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수매’는 귀에 익어도 ‘하곡수매’는 낯설다. 늦가을에 파종하여 여름에 거두는 하곡의 대표작물은 맥류로 분류되는 보리와 밀이다. 추곡의 대표작물은 쌀이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추곡수매도 폐지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곡물 중에서도 가장 먼저 정부 수매가 폐지된 작물은 밀이다. 미국밀이 지천에 흔하던 때에도 밀 수매가 이루어져 그나마 희미하게 밀농업이 유지되었다. 하나 그마저도 귀찮았는지 전두환이 1984년 밀 수매를 중단하면서 밀농사는 완전히 맥이 끊길 지경이었다. 그러나 몇몇 농민이 한 알의 밀알이라도 계속 채종하여 심어온 덕분에 지금 우리밀의 뿌리를 지켜냈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토종밀을 얻어다 키운 사람들 중에 백남기 농민도 있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살이를 했던 백남기 농민은 징역살이를 끝내고 자신의 고향 보성군 웅치면 부춘 마을에 내려와 5,000평의 밀밭을 꾸렸다. 1989년 보성의 첫 우리밀 생산자는 백남기 농민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故) 백남기 농민

0.2%니 0.1%니 하는 의미 없는 소수점 수준의 자급률이었던 밀이 절멸할까 걱정스러워 농민과 시민들이 손을 맞잡고 겨우 지켜낸 것이 ‘우리밀’이다. 그 노력 끝에 이제 밀 자급률은 1% 남짓이다. ‘우리밀’이란 예쁜 이름이 보통명사가 된 것도 1990년대 초반 벌였던 ‘우리밀살리기운동’에서 비롯되었으니 우리밀은 쌀과 더불어 식량자급의 큰 상징이자 자부심이다.

그런 우리밀이 또 수난시대를 맞이했다. 쌀값 하락과 2008년 세계의 곡물파동으로 이명박 정부는 쌀 대체작물로 우리밀을 주목했다. 농민들에게는 이모작으로 소득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 하면서 우리밀 자급률을 10%로 늘리겠다는 허언을 날렸다. 식량자급률이 말로만 올라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비자들이 즐겨 먹을 수 있는 형편을 마련해 놓지 않으면 별무소용이다. 이유는 우리밀이 수입밀보다 3배 비싸고 가공 활용도가 낮아서다. 아니 반대로 수입밀은 싸고 산업원료로 오래도록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한때 <제빵왕 김탁구>라는 드라마 열풍과 수입밀 가격 폭등으로 대형 제과회사들도 우리밀에 관심을 두기도 했다. 대형 제과기업이 우리밀을 사들이면서 잠시 품귀현상도 있었으나 딱 한철에 그치고 말았다.

작년 우리밀 자급률이 고작 1.6% 정도로 올라오니 바로 재고로 쌓여 우리밀 생산자들이 헉헉거리는 중이다. 대체 무슨 배짱으로 우리밀 자급률 목표를 10%로 잡았던 것일까. 하긴 그 안에 목표 자급률은 5.1%로 후퇴했고 이제 그마저도 흐지부지될 모양이다. 그동안 정부는 목표 자급률을 맞추기 위해 질보다는 양에 치중한 정책을 펼쳐왔다. 그래서 맛과 활용도 면에서 떨어지는 ‘다수확’ 품종인 백중밀 보급에 집중해 왔다. 그렇다 보니 소비 진작이 되지 않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 하지만 그나마 백중밀도 밀쳐놓고 이제 농정당국은 ‘적정생산량’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우리밀 농사는 여기에서 멈추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뜻으로 읽힌다.

백남기 농민의 1주기가 열흘 앞이다. 2015년 11월, 밀 파종을 마치고 서울 민중대회에 참가했다가 쓰러지면서 손수 갈무리하지 못한 ‘백남기 우리밀’. 그 씨앗을 받아 동료 농민들이 우리밀 농사를 짓고 있다. 그의 숨결이 담긴 ‘백남기 우리밀’ 세트가 절반도 안 팔렸다는 애타는 소식을 들었다. 올 추석은 ‘백남기 우리밀’로 백남기 농민의 뜻도 기리고 우리밀전이라도 부쳐보면 어떨는지.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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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덜컹. 차가 돌부리에 걸리거나 푹 꺼진 땅을 지나며 흔들릴 때 쓰는 말이다. 넉 달이 갓 넘은 문재인 정부에서의 세상살이를 두고 전화 너머로 친구와 공감한 단어는 ‘덜컹’이었다. 북녘의 6차 핵실험, 남녘과 중국에서의 사드 후폭풍, 김이수·박성진 후보자의 인사 파동…. 맏이가 교대 다니고 막내가 중3인 친구는 여러 얘기 끝에 여름 내내 꽤 속 끓인 듯 교육 얘기를 더했다. 통제선을 넘은 ‘북풍’이 있고, 보수 3당의 ‘완력’이 보이고, 정부가 자초한 ‘화(禍)’가 섞여 있다. 친구의 넋두리처럼, “잠시 세상사는 숨통이 틔었다가 다시 숨이 막혀오는 나라 꼴”이다.

억울할 것이다. 정책 집행자 눈에는 도처에 먼지를 두껍게 쓰고 있는 난제들이 적폐일 게다. 손대려니 공매 맞는 걸 피할 길도 없다. 초등교사 수급만 해도 4년 전 교육부 연구용역에서 이미 교사 수가 정원을 1만명 웃돌고, 갈수록 더 심각해질 거라는 내부 경고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 시한폭탄을 묻어두고, 박근혜 정부는 청년들의 파트타임 노동(기간제 교사·강사)을 늘릴 시험터로 학교를 택했다. 그 후과가 지금 3만5000명 웃돌고, 2024년 7만5000명에 달할 거라는 ‘잉여 교사’의 수렁이다. 8월 한 달을 시끄럽게 달구다 1년 유예한 수능개편 작업도 2013년 융·복합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백년지대계로 시작됐다. 문·이과 통합과 수능 절대평가의 설익은 그림을 담아보려다 퇴짜 판정을 받은 격이다. 그 무섭다는 중2들만 자극하고 “4년간 뭐하다 이제 와서….” 소리가 교육부를 몰아친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억울함은 거기까지다. 상처를 덧내고 매를 버는 일이 줄 잇고 있다. 살충제 계란의 엉성한 관리가 옛 정부의 적폐라면, 혼란과 화를 돋운 사람은 따로 있다. 닷새 후 들통 날 거짓말을 하고 업무 파악도 못해 버벅댄 식약처장이다. 성주 땅에는 대통령이 약속한 국회 비준이나 환경영향평가도 없이, 과연 효용이 있는지 ‘과학의 언어’를 얹지 못한 채 사드 불씨가 밤새 터를 잡았다. 돌이켜 보건대, 교육현장에서 30%밖에 수긍 못할 수능개편안은 새 부대에 담을 술이 못되면 애초 출시를 늦췄어야 했다. “양자택일하라”며 강매한 교육부는 오만·불통의 관료 속성 그대로다.

누적된 교사 과잉 폭탄을 올해 임용고시생에게 던지려 한 ‘행정폭력’도 조급함의 발로다. 교사 연수·파견·휴직을 늘려 임용 숨통만 터보려는 몸짓은 아랫돌로 윗돌 괴기다. 제3자 눈엔 답이 보인다. 적폐를 풀겠다는 정부라면, 처음부터 교사 수와 교대생 기득권을 같이 낮추는 긴 일정표를 내놓고 사회적 대화를 시작했어야 했다. 그것이 혁명이나 행정 독재보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일 게다.

적폐는 쌓인 두께와 시간이 여러 갈래다. 어깨 힘을 뺀 검찰·국정원·감사원·국방부·방통위가 몸소 저지른 악의 뿌리를 당기고 있다. 블랙리스트·댓글·공영방송·4대강에선 ‘검은 팩트’가 쏟아지고,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백서를 쓰고 있다. 청와대 뒷산에서 ‘쇠고기 촛불’을 내려다보며 곱씹었을 MB의 반격과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 탄압사를 기록하는 장정이다. 해도, 역사는 앞으로만 가지 않는다. 어찌보면, 박수 받는 쉬운 적폐부터 손대기 시작한 격이다. 시끄럽고 난항인 것은 정작 이해와 생각이 엇갈리는 생활·안보 이슈다. 4대강 끝에는 담수와 바닷물이 격하게 부딪치고 섞이는 기수역(汽水域)이 있다. 그 못잖게 추석 연휴 뒤에 ‘과거 9년’과 ‘새 정부 5개월’이 충돌할 국정감사에선 그 밀당이 정점으로 치달을 게다. 길싸움은 이제부터다. 진흙탕 싸움을 불사하는 야당이 있고, 수레바퀴처럼 도는 이슈가 있고, 저마다 눈높이가 다른 민심은 늘 변덕을 품고 있다.

