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족 중 한 명이 큰 병에 걸리면, 아주 부잣집이 아닌 이상 집안이 거덜난다. 건강보험이 있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는 건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비율(이를 보장성이라 한다)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에서 보장성이 80%를 넘지만, 우리나라의 보장성은 60% 남짓이다. 치료비가 총 5000만원이 든다면 2000만원을 본인이 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높여서 환자의 부담을 줄여준다면 적극 환영할 일, 문재인 대통령의 야심작 문재인 케어(문케어)는 이런 취지에서 탄생했다. 문제는 돈이 든다는 것. 국민들이 문케어로 혜택을 보는 것이니만큼 이는 건보료를 인상함으로써 해결하는 게 맞다. 도대체 얼마나 올려야 할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국회 예산처에 따르면 보장성을 70%로 올리는 데만도 3.2%의 인상이 필요하단다. 게다가 문케어에 포함된 비급여 보장,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지원 확대 같은 정책들, 그리고 고령인구 증가 같은 환경적 요인을 감안한다면 이보다 더 큰 인상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건보료는 2017년에 비해 2.04%, 직장인 기준 월평균 2000원이 올랐을 뿐이다. 더 황당한 것은 앞으로도 인상률을 예년 수준을 넘지 않게 관리하겠다는 복지부의 공언이다. 이 정도 인상률로 문케어가 가능할까? 정부는 그간 모아둔 건강보험 적립금 21조원을 사용하면 된다는데, 이건 당장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문케어가 시작되면 적립금은 곧 바닥이 날 테고, 그때가 되면 보험료를 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말이다. 정부가 당장의 인상을 꺼리는 까닭은 지지율이 떨어질까 걱정해서다. 실제로 우리 국민들 10명 중 8명은 문케어로 인해 혜택을 보는 건 좋지만, 추가적으로 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런 식이면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왜 비판했는지 이해가 안 가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는 건보료 인상의 불가피함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어야 했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훨씬 더 좋게 바꾸는 일인데, 지지율이 좀 떨어진들 어떠랴.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는 대신 당장의 지지율을 선택함으로써 보험료 인상의 부담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기로 한 모양이다. 재정불안에 허덕이는 문케어가 제대로 작동할지 의사들이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미용·성형을 제외한 비급여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것 역시 우려스럽다. 비급여는 당장 생명에 지장이 없어서 국민건강에 포함되지 않은 항목이다. 환자 개인이 좀 더 편하고자 돈을 더 내고 선택하는 게 비급여란 얘기인데, 6인실 대신 2인실에 입원한다든지, 회복기간을 약간 단축시켜주는 추가적인 약을 부담하는 게 그 예다. 개인의 편의를 위한 선택에 국민이 내는 보험료를 쓰는 게 과연 온당할까? 더 우려스러운 일은 비급여 여부의 판단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한다는 사실이다. 심평원은 의사의 정당한 진료행위에 과도한 개입을 하곤 했다.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을 써도 “왜 이 약을 썼느냐?”며 따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줄 돈을 안 주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데 비급여마저 심평원이 관장한다면, 환자들이 돈을 더 내고 좋은 치료를 받는 건 불가능해진다. 또한 의사들이 그동안 원가 이하의 진료수가를 비급여로 메꿔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문케어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의사들의 반발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 이기심의 극치네요”라는 댓글에서 보듯, 국민들은 의사를 적폐세력처럼 취급한다. 이건 문케어에 대해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반대투쟁을 이끄는 최대집 의협회장이 ‘박사모’라는 게 더 큰 이유다. 박근혜가 무죄이며 억울하게 탄핵당했다고 주장하고,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조작됐다고 하는 등 그가 했다는 일련의 말들엔 그저 한숨만 나온다. 그가 회장이 되고 나서 첫 번째로 추진한 ‘문케어 반대 의사파업’을 하필이면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4월27일로 잡았던 것도 의협의 앞날이 어둡다는 걸 말해준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의협회장이 된 것일까? “내가 선거에 무관심했다.” “설마 박사모가 되겠냐고 방심했다.” 얼마 전 만난 동료 의사들은 이런 반성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정부 측에 의사들의 우려를 전달하고, 이를 문케어에 반영하려면 정부와의 줄다리기가 필요한데, 여론에서 외면받는 의협회장의 말에 정부가 얼마나 귀를 기울여줄지 의문이다. 

이건 꼭 의협만의 일일까?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단지 경제전문가라는 이유로 돈밖에 모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가 큰 낭패를 봤다. 거기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다음 선거에선 무능하기 짝이 없는 분을 대통령으로 만듦으로써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하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이 다시금 나라를 일으키고 있지만, 잃어버린 9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화가 치솟는다. 6·13 지방선거가 얼마 안 남았다. 신중하게 투표해 의사들처럼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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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북극을 주목하고 있다. 과거 북극은 2m가 넘는 얼음의 두께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항로 개척이 어려웠지만, 세계 각국은 석유, 천연가스 등 다양한 천연자원의 보고인 북극을 개척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기후변화로 북극 해빙(海氷)이 줄어들면서, 북극에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다는 뜻의 ‘콜드러시(Cold rush)’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전 세계가 북극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기후변화가 가져온 재앙이 북극 항로의 거리와 시간을 단축시켜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북극곰뿐만 아니라 인류에게도 더 큰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기상청은 위성을 이용한 북극 해빙 면적과 표면 거칠기 변화 정보, 향후 해빙 전망 등을 2013년부터 북극 해빙 감시시스템(http://seaice.kma.go.kr)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1988년부터 해빙 면적을 지속적으로 관측한 결과, 북극 해빙의 면적은 2012년부터 7년 연속으로 ‘3월 평균 면적 최소’ 기록을 경신 중이다. 올해 위성이 관측한 3월 평균 해빙 면적은 1635만㎢로, 해빙 면적이 최대였던 1990년과 비교하면 248만㎢나 줄어들었다. 해빙은 지구의 평균기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해류의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해빙이 줄어들면 북극에서 반사되는 햇빛보다 바다로 흡수되는 햇빛이 많아져 북극의 온도가 계속 올라간다. 이로 인해 극지방과 적도의 온도차가 줄어들어 북극의 한기를 막아주던 제트기류가 약해지고, 중위도 지역에서는 저온현상이 지속된다.

특히 제트기류가 약해질수록 특정 지역에 발생한 고기압이 정체되어 정상적인 공기의 흐름을 막는 블로킹 현상이 강해진다. 이에 따라 봄철에 평년보다 추운 날이 많아지거나 오히려 고온이 오래 지속되는 기상이변이 나타나게 된다. 지난해 겨울에는 우리나라에 때 이른 혹한이 왔고, 올해는 3월의 평균기온이 8.1도로 평년(5.5~6.3도)보다 높고, 강수량은 110.7㎜로 평년(47.2~59.9㎜)보다 많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과거에 비해 점점 줄어드는 북극 해빙을 효율적으로 감시하는 방법은 바로 ‘기상위성’이다. 저궤도 지구관측위성은 지구와 가까운 거리인 700~900㎞의 고도를 돌면서 지구 표면을 정밀 관측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북극 해빙 감소,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의 집중 감시와 미세먼지·황사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위성관측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기상청에서는 2022년 발사를 목표로, 저궤도 기상위성 개발을 진행 중이다. 

저궤도 위성의 운영과 활용은 향후 예보 정확도를 높이고, 30년 이상 쌓아온 북극의 환경 정보와 유기적으로 연계해 북극 해빙의 변화 감시 기반을 구축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될 것이다.

<남재철 |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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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0일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계획을 발표했다. 차선을 편측으로 옮기고 광화문 전면에 역사광장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2016년 출범한 민관논의기구인 광화문포럼에서는 차도의 지하화를 통해서 전면 보행광장을 제안한 바 있다. 이번 계획은 비용과 공사기간 등 여러 이유에 의해 보차혼용으로 절충된 것으로 안다. 지금 광화문광장 재구조화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의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국가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된 이 시점이야말로 절반만 완성된 우리의 국가 중심공간을 수복할 최적의 때라 생각한다.

모든 수도에는 국가의 정당성과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표상하는 중심공간이 배치된다. 조선시대 이 터는 남북으로는 광화문과 황토현, 동서로는 육조 관가에 의해 위요된 공간이었다. 닮은꼴인 워싱턴의 ‘더 몰(The Mall)’은 국회의사당을 정점으로 하여 관가와 공공 문화시설들이 둘러싸고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4주년인 2017년 2월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대규모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17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촛불과 레드카드를 들고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다시금 알렸던 이곳이 온전히 회복된다면 우리는 세계사에 전례 없는 유교적 왕조 공간과 시민민주주의 공간이 공존하는 광장을 얻게 될 것이다.

