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9’.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두 대선 후보의 정치쇄신 대결이 본격화하고 있다. 문 후보가 어제 ‘대통합 거국내각’ 구상을 밝히자 박 후보도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을 내세워 ‘국정쇄신정책회의’ 안을 내놨다. 두 후보의 구상은 너나없이 대결적 정치문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야권의 후보 단일화 등으로 인해 뒤늦은 감이 있으나 흔치 않은 정책 대결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국정쇄신정책회의는 대통령을 의장으로 해 청와대와 정부 외에 시민대표와 야당이 추천하는 인사들을 포함시켜 국민의 뜻을 국정에 반영한다는 게 골격이다. 박 후보 측은 안철수 무소속 전 후보를 포함해 야당이 선거운동 기간에 제시한 정치쇄신 공약을 수렴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대통합 거국내각은 연합정치와 공동정부를 두 축으로 해서 시민의 정부를 이루겠다는 얼개를 갖고 있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새로운 정치질서의 주체가 될 사람들과 단결하고 연합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양측 공히 중도·부동층의 표심을 겨냥한 전술·전략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18대 대선의 화두나 다름없는 ‘안철수 현상’의 핵심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인 만큼 긍정적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박후보 정치쇄신 공약 발표하는 안대희 위원장 (출처: 경향DB)


문제는 양측 정치쇄신책이 포장만 다를 뿐 실은 같은 얘기라는 점이다. 국정쇄신정책회의는 박 후보 지지세력에다 시민대표와 야당 추천인사를, 대통합 거국내각은 문 후보 지지세력에다 시민단체와 합리적 보수를 각각 아우른다고 밝히고 있다. 주체의 차이가 있을 뿐 상대를 국정운영에 참여시킨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서로 베끼다 보니 생긴 일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더구나 안 전 후보 사퇴 후 ‘안철수 현상’을 승계하겠다고 다짐했던 새누리당은 문 후보에 대한 적극 지원의사를 밝히자마자 안 전 후보 폄훼로 돌아섰고, 시종 ‘안철수 현상’을 등에 업고 대선을 치르는 민주당은 아직껏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말만 되풀이해온 마당이다. 이쯤이면 누가 집권해도 내용 있는 정치쇄신을 기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선거에서 정책 대결은 유사점보다 차이점을 놓고 겨루면서 국민들의 심판을 받는 게 마땅하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가장 팽팽하다는 보수·진보의 1대1 맞대결 구도라면 더더욱 그렇다. 궁극적 목표에 대해선 비슷한 인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접근법을 둘러싼 차이점이 두 세력을 가르는 경계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변별력을 떨어트리려는 정책 대결은 대결의 포기에 불과하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의 정치쇄신 경쟁 방식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양 진영은 이번 정치쇄신책 발표를 계기로 삼아 이제라도 제대로 된 정치쇄신 경쟁에 나서길 기대한다. 두 후보가 막판에 정치쇄신 경쟁을 벌인다는 사실은 이번에야말로 쇄신을 실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얘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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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는 지난 6일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장거리 로켓 개발에 모두 13억달러(1조4066억원)를 투입했다면서 옥수수 460만t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식량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비(로켓 개발)에 이런 큰돈을 쓴다는 게 안타깝고, 또 이런 조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7일에도 북측에 2000년 식량차관의 상환을 촉구하는 대북통지문을 네 번째로 전달했다면서 “(북한 지도부가) 북한 주민의 식량 수년치를 날려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국방부는 지난주 17억4000만달러를 로켓 개발 비용으로 제시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올해 첫 장거리 로켓 발사 당시 비용을 8억5000만달러로 추산한 바 있다.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로켓 발사장 (출처: 경향DB)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때마다 정확한 근거도 없이 개발비용을 산정하고 이를 대북 비난에 활용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 특유의 견강부회다. 남측의 나로호 개발에 지금까지 5000여억원이 투입된 것에 비춰보아도 과도한 비용 산정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왔다. 그럼에도 이번에 또다시 어림짐작의 수치를 내세워 북한을 비난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북한 장거리 로켓 문제를 해결할 아무런 방안도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꼴이다. 북한의 식량차관 상환 문제 역시 일단 남북이 마주 앉아 북한산 광물의 대체상환을 비롯한 해법을 모색할 사안이지 몇 차례씩 상환 요구 통지문을 북측에 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대북 교류·협력은 물론 당국 간 대화의 문을 스스로 닫은 것은 5·24조치 이후 이명박 정부의 패착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결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북한의 장거리 로켓을 최대한 정치적으로 이용해 안보 우려 계층의 지지를 끌어모으려는 꼼수라는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우리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가 핵실험과 함께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일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우려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1874호에 따라 탄도미사일 개발활동이 제한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수치를 들이대고,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된 뒤에야 논의할 사안을 들어 북한을 비난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특히 통일 및 남북 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며 통일 관련 사무를 담당해야 할 통일부가 이러한 선전전에 나서는 것은 부처의 법적 존재 근거를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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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중국전문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등장하는 여러 영웅들 가운데 유비(劉備)·관우(關羽)·장비(張飛) 이 세 사람과 제갈공명(諸葛孔明) 때문에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인물들이 있다.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육손(陸孫)이다. 


그는 이릉(夷陵) 전투에서 화공으로 유비의 군대를 대파했다. 이 패배의 충격으로 유비는 백제성(白帝城)에서 숨을 거두었다. 반면 오나라 정권은 이 승리로 안정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육손은 형주 상류에 진을 치며 위나라의 침공을 막는 방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뿐만 아니라 정치 방면에서도 남다른 포용력을 보였는데, 특히 형주 지역의 지식인들을 포섭하고 강동의 인재들을 적극 발굴하여 기용하는 수완을 보였다. 


이와 관련하여 정치적으로 육손의 담대한 포용력을 보여주는 일화가 정사 <삼국지>에 전한다.


회계 태수 순우식(淳于式)이 손권(孫權)에게 육손이 멋대로 민간 인력을 동원하는 등 관할 구역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비판하는 보고를 올렸다. 얼마 뒤 육손은 도성으로 돌아와서 손권과 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순우식이 훌륭한 관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손권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순우식은 그대를 비판하는 보고를 올렸는데 그대는 도리어 그를 칭찬하며 추천하니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육손은 이렇게 말했다.


“순우식은 백성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저를 고발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일로 순우식을 비방한다면 여론은 시비를 가리지 못하게 변질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기풍은 절대 조장해서는 안됩니다.”


손권은 “정말이지 보통 사람은 도저히 따르지 못할 후덕한 장자의 언행이로다”라며 감탄했다.


육손은 손권이 정식으로 황제를 칭한 후 오나라 정권을 안팎으로 떠받친 중요한 대신이자 장수로서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후삼국 시대 오나라 책사 육손의 초상화 (출처: 경향DB)


위에 소개한 일화는 사사로운 감정을 따지지 않고 나라를 위해 자신을 비판한 관리를 추천한 육손의 담대함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치 하이에나처럼 서로를 물고 뜯어 시시비비를 감추고 엉뚱한 방향으로 호도하는 우리 정치판과 사이비 언론의 풍토를 비웃는 것 같다. 


예로부터 ‘재상의 뱃속은 큰 배를 담고도 남아야 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육손이 보여준 담대한 정치적 풍도(風度)와 그런 정치가를 필요로 한다. 


선택의 순간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절박해지겠지만, 역사의 평가는 늘 담대함의 편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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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내년 1월 개봉 예정인 김성훈 감독의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 주인공 지대한군(12)은 8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연기신동이다. 김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찾아간 안산 지역다문화센터에서 이 어린이를 만났다. 스리랑카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지군은 연기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던 아이였다. 예능에 소질이 있는 어린이들을 물리치고 백지상태에서 6개월 동안 발레와 노래 등을 연습한 지군은 지난 7일 영화제작발표회에서 “춤출 때 생각처럼 되지 않아 속상했다”며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 영화는 3류 뮤지컬 감독(김래원 분)과 천부적인 노래실력을 가진 다문화가정의 어린이 영광(지대한 분)이 뮤지컬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영화 <슈퍼스타>에 출연하는 김래원과 아역 배우 지대한군. (출처: 경향DB)


지군처럼 국제결혼으로 태어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출생아는 국내 전체 출생아의 4.7%로 아기 20명당 1명에 가까운 셈이다. 2050년이면 출생아 3명 중 1명이 다문화가정 출신일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또 국제결혼 부부가 25만쌍이고 그들 사이의 아이는 16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다문화가정 학생은 올해 4만7000명, 내년 5만2000명, 2014년 7만5000명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그러나 진학률이 초등학교 80.8%, 고교 26.5%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실제 다문화가정 학생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 언어소통, 부모의 이혼, 따돌림 등으로 학업탈락률이 40%에 달하고 있어 다문화가정 학생의 비율은 고학년이 될수록 줄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결혼 이주여성이 20만명에 이르고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군에 입대할 나이가 됐지만 경제적, 정서적 기반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2010년 조사에서 다문화가정의 91%가 ‘인종, 피부색, 부모의 출신국가를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고, 불공정하다’고 답한 것이 그 예다. 


