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 간다. 비 맞아 드러눕는 꽃잎들 뒤로 또 하루가 간다. 청노새 딸랑대며 지나가는 역마차 길. 헛된 맹세에 눈물짓던 연분홍 치마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별은 운명처럼 찾아왔다. 임에게 주려 품고간 편지는 차마 건네지 못하고 흐르는 강물에 띄워 보냈다. 그리고 만개한 꽃잎들이 그 위로 부서져 내렸다.

편지는 전령사다. 손편지를 쓰는 일은 일종의 의식과 같다. 마음을 잡고 꽃향기 나는 편지지 책상에 곱게 펼친 뒤 만년필을 꺼낸다. 편지는 잉크펜으로 써야 제 맛이다. 종이의 질은 향기만큼 좋지 않다. 펜촉 사이에 지편이라도 끼면 글자는 번지고 미친놈처럼 춤추기 일쑤다.

고심 끝에 완성된 편지는 대로변 소방차 색깔의 우체통으로 가져간다. 또 한번 고민의 시간이다. 저 놈이 날름 먹은 뒤에는 다시 꺼낼 수도 고칠 수도 없다. 몇 번을 고쳐 쓰고 봉인했지만 ‘혹시나’하며 스스로를 의심한다. 깔딱거리는 그 놈의 입으로 편지를 투척한 뒤엔 기다림의 시간이다. 조바심과 두근거림으로 몇날 며칠이 지나 기진할 때쯤 답신이 도착한다.

이젠 게으름으로 인해, 새로운 전달수단의 발달로 인해 손편지에서 멀어졌다. 디지털시대에 편지 쓰기는 고단한 일이 아니다. 펜, 잉크, 편지, 우표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 자판만 툭탁거리고 ‘센드’만 클릭하면 된다. ‘까똑 까똑’하며 편지 도착까지 알려준다. 편리함을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낭만을 잃었다.

편지는 상대방에 도달을 전제로 한다. 사랑, 그리움, 부탁, 약속, 변명, 한풀이 등 다양한 이유로 편지를 띄웠다.

역사서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사형이 확정된 친구에게 편지를 써 궁형을 당하면서까지 구차하게 살아남은 이유를 말했다. “보잘것없는 재주를 빌려 평소 생각해 둔 일을 서투른 문장에 의탁해 세상에 전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수치심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흘러 아랫도리가 축축해진다”며 인간적인 고뇌를 털어놓았다. 로마황제 카이사르는 로마를 정복하면서 심복 마티우스에게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촌철살인의 전갈을 띄웠다.

사랑의 편지도 있다. 노벨상을 부인과 함께 받은 피에르 퀴리는 결혼 전 마리 퀴리에게 “당신의 소식을 듣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라면서 “사실 믿어지지는 않지만, 서로 가까이에서 함께 꿈을 꾸며 살면 얼마나 기쁠까?”라고 구애의 편지를 썼다.

20세기 초 남극점 탐험에 나섰던 영국인 로버트 팰컨 스콧은 극지에서 죽음을 직감한 뒤 유언을 친구 J M 베리에게 편지로 남겼다. 자신이 죽은 뒤에라도 전달되기를 기원하면서. “죽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다. 다만 힘들고 어려운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영국으로 돌아가면 하겠다고 마음먹은 수많은 기쁨들을 단념해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 식료품도 연료도 전혀 없다. 친구여, 마지막 소원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부탁한다. 만약 국가에서 해 주지 않을 때는 자네가 아들에게 인생의 기회를 주게.”

세월호 침몰 1년을 맞는다. 변한 건 없다. 진상 규명도, 인양도 제자리걸음이다.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고 돈으로 덮으려고 한다.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들과 편지를 주고 받고 있는 덕성여고 학생들 /김정근기자 서울 덕성여고 3학년 오세진양이 지난 7일 학교에서 단원고 친구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다. (출처 : 경향DB)


지난주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너에게 보내는 편지’를 주제로 추모행사를 열었다. 하늘의 별이 됐거나 사라진 아들, 딸, 형, 동생에게 소식을 전했다. 아이를 보낸 엄마는 수없이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물방울 같은 이름 하나를 불렀다.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 막막한 벌판 끝에 열리는 밤/ 내가 일천 번도 더 입을 맞춘 별이 있음을/ 이 지상의 사람은 모르리라.”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이가림)

떠난 오빠에게 “다음 생에도 나의 오빠로 태어나 달라”며 “그땐 지금처럼 후회하지 않게 더, 더욱더 잘해줄게”라고 약속하고 “언니 없는 밤이 너무 외롭다.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며 그리움을 전하기도 했다. “호연아. 잘 지내고 있지? 널 너무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어 너무 힘드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언제나 내 동생이어서 고마웠고, 자랑스러웠어. 사랑한다”는 형의 편지도 있었다.

너무 큰 슬픔이 닥친 순간에는 울음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시간이 흐른 뒤 불현듯 슬픔은 뒤통수를 친다. 밥을 먹다가도, 세수를 하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 눈물을 찍어내 써내려간 편지다.

희생자가 304명인 만큼 304개의 사연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편지는 부쳐도 받을 사람이 없다. 이 혼절도 없는 봄날은 왜 헛소리 같은 이름을 자꾸 흘리게 하는지.


박종성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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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12일 이탈리아의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는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가 공연되고 있었다. 3막의 유명한 합창곡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가 막 끝나고 객석에서 앙코르 요청이 쇄도하자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는 갑자기 객석을 향해 돌아서서 예정에 없던 짧은 즉흥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이탈리아 만세(Viva Italia!)’를 외쳤던 관객들에게 합창곡 가사의 한 구절을 빗대어 담담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탈리아 만세라, 글쎄요. 이탈리아가 이런 식으로 간다면 이 노래의 제목은 ‘아름답지만 잃어버린 조국’이 될 겁니다.”

당시 부패와 성추문으로 얼룩진 베를루스코니 정권이 포퓰리즘적 세금 완화 정책으로 악화된 정부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문화예술 예산의 대폭 삭감 조치를 취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이어서 무티는 관객들을 향해 앙코르곡 합창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했고 기꺼이 기립하여 노래하는 청중들을 위해 오케스트라를 등지고 지휘하는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했다. 이 합창곡이 흔히 ‘히브리 노예의 합창’으로 불리는, 이탈리아인들의 비공식 애국가다.

실제로 1842년 초연 당시 작곡가 베르디는 오스트리아 지배하에 있던 이탈리아 민중의 처지를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에 투영했다. 하지만 베르디가 표현한 것은 맹목적 애국주의가 아니었다. 사회성 짙은 그의 오페라들은 사회적 개인이 가족애와 연인에 대한 사랑 등 실존적 갈등과 딜레마 속에서 지향하는 국가적(민족적) 명분을 표현하고 있으며 초기 걸작인 <나부코>도 예외가 아니다.

이탈리아의 통일 150주년을 기념한 이날 오페라 공연에서 지휘자 무티는 베르디식의 애국가가 어떻게 불려야 감동을 만들 수 있는지를 음악가의 직관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애국가, 즉 나라 사랑하는 노래는 국가를 향한 시민의 자발적 외침일 때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자칫 그 반대가 될 때는 추악한 노래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역사를 배운 이탈리아인들이라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윤치호가 쓴 애국가. 1907년 작사한 것으로 현재의 가사와는 군데 군데 다른 곳이 보인다. (출처 : 경향DB)


나라 사랑하는 노래는 인류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 부르게 된 노래다. 한반도 사람들도 20세기 들어서야 그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암울한 식민지 시기 독립군가가 그랬고 ‘올드랭사인’ 곡조에 맞추어 부르던 애국가가 그랬다. 해방 이후 같은 가사에 다른 곡조로 부르게 된 지금의 애국가 또한 그렇다. 작곡가의 친일 행각이 밝혀져 적잖은 오점이 찍혔지만 1960년 4·19혁명의 학생들도 1980년 오월 광주의 시민군들도 안익태 작곡의 이 애국가를 불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시민들은 애국가를 불렀다. 월드컵의 애국가는 격이 떨어진다고 얘기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애국가 역시 이상적 공동체를 꿈꾸며 불렀던 자발적 시민들의 노래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애국가가 위와는 정반대 의미로 불렸던 기억들이 있다. 영화 <국제시장>의 유명한 국기 하강식 장면은 그 집단적 기억을 풍자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주인공들이 부부싸움까지 멈춘 채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선 채로 찡그린 표정으로 듣던 영화 속 그 애국가는 국가와 사회의 존재 의의를 묻고 요청하는 시민의 노래가 아니었다. 정반대로 시민의 자격을 억압적으로 심사하는 권력자와 관료들의 노래였을 뿐이다.