 닻 올리고 128일, 문재인 정부에도 어김없이 호루라기는 울렸다. 저항 세력이 돌출하고, 개혁 피로감이 움트고, 국정지지율은 70 언저리에서 ‘떨리며 내리막’이다. 이맘때, 구중심처에선 호미로 막고 가자는 사람, 물러서면 대통령 힘 빠진다는 사람이 섞인다. 정도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이다. 문재인 정부의 그것은 “이게 나라냐”고 묻던 촛불이다. 겸손한 권력, 찾아가는 정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 문 대통령 취임사에 담긴 키워드이고, 그날 임명된 임종석 비서실장의 일성은 “예스맨이 되지 않겠다”였다. 초심은 유지되고 있는가. ‘3철’을 배제했던 인사 감동이 역사에 무지한 ‘생활보수 소시민’을 국무회의에 앉히는 인사로 저물 것인가. 5·18과 가습기 살균제의 멍울을 풀어준 대통령이 성주 소성리는 외면할 것인가. 생리대·계란·수능개편·박성진 파동으로 이어진 과오는 여름날로 끊을 수 있나. 힘 빠지고 아픈 것은 자살골이다. 운신을 옥죄는 적폐는 억울할 게다. 하나, 그 위에 덧난 상처는 현재의 몫이다. 위정자들이 기대는 “억울한 과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기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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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가까운 교수 한 분이 재미난 그림 하나를 보여줬다. 이정문 화백이 1965년에 그린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란 제목의 그림이었다. “앞으로 35년 우리의 생활은 얼마나 달라질까”란 부제를 달고 있었다. 1965년이라면 필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이다. 그런데 그 그림에는 태양열을 이용한 집, 전파신문(오늘날 전자신문), 컴퓨터, 전기자동차, 움직이는 도로(요즘의 무빙워크), 소형 TV 전화기(영상통화 가능한 휴대전화), 청소 도우미 로봇, 원격진료, 원격학습 등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기기와 설비, 서비스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단 하나 지금과 다른 건 로켓을 타고 달나라로 수학여행 가는 상상뿐이었다.

만화가인 이정문 화백이 어떻게 그렇게나 미래를 잘 맞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1941년생으로 당시 청년이었던 그는 부지런히 신문을 읽으며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앞으로 도래할 세상을 상상했다고 한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현실에서 자라고 있는 변화의 씨앗을 놓치지 않은 거였다.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경주 지진발생 1년을 맞아 대규모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자 '안전의 여신상'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앞으로 35년 뒤는 2052년이다. 어림잡아 2050년경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까? 변화의 씨앗이 어디에서 자라고 있을까? 무엇보다 세계는 재생가능에너지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놓치기 어려울 정도로 분명하다. 많은 문서와 기사, 다양한 수치들이 그런 변화를 이미 입증하고 있다.

사실 미래라기보다는 이미 현실이다. 재생가능에너지는 2016년 전 세계 신규 발전 설비 용량 중 62%,신규 투자 중 63.5%에 달했다. BMW, GM,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필립스, 나이키, 월마트 등 굴지의 세계 기업들이 2025년이나 2030년까지 100%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을 쓰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선언 기업 수가 최근 106개로 늘었고 앞으로 더 늘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적인 국제에너지기구(IEA)조차 2030년에는 재생가능에너지가 최대 전력원이 된다고 전망했다.

최근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서 해상 풍력 비용이 이전에 비해 절반 정도로 떨어지면서 정부가 35년간 발전단가를 보증하며 계약한 힝크리 포인트 C원전보다 싸지자 원전 건설 계약을 재고해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우린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그 갈림길의 지표가 바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이다. 이미 1조5000억원의 매몰비용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이 사업을 재개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추가 건설비용 7조원에다 폐로 비용과 사용후 핵연료 처분 비용을 고려하면 더 들어갈 비용이 10조원이 넘는다. 신고리 5·6호기가 설계수명이 다하는 때는 무려 2081년과 2082년이다. 이정문 화백이 상상한 35년 만에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바뀌었다. 앞으로 64년, 65년 이후의 세상은 얼마나 더 빠르게 바뀔까? 그 사이에도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 싼(사실은 잘못 매겨진) 전력요금을 경쟁력으로 삼는 기업에 희망이 있을까?

게다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단순히 원전 2기를 추가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게 원전이 입지한 지역에, 30㎞ 이내 인구가 382만명으로 가장 많은 지역에, 핵심 산업시설이 들어서 있는 울산과 부산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활성단층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과 미래세대를 배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결정인 동시에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면서 더 나은 투자 기회를 닫아버리는 어리석은 결정이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미래는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 오늘 우리의 결정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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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신재생에너지의 단가가 빠른 속도로 낮아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특히 영국에서는 원전의 단가에 크게 밑도는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영국 정부는 지난 11일 실시된 입찰에서 지금 한창 건설 중인 신규 원전의 공급가격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해상풍력 건설 사업 11건을 승인했다. 그중 2022~2023년부터 운영할 해상풍력발전 사업의 경우 ㎿h(메가와트시)당 58파운드(약 8만7000원) 이하로 전력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는 영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건설 중인 신규 원전(힝클리 포인트 C)의 공급가격(92.50파운드)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삼척시 에너지전략실 소속 공무원들이 지난 4일 근덕면 용화리에 자리잡고 있는 삼척태양광발전소(주)의 태양광판넬을 살펴보고 있다. 최승현 기자

이 획기적인 입찰 결과 소식에 영국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해상풍력의 경우 약정공급가격이 2012년 이후 5년도 채 안되는 사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신재생에너지의 기술발전과 단가하락 속도는 이처럼 상상을 초월한다. 당장 노후화한 원전을 차세대 신규 원전으로 대체하려는 영국 정부의 정책은 재검토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낙찰된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생산할 전력은 2025년 완공 목표인 힝클리 포인트 C 신규 원전의 발전량(영국 전력공급량의 7% 규모)과 비슷하다. 영국 내 전문가들도 “가장 강력한 가격경쟁력을 갖춘 기술발전 덕분에 더는 거스를 수 없는 신재생에너지 시대가 도래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영국뿐이 아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13일 “미국 내 전력망 공급용 태양에너지의 가격이 지난해보다 30% 줄었다”면서 “낮아진 인건비와 부품가격의 하락으로 비용감소 목표를 3년 앞당겨 달성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무리 반환경적인 정책을 펴도 신재생에너지의 도도한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원전을 값싼 에너지원으로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국내 친원전론자들은 영국·미국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좁은 국토에 풍력·수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부르짖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 좁은 국토에, 그것도 인구 380만명이 사는 밀집지역에 무려 10기의 원전이 들어선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좁은 땅에서 10만년이나 보관해야 할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을 어디서 찾는다는 말인가. 신재생에너지를 거부할 수 있는 이유는 사라졌다. 그만큼 원전 집착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시대착오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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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개신교계가 어제 종교인 과세 시행을 2년 유예해달라고 정부에 공식 요구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교회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회는 공동입장문을 내고 “과세를 강행한다면 심각한 조세저항과 정교갈등을 낳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입장문은 김동연 부총리가 종교인 과세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시민들의 공평 과세 요구를 무시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참으로 뻔뻔한 주장이다. 저항, 갈등 등 분열을 조장하는 표현까지 동원한 것은 정부와 시민사회를 겁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을 찾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인 엄기호 목사와 종교인 과세(소득세법 개정안) 관련 면담을 하기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에 따라 마땅히 시행됐어야 할 종교인 과세가 수십년째 헛바퀴를 돈 것은 신앙을 앞세운 일부 종교단체들의 오만함과 이를 비호해온 정치권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정치권이 뒤늦게 2015년 12월 세법 개정안을 만들었지만 그나마 시행일은 2018년 1월1일로 유예한 터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유예를 거론하는 것은 염치없는 행위이다. 이는 “종교인 과세는 시종일관 지지”(자승 총무원장), “종교인들이 과세에 반대한 것으로 오해받을까 걱정”(김희중 대주교)이라는 불교계·가톨릭계의 입장과도 대비된다. 세무조사와 관련한 주장도 납득하기 힘들다. 엄기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은 “세무조사 때문에 종교활동이 저해될 수 있다”며 “탈세 제보가 있으면 각 교단에 이첩해 자진납부하게 하고, 세무공무원이 개별 교회와 종교단체를 조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탈세를 묵인해달라는 얘기로, 교회를 정부의 윗자리에 놓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오만한 발상이다.

