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욱 |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


국정을 논하는 이들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예측 즉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면서, 국민도 납득할 수 있는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권은 국책사업으로 향후 몇백조원의 세금을 퍼부어야 할 거대하고 위험한 사업을 일부 이해관계자들만의 논의로 강행하려 하고 있다. 정부는 ‘원자력클러스터’라는 이름으로, 경북지역에 원자력 관련 시설을 집중적으로 건설할 계획이다. 사상 최대의 대규모 사업으로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하나, 사고 시는 원전보다 훨씬 막대한 피해로 국가의 존망 자체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경북도는 이런 위험시설들을 단순히 대규모 공공사업 즉 종래의 토목공사의 연장선 시각에서 강행하려 한다. 원자력클러스터의 핵심시설은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과 우라늄 등을 추출할 재처리(파이로프로세싱) 공장과, 재처리 후의 플루토늄을 핵연료로 사용하는 소듐냉각고속로(SFR)이다. 재처리 공장의 상용화 및 사용후 핵연료의 전량 재처리만으로도 최소 300조원 이상의 예산투입이 예상된다. 그러나 재처리 공장이 있는 프랑스 및 일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제성, 안전성, 핵확산방지의 어느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국내의 파이로프로세싱이라는 재처리방식은 30여년 전에 미국 국립연구소(ANL)가 개발한 것이나, 미국 역시 여전히 실험실 수준의 상태이다. 국내 개발도 실험실 내에서 하루에 겨우 20㎏을 실험하고 있는 뿐이다. 게다가 공정의 핵심부분인 정련공정의 개발은 답보상태이며 사용하고 있는 실험물질도 실제의 사용후 핵연료가 아니라 ‘모의재료’에 지나지 않는다.

 

원전사고피해 모의실험 결과발표 ㅣ 출처:경향DB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 대규모 시설의 건설을 획책하는 것은 한마디로 과학을 빙자한 ‘사기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재처리 공장과 일란성쌍둥이의 역할인 소듐냉각고속로는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고속로의 연구가 시작된 지 벌써 60여년이 흘렀다. 하지만 끊임없는 사고발생 때문에 세계 어디서도 상업화에 성공하지 못한 채 결국 미국·영국·독일 등의 선진국들도 원형로 수준에서 개발을 포기했다. 현재 일본의 원형로 ‘몬주’도 완공 후 17년 이상 정지되어 있는 상황으로, 강력히 추진을 주장해 왔던 일본정부조차 폐지를 거론할 정도다. 오는 8월에 그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소듐냉각고속로는 플루토늄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만큼 일반 경수로보다 제어가 어렵고, 사고 시의 방사능피해도 경수로보다 훨씬 크다. 최악의 경우에는 핵폭발까지 일어날 수 있다.

정부와 추진파들은 재처리를 통해 사용후 핵연료의 94~96%를 재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현실적으로는 겨우 1% 이하의 재활용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책사업이며, 왜 하려는지에 대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국내 원전에서 1만3000여t의 사용후 핵연료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로서 원전 내의 수조 등에 보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고리원전은 2016년경에 수조의 저장 여유가 없어질 긴박한 상황이다. 재처리를 하더라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보관할 최종처분장은 불가결하다.

한편 직접 처분 시에는 방사능의 독성감소에 최소한 10만년이 걸린다. 이런 막대한 양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무책임하게 다음 세대에게 떠넘기는 만행을 자행해도 되는 것인가?

2009년에 만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또는 직접 처분에 대한 대국민공론화위원회도 첫 회의 개최일에 갑작스레 중지된 후 공식적인 움직임이 전혀 없다. 정부는 원자력클러스터의 추진을 말하기 이전에, 사용후 핵연료 처리 또는 처분에 대한 대국민 공론화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경북도에도 공공사업의 양보다는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역개발정책을 우선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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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


야구를 하다가 코와 눈을 심하게 다쳤다. 윤동주문학상 시상식에 작년도 수상자로 참가했었다. 행사장은 인왕산에 자리 잡은 윤동주언덕이었다.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사람 10여명을 비롯하여 꽤 많은 문인들이 참가했다. 행사 중에는 전년도 수상자가 금년도 수상자에게 선물을 주는 순서도 있었다. 나는 연필 모양의 젓가락을 선물로 준비했다. 시인의 영혼의 젓가락은 연필 아닌가, 하는 발상이 떠올라서였다.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가 이어졌다. 반가운 사람들이 많았다. 자리를 옮기며 술자리가 길어졌다. 마지막 술자리 끝에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새벽이었다. 택시를 타고 오던 중 김포에서 글을 쓰고 있는 후배 작업실이 생각났고 그 후배의 작업실로 갔다.

작업실에는 그 후배와 다른 후배가 있었다. 그들은 글 쓰는 사람들의 야구 모임 회원들이었는데 전날 시합을 하고 와서 야구복을 입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야구복을 보자 고향에서 초·중학교 때 야구하던 일이 생각나 왕년에 야구를 좀 했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분당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날이 밝고 후배들을 선동해 인근 야구연습장이 있는 학교로 향했다. 한 후배가 포수를 보고 내가 투수 역할을 했다. 다른 한 후배는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고 있었다. 공 던지기가 좀 나아질 때쯤 포수 보는 후배가 던진 공에 얼굴을 정면으로 맞았다. 공이 날아왔고 나는 적시에 장갑을 움켜쥐었는데 이상했다. 내가 전에 한쪽 눈을 다쳐 원근감이 살아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이 바로 공을 받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후에, 후배가 찍은 동영상을 보고 너무나 어이없었다. 공을 당연히 잡을 수 있는 것처럼 태연하게 장갑을 접고 난 후 공이 날아와 눈과 코를 때렸다. 흠칫 놀라 몸을 조금만 움츠렸어도 공 부딪치는 소리가 그리 크게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흉하게 부어오른 얼굴로 전날 만났던 일본 손님들을 맞았다. 바다와 절을 안내하고 어판장에서 회를 먹으며 윤동주 이야기를 나눴다. 올봄 나는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 사람들의 모임에 초청을 받아 일본에 갔었다. 도쿄에 있는 릿쿄대학에서 행사를 했는데 일본 사람들의 윤동주에 대한 사랑은 예상보다 더 열광적이었다. 행사 중에 지진이 일어나 강당이 흔들리는데도 어느 한 사람도 동요하지 않고 행사에 집중했다. 불안한 마음이 일던 나는 그들의 진지함에 내심 부끄러워지기까지 했었다.

손님들이 돌아간 후 읍내에 잘 알고 있는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에 맞아서 코뼈가 함몰되었는데 그냥 내버려둬도 다시 솟아오르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일요일이라 병원이 쉬니까 일단 내일 와보라고 했다.

“몸이 많이 마른 노인들 내시경할 때는, 뱃가죽이 얇아 불빛이 바깥으로 비쳐 렌즈가 어디까지 들어가 있는지 알 수도 있어요. 하도 내시경을 많이 하다 보니까, 어떤 사람은 그가 누군지 떠오르지는 않다가, 그의 내장 건강 상태가 먼저 떠오르고 나서, 그 사람이 누구라는 사실을 알기도 하죠.”

한 시인이 내시경을 하고 나서 ‘너 내장 속에 불 켜본 적 있니?’라고 노래한 시 구절이 있다고 하자 의사인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내시경을 꽤 여러 번 했다. 내시경을 할 때마다 나는 수면내시경을 하지 않았다. 마취가 두렵기도 했고 친분관계가 있는 그가 내시경을 하며, 이 부위는 어디고 상태는 어떻다고 설명해주는 것을 듣는 게 좋아서였다.

