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정 | 존스홉킨스대 교수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이들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한 것은 심각한 일이다. 단순한 색깔론을 넘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헌법질서를 흔드는 발언이며, 사실관계조차 틀린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제91차 인터넷 라디오 연설에서 천안함 사건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2010년도 천안함 폭침 때도 명확한 과학적 증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똑같이 자작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늘 그래왔던 북한의 주장도 문제이지만,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우리 내부의 종북세력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경향신문DB)



이 발언은 대한민국 법치주의 원리를 심각히 훼손한다. 대한민국에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이 실정법으로 엄연히 존재한다. 이 법 7조 1항은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는 것을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것도 처벌대상이다.


이 대통령 발언대로 천안함 정부 발표에 의구심을 나타낸 사람들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라면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선전 동조”한 것이 되므로 국가보안법의 처벌대상이 된다.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것으로도 처벌대상이다. 그런데 검찰은 2010년 3월 이후 2년이 넘도록 천안함 의심세력에 대한 국가보안법 기소를 단 한 건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 이유는 아래에서 지적하는 것과 같이 공소유지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겠지만, 행정부 수반이 합법적 절차는 밟지도 않으면서 천안함 의심세력을 범법자로 낙인찍는 것은 헌법에도 명시된 무죄추정의 원칙과도 어긋난다. 


또 이러한 발언은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적 원칙과도 어긋난다. 천안함과 관련해 법원의 판결을 받았거나 심판 중인 사건들은 대부분 명예훼손과 관련돼 있지 국가보안법과는 관계가 없다. 사법부는 천안함 사건에 의심을 제기한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판결을 내린 적도 없고,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불특정 다수의 국민을 ‘종북세력’이라는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규정지은 것은 사법부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이 대통령의 이번 연설은 사실관계에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선후관계에 있어 북한의 주장이 앞서고 다른 사람들이 뒤이어 같은 주장을 되풀이해야 한다. 그런데 천안함과 관련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건 직후부터 의혹을 제기했고, 북한은 나중에서야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북한 국방위원회가 합동조사단의 중간보고서를 “날조”라고 주장한 것은 2010년 5월20일이었고, ‘국방위원회 검열단 진상공개장’에서 자세한 반박을 한 것은 11월2일이었다. 그 내용도 그동안 한국에서 제기되었던 것들을 대부분 “그대로 반복”한 것이었다. 굳이 이 대통령의 어법을 따르자면 대한민국 국민이 종북세력이 아니라, 북한을 ‘종남세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종북세력’이라고 규정하려면 북이 했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했다는 인과관계도 입증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의 선후관계가 맞지 않으므로 인과관계는 논의할 수조차 없다. 참고로 북한의 주장을 반복한다는 이유만으로 ‘종북세력’이 된다면 이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종북세력’이라고 보는지 궁금하다. 북이 인공위성 발사라고 주장하는 시험을 한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의장성명 2항에서 “이번 위성 발사”라고 북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았는가. 이명박 정부는 사실과 어긋난 말로 사회분열을 야기하기보다는, 제기된 합리적 의문들에 성실히 답변함으로써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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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선생님 이야기는 20년 전 이야기지요.” 시인 김수영이 쓴 ‘현대식 교량’의 한 구절이다. 다소 뜬금없이 이 구절을 말하는 것은 올 6월이 주는 의미 때문이다. 전공이 정치사회학인지라 1987년 6월에 대해 학생들과 더러 토론하게 되는데, 격의없이 6월항쟁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 시구를 자연 떠올리게 된다. 학생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나 역시 1979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은사들로부터 1960년 4·19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지만, 19년이 지난 당시 열아홉 살의 나로서는 그 의미를 실감하기 어려웠다.



6.10 남북학생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각 대학 학생들이 모여 앉아 있는 모습 (경향신문DB)



오는 일요일은 6·10항쟁의 25주년이 된다. 25년 전의 이번 주는 우리 현대사에서 중대한 분수령을 이룬 일주일이었다. 1972년 10월유신 이후 15년의 군사독재에 맞서서 민주주의를 향한 유토피아 에너지가 거침없이 분출하던 열정의 시간이었다. 민주화 시대를 연 6월항쟁은 25년이 흐른 현재 어떤 의미를 안겨주는 걸까. 민주화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프레임을 아우르는 ‘마스터 프레임(master frame)’이었다. 노동해방, 시장개혁, 복지강화, 양성평등, 환경보호, 인권증진, 그리고 평화공존 등의 프레임들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구심력의 프레임이 다름 아닌 민주주의였다.


