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수의견>의 주인공은 신문사 기자가 자신의 동의도 없이 쓴 기사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주인공은 이 문제로 기자와 통화하면서 말한다.

“그냥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되지, 그 말이 그렇게 안 나옵니까?”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영화 속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간 논쟁이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숙 작가의 작품 ‘전설’이 일본 우익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소설가 이응준의 비판은 신경숙 개인의 작가윤리뿐만 아니라 한국 문단의 구조적 문제까지 주목하게 했고, 표절임을 확신한 많은 독자들은 신경숙 작가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독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신경숙 작가는 자신은 이 논란과 전혀 상관없으며, 대응할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거기에 더해 출판사 창비는 표절을 부인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려 신경숙 작가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와 같이 표절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인 소설가와 출판사가 모르쇠 입장을 보이자, 사회적 비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출판사는 표절에 대한 입장을 다시 번복했다.

결국 신경숙 작가 역시 자신의 표절을 인정하는 인터뷰를 했지만, 이미 배신감에 등을 돌린 대중들은 작가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고 논지를 흐리는 비겁한 자세를 보였다고 평하고 있다. 이렇듯 누가 봐도 명확한 잘못에 대해서조차 분명한 사과와 반성이 배제된 채 사건이 적당한 수준에서 수습되는 이유는 과거의 유사한 경험에서 나온 판단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문제의 중심에 놓여 있는 소설가, 출판사 모두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를 실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권위를 이용해 표절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안일한 생각을 했고, 대중들은 그 안일함에 분노했다.




비슷한 시기, 방송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안일함이 대중들을 분노케 했다. 요리방송의 붐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는 한 셰프로 인해 문제가 불거졌다. 이미 다른 요리 프로그램에서 요리실력 논란을 일으켰던 셰프가 어떻게 요리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에 합류했는가가 주요한 논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강행했고, 시청자들은 그가 요리실력으로 이 모든 논란을 종식시킬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그의 요리는 실망스러웠다. 시청자들의 불만이 쇄도했지만, 제작진은 안일함으로 대처했다. 셰프의 하차와 제작진의 사과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오히려 논란으로 인해 힘들었을 셰프를 두둔하고 위로하는 제작진을 보며 실망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셰프의 가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해명글을 올리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글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내용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러한 논란이 계속되면서 <냉장고를 부탁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원칙과 제작진이 구현하는 세계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책임자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은 꼴이 되었다.

사과(謝過)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사과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보다는 오히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기 쉽다. 이는 신자유주의 경쟁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시각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수준을 인정하고 배우는 자세를 취하면 전문성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진 셰프,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표절을 인정하지 않는 소설가, 시청률에 힘을 실어준 시청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프로그램 제작에만 몰두하는 제작진,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데에만 집중한 나머지 독자와의 신뢰를 저버리고 권위만을 앞세우는 출판사. 이들은 모두 경쟁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외면하는 우를 범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실수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이다. 만약 통렬한 자기반성을 통한 진정한 사과가 결여된다면 그 실수는 다시 반복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사과가 사라진 사회는 반복되는 실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시청자들의 기대를, 독자들의 기대를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얻는 데에만 활용하려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누군가를 빨리 만나고 싶다.

이종임 | 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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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하늘 아래 새소리뿐. 그것이 무엇인지 누군가 귀띔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방금 지나온 자작나무 숲과 사과나무 밭에서처럼 걸음을 늦추거나 잠시 발길을 멈추어 그대로 서 있다가 조용히 다시 앞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어갔을 것이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러시아의 작은 마을에 있는 톨스토이 영지(領地)의 숲길. 6월28일 아침 아홉시,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80㎞ 떨어진 툴라라는 도시로 떠났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툴라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톨스토이가 태어나고 묻힌 야스나야 폴라야 마을로 향했다. 영지에 들어서자 왼편에 작은 연못이 있고, 앞으로 오솔길이 길게 나 있었다. 길옆으로 자작나무가 환영하듯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자작나무 길을 걸어 올라가자 톨스토이의 하얀 집이 보였다. 순간, 몇 년 전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가 까맣게 잊혔다가 되살아났다. 귀족으로 태어나 젊은 시절 심하게 흔들리고 방황하다가 진정한 삶의 내용과 방향을 찾고 실천했던 82년의 일생을 회상 장면으로 환기해 보여주며 시골 간이역사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마지막 1년을 담은 <톨스토이의 마지막 기차역(The last train of Tolstoy)>(마이클 호프만 감독, 2010)이었다.

청춘 시절부터 작가, 화가, 음악가의 무덤들을 찾아다녔다.

작품들만큼이나 무덤의 형식과 묘비명들이 개성적이었다. 살아서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여러 형태의 동거 관계를 시험했으나 죽어서는 합장되어 있는 파리 몽파르나스 묘원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묘와 의붓아버지의 가족묘에 합장되어 있는 시인 보들레르, 아일랜드 북서쪽 항구도시 슬라이고의 작은 교회 묘지에 묻혀 있는 시인 예이츠, 에게해 크레타 섬의 베니치안 성벽에 묻혀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가장 아름답게 여운이 남아 있는 것은 “삶에도 죽음에도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말 탄 자는 지나가도다”라는 예이츠의 묘비명과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다”라는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었다.

 


톨스토이_경향DB



톨스토이의 무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하늘 아래 새소리뿐. 그것이 톨스토이가 묻혀 있는 곳이라는 것을 누군가 귀띔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방금 지나온 자작나무 숲과 사과나무 밭에서처럼 걸음을 늦추거나 잠시 발길을 멈추어 그대로 서 있다가 조용히 다시 앞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어갔을 것이었다.

스크바로 돌아오는 길, 슬퍼하지도 생각하지도 말고, 아무것도 세우지 말고 그저 소박하게 묻어 달라던 톨스토이, 하늘을 사랑하여 하늘을 잘 보이게만 해달라고 당부했다던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을 되새겼다. 하늘과 새소리, 그리고 초록의 자연뿐 아무것도 새겨놓지 않은 톨스토이의 무덤은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찾아갔던 세상의 수많은 예술가들의 무덤 중 가장 아름다웠다.

함정임 |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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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다녀온 제주도는 한산했다. 어디서나 눈에 밟히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관광명소마다 빼곡히 들어선 중국어 안내 표지판들이 왠지 쓸쓸했다. 메르스가 만들어낸 낯선 풍경이었다.

전염병은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언제나 중요한 악역을 맡았다. 14세기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쓰러뜨렸다.

200년이 지난 후, 흑사병의 재앙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이의 후손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그 바람에 천연두, 홍역, 장티푸스도 덩달아 전해졌다. 이 질병들에 대한 저항력이 없었던 멕시코 전체 원주민의 75%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에서 약 50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오늘날에도 전염병은 우리를 음산하게 옥죄어 온다. 세계보건기구는 인플루엔자, 결핵, 에이즈 같은 병에 감염된 사망자가 매년 1500만명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자연 선택은 우리 몸 안으로 일단 들어온 병원체를 때려잡는 면역계를 정교하게 진화시켰다. 여기에 덧붙여, 병원체에 감염되는 것을 아예 처음부터 막아주는 행동도 병원체와의 전쟁에서 매우 쏠쏠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누군가 기침하는 소리, 붉게 발진 난 피부, 상한 음식물 냄새처럼 병원체에 감염될지도 모를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일단 감염을 피하는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하게끔 진화했다. 전염병에 걸릴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속의 건강염려증 환자가 우리를 이끄는 컨트롤타워가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자.

첫째, 남들과 어울리기를 꺼리고 자기 자신을 내성적이라 여기게 된다. 처음 본 이들과도 어깨동무하며 금세 으샤으샤 친해지는 사람은 대개 부러움의 대상으로 꼽힌다(‘어쩜 저렇게 사회생활을 잘할까!’). 하지만 전염병이 퍼진 상황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러 사람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는 이는 그만큼 병원체를 얻을 가능성이 더 크다. 즉 병원체에 감염되기 쉬운 환경에서는 괜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집 안에 콕 틀어박혀 있는 게 상책이다. 한 연구에서는 지저분한 수챗구멍, 쓰레기 더미, 배설물 등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평범한 건축물 사진을 본 사람들보다 자신을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여기는 경향이 더 뚜렷함을 발견했다.

둘째, 병원체를 옮길 우려가 있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더 배척하고 멀리하게 된다. 계속 기침을 해대거나, 마스크를 착용했거나,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사람을 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메르스 공포가 한창 심할 때 공공장소에서 무심결에 기침이라도 한번 했다간 그대로 왕따 신세가 되었음을 상기하시라.