최근 여당에서 추진하는 이른바 ‘애국3법’에는 애국가를 국가(國歌)로 정식 제정하고 공적 행사에서 애국가 제창을 의무화하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애국가와 애국심을 강조하는 저의를 의심하는 국민들의 시선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정치인들은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애국가는 국민이 국가를 호출하는 노래여야지 그 반대일 수는 없다. 애국가가 진정 ‘나라 사랑하는 노래’라면 국가 공동체의 위기 상황에서 더욱 애절하게 불릴 것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이것이 나라인가!’라는 탄식 속에서도 한국의 시민들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애국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국제시장> 국기 하강식 장면의 기억이 새겨진 애국가,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이 각인된 그 노래를 진도 앞바다를 향해서 차마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최유준 | 전남대 HK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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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애국가

피로해소제 ‘비타500’이 히트를 쳤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이완구 총리에게 제공한 3000만원을 비타500 상자에 담아갔을 가능성을 시사한 증언 덕분이다. 경향신문이 이를 보도한 15일 이 제품은 하루 종일 인터넷의 최고 인기검색어에 올랐다. 일부 지역에서 품절 현상이 벌어지고 해당 업체 주가는 대폭 상승했다고 한다.

인터넷 패러디도 등장했다. 한 누리꾼은 비타500 병에 5만원권 모델인 신사임당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게재했다. 그러면서 ‘한 박스의 활력, 총리도 반한 맛’이라고 적었다. 다른 누리꾼은 이 제품 병에 이 총리의 사진을 합성해 광고 모델처럼 표현했다. 병에는 ‘복용 후 내기 시 검찰과 상의하세요’라는 문구를 넣었다.

‘비타500’ 상자 옆에 5만원짜리 지폐 묶음 3000만원이 놓여 있다(왼쪽 사진). 돈을 상자에 넣으니 공간이 충분하다(오른쪽). (출처 : 경향DB)


비타500 상자에 현금이 얼마나 들어갈지 알아보는 실험도 여러 곳에서 시행됐다. 먼저 5만원권으로 3000만원을 넣으니 절반만 채워졌다. 5만원권 100장 묶음으로는 11개, 그러니까 5500만원이 들어가고도 공간이 남았다. 비타500 상자가 현금 전달 수단으로 회자된 것은 처음이다. 3000만원을 담기에 적당한 크기이고, 흔한 피로해소제여서 뇌물 의심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 법하다.

뇌물 운반 수단으로는 한때 007가방이 유행했다. 1만원권 새 돈으로 1억원까지 들어갔지만 뇌물 규모가 커지면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어 라면상자(1억원)와 배상자(3억원)가 차례로 등장했다. 이른바 ‘상자떼기’다. 가장 애용(?)된 것은 사과상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61억원을 사과상자 21개에 넣어 창고에 보관하다 검찰에 적발된 적이 있다. 돈 세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한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도 사과상자에 현찰 2억원을 넣어 은행장과 정치인에게 2상자씩 제공했다. 그러나 뇌물의 ‘최고수’는 한나라당이다. 2002년 대선 때 엽기적이고 기상천외한 ‘차떼기’ 방식을 선보였다. 재벌로부터 거액을 실은 트럭 등을 통째로 건네받는 신종수법으로 800억원 이상의 불법 정치자금을 모은 것이다. 이후 천막당사로 옮기고 당명도 새누리당으로 바꿔 활로를 모색했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는 새누리당의 ‘뇌물 DNA’가 여전히 살아서 활동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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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비타500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고창석,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아직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대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진도 앞바다, 차가운 맹골수로에 갇혀버린 그대들의 꿈을 생각합니다. 4월16일, 슬프고 잔인했던 그 봄날을 다시 맞습니다. 노란 리본을 꺼내어 가슴에 달아봅니다. 리본 다는 손이 이내 부끄러워집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지나 또 한 번의 봄을 맞기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요.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 국가의 무능, 정부의 부재

2014년 4월16일, 그날의 풍경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TV 화면 속 대형 여객선은 기울고 있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온 나라가 두 눈 뜨고 지켜보는데 곧 모두 구조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대참사, 대재앙을 눈앞에 둔 줄도 모르고 편안히 점심을 먹었습니다. 상식은 그러나 배반당했습니다. 선장은 퇴선 명령이나 구호조치 없이 도망쳤습니다. 승객은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따르다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구조·수습 과정에서는 국가 위기관리 능력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발생 7시간이 다 되도록 회의를 주재하거나 대면보고를 받지 않았습니다. 해경은 사고 해역에 도착하고도 선체 진입 등 적극적 구조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탑승·구조·희생자 집계는 발표와 수정을 거듭하며 혼선을 빚었습니다. 정부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 복지를 책임지는 대가로 통치권을 행사합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실질적 의미의 정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공무원들만 우왕좌왕했을 뿐입니다. 결국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304명 가운데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했습니다. 절망한 가족, 분노한 시민은 묻고 또 물었습니다. 이것이 나라인가, 이것이 국가인가를.

고통과 탄식 속에서 자성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부터 필부필부에 이르기까지 눈물 흘리며 ‘4·16 이후’를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시간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했습니다.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과 효율을 중시했던 사회를 밑동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잠시였습니다. 분향소에서 국화꽃 한 송이 바치려 기다리던 대열이 어느 결에 줄었습니다. 애통의 자리엔 야만이 똬리를 틀었습니다. ‘세월호 피로증’을 언급하며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하는 가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으로 조롱하는 이도 나타났습니다. “진상규명에 유족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던 대통령은 40일 넘게 곡기 끊은 ‘유민 아빠’ 김영오씨에게 위로 한마디 건네지 않았습니다. ‘안전 대한민국’이 멀어져간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관피아(관료+마피아)’가 빠진 자리엔 ‘정피아(정치인+마피아)’가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고양종합터미널과 장성 요양병원에서 불이 나고, 판교에선 환풍구가 무너졌으며, 베링해에선 오룡호가 침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결과는 참혹합니다.

그러나 희망의 여린 싹도 보았습니다. 오로지 진실을 캐내기 위해 거리에 선 세월호 가족들이 그 증거입니다. 국가의 무능과 정치의 부재 속에 온갖 고통과 비난을 감내하며 싸워온 이들에게서 인간적 존엄을 보았습니다. 이들의 아픔에 공감한 시민 600여만명이 특별법 제정 요구 서명운동에 참여했고, 수만명이 서울 광화문에서, 혹은 각자의 일터에서 동조단식에 참여했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킨 사람들이며, 슬픔과 분노를 개개인의 각성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입니다. 살아남은 이들의 책임을 다하는 실천가들입니다.


■ 바닷속 잠긴 진실 인양해야


문제는 다시 국가요, 정부일 것입니다. 정부는 사랑하는 혈육을 잃은 사람들에게 돈봉투를 들이밉니다. 진상규명에 절실한 선체 인양에 대해선 자꾸 말을 바꿉니다. 박 대통령이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인양의 위험과 실패 가능성을 충분히 알리고서 결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세월호 가족이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어제 “원만한 해결”을 지시했으나 정부와 새누리당은 ‘부분 수정’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집회에 나선 유가족에게 최루액을 뿌리더니, 오늘 열리는 추모집회엔 차벽을 설치하겠다고 공언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1주기인 오늘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납니다. 참으로 낯두꺼운 정부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목숨을 잃은 304명과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어느 누구도 세월호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깊은 바닷속에 잠긴 진실을 인양하지 않고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라틴어 사전에서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라고 합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 다시 약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 선 자리에서 약속을 이행해야 합니다. 선체를 인양하고 진상을 파헤치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시민뿐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형’임을 잊어선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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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호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전·현직 비서실장 3명과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진 이후 첫 입장 표명이다. 일단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측근이라도 비리가 확인되면 예외 없이 법과 원칙에 따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내 문제가 아닌 남의 문제’라는 식의 특유의 ‘유체이탈’ 대응이다. 그랬으니 “대통령을 위해 일했던 최측근들이 부정부패 의혹에 관계된 데 대한 유감 표명”(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조차 하지 않았을 터이다. 박 대통령은 무엇보다 검찰이 청와대나 정권 실세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의지부터 밝혔어야 한다. 국민의 의구심은 검찰이 과연 정권 실세들의 불법 정치자금과 ‘살아 있는 권력’의 대선자금 문제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에 쏠려 있다. 현직 총리가 ‘수사 대상 1호’인 판국이다. “누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다짐만으론 미흡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는 16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분향소를 찾아 입구에 놓은 실종자 알림판을 둘러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우리 정치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부문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과거 정권의 정치자금 의혹까지 대상을 넓혀 수사하라는 지침으로 들린다. 물론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서 야당이나 과거 정권의 불법 증거가 드러날 경우 당연히 조사해야 한다. 하지만 미리 ‘과거부터 현재’라고 지침을 내림으로써 대대적인 사정 국면을 조성해 ‘성완종 정국’을 돌파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완구 총리는 연일 맹렬히 부인하지만, ‘3000만원 의혹’은 갈수록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비타500 음료수 상자’에 넣어 전달했다는 성완종 측 인사의 직접 증언도 나왔다. 돈을 준 시점과 장소, 명목을 적시한 성 전 회장의 진술에 이어 ‘돈 박스’를 들고 간 증인까지 나온 상태다. 이것만으로도 이 총리는 피의자 신분을 면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오늘 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하면 사실상 직무 대행을 할 총리가 부패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질 판이다. 끝내 현직 총리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사에 출석하는 참담한 꼴을 보이겠다는 건가. 여당마저도 사퇴를 압박하는 마당에 이 총리 스스로 거취를 정리하는 게 순리다. 아니면 ‘임면권’을 가진 박 대통령이 읍참마속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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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이완구

앨런 배넛이 쓴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는 뒤늦게 책읽기에 재미를 붙인 70세 영국 여왕이 점점 변하는 내용이다. 흔히 변한다고 하면 나빠지는 것을 생각하지만, 여왕의 변신은 그 반대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다보니 현실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게 가능해졌고, 그들이 현재 상황을 어떻게 느끼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즉 여왕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책을 많이 읽으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선물이었다.