다음날 병원에 들렀다. 엑스레이를 판독해 본 그가 소견서를 써주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큰 병원에서 CT 촬영을 하고 눈 검사를 했다. 다행히 눈 밑에 있는 뼈는 괜찮아, 코뼈 세우는 수술만 하면 된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러 가는 날 잠이 오지 않았다. 전신마취를 한다는데 혹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어서였다. 집사람 모르게 컴퓨터에 간단하게 유서라도 써 놓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방정맞은 생각 같아 그리 하지는 않았다. 수술이 끝나고 의식은 돌아왔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 환자 왜 이렇게 깨어나지 않지, 하며 의사들이 몸을 흔들었다. 의식은 돌아왔다고, 최선을 다해 신호라도 보내보려고, 눈이라도 껌벅거려보려고 해도 이도 말을 듣지 않았다. 몸과 의식의 단절이 불안하고 두려웠다. 다음날 퇴원을 하며 담배를 한 대 피워보았다. 양 코를 틀어막아서 냄새를 맡을 수 없으니까 담배 맛도 없었다. 코를 막고 입으로만 숨을 쉬니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전신마취를 통해 나는 몸과 정신의 분리를 경험했다. 정신이 몸의 멈춤을 허락한 사실에 몸은 얼마나 실망했을까. 배신감을 느꼈을 몸이 예전처럼 정신을 따르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근감의 상실로 나는 야구공에 맞았고 자유로운 호흡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체득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함이 우리 생활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가를 되새겨보는 계기도 되었다. 내일이면 긴긴 가뭄이 끝나고 비가 온다고 한다. 우리가 멀리 내다보지 못해 이 땅에 민주정신이 가뭄 들은 지도 벌써 5년이 다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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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삶이 팍팍하다. 목돈이 필요해도 손 벌릴 데가 없다. 금융기관의 문턱이 높아서다. 빚을 안고 집을 산 사람들은 집값이 떨어져 고민이다. 전셋값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집을 팔고 싶어도 제대로 거래가 되지 않아 머리가 아프다. 1000조원에 가까운 가계대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제때 이자를 못내는 경우가 많아 문제다. 실업이 늘어나고 물가가 오르면서 실질 가계소득은 줄고 있다. 5월 말 현재 가계대출 연체율은 1% 가까이 근접했다. 5년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아파트 중도금 대출이 많이 밀린 탓이다. 이래저래 서민들 살림살이가 걱정이다. 


빚에 허덕이는 서민살이 일러스트 (경향신문DB)


이런 상황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에서 출발한 세계경제는 예상보다 오랫동안, 그리고 자주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갈수록 태산이다. 정부도 어제 확정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보다 0.4%포인트 내린 3.3%로 낮췄다. 


우리 경제가 총체적 난국을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들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은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데는 미흡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경제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이다. 서민들의 주택구입이나 전세자금사업에 1조2300억원을 넣는다고 하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금융위원회가 저신용 대출자에 대해 은행 이자를 깎아준다고 하지만 아직 검토 단계일 뿐이다. 언제,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정치권 일각이 요구했던 추가경정예산은 일단 짜지 않기로 했다. 대신 각종 기금을 비롯해 여유자금 8조5000억원을 긁어모아 넣기로 했다. 추경을 하려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해야 하고, 대량실업이 발생해야 한다는 요건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유로존 위기로 시작된 이번 위기 상황이 오래갈 것으로 보는 만큼 지금 실탄을 다 쓸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물론 이명박 정부 임기 내 마지막 하반기를 맞아 굳이 크게 일을 벌이지 않고 가능한 한 조용하게 넘기고 싶다는 속내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권 말기인 탓인지 경제 부처 간 엇박자나 책임 떠넘기기 인상을 주는 것도 걱정할 만한 대목이다. 경제정책은 재정정책(주관부처 기획재정부), 통화정책(한국은행), 금융정책(금융위원회)이라는 세 바퀴가 아귀가 맞게 돌아가야 제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대책이 따로 놀아서는 성과를 낼 수 없다.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종합처방이 아니라 하나의 증세 치료에만 집착하면 몸 전체 건강을 되살리는 데 소홀할 수 있다. 세계경제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서민들이 한숨을 돌리고 경제 활력을 살리는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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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와 청원군이 행정구역을 하나로 통합하기로 했다. 청원군은 엊그제 실시한 주민투표에서 79.03%가 통합에 찬성했고 청주시는 이에 앞서 지난 21일 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합을 의결했다. 이로써 한 고장이자 같은 생활권이었던 두 시·군은 2014년 7월 하나의 ‘통합시’로 출범, 인구 100만명의 중부권 핵심도시로 도약할 기반을 갖추었다. 18년 동안 산고(産苦)를 겪었던 통합 과제를 주민 스스로 풀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충북 청원군 오송리 일대의 전경 (경향신문DB)


행정구역 통합은 그동안 정부가 적극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한 과제였다. 중복 투자 방지, 효율적인 예산 집행, 부존자원의 통합 관리 등 여러 장점이 있지만 많은 갈등과 부작용을 낳았다. 정치·경제집단과 공무원, 주민, 지역단체 등의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친 탓만이 아니다. 통합 자체가 갖는 부정적 효과도 만만찮게 지적됐다. 광역화가 무조건 좋다는 발상은 안이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역 특성과 주민의 다양한 선호에 부합하기 어렵고 주민 밀착형 행정서비스와 멀어지는 등의 단점도 많다. 먼저 통합한 제주도에서 기초자치단체의 부활을 주장하고 통합 창원시에서도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통합 무효론이 제기되는 것이 그런 까닭이다.


청주시·청원군 통합이 1994년부터 세 차례나 무산됐던 것은 청원군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청원군 예산이 줄고 청주시 빚만 떠안는다, 세금이 대폭 오른다, 혐오시설이 집중적으로 들어올 것이다, 대표적인 농업 브랜드(청원생명)마저 사라진다, 농촌지역 교육 혜택이 줄어든다는 것 등이 청원군민의 우려였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 청주시와 청원군, 충청북도는 주민 참여와 주도로 통합을 추진했다. 6·2 지방선거 과정의 공약을 토대로 양쪽 시·군민협의회가 시장·군수, 도지사와 논의를 거쳐 ‘청원·청주 상생발전방안’을 만들었다. 설득과 참여가 지역단체와 주민의 지지를 이끌어내 주민투표의 성공으로 이어진 셈이다.


물론 자율통합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 풀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통합 결정 과정에서 깊어진 갈등 해소가 급선무다. 통합 인센티브 약속 이행, 통합시설치법 제정, 상생발전방안 실행계획 수립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통합시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이며, 통합시 청사를 어디에 두느냐는 등의 문제로 더 큰 갈등을 겪는 사례도 숱하게 보아온 터다. 자율통합을 이룬 두 시·군이 이런 난제를 푸는 데도 모범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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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 대중문화평론가


 

대형마트의 강제 휴무 실시로 시민들의 재래시장 이용을 진작시키겠다는 시도는 일단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위법성 인정 판결이 결정타였지만, 대형마트가 문 닫은 휴일에도 소비자들이 재래시장에 가지 않았으니 실패이다. 이제 우리는 소비자들의 대형마트 선호 현상에 대해 좀 더 솔직하고 냉정하게 설명해야 한다.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게 시민들에게 왜 좋은가?’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만 어떤 측면을 활성화하고 홍보할 것인가를 결정할 것 아닌가. 소상인들의 생계나 대기업의 독점 문제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소비자를 설득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천호신시장 (경향신문DB)



흔히 재래시장이 더 좋은 이유로 거론되는 것은 ‘싼 가격’과 ‘푸근한 인심’ 딱 둘뿐이다. 설득논리치고는 참 궁색하다. 재래시장의 농수산물이 대체로 싼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도 품목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려니와, 매일 시장에 가지 않고 3일이나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는 보통의 소비자로서는 수시로 변하는 열무나 고등어 가격을 비교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게다가 ‘푸근한 인심’? 천만에! 마트 이용객들이 재래시장에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상인을 직접 대면하는 불편함 때문이다. 점포 앞에서 물건을 구경할 때 “뭘 드릴까?”하고 물어보는 주인의 대면, 그게 아주 불편한 것이다. 마트에서는 비닐랩에 싸인 물건일지언정 만져보고 중량과 가격을 보면서 따져볼 여유가 있다. ‘이걸로 어떤 음식을 만들까’ ‘반찬이 얼마나 남았더라’ ‘냉장고가 비었던가’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주인이 빤히 쳐다보고 봉지에 물건을 싸주려고 서두르는 앞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만져보다가 그냥 돌아서면 욕이나 먹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이런 차이는 재래 상인들의 서비스 개선 캠페인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그에 비해 대형마트는 어떤가. 공산품과 농수산물을 함께 구입할 수 있고, 자가용을 이용할 수 있으며, 물건을 하루 종일 만지작거려도 야단치는 사람이 없다. 김애란이 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 날카롭게 간파했듯이, 화려하고 풍요로운 대형마트에서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도 중산층이 된 것 같은 만족감이 생긴다. 말하자면 소비자에게 대형마트에 가는 것은,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재래시장 활성화 방식은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문제의 실마리는 소비자들의 문화를 읽어내는 것에서 해결될지도 모른다. 젊은 소비자들도 길거리 음식을 즐긴다는 문화에 착안한 통인시장 ‘통카페’(도시락 뷔페)가 그런 예이다. 그렇지 않다면, 소비자 스스로 문화적 변화를 해 재래시장의 장점과 만나야 한다. 즉 농수산물의 질을 판가름하는 예리한 눈을 소비자가 키우면 재래시장이 훨씬 경쟁력이 있다는 말이다. 내가 그런 경우이다.


