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된 지 한 주가 지났다. 당신의 새해 목표는 안녕하신가? 혹시 ‘내 목표가 뭐였더라’, 가물가물하다면 굳이 목표를 이루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건 그 목표가 당신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 테니까. 하지만 당신에게 절실한 목표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벌써부터 포기하기엔 2018년이 너무 많이 남았다.

■ 먼 미래가 아닌, 지금을 위한 동기

일상에서 ‘동기’는 “수험생에게 동기를 부여한다”고 말할 때처럼 ‘오래 지속되는 동기’를 뜻한다. 반면 뇌과학에서 ‘동기’는 즉각적인 행동의 유발을 뜻한다. 신경조절물질인 도파민은 동기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도파민의 분비가 많을수록 신경 네트워크가 움직임을 일으키기 쉬운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파민 신경세포가 괴사하는 질병인 파킨슨병에 걸리면 움직임을 시작하기 어려워지고, 동작도 느려진다. 반면에 도파민이 과잉 분비되면 충동적이고 성급한 행동을 하기 쉽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렇다면 도파민은 언제 분비될까? 달리 말해, 뇌는 언제 실천하기 쉬운, 동기를 부여받은 상태가 될까? 도파민은 예상보다 많은 보상이 확인될 때 분비된다. 예를 들어보자. 파블로프의 개는 종소리 다음에 먹이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몰랐다. 따라서 먹이가 주어지는 시점이 예상보다 많은 보상이 확인되는 시점이며 도파민도 이때 분비된다. 하지만 종을 울린 다음에 먹이를 주는 훈련을 반복하면, 종소리가 들린 뒤에 먹이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종소리가 들린 시점이 종소리를 듣기 전보다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지리라고 확인되는 시점이며, 도파민도 이때 분비된다. 이처럼 도파민은 예상보다 많은 보상이 주어질 때 분비되어, 보상을 획득하기 위한 행동을 하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그런데 같은 크기의 보상이라도 나중에 주어질수록 도파민 분비가 줄어든다. 예컨대 종소리가 들린 지 5초 뒤에 맛있는 간식이 나오고, 노크 소리가 들린 지 10초 뒤에 똑같은 간식이 나오는 경우, 종소리가 들렸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이 노크 소리가 들렸을 때보다 더 많다. 이처럼 도파민은 행동에 미치는 효과가 즉각적이고, 먼 미래에 주어질 보상에 대해서는 시큰둥하다.

이 사실을 종합해 보면, 먼 미래에 대한 계획과 비장한 각오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각오와 잠시 후의 만족이 목표를 이루는 데 더 유용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라는 책에서 발레리나 강수진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고 싶지만 발레 연습을 하겠다는 한순간의 선택이 그다음의 몇 시간을 결정한다. 먼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막연하지만 잠시 후 연습을 마쳤을 때의 뿌듯함을 생각하면 연습하기로 결정하기도 수월하다. 

그렇게 작은 선택이 만든 몇 시간과, 몇 시간 뒤의 작은 만족이 모여서 365일 뒤에 차이를 만든다.

■ 해낸 것에 대한 보상과 탐구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실행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뜻밖의 변수가 나타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처럼 계획이 틀어지게 마련이라면, 계획대로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중요하다.

다시 도파민을 생각해 보자. 도파민은 강화학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강화학습이란,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행동은 더 자주 하면서 능숙해지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행동은 점점 덜 하게 되는 과정을 뜻한다. 도파민은 예상보다 보상이 클 때 분비되어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고, 보상이 예상보다 못할 때는 일시적으로 분비를 멈춰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면서 강화학습을 이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의지 박약을 타박하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데는 익숙하지만 긍정적인 피드백에는 인색하다. 작심삼일에 그칠 수밖에 없는 피드백을 주면서 의지만 타박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피드백을 잘 줄 수 있을까? 피드백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예상’에 해당하는 기준점을 어디로 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완벽한 계획을 기준점으로 삼으면 나의 행동이 부족할지 몰라도, 지난 주나 작년의 행동을 기준점으로 삼으면 오늘의 행동이 더 나은 것일 수 있다. 어제보다 모든 측면에서 낫지는 않더라도, 한두 가지 측면에서는 개선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진척이 느껴져야 강화학습이 일어나고, 재미도 있다. 물론 긍정적인 피드백만으로는 부족하다.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는 새로운 방법을 탐색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절묘하게도, 동물들은 도파민의 분비가 높을 때는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행동이 늘어나는 반면, 도파민의 분비가 낮을 때는 이전에 하던 행동을 반복하는 경향을 보인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줘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목표를 추진하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을 탐색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이런 경험을 이미 해봤다. 청와대 앞을 막자 시내로 나서고,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비방이 계속되자 도로를 깨끗하게 치우고, 방송을 왜곡하자 독립 언론으로 맞서고, 다양한 비폭력 시위 방법을 연구하며, 멈추는 듯하면서도 꾸준히 개선돼 왔다. 그리고 마침내 돌 하나 던지지 않고 대통령을 바꿨다.

■ 흔들리더라도, 꾸준히 함께

나는 3~4주 전부터 이달에 새해 목표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하고 플랭크를 해 왔다. 목표는 1~2일에 한 번이었지만, 못하고 지나가더라도 끈을 놓지는 않으면서 결과를 기록하고, 친구들과 공유해왔다. 처음 시작할 때 1분을 간신히 채웠는데, 어제 12번째로 하면서 2분을 넘겼다. 그러니 멈추는 듯 퇴보하는 듯하면서도 꾸준히, 함께 가자. 혹시 아는가, 작년에 우리가 보았던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날지.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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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자료 번역을 부탁해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줄 거냐 하니 ‘우리 사이에’라며 얼버무리더군요. 그리고 또 얼마 전 다른 친구가 교재 편집을 부탁하며 얼마면 되겠냐고 해서 ‘친구끼리!’로 일축하고 그냥 해준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같은 친구 사이에 이런 온도차가 나는 걸까요. 당연히 한 친구는 자기 필요할 때만 나타났고 다른 친구는 안부도 물어주며 여러모로 제게 마음과 힘을 써주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공짜 좋아하면 머리가 벗겨진다(빈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많이 씁니다. 빌 공(空) 자(字)의 발음이 ‘공짜’기 때문에 머리숱도 빈다고 놀리는 것이지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는 사람도 정작 자기 필요할 때는 ‘우리 사이에’를 내세웁니다. 하지만 앞서의 온도차에서 보듯, 거저 얻은 게 사실 알고 보면 그간 자신이 베푼 것들에 대한 신세 갚음에 다름 아닙니다.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거나 환장하고 덤비는 사람에게 옛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짜 바라기는 무당의 서방’이라고. 무당의 서방이라서 공짜로 얻길 바라느냐는 말입니다. 옛날에 무당은 백정, 광대 등과 더불어 여덟 천민 중 하나였고 신(神)을 받기 위해 몇 달씩 금욕하고 입산하기도 해서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무악(巫樂)을 연주하는 사람이나 백수건달을 사내로 방패 삼아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둥서방들은 무당이 번 돈으로 빈둥거리며 살았다죠.

자기 위치나 거절 못할 인정을 이용해 재능기부를 강요하거나 ‘우리가 남이냐’며 허투루 얻으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발적인 공짜는 기부지만 요구하면 갈취입니다. 공짜 좋아하다간 삼켰더니 양잿물이라 밥통까지 토해내야 하거나, 제 자리가 빈자리 될 수도 있습니다. 공(空)자 뒤엔 실(實)이 아닌 허(虛)가 오는 법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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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에서 교육은 개인 입장에서 보면 자아실현의 과정이며, 공동체를 기준으로 보면 탁월한 인재 육성을 위한 훈련의 장이다. 이를 위해 기대소득이 높은 직장이나 사회적으로 선망되는 직업을 얻기 위한 경쟁이 인정되고, 사회는 최선의 인재를 얻음으로써 공익이 실현된다. 이런 낙관적인 가설은 현실에서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우선 경쟁의 제반 요건인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부모의 경제력이나 교육 환경 등 여러 격차로 인해 출발부터 도착까지 많은 학생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뛰는데 이 과정에서 부모와 학생 등 공동체 구성원은 수많은 불평등을 체험한다. 크게 보면 사회 역시 목적 달성에 실패한다. 교육으로 공동체 운영을 위한 이상적 덕목을 갖춘 인재를 얻어야 함에도 환경 차이로 인해 귀중한 인적 자원이 일부 사장된 데 반해 도덕적 훈련이 부족한 자원 일부가 손쉽게 승리를 얻는다. 그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불만과 갈등이 가중되는 보다 심각한 부작용도 나타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교육제도, 특히 대학입시제도는 개인과 사회의 이질적 목적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국민들 다수는 대입 전형에 대한 불만 수준이 높다. 수시 전형은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되는 등 불공정하다는 것이 입시제도를 경험한 다수 국민의 생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는 도덕적, 지적 훈련이 체계화된 인재를 얻기 어렵다. 물론 사회 역시 이상적 시스템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사실이다. 내신 성적을 근간으로 구성되는 현행 수시 전형이 문제가 있어도 객관식 문제를 고집하기는 어렵다. 사회는 미래를 짊어질 인재가 필요한 만큼 교육 투자 이후 나타나는 다수의 바람직한 변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 학교 수업 정상화와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교육과정 운영은 양보하기 어렵다. 문제는 철저히 파편화된 입시생이나 학부모들이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제도는 발표하면서도 제도가 함의하는 교육적 당위성이나 교육 철학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를 고민하는 존재도 지극히 적다. 도덕적 기반이 약한 데다 수용자들에 대한 감성적 배려도 부족한 상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듯 즉각 반응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보니 예상치 못한 변수에 제도가 신뢰를 상실하는 악순환만 반복되었다. 물론 공동체 교육의 이상을 수용한다고 해도 경쟁에 매몰된 개인이 장기적인 안목을 지니기도 어렵다.