광장은 권력의 표상인 동시에 그 자체가 권력이다. 군중이 만드는 스펙터클은 어떤 무기보다 강하다. 1987년 넥타이부대는 군사독재를 종식시켰고 1989년 체코 바츨라프광장의 프라하 시민들은 철의장막을 거두었다. 그래서 독재권력은 종종 광장을 정치적 도구로 쓴다. 1938년 뉘른베르크 나치당 대회 사진은 지금 보아도 섬뜩하다. 빛의 기둥으로 연출된 공간의 초월적 스케일과 70만 군중, 개인이란 전체에 비해 얼마나 사소한 존재인가를 느끼게 하여 맹목적 충성을 이끌어낸 장치였다.

우리도 동원된 지지군중과 국군의날 열병식 풍경으로 여의도광장을 기억한다. 이 같은 ‘관조적 스펙터클’에서 군중은 수동적이며 비자발적이다. 한편 우리는 2002년 누구의 지시도 없이 하나의 색으로 광장을 물들인 장관을 선보인 바 있다. 자발성과 능동성의 진수라 할 ‘참여적 스펙터클’이다. 군중의 시선은 다초점이며 카오스모스(chaosmos)적이다. 광화문 촛불집회는 이를 계승한 것이다. 소란했음에도 깨끗했고 즐거웠으나 장엄했다. 광화문광장은 이러한 장소성을 오롯이 담는 공간으로 다시 탄생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광장은 시대의 산물이며 진화한다. 차로로 둘러싸인 섬일지언정 광화문광장은 오세훈 시장의 업적이다. 또 청계천과 서울광장을 통해 차로를 줄인 도심도 작동함을 보여준 이명박 시장의 공도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과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중앙청 철거가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 앞길로 바뀌며 국가 중심공간을 잃은 이후 지난한 수복의 과정을 거쳤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광화문광장은 미래에 대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 도시는 유기체와 같다. 세포가 바뀌어도 모습과 정체성은 유지되듯 건축이 변할지언정 도시의 틀은 장구하다. 길과 광장이 항상성을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장은 ‘무계획의 계획’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동상, 꽃밭, 분수, 전시장 등의 디자인 요소로 시민을 구경꾼으로 만드는 대신 적극적 비움을 통해 다양성과 주체적 이용을 이끌어내야 한다. 광장이 재구조화되어야 할 두 번째 이유이다.

세 번째, 광화문광장은 지금의 박제된 공간에서 탈피해야 한다. 차로에 의해 잘리고 청진, 무교, 도렴동의 도심재개발에 의해 옛 골목길들이 와해되어 지금은 도시적 맥락을 잃은 외톨이 공간이다. 광장 외연의 확장을 통해 시민의 일상적 삶과 광장의 비일상적 경관이 어우러져야 한다. 또한 주변부 건물의 저층부를 활용하여 시민편의공간을 확보해야 하며 인접 블록들의 재정비를 통해 보행네트워크를 회복시켜야 한다.

제시된 안은 차로를 6차선으로 줄여 한쪽으로 몰고 사직로를 우회시켰다. 고작 월대와 해태상을 복원하기 위해 차량 흐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그러나 이는 서울 역사도심을 차로부터 해방시키는 기획의 출발점이라고 달리 읽을 수도 있다. 언젠가 줄인 차로조차 필요 없게 된다면 서울의 미세먼지도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친환경 차량 우선통행제를 실시하되 서울시는 단기 교통대책이 아닌 장기적인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해서 시민을 이해시켜야 한다.

광화문광장을 얻어낸 주인공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가장 빠른 기간에 이룬 우리 시민이다. 시민의 자부심과 우리의 국격에 상응하는 세계 최고의 광장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함인선 |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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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보름 넘게 지났음에도 그날의 감회는 여전히 생생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 벌어져서 놀랐고,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너무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느껴져서 더 크게 놀랐다. 지구상에서 서로를 가장 경계하고 적대시했던 사람들이, 마치 오랜만에 모인 가족 친지들 같았으니 말이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한 민족, 한 뿌리라는 것을 느끼는 데 말과 음식이 같다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을 테니까.

음악도 오랫동안 대립한 둘을 하나로 묶어주는 데 큰 몫을 했다. 남북 정상이 이동할 때는 조선시대 임금의 행차음악인 ‘대취타’가 연주되었고, 사열을 할 때는 ‘아리랑’이 흘렀다. 이질적인 피아노와 사물놀이가 어우러진 환송 공연 역시 감동적인 한 편의 음악 서사였다. 어색하고 서먹한 분위기를 깨고 우의를 다지기에 노래만큼 좋은 것이 없다. 예로부터 음주가무를 즐겼던, 흥이 많은 우리 민족이 아니던가. ‘고향의 봄’을 부를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속의 아늑한 고향 마을을 떠올렸으리라. 분단의 세월이 아무리 길어도 아직 함께 기억하는 노래가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중요한 국가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국악이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의 전통을 전 세계에 소개하고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제까지의 공연들이 그다지 커다란 감동을 주지는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청중의 마음에 다다르는 울림이 되기에는 어딘가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으니까. 전통에 대한 과도한 강조나 세련되지 못한 편곡도 거기에 일조를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음악은 특별한 위치를 가진다. 국악(國樂)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렇다. 국사(國史)나 국어(國語)가 아닌, 자국의 전통음악을 국악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투자 역시 적지 않다. 초·중·고 음악 교육과정에서 국악의 비중은 30%가 넘는다. 국가 차원에서 국악원을 두고 있고, 국악만 방송하는 방송국이 따로 있다. 무형문화재에 대한 지원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음악생활에서 국악의 비중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작년 한 해 인터파크를 통해 판매된 공연 티켓 중에서 국악 공연이 차지하는 비율은 채 1%를 넘지 않는다. 국악방송의 청취율은 다른 방송국의 청취율과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악은 행사 때나 필요한 것일 뿐 우리의 일상과는 상관없게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결혼식을 빼고는 아무도 더 이상 입지 않는 한복처럼.

상황은 안타깝지만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민족적 전통의 중요성만 강조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이들도 스마트폰에서 하루 종일 신나고 재미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니까. 빠르게 움직이는 동영상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4시간 반이나 되는 종묘제례악이나 6시간짜리 춘향가에 공감하기를 바라기 어렵다. 광속 기술의 삶과 리듬에 이미 익숙해진 아이들이니까.

국악의 현대화는 북한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북한은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민족음악 악기를 포함시킨 배합 관현악이라는 특이한 오케스트라 편성을 만들어낸 바 있다. 그것이 가장 폭넓고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편성이라는 그들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민족악기를 위주로 하는 편성으로 서양악기를 조선음악에 복종시키겠다”는 대담성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우리나라 국악계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전통악기를 개량하고, 대학에 전공을 두어 창작국악이나 신국악 같은 현대식 국악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옛 장단을 사용하고 국악기로 연주하는 것만으로 전통음악의 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은 절대로 훼손되면 안된다는 원칙이 작품의 독창성이나 참신함을 가로막는 원인이기도 하니까. 절대적 원칙과 자유로운 창작 정신은 양립하기 어렵다. 전통은 자연스럽게 묻어나야지 멋이 살아난다. 억지로 강제할 일이 아니다. 국악을 진정으로 보존하려면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 국악이 그러했던 것처럼. 과감한 변신을 두려워해서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양한 시도들이 허용되고 장려되어야 한다. 우리의 자랑스럽고 훌륭한 전통이 행사용으로 전락하거나 박제화되는 불행을 피하려면 말이다. 그리고 그런 여정에 남과 북이 함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혜는 나눌수록 커지고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법이니까.

<민은기 | 서울대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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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남성 사회의 반발이 곳곳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지하철에서 여성학 책을 읽는다고 봉변당한 여고생부터 “오해 받으니 여성을 멀리하겠다”는 ‘펜스룰’까지. 대개 이러한 현상을 반격(反擊·백래시)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백래시(backlash)는 1970년대 미국에서 치열했던 여성운동과 진보세력을 몰아내고자, 정부와 미디어 등 사회 전반이 주도한 반동의 물결이었다. 이때 등장한 단어 중 하나가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PC)’인데, 당시 미국에서 냉소와 좌절의 용어였다면 한국에서 ‘PC’는 지향해야 할 가치로 사용되었다. 요컨대 상황이 다르다는 얘기다. 우리는 미국의 1970년대 같은 경험이 없으며, 레이건 정부는 안티페미니즘의 선봉장이었지만 우리 정부와 언론은, 특단의 대책은 없을망정, 미투에 우호적이다.