초반 몇 달을 제외한다면, 사람들은 세월호 유족들을 끊임없이 비난하기 바빴다. 세월호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젊은층으로 짐작되는 누리꾼들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세월호 사건은 놀러가다가 교통사고가 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정부한테 뭐라고 하느냐?” “돈 십억씩 받고도 모자라 더 받아내려고 이러느냐?”

사고 초기 교통사고 운운했던 새누리당 분들이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런 변화는 그저 개탄스럽다. 세월호 사고로 동생을 잃은 언니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악성 댓글보다 교통사고라고 하는 게 더 속상해요.”

심지어 세월호 인양에 반대하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세금이 아까운데 그 고철덩어리를 뭐하러 인양하느냐는 것. 이들은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요즘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청년들은 시시때때로 책을 읽었고, 삼삼오오 모여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결과 그들은 신문에서 하는 얘기를 믿는 대신 그 행간을 읽음으로써 진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은 책을 안 읽으니 자기 생각을 만들지 못하고, 정치인과 언론의 조종에 쉽게 넘어간다. 책을 읽지 않는 부작용은 이것만이 아니다. 타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정신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 예컨대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방황하는 칼날>은 딸을 잃은 아버지가 복수를 하는 스토리인데, 읽다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죽을 때까지 지옥 같은 삶이 계속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불합리하게 빼앗긴 사람은 어디에서도 빛을 발견할 수 없다.”(106쪽)

세월호 참사의 유족들 마음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어이없이 침몰한 배,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은 해경, 진상규명에는 담을 쌓은 정부, 얼마나 답답할까? 하지만 책과 담을 쌓은 누리꾼들은 세월호 유족들의 심경을 헤아리기는커녕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짜증을 내고, 유족들을 위해 쓰는 돈이 아깝기만 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정부가 세월호 유족들을 마음 놓고 홀대하는 까닭이. 오로지 자신의 지지율에만 신경을 쓰는 그들이 세간의 여론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그들은 유족들의 양보로 만들어진 세월호 진상규명특위를 ‘세금도둑’이라고 비난하고, 특위의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유족들에게 거액의 배·보상금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배·보상금이라는 것이 사고의 진상이 다 밝혀진 뒤 지급하는 돈이라는 점에서 이는 “진상이고 뭐고, 이제 그만 입을 다물라”는 협박이었다.

재난 관리의 컨트롤타워는 아닐지 몰라도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세월호 사고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인 4월16일 당일, 남미 순방을 떠난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원래 18일에 출국할 예정이었는데 콜롬비아 대통령이 제발 좀 와달라고 읍소하는 바람에 출국일을 이틀 앞당겼단다. 꼭 그를 만나야 할 사연이 뭔지 모르겠지만, 세월호 참사에 대해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면 하루쯤 늦는다고 큰일날 것도 없을 것 같다. 혹시 생일인가 싶어 자료를 찾아보니 콜롬비아 대통령의 생일은 8월10일이다. 그럼에도 꼭 4월16일 출국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가 무엇이건 이건 대통령이 그만큼 세월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세월호 유족들을 욕하는 누리꾼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이 땅에서 유사한 사건·사고가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 말이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세월호 참사는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일로 돌아올 수 있다. 인양에 드는 세금 몇 천억원이 아까울 수는 있겠지만, 그걸 아낀다고 우리네 삶이 얼마나 더 행복해지는지 생각해 보시라. 그리고 이제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책을 읽으시라. 남들의 생각을 자기 생각인 양 착각하는 대신, 스스로의 생각을 만들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연습을 하자. 계속 스마트폰만 본다면 시간은 잘 가겠지만, 나중에 당신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어디 한 군데 호소할 곳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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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흐드러지게 필수록 아파오는 세월호의 기억 때문인가. 지난 1월에 비해 공동체를 찾는 사람들이 줄었다. 빼어난 학자를 삼고초려해 개설한 강좌에도 정성들여 준비한 세미나에도 사람이 찾지 않는다. 북적대던 공동체가 더러 절간처럼 고요하다. 이러다 망하려나…. 사람이 줄어드니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많아진다.

공동체에서 공부하며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던 한 청년이 어느 산별노조의 기관지를 만드는 곳으로 떠났다. 몇몇 진보 언론사의 최종 면접까지 갔던 글 잘 쓰고 심성 좋은 친구다. 노조야말로 글 잘 쓰고 능력 있는 친구가 필요하겠거니 하면서도 하필 그 청년인가 싶어 짠하다. 1980년대 노동현장에 청년을 보내는 느낌이 이랬을까. 이제 서른 안팎인 그 친구는, 어쩌면 1980년대보다 더 엄혹한 시기에 자신이 믿는 바대로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간난과 신고를 짐작이나 할까.

공동체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난 학자가 여행지에서 글 한 편을 보내왔다. 제목은 ‘내 삶의 진정한 영웅, 한창기’.

“내 삶에 영웅이 있다면 고교 시절 이후의 로버트 프립과 브라이언 이노, 대학 시절 이후의 러셀과 사르트르, 존 케이지와 마르셀 뒤샹, 그리고 우리 것에 눈뜬 이십대 중반 이후의 김소희, 박동진, 황병기, 박경리, 김유정,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바로 한창기이다. 70년대 주변에서 늘 보았던 <뿌리 깊은 나무>가 그가 발행한 책이며, 바로 그가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브리태니커 판소리 전집을 낸 사람이고, 바로 그가 훈민정음에서 따온 한글 서체를 만들어낸 사람이며, 바로 그가 뿌리 깊은 나무 민중구술 자서전을 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이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문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팝송과 서구 문학과 철학에 사로잡혀 살던 스스로가 20대 중반, 김소희의 판소리를 듣고 나서야 서구에 함몰돼 극한까지 갔던 소외의 바닥을 쳤던 사정이며, 그러면서도 33살의 나이에 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으며, 어떤 자세로 학문을 하며 살아왔으며, 또 살아갈 것인가를 적은 글이었다.

“소위 선진국에 가서 살아보면, 가령 15년 전에 이민을 와서 15년 전 한국말의 화석을 구사하면서 15년 전 자신의 인식 수준으로 바라보던 한국이 오늘의 한국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이민간 나라 사람들이 1등 시민, 자신이 2등 시민, 한국인들이 3등 시민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한국을 폄하하며 우월감에 젖어 사는 비극적 캐릭터들이 꽤 있다.

학문의 영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한국인이라 생각하며 한국인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확신하는 저 이방인들, 자기 전공에 파묻혀 인간을 못 보는 고상한 학자들, 자기 전공만이 진리라고 외치는 신식민지의 전도사들. 자신이 대상화하는 사람들의 말은 한마디도 듣지 않고 오직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단죄하는 저 어리석은 폭력적 군상들, 속물들. 그것이 바로 부정하고 싶은 경망스럽고도 고상한 속물로서의 내 모습이 아닌가?

‘자신이 대상화하는 사람들의 말은 듣지 않고 오직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단죄’하며 나만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여기 또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니 공동체 안팎에서 흔한, 작은 갈등이나 어려움에도 천박함과 비겁함의 끝자락을 드러내곤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강좌에 사람이 찾지 않아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이 시기야말로 공동체를 개설할 때의 초심이며 삶의 근원을 찬찬히 돌아보기에 좋은 때 아닌가.

