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몇 달이 멀다고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여간 풀어줄 수 있는 건 다 풀어주고, 동원할 수 있는 건 다 동원했다. 별의별 대책을 다 쓰면서 전세 대책이라고 하기도 하고, 월세 대책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부가 절대로 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전·월세 상한제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임대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다. 이걸 하면 전·월세 폭등은 잡는다. 그렇지만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좀 불편해진다. 이런 구조적 접근을 중장기적으로 하면 풀 수 있는 방안은 절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 핵심을 ‘집값 부양’이라고들 본다. 집값을 지지하는 것, 이건 박근혜 정부의 근본 정책이다.

이제 다시 정부가 청년에 대한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2016년 예산으로 2조원 약간 넘는 돈이 잡혀 있는데, 대부분 인턴 대책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도 대부분 기업들에 퍼주기 식이다. 이걸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건 청년대책이 아니라 불황을 맞은 기업에 대한 단기 자금지원 성격으로 보인다. 정부가 직접 일자리라고 거창하게 포장한 것들도 뜯어보니 제일 덩치 큰 게 외교부에서 1000억원 넘게 쓰는 해외봉사단이다.

애초부터 해외에 사용되어온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이 추가적 일자리라고 하는 것,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이다. 고정성 해외지원 사업에 청년들이 봉사하러 가는 것, 이게 청년 대책, 그것도 직접 고용대책인가? 이런 식이면 전형적인 열정페이로 분류되는 펜션 ‘스태프’들에게 파티에서 밥 주고 재워준다고 월급 안 주는 것도 일자리 대책이다. 정부의 청년 대책들이 2조원이나 쓰면서 인턴을 뽑게 하거나, 인턴이 되기 위해서 훈련받는 것, 그런 게 거의 대부분이다.

물론 한국에는 최고급 인턴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데는 고위직 자녀들이 부모 줄 타고 들어가기 때문에 실업을 호소하는 청년들에게는 별 해당 사항이 없다. 인턴의 양극화, 이게 정부의 청년 대책이 만든 새로운 트렌드이다. 간단히 정부의 청년 대책을 정리하면, 2조원가량의 정부 돈을 들여 고급 인턴이 못된 불쌍한 청년들을 하위직 인턴으로 만들겠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2조원을 가장 허무하게 쓰는 법이 되겠다.





우리 사회가 청년을 대하는 눈이 다정하지는 않다. 매섭게 보거나 딱하게 보거나, 감정이 너무 많거나 감정이 너무 없거나, 두 극단을 달리는 경우가 많다. 현실이 그렇다. 그렇다면 정부가 청년을 보는 눈은? 포장지로 보는 것 같다. 비즈니스적 관점이다. 자기 장사하는데 어떻게 하면 더 예쁜 포장지를 쓸까, 정책과 예산으로 본 정부 대책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포장지 중에서도, 보자기처럼 오래오래 두고 쓰는 명품급이 아니라 한 번 쓰고 버리는 1회용 포장지, 딱 그렇다. 언제 쓰나? 선거 때 쓴다. 선거 끝나면? 또 다음 세대 청년을 위해서 새로운 인턴제를 도입한다. MB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이런 정부 정책의 연장선에서 보면, 대통령이 제안한 청년희망펀드는 전형적인 ‘1회용 포장지’ 정책이다. 기왕 포장지를 쓰는 김에 좀 더 화끈하게 국민들도 끌어들이자, 이렇게 보인다. 포장지 전법에 국민들도 끌어들인다. 뭐 좋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고용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펀드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 기가 막힌다고 생각한 것은, 이 펀드가 지속가능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원금을 회수하겠다는 게 대통령 방침이라는 점이다. 청년의 삶이 지속가능해야지, 펀드가 지속가능한 것이 목표라니 맙소사! 이 기막힌 현실 앞에 한마디만 하고 싶다.

청년은 1회용 포장지가 아닙니다! 40년 이상 일하면서 가정도 꾸려나갈 인간이며 동등한 국민입니다! 정부와 대통령에게 1회용 포장지 취급받아도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우석훈 |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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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변화하는 현실에 발맞춰 어떻게 변해야 하느냐는 쟁점에는 손쉬운 정답이 없다. 학문연구와 교육은 복잡하고 다양한 것이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객관적 평가 기준을 세우기 어렵고, 대학 발전의 방향 또한 간단하게 제시하기 힘들다.

대학교수는 연구와 교육을 책임지는 대학 운영의 주역이지만 자칫하면 사회적 요구나 현실 변화에 둔감해지기도 쉽다. 그래서 대학이 누려야 할 자유와 자율성은 대학의 사회적 책무와 항상 긴장관계에 있고, 더 나은 내일을 둘러싼 논의와 논쟁이 분분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 따지려는 것은 이 문제가 아니다. 교수가 대학의 주역다운 역할을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시시비비가 분명한 일들이다.

우선 부패한 사학재단이 저지르는 불법과 비리는 너무 낯익다.

정부의 총장 직선제 폐지 정책은 지난달 부산대 국문과 고현철 교수가 목숨을 던져 항거하기에 이르렀지만, 교육공무원법 제24조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정부가 법과 관행을 깡그리 무시하며 경북대, 한국방송통신대, 공주대 등의 국립대 총장 최종 후보자에 대해 아무런 사유도 밝히지 않은 채 임용 제청을 거부하는 사태도 장기간 진행 중이다.

명백한 불법은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수긍할 수 없는 일도 숱하다. 8월 말 발표된 대학 구조조정을 위한 대학평가도 그러하다. 입학정원 감축 등 중대한 이해가 걸린 평가가 대학별 현장방문도 없이 졸속으로 진행되는 등 문제가 많았다.

가령, 최고 등급을 받은 34개교 중에 서울의 S대와 전북의 W대는 의혹의 대상이다. 두 사립대학은 각각 2013년과 2014년에 정부의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서 제재를 받았다.

그런데 불과 1, 2년 만에 A등급으로 올라선 것이다. 겉치레 개혁과 서류 꾸미기만으로 점수 부풀리기가 가능한 평가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두 대학 모두 교육부 고위직 퇴직자를 최근 영입한 사실이 밝혀졌으니 참으로 수상쩍다.

교육 당국은 부실한 대학평가를 발표하면서도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통과되어야 대학 구조조정을 법적 근거 위에서 제대로 실행할 수 있다고 우긴다.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는 길을 모색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구조조정 법안은 그저 입학정원을 축소하고 대학을 줄이면 된다는 무책임한 내용만 담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24일 국회 영상회의장에서 정부세종청사와 연결해 영상으로 진행한 전체회의에서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총장 직선제 폐지의 철회를 촉구하며 투신한 故 고현철 부산대 교수와 관련한 새정치연합 배재정 의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_경향DB



법안 제1조는 “대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실제 고등교육의 질을 높일 방안은 없고 학교법인의 자진해산을 유도할 재산 처분 특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3조 3항에 법인 해산 시에 남는 재산을 각종 비영리법인에 출연하는 방법으로 가져갈 길을 열어주면서 “잔여재산처분계획서에서 정한 자에게로의 귀속”마저 허용하는 독소조항이 있으며, 제25조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의 관련 규정 적용마저 면제하고 있다. 사실상 공공의 학교 재산을 마음대로 챙겨가겠다는 심산이다.