나를 포함한 여성주의 강사 두 명이, 얼마 전 모 대학 학생회로부터 인권 강의를 요청받았다. 그런데 해당 대학의 학생 204명이 그녀의 강연을 취소하지 않으면 학생회를 탄핵하겠다고 서명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익명의 학생들은 강사의 ‘신상을 털고’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결국 학생회는 그 압력을 견디지 못했다(다행히 학내 여성주의 모임은 강연 취소에 항의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나는 그녀와 “연대한다”는 뜻에서 강연 거부를 통보했지만, 사실 나도 같은 처지이고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이 아닌가. 페미니즘은 인문학의 핵심이고, 학문과 사상의 자유라는 명분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지면에 담기엔 복잡한 논의지만, 만일 학교 당국이 홍준표씨를 특강 강사로 불렀다면 어땠을까. 학생들은 반대 시위를 했겠지만, 홍씨를 불렀다는 이유로 학생회 탄핵과 같은 누군가의 사퇴를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모 보수 정치인의 특강을 둘러싸고 학생들이 반발해 충돌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 학교 측은 강사의 신변 보호에 최선을 다했고 강연 취소를 요구한 학생들은 비난받았다.

얼마 전에는 ‘코뮌주의’를 내건 모 연구 공동체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흥미로운 사실은 토론회 분위기였다. 가해자와 조직을 옹호하는 이들은 억울한 듯 다소 흥분한 얼굴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피해자를 지원했던 여성들은 ‘쿨’했다. 이들은 토론회 내내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이 안 통하는 이들과의 시간이 아깝다는 듯, 답답해했다.

대학생들의 여성주의 강연 저지는, 반격일까. 또한 이미 당사자 두 명이 모두 인정한 사안에 대해 들뢰즈와 데리다, 칸트를 인용해가며 “우리는 문해력이 뛰어난 집단인데, 우리가 못 알아들었으니 당신들이 틀렸다는 증거”라고 ‘논증’하는 이 조직의 행위는, 과연, 반격일까.

한국 사회의 일부 진보 진영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 개념 중의 하나가 ‘대화’와 ‘폭력’이다. 이들은 대화와 폭력을 대립시키면서, 자신을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민주주의 세력으로 자칭한다. 노! 민주주의는 폭력 대신 대화를 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삶에서 대화로 해결되는 문제는 거의 없다. 평화학자 신시아 인로는 “완벽한 대화는 군대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합의 가능한 대화는 명령뿐이라는 얘기다.

‘을’은, ‘갑’과 말이 안 통하는 일상을 산다. 대화가 안되기 때문에 저항하는(‘폭력을 쓰는’) 것이다. 위 공동체도 일부 여성 회원이 남성과의 대화에 절망하여 탈퇴했는데, 남성은 “왜 우리 몰래 토론회를 개최하느냐”는 말을 반복했다. 모두가 동등한 관계에서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있다면, 유토피아다.

민주주의는 대화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대화를 쉽게 생각하는 이들은 권력자들이다. 그들은 글로벌 시대 미국인처럼 자기 언어가 보편적이라고 믿는다. 남성 중심적인 인식과 용어는 ‘영어’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남성’ ‘백인’ ‘이성애자’들은 ‘여성’ ‘유색인’ ‘동성애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통념을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 남성들의 미투 운동에 대한 반감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목소리’에 대한 불안, 당황, 겁먹은 심정의 산물이 아닐까. 백래시? 반격하려면, 논리가 있어야 한다. 자기 논리가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오래된 관행과 IT의 익명성에 의존한다. 한국 남성들은 새로운 무지의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고, 남성의 심기에 민감한 미디어는 이들의 퇴행을 “반격”으로 과대평가하고 있다.

<정희진 |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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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축제이고 민주주의의 꽃이다. 선거시기에는 우리 삶의 미래에 대한 수많은 약속이 펼쳐진다. 또한 정책과 공약이란 꽃을 들고 나온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에게 구체적인 미래의 풍경을 보여준다. 시민들은 각 후보진영이 제시하는 가장 행복한 청사진을 보고, 마침내 투표를 하게 된다. 많은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하고, 가장 많은 표를 획득한 후보는 자신의 정책과 공약을 잘 실현하여 모두가 행복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이런 동화 같은 순진한 선거는 없다. 현재의 선거는 온갖 첨단 선거공학, 정치공학이 동원되고, 심지어 기후와 투표장 교통 등 당선과 관련된 모든 정보들이 고려되는 복잡하고 치열한 싸움의 과정이 되어 있다. 또한 정당하고 긍정적인 방법의 승리가 어려우면 네거티브 전략과 더불어 불법에 대한 유혹을 받기도 한다. 선거와 무관한 후보자의 사생활 파헤치기부터 거짓정보와 중상모략에 의해 선거 자체가 막장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지지자들의 투표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만 된다면 무엇이든 물고 늘어지는 이 한판의 선거싸움은 최악의 경우 상대방을 저주하는 말싸움 대회처럼 되어버리기도 한다. 축제일 줄 알았던 선거가 네거티브로 인해 실망과 충격을 안겨준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가? 실제로 상대 후보의 집안 문제, 사적 취향 문제 등을 포함해 후보자의 정체성에 관한 네거티브 전략이 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정치심리학의 답은 현재 논쟁 중이긴 하다. 하지만 럿거스대학의 리처드 라우 교수팀은 1990년대~2000년대 초까지 여러 선거에서 네거티브를 주전략으로 쓴 후보자들의 선거를 조사한 결과, 그들 대부분은 낙선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몇 지역 유권자와의 심층 인터뷰에서는 후보자의 부정적 정보를 알게 되어 심리적 충격을 받았으나, 그 이슈 때문에 투표할 후보를 바꾸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인지과학적 측면에서 네거티브 이슈가 후보자들의 공약보다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하여, 네거티브 전략은 정책 선거에 가장 방해가 되는 요인이라고 했다. 더구나 그 전략 안에 심각한 불법이 포함되었다면, 선거 후의 정치질서가 교란되어 정치시스템 자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또 네거티브 전략이 선거전의 대부분을 차지할 경우 이를 관망하는 시민들은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연구와 정치’라는 저널에서, 리엄 멀로이 등 저자들은 부정적 홍보에 노출된 시민들은 상대방 진영의 후보 및 지지자들에게 더 분노하였고, 선거과정에서 훨씬 높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지역사회의 혐오 범죄나 폭력, 집 안에서의 TV 및 기물 파손과 같은 공격적 행동이 늘었다는 보고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후보자들은 선거전략을 왜 네거티브로 결정하거나 전환할까? 이 주제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지만, 네바다대학의 데이비드 다모어 교수는 어떤 방식으로든 투표율에 영향을 미치거나, 어젠다를 빼앗긴 상황에서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지 못할 때, 자신이 당선되어야만 한다는 지나친 자기애나 집착, 전능적 환상 영향 탓이라고 했다. 미국 정치심리학자들은 2012년 선거에 이어 2016년 선거에서도 과거보다 네거티브 광고가 늘어나면서 공약 없는, 비방과 중상모략의 선거전략에 깊은 우려를 정치권에 표한 바 있다고 한다. 독일은 2016년 총선을 치르며 선거에 사용된 거짓 정보와 차별적인 발언의 심각성 때문에 2017년 일명 ‘가짜뉴스와 혐오발언 방지법’을 제정했고 엄청난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한다. 선거과정에서 오직 집권과 당선을 위해 자신의 품위를 버리고 상대 후보를 비방, 음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정치적 공해이고 유권자들에게는 심리적 학대다. 거기다 선거운동원들에 의해 소셜미디어로 온갖 유언비어가 퍼날라져 순간순간 불안과 짜증을 동시에 견뎌내야 하는 것도 고된 정서적 노동이다. 혹시 그조차도 일부 세력들의 전략일까? 집권을 위해 투표율이 낮아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목표는 정치의 희화화, 정치의 혐오화라고 하니까 말이다.

멀로이는 연구결과상 긍정 전략이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단언한다. 정치로 국민을 치유하려면, 네거티브의 유혹을 이기고, 최대한 긍정적이고 구체적인 미래를 시민과 함께 의논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라고 한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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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현 의정부지검 검사가 15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의 소환조사를 막으려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안 검사는 “춘천지검 수사팀이 지난해 12월 권 의원 소환조사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상부에 제출했는데, 문 총장이 춘천지검장을 심하게 질책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도 “지난 1일 권 의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알리자 문 총장이 수사단 출범 당시의 공언과 달리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전문자문단을 구성해 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문 총장은 지난 2월 춘천지검 수사가 각종 외압 의혹을 받자 독립된 수사단을 출범시키면서 수사 보고도 받지 않고, 수사지휘권도 행사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검 대변인은 “수사단의 요청으로 전문자문단의 법리검토 결정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지, 지휘권 행사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문 총장은 “이견이 발생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한 과정”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강한 검찰에서 현직 검사와 수사단이 수뇌부의 실명을 거론하며 주장한 것을 보면, 단순한 이견 표출이라고 보기 어렵다.

