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슬픈 일이 일어났다.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니 더 슬프고 안타깝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조금의 조심’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끊임없이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 후에는 조심을 누가 해야 했는가를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진다. 잘못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는지, 하청 또는 원청업체에 있는지 다투는 동안 사고는 기억에서 멀어지고, 다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한다. 조금도 바뀌는 게 없다. 지옥 같은 한국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이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물론 진단과 처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외주를 주었기 때문, 2인1조라는 안전매뉴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 원청에서 감독을 하지 않았기 때문, 노조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기 때문, 처음부터 부실공사였기 때문 등의 진단이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그리고 안전관련 업무는 원청에서 맡아야 한다, 외주를 주어도 사고책임은 원청이 지도록 해야 한다, 안전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등의 진단이 나온다. 이런 진단을 바탕으로 서울시에서 근본적 변화를 꾀하려는 것 같은 움직임도 보인다.

그런데 개선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서울지하철에서는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누적적자가 수조원에 달한다. 스크린도어 정비업무를 외주로 넘긴 것은 크게 누적된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 업무를 직접 서울지하철에서 맡게 되면 2인1조 규정을 지키게 될 것이고, 당연히 적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사고 감소를 위해 적자를 계속 더 늘리는 일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안전업무를 서울지하철에서 맡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사고의 핵심 원인은 서울지하철의 누적적자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고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지하철 적자문제의 해결은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구조조정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는 것, 무임승차를 폐지하고 요금을 올리는 것, 세금으로 적자를 보전하는 것 등이 여기저기에서 제시되는 방안이다. 모두 타당성이 있지만 반발도 많다. 구조조정은 노조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요금인상은 시민들이 반발한다. 세금지원은 무상급식 도입 때처럼 찬반 논란을 크게 유발할 것이다.



이번 사고의 책임자에게는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될 것이라 한다. 지난 7월에 6명이 사망한 한화케미칼 사고에도 과실치사가 적용되었다. 한화 사고의 경우에는 책임추궁이 그 정도면 될 것 같지만, 이번에는 그것으로는 모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2인 중에 1인이 열차가 오는지 망을 보지 않으면 사망사고가 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1인만 보내서 작업을 하게 했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이 서울지하철의 누적적자라면 낮은 요금을 내고 지하철을 탄 나 자신도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지하철 요금을 올리는 게 이런 살인에 가까운 사고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면 상당한 수준의 요금인상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정비나 운전 등 각종 안전업무에 2인1조 식의 매뉴얼을 지킬 경우 발생하는 비용의 일부는 서울지하철에서 감당하는 것도 필요하다. 작업환경이 크게 나아진다면 급여는 내려가도 된다는 생각도 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앞서서 시민들의 기본적인 이동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요금이 올라가면 가까운 거리의 이동에도 제약을 느끼는 시민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결국 세금을 통한 적자보전에 대한 논의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울시의 재정적자도 상당한 수준이니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 한다. 모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서울지하철 사망사고도 잊혀지고 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애도와 더불어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언젠가 바꿀 수 있을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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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직업훈련원이 되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들리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대학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고등교육 기관이라는 정체성을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대학은 점점 더 ‘취업’과 ‘생존’을 위한 기관으로 변질되고 있다. 학생은 학점을 잘 받기 위해 교수에게 잘 보이고, 교수는 학생들에게 강의평가를 잘 받기 위해 관계를 맺는다. 그러니 스승과 제자도 없고, 그저 각자의 목적을 위한 살벌한 비즈니스 관계가 되고 만다.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29일 열린 2013 전국비정규직교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비정규직 교수들은 교원 지위 확보와 고용안정, 처우보장 등을 요구했다_경향DB


대학사회가 이렇게 황폐해지고, 교수가 학생들에게 강의평가를 잘 받으려는 이유가 지난 8월29일자 경향신문의 ‘무늬만 교수’-커버스토리에서 보인다. 대학에서 교수는 정년직과 비정년트랙(이하 비정년직)으로 구분이 되는데, 특히 비정년직 교수는 최근 5년 사이에 정년직 교수보다 더 많다고 한다. 평균 연봉은 2000만원도 안되고, 과중한 업무, 정년직 교수와의 갈등, 잦은 재계약, 정규직으로 전환되려면 학생들의 의견이 담긴 강의평가와 대학이 내리는 평가를 잘 받아야 하는 환경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진정한 의미의 교육’은 죽어가고 있다.

이 비현실적인 대학 사회의 ‘알고리즘’은 언제까지 돌아갈까. 이러한 현실에서 대학에서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과연 건강한 사회인이 될 수 있을까. 청년실업을 걱정하기 전에 청년을 길러내는 대학의 생태가 바로잡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건강한 인재, 창의적인 인재들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당국은 하루빨리 대학의 건강한 생태를 위한 대책을 세워 대학 본래의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


이은미 |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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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다. 국회에서는 정개특위를 중심으로 선거제도에 관한 큰 윤곽이 논의되고 있으며,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는 의석수의 변화와 이에 따른 선거구 조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선거제도 전반에 관한 개혁 요구가 대두되고 있다.

사실 선거제도 개혁은 매 총선마다 제기되었던 단골메뉴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간의 개혁 논의가 개혁의 당사자인 정당과 소속 국회의원들에 의해 주도됨에 따라 결국 이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최소한의 변화로 이어졌기에 사회적인 비난의 역풍을 받곤 했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정치권은 정개특위에 중요한 결정들을 위임하여 자율성을 부여하였고, 정개특위 역시 다양한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원회에 구체적인 쟁점들을 논의토록 하면서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파격적인 선거제도의 개혁이 현실화되리라는 희망 섞인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이러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 공산이 커졌다. 지역구 확대와 비례대표 축소로 요약되는 새누리당의 최근 움직임은 이번 개혁 논의도 기득권 유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졌음을 알려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 요구의 핵심에는 대표성의 확대가 있다. 대표성의 측면에서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1위만 당선되는 단순다수소선거구제의 특성상 당선자 아닌 다른 후보들에게 던져진 유권자들의 표는 그 가치를 잃게 된다. 이른바 ‘사표(死票)’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우리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표’의 비율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최근 세 차례의 총선만 보아도 ‘사표’의 비율은 17대 49.99%, 18대 47.09%, 19대 46.44%에 이르러 거의 절반에 달하는 유권자들의 선호가 ‘버려지고’ 있다. 대의제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우리의 민주주의제도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둘째, 소위 ‘지역주의’에 기댄 거대정당의 독과점 구조이다. 단순다수소선거구제가 군소정당보다는 거대정당에 유리한 제도인 데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주의와 맞물려 지역주의에 기대고 있는 두 개의 거대정당들이 각각 자신의 지지기반에서 의석을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다. 문제는 양대 정당들에 던져진 유권자들의 표가 그 비율에 비해 과도하게 의석수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19대 총선의 경우, 새누리당이 영남지역에서 획득한 득표율은 54.7%인 데 반해 이 지역 의석점유율은 94%에 이르며, 새정치민주연합은 호남지역에서 득표율 53.1%보다 훨씬 높은 83.3%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지역주의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한 수도권 등을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해보아도 양대 정당인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각각의 득표율 43.3%, 37.9%보다 높은 52%, 43%의 지역구 의석점유율을 차지해 제도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결국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많은 유권자들의 선호가 반영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나마 반영의 과정에서도 왜곡이 나타남으로써 대의제민주주의가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선거제도가 대표성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은 익히 알려져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의 방안도 이미 나와 있다. 단순다수소선거구제로 인해 지역구 선거에서 발생하는 사표의 문제와 거대정당의 과대대표는 ‘비례대표의 확대’를 통해 완화, 개선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현행 246석과 54석으로 나누어져 있는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을 2 대 1 혹은 1 대 1로 조정하여 비례성을 강화하고,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점유율 간의 연동을 강화하는 것이 대표성 문제 해결을 위한 정답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올 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제시안에서도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 2 대 1 조정안이 주요 개혁의제로 등장하였다는 점은 개혁의 핵심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는 개혁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갇혀 ‘대표성의 확대’라는 민주주의의 원칙보다는 스스로의 기득권 유지에 목표를 둔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 개혁의 의미가 퇴색될 것은 자명하다.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일컬어진다. 유권자들이 스스로의 선호를 정치권에 전달하고 이를 통해 주권의 ‘주인’으로서 ‘대리인’을 통제할 수 있는 중요하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선거개혁의 당사자들은 유권자들이 왜 정치권에 비판적인지 직시하고, 부디 ‘대표성의 확대’라는 개혁의 핵심원칙을 저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유성진 |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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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는 싹수의 방언이다. 언제부터인가 특정 지역의 방언에 지나지 않는 ‘싸가지’가 지역에 상관없이 널리 쓰이고 있다. ‘싸가지’는 ‘싹’에 접미사 ‘아지’가 붙은 꼴이다. ‘강아지, 망아지, 바가지’에서 보듯 ‘아지’는 ‘작은 것, 어린 것’을 가리킨다. 따라지(보잘것없는 사람), 모가지 등처럼 작은 것을 가리키되 비하하는 의미를 덧붙이기도 한다.