흥미롭게도, 다른 지역이나 타국에서 온 외부인을 차별하는 편견도 전염병이 득세하면 더 심해진다. 스페인 병사들이 옮긴 천연두와 홍역에 속절없이 쓰러진 멕시코 원주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외부인들은 우리 집단의 사람들이 미처 저항력을 발달시키지 못한 치명적인 병원체를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자 제이슨 포크너와 그 동료들은 한 집단에는 병원체의 위험을 강조하는 사진들을, 다른 집단에는 감전사나 교통사고의 위험을 강조하는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 외국인 노동자의 국내 이입 정책에 대한 찬반을 물었더니, 전염병을 피하려는 동기가 활성화된 집단에서 반대가 더 높았다.

같은 논리로, 외부인에 대한 편견을 줄일 수도 있다. 다른 실험에서는 실험 참여자들에게 항균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게 했더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감소했다.

셋째, 권위와 전통을 내세우면서 개인의 일탈을 용납하지 않는 태도가 더 강화된다. 어느 한 지역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과 규범은 일정 부분 그 지역의 토착 병원균들의 전파를 막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했던 과거 우리 사회에서 집을 지을 때 뒷간은 본채에서 되도록 멀리 두어야 한다는 규정은 위생상 중요했다. 즉 다수를 따르길 거부하고 혼자서 튀는 행동은 병원체의 먹잇감이 되기에 십상이라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전염병의 위협이 그다지 크지 않다면, 과감히 혼자서 튀는 시도가 창의적인 기술 혁신을 이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요컨대 전염병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는 권위와 전통을 더욱 따르려 하는 한편 누군가 일탈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병원체의 위험을 강조하는 사진들을 본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는 경향이 더 높아짐을 발견했다.

전염병을 피해야 하는 동기가 활성화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고, 외부 집단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해지고, 권위를 더 내세우며 남의 일탈을 못 참게 된다.

메르스 공포가 온 나라를 뒤덮은 지난 한 달 동안, 대한민국에 이런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는지 따져볼 일이다. 여당 원내대표가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를 거스르고 자기 정치를 한다며 직격탄을 날린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은 꽤 잘 설명되는 것 같다.

전중환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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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한 6월25일자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석상의 발언은 장소, 절차, 그리고 내용이 모두 잘못됐다. 무엇보다 국무회의는 국정을 논하는 자리이지 대통령이 억한 심정을 표출하는 장소가 아니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파급력이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폭탄선언을 하려면 대통령은 비서실장, 정무, 홍보 등 비서관들과 사전에 협의를 했어야만 한다. 하지만 대통령 비서실장도 현장에서 비로소 그 내용을 처음 들었다고 하니 블랙 코미디라고 하겠다. 국회가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상황이라면 국무회의는 최소한 논의는 하고 통과시켜야 한다. 대통령의 격앙된 발언이나 듣고 침묵으로 안건을 통과시키는 국무회의라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다. 

박 대통령은 여당 원내대표가 국회를 설득시키지 않고 무엇을 했느냐고 질타했는데, 그러면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해 야당과 대화라도 한 적이 있는가. 야당과의 대화는 오바마 같은 ‘풋내기 대통령’이나 하는 것으로 안다면 그것은 엄청난 오해다. 동서 냉전을 종식시켜서 역사의 한 장(章)을 장식한 칠순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당시 야당 지도자이던 팁 오닐 하원의장과 수시로 만나고 통화하면서 법률안 통과를 부탁하곤 했다. 명색이 보수 정치인이라면 레이건의 리더십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들어보기는 했을 것이 아닌가. 

 

민주당 '민주적 국회 운영 모임' 원혜영 의원(가운데) 등 소속 의원들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국회 선진화법 유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_경향DB



박 대통령은 2012년 4·11 총선에서 다시는 다수당이 일방적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약했고, 여야는 그 약속을 받아들여서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켰다. 국회선진화법이 존재하는 한 다수당 원내대표라고 하더라도 인내를 갖고 야당과 협상하는 수밖에 없다. 대통령 자신이 만들어 놓은 국회선진화법의 테두리 안에서 협상을 통해 공무원연금개혁안을 통과시킨 여당 원내대표를 대통령이 질타하고 있음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혹시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에 뜻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배신의 정치는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를 초래한다”는 말도 생뚱맞기만 하다. 이 표현은 박 대통령이 고배를 마신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 들어맞는다. 2004년 총선 때 자신이 혼신을 다해 유세 지원을 했던 이재오 의원 등과 자신 덕분에 국회의원이 된 전여옥 전 의원 등 비례대표 의원들이 대거 이명박 대통령 쪽에 줄을 섰던 것은 박 대통령에게 아픈 기억일 것이다. 그렇게 자기가 힘들 때 자신을 지켜준 사람이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였다. 

유 원내대표가 증세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피력한 부분은 박 대통령에게 불쾌한 측면이 있겠지만 지하경제를 양성화해서 복지예산을 충당하겠다던 박 대통령의 구상이 허망한 것임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패권주의가 어떻고 줄 세우기가 어떻다는 말은 유 원내대표보다는 사무총장 등 당직 임명권을 갖고 있으며 또한 내년 총선에서 공천작업을 지휘할 김무성 대표를 향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친박 의원들이 대통령의 역정(逆情)에 편승해서 들고일어난 것도 우습다. 강경한 말을 쏟아낸 이정현 의원이야 원래 대통령의 집사 역할을 했던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치자. 유 원내대표를 앞장서서 비난한 김태호, 이인제 최고위원은 사실 박 대통령과는 인연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와중에 김무성 대표가 “나도 박 대통령하고 너무 가까워서 죽었잖아”라고 말해서 주목을 샀다. 필자가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자기를 아는 사람을 부담스럽게 여긴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언급이다.

박 대통령을 알아왔던 사람들이 대통령과 멀어지게 된 원인 중의 하나는 ‘문고리’와 ‘10상시’라고 불리는 ‘인(人)의 장벽’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은 부친 시절의 과거사 발언으로 선거에서 패배할 뻔했다. 식견이 태부족한 주변 인물들이 제공한 잘못된 정보를 갖고 대통령이 인혁당 사건과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엉뚱한 발언을 해서 선거 캠프가 와해될 지경에 처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은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패턴이 있는 한 이 정부는 취약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는데, 불행하게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임기가 보장된다. 의회의 불신임 결의에 따라서 정부가 교체되는 의원내각제와 달리 대통령제 국가에선 아무리 무능하고 오만한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임기 내에 교체할 방도가 없다. 우리는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이란 ‘저주’에 연거푸 갇혀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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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16일 군사쿠데타로 청와대를 장악했던 박정희 소장. 그는 시청 앞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나, 2년 동안만 군정을 한 뒤에 민정에 이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비밀리에 김종필에게 지시했다. 공화당 창당 등 쿠데타 세력의 정치참여를 위한 철저한 준비를 은밀하게 시작했다. 2년 뒤 박정희와 김종필은 군복을 벗고 정치에 참여했다. 군복을 벗고 민간인 신분으로 정치를 하니 약속 위반은 아니라고 했다. 1969년 9월14일 새벽 2시 국회 별관. 박정희의 개인적 정치도구로 전락한 공화당 의원들은 대통령의 3번 연임을 골자로 한 3선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김대중의 강력한 도전을 받았던 박정희는 1971년 대선 마지막 유세에서 “이번 선거가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는 마지막”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1972년 10월 자신의 영구집권을 토대로 한 유신체제를 선포했다. 박정희의 절대권력 시대가 열렸다.

피살된 모친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시작하던 때는 1974년, 그녀의 나이 22살이었다. 절대권력자 박정희 옆에서, 권력을 어떻게 연장하고 지켜나가야 하는지 그 생리를 철저하게 배웠을 것으로 보인다. 권력투쟁과 관련된 후계자 수업을 박정희가 시켰는지, 안 시켰는지 알 수 없지만, 만약 박정희가 살아서 권력을 넘겨주었다면 그의 딸 박근혜가 1순위가 아니었을까 싶다. 독재 권력자의 생리상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부친의 죽음을 맞고 나서 20여년 뒤, 정치인 박근혜는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세습받지 않고 스스로 선거에 나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선 배경은 작고한 부친의 후광이 절대적이었지만, 하여튼 그녀는 합법적인 임기 5년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당시 미국의 타임지에서는 ‘독재자의 딸’로 기사 제목을 뽑았다.

