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감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말 예비회계감사를 한 데 이어 25일부터 본감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잡음으로 얼룩진 인권위가 감사 대상에 오른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현 정부 최악의 실정 중 하나로 ‘식물 인권위’를 꼽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다.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은 어제 출간한 <좌우지간 인권이다>라는 제목의 책에서 인권위 추락 과정을 상세하게 담았다. 이 대통령이 취임 후 단 한 차례도 인권위 업무보고를 받지 않았을 정도로 무관심했다고 돼 있다. 안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부터 인권위를 눈엣가시로 여겼다”면서 “인권위가 촛불집회 진압 과정에 공권력의 인권침해를 지적한 게 보복조치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DB)


이번 인권위 감사는 ‘정권 눈치보기’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인권위에 대한 경고음을 무시해온 감사원이 정권 말에 느닷없이 감사에 나선 것은 스스로 부끄러워할 일이다. 현병철 위원장 취임 후 인권위는 거의 만신창이가 됐다. 최근 나온 민간인사찰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만 봐도 그렇다. 2010년 12월 민간인 사찰에 대한 진정을 뭉갰다가 ‘뒷북조사’에 나선 뒤에도 조사결과 발표를 계속 미적거려 왔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4년이 지났지만 그 흔한 보고서 한장 채택하지 못한 채 정권 눈치만 봐온 게 인권위의 실상이다. 감사원은 늦긴 했지만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인권위의 구조적인 병폐와 개선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인권위 위상 회복은 미룰 수 없는 차기정부의 중요 과제 중 하나다. 그러나 새 정부 인권정책에 대해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많은 게 현실이다.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도 이 대통령과 함께 현 위원장의 연임을 묵인 또는 방조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인권위가 차기정부의 인권과제를 전달하는 과정에 “당선인의 공약과 일치하는지 검토해야 한다”며 ‘공개 유보’를 요구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인권 문제는 여야와 이념을 떠나 거스를 수 없는 국제적인 흐름이다. 한국이 인권 후진국이라는 국제사회의 조롱은 이명박 정부에서 끝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현 위원장 체제의 독단을 청산하고 독립성이 보장된 인권위 위상을 복원해야 할 중책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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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4인조 그룹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씨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방송·가요계를 비롯해 많은 팬들이 젊은 스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특히 고인이 지난달 4일 트위터를 통해 남긴 마지막 글에는 딸의 백일잔치를 손꼽아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 담겨있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33세로 생을 마감한 고인은 울랄라세션을 결성해 활동하다 2011년 11월 Mnet 오디션프로그램 <슈퍼스타K 3>에서 우승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14주의 혹독한 오디션을 통과한 울랄라세션은 리더 임윤택씨가 위암 말기 투병을 하면서 오디션에 임하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청자들과 누리꾼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았다. 울랄라세션은 신중현의 ‘미인’, 이승철의 ‘서쪽 하늘’, 박진영의 ‘Swing Baby’ 등을 뛰어난 가창력과 독특한 퍼포먼스로 선보이며 인기를 독차지했다. 특히 암과 싸우던 임윤택씨는 꿈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희망과 긍정의 아이콘으로 사랑받았다. 투병 중이지만 지난해 첫 앨범 <울랄라 센세이션>을 출반했고 드라마 <각시탈> OST와 CF까지 섭렵했다. 자전에세이집 <안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를 펴내고 결혼식을 올리는 등 삶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슈퍼스타 K 3의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 씨 (경향신문DB)


희망전도사가 된 그는 음악활동 외에 강의와 암환자 수술비 지원 등으로 많은 암환자들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임윤택 위암 거짓말’ 등 인격모독성 댓글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동정 얻어 우승했나” “위암이라면 그렇게 움직일 수 없다” 등 악성 댓글에 고인은 “내가 아픈 걸 인증해야 하는 게 슬프다”며 위암 4기 진단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주치의도 투병사실을 밝혔지만 악플러들은 그것조차 “거짓”이라고 공격했다. 그가 사망한 지금도 악성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도를 넘어선 악플러들의 행위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그를 괴롭히고 학대한 건 악성 종양이 아니고 악성 루머였다. 위암 말기에도 희망을 놓지 않고 긍정의 에너지를 전했던 그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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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어제 기어코 핵실험을 단행했다. 2006년 10월 첫 실험 이후 세번째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핵실험에서 폭발력이 커지고 원자탄의 소형화, 경량화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핵억제력이 다종화됐다고도 강조해 종전에 실험했던 원자탄과 다른 형태의 실험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중앙통신은 핵실험이 ‘나라의 안전과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실제적 대응조치의 일환’이라는 억지논리를 펼쳤다. 하지만 북한이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자기파괴적인 오판일 뿐이다. 북한의 안전과 자주권을 지키기는커녕 한반도 거주민의 안전을 볼모로 벌인 또 한번의 정치적, 군사적 도박에 지나지 않는다. 한·미연합군사령부는 북한의 추가 군사도발에 대비해 대북정보 감시태세인 워치콘을 3단계에서 2단계로 격상했다. 남북의 군사적 대치가 계속된다면 한반도는 상시적인 위협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 1차적인 책임은 핵실험 결정을 내린 김정은 정권에 있다는 명백한 진실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앞세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은 이번 실험으로 전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북한은 이번에도 미국의 ‘적대시 정책’ 탓이라는 낡은 주문을 들이댔지만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대량살상무기 개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세습정권의 영속성을 보장받는 한편 동북아의 군사적 강국 지위를 확보하려는 정치적, 군사적 목적이 앞선 것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핵·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을 확보한다고 지역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1998년 핵실험 이후 비공식 핵보유국이 된 뒤 100여개의 핵폭탄을 확보한 것으로 분석되는 파키스탄이 진작 서남아의 강국이 됐어야 했다. 북한은 파키스탄이 오히려 정국 불안으로 기껏 보유한 원자탄을 안전하게 관리할 능력조차 의심받는 신세로 전락했음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진정한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비대칭 군사력뿐 아니라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주민이 여전히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만성적인 영양실조를 겪고 있는 궁핍한 상황을 허위허위 이어가면서 강성대국을 주장하는 것은 허황되기 그지없는 정치선전일 뿐이다. 유엔 안보리는 이미 대북 제재결의 2087호에서 명시한 추가 제재 수순을 밟게 될 것이 분명하며 그 이행과정에서 부수적인 피해를 입는 것은 고스란히 북한 주민들일 수밖에 없다. 북한은 핵 보유국의 지위를 갖고 미국과 비핵화 회담이 아닌 군축회담에 나설 요량일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오판이다. 북·미 대화를 시작으로 언젠가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이 참가하는 평화회담의 멍석이 깔리더라도 국제사회는 핵을 가진 북한을 결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주권도 지나치면 망상이 된다.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되기 전에는 한반도 비핵화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북한은 국제사회의 이단아로 남을 뿐이다.


김관진국방장관과 성 김 주한미대사 공조논의 (경향신문DB)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초래한 상황은 엄중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북핵 문제의 평화적, 외교적 해결을 더욱 절실하게 고민해야 한다. 북한의 오판이 결국 지금까지의 핵실험보다 더욱 심각한 위협을 제기했지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안보리는 어제 긴급회의를 소집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대처 수순에 돌입했다. 회담을 위한 회담도 무용하지만 제재를 위한 제재 역시 북핵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출발점이 될 수 없다. 한국과 미국 및 국제사회가 이번 핵실험을 계기로 최악의 상황에라도 이른 듯이 과잉대응한다면 되레 상황을 덧나게 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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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천 | 홍익대 BK 연구교수


 

연초부터 유명 여배우가 카드 광고에 등장해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을 건넸기 때문이었을까? 지난 2002년은 부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사방에 넘쳐났다. 하지만 아버지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은 줄어들고 있었다. 한·일 월드컵부터 16대 대통령 선거까지 한국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하지만 그 열기가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실제로 그해 출생인구는 49만명이었다. 외환위기 전후로 출생인구는 60만명대로 주저앉았고 2001년에는 55만명으로 급속히 감소하더니, 2002년부터는 줄곧 40만명대 중·후반을 유지했다. 집값이 폭등했던 2005년의 43만명이 이 시기 최저 기록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에 태어난 이들의 부모 상당수가 1970년대생이었다는 사실이다. 1970년과 71년에 각각 100만명 넘게 태어나 제2차 베이비붐의 정점을 찍었던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저출산의 포문을 연 셈이다. 고도성장기에 태어나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이른바 ‘신세대’들이다. 