‘싹수’와 ‘싸가지’는 의미와 용법에서 차이가 있다. ‘싹수’는 ‘있다’ ‘없다’ ‘보인다’ ‘노랗다’ 등과 잘 어울린다. 그러면서 ‘장래성, 가능성, 희망’이라는 비유적 의미를 지닌다. 반면 ‘싸가지’는 주로 ‘있다’ ‘없다’와 어울려 ‘버릇이나 예의가 있고 없음’을 나타낸다.




‘싸가지’는 부정어 ‘없다’를 생략하고 의인화해 ‘걔, 싸가지네’처럼 쓰기도 한다. ‘싸가지’에 ‘버릇이나 예의가 없는 사람’이란 부정적 의미가 생겨난 것이다. 이때 ‘싸가지’는 ‘싹수’와는 전혀 다른 뜻을 갖는 새로운 말인 셈이다.

지금도 ‘싸가지’는 ‘내 사랑 싸가지’에서 보듯 친근하고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말로도 의미를 넓혀가고 있다. 이처럼 ‘싹수’와 ‘싸가지’는 의미뿐만 아니라 쓰임새가 많이 다르다. 그래서 ‘싸가지’를 방언으로 묶어두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싸가지’에게 표준어 대접을 해주는 것을 고민해봤으면 한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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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뉴스 페이지를 열면 우울한 얘기투성이다.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삼킨 28살 청년 노동자 이야기며, 부자 동네 강남이 세금은 제일 안 낸다는 통계, ‘오류투성이 국정 교과서’ 소식. 거기에 홈플러스 인수전에 뛰어들어 논란이 된 국민연금이 지난해 가장 많이 투자한 주식 종목은 삼성전자라는 뉴스까지 읽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가운데 순식간에 화가 솟구친다.

심지어 220억원을 들여 만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민족문화사전)에 친일부역자들이 독립운동가들로 둔갑해 있더라는 소식까지 더해지니 금방이라도 마음에 몹쓸 병이 날 것 같다. 그래, 그렇지. 그게 바로 ‘11년째 내내 자살률 1위’를 지킬 수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저력이라는 거지, 하며 남의 얘기인 듯 냉소하게 된다.

하지만 난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그보다는 되레 ‘개 발바닥만 들여봐도 너무 좋아서 더럽게 오래 살고 싶다’고 했던 어느 노작가의 말을 곱씹으며 인생 구석구석을 가능하면 더 많이, 더 오래 음미하자는 주의다. 그 때문에 사실은 냉소랑도 별로 안 친하고 싶다. 우울증은 정신 건강에 나쁘고, 냉소는 두뇌 건강에 해롭다. 진짜다. 냉소적인 불신을 가진 사람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그러다 문득 오늘 점심엔 뭘 해 먹을까 생각한다. 오징어랑 양배추, 청량고추 팍팍 썰어 넣고 매콤하게 끓인 해물짬뽕이 어떨까? 아니면 통새우와 마늘을 넣은 올리브 오일 파스타? 아니다. 얼마 전 평창군 농업기술센터에 갔다가 어느 책자에서 봤던 비빔국수 생각이 난다. 정확히 복숭아 열무김치 비빔소면. 평소 자주 해 먹던 열무김치 비빔국수 조리법에 인근 농가에서 생산된 복숭아 두 개만 보태면 된다. 복숭아 하나는 강판에 갈아서 양념장에 넣어주고, 다른 하나는 채 썰어 열무국수와 같이 설렁설렁 무쳐주면 된다. 이마에 땀이 나도록 육체노동을 하다가 문득 그 생각을 하니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입 안에 침도 고이고.

<런치 박스>라는 제목의 인도 영화가 생각난다. 잘못 배달된 도시락에 얽힌 사랑 영화였는데 특별히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영화 <런치박스>_경향DB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로 꽉꽉 들어찬 지옥철, 지옥버스를 타고 50년 가까운 세월을 아등바등 서서 출퇴근했다는 남자가 땅값이 올라서 묘지에 들어갈 관조차 세로로 맞추어야 한다며 푸념하는 대목이다. 죽어서도 앉거나 누울 수가 없는 거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오늘날 단테가 살고 있다면 <신곡>의 지옥편 개정판에 현대 대도시의 생활 양상을 집어넣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그릇의 음식이, 그리고 조그만 가능성을 품고 있는 한 조각의 사랑과 관심이 너나 할 것 없이 비참하고 비루한 우리의 일상을 보다 살 만한 것이 되도록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다는 거. 그게 바로 영화의 핵심이었던 것 같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도 생각난다. 물류 창고 같은 곳에서 일하는 모습으로 봐서 주인공 이치코는 도시에서 흔해 빠진 변변찮은 청춘이다. 그런 그녀가 눈이 내리면 고립되기 십상인 첩첩산중 고향 마을로 돌아가 살기 위해 요리도 하고 농사도 짓는 이야기다. 그것도 혼자서. 그런데 그 모습이 그렇게 예쁘고 씩씩할 수가 없다. 심지어 연신 군침이 도는 가운데 고귀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학창 시절 갑자기 사라져버린 엄마. 그때부터 줄곧 혼자 요리하고 혼자 먹었던 모양인데 스스로를 위해 제철 재료를 마련하고 천천히 시간과 공을 들여 요리라는 과정에서 건강하고 단단한 자기애가 느껴진다고 할까? 심지어 돈 없는 청춘이 제 손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역시 판타지인가, 싶기도 했고.

<여행하는 나무>라는 책을 쓴 일본의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가 그랬다. 우리 인류에게는 ‘오늘 아침 신문에 무엇이 실려 있었고, 나의 친구는 누구이며, 누구에게 빚이 있고, 또 누구에게 얼마의 돈을 빌려줬는가를 잊어버릴 수 있는 신성한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마음의 안식을 되찾을 수 있는 곳. 말하자면 마음의 고향 같은 곳 말이다.

모르겠다. 이 세상이 아무리 암담해 보여도 난 먹는 것 때문에도 자살하고 싶지 않다. 정확히 정성껏 요리해서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 때문에도 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 특히 제철 식재료가 지천인 시골에서는 더욱 그렇다. 방금 전 수확이 끝난 이웃의 양배추밭에서 삶거나 튀겨 먹을 만한 새싹을 한 바구니 가득 따왔다. 그런가 하면 뒤뜰에는 해도 잘 안 드는 곳에 겨우 세 그루 심었을 뿐인데 얼마나 많은 꽈리 고추가 열렸는지 즐거운 비명이 흘러나올 정도다.

“이것 봐. 한 뼘 땅 뙈기가 완전 보물 창고라니까. 이렇게 많이 열렸다니. 이렇게 예쁘게 윤기 나는 꽈리 고추가! 오늘은 이걸로 뭘 해 먹을까?”


김경의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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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난니 모레티 감독의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두 가지 질문을 안겨주었다. 창작자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그리고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현실이란 어떤 것인가. 이런 질문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와 죽음의 문제는 창작자에게 창작의 동력인 원체험(原體驗)의 영역이다. 창작자들은 원체험의 내용을 여러 시기에 걸쳐 여러 작품으로 풀어내거나 대표작의 질료로 삼으면서 세상과 소통을 꾀하고, 나아가 불멸을 꿈꾼다.