 

3선 개헌 국민 투표하는 박정희 대통령 부처(1969년)_경향DB


임기의 절반을 돌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권력 핵심 주체인 여당에서부터 박 대통령 권력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충성과 배신의 건달문화가 박근혜 정권의 핵심부에서 벌어지면서, 대통령의 심기가 어긋나고 있다. 국회가 견제와 비판의 기능을 회복하고, 집권여당이 상대적 독립성을 회복하는 전향적인 민주적 정치문화가 배신의 계절로 낙인찍히고 있다. 아마도 여의치 않으면, 박 대통령은 자신의 30% 콘크리트 지지율과 대통령 권력을 등에 업고 신당 창당에 적극 나설 것이다. 충성과 배신이 공천 기준이 되는 친박 신당이 내년 총선 전에 만들어질 수도 있다. 레이저에 쏘인 배신자들을 대구·경북에서 줄줄이 낙선시키고, 오롯이 충성분자들이 박 정권 사수를 위해 국회에 입성한다. 물론 이 시나리오는 여권의 거센 반대에 부딪힐 테고, 김무성 대표가 공천권의 일부 양보를 통해 꼬리 내릴 확률이 높지만, 박 대통령의 최근 눈빛을 보면 소름 돋는 권력 배타성을 느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절대권력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사회경제적 물적 토대를 가진 자들의 구조로 정립하면서 유지되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최측근에게 암살당하면서, 내부 붕괴로 그 절대권력의 최후를 맞게 된다. 20세기 말 공산주의 국가들이 멸망한 이유는 민주적 정치를 외면하고 전체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반면 자본주의가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민주주의가 정치적으로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권력의 물화, 권력의 아집에만 사로잡혀, 그것이 정치의 전부인 양 착각하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1인 유아적 권력 추구는 생존을 건 권력투쟁을 불러온다. 그것도 내부 권력 핵심부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서 증명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소중함, 민주적 가치의 존중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을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힘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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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많은 논쟁과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었고 여전히 그 여파가 진행 중이다. 이미 많은 논평들이 쏟아져 나오기는 했지만, 가장 놀랍게 느낀 것은 박 대통령의 짙은 정치혐오였다. 대통령이 정치인이기를 멈춘 것이다.

대통령은 과연 정치인인가? 매우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그 대답이 간단치는 않다. 여기서 정치인이란 말을 편의상 ‘정파적(partisan)’이란 말로 대체한다면 실마리가 보일 것도 같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이기 때문이고, 국민 모두의 지지로 당선되지는 않았어도 국민 모두를 대의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부분(part)’을 일컫는 말에 뿌리를 둔 정당, 혹은 정파적이란 말은 애초에 대통령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여야 정치인들을 하나로 묶어 공격한 대통령은 매우 탈정파적이었고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초월적이었다.

‘국부(國父)’ 혹은 ‘박사’라는 명칭이 더 편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가 어쩌면 이러한 초월적 대통령의 이상형일 것이다. 자신을 추종했던 정당, 정치인들을 끊임없이 부정, 멸시, 말살하고 독촉국민회, 한민당, 자유당 등으로 끊임없이 여당을 갈아치우면서도, 정치를 초월한 국민의 아버지이자 시대의 현인으로 추앙받고 싶어했다. 권력을 향한 끊임없는 투쟁을 전제로 한 정치는,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상에 다다른 이에게는 너절하고 비천한 일로 보였을 것이다.

 



더 극단적으로 정치와 정당을 초월했던 이들은 이후 권위주의 정권의 대통령들이다. 이들은 정치인들을 정화(淨化)하고 정당을 소각한 무균진공의 공간에 준국가기관인 공화당과 민정당을 ‘설치’했는데, 아마 무질서한 투쟁과 지저분한 갈등이 없는 ‘아름다운 정치’를 꿈꿨을지도 모른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정치란 개념을 거부했다면 이들은 정치 공간 자체를 멸균했다는 차이는 있지만, 정치를 초월한 대통령이라는 의미에서는 매우 흡사하다.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성숙 과정이라는 것, 그리고 근대적 정치라는 것은 이러한 ‘초월자적 대통령’의 신화를 극복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스스로를 ‘보통사람’이라 칭했던 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영수회담(領袖會談)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면서부터였고, 당정(黨政)협의란 말이 당정청(黨政靑)협의라는 말로 바뀐 것은 국회와 대통령의 직접적인 소통창구로서 여당의 역할이 강조되는 장면이었다. 민주주의 한국의 대통령은 심판이 아니라 선수이며, 정파를 초월한 지도자가 아니라 선거에서 이긴 정파의 지도자이다.

초월자적 대통령은 그 이름만큼이나 매력적이며 정치혐오증의 이면이기도 하다. 사익의 지배를 받는 무능하고 비효율적인 ‘정치’보다 관료제로 무장한 대통령의 ‘행정’은 몇 배나 더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정치혐오증을 우리 사회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가 지저분하고 비효율적이라고 해서 없애거나 축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밥알을 씹고 저녁에 화장실을 가는 것과도 같은 과정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사회 갈등을 찾아내고 그것을 짚어내거나 터트리는 일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정치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면, 정치가 문제 해결에 서투르고 비효율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박 대통령의 지난 선거와 당선 과정을 상기해보면, 그것이 이러한 사회 갈등의 줄기를 짚는 ‘정치’의 과정이었고, 여전히 그 작업을 멈추면 안된다는 의미에서, 대통령은 계속 정치인이어야 한다.

이상의 논의를 책임정당제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것은 변하지 않을 사실이며, 여전히 새누리당의 핵심 지도자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진정한 미래의 비전을 정책으로 구성하고 실현하는 것은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자신의 정당에서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그리고 그 정당을 통해 이어진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들과 협력하는 과정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후보자가 정당과 같이 비전을 만들고, 이를 정책적 공약으로 구체화하며, 선거에서 평가받는 과정, 이것을 당선 후 구현하고 재평가받는 과정을 책임정당제라고 부른다. 한국 정치의 비극이라는 것은 대통령이 정당을 통해 당선된 후, 자기 정당을 ‘초월’하고, 이후에는 다시 그 정당에 의해 부정되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는 사실이며, 이것이 쉽사리 가까운 시일에 바뀔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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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비정규직의 증가가 몰고 올 암울한 미래상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지난 29일 한국은행은 65세 이상 고령층을 제외한 생산가능인구가 2017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서 2020년부터 취업자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또 정규· 비정규직 간 극심한 격차가 지속될 경우 청년층의 경제참여를 위축시켜 고용여건은 더욱 나빠진다고 진단했다.

30일 고용노동부의 상시고용 300인 이상 대기업의 고용형태 공시 결과 발표도 이 한은의 경고를 뒷받침하고 있다.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이 20%로 지난해보다 0.1%포인트 높아졌고 기간제 비율까지 합치면 대기업 노동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이었다. 기아차 모닝 생산공장이나 롯데 영등포역 백화점처럼 운영 인력이 100% 간접고용이지만 정규직이 워낙 적어 공시에서 제외된 기업까지 포함하면 이미 비정규직 비율은 절반을 넘어섰다고 봐야 한다. 한은 조사에 따르면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급여는 49% 수준이다. 청년들의 구직 욕구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청년실업이 아니라 일시 취업과 해고를 반복하며 숙련 형성 기회에서 영구적으로 배제되는 ‘청년 낭인’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영화 <카트>의 실제 주인공들인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부의 대책을 반대하며 행동계획을 발표하고 있다._경향DB

 


하지만 대기업들은 비정규직 비중을 낮추고 고용 안정과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청년들의 취업 욕구를 높이기 위한 사회적 책임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은 “ ‘베이비부머 세대’는 자녀세대에게 안정된 미래를 물려줄 책임이 있다”며 청년실업 문제를 세대갈등의 문제로 접근했다. 기업의 책임은 외면한 것이다. 대한상의도 ‘청년실업 전망과 대책’ 보고서에서 20년 전 ‘대학정원 자율화’를 원망할 뿐 고학력 실업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하는 기업의 노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사용자위원들은 시종 ‘최저임금을 동결하지 않으면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급기야 법정활동 마감시한인 지난 29일에는 최저임금을 시급·월급제로 병행 표기하자는 제안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회의를 거부했다.