나는 ‘불편을 무릅쓰고’ 재래시장을 이용한다. 대형마트에는 없는 농수산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불광동의 시장에는, 도매시장을 거치지 않고 들어오는 물건들이 있다. 단으로 묶지 못할 정도로 연하디 연한 열무와 초봄에 씨 뿌려 솎아온 야들야들한 어린 상추, 활어는 아니지만 회로 먹기에 충분한 병어나 전어 등은 대형마트에선 구경도 못하는 물건이다. 이에 비해 대형마트 물건은 다양성이 없고 계절과 무관하게 뻔하다. 게다가 우엉, 쪽파, 마늘 등은 그 자리에서 껍질을 까서 파니, 겉포장으로 깨끗해 보이지만 물에 담가 껍질 벗긴 마늘과 비교할 수가 있으랴. 


농수산물 식재료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제철의 싱싱한 재료를 원하는 생태적 소비자 문화가 형성되면, 결국 재래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푸근한 인심만 강조할 게 아니라, 문화를 바꾸는 소비자 교육이 더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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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방한한 슬로베니아 철학자 지젝과 함께 비무장지대(DMZ)를 갔다. 그곳에서 그가 보고자 했던 것은 분단 상황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의 현장이었다. 평소 주장해온 역설의 장면들을 발견할 때마다 그는 흥미로워했다. 한국에서 북한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보기 위해 그는 기념품점에서 북한 상품을 찾았다. 기념품점에 진열되어 있는 북한 상품은 주로 술이었는데, 그 중에 약간 포장이 다른 것이 있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경향신문DB)



눈썰미가 보통 아닌 지젝은 바로 그 술의 정체를 물었다.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보니, 탈북자들이 제조한 술이었다. 지젝은 파안대소하면서 “변절자들이 만든 술이군”하고 농담을 했다. 순간 얼마 전에 논란이 되었던 임수경 의원의 발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산 경험이 있는 지젝이 ‘변절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패러디라고 볼 수 있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이기에 농담 삼아 당시에 횡행했던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지젝이 한국인이었다면, 임수경 의원 해프닝이 잘 말해주듯 ‘변절자’라는 용어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을 테다. 탈북자를 ‘변절자’라고 부르는 순간, 사상에 대한 의심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농담이 통하지 않는 심각한 상황이 가로놓여 있는 셈이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현실 공산주의에서 태어나서 자란 지젝에게 이미 철지난 의미를 가진 ‘변절자’라는 말이 왜 자유민주주의를 체제이념으로 삼는다는 한국에서 문제가 되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 발언으로 탈북자들이 모욕감을 느꼈다면, 당사자들끼리 사과하고 지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상황은 종북 논쟁으로 비화되어 급기야 공당의 원내대표라는 분이 종북주의자 명단을 거론하며 전형적인 매카시즘의 행태를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젝에게 농담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과거의 이데올로기가 한국에서 여전히 맹렬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도 전체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특정 세력들을 ‘제거’하는 것을 정의의 기준으로 설정하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합리적인 논리로 설명하기 곤란하다.


지젝이 ‘변절자’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조건 덕분이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가장 열심히 주장한 이들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자들이었는데, 결과적으로 탈이데올로기의 상황이 초래한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곤경이었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지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파들에게 그 무엇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혼란은 기대하지 않았던 ‘고양이의 선물’이었다. 이런 까닭에 현실 공산주의권의 붕괴를 자유민주주의의 완성으로 간주하고 역사는 끝났다고 선언했던 미국의 정치학자 후쿠야마가 더 이상 자신을 후쿠야마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데올로기 없는 세상은 우파들에게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잃어버린 10년’을 회복하자고 이명박 정부를 선택했던 한국의 우파들은 지난 4년간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자신들의 무능력을 입증할 수밖에 없었다. 천안함 사태는 그렇다 치더라도, 연평도 포격이라는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한국의 우파들은 독자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세계 이목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복수혈전을 펼쳤던 과거 이스라엘 우파들과 비교되는 실력인 셈이다. 걸핏하면 북한 공산당을 때려잡자고 외치던 한국의 우파들이지 않은가? 그런데 정작 기회가 왔을 때 이들은 아무것도 때려잡지 못했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임수경 의원 발언으로 불거진 종북 논쟁은 이런 우파들의 무능력을 만회하기 위한 회심의 반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이라는 ‘실질적 공포’를 회피하기 위해 촉발시킨 우파들의 반공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는다. ‘실질적 공포’와 대면하기에 한국의 우파들은 너무 지켜야 할 것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종북 논쟁은 결코 북한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북한이라는 ‘절대 악’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이 상황에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탈이데올로기의 시대에 다시 이데올로기의 숭고를 불러들이려는 푸닥거리가 바로 종북 논쟁이라고 하겠다.


방한한 지젝이 보고 싶어 했던 것도 이런 역설 아니었을까? 다른 곳에서는 화석이 되어버린 이데올로기가 살아 숨쉬는 모습이 이방인의 눈에 신기하게 보였을 것이다. 물론 DMZ가 외국인에게 훌륭한 관광지가 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지젝이 특별해서 한국의 분단현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말로는 분단을 극복하자면서, 실제로 그 분단을 이용하고 있는 세력이 이런 상황을 지속시키고 있다. 이 세력이 남아 있는 한, 앞으로도 지젝 같은 이들이 한국에 오면 으레 DMZ에 가고 싶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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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몇 년 전,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 10월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을 떠돌다보니 집에 머물렀던 날이 이틀밖에 안되었다. 이렇게 돌아다닌 뒤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남는 것은 이 세상의 아름답고 기이한 풍경과 역사유산을 많이 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행복이었다.


호수와 꽃나무의 경치가 어우러진 경주 강동면 양동 민속마을의 풍경 (경향신문DB)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가슴에 품는 소원들이 있다. 선조 때의 문장가인 이수광은 그의 저서 <지봉유설>에서 세 가지 소원을 말했다. “나는 이 세상에 세 가지의 소원이 있으니, 이 세상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고, 이 세상에 좋은 일을 하고 싶은 것이고, 또 이 세상의 좋은 경치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송나라 사람인 조계인도 그 비슷한 소원을 말했다. “나는 평생에 세 가지 소원이 있다. 그것은 세상의 좋은 사람을 모두 알기를 원하고, 세상의 좋은 글을 모두 읽기를 원하며, 세상의 경치 좋은 산과 내를 모두 보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세 가지를 다 이루고 가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만 두 사람의 공통적인 소원이 세상에 있는 그 빼어난 경치를 다 보고자 함이었으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사람들은 먼 길을 걸어가는 동안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풍경들을 만날 때 느끼는 감흥은 저마다 다르다. 조선 초기의 문장가였던 김시습은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주저앉아서 통곡했다고 한다. 서경덕은 아름다운 산수를 만나면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이달은 주저앉아서 술을 마셨다고 한다.


서양의 지식인들은 어떠했을까? 독일의 문호인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어느 순간을 보고 멈추어라, 너 정말로 아름답구나! 라고 외친다면 그때에는 네가 나를 결박해도 좋다. 나는 기꺼이 열반의 길을 걸어가겠다. 그때에는 조종을 울려도 좋다.” 


괴테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서 경탄하는 순간이 곧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과 같음을 말하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이 쌓인 분노와 슬픔을 해소시키기도 하고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그대들의 눈에 비치는 사물들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바라보는 모든 것에 경탄하는 사람이다.” 앙드레 지드가 <지상의 양식>에서 한 말이다. 살아있는 동안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경탄일 것이다. 당신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때 어떤 경탄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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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철 | 디지털뉴스팀장


 

야구가 기묘한 이유는 뭘까.