작가의 어머니가 작품 안팎에서 동고동락하는 일화들을 기억한다. 이청준의 단편 ‘눈길’에는 눈 내린 날 이른 아침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나가 아들을 떠나보내고 아들의 발자국을 되밟아 오면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소리쳐 부르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이 어머니는 이후 작가의 다른 소설들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독자는 작가와 그 어머니와 함께한 시절을 살아온 것을 깨닫는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서두는 잘 자라는 엄마의 밤 키스를 기다리는 어린 소년 마르셀의 간절한 기원을 담고 있다. 프루스트가 이 긴 긴 작품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어머니의 사망이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어머니의 부음을 첫 문장으로 삼고 있다. 작가는 어머니의 장례식 내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아들을 등장시키지만, 실제는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반벙어리 문맹자 홀어머니 슬하에서 극빈자로 자라면서, 평생 어머니를 향해 애틋한 연민과 사랑을 바쳤다.

제54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받고 손흔드는 난니 모레티 이탈리아 영화감독_연합뉴스


난니 모레티의 신작 영화 <나의 어머니>(Mia Madre, 2015, 이탈리아)는 제목 그대로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를 떠나보낸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다. 죽음을 앞둔 어머니와 딸, 아들의 구도에서 감독이 아들의 역할을 맡아 연기하면서 삶과 죽음의 흐름을 잡아나간다. 세상의 어떤 창작품도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자전 영화’ 또는 ‘자전 소설’이라는 범주가 가능한데, 몇 가지 경우에서 그러하다. 외적인 요인으로 에디터의 요청이 있는 경우, 내적인 요인으로 생의 고비마다 작가 자신의 역사를 진솔하게 그리는 경우, 마지막으로 작가가 창작방법론으로 자전적인 내용과 형식에 초점을 두고 모든 작품을 창작하는 경우이다. 이때 자전적인 내용의 수위 조절은 작가의 의도와 기법에 따라 다르다. 작품을 읽고 작가가 처한 삶의 한 대목을 미루어 짐작할 만큼 정석적으로 현실을 그리는 경우와 여느 소설과 마찬가지로 능청스럽게 허구성을 장치하는 경우이다. 자전 소설 작가로 프랑스의 아니 에르노가 있고, 자전 영화 감독으로 일본의 가와세 나오미가 있다. 아버지, 어머니의 가족사로부터 출발해서 자신의 사랑 현실을 낱낱이 소설화한 아니 에르노는 직접 겪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반면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평생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을 몇 편 쓰는데, 애도 또는 추모의 형식을 띤다. 이번 난니 모레티의 <나의 어머니>처럼.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교수·한국어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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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맘때면 세법개정을 두고 공방이 거셌다. 언제든지 심의하는 일반 법안과 달리, 세법 논의는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을 쌓아 놓았다가 정부안이 발표되는 8월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조용한 편이다. 이명박 정부 내내 부자감세가 쟁점이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2013년 소득세(연말정산 변화), 2014년 담뱃세 논란이 있었건만 올해 정부 세법개정안은 밋밋하다. 업무용 자동차 과세, 고가품 개별소비세 완화 등이 있으나 전체 세금 지도에서 보면 주변적 이슈다.

그래서 심각하다. 우리나라 재정 형편이 이리 한가로운 세법개정안을 다룰 때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10조원대에 머물던 재정적자가 박근혜 정부 임기 첫해 23조4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임기 안에 재정균형 수준에 도달하겠다며 잡은 2015년 적자 목표가 17조원이었는데, 어느새 46조5000억원으로 대폭 상향됐다. 올해 중앙정부 총수입 대비 무려 12%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재정 상태가 이러한데도 정부의 진단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세입 부족은 경기침체, 메르스가 원인이고, 세출 절약을 위해 복지 구조조정에 나서겠단다. 늘 경기 부진 탓이고, 취약계층 복지가 희생양이다. 핵심을 직시하자. 재정적자의 근본 원인은 세입이 너무 적기 때문이고, 복지마저 이 장벽에 부딪혀 있다. 프랑스, 스웨덴만큼은 바라지도 않는다. 국제 평균은 지향해 가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부담률은 2013년 약 GDP 24%로 OECD 평균 약 34%에 비해 10%포인트 낮다. 복지지출 역시 약 GDP 10%로 OECD 평균 약 21%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낮다. 세입과 복지에서 모두 GDP 10%, 올해 GDP 1500조원으로 계산하면 150조원을 채워야 한다.

더 거두기 어렵다고? 없는 건 세원이 아니라 정부 의지이다. 우선 이명박 정부가 깎은 대기업 적용 법인세율을 원상회복하자. 정부는 비과세 감면 축소로 일부 증세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 올해 연구개발비 세액공제만 3조원이다. 모든 기업에 세금을 더 내라는 것도 아니다. 이윤이 생길 때만 내는 게 법인세이다. 재벌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안에 막대한 현금성 자산이 존재하고, 사회보험료 기업 몫도 외국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지 않은가.


2015 세법개정안 주요 내용_경향DB


구멍투성이 소득세도 정비하자. 근로자는 버는 만큼 세금을 내는데 왜 자산을 가진 금융소득자는 예외인가. 이자, 배당으로 번 2000만원까지는 누진세율이 아니라 14% 단일세율 혜택이 제공된다.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조금 개선되었지만 현재 종목당 시가 50억원까지는 주식양도 차익에 세금이 없다. 소득세율 최고 구간도 올릴 수 있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41.8%가 OECD 평균 43.6%와 비슷하게 보이나(지방소득세 포함), 동구권 6개국을 제외한 나라들의 평균 47.2%에 비하면 여전히 낮다. 한 해 3억원 넘게 벌며 외국에 가끔 나간다면 이 정도는 내야 부자 값을 할 수 있다.

증세 이전에 지출 수술이 급하다는 제안도 있다.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등 물증이 넘친다. 세월호를 생각하면 현 정부에 세금 내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빈약한 세입을 방치할 수도 없다. 재정은 세입과 세출의 짝이지만, 구체적 내역은 독립적이기에 동시 과제이다. 박근혜 정부가 ‘증세 없는’ 국정을 고집하는 배경에는 재정 제약을 구실로 삼아 복지 민심을 억누르려는 의도도 있다. 고령화시대 복지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물결이다. 근래 복지를 위해서라면 세금을 더 내겠다는 여론도 과반이 넘는다. 새로 걷는 세금은 복지에만 사용하는 사회복지세를 도입하면 재정 불신도 우회할 수 있다.

안다. 이 주장이 박근혜 정부에 쇠귀에 경 읽기란 걸. 국정 운영자가 재정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인 게 대한민국 현실이다.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갈까? 우리나라만큼 세금 정의 열정이 뜨거운 곳이 있을까? 조세 저항 역시 정의를 갈망하는 민심의 표현이다. 몇 해 전부터 시민의 세금 관심은 무척 높아졌음에도 이를 집약하는 좌표가 분명치 않다. 세금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선 ‘구체적 목표’가 필요하다.

법인세든, 사회복지세든 또 다른 무엇이어도 괜찮다. 올해엔 하나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해 시민, 노동자가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세금운동이 시작되길 기대한다. 야당은 시야를 국회 밖으로 넓히고, 시민단체도 세금 단일전선 모색에 힘을 모으자. 정부 세법개정안은 더 이상 대한민국 세금 논의의 준거가 되지 못한다. 복지민심의 단일 개혁안으로 ‘세금 정의’ 열매를 하나씩 맺어가자.


오건호 |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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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소통방식이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덕분에 불통 대통령, 불통의 리더십 같은 앞뒤가 맞지 않는 새로운 용어들이 생겨나고 있다. 불통을 가리키는 속담으로는 마이동풍, 우이독경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속담들이 있는 것을 보니 옛사람들도 불통 때문에 답답한 상황을 많이 겪은 모양이다. 불통에 대한 여론이 들끓자 청와대는 자주 얼굴을 맞대고 만나겠다고 한다.