MBC TV,후지TV가 한일 공동기획한 다큐멘터리 '베이비붐 세대, 1천5백만명의 출발' (경향신문DB)


하지만 이들이 30대의 나이에 맞이한 21세기는 사회적 이동의 사다리가 자취를 감추던 시점이었다. 이들은 저성장과 저금리 사이에 낀 채로 비정규직 노동의 증가와 아파트 가격의 폭등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중산층 진입은 요원한 일이었고, 따라서 이들이 부모가 되길 꺼린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지금 잠복해 있는 저출산 문제가 쓰나미처럼 사회 전반을 휩쓸기 시작하는 시점은 언제쯤일까? 저출산 시대에 태어난 첫 세대가 대학에 입학하고 그 부모들이 50대에 진입하는 시점, 즉 2021년이 아닐까? 그 시점이 되면 전국의 대학들은 입학생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혹독한 구조조정의 시련을 견뎌내야만 한다. 유명 대학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그에 대한 대비에 들어간 모양새다. 그들이 선택한 생존전략의 핵심은 ‘진학률 극대화’ ‘등록금 인상’ ‘해외 수요 발굴’ 등의 바탕 위에 기업화된 ‘선진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교육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내세웠지만, 외환위기 직전 국내 대기업들의 세계화 전략을 고스란히 모방한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고, 몇몇 사립대학은 적지 않은 적립금을 모을 수 있었다. 제1차 베이비붐 세대의 중산층 부모들이 자산 소득이나 노후 대비 자금의 일부를 떼어내 자녀의 값비싼 등록금을 납부해준 덕분이었다.


그런데 2021년에도 이런 전략이 유효할까? 대학은 입학 인원만이 아니라 대학 진학률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부모의 자산을 증여받지 못한 1970년대생의 태반은 세입자거나 하우스푸어인 상황이다. 과연 그들의 처지가 자녀 등록금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호전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대학을 들쑤신 ‘인구 감소의 쓰나미’는 다음 행선지로 어디를 택할까? 2022년의 대통령 선거가 아닐까 싶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에 20대가 약 682만명, 30대 801만명, 40대 853만명, 50대 742만명, 60대 이상이 824만명이었다. 그리고 2022년에는 20대가 650만명, 30대 680만명, 40대 789만명, 50대 845만명, 60대 이상이 1298만명이 될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가 보여주듯이, 2022년 대통령 선거의 승패 역시 특정 세대의 유권자 수에 의해 판가름날 공산이 매우 높다.


한편 ‘인구 감소 쓰나미’의 대선 이후 이동 궤적을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저출산 세대의 생애주기에 맞춰 내수시장, 노동시장, 주택시장 등을 차례대로 들락거리며 사회 전반을 뒤흔들 테니까 말이다. 바야흐로 문학평론가 복도훈의 표현처럼 “인구가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일까? 씁쓸한 이야기지만, 2021년까지는 8년이 남았다. 대비책을 준비하기엔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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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금이 천차만별이다. 최고 104만원부터 최저 2만원까지 무려 52배의 차이가 난다. 입학금을 받지 않는 한국교원대, 광주가톨릭대, 인천가톨릭대를 포함하면 격차는 더욱 커진다. 11일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전국 199개 대학의 입학금을 조사한 결과 2012학년도 대학별 입학금의 경우 국공립대는 최고 40만2000원, 최저 2만원으로 약 20배의 차이를 보였다. 사립대는 최고 104만원, 최저 15만원으로 7배의 차이가 났다. 특히 입학금이 104만원으로 가장 비싼 고려대는 서울시립대 인문사회계열 한 학기 평균 등록금인 102만2000원보다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대부분의 대학들은 대학 등록금과 별도로 내야 하는 입학금의 지출내역이나 산정기준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어 학생과 학부모의 불신을 사고 있다. 등록금의 10~30%로 책정되는 입학금은 입학식 비용, 신입생을 위한 안내 행정비, 안내서 제작비 등에 한정되기 때문에 수십만원씩 책정해야 할 명분이 부족하다. 입학금을 받지 않는 대학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측은 “교육과학기술부령인 ‘대학 등록금에 관한 규칙’ 제4조 제4항에 ‘대학 입학금은 학생의 입학 시에 전액을 징수한다’고만 명시되어 있을 뿐 대학 입학금 성격과 징수목적, 산정근거 등에 대한 기준이 전혀 없어 대학들이 마음대로 책정한다”고 지적했다.


20010404000194 분류 사건.사고 제목 등록금 인상반대 호수속 시위 (경향신문DB)


그동안 일부 대학은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하는 대신 책정기준이나 지침이 없는 입학금을 인상하는 꼼수로 잇속을 채웠다. 대학 등록금을 인상할 경우 재학생들의 반발을 사기 쉽지만 입학금은 대학 초년생인 신입생들이 한 번만 내는 금액이어서 큰 반발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수도권 대학 입학금은 지난 5년 동안 평균 24.1% 인상돼 5년간 물가상승률 15.2%의 1.6배에 달한다. 올해도 일부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 대신 입학금이나 대학원 등록금을 올리는 등 편법인상을 감행할 것이 예상된다. 


한 해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대학들은 학교별로 50배 이상 차이 나는 입학금의 용도를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공개해야 마땅하다. 반값 등록금의 실현과 대학회계의 투명성 강화 차원에서도 입학금 집행에 대한 근거가 제시돼야 하고, 최소한의 입학금만 받아야 할 것이다. 입학금과 등록금 등 학생들의 납입금을 불투명하게 운용하는 대학에는 정부가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와 대학 당국은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입학금의 폐지 여부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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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논설위원


 

전국 3641곳에서 복무하는 현직 우체국장과 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되는 전직 우체국장, 나아가서 4만5000여 우체국 ‘직원’과 30만 퇴직 우정인(郵政人)에게 먼저 양해를 구한다. 어쩔 수 없다. 아주 오래된 농담 가운데 하나인 ‘술자리 우체국장’을 들먹이지 않고는 아무래도 얘기를 풀어나가기 어려워서다. 박근혜 행정부의 새 틀을 짜기 위한 정부조직법 논의를 보면 볼수록 그렇다. 술잔이 비어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돈(이권)이나 힘(권력)이 없는 자리라는 풍자로 이해되지만 나는 좀 다르게 보려고 한다. 우체국장이 왜 술자리에 끼었는지부터 먼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자리를 빛내거나 구색을 맞추기 위해 꼭 있어야 할 요소, 즉 대민 서비스 기능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체국이 권력기관이나 이권부서가 아니라 대민 서비스 기관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지난해 디자이너 이상봉씨가 집배원복을 디자인하면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가 다른 일이나 작품을 젖혀놓고 돈도 되지 않고 빛도 나지 않을 것 같은 집배원복 디자인에 비중을 두는 까닭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집배원은 소방관과 더불어 세계 어디를 가든 국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직업인이다. 그들이 입을 옷을 만드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이다.” 실제로 우편서비스는 ‘한국산업의 고객만족도(KCSI)’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14년 연속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기관장 술자리 서열이 대민 서비스가 아니라 권력이나 이권의 무게로 정해진다는 데 있다. 정부조직 개편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우정 서비스 기관은 늘 초대는 되지만 잔이 채워지는 법이 없다. 체신부에서 정보통신부·지식경제부 등으로 소속만 바뀔 뿐 규모나 기능에 걸맞은 조직체계는 부여받지 못했다. 이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우정사업본부를 미래창조과학부 소속으로 옮기는 데만 치중했지 우정청 승격과 같은 속 깊은 검토는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왕 미래창조과학부에 배속한 이상 우정사업본부를 그야말로 미래적이고 창조적으로 재설계하는 게 좋을 것이다. 새 정부의 국정 모토인 ‘국민행복시대’에 적합한 조직으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강조한 ‘안전’ ‘복지’ ‘일자리’ 등과 관련한 강력한 인프라가 우정 조직 속에 숨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 관악우체국 백현호 집배원이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다. (경향신문DB)


1만7000여명의 집배원은 대도시에서 도서벽지까지 매일 우편물을 배달하는 대민 접촉의 첨병이다. 어느 집 개가 강아지를 몇 마리 낳았는지 알 정도로 지역 사정에 밝고,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일도 잦다. 응급환자·산불·범죄 등을 만나 불행을 막은 이들의 미담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복지는 제도만이 아니라 전달체계도 제대로 갖춰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우편뿐 아니라 사회복지 전달자로서 집배원의 역할을 새롭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우정 종사자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우체국은 전국에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금융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특히 금융 접근성이 열악한 농어촌과 도시 서민의 금융 창구가 돼왔다. 점포의 93%가 도시에 집중된 일반 은행과 달리 우체국은 55%가 읍·면 단위에 설치돼 있다. 금융 소외는 가족을 절망에 빠뜨릴 뿐 아니라 자살에서 ‘묻지마 범죄’에 이르기까지 사회 불안의 중요한 원인이 된 지 오래다. 우체국은 지역의 금융소외자 현황을 잘 파악하고 그들의 자립·자활을 돕는 방법을 찾고 사후 관리까지 할 수 있는 최적의 기관이 될 수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주장이다. 농어촌 주민과 도시 서민을 대상으로 보편적 보험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우체국보험도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지금의 우정사업본부 체제는 이런 ‘미래창조적 기능’을 살리기에는 부적합하다. 이제까지 인사와 재정 등은 상급기관인 지식경제부, 우편요금은 기획재정부, 금융은 금융감독원, 택배는 국토해양부의 정책에 구속되는 식이었다. 세종시·별내·송도 등 신도시가 생겨도 집배원은 제대로 늘릴 수 없는 구조이고, 우편물은 감소하지만 배달 여건은 그 몇 배로 어려워지는 환경 등이 집배원들을 세계 최장시간의 격무로 내몰고, 우정 조직을 최대 규모의 비정규직(8600여명)을 고용한 국가기관으로 만들었다. 이는 뒤집어 생각하면 ‘박근혜노믹스’의 핵심인 일자리 창출의 보고라는 말도 된다.


