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계에서 ‘서말구’란 이름과 ‘10초34’란 기록처럼 익숙한 단어도 드물 것이다. 한데 썩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다. ‘10초34’라는 숫자는 심하게 말하면 육상 발전의 발목을 부여잡는 ‘저주의 숫자’이자 반드시 깨야 할 ‘비원(悲願)의 기록’쯤으로 여겨졌다.

서 선수가 1979년 멕시코 유니버시아드에서 세운 육상 100m 기록인 10초34가 무려 31년간이나 깨지지 않았으니 그런 대접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기록 보유자는 따로 있었다. 1966년 정기선 선수가 세운 10초3이었다. 서 선수도 타이기록(10초3)만 갖고 있을 뿐 정기선의 기록을 끝내 깨지는 못했다. 궁금증이 생긴다. 왜 서말구 선수의 유니버시아드 기록(10초34)이 0.04초 모자란데도 한국기록으로 공인됐을까.

31년간 100미터 한국 기록을 보유했던 서말구 전 육상국가대표 감독_경향DB


당시 세계육상계가 도입한 전자계측의 기록이라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육상계는 수동기록을 전자계시로 환산할 때 통상 0.20~0.24초 더한다. 서 선수의 유니버시아드 전자기록을 수동으로 바꾸면 10초10쯤 될 것이다. 서 선수에게는 무한한 영예였을 10초34 기록은 갈수록 한국 육상의 정체를 상징해주는 숫자가 됐다. 예를 들어 1939년 김유택이 조선-관서 학생대항전에서 10초5를 찍었다. 정기선의 1966년 수동기록으로 비교하면 0.2초 앞당기는 데 27년이나 걸린 셈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세계 육상의 발걸음도 가볍지 않았다. 제시 오웬스(미국)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기록은 10초2였다. 아르민 하리(독일)가 1960년 10초F를 끊었으니 0.2초 단축에 24년이 걸린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10초 이내로 들어오자 기록단축은 더 힘들어졌다. 짐 하인스(미국)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9초95를 마크했다.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의 2009년 기록이 9초58이었으니 41년 만에 0.37초 단축했을 뿐이다.

그 보다 한국 육상의 발전속도가 워낙 더뎠기에 서말구 선수와, 그의 기록이 대접받지 못한 것이다. 이제 서 선수의 어깨를 짓눌렀던 무거운 짐은 없다. 2010년 이후 후배인 김국영이 3번이나 한국 기록을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5년 만에 서 선수의 기록을 0.18초 앞당겼으니 괄목상대라 할 수 있다. 지난 30일 별세한 서말구 선수의 명복을 빈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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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은 아니지만 자주,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하면 이미 낡은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일이 잦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얻어듣고 뭔가를 알아보려 해도 사건의 개요는 벌써 어디론가 흘러가 버리고 무수히 남은 뒷담화만 얻어듣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한마디 던지는 말은 그야말로 뒷북을 치거나 봉창을 두드리는 한심한 수순을 밟기 마련이다. 보는 둥 마는 둥 해도 그저 몇 장 넘기는 것만으로 세상사의 흐름을 감지했던 종이신문을 끊고 나서 이런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인터넷의 포털사이트에 떠 있는 온갖 매체를 대강이라도 훑어보리라 작심하고 어느 날 뉴스를 접하기 위해 포털을 열었다가 예의 또다시 기겁하고 말았다. 아침에 개똥이 척 하고 묻어 있는 신문을 손끝으로 집어드는 느낌.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런 신문을 매일 보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는지.

네이버와 같은 포털의 메인화면에는 수십 개의 일간지와 경제지, 스포츠신문,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인터넷 신문들이 떠 있다. 그야말로 정보들이 둥둥 떠다니는 셈인데 이게 다 공짜라는 거다. 이런 걸 보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씩 열어보기 시작하면 곧바로 저주의 심정이 되어버리는데, 질퍽거리는 늪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가는 곳마다 뭔가 지긋지긋하게 달라붙는다. 눈을 어지럽히며 출몰하는 온갖 민망한 색깔의 벌레들과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화들짝 화면이 뒤집히며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이곳은 한 발자국도 헤쳐가기 힘든 정글 속이다. 매일 이런 숲을 통과하고도 멀쩡한 사람들도 대단하지만 그런 덫을 설치한 정보강국, 인터넷 언론의 속살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복잡하고 현란한 디자인이야 취향의 문제로 말하면 그뿐이지만 정말 더럽고 지저분해서 못 보겠다. 여기에 언론이란 말을 붙이는 것조차 시대착오적이다. 그러다 알게 된 아주 신기한(?) 현상은 이 땅의 보수를 가늠하는 분명한 척도를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뭐가 진보고 뭐가 보수인지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 따위는 묻지 않기로 하자. 그 기준이 아무리 모호해도 진보와 보수(그들이 각자 표방하는 대로)는 자신의 가치가 어떻게 사회에서 통용되고 실현되어야 하는지 비교적 명쾌한 입장을 표명해왔기 때문이다.


네이버 메인화면 뉴스_경향DB


보수적 언론과 진보적 언론을 나누는 게 더 이상 유효한 기준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터넷의 메인화면을 통해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철저하게 실현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시각적 판단 기준은 유감스럽게 너무 단순하다. 보수를 표방하는 언론일수록 화면이 더 지저분하다는 것. 반드시 살색의 이미지와 이에 상응하는 머리기사를 올린다는 것. 안으로 들어가면 기사의 주변에 수십 개의 이미지들이 더 많이 달라붙는다는 것. 이런 디자인적 혹은 시각적 현상을 해석하면(사실 해석할 필요도 없지만) 화면이 지저분하다는 것은 더 많은 시각적 자극의 요소를 담아내려 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광고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급기야는 제호와 화면이 완전히 불일치하는 신문도 만들어진다. 이를테면 언제부터 스포츠와 포르노가 동일한 의미가 되었는지 몰라도 보수언론이 발행하는 스포츠신문의 메인화면에는 단 하나의 스포츠 기사도 없이(어쩌다 가끔 한두 개가 올라오기도 하지만) 살색으로 도배되어 있다.

현란한 이미지들과 자극적인 문구들의 숲을 통과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보수적 가치를 가늠하는 유일한 기준은 돈이며 그 밖의 가치들은 그 단 하나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사들에 불과하다는 것. 그 명쾌한 원칙에 그토록 철저할 수 있었기에 이 땅의 보수들이 요지부동일 수 있었다는 것. 그런 화면을 만드는 사람도 그리고 그걸 감내하는 사람도 무던히 넘어가는 이유는 그 가치를 실현하는 데 거부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몽땅 보수? 아니라고 말 못하겠다. 하긴 이런 푸념조차 때늦은 뒷북일 뿐.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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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5월30일,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의 전당대회가 있었다. 지금은 잊힌 이름이지만 당시에는 총재로 불리던 당의 리더를 뽑는 자리였다.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김영삼(YS)이 이철승을 물리치고 선출됐다. YS의 승리에는 김대중(DJ)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양김 간의 경쟁을 고려할 때 그들의 연대는 의외의 일이었다. 그 담대함이 결국 그해 10월 유신체제의 붕괴를 이끌어낸 셈이다.

1970년 9월에 있었던 당의 대선후보 선출에서 격돌한 이후 YS와 DJ는 필생의 라이벌이자 파트너로 한국 정치를 주도했다. 그들이 손을 잡고, 힘을 합칠 때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전두환 군사정권에 깊은 균열을 낸 1984년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도 양김이 협력해서 만들었고, 이 민추협이 주축이 돼서 만들어진 신한민주당은 이듬해 총선에서 관제야당체제를 혁파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1987년에 있었던 6월 항쟁도 두 사람이 단일대오를 형성했기에 가능했다.

양김의 갈등과 분열은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197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 양김은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대립하다 결국 군부에 틈을 열어주고 말았다. 그들이 그때 협력했더라면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7년엔 또 어떤가.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 이후 그들은 또다시 분열로 나아갔다. 둘 다 선거에 출마했고, 결과는 노태우의 당선이었다. YS의 28.0%, DJ의 27.0%를 합치면 당선자인 노태우 후보의 36.6%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권력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 권력의지 때문에 누군가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기치를 들고, 세를 키워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혜택이 아니라 피해를 가져다주게 될 때에는 자제돼야 한다.

경쟁 당사자들에겐 이기고 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 경쟁을 지켜보는 유권자들로선 승자가 누구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진영의 승리다. 무릇 경쟁의 때와 협력의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정치력이다. 따라서 정치인이라면, 그 중에서도 대선주자라면 마땅히 이 정치력을 가져야 한다.