인구고령화는 당장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대기업의 저임·비정규직 남용은 막아야 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심각한 고용지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계속 대기업들의 ‘이기적 고용’에 끌려다닐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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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도자의 숙명 가운데 하나는 매 순간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그 결과가 정치적 자산이 될지, 부채로 남을지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당장은 자산인 것처럼 보이는 선택이 부채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부담감을 용기와 의지로 돌파한 사람들만이 성공한 정치인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김무성 당 대표에게 주목하는 것도 그가 과연 집권당의 지도자다운 인물인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행보는 시종여일하다. 친박근혜계 최고위원들의 사퇴 요구에 “고민해보겠다”고 대답한 그는 “밤사이 심경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김무성 대표는 어제 “유 원내대표 스스로 결단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유 원내대표를 모양새 좋게 퇴진시키자는 것으로, 친박의 입장도 고려하면서 유 원내대표의 처지도 감안한 절충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29일 경기 평택시 평택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_경향DB



김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유 원내대표가 신임을 받으면 대통령은 뭐가 되며, 대통령 뜻대로 되면 유 원내대표는 어떻게 되겠느냐”며 “결론이 어떻게 나든 파국인데 그러면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의 위신 손상과 당 내분 모두를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은 씁쓸하다.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질타했을 때 그는 유 원내대표를 엄호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뜻을 읽은 뒤에는 “(유임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방향을 바꾸는 듯했다. 그러다 여론이 친박에 비판적으로 돌아가자 “(의원들의 뜻을 묻는) 의총에서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대통령 눈치 보기는 이번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개헌 논의가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가 이튿날 사과한 적이 있다. 여의도연구소장에 박세일 전 의원을 임명하려다 친박의 반대에 부딪히자 접기도 했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뜻을 거역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비이성적 태도에 균형을 잡아줄 이는 현재 집권당 대표뿐이다. 김 대표는 당초 유 원내대표의 사퇴에 부정적이었다. 당 대표로서 그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이고, 당내 여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대통령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든지, 당내 논의의 흐름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지금이라도 집권당의 대표이자 국정의 중심축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당의 중심을 잡고 유 원내대표 축출 운동을 막는 데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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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오는 12월 신기후체제 협상에 내놓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어제 확정했다. 203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치의 37%를 감축한다는 내용이다. 일견 6월11일 제시한 4가지 감축 시나리오(14.7%, 19.2%, 25.7%, 31.3%)보다 강화된 목표로 보인다. 정부는 한국의 국제적 책임과 그동안 쌓아온 기후변화 대응 리더십을 고려하고 에너지 신산업 및 제조업 혁신의 기회로 삼기 위해 목표 수준을 상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의심스러운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5억3500여만tCO2-e 배출) 목표는 지난해 12월 페루 리마에서 채택된 ‘후퇴 금지 원칙’을 겨우 충족하는 것이다. 2009년 한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2020년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5억4300만tCO2-e 배출) 목표를 고작 700여만tCO2-e 줄이는 정도다. 10년 동안 거의 줄이지 않을 것이며 2020년 감축 약속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게다가 37% 감축 목표마저 배출권이라는 국제탄소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국외 감축분 11.3%포인트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감축분의 거의 3분의 1을, 남의 나라가 온실가스를 감축하면서 확보한 배출권을 돈주고 사는 것으로 메우겠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국내 감축 목표를 25.7%로 잡으면 사실상 기존 제3안을 채택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시나리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치_경향DB



산업 부문의 감축률을 12%로 낮춘 것도 정부의 감축 의지를 의심케 한다. 정부는 산업계가 14.7%를 줄이는 1안조차 부담스럽다며 강하게 반발하자 전체적인 감축률은 상향 조정하는 대신 산업 부문 감축률은 대폭 낮췄다.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가장 높은 산업 부문이 채우지 못한 감축 부담은 결국 국민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는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이나 수송·건물 등에서 추가적 감축 여력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한다. 온실가스 포집 및 저장 기술 등 신기술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위험하고 비싼 감축 수단이 기후변화 대책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국이다. 누적배출량에서도 16위를 차지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며 주요 20개국(G20)의 일원이다. 유엔 사무총장 배출국이자 녹색기후기금 유치국이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의장 도전국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책임을 다해야 할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후변화에 이렇게 소극적인 대응을 한다면 기후 의제를 주도하는 국가의 위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산업계와 정부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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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대통령 37회, 부시 대통령 10회, 오바마 대통령 3회. 이건 다름 아닌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횟수입니다. 트루먼 대통령 때부터 치면 총 794회, 미국 건국부터 치면 무려 2564회입니다.

법이라는 것이 의회에서 만들어지지만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줌으로써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에 긴장과 균형을 제도화한 것은 삼권분립이 기본인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합니다. 어느 한쪽이 비대한 권력을 갖게 될 것을 방지하고자 한 것이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의회가 뒤집을 수 있는 것 또한 비슷합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헌법에 쓰여 있는 것도 두 나라가 같죠. 하지만 거의 같은 제도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또한 미국과 한국인 듯합니다.

애초에 긴장과 균형을 권력자 사이에 불어넣고자 했던 것이니만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대통령과 의회 사이를 껄끄럽게 하죠.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 3월 말 공화당 주도의 의회가 보낸 노동조합 선거 규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정적인 공화당의 베이너 국회의장은 이에 대해 경제성장은 뒷전이고 정치적이기만 한 대통령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며 독설을 뿜었습니다. 전임자인 부시 대통령은 2008년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이 의회에서 3분의 2가 훨씬 넘는 표를 받아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온 일도 있었죠. 부시의 공화당 의원들도 거든 결과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기쁠 리야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1일 의회가 제출한 이라크전비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뒤 백악관에서 연설하고 있다_경향DB



의회가 합의를 해서 법안을 처리하는 것은 민주체제의 꽃이라 할 수 있고 칭찬받을 일입니다. 그 법안에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이죠. 그럼 의회로서는 재심을 하거나 말거나 하면 됩니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 처리도 그럴 수 있었죠. 그래야 했습니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말이죠.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의회의 고유 권한인 입법행위를 ‘배신’이라며 치를 떨었고 야당과의 합의를 이끈 유승민 원내대표를 ‘심판’하자며 정치적 협박을 했죠. 청와대의 진노는 새누리당의
‘송구’와 ‘죄송’으로 이어졌고, 유승민 원내대표의 퇴진을 둘러싼 여진은 정당을 흔들었습니다. 정당한 입법활동에 대통령이 진노하고 국회의원을 공공연하게 뒤흔드는 일은 제대로 된 민주국가라면 상상도 못할 것이죠. 어이없는 사태이지만 한국의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준다는 데서 그 위로를 찾아볼까 합니다. 이번 거부권 행사는 역대 73번째로서 비슷한 기간 미국의 794회에 비하면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왜일까요? 이는 대통령과 의회의 관계가 주종의 관계이다시피 했던 불행한 현대사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승만을 시작으로 박정희와 군대 후배들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김영삼, 김대중의 시대에도 대통령은 곧 주요 정당의 절대적 지도자들이었습니다. 행정부의 수반이자 입법부의 지도자였던 것이죠. 덕택에 이들은 제왕적 대통령의 지위를 누렸고 삼권분립이 무색해지는 전통이 이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번 사태는 민주제도라도 이를 운영하는 자가 작심을 하고 달려들면 충분히 비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이 가고 누가 오더라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죠.

제도의 보완이 시급한 숙제라고 하겠습니다. 소수의, 다양한 목소리가 의회에 넘쳐나고 합의가 일상적일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작심하고 달려드는 권력자들을 막을 수 있는 길, 그들을 서로 싸우게 해서 민중의 지지를 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제도를 당장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태현 |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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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조상준 부장검사)가 포스코를 상대로 ‘장기전’에 돌입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준양씨를 소환한다고 수사가 끝나는 게 아니다. 포스코 수사는 연중 지속한다. 포스코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준양 전 회장을 필두로 일찌감치 수사선상에 올려놓은 전 포스코그룹 최고위층과 별개로 그룹 전반을 샅샅이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정준양 포스코 전 회장_경향DB


사람 몸에 곪거나 썩은 곳이 있으면 수술을 해야 하듯 기업에 비리가 있으면 수사해 바로잡아야 한다. 문제는 정교함과 신속성이다. 검찰 특수부는 치밀한 내사로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린 상태에서 공개 수사로 전환해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간 특수부가 여러 수사에서 신속하게 ‘거악’을 잡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특수부가 압수수색을 하고 출국금지 조치를 하면 사실상 ‘게임 끝’이었다.