첫째, 세 번 중 두 번을 실패하고 한 번만 성공해도 뛰어난 타자로 간주된다. 야구 말고는 인생사에서 이렇게 후한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없다.


둘째, ‘도둑질’이 합법적이다. 도루를 말하는 것이다. 많이 훔칠수록 칭찬을 받는 걸 보면 아이들이 의아해하지 않을까.


셋째, 내가 잘 못 치는 타자라면 대리 타자가 나오고, 달리기가 서툴면 대리 주자가 나온다. 어찌 보면 팀은 대리 선수들의 집합체다.


‘10구단 승인 촉구와 재벌구단 규탄을 성명 발표’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삭발식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위 얘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멀티미디어 백과사전 ‘엔카르타’에 수록된 ‘야구가 기묘한 스포츠인 10가지 이유’ 중 일부다. 100년 넘도록 미국에서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야구의 재미를 역설로 표현한 내용들이다. 마지막 열번째 이유는, 7회 끝난 뒤 온 관중이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집단체조(스트레칭)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내 프로야구 인기도 수년 전부터 상승일로다. 2009년, 2010년 관중 590만명을 불러 1995년의 역대 최다 540만명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680만명에 이르렀다. 올해에도 반환점을 채 돌지 않은 현재 400만명을 돌파해 당초 예상치 700만명을 넘어 800만명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박찬호, 김병현, 이승엽 같은 내로라하는 한국야구 간판스타들이 국내 그라운드에 복귀한 게 현재 흥행의 한 요소일 것이다. 또 월드베이스볼클래식과 베이징올림픽에서 세계의 이목을 끄는 한국의 실력을 선보인 것도 인기의 바탕에 깔려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제 프로야구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수가 즐기는 여가로 자리잡을 만큼 저변을 확대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창 풍성한 잔치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10번째 구단 창단이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구단 사장들로 구성된 한국야구위원회 이사회가 최근 10구단 창단 유보 결정을 내렸다. 이유는 “선수 부족, 인프라 부족”이다. 이에 프로야구선수협회는 올스타전 보이콧을 불사하겠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때아닌 정면충돌 분위기에 야구팬 네티즌들은 최근 온라인에 반대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10구단 논의와 결정을 보면 재벌의 생각과 입장이 야구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 구단 중 7곳이 대기업, 재벌의 이름을 내걸고 있다.


우선 ‘인프라 부족’은 기존 구단들의 몫이다. 새 멤버를 받을 수 없는 이유로 군색하다. 선수·시설 인프라 투자에 적극 나서지 않은 채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성적 지상주의에 매달린 게 그간의 모습 아닌가. 일부 구단은 “지금보다 손해가 더 나면 아예 빠져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래서 기존 재벌 구단은 이런 의심을 사기도 한다. 끼리끼리 하던 장사에 재벌 아닌 신참이 끼어드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덩치 큰 형들이 노는 구역에 아랫동네 덩치 작은 애가 들어와 같이 놀자고 하는 걸 뿌리치는 것처럼 말이다. 아울러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비난받기도 한다. 결정의 막후에서 작용하는 ‘재벌의 힘, 재벌의 논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존 구단 입장에서는 생돈 메워가며 키워놓은 시장에 느닷없이 후발주자가 끼어들어 파이를 나누자는 게 탐탁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끼리끼리 파이 나누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전체 파이를 키우려고 애쓰는 게 30년간 국내 프로야구를 발전시킨 공을 세운 기존 구단들에 어울리는 모습이 아닐까.


물론 구단 수를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기초가 부실한 상태에서 양적 팽창만 좇는 것은 옳지 않다. 문제는 기존 구단이 자기 논리만 앞세우는 것이다. 그 대신 ‘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소통해야 한다. 선수들이 수백만 팬에게 기쁨과 재미를 주는 경기를 안 하겠다고 한 입장도 살펴봐야 할 일이다.


모쪼록 “시민(관중)을 볼모로 한 실력행사(보이콧)의 책임은 전적으로 선수들에게 있다”는 식의 귀에 익은 말이 나오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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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란 무엇인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요약하면,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시험은 교육의 정도를 평가하고 측정하는 수단일 터이다. 만약 수단이 목적에 위배된다면, 아니 목적을 부정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 수단은 폐기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사흘 전 전국 초·중·고교에서 치러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가 그런 예가 될 듯하다. 일부 학교에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수단을 위해 목적을 내팽개친 셈이니 가치전도 현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울 이태원초등학교에서 ‘2011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보고 있다. (경향신문DB)



한 초등학교에서는 일제고사 당일 성적이 우수한 학생과 부진한 학생을 짝짓는 식으로 자리를 바꿔 부정행위를 사실상 조장했다고 한다. 또 다른 초등학교에선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의 답안지를 교감이 나서서 고쳤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모 중학교에서는 상위권 학생이 자신의 문제지에 답을 크게 쓴 뒤 옆자리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제가 된 것은 부정행위뿐이 아니다. 충남의 한 초등학교에선 일제고사에 대비한 자체평가 점수에 따라 신, 귀족, 평민, 천민, 노예로 신분을 구분한 뒤 아이들에게 자기 신분을 큰소리로 말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반교육적 행태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일제고사의 반교육·비효율성을 지적하며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이른바 ‘0교시’와 야간 자율학습을 강제 실시하고, 점수가 많이 오르면 현금이나 놀이동산 이용권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등 교육현장의 파행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조직적인 부정행위 의혹까지 보태졌으니 일제고사의 존립 근거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본다. 내년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일제고사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맞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그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교육당국은 일제고사 당일의 부정행위 의혹을 모두 규명해 사실로 드러나면 관련자를 징계하는 등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지난 5년간 치러온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기 바란다. 편법과 반칙을 가르치는 시험은 시험이 아니며, 편법과 반칙을 묵인하는 학교는 학교라 부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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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섭|성공회대 대학원 박사과정


여기 두 개의 문이 있다. 하나의 문은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하고 있는 망루로 통한다. 다른 하나는 막혀 있다. 경찰은 우왕좌왕했다. 어느 문이 망루로 통하는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 1월20일 새벽 용산4구역 남일당건물, 세입자들과 전국철거민연합의 회원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벌인 점거농성이 시작된 지 하루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급작스레 들이닥친 경찰의 강경진압은 농성자 5명과 경찰관 1명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대법원은 경찰에게는 무죄를, 농성자들에게는 4~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두 개의 문>은 집요한 영화다. 농성자들이 건물을 점거하고 망루를 짓기 시작한 때부터, 그 망루가 검은 연기에 휩싸이며 불에 타오를 때까지의 경과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러나 이 추적에서 감독들은 농성자의 시선이 아니라 경찰의 시선을 쫓는다. 크레인 기사가 잠적하는 바람에 두 대가 필요한 컨테이너는 한 대만 올라가고, 건물의 구조를 설명받지 못해 두 개의 문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몇 층으로 되어 있고 어떤 인화물질들이 있는지, 몇 명이 어떤 태세로 있는지 모르는 채 파란색 망루로 무작정 밀려들어가는 진압대원들의 증언과 기록이다.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개의 문>. ㅣ 출처:경향DB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특공대원들은 그날의 망루를 생지옥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위험을 느꼈지만 이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얘기할 순 없었고, 자신들은 오로지 진압을 할 뿐 그 이외의 권한은 없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그들은 불에 타는 망루 속에서 들렸던 “다 죽어!”라는 의문의 외침이 위협이 아니라 경고였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그날의 참상을 떠올리며 머뭇거리기도 한다. 이런 대원들에게 검사는 국가의 이름으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강조하며 난데없는 사상검증을 벌인다.

하지만 결국 토해내듯 이 사건의 책임을 농성자들에게로 돌리는 대원의 목소리는 그다지 단호하지 못했다. 영화는 관객들을 용산참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화급하게 사건에 대한 진실을 결정지어버린 국가를 대신하여, 감독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그 불길은 무엇이었는가,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지만 영화는 대체 누가 이 진압을 이토록 서둘러 밀어붙였는지, 이 사건은 왜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했는지,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일이 벌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물론 이것은 그날의 진실에 집중하기 위한 영화의 전략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도, 그리고 그것을 보는 우리도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우리는 다만 두렵거나, 불안하거나, 주어진 삶을 헤쳐나가는 것에도 너무 벅찬 나머지 차마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했던 것이리라.