현행법에 ‘국세청은 공익법인 등이 출연받은 재산을 공익 목적으로 썼는지 언제든지 조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교회는 공익법인으로 분류돼 있다. 한국 교회가 위기에 처한 데는 불투명한 재정관리가 큰 원인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때마침 어제 진보성향 개신교 교단 협의체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종교단체가 투명하게 세금을 신고·납부한다면 세상을 향해 담대한 꾸지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참된 정교분리의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는 고언이 나왔다. 공감되는 말이다. 종교인은 무법과 불법의 영역에서 사는 존재가 아니다. 과세 유예의 특권을 요구할 자격도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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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14일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부적격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송부받고 임명을 보류했다. 그렇다고 지명을 철회하지도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후보자 임명 문제는 시간을 두고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여론을 더 살피겠다는 뜻이다. 박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이라고 명시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는 전날 여당의 묵인 속에 채택됐다. 여당 의원들조차 박 후보자의 자질과 역량 부족에 고개를 저었다고 볼 수 있다. 박 후보자의 낙마는 이제 기정사실화됐다. 만에 하나 임명을 강행한다 해도 장관으로서 리더십 발휘나 정상적인 업무수행은 불가능하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문에 잠시 눈을 감고 답변을 생각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청와대의 구상대로라면 다음주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복귀할 때까지도 박 후보자의 거취는 결론이 나지 않을 수 있다. 이미 부적격 결론이 난 장관 후보자의 거취 문제를 오래 끄는 건 옳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중소벤처기업부는 혁신적인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가겠다고 새로 만든 부처다. 문재인 정부의 상징과도 같다. 그런데 정권 출범 넉 달이 지나도록 장관 자리를 비워둔다는 건 국정 공백과 혼란을 방치하는 꼴과 다를 바 없다.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3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북핵 위기에 인사 난맥이 겹친 탓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벌써 6명의 고위공직자가 낙마했다. 추천과 검증 등 청와대 인사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과할 건 사과하고, 잘못된 건 바로잡겠다고 말해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후에도 침묵을 지키다 다음 날 밤에야 ‘대통령 입장문’이란 것을 내놓아 많은 지지자들을 실망시킨 바 있다. 대통령의 직접 브리핑은 하고 싶을 때만 하는 게 아니다.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시민에게 솔직하게 입장을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의 ‘불통 정권’과는 달라야 한다. 지금은 여론의 향배를 살필 게 아니라 여론 앞에 직접 나서 설명할 때다.

이유를 불문하고 국정운영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경색 정국을 풀고 국론을 모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주요 난제들을 시민과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문재인 정부가 성공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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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칼럼에서 서남대 폐교 방침을 비판하는 가운데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노회한 교육관료층에게 벌써 휘둘리는 것 같다고 썼다. 하지만 8월31일 김 장관이 수능 개편안을 유예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약 섣불리 결정을 내려 교육현장에 혼선을 일으키고 반발을 자초했다면, 김 장관은 자신이 뜻한 교육개혁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관료집단에 포획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 시행 방침과 내년도 교육부 예산안을 보면 다시 걱정이 많아진다. 내년 예산안은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고 쟁점이 많으니 내후년을 기대하며 일단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김상곤 교육부장관이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1학년도 수능 개편 계획을 1년 유예한다고 발표한 뒤 회견장을 나가고 있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 계획을 1년 유예한다고 발표한 뒤 회견장을 나가고 있다. 김영민 기자

그러나 대학구조개혁평가의 틀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은 채 추진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으며, 장관의 무사안일은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임박한 위기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이미 줄인 대학입학정원 4만4000명 외에 약 10만명을 2023년까지 추가 감축하려는 교육부 계획의 타당성을 더 따져봐야 한다.

해마다 급격히 줄어드는 고교 졸업자는 2023년에 약 40만명으로 떨어진다. 대학 진학률을 70%로 가정해도 지원자 28만명은 내년도 입학정원 52만명의 절반을 겨우 넘는다. 반면에 평생교육이나 재교육, 외국인 유학생 등으로 대학입학 수요가 5~6년 만에 크게 성장하기는 힘들다. 추정컨대 2023년까지 교육부가 계획한 10만명의 무려 두 배인 20만명 가까이 줄여야 한다.

교육부가 입학정원 10만명 축소 목표가 위기 극복에 불충분함을 외면하는 것은 학령인구 급감이 예고된 시점에서도 대학 난립을 허용하여 거품을 키운 책임이 두려운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비판적 논자들 역시 이 문제를 제대로 따진 적 없음도 꼬집어야 옳다. 어쨌든 교육부는 기존 방식의 숱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2주기 평가를 그대로 밀어붙일 기세이다. 지난 8월25일 관련 보도자료만 봐도 심각한 문제는 여전하다. 두 가지만 따져보자.

첫째, “학생의 선택에 의한 조정 존중”이라는 가소로운 어구를 써 가며 신입생 충원율 배점을 상향 조정하겠다고 밝힌다. 이렇게 되면 지방의 한계사학은 더욱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수도권 대학만 살아남고 지방은 국공립대학을 비롯한 소수의 대학 외에 모두 고사함으로써 한국 대학의 생태계는 처참한 꼴이 될 것이다.

엄청난 대학정원 축소가 필요한 현실에서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을 위해 수도권 대학의 정원 감축을 유도하는 것은 어렵다. 가령 줄어드는 등록금 수입을 정부 지원으로 보전하는 공영형 사학을 제안해도 수도권 사립대들은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다.

이 난제를 치열하게 고민해도 시원치 않을 터에 아예 고민조차 없으니 수구정권의 정책과 똑같다. 하다못해 수도권 4년제 대학들에 전문대에 적합한 전공을 무원칙하게 허용해온 잘못을 고치겠다는 의지도 보여주지 못하는가.

둘째, 교육부는 1주기 평가지표가 열악한 처우의 전임교원을 양산한 부작용을 인정하면서 2주기에서 “전임교원 일자리 수준 악화 방지”를 약속한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다음 대목에서는 “전임교원 강의 담당 비율”의 만점 기준 유지를 밝힌다.

이 해괴한 지표의 점수를 따느라 대학의 개설 강좌는 많이 줄고 교수의 주당 수업시간은 크게 늘었다. 당연히 교육의 질은 나빠지고 시간강사 대량해고라는 심각한 부작용도 더해졌다. 이 문제는 교수 1인당 학생수로 표현되는 법정 교원 충원율을 평가지표로 바꾸면 명쾌하게 해결된다. 그러나 교원 충원율은 교수 규모를 유지해야 하니 돈이 들고, 전임교원 강의 담당 비율은 돈을 아낄 수 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관료와 비리사학의 짬짜미에 분노가 치민다.

김상곤 장관의 제5기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는 진보 학자들도 여럿 이름을 올렸다. 새 위원회는 교육관료의 관성과 기득권을 떨쳐버린 혁신적인 정책기조를 내놓아야 한다. 물론 정부 정책만으로 대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 당사자인 대학 구성원들, 지역 사회와 지자체 등이 협력하여 자율적인 대학 통폐합을 추진하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사학 소유주’ 등 교육마피아의 아성을 무너뜨릴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것은 효과적인 정부 정책이며, 주무 장관만이 아니라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정확한 인식과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내년 예산에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를 위해 1000억원을 배정했지만, 그것은 공영형 사학 확대의 실질적 계획을 동반해야 성공한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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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PD, 아나운서, 리포터, 미술음악치료사. 모두 전문 프리랜서 직업들이다. 언론에서 프리랜서는 주로 유명인사들의 사례가 소개된다. 무엇보다 전문성이나 창의성을 다루지만 고소득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영화나 방송에서 프리랜서 직업은 커피 전문점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노트북 컴퓨터로 일하는 모습들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프리랜서의 일은 밝기만 한 것일까. 또한 프리랜서는 좋은 일자리(decent work)의 미래상일까.

프리랜서는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회사 직원이 아니다. 비용은 ‘인건비’가 아니라 ‘제작비’로 나간다. 그러니 퇴직금이나 실업급여, 건강검진도 없다. 당연히 연차휴가도 없다. 프리랜서는 회사나 고용주들이 대신 지급하는 형태로 모든 세금을 내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이 누리는 혜택은 받지 못한다. 소득 예측도 어렵고 변동성도 심하다. 합리적인 계약도 이루어질 수 없다. 일하는 곳에서는 신분증이 아니라 출입증을 받는다. 그래서 프리랜서는 보이지 않는 유령에 불과하다.

국내외 통계에서 프리랜서는 취업자의 약 5% 남짓 된다. 적지 않은 규모다. 문제는 전통적인 임금노동자도 아니고, 자영업자도 아닌 모호한 고용형태다. 프리랜서(Freelancer)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독립계약자’나 자영업자로 불린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주로 ‘자유직업인’으로 지칭된다. 프리랜서는 이미 기존 노동자와는 구분되는 특성을 가진 집단으로 고착화된 지 오래다. 명칭상 ‘프리랜서’라고 불리는 순간, 열악한 노동조건과 사회보장의 미비는 고용의 왜곡을 초래한다.