지난 25년의 민주화 과정은 명암이 분명한 시대였다. 6월항쟁의 가장 큰 성취는 ‘예외국가’에서 ‘정상국가’로의 전환이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이뤄진 김영삼 정부의 군부 정치개입 차단, 김대중 정부의 수평적 정권 교체, 노무현 정부의 권력기관 민주화, 그리고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등은 그 성과들이었다. 금융실명제 도입,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호주제 철폐 등은 민주화가 가져다 준 또 다른 선물이었다.


하지만 빛 못지않게 그늘 또한 짙었던 게 민주화 시대였다. 1997년 외환위기로 시작된 민주화 25년의 후반기는 신자유주의 시대였으며, 신자유주의는 사회양극화를 강화함으로써 분배구조가 악화되는 ‘민주화의 역설’을 가져왔다. 민주화가 성숙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경제민주화가 요구됐음에도 재벌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대, 청년실업의 구조화, 더하여 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 기록, 물질만능주의·외모지상주의 등과 같은 시민문화 빈곤 등이 민주화 25년의 우울한 풍경을 이룬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25년이라는 한 순환의 문턱에서 관찰되는 기이한 현상들이다. 민간인 불법사찰, 권력의 방송 공공성 훼손, 그리고 비례대표 선출 부정 등은 우리 민주주의의 지반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증거한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말의 독점, 권력의 독점, 자본의 독점에 맞서는 것에 있다. 보수든 진보든 지속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결국 말과 권력과 자본의 과두제적 철칙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지금 목도하고 있다.


어디로 갈 건가. 민주주의는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평등을 향해가는 부단한 과정이다. 동시에 활발한 소통 및 치열한 논쟁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를 지속가능한 현실로 제도화하는 과정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민주화 시대가 지나가더라도 마스터 프레임으로서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가장 소중한 가치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 사회는 지금 ‘민주화에 대한 성찰적 민주화’라는 새로운 역사적 과제에 대면해 있다고 봐야 한다.


‘현대식 교량’으로 돌아가면, 김수영은 “그들의 나이를 찬찬히 소급해가면서 새로운 여유를 느낀다”고, “새로운 역사라고 해도 좋다”고 말한다. 6월항쟁 25주년의 중간 결산은 200일도 채 남아 있지 않은 12월 대선에서 이뤄질 것이다. 민주화가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소중한 가치인 만큼 누구도 독점할 순 없다. 하지만 민주화 시대를 연 진보개혁 세력이 이렇게 뜻 깊은 해에 새로운 역사를 주도하지 못하고 위기에 처한 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적잖이 쓸쓸하다. 진보개혁 세력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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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충식 논설주간



19년 전 섬유공장에서 일하다 행려병자(行旅病者)로 오인돼 6년 넘게 정신병원에 수용됐던 네팔 여성 찬드라 쿠마리 구룽. 그는 어느 날 음식점에 갔다가 서툰 한국말로 식대문제를 놓고 다투다 경찰로 넘겨졌다. 찬드라는 ‘네팔 사람’이라고 주장했지만 누구도 초라한 행색의 그를 외국인으로 보지 않았다. 네팔인 동료들이 실종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기억조차 못했다. 찬드라를 수용한 병원 측은 그의 영문 이름(Chandra Kumari Gorum)을 출입국관리소에 보냈으나 “그런 이름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관리소에 등록된 이름은 ‘Chandra Kumari Gurung’이었다는 것이다. 찬드라의 코리안 드림은 산산조각이 났다. 


(경향신문DB)



찬드라가 당한 인권침해는 이렇듯 주변 사람들의 총체적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평범한 우리네 일상에서도 이런 황당한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엊그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영한 임미남씨의 사연이다. 1987년 2월12일 오토바이를 타고 집을 나간 19세의 청년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신원불상의 ‘무명남(無名男)’으로 분류돼 이송된 탓에 가족은 그를 찾지 못하고 죽은 줄로 알았다. 병원 측은 그를 수술해 생명을 건졌으나 연고가 없는 그는 결국 교통사고 후유증을 이유로 정신병원에 보내졌다. 그렇게 25년이 흘렀다. 임씨는 줄곧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대며 가족을 찾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병원 측도 담당 구청도 신원 확인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임씨는 40대 중반이 돼서야 한 사회복지사에게 발견돼 세상에 나왔다. 자신의 이름을 ‘수풀 림, 아름다울 미, 사내 남’이라고 밝힌 그가 이토록 오랜 세월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것은 정말 미스터리다.