자주 만나면 소통이 되는가? 물론 자주 만나면 소통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집단의 소통이 쉽게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전문영역인 퍼실리테이션의 입장에서 보면 소통은 모든 전제와 의견, 판단을 유보한 상태에서 대화를 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소통을 위한 대화의 규칙 다섯 개를 보면 소통이 무엇인지를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규칙은 이와 같다. ‘모든 사람은 지혜를 갖고 있다. 가장 지혜로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의 지혜가 필요하다. 틀린 견해는 없다 (다를 뿐이다). (대화를 통해 도달하는 지혜)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들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대화 참가자 누구도 지배적인 지위를 내세우지 않으며 모두의 견해와 입장에 완전히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천재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은 대화론(On dialogue)에서 입장을 이미 정해놓고 서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토론’과 모든 전제와 의견을 유보하고 서로를 이해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대화’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하였다.

소통을 위해서 모든 전제를 내려놓아야 하는 까닭은 우리 모두 ‘불완전하고 다르므로’ 누구도 주변 세상이나 사건의 온전한 실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차이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오감(五感), 이에 대한 정서적 반응, 해석과 의미부여, 의사결정의 4가지 수준에서 나타난다. 이 4가지 수준은 인간이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가장 보편적 절차로서 진정한 소통은 이 4가지 수준 모두를 포괄해야 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비유에서처럼 객관적 사실에 대한 우리의 지각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선택적 인지 때문이다. 그래서 코끼리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장님들이 모여 각자 발견한 것을 종합해야 한다. 이런 접근이 가능하려면 자신의 오감을 의심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26일 청와대에서열린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모두발언을통해 국회에서 넘어온 국회법에대한 거부의입장을 밝히고있다._경향DB

정서적 반응도 매우 중요하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어떤 사람은 경기(驚氣)를 일으키고 어떤 사람은 무덤덤하다. 이처럼 정서적 반응이 다른 것은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무덤덤하더라도 경험이 뇌 속에 ‘경기’의 회로를 만들어놓은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추어야 소통이 가능하다.

해석과 의미부여도 소통이 되어야 한다. 9·11에 대한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의 해석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하겠지만, 소통을 위해서는 내가 기독교도라 하더라도 이슬람교도의 해석을 적어도 이해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결정 또한 소통이 되어야 한다. ‘당신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군요. 그러나 나는 이 길을 갈 겁니다. 우리가 다른 길을 가더라도 서로 이해는 합시다’라는 태도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박 대통령이 진정한 소통을 한다는 것은 아직은 어려워 보여 안타깝다.

숨 막히던 무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 가을바람처럼 선선한 소통이란 무엇인지 되새겨보자. 남과 북, 호남과 영남, 기업과 노조, 기성세대와 삼포세대 사이에 이런 완전한 소통을 불러일으켜 우리 사회를 선선한 가을바람으로 가득 채울 수는 없을까? 남한강과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나 도도하게 흐르는 한강을 만들 듯이 서로 다른 입장들이 어우러져 거대한, 새로운 의미의 강을 만들게 할 수는 없을까?


신좌섭|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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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오늘부터 사흘간 중국을 방문한다. 박 대통령은 중국 방문 기간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전승절과 열병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임기 반환점을 돈 이후 첫번째 해외출장이자 집권 3년차 하반기 정상외교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일상적인 정상외교 측면에서 재량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외교적 환경과 입지가 달라졌다. 특히 남북이 ‘8·25 합의’를 통해 대결 시대를 종식하고 대화 시대로 진입한 것은 한국의 국제사회 발언권을 크게 높였다. 그러잖아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기왕의 수동적, 소극적인 한국외교 기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점점 더 분명해지는 상황이었다.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중국의 전승절과 열병식 행사를 ‘군사 굴기’로 보는 미국과 일본의 불편한 심기 속에 이뤄지는 것이다. 전승절 행사에는 두 나라를 비롯한 서방국 정상 모두가 불참한다. 당초 한국은 중국의 전승절 참석 초청을 받고 미국과 중국의 입장을 가늠하며 행사가 임박해질 때까지 참석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국의 처지를 두고 ‘눈치외교’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악수를 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_연합뉴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박 대통령이 전승절에 참석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 자체가 한국 외교의 변화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이제 와서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릴 수도 없고 뛰어내려서도 안된다.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동북아 정세를 끌어가야 한다. 박 대통령은 적극적, 능동적 외교 기조를 당장 이번 중국 방문에서부터 구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국이 한국의 성의에 상응하는 선물을 줘야 할 입장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의 당면 과제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중국을 설득하는 것이다. 북한의 10월10일 노동당 창건일 기념 장거리 로켓발사 억제가 최우선적인 공동대응 사항이다. 북한 및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 증대는 교착상태인 6자회담 재개의 불씨를 살리는 전제 조건이다. 양국이 그런 점을 확인한다면 한국의 중국 경사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을 불식하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중·일 정상회의의 연내 개최도 동북아 안정을 위한 중요 외교 목표이다. 3국 회의가 성사되면 한·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져 동북아 정세가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베이징행이 외교적 전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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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어제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과 같은 신종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을 확정했다. 현재 1급인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해 질병관리본부(질본)로 하여금 신종 감염병 발생 시 방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도록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질본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총리실·보건복지부·국민안전처는 이를 지원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큰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 메르스 사태에 대한 후속 대책으로는 매우 실망스럽다. 메르스 사태에 대한 철저한 원인 규명이나 책임 추궁, 인적 쇄신 작업 등은 도외시한 채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복지부의 몸집만 키워주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는 방역 당국의 초기 대응 실패에서 비롯됐지만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정부의 컨트롤타워 부재였다. 복지부 산하 중앙메르스대책본부, 청와대 내 메르스 긴급대책반, 국민안전처 산하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 등으로 책임부서가 산재해 있어 질본이 감염병 통제를 주도적으로 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평소에도 조직 운영이나 인사, 감염병 관련 권한이 복지부의 필요에 따라 행사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의료계와 학계 등에서는 질본을 복지부에서 분리해 청이나 처로 승격시켜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을 국가방역체계 개편의 핵심으로 주장해왔다.



한국 질병관리본부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_경향DB



하지만 이번 개편안은 이마저 외면했다. 질본을 복지부 산하에 그대로 둔 채 차관급 기관으로 격상한 것이다. 질본의 독립성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효과는 의문이다. 여전히 복지부 장관의 지휘를 받기 때문이다. 본부장에게 일임한다는 예산·인사권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예산 총액과 일부 직급에 대한 인사는 복지부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질본 독립성 강화를 핑계로 복지부에 차관급 자리만 하나 늘려준 꼴이 된 것이다.

질본에 필요한 것은 독립성 강화뿐이 아니다. 조직 정상화도 시급하다. 메르스 초동 대응에 실패한 데는 질본의 무능과 무사안일이 한몫했다. 질본이 차관급 조직이 아니거나 독립성이 없어서 메르스 확산을 막지 못했다고 할 수는 없다. 질본의 전신인 국립보건원이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에 모범적으로 대응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조직 구성원의 전문성과 소명의식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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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가득한 세상이다. 신문기사나 사회관계망에 오른 글들에는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들이 댓글로 달리곤 한다. 영화 <베테랑>이 단숨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데에도 ‘분노의 공감’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현상을 논하는 자리에서 ‘분노 게이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온라인게임에서는 분노 게이지가 전투력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분노 게이지를 높이기 위해 자신을 욕해달라고 주문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장면을 보며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은, 이 사회의 분노 수위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는 진단 때문이다.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는 말이 있다. 솔개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물에서 헤엄치며 뛰노는 모습으로 ‘천지자연의 모든 것들이 도에 합당한 자기 자리를 얻은 상태’를 형상화한 말이다. 자신이 뭘 잘하는지 발견해 가고 평생 마음 나눌 친구들을 얻는 학교가 학생이 날아올라야 할 하늘이고, 약자를 위한 법 집행이 이루어지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사회가 시민이 노닐어야 할 물이다.