교육제도는 경쟁 주체의 핵심 불만을 제거하면서 장기적인 교육 목표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확산하는 두 가지 과업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불공정성을 호소하는 개인의 불만부터 읽어야 한다. 공동체에 대한 도덕적 불신을 방치한 상태에서 어떤 시스템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 이와 병행해 미래 인재 육성의 이상적 방향에 대한 공감대 형성 과정 역시 물적 시스템으로 마련해 구성원의 평가를 받도록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lt;니코마코스 윤리학&gt;에서 탁월성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만큼 지속적인 훈육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교육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성취욕구와 사회적 목표를 동시에 충족하는 교육제도는 개인과 사회 양자 간 지속적인 검증을 통해 단련되어야 한다. 개인과 사회가 서로 등을 돌린, 우애(philia)가 사라진 현 상황에서 제도라는 저울은 최선의 정밀성을 기초로 구성된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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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대학가에도 운동권이 있었다. 학생회는 때가 되면 4·19를 기념하고 6월 항쟁을 기념했다. 과거 민주화를 위해 피땀을 바친 선배들, 시민과 노동자를 기리는 집회에서 외쳐진 구호 중에는 “김대중 정권 퇴진” “노무현 정권 퇴진”도 있었다. 이와 함께 짝을 맞춰 외쳐진 구호는 “비정규직 철폐” “신자유주의 철폐” 같은 것들이었다. 김대중 정권에서 추진하던 민영화에 반대하며 파업을 벌이던 발전노조 조합원들은 경찰을 피해 학교로 숨어들었다. 노무현 정권에서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할 것이란 우려를 현실화시켰다. 학생들은 시설노동자(청소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해 집회를 벌였다. 2000년대 초반의 대학가에서 외쳐지던 구호들은 현재진행형이다.

<영화 1987 > 연희역 김태리

10년도 더 된 기억을 꺼내든 것은 6월 항쟁을 그린 영화 <1987> 때문이다. <1987>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인기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 내각 인사들이 영화를 관람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7일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고 노제에 참여했던 우상호 의원(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나란히 영화관을 찾았다. 이한열 역의 강동원씨와 나란히 무대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6월 항쟁을 완성시켜준 게 촛불 항쟁”이라고 말했다. ‘87년 6월 항쟁=2017년 촛불 항쟁=문재인 정권’의 등식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그 때문이다. 1987년부터 2017년까지 3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민주적 정권 교체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은 꾸준히 나빠져왔다. 전 정권이 물려준 외환위기의 유산 속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충실했다. 비정규직은 양산되고, 일자리는 사라졌다. 젊은이들의 삶은 88만원세대에서 77만원세대로 추락했다. 

‘꾸준한 나빠짐’의 결과 1987년 투쟁이 그토록 열망했던 직선제에 의해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 이명박은 우리가 상상 못한 스케일로 국토를 망쳐놨고, 박근혜는 우리가 상상 못할 수준으로 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했다. 더 이상 나빠지는 삶을 용인할 수 없었던 시민의 힘에 의해서 촛불항쟁이 이뤄지고 그 결과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우리가 청산해야 할 ‘적폐’ 속에는 30년간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도 포함돼 있다. 30년 전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쳤고, 지금은 우리 사회 기득권이 된 386들이 해결 못한 ‘미완의 과제’들인 것이다. 

영화 <1987>은 두 가지 지점에서 문제적이다. 하나는 1987년 항쟁을 특정 사건과 인물들의 영웅적 스토리로 요약해버리는 데 있다. ‘연희’로 여성의 역할이 제한적으로 표현되지만, 노동자의 존재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87년 항쟁이 현재 완성된 듯한 착시현상이다. 영화는 이한열 열사의 노제에 모인 사람들이 ‘그날이 오면’을 열창하는 가운데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비치며 막을 내린다. 6월 항쟁의 결과로 ‘그날’이 기어이 오고야 만 것 같다. 이 착시현상은 영화 자체의 태도이자 <1987>을 소비하고 추억하는 386세대의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박종철·이한열 열사,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숱한 죽음들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 열사를 추모한다는 것은 그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가치를 현재적으로 해석하고 싸움을 이어가는 것이다. <1987>은 아쉽게도 우리에게 현실의 어떤 문제도 환기시키지 못한다.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은 아직도 차가운 감옥에 있고,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은 아직도 차별에 시달리며 기본권 보장을 위해 싸우고 있다. 불안정 노동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청년들은 여전히 미래를 꿈꾸기 힘들다. 성소수자는 아직 ‘반대’되는 지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1987>을 보고 추억에 빠지기엔 이르다. 이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과 싸움들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1987년을 기리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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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는 나의 몸도 나에겐 대륙이다. 좁다면 좁겠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참 많았다. 물론 모르는 게 더 압도적이다. 넓다면 또한 얼마나 넓은 곳이더냐. 나에게 속한 곳이라지만 아직도 못 본 구석이 너무 많다. 나는 여태껏 나의 전모를 한꺼번에 직접 본 적이 없다.

한 해가 교차하는 날에 지붕 아래 맥없이 앉아 있자니 왠지 억울한 생각이 일어났다. 사무실 뒤 심학산으로 갔다. 정유년의 마지막 햇살이 기울고 있었다. 때가 때이니 만큼 약천사의 저녁 종소리를 듣느라 조금 우회했다. 해넘이를 하러 온 사람들로 꼭대기가 빼곡했다. 사람들 뒤통수 사이로 지는 해를 간신히 볼 수 있었다. 산은 늘 좋다. 도시에서는 지금 걷고 있는 길도 행인들의 발길에 묻히기 마련이다. 산에서는 오전에 걸었던 길이 오후에도 보인다. 산에 가끔 가는 게 아니라 산에서 가끔 내려오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싶었다. 아직은 그게 잘 안된다. 언젠가 나도 산에서 사는 날이 올까. 그땐 저 나무들도 진짜 식구처럼 여겨질까.

울산에 사는 친구가 근사한 연하장을 카톡에 올렸다. 하늘을 배경으로 찍은 감나무와 짧은 신년사였다. 가끔 하늘도 보고 살자. 말도 사진도 작품이었다. 작심삼일이라고 할 때의 3일은 제법 긴 시간이다. 조금이라도 짙은 하늘도 볼 겸 심학산에 다시 올랐다. 해 바뀌고 사흘 만에 가는 무술년 첫 산행.

해가 완전히 넘어가자 시선이 짧아졌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어둑해지면 나무들은 웅크린 짐승처럼 변한다. 소나무, 신갈나무 사이로 노간주나무가 서 있다. 말쑥하게 커서 차렷한 모범생 같다. 바늘처럼 뾰쪽한 잎에 찔리면 따끔따끔 아프다. 콩알만 한 열매가 다닥다닥 달렸다. 재질이 단단하면서도 삶으면 말을 잘 들어서 코뚜레로 쓰였다는 노간주나무. 큰길로 내려서자 하늘이 꺼진 뒤 ‘쬐끄만’ 등들이 켜졌다. 간판 아래 손님들이 불판에 둘러앉아 있다. 소는 고기가 되고나서야 코뚜레를 벗어날 수 있었겠지. 모가지에 퉁소를 장착한 듯 새들이 크게 울며 날아갔다. 노간주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 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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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다수가 적폐청산을 원하고 있다. 청산범위는 과거 10년 동안 자행된 국기문란 사건이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 촛불이 만든 정부는 박근혜 다음정부가 아니라, 역사적 맥락 위의 시대정부다. 산업화·민주화시대에 잉태된 관행들이 시스템·가치·문화의 오작동에 관여한 지 오래다. 낡은 관행은 고용주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소기업과 대기업,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수도권과 지방,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 뒤에 숨어서 조금씩 몸집을 불렸다. 이러한 다층적이고 전방위적인 갈등을 균열구조로 고착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해 왔다. 적폐는 취업면접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던 고졸청년,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한 형제, 맞벌이 부모의 늦은 귀가로 해가 저물어도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 아빠가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져 기약 없이 월급날만 바라보고 사는 지하단칸방 가족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압축성장의 명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은 공정한 기회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 최소한의 주거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 자라나는 꿈나무의 미래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국가, 중소기업의 아픔을 외면하는 국가가 되었다. 없는 자가 죄인이 되는 세상, 정직하게 사는 자가 손해를 보는 세상,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것이 많아야 성공하는 세상, 이런 것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새로운 규칙을 정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는 물론이고 기업, 언론, 종교, 노조, 학계, 시민단체 모두가 적폐를 생산하고 소비했다. 적폐는 어떻게 광범위한 동맹을 맺고, 공공성약화와 소득양극화를 배설하며 생존할 수 있었을까. 진영논리와 이념대립 그리고 권위주의가 적폐와 공생을 도모했다. 적폐의 근원 중 하나가 정치무관심이다. 낡은 관행이 쌓이고 국기문란 사건이 터지는데, 정치무관심은 좋은 그늘이 되고 자양분이 되었다. 누군가 6개월 또는 1~2년 후 적폐청산이 완성되었다고 선언한다면, 동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2가지다.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회적 합의 방식, 즉 사람들의 핏빛 절규와 국가적 참화를 거친 후, 통제 가능하지 않은 수많은 변수들을 끌어안고 어쩔 수 없이 사회적 합의로 끌려가는 길. 또 하나의 길은 우리 스스로가 성찰적 자세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사회적 합의를 시도하는 길이다. 