대안연구공동체의 김종락 대표, 임상훈 연구위원, 이정우 파이데이아 학장, 유충현 연구위원이 ‘21세기에 보는 20세기 사상지도’를 정리하고 평가하는 좌담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멀리 산티아고 길에서 보내온 글을 읽으며 오랜만에 <특집 한창기>란 제목의 책을 뽑아들었다. 한창기는 몇 세대 앞선 선진적 언론 출판인이자 빼어난 문화비평가, 격조 높은 문화수집가, 전통 의식주의 파괴 없는 창조적 계승을 실천한 사람이었으나 나는 여기에 아득히 못 미친다. 그럼에도 공동체를 개설한 지 4년여, 그동안 어떤 대안을 모색하고 연구하고 실천해 왔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을 수 없다. 무엇을 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없이 그저 생존에만 급급해하진 않았는가.

공동체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던 청년과 학자는 목하 가시밭길을 자청했거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치열하게 자신을 돌아본다. 그 학자가 적었듯이, 주어진 상황을 피해 사람을 조롱하며 천리를 가는 것보다 그들과 더불어 한 걸음을 가는 것이 더 어렵고 소중하다. 우리에게 전선은 제도권 대학과 제도권 밖 인문학 공동체 사이에 있지 않다. 바로 내 안에, 우리 안에 있다.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다시 꽃 피어나고 세월호로 아픈 봄, 공동체는 한산하다. 작은 씨앗 뿌리며 새롭게 길 찾아 나설 때다.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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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병원에 오는 환자 중에 초등학생 비중이 늘고 있다. 치료를 하러 오는 경우보다는 부모가 불안한 마음에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내원하는 이유는 자녀의 키를 ‘더’ 키우고 싶다는 것. 특별히 병적인 저신장이 의심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이의 생활습관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한다. 하지만 갈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불안하게 했을까?

TV를 켜면 훌륭한 외모의 연예인들이 저마다 매력을 발산한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연예인’은 선망의 직업이 됐다. 이처럼 ‘외모’가 경쟁력으로 인식되면서 부모들은 자녀의 성적만큼 ‘키’ 문제에도 민감하다.

소아 청소년 표준성장도표를 살펴보면 우리 아이들에게는 두 차례의 성장급진기가 있다. 만 3세 이전의 1차 성장급진기가 있고, 주로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2차 성장급진기가 있는데 여자는 11~14세, 남자는 13~16세 정도가 해당한다. 과거에는 키는 유전이 80% 이상이라고 여겨져 타고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후천적인 노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성장기 아이들의 키 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키 크는 방법 중 그 효과가 의학적으로 검증되어 사용되는 방법으로는 성장호르몬 치료와 키 크는 수술법이 있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부작용 3% 미만으로 비교적 안전한 치료법이나 일반적으로 성장이 거의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주 5~7회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원칙적으로는 의학적 적응증이 있는 병적 저신장 등 환자에게만 사용해야 한다. 키 크는 수술 역시 외뼈를 절단하고 강선 또는 기구를 삽입하는 수술이 필요하므로 다른 방법에 비해 복잡하고 어려운 방법일 뿐 아니라 오랜 기간 치료가 필요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조건 성장호르몬 치료를 한다고 키가 크는 것이 아니며 키 크는 수술 또한 치료를 하는 의학적 적응증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용도 무시 못할 고려 사항 중 하나이다.

벽면에 붙은 키재기용 자 옆에서서 손으로 머리위를 짚고 있는 남자 어린이 (출처 : 경향DB)


시장의 수요가 늘다 보니 이 같은 의료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한의학과 성장클리닉, 건강기능식품 및 일반식품 업계까지 저마다 키 성장에 대한 다양한 해법을 내놓으며 시장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시장이 급작스럽게 커지다 보니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최근 식약처가 일부 키 성장 제품들을 검찰에 허위과대광고로 고발하는 등 진통을 겪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단언컨대 자녀의 키 성장에는 그 어떤 약과 치료보다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병원을 찾아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 아이의 생활습관에 관심을 두고 면밀하게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병적인 저신장이 아닌 이상 5대 영양소를 골고루 먹고 꾸준한 운동과 충분한 수면 등이 병행된다면, 타고난 키만큼은 자랄 수 있다. 다른 방법들은 부수적인 방법이지 절대적인 방법이 아니다. 아이의 키를 자라게 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부모’이다.


박재범 | 정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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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부터 기초연금이 20만원에서 2600원 오른다. 소득세 연말정산으로 홍역을 치르고, 이달에 건강보험료 1년치 정산까지 해야 하는 국민들에게 모처럼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나는 반갑기보다 마음이 무겁다. 작년 기초연금법이 제정될 때 가졌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600원 인상은 기초연금이 도입된 후 첫 자연인상 조치의 결과로 기존 20만원에 작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1.3%가 반영된 금액이다. 그런데 기초연금의 전신인 기초노령연금은 당해연도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A값)에 연동돼 올랐다. 보통 소득 증가율은 물가 상승률보다 높다. 올해도 가입자 평균소득 증가율은 3.2%로 물가 상승률보다 높다. 만약 기존 방식이었다면 기초연금액이 6400원 올라야 하지만 2600원 인상에 그친 이유이다.

물가연동은 예금에서 복리 효과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를 크게 만든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0.9%이다. 내년에는 기초연금 인상액이 더 작아진다는 이야기다. 정부 장기재정전망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2011~2040년 물가 상승률은 소득 증가율에 비해 약 3%포인트 낮다. 13년 후인 2028년에는 현재 가격 기준으로 소득연동이라면 40만원이어야 할 기초연금이 20만원으로 반토막날 운명이다.

이는 작년 기초연금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 예견되었던 일이다. 애초 박근혜 후보의 기초연금 공약에 물가연동은 없었다. 오히려 공약집은 기존대로 기초연금을 소득과 연동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기초연금 공약 재검토 내용에도, 국민행복연금위원회가 다룬 수정안 어디에도 물가연동은 없었다. 심지어 2008년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된 이후 후속 개혁을 위해 국회에서 연금특위가 가동되었지만 여기서도 물가연동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연금위원회 논의를 참고해 기초연금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느닷없이 소득연동을 물가연동으로 바꿔치기했다.

기초연금의 물가연동은 미래 연금액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국민연금 연계 감액’보다 기초연금에 타격을 주는 독소조항이다. 하지만 작년 5월 국회에서 기초연금법이 순식간에 의결되면서 이 문제가 제대로 심의되지 못했다. 정부는 처음에 ‘물가연동’으로 입법안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물가와 연동해 인상하되 ‘보건복지부 장관이 5년마다 물가, 노인 생활수준,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기초연금액을 조정’한다는 추가 문구로 야당을 무마했다. 생활수준과 소득이 5년 만에 크게 변하는 게 아니고, 예산 지출 추세를 감안할 때 매년 물가만큼 오르던 기초연금액이 5년째라고 크게 오르거나 내리기도 어렵다. 결국 정부 보완책은 5년마다 미세 조정을 거쳐 다시 물가를 반영하는 ‘사실상 물가연동’에 다름 아니다. 굳이 정부가 5년 주기 조정을 내세우면, 이걸 수용하더라도 최소한 매년 인상 기준으로 소득연동은 유지해야 했건만 국회는 무기력했다.

줬다가 빼앗는 노인 기초생활수급비 (출처 : 경향DB)


기초연금법의 졸속 심의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도 방치했다. 정부는 기초생활수급 노인도 기초연금 20만원을 받는다고 홍보해 놓고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을 근거로 기초연금을 도로 빼앗고 있다. 기초생활수급 노인들도 이달부터 20만2600원을 받지만 다음달 같은 금액을 생계급여에서 공제당한다. 작년 가을 최경환 부총리는 노인복지관 방문에서 이 질문을 받자 “개선하겠다”고 약속했고, 지난 2월 이완구 국무총리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보완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답변했건만 후속 논의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공무원연금 개혁 대응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는 공적연금 강화를 제안하고 있다. 핵심 내용은 국민연금 상향이다. 보장성 원리에서 급여율 인상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재정 수단이 동반될 때만 현실적 대안일 수 있다. 사실상 미래 세대에게 재정 책임을 넘기는 방안보다는, 어떤 방식이든 현재 세대가 재원을 조달하고 노동시장 불안정에 따른 연금 사각지대까지 해소할 수 있는 기초연금 역할 확장이 공적연금 강화의 중심이다. 기초연금을 온전한 보편복지로 만드는 일에 힘을 더 쏟아야 한다. 물가연동, 줬다 뺏기, 국민연금 연계, 이 세 가지를 해결하는 ‘기초연금 제자리’ 운동을 펴자.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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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봄꽃은 화려하게 만발했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규제 철폐, 남북관계 등 사회적 난제와 정치적 의제를 둘러싸고 던져지는 ‘○○장사’ ‘○○기요틴’ 등의 언어들을 접하다보면 갑자기 추워진다. 불화(佛畵)에 등장하는 아수라가 떠오른다. 아수라는 천상계, 인간계 등 6계의 하나로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이다. 상식과 지혜는 부족하고 이견과 갈등이 넘쳐난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람들의 대화와 집단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전문영역으로 퍼실리테이션이라는 것이 있다. 잘 설계되고 구조화된 대화를 통해 갈등을 완화하고 공감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전문분야다. 갈등이 넘쳐나는 오늘의 현실을 퍼실리테이션의 눈으로 분석하면, 첫째 우리에게는 모두를 참여시키는 열린 대화의 장이 너무 부족하다.