임씨의 사례로 추정컨대 이 밖에도 세상과 격리된 채 무명남, 무명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애타게 찾으며 통한의 세월을 보내는 가족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려면 그들에 대한 편견과 불편함부터 버려야 한다.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거대한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임씨처럼 주위의 관심과 도움을 받지 못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의 심정이 이와 비슷한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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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중국전문가


 

한 나라가 망할 때는 여러 가지 징조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를 ‘망조가 든다’고 한다. 사마천은 이 문제를 국가의 정책과 인재에 연계시켰다.


“안정과 위기는 어떤 정책을 내느냐에 달려 있고, 존망은 어떤 사람을 기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정통주의에 매몰된 고대 유학자들은 나라의 멸망 책임을 일쑤 여성에게다 전가시켜 비난을 자초했다. 하지만 의식 있는 사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멸망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이런 말도 안되는 논리가 무려 2000년 동안 큰 위력을 발휘해왔고, 지금도 세상 곳곳에 그 망령이 어른거리고 있다.



양귀비가 목욕한 뒤 몸단장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경향신문DB)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紂)는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걸(桀)과 함께 소위 ‘걸주’라 하여 망국 군주의 대명사로 각인돼 있다. 이 두 임금의 곁에는 각각 말희와 달기라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 있었다. 하나라와 은나라가 망한 책임 중 상당 부분을 이 두 여인이 졌음은 물론이다. 정작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진 당사자들은 놓아두고 말이다.


주나라 유왕(幽王)은 자신이 아끼는 포사라는 여인을 웃겨 보려고 오늘날 공습경보에 해당하는 봉화를 시도 때도 없이 올렸다가 정작 외적이 쳐들어 왔을 때는 아무도 달려오지 않아 망국을 자초했다. 유왕도 포사도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물론 책임은 포사에게 뒤집어씌웠다.


당나라 현종은 ‘개원의 치’라는 전성기를 구가했던 명군이었다. 격무에 시달려 살이 빠진 모습을 보고 신하들이 안타까워하자 “나는 말랐지만 천하가 살찌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정도로 깨어 있는 군주였다. 하지만 말년에 판단력이 흐려지고 양귀비에게 빠져 나라를 그르쳤다. 안록산의 난이 터지자 현종은 양귀비를 데리고 수도 장안을 버리고 달아났다. 마외파란 곳에서 병사들이 더 이상 현종을 호위하지 못하겠다며 양귀비와 그 오라비 양국충을 죽이라고 하자 현종은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양귀비를 자살하게 만들었다. 이런 망국의 화를 자초한 책임의 상당 부분을 양귀비가 짊어져야만 했다.


고대사회의 마녀사냥은 권력자에 대한 비판의 글을 쓴 지식인들과 권력자들의 노리갯감이었던 여성들에게 집중됐다. 지식인들에 대한 마녀사냥은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부패한 간신 모리배들이 앞장섰고, 여성에 대한 마녀사냥은 수구보수적 관념에 찌든 지식인들이 앞장섰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런 고대판 마녀사냥보다 못한 사냥질이 횡행하고 있다. 역사가 통곡하는 순간 나라의 안위가 흔들리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보았기에 걱정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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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규 정치부 차장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 일이다. 프랑스 북부 ‘칼레’라는 시가 영국군에 포위됐다. 11개월을 버텼으나 끝내 항복해야만 했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 시민을 도살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칼레는 자비를 구했고, 왕은 “명망 높은 시민 대표들이 교수형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칼레 최고 부자인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먼저 자원했다. 시장이 나섰고, 상인과 그의 아들 등 일곱명이 나섰다. 영국 왕의 요구는 여섯명의 교수형이었다. 생 피에르는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했고 모두 동의했다. 


 


다음날 아침 생 피에르는 오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자원한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살아남으면 순교자들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먼저 죽음을 택한 것이다.