문재인 대표의 해법은 문·안·박 연대이고, 안철수 의원의 그것은 전당대회를 통해 두 사람 간에 승부를 가리자는 것이다. 따지자면, 문·안·박 연대를 치밀하게 풀어내지 못하는 문 대표의 잘못도 적지 않다. 어쨌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리더십 아니던가. 안철수 의원도 정치력 부재에 대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의 요구는 문 대표 사퇴인데, 그가 직전 대표인 데다 경쟁자인 점을 감안하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자신도 보궐선거 패배에 책임지고 사퇴했다고 말할지 모르나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작은 선거에서의 패배 때문에 물러나는 건 옳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당해 본 입장이니 더 더욱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대로 가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총선에서 크게 패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과 독주도 새정치민주연합이 만만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중론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총선에서 본때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이런 열망으로 인해 대선주자들끼리 반목하고 분열하기보다는 힘을 합치고, 함께 혁신하기를 바란다. 전당대회 해법은 이 열망에 배치된다.

전당대회, 특히 대선주자들이 격돌하는 전당대회는 경쟁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에 당이 거당적 갈등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게다가 총선 공천을 앞둔 전당대회이니 편 가르기와 사생결단의 난투극은 불가피하다. 전당대회에선 현역 의원을 포함해 지역위원장들의 영향력이 크다. 당권 후보들은 이들에게 손 내밀 수밖에 없다. 이 거래 때문에 물갈이는 불가능해진다. 패자 쪽의 의원이나 지역위원장 중에서 솎아내고자 해도 정치보복으로 비쳐져 쉽지 않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은 서로 해법이 다르고, 양김만큼의 정치력도 없다. 총선 전 분당, 총선 뒤 붕괴를 막으려면 두 사람의 선택만 계속 쳐다봐선 안 된다.

이제는 당의 총의를 모으고, 두 사람이 따르도록 강제해야 한다. 이 역할을 국회의원들에게 맡길 수도 없다. 어떻게 해서든 물갈이되지 않으려는 이해 때문에 객관적일 수 없는 탓이다. 당 소속의 각급 선출직 공직자들, 전·현직 당직자 등이 모이는 ‘당원대회’를 개최하고, 여기서 각종 해법에 대한 끝장 토론 끝에 최종 결론을 내는 게 좋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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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올해 46세의 여성노동자 이미자씨가 지난 27일 직업성 암 추정 질환으로 사망했다. 이씨는 아남반도체가 미국계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로 넘어간 후에도 27년간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무해 왔다. 이씨는 야간노동과 교대근무 등 강도 높은 노동과 함께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앰코에서 백혈병·뇌종양·유방암 등 직업성 암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18명에 달하고 올 들어서만 6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뿐 아니라 앰코에서도 사망사고가 빈발하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반도체 공장은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기둥인 동시에 100만명이 넘는 노동자들의 일터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반도체 공장의 산업안전 문제는 개별 기업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에 따르면 지난 9월 현재 반도체·LCD·전자제품 공정에서 일하다 직업성 암 등을 신고한 이는 362명, 사망자는 130명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등이 참가한 ‘황유미 추모 및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위원회’ 회원들이 5일 사망한 반도체 노동자들의 얼굴 사진을 들고 서울 태평로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_김창길기자


하지만 지금까지 온전한 재발방지 및 안전 대책을 수립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개별 인과관계 입증이나 보상 문제만 강조된 측면이 강하다. 이 점에서 최근 SK하이닉스가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본사는 물론 협력업체에서 일하다 직업성 암 판정을 받은 노동자에게 포괄적 보상을 하기로 한 것은 의미있는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차제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모든 기업들이 보상 차원의 접근을 넘어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마련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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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소화기 ‘1’개, 경보기 ‘1’개는 생명을 ‘9’한다.” 요즘 쌀쌀한 날씨로 인해 화기취급이 늘어나면서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하고 귀중한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하고 있어 화재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나와 내 가족을 지켜주는 안식처인 주택의 화재로 인해 한순간에 가족을 잃거나 큰 재산피해로 이어지는 것을 볼 때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국적으로 지난 10년간 화재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분석해보면 사망자 중 약 60.1%가 주택화재에서 발생했다.

2014년 국가 화재정보센터 통계에 따르면 화재발생건수 중 주택 등 주거시설에서 발생하는 비율이 26.8%로 가장 높고 인명피해 발생건수도 65.1%로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2년 2월 개정된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신규 주택은 의무적으로 기초소방시설(소화기, 단독경보형감지기)의 설치를 의무화 하고 있다.

이미 건축이 완료된 기존 주택의 경우에도 오는 2017년 2월 4일까지 관련 시설의 설치를 완료해야 한다.

서울 안전체험 한마당이 열린 1일 여의도공원 문화의광장에서 한 어린이가 자원봉사자로부터 소화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_박민규기자


주택의 기초 소방시설 보급정책과 관련한 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기초소방시설 보급률이 22%에 그쳤던 지난 1977년에는 주택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5860여명에 달했으나 보급률이 94%에 이른 2002년에는 사망자가 2670여명으로 25년 동안 주택화재 사망자가 매년 약 128명씩 감소했다.

이미 기초소방시설 설치 의무가 인재를 줄이는 검증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화재를 완전히 예방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화재 발생 시 기초소방시설을 이용해 진화하고 대피한다면 소중한 내 가족과 이웃의 안전을 지키는 큰 역할을 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지금도 기초소방시설을 갖추지 못한 곳이 많고, 기초소방시설이 설치된 곳도 사후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무용지물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화재에 대한 안전의식이 매우 낮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안전이란 생각하고 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주택화재 예방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기초소방시설을 설치함으로써 화재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할 때다.


최동철 여수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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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혁신처가 신설된 지 꼭 1년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단행된 정부조직법 개편에 의해 신설된 인사혁신처는 공직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고 민관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국민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인사혁신처가 이 같은 국민적 합의에 부응하지 않고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공직자의 이해충돌(공익과 사익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퇴직공직자의 민간기업 등의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전관예우-후관예우-쌍관예우라는 말로 표현되는 공직자의 이해충돌 문제는 공직수행의 청렴성을 훼손하고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려 감시와 감독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우리 공직사회는 이해충돌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아 그동안 감시·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참여연대가 9년간 정리해온 ‘퇴직 후 취업제한 제도 실태보고서’ 발간이 올해엔 불가능해졌다. 핵심적인 정보(퇴직 전 5년 이내 소속부서 및 직위)를 관할 부서인 인사혁신처가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사혁신처의 결정은 퇴직공직자의 취업심사 결과 적정성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와 검증을 거부한 것이라 할 것인데, 그 근거가 딱 청개구리를 닮아 있다. 인사혁신처는 새로 개정된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제35조 5를 비공개의 주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시행령의 구체적인 내용은 복잡하니까 설명하지 않지만, 대략 ‘어떠어떠한 항목’은 공시하라고 미리 정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인사혁신처는 그 ‘어떠어떠한 항목’에 핵심정보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서 트집을 잡았다.



그러나 시행령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퇴직공직자의 취업 관련 정보를 공개해서 민관유착의 부작용을 방지하고 공무수행의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인사혁신처의 결정은 “공시제도를 둔 것이 공시 대상 이외의 정보를 비공개할 수 있다는 취지가 아니다”라는 대법원의 명시적 판례(2011두4602)와도 배치되는 것이다. 인사혁신처는 이 밖에도 몇 가지 다른 비공개 사유를 들었지만, 이는 ‘공개를 위한 시행령을 비공개의 근거로 삼은’ 청개구리 같은 결정을 합리화하려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인사혁신처가 입법 목적은 물론 대법원 판례, 관련 법규정까지 무시하고 ‘퇴직 전 5년 이내 소속부서 및 직위’를 비공개한 결과는 비교적 명백하다. 소모적인 소송전은 이미 시작되었고, 공직 혁신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퇴색되었으며,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싸늘해지고 말 것이다. 지금이라도 인사혁신처는 태생적 소명의식을 되찾기 바란다.



장유식 |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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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행동이나 동기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특정한 정치적 구별이란 적과 동지의 구별이다.”