학교법인의 재산 형성은 국민 세금에서 나온 각종 정부 지원과 혜택, 무엇보다도 학부모의 피땀이 밴 등록금 덕분이며, 대학을 손에 쥔 ‘소유주’들의 출연과 기여가 미미함은 까맣게 망각되어 있다.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여건이 어려운 지방 군소 사립대학부터 학교를 살리려 애쓰기는커녕 빨리 폐교하여 재산을 챙기려는 행태가 확산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야 국회의원들도 이 법안에 대해 정치적 계산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극소수의 사학 소유주들을 위해 지역 대학이 마구 문을 닫도록 방치하는 정치인을 지역민들이 곱게 볼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상식 이하의 일을 거듭 겪고 있다. 안심할 수 없다. 법원이 경북대, 한국방송통신대, 공주대의 총장 임용 제청 거부가 부당하다고 연이어 판결했지만, 무작정 버티는 자들은 대체 누구인가? 한국체육대학도 똑같이 총장 임용 제청 거부 사태를 겪은 끝에 ‘친박’ 정치인이 총장이 되고만 결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대학의 재산을 처분계획서에서 임의로 정한 자에게 면세 혜택과 함께 넘기는 법안을 배짱 좋게 구상한 당사자가 발의에 참여한 국회의원들뿐이라고 믿을 이는 별로 없다. 청와대, 집권당, 교육관료, 부패사학이 벌이는 짬짜미 잔치의 광기 서린 탐욕이 도를 넘었다. 이들은 대학 구성원들이 본연의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지 못하게 학교를 망가뜨리고 있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국립대 총장의 임용권자로서 실상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


김명환 |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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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에 대해 ‘물수능’ 논란이 일고 있다. 채점 결과 만점이 아니면 1등급을 못 받는 과목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계 국어·영어·수학 시험은 모두 100점을 받아야만 1등급을 받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실제 수능에서도 쉬운 출제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평가원의 말대로 만일 11월12일 치러지는 수능이 이번 모의평가 수준으로 쉽게 출제된다면 작은 문제가 아니다. 1~2문제만 틀려도 2·3등급으로 떨어져 대입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정시에서 소수점 몇자리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정상적인 학력 측정이라는 수능의 취지는 실수 안 하기 경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하든 게을리하든 성적에 큰 차이가 없는 교육적 부작용도 낳는다. 이런 점을 알면서도 평가원이 쉬운 출제를 맹신한다면 사회적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수능 모의평가를 보는 여학생들_경향DB


A평가원은 수능을 어렵게 내면 학업 부담이 가중되고, 사교육을 유발하는 것은 물론 공교육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수능을 쉽게 냈지만 사교육비는 오히려 증가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공교육의 황폐화와 사교육의 번성은 상관성이 높지 않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사교육이 활개를 치는 것은 대입을 정점으로 하는 경쟁과 성적 지상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는 공교육의 학생 학습능력 향상 역량과는 무관한 일이다.

공교육의 근본 문제는 우리 교육이 사회적 권력을 공급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데서 비롯된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공교육이 공적 시민으로서의 자질 향상과 미래를 이끌 창의력 있는 인재를 육성하지 못하는 ‘교육적 기능 부전’에 빠진 것이다.   물론 쉬운 수능이 학습 부담 경감 등 교육적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육부가 공교육을 살리려면 먼저 교육 현장에 도입된 경쟁과 시장논리부터 들어내야 한다. 학생을 점수 따는 기계로 만드는 대신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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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어제 인터넷 표현물에 대한 검열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심의 규정 개정안을 승인하고 다음달 2일 입안예고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인터넷에 올린 글이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당사자의 신청 없이도 제3자 신청이나 직권으로 심의에 올려 해당 글을 삭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행정기구인 방심위가 사실상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의 범위와 한계를 결정하고 판단하는 준사법기구가 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방심위는 미성년자, 장애인 등 스스로 자신의 권리구제가 어려운 피해자들의 보호를 위해 당사자 신청 없이도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글을 신속하게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수단체 등 제3자가 문제를 삼은 인터넷 글은 보통 시민보다는 공인을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므로 방심위 심의권한이 확대되면 대통령, 정치인, 고위공직자 등에 대한 비판글을 삭제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만일 그런 우려스러운 사태가 발생한다면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활동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방심위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의식해 나름대로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공인의 경우 사법부에서 명예훼손으로 인정한 경우에만 심의, 삭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안전장치는 언제든 쉽게 고칠 수 있는 내부규칙으로 정하고 있어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공인의 범위와 유죄판결에 따라 직권삭제가 가능한 표현물의 범위도 논란거리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의문의 7시간을 보도한 산케이신문 기자가 명예훼손으로 유죄를 받은 경우를 상정해 보자. 이 경우 박 대통령의 초동 대처 미흡을 제기하는 다른 글도 직권삭제 대상인지 불분명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마약 사위’와 보수단체가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을 공인으로 판단할 것인지도 논란이 된다. 방심위가 자의적으로 김 대표 사위와 관련한 글만 문제 삼고, 박 시장 아들과 관련한 글은 방치하는 불공정한 태도를 보일 때 이를 제재할 방법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방심위는 이 모든 논란을 11월 전체회의로 떠넘겼지만 정치적 악용의 위험이 매우 높아 보인다. 더구나 뉴라이트 인사나 공안검사 출신들에 의해 장악된 방심위가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대변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방송 장악에 이어 ‘포털 길들이기’에 나선 가운데 방심위도 인터넷 표현물에 대해 검열관 행세까지 하겠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처사다. 방심위가 이제라도 문제점을 인정한다면 심의규정을 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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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전 번잡한 거리에서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짐승도 그 짓은 하지 않습니다.” 다른 표현도 있을 텐데. 성소수자 인권단체 회원인 나로서는 내용은 물론 방식도 불쾌했다. 동성애 반대 서명운동이었는데 무조건 볼펜부터 쥐여준다. 가는 길을 막고 강요하길래 “했다”고 말하고 빠져나왔다.

대개 서명운동은 진상 규명이나 피해 보상 등을 주장한다. 그런데 최근 일부 기독교 세력의 동성애 반대는 ‘행위’를 반대한다는 것인지, 동성애자인 ‘사람’을 반대한다는 것인지? 이상한 캠페인이다. 마치 장애를 반대한다, 장애인을 반대한다, 검은색을 반대한다, 흑인을 반대한다는 것처럼 시비를 떠나 문법상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재특회(在特會·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라는 일본의 극우단체가 있다. 일본 근대사에서 조선인, 오키나와인, 대만인에 대한 노동 착취와 멸시를 여기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본은 대만 원주민을 문명화의 대상으로 보고 “물고기” “생번(生蕃·토굴인)”으로 불렀다.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는 “조선인과 개(犬)는 출입 금지”라고 써 붙인 식당이 있을 정도다. 재일 조선인은 투표권도 없다.

문제는 자이니치(재일교포)가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그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고방식이다. 이들은 주로 시위, 건물 난입, 폭행, 혐오 발화를 통해 자신의 올바름을 주장한다. ‘재특회’는 일본 사회의 최대 약자인 자이니치를 차별하자는 단체가 아니다. 그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으므로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출발했다.

우리의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도 재특회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한국의 여성 혐오 현상은 일베가 주도한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 이유는 여성이 남성의 일자리를 뺏어갔다는 잘못된 인식과 분노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별 분석은 사실이 아닐뿐더러(여성은 남성의 일자리를 ‘뺏어가지 않는다’) 실제 일베 사용자들이 혐오하는 집단이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성적 소수자, 특정 지역민, 이주노동자, 장애인, 복지 정책을 요구하는 부모(‘맘충’) 등 ‘루저’나 복지비용이 들어간다고 간주되는 약자에게 더 적대적이다. 다시 말해 ‘수준 높은 국민’이 못되는 비(非)국민을 “솎아내자”는 인종주의가 내재돼 있다. 지난번 일베에서 활약했던 KBS 수습기자 사건에서 보듯이 ‘중상층’ 사용자가 상당하다. 일베가 공격한 집단 중 여성들이 온라인에서 조직적으로 반발, 대응했기 때문에 여성 혐오만 돋보인 것이다. 재특회와 마찬가지로 일베는 약자를 비하하지 않는다. 여성처럼 약자가 아닌 이들이 누리는 부당한 특권이 부당하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영화 '암살' 출연자의 얼굴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얼굴 사진을 합성한 ‘일베’ 사진_경향DB



재특회나 일베를 KKK단이나 독일의 신(新)나치 같은 서구의 전통적인 혐오 세력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백인우월주의자는 흑인이나 이주노동자가 특권을 누리거나 지위가 높기 때문에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주장은 ‘진정한’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화)다. 그들의 증오는 ‘논리적이다’. 유색인종이나 이주노동자는 더럽고 무질서하고 머리가 나쁘고 게으르고 우생학적으로 열등해서, 사회를 퇴보시키는 이들이기 때문에 우월한 자기들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이다. 한·일 혐오 세력의 “특권 세력이 더 특권을 요구하고 있다”와 서구의 “저들은 열등한 족속이므로 몰아내야 한다”는 상반된 주장이다. 전자는 약자를 강자로 둔갑시키는 반면, 후자는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활동이다.