처형 직전 에드워드 3세는 임신해 있던왕비의 간청을 받아들여 이들을 살려준다. 1347년의 일이다.



김용환 (경향신문DB)



요즘 우리나라에 ‘7인회’라는 모임이 관심을 끌고 있다. 새누리당 원로그룹으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멘토임을 자처한 이들이다. 이들의 실체는 좌장이라는 김용환 상임고문의 한 인터뷰에서 드러났다. 김 고문은 ‘박 전 위원장을 돕는 원로그룹 좌장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사람들이 7인회라고 부르는데 가끔 만나 식사하고 환담한다”고 말했다.


멤버로 자신과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전 조선일보 발행인, 김용갑 전 의원, 김기춘 전 법무장관, 현경대 전 의원, 강창희 의원을 꼽았다.


이들에게 공교로운 공통점이 있다. 바로 ‘육법당(陸法黨)’과 ‘5·16’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세운 민주정의당은 ‘육법당’이라고 불렸다. 육군사관학교와 서울대 법대 출신 법조인들이 세운 정당이라는 뜻이다. 유신정권에 이어 1980년대에도 육사 출신 군인들이 장·차관, 청와대 수석, 국회의원, 공기업 사장이 돼 우리 사회를 쥐락펴락했다. 군 장성 정기인사는 사회적 관심사였다. 예비 리더들의 명단이어서다.


서울대 법대 출신, 특히 법조인들이 정부와 당에 중용됐다. 이들은 정당성 없는 군사정권에 국정운영 이념과 정책을 제공하고 집행토록 했다.


7인회에서 김용환 고문, 김기춘 전 장관, 안병훈 전 발행인, 현경대 전 의원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고, 최병렬 전 대표는 서울대 행정학과 출신이다. 


김용갑 전 의원과 강창희 의원은 10년 터울의 육사 출신이다. 가히 ‘육법회’(陸法會)라 불릴 만하다.


이들은 5·16으로 들어선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때 호시절을 누렸다. 김용환 고문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과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최병렬 전 대표는 조선일보에서 정치부장과 편집국장, 안병훈 전 발행인은 청와대 출입기자를 했다.


김용갑 전 의원과 강창희 의원은 유신 때 군에 있다가 5공화국 들어 각각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과 의원이 됐다. 김기춘 전 장관은 검사 재직 시절인 1974년 중앙정보부에 신직수 중정부장 법률보좌관으로 파견돼 유신헌법 제정의 실무를 담당했다. 현경대 전 의원은 유신 때 검사를 하다 5공 때 배지를 달았다.


우연인지 이들 나이를 합치면 ‘516’살이다. 김용환 80세, 최병렬 74세, 김용갑 76세, 김기춘 73세, 안병훈 74세, 현경대 73세, 강창희 66세이다.


이들이 부각되자, 민주통합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7인회가 있다는데, 수구꼴통이어서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한두 번 오찬에 가 뵌 적이 있다”면서도 “7인회라는 말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부인했다. 그럼 진실은 둘 중 하나다. 김용환 고문이 과장했거나, 박근혜 전 위원장이 모른 체했거나.


하지만 이들 ‘7인회’가 칼레의 시민 대표만 같았다면 어땠을까. 노년에 ‘꼴통’이라는 모욕을 들었을까. 박근혜 전 위원장이 단박에 모른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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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사찰 및 은폐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사실상 수사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검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과 김진모 전 민정2비서관(현 서울고검 검사)을 불러 조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장 비서관은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입막음’ 용으로 5000만원을 건넸다는 의혹을, 김 전 비서관은 불법사찰 1차 수사 당시 검찰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부인했다. 검찰은 장 비서관과 김 전 비서관을 비공개 조사하는 특별대우를 베풀더니 “민정수석실 관계자에 대한 소환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했다. 2010년 은폐조작 당시 민정수석이던 권재진 현 법무부 장관은 조사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2년 3월 21일 (경향신문DB)



지난 3월 중순부터 재수사를 벌여온 검찰은 불법사찰을 담당한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사이의 연결고리는 포착했지만 그 ‘윗선’에 대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 이상으로 수사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비서관은 재수사 착수 직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료 삭제에 관한 모든 문제는 내가 몸통”이라고 주장한 장본인이다. 검찰 수사는 이 전 비서관의 ‘자백’ 이후 한 발짝도 진전된 게 없는 셈이다. 도대체 검찰은 70여일 동안 무엇을 한 것인가.