히틀러의 나치에 협력한 죄과로 은둔의 말년을 보내야 했던 독일의 사상가 슈미트(Carl Schmidt)의 1932년판 <정치적인 것의 개념>(김효전·정태호 옮김)의 한 구절이다. 한국정치의 현실이 회고적 독해를 하게끔 한다. 박근혜 정부의 말과 행동은 적과 동지의 이분법에 충실하다.박근혜 정부의 의제선점 능력은 본능적인 정치적 실천을 위한 유용한 자산이다.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는 노무현 정부가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는 주장으로 적 만들기를 하며, 동시에 그 적이 설정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의제를 전유했다. 선거과정에서 그들의 정치적 실천이 빛을 발했다. 박근혜 정부의 의제전환 속도도 슈미트식 정치에 한몫을 한다. 연속해서 다른 의제를 제기, 적으로 규정된 세력에게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적의 무력화, 고립화, 악마화를 추진한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실종시켰다. 2014년 벽두에는 통일대박론으로 극적 의제전환을 시도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담론은 통일의 주체와 방법을 생략한 채 생산·유통·소비되고 있다. 통일대박론은 통일의 경제적 효과를 언급할 뿐, 통일의 과정 및 효과의 배분에 대한 고려는 없다. 통일의 역효과에 대한 상상은 차단돼 있다. 북한을 포함한 타자들을 고려하지 않는 반통일적 통일담론의 전형이다. 박근혜 정부는 다시금 진보세력의 과거 의제를 소환했다. 지지율 제고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진보세력은 침묵 또는 비판적 지지로 대응했다. 그러나 우리는 통일대박론이 타자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예외상태’ 또는 ‘비상사태’의 선포였음을 인지해야 했다. 슈미트의 지적처럼 예외상태에서 정치적인 것은 순수한 형태로 발현한다. 적과 동지의 날것 같은 구분은 국내적·국제적 수준의 이해관계자들이 미래의 기억을 공유하는 것을 방해한다.


노동개혁과 역사교과서 국정화란 의제설정은 예외상태를 현실화하는 수순이었다. 노동개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없애고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외양을 가진 담론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갈등당사자인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위대의 광장정치는 이슬람국가(IS)의 테러리스트와 비유되고 민주노총이 없었다면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까지 추가된다. 여당의 타자인 야당에도 위선과 직무유기라는 칼날의 말을 던진다. 단기적인 정치적 계산을 한다면 정권의 입장에서도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란 의제에서 적과 동지의 구별은 절정에 이른다. 역사연구자 다수를,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국민을 좌파로 규정해 적으로 만든다. 국정의 역사관이 없다면 통일이 되기도 어렵고 통일이 되더라도 사상적 지배를 받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언명은 한국정치가 사실상 예외상태에 돌입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서 박근혜 정부는 한국의 교과서가 북한의 교과서처럼 되어서는 안된다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합의라는 역설적 부수효과를 획득했지만, 결국은 교육부의 행정예고를 통해 북한과 닮은꼴의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길을 가고 있다. 예외상태를 현실로 만드는 순간이다.

슈미트는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예외상태에서 나치와 공산당의 의석이 증가하자 그들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제약할 것을 요구했다. 순수한 형태로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적을 섬멸해야 한다는 발상이었다. ‘국가지상주의’의 극단이었다. 결국 슈미트는 어떤 정치세력보다 적과 동지의 구별을 실천했던 나치에 투항한다. 그러나 나치가 적과 동지가 아니라 민족공동체를 정치적인 것의 본질로 재정의하게 되었을 때, 슈미트는 실각한다(김항, <정치신학> 해제>).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만약 국가 내부에서 당파정치적 대립이 완전히 정치적 대립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면 그때 ‘국내 정치적인’ 경향은 최고도에 달한다”고 말한다. 사실상의 ‘내전’(內戰)의 도래에 대한 승인이다. 그리고 예외상태에서 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방책으로 ‘독재’를 제안한다(<정치신학>). 정치적인 것이 적과 동지의 구별이라는 단순도식의 논리적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 비극적 예측에 맞서야 할 시점에 있다. 정치적인 것이 적과 동지의 구별일지라도 그 과정에서 ‘공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즉 정치를 재정의하는 인정투쟁의 서막이 다시 올라야 한다.



구갑우 | 북한대학원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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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 있는 친구들이 저는 늘 부러웠습니다. 지지난달 ‘읽다 그리고 쓰다’라는 주제로 서울 장충동 현대문학관에서 열린 김윤식 선생님의 저서 특별전 첫날에 모인 제 또래 친구들도 저는 부러웠습니다. 그들에게는 김윤식이라는 큰 스승이 있습니다. 스승이 있다는 것은, 그 스승이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마음을 기댈 커다란 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제게는 그 나무가 없습니다. 그것은 제 교만함 탓이기도 하고, 평탄치 않았던 학창시절 탓이기도 합니다. 제 학창생활은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되풀이했고, 전학이 잦았습니다. 대학 학부에서의 전공과 대학원에서의 전공이 다르기도 했습니다.

꼭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더라도,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닐 때까지 제가 스친 수많은 교사들 가운데, 맘 편히 기댈 스승이 제겐 없었습니다. 간간이 저를 아끼던 분들도 계셨지만, 저는 그분들을 마음에 담지 못했습니다. 프랑스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던 시절, 철학자 자크 데리다 선생님과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선생님, 역사학자 자크 르고프 선생님 같은 대가들의 세미나에 참여하며 제 지적 허영심을 채운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주재하신 세미나가 제게 지적 자양분이 되기는 했지만, 그분들을 스승이라 여기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분들은 전공이 저와 달랐을 뿐만 아니라, 저를 제자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공한 언어학 쪽에서는 학문으로나 인품으로나 저를 감화시킨 분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제멋대로,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선생님께서 이따금 제게 던지신 따스한 몇 마디가 제 마음을 늘 데웠을 뿐만 아니라, 작가이자 기자로서 저는 선생님을 마음속 깊이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존경심은 선생님께서 이루신 글쓰기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문필가로서 선생님이 지키신 지조와 기품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 같은 ‘글의 검객’은 아니셨지만, 그래서 반체제 후진들의 환호를 독점하지는 않으셨지만,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글과 행동으로 지식인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나서지 않으시면서도 물러서지 않으시는 분, 온유하되 대범한 선비가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과 저의 연식 차가 크지 않아 제가 선생님을 자주 뵙고 사사할 수 있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글을 통해 선생님을 사숙해 왔다는 것만도 제겐 큰 자랑거리입니다. 기자가 문인을 겸업하는 일이 예사였던 왜정시대와는 달리, 선생님께서 현직 언론인으로 계실 때만 해도 소설을 쓰는 기자는 드물었습니다. 저 자신 기자로서도 작가로서도 이뤄놓은 게 하잘것없어 선생님의 제자나 후진을 자처하는 것이 외람된 일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나무라신다 해도 저는 선생님의 제자를 참칭하고자 합니다.

유년기 이래로 도회적 감수성에 찌든 제가 선생님의 문체에 영향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선생님의 문체가 늘 정답고 경이로웠습니다. 문체가 있는 작가만이 제대로 된 작가라면, 선생님은 한국 문단에서 매우 드문, 제대로 된 작가이십니다. 이 참람한 언어를 용서하십시오. 그렇지만 선생님처럼 텍스트만 보고도 그 작가를 짐작할 수 있는 스타일리스트는 우리 문단에 흔치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의식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문체는 전북 방언의 리듬 위에 슬며시 얹혀 있습니다. 돌아가신 이문구 선생님의 문체가 호서 방언의 리듬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선생님의 문장에서 전북 방언 어휘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문장은 전주평야를 흐르는 금강, 만경강, 동진강처럼, 전북 방언의 실미지근한 리듬으로 한국어의 평야를 살갑게 적시며 굽이굽이 흐릅니다. 거기에 의뭉스러운 풍자와 골계가 버무려집니다. 외가가 전주인 저는 그것을 또렷이 느낍니다.

얼마 전 선생님의 단편 <그들은 말했네>를 다시 읽으며, “도태당한 책들의 수런거림이 차츰 구호로 바뀌는 착각에 떨기도 했다. 남아있는 쟤들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더란 말이냐. 입을 열기로 하면 우리도 할 말이 태산이다. 게으름뱅이 주인을 만나 일년 열두 달은 고사하고 수십 년 동안 내내 먼지만 뒤집어쓴 동료가 태반이다. 여자와 집은 가꾸기 나름이라는 말은, 이따금씩 우리 몸에 켜켜로 앉은 진애(塵埃, 우리도 당구 삼 년으로 유식하다)를 먼지떨이로 조심스레 털어준 이 댁 아주머니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입 밖에 내지 않겠다”라는 대목을 마주치고는, 바로 그 게으름뱅이 주인이자 ‘무식한 장서가’인 저는 킥킥댔습니다.