자기 자리를 얻지 못하는 데에서 분노는 시작된다. 아이의 멋진 상상력이 물에 빠진 솔개의 날개 취급을 받고 청년의 당찬 도전이 물 밖에 던져진 물고기의 몸부림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답답함은 분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마땅한 것을 누리는 데에 과도한 경쟁이 요구되고 그 경쟁마저 공정하지 않다는 의식이 팽배하니 분노는 극단적으로 쌓여간다. 누구에게 무엇을 빼앗겼는지조차 모른 채 증폭되는 분노는 온갖 의혹과 과도한 억측으로 이어진다. 그 속에서 정작 분노의 대상은 숨어버리고, 허공에 휘두르는 주먹처럼 날선 비방만 난무한다.

모든 존재는 자기 자리가 있게 마련이라는 말은, 입 다물고 자기 본분에나 충실하라는 가르침으로 통용돼 온 면이 있다. 그러나 모든 존재가 자기 자리를 얻을 수 있게 해주어야 진정한 정치라는 당위와, 그렇지 못할 때 끝까지 비판하고 나설 수 있게 한 명분 역시 여기서 나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구난방으로 솟구쳤다 이내 소멸되며 더 큰 체념으로 이어지는 분노가 아니라, 내가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가 어디이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마땅한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 위에서 일어나는 ‘마땅한 분노’이며, 이 분노를 생산적인 힘으로 만들어갈 지혜다. 이 시대에 인문학이 필요하다면 이런 이유에서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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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늦게 시작한 독서는 내 삶을 180도 바꿔 놨다. 나밖에 모르고, 사회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없던 내가 이제는 사람들 앞에 서서 사회 정의에 대해 떠들고 있으니, 뽕나무밭이 바다가 된 격이다. 책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킬까?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독서가인 CBS 정혜윤 PD는 이렇게 말한다.

“책에는 좋은 말이 많잖아요. 요즘 세상에서 책이 아니면 그런 말들을 어디서 듣겠어요? 그 말들을 듣다 보면 스스로 변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지난달,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가면서 6권의 책을 가져갔다는 게 보도됐다. 휴가지에서 책을 읽는 대통령이라니, 멋져 보인다. 그가 가져간 책들은 다 나름의 의미를 지닌 것들이다. <저지대>에 대한 해설을 보자.

“1960, 1970년대 인도와 미국을 배경으로 시대와 개인,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거기에는 이런 멋진 말도 나온단다. “죽음 앞에서 우린 평등해. 그 점에선 죽음이 삶보다 나은 것 같아.”(93쪽) <올 댓 이즈>도 한 남자의 삶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사는 게 어떤 것인지를 말해 주는데, 이런 책들을 읽으면 삶이 무엇인지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섯 번째 대멸종>은 지구에서 사라져 가는 생명체들의 이야기로, 개발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겠다. 비단 오바마만이 아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나 3대 대통령인 제퍼슨은 장서가 수천권인 애서가였고, 후임 대통령들 중에도 알아주는 독서가가 꽤 많았단다. 나름의 한계는 있을지언정 미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중요한 가치가 된 것도 이런 전통 덕분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책 하면 떠오르는 분은 1만7000권의 책을 소장했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비서실장이 골프를 권하자 이렇게 말했단다. “좋은 운동이지요. 그런데 골프 한 번 치려면 서너 시간은 걸리죠? 그렇다면 책을 한 권 읽을 시간인데, 독서가 낫지 않을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책을 좋아해, 휴가 때는 물론이고 탄핵 소추를 당했을 때도 책을 읽으며 보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떨까? 고백하자면 난 박 대통령에게 편견을 갖고 있었다. 책과 그다지 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대통령이 된 뒤 첫 번째로 간 2013년 여름휴가 때 박 대통령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모래밭에 글씨를 쓰며 놀고 계시던데, 그 사진은 기존의 편견을 더 강화시켜 줬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경남신문 기사의 한 구절을 보자.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은 무엇일까? … 바로 ‘독서’다. 박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을 방문한 기자나 보좌관들은 누구나 놀란다고 한다. 원인은 2층 서재의 박근혜가 읽은 수많은 책 때문이다.”

이번 여름휴가 때도 박 대통령은 책만 읽으며 보냈다고 한다. 오바마와 달리 박 대통령이 휴가 때 무슨 책을 읽었는지 자랑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좌파들은 ‘읽는 책의 수준이 낮아서’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출판사가 소외받을까봐”란다. 실제로 대통령이 읽었다고 공개한 책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은 바로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독서가의 한 명으로서 대통령이 책을 좋아한다니 다행이긴 하다. 좀 의아하다 싶은 건 그렇게 책을 좋아하는 분이 왜 서른 이전의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하시는 것이냐다. 말씀에 두서가 없는 것도 그렇고,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문제가 생기면 아랫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책과 담을 쌓은 분 같다. 세월호 유족들을 대하는 태도는 더욱 미스터리다. 책을 많이 읽었다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의 슬픔을 능히 헤아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분들을 무슨 기생충 보듯이 하셨으니까. 비슷한 사례가 있긴 하다. 2000년 미국 대통령이 된 부시도 독서 애호가였단다. 바쁜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2006년부터 3년간만 따져도 200권 가까운 책을 읽었으니, 대단하긴 하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그는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이라크전을 일으켰고, 평상시 모습에서도 독서를 통해 길러지는 지성이나 배려 같은 덕목을 찾아보긴 힘들다. 이분들은 도대체 왜 이런 걸까?

문제는 앎과 실천의 괴리일 것이다. 책을 읽고 아무리 좋은 교훈을 얻는다 해도 그게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다시금 정혜윤 PD의 말을 인용한다.

“책을 읽고 나서 나와야 할 진짜 좋은 질문은 ‘이 책을 읽었으니까 다음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것이에요. 이런 질문을 자기 자신한테 던질 때 책이 나를 변화시키는 조언이 될 수 있어요.”

이제 가을이다. 책을 읽고 그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자. 그렇지 않는다면 몇 트럭의 책을 읽는다 해도 변하는 건 없다.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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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불황을 떠올릴 때마다 늘 유로화의 위기가 함께 거론됩니다. 최대 진원지는 그리스입니다. 재정위기가 시작된 2010년부터 긴축으로 인한 실업과 경제난에 시달리던 그리스 정부는 결국 자체 통화 도입이라는 ‘그렉시트(Greek+Exit,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하겠노라는 벼랑 끝 전술을 벌이면서 국민투표에 부쳤습니다. 그리스 국민들은 구제금융 긴축 반대(OXI)에 60% 이상의 표를 던졌습니다. 그리스 국민들은 잠시 승리감에 도취됐습니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는 “그리스 서민층과 청년들의 승리”라는 현지 분위기를 전달했습니다.

선거가 끝난 직후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만났지만 그리스가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승리가 아니라 처절한 패배였습니다. 이후 3차 구제금융 협상이 가까스로 타결되면서 그렉시트 위기와 그리스 국가부도가 봉합됐지만 그리스에 대한 주변국의 경멸적인 태도와 그렉시트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독일의 완강한 입장만 확인한 꼴이 됐습니다.