최근 ㄱ방송사 프리랜서와 대화를 하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사실 화가 났다. 그녀에게는 1년에 3일의 휴가가 주어졌다. 유급이 아닌 무급이다. 그런데도 다행이라고 한다. 정말 중요한 일이나, 취업 때 면접이라도 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그녀의 삶 속에 ‘휴가’는 낯선 단어였다. 휴가는 곧 소득의 단절, 경제활동의 단절을 의미한다. 1주일에 6일 출근하면서 고작 주급 40만원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사용하는 휴가지만, 그녀에게는 정말 ‘소중한 3일’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프리랜서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컸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와의 차별은 마지막 남은 자존감조차 상실케 한다. 야간이나 주말 혹은 명절 근무는 모두 프리랜서의 몫이다. 싫다고 할 수도 없다. 봄·가을 프로그램 개편 때 자칫 실업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리랜서의 고용불안정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회사 인력이 아닌자. 한마디로 회사의 편의대로 쓰고 필요 없으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일 수도 있다”는 말에 가슴이 막막해졌다. 그곳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도 이제 ‘보호를 필요로 하는 고용’에 관심을 가질 시기다. 지난 4월15일 미국 뉴욕시는 ‘프리랜서보호법’을 제정했다. 주요 내용은 서면계약, 임금 적시 지급, 보복으로부터의 자유, 고용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와 법률 서비스 등이다. 법의 취지는 “신분이나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은 프리랜서에게 건강보험과 퇴직연금 혜택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유럽의 몇몇 협회들은 프리랜서 수익의 일정 금액을 상호부조 성격으로 공제하기도 한다. 프리랜서 재교육 비용에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다행스럽게 최근 국내에서도 프리랜서 권익보호를 위한 활동들이 전개되고 있다. 아직은 소수이나 프리랜서 권익보호를 위한 움직임의 시작이다. 프리랜서에게도 일터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 MBC와 KBS에서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이 진행되고 있다. 파업이 마무리되면 작가나 리포터 등 내부 구성원에게도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 결방으로 급여를 받지 못한 프리랜서에게 최소한의 휴업수당이라도 지급하면 어떨까. 그 정도의 작은 희망을 기대해 본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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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직업군을 특별한 영역으로 인식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는 인터넷이나 휴대폰이라는 매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필사즉생의 정신으로 한땀한땀 원고지 빈칸을 채워나가던 아날로그의 시대였다. 어떤 작가는 얼음 밥을 끼니 삼아 단절된 세상을 노래했고, 어떤 작가는 탈장의 고통 속에서 한국현대사를 32권 분량의 소설로 풀어냈다. 이들은 모두 전업작가라는 평생의 꿈을 이뤘다.

모름지기 작가라면 빛나는 문장을 잉태하려고 무박삼일 정도는 술독에 빠져 지내도 상관없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이러한 작가의 전설은 인터넷이라는 거인의 등장 이후 점차 사라졌다. 실시간으로 자신의 글재주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난 것이다. 신세대 작가들은 원고지와의 이별을 선언했다. 웹소설이나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서 자신의 필력을 뽐내는 필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디어의 발전으로 작가의 탄생 과정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세상은 더 이상 글만 잘 쓰는 작가를 원하지 않았다. 유명인이냐 아니냐가 작가의 가능성을 증명해주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유명인의 이름으로 등장한 책이라면 필력과 상관없이 일정 수준의 판매량이 보장되었다. 대형 스캔들의 주인공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출판계의 격한 환영을 받았다.

책 <작가란 무엇인가>에는 12명에 달하는 유명작가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펜으로 원고지의 빈칸을 채우던 20세기형 작가라는 점이다. 천문학적 인세를 챙기는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신인 시절에는 원고지를 사용하던 작가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보다 실제적이고, 동시대적이고, 포스트모던한 경험을 글감으로 다룬다고. 역사관에 관한 영양결핍에 시달리는 작가치고는 꽤나 진중해 보이는 발언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그는 매우 견고하게 쓰인 글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아무 상관없지만, 연약하게 쓰인 글은 만일 그것에 대해 말해버리면 그 구조가 깨져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고 주장한다. 기자 출신다운 강단이 드러나는 발언이다. 만약 홍대주점에서 헤밍웨이랑 하루키가 2차 세계대전의 해악에 대해서 논쟁을 벌인다면 그야말로 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소개한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남미문학의 대가다운 마르케스의 목소리 또한 경청할 만하다. 그는 자신의 유명세가 커지면서 더 많은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는 사실이 문학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책임감을 준다고 토로한다. 저널리스트로 활약했던 경험이 자신을 항상 현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와주었다고 털어놓는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하루키, 헤밍웨이, 마르케스의 공통점은 오로지 문장으로 진검승부를 했던 원고지 세대라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시대의식을 가지고 있거나, 시대의식에 대해서 침묵을 유지하는 차이점을 드러낸다. 일본 문학 자체를 멀리했던 하루키는 자신이 전공투 시대의 방관자였다고 고백한다. 헤밍웨이는 소위 정치적인 작가란 자주 자신의 정치관을 바꾸기에 이런 글은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단언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바로 마르케스이다. 그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문학과 저널리즘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세상의 모든 저널리즘은 문학적 표현이나 감성을 내재하지 않고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증이다. 건조한 형식의 저널리즘이 주류인 한국언론계에서도 생각할 여지를 주는 대목이다. 뉴욕타임스나 보스턴 글로브는 문학적 표현을 골격으로 한 저널리즘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매체다. 문학적 감수성이 스며들어간 칼럼은 독자에게 인생을 성찰할 수 있는 사유의 결정체로서의 역할을 가능케 한다.

작가란 무엇인가. 그는 현실과 역사와 가치관의 끊임없는 불협화음을 마다하지 않는 존재이며, 권력 앞에서 자신의 필체를 바꾸지 않는 지식인이다. 작가란 무엇인가. 그는 지식의 굴레에서 탈피하여 의식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현자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란 무엇일까. 그는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와 미래를 통찰하는 언어의 인간이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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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이 지난 12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을 보도한 경향신문 기사에 대해 “많은 부분이 오보”라며 “그 오보도 상당히 치밀한 계획 아래 나오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해당 기사는 대법원이 법원행정처로 인사 발령이 난 판사에게 일선 판사들의 사법개혁 관련 학술대회를 축소·저지하라는 부당한 지시를 내렸고, 이에 해당 판사가 반발해 사표를 내자 다시 원소속 법원으로 돌려보냈다는 내용으로 법원 안팎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관계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주 의원은 이 기사의 어떤 부분이 오보이고, 오보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전혀 제시하지 않으면서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러곤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을 하는 법관들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기자가 무슨 귀신도 아니고 어떻게 기사를 쓰겠느냐”고 몰아갔다. 이는 취재원으로부터 자료나 제보를 받아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 활동 자체를 부정하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다. 언론은 기관이 내는 공식 보도자료나 공식 브리핑만 베껴 써야 한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이 기사가 제기한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은 대법원 스스로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권한을 위임해 조사를 벌였던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축소 대책 마련과 법원행정처로 발령난 판사의 겸임 해제 의혹, 인권법연구회를 타깃으로 한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조치의 부당성 등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책임을 인정했다.

지난 6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한발 더 나아갔다. 학술대회 축소에 직접 개입하고 이 판사에게 부당한 지시를 한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사실상 지시’를 받았다고 확인한 것이다. 임 전 차장은 이미 사직한 상태였고, 이 전 상임위원은 징계를 받았다.

“(기사 때문에) 법관들도 충격을 받고 놀라고 있다”는 주 의원 말에 되레 의문이 든다.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아니라, 이를 보도한 언론이 문제라는 것이라 황당할 따름이다.

주 의원은 이처럼 생각하는 판사가 있다면 그를 국회에 증인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이혜리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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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회의는 다섯 번째 안건이 나올 때까지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다섯 개의 안건은 전년도 결정안을 그대로 답습하고 어휘만 다듬은 것에 불과했다. 가장 중요한 부서라고 말들은 하지만 실제로는 늘 뒷전으로 밀리고 마는 위원회, 즉 교육위원회의 오늘은 1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원장은 저전력 스크린페이퍼를 살짝 흔들어 다음 안건을 눈앞에 띄웠다. 한 시간 만에 처음으로 위원장의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다음은… 이게 무슨 뜻이죠? 발안자가 최정안 위원이군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최정안은 의자를 조금 뒤로 밀어 등받이에 체중을 맡기고 최대한 천천히 대답했다.

“안건 명은 최대한 간단하게 작성했는데요. ‘인공지능 교사 도입을 위한 준비작업 - 개요부터 결론까지.’ 제목에 오해할 여지는 없는 걸로 보이는데요.”

“누가 말뜻을 모른답니까. 이미 과목별로 인공지능들이 도입돼 있잖습니까. 학습 효율은 거의 최대치에 도달했고요. 궁금하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인공지능이 즉석에서 답을 내주고, 평가도 과목별 인공지능이 전부 해주는데 뭘 더 도입하자는 겁니까. 혹시 교육 현장을 전혀 모르는 거 아니에요?”

정안을 윽박지른 건 위원장이 아니었다. 한국교육위원회에서 가장 오래 위원직을 맡고 있는 손현식이었다. 교육 관련 이사장 이력만 열두 가지가 되는, 말하자면 사학계의 최고 원로였다. 손현식은 학습 특화 인공지능을 납품하는 ‘에듀아이’사의 대표이기도 했다.