저는 글로나 사람 됨됨이로나 선생님 같은 지식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비록 그리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지난 세기 80년대 후반 선생님께서 ‘신동아’에 연재하시던 ‘최일남이 만난 사람’이라는 인터뷰가 기억납니다. 인터뷰이를 모욕하지 않으면서도 그에게서 뽑아낼 것은 다 뽑아낸다는 점에서 선생님은 당대 제일의 인터뷰어셨습니다. ‘최일남이 만난 사람’은 한국 저널리즘 역사에서 인터뷰어의 이름을 앞세운 첫 인터뷰 시리즈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초창기 한겨레 기자였을 때, ‘사회평론’이라는 잡지에 ‘고종석이 만난 사람’이라는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느 후배가 “고 선배가 최일남 선생님급이 됐단 말이에요?”하고 제게 농담을 했더랬습니다. 후배는 저를 놀리느라 한 말이었지만, 저는 속으로 기꺼워 어쩔 줄 몰랐습니다.

지난해 9월 제 둘째아이 혼사 때 선생님께 청첩장을 올리기는 했지만, 선생님께서 직접 와 주시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와 주신 것만도 황감했지만, 피로연장에 선생님이 안 계신 것을 보고 가슴이 덜컥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나중에 그것이 선생님의 ‘나이에 걸맞지 않은’ 수줍음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그 날의 죄송스러움을 되돌아보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다 제 불찰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하객들 가운데 가장 연로한 분이셨으니, 선생님을 사적으로 아는 후배 문인들이나 기자들도 선생님이 어려워 무람없이 다가가기가 힘들었을 걸로 짐작합니다. 비록 혼주로서 정신이 산란하기는 했으나, 제가 선생님을 직접 모셨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평론을 하는 정홍수군과 함께 그 얼마 뒤 선생님을 인사동의 한 식당에 모셨을 때, 선생님은 아직 연부역강할 때 글을 더 쓰라고 제 절필을 나무라셨습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겠노라고 대답은 넙죽 했습니다만, 그때만 하더라도 제가 다시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구차하게도 가정경제 형편 탓에 다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적잖이 겸연쩍었습니다. 세 해 전 절필 선언을 한 계기 가운데 하나가 세상에 할 말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었는데, 절필한 세 해 사이에도 세상에 대한 제 생각이 거의 바뀌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전에 했던 얘기를 소재만 바꾸어서 다시 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무참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권유가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글을 쓰지 않았던 세 해 동안 제게 다시 붓을 들라고 권한 사람은 많았지만, 그분들은 제 ‘스승’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제 스승의 강권으로 다시 글을 쓰게 됐다고 둘러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지지난달 김윤식 선생님의 저서 특별전 첫날에 선생님을 뵈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요. 그렇지만 선생님이 그 연세가 되도록 떨쳐내지 못하신 ‘수줍음’ 때문에 구석 자리에 혼자 앉아계시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영 좋질 않았습니다. 그 자리의 주인공이셨던 김윤식 선생님 옆자리에 선생님께서 앉아계셨다면 모양이 참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뒤풀이 자리에서 선생님께서 와인도 드시고 또 건물 밖에 나가셔 담배도 피우시는 걸 보고, 선생님의 건강을 확인하게 돼 기뻤습니다. 제가 다시 글을 쓰기로 한 것을 선생님께서 치하해주신 것도 제게 큰 힘이 됐습니다. 그 날은 선생님께도, 김윤식 선생님께도 덕담을 들어서, 큰 횡재를 한 느낌이었습니다.

더러, 선생님께서 언론인 생활의 만년을 한겨레에서 보내지 않으셨다면 제가 선생님과 아무런 인연도 맺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한편으로는, 그래도 제가 문단과 언론계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마당인데, 선생님과 어찌 인연을 맺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 하는 생각도 듭니다.

참칭 제자로서, 제가 스승께 무례하고 외람된 청을 하나 올리겠습니다. 연세가 있으시니 이제 긴 글을 쓰기 어려우시겠지만, 이따금 단장(斷章)이라도 쓰셔서 저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만경강이 흐르듯 굽이굽이 휘도는 선생님의 문체, 그 안에 깨알 같이 박힌 풍자와 골계를 다시 보고 싶습니다. 근간에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늘 강녕하소서.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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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기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2008년의 나는 촛불시위에 열심히 참여했는데, 그럴 때마다 큰 아쉬움을 느꼈다. 왜 우리는 저 버스를 당장 넘어서 청와대로 돌격하지 못할까. 왜 우리는 이렇게 평화적인 투쟁에만 집착하고 합법적인 경계선을 넘지 않았다고 변명을 늘어놓을까.

반성이 시작된 것은 비슷한 시기 태국에서 벌어진 사태 때문이었다. 노란 셔츠를 입은 시위대가 나서서 정권이 뒤집히면, 이번에는 빨간 셔츠를 입은 시위대가 정부를 끌어내린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던 중 군부는 점점 더 영향력을 키워갔고 태국의 민주주의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내려앉은 상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국이 된 수많은 나라에서 민주화는 비슷한 방식으로 좌초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규모 시위가 폭동으로 이어지고 정권이 뒤집히면서 민주적 권위가 쇠약해지면, 군부가 총칼로 안정을 제공한다. 당장 경제 성장을 원하는 중산층은 일단 군부를 지지한다. 하지만 중산층은 서서히 더 많은 자유를 찾아 군부가 아닌 민주 세력의 편을 들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바로 그 시점, 다시 말해 1987년에, 성공했다. 물론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 세력의 두 축이 견고하게 버텨냄으로써, 그중 한쪽이 군부와 살림살이를 합치는 역사적 퇴행이 벌어졌을 때에도 민주적 가치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민주화 세력과 군부 독재가 1 대 1로 맞붙는 경우, 민주화 세력은 정권을 잡은 후 급속하게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다. 선거로 뽑혔지만 군부와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반대파를 탄압하고 압살한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12월5일로 예정된 제2차 민중총궐기에 2008년 촛불시위의 기억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로 우리는 ‘뜨거운 무기력증’에 빠진 상태다. 큰 집회가 있을 때마다 광화문에 나가서 소리를 지르고 경찰과 맞서지만 세상은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렇게 오늘에 이르렀다. 물론 대규모 집회를 통해 ‘세력 과시’를 하는 일은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하지만 매번 집회가 열릴 때마다 마치 정해진 식순처럼 경찰버스를 훼손하고 캡사이신 섞인 최루액을 맞으며 고통스러워하다가 적당히 늦은 시간이 되면 집에 간다. 그 과정에서 부상자가 나오고 경찰의 폭력이 벌어지지만 여론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7년째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청와대 본관._청와대사진기자단


설령 어쩌다가 경찰 버스를 뛰어넘고 청와대로 가는 길을 개척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청와대로 가서 대체 뭘 어쩔 것인가? 대통령이나 그 외 중요 인사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순간 시위대는 경찰의 주장대로 ‘폭도’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청와대에 대해 폭력을 행사할 수도 없고, 반면 그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쪽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

대규모 집회를 조직해 세력을 과시하지 않으면 단 한 번의 눈길조차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집회가 커지고 폭력적인 장면이 연출되면 모든 언론은 일제히 ‘폭력’에만 초점을 맞춘다. 결국 지금의 방법을 고집하고 있는 한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목소리’는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상대가 짜놓은 외통수 속으로 걸어들어가지 않는 것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을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외신 기자들을 포함한 전 세계인이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단 우리 스스로의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더 많은 국민들에게 시위의 쟁점들을 알리고 지지를 끌어내어,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때다.

‘청와대로 가지 말자. 대신 방향을 돌려,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자.’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정의구현사제단의 김인국 신부가 시위대의 방향을 불타버린 남대문으로 돌리면서 한 연설의 내용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단 한 명의 권력자 대신, 수많은 이들에게 생각을 전하고 행동을 이끌어낼 해법을, 우리는 찾아내야 한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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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발생한 프랑스 파리 테러는 10여년간 이어온 유럽연합의 물류와 운송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들 간의 여객 및 화물운송은 1985년 체결된 솅겐조약이 확대 적용되면서 국경 통과가 자유롭게 되었다. 그러나 시리아 사태와 파리 테러의 여파로 유럽의 국경 통제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헝가리와 크로아티아는 최근 세르비아와 접한 국경에 담장을 세웠고, 슬로베니아 역시 크로아티아 국경에 철조망을 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 유럽연합국의 국경을 통과하는데 수시간에서 며칠이 걸리는 상황이기에 물류와 운송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테러에 이용될 수 있는 총기, 폭발물 등의 자국 유입이 가능한 상황에서 수십년간 굳건하던 솅겐조약도 무의미한 것이다.