우리는 시장의 힘이 커지면서 국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약화되는 걸 보았다. 그 사이 양극화는 심화되고 정부의 역할과 공공성 회복이 새로운 과제로 대두하기에 이르렀다. 우정 부문은 그런 흐름을 잘 반영하고 있다. 많은 나라가 민영화를 시도했다가 불구의 조직만 남겨놓고 실패했고, 민영화 후 정권교체까지 겪었던 일본은 다시 공사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체국을 미래창조적인 눈으로 새롭게 볼 필요가 있는 까닭은 그것이 공공성과 보편적 서비스를 살릴 수 있는 최적의 국가기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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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 동화작가



누군가 일을 그르쳤을 때, 너그러운 사람들은 그 잘못을 감싸주느라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래도 열심히 하잖아.


그래서, 열심이라서 그런 만큼 일을 더 심각하게 그르칠 수도 있다. 가만히나 있으면 어쩐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말하면 성과주의라고 비판받을 수 있을 테지만, 우리 앞에 엄청난 증거가 있다. 그 ‘열심’ 덕분에 4대강은 만신창이가 됐다. 허공으로 날려버린 수많은 공약들처럼, 4대강에 대해서도 마냥 게으름을 피워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4대강을 그야말로 ‘열심’히도 파헤쳐 놓았다.


그리고 그 강줄기 옆으로 나란히 자전거길까지 닦았다. 강물은 썩어가고 강의 생명들도 죽어가는데, 그런 풍광을 감상하며 달리라고 길까지 닦아놓은 것이다. 죽을 만큼 패놓고 어여쁘게 꽃단장시켜준다는 할리우드 영화급 변태남의 행각을 닮았다. 그런 길이 이제 곧 삼천리가 되게 생겼다. 아라, 한강, 남한강, 새재, 낙동강 자전거길을 합한 이른바 국토 종주 자전거길만 해도 무려 600㎞가 넘는다. 지난해 말에는 북한강 자전거길도 새롭게 개통됐다. 여기에 더해, 섬진강과 동해에도 기나긴 자전거길이 생길 계획이란다.


그러나 모 방송사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전거 보급률은 12%, 그나마 그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활용하는 비율은 2%에 불과하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지 않거니와 그나마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위해 목숨 걸지 않아도 되는 환경 조성이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인적 드문 강가를 따라 자전거길을 닦아놓은 것이다.


그 자전거길이라도 활용도가 높다면 불행 중 다행이지만, 현실은 ‘불행 중 불행’ 수준이다. 단적인 예로, 자전거 동호인들은 4대강 자전거길에 대해 ‘여자 혼자는 무리’라고 말한다. 인적도 드물고 기반시설도 미비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 그토록 홍보하고 독려했건만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자전거 교통분담률은 2% 정도라는데, 4대강 자전거길의 휴가분담률(?)은 그보다 더 낮을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해, 지난 5년 동안 ‘삽질’을 했다는 뜻이다. 참 열심히도 삽질을 한 것이다. 

그것도 두루두루 열심히.


(경향신문DB)


모르긴 해도, 새 정권 역시 ‘열심’히 ‘삽질’을 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성실과 근면의 기치를 앞세운 국민교육헌장의 정신으로부터 태동한 정권이다. 삽질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전통 역시 그때부터 비롯되었다. 그때의 고속도로가 오늘날의 자전거길로 면면히 계승되었다. 건국 이래 죽 그래왔으니, 이쯤되면 일국의 전통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 정권은 대체 무엇으로 그 전통을 계승하게 될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이라는 광고 문구가 으스스하게 떠오르긴 하지만 아무튼, 부디 ‘열심’이기에 앞서 좀 따져 보기 바란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옳은 일이니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옳지 않은 일이니 그만두라고 말하기도 지쳤다. 그러니 부디, 실효성이라도 따져 보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이왕 천문학적인 돈을 들였으면, 그래도 실효성 있는 쪽으로 삽질을 하자는 얘기다. 이왕 수십억원을 들였으면, 특정 인물을 찬양하는 극소수의 방문객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애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자는 얘기다. 경제성을 최고의 가치로 신봉하는 분들이니 실효성을 따지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바야흐로 음력 설도 지나버린 명명백백한 계사년 벽두, 겨우 이런 소망을 품어본다. 

소박하다 못 해 초라한.


성격이 권력이라는 말이 있다. 언제나 제 시간에 오는 사람은 10분만 늦어도 지청구를 듣지만, 늘 1시간씩 늦어 버릇하는 사람은 ‘고작’ 30분 늦게 왔다고 칭찬을 듣는다. 그건 꼭 개인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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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이 정책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던 기초연금 공약은 차등 지원으로 후퇴했고 4대 중증질환의 100% 국가 보장 공약은 3대 비급여 항목을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 ‘말 바꾸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치권과 여론도 진보·보수 양 진영으로 나뉘어 ‘복지 강화’와 ‘출구 전략’ 사이에서 널뛰기하는 양상이다. 대선정국 최대 화두이자 새누리당 집권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박근혜표 복지’가 시작도 하기 전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안타깝고 우려스럽다.


새 정부 복지정책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소요되는 재원의 규모와 그것을 마련하는 방안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박 당선인의 복지공약의 진정성 또는 현실성 논란과도 직결되는 대목이다. 공약을 과대포장했거나 소요 재원을 과소평가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주요 일정이 폭주하는 집권 첫해에 복지제도의 새 틀과 세부 정책을 더욱 정교하게 짜는 것은 물론 기만적인 공약에 대해서는 솔직히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지난 8일 경향신문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도 복지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부담할 의향이 있다는 의견이 51.5%로 나타났고 복지공약을 수정·변경해도 괜찮다는 의견도 63.4%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쪽(36.2%)보다 많았다. 공약 이행 이전에 국민 신뢰와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기초연금,중증질환 공약 이행 촉구 (경향신문DB)


박근혜 복지공약을 흔드는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은 박 당선인 스스로에게 있다. “복지를 위한 증세는 없다”고 못박으면서 운신의 폭을 좁혔기 때문이다. 묘수를 찾으려다가는 꼼수가 나오기 십상이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추경 재원의 상당수를 국채 발행으로 충당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이 대표적이다. 당대의 복지를 위해 미래 세대에게 빚을 지우는 대규모 국채 발행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장기적인 계획이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라도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는 불가피하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복지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자 과제다. 박 당선인의 소신이기도 하다. 그 의지가 처음부터 흔들려서는 안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게 마련이다. 지하경제 등 추가 세원의 발굴, 건설·국방 등 불요불급한 예산의 절감, 부패 근절과 투명성 제고 등도 복지 확대의 원군이 될 수 있다. 부수적으로 조세·예산개혁 등도 이룰 수 있다. 복지를 위한 증세 논란은 세금이 공평하게 부과되지 않고 복지 예산이 투명하게 집행되지 않을 때 힘을 얻게 마련이다. 새 정부는 ‘박근혜표 복지’의 실현을 위해 진정성과 의지를 갖고 정도를 걷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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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파업은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이 행위는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자본주의에서 벌어질 비인간적인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반드시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마비시키고 있다. 이 법은 업주의 의사결정 자유를 저해할 정도의 공포심을 유발하는 모든 세의 규합을 ‘위력’으로 규정하고 있고, 위력을 이용해 업주의 영업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를 범죄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이나 국제인권규약들이, 그리고 아담 스미스가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인정한 취지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약자인 노동자들이 사용자를 집단적으로 ‘위협’하지 않으면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업무방해죄는 노동자담합 자체를 범죄시하고 있다. 물론 특수법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관계법령이 엄격한 절차상 내용상 요건들을 충족시키는 파업은 면책하고 있지만 현대의 복잡한 노사관계에서 그 절차와 내용을 모두 충족시키는 파업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위력업무방해죄’는 노동자단결금지죄로 기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노동조합의 쟁위행위에 대한 업무방해 위헌 소원 결정이 열리고 있다. (경향신문 DB)


실제로 산업화 시절 노동자들의 파업이 국익을 망친다고 생각한 유럽 각국들은 파업을 금지하는 법들을 가지고 있었다. 후발산업국가인 일본도 똑같은 법을 만들었고 식민지 시절 우리나라에 이 법이 그대로 이식되었다. 유럽국가들은 모두 해당 법을 폐지하였고 일본도 더 이상 노동자 탄압을 위해 이용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이 업무방해죄가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 결정을 양산하고 있다. 손해배상소송이 가능하려면 피고 행위의 불법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담합 그 자체를 행정법도 아니고 형법이 불법으로 정하고 있으니 원고가 불법성을 입증하기가 오죽 쉽겠는가. 민사재판의 판사 입장에서는 쉽게 기각하기 어려운 손배청구인 것이다. 