지난 몇 년간 ‘뉴타운’ ‘디자인 서울’ ‘재개발’ ‘재건축’ 같은 단어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단어들은 그 사람들을 밖으로 몰아대기 시작했다. 자본과 국가권력은 서울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복잡하게 얽힌 삶의 장소들을 유리와 대리석과 콘크리트와 ‘친환경’ LED로 뒤덮인 반듯한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 대통령이 와서 풀빵을 굽던 노점에서부터 사람들이 멀쩡히 살아가던 주택들과 한때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구시가지에 이르는 광범위한 구역이 그 대상이었다. 이들은 편리하게도 아웃소싱된 공권력인 용역으로 사람들을 괴롭혔고, 매수와 회유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불신을 심었으며, 법과 질서를 돈으로 물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용산의 불길이 지나간 다음에도 이들은 반성하지 않았다. 두리반과 마리에서, 그리고 북아현동과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곳에서 이들은 여전히 같은 짓을 반복 중이다. 그럴 때마다 두 개의 문은 조용하게 나타나 그 그림자를 드리운다. 얼마나 더 많은 불길이, 얼마나 더 많은 주검이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용산은 우리가 수십년간 에둘러서 중산층이라고 부르며 동일시해왔던 무언가가 찢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거대한 파열음이었다. 그 불길한 소음은 쌓여가는 가계빚과 밀려나는 사람들 속에서 더욱 커지는 중이다. 용산은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누구도 이 불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시대를 알리는 사건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집값을 떨어뜨리는 이웃이 아니라 진짜 맞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있다. 그 불타는 물음에 대하여 우리는 스크린 밖에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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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경북대 교수·사회학


다음은 필자가 작년 10월 일주일 동안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장길에서 목격한 일이다. 숙소의 TV에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라면 믿지 못할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LA 도심 남가주대학 근처의 실내체육관에서 자원봉사단체가 주최하는 무료진료가 벌어졌는데 무려 5000여명의 시민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었다는 소식이 었다. 무료진료는 그 주의 목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고, 진료대기표는 진료 시작 며칠 전인 월요일 오후에 배분되었는데 시민들 중 상당수가 대기표를 손에 쥐기 위해 전날부터 행사장 앞에서 진을 치고 노숙도 불사하는 모습이었다. 사흘치 대기표 4800개는 월요일 단 하루 만에 동이 났고 무료진료가 시작되는 목요일 하루 동안 1000명의 시민들이 진료를 받았다.

‘LA타임스’는 무릎이 부어오르고 잇몸병도 앓고 있는 40대 후반의 한 시민이 대기표를 손에 쥐는 순간 밤새 기다린 보람이 있다며 환호했다는 소식과 함께, 주최 측 책임자가 “고작 가장 기초적인 진료를 받겠다고 시민들이 이런 난리를 펴서야 되겠느냐”고 한탄했다며 미국의 의료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LA의 이 행사에는 심장내과, 치과, 소아과 등의 전문의들이 참가했다.

다음은 올해 2월 영국의 BBC방송이 현재 미국이 처한 상황을 가감 없이 보도한 한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빈곤한 미국>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 후반부에는 테네시주 체스터 카운티의 한 공원 실내 체육관에 약 500여명의 시민들이 맹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와 줄을 서며 밤을 지새우는 모습을 방영했다. 이 역시 다음날 아침에 시작될 무료진료 때문에 벌어진 풍경인데 기자는 이와 똑같은 모습을 이곳에서만 3년 전부터 계속해서 봐오고 있다며 담담한 어조로 보도했다.

 

포괄 수가제 반박 기자회견하는 의사협회 ㅣ 출처:경향DB

그렇다면 세계 최강국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에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몹쓸 의료체계 때문이다. 즉, 너무 비싼 진료비와 의료보험 때문이다. 의료보험이 비싼 이유는 그것들이 민간보험이기에 그렇다. 민간보험은 그 종류가 천차만별이고 개인이 혼자 들기에는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비싸다. 변변치 않아 보이는 직장일지라도 기를 쓰고 다니려 하는 이유는 바로 회사가 보험을 일정부분 분담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의료보험이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커다란 혜택이다. 보험이 그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보험이 없다고 해서 딱히 빈곤층이라고 분류할 수 없다. 그 중엔 자영업자들같이 누가 봐도 중산층인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직장을 다니다 하루아침에 해고당한 이들은 곧바로 무보험자로 전락되어 무료진료 행사에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약 5000만명의 미국인이 의료보험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을 포함해 의료보험이 있어도 가장 저가의 민간의료보험을 가진 이들이 충치조차 치료할 수 없는 의료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정부는 7월부터 전국의 모든 병·의원에서 백내장과 맹장 등을 포함한 7개 시술에 대해 총 진료비를 정해 놓은 포괄수가제를 시행키로 했다. 이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의 대립이 첨예하다. 그동안 의료계가 국민들에게 보여준 이악함 때문에 그들의 주장을 애써 외면하고 싶으나 이번만큼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포괄수가제의 역효과와 잠재적 기능 때문이다. 이 제도는 곧 영리병원 도입과 민간의료보험의 창궐을 보장할 것이다.

포괄수가제는 이 제도에 의거한 정액 진료에 만족하지 못하는 환자들로 하여금 민간보험을 들게 하고 영리병원의 도입을 열렬히 원하는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이는 곧 의료계를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극단적인 이익 추구의 장으로 변모시킬 것이 뻔하다. 그리고 이것의 종착점은 곧 위에서 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밤을 새워서라도 무료진료라도 받기를 원하는 불쌍한 사람들로 넘쳐나는 의료후진국 미국 짝이 나는 것이다. 우리 같은 공공의료보험이 아닌 민간보험사가 활개를 치는 참으로 우울한 풍경에 결코 우리 국민들을 등장인물로 끼워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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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영 |전국부 mooni@kyunghyang.com

 


지난 4월 개장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 서울 도봉구 초안산의 생태공원은 당초 골프연습장 예정 부지였다. 주민들은 1990년대 말 이곳에 골프연습장이 들어선다는 것을 알고 지루한 투쟁을 벌였다. 목적의식을 갖고 돌진하는 시민 정신은 섬뜩하리마치 무서운 법이다. 주민들은 10년 이상 민원 제기, 시위, 소송 등을 했지만 소송은 패했고 공사는 시작됐다. 주민들은 마침 법이 개정돼 주민 서명을 받으면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틀 만에 3000여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결국 서울시는 토지를 매입해 생태공원으로 변경했다. 한 주민은 “사업자의 협박과 회유가 끊이지 않았고, 공무원들은 해결책을 알려주지 않아 미웠다”고 토로했다.

최근 동작구 구립 어린이집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며 문득 초안산 생태공원의 주민 투쟁기가 떠올랐다. 구립 어린이집 인사권을 갖고 있는 동작구가 한달 전 19명의 원장들을 예고없이 인사 이동시키자 이에 항의하는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구청에 민원을 넣고 있다. 일부 원장들은 사임했다. 이들은 구청장이 바뀔 때마다 원장이 바뀌면 아이들에게 피해가 간다며 인사의 객관적 평가와 대책 마련을 원했다. 한 어린이집에선 교사들이 신임 원장을 교체해달라며 민원 공문을 냈는데 신임 원장이 부임 첫날 기혼의 교사들에게 임신하지 말라며 부부관계를 금지시키고, 반말을 했다는 등 사유 11가지가 적혀 있다.

 

서울 초안산 근린공원 내 생태공원에서 한 가족이 화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ㅣ 출처:경향 DB

그런데 동작구의 반응이 뜬금없다. 민원인의 말을 경청하고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기보다 교사들이 추가 수당과 휴가를 얻어내기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으로 폄하했다. 대다수 학부모들은 말이 없는데 일부가 ‘선동’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교사들이 사익을 위해 없는 말을 지어낼 정도로 사악하다면 관련 어린이집 조례 제13조에 의거해 진작에 면직조치해야 했다. 평소 교사들이 신뢰가 없는 사람들이었는지 궁금했다. 한 학부모는 “아이가 쉬는 날에도 어린이집에 가고 싶어했고, 긍정적으로 태도가 바뀌는 것을 보며 안심했다”고 말했다.