이러한 테러를 비롯한 국가안보의 위협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국정원은 시리아 난민이 국내에 체류하고 있으며, 한국인이 테러조직인 이슬람국가(IS)를 지지하여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중동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임에 따라 난민 수용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파리 테러에서 확인됐듯이 테러범들이 난민들과 동시에 유입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IS 선전매체 <다비크>에 실린 무자헤딘 선전 사진. 전사들의 다양한 인종 구성이 눈에 띈다._경향DB


지난달 IS의 아프리카 연계 조직이 서울 강남 코엑스에 테러를 감행하겠다고 예고했다는 첩보가 입수되기도 했고, IS가 최근 공개한 선전 영상에는 한국도 테러 대상국에 포함시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한국은 테러 청정국’이라는 국제적 이미지도 무색하게 점차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인천공항을 통해 운송되는 위험품의 부실한 처리과정이 도마에 올랐으며, 해외직구(직접구매) 전자상거래가 성장하면서 지난해 물품 수입량이 1553만건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물론 관련 부처에서는 불법 수입품을 차단하기 위한 엑스레이 검사, 배송지 결과 분석, 개인통관고유부호 사용 권고 등 감시 단속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수입화물은 물론이고 해외직구 수입건수는 연평균 60%씩 증가하고 있다. 해외직구나 특송화물의 경우 미화 200달러까지 ‘목록통관’이라는 통관간소화 절차를 통해 수입돼 더 적극적인 물류보안 강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물류보안제도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정부부처의 업무는 항만과 물류, 표준화 제도 등 관련 부서에서 각기 관리하고 있다. 즉 물류업무를 전반적으로 관할하는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각각 물류보안 관련 업무가 수행되고 있으며, 국제 물류검역과 관세업무를 담당하는 관세청과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물류보안 관련 제도를 각각 시행·관리하고 있다.

운송물류 구분에 따라 부처 간 업무를 분리해 보안관리의 체계화와 전문화를 도모한 데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물류보안 통합 측면에서는 여러 부처에 업무가 혼재돼 기준 부재 및 인증제도가 중복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번 파리 테러를 계기로 우리나라도 국가물류 보안강화와 책임 있는 물류보안 체계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임장혁 | 물류기업 패리지그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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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29일 출국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파리행이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만성 피로로 인한 면역력 저하 때문이라는 게 대통령 주치의 설명이지만 총회 참석 스트레스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해외 순방 징크스가 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등 크고 작은 사건이 터졌지만 이번에는 출발 전부터 미국 언론 뉴욕타임스(NYT) 사설로 체면을 구기게 됐다. 하필 140여명의 세계 정상들을 만나는 자리를 앞두고 악재가 터졌다. 36년 전 아버지가 비판당한 그 신문에 딸도 똑같이 당했다. 공교롭게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번 국면에도 주연급으로 등장했다.

NYT는 지난 19일자 사설에서 “해외에서 한국에 대한 평판을 좌우하는 가장 큰 리스크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며 “박근혜 정부가 강압적으로 역사를 다시 쓰고 반대 여론을 잠재우려 하고 있다”고 박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NYT는 박근혜 정부의 ‘억압적 조치’를 보여주는 사례로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노동개혁, 인터넷상의 반대 여론 통제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관해서는 “박정희 장군의 딸인 박근혜가 아버지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려는 의도로 학생들에게 미화된 역사를 가르치려 한다”며 “마치 낮과 밤처럼 남한과 북한을 다르게 만들어 온 민주적 자유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점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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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전 세계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이 이 신문을 읽는다.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한국 재벌뿐만 아니라 전 세계 유수 기업들이 NYT에 기사 한 줄이라도 실리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인다. 그런 NYT가 사설을 할애해 박근혜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대한민국에 치욕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민주주의를 후퇴시켜 북한을 닮아가고 있다는 비유는 뼈에 사무칠 정도로 아프다.

NYT 사설로 한국은 독재자가 국가를 쥐락펴락하며 대를 이어 정권을 잡고 있는 ‘삼류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1997~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 국가 신용등급이 수직 낙하한 것과 다를 바 없다. 파리에서 세계 정상들을 만나야 하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일이다. 이번 박 대통령의 순방 기간에 한국과 정상회담을 갖는 체코의 정치인과 기업인들도 NYT 사설을 밑줄 그어가며 읽었을 것이다.

NYT뿐만 아니다. 최근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앨러스터 게일 서울지국장은 “한국 대통령이 자국 시위대를 이슬람국가(IS)에 비유했다. 정말이다(South Korea’s president compares local protestors in masks to ISIS. Really)”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게일 지국장은 정부 비판 시위를 벌였다고 박 대통령이 시위대를 테러집단 IS에 비유한 것을 꼬집었다. 이 역시 너무나 아픈 지적이다.

언론과 여론 통제에 능한 박 대통령이지만 외신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듯하다. 여당 정치인들도 NYT나 WSJ를 ‘종북 좌빨’로 몰아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 때 박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 극우신문 산케이 서울지국장 가토 다쓰야를 기소까지 했지만 결국은 국제적인 비웃음만 샀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이 국회의사당에서 엄수된 26일 김수환 전 국회의장이 추도사를 마친 뒤 분향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이 국회의사당에서 엄수된 26일 김수환 전 국회의장이 추도사를 마친 뒤 분향하고 있다._강윤중 기자


절대 권력을 행사한 박정희 전 대통령도 외신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인근 궁정동 안가에서 유명을 달리하고 유신체제가 막을 내린 것도 따지고 보면 NYT 기사가 발단이었다. 1979년 의원 신분이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했고 이에 격노한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을 국회에서 축출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김 전 대통령의 명언이 나왔고,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이를 진압하는 방식을 놓고 경호실장 차지철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심하게 다투면서 결국 김재규의 총부리가 ‘유신의 심장’을 겨누게 됐다.

우연의 일치인지 역사의 장난인지 NYT의 박근혜 정부 비판 사설이 나온 지 3일 만에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들렸다. 군사 독재에 온몸으로 맞선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물결이 전국적으로 일고 있다. 정권을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김 전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을 지적하고, 통합과 화합을 마지막 메시지로 남겼다. 한국 민주주의가 NYT와 김영삼에게 다시 한 번 신세를 졌다.


오창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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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여당 김무성 대표가 시위 참여자들을 ‘불온세력’이라 지칭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크게 놀랐다. ‘불온(不穩)’이란 용어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넘어서려는 초월적 권력욕의 산물이기에 지금 사회에서 쉽게 사용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전통사회에서 이 말은 주로 ‘편안하지 않다’ 혹은 ‘순조롭지 못하다’라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정조실록>에는 숙면을 이루지 못하는 왕의 고단함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불온’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그런데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과정에서 이 단어의 급격한 의미변화가 일어났다.

3·1운동에 참여했던 김판경이란 이는 ‘대한독립만만세!’라는 ‘불온문서’를 게시한 혐의로 징역 8월에 처해졌다. 상해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자금을 모집하려는 격문 또한 ‘불온문서’로 취급되어 식민지 법률의 처분을 받았다. 1934년 조선총독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는 훈시를 통해 식민지의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모든 반제국적 행위를 ‘불온한 것’으로 단정했다. 우가키는 한국의 안팎에서 끓어오르던 다양한 반제국 활동을 전면적으로 제압하려는 의도를 ‘불온’이라는 낱말 속에 담았다.