그러나 포스코 수사는 이런 모습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지난 3월13일 포스코건설의 자체 감사자료를 바탕으로 포스코건설 압수수색에 나설 때만 해도 정 전 회장 등 고위경영진은 물론 이명박 정부까지 순식간에 겨냥할 것으로 보였다 .

이후 100일이 넘었지만 정동화 전 부회장 구속영장조차 기각되는 등 수사는 애초 예상됐던 진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깃털’ 격인 포스코건설 전·현직 임원 10여명을 하청비리 등으로 구속한 검찰은 이제야 포스코의 인수·합병(M&A) 과정을 새로운 수사 타깃으로 설정했다.

실력이 뛰어난 외과의사는 아픈 곳을 정확히 찾아 예리한 메스를 댄다. 수술 시간도 최소화한다. 김진태 검찰총장도 기업 수사에 관해 “환부만 도려내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러나 포스코는 어디를 수술받는지도 모른 채 장시간 수술대 위에 누워 공포에 떨고 있다. 민간기업을 연중 수사해 정상화하겠다니, 검찰이 ‘기업감독원’인가.


홍재원 사회부 기자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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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가뭄이다. 그 와중에 날씨를 진압하듯 퍼포먼스는 진행되었다. 논에 물을 대지 않고 공중에 물을 쏘았다. 뿌리가 아니라 어린 잎과 줄기에 직접 물을 뿌린 것이다. 벼에게는 입이 없는 줄을 몰랐다는 것일까. 이런 희한한 일들이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눈길을 끄는 ‘경향신문’의 뉴스. “극심한 가뭄으로 소양강댐의 수위가 역대 최저치에 근접하면서 42년간 물에 잠겨 있던 강원 양구군 수몰지역의 성황당 매차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 양구군 자치행정과장은 ‘가뭄으로 드러난 강바닥 곳곳에서 수몰 전 마을을 지켜주던 성황당 나무의 앙상한 모습이 목격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사진 속의 나무는 나무라는 형태만 간직했을 뿐 동정(同定)할 만한 단서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물속으로 이사한 지 42년 만에 다시 나타난 매차나무. 이름이 생소해서 도감을 뒤적였지만 그런 나무는 없었다.

양구군청에 전화를 했더니 자신들도 정확한 나무 이름은 모른다고 했다. 중학생일 때 마을을 떠난 분이 자신의 할아버지한테 분명히 매차나무라고 그 이름을 들은 바가 있다고만 했다. 성황당나무나 정자나무는 특정한 나무가 아니다. 마을을 수호하고 쉼터가 되는 곳에 우람히 자리하는 나무를 통칭하는 것이다. 매차나무는 아마도 그런 용도로 심은 나무의 한 종류를 양구지역에서 칭하는 이름인 것 같았다.

내게도 그런 나무가 있다. 내 고향인 경남 거창군 주상면 오무마을의 한복판을 지키는 큰 나무. 원래 마을 어귀에 있던 소나무가 까닭 모르게 죽은 뒤 동네 가운데에 새로 심은 뒤 자연스럽게 마을의 의지처로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다. 어느 해 고향 가서 나무 이름을 물었더니 재종형님이 귀목나무 아이가, 하셨다. 괴목요? 했더니 손바닥에다가 기, 목,이라고 또박또박 적어주셨더랬다. 내 고향에서의 귀목은 서울에 오면 느티가 된다. 가뭄은 하늘에서 기인하는 바이니 거창과 양구의 물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공화국의 어떤 시대를 통과하는 중일까. 곧 고향에 가서 귀목나무 아래에서 하늘 한번 우러러보아야겠다. 느티나무, 느릅나무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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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숫자로 기념할 일이 매우 많은 해다. 광복 70주년, 한국전쟁 65주년, 그리고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20년, 세월호 참사 1년, 메르스 국제 민폐국 원년 등. 더 많은 의미가 있는 사건·사고들이 있겠지만, 6·29 삼풍백화점 붕괴 20년은 꼭 기억해야 할 날이다 .

삼풍백화점 붕괴 20년, 우리 사회는 무엇을 남겼을까?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엇이든 빨리빨리 하려는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이뤘다. 얻은 만큼 톡톡히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20년을 맞아 서울 시민청에서 기획전시 '기억 속의 우리, 우리 안의 기억. 삼풍'이 열리고 있다. _경향DB


가족간, 마을간 공동체가 무너지고 경쟁에 내몰린 10대 청소년들이 학교폭력에 노출되고 자살률이 증가하는 등 미래사회를 걱정하게 만든 현상들뿐이다. 20∼30대는 취업과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는 세대가 되었고, 은퇴를 앞둔 장년들은 노후 걱정을, 은퇴한 노년은 고독과 빈곤에 내몰리고 있다.

또 다른 대가는 바로, 어처구니없는 ‘재해·재난’이 반복되는 것이다. 1995년 6월29일에 있었던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계기로 재난 관련 기본법이 제정됐고, 사회적으로는 자원봉사가 활성화됐다. 2003년 2월18일에 일어난 대구지하철방화 참사를 계기로 소방방재청이 신설됐고, ‘통곡의 벽’ 등 슬픔을 기억하려는 문화가 형성돼 갔다. 2014년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국가안전처가 신설됐고, 전 국민 추모 열풍을 가져왔다.

반면, 삼풍 참사나 세월호 참사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이었지만, 책임지는 정부관료 하나 없이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다. 삼풍 희생자들의 위령탑은 참사 현장이 아닌 양재동 한구석에 세워졌다. 대구지하철 참사 사고 현장에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방문한다며 조사가 끝나지도 않은 현장을 깨끗이 씻어버린 일도 있었다. 위 3가지 대형 참사의 주원인은 모두 부실을 조장한 제도와 사람에게 있었다. 삼풍백화점과 세월호는 다중이용시설인데도, 얄팍한 경제논리로 무리하게 설계를 변경했고, 결국 수백명의 인명피해를 초래했다. 대구지하철 참사 역시, 직접 원인은 방화였지만, 사고 당시 열차의 마스터키를 뽑아 가버린 운전자 때문에 승객이 탈출하지 못해 희생자를 증폭시켰다.

20 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와 세월호 참사는 닮은꼴이다. 우리 사회의 부패와 부실한 현상을 그대로 드러냄과 동시에 미흡한 사후처리까지…. 분명 ‘인재’라고 할 수밖에 없는 비윤리적인 원인이 존재했다. 희생자는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는데 사고 관계자나 책임자의 처벌은 미약했다. 무엇보다 소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준비된 매뉴얼이나 훈련받은 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부의 미흡한 늑장 대처 역시, 국민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이번 메르스 사태로 국제적 망신을 당할 때, 신종플루 때 작성한 매뉴얼이 있었는데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갈수록 재난 상황도 많아질 텐데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에 전 국민이 체화될 시스템이 절실해졌다.

고진광 |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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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여파로 곳곳이 타격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곳은 관광 분야가 아닐까 싶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중국인 관광객(유커)은 종적을 감추었다 할 정도이다. 유커들이 오지 않아 곳곳에서 걱정이라 한다. 한편 자신과 유커는 관련이 없었다던 분들 가운데 그간 말 못하고 끙끙 앓던 속내와 사정을 이참에 털어놓는 분도 있다. 그 중 자신의 생활공간에 어느 날 갑자기 밀어닥친 유커들의 끊이지 않는 차벽과 발길이 사생활 침해 수준에 달하는데도, 사회적 분위기에 위배될까봐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유커들이 오지 않으니 비로소 예전의 생활을 되찾았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볼 만하다.

2013년 중국인 관광객 서울시내 방문지 _경향DB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들은 주민의 불편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외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없다. 서울의 경우, 지금까지는 이 점을 크게 고민해 볼 여유가 없었다.

이미 시민들만으로도 포화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화동, 서촌, 홍대, 부암동 근처 등에서는 유커들의 늘어선 차량과 주거 공간으로 불쑥 진입해 들어오는 유커들을 제어할 도리가 없었다. 중국어로 개인 생활공간을 존중해달라는 안내판을 붙이기는 했으나, 관광객 눈에 이런 것이 들어올 리 만무하다. 여기에 서로에 대한 편견과 오해까지 겹쳐, 유커들이 한국에 와서 너무한 것 아닌가라는 비난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양국이 갖고 있는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다. 중국은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명승지의 경우, 대부분 입장료를 받으면서 이들 관광객을 관리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주차장이 우선 마련되어 있고, 관광객을 위한 안내표지판은 물론 내부에 공연이나 오락 등이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현지 주민에 대한 보호이다. 서비스 공간과 비서비스 공간을 분할해 주는 것, 국내 관광을 통해 유커들은 이 점을 명확히 알고 있다.