적폐는 증명하기도 어렵고, 때론 법의 잣대도 피해가는 초법적이고 역사적인 존재다. 과거 정부의 국기문란 사건이 법적종결을 맞더라도, 적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제도를 바꾸어도 적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95년 국민통합과 화해증진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었고, 진실화해위원회를 설치했다. 파시즘적 인종 살해의 과거청산을 위해 가해자가 공개적으로 진실을 밝히는 대신 이들을 사면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진실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우리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가 있었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누가, 어떤 권위와 방식으로 적폐를 규정하고 해소할 것이며 성과를 평가할 것인가. 어떤 관행들이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국민토론을 시작해 보자. 토론결과를 바탕으로 적폐청산 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특별재판소 설치특별법을 제정하자. 용서를 구하면 그 죗값을 집행유예와 벌금 등으로 대신 묻고, 반복되는 실수엔 작은 죄라도 엄중한 형벌을 약속받자. 적폐청산과 통합정치가 따로 있지 않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적폐청산은 궁극적으로 통합정치의 길로 안내할 것이다. 적폐청산은 정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참여를 필요로 한다. 

촛불로 만들어진 정부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현재평가인 동시에, 더 좋은 미래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일하는 방식을 새롭게 해야 좋은 미래가 올 수 있다. 촛불이 꺼지고 다시 정치무관심의 시대가 온다면, 적폐는 번식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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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범근은 매일 서울 대학로에 나온다. 부동산투자회사 ‘공공그라운드’가 인수한 옛 샘터 사옥 내에 다른 스타트업과 사무실을 공유하고 있다. 스물한 살의 그는 철저히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눈높이에 맞춰 뉴스를 전달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새해 처음 발행된 기자협회보는 ‘독자 누군지도 모르고…그 사이 독자는 언론에 등 돌렸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동안 언론은 독자를 대변한다고 목청껏 부르짖었지만 정작 ‘우리 독자’가 누군지 잘 모른다. ‘독자를 위해서’라는 공허한 구호 뒤에 숨어 언론이 말하고 싶은 주장과 의견만 날랐을 뿐이다. 종이신문을 찍고 뉴스가 전파를 타면 볼 사람들은 다 볼 것이라고 자신했다.” 표현이 심한 감은 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 짬뽕 먹으며 적폐청산이 뭔지, 짜장 비비며 방송파업 왜 하는지
· 이슈들 쉽게 풀어주는 동영상 제작

“타깃층이 뭘 알고 뭘 모르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태도가 본질이라고 봐요. ‘설마 이것도 모르겠어?’ 싶을 때도 모른다고 전제하고 설명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1997년생이 말했다. 얼얼했다. 그가 태어나기 일곱 해 전부터 나는 기자였다.

국범근(21). 미디어 스타트업 ‘쥐픽쳐스’의 자칭타칭 ‘최고존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휴학 중.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시사 이슈를 다루는 ‘쥐픽쳐스’, 사랑과 성을 다루는 ‘젤리플’ 채널을 운영한다. 모두 ‘십말이초(국범근이 10대 후반~20대 초반을 일컫는 말)’가 타깃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가보면 ‘어린-어른 연착륙 커뮤니티 플랫폼’이란 소개말이 걸려 있다. 쥐픽쳐스의 핵심 상품은 ‘이슈먹방’과 ‘인생은 실전이야’다. 이슈먹방은 “파편적 정보만 돌아다녀 혼란스러운 이슈를 하나로 묶어 배경과 맥락의 이해를 돕는”(국범근 설명) 동영상 콘텐츠다.

‘적폐청산이 뭐야? 국정원 적폐 총정리’ 편에서 국범근은 짬뽕을 먹으며 적폐청산을 설명한다. “적폐? 누적된 폐단! 즉 전부터 있어왔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거야. 만약 어떤 원룸에 개히키코모리 혼모노가 들어와서 방에다 간장 뿌리고 이러면서 1년 가까이 청소를 안 했다고 해보자. 다음 세입자가 그 방에 들어와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 청소기 돌리는 수준이 아니라 리모델링 수준으로 방을 싹 다 갈아엎어야 되겠지?” 식이다. (※개히키코모리 혼모노에서 ‘개’는 강조 의미의 접두사이며, 히키코모리 혼모노는 은둔형 외톨이로 몰입정도가 심해 주변에 피해를 주는 ‘덕후’를 가리킨다.)

‘쥐픽쳐스’가 만든 ‘6월 항쟁 한 방에 정리! 1987 보기 전에 봐야할 영상’. ‘먹방’ 컨셉으로 제작됐다.

지난해 9월 게시한 ‘MBC 파업문제 한방에 정리’ 영상은 쟁반짜장 먹방으로 시작한다. “요즘 무한도전 안 해서 TV 볼 게 없네. 응? 뭐 MBC 파업인가 그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고? 솔직히 파업은 뭔지 알지? 몰라…? 아 ㅇㅋㅇㅋ… 파업은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걸 이뤄내기 위해서 일부러 한꺼번에 일을 멈추는 거야.” 7분짜리 영상은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합친 조회수가 110만을 넘었다. ‘4차 산업혁명 한 번에 이해하기’는 조회수 35만, ‘<1987>보기 전에 6월 항쟁 알고 가자’는 23만을 넘어섰다. ‘인생은 실전이야’는 학교에서는 안 가르쳐주지만 실생활에선 필요한 ‘리빙 포인트’를 일러준다. 지난 4일 올린 ‘술 먹기 시작한 친구들에게 필요한 개꿀팁들’은 나흘 만에 36만을 찍었다.

· ‘사안을 너무 단순화한다’ 비판엔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 젊은 미디어 대표의 당찬 신념

“십말이초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에요. 관심을 갖더라도 어려우니까, 진입장벽이 높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아가야 될지 모르겠고, 미디어는 불친절하고…. 연예인 얘기만 좋아하고 연성 뉴스에만 관심 가질 거다, 이런 인식은 편견이에요.”

- 이슈먹방에서 반말을 쓰고 비속어도 나오던데요.

“존댓말 하다보면 뭔가 무게 잡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비속어는 의미를 강조할 때만 써요. 항상 맥락을 고려합니다.”

- 반말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반반이에요. 신선하다는 쪽도 있고, 어떤 분들에겐 재수 없게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수박 겉핥기라고 비판할 수 있는데요. ‘정말 몰랐던 건데 쉽게 설명해주니 좋다’ 이런 반응도 있으니까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죠. 제 역할은 기성세대와 십말이초 사이에 징검다리를 놔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다시 얼얼했다.)

‘10대에게 뉴스 읽어주는 남자’ 국범근 쥐픽쳐스 대표가 서울 대학로 ‘공공그라운드’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국범근은 고교 2학년 때 교내 UCC(사용자제작콘텐츠) 대회에 참가해 2등상을 탔다. 영상을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재미를 알게 됐다. 한마디로 “필 받았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는데 처음엔 유머 영상 위주였다. 구글 뉴스랩 펠로십 1기를 수료한 뒤 2016년 시사콘텐츠 ‘범근뉴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미디어 전문 액셀러레이터 ‘메디아티’로부터 4000만원을 투자받았다. 스타트업을 출범시키며 법인 대표가 됐다.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 “사업자등록증도 있고, 따박따박 사업소득세도 내고, 직원 월급도 주고…얼추 형식은 소꿉놀이하듯 갖췄는데…정작 무슨 콘텐츠를 만들고 팔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영화 <택시운전사>가 돌파구가 됐다. 친구들이 ‘재밌고 감동적이고 많이 울었는데…’ 하면서도 역사적 맥락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배경과 맥락을 쉽게 알려주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반응이 좋았다. 나침반을 얻었다. ‘10대가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돕자.’

· “법치 가르치지만 실현 막는 학교… 학생들, 세상과 단절됐다 성인 돼”
· “그 공백 교육·미디어가 메워줘야”

국범근은 고3 때도 <역사란 무엇인가>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책을 읽었다. 선생님들은 고3이 공부나 할 것이지 그런 책을 왜 읽느냐고 타박했다. “참 아이러니죠. 저는 공부한다고 이런 책을 읽는 건데…. 그분들이 말하는 공부란, 자유한국당에서 이야기하는 자유민주주의처럼, 원래 의도에서 한참 벗어난, 일신을 위한 스킬 연마로 돼있는 거죠….”