일베는 보수 세력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부터 조직되기 시작한 우익 시민사회의 본격적인 등장이 아닐까. 이들이 꿈꾸는 국가는 뭔가 다른 것 같다. 상생을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계급과 성별 관계는 모순이다. 이들의 이해(利害)는 대립한다. 이 때문에 사회는 계층과 성별에 대해서 “평등”을, 장애인, 이주노동자, 동성애자에 대해서는 “관용과 배려(다양성, 동화)”를 대안으로 내세운다. 물론 웬디 브라운의 유명한 지적대로 장애, 인종, 이성애 제도 역시 정치적 모순이지만 자유주의 국가는 이를 관용으로 탈정치화한다. 권리를 시혜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일베는 그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베는 제국주의로부터 전 지구적 자본주의 그리고 국가가 글로벌 도시 연대가 된 지금, 충격받은 구한말 양반 세력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일베가 시대착오적 집단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원래 시대에 대한 판단은 구성원마다 다르므로 사회 통합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건국 67년’이 되었다고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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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7월 중 서울을 빠져나간 인구는 101만2000여명. 그 중 22만9010명이 경기와 인천으로 이동했고 그 나머지는 더 멀리 강원도나 충청도(특히 원주와 충주. 제2영동고속도로와 중부내륙철도로 서울과의 접근성이 한 시간 안으로 개선될 예정인 도시), 혹은 경상도나 전라도 등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덕분에 지방의 전원주택을 찾는 인구가 급증한 가운데 부동산 중개인들이 팔고 싶어도 팔 집이 없어서 ‘매물 찾아 삼만리’에 나섰다.

그 때문인지 택배 아저씨들이 ‘오지’라고 꺼리는 이 산동네까지 와서 굳이 명함을 주고 가는 업자들이 부쩍 많아졌다. “집 안 파세요?” “안 판다고 했잖아요. 지난해에도, 올봄에도 물으셨고 그때마다 안 판다고 했는데 굳이 다시 와서 묻는 이유가 있나요?” 따지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자 부동산 중개인이 답했다. “그냥 와 봤어요. 찾는 사람은 많은데 매물이 하도 없어서…. 혹시라도 나중에 집을 파실 계획 있으면 연락 좀 주시라고요.” “네, 그럴게요.”

얼마 전에는 옆 동네에 사는 지인이 집 팔렸다는 소식과 함께 싱싱한 대하 한 보따리를 주며 자랑했다. “직거래라 어제 잔금 치르러 두 부부가 와서는 엄청난 양의 대하까지 선물로 주고 가더라. 중개수수료 없이 2억원에 팔았으니까 우리로서도 가격을 잘 받은 편이거든. 근데 그들한테도 그게 엄청 좋은 가격이었던 모양이야. 팔아줘서 고맙다며 생물 새우까지 사온 걸 보면….” 하기야 그새 너무 개발되긴 했지만 여하튼 자작나무숲 속에 지은 38평 신축 주택이고 심지어 마당과 밭으로 쓸 수 있는 땅이 무려 250평이나 딸려 있는 집이니 서울 살던 사람들은 좋아서 까무라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얼마 전 서울의 ‘미친 전셋값’이 이제 평균 3억원대로 올라섰다는 뉴스를 보고 얼마나 기겁했던가? 폭등한 전세금에 떠밀려 나온 ‘전세난민’도 안됐지만 더 저렴한 월세를 찾아 이동하는 ‘월세 유랑민’들은 더욱더 가련하다.

생각만으로도 앞이 깜깜하다. 도대체 은행 예금의 3배가 넘는 월세를 내고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심지어 그가 아직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20대의 비정규직 젊은이라면? 그런 이들에게 서울은 살길을 찾아 스스로를 방출해야만 하는 ‘팻 시티’(fat city·‘더할 수 없이 좋은 상태’라는 뜻과 달리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너무도 힘겨운 서민 루저들의 애환을 다룬 동명의 영화가 있다. 1972년 만들어진 존 휴스턴의 숨은 걸작으로 세대를 초월해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다.





그래서일까? 은퇴한 베이비부머와 40~50대 중장년층은 물론 대학을 갓 졸업한 20~30대 청년층의 상당수마저 일찌감치 귀촌에 뜻을 품고 탐색 중인 걸로 안다. 내가 만난 20대 중에는 ‘지상권’만 있는 저렴한 시골집만 알아본다는 이도 있었다. 심지어 아가씨였다. 남편은커녕 남자친구도 없는 젊은 처자 몸으로 할아버지 혹은 아저씨들 틈 사이에서 ‘내 손으로 짓는 황토구들방’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오너 셰프를 꿈꾸는 20대 후반의 잘생긴 훈남도 있었고, 결혼하면 신혼 생활을 시골집에서 시작하겠다는 젊은 커플도 있었다.

귀농·귀촌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시골 생활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오싹할 정도로 마음껏 비웃어주는 마루야마 겐지 같은 작가도 있지만, (심지어 그의 말에 격하게 동감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여전히 ‘시골에 희망이 있다’고 믿고 있는 4년차 귀촌자다.

무엇보다 집값이 싸다. 요즘 무슨 새로운 트렌드라도 되는 양 귀촌 인구가 급속히 늘었다지만 시골엔 매매가 1억원도 안되는 살 만한 주택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발품을 판다면 전세나 월세를 구할 수도 있다.

예컨대 마을 중심가에 위치해 있는, 방 두 개에 주방 딸린 가게가 보증금 500만원에 월 30만원이라니 정말 싸지 않나?

집값과 임대료가 쌀 뿐만 아니라 내가 보기에 시골은 할 일도 많은 곳이다. 물론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도시에서처럼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편안함을 추구하며 안일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시골은 별로 할 일 없고 벌어먹고 살 일은 더더욱 막막한 곳일 뿐이다.

하지만 “할 일이 왜 없어? 너무 많아서 탈이지” 하는 이들도 있다.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진취적으로 움직이며 때로는 혹독한 노동 속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의지가 강한 이들. 그런 이에게 시골은 발굴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으로 꿈틀대는 일종의 보물섬이다.

세계적 투자가 짐 로저스도 지난해 서울대를 방문해 ‘지금이야말로 농업에 투자할 때’라고 했다. 시골은 그 어느 곳보다 그렇게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이들이 필요한 곳이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식량 부족 시대에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스스로 재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활짝 열린 기회의 땅. 시골은 그런 곳이 아니며 또 그런 곳이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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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성과는 이윤 외의 모든 걸 파괴했다. 우리는 성과압박을 견디지 못해 양심과 피를 팔아 성과를 채워야 했다. ‘저성과자 해고제’가 추진되는 지금, 2000년대 초반 나의 흑역사가 다시 떠오른다.

당시 난 30대 실업자였다. 대낮의 햇살이 신세를 비웃는 듯해 외출조차 꺼리며 방에 처박혀 지냈다. 청년의 무모한 꿈과 오랜 연애도 끝장나고, 지푸라기라도 잡듯 롯데제과 영업사원 일을 시작했다. 돈을 벌면 늪에서 탈출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세상은 혹독했다. 아침 7시30분 출근, 퇴근은 저녁 9시가 넘기 일쑤. 한 달에 두 번 일요일밖에 쉴 수 없었다. 30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던 달도 있다. 식사도 걸러 가며 뛰었고, 피곤 때문에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일했지만 회사가 정한 판매목표는 동료 그 누구도 정상적인 방법으론 채울 수 없었다. 고객들과는 무리한 요구와 속임수를 주고받는 추잡한 관계가 됐다. 저녁엔 관리자로부터 성과미달 질책을 듣고 벌을 받듯 마냥 대기한 후에야 도망치듯 퇴근할 수 있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목표달성을 위한 개인비용 지출을 알게 모르게 요구했다. 월급 250만원을 받으려면 그 중 50만~100만원 정도를 덤핑비용(공식적인 할인가격 이하로 대량 판매하고, 차액은 직원 사비로 충당)으로 토해내야 겨우 성과에 가닿았다. 그렇게 버텨서라도 우리는 다시 실업자가 되긴 싫었다. 그러나 덤핑판매 차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수천만원에서 1억원이 넘게 회사에 토해내고 해고되는 동료들도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의 핵심은 ‘성과 강요’다. 회사는 판매시장 여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해 매출 목표를 늘려 잡고 직원들에게 요구했다. 직원들은 조금이라도 적은 목표치를 받으려고 서로 경쟁했고 처세술이 난무했다.