그런데 한국 관광에서는 어쩐지 그런 점이 명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기왕이면 한국에서 공짜로 갈 만한 좋은 곳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기에 바빴고, 한 명만 포스팅해도 우리의 약 30배에 달하는 중국 인구는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하기에, 한국의 각 주거지 주민들은 갑작스레 왜 이리 유커들이 밀려들어오느냐며 그 변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대로 가면 한국에 유커가 밀려와도 일부만 기회를 잡을 뿐, 일반 거주자들의 불편함에 대한 민원은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국은 반드시 현지 가이드만이 활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가이드는 관광지 내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의 안전과 보호에 반드시 주의한다.

결국 우리 행정이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거주민을 위하는 정책을 생각해낼수록, 주민들의 생활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유커들도 즐겁게 관광할 수 있는 것이다.

유커의 발길이 잠시 끊긴 자리, 그곳이 다시 없을 기회이다. 만약 이 기회에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고 난 다음에야 크게 깨닫게 될 것이다.

변지원 | 방송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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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앞날이 캄캄합니다. 작년의 ‘세월호 참사’는 국제적인 동정이나마 살 수 있었지만 올해의 ‘메르스 참사’는 국제적 외면을 자초했습니다. 거리나 상가는 한산해지고 소비시장은 잔뜩 얼어붙었습니다. 상황이 이럼에도 국민통합과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양파 껍질을 벗기듯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당의 원내대표마저 ‘벗겨’ 낼 태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삶의 안전망을 완전히 잃어버려서 불안을 넘어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심각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스스로 공포의 대상이 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다 강한 존재, 악마 같은 존재에 기대려고 한다지요. 공포가 강할수록 사회가 보수화되는 것이 이런 이치라고 하는군요.

이럴 때 인간은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갈구합니다. 하지만 한국 소설은 이야기보다 유려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바람에 독자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표절’이나 ‘자기복제’의 위험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신경숙은 그만의 고유한 문체로 지난 시절 대중을 압도한 작가입니다. 오길영이 <힘의 포획>(산지니)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신경숙의 문체는 “서정적이고 섬세”하기에 때로는 “감상성의 위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때문에 ‘표절 파동’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오길영은 좋은 문체는 “아름다운 문체(美文)”가 아니라 “대상의 진실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문체”라고 말합니다.

올해 여름 독서시장에서도 대중은 ‘이야기’를 찾고 있습니다. 올해 여름 출판시장을 달굴 외국 소설 세 권이 그걸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배크만, 다산책방)는 59세입니다. 열여섯에 고아가 된 그는 열심히 일해서 모기지도 갚고 세금도 내고 의무도 다했습니다. 소냐와 결혼하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자고, 서로 그렇게 동의했습니다. 40년 동안 한 집에서 살고, 같은 일과를 보내고, 한 세기의 3분의 1을 한 직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젊은 관리자들이 “이제 집에 가서 쉬는 게 좋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늘 똑같은 일만 한 것이 직장에서 쫓겨난 이유가 됐습니다.

반년 전에 소냐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자 그는 자살을 결심합니다. 자살을 결행하려는 순간 이웃집에 이사온 젊은 부부와 어린 두 딸이 찾아옵니다. 오베는 자신의 자살을 막은 그들에게 처음에는 까칠하게 대하지만 점점 마음을 열어가며 무심한 듯 열심히 챙겨줍니다. 오베는 근면과 성실을 최고 덕목으로 알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은퇴의 압박을 받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입니다.

<나오미와 가나코>(오쿠다 히데오, 예담)는 가정폭력에 저항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가나코 남편의 폭력은 결혼하고 3개월이 지난 무렵부터 시작됐습니다. 술에 취해 돌아온 남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갑자기 흥분해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두 손을 싹싹 빌며 사과했지만 폭력은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해갔습니다. 백화점 외판사원 나오미는 가나코가 ‘유일한’ 대학 동창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맞는 걸 보며 자란 나오미는 가정폭력이 주변 사람들마저 지옥에 빠트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친구의 아픔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나오미는 가나코를 설득해 가나코의 남편 다쓰로 ‘클리어런스 플랜’(남편 제거 계획)을 함께 세웁니다. 처음에는 겁에 질려 떨던 가나코도 점점 용기를 얻고, 자신을 구하겠다는 각오로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 포스터_레이디 경향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는 두 주인공이 그랜드캐니언의 벼랑 끝을 질주해 장렬하게 자살해 해방된 세계를 찾아가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당당하게 맞섭니다. ‘데이트 폭력’이 소셜미디어를 달구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늘 마주하는 일상의 작은 폭력이 실은 세계의 거대한 구조적 폭력의 씨앗임을 예리하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가르치려 한다>(창비)의 문제의식과도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황금방울새>(도나 다트, 은행나무)에서 열세 살 소년 시오는 엄마와 함께 북유럽 황금기의 명작들을 전시한 미술관에 들어갑니다. 엄마는 시오에게 렘브란트의 제자이자 페르메이르의 스승인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가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이자 “내가 정말로 사랑한 첫 번째 그림”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때 미술관에서 테러가 발생해 전시회장은 아수라장에 빠집니다.

엄마는 즉사하고 시오는 사고 현장에서 만난 기묘한 노인 웰티의 청으로 반지와 작은 그림을 갖고 미술관을 빠져나옵니다. 사실상 고아가 된 시오는 엄마와의 마지막 추억이 살아있는 ‘황금방울새’ 그림을 품에 안고 웰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지 주인을 찾아 나섭니다. 시오의 인생유전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상실과 집착, 운명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있습니다.

이야기성이 강한 세 소설의 공통점은 모두 ‘죽음’을 화두로 하고 있습니다. 한없이 지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부키)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즉 존엄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를 갖고자 합니다. 그런 용기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소설들이 품은 이야기에서 위로와 구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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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4일 평생 잊지 못할 만남이 있었다. 배신의 정치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마치 모범 답안처럼 뼛속 깊이 되새기게 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그 사건은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날 아침 새누리당 당대표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쌍용차 국정조사를 새누리당 대선 공약으로 발표할 예정이니 황우여 당시 당대표와 간담회를 하자. 그리고 대선 후 열리는 첫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당시 철탑에 올라 있던 세 사람의 노동자를 비롯해 이런저런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가 비를 맞은 것처럼 어른거렸다.

100일째 고공농성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정책실장_경향DB


잠시 후 쌍용차지부의 김정우 지부장과 함께 황우여 대표를 만났다. 그는 오늘 중차대한 대선 공약을 발표할 예정인데 당사자인 쌍용차지부 노동자들을 만나보지도 않고 발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간담회를 요청했노라 하며 김정우 지부장의 손을 맞잡고 단식 후유증을 걱정하며, 철탑에 올라가 있는 세 사람의 안부를 걱정했다. 그 진지한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일어서며 나는 “혹시 대선에서 지더라도 대선 공약이니 지켜지겠죠?”라고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체면 따위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내 손을 잡으며 서운하다는 기색 하나 비치지 않고 ‘명색이 집권여당의 대표가 공식 대선 공약으로 약속하는데 그럴 리가 있느냐’며 걱정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이내 김무성 당시 총괄선대본부장이 쌍용차 국정조사를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다.

그들이 누군데 약속을 지키겠어? 괜히 헛된 기대로 맘 상하지 말자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이성적 분석과 달리 방송을 통해 발표되는 장면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억울한 죽음에 대한 명예회복과 회계조작으로 인해 쫓겨난 정리해고자들의 복직이 바로 눈앞에 성큼 다가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만남으로부터 정확히 한 달이 지난 2013년 1월4일 새누리당 이한구 당시 원내대표가 쌍용차 공장을 방문했다. 공장 안에 있던 사람들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그렇게도 살갑게 다독이던 그는 공장 정문에서 도보 5분 거리도 안되는 고공농성 송전탑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휑하니 떠나버렸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그 이후 2년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쌍용차 국정조사는 고사하고 억울하게 해고된 쌍용차 정리해고자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복직하지 못했다.

‘배신의 정치’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 수천만 국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힘주어 대선 공약이라고 발표하고도 당선자 신분에서부터 싹 입을 씻어주는 정도는 돼줘야 배신의 정치 반열에 들 수 있다. 그 이후 배신의 정치란 이런 것이라 새기며 살아왔다. 얼마 전 배신의 정치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분만큼은 그 단어를 쓰지 못할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배신의 정치’라고? 심판을 해야 한다고? 이거 참 ‘배신’에 인격이 있다면 정말 크게 웃을 일이 아닌가 싶다.