무엇보다 다문화가정의 어린이들이 차별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코시안(Korean+Asian)이라는 말도 불평등 의식이 담긴 표현 같다. 우리 주위의 많은 다문화가정 어린이들 가운데서 제2, 제3의 지대한군 같은 아이돌스타도 나오고, 사회 지도자도 나오는 것이 대단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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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노동의 고통스러운 현실, 아이들이 살 세상이기에 덮어둘 순 없죠”


노동 현실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노동문학과 노동문제를 다루는 작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건 애석한 일이다. 그런 현실의 한구석에 작지만 희한한 풍경이 있다. 일군의 어린이 책 작가들이 노동자들의 시위와 집회에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나타나는 것이다. 더 작가(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모임)의 회원들. 


그들은 스스로를 ‘못난이들’이라고 부른다. 동화라는 장르가 대단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들의 행동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든 않든 상관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못난이들. 못난이 셋을 만났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모임’(더 작가)의 김하은, 최덕규, 박효미 작가(왼쪽부터). 더 작가는 지금까지 민주주의, 재개발,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룬 어린이책 <박순미 미용실> <비정규씨, 출근하세요?>를 내놓았다. (출처; 경향DB)



김규항 = 언젠가 비없세(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가입 단체 이름을 훑어보다가 더작가 이름을 발견하고 이게 뭘까 했는데 어린이책 작가들이라고 해서 놀랐어요. 처음엔 실제 작업보다는 운동에 전념하는 유별난 사람들이려니 했던 것도 같고요.(웃음) 2008년에 만들어졌는데 회원이 얼마나 되나요.


박효미 = 정회원과 준회원이 있는데요. 정회원만 200명 정도예요. 어린이책 작가 모임이니까 작가와 화가만 정회원 자격이 있어요. 습작생도 포함해서요. 아무리 이름난 평론가나 편집자들도 다 준회원입니다.(웃음)


김규항 = 그거 괜찮군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보다 어떤 등급의 사람인가를 중시하는 세태 속에서요. 회원들의 정치적 성향은 어떤가요.


박효미 = 정치적인 성향은 크게 보면 비슷한데 스타일은 다양한 편이에요. 올봄에 쌍용차 와락에서 책읽어주기 모임을 했는데 그쪽에 열심인 분들은 시위나 집회엔 오지 않는 편이라든가. 그러나 적어도 두 가지는 공유하죠. 아이들이 좀더 행복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어린이 책 쪽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동심천사주의’에 대한 반대. 


김규항 = 아이들에게 맑고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고 들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죠. 그쪽 작가들과의 관계는 어떤까요. 


박효미 = 오래 전에는 갈등도 많았다고 하는데 저희에 와서는 워낙 경계가 선명해져서요. 서로 만날 일도 없고 출판사도 갈리는 편이고.


김규항 = 사회에서 반공주의가 퇴조하듯 어린이 책에서 동심천사주의도 퇴조하는 것 같습니다. 더작가 이름으로 책을 두 권 냈는데 하나는 평화박물관에 또 하나는 비없세에 인세를 전액 기부했습니다. 이런 결정은 어떻게 합니까.


박효미 = 조직적 의결 같은 건 없어요. 저희는 정관이나 강령 같은 걸 가진 조직이 아니라 그냥 커뮤니티니까요. 네 명의 운영진이 할 일을 제시하면 동의하는 작가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김규항 = 프로젝트로 움직이는군요. 조직의 체계는 있는데 실제 일은 제대로 안 되는 경우보다 낫습니다. 평화 문제를 다룬 어린이 책은 꽤 있었지만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책은 없었어요. 


박효미 = 지난해 3월에 새 운영진이 만들어지면서 도움말을 구하려고 송경동 시인을 만났어요.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선생을 소개받았고 김 선생에게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세 번 강의를 들으면서 이거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김규항 = 다들 비정규 비정규 하지만, 이게 자세히 들어가 보면 자본과 국가 측에서 워낙에 교활하게 만들어놓은 체계라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복잡하고 공부할 게 많잖아요. 


박효미 = 운영진 입장에선 해보자는 이야기는 나왔지만 안했으면 하는 마음도 컸어요.(웃음)


최덕규 = 저희가 작가들이다보니 보편적인 노동 문제에 대해 체험도 적어서 피상적으로 될까 걱정도 되었고요. 


김하은 = 작업을 준비하면서 실제 노동자를 만났을 때 그 삶의 고통이 주는 무게가 너무 컸어요. 나도 짓눌리는 느낌인데 이걸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작업을 대체 어떻게 하나 막막했죠.


박효미 = 결국 하게 된 이유는 하나였어요. 이 현실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기 때문에 덮거나 미루어둘 순 없다.


김규항 =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시민이자 노동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시민의식이나 시민교육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노동자 의식이나 노동 문제에 대해선 가르치지 않죠. 우리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인데요.


김하은 = 책도 없고 학교 수업에서도 전혀 없어요. 엄마들이 아이 초등학교 들어갈 땐 다 일류대학에 가길 바라고 뭔가 남과는 다르게 살길 바라지만 그렇게 되는 아이는 반에서 고작 한명 될까 말까 하거든요. 저희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곤 해요. 이게 너와 네 친구들이 살 세상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화려하고 멋진 삶은 특별한 소수의 삶일 뿐이다. 늘 염두에 두고 있다가 어느 노동자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저건 저 사람들이 뭘 잘못해서 그래, 잘 못 살아서 그래 강 건너 불구경하듯 생각하면 안 된다. 바로 네 문제이고 너희가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한다. 


김규항 = 가정 노동교육의 모범사례입니다.(웃음) 고래가 벌이고 있는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항목 중에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입니다’라는 게 있는데요. 경향신문에 나갈 때 결국 ‘노동자’라는 표현이 빠졌지요. 편집부에서 독자들이 거부감을 가질 우려를 표시했고 저희도 시작이니 무난하게 가자고 수용했던 건데요. 조·중·동도 아니고, 경향 독자면 진보적인 편이라고 하는데도 아직 그런 형편이죠. 


경향신문, `고래가 그랬어 교육연구소'의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캠페인 참가자들 (출처 : 경향DB)


최덕규 = 처음에 노동 이야기가 나와서 열댓명 작가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할 때도 의견 차이가 많았어요.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작가들이 있었고 젊은 작가들 중에는 지금 현실에서 노동이 뭐가 신성하냐 그냥 돈벌이일 뿐이고 아이들도 일찌감치 그런 생각을 굳혀간다는 이야기가 많았고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아이들의 현실의 차이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하은 =이번 책을 읽은 아이들이 마트에서 일하는 분들이 전과는 달리 보이더라고 해요. 전엔 시식 코너에 놓인 먹을거리 이런 게 눈에 들어왔다면 이젠 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대요. 우리가 이런 식으로 하나씩 아이들에게 던져주면 자라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될 거라 기대해요.


김규항 = 노동 현실에 대해 적선의 관점과 연대의 관점이 있죠. 둘은 호의적이라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가치인데요. 얼마 전 많은 사람들이 개탄했던 공지영씨의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관련한 일도 그 본질은 공지영씨가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연대가 아니라 적선의 태도를 가진 거였죠. 아이들에게 노동을 이야기한다는 건 결국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인데요.


박효미 = 개인적으로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인데요. 노동과 관련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동화로 그리다보면 그 현실에서 살아가는 아이를 등장시키게 되거든요. 그 아이를 동정의 대상으로 만드는 건 제 스스로 용납할 수 없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고민하다가 원고를 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김규항 = 심정은 이해하지만 버리진 말고 천천히 개비하시죠.(웃음) 실은 고래도 ‘어린이 노동 교과서’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유럽은 노동교과서가 없는 나라가 없고 심지어 미국도 사회 교과에 들어있던데 우리는 쌓여진 성과가 전무하다시피해요. 그래서 더 어렵고요. 마음이 급한 만큼이나 천천히 제대로 가려는 중입니다. 


김하은 = 그나마 아이들이 책을 좋아해주는 것 같아 다행이긴 해요. 저희 집 아이가 책을 주면 읽고나서 돌려주는 책과 돌려주지 않고 자기 책꽂이에 꽂는 책이 있는데 이건 책꽂이도 아니고 책상에 놓고 자주 보더라고요.


김규항 = 혹시 아이가 엄마의 의중을 살피는 건 아니겠죠?(웃음)


김하은 = 아니에요. 그렇게 눈치라도 보면 제가 편하게요.(웃음)


김규항 = 그런 말씀을 왜 드렸느냐면 우리 사회는 ‘좋은 어린이책’이라는 게 어른 기준이잖아요. 어른들이 아이에게 좋다고 여기는 책이 좋은 어린이 책이죠. 그래서 좋은 어린이책이라고 뽑힌 책들 중엔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거기에는 또 어린이책의 구매자가 어른이라는 부분이 분명히 숨어 있어요. 누구도 공공연하게 말하진 않지만 누구나 다 생각하고 마케팅의 기준이 되고 그러죠.