권 의원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다. 권 의원은 2013년 11월 자신의 비서관을 포함해 10명 이상을 채용하도록 강원랜드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같은 당 염동열 의원도 수십명 채용을 청탁한 혐의가 밝혀졌다. 그런데 염 의원은 이미 구속영장이 청구됐는데 권 의원만 자문단 심의에 부치라고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염 의원은 공개소환한 반면, 권 의원은 지난달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날에 맞춰 비공개 소환했다. 혐의가 유사한 두 사람에 대한 검찰의 대접은 판이했다.

강원랜드 수사는 이전 김수남 검찰총장 때도 1년 이상 질질 끌다가 수사 외압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어 취임한 문 총장도 똑같은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검찰 신뢰가 훼손될 중대 사안이다. 강원랜드 채용비리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좌절과 분노를 안겨준 충격적인 권력형 비리 사건이다. 검찰의 존재 이유는 이런 거악을 척결하는 것이다. 이런 수사마저 ‘정치권력 눈치보기’로 왜곡된다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얘기하나 마나다. 수사단은 한 치 성역 없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가려내야 한다. 수사가 미진할 경우 특검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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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몰카 범죄, 데이트폭력 등은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악성 범죄”라고 규정했다. 문 대통령은 “수사당국의 수사 관행이 조금 느슨하고, 단속하더라도 처벌이 강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조금 더 중대한 위법으로 다루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등에서 가정폭력을 다루는 사례를 들며 “우리도 대전환이 요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 발언은 최근 홍익대에서 발생한 남성 누드모델 불법촬영·유포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짐작한다.

홍대 사건은 피해자가 남성, 가해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례적 주목을 받았다. 경찰은 수사의뢰 8일 만에 가해자를 구속했다. 이후 ‘경찰이 다른 불법촬영·유포사건에는 왜 그토록 미온적으로 대응해왔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신속한 수사는 바람직하지만, 여성이 피해자일 때와는 태도가 다르다’는 게 불만의 초점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에 동의한 사람은 15일 오후 현재 34만여명에 이른다. 지난해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불법촬영으로 검거된 사람 중 98%가 남성이었다. 같은 기간 불법촬영 피해자 중 84%는 여성이었다. 문 대통령은 몰카 범죄 엄단을 지시하면서도 국민청원은 언급하지 않았다. 거론할 경우 불필요한 논란이 증폭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본다.

홍대 사건 수사가 신속했던 것을 두고 피해자가 남성이어서라고 주장하는 건 비약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경찰도 “이번 사건은 일반적인 불법촬영·유출과 달리 시간, 장소, 사람들이 특정돼 빠른 수사가 가능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왜 국민청원에 여성들이 폭발적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권단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성명을 통해 “홍대 사건의 가해자가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는 동안, 우리가 지원하는 여성 피해자는 포르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며 “어째서 이제야 이례적인 일처리와 피해자 보호가 이뤄졌는지 질문을 던져야 할 지점”이라고 했다.

수사기관은 문 대통령 발언을 계기로 성범죄 수사 관행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 최우선 가치는 피해자 보호이고, 그 다음은 신속한 수사다. 이참에 ‘몰카’라는 용어도 ‘불법촬영’으로 대체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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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남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깊고 씻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을 남겼다. 정부는 이와 같은 대형사고를 예방하고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자는 매년 1000여명에 이르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21조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의 1.3%, 국가 예산의 5.4%에 이르는 규모다. 또한 노동자 1만명당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 비율인 사망만인율은 독일·일본 등 선진국의 2~3배 수준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안전한 사회’와 ‘지속가능한 사회’의 실현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제 다시 한 번 근원적인 접근과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10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서 세월호가 직립작업을 시작하여 4시간여만에 완전 직립에 성공, 세월호가 참사 4년여만에 바로섰다. 김기남 기자

필자는 우리나라 기간산업을 이끌어 온 전력산업에 30여년을 몸담아 왔다. 수많은 산업재해를 목격한 당사자로서, 되풀이되는 비극적 사고와 재해를 끊어내기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성숙한 안전문화의 정착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안전을 바라보는 의식수준 향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신의 생명과 안전이 본인과 가족에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깊이 인식하는 자기존중의 자세가 필요하다. 미국의 듀폰사는 1802년 화약회사로 출발해 나일론, 타이벡 등을 개발한 세계적인 기업이다. 듀폰사는 모든 사고는 예방가능하다는 신념에 투철하다.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동료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최고 수준의 안전문화를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듀폰의 창업자 E I 듀폰은 화약공장 인근에 자신의 자택을 지어 가족들과 함께 거주했다. 폭발사고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과 동료의 생명과 안전을 동일시하는 안전철학을 몸소 실천했다.

4년 만에 바로 세워진 세월호의 내부 모습이 공개됐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내부 안전조치를 마치는 다음달 10일 이후 미수습자 수색과 정밀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4·16가족협의회 제공

다음으로 실행력 있는 안전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안전이론에 스위스 치즈 이론이 있다. 스위스 치즈는 많은 기포로 인해 구멍이 뚫려 있다. 스위스 치즈를 여러 겹으로 배치했을 때 우연히 구멍이 동시에 일치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안전 측면에서 다양한 요인의 결함이 동시에 발생할 때 재해가 일어난다. 이러한 모든 불확실성의 최소화를 위해서는 인적, 제도적, 관리적으로 다양한 시스템이 상호보완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실제 현장에서 설계·작업 전·작업 중 등 단계별 안전 매뉴얼이 실효성 있게 작동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장의 위험을 찾아 개선하는 프로세스를 상시적으로 운영하고, 주기적으로 외부전문가의 객관적인 관점에서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빈틈 없는 안전사고의 예방이 가능하다.

끝으로 협력기업에 대한 안전지원 체계가 절실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발전산업 현장은 고소작업, 중량물 및 유해화학물질 취급 등 위험요소가 많은 곳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업재해가 영세 협력기업 및 일용직 작업자와 같은 안전취약계층에게 발생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안전취약계층을 단순한 하도급 관계가 아닌 상생의 파트너 관계로 생각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들의 안전역량 강화를 위해 안전관리비는 낙찰률 적용을 제외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나아가 맞춤형 안전체험교육을 제공하고 현장의 위험 발견 시 작업중지권을 부여하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상생의 안전지원 확대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이제 우리도 안전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안전조치를 비용이나 규제로 보는 성장지상주의, 성과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값싼 드라이비트 외장재나 폴리에스테르 천막이 아니었다면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대구 서문시장에서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성숙한 안전문화와 실행력 있는 안전시스템, 그리고 상생의 안전지원체계 구축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숙제다.

<김병숙 | 한국서부발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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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프세블로드비치 스타브로긴, 니콜라이 프세블로도브나 스타브로기나,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 러시아 소설을 읽기가 참으로 난감했던 이유는 등장 인물의 이름 때문이다.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한 흑인 복서는 자신이 백인 농장주의 성을 딴 노예의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개명한다. 훗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서로 선정된 그의 이름은 무하마드 알리다. 작고한 뮤지션 프린스는 한때 자신의 이름을 기호화된 심벌로 개명한 적이 있다. 부를 수는 없고 그릴 수만 있는 이름이었다.       

명사는 ‘쎄다’. 정말 강력하다. 평창 올림픽 기간 중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뉴스는 낙지와 오징어에 관한 것이었다. 명사를 반대로 쓴다는 것, 즉 북한의 낙지가 우리의 오징어고 우리의 낙지는 북한에서 오징어란 사실이다. 먼 훗날 어쩌면 남북 통일의 최후 과제는 낙지와 오징어일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겐세이, 기스, 오뎅….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쓰이는 일본어들이 많다. 국민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명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 명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말일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비극도 실은 명사에 대한 몰이해, 명사의 오용과 남용, 명사에 대한 왜곡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한가지 예로 빨갱이란 단어만 놓고봐도 그러하다. 한가지 더 예를 들어보자. 자유 민주주의. 이거 어쩔 거냐, 이 말이다.

한국정당사를 뒤적이면 러시아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처럼 머리가 아파온다. 해방 직후부터 우후죽순, 오로지 1946년 발포된 미군정법령(美軍政法令) 제55호에 근거, 당원 수가 3명만 모이면 정당이 성립되던 시기에서 1948년 48개의 정당들이 참가한 제헌국회의원 선거까지…. 오, 이런 니콜라이 프세블로드비치 스타브로긴, 니콜라이 프세블로도브나 스타브로기나,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를 봤나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보수’와 ‘진보’가 대체 무엇이냐, 언제 어느 때부터 생긴 이름이냐 이를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니콜라이 프세블로드비치 스타브로긴과 니콜라이 프세블로도브나 스타브로기나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봐야 별 시덥잖은 인물일 게 뻔하고, 어쨌거나 한 50년 우리가 습관처럼 보수와 진보라는 명사를 써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보수와 진보라는 프레임에 갇혀 살아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저 두 개의 명사는 살아있을 것이다. 36년 전통의 겐세이와 오뎅보다 더 오래, 우리 입에 착착 붙었기 때문이다.          