취업규칙·저성과자 해고 관련 정부 입장 _경향DB


이 지옥은 정부가 추진하는 ‘저성과자 해고제’가 실현되면 모든 노동자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 또한 임금피크제를 계기로 ‘성과임금제’까지 전면화되면 지옥은 한 발 더 다가온다. 물론 회사마다 조금씩 정도가 다르고 튼튼한 노조로 단결한 노동자들은 조금이나마 보호받을 가능성도 있다지만, 결국 노동은 자본이 손에 쥔 먹잇감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 말은 무능력자들의 투덜거림일까? 성과급은 진정 합리적인 것일까? 그렇다면 당신은 능력 있는 이기주의자거나 한국 기업문화의 혹독함을 모르는 자신만만한 착취 대기자일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에 대한 공격을 근간으로 한다. 그 신자유주의를 박근혜 정부는 극단으로 몰아간다. 지금까진 소위 ‘효율성’이라는 다소 중립적인 것 같은 가치를 앞세워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늘렸다면, 이제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성과’라는 더 노골적인 탐욕의 가치를 앞세운다. 정부와 자본이 내세우는 ‘성과’란 본질이 생략된 언어다. 성과는 인간의 존엄성을 향하지 않는다. ‘자본을 위한 돈벌이’가 성과이며 ‘회사에 대한 노예적 충성도’가 곧 성과다. 이를 듣기 좋게 축약한 말이 ‘성과’다. 그 성과의 책정도 결과 평가도 모두 회사 맘대로 한다. ‘저성과자 해고제’는 해고다툼 방지를 위한 객관적 기준을 세울 뿐이라고 정부는 주장한다.

하지만 수많은 기업들은 다 저마다 여건이 다르다. 애초 만사형통의 기준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숨겨진 의도가 있고, 그건 해고가 더 쉬운 풍토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교활한 창조성으로 제도를 악용할 것이다. 최소한 노조가 튼튼하거나 경영참여 권리가 보장될 때에만 악용의 소지를 조금이나마 줄인다. 그러나 이 조건이 전무한 한국 노사관계에서 ‘저성과자 해고제’와 ‘성과급제 전면화’는 뭐라 핑계 대든 헬조선 또 하나의 헬게이트일 뿐이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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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홈페이지에 독특하고 재미나는 사이트가 생겼다. 향이집(가족), ‘향이네’다. ‘향이네’의 ‘네’는 ‘집, 가족’을 의미한다. 이 접미사 ‘네’는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우선 ‘네’는 명사 뒤에 붙어 ‘같은 처지의 사람’이란 뜻을 더하는 말이다. ‘우리네, 남정네, 아낙네, 동갑네’가 그런 사례이다. 또한 ‘향이네’에서 보듯 ‘네’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 사람이 속한 무리’나 ‘어떤 집안 또는 가족’임을 나타낸다. ‘철수네, 김 서방네, 아저씨네’가 그렇게 쓰인 것이다.





‘너네 둘이 어디 가니?’처럼 ‘너’에 ‘네’가 붙은 ‘너네’도 입말로 널리 쓰인다. 그런데 어떤 이는 ‘네’는 사람을 직접 가리키는 인칭대명사에 붙여 복수를 만드는 말이 아닐뿐더러 의미도 모호한 면이 있어 너네는 바른 표현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너네’는 ‘너희’로 써야 한단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이네, 그네, 저네’가 대명사 ‘이, 그, 저’에 ‘네’가 붙어 굳어진 낱말로 사전에 있으므로 ‘너네’도 쓸 수 있다고 밝혔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과 ‘연세현대 한국어사전’에도 ‘너네’가 ‘우리네’와 함께 올라 있다. 우리말법에 어긋나는 말이 아니라는 소리다.

곧 추석, 고향으로 가는 길이 멀어도 마음만은 편안한 게 우리네 명절의 풍경이다. 고향 가는 길에 읽을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한 ‘향이네’도 한번 들러보시길….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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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온실가스 감축목표, 한국이 제일 가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연합뉴스가 미국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 내용은 “감축 방식이 다른 주요국들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동일한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한국의 감축목표가 28%로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는 기업들에 에너지 시장 정보를 제공하는 분석기관이다.

정부가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보다 37% 줄이겠다는 감축목표를 유엔에 제출한 것은 지난 6월 말이다. 당시 국제사회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국의 경제수준과 책임에 비추어 ‘매우 부적절’한 감축목표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감축목표가 제일 가혹하다는 이번 기사의 근거는 무엇일까. 2030년까지 한국의 감축비율은 28%인데, 유럽연합은 5% 증가한다는 분석은 타당한 것일까.

의문은 기사 원문의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야 풀렸다. 숫자의 마법, 말하자면 기사 작성 의도와 맞아떨어지는 숫자만 취하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수법이 동원된 것이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의 분석 결과는 세 가지였다. 연합뉴스는 그중 ‘한국이 제일 가혹’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결과만 뽑아내 보도했다. 이때 선택된 마법 도구가 바로 ‘배출전망치’라는 비교기준이다.

배출전망치는 미래에 예상되는 배출량을 뜻한다.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기 때문에 여러 국가를 비교하는 기준으로는 적절치 않다. 인구, 경제성장률, 산업구조 전망 외에 과거 배출량 실적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1990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132.8% 늘어나 증가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래서 배출전망치도 높게 잡힐 수밖에 없다. 배출전망치가 높을수록 감축목표가 ‘가혹’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온실가스를 제대로 감축해온 국가들의 경우는 그 반대다. 우리나라가 두 배 이상 느는 동안 유럽연합은 배출량을 19.2%나 줄였다. 이렇게 과거 감축 실적이 좋으면 배출전망치가 매우 낮게 설정된다. 1990년 대비 40% 줄이겠다는 목표를 두고 배출량이 기준보다 5% 증가한다는 황당한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꼴찌에서 몇 순위 올라가는 것과 1등을 유지하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 “한국이 가장 가혹하다”는 주장은 전자가 후자보다 더 어렵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정부 온실가스 감축 목표_경향DB



리나라 감축목표는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보다 37% 줄이겠다는 것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내 감축은 25.7%이고 산업계의 감축률은 12%로 묶여 있다. 그런데도 상당수 언론들은 여전히 산업계가 줄여야 하는 양이 마치 37%인 것처럼 보도한다.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숫자가 부리는 마법의 종착지는 분명하다. 한국이 자국 기업에 부당하게도 가장 강력한 족쇄를 채웠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미국 과학사학자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M 콘웨이 교수가 쓴 <의심을 파는 상인들>은 유명 과학자들이 기업의 용병이 된 사례를 파헤쳤다. 국내에서는 <의혹을 팝니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 삶과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 우리를 혼란시키려는 목적으로 의혹을 팔아먹는 게 누구인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합리적 의심’과 과학의 탈을 쓴 선동을 경계해야 한다는 경고다.

과학적 증거에 의해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되면 그것을 저지하려는 자본의 힘이 전방위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하지만 자본은 직접 나서지 않는다. 앞장서는 것은 대리인이다. 파리 기후변화총회에서 의심을 파는 상인들이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자들이 그 대열에 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이 누구든 그들이 퍼뜨리는 ‘숫자의 마술’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시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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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깡촌 위를 날아가던 비행기 조종사가 빈 콜라병을 한 개 던지면서 시작되는 소동극 <부시맨>.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을 신에게 다시 돌려드리기로 작정한 추장 아저씨는 길고 험난한 여행을 시작하지. 부시맨이 슈퍼맨보다 인기가 높던 시절, 우리네 시골에도 부시맨들이 살고 있었다네. 고물상 아저씨는 아이들이 콜라병을 주워 가져오면 호박엿 쌀엿으로 바꿔주고는 그랬지. 그날부터 동네 아이들은 대부분 부시맨이 되었고, 콜라병이라면 눈에 쌍라이트를 밝혔지. 아버지 경운기 부속품을 내다 파는 놈, 저수지 공사장 철근 토막을 훔쳐다가 턱관절에 쥐가 날 만큼 많은 엿을 바꿔 먹은 녀석도 있었어.

마을회관 앞의 쓰레기 분리수거함. 대도시 수거함과는 달리 항상 홀쭉하니 배고픈 저 그물망. 가난한 촌로들이 주로 계시는 윗동네는 들어오는 명절선물이 변변찮으니 나가는 쓰레기도 눈곱만큼 작아. 명절에 아무리 배불리 먹는대도 소화제까지 필요 없고 콜라 사이다 한잔이면 배꼽 아래까지 개운. 명절 잔치 뒤끝으로 콜라병이나 몇 개 굴러다닐 뿐인 골목길.