박효미 = 어린이 책의 음험한 이중성이죠. 


최덕규 = 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좋은 어린이 책이라고 생각해요.


박효미 = 전 좀 달라요. 작가로서 제가 생각하는 좋은 어린이책은 이게 세상에 나올 만한 가치가 있는가가 중요해요. 그게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에 내 책이 어린이에게 갔을 때는 정말 재미있어야 한다. 그런데 재미가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자극적인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거죠. 저희 아이도 자라면서 그래요. 정말 좋은 책은 나중에도 생각이 나. 그런데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어떤 책은 생각이 안나. 


최덕규 = 동의해요. 가치가 중요하죠. 그런데 그런 판단의 주체는 결국 아이라는 것이죠. 어른이 볼 때는 조금 유치해도 아이가 재미있게 본다면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거죠.


김하은 = 두 분 이야기를 하나로 묶으면 되겠는데요.(웃음) 저는 언제나 가장 좋은 책은 불편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해왔어요. 한번 더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책. 어린이 책에선 그런 책이 참 적다가 근래 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여전한 흐름도 있죠. 엄마들이 도서관에 학교에서 나눠준 도서목록을 갖고 와요. 그런데 그 목록이 십몇년 전 그대로예요. 너무 한심해서 힘이 빠지죠.


김규항 = 한심한 목록도 문제지만 목록이라는 것 자체가 가진 폭력성 같은 것도 있지 않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도서목록을 만드는 사람들의 용기가 잘 이해가 안갈 때가 있어요. 부러운 건가?(웃음)


박효미 = 그런데 그나마 목록이라도 없으면 그냥 마케팅으로 가버리거든요. 


김규항 = 그 역시 목록 아닐까요. 시장의 목록. 예전에 권정생 선생이 당신 책이 <MBC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 선정된 걸 거부하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죠. “왜 텔레비전이 서점에서 스스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빼앗으려 하는가.” 선생의 우려는 현실에서 충분히 나타나고 있죠. 사람들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것이거나 광고가 많이 나는 책 아니면 잘 안 사려 해요. 시장의 목록에 사로잡힌 거죠.


박효미 = 스스로 책을 고르는 힘이 적어지니까 책에 대한 인식 수준도 떨어져요. 동화와 관련한 어머니들 모임에 강연을 가보면 그런 걸 체감하곤 해요. 심지어 ‘전집이 뭐가 나쁘냐’고 말하는 분들도 오랜만에 다시 만나고 있고요.(웃음)


김규항 = 시를 쓰다가 마흔이 넘어 어린이책을 시작한 어느 작가분이 그러시더군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쓴다는 게 속으로 한번 삭이는 과정이 필요해서 젊었을 때는 어려웠던 것 같다. 어린이 책 작가가 갖는 고유한 고뇌가 느껴졌어요.


김하은 = 작품을 쓰다보면 나에겐 없다고 생각했던 게 발견되거나 폭로되죠. 나는 이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어느새 주인공이 그렇게 간다거나. 내 어떤 부분이 그걸 따르고 있는 거죠. 그걸 아이들에게 드러낸다는 게 겁이 나서 미뤄놓거나 포기하기도 해요. 그런데 그게 쓸 때는 잘 모르는데 꼭 써놓고 보면 드러나요.(웃음) 


박효미 = 아이가 항의도 해요. 책 죽 읽어보고 작가의 말 읽어보고 ‘엄마는 왜 우리한테 이러지 않으면서 이렇게 쓰느냐’ 막 그러고.(웃음)


김규항 = 진보적인 부모들이 귀가 쫑긋할 이야기군요.(웃음) 그럴 땐 어떻게 하세요. 


박효미 = 아이의 항의를 인정하고 그러죠. 엄마가 완벽하다는 게 아니다, 엄마도 생각과 행동이 다른 점이 여전히 많다, 다만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방향을 갖고 있고 노력하는 거다. 


김하은 = 저희 같은 사람들 아이들은 일찍부터 보고자란 게 있어서인지 대개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수긍이 안되는 상황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죠. 저희 아이도 언젠가 한번 학교 선생님이 아이가 부담이 되었는지 너희 어머니 뭐하니 하더래요. ‘글 쓰시는데요’ 하니까 ‘아 그렇구나’ 하시더래요.(웃음)


김규항 = 저도 사회문제를 비판하고 하지만 그런 의견과 실제 삶이 일치하는지 영판 다른지 아이들이 늘 보잖아요. 그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살다보면 사람 꼴을 잃지 않고 사는 데 여간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에요.(웃음) 동심이라는 건 참 무서운 거죠. 


김하은 = 동심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해요. 


박효미 = 동화를 쓴다고 하면 동심이 살아있구나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 동심은 언제나 동심천사주의를 전제로 하죠. 동심이란 벌거숭이 임금님을 보고 벌거숭이라 말하는 건데요.


최덕규 = 동심을 순수라고 하는데 동심은 오히려 거침없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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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검증은 매우 중요하다.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각 후보의 정책과 공약, 과거 행적 등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공영방송 후보 검증 작업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KBS에서 후보 검증 프로그램 하나가 편파성 시비에 휘말려 기자들이 제작거부를 결의하는 등 사달이 벌어졌다. 


전말은 이렇다. KBS는 지난 4일 <시사기획 창>을 통해 ‘대선 특별기획-대선 후보를 말한다’란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이튿날 KBS 임시이사회에서 여당 추천 이사들은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한 편파방송이었다고 공격했다. 이 자리에는 본부장이나 임원도 아닌 김진석 대선후보진실검증단장이 책임자로 불려왔다. 길환영 신임 사장은 편파 시비의 소지가 있다, 게이트키핑에 문제가 있다며 동조 발언을 했다. 튿날 김 단장은 사의를 표명하고 잠적했다. KBS 기자협회는 이날 기자총회를 열어 압도적 비율로 제작거부를 결의했다. 이유는 대선후보진실검증단에 대한 부당 개입 규탄, 대선 보도의 공정성 확보와 제작 자율성 수호였다. 


길환영 사장 반대하는 KBS노조 (출처: 경향 DB)


KBS, MBC 두 공영방송의 선거 관련 보도가 공정성을 잃고 특정 후보에 치우친 것은 새로운 게 아니다. 때마침 그 편파방송 때문에 사상 초유의 대선 직전 제작거부 결의 사태까지 초래됐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 편파성 문제가 거꾸로 여당 추천 이사들로부터 제기됐다는 부분이다. 


문제는 그들이 제기한 편파성의 설득력이다. 이들은 박근혜 후보에 대한 검증 편이 문재인 후보에 비해 너무 속속들이 파헤쳐졌다는 것 등을 질타했다고 한다. 이는 이사회의 권한을 크게 넘어선 방송 편성과 내용에 대한 간섭이다. 본디 이 후보 검증 방송은 길 사장 등의 부정적 태도로 보류되는 곡절 끝에 나간 것이었다. 방송 내용도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등 관련 의혹과 역사관 등을 다뤘고, 문 후보의 경우 한·미 FTA 등에 대한 말바꾸기 논란을 조명하는 등 사실에 기초해 양측의 문제들을 균형있게 다루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편파 문제가 제기된 것은 지난달 새누리당 문방위원들이 방송사들에 몰려가 ‘편파보도’에 항의했던 일을 떠올리게 만든다.


KBS 대선후보진실검증단은 이날 낸 성명에서 “무엇이 편파적이며 게이트키핑을 못했다는 게 무슨 말인가”라고 물었다. 또 “(이 프로는) 평균 14년차의 기자들이 고민과 토론을 하며 내놓은 기획물”이라며 “정치적인 충성심에 눈이 멀어 공영방송을 망치고 기자정신과 저널리즘을 모욕하는 짓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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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무상보육(누리과정)이 3~5세로 확대되지만 수용 시설의 절대 부족과 예산 확보 차질 우려로 학부모의 불만과 불안은 커지고 있다. 자녀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는 학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무상보육 확대로 유치원에 가려는 어린이가 급증하면서 입학 경쟁률이 높아진 탓이다. 게다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내년에 늘어날 보육료 부담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무엇보다 정치권이 필요 예산이나 시설 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무상보육 확대를 추진한 결과다. 후속대책을 제때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정부에도 책임이 있음은 물론이다. 지금이라도 정치권과 정부는 사태 해결에 신속하게 나서야 할 것이다.