독일의 강경한 태도를 통해 우리는 패전국이던 독일이 1991년의 재통일 후 매우 짧은 기간에 경제 강국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한스 쿤드나니는 <독일의 역습>(사이)에서 강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수출 호황과 임금 상승 억제 등으로 남아돌게 된 독일의 돈이 전 세계를 떠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결국 이 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정크 증권에도 흘러들어갔고 이때부터 남유럽에도 상당한 규모의 악성 대출을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자 당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통일로 거대해진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 통합을 추진했습니다. 두 사람은 유럽 국가들의 경제적 주권을 확보하는 최선의 길은 ‘단일 통화’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유로화입니다. 강한 마르크화 때문에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던 독일 기업들은 유로화가 도입되자 날개를 달았습니다. 유로존 주변국들의 고통을 이용해 유로화의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가져간 덕에 수출로 엄청난 ‘부당이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전문가들은 ‘무임승차’를 통해 ‘부당이득’을 취한 독일이 앞장서 “유로채권을 발행해서 상호부조 형태로 부채를 관리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독일 정치인들과 메르켈 총리는 그 해결책이 “현실적으로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채무국들에 더욱 강력한 구조 개혁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의 정치를 부활하려는 메르켈을 이념보다는 국가 간의 힘과 실리에 기반을 둔 외교정책을 펼친 비스마르크나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에 비유하고, 패전국에서 ‘유럽의 병자’가 되었다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독일을 ‘양의 탈을 쓴 늑대’로 지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독일의 첫 통일이 이뤄졌던 1871년부터 패전국으로 몰락한 1945년에 이르는 기간에 “공격적인 권력으로 행동하는 강대국의 모습 그 자체”였던 독일의 대외정책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책이 또 다른 ‘대재앙’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합니다. 세계대전이 발발할 정도의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독일 문제’에 대한 관심의 환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분단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독일 민족의 정수가 언젠가는 세계의 구원자가 될 것”이라는 ‘독일 승리주의’의 재출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중국과 러시아와는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경제와 금융서비스에만 치중한 미국과 영국 중심의 앵글로색슨 경제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게르만 경제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강상중은 <고민하는 힘>(사계절)에서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살았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와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걸쳐 살고 있는 지금의 ‘두 세기말’이 너무 닮았다고 말합니다. “19세기 말에 장기 불황과 내란 상태로 어지러웠던 유럽 여러 나라는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몰려갔습니다. 일본도 비슷한 이유로 만주 등지로 몰려갔습니다.” 이른바 ‘제국주의’의 출현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국경을 넘어 ‘글로벌 머니’가 세계를 종횡무진 ‘배회’하고 있으며 그 ‘폭주’를 막을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강상중은 막스 베버가 ‘금융 기생적 자본주의’를 “근대 자본주의의 ‘정통’ ”이라고 간주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그것이야말로 좀 더 ‘선진적인’ 자본주의의 시스템”이라고 말합니다. 한스 쿤드나니는 유럽이 “지정학적(geo-political) 딜레마에서 지경학적(geo-economic) 딜레마로” 빠져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1871년의 문제는 ‘지정학적 버전’이었지만 지금은 ‘경제 제국주의’라는 ‘지경학적 딜레마’로 바뀌었다는 것이지요.

패전국의 고통을 겪었던 독일은 절반의 주권이 아닌 온전한 주권을 행사하는 ‘정상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경화되어 평화헌법의 개정을 통해 자신들도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일본의 ‘보통 국가’론과 닮아 있습니다. 독일과 일본의 공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어쩌면 이제 새로운 수난을 겪을 준비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한기호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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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0일, 경남 진주시 대안동의 차 없는 거리에서 작은 반란이 있었습니다. 진주여고를 자퇴한 김다운양이 벌인 1인 시위였습니다. 김양은 교육제도가 잘못되었다고, 이에 동조하지 않겠다고 외쳤습니다. 공부하는 기계, 남을 이기는 도구로 전락한 자신의 비루한 모습을 내보이는 용기를 자처했습니다. 경쟁이라는 굴레에 묶여 행복할 수 없다는 김양의 호소는 이내 거리의 소음으로 사그라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삽니다. 그럼에도 교육이 학생들에게 행복할 자유를 허락한 적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행복의 고귀한 가치를 경쟁으로 갈음할 수밖에 없는 교육제도를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이 경쟁에 가담하지 않을 학생의 자발적 의지를 보호할 책임에 대해 논의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경쟁은 훌륭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경쟁하지 않겠다는 인간의 의지 역시 교육이 살펴야 할 가치입니다. 경쟁을 통해서만 행복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주입 받은 인간은 평생 다른 방법으로는 행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경쟁에 몰두한 사회에 유토피아가 건설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경쟁이 생산과 발전을 가져왔으나 사람이 자유로워졌는지는 의문으로 남았습니다.

차 없는 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김다운 학생_경향DB


교육이 현실과 타협하면서 경쟁의 내면에 숨겨진 폭력마저 정당화했는지 모릅니다. 명문대 입학, 최고의 스펙,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사람들만 행복하고, 나머지 절대 다수가 좌절하는 폭력 사회가 발현됐습니다. 교육이 눈감았던 경쟁의 원초적 폭력성은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병리현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삼포세대’로 자조되는 청년세대는 경쟁에 가담해야만 행복할 자유가 허락되는 사회체제에 환멸을 느낍니다. 경쟁에 굴종하지 않으면 의식주는 물론이고 인간의 존엄마저 위협받는 세상에 절망합니다. 이것은 자유 없는 노예의 삶입니다. 그러한 삶의 대물림을 포기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입니다. 교육이 경쟁을 상대로 인간을 지켜내지 못한 통한의 결과입니다.

생산과 발전, 경쟁논리를 도모하기 위해 다수의 행복을 희생하는 제도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습니다. 행복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증명하는 궁극의 가치입니다. 그것의 온전한 완성과 영위를 위해 ‘경쟁하지 않을 자유’가 논의돼야 합니다. 자유롭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학교를 떠난다는 김양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로 사그라져선 안될 너무나도 간절한 까닭입니다.


정우람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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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건너편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 위에 오른 사람들을 본다. 오늘로 82일째.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사내하청노동자 최정명, 한규협씨다. 인권위 건물 옥상이지만, 인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얼마 전, 광고업체가 밥과 식수조차 올리지 못하게 막아 10여일을 강제 단식을 해야 했다. 교섭 중에는 해고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기아차 사측은 광고탑 아래까지 찾아와 궐석 징계위를 열어 해고했다.

오르고 싶어서 오른 곳이 아니었다. 정작 그들을 고공으로 내몬 것은 사측이었다. 기아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정규직화 소송에 나선 것은 2011년 7월이었다. 3년 만인 2014년 9월25일 서울지법에서 468명 전원이 승소했다. 같은 내용으로 현대차 울산공장 최병승씨와 아산공장의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이미 대법원에서 명백한 ‘불법파견’으로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확정 판결까지 받았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일부’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 방식으로 하겠다는 꼼수로 법원의 판결까지 무시하고 있다. 경영이 어려워서도 아니다. 기아차만 하더라도 매년 순이익이 3조원이 넘는다.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두고 있는 돈만 100조원에 달한다. 불법파견 소송에서 승소하고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최병승·천의봉씨가 울산공장 앞 철탑에서 296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기도 했다. 이런 불법은 언제쯤이나 바로잡혀질까. 서울 도심 빌딩숲 사이로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 둘이 저 하늘 위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최정명(45),한규엽(41)씨가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전광판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6월 11일 오후 이곳에 올라왔다._경향DB



부산시청 앞 광고탑 위에도 사람들이 올라가 있다. 막걸리공장인 생탁의 송복남씨, 택시노동자 심정보씨이다. 생탁은 받들어 모셔야 하는 사장님들만 40명인 참 기가 막히는 회사다. 1970년 부산의 43개 양조장이 하나로 통합된 후부터다. 대를 이어 사장으로 군림한 일부 사장들은 배당금만 챙겨갈 뿐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다. 2011~2013년 평균 매출은 206억원. 사장들은 두 공장의 수익을 합쳐 n분의 1로 나눠 갖는데 월 2000여만원씩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많으냐고? 고작 120여명이다. 그것도 70%가 1년마다 촉탁직 계약을 하는 비정규직들이다.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 한 달에 하루 쉬고 공휴일에도 일했지만 휴일 근로수당은커녕 밥 대신 고구마 하나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권리 정도라도 달라고 올 초 노조를 설립하고 교섭을 요구하자 도리어 사람들을 잘랐다. 복수노조법을 악용해 생계가 힘든 사람들을 회유·협박해 어용노조까지 만들었다. 오늘로 139일째 부산시청 앞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지만 시청은 모르쇠다


거제도 대우조선공장 안 크레인 TTC-06호에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올라가 있다. 강병재씨다. 2011년 88일간의 고공농성에 이은 두 번째 고공농성이 벌써 144일째다. 대우조선에만 3만5000명의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모든 권리를 빼앗긴 채 일하고 있다. 정규직 고용은 고작 1만여명. 대우조선 역시 명백한 불법파견에 해당하지만, 산업은행을 통해 실제 사용주인 이 정부와 국가는 아무런 조치도 없다. 강병재씨는 지난 2007년 이 무법의 공장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최소 권익을 지키기 위해 사내하청노조를 만들려 했다는 이유로 2009년 계약해지를 당했다. 2011년 고공 철탑으로 올랐고, 2012년 말까지 복직하기로 확약서를 받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고3인 딸을 혼자 두고 다시 고공으로 올라야 했다. 그도 오르고 싶어서 다시 오른 길이 아니었다.