‘불온’은 이렇듯 제국 일본에 적대적인 존재의 파괴 필요성이 증대하던 시대상황의 산물이다. 반대자들을 통칭하기 위해 의미가 모호하면서 다양한 대상을 동시에 거론할 수 있는 ‘불온’이라는 용어가 선택된 것이다. 명료하게 정의될 수 없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권력의 자의성을 극대화하려는 의도 때문인데, 그 결과 일제를 불편하게 하는 모든 대상이 불온한 것으로 규정되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사단법인 한국원자력여성 창립 제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_연합뉴스

일제는 ‘불온’의 독점을 통해 절대 권력의 권위를 드러냈다. 식민지에 살던 한국인에게는 일제가 가장 불온한 존재였겠지만 그러한 문맥에서의 사용은 결코 허용될 수 없었다. ‘불온’의 낙인은 범죄의 사실여부를 결정짓는 증거와 같은 효과를 가졌다. 재판도 받기 전인데 이미 죄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야말로 법에 대한 지배까지도 가능하게 만드는 최종심급의 권력이었다. 이 점에서 ‘불온’은 미지의 적대자에 대한 신속하면서도 효과적인 제거가 절실했던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개념이다. 정치가 법률을 압도한 제국체제의 비정상성이 ‘불온’이라는 지배의 언어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 와중에 법 앞에서의 평등을 외쳤던 근대인의 이상은 초라하게 시들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불온성’의 생산은 역설적으로 제국 일본이 광대한 적대 세력에 둘러싸여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폭로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일본 영토의 확대와 ‘불온성’의 증가는 정비례한 현상이었다. 식민지 시기 만들어진 막대한 불온사건들이 그것을 명백하게 증언한다. 일제는 셀 수조차 없는 불온문서, 불온분자, 불온서적, 불온집단, 불온세력들을 만들어냈는데, 그들 스스로 창안한 적대자들로 인해 동아시아 전역은 온통 불온함으로 충만한 시공간이 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초법적 국가권력의 용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죄형법정주의를 부정하고 사법적 판결 전에 어떤 죄의 확정을 암시하는 국가권력의 두려운 선동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불온한 존재로 지목되는 순간, 그것이 사람이든 사상이든 책이든 그림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이 땅에서의 생존이 위태로워졌다. 문민정부가 시작되고 이러한 일들이 차츰 줄어들었으나 2008년 ‘국방부 불온서적사건’을 통해 식민지의 망령은 일거에 되살아났다. 사건 자체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였지만,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한 이른바 ‘불온서적’의 군대 반입 금지가 장병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용기 있는 군법무관들은 그 이후 어찌 되었을까. 동시대인으로 그들에게 고맙고 죄스럽다. 한국정치의 중심에 서 있는 여당의 대표라면 스스로 사용하는 말의 의미와 역사맥락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와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기형 | 성균관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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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다음달 5일로 예고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집회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헌법상 국민 기본권을 임의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은 집회 금지의 근거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들고 있다. ‘집단 폭행 등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시’를 금지대상으로 적시한 집시법 5조가 그것이다. 전농 집회는 지난 14일 ‘불법폭력 시위’의 연장선상에서 불법폭력 시위로 개최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이 같은 경찰의 조치는 집시의 자유 보장을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 발전의 핵심 가치로 본 헌법에 정면으로 위반된다. 헌법 제21조제2항은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집회의 허용 여부를 행정권의 일방적이고 사전적인 판단에 맡기는 집회 허가제는 검열제와 마찬가지이므로 이를 절대적으로 금지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경찰이 불법폭력 집회의 가능성을 들어 집회를 금지한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봤다. 집회 과정에서 공공질서나 타인의 법익을 침해할 경우 해당 법률에 따라 처벌하면 되는 것이지, 그런 위법행위가 발생하기도 전에 미리 위법 상황을 예상해 중요한 기본권인 집회를 제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전농 측은 평화적 집회를 약속했다. 경찰이 차벽을 설치한다면 꽃을 달아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면 그때 공권력을 행사하면 된다. 나아가 불교계가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사람벽 역할을 하고, 야당도 시위 현장에서 평화감시단을 운영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경찰이 이에 호응해 전농 집회가 평화적으로 열리도록 관리한다면 헌법에 부합할 뿐 아니라 과거 ‘무탄무석’의 평화시위 관행을 부활시키는 계기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경찰이 집회를 금지하고 처벌만 강조한다면 이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먼저 집회 참가 의지를 약화시키려는 것으로, 국민 기본권을 억압하는 행태이다. 두번째로 정권의 정책적 중대 과오를 지적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막는 ‘공권력장벽’ 역할을 자처하는 것으로, 이 역시 중대한 문제이다. 경찰은 ‘집회·시위 억압은 독재정권의 악습’이라고 경고한 법제처의 헌법주석서를 무겁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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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어제 대국민담화를 통해 불법폭력 시위 엄단과 복면시위자 양형기준 대폭 상향 방침을 밝혔다. 다음달 5일 2차 민중총궐기대회를 앞두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악 등 정부의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자연스러운 민심의 표출을 공권력을 동원해 막아보겠다는 심산이다.

김 장관은 “공권력을 조롱하는 행위에 대해 국민의 이름으로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법을 위반한 사람을 법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데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과연 현재 공권력이 정당한 법의 집행자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검찰은 불법시위를 ‘법치 파괴’의 전형으로 규정했지만 정작 법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법치 파괴’는 따로 있다.

최근 수원대 교수 파면·취소 항소심에서 서울고법은 검찰 수사에서 외면당한 이인수 총장 비리 중 상당수를 사실로 인정했다. 앞서 수원대는 감사원과 교육부 감사에서 40여개의 중대한 비리가 적발됐다. 하지만 지난 25일 검찰은 법원이 사실로 판단한 비리 대부분을 불기소처분하고 일부 혐의만 인정해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검찰이 기소독점주의를 남용해 법을 우롱한 법치파괴에 면죄부를 줬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 수원대는 교육사업과 별다른 상관이 없는 종편에 50억을 출자하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딸을 특채로 임용해 눈길을 끈 바 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브리핑 룸에서 도심 내 불법 폭력집회에 관련한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_경향DB


이뿐만이 아니다. 검찰은 2013년 서울중앙지검 2차장 시절 술자리에서 여기자에게 부적절한 언행과 신체접촉을 한 이진한 서울고검 검사에게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피해자인 여기자가 용기를 내 고소했지만 시간만 질질 끌다 ‘강제 추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반면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지만씨가 회장인 기업그룹의 계열사에서 시위하던 노동자에 대해 빌딩 점거를 이유로 구속기소한 뒤 지난 24일 6년형을 구형했다. 최근 5년간 5738건에 달하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단 한 건도 구속기소하지 않은 검찰이 부당노동행위에 시달리다 자살한 동료의 죽음에 항의하던 노동자에겐 유독 가혹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공권력이 균형을 잃고 권력의 눈치만 보는 한 법치국가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

김현웅 장관은 법치국가는 국민에 대한 협박이 아니라 정당한 법집행에 대한 자발적 동의와 인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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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가 문재인 대표의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공동지도부’ 구성 제안을 공식 거부했다. 대신 문 대표와 자신이 참여하는 혁신 전당대회 개최를 제안했다. 안 전 대표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문·안·박 연대만으로는 당의 활로를 여는 데 충분치 않다. 더 담대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1단계로 새정치연합 내 전당대회를 실시한 뒤 2단계로 ‘천정배 신당’과 통합을 추진하자는 해법을 내놨다. 전당대회 개최는 문 대표 사퇴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 당내 비주류가 줄곧 요구해온 사항이다. 안 전 대표는 이에 동의함으로써 비주류 수장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새정치연합이 중대 기로에 섰다.

문 대표와 안 전 대표는 지난 주말 회동했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헤어졌다고 한다. 제1야당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제 갈 길만 고집하는 풍경을 보는 시민은 답답할 뿐이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30년 가까이 공들여 쌓아올린 한국 민주주의가 뿌리째 흔들리는 비상 상황이다. 야당 지도자들이 힘을 합쳐 민주주의 퇴행을 막아내도 모자랄 터에 이 무슨 협량인가. 새정치연합이라는 배가 흔들리면 다 같이 물에 빠질 판인데, 당권이나 공천권을 쥔들 무슨 소용인가. 정치와 무관한 필부필부도 다 아는 이치를 장차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사들만 모르고 있으니 한심하다.



새정치연합에 두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우선 내분 사태는 ‘민주적 원칙’으로 해결해야 한다. 안 전 대표는 ‘혁신 전당대회’의 의미를 두고 “지금까지의 전대와 달리, 계파 간 세력다툼으로 점철된 전대가 아니라 집권 비전과 혁신안을 내놓고 경쟁하자는 것”이라며 “그렇게 해서 새로 뽑힌 대표는 정통성을 부여받는다”고 말했다. 계파갈등으로 얼룩져온 전당대회가 어느 날 갑자기 비전 경쟁의 장으로 변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현 대표의 정통성을 문제 삼던 세력이 당권을 잡는다면, 새로운 비주류가 역으로 정통성 시비에 나설 가능성은 없는지도 궁금하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식이어선 곤란하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정치적 상상력’이다. 정치를 일컬어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한다. 기존 여의도 정치의 문법을 넘어서는 상상력이 절실한 때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골몰하다 대의를 외면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더 먼저, 더 많이 버리는 지도자만이 주권자를 감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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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은 40년간 교편을 잡았다. 모친은 ‘유신독재’, ‘군사독재’ 같은 말을 싫어한다. “어머니는 그 시절 어떠셨느냐”는 아들의 은근한 시선을 몇번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은 그가 따졌다. “내가 독재에 부역이라도 했니?”