고2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하복이 너무 불편하다는 학생들 원성에 학교 측에서 생활복을 따로 만들어 입도록 했다. 문제는 교내에선 생활복을 입더라도 교문으로 등교할 때는 하복을 입고 들어오라는 원칙이었다. 2학년 때 학급회장이던 그는 대의원회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대의원회에서도 고치자는 데 의견을 모아 학교 측에 건의했다. 적용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전교회장과 함께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교장은 역정을 냈다. 감히 학생들이 교장에게 질문하고 주장하고 도전하느냐는 태도로 찍어 눌렀다. “학교에서 법치를 가르치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배우면 뭐해요…. 민주적으로 결정이 됐는데도 실현이 안되잖아요. 그때 학교에 다닌 친구들의 기억 속에 민주주의나 법치가 어떻게 남아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지금의 학교는 ‘정치적 무균지대’를 만드는 데 집착해 근대적 시민을 길러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학교에선 입시공부만 하라면서 세상과 분리, 단절시켜 놓죠. ‘지금은 몰라도 돼. 대학 가면 다 알게 되니 신경쓰지 말고 공부만 해’ 합니다. 사회를 학습해야 할 시기를 세상과 단절된 채 보냈는데, 성인이 되면 갑자기 책임감을 요구받아요. 왜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지 못하느냐는 타박도 듣죠. 그 공백이 심각해요. 공백을 해소해줄 수 있는 곳이 교육과 미디어인데, 둘 다 잘 메꿔주지 못하고 있어요.”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국범근은 친절, 맥락, 인과관계 같은 표현을 즐겨 쓴다. “십말이초의 니즈(needs)를 잘 긁어주는 친절한 미디어가 부족해요. 저도 처음엔 영상 분량이 5분 넘어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길어서 아무도 안 볼 거다 생각했는데….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자꾸 길어져요. 이슈먹방은 기본이 7분 정도 돼요. 길면 10분 넘어가는 것도 있어요. 그래도 사람들이 봐요. 중요한 건 얼마나 퀄리티 있는 정보를, 얼마나 타당한 인과관계로 묶어내느냐 같아요. 그런 훈련이 된 사람이 좋은 전달자라고 생각해요.”

올드미디어 종사자가 물었다. “십말이초는 왜 신문을 안 읽나요?” “굳이 볼 이유가 없어서죠.”

다시 물었다. “젊은 독자를 새로 확보하는 일은 사실상 포기해야 할까요?”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친절함’을 견지하면서 새로운 접근방식을 시도해보면…. 십말이초가 기성언론에 특별히 반감이 있어 소비 안 하는 게 아니거든요. 소비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소비할 겁니다.”

김민아 논설위원이 쓰는 ‘후 스토리’에서 ‘후’는 who(누구)·後(뒤편)·厚(두터움)를 모두  뜻합니다. 화제의 인물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이슈의 뒤편과 속내를 두루 살필 것입다.                                                                                                        

<김민아 논설위원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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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가장 안정적일 때는 정박한 상태인데, 배는 정박하라고 만든 게 아니라 항해하라고 만든 것입니다. 흔들림을 두려워한다면 인생을 너무 아깝게 사는 것이니 흔들리고 부딪치더라도 또 도전하길 바랍니다.”

2017년 12월27일, 문재인 정부와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150여명의 청년들이 대면한 자리에서 정부 대표로 이낙연 국무총리가 건넨 말이다. 그날의 주제는 청년이 겪고 있는 문제와 그들이 제시하는 정책적 대안을 정부가 직접 묻고 듣는 것이었다. 앞선 기조발언에서 이 총리는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며 삶의 자세를 조언했다. 핵심은 ‘노력’과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가 부딪쳐보라고 권유하는 파도는 어디에서부터 생겨났나. 그 파도에 매번 휩쓸리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시시각각 방방곡곡에서 잔물결 정도로 취급되던 불공정과 불평등이 결국 돛단배 하나 겨우 끌어안고 있는 청년들에게 파도의 크기로 덮치고 있지 않은가.

그가 말하는, 부딪치면 잠시 흔들리고 말 파도란 어떤 청년에겐 첫 면접 탈락이라는 취업 실패일 수도, 첫 고시원이라는 주거빈곤의 경험일수도, 첫 소액 대출이라는 부채의 굴레일 수도 있다. 그나마 공정하다 믿었던 공기업의 94%가 채용비리를 저지르고, 전·월세상한제 없는 부동산 시장에서 을의 입장으로 집을 구해야 하고, 대출 규제를 푸는 것이 청년을 향한 최선의 복지인 바다에서는 풍랑을 즐길 수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억겁의 노력과 끝없는 도전정신이 삶의 필승법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공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공정한 출발선과 원칙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노력은 결과를 배신한다’. 이러한 삶의 새로운 공식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당사자의 노력이 부족했을 뿐이라며 개인에게 떠넘기고 만다. 이런 시대에 불공정과 불평등, 불통이라는 파도 앞에 인생을 한 번 던져보라는 말은 그저 무책임한 언사일 뿐이다.

삶이 벅차 견딜 수 없을 때 토해낸 하소연에 ‘힘내’ ‘넌 할 수 있어’식의 메마른 응원보다는 말없이 건네주는 소주 한 잔, 속을 든든히 채워주는 밥 한 그릇에서 더 큰 위로를 얻을 때가 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청년들에게 메마른 응원을 건넸다.

“가보면 길이 있어요. 미리 가보기도 전에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청년에게 할 말은 좌절하더라도 함께 노력하고 도전하자는 것이 아니다. 삶의 머나먼 여정을 시작하자마자 맛봐야 하는 것이 무기한 비정규직과 6평짜리 월세방, 2000만원의 부채라면 청년의 좌절과 비관은 기우가 아니라 당연한 결과다. 마치 인생을 아직 덜 살아봐서 뭘 모른다며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가르치려 했다면 그것은 기만이다. 청년에게 직접 문제와 정책적 대안을 묻고 대답을 들으러 왔다면 그들을 동료로 받아들이고 협치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줘야 했다. 이제 청년을 빈곤 포르노 속에서 소비해가며 복지나 정책을 시혜하겠다는 자세는 버리고 생애주기에서 마주해야 할 고질적이고도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지에 대해 함께 논의할 동료로서 마주하자.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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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을 놓고 무성한 뒷얘기들이 오간다.

영화가 그린 6·10 민주항쟁이라는 실화는 묵직하고 컸다. 당시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보탠 수많은 이들이 현재를 살고 있기에 ‘그때 그 사람들’이 계속 소환되고 회자되고 있다. 박종철·이한열 열사를 비롯해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에서 부검 영장을 받아낸 검사, 사건을 처음 알리고 추적한 기자, 사건을 조작·은폐한 정황을 밝히는 ‘비둘기(비밀서신)’를 바깥세상에 전한 교도관 등 모두 실존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배우 김태리가 연기한 연희는 유일한 주요 여성 캐릭터이자, 허구의 인물이다. 박종철·이한열 두 사람을 잇는 장치이면서 고민을 거듭하는 대학생으로 그려진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영화 내 여성 캐릭터의 비중과 연희의 역할에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았다.

@si***는 트위터에 “정의로운 남자, 나쁘지만 이유 있는 남자 등 온갖 남자들 (배역에) 연기파 배우들이 캐스팅된 와중에 주요한 여자 캐릭터는 김태리 달랑 하나”라며 “시대의 비극이자, 연출의 비극”이라고 적었다. 당시 항쟁을 이끌고 참여한 여성들이 많았음에도 제대로 그리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ha***는 “극에 여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 있어도 힘없이 당하는 피해자 가족”이라고 했다. @ch***는 “다른 남성 인물은 ‘옳은 일이어서 한다’고 묘사한 반면, 연희는 삼촌이나 데모하던 오빠에 의해 계몽되는 것처럼 그려져 별로였다”고 지적했다.

칼럼니스트 황진미는 이와 관련해 지난 4일 ‘1987, 김태리 캐릭터를 둘러싼 심각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칼럼에서 “영화는 여성을 지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천 성고문 사건’,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어머니들, 종로 기습시위를 주도한 여학생 등 영화의 곳곳에 등장하는 여성의 존재를 짚었다. 또 “연희의 캐릭터는 강렬하지 않지만 이미 완성된 다른 인물에 비해 유일하게 성장하는 캐릭터다. 관객의 감정을 끌고 당대 정서 안으로 들어가는 실질적 주인공”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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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이 사회 문제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 정부에서 대통령이 직접 청년 일자리를 챙기고 있다지만 여전히 뾰족한 묘안은 없어 보인다. 2018년 일자리 예산은 19조200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2.7%나 증가됐다. 그러나 신규 일자리 창출 정책은 과거 정부 정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박근혜 전 정부의 청년 실업 대책은 장기적인 일자리를 창출하기보다는 급여가 턱없이 낮고 단기적인 인턴사원 등 비정규직 양산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뿐인가. 일자리 창출은 전적으로 정부와 기업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대학 구조 개혁을 무기 삼아 청년 취업을 대학에 떠넘겨 왔다. 대학들은 부실 대학이나 대출 제한 대학을 피하기 위해 온갖 편법과 탈법을 동원, 취업률 높이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청년들이 구직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좌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청년들의 체감 실업률은 공식 실업률 통계보다 2배 이상 높다. 취업이 안 돼 졸업을 유보하는 ‘대학 5, 6학년생’, 각종 스펙을 쌓고도 정규직 채용이 되지 않아 인턴을 전전하는 ‘호모인턴스’도 부지기수다. 앞으로 3~4년간은 최악의 취업난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아 취업 여건은 더더욱 암담하다. 역대 최다였던 2010~2014년 사이에 입학한 신입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시장에 대거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5~24세 청년 실업률은 10.7%로 전년도보다 0.2% 상승했다. 2000년 10.8%를 기록한 이후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처음으로 미국을 앞질렀다. 청년 실업의 증가는 내수 침체를 부추겨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따라서 새 정부는 청년 일자리 창출과 고용 확대를 위한 보다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과 같은 대기업·재벌 중심의 사회·경제적 구조의 틀을 바꿔 일자리 창출이 용이한 중소·중견 기업을 키우고자 하는 과감한 정책이 없는 한, 그 어떤 대책도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제조업만의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새로운 분야를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하고 정부와 기업이 강력한 파트너십을 갖고 대학과 일터를 직접 연결하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청년 벤처 기업 창업 붐’도 다시 일으켜야 한다.