한 학부모가 유치원에서 열린 내년 입학생 추첨에서 당첨번호를 뽑은 뒤 기뻐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최근 서울 등 수도권의 유치원에서는 치열한 입학 경쟁이 펼쳐졌다. ‘추첨대란’ ‘추첨전쟁’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무상보육이 확대되면서 유치원 입학 희망자는 크게 늘어났지만 수용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치원들이 같은 날 입학 추첨을 하는 바람에 가족은 물론 친·인척까지 동원해 여러 곳에 지원한 학부모들도 있었다고 한다. 경쟁률이 높아 추첨에서는 당첨자보다 탈락자가 더 많았다. 특히 추첨에서 탈락한 맞벌이 부부의 경우 자녀 보육이 당장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어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원망이 클 것이다. 어떻게 3세 유아 때부터 이 같은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지 참으로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내년에 누리과정이 확대되지만 필요한 예산 확보는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 보육비를 마련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정부에 추가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미 충분한 지원을 해줬다며 맞서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부 지방의회는 내년도 교육청 예산 심의를 대선 이후로 보류하는가 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짜서 올린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삭감까지 하고 있다. 이 같은 지방의회의 움직임은 정부 지원을 더 많이 받기 위한 ‘항의’로 보이지만 학부모로서는 행여 ‘보육대란’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누리과정 확대는 3세부터 사실상 공교육이 시작된다는 데 의미가 크다. 따라서 준비 부족으로 나타난 문제에 대해서는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학부모의 불만이나 불안을 없애면서 새로운 제도를 조기에 안착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수용 시설을 크게 늘리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보육비 부담을 놓고 벌이는 갈등도 원만하게 정리돼야 한다. 두 가지 사안 다 결국은 돈, 예산의 문제다. 정치권이 나서서 적절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 이유다. 결자해지 차원에서도 그렇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알아서 하도록 놔두는 것은 무책임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볼썽사납게 힘겨루기나 할 때가 아니다.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대화로 타협안을 도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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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어제 부산에서 안철수 무소속 전 후보의 지지자 모임에 참석해 한 표를 호소했다. 부산에서 열린 의원총회에는 당초 예상보다 20명이 넘는 의원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에 대한 적극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2인3각 경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문 후보 측 우상호 공보단장은 “주말을 기점으로 역전의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그러나 문 후보 측 계산법은 아직 희망사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안 전 후보가 본격적으로 지원에 나서면서 ‘잘해야 해볼 만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문 후보의 지지율을 많아야 3~4%포인트가량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판세를 뒤집을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안 전 후보가 지원에 나설 적절한 시점을 놓쳤다거나 문·안 두 사람 지지층의 화학적 결합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다만 안 전 후보의 지원 형식과 내용뿐만 아니라 문 후보 측이 내놓는 대응책은 변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앞서 정치권에 ‘개인 안철수’가 아닌 ‘안철수 현상’을 보라고 주문한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문·안의 연대와 공조만으론 국민을 감동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문재인-안철수, 아름다운 동행 (출처: 경향DB)


문 후보로 상징되는 ‘친노 세력’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은 여전하다. 친노의 핵심인 이해찬 대표가 용퇴했고, 참여정부 출신 친노 인사 9명이 선거전에서 2선 후퇴를 천명했으나 중도·부동층의 많은 유권자들은 친노가 아직도 문 후보의 배후에 진을 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않고 있다. 친노 인사들로선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근거가 없는 얘기도 아니다. 참여정부의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가 페이스북에 ‘민주당과 참여정부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던 인사들은 기득권을 내려놓자’고 올린 글이 묘한 파장을 일으키는 것도 그런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문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제대로 겨뤄볼 요량이라면 ‘안철수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문 후보 측이 제시한 비례대표 증원이나 의원 정수 조정, 중앙당 폐지 등 정치쇄신은 응당 필요하다. 승리할 경우 거국내각을 구성한다는 약속도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선거 이후가 아닌 지금 당장, 국민들의 손에 잡히는 쇄신책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친노 인사들의 주요 임명직 진출 포기를 비롯해 친노 색채를 빼고 기득권을 내려놓는 구체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안 전 후보는 교수직도, 후보직도 내던졌다. 더 이상 뭘 망설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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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여수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소설집과 <그대의 차가운 손>이라는 장편소설을 지었던 한강. 40대 초반의 그녀가 지난 2007년에 자신이 지은 곡을 직접 부른 CD와 노래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한강, 이름이 먼저 가슴을 서늘하게 스치고 지나갔고, CD에 담긴 그녀의 음색에 이내 젖어들어갔다. 최소한 반주 사이로 생 목소리가 귀청을 훑으며 내려와 가슴 깊은 곳에 박혔다. 이 노래의 음반작업을 지휘한 작곡가 한정림씨는 그녀에게 “절대로 노래를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불러요”라고 주문했다. 한강은 “그냥 있는 그대로라니… 그 말이 더 무서웠다”고 전한다.


“눈물도 얼어붙네/ 너의 뺨에 살얼음이// 내 손으로 녹여서 따스하게 해줄게/ 내 손으로 녹여서 강물되게 해줄게// 눈물도 얼어붙는/ 12월의 사랑노래.”


그 노래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12월 이야기’다. 한강은 1980년 1월 서울로 이사오면서 첫인상으로 ‘넓고 춥다’고 했다. 유리창의 성에, 얼어붙은 길, 딱딱 소리치며 이가 부딪치는 추위, 그래서 겨울만 되면 새 스웨터를 사고 싶었다고 한다. 겨울은 그렇듯 따듯함과 차가움이 격렬하고도 애절하게 충돌하는 계절이다. 언 몸을 녹이는 아랫목, 외투 안에 품고 가는 풀빵봉지의 온기, 무심코 스친 손끝의 따스함이 간절하다.


 




한강은 연극 <12월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문득 인디언 달력을 떠올렸다. 체로키족은 12월을 ‘다른 세상의 달’이라 했고, 수우족은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이라 했고, 샤이엔족은 ‘늑대가 달리는 달’이라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12월을 뭐라 할까? 아마도 ‘예수가 아기로 다시 태어나는 달’ 정도가 되지 않을까. 12월은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면서 ‘첫마음’을 기억해야 하겠지. 예수가 태어났을 때 들판의 목자들에게 한 천사가 나타났다고 한다. 와서 “메시아가 탄생했으니 가서 경배를 드리라”고 전했다지. “한 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 위에 누워 있을 텐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라 했다지. 그래서 12월은 짐승의 밥으로 오신 분, 무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그분을 기억하는 달이겠지.


겨울의 복음은 ‘따뜻함’이다. 아기를 품은 포대기처럼 따뜻한 손끝이다. 그래서 한강은 12월을 “눈물도 얼어붙는 달, 내 따뜻한 손으로 네 뺨의 살얼음을 녹여주고 싶은 달”이라고 적었다. “서늘한 눈꽃송이가 내 이마에 내려앉아 녹아내리는 달”이라고 했다. 그건 격렬한 열정이 아니다. 은근한 미소이며, 조용조용 ‘어제와 다른 내일 곧 오리라’는 희망이다. 늑대들마저 마중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랑’이다.


한강은 ‘서울의 겨울 12’라는 시에서 이렇게 전한다.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네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서울에 첫눈이 내린 다음날, 안철수가 대통령 후보 사퇴 선언을 한 뒤 13일 만에 ‘정치쇄신과 정권교체’를 위해 문재인 후보를 전폭적으로 돕겠다고 나섰다. 새누리당에서는 황급히 안철수의 합류를 평가절하하느라 정신없다. 평생을 대통령의 딸로, 퍼스트레이디로, 보수정당의 상층부에만 머물렀던 자칭 ‘여성대통령’ 후보와 평생 정치와 인연 없이 살다가 2012년에 만난 문재인과 안철수는 사뭇 다른 동기와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이 사람들은 각각 누구에게 복음이 될까, 잠시 생각해 본다. 문재인은 서민을 위해, 안철수는 청년을 위해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알 수 없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문재인과 안철수 캠프의 면면을 보자면 도종환, 안도현, 조국, 공지영, 유홍준 등이 포함된다. 박근혜 후보의 친구는 누구일까? 이회창, 김영삼, 이인제, 한광옥, 한화갑… 이름만 들어도 ‘퇴행적’이다. 고령화 시대에 걸맞은 ‘노인군단’이란 말인가. 새누리당에 입당한 손수조는 이 틈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예수가 가난한 이들에게 전했다는 ‘하느님 나라’를 ‘복음’이라고 부르는데, 실상 예수보다 먼저 태어난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전한 ‘무력에 의한 로마의 평화’도 ‘복음’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황제가 전한 복음과 예수가 전한 복음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맨발의 가난한 그리스도를 선택할 것인지, 홍포를 두른 황제를 부러워하면서 따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안철수는 “100년이 지나면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잠깐이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얼마나 귀한 사람들인지’ 알아야 한다는 요청이다.