최근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대표 교섭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사측에 항의하며 공장 앞 도로 한쪽에 연좌하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배신의 정치 운운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국민들 앞에 약속했던 대선 공약집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박병우 |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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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글을 쓸 때마다 조심스럽다. 글을 쓰다보면 누군가가 머리에 불현듯 떠오를 때가 많다. 과거에 나하고의 어떤 사건 때문에 내가 쓴 글을 보고 코웃음을 치거나 새삼 상처가 돋아나 분노를 일으킬 사람들이다. 그들이 떠오르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하더라도 글을 쭉 지워버린다. 고결하게 윤리를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다. 비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러저러한 글에서 나는 ‘경청’에 대해 강조했다. 들리지 않는 고통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말을 신문지상에 했을 때 강의실에서 만났던 학생들 중에서 코웃음을 치는 학생이 과연 없을까? 당장 서너 명이 떠오른다. 강의시간에 그들이 질문했을 때 뜬금없다고 생각해서 ‘묵살’해버린 경우도 있다.

강의실에서 묵살당한 경험은 오래간다. 친구들 앞에서의 ‘공개적’인 망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내가 경청에 대해 쓴 글을 본다면 강의실에서 당한 치욕을 새삼 떠올릴 것이다. 글이 고통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그 기억이 다시 현재의 고통으로 살아난다. 강의실에서 당한 모욕이 과거의 고통이라면 내가 쓴 글은 그에게 현재의 고통이 된다. 말과 글이란 이처럼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고통을 가할 수 있다.


포터사이트 네이버, 다음, 네이트의 검색서비스 화면 _경향DB



더구나 글을 쓰고 읽는 ‘한계’가 사라져버렸다. 과거에는 한 매체에 글을 쓰면 그 매체를 받아보는 사람들만 글을 읽었다. 누군가가 어떤 글을 썼다는 소문 역시 그 매체를 읽는 사람 주변으로만 ‘한정적’으로 퍼졌다. 그러나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의 발달은 이런 한계를 거의 없애다시피 하였다. 몇 다리만 건너면 누가 어느 매체에 어떤 글을 썼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그 말을 듣고 검색하면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글을 썼는지뿐만 아니라 과거에 쓴 글들도 다 나온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기억의 시간성을 없애고 장소에 한정되지 않는 공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이 없어졌다. 수년 전에 쓰인 글이지만 읽는 이에게는 마치 어제 그가 한 발언처럼 들린다. 일회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연결망과 검색은 그의 ‘위선’에 대한 가증스러움을 몇 배로 만들어 현재의 고통과 분노가 되게 한다.

따라서 이런 시대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몇 배로 삼가고 절제하지 않을 수 없다. 금 쓰고 있는 글이 누군가의 고통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폭발시킬지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해야 한다. 것은 과거에 내가 고통을 가한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뻔뻔한 놈으로 발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글의 곤혹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이런 ‘배려’와 ‘절제’의 글쓰기야말로 위선적이고 비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의 ‘위선’을 피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 ‘위선’으로 도망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타인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배려’로 자신이 상처를 준 것, 그래서 여전히 화해하고 용서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회피한다. 글을 쓰는 것이 이 사실을 묵살한다면 글을 쓰지 않는 것은 이것을 회피한다. 비겁한 놈이 되는 것이다.

사태가 이렇다보니 뻔뻔하지도, 비겁하지도 않은 글쓰기, 그런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뻔뻔해지지 않으려면 비겁해지고, 비겁해지지 않으려면 뻔뻔해진다. 그래서 글이라는 게 점점 더 불가능해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그 사이의 길을 가려면 위선을 회피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위선은 그 자체로 뻔뻔하거나 비겁한 것이 아니다. 위선임을 망각하는 게 뻔뻔한 것이고 위선과 대면하지 않으려는 것이 비겁한 것이다. 따라서 위선을 회피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사회란 가면을 쓴 사람들, 즉 ‘위선자’들이 만드는 가면무도회이며 글은 내면의 고백일 때조차 그렇게 사회를 만드는 가면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엄기호 | 문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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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에서는 적과의 무력충돌을 규정하는 단어가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게 통례다. 단순한 군사적 충돌은 교전(engagement)으로 규정한다. 이게 범위가 좀 넓어지면 전투(battle)로 불린다. 또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정 권역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군사작전(campaign)이 된다. ‘사막의 폭풍’ 작전이 대표적인 예다. 전쟁은 말 그대로 최소한 국가단위 이상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무력충돌이다. 1·2차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이 그렇다.

바다에서는 벌어지는 무력충돌은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해전’(naval battle·naval warfare)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군사작전 측면에서 규모에 따라 해전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소규모 전투는 육지에서처럼 교전이라고 부른다. 지난 29일 13주년 기념식을 치른 제2연평해전의 본래 명칭은 ‘서해교전’이었다.

제2연평해전(서해교전)은 한·일 월드컵 4강전이 열리던 2002년 6월29일 오전 10시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참수리 357정을 비롯한 해군 함정이 북한 해군함정과의 교전 끝에 목숨으로써 서해 NLL을 사수한 사건이었다.


서해교전 당시 북한 경비정의 뒤쪽을 들이받고 있는 해군 고속정(좌)_경향DB



서해교전은 임무완수적 측면에서 ‘승리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들은 서해교전을 ‘완패한 전투’ ‘해군의 자존심이 추락한 패전’이라고 규정했다. 심지어 보수층에서는 ‘햇볕정책이 빚은 참화’라고까지 했다. 그러다 보수정권이 들어서자 정부·여당 등의 서해교전에 대한 평가는 ‘패전’에서 ‘승전’으로 180도 바뀌었다. ‘북한의 도발을 막아낸 승전’이라는 평가로 바뀐 것이다. 그러면서 남북 간 해상 충돌의 성격도 ‘서해교전’에서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됐다. 박희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한때 ‘제2연평해전’을 서해교전이라고 부르는 웃지 못할 대북정책의 잘못됨이 나타난 적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쟁사가들은 통상 ‘해전’이라는 명칭은 피아 일정 규모의 세력들이 일정 기간 상호 대치상태에서 발생한 후 피해가 일정 수준 이상일 때 적용된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서해교전을 해전으로 부르기에는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 이명박 정권 초기 해군참모총장 주관하에 열린 회의에서 ‘해군 교리상 서해교전을 해전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내부의 반대가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결국 해군은 참수리정뿐만 아니라 후방해역에서 초계함까지 포격에 나섰기 때문에 단순한 교전 이상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제2연평해전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해군 관계자는 “해군 교리상 서해교전을 해전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치 않지만 희생자 유족들의 정서를 감안해 명칭을 바꾸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2009년 6월29일 제2연평해전 7주년 기념식에서는 한승수 당시 총리가 “제2연평해전은 서해 북방한계선을 사수하기 위해 우리의 용감한 해군 장병들이 북한의 기습도발을 온몸으로 막아낸 승리의 해전”이라며 “이명박 정부는 작년부터 제2연평해전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우리 해군의 승전으로 다시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보수층 일각에서는 서해교전은 패전의 의미가, 제2연평해전은 승전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해석했고, 2009년 하반기에는 서해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불과 2분간 일어난 남북 해군 간 충돌조차 ‘대청해전’으로 공식 명명해야 했다.

해군은 물론 합참과 국방부까지 단 한 차례도 제2연평해전을 패전이라고 평가한 적이 없다. 국방부는 지난 29일 정례 브리핑에서도 “군은 제2연평해전에 대해 패전으로 평가한 적이 없고 NLL을 성공적으로 사수한 사실상 완승이라는 입장에서 변한 적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보수층 일각에서는 한때 교전규칙 때문에 제2연평해전에서 패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마침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제2연평해전 당시엔) 참 국가도 아니었다. 이상한 전투 수칙 때문에 방아쇠에 손을 걸어놓고 무방비로 북한의 기습공격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며 “다시는 우리 아들딸들이 이런 개죽음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전규칙은 한국군도 아닌 유엔사에서 정전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군사적 행동규칙이다. 이 교전규칙에 따라 제1연평해전에서는 대승을 했고, 제2연평해전에서도 NLL을 훌륭하게 지켜냈다. 다만 평택에 위치한 해군2함대사령부 내에 설치된 기념비의 제목이 ‘제1연평해전 전승비’와 ‘제2연평해전 전적비’로 다른 이유를 곱씹어보면 되겠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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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을 거부하면서 정치를 격정적으로 비판했다. 12분짜리 그의 발언을 보면 박 대통령은 자신을 선출된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유학의 개념으로 보면 하류의 패도정치다. 헌법정신에 대해서는 ‘아몰랑’이고, 경제실정에 대해선 ‘너 때문’이고,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죽을래’다. 그러나 어쩌랴. 박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뽑힌 대통령이다. 덩달아 분노하기보다는 차분한 계량과 찬찬한 대응이 필요하다.