유별난 애국자들은 콜라와 아메리카노 커피조차 멀리한다지. 국산차도 외국에 나가면 그쪽에선 수입차요, 외제차일 터. 실력과 서비스로 승부해야지 세계의 노동자들은 모두 한 형제. 예수님도 부처님도 외국제 ‘수입산’이니 그럼 믿지를 말아야지.

속이 울렁거리고 더부룩할 때 콜라 한잔씩 찾는 저 이들은 국경 초월 럼콕 마니아. 럼주 대신 그럼을 넣어 콜라와 믹서. “그럼 입이 느끼하고 배 속이 부풀헌디 콜라나 한잔?” 검은 물을 꿀컥꿀컥 들이마신 뒤 꺼윽~ 트림까지 발사. 불꽃놀이처럼 쏘아올린 콜라 트림이 공중에 확하고 퍼지면 보름달도 어이없어 싱겁게 웃으려나. 꽃집도 아닌데 이름부터가 화원인 해남군 화원면에 사는 동무가 있다. 이번주 집에 있느냐고 물어 보길래 한동안 잠행 중이라 했는데 생선을 이미 보냈다고. 꽃이나 보내지 웬 물고기. 고양이가 대신 잘 먹겠네. 콜라까지 사줘야겠어. 집 앞에 뒹구는 콜라병은 내가 아니라 고양이가 마신 것으로 아시길.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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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것을 ‘팩션’이라고 한다. 팩션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다. 2003년 미국작가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다빈치코드>가 영화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두면서 팩션영화가 문화현상의 하나로 자리 잡은 바 있다. 국내에서도 2003년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재연한 <살인의 추억>으로 팩션영화가 본격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영화화한 <그놈 목소리>가, 2011년에는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모티브로 한 <아이들>이 개봉됐다.

이들 영화는 유족들의 절절한 아픔을 담아 전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으나 진범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놈 목소리>는 실제 유괴범의 목소리를 영화 속에 공개까지 했지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다. 그놈을 잡기 전에는’이라는 대사가 전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을 뿐이다. 2009년 개봉한 <이태원 살인사건>은 2명 중 1명은 범인인데 누구에게도 살인의 책임을 묻지 못하는 사법체계의 허술함을 고발하고 있다.


지난 1997년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학생 살인 사건의 용의자 아더 패터슨이 23일 새벽 사건발생 16년 만에 인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_경향DB


이 영화는 1997년 4월8일 오후 10시 이태원동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발생한 대학생 조중필씨 피살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용의자 피어슨(장근석)·알렉스(신승환)는 실제 용의자인 미 군무원 아들 아서 패터슨과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를 모델로 했다. 잭나이프로 목과 가슴 등 9군데를 난자한 잔인한 살해방법, 살인 직후 미 육군범죄수사대와 검찰 수사를 거치면서 살인 용의자가 패터슨에서 에드워드 리로 뒤바뀐 과정, 살인죄로 기소된 에드워드 리가 무죄로 풀려나고 얼마 뒤 패터슨이 출국금지가 해제된 틈을 타 미국으로 도주한 것 등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영화에서 검찰은 초기 수사부터 완벽하게 살인범에게 농락당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개봉 후 6년이 지난 지금 영화의 소재가 된 실화는 극적인 반전을 맞이하고 있다. 뒤늦게 진범으로 지목된 패터슨이 국내로 송환된 것이다. 어제 압송된 패터슨은 공항에서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가 왜 여기 있는지 그 이유를 밝혀야 할 책임은 이제 영화가 아니라 검찰에 있다. 과연 검찰이 답해줄까.

<강진구|논설위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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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무고한 여성을 납치해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신마저 훼손한 김일곤. 그의 범행과 살아온 이력은 2010년 8월에 발생한 속칭 ‘양천구 묻지마 살인범’ 윤모씨와 많이 닮았다. 윤씨는 단지 집 밖으로 흘러나온 웃음소리가 ‘행복해 보인다’는 이유로 주말 오후 가정집에 침입해 마구 흉기를 휘둘러 두 아이 앞에서 아빠를 살해하고 엄마를 중태에 빠트렸다.

김일곤과 윤씨는 어린 시절 학대에 시달리다 중학교 때 가출해 공장이나 식당 종업원 등을 전전하다 폭행과 절도, 강도 등 범행을 저지르며 살아온 이력이 똑같다. 게다가 김일곤은 18년, 윤씨는 14년간 교도소 복역 중에 가족을 포함해 단 한 명도, 단 한 차례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버려지고 차단된 상태였던 것이다. 교도소 재소 기간에도 이들의 범죄 성향, 분노 등 감정조절 장애, 미흡한 사회성, 부족한 학습능력과 사회 적응능력 등이 교정, 교화, 개선되지 않았다. 교도소 과밀, 교정 예산과 인력 부족, 전문적인 교화 프로그램 미비 등의 고질적인 문제가 너무 심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형기 만료로 출소하기 전에 이들에게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이를 바탕으로 한 보호관찰 및 경찰과의 연계 등 ‘재범 방지’ 장치가 가동되지 않았다.

교도소 안에서의 오랜 자유박탈 경험은 이들에게 ‘다시는 처벌받고 싶지 않다’는 강한 욕구를 만들어 재범 방지를 위한 제동장치 역할을 했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반겨주는 이 하나 없고, 너무 빨리 많은 것이 변해버린 세상은 낯설기만 하고,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웃에게서 의심과 경계, 혐오의 눈빛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지 않아 누군가와 감정적 충돌이 일어나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시 이들의 공격성과 폭력 습관이 터져 나온 것이다.

30대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자동차 트렁크에 넣고 불붙인 뒤 달아난 김일곤씨(가운데)가 17일 형사들에게 체포돼 서울 성동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_경향DB



우리는 이미 ‘문제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수십년간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한 방향으로 꾸준히 노력해왔다면, 무고한 피해자들이 아무 이유 없이 이들 ‘반사회적 분노 폭발범’들에게 생명을 빼앗기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국가·사회적 노력만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범죄의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속죄의 의미로 우리 정부와 사회는 보상과 치료, 관심과 배려를 한없이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제2, 제3의 유사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김일곤 같은 ‘반사회적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허물고 개선해야 한다. 아동 학대가 발생하는 위기 가정에 대한 적극적인 사법 및 복지적 개입, 일탈 청소년의 학교 내 수용 및 교화 선도, 범죄 청소년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교정과 환경개선책 마련, 교정 여건과 시스템 개혁, 출소 전 위험성 평가와 사후 관리책 마련, 전과자에 대한 사회 내 처우 및 보호와 이웃 공동체와의 공생 방안 도출 등이 그것이다. 그 전체적인 과정과 시스템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김일곤 사건 이후 언론 등에서 제기되는 대책은 ‘우범자 감시 관찰 방안’ 강구다. 경찰이 관내 거주 우범자의 행동과 상태를 감시하고 관찰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장치를 갖추자는 주장이다.

가뜩이나 인력 부족에 업무 과잉에 시달리는 일선 경찰이 법적 근거만 마련된다고 해서, 실효성 있는 ‘우범자 관리’를 할 수 있을까? 강력사건 발생 시 우범자 관리 담당 경찰관에 대한 책임추궁과 징계 등 ‘희생양 만들기’라는 부작용이 우려될 뿐이다.

교도소 출소 전 평가 등 누가 위험한 ‘우범자’인지를 가리는 전문적이고 신뢰성 있는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자칫 ‘전과자 차별’로 인해 이들의 반사회적 분노를 키우기만 할 우려마저 상존한다. 부디 이번만은, 눈에 띄는 반짝 ‘보여주기’ 식 대책보다 종합적이고 구체적이며 실효성 있는 ‘진짜 대책’이 마련되고 시행되길 바란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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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이 직원들에게 박근혜 대통령 제안으로 만든 ‘청년희망펀드’의 가입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KEB하나은행은 엊그제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청년희망펀드 가입을 지시했다. 은행 측이 각 영업점에 1인 1계좌 가입을 원칙으로 하는 공문을 내려보냈으며, 본부별로 실적 경쟁이 붙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른 은행도 상황은 비슷하다고 한다. KEB하나 등 5개 은행은 이번주부터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기부금 형태로 은행에 돈을 맡기면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익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목표액이나 용처는 정해지지 않았다.