대화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시냇물이 모여 거대한 의미의 강을 이루는 것이며, 대화의 목적은 더 큰 지혜를 창출하는 데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정파적 취향에 맞는 모임에 가고 인터넷을 통해 대화를 하면서도 반대 입장의 사람들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모두가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것을 의학이나 심리학에서는 주의편향 또는 선택적 인지라고 한다. 이 병이 만연하고 있다. 지하철에 앉아서도 끊임없이 스마트폰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들여다보지만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광장에서의 단절이다. 특히 동종 그룹 내에 편중된 밀폐 대화는 사회적 의제에 대한 선택적 인지를 더욱 강화한다. 이렇게 되면 상대의 입장에서 사물을 볼 수 없고 상대의 기쁨이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공감할 수 없으니 경청도 할 수 없다.

둘째, 대화의 과정이 투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진 것 없는 개인들이 권력 집단과 하나의 장에서 대화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적 지혜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대화의 당사자일 경우 스스로 중재자를 자처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대화를 끼워맞춘다는 의심을 사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해당사자로서 자신을 낮추고 숨겨진 의도 없이 단지 참여해야 한다. 이것이 대화의 기본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간다. 온전한 대화의 문화를 재건하는 데 정부와 정치권이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 대화의 주제도 잘 다듬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언론 보도를 보면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화두들은 ‘누구 잘못이냐’ ‘누가 책임질 것이냐’ ‘어떻게 보·배상할 것이냐’로 요약된다. 이 질문들은 반드시 답해야 하는 중요한 질문들이지만, 누군가를 겨냥하고 있는 그래서 누군가는 반드시 회피하게 되는 질문이다. 온전한 대화를 위해 우리가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상위의 화두는 ‘진실이 무엇인가’ ‘이 교훈을 토대로 어떻게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본질적이고 큰 질문을 중심에 놓고 앞의 질문들은 하위 단위로 자연스럽게 다루어 나가야 한다. 앞의 질문들이 부각되고 있는 데에는 일부 언론의 영향이 크다.

제2회 종교포럼 ‘종교를 걱정하는 불교도와 그리스도인의 대화-경계 너머, 지금 여기’가 최근 서울 화쟁아카데미에서 열렸다. (출처 : 경향DB)


넷째, 대화에 사용되는 단어와 개념들이 너무 거친 경우가 많다. 언어란 상처를 입히는 흉기도 되고 사람을 살리는 치유의 도구도 된다. 그래서 아름다운 시는 자아를 넘어 세상을 끌어안을 여유를 주고, 아름다운 기도는 내면으로부터 치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비어들은 멀리할 필요가 있다. 대화에 비어가 끼어들면 대화의 장이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때부터는 ‘내가 얻는 것이 없어도 너만은 꼭 망가뜨릴 거야!’ 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온전한 대화의 조건들을 건설해야 한다. 한 시인은 우리 사회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1960년대 말 이렇게 썼다. ‘… 하잘것없는 일로 지난날 언어들을 고되게 부려만 먹었군요. 때는 와요.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하지만 그때까진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신좌섭 | 서울대 교수·의료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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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국무총리가 ‘부정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는 대국민 담화문 발표 한 달 만에 자신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는 어이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지난번 (2013년 4월 부여·청양) 재·보궐선거 때 선거사무소 가서 이 양반(이 총리)한테 3000만원을 현금으로 주고 왔다”고 밝혔다. 성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가) 개혁을 하고 사정을 한다고 하는데 이완구 같은 사람이 사정 대상 1호”라며 이러한 사실을 토로했다. 당시 이 총리가 회계 처리를 했느냐는 질문에는 “뭘 처리해요. 꿀꺽 먹었지”라고 답했다. 이 총리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 및 기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총리는 돈 수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전날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성 전 회장으로부터 한 푼도 받은 적 없다”고 했던 그대로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지’에는 그의 이름만 적혀 있을 뿐 금액이 적시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돈의 액수와 장소, 돈을 건넨 동기 등을 특정했다. 또한 이 총리는 “(성 전 회장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총리는 올 2월 국회 인사청문회 때 여론이 악화되자 성 전 회장이 만든 ‘충청포럼’에 지원을 부탁했고, ‘충청포럼’은 대대적인 옹호 운동을 벌였다. ‘김종필 자민련’ 때부터 밀접한 관계였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이 총리는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혈액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느라 2012년 대선에 관여하지 못했다”고 했으나, 당시 새누리당 충남 명예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여러 번 지원 유세를 벌인 사실이 확인됐다. 이 총리가 뻔히 드러날 사실마저 부인하거나 거짓말로 둘러대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구린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3000만원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온 14일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성 전 회장의 증언이 공개되고 나니, 이 총리가 앞서 성 전 회장 지인들에게 ‘입막음’ 전화공세를 펼친 까닭을 짐작할 만하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이 자살 전날 만난 충남 태안군의회 의원 2명에게 15번이나 전화를 걸어 성 전 회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를 캐물었다. “내가 총리니까 다 얘기하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국무총리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란 차원을 넘어 ‘외압’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총리의 ‘3000만원 의혹’은 앞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 총리도 “수사 받겠다”고 나섰다. 문제는 이 총리가 직무를 수행하면서 수사를 받는다면 그 결과에 대해 국민의 신뢰를 얻기 힘들 것이란 점이다. 법무부 장관을 통해 사실상의 수사 조율 및 지휘권을 가진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제대로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믿는 국민은 별로 없을 터이다. 현직 총리가 검찰에 소환되는 것 자체가 초유의 일이다.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로서 도덕적·정치적 권위와 리더십을 잃을 수밖에 없다. 국정의 무거움과 국무총리의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면, 이 총리 스스로 사퇴하고 검찰 수사를 받는 게 정도다. 그것도 안된다면, 사법적 판단이 완결될 때까지 총리의 직무를 중단하고 수사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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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의 ‘경향신문 압수수색’ 발언은 참 어이가 없다. 권 의원은 그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경향신문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마지막 인터뷰 녹음파일을 입수했는지 물으며 “압수수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 이날 경향신문은 지면을 통해 지난 12일 검찰로부터 성 전 회장 인터뷰 녹음파일 제출을 요청받은 사실을 공개하고 검찰 수사가 한 점 의혹 없이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할 것이며 녹음파일도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권 의원은 압수수색까지 운운하며 마치 경향신문이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기라고 한 것처럼 비치도록 정치적 공세를 폈다.

권 의원은 검찰 출신으로 국회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다. 압수수색이 무엇인지, 그리고 해외자원개발 비리 수사에서 비롯된 이번 ‘성완종 리스트’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위치에 있다. 무지나 실수에 의한 발언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권 의원은 어제도 MBC 라디오에 출연해 “경향신문이 아직 검찰에 음성파일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재차 압수수색 주장을 폈다. 그 이유를 묻자 증거인멸이나 분실이 우려돼서라고 했다. 주겠다는 녹음파일을 받으러 언론사를 압수수색하는 것도 민주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 이유가 녹음파일의 일부 삭제나 분실을 우려해서라니 지나가는 소까지 웃을 노릇이다.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특위 야당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유성엽 의원 등 야당 위원들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총리 인사청문회가 정회하고 있는 동안 정론관에서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언론외압과 관련한 녹음파일을 공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성완종 리스트’ 보도로 여권이 느끼는 정치적 위기감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권 의원의 경향신문 압수수색 발언은 그런 여권의 분위기를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성 전 회장 인터뷰 내용이 단계적으로 보도되자 전체 녹취록 공개를 요구했고, 대선자금 의혹으로 확산되자 “야당도 같이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물귀신 작전을 폈다. 백번 사과하고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도 모자랄 판에 정치공세로 물타기를 하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권 의원의 경향신문 압수수색 주장은 그런 새누리당의 정치적 처지와 대응 수준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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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권성동

인천 아시안게임을 위해 새로 지은 경기장이 결국 가뜩이나 열악한 인천시 살림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고 한다. 어제 경향신문이 보도한 인천 경기장 르포 기사는 1조7000억원을 들여 지은 세계 최고 시설의 경기장이 아무 쓸모없이 방치되고 있는 한심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인천시가 당초 남구 문학경기장을 리모델링해 활용하라는 정부의 권고를 무시한 채 경기장 건설을 강행할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우선 4700억원짜리 주경기장은 아시안게임이 폐막된 지 6개월이 되도록 국제행사를 치른 적이 한 번도 없다. 앞으로 계획도 없다. 경기장에 값비싼 양잔디를 깔아놓고도 축구경기 한 번 열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됐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인천시는 먼지만 수북한 주경기장의 운영비로 연간 33억원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경기장을 포함해 신설 경기장 16곳의 연간 운영비는 134억원인 반면, 수익은 26억원에 불과한데도 대책이 없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매년 혈세 108억원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13일 인천 아시안게임 개·폐회식이 열렸던 인천 서구 주경기장이 편의·상업 시설 유치에 실패하면서 방치돼 있다. (출처 : 경향DB)


재정난을 가중시키는 골칫덩이인 주경기장에 영화관·예식장을 유치하려 했지만 교통불편 때문에 무산됐다. 중국 투자자에게 통째로 팔려던 계획도 불가능해졌다. 시민들의 땅을 강제수용해 관련법상 10년 동안은 매각할 수 없다. 결국 아시안게임을 테마로 한 관광단지 조성을 결정했지만 실제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이 정도로는 경기장 운영 적자를 메울 수도 없다.