내가 따지고자 하는 것은 이 중요한 두 개의 명사가 산이나 물같은 공적인 정의가 아니라 ‘자칭’이란 것이다. 그래서 네가 왜 보수며, 그래서 네가 왜 진보냐는 질문이다. 누가 너한테 보수란 이름을 허락했으며 누가 너에게 진보란 이름을 불러줬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운동회의 청군과 백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아, 하물며 스스로 핀 꽃이었더냐? 국민이 너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막무가내로 다가와 50년 우겨서 핀 이런 꽃 같은 명사를 봤나….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당신은 보수요 진보요 설문조사를 받아야 하는, 참으로 지지 않는 ‘꽃 같은’ 명사이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프세블로드비치 스타브로긴 같은 정치적 함의는 차치하고, 가장 쉽고 근원적인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자. 이른바 보수는 새로운 것을 적극 받아들이기보다는 재래의 풍습과 가치, 전통을 중히 여기어 유지하려는 뜻과 자세를 의미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이제 우리에겐 지켜야 할 새로운 가치가 생겼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그것이다. 전환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 새로운 역사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되어 버렸다. 지난 세월 주적으로 대립해 온 분단체제가 그간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할 우리의 가치였다면, 이제 그것은 빠르게 소멸해가는 과거의 가치이자 세계관이다. 다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고 지킬 것인가, 그 기로에 모두가 서 있다. 다가올 6월13일 지방선거는 어쩌면 최초로, 국민이 그대들의 이름을 다가가 불러 주는 날이 될 것이다.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인 이 새로운 가치를 ‘중히 여기어’ 유지하려는 국민들이… 지극히 보수적인 국민들이 진정으로 보수라는 이름을 선택하고 불러주는 날일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정신차려라 민주당. 이제 당신들이 보수다. 다가올 선거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실은 얼마나 보수적이고, 보수를 갈망해왔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이제 스스로가 보수임을 선언하면 좋겠다. 그래야 혼란이 없다. 어느 날 자신의 이름을 개명한 캐시어스 클레이처럼, 새로운 가치를 중히 여기고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든든한 보수가 되어야 한다. 돌이켜보기 바란다. 언제 당신들이 리버럴했고 언제 당신들이 혁명적이었나를. 그러니 니콜라이 프세블로도브나 스타브로기나 같은 고민하지 말고 당당히 보수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를 나는 바란다. 무엇보다 아직도 진보라 여기며 스스로 퍼질러 앉은 그 널찍한 궁둥짝이 부담스럽다. 제발 자리 좀 옮겨주기 바란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데, 당신들 때문에 새 날개가 돋아날 자리가 없다 이 말이다. 그러니 정신차리고 제발 성큼, 견고한 보수로 자리 잡아라. 국민이 너의 이름을 불러줄 때 꽃보다 귀한 보수로 활짝 피어라. 정신차리고 당신들이 보수임을 자각하지 않으면 이 또한 영영 오기 힘든 마지막 기회일지 몰라 하는 얘기다. 지켜야 할 가치가 너무나 크고 중요하다. 새로운 보수의 시대를 열자. 꽃보다 보수다.

<박민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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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의 파트너만 찾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다른 선수들의 의욕이 떨어질 수 있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국가대표팀 명단 발표 및 기자회견 과정에서, 신태용 감독이 한 말이다. 다른 질문들에서는, 신태용 감독이 특유의 ‘어~’ 하는 간투사를 습관적으로 쓰면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답변을 했는데, 이 질문에서는 고개를 들어 특히 강조하였다.

해당 기자의 질문 의도는, 기성용을 중심으로 한 미드필드 라인의 전술과 조율에 관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기성용 파트너’라는 단어가 활용되었고, 이에 관하여 대표팀 감독으로서 분명한 뜻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마저 인용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기성용의 파트너를 찾기 위해 대표팀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다른 선수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23인 엔트리를 똑같이 대우해줬으면 한다.”

중요한 발언이다. 대표팀을 구성하고 훈련하여 일단 조별리그 3경기 270분 동안 격전을 벌여야 하는 감독으로서는, 설령 그러한 질문이 없다 하더라도, 모처럼 생중계되는 과정을 통해 선수들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신뢰를 이렇게 선언적으로 밝혔어야 한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기자회견에서 신 감독 스스로 누누이 밝혔듯이 이번 대표팀 명단은 그가 생각한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다.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인하여 유력했던 선수들 몇몇이 빠졌다. 수비의 핵심인 김진수 선수처럼, 일단 발탁은 했지만 걱정되는 자리가 한둘이 아니다.

그 자리를 다른 선수들이 채웠다. 꽤 오랫동안 소속팀의 벤치에 머물고 있는 이청용 선수에 대한 질문이 거듭되었고 이에 대하여 신 감독은 몇 차례 비슷한 말을 되풀이해야 했다. ‘플랜 A’만 고집할 수는 없고 여러 경우의 수에 대응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함께 가지 못하게 된 선수들에 대한 신 감독의 마음도 불편했을 것이다. 특별히 김민재, 염기훈, 이창민에 더하여 전술적인 고려에 의해 선발하지 못한 최철순에 대한 아쉬움도 표현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막판까지 고심하여 최종 명단을 발표하였으므로 이제부터는 다른 판단과 다른 발언이 필요하다. “선수층이 두꺼운 것은 아니다. 변화무쌍하게 가져갈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라는 말은, 오늘 이후로는 감독의 입에서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게 막판에 가서야 승선하게 된 “선수들에게 예의이며 대우”이다.

이를테면 이승우와 문선민 선수. 회견 중에 신 감독은 “선수들 수준이 두터우면 이 선수 저 선수를 교란작전으로 끌고 갈 수 있지만 사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어쩔 수 없이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택했다는 뜻이 된다. 이런 말은 오늘 이후로는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어느 감독이든 최악의 상황에서 차선의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게 축구고 그게 인생이다.

아니, 신 감독 스스로 이승우와 문선민에 대한 상당한 판단과 기대를 말하지 않았던가. 이 두 선수는 기성용, 구자철, 권창훈 등으로 구성되는 미드필드 라인에 예기치 못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나이와 경험 부족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동국, 이천수, 박주영이 처음 대표팀에 발탁될 때도 그 같은 비판이 있었으나 이들 모두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축구의 세계화 현상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이승우는 바르셀로나에서 제대로 배워서 이탈리아의 1부리그에서 뛰고 있다. 문선민은, 스스로 길을 찾아서, 스웨덴의 3부리그를 시작으로 하여 1부리그까지 뛴 후, 현재 인천의 중심에 섰다. 신 감독 스스로 말했듯이 “스웨덴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보니 요긴하게 쓸 수 있는” 회심의 카드다.

속도!

금세기 축구의 최대 화두가 바로 속도다. 축구에서 말하는 속도는, 단순한 주파 능력이 아니라 능란한 기어 변속을 뜻한다. 과거처럼, 지칠 줄 모르고 뛰다 보면 결국 지친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예언적으로 말한 ‘스웨덴전 후반 막판 15분’ 같은, 그런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공간을 향하여 파괴적으로 돌진해야 한다. 그 시공간은 겨우 10초 내외 10m 정도다. 우리 팀에는 반드시 그 순간에 그 공간을 침범해버리는 선수가 필요하다.

이미 이근호, 손흥민, 황희찬, 권창훈은 공격 진영 전체를 자신의 영토로 맘껏 누비는 능력을 유감없이 증명해왔다. 여기에 이승우 카드까지 더하면, 언제든지 급가속과 급선회가 가능한, 창의적인 속도의 축구가 펼쳐질 수 있다.

신 감독은 ‘반란’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러시아에서 통쾌한 반란을 일으킨 뒤 귀국해 국민들과 팬들에게 따뜻한 환영을 받고 싶다”고 했다. 역사의 우연인 듯, 러시아는 반란과 혁명의 나라다. 더욱이 스웨덴과 1차전을 갖는 니즈니노브고로드는 반란의 작가 막심 고리키의 고향이며 독일과 맞붙는 3차전의 장소는, 혁명아 레닌이 대학을 다닌 카잔이다. 반란의 작가 고리키는 “인간은 노동의 동물이다. 노동을 통하여 끝없는 힘이 솟아난다. 하려고 한다면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레닌은 더 말해 무엇하랴. 그는 절망이란 “악에 맞서 싸울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했다.