하지만 2011년 3월 소위 ‘철도파업’ 판결에서 대법원은 ‘위력’은 ‘사용자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행사’될 때만 위법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하였으니 판사들은 이 부분을 감안하여 노조 손배소를 다루어야 한다. 


가압류 결정도 같은 이유로 신중해야 하는데 기존의 가압류 결정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가압류는 쉽게 말해 소송 중에 피고의 자산을 동결하여 원고의 승소판결이 무의미해지는 것을 막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가압류는 첫째 원고가 승소할 개연성이 있고 둘째 혹시 패소할 경우 피고가 자산동결로 입을 피해를 보전해주겠다는 보장을 하는 경우에만 발부되어야 한다. 후자의 보장이 보통 ‘공탁금’으로 이루어지는데, 우리나라 판사들은 승소개연성에 대한 판단은 심도있게 하지 않고 피고가 공탁금만 걸면 가압류를 쉽게 발부해주는 경향을 보인다. 피고도 비슷한 금액(유체부동산은 압류금액의 80%)이 동결되는데 공평하지 않으냐는 논리인데 부자인 원고와 빈자인 피고에게는 같은 액수라도 그 돈의 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다. 당장 급여통장이 동결되어 생계를 잇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는 노동자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법치주의 발전을 이끌어온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들을 기대한다.


이와 함께 대법원에 위력업무방해죄로 계류되어 있는 소위 ‘언소주’ 사건도 하루빨리 무죄 선고가 내려져야 한다. 소비자들은 노동자들과 달리 업주가 매일 ‘출근’할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업주에게 보전해주어야 할 기대이익 자체가 없다. 철도파업 판례에 따르면 언소주 활동은 당연히 무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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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을환 | 어린이도서연구회 상임이사




도서정가제 강화를 골자로 하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소비자라면 반대하는 게 당연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 같다. 할인이 없어지면 출판사한테만 득이 되고 책 소비는 줄어들 거라고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그렇게 보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같은 소비자로서 이번 법안을 지지할 이유 또한 있다.


할인 쿠폰이나 사은품 제공, 마일리지 적립 없이 물건을 사면 속는 기분이 드는 게 정상인 세상이다. 책도 예외가 아니다. 30% 할인은 기본이고, 사고 싶은 책이 반값 할인 행사에 나오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동네서점에서 10% 적립 쿠폰 하나 받고 책을 샀다가는 바보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헌책이 아닌데 반값에 판다면 책의 질이나 출판사의 양식을 의심할 일인데, 그런 상식이 무너졌다. 책의 값어치와 가격 흥정은 별개이고 싸게 살수록 좋다는 생각이 퍼져 있는 것이다.


서울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이 부모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경향신문DB)


어린이책 분야는 더 심각하다. 어린이책은 부모들이 자녀가 읽을 것을 예상해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가 커가니 1~2년 뒤에 읽게 될 책도 구매대상이 된다. 부모들은 책 한 권의 선택보다 구색을 갖추는 데 신경을 쓴다. 조건만 좋으면 책을 무더기로 사고, 홈쇼핑에 유명 시리즈가 뜨면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그래서이다. 100권이 모두 사려고 벼르던 책은 아니지만, 일단 사두고 천천히 읽히면 된다고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히고 싶어 하는 부모들은 좋은 구매 기회로 여기나, 책을 쌓아놓고 어린이를 닦달하는 원인도 된다.


소비자의 눈에 보이는 할인만이 문제는 아니다. 출판사가 서점에 공급하는 가격도 서점에 따라, 판매방식에 따라 다르다. 반값 할인 행사에 내놓는 책은 정가의 40%에 공급하는 일도 있다. 저자도 인세 일부를 포기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인세 삭감과 마진 감소를 판매물량으로 만회하려는 전략이다. 출판사와 서점, 출판사와 저자의 ‘윈-윈’이란 시선도 있으나 고통분담인 셈이다.


모든 게 출판경기 악화 탓에 불가피하다, 버티고 봐야 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일부가 살아남는다 한들 결국 출판과 관련된 주체들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다면, 앞으로 우리 출판계가 계속 발전해나갈 수 없다. 모두에게 해로운 전략이 대안으로 통하는 지금의 할인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어서는 안된다. 새로운 생존전략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도서정가제를 할인 제도에서 자라난 관행과 거품을 정리하는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출판사와 저자의 기이한 고통분담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대량 할인 판매에 끼워 팔던 책들, 70~80% 할인용으로 제작되던 질 낮은 책들은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줄어드는 마진을 보전하기 위해 가격 인상용 개정판을 만드는 일도, 제작에 대한 투자보다 판매기법에 지나치게 관심을 쏟는 일도 줄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할인 제도로 지탱되던 책 소비가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고스란히 독자와 독서량 감소로 이어진다고만 볼 일인가.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하자. 서점에서 책을 보고 신중하게 살 책을 고르려는 독자가 늘어나는 일은 없을까. 도서관에서 책을 열람하는 사람이 늘고, 책 대출이 늘고, 비치 희망도서 신청이 늘어나는 일은 없을까. 공공도서관을 늘리고, 도서관에 자율학습석 대신 서가와 열람 공간을 늘리고, 자료 구입 예산을 늘리라고, 시민들이 목소리를 모으는 일은 없을까.


책의 장래에 대해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도서정가제 강화 법안 상정이 소비자가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우리 출판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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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 | 대구대 총장




새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여러 쟁점이 있지만, 대학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핵심 이슈는 역시 대학의 산학협력 업무를 어느 부서에 둘 것인가이다. 개편안은 미래부가 관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대학가에서는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몇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지역 산업체와 지역 대학들을 연계시키는 산학협력은 지역 대학과 전문대를 육성하고 특성화 발전을 유도하기 위한 핵심적인 정책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지역 대학을 지역 성장의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산학협력과 대학지원을 분리해서는 안된다. 예컨대 금년에 2300억원의 재원으로 추진될 산학협력선도대학사업(LINC)은 지역 대학과 지역 산업을 연계해 함께 발전시키자는 취지와 함께, 교육 체제와 교수의 역할 등 지역 대학의 체질 전반을 산학협력 친화형으로 바꿔 간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예산이 교육과정 개편, 교수업적 평가 개선, 산학협력 중점교수제 확대, 현장실습 진흥 및 캡스톤디자인 교육 강화 등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둘째, 산학협력은 제조업종의 산업체와 대학의 과학기술 학문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최근 산학협력은 대학의 이공계뿐만 아니라, 경영, 디자인, 예체능, 사회복지, 인문사회과학 등 전 학문분야로 확대되고 있으며, 그러한 추세는 정책적으로 더욱 강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전 학문분야에서 추진되는 인력양성 산학협력은 교육부의 몫일 수밖에 없다.


셋째, 산학협력을 하나의 부서가 모두 관장하는 것이 꼭 효율적일 수는 없다. 산학협력은 다차원의 영역을 포괄하는 매우 광범위한 개념으로 이미 진화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산학협력에는 인력양성, 연구개발, 기술이전 및 사업화 등의 차원들이 존재하는데, 각각은 그동안 여러 부서가 나눠 맡아 왔다. 앞으로도 인력양성을 위한 산학협력은 교육부가, 기술개발 성과의 사업화를 위한 산학협력은 과학기술 전담 부서인 미래부가 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학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교육중심 대학의 ‘인력양성을 위한 산학협력’을 미래부가 맡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미래부는 ‘수월성’을 강조하게 될 텐데, 그러면 대부분의 지역 대학들이 지원 대상에서 소외될 우려가 높아지게 된다. 