청년층에 특화된 취업 알선 프로그램 제공도 필요하다. 미국(원스톱 센터)과 영국(직업 센터) 등 주요 선진국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방대한 양의 직업 검색 시스템을 구축하여 구직자와 기업을 직접 연결해 주는 취업 알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이윤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경제가 어렵고 침체될수록 공격적인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기업들이 투자해야 경제도 살고 일자리도 창출된다.

<이윤배 | 조선대 교수·컴퓨터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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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의 실패를 개인에게 책임지울 수는 없는 법이야.” 아이를 지방의 유수한 자율형 사립학교에 보낸 친구가 변명하듯 한 말이다. 정치적 성향에서 평소 공유하는 점이 크기에 친구는 아이를 평범한 일반고에 보내지 않은 데 대해 뭔가 변명할 필요라도 느꼈나 보다. 공교육이 다 무너진 마당에 그런 결정을 가지고 내가 무슨 비난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잖아도 일반고 교실의 쉬는 시간에 남자애가 여자애를 무릎에 앉힌 채 시시덕거리고 수업시간에는 모두 엎드려 자는 게 흔한 풍경이라는 얘기를 듣는 터였다. 똘똘한 아이를 그런 환경에 버려두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친구의 변명은 어찌 보면 ‘먹고사니즘’의 변형일 수도 있었다. 먹고살려면, 뒤처지지 않으려면, 그나마 어엿하게 살아가려면, 어쨌든 남보다 앞서 좋은 기회를 잡아야 한다. 사회의식이나 평등에 대한 태도가 한 걸음 앞선 사람도 이럴진대, 이른바 능력주의(meritocracy)와 경쟁논리가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을 무작정 비난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정규직들이 먼저 반대하고, 공기업 블라인드 채용에 명문대 졸업생들이 분개를 한단다. 우리가 익히 듣고 있는 ‘무임승차론’이다.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이 대학에, 이 직장에 들어왔는데 능력도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이 같은 대우를 바라는가. 이런 논지를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어려서부터 비싼 사교육을 받고, 등록금 걱정 없이, 알바에 시간을 빼앗기지도 않고 맘 편히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사회적 특혜라고 설명한들 설득력이 없다. ‘시험’이라는 인간에 대한 극히 일면적인 평가가 얼마나 자의적인가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왜냐면 이들의 항변이란 게 남보다 더 가지겠다는 주장이라기보다는 그나마 가진 것을 지키겠다는 방어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무너진 교실에 아이를 도저히 보낼 수 없는 친구처럼 말이다. 결국 상황은 또다시 능력의 문제, 능력을 약간 더 가진 을과 능력이 모자란 을이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문제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적’은 어디에 있는가? GDP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고 대학진학률은 30년 전에 비해 2배 넘게 늘어나고 아파트는 해마다 그토록 많이 짓는데, 그 많은 돈과 고학력자들과 집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도통 알 수가 없다. 을들끼리 사는 세상에서 적은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손쉽게 대자본이나 보수화된 정치 지형 등을 적으로 들지 못하겠다. 그것들 역시 일종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이윤을 탐하는 자본이나 복지와 평등에 눈감은 저간의 정치는, 이 사회와 우리들 자신에 대해 수십년간 한 번도 근본적인 반성을 하지 못한 결과일 뿐이다. 잘산다는 희망으로 경제적 기준 외에는 모든 것을 도외시한 우리들 자신이 원인인 것이다. 오랜 성장주의의 구호 아래 우리는 자기 자신을 경제적 단위, 생산적 단위로 보는 일에 익숙해졌다. 고등교육을 받고 생산체제에서 자신의 쓸모를 높인 사람은 대우를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차별을 감수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수월성’과 ‘측정’이 교육의 대치어가 되어 학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이라기보다는 선별하는 곳이 되었다. 교육이 계층 간 장벽을 허문다는 시민사회의 이상은 옛말이 되었고, 지금은 오히려 대도시 중산층 이상의 가진 계층만을 골라 통과시키는 보안문 구실을 한다. 천신만고 끝에 기성 조직에 편입한 사람도 편치가 않다. 자기 능력을 끝없이 보여주고 생산성을 입증하지 않는 한 그는 조만간 치킨집이나 빵집을 열어야 할 처지다.

교육에서부터 평등한 일자리와 복지까지 이 모든 것을 철저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전국 국립대를 통합한다든지 액수가 얼마건 기본소득제를 전면 실시한다든지 하는,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방안은 무수히 나와 있다. 이런 방안들이 아무리 철없는 이상주의 소리를 들을지언정 또 이런 정도의 변화 없이 그 무엇도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을 생산하는 존재가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삶을 누리는 존재로 보는 관점, 사회적 격차를 당연하게가 아니고 매우 기이한 현상으로 보는 시각, 주어진 땅과 자연을 그 누구의 것도 아니고 모두에게 주어진 혜택으로 보는 철학 등이 퍼져야 한다. 그러려면 누군가는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미 조금이나마 부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부터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뭔가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할 시점에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큰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새해 벽두부터 마음을 어지럽힌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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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12일 대구·경북지역 일간지인 매일신문은 사설을 통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매일신문은 “홍 대표는 대구에서 정치를 하고 싶다는 뜻을 누차 피력한 바 있는데, 지방분권 개헌 열망에 찬물을 계속 끼얹는다면 그 꿈 일찌감치 접기를 권고한다”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이 사설은 개헌을 둘러싼 현재의 논의지형을 잘 보여준다. 지금 자유한국당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홍준표 대표가 원색적인 비난을 하며 제동을 걸고 있고, 그것이 대구·경북지역에서도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국회 개헌특위의 자문위원회 보고서 중 일부 내용을 문제 삼고 있는 것도 이런 비판 여론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개헌을 색깔논쟁으로 끌고 가서라도 비판적인 여론을 잠재워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국민투표를 하겠다’는 자신의 대선공약을 뒤집은 것은 누가 봐도 명분이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주권자들은 보수-진보를 떠나서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매일신문은 1월2일에도 사설을 통해 ‘국가의 미래가 달린 지방분권개헌 이슈를 당리당략과 선거 유불리로 접근하고, 정치적 소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정치인에 대해 혐오를 드러내는 태도는 온당치 않다”고 홍준표 대표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라’는 것은 보수-진보를 떠난 요구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더라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동의가 70%를 훨씬 넘는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역에 관계없이 찬성여론이 높다.

부산일보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방선거 동시 개헌 국민투표’에 대한 찬성 여론이 부산·경남지역에서 77%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신문이 작년 12월 말에 대구·경북지역 여론을 조사한 바에 따르더라도, 이 지역의 찬성률이 61.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자료들을 줄줄이 언급하는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더 이상 국회논의를 기다리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국회가 작년 말에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올해 6월까지 활동하기로 했지만, 이 특위에서 개헌안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작년 1년 동안 국회 개헌특위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자유한국당 측이 새로운 특위 위원장을 맡기로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런 특위에 무슨 기대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국민들 다수가 바라는 개헌과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나서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헌법이 대통령에게도 개헌안 발의권을 준 이유는, 이처럼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개헌안 발의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대통령의 직무를 소홀히 하는 셈이 된다.

물론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많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벌써부터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개헌 반대’와 같은 수준 낮은 정치공세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공세가 쉽게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앞서 언급한 근거들을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개헌논의가 본격화되면, 스스로의 대선공약을 어기고 개헌을 사실상 방해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더욱 궁색한 처지가 될 것이다. 그들이 ‘색깔 덧씌우기’ 등 여러 시도를 하겠지만, 현명한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은 쉽게 말려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본격 추진해야 한다.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1월부터 본격 추진을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시작부터 대통령이 개헌의 내용에 대해 언급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의 내용은 여·야당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하고, 국민들의 의견도 수렴하여 최종 확정하겠다고 하면 된다. 그러면 반대할 명분이 없다.