인천시가 겪는 낭패는 제대로 된 사후 활용방안 없이 대형 경기장 건설을 밀어붙인 탓이 가장 크다. 전남도가 유치했던 국제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원(F1)이 지역에 엄청난 빚만 남긴 것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나가노·소치 동계올림픽, 브라질 월드컵의 경우도 똑같은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이제 평창 동계올림픽이 걱정이다. 강원도 역시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개최 후유증을 우려해 분산 개최를 제안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원도는 인천 아시안게임을 반면교사로 삼아 지금이라도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활용방안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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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서 마음을 조금 더 내어 나아가면 주천이다. 다시 한갓진 길을 돌아들면 육모정이 나오고 도로에서 조금 비켜난 양지바른 언덕에 춘향의 묘가 있다.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춘향보다는 광한루의 오작교를 건너던, 피와 살이 감도는 춘향의 모습도 한번 그려보면서 내쳐 더 나아가면 구룡폭포 가는 길이다.

한 달에 한 번 지리산을 찾는 모임에서 3월에도 이곳을 찾은 건 까닭이 있다. 올해 첫 산행을 눈 덮인 이곳에 왔다가 뜻밖에 히어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두 그루도 아니고 히어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지 않겠는가. 그때 히어리 앞에서 맹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봄이 오면 이곳에 다시 오자고 다짐을 했던 터다.

겨울이 깨끗하게 다녀간 계곡. 물이 통통히 오른 버들강아지를 동무 삼아 걷다가 ‘사랑의 다리’를 건너자니 노란 꽃이 공중을 온통 장악하고 있었다. 봄산에 들면 유독 노란 꽃이 많기는 하다. 산수유, 생강나무, 개나리 등 짙은 노랑의 꽃들. 꽃을 두고 우열을 가린다는 게 참 치졸한 심보이긴 하겠지만 흔한 것보다는 귀한 것에 눈이 더욱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춘향이 머리에 꽂았을 법한 가지를 당겨 주렁주렁 층을 이룬 히어리의 탐스러운 꽃을 찍고 눈길을 돌리니 어느 비탈 아래 작은 꽃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저의 한 세계를 기품 있게 들추고 일어나는 보춘화였다. 봄을 알린다는 의미로 이름마저도 보춘화(報春花). 이 꽃이 없었다면 자연의 이 자리는 그만큼 비었을 테고, 이 보춘화가 없었다면 이 세상 봄의 자리가 그만큼 휑할까.

보춘화라지만 어찌 봄이 왔다는 기별만 전하겠는가. 지난날의 적폐처럼 쌓인 낙엽들을 뚫고 나온 꽃. 누군가의 넋이라도 기리는 십자가를 닮은 것도 같다. 꽃은 지하의 소식을 전해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꼿꼿하게 허리 펴고 야무진 입술로 뭔가 고함이라도 치는 것 같은데 그걸 알아들을 귀가 내게는 없을 뿐. 엎드린 나는 다만 바람의 기척만 느낄 뿐.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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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31일 현대자동차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스물다섯 살 청년이다. 2013년 2월 현대차 울산공장에 입사해 23개월간 일하면서 16번 근로계약서를 썼다.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회사 이야기를 듣고 연차도 안 쓰면서 일했지만 돌아온 건 해고 통지였다.

2012년 4월 군 전역을 한 뒤 대구에 있는 기업에서 일하다 2013년 2월 현대차 울산공장 촉탁계약직에 지원해 합격했다. 현대차는 연수 과정에서 “청소와 일을 열심히 하면 정직원이 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안전교육을 받고 각 공장에 배치됐지만 처음에 회사 인사팀에서 들은 얘기와 현실은 달랐다. 정규직 1년차와 업무가 같다고 들었지만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힘든 일을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일했던 자리는 회사가 불법파견으로 문제가 되자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신규 채용을 하면서 발생한 공백이었다.

정규직끼리는 ‘로테이션’도 했다. 하나의 작업이 지겨우니 자리를 바꿔서 일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8~9시간을 한자리에 박혀 일을 해야만 했다. 휴식시간 10분과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쉴 시간이 없었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 봐야 했고, 쉬는 시간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작업할 때도 문제였다. 우리가 실수하면 “잘릴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규직이 실수하면 회사에서 함부로 못했다. 부럽기도 했지만 잘리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일했다.

사내하청업체 신입사원도 연차를 쓰는데 우리는 몇 개월씩 일했지만 연차 쓰면 불이익을 준다고 해서 쓸 수가 없었다. 정규직이 연차 써서 안 나오면 그 자리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조모가 돌아가셨다고 해도 쓰지 못하게 했다. 거의 매달 계약서를 썼다. 공장이 쉬는 날에도 우리는 계약서를 쓰러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서 문자를 일괄로 보내 오늘 아니면 못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정말 심하게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를 못 쓰거나 일하다 허리나 손을 다쳐도 산재를 못 냈다는 점이다. 다치면 산재를 신청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아프면서도 일을 해야 된다는 게 참 안타까웠다. 하지만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허리를 부여잡으면서 일하던 두 명은 결국 잘렸다. 정규직은 약간 몸살기만 있어도 연차를 쓰거나 쉬고 싶을 때 쉬었지만 우리는 눈치가 보여 아파도 쉬지 못했다.

수많은 차별을 받으며, 어떤 경우에는 하루짜리 알바 수준도 못한 취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일할 때도 같은 반 정규직 형님들이 “앞일은 모르니까 열심히 일하라”고 했다. 최근 파업 때도 수시로 촉탁직을 신규 채용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해고 통보를 받고 희망고문이 깨지고 나니 정규직 1년차와 우리는 정말 다른 노동자라는 걸 알게 됐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가 지난달 1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출범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중앙우체국을 향해 행진한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최근 내가 현대차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차가 촉탁계약직을 상대로 쪼개기 계약을 하면서 정규직이 될 수 있다며 희망고문을 하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특히 촉탁계약직이라는 고용 형태가 사라져야 한다.


박점환 | 전 현대차 촉탁직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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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의 청렴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지난해 12월 공직자의 취업제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됐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김영란법)’도 제정됐다.

이와 같은 일련의 흐름은 청렴한 공직자, 신뢰받는 정부 실현을 위한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의 희망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한 정부 신뢰 조사결과 또한 우리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인식의 정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국민 중 정부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4.8%였다. OECD 평균이 42%, 상위 국가의 경우 80% 이상인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런 분위기를 쇄신할 것으로 기대되는 개정 공직자윤리법이 3월3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개정법은 취업제한 기간을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업무의 관련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퇴직 전 근무했던 ‘부서의 업무’에서 ‘기관의 업무’로 확대했다. 취업제한 기관도 이전의 민간기업 위주에서 시장형 공기업, 인허가 및 조달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유관단체, 법무·회계·세무법인은 물론 병원과 사립대까지 그 범위를 넓혔다. 아울러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취업심사 결과 공개도 명문화했다. 이 개정법의 시행으로 퇴직 후의 자리를 염두에 두고 감독을 무르게 하거나 눈감아 주는 행위, 특히 전문성을 요구하는 안전 및 규제 업무담당 부서의 재취업을 노리는 행위는 상당 부분 억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퇴직 공직자에 대한 취업제한 강화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리,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는 규정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국가의 소중한 자산인 전문성 있는 인재의 활용을 어렵게 해 공익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공직자윤리법에는 공직자 개인의 권리보호 측면과 국가의 공정성 및 신뢰성 확보라는 공익적 측면의 특성이 갈등 및 교환 관계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을 통해 변호사 등 자격증 소지자의 경우 처리한 업무의 성격과 비중, 처리 빈도를 고려해 영향력 행사의 가능성이 적은 경우 재취업이 가능하도록 승인요건을 신설하는 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정부서울청사 직원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 청사를 나서고 있다. _ 연합뉴스


법규를 통한 제한과 같은 소극적 접근도 필요하지만 공직자들의 도덕적 의식을 높여 스스로 자기통제를 할 수 있게 하는 적극적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관련법을 한없이 계속 강화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한 삶은 고립된 개인에 의해서는 달성될 수 없다고 보았다. 법이나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직자의 성숙한 자기통제와 시민들의 시민정신이 함께하는 것이다. 사회 전반의 윤리의식 향상과 비리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질 때 시민들은 공직자들을 신뢰하고 관료들은 공직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생동하는 공직사회, 발전하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박흥식 |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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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식 때 아버지 품에 안겨
펑펑 울던 차두리 선수를 보며
힘겹고 암담하게 사는 청년들도
누군가에 안겨 울고 싶었을 게다”


한번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차가운 아스팔트로 추락하여 금세 이지러지고 말 운명이건만, 그래도 봄날에는 꽃이 핀다. 어느 시인이 장중하고도 난해한 어느 시에 썼다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지난해 4월 이후로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잔인한 실체적 진실로 굳어져버렸다.