넷째, 산업교육법 역시 계속 교육부가 주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산업교육법은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전문대학, 대학 등 각급 학교의 산업교육 진흥을 위한 교육과정, 진로지도, 교원자격, 계약학과 설치, 실험실습 지원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으면서, 교육제도의 근간이 되는 법률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대학의 산학협력단 조직 역시 교육부가 관장해야 한다. 산학협력단은 대학의 다른 부서들과 연계하여 운영되는 대학조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대학에서의 인력양성을 위한 산학협력과 산학협력단 활동을 관장하고, 미래부는 그것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학협력은 지식경제-창조경제 시대의 새 인력양성 프레임과 혁신경제 패러다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산학협력은 어느 한 부서만의 관심사일 수 없다. 경제정책도 직업교육도 고등교육도 심지어 교통 정책이나 농림수산 정책도 산학협력 친화형으로 혁신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모든 부서의 정책 기획, 프로그램, 업무 평가 등 전반에 걸쳐 산학협력의 문제의식이 담겨야 한다. 그럴 경우 문제는 다양한 부서들에서 진행되는 산학협력 업무를 어떻게 기획·배치·조정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느냐는 것이다. 그 역할은 물론 미래부가 맡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미래부의 기획·조정 아래 각 부서들마다 새 시대가 요구하는 고유의 산학협력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면 된다. 따라서 인력양성을 위한 대학의 산학협력 업무는 기존대로 교육부가 관장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GM대우자동차, 고려대학교와 자동차 엔지니어링 산학협력체제 구축. (경향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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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흔히 노마드적인 삶은 현대인의 멋진 패션으로 칭송받는다. 노마드, 유목민은 어디에 정착할 수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늘 전 재산인 가축과 천막을 들고 풀을 찾아 떠난다. 풀이 있는 곳에 천막을 치고, 가축을 풀어놓는다. 자연과 벗하며, 내일 또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난다.


많은 현대인들이 유목민을 꿈꾼다. 어디론가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고 싶어 한다. 유목민의 삶과 대비되는 삶이 농민의 삶이다. 농민은 오래된 마을 안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한곳에 정착해 땅을 일구며, 마을을 만들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 이런 삶은 필연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지켜야 될 땅이 있기 때문이다. 정주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떠나려고 하는 많은 현대인들이 유목민의 삶을 꿈꾸고, 농민의 삶을 낡고 지겨운 것이라 생각한다.


유목민의 삶과 농민의 삶은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 유목민의 삶은 새로운 곳을 향해 이동하는 삶이고, 농민의 삶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는 삶이다. 당연히 어느 삶이 우월하다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유목민의 삶에 대한 칭송은 자자하다. 반면 농민의 삶에 대한 칭송은 찾기 힘들다. 오히려 낡고 시대에 뒤떨어졌다 생각한다.


기계백작에게 엄마를 잃은 철이도 불멸의 몸을 얻기 위해 ‘은하철도 999호’를 탄다. 메텔에게 승차권을 얻은 순간 철이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기계백작에게 엄마를 잃은 그 순간 철이에게 기계몸을 얻기 위한 여행은 좋은 것이었다. 왜 기계몸을 얻어야 하지? 왜 여행을 떠나야 하지? 이런 질문보다는 그저 은하철도 999호에 탑승하는 것이 선이었다. 철이에게 있어 떠나는 것은 좋은 것이고 남는 것은 나쁜 것이다.


은하철도 999 (경향신문DB)


스마트기기를 들고 한국과 파리, 뉴욕을 넘나드는 삶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좋은 유목민의 삶과 나쁜 농민의 삶을 나눈다. 그런데 철이는 진짜 기계몸을 갖기 원했을까? 메텔과 함께 은하철도 999호에 오른 철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유목민의 삶을 선택했지만 여행이 계속될수록 철이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 여행 중간에 기착한 여러 별에서 만난 쓸쓸한 이들의 얼굴을 보며 철이는 스스로를 돌아본다. 내가 왜 여행을 시작한 거지?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이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


철이는 여행을 즐기지 못한다. 낯선 여행지에 기착할 때마다 힘들어한다. 철이는 엄마와 함께 소박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기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철이는 유목민을 선택했지만 늘 농민을 꿈꾸었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유목민의 삶을 선택했지만 오로지 기계몸을 갖기 원하는 닫혀있는 마음의 철이는 여행을 즐기지 못한다. 만약 철이가 열린 마음으로 여행을 즐겼다면 어찌되었을까? 우리의 심금을 울린 걸작 <은하철도 999>는 태어나지 못했겠지만 철이의 여행은 행복했을 것이다. 새로운 여행지에 들를 때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새롭게 만난 도시와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철이의 마음은 닫혀있었다. 철이의 마음은 오로지 최종 종착지인 안드로메다에 도착해 기계몸을 얻을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그렇게 닫혀있는 마음으로 제대로 된 여행을 절대 즐길 수 없다.


유목민의 삶과 농민의 삶. 우리는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의 삶은 좋은 것이고, 그 자리에 머무르는 농민의 삶은 낡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발 더 나아가 낡은 것은 나쁜 것이라고 판단한다. 유목민의 삶과 농민의 삶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지만 우리는 버릇처럼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한다. 철이에게 유목민의 삶이 꼭 좋은 것이었을까?


문제는 삶의 양식이 아니라 태도다. 닫혀 있는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건 그저 헛된 욕망에 불과하다. 한곳에 머무르고 매번 똑같은 농사를 지어도 열려있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그는 공동체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삶의 양식과 태도 중에 더 중요한 건 태도다. 하지만 우린 삶의 양식에 자꾸 눈을 돌린다. 너는 어느 편에 서 있느냐고 물어본다. 유목민은 농민을, 농민은 유목민을 공격한다. 유목민이나 농민이나 모두 가치 있는 삶의 양식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공격한다. 자꾸 삶의 양식이 가치를 대변하게 된다. 중요한 건 태도다.


은하철도 999호를 처음 탑승했을 때 철이의 마음은 닫혀 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계속하면서 철이의 마음은 점점 열렸다. 그리하여 안드로메다에 도착했을 때 철이의 태도는 처음과 완벽하게 달라져 있었다. 철이는 기계몸을 얻었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삶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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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이번 설 민심은 씁쓸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박지성 얘기다. 차례 지내고 둘러앉아 새 정부며 부동산이며 애들 크는 얘기 다한 후에 자연스레 축구 얘기로 이어졌는데, 아쉽게도 박지성에 대한 가족 친지들의 논평은 예전만 못했다. 몇 해 전이었더라면, 그러니까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던 때의 설 민심은 이렇지 않았다. 뿌듯해서 할 얘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설은 씁쓸했다. 


박지성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마치 지구 반대편의 설을 축하하기 위한 이벤트인 듯, 이번 연휴 때 스완지시티와 퀸스파크 레인저스(QPR)가 맞붙었으나 기성용이 탄탄한 수비력으로 활약하는 동안 박지성의 이름은 계속 대기 명단에 머물러 있었다. 7년 동안 은하계 극강의 팀 맨유에서 주전급 선수로 활약했던 박지성이 리그 최하위 QPR에서는 축구화 끈을 조여보지도 못하고 라커룸으로 돌아갔다. 우리로서는 익숙지 않은 풍경이다. 


감독님 저는 언제 나가죠 (경향신문DB)


며칠 전에도 그랬다. 지난 6일 런던에서 열린 한국과 크로아티아의 대표팀 평가전 때 박지성은 QPR의 수석코치 케빈 본드와 함께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보았다.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지 2년 남짓 지났으므로 그가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설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관중석에 앉아 있는 박지성의 모습은 우리로서는 익숙지 않은 모습이다. 


팀 상황부터 여의치 않다. QPR의 해리 레드냅 감독은 전임 마크 휴즈가 영입한 그라네로 선수와 보싱와 그리고 박지성에게 벤치를 따뜻하게 하는 역할만 부여하고 있다. 홈팬들의 격렬한 야유도 좀처럼 칭찬의 함성으로 변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9일 맨체스터시티와의 홈경기 때 레드냅 감독은 박지성을 후반 43분에 교체 투입했다. 홈팬들에게 화풀이할 먹잇감을 던져준 듯했다. 엄청난 야유 속에 잔디를 밟긴 했으나 박지성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QPR 동료들은 일부러 패스를 하지 않았다. 박지성이 공을 잡으면 홈팬들의 야유가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한 동료들의 배려라고 나는 생각한다. 


박지성은 올해 32살이다. 아직 현역 생활을 2~3년 더 소화할 수 있는 나이다. 대표팀 은퇴선언 이후 박지성은 프리미어리그에 집중했고, 비록 QPR로 이적한 후 시련을 겪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가까운 시일 안에 완전히 은퇴할 상태까지는 아니다. 아마도 이번 시즌을 끝으로 QPR 생활을 끝내고 다른 팀에서 한두 시즌 더 뛰게 될 것이다. 