검찰이 헛심만 쓴 이유는 삼척동자도 알 만하다. 자신들의 보스인 권재진 장관을 감싸고, 나아가 이명박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하지만 곳곳에서 쏟아지는 증거들을 모조리 묻을 수는 없을 터이다. ‘VIP(대통령)께 일심(一心)으로 충성하는 비선 친위조직’이 불법사찰을 총괄지휘했다는 공직윤리지원관실 문건이 공개된 데 이어 ‘사찰 사건으로 기소된 공무원들에게 응분의 보상을 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청와대 최고위층’에 전달됐다는 정황까지 드러나지 않았는가.


우리는 수사팀을 향해 ‘현직 법무장관도 소환 조사할 수 있다’는 비상한 각오를 할 것을 당부한 바 있다. 검찰은 그러나 이러한 기대를 짓밟고 주특기인 꼬리 자르기에 나선 듯하다. 일개 고용노사비서관이 국기문란 범죄의 몸통이라는, 그야말로 ‘소도 웃을’ 수사 결과를 내놓을 모양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19대 국회는 국정조사와 청문회, 특별검사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진짜 몸통’을 찾아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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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어제 의원총회를 열어 19대 국회의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6선의 강창희 의원(대전 중구)을 선출했다. 여야의 원구성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강 의원은 오는 5일 국회 개원식과 함께 수장 자리에 올라 19대 국회의 전반기 2년을 이끌게 된다. 강 후보자는 친박 색채가 짙어 4·11 총선 후보 등록 때부터 의장 물망에 오른 인사다. 이로써 새누리당은 국회의장과 대표, 원내대표를 모두 친박인사들이 맡는 명실상부한 ‘박근혜당’으로의 탈바꿈을 완료했다. 경위야 어찌됐든 강 후보에게 축하를 보내야겠지만 그가 안고 있는 여러 약점과 한계로 19대 국회의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새누리 국회의장 후보에 강창희 의원 (경향신문DB)



19대 국회의 의미는 참으로 각별하다. ‘국회 선진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폭력과 날치기로 점철된 18대 국회를 반면교사로 삼아 힘에 의한 국회 운영을 실질적으로 끝내야 한다. 일각에선 쟁점법안의 경우 절대과반(5분의 3)이 동의하지 않으면 처리가 불가능하다며 ‘식물국회’ 운운하지만 단견이다. 민주주의에서 대화와 타협을 이길 수 있는 왕도는 없다. 정작 연말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은 19대 국회를 초반부터 대화와 타협보다 대결과 투쟁으로 이끌 공산이 크다. 통합진보당 경쟁 부문 비례대표 후보자의 부정경선으로 촉발된 통진당 사태에 대한 국회 차원의 후속 조치도 필요하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을 수 없는 산들이다.


특히 강 후보는 군 사조직인 하나회 출신으로 5공 인사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게 사실이다. 한반도 주변국들이 정권 교체기를 맞아 새로운 체제 정비에 나선 상황에서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듯한 강 후보의 전력은 분명 걸림돌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의 군 생활이나 정치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밝힐 정도로 5공 향수가 짙은 인사다. 더구나 그는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자문그룹으로 군사정권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7인회’ 멤버다. 우리가 앞서 그의 국회의장 선출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의장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과정에서 박 전 위원장의 대권 가도를 위해 충청표를 모아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것도 거슬린다. 당을 떠난 무소속 입장에서 초당파적으로 국회를 운영해야 하는 국회의장 후보자가 할 소리가 아니라고 본다. 


국회의장은 권력 서열 2위라는 위계를 넘어 국회의 위상을 상징하는 자리다. 국회 선진화를 운위하는 마당에 국회를 통법부로 방치하느냐, 국민의 대의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느냐는 오롯이 그의 몫이다. 국회를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입법기관으로 곧추세우는 일을 넘어서는 선진화는 없다. 그런 중차대한 임무를 떠맡으려면 우선 논란 많은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 의장이 된 뒤에도 7인회 주변을 얼쩡거리거나 5공 향수를 털어내지 못한다면 자신의 명예실추는 물론이고, 국회를 모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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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정리해고를 하려면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긴박하고도 불가피한 경영상의 사유’가 있어야 한다. 또한 정리해고를 하더라도 회사 측은 노동자들과 고통을 공유하려는 진정성과 헌신성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업주들은 정리해고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자신의 경영실패에 따르는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일쑤였다. 정리해고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일단 실행되면 이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 지도위원의 처절한 309일 고공농성과 ‘희망버스’ 시민들의 눈물겨운 연대, 여야 정치권의 압박 등이 한데 어우러진 다음에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가 해결된 일이 바로 그것이다. 