국가는 쓰라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모욕을 당하도록 방치해왔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저열한 공작으로 비인간적인 수모를 입히는 전략을 1년 내내 구사해왔으니 이런 잔인한 세월이 달리 또 어디 있으랴.

이런 모진 시간에도 우리는 일상을 살아간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되어 그라운드와 필드에 프로스포츠가 개막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버거운 도시생활의 활력을 찾고 순간 작렬하는 절묘한 타이밍의 세계를 찾아 경기장으로 몰려든다. 이러한 일상 또한 한 큰술 이상의 무게와 의미는 있는 것이다.

의미 있는 장면들도 꽤 많이 있었다. 당장 기억나는 장면은 2562일 만에 프로축구 K리그 복귀골을 터트린 박주영이다. 12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FC 서울의 박주영은 전반 9분 만에 동료들이 획득한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공 한번 제대로 차기 위해 세상 곳곳을 떠돌다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박주영을 위해 동료들은 페널티킥을 차라고 등을 밀었다. 이후 전개된 경기에서 FC 서울과 박주영은 화학적으로 완전히 결합된 경기력을 보이진 못했지만 그 한 장면만큼은 마음속을 울컥하게 한다.

박주영에게 큰 기대를 건 많은 사람들이 그가 유럽의 여러 클럽을 전전하는 과정을 보며 실망했고 또 브라질월드컵을 전후로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렇기는 해도 어느 선수가 벤치에 앉아만 있고 싶었을 것이며 또 어느 선수가 일부러 경기를 망치고자 했을 것인가.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박주영도 경기장 안팎에서 자주 타이밍을 잃고 말았는데,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왔으니 우선 박수를 치며 격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박수는 지금 수고하고 지친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박수 소리와 같다.

3월31일 대표팀 은퇴식을 가진 차두리 선수도 기억할 만하다. 선수로서 그는 기복이 심했다.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전환하며 부침을 겪었고 그래서 2006 독일월드컵 때는 독일 분데스리가 경력의 선수임에도 축구화 대신 마이크를 들었다. 그 후, 일취월장하여 2010 남아공월드컵과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괄목상대의 출중한 경기력을 보였으나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또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는 중에도 차두리 선수는 특유의 성실함과 낙천성을 잃지 않았다. 강력한 신체 조건에 더하여 섬세하게 경기 전체를 읽고 조율하는 능력까지 발전했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차미네이터’ 같은 별명을 붙여가며 그를 사랑했고 또 부러워했다. 차두리에 대한 부러움과 사랑은 청년 세대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겹쳐진 문화 현상이다.


대표팀 은퇴식 때 그의 아버지, 곧 차범근 감독이 그라운드에 등장하여 아들을 끌어안았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은퇴식을 치르던 차두리는 끝내 아버지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이 나라의 수많은 청년들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을 것이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저렇게 따스한 위로와 격려를 받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일러준 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바로 그 기성세대가 망쳐놓은 사회 구조 때문에 힘겨운 현실과 암담한 미래 앞에 불안하게 놓여 있다. 진심으로 따스한 위로 대신 사실상 공허한 채찍질에 불과한 이른바 ‘멘토’들의 격려사밖에 들은 게 없다. 그런 청년세대는 지금 이 순간 누군가로부터 진심어린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한번 울어보고 싶다. 차두리에 대한 강렬한 감정은 바로 이러한 집합적 감수성이 응축된 것이다.

그리고 추신수 선수가 있다. 12일,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경기에서 추신수는 왼쪽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경기장에 나섰다. 텍사스 선수들이 왜 리본을 달았느냐고 물어보고 이에 추신수 선수가 설명하는 듯한 장면도 보였다. 아내 하원미씨가 제안하여 노란 리본을 달았다고 한다.

물론 모든 기호는 맥락에서 작동한다. 어떤 얘기인가 하면 해외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회 안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스타들이 스스럼없이 이러한 행동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게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요 비극이다.

끔찍한 재난을 당한 자들을 위로하고 국가의 무책임하고 비인간적 처사에 대해 분노하는 것 자체가 특정한 정치적 행위로 해석되고 더러는 비난까지 받는 현실이다. 마음속에 깊은 슬픔을 가진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자연스럽게 그 슬픔을 표현하고 팬들과 함께 위로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조차 꺼려지도록 방치해 놓은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신수 선수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은, 비록 그가 이 현실로부터 조금은 벗어나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있지만,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KBO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오는 16일 벌어지는 여러 경기장에서 시구 행사, 치어리더 응원, 앰프 사용을 하지 않기로 했다. 선수단 전원은 희생자에 대한 애도 묵념을 갖기로 했다. 지난주부터 여러 종목의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추모와 위로의 뜻을 밝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그날의 슬픔과 억울함을 기리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 잔인한 달을 모두가 함께 나누어 견디지 않으면 안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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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는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통기타 문화가 막 발아하던 시절, 모두가 외국 팝을 부르거나 가사를 번안해 노래하던 때 미국에서 돌아온 스무 살 청년은 ‘행복의 나라로’ ‘물 좀 주소’ 같은 자작곡을 불렀다.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였다.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김민기의 데뷔 앨범과 더불어 통기타 문화는 여기에서 청년 문화로 발전했다.

나이를 먹어도 그는 ‘어른’보다는 ‘영원한 히피’에 가깝다. 그는 사인에 언제나 ‘peace(평화)’라는 단어를 넣는다. 모든 공연에서도 평화를 이야기한다.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다. 그의 음악을, 인생을 보면 자유로부터조차 자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한대수를 위한 트리뷰트 앨범이 나왔다. 앨범과 더불어 가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도 냈다.

가수 한대수 (출처 : 경향DB)


지난 8일 열린 앨범 및 책 발간 기자회견에서 한대수는 신곡 ‘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앨범에 신곡이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옛날 노트를 뒤졌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갓 귀국한 후 종로의 음악다방에서 공연을 시작한 한대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1960년대 후반의 서울, 아무리 젊은 세대라도 그의 긴 머리와 히피 스타일의 차림새에 익숙할 수는 없을 때였다.

그런 그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음악다방의 DJ였다. 음악에 대한 호감은 자연스레 인간에 대한 연정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한대수의 하숙방에 와서 살림도 도맡았던 모양이다. 단벌 신사였던 한대수의 바지를 빨래 방망이로 두들겨 빠는 모습을 보며 20대 초반의 한대수는 ‘내 사랑은 꿈같이 내 옷 빨아주지요’로 시작되는 노래를 썼다.

하지만 이 노래는 한 번도 녹음된 적이 없다. 곡은 미완성 상태로 누렇게 변해가는 노트 속에서 40년을 머물러 있었다. “가사를 다시 보니 너무 민망하더라고요.” 한대수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대수의 미발표곡을 포함, ‘행복의 나라’ ‘물 좀 주소’ ‘바람과 나’ 등 대표곡 13곡이 담긴 <Rebirth>는 여러 면에서 기념할 만하다.