초안산 이야기로 돌아가 과거 시의원 시절 주민 투쟁을 지켜봤던 이동진 도봉구청장에게 물었다. 그동안 공무원들은 뭘 했느냐고. 소송도, 서명도, 시의회를 찾아가 토지 매입비를 편성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주민들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골프연습장 용도로) 이미 낸 행정처분을 다시 취소한다는 것은 공무원들의 자기부정 행위다. 공무원 스스로는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작구가 상황의 본질을 직시하기보다 일부 학부모·교사의 선동쯤으로 여기는 이유 속에 혹 반대 논리를 인정하는 순간 자기부정 행위로 빠지게 될까봐 그런 것이라면 생각을 바꿨으면 한다. 세상에 어느 부모도 자녀를 볼모로 공권력과 싸우는 바보짓은 하지 않는다. 자녀를 위해 할 수는 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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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점석 | 비교문학자

 

여느 해 같으면 짙푸른 잎줄기 사이로 감자꽃이 하얗게 피고, 그 밭둑을 휘감아 개망초꽃이 자잘한 얼굴을 들이밀어야 할 때다. 하지만 가뭄에 맥이 풀려 누렇게 널브러진 감자 잎줄기들을 스프링클러도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그저 체면치레로 물줄기를 뿜고 있을 뿐이다. 곡식과 들꽃들의 숨통이 타들어가는 그런 절박한 내막을 안다면, 개를 앞세워 들녘을 산책하기도 민망한 날들이다.

텃밭에서 홀로 지내는 개와 사흘 만에 만나는 나는 개와 함께 즐겨 임진강변을 거닐며 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덜어낸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주인을 잘못 만나 주야장천 묶여 있는 이 녀석도 일단 목줄에서 벗겨나면 제법 사냥개의 혈통을 자랑한다. 먼발치에서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꿩을 쫓아 내달리는 풍모가 예사롭지 않다. 반면에 개망초꽃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얼굴을 간질이는 풀잎을 물어뜯어 탁탁 이빨을 부딪치며 몇 번 씹다 내뱉는 본새는 영락없는 개구쟁이의 모습이다. 그렇게 무심코 쓸모없이 찧고 떠드는 사람에게 “개 풀 씹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의 용례를 제대로 짚어 보여주는 대목이다.

 

4대강 사업이 홍수,가뭄 해결하는거 맞나요 ㅣ 출처:경향DB

‘개 풀 씹는 소리’는 신소리로 알고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헛소리라도 망령된 자가 주변 사람들을 편 가르며 자신의 쇠락한 처지를 잊고자 내뱉는 말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리어왕>에서 노쇠한 리어는 자신에 대한 타인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치명적인 성격적 결함에다 망령이 더해져, 세 딸들을 불러모아 “나에 대한 사랑을 말로써 보여주라”며 세 딸의 갈등을 부추기며 국가를 분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다. “사랑의 한계를 넘어서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첫째딸과 “언니와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열정은 두 배”라는 둘째딸의 ‘개 풀 씹는 소리’에 감동한 리어는 나라를 둘로 나눠 그녀들에게 선물했다. ‘딸의 도리로 사랑할 뿐 마음속 사랑을 말로 꾸밀 수 없어’ 그냥 “없어요(nothing)”라고 했던 셋째딸의 진심은 그들 모두가 비극적으로 죽고 나서야 확인될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유체이탈화법’으로 설화(舌禍)를 자초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로 면목이 없어 한동안 근신하는가 했더니, ‘양손에 창과 방패를 들고’ 다시 나타나 열심히 떠들며 국민들을 웃게 만든다. 온 나라가 가뭄 극복을 위한 아우성으로 후끈할 때, “우리는 작년에 4대강 사업으로 홍수를 극복했다”는 뜬금없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브라질로 자리를 옮겨,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각국 참가자들을 향해서는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홍수와 가뭄 모두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했다. 거의 모든 보에서 물이 새고, 보에 갇힌 물에서는 녹조현상이 현저하고, 국민의 혈세로 준설한 강바닥엔 모래가 다시 퇴적되고, 둔치에 방치한 공사자재들이 흉물스럽게 녹스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유체를 이탈해 뜬구름에서 노닐고 있다.

망령든 리어왕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라는 악의적 질문으로 국가를 파탄으로 몰아갔듯, 이명박 대통령은 ‘나’를 ‘국가’로 대체해 “국가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라는 마녀사냥식 질문으로 자기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종북주의자’라는 올가미를 씌우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보고서에는 수중폭발의 증거가 없고, 천안함이 어뢰에 의해 폭발되었다는 핵심적 물증으로 제시된 데이터는 조작된 상황에서, 이 방면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과학자들이 어뢰에서 발견된 ‘흡착물’이 폭발에서는 생성될 수 없고 저온에서 서서히 생성되는 침전물질인 수산화알루미늄 계열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도둑이 개들에게 뼈다귀를 던져 서로 으르렁거리게 하는 까닭은, 자신은 그 틈을 노려 살짝 도망치려는 것이다. 온갖 비리의 윗선으로 자신을 주시하는 국민들의 눈총이 따가운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던진 뼈다귀가 ‘종북 타령’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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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대야(對野) 인식이 갈수록 위태로워 보인다. 야당을 싸잡아 ‘종북세력’인 양 몰아세우더니 150일 넘은 MBC 장기 파업사태를 두고도 야당을 배후로 의심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18대 국회 때까지만 해도 상식 있는 경제전문가로서 이명박 정부의 경제 실정을 질타해온 그인지라 실망이 더욱 크다.

이 원내대표는 어제 여야가 MBC 파업사태를 국회 문방위 차원의 청문회에서 다루자고 합의했느냐는 질문에 “논의가 진전됐든 안 됐든 저로선 그걸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용납’이라는 고압적 말투도 그렇지만 수석 원내부대표들 간 합의를 한마디로 뭉개버리는 그의 태도는 국회 운영을 책임진 여당 원내대표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그의 발언 속에 숨겨진 왜곡된 대야 인식이다. 굳이 “(MBC) 김재철 사장이 ‘큰 집’에 불려가 조인트 맞고 깨진 뒤 좌파를 정리했다”는 한 인사의 증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명박 정권의 무리한 방송장악이 현 MBC 사태를 불렀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마당에 개원을 위해 국정조사를 포기하고 청문회를 개최하자는 야당의 협상안마저 물리치는 건 참으로 납득할 수 없다. 그는 며칠 전 간부회의에서도 “민주당은 대선 때 편파방송 할 세력을 규합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주장한 바 있다.

 

모두발언하는 이한구원내대표 ㅣ 출처:경향DB

‘경제전문가 이한구’와 ‘원내대표 이한구’의 두 모습이 너무도 다르다. 그로서는 원조 친박인 진영 정책위의장을 러닝메이트 삼아 그 자리에 오른 데 대한 부담이 박근혜 의원에 대한 과잉 충성으로 이어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다. 그의 일거수일투족, 한마디 한마디는 이미 박 의원의 그것과 분리하기 힘들다. 그의 독선적 언행은 박 의원에게 소통 단절이나 수구보수적 이미지만 덧씌울 뿐이다. 얼마 전 그는 한 극우 인사의 책을 원용해 야당에 대한 색깔론을 펴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백번 양보해 그것이 소신이라 하더라도 여당 원내대표가 파트너인 야당에 할 소리는 아니었다.