KEC 노사 갈등 일지 (경향신문DB)



그런 점에서 경북 구미의 반도체업체인 KEC가 노동자 75명의 정리해고를 전면 철회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KEC는 지난 2월 ‘경영상의 위기’를 이유로 75명을 정리해고했고, 이 때문에 2010년 임금단체협상 결렬 이후 노조파업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던 노사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이번 조처는 반목과 대결로 치닫던 노사 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한 셈이다. 정리해고를 단행한 뒤 임원들의 연봉을 올리는 등의 도덕적 해이와 경영진의 비리 의혹으로 비난을 받고 있던 회사 측이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해고 철회를 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정리해고를 되돌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회사 측의 결정이 평가절하돼서는 안된다. 


임금이나 근무조건을 둘러싸고 갈등의 소지가 남아 있다지만 노사 양측이 서로를 동반자로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의 기조를 유지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회사 측은 이제부터라도 파업복귀 노조원들에게 체벌이 포함된 ‘정신순화교육’을 실시하거나, 노조를 말살하기 위해 어용노조를 설립하는 등 기존의 반인권적 시대착오적 행태와 결별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노조활동을 억압하는 동시에 최소한의 상식과 도덕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노조 또한 어렵사리 지펴진 상생과 화해의 불씨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과거의 묵은 감정에 지나치게 연연하다가 현재와 미래의 틀을 깨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KEC의 정리해고 철회가 전국의 많은 사업장에서도 기업주와 노동자들이 상대방의 처지를 존중하는 노사상생과 산업평화의 계기로 자리 잡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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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대선을 앞두고 개헌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새누리당에선 이재오·정몽준 의원, 선진통일당에선 이인제 대표, 그리고 민주당에선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개헌론을 주도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과 방안은 물론 서로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권력분산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론을 제기하고 있고, 개헌공약이 이번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길 기대하고 있다.


혹자는 이 같은 개헌론을 정략적 발상에 불과하다고 폄하하지만, 나는 이제 우리 시민들이 이 개헌론에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참에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승자독식-패자전몰’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현행 민주주의 제도의 부작용과 폐해, 그리고 그 고비용과 저효율성에 대해서는 보수-진보 구분 없이 누구나 인정하는 바가 아니던가. 언제까지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이른바 ‘대권 몰아주기 정치도박’에 우리 시민들의 삶을 맡겨야 하는가. 사회가 이 정도로 발전하고 다양화되었으면 우리도 이제 시민 누구에게나 동등하고 효과적인 정치참여가 보장되는 권력분점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 개인보다는 정당들이 정치의 중심에 서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책임내각제가 도입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2011년 1월 여권 내 개헌 3색 스펙트럼 (경향신문DB)



그렇다고 아무 조건 없이 개헌론에 찬성하자는 것은 아니다. 짚어봐야 할 핵심 변수는 정당체제다. 주지하듯, 한국의 정당체제는 여전히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는 전근대적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인물과 지역이 중심이 되는 정당정치다보니 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선호는 정책결정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과소대표와 강자들의 과다대표 현상은 매우 심각한 지경이다. 이러한 정당체제를 그대로 둔 채 권력구조만 책임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등으로 전환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개악일 뿐이다. 명망가나 소지역 중심의 지역할거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고, 지역정당들 혹은 그 보스들 간의 정권 나눠먹기 양상이 만연되면서 권력구조는 결국 정치엘리트들 간의 과두체제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한 체제에서는 권력분점형 합의제 민주주의의 장점인 타협과 합의의 정치가 정책과 이념 중심이 아니라 특정 인물이나 지역이익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에 사회경제적 약자집단들의 과소대표 현상이 해소될 여지가 별로 없다. 정당 및 정치가들은 정책기조나 이념에 근거한 신념보다는 정치적 보스의 사적 필요성이나 지역 이기주의적 요구에 타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시민들이 개헌의 전제 조건으로써 선거제도의 개혁을 먼저 요구해야할 이유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정당체제는 상당 부분 선거제도에 의해 결정된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강화될수록 정당체제는 인물과 지역보다는 정책과 이념 중심의 것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정치개혁은 ‘선(先)선거제도 개혁, 후(後)권력구조 개편’의 순서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 다만, 분권형 권력구조로의 전환을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로의 개혁과 한 패키지로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수용할 만한 개혁방안이 될 것이다.