개헌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포괄적이고 제한 없는 논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 외에도, 직접민주주의 확대,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 같은 내용이 논의의 주된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가장 논란이 되는 권력구조(정부형태)와 관련해서도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어차피 개헌과정은 다양한 의견들이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아마도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것인지와 관련해서 가장 고민되는 것은 국회 통과 가능성일 것이다. 국회의원 3분의 2가 동의해야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헌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을 처음부터 비관할 필요는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헌은 이미 보수-진보의 프레임을 넘어서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국가운영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진정성 있게 개헌을 추진하겠다면,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이 지지하고 개헌논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개헌안을 논의하는 과정은 민주주의에 관한 거대한 집단학습과 토론의 과정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에게는 그런 역량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논의의 물꼬를 틔워주기를 기대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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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도 벌써 한 주가 지났다. 야심차게 계획한 새해 계획이 한번쯤 흔들리는 순간이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더라도 필연코 예상하지 못한 일이 불쑥 생기기 마련이고, 미리 계획한 일이 하루쯤 틀어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은 결심이 굳지 못한 사람을 훈계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통계적으로 사흘에 한 번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는 것이 평범한 우리네 삶이므로 계획한 일을 사흘에 한번쯤 빼먹었다고 해서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의 한 주, 한 달, 한 해가 전혀 새로운 일 없이 미리 계획한 대로만 반복되고 있다면 이쪽이 더 걱정되는 일상이라 생각한다.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삶의 건강한 자유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자유 중에 가장 본질적인 것이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이동할 자유이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자유를 함께 빼앗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러한 조치를 형벌(刑罰)로 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도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을 받지 아니하며(제12조 제1항), 체포·구속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도록 하고(제3항),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그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제6항)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는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보호소’라는 이름을 가진 시설이 있다. 외국인 범죄자는 내국인과 동일한 절차에 따라 구치소 또는 교도소에 구금되므로, 범죄자를 가두는 구금시설과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시설이다. 법무부의 공식적인 설명에 따르면 외국인보호소는 체류기간 만료 등 출입국관리법에 정해진 사유로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외국인 중에서 여권이 없거나 또는 교통편이 확보되지 못하여 즉시 출국할 수 없는 경우, 여권이나 교통편을 마련하는 기간 동안 머물게 하여 외국인을 ‘보호’해주는 행정기관이다. 설명만으로 보면 공항 한쪽에 마련된 라운지와 같은 편의시설을 생각하게 되지만 현실은 철창에 갇혀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구치소와 큰 차이가 없다. 외국인보호소에 입소한 외국인은 노란 철창으로 구획된 좁은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한 공간에서 10명 이상이 공동생활을 한다. 화장실을 포함한 모든 생활공간은 CCTV로 감시되고, 외부인과 만날 때는 구치소와 같이 두꺼운 아크릴 판을 사이에 두고 전화기로 대화를 해야 한다. 자유롭게 운동을 할 수도 없고,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도 없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용공간에 설치된 전화기 한 대가 유일하다. 출입은 제한하지만 보호시설 내에서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사생활이 보호되며 인터넷 등 외부와 소통도 자유로운 외국의 보호시설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열악한 시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호’라는 이름의 구금기간에 상한이 없어 장기간 보호소에 구금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외국인의 신체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것임에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지위에 있는 기관이 인신구속의 타당성을 심사할 수 있는 절차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작년 3월에 발표된 법무부의 정보공개 결과를 보더라도 외국인보호소에서 1년 이상 장기 구금생활을 하고 있는 외국인이 20명이나 되었다.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난민이거나, 갑작스러운 단속으로 국내의 법률관계가 마무리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기간을 떠나 구금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환자나 구금을 최후의 수단으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아동들이 보호소에 갇혀 있기도 했다. 열악한 시설에 장기간 가두어 두면서 이를 외국인의 편의를 위한 ‘보호’라고 설명하는 것은 궁색하다. 보호와 구금은 전혀 다르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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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끝에 명태(明太)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 백석(1912~199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백석은 이 시를 스물일곱 살에 발표했다. 숲처럼 짙푸르고 무성한 나이에 썼다. 얼굴에 혈기가 도는 나이에 썼지만, 이 시에는 겨울이 한가득 들어 있다. 명태는 함경도의 특산물. 처마 끝에 명태를 매달아 말리는 것을 시인은 본다. 몸의 등이 길고, 조금 마른 명태를 보고 시인은 명태가 자신을 닮았다고 말한다. 초췌하고 핼쑥한 자신의 모습이 명태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꼬리지느러미에 얼음이 붙은 명태와 가슴에 고드름이 달린 자신을 같은 처지로 본다. 처지만 같은 것이 아니라 심정 또한 매한가지라고 말한다. 마음은 어떤 형편에 있는가?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저물어가고, 볕이 노루꼬리처럼 짧게 남아 있긴 하지만 차가운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에 빗대었다. 백석은 이 시를 객지인 함흥에 살 때에 썼다. 타향에서 느꼈을 쓸쓸함과 근심이 드러나 있다. 함흥 살 때의 생활을 기록한 한 산문에서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만이 흰밥과 빨간 고추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내 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고 쓰기도 했다. 그런데 왜 제목을 ‘멧새소리’라고 했을까? 멧새소리는 고향에서 듣던 경쾌하고 정겨운 소리였을 것이니, 그 그리운 소리에서 아주 먼 곳 객지에서 느꼈을 시인의 깊은 객수(客愁)는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뼈가 시리도록 혹독한 추위가 닥쳐오는 날에는 이 시가 문득 생각난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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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에서 객실 청소업무를 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선 이후 원청의 무분별한 ‘대체인력 투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대한항공은 한진그룹 계열사 직원은 물론 본사 사무직 직원까지 동원해 청소업무에 나섰고, 하청업체인 ‘이케이맨파워’는 불법 대체인력 투입으로 고발당하자 현재 투입 중인 인력을 원청 소속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검토하는 등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헌법은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체행동권은 그야말로 노동3권 중에 가장 중심인 권리이다. 단체행동을 전제하지 않은 단체 결성이나 단체교섭은 무력한 것이어서, 이들만으로는 노사관계의 실질적 평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43조에서 쟁의권을 보장하고, 일부 필수공익사업장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쟁의행위 기간 중 사용자의 대체인력 투입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권리가 가장 필요한데도 오히려 가장 열악한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침해되는 권리가 바로 단체행동권이다. 원청이 손쉽게 원청 노동자를 투입하거나 다른 협력업체로 돌려막기를 하거나 신규채용을 하는 등으로 파업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서비스,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C&amp;M 등 대기업은 물론 공공기관인 정부세종청사, 코레일 역시 간접고용 노동자 파업에 대체인력을 투입하여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하청업체 파업에 이처럼 원청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과거 간접고용 시 대체인력 투입을 제한하는 기존의 해석(1988. 노사32281-19968)을 뒤집고 원청은 사용자가 아니므로 대체인력 투입금지 조항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행정해석(1998. 협력68140-226)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노조법상 ‘사용자’의 개념은 반드시 근로계약관계의 당사자로 한정되지 않는다. 대법원도 “원청회사가 하청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2007두8881)”고 판결한 바 있다.

대부분의 용역업체에서 투입인원의 결정, 업무내용과 근무시간, 인건비 등이 원청에 의해 결정되는 데다가 독자적인 노력에 의한 이윤창출과 위험부담도 없는 점을 고려해보면, 원청 역시 노조법을 준수해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원청이 하청업체 파업으로 인해 업무가 실질적으로 중단되고 대체인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자신의 사용자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비단 실질적인 지배력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어떤 ‘노동’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하는 자가 그 ‘노동’의 온전한 실현을 위한 헌법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

단지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헌법상 권리가 박탈되는 현실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법률로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 금지를 제도화해야 한다. 다행히도 꾸준한 문제제기로 인해 20대 국회에는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 금지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면서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원상회복하는 것, 사용자가 실질적 이익은 누리면서 의무는 부담하지 않으려는 유인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여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우지연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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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대통령께서 청와대에 일본군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을 초청하셨고, 그 자리에서 직접 “진실과 정의”를 언급했습니다. 지난달 27일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보고서가 나온 지 일주일 만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이미 ‘2015 한·일합의’가 내용면에서나 절차적으로도 해결책이 아니었다는 정확한 입장을 밝히셨고, 후속조치 마련도 촉구하셨습니다. 주권 국가의 수장으로 신속하고 단호하지만 품위 있는 방식으로 대응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남은 일은 정부 부처, 국회 차원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진실과 정의”에 부합하는 문제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요?

단기적인 차원과 장기적 차원을 구분하고 국내 차원과 국제사회에서 할 일을 구분하는 섬세하고 진지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첫째, ‘2015 한·일합의’는 실질적으로 ‘사망했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2015 한·일합의’를 기반으로 한 어떠한 주장이나 추가조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전제부터 잘못된 합의를 ‘수정·보완’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공식적 파기’ 혹은 ‘재협상’이라는 용어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역사 속에 고사하게 두면 됩니다.