청년 일자리에 대한 대통령의 걱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부금으로 일자리를 만들 수는 없다. 황교안 총리 말대로 사회지도층이 동참하자는 순수한 생각으로 추진하는 사안이라면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각계 지도층을 압박하고, 그 지도층은 다시 직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 자체가 이미 청년 일자리 문제를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KEB하나은행도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당부한 것이라고 하지만 위에서 내려온 공문을 현장에서 가볍게 여길 수 없을 것이므로 설득력이 없다. 은행 청원경찰과 파트타임 직원들도 마지못해 펀드에 가입했다는 대목에는 말문이 막힌다. 제대로 된 고용이 필요한 약자마저 펀드에 가입해야 한다면 누가 누굴 돕겠다는 뜻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희망펀드’가 아니라 ‘고문펀드’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의원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_경향DB


박 대통령의 장병 휴가 제공과 관련해 청와대가 기업에 장병을 위한 할인 프로그램 제공을 요청했다는 보도 역시 희망펀드의 재판이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롯데·CJ 등은 최근 청와대의 뜻을 받든 전경련으로부터 휴가 장병에 대해 놀이공원이나 영화관 입장료를 할인해 주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 대기업은 휴가 장병에게 영화 할인, 팝콘 무료 제공 등의 계획을 전달했다. 청와대의 이런 움직임은 기업 이익을 훼손하는 행위이자, 기업 경영주에게 배임을 부추기는 배임사주 행위가 될 수 있다. 이는 현 정부가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 자율과도 배치된다. 협력 요청을 앞세운 자율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 갑질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대통령 사업’은 알아서 기거나, 손목이 비틀리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기업들의 자조를 청와대는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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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당내 중진과 지도급 인사들에게 ‘선당후사(先黨後私)’의 결단을 촉구했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에겐 내년 4월 총선에서 부산에 동반 출마할 것을 제안했다. 정세균·이해찬·문희상·김한길 전 대표에게는 열세지역 출마와 용퇴를 포함해 당의 전략적 결정에 따라달라고 요구했다. 혁신위는 또 부패 연루자의 경우 1심에서라도 유죄가 나면 공천에서 배제하고, 기소만 돼도 정밀심사 대상에 포함토록 했다. 혁신위는 어제 발표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사실상 종료했다. 혁신위 활동은 새정치연합의 체질 개선을 위한 기본 틀을 만든 것으로 봐야 한다. 보다 중요한 과제는 혁신의 구체적 내용을 채우고 차근차근 실천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혁신위의 인적쇄신안에 대해선 다양한 반응이 나올 것이다. 부산 출마 요구에 문 대표는 “심사숙고하겠다”고 한 반면, 안 전 대표는 “지역주민과의 약속이 중요하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비주류 측에선 ‘문재인 체제’ 강화를 위한 인위적 물갈이 시도라며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출마하든 용퇴하든, 기존 지역구를 고수하든 ‘험지’에 도전하든 개별 정치인들이 선택할 일이다. 다만 혁신위 제안에 담긴 ‘기득권 포기’의 메시지는 존중해야 마땅하다. 새누리당에서 총선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는 동안 새정치연합에선 어떠한 조짐도 없었다. 모두가 ‘4년짜리 비정규직’을 더 하겠다는 욕심만 적나라하게 노출했을 뿐이다. 자기희생은 없이 남 탓만 하고 있으니 감동이 생겨날 리 없다. 지지층마저 돌아서는 게 당연하다.



봉합됐던 내분 사태가 인적쇄신 문제를 둘러싸고 재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는 모양이다. 만약 또다시 볼썽사나운 내홍을 빚게 된다면 새정치연합은 ‘구제불능 정당’이라는 낙인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주류는 공천 잣대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특히 문 대표가 통 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비주류 또한 ‘친노 패권주의’ 운운하며 무조건 반발할 일이 아니다. 지금 이대로의 새정치연합으로는 총선에서 어떠한 전망도 세울 수 없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더 많이 희생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정치적 성공으로 보답받는다. 새정치연합은 지금 혁신하되 통합하고, 쇄신하되 단결해야 한다. 그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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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지옥 같은 한국 사회를 가리켜 청년들이 냉소하며 부르는 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 간신히 취업해도 노예처럼 착취당한다. 금수저 물고 태어난 상류층 자제들이 비행기로 유유히 탈조선에 성공할 동안, 흙수저 물고 태어난 서민층 자식들은 한강으로 탈조선한다. 중산층이 무너져 경제적 불평등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망한민국’의 상황을 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진화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행여 오해는 하지 마시라. 진화심리학은 노력해도 안된다며 좌절하는 젊은이들에게 “얘야, 누굴 탓하겠니? 다 네가 불량한 유전자를 타고나서 그렇지”라며 결정타를 날리는 학문이 절대로, 절대로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외부의 특정한 환경 조건이 있을 때만 비로소 반응하도록 설계된 수많은 심리적 도구들의 묶음이다. 따라서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외부 조건에 대해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게끔 진화했을지도 추론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불평등이 심해지면 특정한 방향으로 - 먼 과거의 환경에서 번식에 유리했을 방향으로 - 행동하는 본성을 지닌다.

이제 경제적 불평등에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대처하도록 진화했는지 보자.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자식 수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다. 자식을 몇이나 길러내면 성공한 것일까? 셋을 키웠다면 성공한 걸까? 이는 다른 이웃들이 길러낸 자식 수에 달렸다. 남들이 하나씩만 길렀다면 셋은 성공이다. 남들이 다섯씩이나 길렀다면 셋은 실패다. 한마디로, 진화적 성공은 상대적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진화의 역사에서 자식 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었던 자원이나 기회를 두고 경쟁하게끔 설계되었다.

진화심리학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 부부는 명저 <살인>에서 집단 내에 상이한 경쟁 전략이 있다고 가정했다. 각 개체는 둘씩 짝을 지어 싸운다. 고위험 전략은 상대에게 이길 가능성이 크지만, 지면 크게 다쳐 죽을 수도 있다. 저위험 전략은 이길 가능성이 작지만, 지더라도 죽지는 않는다. 어느 전략이 득세할지는 승자 혹은 패자에게 주어지는 상금(자식 수)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에 달렸다. 경쟁의 성패에 따라 얻는 상금이 엇비슷하다면, 안전한 저위험 전략이 득세한다. 반대로 상금의 격차가 엄청나다면, 고위험 전략이 득세한다. 만약 패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전략인데도 말이다. 어쨌든 거액의 판돈이 걸렸다면 “못 먹어도 고!”를 일단 외치고 봐야 하는 셈이다.



경쟁의 성패에 따른 자식 수의 격차가 클수록 위험한 경쟁 전략이 선택된다는 통찰은 매우 중요하다. 번식에 완전히 실패할 확률이 높은 흙수저들이 어떻게든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나고자 위험한 행동에 뛰어들고, 때로는 죽음조차 무릅쓸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사회 내의 경제적 불평등은 살인 등의 폭력 범죄, 도난 등의 비폭력 범죄, 약물 남용, 성적 문란, 신체 및 정신 건강, 비만, 생존율과 밀접하게 연관됨이 여러 연구를 통해서 확인되었다.

예를 들어 데일리와 윌슨은 캐나다의 10개 주와 미국의 50개 주를 대상으로 각 지역 내의 소득 불균형 정도와 살인 사건 발생률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경제적 불평등이 심한 주일수록 살인 사건이 더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나라의 살인율이 왜 이토록 차이가 나는지 조사한 다른 연구들도 국민 총생산이나 실업률, 근대화의 정도 등등 다른 변수들보다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변수가 살인율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결론 내렸다. 요컨대 나라가 얼마나 부유한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국민들 사이에 부가 얼마나 잘 분배되어 있는가가 그 나라의 범죄 발생률, 기대수명, 신체 및 정신 건강, 행복 등에 큰 영향을 끼친다.

헬조선에서 불황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은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집 마련, 희망 등등 진화적 과거에 번식으로 연결되었을 자원과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질병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짧은 생애를 마감할 일만 남는다. 자연선택은 이렇게 앞날이 암울한 젊은이들이 범죄, 사고, 도박, 약물 남용 등 사회의 안정성을 뒤흔드는 위험한 행동을 감수하게끔 설계했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으니, 혹시나 성공하면 인생 역전을 꿈꿀 수 있는 일에 뛰어드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 복지를 확충하는 국가 정책은, 보수주의자들이 종종 생각하는 바와 달리, 게으른 사람들에게 혈세를 낭비하는 헛짓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국민 행복의 새 시대를 여는 주춧돌이다.