정안은 심호흡을 하고 회의 시간 전부터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말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제가 오 년 이상 교사로 일했다는 걸 아신다면 현장을 언급하실 순 없었을 겁니다. 과목별 인공지능을 말씀하신 걸로 보아 아마 에듀아이사의 ‘런소프트’ 시리즈를 염두에 두신 모양인데요. 그렇다면 제가 제출한 안건을 미리 검토해보시지 않았다는 얘기겠죠. 제가 말씀드리려는 건 인공지능 ‘교사’입니다. 학습 도우미 프로그램이 아니고요. 제가 인공지능 교사 후보로 제시한 건 인문과학계에서 개발을 마친 ‘만학 1.0’입니다.”

손현식과 위원장을 비롯한 교육위원들은 즉석에서 ‘만학’을 검색했다. 그리고 정안의 의견에 반박하기 시작했다. 만학은 교육 목적으로 제작된 인공지능이 아니다, 인류의 문화를 고루 학습하도록 만든 인공지능이니만큼 교사보다는 학생에 불과한 것 아니냐, 아이들은 나이에 걸맞은 학습 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이건 인공지능을 학습 도우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선생’으로 인정하자는 것 아니냐…. 정안은 소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하고픈 말을 꺼냈다.

“실시간 검색이 우리 삶에 완전히 녹아든 뒤로 기계적인 정보 습득 능력은 아주 크게 향상됐습니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정보 습득과 재활용이 교육의 전부인가요? 그렇다면 아이들은 이미 교육 과정을 전부 이수한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선생을 통해 사회를 배우고, 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과연 무엇인지 깨달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 역할을 누가 하고 있나요? 저 같은 현장 교사들은 런소프트 활용법을 알려주고, 평가에 오류가 없는지 검사하고, 인성검사 소프트에 큰 오류는 없었는지 점검해주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그런 선생들의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교장들은 뭘 하죠? 상위 계층의 안위나 걱정해서 그들을 옹호하는 훈시를 하거나 비슷한 내용의 메일이나 보내는 게 전부입니다. 만학이라는 프로그램은 적어도 그러지 않을 겁니다. 인간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건 물론이고, 사람의 역사와 문화를 분석적으로 학습해서 평가까지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사람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능까지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만학은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악행을 옹호하거나 약자층을 폄하할 이유도 없습니다. 위원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서 결론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대신 공청회 안건화를 신청하겠습니다. 그러면 선생으로서 만학이 얼마나 부족한지, 우리 어른이 아이들의 선생으로 얼마나 충분한지 많은 사람들이 의논해볼 수 있겠죠.”

****************************************

요즘 기술적 특이점과 새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한편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갑자기 도래할 거라 주장하고, 다른 편에서는 기술 발달의 영향은 조금씩 꾸준히 누적되는 것이니 유난을 떨 필요가 없다고 강변한다. 어느 쪽이든 변화가 다가올 거라는 데에는 많이 공감하는 모양새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 변화가 무엇일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우리는 아직 디지털과 정보기술이 전면적으로 우위를 점한 세상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다면 이것 한 가지는 생각해보자. 과학기술과 우리 삶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몸이었다. 동그란 바퀴가 그랬고 화약이 그랬고 전기기술이 그랬다. 기술이 야기하는 큰 변화란 판잣집에서 고급 아파트로 이사가는 것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SF가 그려왔듯 사람과 사람의 소통은 이미 디지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앞으로는 현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 요소인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 노동의 의미도 완전히 재정립될 수 있다. 그러면 그보다 더 기본적인 관계는 온전할까? 부모와 자식, 상급자와 하급자, 학생과 선생, 연인 사이 역시 새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열린 자세로 준비하라는 말은 가볍지 않다. 문을 열면 내 안에 가득 찬 것들이 쏟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를 담고 싶다면 녹슨 자물쇠가 완전히 부서질 수도 있다는 상상도 한 번쯤 해봐야 할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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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섭섭해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논어>를 열자마자 보이는 공자의 한마디다. 나는 군자 발끝에도 못 미쳐 내가 하는 일, 그러니까 음식 문화사 탐구를 잘 가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잘 삐진다. 가령 “설렁탕은 선농제에서 시작됐다” “한국사상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이다” 하는 사람 앞에서는 순간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한 번은 쏘아붙이게 된다. “낭설 수집을 음식 문화사 공부로 착각하면 그 다음이 없어요.”

부끄럽게도, 내 군자답지 못한 면모를 자주 들키는 계절이다. 추석을 앞두고 차례 상차림을 묻는 전화가 잦다. 대중매체는 여전히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실은 동쪽에 흰 과실은 서쪽에), 조율이시(棗栗梨시:대추·밤·배·감의 차례로 놓기) 같은 진설법을 가르치려 든다. 이 철만 오면 무엇이 차례상에 오를 수 있고, 무엇은 올라서는 안되는가 하는 문제에 정답을 내야만 차례를 지낼 수 있는 것처럼 군다. 다시금 발그레한 얼굴로 단언한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말은 꺼낸 쪽에서 증명하라고. 예서는 이런 규약을 논한 적이 없다. 명절 앞두고 기억할 말은 딱 한마디, “가가례(家家禮)”뿐이다.

추석 열차 승차권 예매가 시작된 8월 29일 오전 서울역 매표소 앞에서 시민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가가례, 집집마다 예가 다르다, 집집마다 저마다의 예를 따른다는 말이다. 추석의 차례와 손님맞이를 두고 남의 집에다 감히 감 놔라 배 놔라 할 것도 없고, 내 조상께 예 갖추고 오랜만에 겨레붙이 모이는 데 남의 집 눈치 볼 것 없다는 뜻이다. 고려시대 이후 예서의 기본으로 자리 잡은 <주자가례(朱子家禮)>, 18세기에 이를 조선화한 <사례편람(四禮便覽)> 어느 책도 차례 상차림을 규범화한 적이 없다. 이이는 1577년에 간행한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차례에는 지내는 그때 나는 식료로 음식을 해 올리되 별다른 게 없으면 떡과 과실 두어 가지면 된다고 설명했다.

차례는 원래 축문도 읽지 않고 술도 한 번만 올리는 간소한 의식이었다. 이는 그동안의 민속학 조사가 밝힌 바이고, 오늘날 성균관 전례연구위원회에서 되풀이해 강조하는 바다. 추석 차례는 별 탈 없이 한 해의 수확을 앞두고 있음을 조상에게 알리는 의식이었다. 추석은 농번기를 앞두고 모두가 쉬어가는 휴일이었다. 차례 음식은 올벼로 빚은 술, 구할 수 있는 과일, 그리고 지역이나 집안의 특색 있는 음식으로 충분했다. 퇴계 이황은 간소한 제사와 차례를 강조했다. 그 뜻을 진성 이씨네는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파평 윤씨 윤증(尹拯·1629~1714) 고택에 전해오는 차례에 쓰는 상은 가로 99㎝, 세로 68㎝에 지나지 않는다. 후손들은 이 상에 과일 셋, 나물, 밥과 국, 그리고 어포와 육포만으로 제물을 차린다. 차례 상차림은 집안 형편과 사는 곳의 지리적 특성에 따라 다른 게 당연하다. 낙지, 문어, 상어, 홍어, 통북어, 꿩, 부꾸미, 파인애플, 바나나, 카스텔라 등 홍동백서며 조율이시에 들지 않는 제물이 보이는 편이 도리어 자연스럽다. 1970년대 이후 대중매체가 추석 차례에 무슨 대단한 규약이 존재하는 듯 굴었으나 이는 소비와 과시의 시대를 맞아 새로 “만들어낸 전통”일 뿐이다. 감히 동포에게 낯을 붉히랴. 낭설로 쌓은 억지가 불편할 뿐이다. 낭설과 억지가 빚은 가짜 전통은 명절에 깃든 평화와 휴식의 풍경, 공동체의 정다운 마음을 바래게 했다.