그 이후, 박지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언젠가 은퇴할 것이다. 어쩌면 여러 상황 때문에 그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 그의 무릎과 발목 상태는 오래전부터 악화되어 있었다. 그가 대표팀 은퇴를 결심한 데는 거의 시간 단위로 측정하고 분석한 맨유 의료진의 면밀한 데이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데이터는 QPR 이적이라는 야속한 결정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니 박지성이 언제까지 가히 육박전에 가까운 잉글랜드 축구의 한복판에 서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날이 온다고 해서, 나는 박지성이 완전 귀국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박지성이 오랫동안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 축구의 한복판에서 활동하기를 바란다. 물론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국내 프로팀의 코치로 크게 조력할 수 있고 조금 더 내실을 충만한 후 언젠가 대표팀을 지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국내로 복귀하는 것보다 유럽 축구의 한복판으로 계속 진입하기를 더 원한다. 


이동국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하던 시절의 박지성을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는 아직 고교생 같은 선수’라고 기억한다. 당시 그는 ‘기량이 뛰어난 것 같지’ 않았고 ‘천재형 선수’가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작은 패스 미스조차 없이 부지런히 공간을 찾아 움직이던 선수라고 그는 기억한다. 이동국에 따르면, 박지성은 묵묵히 자기 목표를 정해 정진하는 선수였고 일어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 위해 축구 훈련 이상으로 노력했으며 마침내 ‘성실함이라는 재능의 극한’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천성과 자질을 가진 박지성이라면 앞으로 유럽 축구의 한복판에서 충분히 활동할 수 있다. 언젠가 은퇴하게 되면 그는 높은 차원의 코칭스쿨을 연마할 필요가 있고 나아가 국제축구연맹이나 유럽축구연맹이 주관하는 고도의 스포츠 네트워킹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가 귀국해 프로팀을 맡거나 축구협회의 중책을 맡는 것도 아름답지만 유럽 현지의 프로리그 감독이 될 수도 있고 세계 축구 행정의 중심 기관에서 일할 수도 있다. 


박지성은 2002년 네덜란드의 PSV 에인트호벤을 시작으로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럽 정상급 리그의 정상급 선수였다. 이런 능력과 경력의 현역 선수를 앞으로 우리는 좀처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능력과 경력을 지닌 세계적인 선수들이 머지않아 세계 축구의 기술과 정책과 교육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현재 박지성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현역 선수들 중에서 장차 베켄바워나 플라티니 같은 존경 받는 실력자들이 배출될 것이다. 박지성은 바로 그러한 그룹의 일원으로 충분히 활동할 수 있다. 


지금 박지성은 비록 QPR의 벤치에 앉아 있지만, 곧 털고 일어나 그라운드를 몇 차례 더 누빌 것이며 그 이후 그는 세계 축구의 중심적인 인물로 활약하게 될 것이다. 이런 얘기를 나는 이번 설에 벤치 신세가 된 박지성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조카들에게 웅변했다. 얘들아, 자고로 큰 고기는 큰 물에서 노는 법. 박지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더 큰 인물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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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13세기 스코틀랜드의 영웅 윌리엄 월리스의 실화를 다룬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는 체크(check)무늬 옷을 입은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나온다. 당시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지방의 귀족들은 자신의 가문을 상징하는 체크무늬를 각각 만들어 씨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이어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가하는 씨족들이 가문의 체크에 새로운 색이나 선을 추가하면서 체크는 점점 복잡한 배색과 구성을 띠게 됐다.


월리스 가문의 체크는 우리에게 스카치 회사의 상징물로 익숙한 빨강·노랑·검정색의 체크다. 요즘은 의류와 머플러, 가방과 포장지 등에도 사용되는 인기 무늬가 됐다. 녹색·파랑·검정의 체크는 키스 앤드 오스틴 가문의 상징 체크이지만, 안정감 있는 배색으로 다른 색상과도 잘 어울리기 때문인지 우리 중·고교생들의 교복에 많이 사용된다.


체크는 같은 색의 농담을 이용하거나 다른 두 종류의 색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 만든 모양으로 수백 종류가 있지만 고전적인 체크로는 10여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체크는 셰퍼드(양치기) 체크다. 스코틀랜드 양치기들이 애용한 흑백의 줄무늬 격자로 만든 체크의 기본이다. 타탄 체크는 격자모양이 이중으로 직조됐다. 다이아몬드 모양인 아가일 체크는 스코틀랜드 서부 아가일 주의 지명에서 유래됐다. 크고 작은 격자를 섞어서 짠 글렌 체크는 스코틀랜드 글렌어콰트 근교에서 제작된 체크이다. 사냥개의 이빨처럼 보이는 하운드 투스 체크는 중후하고 전통적인 멋을 풍긴다. 영국에서 유래된 체크는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요즘은 수많은 소재와 색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다양한 느낌의 체크를 접하게 된다. 



여자 모델이 베이지톤의 룩 의상을 입고 있다. 닥스레이디 제공 (경향신문DB)



엊그제 영국 버버리사가 LG패션이 자사 등록상표인 체크무늬를 모방했다고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LG패션도 “LG패션의 닥스는 119년 역사의 영국 브랜드로 닥스 고유의 체크를 사용했다”고 맞소송을 준비 중이다. 체크무늬 전쟁의 시작이다. 버버리사는 2006년에도 제일모직의 ‘빈폴’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스코틀랜드의 체크가 가문의 역사와 주거지역 등을 읽어낸 바코드의 원조격이라면, 현대인의 체크는 자신의 철학과 취향을 코드화한 상징물이다. 선과 면의 조합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소통의 바코드인 체크무늬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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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엊그제 신세계 이마트의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이마트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혐의에 대해 9년 만에 재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대기업 노동현안에 검찰이 잇따라 칼날을 들이댄 것은 이례적이다. 현대차와 쌍용차, 한진중공업, 재능교육을 비롯한 전국 곳곳 사업장에서는 해고자 복직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친기업 정책을 표방해온 이명박 정부 들어 노사관계가 악화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노사문제를 다루면서 사용자에게는 관대하고 노조는 가혹하게 처벌해온 검찰의 이중잣대도 사태를 악화시킨 주범 중 하나다. 검찰의 이번 수사가 재벌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노동현안을 풀 수 있는 전기가 돼야 한다.


압수수색 받은 이마트 (경향신문DB)


이번 수사는 검찰의 의지에 달린 문제다. 이마트의 불법 행위는 내부자료를 통해 이미 공개돼 있다. 이마트는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직원들을 불법 사찰했다. 본사 차원에서 직원들을 ‘문제’ ‘관심’ 대상으로 분류한 뒤 밀착 관리하도록 지시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 지침에 따라 150여명의 리스트를 만든 뒤 퇴출 계획을 세웠다. 노조활동에 개입하거나 노조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현재 수사 중인 현대차의 불법파견 혐의 역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와 있다. 처벌 대상이나 수위의 문제일 뿐 사법처리를 피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번 수사를 경제민주화와 연결짓거나 대기업 사정의 일환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명백한 실정법 위반 행위를 재벌 손보기로 폄하하는 것은 구태에 지나지 않는다. 대검찰청도 이번 기회에 잘못된 재벌 행태를 바로잡겠다고 벼르고 있다고 한다.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한 책임자 처벌과 함께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야 할 때다.


대기업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 이마트는 가격파괴 전략을 통해 국내 할인점 문화를 이끈 주역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제대로 세금 내고 경영권을 승계한 몇 안되는 재벌2세다. 그러나 이번 일로 신세계의 윤리경영은 치명상을 입었다. 이번 사태는 범삼성가(家)의 무노조 경영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노조를 기업경영의 동반자가 아니라 훼방꾼쯤으로 인식하는 한 제대로 된 노사관계는 기대할 수 없다. ‘월급 많이 주겠다는데 무슨 노조냐’는 식의 경영관은 옛날 얘기다. 중국 당국도 최근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는 폭스콘의 노조 설립을 허용하지 않았는가. 노조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은 대기업들이 내세우는 윤리경영은 헛구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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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훈 | 충북대 교수·독문학


 

방학이라 종일 집에 있다. 거실에 앉아 고개를 들거나 숨을 돌릴 때면, 시선은 자주 베란다 쪽으로 간다. 오색동백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달에 다녀온 남해안 여행에서 구해온 것이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라서, 청산도는 산보길이 많을 것 같아 찾아간 것이다. 내가 태어난 이 땅을 아직 잘 모른다는 것과, 내 공부에서도 어떤 근본적 전환이 절실하다고 여겨온 터였다.


내가 찾아간 남녘은 황량했다. 계절 탓도 있겠지만, 어딜 가나 해안과 산천이 참으로 많이 망가져버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태풍의 여파인지 해안가는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조각으로 넘쳐났고, 산이나 계곡도 쓰다 버린 온갖 기자재로 더럽혀져 있었다. 편리한 도로나 시설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이런 폐기물을 동반한 것이었다.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 생존을 위한 고단한 노동현장이 먼저 눈에 띄었다.