노파심에서 덧붙이면, 진화심리학은 보수 또는 진보 어느 한쪽을 편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진화심리학은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이다. 범죄가 만연하고 질병과 스트레스가 넘치는 현실을 계속 유지할지 아니면 바꿀지는 결국엔 정치적인 결정이다. 만일 범죄를 줄이고 기대수명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모두가 합의했다면, 진화심리학은 우선 무엇보다도 계층 간의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는 데 노력을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전중환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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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가가 된 것은 진로에는 없던 전혀 뜻밖의 사건이었다. 불문학도였던 나는 책상에서 외국어와 씨름하며 공책이나 종이쪽지에 무엇인가를 끄적거리곤 했다.

어느 날, 어떤 충동에 이끌려 시(詩) 같은 것을 썼다. 마침 대학문학상이 공모 중이어서 투고했다. 그리고 잊었다. 그런데 연락이 왔다. 그것을 계기로 문예지의 청탁을 받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고백하자면, 그날까지 나는 세상에 문예지라는 것이 있는 줄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도 몰랐다. 글을 써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일찌감치 점지되어 있었던 것인지, 대학문학상이 매개가 되어 나는 문예지라는 미지의 영토에 발을 들였다. 거기에서 한국문학이라는 살아 꿈틀거리는 세상을 만났고, 압도당했다. 그 한가운데에 김윤식이라는 거목이 자리잡고 있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문예지와 인문학 출판사의 에디터로 10년간 재직하면서 수많은 책들을 편집하고 기획했다.

그중 단일 저자로 가장 많은 책을 편집한 대상이 김윤식 선생의 저작들이었다. <임화연구>(1989)에서 시작해 <개정증보 이광수와 그의 시대>(1999)까지 10년간이었다.

그사이 나는 선생의 문학기행서 <환각을 찾아서>(세계사)와 <천지 가는 길>(솔)과 선생의 회갑을 기념해 시, 소설, 작품, 작가, 비평, 예술기행의 여섯 항목으로 정리한 <김윤식 선집>(전 6권, 솔) 출간 작업에 참여했다.


김윤식 서울대 국문학 교수_경향DB



이 시기 나는 한국문학, 특히 소설을 향한 선생의 열정과 고민, 고통과 희열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면서, 내가 ‘메뚜기나 여치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다른 무엇보다 ‘문학을 업(業)으로 살아가게 된 것’을 감사했다. 그리고 단 한번도 소설가를 꿈꾸지 않았던 내가 소설을 알아보고, 소설 쓰기의 욕망에 사로잡혔던 근거를 찾을 때면 선생의 월평을 처음 읽어가던 그 시절로 돌아가곤 했다.

문학을 대하는 선생의 자세와 삶을 통해 문학 안에서 곧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성실함과 지속성이야말로 시간에 맞서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갔다.

지금 남산 자락에 위치한 한국현대문학관에 가면 세계문학 사상 초유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읽다 그리고 쓰다-김윤식 저서 특별전’(9·11~12·11). 60년을 하루같이, 같은 시간, 책상에 앉아 혼신의 힘으로 읽고 쓴 글쓰기의 산 역사가 거기 펼쳐지고 있다. 소책자 형식으로 제작된 도록 ‘읽다 그리고 쓰다’를 펼치면 ‘필경(筆耕) 60년, 200여종의 책, 200자 원고지 10만장’에서 울려나오는 혼(魂)의 울림이 아로새겨져 있다. 한 자 한 자 읽다가 아득하여 목이 멨다. 어느 날 홀연히 남산에 가야겠다.

“나의 길동무여,/ 소금기둥이 되기 전에 떠나라./ 언젠가 군이 그릴 그림들을/ 내가 보지 못할지라도 섭섭해 마라./ 군의 그림은 군만의 것./ 그게 그림의 존재 방식인 것을./ 자, 이제 지체 없이 떠나라./ 나의 손오공이여, 문수보살이여./ 혼자서 가라./ 더 멀리 더 넓게.”(김윤식, ‘읽다 그리고 쓰다’, 강, 2015·9)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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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아주 특별한 정상회의가 열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원자바오 중국 총리 등 호랑이가 서식하는 13개 나라 정상이 모여 야생 호랑이 보호 방안을 논의한 것이다. 단일 동물의 운명을 다룬 역사상 첫 정상회의였다. ‘호랑이 정상회의’는 야생 호랑이의 자연 서식지 보호를 위한 지구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호랑이 보존 문제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지원을 높이기 위해 7월29일을 ‘국제 호랑이의 날’로 지정했다. 같은 취지로 2012년 태국 코끼리복원재단을 비롯한 세계 환경단체가 8월12일을 ‘세계 코끼리의 날’로 지정한 바 있다.

육상 육식·초식동물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동물이 종을 보존할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은 물론 인간 탓이다. 밀렵과 서식지 파괴가 가장 큰 원인이다. 코끼리는 상아 때문에 도살됐고, 호랑이는 과시 수단이나 가죽을 얻기 위해 사냥꾼의 표적이 됐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는 유해동물이라는 명분으로 대거 학살됐다. 1990년대 초반에는 호랑이 뼈가 신경통에 특효라는 등의 잘못된 민간요법으로 인해 대량 밀거래되기도 했다.

멸종위기종인 코뿔소인 수컷 만델라(왼쪽)와 암컷 초미가 서울대공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_경향DB


코끼리 다음의 대형 육상동물인 코뿔소도 같은 이유로 가장 위험에 처한 종으로 꼽힌다. 아프리카 서부산 검은코뿔소는 2006년 멸종했고, 북부산 흰코뿔소는 전 세계에 4마리만 남아 있다. 뿔이 가장 큰 원인이다. 코뿔소의 뿔은 1977년 국제적으로 거래가 전면 금지됐다. 하지만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질병에 효험이 있다고 믿는 데다 예멘 등 아랍국가에서는 신분의 상징을 위한 단도 손잡이 재료로 수요가 높아 밀렵과 밀거래가 계속됐다. 1980년대 중반 도매가격이 1㎏에 1만달러를 넘어 당시 금값보다 비쌌으니 그럴 만도 했다. 코뿔소의 뿔은 다른 동물의 뿔과 달리 뼈가 아니라 사람으로 치면 손톱과 같은 성분이다. 효능도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이 지정한 ‘세계 코뿔소의 날’인 어제 서울동물원이 흰코뿔소 방사장 앞에서 코뿔소를 비롯한 멸종위기 동물 보호를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7월29일, 8월12일과 함께 9월22일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날이 됐으면 한다.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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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해안으로 떠밀려온 소년의 주검은 유럽,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소년이라 부르기에는 아직 너무도 가냘픈, 생명이 떠났다고 믿기에는 너무도 평화롭게 단잠을 자는 듯한 그 육신이 놓인 곳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해변이었다. 전쟁과 기아, 질병과 살육의 처참함을 울부짖는 몇 장의 사진들 - 퓰리처상에 빛나는 - 이 예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세 살 소년의 죽음은 그 고요함만큼이나 느닷없이 일상에 들어와 여지없이 마음을 무너뜨린다.

이렇게, 시작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불과 2주 전 쓰기 시작한 위의 단락을 오늘 다시 이어가기에는, 슬픔은 이미 퇴색되고 문장은 호들갑스럽게 들릴 따름이다. 아마도 우리가 그 사이 충분히 그 사진을 공유하고 소비하고 안타까워함으로써 슬픔을 ‘지불’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 죽음이 우리 일상과 마음을 쉽사리 뒤흔들었던 만큼이나, 새로운 일상에 밀려나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며, 몇 푼 안되는 돈을 기부함으로써 나도 마음이 약간은 편해졌다. 참고로, 구글은 이틀 만에 난민을 위해 140억여원의 기금을 모았다고 한다.

사실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시리아 난민 소년의 죽음은 지구 저편의 이야기이며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서방과 이슬람 세계의 오랜 전쟁에서 우리는 항상 조연이었고, 지리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시리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행렬은 지구 반대편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수백명의 시리아인들이 한국으로 난민 신청을 했고, 우리가 1992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한 이래 1만2000여명의 난민 신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사실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을 우리가 슬퍼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우리와 관계가 없다는 잘못된 전제하에서였는지도 모른다.