이에 더욱 삼삼한 문헌이 정학유(丁學游·1786~1855)의 가사 <농가월령가>이다. 정학유는 산과일이 익어가는 음력 8월을 “뒷동산 밤대추는 아이들 세상”으로 노래했다. 명절 쇠며 쓸 식료는 북어와 젓갈용 조기로 충분했다. “신도주(햅쌀술), 올벼송편, 박나물, 토란국”만으로 차례 지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제물은 이웃집과 나누어 먹었다. 차례를 지내고서 며느리는 “말미”, 곧 휴가를 받아 친정으로 떠났다. 삶은 개고기에 떡고리와 술병을 챙겨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남의 집 따님에게, 시적 자아는 얼굴은 좀 폈는지 묻는다. 그러고는 위로 겸해 당부한다. “중추야 밝은 달에 지기 펴고 놀고 오소.” 보름달 아래서 마음껏 놀다 오란 말이다. 밤과 대추를 차지한 아이들, 이웃과 나누는 소박한 제물, 그리고 가사와 농사에 지친 여성의 휴식, 여기 추석의 본래 뜻 명절의 원래 모습이 깃들어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았으면 해서다. 그 마음으로 굳이 문헌을 불러내 낭설과 억지부터 물리친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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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3대 유리왕 때 추석에 대한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있다고 한다. 추석은 수확의 기쁨과 풍년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주위 이웃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2000년이 넘는 우리 전통문화이다. 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추석에는 이웃 친지와 음식을 나누고 우리 농축산물을 선물로 주고받는 미풍양속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 연유로 우리 농축산물 소비의 많은 부분이 추석에 이루어지고 있어, 농업인들도 추석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러나 요즘 우리 농업인들은 추석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최근 시장 개방과 소비 트렌드 변화에 따라 우리 농축산물로 하던 선물이 오렌지, 체리와 같은 수입과일로 점차 바뀌고 있다. 바나나를 차례상에 올리는 등 차례 문화도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추석을 앞두고 백화점업계가 선물세트 예약판매를 마무리하고 본판매에 돌입했다. 업계는 추석 명절 인기 상품인 한우, 굴비를 비롯한 합리적 가격의 선물세트를 선보인다.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고객이 추석 선물세트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지난해 9월 시행된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우리 농축산물 선물 수요는 더욱 감소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주요 대형마트, 백화점의 지난 설 농축산물 선물세트 판매액은 전년에 비해 25.8%나 감소하였다. 또한 가액기준인 5만원으로는 한우 갈비 등 일부 농축산물은 선물세트를 구성하지 못하다 보니, 가격 경쟁력이 높은 수입 농축산물 선물세트 판매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특히 올 한해 가뭄과 때늦은 폭우로 인해 농업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노심초사하며 어렵게 농사를 지은 농업인들이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보다 판매를 걱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설과 같이 농축산물 선물 수요가 줄어든다면, 농업인들의 피해는 한층 더 심화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농업인단체와 공동으로 다양한 소비촉진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청탁금지법 가액기준에 맞는 농축산물에 ‘착한선물’ 스티커를 붙여서 직무 관련자도 사교·의례의 목적인 경우에는 안심하고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국민들께서는 이웃·친지 간에 선물을 주고받거나, 직무 관련성이 없는 공직자에게 선물을 해도 청탁금지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5만원 이하의 다양한 소포장 상품을 개발하고, 전국 2100여개의 농협 하나로마트 등에서는 선물세트를 할인판매한다.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직거래 장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특히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의 우수 농축산물을 한자리에 모은 ‘추석맞이 직거래 장터’가 열린다. 여성·청년 농부를 비롯한 전국 각 지역의 농업인이 땀과 노력으로 키운 농축산물들을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판매할 계획이다. 많은 소비자께서 직거래 장터에 오셔서 농업인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시고, 양손에는 이웃·친지에게 선물할 우리 농축산물을 한가득 안고 돌아가시길 바란다.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청탁금지법의 취지는 존중한다. 하지만 취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인 농업인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액기준을 현실화하고, 전체 수수한도를 낮추는 등 제도 개선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번 추석, 우리 땅에서 우리 농업인들이 정성으로 키워낸 농축산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우리 농업과 농촌에도 웃음이 넘쳐나길 기대한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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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인간을 닮아가고 있다. 고작 가진 언어가 켜짐(1)과 꺼짐(0)만 있었던 컴퓨터가 인공지능(AI)을 탑재하고 사람을 닮아간다. 초창기 컴퓨터의 유일한 장기는 사칙연산밖에 없었다. 빠른 연산 실력으로 숫자를 통해 하는 모든 일들을 해냈다. 계산기는 진화해 컴퓨터에 깔려 있는 엑셀이 됐고 직장인들은 엑셀이 없으면 복잡한 계산 자체를 못하게 됐다. 통계학이 발전하고, 컴퓨터가 다루는 정보처리 용량이 늘고 속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이제는 세상의 모든 일을 예측하는 중이다. 비가 올 확률을 예측하고, 공장에서는 불량이 날 확률을 예측한다.

그럼에도 컴퓨터가 인간을 닮아간다는 게 체감된 순간은 바로 음성인식과 안면인식부터였다. 터치 패드로 스마트폰을 켤 때만 해도 마냥 편하구나 싶었다. 그런데 스마트 스피커가 목소리를 알아듣고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이 올려놓은 사진을 통해 주변 친구들 모두의 얼굴을 읽어 이름을 맞혀 보겠다고 제안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를 넘어 섬뜩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컴퓨터가 인간을 닮아가는 건 수많은 잡동사니 데이터를 수집해 컴퓨터의 일처리 방법인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하고, 내부적으로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가장 적합한 것’을 통계적으로 찾아내는 과정(기계학습)이다. 끊임없는 시뮬레이션과 시행착오를 통해 근사치에 가까운 99.99999999%에 도전하게 된다. 많은 엔지니어들은 이를 위해 컴퓨터의 정보처리 시스템을 인간의 신경망과 뇌처럼 만들려고 알파고로 유명해진 ‘딥러닝’ 기술이 차용하는 인공신경망 등 다양한 방법을 찾아 정착시킨다. 컴퓨터가 사람을 흉내 내는 속도는 무어의 법칙을 따라 점점 빨라질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인공지능과 데이터과학을 발전시키는 정보기술(IT) 엔지니어들의 일하는 방식이다.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은 오픈소스라는 공개적인 작업 방법으로 수행할 때 더욱 더 빠르고 강력해지는 경향이 있다. 오픈소스는 소프트웨어의 기본 코드 소스를 공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그래머들이 자신이 노력해 제작한 프로그래밍 코드를 공개하는 것은, 초창기에는 유료 프로그램들이 갖고 있는 지식재산권을 반대했기 때문이지만 점차 온라인에 있는 ‘엔지니어 고수’들의 코멘트를 통해 자신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나 데이터 분석 방식을 검증하고 더 발전시키기 위한 활동이 됐다. 개인이 구상을 해서 아무리 탁월한 프로그램을 만들더라도 다른 사람 눈에는 부족한 점이나 오류가 발견될 수 있다는 사소한 진리 때문이다.

오픈소스에 기반을 둔 데이터과학 커뮤니티인 캐글(Kaggle)에서는 초심자부터 고수까지 다양한 데이터 엔지니어들과 사회과학도들이 실력을 뽐내면서 더 효율이 좋은 분석 기법을 공짜로 풀어놓는다. 지구상의 모든 인터넷을 장악한 구글은 이 커뮤니티를 높은 가격에 인수했다. 집단지성을 통해 좀 더 실현 가능한 알고리즘을 만드는 캐글의 가능성을 높이 산 것이다.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이 작업한 코드를 저장하고 구직을 할 때 여러 명이 동시에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플랫폼인 깃허브(Github)를 활용한다. 자신의 활동이 얼마나 많은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기여했는지를 알리기 위해서다. 인공지능이 성장하면서 엔지니어들의 일하는 방식 역시 성장한 셈이다. 그런데 컴퓨터가 기계학습을 통해 사람을 닮아가고, 우수한 엔지니어들이 공동작업과 집단지성을 통해 학습과 일을 결합하는 혁신의 과정을 보면서 맘이 편치 않다.

당장 지방대의 인문대생들에게 사회학과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고민이 많아진다. 데이터과학의 쓸모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캐글에서 활약하던 사회학을 배운 데이터 분석가들은 샌프란시스코시 범죄가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통해 실제 정책에 도움을 줬다. 선거를 예측하기도 하고, 대학들은 캐글에 지속적으로 공공정책 데이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수리적 판단력과 통계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학습자들에게는 분명 이러한 오픈소스 기반의 글로벌 학습망과 캐글 같은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구직과 이직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미국의 MOOC(대규모 공개 온라인 강좌)들은 능동적으로 학생의 참여를 유도하는 컴퓨터공학, 경제학, 경영학, 수학 수업을 개설했다. 공짜로 청강할 수 있되, 수업료를 내고 과정을 이수하면 학위증을 수여하고 이 중 몇몇은 구직을 보장하기도 한다.

영어만 잘한다면 수학 실력은 평생교육 관점에서 만회할 기회가 있다. 실리콘밸리의 교육 회사 칸 아카데미는 유치원 수준부터 대학 수준까지 이어지는 수학교육의 로드맵을 구축해뒀다. 펜과 종이가 있고 영어를 쉽게 알아들을 수 있으면 직접 손으로 풀면서 부족한 수학 실력을 높일 수 있다. 글로벌한 데이터과학 학습의 문턱은 낮아진 셈이다. 문제는 영어다. ‘수포자’(수학 포기자)만큼이나 많은 ‘영포자’(영어 포기자)들이 있다. 많은 지방대 학생들은 영어 동영상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 수업시간마다 캐글도 알려주고 깃허브도 알려주지만 영어 때문에 학생들은 늘 망설인다. 물론 정부 사업으로 개설된 KOCW나 KMOOC 같은 공개강좌가 있지만, 대부분 대학 수업을 녹화했을 뿐 아직 개별 학생이 필요로 하는 ‘수준별 학습’에는 미치지 못한다.