이제 우리 뺨에 맺힌 살얼음을 녹여주고 강물 되게 해주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오래된 나뭇가지는 뚝뚝 부러지고, 다른 세상이 열리는 1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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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 | 귀농본부 텃밭보급소장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날 눈이 쏟아지는 길을 차 몰고 나섰다가 5분 거리를 빠져나오는 데 1시간이나 걸렸다. 겨울엔 돌아다니지 말고 겨울잠이나 자는 게 최상책이라는 걸 실감한 날이었다. 분명 대설주의보는 인간들에게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서 자숙하며 지내라는 하늘의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시간 낭비, 기름 낭비, 탄소 배출에 스트레스로 기운만 빠지니 자연을 거스른 대가가 너무 크다. 집에 돌아와 마당 수북이 쌓인 눈을 치우려는데 삽살개가 온갖 귀여움을 떠는 모습에 비로소 첫눈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염화칼슘 뿌린 도로의 칙칙한 눈발은 한숨만 나오게 하지만 흙마당과 소나무 잎에 쌓인 순백의 눈발은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


김장 배추를 수확하면 대개 다듬은 배추 겉잎들을 아무렇게나 밭에다 버리고 간다. 풀 나지 말라고 깔아놓은 덮개용 비닐도 그냥 방치한다. 이런 것들은 벌레와 병균이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하는 이불 역할을 한다. 탄저병 걸린 고춧대도 밭에 그대로 둔다. 이듬해 또 탄저병에 걸리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겨울의 맹추위는 생태계에서 중요한 청소꾼 역할을 한다. 벌레도 죽이고 균도 죽이고 소독 역할을 한다. 그래서 무서운 동장군이 밭 곳곳을 쓸고 가도록 밭을 깨끗이 청소해 두어야 한다. 특히 도랑 청소가 중요하다. 도랑은 벌레가 월동하기 더 좋다. 여름 장마로 인해 도랑 바닥이 높아져 있는데 그 흙을 밭에다 뿌려주면 밭 흙을 좋게 해준다. 도랑의 흙은 숲의 좋은 거름 흙이 비에 쓸려와 쌓인 것이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도랑의 잡초 검불을 없애 통풍 잘되게 하고 바닥을 준설했으니 배수에도 좋다.



보리 이모작이 안되는 추운 지방에선 논에도 수확 뒤 흙을 깊게 간 다음 물을 담아둔다. 물을 담아두면 논의 대표적인 풀인 둑새풀이 줄고 논 흙은 얼었다 녹았다 하며 고와지고 벌레 등 생물다양성이 풍부해진다. 새들이 찾아와 벌레를 잡아먹고 똥을 싸니 거름도 된다. 


그래서 농사의 끝은 수확이 아니라 수확 후 청소를 깨끗이 하거나 흙을 갈아두는 것이다. 땅이 얼기 시작하는 동지 전에는 꼭 해야 하는 논밭청소는 어쩌면 농사의 끝이 아니라 더 중요한 시작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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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전남대 교수·철학

민주화 이후 정치인들이 대통령 선거 때마다 홀대받고 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끝없이 비정치인을 현혹한다. 정주영, 조순, 이회창, 정몽준, 문국현, 고건 등은 비정치인의 이미지로 대통령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오직 이명박만 ‘반정치, 친경제’ 구호로 성공했다. 하지만 시장논리로 무장한 그의 실용정치는 소수 강자에겐 성장의 결실을, 다수 약자에겐 고통과 절망을 안겨주는 부패 정치로 끝났다. 그래선지 시장에서 성공하고도 깨끗한 경제인 안철수가 정치개혁의 적임자로 호명된다.


국민의 부름에 응답하며 희망의 상징적 기호로 급부상한 안철수가 맥없이 주저앉다 다시 일어서고 있다. 사퇴 후 자신이 내세운 새 정치를 포기한 듯했지만 단일화 마무리로 새 길을 찾은 것이다. 안철수가 생각하는 새 정치의 핵심은 부패 정권과 기득권 정치의 심판이다. 새 정치는 특권층과 부유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사다리는 빼앗고 미끄럼틀만 내미는 시장독재정부를 끝장내기 위해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막음과 동시에, 지역을 볼모로 낡은 체제와 썩은 기득권을 지키려고 국민을 우롱하는 정치판을 갈아엎어야 한다.


 




그런데 ‘진심의 정치’를 위한 ‘안철수의 약속’에서 제안된 7대 비전, 26개 정책 과제, 178개 정책 약속을 하나씩 따져보면 수사만 현란할 뿐 새로울 것이 없다. 그의 정책 방향은 좌파나 우파 혹은 진보나 보수가 아니라 둘 사이의 틈을 메우는 중도다. 실제로 그의 정책 내용은 새누리당과 함께할 수 있을 정도로 시장친화적이다. 그러나 안철수는 새누리당의 부도덕성과 토목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국민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민주통합당과의 연대를 통해 정권심판을 먼저 한 다음 정당을 해체하고 새판짜기를 하겠다는 치유 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 전략은 원칙적으로 바르지 않다. 새 정치를 하려면 오래전에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서 두 기득권 정당을 향해 ‘헤쳐 모여’를 선언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동지를 많이 모아 대통령이 되면 최선이고, 실패하면 정당과 의회에서 고난의 길을 가야 한다. 하지만 너무 빨리 정치권력의 극점에 도달한 안철수는 쉬운 길을 택했으며 결국 그가 심판하려던 기득권 정치에 의해 밀려나고 말았다. 정권교체보다 기득권 수호를 중시하는 민주당의 일부 권력자들과 민주당의 지지자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다. 안철수의 생각은 기득권자들보다 새롭지만 민주당 지지자들보단 진부하다.


후보직을 사퇴한 후 안철수는 한동안 딜레마에 빠졌다. 만약 정권심판을 위해 문재인을 최대로 지원할 경우 구정치 심판이 아니라 담합이라는 비난이 그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다. 반대로 정치판과 거리두기를 위해 문재인을 소극적으로 지원할 경우 정권심판이 아니라 정권연장의 책임이 그를 추궁할 것이다.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고 새 정치의 대변인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거듭나기 위한 그의 고민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 오후 그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출구로 단일화의 완성을 선택한다. 정권과 정치를 함께 바꾸겠다는 약속을 기초로 문재인의 손을 다시 잡은 것이다. 올바른 선택이지만 감동이 부족하다.


안철수는 식당이 아니라 광장에서, 문재인이 아니라 민주당으로부터 새 정치 프로그램을 약속받아야 한다. 정권을 바꾸고 기득권을 해체하려면, 헌법이 규정한 것처럼 국회의원이 지역대표가 아니라 국민대표가 되도록 비례대표 의석을 최대한 늘리고 지역구는 최소로 줄일 것, 소수자의 권리를 대변할 수 있도록 정당투표의 효력을 강화할 것, 정치꾼들의 단일화 놀이를 차단하기 위해 대통령 결선투표를 도입할 것, 이러한 개혁을 위해 집권 여부와 무관하게 선거 후 6개월 안에 민주당을 해체하고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문서에 서명하라고 밀어붙였어야 한다. 하지만 아낌없이 주는 단일화로 잔치가 싱거워졌다. 이제 남은 것은 ‘아름다운 동행’이다. 여기까지 올라온 사다리를 버리고 온몸을 던지는 안철수와 문재인, 그리고 심상정의 동행이 갖는 큰 뜻과 가치를 알아보는 성숙한 시민을 믿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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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우|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정책적 목적은 실패하고 정략적 목적은 성공했다. 대다수 국민들과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날치기 편법으로 미디어법을 개정한 뒤 보수 신문사들에 안겨준 종편 방송의 허가 과정과 출범 1년에 대한 평가다. 정부와 새누리당의 정략적 의도는 보수적인 여론 지형의 완성이었다.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글로벌 미디어기업 육성, 다양한 콘텐츠 제공,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은 겉으로 내건 정책적 목적일 뿐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정책 목적은 그럴듯하게 포장해 방송 진출 욕심에 눈이 먼 보수언론을 앞세워 연일 부각시켰고, 정략적 속셈은 철저히 감추었다. 학자들을 앞세워 온갖 거짓 자료와 궤변을 동원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책적 목적은 달성하면 좋겠지만 안되더라도 그다지 절박하지 않다. 올해 큰 선거 때 이용하려고 아직 준비도 덜 되어 있는데도 개국을 서둘렀다. 


그러나 신문사들에 방송 진출은 달콤한 선물이 결코 아니었다. 시청률은 참담한 형편이고 적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양질의 콘텐츠는커녕 재방송을 통해 근근이 방송시간 때우기에도 급급해한다. 드라마 편성을 대폭 줄이고 제작비가 적게 드는 시사·보도·대담 프로그램 편성을 크게 늘렸다. 여기에는 신문사의 취재보도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지상파 뉴스 형식에서 벗어나 오락성 강한 쇼처럼 만들었다. 공정한 보도와 비판이라는 저널리즘 정신은 아예 없다.