애초에 기획 자체가 음반 제작사에 의해 시작된 게 아니다. CBS <라디오 3.0>에서 라디오 실험으로 1974년 발표된 한대수 1집 4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음반을 만들기로 했다. 지난해 5월 시작된 이 기획은 제작 전 과정을 생중계했다. 방송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 청취자들과 소통하며 진행된 이 기획은 11월까지 이어졌고, 소셜펀딩과 팬클럽의 후원으로 제작비를 마련했다. 한대수 3집 <무한대>에 기타 세션으로 참여했던 손무현 성신여대 교수가 프로듀서를 맡았고, 자신의 제자들로 밴드를 꾸려 사운드의 기반을 닦았다.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한국 대중음악에 ‘사랑과 평화’로 요약되는 1960년대 히피 정신을 불어넣었던 이 위대한 선배를 위해 후배들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였다. <Rebirth>에 참여한 음악가들의 면면은 화려함을 넘어 한국 대중음악의 계보를 보여준다. ‘쎄씨봉’ 시절부터 그의 친구였던 조영남이 에코브릿지가 편곡한 ‘바람과 나’를 불렀다. YB는 ‘행복의 나라’를 동시대적 포크 록 사운드로 들려주고 이현도는 ‘물 좀 주소’를 일렉트로니카로 재창조했다. 전인권이 ‘자유의 길’을, 강산에가 ‘옥의 슬픔’을 원곡 이상으로 뽑아낸다. 호란과 이상은도 각각 ‘그대’와 ‘One Day 나 혼자’를 여성의 목소리로 흘려 보낸다. 한대수는 그들의 사이에서 40년 동안 발효된 굵직하고 흐트러진 육성을 입힌다. 여느 리메이크, 혹은 트리뷰트 앨범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이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장에 대한 진정한 존중과 원곡에 대한 이해, 그리고 탁월한 해석이 어우러진다. 한대수 또한 팔짱 끼고 근엄하게 인사를 받는 대신, 그들과 함께 논다. 과연 영원한 청춘이요 히피다.

우리 음악계에는 많은 어른들이 있지만 한대수 같은 이는 극히 드물다. 스스로 권위의 벽을 세우거나 존경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격없이 머물며 자연스러운 권위와 존경을 만들 뿐이다. 그런 사람이 한대수와 김창완을 빼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Rebirth>의 높은 완성도는 한대수의 곡이 동시대의 문법으로 충분히 자연스럽게 소화될 수 있다는 증거이자, 그가 음악계에 몸담아온 시간 동안 마주쳤던 이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인증서다.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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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김포공항과 한강을 끼고 넓게 들인다는 서울화목원 조성계획. 눈이 번쩍 뜨였다. 한껏 설레었다. 2013년 8월의 환희는 실종된 것인지 1년반이 지나도록 소식이 감감하다. 부동산투기에 화목원 땅이 잘려나가고 실종된 것인지 애가 탄다.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과 불암산, 아차산과 관악산이 서울을 에워싸고 남산과 낙산이 도심에 내린 서울. 올림픽공원과 어린이대공원, 난지도공원과 서울대공원에 더하여 고궁까지 가세한 서울의 숲과 녹지가 두꺼워도 아쉽다. 서울에 바로 있는 드넓은 꽃세상이 적어서다. 보름을 못가는 여의도 벚꽃이 아니라 연중 아름다운 나무와 눈부신 꽃이 펼쳐진 드넓은 화목원 그림이 눈에 들고 말아서다.

서울은 여전히 꽃이 부족하고 크고 작은 나무가 부족하다. 가히 독보적인 화목원이라면 서울은 세계 최고 도시에 성큼 다가선다. 뉴욕의 심장인 센트럴파크와 런던의 가슴인 하이드파크보다 5000종의 아름다운 식물이 15만평의 넓은 땅에 비단처럼 펼쳐지는 화목원이면 그렇다. 식물원보다 다채로운 식물공원과 놀이공원보다 더 반짝이는 호수공원으로 형상화된 서울화목원. 7000종의 뛰어난 식물로 채워지는 서울화목원이면 비할 곳이 있으랴.

간절하게 바란다. 서울화목원이 그림처럼 들어서고 화려하게 피어나길. 화목원이 있어 세계적인 기업이 서울로 들어서고 부와 문화와 사람이 서울에 모이기를. 자유와 낭만이 흐르고 환희가 이는 서울. 한국과 서울이 화목원 경쟁에서 그 어떤 나라나 도시보다 한없이 앞서기를.

서울 초안산 근린공원 내 생태공원에서 한 가족이 화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우리는 가난하고 초라해도 집집마다 작은 화단 들여서 꽃을 심고 가꾸고 꽃과 함께 살았으니.

수백년을 이어가는 화목원을 그리면 서울화목원을 세우는 일이 어렵지 않다. 서울은 재정이 뒷받침된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지다. 서울화목원의 총 가치가 얼마인지를 산출하면 화목원이 실종되기 어렵다.

생태자산과 생태기반이 정치·경제와 사회·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바르게 읽어내면 제2, 제3의 화목원도 기대된다. 올바른 타당성 검토가 확실한 추진의 원동력이다. 의지를 따르면 길이 트이고 화목원이 열린다. 서울의 뜻을 세우고 서울의 길을 가라. 싱가포르는 1963년에 정원도시의 꿈을 세우고 50년을 정원 건설에 매진했고 세계 최고의 도시로 우뚝 섰다.


김종민 | 국립생태원 생태보전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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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은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이 시점에서 ‘4·15의 기억’을 들추는 일은 시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닐지 조심스러운 마음도 든다. 그렇지만 이 일 역시 생명의 존귀함이나 시민의 권익 그리고 국가의 존재 의미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세월호 사건과 시공을 초월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1961년 4월15일자 경향신문은 서울 남산에서 있었던 행사를 어떤 신문보다 비중 있게 다루었다. 이날의 행사란 ‘4·19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기공식이었다. 공원은 ‘민주’ ‘정의’ ‘자유’의 기치를 천명한 4·19혁명의 정신을 기리고 희생된 시민열사들의 묘역을 겸하기 위해 준비됐다. 서울시가 뒤늦게 참여했지만 이 사업은 원래 순수 민간단체에 의해 주도된 사업이었다. 이 일을 주도한 선두에는 경향신문이 있었다. 당시의 경향신문은 1년 동안 폐간이라는 극형을 받고 있다가 갓 풀려난 상태였다. 1959년 4월 이승만 정부는 미군정 법령을 차용하면서까지 경향신문에 족쇄를 물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한 신문을 폐간시키기 위해 대한민국이 수립되기 이전의 군정 법령까지 동원했다는 것은 자존심 있는 정부이기를 포기한 처사였다. 결박했던 쇠사슬을 끊고 경향신문을 다시 언론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만든 주인공은 4·19혁명이었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도 경향신문은 4·19 기념사업의 선두 역할을 자임했을 것이다.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된 4·19혁명 1주년기념 행사에 앞서 남산에서 가진 4·15 기공식은 민간이 주도하는 작은 행사로 치부될 수도 있으련만 여기엔 국무총리를 비롯해서 3부 요인과 1000여명의 시민도 자리를 함께했다. 오늘날 남산에선 ‘4·19공원’을 기억할 만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남산의 기공식이 있은 지 한 달 뒤 한강을 건넌 5·16 정치군인들 때문이었다.

서울에 진주한 쿠데타 세력들은 4·19정신을 계승한다고 했지만 이들이 19년 가까운 통치기간에 보인 행동은 4·19혁명을 폄하하고 그 지위를 빼앗는 것이었다. 쿠데타를 미화하기 위해 4·19는 마치 혼란의 진원지인 양 매도됐고, 그들이 전복시킨 장면 정부는 무능한 정권의 대명사로 선전됐다. 4·19혁명 이후 시민들의 불만과 요구가 터진 봇물처럼 분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배경으로서 민족이 겪어온 역사적 수난을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이다. 봉건적 전제 지배와 외세의 침입, 일제 식민통치의 착취와 억압, 민족의 분단과 6·25참변, 자유당 정권의 횡포와 부정 등등. 이 같은 억압과 시련이 이어진 역사 속에서 시민 대중이 모처럼 신음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4·19혁명이 기폭제 역할을 해준 덕분이었다.

세계 민주시민의 역사에서 4·19혁명은 가히 독보적이다. 혁명의 과정과 성취라는 점에서 이웃한 중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의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1961년 공원의 위치를 서울의 상징이자 중심인 남산으로 지정한 것이라든지, 4월15일 기공식에 시민과 정부 요인들이 대거 참석한 것은 그만큼 4·19혁명이 지닌 가치와 위상을 인식한 때문일 것이다. ‘4·19공원’ 조성을 주도한 경향신문 역시 폐간에서 풀려난 상태에서의 일시적 충동이나 흥분에 이끌린 것은 아닐 것이다. 4·19가 큰 혁명으로 평가돼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부정한 정권을 타도하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수립한 사실 때문이 아니다. 민주시민으로서 의무와 권리의 실행은 기본 덕목이자 가치일 터인데, 이 점에서 4·19혁명은 시민들에게 더할 수 없는 귀한 교훈을 제공한 때문이다.

60년 4.19 혁명 당시 가두 진출하는 고대생들 (출처 : 경향DB)


세월호 사태를 보면서 우리에게는 시민의 참정권은 물론 원초적 생명권마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절망감이 든다. 이 같은 잔인한 세월에 4·19혁명을 그리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4·19의 부활에 대한 기대, 이것이 1961년 4월15일의 경향신문을 새삼 떠올리게 되는 이유이다.


권오중 | 전 영남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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