그들을 찾아 12일 희망버스가 출발한다. ‘더 쉬운 해고, 더 적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위해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내건 이 정신없는, 나쁜 정부를 향해 다시 나아가야 한다. 당신과 함께 이 여행을 떠나고 싶다.


시인 송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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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 파주로 사무실을 옮기기로 했다. 도올 김용옥은 만년필이 수명을 다하면 조의문을 작성한다고 한다. 그간 생각을 받아 적느라 고생한 물건에 예를 갖추어 이별을 고하는 것이다. 하물며 필기구에도 그러한 대접을 해준다는데 그간 내 마음의 의지처들과 그냥 싱겁게 헤어질 수는 없었다. 어언 10년여간 나를 품어준 인왕산과 그 아래 동네들. 효자, 통인, 누하, 그리고 옥인. 이름에서부터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사직분식에서 청국장도 먹고, 신한은행 앞 도로의 우체통 곁에서 난전을 꾸리는 할머니가 깐 도라지도 사고, 형제이발소에서 머리도 깎았다. 이 모든 게 이곳과 작별하는 마무리라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그리고 8월의 마지막 금요일. 몇몇 벗들과 달맞이를 하러 인왕산에 올랐다.



가을의 기미가 보인다지만 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리는 인왕산. 혹 꽃이 있나 두리번거렸지만 이렇다 할 꽃은 없었다. 이 환절기에 그나마 눈에 띄는 게 있었으니 누리장나무였다. 이미 꽃은 졌고, 꽃 진 자리마다 땡볕의 기운을 흡수하면서 빨간 열매가 단련되는 중이었다.

누리장나무는 꽃공부에 입문했을 때 기억에 남는 나무 중의 하나이다. 나무 앞에 섰더니 누군가 잎을 비벼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다. 쾌쾌하고 고약한 누린내가 나서 누리장나무라고 한다면서. 그러나 나에겐 전혀 그렇지가 않았으니 외려 그 옛날 몹시 탐을 내며 먹었던 원기소의 고소한 냄새가 입천장에 들러붙는 게 아닌가. 그 이후 누리장나무는 나에게 어릴 적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각별한 나무가 되었다.

드디어 정상이다. 단풍이야 일 년에 한 번이지만 이 휘황한 야경은 매일 벌어지는 압도적인 전시이다. 구름에 가려졌던 보름달도 문득 고개를 들자 우리를 확실하게 내려다보았다. 몇 병의 막걸리가 일행을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차례를 기다렸다가 한 곡조 뽑았다. 송창식의 ‘잊읍시다’. “… 가끔가끔 찾읍시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조심조심 아주 조금씩 다시 찾읍시다.” 내 졸렬한 붓끝을 대신하는 노래인 것을 알아차렸나.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웃고 있는 누리장나무. 마편초과의 낙엽 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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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500일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무엇을 해결했는지를 돌아본다. 해결된 것이 없다. 잊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잊었고, 그만 잊고 싶어한다. 아직도 세월호냐며 타박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해결하겠다고 말했지만 해결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외면하고는 다르다. 외면이 모른 척하는 것이라면 이 ‘외면’은 해결의 가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차마 죽인 이들과 떠나보낸 이들을 마주 대하기 힘들어서 고개를 돌리는 것에 가깝다. 이것이 세월호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유일하게 성공한 점일 것이다. 절망감 때문에 서로 만나려 하지도 못하는 것 말이다.

이 과정에서 더 커진 것이 있다. 유가족들의 고통이다. 고통은 시간이 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고통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진다. 특히 아무리 몸부림을 친다고 하더라도 다른 이와 나눌 수 없는 고통은 시간이 갈수록 그 고독감만 더 커질 뿐이다. 흐른 시간의 길이만큼 고통이 된다. 시간은 그 고통을 지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뿐이라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고통은 아직은 존엄하다. 고통이 절대적으로 고독한 만큼 숭고함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안간힘을 다해 고통을 견디게 하는 힘이라도 된다. 고통을 말하는 데서 뜬금없이 죄스럽게 숭고함이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통의 절대적 고독성은 나눌 수 없는 고통이기에 오히려 혼자서 짊어지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고통의 절대성에 몸부림쳐본 사람은 이 지독함의 아이러니를 알 수 있다.


시민들이 세월호 희상자들의 사진을 걸어 만든 '기억의 문' 아래로 지나가고 있다._경향DB



고통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 때문이다. 고통을 혼자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려고 할 때 고통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고통은 그 절대적인 고독함으로 인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신이 느끼는 고통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 고통을 당한 사람이 느끼는 일차적인 상태는 ‘소외’다. 자신이 가진 그 어떤 언어로도 자신의 고통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한편에서는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의 언어로부터 소외된다. 고통을 당하는 몸과 그 고통을 당하는 언어, 이 양쪽 모두로부터 소외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힘든 고통이다.

더구나 고통을 해결하려고 할 때 고통을 당한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타인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는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호소할 수 있는 말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통을 해결하려고 할 때 고통을 당한 이는 ‘타락’해야 한다. 그는 고통을 ‘협상’해야 하고 타인의 언어와 ‘타협’해야 한다. 해결하기 위해 점점 더 진부한 말로, 점점 더 상투적인 말로 고통을 호소해야 한다. 자신의 고통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언어와 ‘타협’해야 한다. 그렇게 호소할수록 고통은 점점 더 멀어지고 고통받는 이는 고통 자체로부터 소외된다. 고통을 당한 몸, 고통에 대한 언어에 이어 고통 자체로부터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에게 남는 것은 ‘타락’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세월호의 유가족들과 그 곁에 선 이들은 이 고통의 타락을 감수하고 있다. 자신의 고통의 절대적 고독감이라는 ‘미학’에 빠지지 않고 해결을 위해 타락의 고통을 감수하기로 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존엄을 버려야지만, 존엄을 버리는 ‘비장함’조차 버려야지만 가능한 말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잃은 고통’을 넘어 이제는 이들의 이 마지막 고통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자신의 고통을 절대화한다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이 고통의 타락, 타락의 고통을 조롱하며 이들을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인가. 아니면 응답할 것인가.


엄기호 문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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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2일 오전 9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의 항복 문서 조인식이 열렸다. 군인과 민간인 1억명 이상의 인명을 앗아가고 전쟁비용으로 총 5조달러가 들어간 인류역사상 최대의 재앙이 막을 내린 것이다.

일본 도쿄만에 정박 중인 미 군함 미주리호 갑판에 9개국 연합국 대표가 참석했다. 중국 대표인 쉬융창(徐永昌) 상장은 미국에 이어 2번째로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조인식 이튿날, 일본의 항복 문서가 공식 발효한 9월3일을 중국 정부는 전승절(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로 지정했고 이후 해마다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 중국에 2차 대전 승리는 1842년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영국에 진 이후 100년 만에 외국과의 전쟁에서 처음으로 이겼다는 의미가 있다.

올해 전승절 행사가 각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베이징 톈안먼 광장을 가로지르는 군사 퍼레이드, 열병식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은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해마다 국경절(10월1일)에 열렸다. 장쩌민 주석 시절에는 1999년 건국 50주년, 후진타오 주석 시절에는 2009년 건국 60주년에 대규모 열병식이 열렸다.

그런데 중국이 이번에는 국경절이 아닌 전승절에 열병식을 열고, 외국 정상들을 초청했다. 시진핑 주석은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계기로 국내외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그는 전체 국민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렸고, 반부패 정풍운동 여파로 어수선하지만 현 체제가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한 첨단 무기를 선보이고 200대의 비행기, 1만2000명이 넘는 병사들의 패기 넘치는 행진을 통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번 열병식에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과 후진타오 전 주석이 불참한다고 한다. 건강상 이유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시진핑 주석이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국제사회에 중국이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는 강한 나라임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중국은 50개국이 넘는 국가 정상에게 초청장을 보냈지만 국가원수 참석자는 박근혜 대통령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비롯해 30개국 정상으로 결정이 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_경향DB



중국과의 전통적인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상하이협력기구 회원국 정상들이나 남미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이나 중국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아프리카 수단의 알 바시르 대통령이 참석한다. 지난 5월 러시아가 2차 대전 전승절 기념행사를 위해 70개 국가 지도자를 초청했다가 26개국 정상이 참석한 것과 비교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표이다.