서울 용산전자상가에 전시된 TV에 종편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출처; 경향DB)

 



미국의 여론 시장을 왜곡하고 보수적 목소리를 퍼뜨리는 폭스뉴스처럼 될 것이라는 불행한 예상이 현실로 나타났다. 폭스뉴스의 시장 전략은 편향적이고 선동적이며 자극적인 보도다. 종편은 대선을 앞두고 편향적 여론몰이에 앞장서고 있다. ‘안철수 후보 사퇴’에 항의하는 20대 남성의 투신 소동을 1시간여 동안 생중계하거나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로 내보내기까지 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갈등을 부추기고 지지세력을 분열시키기 위한 의도이다. 종편 4사는 지난 1년 동안 총선이나 대선과 관련해 선거방송심의위로부터 모두 22건의 제재를 받았다. 이들은 보수 편향의 출연자들을 앞세워 보수세력을 결집한다. 심의기구로부터 가장 많은 제재를 받고 있는 채널A의 <박종진의 쾌도난마>가 대표적이다. 시청률이 낮다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종편의 많은 시사 프로그램이 쇼로 포장되어 재미를 주니 쉽게 우리의 의식으로 파고들어온다. 편향적 내용일지라도 심리적 저항감이 적다는 것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진 시청자들은 정치에 관심이 높기 때문에 여론 파급력이 크다. 더구나 방송은 신문보다 훨씬 임팩트가 강하기 때문에 여론을 왜곡할 우려가 매우 높다. 선거가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을 때는 판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종편이 알아둘 게 있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보도·시사 프로그램으로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시장이 그리 크지 않다. 폭스 채널처럼 편향적 선동 방송을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시장에서 성공할 수는 없다. 지상파의 영향력은 여전하고 ‘뉴스타파’ 등 대안 매체들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편이 뉴스와 시사를 중심으로 하는 방송으로 자리잡기는 어렵다. 지금 당장 대선이라는 큰 정치적 이벤트에 힘입어 약간의 재미를 보는지 모르지만 지속적으로 큰 시장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선동적 편향 방송을 이어가는 것은 종편사에도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정 세력의 정략적 들러리 구실이나 하니 국민들의 불신과 외면은 날이 갈수록 깊어질 것이 분명하다. 최소한의 공정성도 지키지 않고 여론 시장을 교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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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사람이 살며는 몇백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영화 <서편제>(1993년)에서 부녀로 출연한 김명곤과 오정해가 시골길에서 부르는 ‘진도아리랑’은 노래가 아니라 시대의 애절한 철학이었다. 


지난 9월 김기덕 감독이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고 수상 소감 대신 부른 ‘아리랑’은 전 세계 미디어를 통해 울려퍼졌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최고상을 받은 순간이었지만 말이 필요없었다. 수상의 기쁨도, 고생스러운 작업에 대한 만감도 ‘아리랑’ 한 소절로 충분했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출처:경향DB)


아리랑은 ‘이상한’ 노래다. 부르는 이의 기분에 따라 슬프게도 기쁘게도 들린다. 빠르기도 ‘고무줄’이다. 시대와 장소, 상황과 상대에 따라 빠르게 혹은 느리게 부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경기아리랑’ 1절을 부르는 데 30초면 충분하지만, 그 울림은 무한하다. 600여년 전 최초의 아리랑인 ‘정선아리랑’ 이후 아리랑은 영혼으로 부르고 가슴으로 듣는 민족의 유산으로 전승되고 있다. 가락과 노랫말이 달라도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고, 부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 부를 수도 있다. 우리말을 모르는 해외동포나 남북한이 함께 부르는 소통의 문화코드이기도 하다. 아리랑은 노래가 아니라 정신이다. 음악이고 문학이며, 민속이고 역사다. 


그동안 아리랑은 너무 흔한 노래여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엊그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계기로 아리랑 전승을 위한 활성화 방안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유산인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기·예능 문화재 지정은 해당 기·예능을 갖춘 보유자나 보유단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아리랑이나 김치·무예 등은 전승인과 전승단체가 많아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를 지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보유자나 보유단체 없이도 문화재 지정이 가능하도록 법개정이 되어야 한다. 문화재청이 내년에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니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또 등재가 이뤄지지 않은 북한의 아리랑도 연구·보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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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전쟁터에 나간 전사는 총이나 칼을 잃어버리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시력이 약해져서 글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절망, 그런 슬픔이 또 어디에 있을까? 


괴로움도 즐거움도 다 책 속에만 있는데, 눈앞에 있는 책의 글자가 안 보인다면, 평생을 책만 읽으며 살아온 사람들은 얼마나 당혹스럽고 세상 사는 재미가 없어지겠는가? 그 시력의 중요성을 글로 남긴 사람이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이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 가장 끔찍한 것은 시력이 약화되어, 자기가 쓴 글이나 남이 쓴 글을 읽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읽지 못한다’는 것은 문자 이상의 뜻을 갖고 있다. 밀턴 같은 천재는 눈이 안 보여도 위대한 작품을 쓸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 자신만 하더라도 남이 쓴 글이나 내가 쓰고 있는 글을 내 눈으로 봐야 사고가 수월하게 진행되어 나가지, 남의 말을 듣고 무엇을 이해할 때 사고는 거기서 크게 멀리 나가지 못한다. 나는 눈을 통해 몽상하고 철학한다. 눈으로 볼 때, 우리는 손으로 교정할 수 있다. 귀로 들을 때 그 교정은 그리 쉽지 않다.”


<책 읽기의 괴로움>에 실린 글이다. 평생을 공부만 하다가 세상을 하직한 김현 선생의 글을 보면 ‘책을 못 보는 서러움’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훗날 <행복한 책 읽기>를 펴냈다. 


독서와 함께 가을비 즐기는 프록터 (출처:경향DB)


내 생각도 그분과 다르지 않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자 행복이라면 보고 싶은 책을 시도때도 없이 보며 살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부럽다고 말한다. 


왜 부럽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정년도 없고 명퇴도 없잖아요.” 그때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 대신 나는 월급도 없고, 연금도 없으며 오로지 정직하게 한 자 한 자 쓴 원고료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것만도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눈이 나빠지고 기억력이 감퇴되면 그게 바로 정년이요, 명예퇴직이다. 눈이 나빠지면 책 읽기는 고사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도 잘 안 보일 테니 얼마나 갑갑하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아직은 나에게 세상 도처에 즐거운 일이 수두룩한 것 같다. 눈이 잘 보이는 것도, 귀가 잘 들리는 것도, 냄새를 잘 맡는 것도, 특히 말을 할 수 있는 것과 다리가 튼튼해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도 하나 하나가 다 행복이다. 그 행복을 더 먼데서 찾다보니 세상은 항상 불만족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눈앞에 펼쳐진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이 순간,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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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 |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조선후기 정조는 군사(君師)라, ‘임금이자 스승’으로 불렸다. 임금이란 지고의 권력자이고, 스승은 최고의 지식인이다. 권력에다 지식을 겸한 ‘군·사’는 얼핏 플라톤의 ‘철학자·왕’처럼 정치가의 이상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조정은 임금의 혼잣말로 넘쳐났다. 어느 신하도 ‘임금이자 스승’인 정조의 말에 감히 대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학자로 알려진 정약용도 실은 정조의 ‘어용 지식인’에 불과했다. 


외려 정조의 통치 행태는 권모와 술수였다. 연전에 발굴된 영의정 심환지와의 비밀편지 속에서 그의 마키아벨리적 면모가 잘 드러났다. 정조가 죽자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세도기의 경직된 반동정치는 조선을 일제의 식민지 처지로 몰아갔다. 그래서 우리는 영·정조 대의 짧은 황금기를 내내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짧은 막간은 정조의 통치 스타일 때문이었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지시하는 ‘헤드십’, 이른바 카리스마 콤플렉스가 잉태한 추락이었다.


 

광화문 광장에 놓이게 될 세종대왕 동상 모습. (출처 : 경향DB)




조선초기 세종에겐 쓸 만한 사람이 없었다. 왕립대학, ‘집현전’을 설치해 인재를 길러야 할 형편이었다. 장관급 신하들의 직함이 여러 개였던 것도 인재 부족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영의정이란 공식 직함 뒤에 ‘겸(兼) 관상감, 겸 대사성, 겸 성균관장’이라는 직책들이 쭉 따라붙는 식이다.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도 막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불륜과 탐욕으로 얼룩진 인물이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최고의 명군’이 된 데는 까닭이 있으리라. 왕위에 오르자마자 첫 번째로 한 말이 ‘의논하자’였다는 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가 인물을 잘 알지 못하니, 좌의정·우의정과 이조·병조의 당상관과 함께 의논하여 관리를 임명하고자 한다”는 <왕조실록>의 기록이 세종 리더십의 성격을 잘 전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학자 박현모는 “신하들의 의견을 들음으로써 그들의 동참을 촉구하는 한편, 정치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더불어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했다.(<세종처럼>) 


그렇다면 정조의 통치 스타일은 ‘홀로 리더십’으로, 세종은 ‘함께 리더십’으로 이름 붙일 수 있겠다. 나아가 혼자 고민하고 혼자 말하는 정조의 통치 행태를 ‘입의 리더십’이라면, 함께 더불어 정치를 행하는 세종의 스타일은 ‘귀의 리더십’이라고도 이를 수 있으리라. 정조의 시대가 막간극으로 끝나버린 것과 세종의 ‘함께 의논하기’ 방식이 500년간 초석이 되었다는 것 사이에는 주목이 필요하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통치자는 지시하고 인민은 이에 복종하는 상명하복 체제가 아님은 물론이다. 국민이 함께 참여하여 의사를 결집해내는 과정의 정치체제이기에 ‘민주-주의’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의 영어식 표현인 ‘프레지던트’의 본디 뜻이 ‘사회자’임은 눈여겨볼 만하다. 즉 대통령이란 위에서 지시하고 명령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입을 열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만드는 사회자, 또는 회의의 조정자라는 뜻이다.