진정 ‘제대로 된’ 합의제 민주주의로의 발전을 원한다면 각 당과 대선주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 개혁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3년 반짜리 대통령” 공약(필자의 본지 3월10일자 칼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이 점에선 사실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더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 있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총선 전 이미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포함한 선거제도의 혁신을 야권연대의 공동 공약으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야권의 대선주자가 이 PR(비례대표제)연대를 잘 살려나간다면 그는 진보개혁진영은 물론 정치개혁을 바라는 일반시민들의 지지까지도 극대화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작금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단순한 당내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보아 그것의 해결을 위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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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관 임명 시즌이다. 후보자들에게 확인할 것이 있다. 판사들은 대법관이든 하급심이든 모두 평등하다고 실제로 믿는지?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 ‘재판이 저 모양이니 판사들 확실히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 판사들에 대한 인사관리 권한은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한 법원 고위층에게 주어진다. 영화 속의 재판은 법원 고위층이 하급심 판사에게 충분한 자유와 독립성을 인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김명호 교수를 엄벌하라는 법원 고위층의 ‘오더’가 내려온 이상 증거신청들을 거부하더라도 구속만기 전에 재판을 빨리 종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기호 판사가 마지막 재판을 마치고 집무실에 돌아와 법복을 벗고 있다. (경향신문DB)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탈락은 하급심 판사들이 법원 고위층을 상대로 독립성을 쟁취하기 위해 지난 4년간 벌였던 싸움의 정점에 있다. 박재영 판사가 야간집회 금지조항에 대해 위헌제청 신청을 하자 법원 고위층의 일원인 신영철 법원장은 위헌제청을 무시하고 촛불시민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것을 ‘부하’ 판사들에게 요구했고, 이에 대해 서기호를 포함한 전국의 ‘부하’ 판사들이 재판독립을 위해 조직적으로 저항했다. 곧이어 <PD수첩> 광우병 보도 1심 무죄판결이 나오자, 한나라당은 법관들에 대한 통제를 더 엄격히 해야 한다며 2010년 법원조직법을 개정했다. 


개정 이전에는 판사 근무평정은 재임용 심사에서 고려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그런데 개정법에서는 고려되도록 명시한 것이다. 물론 당시 법원 고위층은 법관인사위원회의 외부인사 참여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한다면서 반대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법원 고위층의 판사에 대한 통제를 더욱 심화시킨 법개정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취임한 양승태 대법원장은 개정법을 적용한 첫번째 재임용심사에서 서기호를 탈락시킨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한나라당의 법개정 목표였던 좌파 판사 척결의 성공 사례였고 앞으로 모든 하급심 판사들의 ‘군기’를 잡는 본보기였다. 


사법부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존중해 주는 이유는 국민이 다수결이 아닌 합리성에 기초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헌법적 권리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은 사법부로부터 재판을 받지 않는다. 개별 판사로부터 재판을 받는다. 사법부라는 집단의 독립은 중요하지 않다. 개별 판사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세계 헌법 어디에도 사법부의 독립은 없고 법관의 독립만이 있는 이유이다. 즉 판사들은 행정부나 입법부는 말할 것도 없지만 상급심 판사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상급심 판사는 하급심 판사들의 판결을 파기환송할 수 있을 뿐 하급심 판사들에 대한 인사권한을 가져서는 안 된다.


물론 지금의 근무평정은 법원장이 하고 있지만, 법원장은 실질적으로 법원 고위층으로부터 일선 법원에 ‘파견’나와서 하급심 판사들을 감시하는 자리이다. 결국 이들 법원장은 대법관이 되기 위해 법원 고위층의 입맛에 맞게 하급심 판사들을 감시하게 된다. 신영철 사태도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구조적 동기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법원장을 통한 법원 고위층의 통제로부터 평판사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법개혁 목표이다.