하지만 풍성한 잔칫상을 마련한 중국 입장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이다. 미국은 중국의 군비 증강을 못마땅해하는 입장이어서 오바마 대통령이 불참을 선언했다. 유럽은 미국의 불참이 부담스러운 데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갈등 때문에 대부분 불참했다. 그렇다고 유럽이 늘 미국 기색만 살피는 것은 아니다. 중국 주도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만들 당시 유럽은 미국이 불참했는데도 앞다퉈 베이징으로 달려갔다. 나라마다 국익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동남아 국가 정상들도 대부분 불참했다.

중국과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중국의 군사 퍼레이드가 강 건너 불구경일 수 없기 때문이다. 베이징 외교가에는 이번 열병식이 중국 국제관계의 거울이었다면서 열병식 이후 중국이 새롭게 대외관계를 짤 계획이라는 풍문이 나돌고 있다. 참석한 나라와 불참한 나라를 친구와 적으로 분류해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미국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반대를 무릅쓰고 열병식 참석을 고심 끝에 결정했다. 중국이 우리나라 최대의 무역상대국이며, 북핵을 비롯한 북한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인 데다 항일전쟁 당시 두 나라가 손잡고 일본과 전쟁을 벌였던 인연을 감안해서였다.

물론 이런 결정에는 남북관계,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중국과 일본,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우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 이런 변수를 두루 고려했다. 이전에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선택한 만큼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자칫 성과 없이 빈손으로 끝날 수도 있다. 득실을 따지기에는 아직 이르다. 앞으로 한국 외교가 ‘고래 싸움에 낀 새우’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지렛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홍인표 고려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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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학령인구 급감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대학 교육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추진해온 대학구조개혁평가 결과를 어제 처음으로 발표했다. 전국 일반대학 163개교와 전문대학 135개교를 대상으로 A~E까지 5단계 등급 평가를 실시해 4년제 일반대학 32개교와 전문대학 34개교 등 총 66개 대학에 대해 하위등급인 D·E등급을 부여한 것이다. 이들 대학에 대해서는 정부 재정지원 사업과 2016학년도 신·편입생의 국가장학금 지급, 학자금대출 등이 제한되거나 차단된다. 또 B~E등급에 대해서는 4~15%의 정원 감축을 권고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교육부는 2023년까지 총 3주기에 걸쳐 대학 입학 정원을 16만명 감축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왔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1주기에 4만명을 감축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이번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통해 목표를 상회해 4만7000여명까지 줄이는 게 가능해졌다고 한다. 대학구조개혁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의 지속적인 감소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8년도부터는 오히려 대입 정원이 전체 고졸자 수를 초과하게 된다. 4년제 일반 대학에 다니는 학생 수도 1965년 교육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올해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김재춘 교육부 차관이 3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공용브리핑룸에서 대학 구조개혁 평가결과 및 구조개혁 조치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_경향DB


대학구조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공정한 평가 기준과 방식을 마련할 것인가, 지방대의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번 평가 결과를 놓고 지방대를 중심으로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립대 중에서 유일하게 D등급을 받은 강원대는 신승호 총장이 평가 절차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사퇴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평가 자체가 처음부터 수도권 대학에 유리하다는 논란도 있었다. 지방대에 대해서는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라든가 지역균형발전, 지역 간의 교육복지 형평성 등 수도권 대학과는 다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대학구조개혁 방안과 더불어 지방대 육성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교육 당국은 이번 평가 결과 발표를 계기로 더욱 정책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B~E등급 학교에 대한 정원 감축 요구도 아직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부실 대학이 스스로 문을 닫을 수 있도록 잔여재산 일부를 설립자가 회수할 수 있도록 한다든가 외국인 유학생의 정원 외 유치를 확대하는 등 논란이 따르는 방안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대학의 경영 실패가 학생의 피해로 돌아가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적 배려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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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민안전처 자체규제심사위원회에서 서울의 한 대형 공사장에 다녀왔다. 연초에 도입한 공사장 임시소방시설 설치기준이 현장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다른 법제안과 마찬가지로 해당 규제안도 비슷한 의문점에서 출발했다. 경제활성화다, 일자리 창출이다 규제완화가 큰 흐름인데, 왜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사장마다 소방시설을 설치하도록 부담을 지울까?

최근 몇 년간 다수의 인명피해를 낸 화재 중 고양시외버스터미널 화재, 구로디지털단지 밸리비즈플라자 화재, 국립현대미술관 화재, 그리고 사망자만 40명에 이르렀던 2008년 경기도 이천의 코리아 2000 냉동창고 화재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화재가 발생하고 대형 피해를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이 공사장에서 발생한 사소한 부주의로 발생한 화재인데 모두 초기진화 실패에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공간 내부나 주변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크고 작은 공사장들이 있다. 건축주나 공사업체, 현장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집 근처에서나, 길에서, 사무실에서, 상가에서 공사현장과 쉽게 접하며 생활하고 무심코 지나치게 된다. 이런 공사장에 비치된 설비나 공정에는 화재를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화재 요인들이 있는데도 정작 불이 났을 때 쉽게 진화할 수 있는 장비들을 갖추고 공사를 하는 곳은 찾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전국 공사장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화재만 444건에 이르고, 사망 9명을 포함하여 138명의 인명피해와 155여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렇게 건축물 공사장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국민안전처가 올 초 관계법령을 개정하여 공사장 규모에 따라 소화기, 간이소화장치, 비상경보장치, 간이피난유도선 등 임시소방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에 들어갔다.



11일 오전 강북구 번동 원단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짙은 연기가 주택가를 뒤덮자 주민들이 황급히 대피하고 있다. _김정근기자



규제심사위원들의 시각에서도 공사를 주관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이런 설비와 장치를 구비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겠으나, 화재가 발생하면 더 큰 재산상의 손해를 입을 수 있으며, 현장 근로자들 뿐만 아니라 공사와 관련이 없는 주변 일반국민들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더 큰 재난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 규제영향분석 결과에 공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국민안전처 규제위원들이 방문한 현장에는 간이소화장치나 비상경보장치 등 화재진압이나 긴급대피에 필요한 설비나 장치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제도가 시행되고 수개월의 기간이 지난 지금 서울지역 뿐만 아니라 지방의 여러 소방관서에서 홍보를 한 결과, 현장에서도 바뀐 제도의 내용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최소한의 장치를 하려는 노력이 보여 다행이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대규모 공사장의 경우 용접이나 전기 배선 등 화기를 다루는 작업을 하는 층이 다르고, 공간 구조가 다양한데 간이소화장치나 간이피난유도선 등 현장의 동선구조를 반영한 소방시설 설치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 현장의 지적이었다.

또한, 임시소방시설 설치기준이 소급적용은 어렵고 새로 허가를 받는 공사장에만 적용이 되다보니 기존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에 대해서는 다양한 계도를 통해 자율적인 준수를 구해야 한다는 점도 숙제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함께 현장을 방문한 국민안전처 담당자는 이러한 의견을 반영하여 앞으로 공사현장 특성에 맞는 소방 및 대피시설의 설치모델과 사용방법 등 설명자료를 만들어 적극 홍보해 나가겠다는 입장이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정부기관과 현장 간에 서로 소통이 이루어진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국민들이 현장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체감하지 못하는 정책은 의미가 없다. 안전에 필요한 정책이나 제도에 대해 정책을 입안하는 사무실과 실행되는 현장에서 조화가 이루어질 때 국민의 안전은 잘 지켜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공감하고 따를 수 있는 규제개선 정책을 입안하는 책임이 정부에 있다면, 모두가 서로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이러한 정책과 제도를 실천하는 책임은 현장에 있다고 하겠다. 안전의 척도를 놓고 정책 데스크와 현장의 온도차가 크게 나타나서는 절대 안 되겠다.


최규출 | 동원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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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