국회가 개원하면 그에게는 국회 운영위원장이라는 직함이 당연직으로 따라붙는다. 여당의 원내대표를 넘어 국회 운영이라는 막중한 임무가 그에게 주어진다는 의미다. 그런 이 원내대표가 왜곡된 대야 인식을 떨치지 못한다면 건설적 여야관계 구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로 인한 정국불안은 여당 대선후보에게도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만사를 제쳐두고 19대 국회 운영의 첫 단추를 끼운다는 막중한 사명부터 깨닫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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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그제 국무회의에서 슬그머니 한·일 군사협정의 기초단계라 할 수 있는 ‘한·일 정보보호협정’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국무회의 말미에 대외비란 편법을 동원해 일본과의 정보보호협정을 상정해 처리한 것이다. 심지어 정부는 당초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이라고 되어 있던 협정안 명칭에서 ‘군사비밀’이란 부분을 삭제해 통과시키는 이른바 ‘꼼수’를 부렸다. 국민의 눈을 속인 셈이다. 정부의 이번 처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정부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과 핵 개발 등으로 인한 한반도의 안보위협 증대와 테러 재해 등 초국가적 안보위협에 따른 국제안보환경 변화를 일본과의 정보보호협정 추진 이유로 꼽고 있다. 또 정부는 협정안이 정보교환 방법, 교환된 정보의 보호 및 관리 등 가장 기본적인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면서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또 과거 공산국가였던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과 같은 수준의 정보보호협정을 이미 맺었다면서 지금이라도 이웃국가인 일본과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설명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통합당 우원식 원내대변인이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정부가 전날 비밀리에 국무회의를 통과시킨 한일군사협정은 무효며 이의 즉각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하지만 정부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이른바 국민정서다. 일본은 여전히 군대위안부, 강제징용자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온갖 꼼수를 다 부리면서 일본과 협정을 체결하려는 정부를 국민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한국과 일본이 정보보호협정 협의에 착수한 것은 지난해 1월 양국 국방장관회담부터다. 양국은 지난 1년6개월간 실무적으로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을 위해 협의해왔으나 비판 여론에 밀려 상호군수지원협정은 결국 포기했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정보보호협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과 같은 군사협정 체결 추진 이면에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신안보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미 행정부는 이 전략에 따라 한국에 일본과의 군사협력 강화를 주문해왔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최근 공개적으로 “한·일 양국이 좀 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일본과 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서두르는 데는 미국의 이러한 압력이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정보보호협정 체결 이후 미국이 더 높은 수준의 일본과 군사협력을 요구해올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 정부에 묻고 싶다.

한·일 정보보호협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협정이 공식화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재가와 외무당국자의 서명이라는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 아직 체결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일본과 정보보호협정 체결 절차를 중단하고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 수렴 절차를 밟을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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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몸에 생긴 상처처럼 역사의 상처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환을 남기게 된다.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을 보자. ‘폭도의 난동’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낙인은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공식명칭을 얻음으로써 씻겨졌으며, 피해자들은 일정하게 보상을 받았다. 그러면 말끔히 치유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32년이 지난 지금에도 죽은 사람은 있지만 죽이라고 명령한 사람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누가 봐도 ‘학살 수괴’가 확실한 두 사람의 전직 대통령 전두환·노태우씨는 경찰의 경호·경비 속에서 떵떵거리며 호화생활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정신분열과 피해망상에 시달려왔던 서호영씨의 쓸쓸한 죽음은 치유되지 않은 역사의 상처를 새삼 일깨워준다. 당시 21세 청년이었던 서씨는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켰다가 계엄군에 체포된 뒤 한달 반 동안 감금상태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이후 강제징집으로 군대에 끌려갔지만 ‘폭도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복무기간 내내 가혹행위를 당했다. 서씨의 피해망상과 정신분열은 갈수록 악화돼 여러 차례 치료감호를 받았으나 신체적 피해만 인정해주는 ‘5·18 특별법’ 탓에 월 17만원의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으로 홀로 살아오다가 나흘 전 향년 53세로 눈을 감았다. 서씨의 동생은 “평생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한 형은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는 가해자(전두환)는 어찌 이토록 큰소리 치며 호의호식할 수 있느냐”고 절규했다고 한다.

 

전남 광주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한 아이가 희생자 비석 앞에서 천진하게 웃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때마침 노태우 전 대통령의 동생이 설립한 회사 주식을 국가가 환수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앞서 민주통합당 김동철 의원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가족들에게 은닉된 불법재산을 찾아내 추징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하는 ‘특정고위공직자에 대한 추징 특례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1672억원에 이르는 추징금의 납부는 거부하면서도 보란듯이 호화생활을 즐기고 있는 전 전 대통령의 몰상식한 행태를 생각하면 김 의원의 특례법 발의는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두 사람의 불법재산 환수만으로 광주의 상처는 완치되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총을 쏘라고 지시했는지, 누가 시민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했는지를 완전히 규명한 뒤 그 장본인에게서 참회 어린 사죄를 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서호영씨와 원통함에 가슴을 치고 있는 유족들을 조금이나마 위무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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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정|문화부 차장


지인이 아파트 인근 텃밭에 상추를 심었는데 오래 묵은 미숫가루를 뿌려주었더니 상추가 달착지근하다고 자랑했다. 내년에는 소금물을 뿌려 탱글탱글한 짭짤이 토마토를 기르겠다고 한다. 주말농장을 오래 해본 경험이 있는 회사 동료는 아예 교외로 이사를 가 옥상에서 농사를 짓는다. 샐러드 바에 뒤지지 않는 열네 가지 채소를 항상 먹을 수 있단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도 올 봄에 마당의 꽃나무를 패버리고 그 자리에 호박 넝쿨을 올리셨다.

도시농부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옆집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나도 해보니 정말 되더라는 이야기다. 매일 새싹이 자라는 게 예쁘고 농약 걱정 없이 싱싱한 채소를 먹을 수 있어서 좋다. 굳이 돈 내고 헬스클럽에 가지 않아도 몸을 움직이게 된다. 삭막한 도시의 삶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흙의 기적이다. 21세기 도시의 새로운 트렌드인 ‘시티 팜’은 텃밭, 상자텃밭, 옥상농원, 베란다농원 등 다양한 형태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현재 지구상의 도시농부는 8억명 이상으로, 캐나다 몬트리올에는 8000개 이상의 텃밭이 있고 뉴욕의 경우 600개 이상의 건물에 옥상농원이 있다. 도시농부들이 이용할 수 있는 농사매뉴얼, 패션 농기구 등 새로운 시장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텃밭을 일구는 일에는 작고 소중한 일상, 육체노동의 즐거움, 자연과의 일치, 가족이나 이웃과의 교감, 인간적 속도에 대한 희구가 담겨 있다. 농촌이나 제3세계의 식민화를 전제로 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를 마감하고, 앞으로만 달리는 대신 주변과 발밑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걷겠다는 일종의 정치적 행동이기도 하다. 동시에 패스트푸드, 정크푸드, 유전자변형작물, 환경호르몬 등 먹을거리를 오염시키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자 진정한 웰빙과 느림의 문화를 일구어내려는 움직임이다.

 

서울 강동구가 운영 중인 둔촌동의 친환경 도시텃밭 l 출처:경향DB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은 도시농사의 노하우를 깊이 축적하고 있다. 이곳은 땅이 없는 주민들에게 작물을 키우도록 나눠주었던 공유 할당지(allotment·얼로트먼트)를 2000년대 들어 여가 개념이 혼합된 정원문화로 바꿔나갔다. 도시화로 인해 얼로트먼트가 줄어드는 걸 법으로 막고, 정부와 원예가협회가 함께 어떻게 하면 유기농 채소를 바르고 아름답게 키울 수 있는지 교육한다. 아마추어 농부들의 생산물 경진대회도 열린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지난 5월 말부터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 시행돼 도시농부를 돕는 적극적인 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텃밭을 가꿔 가장 큰 효과를 본 사람은 미셸 오바마일 것이다. 그녀는 백악관 남쪽 정원에 채마밭(kitchen garden)을 만들었다. 유기농 채소를 키워 자기 가족의 식탁과 중요한 손님의 만찬 재료로 쓰면서 미국인의 식탁을 수술하겠다고 나섰다. 채식으로 건강하고 날씬해진 두 딸의 사례를 바탕으로 ‘무브 온(Move On·운동합시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그녀는 지난달 <미국의 재배법(American Grown): 백악관 텃밭과 미국의 정원 이야기>란 책을 펴내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미셸의 텃밭은 오바마 대통령의 신선한 이미지를 만드는 정치적 텃밭으로도 한몫 했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이 점을 유념해야겠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시계도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향해가고 있다는 것. 그러고보면 진보정당의 미래는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녹색당이라는 생각이 든다. 녹색당이 내세우는 탈핵 농업 생명 여성 등의 가치가 훨씬 미래지향적이다. 비록 지난 4·11 총선에서 처음 정치적 시험대에 오른 녹색당이 비례대표 한 석을 확보해 국회에 진출하는 기준인 3%는 물론, 정당 등록기준인 2%도 못채운 0.48% 지지율 확보에 그치기는 했지만 ‘녹색’이란 이슈는 엄청난 지속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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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란산 원유 수입이 중단된다. 유럽연합(EU) 외무장관들은 그제 회담을 갖고 “이란산 원유 수송선에 대한 선박보험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으며, 7월1일부터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정부는 EU가 미국처럼 이란 제재 예외 적용을 해줄 것을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 보험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유럽이 보험을 제공하지 않겠다니 누가 유조선을 이란에 보내 기름을 싣고 오겠는가. 이제 우리나라 5번째 원유 도입국인 이란(지난해 기준 전체 원유 도입 물량의 9.4%)과의 거래는 완전히 끊기게 된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미국정부로부터 이란제재 예외 적용을 이끌어낸 것이 외교적 성과라고 자랑했던 것이 무색할 지경이다.