취업난과 인구절벽 앞에서 진행되는 대학 구조조정의 복판, 한국 대학교육과 노동의 양상도 더욱 계층화될 것이다. 더불어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일·학습의 병행 체제는 학생과 일하는 사람들의 경계를 흔들 예정이다.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갱신하라는 압박은 점차 심해진다. 그런데 여전히 전공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학생과, 취업에 도움 되는 쪽으로 하라는 학교 사이에서 수업을 새로 짜야 하나 하는 딜레마부터 풀기가 어렵다. 인간의 감각마저 닮아가고 있는 기계문명의 사회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대학생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취업과는 어느 정도는 동떨어진 전공 학습에 대한 동기 부여일까, 데이터과학과 MOOC 같은 새로운 방식의 학습 모델일까, 이미 손에 쥐고 있는 공무원 시험 문제집일까, 다른 방향의 삶을 찾을 수 있게 하는 대안적인 일자리들일까? 대학생들에게 ‘4차 산업혁명’을 추진한다는 국가는 어떤 미래사회 직업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나? 당장 문과생 채용문 자체가 바늘귀가 된 지금, 학생들에게 어떤 직업 전망을 보여줘야 할지부터 쉽지 않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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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가 1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진 탈당을 권유했다. 친박계 핵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에 대해서도 탈당을 권유했다. 류석춘 혁신위원장은 “2016년 4월 총선 공천 실패로부터 2017년 5월 대선 패배에 이르기까지 국정운영 실패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당연한 조치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나 최소한 올 초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 후엔 스스로 당적을 정리했어야 했다. 공적 시스템을 내팽개치고 민간인 최순실에게 놀아난 행위 자체만으로도 사유는 충분하다. 박 전 대통령 주변에서 호가호위했던 친박세력도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 류석춘 혁신위원장(오른쪽)이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탈당 권유 등을 담은 3차 혁신안을 발표한 뒤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그러나 친박계 의원들은 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공론화도 없이 이뤄진 일방적인 결정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탈당 권유에 가타부타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이들의 반발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보수세력을 궤멸의 위기로 몰아넣은 정치적 책임을 지기는커녕 여전히 촛불민심과 맞서는 꼴이다. 홍준표 대표는 “10월17일 박 전 대통령 1심 판결을 전후해 본격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혁신위의 권고안에 대한 당내 논의를 10월 중순 이후로 미룬 것이다. 그때 가서 친박계의 저항을 넘어설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결국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쑥 탈당 권유만 발표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변함없는 한국당의 수구적인 행태가 반드시 소수의 친박세력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당의 체질이 그렇게 굳어진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친박계 청산은 보수의 미래를 논할 수 있는 출발선에 서는 것에 불과하다. 홍 대표와 류 위원장이 전에 말한 대로 시체에 칼질하는 게 혁신일 순 없다. 설사 몇 사람 쫓아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그걸 두고 혁신이니, 보수통합의 명분이 생겼느니 운운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갤럽이 최근 발표한 한국당 지지도는 12%로 더불어민주당(50%)의 4분의 1 수준이다. 이는 한국당이 친박세력의 후신이자 ‘도로친박당’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웅변해준다. 한국당은 낡은 이념과 노선에 대한 처절한 자성과 쇄신을 통해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때만이 잃어버린 지지와 신뢰 회복도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당은 기사회생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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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가 2012~2013년 채용한 신입 사원 518명 가운데 95%인 493명이 국회의원 청탁 등으로 부정 입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상을 초월하는 채용비리 규모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자신의 비서관 출신을 포함해 10명 이상을 청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당 염동열 의원도 80여명의 인사를 청탁해 20~30명이 채용됐다고 한다.

도박 중독 등의 폐해에도 강원랜드를 설립한 것은 폐광 지역에 일자리를 마련해 서민들 생계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이다. 내국인 카지노를 독점 운영하는 강원랜드의 영업이익률은 40%에 육박한다. 올 상반기에만 3000억원의 수익을 냈고 임직원 연봉이 7000만원 안팎에 이른다. 이런 기업의 일자리가 그동안 권력자나 지역 유지의 자제들로 채워지고 있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강원랜드는 청탁 대상자의 자기소개서 점수를 높여주는 방법으로도 안되면 인사팀 컴퓨터에 직접 접속해 각종 점수를 조작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심각한 것은 검찰이 이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도 면죄부를 줬다는 점이다. 2014년 함승희 사장이 취임한 뒤 강원랜드는 이 같은 비리를 자체 감사로 밝혀내고 2016년 2월 춘천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검찰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1년 넘게 시간을 끌다가 박근혜 정권 탄핵 후인 지난 4월에야 최흥집 전 사장과 권모 전 인사팀장 2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권 의원이나 염 의원 등 청탁자들에 대해서는 소환조사도 하지 않았다. 최 전 사장은 강원랜드 사장에서 물러난 뒤 2014년 5월 지방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강원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검사 출신인 권 의원과 염 의원은 모두 당시 여당 소속으로 지역구가 강원이다. 집권정당 인사인 데다 지역의 현역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검찰이 눈감아줬다고밖에 볼 수 없다.

공기업 채용비리는 비단 강원랜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친박계’ 이정현 의원의 조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점수 조작으로 입사한 정황이 드러났다. 한국디자인진흥원도 감사원으로부터 채용비리가 적발돼 최근 원장이 물러났다. 한국가스안전공사도 사장이 지명한 수험생들의 면접 점수를 조작하다 감사원에 적발됐다. 8월 현재 청년실업률은 9.4%로 18년 만에 최악이다. 채용비리가 근절되지 않으면 젊은이들의 절망감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공기업 채용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검찰도 기득권 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강원랜드 등 공기업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비리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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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없다가 오늘은 다시 구름이 꼈다. 낮에는 하얗다가 노을이 스며드는 저녁때면 분홍빛으로 바뀌는 구름. 바라보자니 분홍 스웨터를 입은 윤 초시네 증손녀딸이 생각난다. 갈밭 사잇길을 갈꽃 꺾어 들고 함께 걷던 소년과 소녀.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 이야기. “산이 가까워졌다. 단풍잎이 눈에 따가웠다. ‘야아!’ 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갔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근데 이 양산같이 생긴 노란꽃이 뭐지?’ ‘마타리꽃.’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 받듯이 해 보인다… 따가운 가을 햇살만이 말라가는 풀냄새를 퍼뜨리고 있었다.” 소녀는 병상에서 죽으며, 땅에 묻힐 때 분홍 스웨터 그대로 입혀 달라고 했었다지. 스웨터에는 풀냄새 꽃냄새, 소년의 등에 업혔다가 옮은 검붉은 진흙물도 함께.

밤에는 구름 뒤로 수십억광년 먼별이 반짝거린다. 황순원의 다른 소설 <별>은 엄마 생각에 눈물나게 한다. “하늘에 별이 별나게 많은 첫가을 밤이었다. 아이는 전에 땅위의 이슬같이만 느껴지던 별이 오늘 밤엔 그 어느 하나가 꼭 어머니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수많은 별을 뒤지고 있었다.”

먼별이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은, 고작 6000년이 아니라 6억년, 60억년 오랜 세월을 빛의 속도로 부지런히 달려온 것이렷다. 상식 밖의 얼토당토않은 유사과학 창조과학이 아니라 오래 묵은 사랑인 은하의 별들. 수수한 꽃별들의 사랑 얘기. 분홍 스웨터 입은 소녀도 별이 되어 수십억광년 성운 속에서 반짝거린다. 교리나 교조가 아닌 사랑들로 세상엔 노란 마타리꽃이 피어나고, 그 노란 양산과 우산으로 따가운 햇살과 소나기를 피했던 인생. 소녀는 분홍 스웨터 구름이 반짝거리는 서녘에 서서 ‘해로운 신앙’이 아닌 ‘온기 있는 사랑’으로 소년을 기다려주겠지. 사랑하는 사이들은 결국 만나게 되어 있다. 그립고 그리운 것들마다 은총 있으라. 만나면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내 사랑. 노란빛 분홍빛 꽃들과 별과 구름으로 벙그러진 대우주. 눈에 보이지 않는 백색왜성, 중성자 별이라도 분홍 스웨터 입은 소녀를 서녘 노을에서 만나듯 결국엔 깜짝이야, 만나게 되리.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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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저마다의 소리를 품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베를린 유학 시절, 거리 곳곳에서 우연히 접한 심금을 울리는 노래나 연주는 칙칙한 날씨에도 그곳 생활을 견디게 한 힘이었다. 지하철역이나 카페, 관광지나 극장 앞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음악가들이 전해 준 행복. 물론 아바도와 베를린 필이 들려줬던 잊지 못할 말러 9번 교향곡까지, 20년 전 살았던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내게 이런 음악적 경험들로 기억된다.