이른바 ‘지식경영 시대’를 맞은 오늘날, 기업가 리더십도 여기서 멀지 않다. “참된 지도자는 사람들을 카리스마로 이끌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조종이 아닌 성실성으로 지배한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정직하다.”(<피터 드러커 자서전>) 팀을 이루어 회의를 통해 의사를 결집하는 것이 기업 경영가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리더십을 갖춘 후보가 없다는 푸념을 종종 접한다. 야당 후보에 대해서는 난관을 돌파하는 카리스마적인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난도 있다. 하긴 사퇴한 안철수, 심상정 후보나 박근혜, 문재인 후보들의 면면도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나는 카리스마가 부재한, 무력해 보이는 정치가들의 출현이야말로 참된 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드는 유쾌한 현장이라고 보고 싶다.


최근 한 언론은 두 후보의 리더십에 대한 조사를 보도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국가원수로서 나라를 대표하는 대외적 리더십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대국민 소통과 친화력 등 소통 리더십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조선일보). 조사를 이끈 한국정책학회 박성희 교수가 “박 후보는 오랫동안 당대표, 유력 대선주자로 주목받으면서 ‘힘 있는 사람’ 이미지가 강하고, 문 후보는 정치인 이미지가 약해 앞으로 소통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고 있다”고 평가한 부분도 눈에 띈다. 이 연구조사에 따르면 이번 선거는 강한 리더십이냐, 약한 리더십이냐를 고르는 셈이다.


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민주주의의 본령에 걸맞은 리더십 선택의 기회로 본다. 차후 한국 정치의 지형이 상명하복적인 정조 리더십의 형태가 될 것인지, 아니면 함께 더불어 행하는 세종의 리더십으로 갈 것인지 판가름하는 분수령 말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의 시대적 의의가 중차대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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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의 언행이 눈길을 끌고 있다. 대선 국면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를 공표하는가 하면 진보적 문학평론가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노골적으로 매도하는 등 어지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가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아래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저항시인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신산의 세월을 거치며 몸과 마음이 많이 상한 것으로 알려진 일흔한 살 노시인의 돌출적 행보가 의아하다. 하지만 그의 이런 변신을 ‘그럴 수 있는 일’로 보고 침묵하기에는 도가 지나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한다. 


가장 큰 문제는 그의 현실인식이 몹시 부분적, 파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 보수단체의 시국강연회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의사를 밝히며 그는 “이제 여자가 세상일 하는 시대가 왔다. 여자에게 현실적 일을 맡기고 남자는 이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박 후보가) 나에게는 ‘원수의 딸’이다. 그러나 총탄에 부모를 잃고 혼자 외롭게 살아온 내공을 높이 사고 싶다”고 했다. 다른 자리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지만 박 후보의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 그 이상의 논리는 찾기 어렵다. 그의 치열한 저항정신을 흠모했던 사람들로서는 실망스러운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보수단체 초청 김지하 시국 강연회 (출처: 경향DB)


물론 민주화 전력 여부와 상관없이 시인도 유권자로서 그 선택은 존중돼야 한다. 우리가 꼭 진보 개혁진영의 구미에 맞는 후보를 김 시인이 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김지하 시인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를 물을 권리가 있다고 본다. 그의 발언이 시와 문학이 아닌 다음에야 근거를 제시해야 하며, 그때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상상력이 아니라 논리와 사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 개혁진영이 박근혜 후보에게 갖고 있는 의구심의 큰 몫은 민주화 의지에 관한 것이다. 그가 뒤늦게 5·16, 10월유신, 인혁당 사건이 헌법가치를 훼손했음을 인정한 것은 여론에 떠밀린 인상이 짙다. 우리의 현실인식은 민주화의 많은 부분이 미완이며 진행형이란 것이다. 기세 좋게 제시됐던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는 본질적 요소들이 사실상 폐기된 상태다. 잠수함 속 토끼 같은 존재여야 할 시인의 인식이 이런 문제들을 감지하지 못한 채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해원 같은 개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의 이런 불완전한 인식은 균형감각 결여와 독선 탓으로 의심된다. 그 단초는 이미 20년 전 변절 논란을 지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란 칼럼에서 찾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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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 일본 총선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과거보다 더 오른쪽으로 경도된 아베 신조의 자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다. 극우 정당 일본유신회 역시 약진할 것으로 점쳐진다. 아사히 신문을 비롯해 일본 주요 신문들은 어제 자민당이 중의원의 과반을 훨씬 웃도는 압승을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앞으로 열흘 동안 부분적인 변동은 있겠지만 사실상 윤곽은 드러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일본 총선 사흘 뒤에 치러지는 한국 대선의 승자가 누가 되든 일본의 우경화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야 대선 후보들은 일본 극우·보수세력의 집권에 대해 이렇다 할 관심과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대선 후보 첫 TV토론회에서 박근혜·문재인 후보는 모두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인 입장을 촉구하는 한편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 


아베 자민당 총재가 최근 입장을 다소 누그러뜨렸다고는 하지만 총선 압승의 기세를 몰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2월22일)’을 일본 정부 차원으로 격상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분적으로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한다면 과거사 문제는 더욱 엉킬 수도 있다. 자민당의 우경화는 종래의 영토적, 역사적 갈등을 넘어 한반도 주변의 안보 지형에까지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강한 국가, 주장하는 일본’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아베 총재는 헌법9조 개정을 통한 국방군 보유 및 집단 자위권 행사를 다짐하고 있다. ‘아시아 선회’를 공표한 미국은 한·미·일 군사협력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아베 신조 일본 자민당 총재가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출처: 경향DB)


대일문제가 이번 대선의 이슈로 부각되지 않은 것은 일견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있다. 박·문 두 후보가 일본 보수 정치인들의 민족주의적, 패권주의적 발언에 맞대응을 함으로써 우리 국민의 민족주의 감정마저 덧들이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8월 느닷없는 독도 방문 탓에 한·일관계는 꼬인 상태다. 하지만 두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나 공개 발언 어디에서도 중·장기적인 대일정책을 구상하고 있다는 증좌를 발견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문민정부 이후 역대 정권은 임기 초 미래를 함께 보자고 일본에 제안했다가 임기 말 역사적·외교적 갈등에 휩싸이는 궤적을 벗어나지 못했다. 두 후보는 과연 이러한 패턴에서 벗어날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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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범 | 작가·한글문화연대 대표


텔레비전 사극을 보다 보면 쉽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신분 차별에서 오는 갈등. 신분의 벽을 넘어서려는 주인공의 눈물나는 싸움은 신분의 차이를 훌쩍 뛰어넘은 남녀 간의 사랑과 반죽되어 시청자를 분노하게도 하고 코끝을 찡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극은 대개 이런 구조를 뼈대로 삼고 거기에 밑바닥 출신 주인공의 세속적인 성공이나 출생의 비밀과 같은 막장 요소를 적절하게 비벼 시청자의 밤 시간을 장악한다.


만일 신분 차별 제도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사극이 이만큼의 안정된 인기를 누리게 되었을지 궁금할 정도다. 그런 굴레에서 벗어난 우리로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는 종놈으로, 백정으로 온갖 멸시와 구박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그 신분 사회에 대해 예외 없이 옳지 않다고 받아들이고, 신분 질서를 극복하려는 주인공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사극은 이 점에서 매우 강력한 감정이입 장치를 우리 현실로부터 얻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를 다룰 미래의 사극에는 무엇을 담게 될까? 출생의 비밀에 뒤덮인 채 무너지는 가족제도? 있는 집안의 자녀 결혼 반대? 아무리 맞아도 결국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18 대 1의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현대인의 괴력? 뒤엉킨 불륜과 그보다 곱절은 더 복잡한 원한과 복수의 일상? 



KBS1 드라마 ‘광개토태왕’ 제작발표회에서 이태곤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경향DB)

곰곰이 따져보면 사극이나 현대극이나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와 소재는 고만고만하다. 타고나는 신분의 딱지가 눈에 확 띄지 않을 뿐이지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오늘날 점점 신화가 되어 간다. 재산과 학벌로 나누는 신분이 이 사회에서 세습되는 경향을 보이니 말이다.사극의 신분차별이나 현대극의 불륜, 출생의 비밀, 신데렐라, 복수, 성공담 등은 모두 이야기를 구성하는 뼈대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서 작가들이 보여주려 하는 인간의 모습은 불의와 거짓과 탐욕과 오만에 맞서는 진정성의 힘이다. 