군사독재는 1~2년이 아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만 해도 25년, 노태우 통치까지 합치면 30년이다. 그 시절 그 정권에 직·간접적으로 협조하지 않은 국민이 몇이나 있을까.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 찬성률은 91.5%였다. 일제시대는 더 길었다. 국권을 잃은 1910년부터 광복까지 무려 35년이 걸렸다. 외교권이 박탈된 을사늑약 전후부터 따지면 40년이 넘는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시절, 적극적인 친일파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시대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조선인 90%가 창씨개명했다).

세계 제 2차대전 때 독일에 협조한 프랑스 비시정부는 기껏해야 4년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전후 곧바로 나치 협력자들을 색출해 처단하기 시작한다. 짧은 기간 부역했다며 처형한 사람만 10만명이다. 우리는 달랐다. 몇 세대에 걸친 뒤틀린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국민이 일제에 머리를 숙였고 독재에 찬성했는데 누굴 처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일제와 독재에 목숨 걸고 맞선 이들도 적지만 존재했다. ‘정의’는 이들 소수의 차지여야 마땅하지만, 다수의 국민이 뒤틀린 역사에 연루된 상황은 이를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일제통치나 독재정권이 한국 근대화에 공헌했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때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했다. 대통령의 부친은 일제 만주군 장교를 지내고 훗날 독재정권을 이끈 인물이다. 부친 서거 후 대통령은 은둔해 박제가 됐다. 박 대통령은 경험과 비전을 가진 새 시대 정치인이라기보다 ‘그 시절’의 상징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1차 사회보장위원회 회의가 시작하기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 당선은 자칫 부역자로까지 몰리게 된 적잖은 이들과, 밥상머리 교육·각종 혈연 학연 지연 등으로 얽혀 영향을 주고받은 수많은 이들, 또 이들이 구축해온 각종 구조들이 모종의 ‘역사적 재평가’를 원했던 결과다. 그래서 대통령은 ‘콘크리트 지지’를 받는다. 그가 노골적으로 역사교과서에 손을 대겠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과거를 손보면 쉽사리 고통에서 벗어난다. 태어나보니 일본인이었고, 원치 않게 청춘의 한복판을 독재정권과 함께 보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갑자기 바뀐 세상 저편에서 날아오는 아들·딸의 질문. “아버지·어머니는 그때 안녕하셨나요?” 대통령의 독주와 그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는 이 질문에 대한 무언의 답변이자 시위인 셈이다.

그러나 이 시위는 사회 진보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과거가 옳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 방식대로 하려 한다. 경제 정책은 늘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이어야 한다. 다 죽은 ‘낙수효과’를 아직도 유행가처럼 부르는 사람들이다. 내수부양을 외치면서도 노조는 막고 직원 월급은 줄이자고 한다. 어딘가 큰 조직에 속해 있어야 안정적이며 자유롭게 활동하려는 꿈은 ‘낙오’다. 경쟁할 준비만 해야 하고, 토 달면 혼난다.

일제와 군사독재는 역동 대신 복종을 요구했다. 그 방향으로의 회귀는 창조적 도약의 최대 적이다. 창조경제를 말로 외치긴 쉽지만, 회귀적 발상의 주역들은 필연적으로 ‘창조경제 3개년 계획’ 같은 허무개그를 하게 된다. ‘헬조선(가망 없는 한국사회를 뜻하는 인터넷 용어)’의 뿌리를 봐야 탈출구를 찾는다.

우리는 중대한 선택 앞에 서 있다. 판단은 사회 전체의 몫이지만, 진통제는 한 시대의 고통을 잠시 감춰줄 뿐 암 덩어리를 제거하지 못한다는 걸 다 안다. 아프고 두렵더라도 결국 ‘정의’와 ‘미래’를 향할 것이다. 이런 선택은 빠를수록 좋다.


홍재원 | 사회부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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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대학 수강생들에게 물었다. 다음에 소개하는 나라가 어느 나라일까. 이 나라 사람들은 늘 쫓기고 불안해한다. 영원히 손에 잡히지 않는 성공을 추구하느라 괴로워한다. 이들의 목표는 막연한 물질적 성공이고, 최소한의 시간에 최대한의 수익을 얻는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도덕적 기초가 없는 세계’를 향해 표류하고 있다고 쓴 작가도 있다.

어떤 여행자는 이 나라 사람들이 길거리든, 도로 위에서든, 노천이든 극장이든, 커피숍이든 아니면 가정집이든 어디서든 대화할 때 ‘돈’이라는 단어가 빠지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 법학자는 모두가 최상층이 되고자 하는 병적인 조바심으로 인해 ‘무서울 정도로 정신착란이 빈발’한다고 언급했다. 한 출판인은 이 나라 젊은이들이 ‘햇빛을 빼앗겼다’라고 표현했다.

어느 나라일까. 나이가 지긋하신 시민대학 수강생들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우리나라’라고 답했다. 지난 수요일 오후, 교양과목을 듣는 대학생들에게도 위와 같은 내용을 들려주고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도 쉽게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 그렇다면 위의 상황이 어느 시기에 발생했다고 보느냐고 되물었다. 대부분 2015년 현재라고 답했다. 중년층이나 이십대 초반 학생 모두 답을 맞히지 못했다. 위에 소개한 나라는 미국이고, 위의 암울한 시기는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180여년 전인 1830년대다.

최근 번역된 모리스 버먼의 <미국은 왜 실패했는가>(김태언·김형수 옮김, 녹색평론사)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미국사를 전공한 학자가 아니라면, 보통의 한국인이 미국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일반 상식 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다. 버먼에 따르면, 미국의 지식인조차도 미국인의 정체성, 미국 사회의 작동방식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눈으로 현실을 보면서도 그 현실을 부정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미국 국기_경향DB


문화사가이자 사회비평가인 버먼은,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에 대한 일반 상식을 여지없이 뒤집는다. 그는 건국 이후 미국을 이끌어온 지배 이념은 청교도 정신이나 공화주의가 아니라 허슬링(hustling)이라고 말한다. 허슬(hustle)이란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를 뜻한다. 그러니까 허슬러(hustler)는 한마디로 탐욕스러운 경제적 동물이다. 버먼은 미국인은 허슬러이고, 그들의 삶의 방식은 허슬링 라이프라고 단언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구성하는 야심, 혁신, 근면, 조직, ‘할 수 있다’ 정신이 다 허슬링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진실은 ‘불편한 진실’일 때가 많다는 데 동의한다면, 버먼의 논지는 진실로 읽힌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목록은 더 있다. 남북전쟁이 남부의 노예제를 해방하기 위해 발발했다는 우리의 상식도 버먼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남북전쟁의 원인은 자본주의였다. 산업화로 치닫던 북부가 농본사회에 머물러 있던 남부를 복속시키기 위해 노예제를 빌미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후 허슬링 라이프는 기술 숭배와 만나면서 가속도를 낸다. 버먼은 미국인들이 기술을 기독교 내세관과 동일시했다고 지적한다. 미국인들은 일찍이 기술의 진보는 신성한 계시이며 기술이 국가의 진보와 직결된다고 확신해왔다는 것이다.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를 온몸으로 겪어온 베이비 붐 세대,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서성거리는 대학생들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 이유는, 19세기 이후 미국이 달려간 길을 우리가 답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의 가까운 미래는 일본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전부가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두 세기 전 미국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경제적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경제적 동물이 되고자 발버둥 친다. ‘나는 허슬러가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버먼은 책에서 자기 의견을 지지하는 미국인이 20만명이 채 안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버먼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특이한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카터는 미국 역사상 매우 드물게도 ‘내적 풍요와 외적 검약’을 외쳤다. 카터의 ‘비현실적 비전’은 레이건에 의해 사라졌다. 미국은 ‘외적 풍요와 내적 공허’로 즉시 복귀했다. 버먼은 미국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다. 미국인들이 타자(다름)에 대한 공감능력, 사익보다 공공선을 우선하는 온전한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가 미국과 다른 것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우리에게 버먼이 강조한 ‘과거의 미래’, 즉 ‘오래된 미래’는 무엇이었던가.