신 감독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인용한 대로, 인터넷에서는 더러 고약한 사람들이 ‘3전 3패가 뻔하다’며 마치 축구공이 세모나 네모처럼 생긴 듯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대회의 공인구 역시 둥글다. 카잔의 혁명가 레닌은 “조직을 달라. 그러면 러시아를 뒤집어엎겠다”고 했다. 신 감독에게도 조직이 주어졌다. 비록 상황은 차선이었으나 그 자신은 최선의 선택을 한 조직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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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교통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우리나라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3만2035건이다. 그런데 교통안전이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고 평가받는 일본에서는 우리의 두 배가 넘는 53만6899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상대적 수치를 비교하면 내용은 정반대가 된다.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는 일본이 0.5명이지만 우리나라는 1.9명, 인구 10만명당 사망자는 일본이 3.8명인데 우리나라는 9.1명으로 거꾸로 격차가 확 벌어지게 된다. 이런 착시 현상 때문에 교통사고 관련 통계는 반드시 상대적 수치를 활용하기 마련이다.

이런 착시는 교육 분야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독일 연방통계청에서도 근무했던 통계학자 게르트 보스바흐 박사가 한 토론회에서 겪은 사례다. 독일에서 사회적 위기로 논의되고 있는 인구문제 및 교육정책에 대한 토론회였는데 당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가족부 장관은 주정부에서 신규 교사 1000명을 채용했다고 자랑스레 발표했다. 그러자 보스바흐 박사는 베스트팔렌주에는 학교가 몇 개나 되느냐는 질문했고 당황한 장관이 우물쭈물하자 다른 교수가 공립학교만 7000개쯤 된다고 말해주는 순간 장내 분위기는 싸늘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무려 1000명이나 되는 교사를 채용’한 것이 아니라 ‘7곳의 학교 중 1곳만 신규 교사를 채용했다’는 의미였으니 장관은 통계 숫자로 공공연히 사람들을 속이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의 한 교육전문가는 “서울대 정시는 100% 수능으로 선발해요. 근데 정시에서는 일반고 출신 합격자가 59.3%예요. 반면에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 합격자는 39.2%입니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수능이 일반고에 더 불리하다는 주장을 하는 걸까요?”라고 인터뷰했다. 실제 2018학년도 서울대 정시 입시에서 일반고 출신은 510명이 합격했고 특목고와 자사고에서는 불과 337명이 합격했으니 이 숫자만 보면 일반고가 수능전형에서도 월등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 맞다. 그런데 이 주장을 알게 된 몇몇 고등학생들이 자료를 찾아보더니 이런 반박 논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일반고 학생은 119만3562명이고 특목고는 6만7960명, 자율고는 13만3896명이다. 일반고 학생 수가 특목고와 자율고 학생 수의 여섯 배에 가깝다는 것을 고려하면 일반고의 수능 경쟁력이 특목고와 자사고에 비해서 크게 떨어진다고 보아야 하고,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정시전형 합격자들 중에서 강남·서초·송파 3구 출신이 무려 169명이나 된다고 하니 그나마 교육특구 지역을 제외한 일반고 출신 학생들이 수능으로 최상위 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평범한 고등학생들도 쉽게 찾아내는 수능시험의 문제점에 대한 여러 통계자료들이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왜곡된 통계자료와 감성적 논리를 통해서 구성된 주장들이 정부나 국회에서 입시정책을 세우고 법안을 심의하는데 영향을 줄 때 생기게 될 문제를 생각해보면 정말 심각하다. 물론 정부와 교육청, 정치권이 일반고 교육동아리 학생들보다 나은 판단을 해 줄 것을 기대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했다. 그래서 걱정이다.

※참고 자료 독일사례: 게르트 보스바흐 <통계 속 숫자의 거짓말>, 교육전문가 인터뷰: 이기정 <입시의 몰락>, 통계청 e-나라지표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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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 있게 설명한다’는 말에서 ‘조리(條理)’라는 단어를 풀어보면 나뭇가지(條)가 뻗어가듯 체계적이며, 앞뒤가 맞게 잘 다듬는(理) 것을 뜻합니다. 뿌리부터 잎사귀까지 모두 아울러야 그 나무를 온전히 알 수 있고, 필요에 맞게 손을 봐야만 누군가에게 쉽게 와닿습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아아! 하는 깨달음이 오거나 졸음만 오기도 합니다.

아기가 잘 받아먹지 못한다고 ‘떠먹여줘도 못 먹냐!’며 억지로 숟가락 욱여넣을 부모는 없습니다. 이해 못하는 학동이라면 훈장님은 회초리 대신 차근한 비유를 들어야겠지요. 가르치기 위해서는 가르칠 내용보다 더 많이, 깊고 넓게 공부해야 한다는 ‘한 자를 가르쳐주려면 천 자를 알아야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 자’는 ‘한자(漢字)’, ‘천 자’는 ‘천자문(千字文)’도 뜻합니다. 한자 한 글자를 가르치려면 당연히 천자문 전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니, 가르침이란 배움의 천 배 노력이라 해도 옳을 것입니다. 한자 천 자를 달달 외웠다고 천자문을 아는 게 아니듯, 많이 암기했다고 원리와 이치를 아는 건 아닐 텝니다. 단순 지식보다 여러 갈래 사이를 풍성하게 타넘으며, 한두 가지로 열을 만드는 창의와 융합이 훨씬 중요해진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검색 한 번이면 다 나올 걸 여전히 달달 외워 시험을 칩니다. 그리고 어느 학생이 “하늘 천은 왜 검을 현이죠? 하늘은 파랗지 않아요?”라고 물으면, “그냥 외워!” “시험에 안 나와!” 또는 “진도 나가자!” 같은 실망스럽고 뻔한 답을 듣기도 할 겁니다.

스승의날은 천자문 대신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 탄신일에 맞춰 날짜를 잡은 것입니다. 어두운 밤 ‘어린 백성’의 등불을 만들고자 잠도 잊은 스승이 어찌 대왕뿐이겠습니까. 하나를 옳게 알려주려 천 번을 생각하는 이들도 대왕님의 그날에 함께하고 있을 것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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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탈주범 지강헌은 돈이 권력인 세계를 향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다. 지금 온라인에서는 국민들이 “유○무죄 무○유죄”를 외치고 있다. 이 기막힌 구호는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일까?

사건의 시작은 이랬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몰카가 한 장 올라온다. 대학의 크로키 수업에서 찍힌 누드 사진이었다. 커뮤니티 유저들은 그 사진을 보고 낄낄거리며 피해자를 희롱했다.

2014년까지 이런 정도의 사진은 그저 ‘보고 즐길 수도 있는 포르노’로 여겨졌다. 범죄라는 인식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2015년 메갈리아 이후 여성들은 몰카 촬영과 공유가 개인의 존엄을 침해하는 범죄임을 강조하고 ‘디지털 성범죄’ 혹은 ‘불법촬영범죄’로 재명명했다.

더불어서 ‘몰카’가 범죄로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은 디지털성폭력대항단체인 DSO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청년 여성들로 구성된 단체의 활동 덕분이었다. 그렇게 달라진 인식 속에서 2018년 5월에 벌어진 이 ‘크로키 모델 사건’은 크게 화제가 된다.

경찰은 유례없이 발 빠르게 행동했고, 사건 발생 열흘 만에 범인을 잡아 포토라인 앞에 세웠다. 놀라운 일이었다. 언론은 신이 났고, 사람들은 돌을 던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페미니즘이 세상을 바꾼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범죄인지 몰랐던 것을 범죄라고 각성시킨 것은 확실히 페미니즘의 역할이다. 다만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 피해자가 남성이었고, 가해자가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2017년 기준 ‘불법촬영범죄’ 가해자 98%가 남성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좀 특이한’ 사건이었던 셈이다.

지금 국민들은 바로 이 문제를 질문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부터 반대의 경우에도 이처럼 기민하고 엄정한 대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는 그토록 무능했던 경찰이 이번 사건에서야말로 자신의 유능을 입증하지 않았는가?

나는 지금 이 글을 30만1487명의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쓰고 있다. 이는 2018년 5월14일 오전 9시36분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올라온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에 참여한 이들의 숫자다. 이 청원에서 국민들은 “동일범죄 동일수사 동일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동일범죄 동일수사 동일처벌. 이는 페미니즘의 그 유명한 구호인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남성과 여성에게 동일한 노동이 허락되지 않는 구조를 문제 삼고, 동일한 노동을 하더라도 그 노동력이 같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저항한다.

2018년 대한민국의 노동시장에서 남성과 여성은 여전히 불평등하다. 얼마 전 밝혀진 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채용비리 사건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국민은행은 채용과정에서 남성 지원자 100명의 서류전형 점수를 높여주었고, KEB하나은행은 합격자 성비를 남성 4 대 여성 1로 맞추기 위해 점수를 조작했다. 그 결과 여성 커트라인이 남성 커트라인보다 48점이나 높아졌다. 그야말로 성별이 스펙인 셈이다.