둘째,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단순히 한·일 간 역사문제, 혹은 한·일 간 외교문제라고 생각하는 협소한 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지난 30여 년간 진행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 운동은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수많은 지역에서 무수히 많은 여성들이 당한 고통과 상처를 직시하고 반성할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사건을 공론화함으로써 ‘보편적 인권으로서 여성인권’이라는 국제 규범의 확립, 전시 성폭력과 성노예제에 대한 전 지구적 각성을 주도한 것도 다름 아닌 이 운동이었습니다. 여기에 참여해 온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 유럽과 아시아의 시민들은 하나같이 ‘2015 한·일합의’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 지적해 왔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는 처음부터 한·일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상의 전제에서 볼 때, 시급한 일은 화해치유재단과 일본으로부터 받은 10억엔일 것입니다. 이미 여성가족부 보고서에도 나왔듯, 절차를 어겨가며 너무나도 신속하게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은 당장 해산되어야 합니다. 부당한 ‘한·일합의’의 상징이기에 해소되어야 마땅함은 물론, 원래 취지에 맞지 않게 더 이상의 운영비가 지출되는 것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10억엔의 경우, 범정부 차원, 국회 차원의 숙의과정을 거쳐 이미 써버린 40여억원부터 채워야 합니다. 일본의 지원금 수령을 거부하신 할머니들이 계시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 시민 모금을 통해 이들에게 각각 1억원씩 지급한 금액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 정부는 10억엔을 복구해 놓은 상태에서 일본 정부가 거부하더라도 돌려 줄 의사를 지속적으로 피력해야 합니다.

외교부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이미 천명한 ‘투 트랙’ 전략으로 가면 됩니다. 다만 그 전에 잘못된 합의를 통해 그간 수많은 국내외 시민들과 국가 전체에 끼친 고통과 해악에 대한 철저한 내적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책임자들은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국익에 커다란 손실을 입히고 피해자들에게 2차, 3차 가해를 한 자들이 징계는커녕 승승장구한다면, 어떻게 일본 정부에 가해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여성가족부 또한 화해치유재단 설립과 운영 과정, 10억엔 운용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인사들과, 소위 ‘합의반대론자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여한 자들부터 조사하고 징계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중요한 일은, 지난 30여 년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쌓아 올린 자랑스러운 운동의 역사를 대한민국 정부가 계승하는 것입니다. 국내적으로는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자료수집, 아카이브, 분석과 전시, 추모사업과 역사교육을 한국 정부가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일본군성노예제의 심각성을 보편적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환기할 뿐만 아니라,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시 성폭력과 인신매매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인적·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천명이 필요합니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한때 너무도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였지만, 이제 국제사회에 당당한 인권국가로서 우뚝 선 대한민국의 모습을 전 세계에 천명하고 실천하는 것, 그 길만이 과거에 얽매여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아베 정권의 후진성과 모순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며, 상대적으로 낙후시킬 수 있는 방안입니다.

그 가슴 벅찬 일들이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 역사적 전환기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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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4개를 비준하겠다는 입장을 유엔에 표명키로 했다. 법무부는 7일 ‘제3차 유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실무그룹 보고서 초안을 통해, 결사의 자유·단결권·단체교섭권 관련 협약 87·98호, 강제노동 폐지 관련 협약 29·105호를 비준하라는 UPR 권고를 ‘검토 후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87호와 98호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합법화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비준 방침을 환영하며, 후속 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지길 기대한다.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했지만 8개 핵심협약 중 4개는 비준하지 않았다. 187개 회원국 가운데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중국, 마셜제도, 팔라우, 통가, 투발루 등 6개국뿐이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노동인권 후진국의 오명을 면치 못했고, 국내에서도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이 야기됐다. 가장 심대한 피해를 입은 것은 전교조와 전공노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14년간 합법노조의 지위를 유지해오던 전교조에 대해 ‘노조 아님’ 통보를 했다. 해직교사 9명을 조합원으로 인정한 전교조 규약이 교원노조법을 위반했다는 게 이유였다. 전공노 역시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 문제를 이유로 설립신고를 번번이 거부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후보 시절 공약으로 제시했고 집권 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협약 비준을 서두르는 것은 당연하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선 전교조의 재합법화는 비준 이전에도 가능하다. 박근혜 정부의 법외노조화가 행정처분에 불과한 만큼 이를 철회하면 일단 법외노조 이전 상황으로 복귀할 수 있다. 또한 정부는 협약 비준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노동계와 협의하고, 국회는 협약 내용과 상치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교원노조법, 공무원노조법 등의 개정 작업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 등 노동3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방안도 강구돼야 함은 물론이다.

노동자들은 누구나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헌법과 노동관계법이 보장하는 ‘노동조합 자유설립주의’다. 노조라면 무조건 백안시하던 낡은 인식은 이제 버릴 때가 됐다. 보수진영도 구태의연한 색깔론 따위로 노동기본권 확대를 막아설 생각은 접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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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교육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발표가 있었다. 미국의 100대 명문 사립고등학교가 성적증명서에 기존의 과목명과 성적을 빼고 핵심 역량 성취도를 중심으로 표기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 내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명문 대학 신입생의 대부분이 이들 100대 명문 사립고등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미국 고등학교에서 새로운 역량 중심 성적증명서가 도입되면 곧 대학의 입학 사정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교육 전문지 ‘인사이드 하이어 에드(Inside Higher Ed)’가 지난해 5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새로운 역량 중심 성적증명서에는 분석적·창의적 사고능력, 복합적 의사소통, 리더십과 팀워크, 디지털·양적 리터러시, 세계적 시각, 적응력·진취성·모험정신, 진실성과 윤리적 의사 결정, 마음의 습관 등 8대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평가한 내용이 기록된다. 영어·수학·과학 등 수업에서 받은 성적을 표기하는 정량적 평가 방식은 지양하고 각 핵심 역량별로 개별 학생들의 성취도와 숙련도를 표기하는 정성적 평가 방식을 적용한다는 것으로,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변화다.

미국의 공립고등학교들도 학생 개개인의 핵심 역량을 강화해 21세기형 인재로 양성하기 위한 계획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전통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버지니아주의 고등학교 3곳은 지난해 2월, 2018년도 신입생부터 ‘하이스쿨 2022’ 프로그램을 신설해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의 주목적은 고등학교에서 개인 맞춤형 학습을 실현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학습 목표에 맞춰 수강할 과목과 과외활동을 정하고 개별 일정에 맞춰 등교와 하교를 하게 된다. 또한 영어와 과학, 수학과 사회 등 몇 개 과목을 연계해 융합한 학제 간 수업들도 들을 수 있게 된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한 고등학교는 이미 2년 전부터 150여명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개인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해 왔으며 지난해 9월부터는 전체 신입생을 대상으로 개인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확대 실시하고 있다. 신입생을 맡은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의 장점과 선호에 따라 개인 맞춤형 학습을 진행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고 커리큘럼도 학생들이 개인의 관심과 흥미를 찾고 추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새롭게 구성됐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미국 고등학교의 다양한 변화의 중심은 바로 학생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변화는 대학입시 정책의 변화에 맞추기 위한 것도 아니고 더 좋은 대학에 보다 많은 학생들을 입학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다. 학생 개개인이 새로운 시대에 잘 적응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 교육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발표가 있었다. 2021학년도 수능 절대평가 도입안과 학생부종합전형 평가요소 가운데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를 축소·폐지할 계획이란 교육부의 발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가지 계획 어디에도 학생이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계해 한 국가와 그 구성원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복합적이고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어떤 정책이나 제안도 완벽할 수는 없다. 앞에 소개한 미국 고등학교의 변화도 현실적으로 실행되고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성적평가 제도나 학사운영 방식 변화에 앞서 여러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의 중심에 학생이 있고 아이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논의하고 고민하는 과정 속에 나온 이런 변화와 시도는 분명 의미있는 움직임이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처음 세상에 알린 세계경제포럼이 지난해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 보고서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들에게 요구되는 10대 핵심 역량이 나와 있다. 

순위로 보면, 복합문제 해결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창의력, 인적자원 관리능력, 협업능력, 감성능력, 판단 및 의사결정 능력, 서비스 지향성, 협상능력, 인지적 유연력 등이다. 

우리나라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교육계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새로운 시대는 점점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지금 우리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어떤 변화와 시도를 할 것인지 정하는 바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류태호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평생교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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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굵은 선을 쭉 그어놓고 초·중·고 학생들에게 이 선을 한·일 간의 국경선이라 가르치고 있다. 학교 교육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므로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일본 열도는 ‘다케시마 탈환’의 함성으로 가득 찰 터이다. 한·미 방위조약이 있지만 미국과 일본 사이에도 상호방위조약이 있는 데다 한·일 간의 영토분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입장으로 볼 때 일본과의 영토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미군의 도움 없이 일본 해군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이미 1940년대에 미국과 태평양 해전을 벌였던 일본을 이기고 우리가 독도를 안전하게 건사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전쟁을 경제학으로 설명하자면 짧은 시간 안에 최대의 돈을 쏟아붓는 행위인데 사실 돈이 없어 전쟁을 치르기 힘든 북한에 비해 일본과의 무력충돌 가능성은 훨씬 크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을 상대로 죽기 살기로 해군력을 키울 수 없는 일이고 보면 우리는 독도 방어를 위한 외교적·문화적 대응에 치밀해야 하고, 이에 무엇보다도 시급한 건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독도를 영토문제라 생각하고 있는 의식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다. 독도는 영토분쟁이 아닌 과거사 문제이다.

일본은 1895년 경복궁에 난입해 국모 명성황후를 폭행하고 기름을 부어 불태워 죽였다. 이때 우리는 이미 항거불능 상태에 빠져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고 10년 후인 1905년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으며 그로부터 5년 후인 1910년 나라를 병탄했다. 그러므로 독도 문제는 일본의 주장대로 국제사법재판소 판단을 구해야 할 쟁송 사건이 아니라 명성황후 폭행소살, 한일병탄과 더불어 ‘일본 제국주의 침략 3대 사건’ 중 하나인 것이다.