아일란의 가족이 만약 한국으로 와서 난민 신청을 한 것이라면, 흘렀던 연민의 눈물을 뚝 거두어들일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가족은 세계적으로 난민 인정을 받기가 가장 어려운 한국 난민법에 준해 심사를 받게 될 것이며, 상당한 시간을 하수종말처리장과 헬기장 사이에 놓인 ‘혐오시설’인 영종도의 난민지원센터에서 보내야 할 것이다.

인천 영종도에 건립중인 난민지원센터 앞에 지역주민들이 내 건 건립 반대 플래카드_경향DB


그러나 아마도 더 큰 문제는 외국인, 특히 서구인이 아닌 외국 이주민에 대한 우리 시민사회의 여야, 보수·진보를 초월한 ‘쇄국적’ 태도일 것이다. 가장 보수적인 신문사나 가장 진보적인 포털에서 공히 이자스민 의원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은, 이주민들이 일자리를 뺏어가고 범죄를 저지르며 문화를 어지럽힌다는 주장들이며, 이 글 아래에도 똑같은 댓글들이 달릴 것이다. 나는 그분들에게 <국제시장>을 다시 보라는 권유를 드리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하고 싶다.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한 한국전쟁의 난민이었으며, 서독과 중동과 세계 각지에서 눈물과 땀을 뿌리며 가족을 부양하던 ‘외국인’ 노동자였다고.

그래서 나는 ‘이자스민법’으로 알려진 ‘이주아동 권리보장기본법안’이 입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 공약사항이며 불법체류 외국인 자녀들이 한시적으로나마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이 법안은, 좋은 법안이라기보다는 우리를 벌거벗은 야만에서 구해줄 최소한의 기본이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아기가 있고, 학교에 가지 못해서 친구를 만나는 것이 소원인 아이들이 있는 공동체에 사는 것이 정말 못 견디게 부끄럽다. 그러나, 19대 국회가 폐회하기 전에 이 법안이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투표권이 없는 이들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는 원내 정파는 없으며, 정부는 성가셔 하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바쁘기 때문이다. 이주민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은 차치하고 최소한의 부모로서의 도리도 못하게 막는 사회를 가지고 우리는 내년 총선을 치르게 될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호먼스는 아일란의 끈이 풀린 운동화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 또래 아이들의 운동화를 묶어준 적이 있는 모든 부모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 아이의 운동화를 잘 묶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인지를. 비틀거리는 아이들을 다잡으려고 부모들은 온몸에 힘을 주고 쭈그리고 앉아 그 조그마한 발목을 적당하게 묶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를 살짝 안으며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하나님이건 알라신이건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을 걸고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우리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해주소서. 아일란의 아버지도 그렇게 소박하게 기도했을 것이다. 그런 소박한 기원들이 이루어지는 추석이 되었으면 한다.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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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16일, 나는 전날과 다름없이 제 시간에 출근하여 국기 게양대 앞에 섰다. 그런데 게양대 위로 올라가는 깃발은 우리 히노마루가 아니었다. 낯선 깃발이 올라가는 동안 조선인 동료들은 ‘반딧불이’(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을 번안한 일본 동요) 곡조에 맞춰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불렀다. 나도 부동자세로 서서 깃발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비로소, 그동안 조선인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일본인의 회고)

그는 매일 아침 국기를 바라보고 동방요배를 하며 조회 때마다 황국신민의 서사를 낭송하는 조선인들을 보면서, 그들도 ‘덴노 헤이카’의 적자(赤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남의 국기를 바라보며 경배하는 처지에 놓였을 때에야, 그동안 자기들이 조선인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1945년 농사는 풍작이었다. 게다가 공출은 중단되었고, 일본인 지주에게 소작료를 바칠 이유도 없었다. 일본 본토와 전선으로 반출되던 쌀도 고스란히 국내에 남았다. 그럼에도 쌀이 부족했다. 친일 지주들과 유력자들이 속죄하는 잔치를 베풀었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쌀이 떡과 술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사죄하는 자와 사죄받는 자 사이, 즉 친일파와 보통사람 사이의 경계선은 분명했다.

그런데 근래 일제강점기에 산출된 텍스트들을 통해 ‘보통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연구자들 중에는, 텍스트로 표현되지 않은 문제는 ‘없는 문제’인 양 취급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일제강점기에도 보통사람들은 신문물에 열광하고 경제적 성취에 몰두했을 뿐, 독립운동이니 민족문제니 하는 것에는 아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본다. 이런 결론은 다시 “민족주의라는 색안경을 쓰고 역사를 본 결과 일제강점기의 민족문제가 실제보다 과도하게 인식되었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99% 이상의 한국인들은 1%도 안되는 독립운동가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다른 생각, 다른 생활을 하며 ‘정상적’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한국인들은 ‘민족문제’에 대해 말하기 싫었거나 관심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던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총독정치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 바로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억압 상황이어서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며, 그 ‘말할 수 없음’에 익숙해진 것뿐이다. 압제 속에서 표현된 것이 속마음이 아니라 압제의 사슬에서 벗어났을 때 표현된 것이 속마음이다.


일제강점기 농촌 어린이의모습_연합뉴스


그럼에도 최근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이자 일본군의 정신적 동지”였다거나 “1%의 독립운동가 때문에 99%의 ‘보통사람’들이 죄인 취급 받는 건 불합리하다”는 등의 발언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그들은 압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통사람’으로 호명(呼名)하고서는, 그들을 ‘말할 수 없는 상태’에 묶어 두었던 식민통치의 하수인들과 한편으로 묶는다. 그러고 다시 독립운동가들을 ‘보통사람’의 평온한 삶을 교란하거나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죄인의 자리에 배치한다. 그들의 주장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격렬히 저항하지 않았다면 성폭행이 아니라 화간(和姦)’이라는 주장과 똑같다. 성폭행범이 피해자의 목에 칼을 들이댔든, 피해자가 14~15세의 소녀든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겐 강자가 약자의 입을 틀어막고 손발을 묶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며, 그 상황에 순응하는 게 ‘보통사람’의 도리이고, 그에 저항하는 것은 ‘죄’이다.

‘민족주의 과잉’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정작 ‘국가주의 과잉’의 노골적 표현인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적극 찬동하는 황당한 아이러니가 연출되는 것도 이 때문일 터이다. 그들의 속마음에 자리 잡은 건 이런 생각이 아닐까? 인간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상황이 ‘정상 상황’이 되고 권력의 요구에 무조건 순응하는 획일적 인간이 ‘보통사람’이 되는 쪽이 자기에게 유리하다는 것.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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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독립기구인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내년 총선에 적용할 국회의원 지역구를 244~249개 범위에서 정하겠다고 밝힌 후 새누리당이 연일 이를 비판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그제 획정위 안을 “비현실적인 안”이라고 하더니 어제는 김정훈 정책위의장이 “농촌 의석을 최대한 지켜주는 방향으로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례대표 축소를 거부하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향해 “농촌을 버리겠다는 것이냐”고 했다. 선거구획정위의 독립성을 무시하는 처사이자 농촌 지역구민을 핑계 삼아 선거제도 개혁을 좌절시키려는 부적절한 행위이다.

선거구 획정이 지금처럼 꼬이게 된 단초는 새누리당이 제공했다. 새누리당은 처음부터 “비례대표를 늘리고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다면 정원을 늘리자”는 야당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후 의석수 300석을 넘기지 말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워 새정치민주연합을 압박한 끝에 의원 정수를 현행대로 동결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농어촌 지역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하니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겉으로는 농촌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지역구 간 인구 편차를 2 대 1 이내로 재조정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새누리당이 불리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고 있음을 누구나 안다. 야당세가 강한 수도권에서는 지역구가 느는 반면 새누리당이 유리한 경북을 비롯한 농촌 지역의 의석수가 주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기득권 고수 목적으로 획정위를 압박하지 말아야 한다. 획정위를 사상 처음으로 독립기구로 만든 취지는 특정 정당의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선거구를 정하자는 것이다. 비례대표 축소는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농촌의 대표성을 소중히 여겨 비례대표를 줄이는 방향으로 하는 게 헌재 결정에 부합하는 태도”라고 했지만 그런 논리는 어디에서도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새누리당은 표의 등가성, 다양성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원칙과 논리를 가지고 선거구 획정에 임해야 한다. 대안을 찾기 어렵다면 그만큼 농촌 대표를 비례대표로 뽑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획정위는 여당의 주장에 동요하지 말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공정하게 선거구를 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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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