참 이상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진정성을 원하고 진실과 인간다움이 승리하길 바라건만 왜 세상은 그렇게 바뀌지 않을까? 나는 우리 정치가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해서라는 조금은 꿈같은 이유를 들고 싶다. 그래서 정치인은 다 그렇고 그런 시정잡배라고 싸잡는 사람들 마음을 이해하지만, 자신의 삶의 환경이 바뀌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정치인들 사이의 섬세한 차이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라고 권한다. 정치는 내 곁의 환경을 바꿔줌으로써 내 삶을 바꿔 준다. 


2008년 초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영어몰입교육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다음날이던가, 난 어느 맥주집에서 회식을 하고 있는 직장인 한 무리를 봤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평소의 목소리보다 훨씬 컸을 법한 높이로 떠들고 있었는데, 영어였다. 영어로 술주정을 하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자기 세상이 왔다는 투였다. 주눅들어 있는 어느 부하직원의 표정은 ‘소 왓?(그래서 뭐?)’이었지만, 그이는 막무가내로 혼자 떠벌였다.


정치는 이런 것이다. 대통령이, 국회가 어떤 시대정신을, 정책을 내거느냐에 따라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내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 크기와 눈매와 예절이 달라지는 문제다. 그 진정성의 미세한 차이를 찾아가는 노력이야말로 유권자가 세상을 바꾸는 아주 손쉬운 방법이다. 속성이 비슷하다 하여 과거와 현대의 신분 차별을 똑같다고 여긴다면 이는 “이 천한 놈과 어찌 겸상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매일 듣는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를 무시하는 태도다.


아마도 100년 뒤의 극작가들은 자신들이 보기엔 너무나도 당연한 진정성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우리 시대를 그릴지도 모르겠다. 마치 신분차별의 벽처럼 진정성의 벽을 넘으려는 현대인의 고뇌가 어떤 소재로 다뤄질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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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10여일 앞두고 여야의 정치쇄신 경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이 “국회의원 정수를 합리적 수준으로 감축하자”고 제안하자 민주통합당도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설치해 의원 정수 축소와 비례대표 확대 문제 등을 논의하자고 호응했다. 어제 전격적으로 이뤄진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의 회동 역시 문 후보의 정치쇄신 약속이 고리가 되었다고 한다. 문 후보는 ‘정권교체와 새 정치를 위한 국민연대’ 출범식에서 기득권 포기 방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했고, 안 전 후보는 “문 후보가 새 정치 실천과 정당혁신에 관한 대국민 약속을 했다”며 전폭적 지원 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화답했다.


정치권의 쇄신 논의는 이번 대선의 주요 화두로 부상한 ‘안철수 현상’을 직시하고 여기에 담긴 민심을 반영하려는 노력이라고 본다.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 낡은 정치에 대한 실망, 새 정치에 대한 열망 아니던가. 대선이 임박한 만큼 정치쇄신 논의가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야가 실천 의지만 있다면 대선 전이라도 정치쇄신의 기본 원칙에 합의하고 일부 사항을 입법화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는 다만 정치쇄신 논의가 의원 정수를 줄이는 문제에만 집중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비례대표를 늘리고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함으로써 민심과 표심을 실질적으로 일치시키는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정치권의 기득권 포기가 의회기능의 위축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국회 차원에서 정치쇄신 논의가 본격화하려면 다수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새누리당의 행보는 미심쩍은 측면이 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어제 “민주당이 제안한 의원 세비 30% 삭감을 즉시 실천할 것을 약속하자”면서 대선 전에 세비 삭감 관련 법안과 2013년도 예산안을 함께 처리하자고 했다. 세비 삭감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관련법을 개정하면 될 일이지, 굳이 예산안 처리와 연계시킬 이유는 무엇인가. 의원 정수 축소 역시 안 전 후보가 처음 제안했을 때는 새누리당 내에서 부정적 인식이 많았다. 이제 와서 수용 의지를 밝힌 것은 부동하는 ‘안철수 지지층’을 겨냥한 정략적 입장 변화로 비쳐질 만하다. 새누리당은 향후 논의 과정에서 정치쇄신 의지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낡은 정치를 바꾸자는 것은 시민들의 오랜 바람이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정치쇄신 요구가 ‘안철수’라는 인물을 통해 투사되면서 대선전을 관통하는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여야는 뒤늦게 불붙은 정치쇄신 경쟁을 ‘선거공학’ 차원으로 끌어내려서는 안된다. 단 한 가지 법안이라도 대선 전 국회를 통과시킨다는 각오로 논의에 임해야 한다. 박근혜·문재인 후보는 향후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쇄신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구태를 지양하고 비전과 정책으로 당당히 경쟁하는 것이 ‘새 정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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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박근혜 후보의 눈빛이 흔들린다. 경황이 없어서, 어린 동생들 생각에 30년 전 6억원을 받았고 나중에 돌려줄 거라는 말까지 했다. 만일 어린 동생들 때문에 모든 게 용서된다면 “무전유죄”를 호소하는 대부분의 범죄자는 무죄다. 이처럼 이정희 후보는 송곳처럼 박근혜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찔렀다.


5년 전 유권자들은 무려 14건이나 되는 이명박 후보의 전과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떻게든 경제를 살릴 거 같은데 그 어떠랴”는 괴이한 분위기에 휩쓸렸다. 5년이 흐르는 동안 경제는 위기에 빠졌고 대통령의 모범을 따라 주변인사들은 줄줄이 전과자가 되었다. 이번엔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하겠지…적어도 이명박보다는 낫겠지”, 현직 대통령의 실정이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비교 대상이 되는 요상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어린 지지자와 포옹하는 박근혜 (출처; 경향DB)




1차 토론에서 박 후보는 시종일관 굵은 기조를 유지했다. “위기가 닥쳤다, 신뢰의 정치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어는 위기-신뢰-통합이다. 박 후보의 취약점은 과거에 있지만 미래의 심장은 여기에 있다. 


정치에선 박 후보의 위기-신뢰-통합이 그럴듯해 보인다. 박 후보가 30년 전 청와대에서 나온 이래 한 일이라곤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위기의 수렁에서 건진 것뿐이다. 분명 박 후보는 적을 간명하게 규정해서 궤멸시키는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고도성장의 추억”은 그를 ‘선거의 여왕’으로 만들었고 보수층을 결집시켰다. 그러나 경제도 그렇게 될까?


현재의 경제위기는 한마디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은 세운다) 때문이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서 양극화를 초래한 결과가 세계경제의 위기이고 곧 한국의 위기다. 박 후보의 “줄푸세”가 “시장만능주의(market fundamentalism)”의 한글 번역이니 당연한 일이다. 최근 새누리당은 “줄”은 빼고 “푸세”만 한다지만 지난 5년 감세액만 82조원(국회 예산처 추산)이었고 세법을 고치지 않는 한 이런 재정상태가 계속된다는 걸 의미한다. 위기에 빠지면 부자에게 증세해서 아래로 돈이 흐르게 해야 하는데 이런 기본적 위기대책을 아예 포기했다는 얘기다. 


박 후보는 “줄푸세와 경제민주화는 다르지 않다”고 강변했다. 최근에는 경제민주화가 재벌의 투자를 가로막는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줄푸세”와 박정희의 “삽질”을 실천한 “불도저”였다. 그러나 주로 돈을 챙긴 재벌의 투자는 그다지 늘어나지 않았고 고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당연하다. 불황기에 투자는 늘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비가 늘어나도록 하는 게 즉효약이다.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가 이들의 소비를 가로막고 있다. 박 후보는 18조원의 ‘행복기금’을 조성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정부보증 채권을 발행해 은행의 부실채권을 해결해 주겠다는 데 불과하다. 즉 정부 돈으로 은행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겠다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은 채무자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필요하면 빚을 탕감해주거나 이자를 줄여주고 괜찮은 일자리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지난 5년간 천문학적 돈을 번 은행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여기서도 돈이 채무자에게, 즉 아래로 흐르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경제는요?”가 통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선문답을 알아서 실행할 주변이 모두 “줄푸세”의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직도 돈이 위로 흘러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런 줄푸세가 양극화, 즉 국민 분열을 초래하고 결국 경제위기를 심화한다는 것은 세계와 우리의 역사가 이미 증명했다. 


박 후보의 심장이 여기에 있다. 경제에서 그의 “위기-신뢰-통합”은 더 큰 위기와 불신, 그리고 분열로 이어질 것이다. 1차 토론에선 박 후보가 조연에게 발목을 찔려 중심을 잃었는데도 주연은 그저 겨냥만 했다. 조연만 빛난 드라마는 실패한다. 과연 문재인 후보는 그 심장에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선거는 다음주 TV토론에서 또 하나의 결정적 고비를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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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