이문재 | 시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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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은 왜 그랬을까? 그 마음속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박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끝내 참석하지 않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여러 말들이 많지만 그럴 수 있다. 연이은 해외 순방을 앞두고 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그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영결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발인식에 가 고인에 대한 예우는 갖추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명색이 국가장을 치르는 마당에 찬물을 끼얹은 언행이다.

박 대통령은 국가장 기간에 예정에 없던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국민과 국회를 대상으로 험한 말을 쏟아냈다. 지난 14일 10만명이나 모인 광화문 민중총궐기 대회를 대규모 불법 폭력 시위라고 규정하고, 강력 대응을 지시했다. “테러단체들이 합류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이슬람국가(IS)에 빗대 ‘복면시위’를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견지망월이요, 침소봉대다. 1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왜 거리에 나섰는지 그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하고 테러 위협과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만 부각시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 직사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60대 농부의 안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박 대통령의 독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치권, 특히 야당을 겨냥해 할 일은 안 하고 립서비스나 하는 집단, 위선적 집단이라고 맹비난했다. 전직 대통령의 국가장을 치르는 마당에 어찌 이렇게 적대적이고 살벌할 수 있을까.

생전에 원수 같은 사이라 하더라도 장례 때만은 그래도 조의를 표하고, 다투던 일도 잠시 미뤄놓는 게 우리의 오래된 풍속이자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전직 대통령 서거를 맞아 국가적인 추모 분위기에서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무리 광화문 시위 사태가 엄중하다고 판단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나설 이유가 있었을까. 법무장관이 이미 긴급담화까지 발표한 사안이고, 그러잖아도 검경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고 있지 않은가. 과유불급이다.

정치권에 대한 비난과 매도는 더 그렇다. 오죽하면 조·중·동 같은 신문까지도 박 대통령의 ‘격한 표현’, 국회와 야당에 대한 ‘습관적인 비난’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나섰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쌓인 구원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했을 수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특히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인사들까지 앞다투어 고인의 정치적 후계자임을 자임하면서 마치 상주 노릇하는 게 박 대통령으로서는 꼴불견일 수 있었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_경향DB

지금이 어느 땐데 국회는 제쳐놓고 상갓집에서 한가하게 ‘자기 정치’나 하고 있느냐는 엄한 질책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예상 밖의 사회적 추모 열기에 탁월한 정치 감각의 소유자로서 본능적 위기의식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김영삼 전 대통령만큼 정치적 역정에서 빛과 그림자가 뚜렷한 정치인도 없다. 1970년대 박정희 유신 독재와 5공 때 모든 것을 걸고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지만 3당 합당으로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되는 지역주의를 결정적으로 고착시켰다는 평가가 교차하고 있다.

집권 후 1980년 신군부의 5·18 광주 학살과 쿠데타를 단죄하고 금융실명제 등 여러 개혁조치를 과단성 있게 추진했지만 노동법 날치기 통과 등으로 거센 민심의 저항에 직면하고 외환위기를 초래한 대통령이라는 혹평도 따라붙었다. 많은 국민들에게 그만큼 애증이 교차하는 정치인도 없을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 추모 열기는 그런 애증의 스펙트럼을 넘어선 듯하다. 적지 않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었던 통 큰 리더십, 인간적인 매력이 끌어들이는 자장이 그만큼 셌다. 못 말릴 정도로 솔직하고 활달했던, 한편으론 무척 고집스러웠지만 결코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았던 그의 풍모가 새삼 그리운가 보다.

어찌 보면 이 시절 때문인지도 모른다. 야당과 정치권만 탓하는 대통령, 국민과는 말도 섞으려 하지 않는 대통령, 국민을 혼내고 가르치려는 대통령, 자기만 옳다고 하는 대통령 피로증후군의 반영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박 대통령은 긴급 국무회의를 통해 ‘국민’과 ‘정치권’을 다잡고자 했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사가 그렇듯이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 모양새다.


백병규 |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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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이전투구, 지리멸렬. 제1야당의 현주소를 설명하는 데 이런 표현을 쓸 수밖에 없어 유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이 끝나자마자 새정치민주연합의 집안싸움이 재연됐다. ‘통합하고 화합하라’는 고인의 유지(遺志)를 따르겠다는 약속은 하루 만에 허언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닷새 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어제 새정치연합에서는 문재인 대표가 제안한 ‘문·안·박(문 대표·안철수 전 공동대표·박원순 서울시장) 연대’에 대한 찬반론이 분출하면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범주류로 분류되는 초·재선 의원 48명과 원외 시도당·지역위원장 80여명은 ‘문·안·박 연대’에 지지를 표명하며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참여를 호소했다. 오영식 최고위원은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서 3인의 공동지도부 구성이 필요하다는 ‘비판적 지지’ 입장을 밝혔다. 반면 호남권 중심의 비주류 의원들은 문·안·박 연대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9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린 시·도지사 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_강윤중 기자


정당 내부에서 세력이 갈라지고 분파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도 항용 있는 일이다. 문제는 새정치연합에 갈등만 존재할 뿐, 양보·타협·조정·협상은 실종됐다는 점이다. 감정적 앙금만 쌓이고 생산적 결론이 나지 않는 까닭이다. 비슷한 양상이 오랫동안 계속되다 보니, 지지층을 포함한 주권자들은 고개를 돌리고 있다. 아니, 왜 싸우는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새정치연합의 내홍은 자기들만의 쟁투여서 더욱 보기 딱하다. 한국갤럽이 지난 24~2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새누리당 지지율은 40%, 새정치연합은 23%였다고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데도 이런 실정이다. 정치적 환경이 야당에 유리해도 야당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집안싸움에만 능할 뿐 정권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무능하다는 뜻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 4월 총선은 치르나마나다.

제1야당의 실패는 단순히 그들만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정권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걸고, 백척간두에 선 민주주의를 지켜낼 책무가 야당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듯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매듭을 끊어낼 사람은 문 대표와 안 전 대표다. 문 대표는 연대 제안을 한 데서 그치지 말고, 안 전 대표에게 진정성을 갖고 다가서야 한다. 안 전 대표 역시 ‘반(反)문재인’ 기치만으로는 어떠한 정치적 성과도 거둘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두 사람이 자존심을 앞세우거나 알량한 기득권에 집착하다 공멸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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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을 둘러싼 새로운 의문이 제기됐다. 미국으로부터 이전받지 못하게 됐다던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 4개 핵심 기술뿐 아니라 나머지 21개 기술을 이전받는 것도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11월 중으로 21개 기술에 대해 미국 정부의 이전 승인이 날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하지만 최근 협상에서 미국 측이 21개 기술을 세분해 협의하자고 했고, 일부 기술의 이전에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방위사업청은 “어떻게 예정 일자를 다 지킬 수 있겠느냐”고 했지만 방위사업청은 또다시 거짓말을 했고, KF-X 사업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졌다.

KF-X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항전장비를 구성하는 4개 기술뿐 아니라 비행·제어 장비에 들어가는 21개 기술도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이전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 쌍발엔진 체계통합 기술은 기체 형상 설계에 필수적이다. 이 기술 없이는 KF-X 사업 추진 자체가 어렵다. 설령 이 기술이 제공된다 해도 사업 지연에 따른 사업비 증가 등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최근 KF-X 개발을 맡을 한국항공우주산업 이사회가 사업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런 부작용과 사업성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한국형전투기개발사업우선협상대상자로KAI선정_경향DB


KF-X 사업은 중단될 위기에 있었으나 국방과학연구소 등이 4개 핵심 기술은 독자 개발하고, 나머지 21개 기술항목은 문제없이 넘겨받을 수 있다고 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사업 시행을 지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의문이 제기되면 이 사업은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게 옳다. 국회 국방위 소속 여야 의원들도 이 사업에 대한 감사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예사롭지 않은 태도 변화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은 한국의 방산수출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이 개발한 T50 고등훈련기의 우즈베키스탄 수출도 미국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훗날 미국 기술을 받아 전투기를 만들어놓고 외국에 팔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만으로도 KF-X 사업의 성공은 낙관하기 어렵다. 이 사업의 성패는 박 대통령이나 이 사업의 강행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퇴임한 뒤에나 판명이 난다. 퇴임 후 일이라고 국민의 혈세 8조원이 들어가는 큰 사업을 이렇게 서둘러 강행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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