나는 해남 땅끝에 내려 노화도 산양진항으로 배를 타고 갔고, 고개를 넘어 이목항에서 첫 밤을 보냈다. 다음날 보길대교를 건너 윤선도가 기거했다는 세연정(洗然亭)과 낙서재(樂書齋)까지 걸어갔다. 낙서재는 터만 남아 있었고, 지금 건물은 곡수당(曲水堂)과 함께 최근에 지은 것이었다. 이 곡수당 뒤로 난 산길을 넘어 예송리 해안으로 내려가 둘째 밤을 지냈다. 


다음날 아침은 회색 구름이 잔뜩 낀 날씨였다. 바람이 불고 공기는 차가웠다. 예송리 해안가에서 통리 마을을 지나고, 산을 에돌아 여항마을 넓은 벌판으로 나왔을 때, 갑자기 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목화송이 같은 눈발이 퍼붓는데,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바람이 거셌다. 살을 에듯 추웠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배낭을 더 조여 매고, 모자 위에 외투에 달린 덮개까지 눌러쓴 후 발걸음을 내디뎠다.


다른 방도는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언제 끝날지 모를 길을, 적어도 그때는 그랬던 그 차도를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무성한 초록나무가 길 옆으로 나타났다. 그것도 집채만큼 큰 동백나무였다. 눈바람 치는 이 삭막한 겨울에 붉은 꽃을 피우는 이 나무란 대체 무엇인가? 나는 숨이 막혔다. 지금껏 예사롭게 보아왔지만, 동백은 그런 나무가 아니었다. 이 겨울에 꽃피기 위해 나뭇결은 바짝 말랐고, 푸른 잎은 두꺼웠다. 그것은 잎이 아니라 빛, 숭고한 빛줄기였다. 돌아올 때 완도터미널에서 오색동백을 한 그루 사온 것은 그 때문이다.


동백나무(경향신문DB)


노화도 동천항에서 완도 화흥포항까지 배를 탔고, 여기에서 완도터미널까지 다시 걸었다. 청산도 도청항에서 하루 묵은 뒤 다음날도 나는 종일 걸었다. 도락리에서 화랑포를 거쳐 읍리와 말탄바위 그리고 장기미까지 산길이나 절벽 혹은 해변을 따라 걸었다. 장기리에서 섬 안쪽으로 들어와 신흥리 해변까지 갔다. 햇살은 따스했지만, 목도리를 풀면 금세 한기가 몰려왔다. 어디든 인적은 드물었다. 가끔 집 없는 고양이가 방치된 무덤처럼 무심하게 지나가기도 했다. 사물들은 원래 말이 없다.


상산포에서 1박을 한 후, 진산리와 국화리를 지나 지리해변에서 마지막 날을 보낼 때도 그랬다. 1.2㎞ 백사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와 세상밖에는. 이곳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거닐며 이 세계 전체와 나는 만났다. 오전에는 강아지 두 마리가 쫓아왔다. 갖고 있던 비스킷을 던져주었다. 녀석들은 해변 끝까지 날 따라왔다. 많은 것이 물결에 밀려왔다. 나는 성개화석이나 구슬우렁이나 큰가리비를 주웠다. 그 무늬는 극히 미세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 해안가에 앉아 나는 해가 뜬 것을 보았듯이, 해가 질 때도 바라보았다. 방문을 열면 곧 모래사장이었고, 이 방에서 자거나 글 쓰거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읽을 때도 파도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새벽녘 꿈결까지 날 쫓아왔다.


사선으로 내리쏟던 눈바람과, 밀려오는 파도에 자그르르 굴러대던 조약돌 소리가 아직도 아른거린다. 세파를 견디려면 의지가 필요하고, 숭고함에는 의지 이상의 헌신이 있어야 한다. 겨울이 오면 우리는 어디에서 꽃과 햇볕을 구할까? 이렇게 횔덜린은 1803년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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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춥다. 따뜻한 아랫목 놋그릇에 담긴 하얀 쌀밥 한 공기가 그리운 날씨다. 발에는 얼음이 박히고 가슴엔 바람 든 무처럼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렸다. 고슴도치 가시 같은 하얀 서릿발에 온몸을 웅크리고 이 겨울을 나는 이들이 있다. 귓속 달팽이관을 파고드는 15만4000V의 전류 소리는 미로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뇌를 흔들 지경이다. 걸었던 기억조차 희미해지게 만들 만큼 좁은 공간. 뚝 떨어진 기온에 손놀림의 기억도 얼어버렸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고통의 강물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며 하늘로 오른 지 100일이 가까워지거나 100일을 넘긴 쌍용차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6년의 시간을 버티고 싸우다 다시 종탑으로 오른 재능교육 노동자들. 죽어서도 장례조차 치를 수 없어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최강서 열사 가족에게도 설날이 왔다. 


설이 지나고 2월25일이 되면 18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고, 박근혜 당선인이 정식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를 것이다. 그러나 밀봉인사로 마음에 둔 후보자들이 낙마의 쓴맛을 보고, 이명박 정부의 불통 버릇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박 당선인의 행보는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역대 대통령 당선인과 달리 50%대 초반으로 현저히 추락한 지지율은 민심의 분노지수이며 불통지수다. 


당선인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통합과 화합은 말치레에 불과하다. 박 당선인이 대선기간에 외쳤던 ‘함께’라는 슬로건은 ‘끼리끼리’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자신의 대선 공약이었던 쌍용차 국정조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또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농민, 교사, 공무원, 철거민 등 수많은 이들의 억울함과 호소와 절규가 끊이지 않지만 입을 다물고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 민족명절 설날과 대통령 취임식을 앞둔 풍경 치곤 너무 슬프지 않은가. 


노동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이다. 박 당선인이 강조한 복지와 경제민주화 그리고 일자리 창출이 핵심이다. 재벌규제, 분배와 기회 균등은 물론 노동정책도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서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가 편 노동정책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를 짓밟고 탄압해서 닦은 터 위에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세우겠다는 가진 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관철된 시간이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나. 노동자는 죽음으로 내몰리거나 살아도 반죽음의 앙상한 몰골로 변하지 않았는가. 설 자리를 잃고 땅을 짚고 살 수가 없어서 하늘로, 철탑으로, 종탑으로 올라간 노동자들의 행렬이 그 생생한 증거다. 


이명박 정부가 추구한 ‘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 결국 ‘노동자가 죽기 좋은 나라’로 전락했다. 박근혜 정부는 부디 노동을 적대시 한 이명박 정부의 잘못에서 벗어나 대화로 현안을 적극적으로 푸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서울 여의도, 감나무에 매달린 감을 까치가 쪼아먹고 있다. (경향신문DB)


내 눈에는 설 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까치로 보인다. 사람들은 큰 나무든 작은 나무든 까치밥을 남긴다. 까치밥의 정신은 어떤 목숨이든 그 생존을 막다른 곳까지 위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그 생존을 배려하는 것이 결국 인간에게도 이롭다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 까치들이 더는 까치밥을 찾아 헤매다 죽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의 장례를 하루속히 치르기 위해 158억원의 손해배상 가압류를 철회해야 한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정규직화, 쌍용차는 국정조사, 재능교육 노동자에겐 단체협상 회복이라는 까치밥이 지금 필요하다. 이들이 즐겁게 노래 부르며 철탑에서 살아 내려올 수 있도록 까치밥을 준비하는 배려와 관심이 절실하다. 오늘은 까치설이다.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까치 소리를 듣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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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국무총리 후보자로 정홍원 변호사를 지명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경호실장에는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과 박흥렬 전 육군참모총장을 각각 내정했다. 김용준 전 총리 지명자가 도덕성 논란에 휘말려 사퇴한 지 열흘 만이다. 계속 지연되던 총리 인선이 설 연휴 전에 이뤄진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 총리 지명자는 30년간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특수수사통’으로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서 공직자후보추천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정 지명자 발탁은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선택으로 본다. 이번 지명자마저 낙마할 경우 박근혜 정부는 출범도 하기 전부터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 박 당선인 측은 각종 채널을 동원해 정 지명자를 검증했다고 한다.


