야당의 정신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회견장 떠나는 문재인 대표 (서울=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 후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_연합뉴스


김 위원장이 상징하는 경제민주화는 시대적 가치다. 더민주는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을 총선의 핵심 상품으로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변화는 ‘사람’에 의해 감지된다. 더민주가 외부인사 영입으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궁극적인 평가는 공천 결과로 가름될 수밖에 없다. 공천 혁신안을 충실히 이행해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을 후보로 내야 한다.

문 대표는 사실상의 고별 회견에서 “저의 사퇴를 계기로 통합 논의가 다시 활발하게 야권 내에서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의당 및 천정배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회의’를 향해선 공개적인 통합 협상을 주문했다. ‘소선거구 단순다수제’인 총선에서 야권 후보가 난립한다면 결과는 보나마나다. 이미 상당수 정치분석가들이 3당 구도가 이어질 경우 새누리당 압승이 유력하다고 전망하는 터다. 야권의 제 세력은 치열하게 경쟁하되, 통합이나 선거연대의 가능성을 닫아선 안된다. 정권의 오만과 독주에 지친 시민은 힘 있는 야당의 존재를 염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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