(경향신문DB)



사정이 그렇다 해도 정부가 대책 없이 손을 놓고 있는 게 걱정스럽다. 일본 정부는 이란산 원유 수송 유조선에 대해 보상 책임을 지겠다고 나섰다. 특별법을 만들어서 말이다. 일본 정부가 유럽 보험사를 대신해 지급보증을 하되 유조선이 사고를 당하면 대신 돈을 갚아주겠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척당 보증금이 7조원을 넘어 사고가 날 경우 나라 살림살이에 무리가 간다며 몸을 사리고 있다.


정유업계는 이란산 원유 대신 다른 산유국에서 원유를 확보했거나 현물시장에서 사들이고 있다. 이란산 원유를 들여오는 것보다 비싼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결국 국내 기름값이 오르고 소비자들이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더욱이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면 연간 61억달러(지난해 기준)에 이르는 이란 수출 시장을 잃게 된다. 그동안 이란 수출 대금 결제는 정유사들이 이란에 주는 원유대금을 국내 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계좌에 입금하면 이를 각 수출업체가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원유 수입이 끊겨 이 잔고가 바닥나면 수출을 더 이상 할 수 없을뿐더러 수출 대금을 떼일 수도 있다. 이란 수출 기업 2900여개사 가운데 90% 이상이 중소기업인 것도 걱정스럽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국제유가가 오랜만에 안정세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요행에 기대할 수는 없다. 정부는 3·4분기까지는 원유 수급에 큰 무리가 없다고 보고 있지만 길게 이어지면 큰 문제다. 국제유가가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처럼 정부 차원에서 유조선 보험을 제공하는 방안을 면밀하게 검토해볼 만하다. EU에 대한 외교적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이란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도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마냥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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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현행 당헌·당규대로 오는 8월20일 전당대회를 열어 대선 후보를 선출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비박(근혜) 후보’ 3인이 요청해온 전대 연기를 거부한 것이다. 당 지도부는 이들이 함께 요구해온 완전국민경선제 등 경선 규칙 변경에 대해서도 “(후보등록 마감 전날인) 내달 9일까지 논의를 계속한다”고 여지를 남겼으나 이 역시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비박 3인의 주장을 수용하려면 전국위원회 등을 열어 당헌·당규를 바꿔야 하는 등 시간이 필요한 만큼 전대를 연기하지 않고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써 새누리당의 대선후보 경선은 ‘반쪽짜리’로 흐를 공산이 커졌다.



경선 룰 조정회의 참석한 황우여 대표 (경향신문DB)



주목해야 할 것은 박 의원의 뜻이 관철된 결론이 안고 있는 문제보다 여기에 이르는 과정과 절차에서 드러난 흠결이다. 완전국민경선을 실시하려면 시간이 촉박하고, 역선택이나 돈선거의 위험이 있는 데다 정당정치의 원리에도 어긋난다는 박 의원 측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비박 3인이 겉으로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어떻게든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고자 하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자신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다른 주장을 펴는 상대와 제대로 된 대면이나 협상 한 번 없이 결론을 내려버린 데 있다. 그동안 박 의원이 공개적으로 내놓은 언급이라곤 “선수가 룰을 바꿔서는 안된다”는 한마디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당’ ‘한 식구’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박 의원의 일방통행에도 불구하고 다른 목소리는 찾아보기조차 힘든 당내 분위기다. 친박 인사들이 국민의 눈길을 끄는 흥행보다 정책이 우선이라는 만용을 부리고, 불과 몇 %대 후보들을 위해 경선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을 내놔도 이를 반박하는 인사들이 없다. 이 중에서도 75명에 달하는 초선 의원들의 침묵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들이 왜 ‘박근혜 키즈(Kids)’로 불리는지 알 것 같다. 심지어 한 핵심 측근은 “이번 결정이 박 의원의 이미지 손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잠시이고, 후보로 결정되면 모든 게 지난 일이 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는 데 일국의 지도자를 꿈꾸는 이를 보좌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일련의 과정에서 이명박 정권의 대표적 폐해로 지적돼온 ‘소통 단절’의 또 다른 이미지를 본다. 정치는 ‘모 아니면 도’의 게임이 될 수 없다. 얻기 위해서는 내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정치에서 결과 못지않게 절차를 중시하고, 대화와 타협의 기술이 요구되는 이유다. 일방적인 승패의 게임은 전쟁의 법칙이지 정치의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다. 박 의원은 원칙의 정치인을 자처한다. 불신과 훼절이 일상화한 정치의 현실에서 더없이 소중한 덕목이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 없는 원칙 고수는 오만과 독선만큼이나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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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만 |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우리 헌법 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개입과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경제민주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실은 헌법과는 정반대다. 갈수록 경제적 불평등과 재벌대기업들의 탐욕과 독점이 심화되고 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재벌대기업 체제에서 피해받은 대중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22일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입법 및 대중운동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서울 강동구 이마트 앞에 휴점한다는 내용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경향신문DB)



 최근 재벌대기업 체제의 폐해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 중의 하나가 골목상권 죽이기이다. 구체적으로 중소상인들의 경우를 보면, 1999년 46조원에 이르던 전통시장의 매출액은 2010년 24조원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7조원이었던 대형마트의 매출액은 36조원으로 5배 성장하였고, 그 과정에서 골목상권은 유통재벌에 의하여 어둠의 시장으로 초토화되어갔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을 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지난해 말 유통산업발전법의 개정은 유통재벌의 탐욕으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진 골목상권에 한 줌 희망의 불씨였다. 그 불씨가 암흑 세상 전체를 환하게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아직까지는 우리 국회가, 힘없고 가난한 영세상인의 하소연에 귀 기울여 유통재벌의 탐욕을 견제한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한 것이었다. 중소상인들이 다시 한번 일어나 시끌벅적한 시장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희망의 불씨였던 것이다.


화들짝 놀란 유통재벌들은 불씨가 혹여 촛불이나 횃불로 번질까봐 헌법소원과 행정소송을 잇달아 제기했다. 또 거대 광고주이기도 한 이들 유통재벌들은 각종 언론매체로 하여금 그 불씨의 의미를 왜곡해 전달하게 하거나, 불씨가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거대 자본으로 차단했다. 


하지만 유통재벌의 막강한 공세에도 불구하고, 불씨는 점차 빛을 발휘했다. 최근 시장경영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의무휴업제도가 도입된 이후 전통시장의 매출액이 주말마다 11%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와 SSM 영업제한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22일 ‘법치’의 이름으로 찬물을 끼얹었다. 각 기초자치단체에서 제정한 조례가 단체장의 재량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조례 제정에서 지켜져야 할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법적 안정성을 위해 기존 판례의 틀에 의존해 처분의 위법성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행정법원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서서히 커지고 있는 중소상인들의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법원은 보다 과감한 판단을 할 수는 없었을까? 특히 풀뿌리 자치와 민주적 정당성에 기초해 만들어진 조례에 대해 법원은 보다 탄력성을 가지고 위법성을 판단할 수는 없었을까? 중소영세 상인의 앞날을 걱정하며 희망의 불씨가 확산되기를 기대했던 민변, 참여연대,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 등은 이번 법원의 판단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법원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의 정당성은 인정하고 있는 만큼 희망의 불씨가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중소상인들과 시민사회의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조례는 법원의 판결 취지를 존중하여 신속하게 보완하면 된다. 이와 관련해 서울 25개 자치구가 조례개정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동네 중소상인들이 활력을 되찾아야, 풀뿌리 경제와 국민경제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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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