정홍원 국무총리 지명자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경향신문DB)


하지만 박 당선인의 용인술은 사전검증 강화 부분을 제외하고는 김 전 지명자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장 출신에 이어 또다시 법조인을 택했고,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 출신에 이어 공천위원장을 지낸 인사를 발탁했다. 법치를 중시하는 국정철학과 ‘한번 믿고 쓴 인사는 계속 쓴다’는 인사스타일을 반영하는 동시에 ‘인재풀’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정 지명자가 걸어온 길이나 박 당선인과의 관계 등으로 미뤄볼 때 책임총리제 구현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정 지명자는 기자회견에서 책임총리의 역할을 두고 “(대통령을) 정확하고 바르게 보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책임총리보다는 비서실장의 역할에 가깝다. 박근혜 정부에서 책임총리는 형해화하고 ‘관리형 총리’만 남을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어제 인사에서는 청와대 내 장관급 3인 가운데 비서실장을 제외한 국가안보실장과 경호실장만 내정됐다. 비서실장은 새 정부에서 고위공직자 인선에 관여하는 인사위원회 위원장을 겸하는 자리다. 비서실장 인선을 미룬 것은 결국 후속 인사도 박 당선인이 전권을 쥐고 하는 기존 방식으로 이뤄질 것임을 시사한다. 장관급 3인 중 2인이 4성 장군 출신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지켜져온 ‘문민 우위’ 원칙이 약화되는 것 아닌지 걱정되는 대목이다. 통일·외교·국방정책을 거시적으로 다뤄야 하는 안보실이 지나치게 강성으로 흐르거나 경호실이 ‘권력 속의 권력’ 노릇을 하는 일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번 인사는 절차적으로도 적잖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총리 지명자를 대통령 당선인 대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이 발표한 점부터 이해하기 어렵다. 설 연휴 전날 발표한 것도 언론의 검증을 피하려는 꼼수 아니냐는 뒷말을 낳았다. 국회는 두 번째 총리 후보라는 이유로 검증에 소홀해선 안된다. 정 지명자 아들이 허리디스크로 병역을 면제받은 경위에 대해서도 명확히 짚을 필요가 있다. 박 당선인은 새 정부의 정상적인 출범을 위해 내각과 청와대 후속 인사에 속도를 내기 바란다.



(경향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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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방위원회가 높은 수준의 3차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라고 예고한 뒤 안보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해 강한 응징 의지를 내보인 국제사회의 단호한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다. 북한 역시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과의 적극적인 대화 노력은 바로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그제 여야 지도자와 머리를 맞댄 북핵 3자회의 중 “북한의 핵실험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동시에 물밑 대화를 병행하라”는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제안에 대해 “현 단계에선 안된다”고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은 ‘현 단계’라는 단서를 붙임으로써 대선 공약을 통해 밝힌 남북대화 재개 의지를 완전히 접지는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한 뒤에는 박 당선인 스스로 강조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간의 실질적인 협의’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문 위원장만의 제안도 아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 의지가 공표된 뒤 대화를 촉구하는 의미 있는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최근 서울을 다녀간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은 1990년대 초와 달리 북한 핵시설 파괴가 불가능하지만 당시와 마찬가지로 북한 핵문제의 포괄적·통합적 접근을 위한 ‘페리 프로세스’는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북·미 고위급 회담을 제안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북핵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강경대응 대신 다양한 분야에 걸친 대북 교류와 접촉을 북핵문제 해결의 상책으로 꼽았다. 특히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신보는 지난 6일 “남측에서 민족 공동의 이익을 내세워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면 대화의 창구가 열릴 가능성은 충분하다”면서 구체적으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의 평화협상을 제안했다. 


(경향신문DB)


대화는 이를수록 좋으며 특히 북한의 3차 핵실험 전에 물꼬를 트거나 최소한 제안이라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이 설령 박 당선인의 대화 제의를 거부하더라도 새 정부의 진정성을 보임으로써 추후 이뤄질 남북대화에서 명분과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북핵문제는 지난 20년 동안 북한의 도발과 국제사회의 강경대응이 반복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박 당선인이 그러한 순환논리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첫번째 한국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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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 소설가




내 고향은 동해에 잇닿은 변방의 작은 도시다. 황제의 야망보다는 제후의 평강을 택한 시조를 따라 천년 동안 삶터를 지킨 토박이 집안에서 수성(守城)의 미덕을 배우며 자랐다. 하지만 어린 나를 쏘삭인 것은 타지 출신들이 ‘텃세’라고 부르는 가득권의 안정감보다 ‘탈출’에 대한 의지였다. 한마디로 나는 답답하고 지루했다. 학기가 바뀔 때마다 같은 반에 두어 명씩은 돌림자를 쓰는 방계 친족이 있었고, 성씨가 달라도 따지고 들면 사돈에 팔촌쯤 되는 친구가 수두룩했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바람에 들썽거리던 시절, 아무리 정처 없이 헤매려도 아버지 친구, 엄마 친구, 동생의 친구와 이웃 아줌마 아저씨까지 거듭 부딪치는 좁디좁은 ‘시내’를 견디기 힘들었다. 항상 감시당하는 기분이었기에 한시바삐 벗어날 궁리뿐이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익명의 숲, 너른 세상에서 내 멋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이제는 그렇게 떠나온 고향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타지를 떠돌며 산 세월이 더 길다. 낯설고 두려웠던 대도시가 어느덧 생활공간으로 익숙해졌다. 수도권 신도시 대단지 아파트에서 소시민으로 섞여 살며 갈망했던 익명성을 여한 없이 누린다. 하지만 가뿐한 개인주의자의 삶을 살면서도 고단할 때면 어김없이 배릿한 바다 냄새와 고향을 떠올린다. 초등학교 동창들은 명절 때마다 언제 집에 내려오느냐고 채근한다. 머리는 희끗희끗해졌지만 장난기 어린 표정은 여전한 그들을 만나면 맥없이 흘려보낸 시간이 일순 무색해진다. 



도루묵찌개를 안주 삼아 예전의 그 ‘경월소주’에 비하면 맹탕인 소주를 기울이며 함께 나누는 이야기는 결국 얽히고설킨 관계의 일상이다. 뉘 집 누구와 누구의 근황을 읊어대는 투박한 사투리가 정겹다. 어느 별에선가 휙 날아와 떨어진 운석인 양 빤빤하게 굴어도, 어쨌든 내 잔뼈는 그 너른 오지랖과 눈길 속에서 굵은 게다.


한국 사회는 2011년 리투아니아를 제치고 인구 10만명당 31.7명으로 자살률 세계 1위에 등극했다. 근간에는 이웃나라 일본의 신조어로 ‘무연사회(無緣社會)’의 징후인 ‘고독사(孤獨死)’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질병으로 사망한 후 한 달여가 지나서야 냄새로 알려진 죽음, 무려 6년 뒤 백골이 되어 발견된 죽음 앞에서 전체 가구 중 4분의 1이 1인 가구가 된 한국 사회는 충격을 넘어선 공포로 반응한다. 언론이 연이어 쏟아내는 고독사와 관련된 기사의 대부분은 외로운 죽음, 방치된 죽음에 대해 개탄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외롭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는가? 가족과 친구에게 둘러싸여 일일이 작별인사를 나누고 평화롭게 ‘잠드는’ 죽음 같은 건 꿈에 불과하기에, 나는 기꺼이 죽음의 고독을 감내할 작심을 진즉부터 해온 차였다. 하여 지금 논란이 되는 ‘고독사’는 기실 ‘고립사’라 불러 마땅하며, 살아남은 자들이 나눠야 할 고민거리는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육탈한 시신이 증명하는 것은 생전의 외로운 삶, 방치된 삶에 다름 아니다.


‘큰 재난이 닥쳐오면 각자 날아오른다’는 말처럼 남은커녕 나를 돌보기에도 버거운 시절이다. 애옥한 살림살이만큼 마음이 가난해져 누군가를 살필 겨를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제각각 날아오르려 해도 세상의 그물에 갇힌 채로는 날갯짓조차 버겁다. 신자유주의의 비정한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동승자들과 손잡고 껴안을 수밖에 없음은 연민과 동정을 넘어선 생존의 문제다. 고독의 대가(大家)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에서 말했듯, 고독은 당사자와 다른 사람 사이에 놓인 공간의 거리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군중 속의 고독은 더욱 잔인하고 혹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친구의 연고가 모두 끊긴 상태에서는 물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이 고립과 소외가 빚어내는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예전의 고향에서처럼 누구네 집의 숟가락, 밥공기가 몇 개인가를 알지는 못해도 누구네 집의 쌀독이 비고 약봉지가 떨어졌는지는 알아야 한다. 그러하기에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마을의 귀환이 절실하다.


(경향신문DB)


그 마을은 소유주들이 집값을 중심으로 하나 되는 ‘뉴타운’이 아니라 삶터를 함께하는 사람들끼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문화와 환경과 교육의 ‘공동체’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얼마 전 KBS <수요기획>에서는 ‘재미난 마을에는 재미있는 사람들이 산다’ 편을 통해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을 벌이는 서울시가 모범사례로 꼽는 도봉산 자락의 삼각산 마을을 소개했다. 나 또한 그런 마을에서 아이를 키웠고 지금도 그런 마을을 일구며 살고 있다. 나 같은 개인주의자까지 슬그머니 한쪽 발을 들여놓고 싶을 만큼, 마을은 추상이 아닌 실제로서의 ‘우리’의 삶에 관여한다. 우리의 아이들이어야 안전하다. 우리의 놀이여서 재미있다. 우리의 터전이기에 사랑스럽다.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고립되어 살 수 없다. 그런 삶이야말로 백골이 되어 발견되는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이다. 마을은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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