이 사건을 보고 “기업이 뽑고 싶은 사람을 뽑는다는데, 그게 문제인가?”라고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정체성이나 신체적 특징 등 한 개인의 특성에 따라서 기회를 박탈하고 선택을 제한하며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을 민주주의사회에서는 ‘차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국가는 법을 만들어 차별 행위를 처벌한다. 하지만 우리는 법도 믿을 수 없는 사회를 산다.

“유○무죄 무○유죄”라는 구호가 등장한 것은 대한민국이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차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디지털 성범죄에 있어서 늘 뭉그적거렸던 경찰이 전광석화와도 같이 움직인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피해자가 남자여서? 가해자가 여자여서? 혹은 언론의 관심이 남달랐기 때문에?

이유가 무엇이든 ‘남성’이라는 성별이 파워가 되어 공정한 법 집행을 막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은 요구한다. 동일한 범죄에 동일한 수사와 처벌을.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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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의 재발견이었다. 2018년 4월27일. 그날의 일은 모두 녹화되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그 맥락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 지난 후에라야 객관적 거리도 확보되고 그 전모가 눈으로 들어온다. 한차례 흥분이 지나고 돌이켜 보면 인상적인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그것은 처음 만나 악수한 뒤 잠깐 북측으로 월경(越境)하는 사진이었다. 이제껏 적대적이었던 두 정상이 손을 잡은 채 금단의 선을 넘는 뒷모습.

사람의 진면목은 뒷모습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다. 이 광명한 세상에서 유일한 맹점이 있다면 그건 본인(本人)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지(奧地)인 뒷모습. 그것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법이다. 뒷모습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책이 있다.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뒷모습>이다. 뒷모습만을 찍은 사진도 좋지만 밀도 높은 글이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사십쯤에 <뒷모습>을 접했다. 오십이면 그 경지에 오르기를 소망했건만 육십을 목전에 두고도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다만 시골에서 벌초할 때, 풀을 베고 난 뒤 모두에게 부탁해서 뒤로 돌아선 모습을 찍는다. 어쩌면 무덤은 한 인생의 총체적인 뒷모습이기도 하겠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형제들의 뒷모습. 거기에는 홀가분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쓸쓸한 표정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돌아서 있는 형님들은 아버지의 생전 모습과 얼마나 닮았던지!

지난주에는 평창의 마을 근처를 돌아다녔다. 남북회담의 물꼬를 터준 올림픽의 열기는 옛일이 되었고 봄맞이 준비로 바쁜 어느 무덤가에 뛰어들었다. 살아서 흩어졌던 피붙이들이 헤어지지 말자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 아래 여러 봉분 사이로 야생화가 퍽 다양했다. 지하로 가는 통로인 듯 구슬붕이, 무덤 봉우리엔 노란 솜방망이, 할미꽃, 쥐오줌풀 등등. 그중에서도 나를 단박에 바닥으로 쓰러지게 만든 건, 아주아주 희귀한 대성쓴풀이었다. 손가락만 한 키이지만 네 장의 야무진 꽃잎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담고 있는 대성쓴풀. 굳이 입에 넣지 않아도 이름에서부터 쓴맛이 왕창 풍겨 나오는 대성쓴풀. 멸종위기 2급, 용담과의 여러해살이풀. (그림ⓒ이해복)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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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한 마리 날아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한반도를 엄습했던 전쟁의 공포를 생각해보면 불과 일 년 만에 천지개벽할 소식이 줄을 잇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야당이 선거 전략을 비롯해 당의 정체성까지 고심하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런데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당 대표라는 중임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 연일 구설에 오르고 있다. 지난 5월2일 창원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지방선거 필승결의대회에서 홍준표 대표는 손팻말 시위를 하던 이들을 보고 “창원에는 원래 빨갱이가 많다”고 발언해서 또다시 막말이 화제에 올랐다. 홍 대표의 창원 빨갱이 발언을 접하자 예전에 읽었던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1958년 9월15일자 경향신문 1면에는 ‘왜 국민을 억지로 공산당으로 만드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이 게재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설이 게재되었던 이유는 당시 삼천포 전 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극우 인사 사백삼십팔명이 자유당 중앙당부와 대법원에 “삼천포 오만여 시민 중에 그 팔할(八割)에 해당하는 사만여명이 적색분자”이고, “민의원 이재현씨는 현재 자유당에 입당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진보당원”이며 “삼천포는 불원간 ‘제2의 모스크바’가 될 듯하니 이들을 조치하여 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사천시의 일부가 되었지만, 삼천포는 고려 성종 때 조세미를 수송하는 조세창(漕稅倉)이 설치되면서 항구로 발전했다. 1931년 사천군 삼천포읍이 되었지만, 인근의 사천군, 고성군, 남해군보다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시 승격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1956년 당시 자유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정갑주(鄭甲柱)는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삼천포를 어렵게 시로 승격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2년 후인 1958년 5월2일에 치러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는 이재현 당시 무소속 후보에게 밀려 5827표를 얻는 데 그쳐 2위로 낙선하고 말았다.

당시 경향신문은 “도대체 삼천포는 대한민국이 아니란 말인가. 대한민국 정부의 통치 아래 있는 한 도시 시민의 팔할이 공산당이라고 하면 그 도시를 다스리고 있는 행정기관은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이런 사건이 발생한 이유가 사실은 “삼천포 시민들이 자유당의 공천자를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되묻고 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는 굳이 따져 묻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분단과 6·25전쟁을 거치며 한반도에서 보수정치세력이 정권 안보를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왔던 한마디가 바로 ‘빨갱이’라는 호명이었다. 이것이 중세의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는 까닭은 고발하기는 쉽고 변호하기는 어려워서 부당한 권력이 사회를 통제하는 데 언제나 유용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은 한편으로 남한의 우월성과 체제경쟁 승리를 자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이 이념적으로 취약하다며 위기의식을 부풀려왔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는 모호한 존재들을 색출해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보낸 세월이 70년이다. “창원에는 원래 빨갱이가 많다”란 발언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닌 까닭도 거기에 있다. 이제 선거에서 패배라도 하면 다른 정당을 지지한 국민들은 죄다 빨갱이가 될 판이다. 오늘날 홍준표 대표로 상징되는 한국 보수진영의 자화상은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퇴행을 거듭하여 큰 틀에서나마 생존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어느덧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조차 진부하게 들리는 시대다. 지난 세기말 베를린 장벽에서 시작한 냉전 해체의 바람이 거의 30년의 세월이 걸려 이제야 극동(極東)의 판문점에 이르고 있다.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은 물론 한반도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시대,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보수의 참모습이라면 지금이야말로 그런 보수가 필요할 때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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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시민들이 불안을 느꼈던 위험요소 중 으뜸은 미세먼지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남녀 3839명을 대상으로 각종 위험에 관한 불안수준을 측정했더니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오염’이 가장 높은 3.46점(5점 만점)을 기록했다. ‘경제침체’(3.38점), ‘북핵’(3.26점), ‘고령화’(3.31점), ‘지진’(2.73점)을 크게 웃도는 수치였다.

4월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미세먼지 속 마라톤을 중지해야 한다는 기자회견과 함께 미세먼지 속에서 마라톤을 하다 쓰러지는 퍼포먼스를 하고있다. 연합뉴스