이처럼 독도 침탈은 본질적으로 식민지 한국 여성을 전쟁터의 성노예로 끌고 나간 일본의 반인륜적 제국주의 만행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인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위안부 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발하면서 자연스럽게 독도 분쟁의 실체를 알리고, 이 문제에 있어 일본 편을 드는 건 바로 제국주의적 침략과 반인류적 만행을 옹호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유대인들을 보라. 그들은 끊임없이 아우슈비츠를 고발하는 문학과 영화 등으로 독일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지 않은가. 게르만 민족주의로부터 안전을 도모하는 유대인들의 이러한 방법론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우리 외교부 관리들이 거꾸로 소녀상 은폐를 포괄적으로 내포한 합의서를 공동으로 작성했다는 사실은 귀를 의심케 한다.

외교의 기본은 국익이라 우리 외교관들 중에는 위안부는 지나간 과거이고 일본과의 안보 및 경제 협력은 당금의 현안이니 이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 이런 합의가 이루어진 것도 국익을 염두에 둔 외교관들의 실용적 시각이 반영된 결과일 터이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는 결코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닌 미래의 문제, 아니 이제 곧 우리를 덮칠 독도 무력분쟁과 연계된 문제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에 중대한 흠결이 있으며 이 합의를 가지고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소회를 밝힌 건 너무도 잘한 일이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평창 올림픽 불참과 대사 소환을 운위하고 일본 언론과 심지어는 일부 국내 인사들까지 국제사회에서의 신의를 깨는 행위라고 몰아붙이고 있지만 이것은 언어도단이다.

2015년의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반드시 재협상을 해야 할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 두고자 한다. 

첫째, 한·일 외무관리들 간의 이 합의는 노출을 꺼려한 데다 역사적 책임을 의식했을 박근혜 대통령 또한 비준을 하지 않아 국가원수의 직인이 들어간 정식 문서로 작성되지 못했다. 국가 간의 조약이나 협정을 규정한 빈 협약은 준수할 의무가 있는 국가 간 협약은 반드시 국가 의사 최고결정권자의 승인(endorsement)을 받아 정식의 문서로 작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떳떳하지 못한 이 합의는 이 규정을 피해갔으므로 대한민국은 이러한 비정상적인 합의의 내용을 지킬 의무가 없고 지켜서도 안 된다.

둘째, 성노예라는 표현을 숨기고 소녀상 이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등 이 합의는 역사의 진실을 숨기고 자국민에게 가해진 만행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들어가 있는 비인도적 굴욕 문서인 만큼 당연히 즉각 파기되어야 한다. 약속의 파기에 따른 국가 신인도 하락을 걱정하는 인사들이 있는데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세계인들은 이미 소녀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일본 정부는 세계 곳곳에 설치되는 소녀상을 가로막아 과거사를 숨기려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번번이 지구적 공감대에 가로막혀 좌절하는 걸 우리는 분명히 목도하고 있다.

반인류적 범죄 은폐의 시도를 내몰고 정의로운 협약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대한민국을 향해 세계가 박수를 칠지언정 비난을 할 거라는 주장은 당치도 않다.

셋째, 무엇보다도 위에서 살펴본 대로 위안부는 다만 지난 과거의 일이 아니라 다가오는 독도전쟁을 막을 수 있는 우리의 유력한 외교적·문화적 무기이다. 위안부와 독도를 한 묶음으로 묶어 반제국주의의 세계적 연대를 결성하는 것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일본의 독도 침공을 사전에 무산시켜 전쟁을 막는 우리의 책략이 되어야 하고 그 첫걸음은 잘못된 위안부 협정의 파기이다.

역사의 시간이 흘러 눈앞을 가린 아베의 안대가 벗겨지면 일본인들도 우리의 이 결정을 평가하고 고마워할 것이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전쟁을 막는 것 이상의 국익은 없기 때문에.

<김진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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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의 최전선을 다루는 패션잡지에서 일하며 아이템이 떨어질 때마다 마치 구세주를 찾듯 종종 찾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마선생’이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업계에서는 선수권대회에 나가도 좋을 만큼 ‘촉’이 빠르고 ‘입담’마저 ‘메달감’으로 통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이었다. 패션 피플 1세대답게 그의 정치적 성향은 사뭇 ‘조선일보’스러운 데가 있었고 잘 모르고 보면 그냥 ‘잘 늙지 않는 날라리’ 분위기였지만 내가 아는 그는 보기보다 훨씬 더 지성적인 동시에 인간적으로 순수하고 깊이라든가 진정성마저 있는 사람이라 나는 그를 기꺼이 ‘선생’으로 생각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LP판. 중고 판매 사이트 갈무리

그런 그가 몇 해 전에 매우 신선한 ‘새해 결심’을 했던 걸로 안다. 내가 패션지 기자 신분으로 맞은 거의 마지막 새해였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만난 그가 이렇게 말했다.

“친구 최시영이랑 ‘새해부터는 아날로그를 하자’고 다짐했어. 그래서 새해 첫날 아침부터 의자 위에 눌어붙어서 그동안 못 들었던 LP를 실컷 들었다니까. 그중 가장 좋았던 게 마일스 데이비스의 <Bags Groove>였는데 그걸 듣고 있으니까 너무 좋아서 심지어 눈물이 나는 거야. 어느새 나도 속절없이 늙어버렸지만 내 앞에 이렇게 느긋한 방식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들이 점점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하니 늙는 게 나쁘지 않게 느껴지더라고. 그러다 죽어도 괜찮을 것 같고.”

생각해 보니 내게 이른바 ‘차 한 잔으로 부릴 수 있는 여백의 힘’을 알려준 것도 마선생이었다. 자동판매기에서 인스턴트 커피 나오는 시간도 지루해 좀이 쑤시는 종류의 인간이 바로 나였는데 그런 내가 어느 순간부터 잎녹차를 우려 마시고 있었다.

“난 말이야. 우리가 고요히 기다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도 직접 차를 우려 마셔야 한다고 생각해. 특히 이렇게 미친 듯이 바쁘게 사는 우리한텐 그런 게 꼭 필요해. 예컨대 티백이나 가루녹차 같은 것 말고 잎녹차를 끓여 마신다는 행위는 어쩔 수 없이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거잖아. 그리고 그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과정을 통해 결국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거고.” 그의 얘기는 그것이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순간’이기에 기꺼이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하고 마음에 드는 다완도 사고 기분 좋고 바스락거리는 좋은 찻잎도 사고 물도 끓이고 차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았다.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의 온갖 화려하고 세련된 곳들 있잖니. 그런 곳들에 내가 손댄 곳이 많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그 중심에 있어 보았기 때문에 아는 거지. 그 중심에 있는, 그런 기분 같은 것의 공허함이랄까 뭐 그런 것들을. 그래서 나는 이제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일들, 그런 것에 마음이 끌리지 않아. 오히려 손으로 만져서 그 감촉을 느낄 수 있는 일들, 그래서 요즘 공예라든가 핸드메이드라든가 하는 보다 아날로그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돼. 그게 직접적인 교류의 문제인 거잖니? 크건 작건 상관없이 일일이 내 손으로 직접 만져서 더 밀접해지고, 깊은 관계를 가지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

이제와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얼마나 놀랍도록 촉이 빠른 동시에 본질을 꿰뚫는 진실된 얘기가 아닌가 싶다.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하나둘 사라지다가 결국 공룡처럼 멸종하고 말 거라고 예상하던 소규모 동네서점이나 음반가게들이 다시 문을 열고 있다는 희소식을 전할 줄이야. 얼마나 가슴 뛰는 멋진 트렌드인가 싶다. 온 세상 음악을 클릭 한 번으로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음악을 손으로 고르고 구매하는 육체적 즐거움에 눈뜬 젊은이들이 새삼 비닐 레코드이거나 CD, 심지어 카세트테이프로 된 음반을 기꺼이 구매하고 있다는 뉴스를 전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줄이야. 야호!

아마존이 뉴욕 맨해튼에 오프라인 서점을 열었다는 소식이 먼저였지만 그보다 더 반가웠던 건 내 대학시절의 우상이었던 최인아 카피라이터가 강남에 동네서점을 열었다는 소식이었다. 기쁜 마음에 그 최인아 서점에 갔다가 발견한 책 <아날로그의 반격>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디지털에 둘러싸인 우리는 이제 좀 더 촉각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경험을 갈망한다. 우리는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제품이나 서비스와 소통하기를 원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위해 기꺼이 웃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그리하여 세계는 지금 비트코인 광풍에 휩싸여 다양한 연령대의 폐인들을 양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새해엔 아날로그를 하자’고 결심하는 이들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후자다. 이미 수고롭게도 LP는 물론 CD와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고 동네서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며 날이면 날마다 핸드드립 커피와 잎녹차를 마시고 있는 나는 새해엔 더 아날로그적인 인간이 되자 결심하며 다시금 필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어떻게 하면 암실에서 현상하는 육체적 즐거움까지 누려볼 수 있을까 상상도 해 본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오감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육체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은 사실상 누구나 다 아날로그다. 그 사실이 난 기쁘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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