깊은 분노와 억울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대통령은 그걸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대통령이 가장 많은 힘과 권력자원을 가지고 있어서 자칫 그 발설이 다수를 억압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의 감정 절제나 양보는 민주질서의 유지를 위한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화내는 대통령, 이는 민주주의에 대단히 해롭다. 싫어도 참고, 미워도 삭여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가 권력자에게 요구하는 숙명이다.

왜 박 대통령은 그처럼 처절하게 분노의 독기를 토해냈을까? 우선 많이 서운한 것 같다. 배신감까지 느낀단다. 그렇더라도 비통한 마음이 전부는 아니다. 뭔가 저의가 있다. 뭘까? 하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공화당 4인방(김성곤 재정위원장, 길재호 사무총장, 백남억 정책의장, 김진만 원내총무)을 단칼에 내친 경우다. 1971년 10월 4인방은 대통령의 오더를 거부하고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안을 가결시켰다. 대로한 대통령에 의해 4인방은 쫓겨났고, 그중 김성곤은 중앙정보부(국정원)에서 콧수염이 뜯기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0·2 항명 파동을 역이용해 힘을 축적한 뒤 1972년 유신체제를 구축했다.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을 임명하는 등 사실상의 왕정이 민주주의를 대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리는 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흔들리는 박근혜 체제를 다시 공고히 하기 위한 계책이다. 경제는 엉망이고, 외교도 진창인지라 박 대통령으로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 지지율도 바닥이고, 후계자도 없다. 이대로 가면 새누리당은 점점 더 박 대통령에게서 탈피하고, 총선에선 심지어 박 대통령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구도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은 으레 하던 대로 진영대결 프레임을 작동시키려 한다. 이를 위해 12분의 연설 내내 자신의 반대세력을 치밀하게 자극했다. 일컬어 흥분지계(興奮之計)라 할 수 있다. 호남에 들어서는 아시아문화전당과 그 근거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특별법을 직접 거론한 게 좋은 예다. 반대세력과 야당이 극렬하게 저항할수록 진영 논리는 쉽고 원활하게 작동한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청원 최고위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_경향DB


실 그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등 위기 때마다 박 대통령은 진영 프레임으로 대응했다. 진영 대결이 되면 박 대통령의 실정과 실패는 뒷전으로 밀린다. 여당과 당내 이견 그룹의 운신 폭도 많이 줄어든다. 대통령과 야권이 1 대 1로 맞서는 상황이니 여권 내부에서 딴소리를 내는 건 이적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효과 만점인 진영 대결 전략에도 약점은 있다. 바로 여권 내부에서의 이견 표출이다. 이것이 유승민을 퇴출시키려 하는 본질적 이유다.

그런데 유 대표를 찍어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 박 대통령이 유 대표를 직접 타깃팅한 건 자존심을 건드려 자진 사퇴케 하는 수였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의원총회에서 유 원내대표를 재신임하고, 그도 몸을 낮춰 일단 실패했다. 계속 압박하겠지만 총선이 변수다. 새누리당 의원이라면 지지율 30%쯤의 박 대통령을 얼굴로 치르는 내년 총선은 악몽이리라.

특히 수도권 의원들의 위기의식은 심각하다. 현직 대통령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인 2011년 친이 주류가 박근혜 비대위 체제를 비상 출범시킨 것도 이런 선거 효과 때문이었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유 대표를 내치기도 쉽지 않다. 새누리당이 당면한 딜레마다.

새누리당, 특히 김무성 대표와 개혁파가 유승민을 지켜낼지, 박 대통령에게 무릎 꿇을지는 그들의 몫이다. 누가 이기든 최종 심판은 국민이 한다.

“우리 국민의 정치 수준도 높아져서 진실이 무엇인지,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인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박 대통령의 말이다. 맞다. 정치인이 국민을 무서워해야 정치의 질이 좋아진다. 차분히 지켜보면서 잘잘못을 깊이 헤아려두자.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종이 짱돌(paper stone)로 그 책임을 섬뜩하게 묻자. 지금 흥분하면 진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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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가까이 있어서인지 사람 소리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다. 다른 새들은 몰라도 집 가까이 둥지를 트는 박새나 딱새의 말은 조금 알아듣는데 그중 딱새 부부가 주고받는 말들은 재미있다. 새끼를 키우는 딱새는 어찌나 경계가 심한지 암수 번갈아 들락거리면서 대략 네다섯 차례의 신호를 주고받은 뒤에야 집으로 들어가는데 그때마다 비비비 하거나 비빅비빅 하는 단절음을 낸다. 자세히 들어보면 멀리서 나왔어! 하거나, 조금 가까이서 누가 있어! 조심해, 하는 소리 그리고 이제 들어갈 거야! 등등의 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 딱새의 언어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는 없지만 무심코 현관을 나서다 집 마당에 둥지를 튼 딱새의 경고음을 알아듣고 지레 물러설 줄 아는 정도는 되었다.

한 달여 낯선 새소리가 숲 이곳저곳에서 끊임없이 울렸다. 호잇호잇 하며 우는 그 새를 좀처럼 볼 수 없었는데 어느 날 가까이 들리기에 나가보니 등과 날개는 녹색과 파란색으로 반짝이고 하얀 배에 붉은색이 예쁜 팔색조가 편백나무 위에 앉아 울고 있다. 팔색조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 눈이 호강이다. 멀리서 청아하게 들렸던 울음소리가 가까이에서는 약간 탁하게 들린다. 호잇호잇할 때의 첫소리가 마치 불어의 유음과 후음이 섞인 r 발음과 흡사하기 때문인데 그 네 마디의 음절 말고 다른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끝을 약간 올리고 내리는 성조의 변화에 따라 신호를 주고받는 듯하다. 이 단순 반복의 음절로 대화를 나누는 모양인데 물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은 내게 없었다.

멸종위기 팔색조_경향DB


숲을 떠나 모처럼 지인의 집에서 모인 술자리에서였다. 세태가 그러니만큼 당연히 메르스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 오고 갔는데 예의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시스템에 대하여, 누군가에 대하여 성토하는 말들에 그만 심드렁해져 마침 그 집 탁자의 유리 밑에 끼워놓은 네 칸짜리 만화를 보게 되었다. 집주인이 신문에서 오려내 그곳에 놓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스쳐 본 탓인지 딱히 재밌지도 않았고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었다. 메르스를 대처하는 정부의 무능을 풍자한 내용인 줄 알겠는데 거기 적힌 말이 이상했던 것이다. 단순한 팔색조의 울음보다 난해한 그 말은 ‘우리의 핵심 목표는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였다. 이런! 어쩌다 새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이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나는 이 말이 횡설수설하는 누군가의 말을 빗대 작가가 지어낸 말인 줄 알았다. 아니란다. 그 말 그대로란다. 정말! 정말이란다. 누군가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그 말의 해석본을 보여주었다.

더 이상 은유와 풍자마저 필요 없는, 말 그 자체가 은유와 풍자인 언어는 놀라운 발견이다. 이건 비난이나 냉소의 차원을 넘어선다. 실제로 글로 적어놓아 올바른 문장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누구나 말을 버벅거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의 말도 글로 적어보면 대개는 비문으로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은 글보다 훨씬 더 다양한 요소 이를테면 표정이나 성조, 어감, 분위기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말하기보다 조금 더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바로 그런 요소들을 오로지 글로 나타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들은 글에 쓰려는 내용에 더해 표정까지 만들어내야 한다. 그게 얼마나 힘이 들면 표절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일까. 그러니 누군가 조금 말을 이상하게 한다고 해서 시시콜콜 그런 것까지 꼬투리를 잡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상황은 비교적 명확하다. 그럴듯한 말을 해야겠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경우 말은 꼬이고 이상해진다. 그럴 때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지만 그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다. 모르는 말이라도 지저귀는 수밖에. 그럴 때 사람의 말은 딱새의 말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참한 소리로 전락한다.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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