조사가 진행된 2017년은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잇단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한반도가 전쟁위기 국면에 빠졌던 해다. 게다가 2016년 경주에 이어 지난해 경북 포항에서도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하는 등 자연재해가 잇달았다. 그러나 시민들은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위기와 빈발하는 지진 등 자연재해보다 미세먼지를 더 심각한 위험요소로 꼽았다. 2016년 이후 미세먼지 증가현상이 나타나고, 이를 둘러싼 오염원 논쟁 등이 이어지면서 불안감이 확산됐다. 북핵이나 자연재해가 잠재적인 위험요소였다 해도 매일매일 숨 쉴 권리까지 위협하는 미세먼지야말로 가장 심각한 불안요인이라는 절박감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2060년 한국의 대기오염 조기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100만명당 1000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치도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늘 중국 탓으로만 돌렸던 미세먼지 책임론이 1~2년의 논쟁 끝에 국내외 복합적인 요인으로 정리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아직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사회시스템도, 시민의식도 부족하다. 여전히 ‘중국발 몇%, 국내요인 몇%’ 등 숫자 타령에 품을 들이고, 마스크 착용과 외부활동 금지 등의 초보적인 대책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어린아이나 노인들에게 미세먼지가 더 위험한지, 혹은 마스크 착용에 따른 산소부족과 호흡곤란이 건강에 더 해로운지 제대로 검증해보지도 않았다. 1년에 단 며칠인 미세먼지 고농도일의 일평균 값을 낮추기보다는 연평균 값, 즉 평상시 농도를 낮추는 것이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률 감소에 6~10배가량 효율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예컨대 고농도일의 강제 차량 2부제도 단기대책으로는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평상시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만드는 근본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2040년까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차량을 퇴출하겠다는 영국과 프랑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시민들도 당국의 정책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미세먼지 저감효과가 적다 하더라도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면 시민도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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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한 사건의 재조사 여론이 커지고 있다. 종업원 일부가 JTBC 인터뷰를 통해 “전원이 자유의사로 탈북해 남한에 들어왔다”는 정부 설명을 뒤엎는 증언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여종업원 12명을 데리고 온 중국 저장성 북한 류경식당 지배인 허강일씨는 “2014년 말부터 국정원의 정보원이 돼 1년여간 각종 정보를 넘겨오다 들통날 위기에 처해 국정원 직원에게 귀순을 요청했다”며 “그런데 국정원이 ‘종업원까지 다 데리고 들어오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2016년 4월 중국 저장성 북한 식당에서 집단 탈북한 종업원 13명이 서울에 도착해 경기 시흥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이들의 기획탈북설 논란이 제기되자 통일부가 입국 경위 등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 제공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널 기다리신다. 무공훈장을 받고 국정원에서 같이 일하자’고도 했다고 주장했다. 인터뷰에 응한 4명의 여종업원은 “지배인이 며칠 전부터 숙소를 다른 데로 옮긴다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며 “말레이시아 한국 대사관에 도착해서야 한국에 가는 것을 알았다”며 남한행은 물론 탈북 계획조차 몰랐다고 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여종업원들은 자유의사가 아니라 ‘약취·유인’을 당해 남한에 들어온 셈이다.

이 사건은 발표 당시부터 의문투성이였다. 탈북민의 제3국 경유 입국이 보통 한달 걸리는데 단 이틀 만에 입국한 것이나, 정부가 비공개 관행을 깨고 사진까지 제시하며 입국사실을 발표한 것을 두고 ‘총선용 기획 탈북’설이 제기됐다. 방송 인터뷰는 이런 의혹을 뒷받침해준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14일 “북한 여종업원의 집단 탈북을 국가정보원에서 기획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박근혜 정부의 이병호 국가정보원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민변은 “선거 승리를 위해 종업원들과 가족들의 인권을 짓밟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를 은폐하고 방치한 불법행위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일부만 북한으로 돌아가면 남한에 남는 종업원들의 가족이 고초를 당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물론 그런 우려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사건을 묻어두는 것은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행위를 알고도 방치하는 셈이 된다. 정부는 먼저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종업원들의 거취는 그런 다음 지혜를 모아 해법을 모색하면 될 일이다. 북한 주민이라고 해서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당해선 안된다. 이 문제는 남북관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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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변형식품(GMO) 완전표시제 도입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8일 ‘GMO 완전표시제 시행을 촉구한다’는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어서자 “물가 인상이나 통상마찰 등이 우려된다는 의견이 있어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GMO 표시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경실련·소비자시민모임·아이쿱생협활동연합회 등 5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GMO 완전표시제 시민청원단’은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GMO 표시 강화에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아이쿱생협 회원과 농민들이 지난 4월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 열린 집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GMO 표시제 강화’ 공약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GMO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GMO 생산국이자 수출국인 미국은 물론 호주·일본 등도 완전표시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유럽은 수입 농산물에 포함되는 GMO의 비의도적 혼입률을 0.9%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도 GMO 표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2월 ‘유전자변형식품의 표시 기준’을 개정해 GMO 표시 범위를 확대했다. 하지만 DNA나 단백질 구조가 완전히 파괴된 가공제품은 GMO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규정을 뒀다. 게다가 GMO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Non-GMO’나 ‘GMO-Free(GMO 없음)’ 표시를 할 수 없도록 했다. 시민단체들이 식약처가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유명무실한 ‘짝퉁 GMO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한국의 GMO 수입량은 세계 최대 수준이다. 연간 수입량이 1000만t에 달하고, 200만t이 식용으로 쓰인다. 국민 1인당 연간 40㎏이 넘는 GMO를 먹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입 물량의 대부분이 콩·옥수수 등이고, 간장이나 식용유 등의 식재료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인의 밥상에 거의 매일 GMO가 오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GMO의 인체 유해성 여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안전성 논란이 GMO 완전표시제 도입을 미루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알권리 보장을 위해서라도 GMO 완전표시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시민 의견이 72%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GMO 완전표시제는 원산지 표시제처럼 기본적인 식품 안전표시 제도다. 정부는 식품 안전에 대해서는 늑장 대응보다는 선제적 대응이 낫다는 것을 명심하고 GMO 완전표시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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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역사적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분열과 적대의 70년을 뒤로하고 항구적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정말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 곳곳에는 분단체제에 기생하여 색깔론 따위로 이득을 얻어 왔던 세력들이 여전히 강고하게 똬리를 틀고 앉아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과연 이 새로운 시대를 제대로 맞이할 수 있는 내적인 문화적 역량을 가지고 있기는 한지 참으로 걱정이다.

한반도 전체에는 평화체제가 도래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는 적대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는 이질적인 것들의 상생적 공존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의 문제를 아직 충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오랜 분단체제 때문에 그동안 ‘타자’를 포용하지 못하고 배제하며 혐오하고 적대하기까지 하는 ‘전쟁문화’가 아주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단지 이념뿐만 아니라 지역, 계층, 젠더 등을 둘러싸고서도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냉전적 유형의 갈등이 일상이 되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제대로 된 정착을 위해서라도 이런 ‘우리 안의 냉전’부터 극복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이 서로 갈등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민주주의와 정치의 영원한 본성에 속한다고 해야 하고, 지역, 계층, 젠더 등의 차이를 둘러싼 불협화음도 어떤 사회에서든 있을 수밖에 없다. 존재하는 갈등을 억누르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그런 갈등의 불가피성을 수용하고 인정하면서 그것이 모두의 공멸이 아니라 상생과 번영으로 이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이다.

마키아벨리의 구분을 빌리자면, 사회적 갈등은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만 끝까지 관철시키려 드는 ‘투쟁’이 아니라 모두의 이익과 관점이 반영된 공동의 삶의 질서를 낳을 수 있는 ‘논쟁’이 될 때 공동체의 번영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이런 논쟁의 가장 기본적인 규범은 공정성과 상호존중이다. 누구에게든 틀리더라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상대를 타도해야 할 적이 아니라 단지 생각과 처지가 다른 동반자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공동의 삶의 틀 자체를 깨지 않는 한 그 어떤 이견이나 차이도 존중하고 상대를 폭력적 절멸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포용의 원칙’으로 이어진다. 그런 바탕 위에서만 갈등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제1야당 대표라는 인사가 바로 이런 규범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빨갱이’ 같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배제의 정치를 선동하고 있다. 그런 관용의 규범은 사실 이 당이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적 관용의 체제는 그런 불관용을 선동하는 행위를 단호하게 불관용할 때에만 유지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이런 당이 더 이상 설 곳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선일보는 검인정 역사교과서 서술 지침을 놓고 또 케케묵은 이념시비를 걸고 있다. 이렇게 특정 진영이 ‘유일하게 올바르다’고 여기는 역사관만 미래 세대에게 전수해야 한다는 발상 역시 그 규범을 부정한다. 이 때문에 진보 쪽에서 또 다른 올바른 역사관을 내세우며 맞서는 것은 옳지 않다. 가령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로 할지 아니면 건국일로 할지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합리적인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분명하다.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에서도 역시 논쟁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독일의 좌우 정치진영이 소모적인 이념 논쟁 너머에서 미래 세대가 올바른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정치교육’을 하자면서 이끌어 낸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핵심 원칙이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이런 의견도 있고 저런 의견도 있다, 근거는 각기 이러저러하다, 옳고 그름은 학생들이 스스로 따져서 판단하라, 바로 이런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자는 것이다. 이런 ‘논쟁성의 원칙’으로 이제 무의미한 ‘역사전쟁’을 끝내야 한다.

민주주의를 단순히 다수결주의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승자독식의 원리를 따르는 다수결은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시간적 제약 등에 따른 실용적 필요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지 그 자체로 민주주의는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다수결주의 너머에서 사회를 통합시킬 수 있는 심층 합의가 필요하다. 그동안의 반공안보체제는 우리 사회가 민주화 이후 30년이 넘도록 포용의 원칙 같은 가장 기본적인 다원적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합의조차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게 했다. 이제 바로 그런 합의를 이룰 때가 되었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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