예술 체험이 공연장이나 미술관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상의 공간에서 맞닥뜨린 낯선 음악이 잠시 다른 세상을 맛보게 할 수도 있고, 그 찰나의 경험이 때론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연주회장을 벗어나 색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공연에 눈길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북촌일대 한옥이나 갤러리에서 클래식과 재즈가 흘러나오는가 하면, 몇 년 전 국악앙상블 ‘불세출’은 종로구의 이색적인 공간들(옥인상영관·은덕문화원·보안여관)에서 도심 속 풍류방 문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쇠락하던 철공소 골목에 모여든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특유의 감성을 지닌 곳으로 탈바꿈한 문래 창작촌의 크고 작은 공간에서도 실험적인 사운드와 퍼포먼스 공연이 열리곤 한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왼쪽에서 두번째)가 7월 5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있는 윤이상 선생 묘지 앞에 동백나무를 심고 참배한 뒤 윤 선생 제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베를린 _ 서성일 기자

최근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도심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프롬나드 콘서트’ 역시 도시의 소리풍경을 풍성하게 만든다. 문화역서울284, 윤동주문학관, 서울로7017,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다시세운광장 등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윤이상 음악을 문학·힙합·국악 등과 접목해 선보이고 있다. 특히 청운동 시인의 언덕에서 열렸던 ‘100년의 예술가, 윤이상×윤동주’ 공연은 시와 연극, 음악이 함께하며 주말 가족 단위 관객들에게 특별함을 선사했다. 밤하늘을 쳐다보며 귀뚜라미 소리와 어우러진 음악을 듣고 있자니, 작년 가을 지리산 ‘화엄음악제’의 잊지 못할 순간이 떠올랐다. 깊은 산사에서 달빛 아래 듣는 음악소리는 도시에서는 접할 수 없는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청각만이 아니라 인간의 온 감각이 총체적으로 작동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1960년대 말 캐나다 작곡가 머레이 셰이퍼가 제창한 ‘사운드스케이프’(소리풍경)라는 용어는 바로 그런 상황을 포착하기 위해 나온 말이다. 셰이퍼는 만드는 것만큼이나 주위 소리를 잘 ‘듣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한 음악가였다. 1950년대 초 존 케이지도 ‘4분33초’라는 침묵 음악을 써서 음악으로 가려졌던 일상의 소리, 존재하나 주목받지 못했던 주변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역설한 바 있지만, 셰이퍼는 인간과 소리 환경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했다. 점차 심해지는 소음공해에 대처하기 위해 그는 삼라만상의 소리를 예민하게 들음으로써 일상의 환경과 생생하고 풍부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듣기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유네스코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도시의 소리풍경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신이 살던 밴쿠버의 소리풍경을 음반으로 남기기도 했다. 청각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지각하고 인식하게 만들려 한 그의 문제의식은 이후 음향생태학과 환경운동으로 이어졌고, 도시 디자이너나 사운드 아티스트에게도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요즘 우리는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고 살아간다. 현대인들에게 필수품이 된 이어폰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듣기 위한 도구이자 동시에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고 원치 않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만큼 소리 환경이 열악하다는 반증일 터. 난무하는 소리들 가운데 정작 가까이 있는 것들은 무심히 흘려버린다. 한번쯤 귀를 열고 주변의 소리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윙 돌아가는 컴퓨터 소리, 이웃의 발자국 소리, 교실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공사장 굴삭기 소리, 다양한 내연기관의 소리, 풀벌레와 새소리….

소리를 듣기 위해선 고요함이 필요하지만, 그 고요함 위에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소리들이 펼쳐질 수도 있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요즘, 살고 있는 곳의 소리풍경을 만끽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누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희경 | 한예종 강사·음악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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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대 우리 국민들이 진심으로 수용한 도덕률은 아마도 ‘한 등 끄기 운동’이 아니었을까. 한 등 끄기는 절약이라는 덕목으로서 소중한 자원이자 고상한 가치였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중화학공업을 일으키는 기적을 성취케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 절약은 다른 공급자원에 비하여 경제성과 잠재량의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절약은 다른 에너지원과 달리 갈등의 소지도 없고 이념적 논쟁의 여지도 없으며 오히려 가장 기술혁신적인 분야이다. 한 마디로 ‘한 등 끄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인 슬로건이자 수급안정의 일등공신이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가정부문은 OECD 에너지사용량의 절반에 불과한 소비행태를 보이고 있다. 진짜 착한 국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난 수 년 사이 절약이라는 슬로건이 사라졌다. 여름철 지속적인 폭염, 누진제 완화 등에 기인하여 에너지절약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도 풍부한 에너지의 권리를 만끽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국민복지의 증대라는 측면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지만 그간의 절약과 저소비라는 소중한 공감대가 약화되는 상황도 초래했다. 절약은 단순히 물리적인 전력수급 안정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미래 에너지믹스의 선택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러한 논쟁은 노후 석탄발전소 운전중지,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취소, 원전 신규 건설 취소 등 신정부 에너지공약의 실천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계속 여부를 판단할 공론화는 이러한 논쟁을 더욱 촉발하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대응은 파리협약 2차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제출을 전후하여 구체적인 규제로 다가올 것이다. 결국 원자력과 석탄의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고 그 대체재로서의 가스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언급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 공급원 전환과 함께 에너지믹스는 수요를 줄여서 확보해야 할 자원 자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효율향상을 통한 수요관리는 발전소 추가 건설보다 훨씬 비용효과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수요관리는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고 기술 혁신을 촉발하며 관련 산업계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보다 나은 환경으로 개선해 나가며 그만큼 우리 사회의 갈등이 줄어들 수 있다.

절약은 가장 고전적이면서 효과적인 전력수급 안정의 자원이다. ‘한 등 끄기’ 운동을 다시 한 번 시작해보자. 다만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히 아끼고 줄이는 절약의 차원을 넘어 효율향상을 통한 좀 더 적극적이고 기술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강력한 기술규제를 정교한 기술혁신과 연동시키는 방법론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백색가전의 국제적인 경쟁력도 아주 오래전 효율등급제와 최저효율제라는 기술규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는 단순 가전기기 효율화에서 벗어나 4차 산업혁명의 흐름과 연계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전력인프라는 가장 보편적인 유비쿼터스 인프라이다. 우리나라의 전력망을 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혁신을 달성할 수 있다. 에너지 전환시대를 맞아 에너지 저소비는 명제이다. 다시 한 번 에너지 저소비를 최고의 미덕으로 되살려보자.

<김창섭 | 가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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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가방을 둘러멘 여자아이가 숨 가쁘게 달려오다 내 옆에서 걸음을 늦추며 숨을 몰아쉬었다. 미술 학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영어, 중국어, 피아노, 발레 학원도 다닌다길래 힘들지 않으냐고 묻고 보니 머쓱했다. 어른들은 선행 학습을 하지 않으면, 남다른 것을 하나라도 더 배우지 않으면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며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몰았고, 아이들은 그 두려움이 진실이라고 믿은 지 오래되었다.

우리 사회의 사교육은 복된 미래를 줄지 모르는 토테미즘이다. 제단 앞에 바치는 양에게는 어떤 기대도 없이 오로지 신의 전지전능함만을 바랐던 이들처럼 어른들은 불안할 적마다 보다 용한 선생과 밝은 앞날을 보장하겠다는 학원을 찾아 나선다.

오늘은 미술 학원, 내일은 피아노 학원과 중국어 학원에 가야 한다는 아홉 살 아이도 이미 그 두려움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힘들지 않으냐는 의례적인 질문에 의젓하게 대꾸했다.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그런데 중국어 학원은 다 3, 4학년이에요. 2학년은 저밖에 없어요.”

아이 표정을 봐서는 언니 오빠들과 나란히 공부하는 게 자랑스럽다는 것인지, 나이 먹은 이들을 따라잡는 게 어디 쉽겠냐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토요일에는 발레 하나만 해도 돼요.”

아이는 그 말을 하면서 빙긋 웃었다. 마치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는 듯. 나는 앞서 걸어나가는 아이의 뒤꽁무니를 쫓으면서, 블라인드 채용으로 불안감에 휩싸인 취업준비생들 중에는 승마나 펜싱을 배우는 이들이 있다는 신문기사를 떠올렸다. 그 기사를 본 누군가는 요즘 출퇴근할 때 말을 타냐면서 객쩍은 소리를 했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란 것을. 말도 좀 탄다고 하면, 칼도 좀 휘두를 줄 안다고 하면 아니 두려움에 그 정도 비용을 치를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주면 생존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믿어준 적 없는 사회에서 자신을 믿어본 적 없는 이들은 믿음을 사려고 값을 치러야 한다. 바삐 걷는 아홉 살 아이의 뒷모습이 애잔하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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