판사들이 공권력을 제대로 감시하려면 모든 외부감시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감시자는 누가 감시할 것인가? 미국 주판사들처럼 직선제나 행정부 임명 후 신임투표도 검토할 수 있고, 미국 연방판사처럼 종신제 또는 독일처럼 평생법관제로 하되 의회가 인사권을 갖도록 할 수도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판사들이 자신의 인사권자를 투표로 선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들 제도의 공통점이면서 우리 제도에 결여되어 있는 것? 판결에 대한 파기환송권 외에는 모든 판사들은 직급과 심급에 관계없이 서로 평등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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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 시인


 

찔레꽃 필 때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더니, 정말 비가 오지 않았다. 기상청 예보로는 전국적으로 소나기가 온다고 했는데 날씨만 좋았다. 요즘은 날씨가 너무 좋아 탈이다.


일주일 전, 동네 형 차를 탔다. 동네 형은 논에 물을 대려고 100m짜리 비닐호스 다섯 타래를 샀다. 들판 길을 달리며 저수지에 물이 말라들어가 걱정이라고 했다. 물을 미리 받아놓은 아랫다랑논에서 윗다랑논까지 물 호스 까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먼저 펌프를 설치하고 작동시켜 보았다. 펌프 출구에 호스를 끼우고 타이어 쪼갠 고무줄로 친친 감아 묶었다. 동네 형은 말라붙은 물도랑으로 호스가 꼬이지 않게 조심조심 펼쳐 나갔다. 한 타래를 다 펼쳐 놓고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자신은 호스에 물이 차 나가는 것을 보며 따라가야 하니까, 전봇대에 설치되어 있는 펌프 스위치를 올리라고 하면 올리고 내리라고 하면 즉시 내리라고 했다. 무슨 폭발물이라도 설치하듯 나는 바싹 긴장해 그의 지시를 따랐다. 



(경향신문DB)



 호스 한 타래 펼쳐 놓기가 끝나면 호스에 플라스틱 파이프 토막을 박고 다시 호스를 연결해 나갔다. 세 타래째부터는 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내 동작이 늦어지자, 그는 손동작으로 나를 지시했다. 가뭄이 든 들판을 가로지르며, 허리를 구부린 채 붉은 호스를 정맥처럼 끌고 가는 농부의 모습이 가물가물 멀어졌다. 농부들의 모든 일의 시작은 흙을 향해 허리를 굽히는 것이다, 라고 언젠가 썼던 내 글귀를 떠올려 보았다.


“논으로 물 대는 물꼬싸움에 살인 난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물꼬싸움을 해야 그때서 비가 온다고도 했지.” 


“가물에 바다도 영향을 받지요?”


“아무래도 염도 낮은 물 좋아하는 고기나 새우는 덜 잡히지.”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 병어잡이 나갈 준비를 하는 뱃사람 집에 들러 말린 꽃새우 안주에 막걸리를 마셨다. 저수지도 없어 관정을 뚫고 농사를 지을 때 가뭄이 들면 2000평 논에서 쌀을 한 가마니밖에 추수하지 못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주 더 가물 때는 벼가 다 쭉정이라 베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개펄을 간척해 만든 논이라 가물면 염기가 땅에서 올라와 논이 허옇게 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산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울음소리도 파삭파삭 건조했다.


다음날은 스프링클러를 고구마밭에 설치한다고 해서 따라가 보았다. 밭두렁에 심어져 있는 고구마 싹들이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이제나저제나 비가 오기를 기다리다 할 수 없이 스프링클러를 사왔다고 했다. 밭에 들어서자 먼지가 분가루처럼 폭삭폭삭 날아올랐다. 찻길 밑 복개된 물도랑으로 호스를 힘들게 통과시켜 연결했다. 스프링클러가 물을 뿜으며 돌아갔다. 


스프링클러는 물줄기를 세 가닥으로 내뿜으며 돌아갔다. 물줄기를 내뿜는 거리가 셋 다 달라 물이 골고루 뿌려졌다. 물을 맞고 흙먼지를 피워 올리던 밭고랑이 서서히 젖으며 둥글게 젖은 원을 그렸다. 누가 알랴, 가뭄에 목말라하던 곡식들이 물을 빨아들이며 푸르게 생기 되찾는 것 바라보는 마음을. 잘됐어! 하며 박수치는 농부의 얼굴에 안도의 마음이 촉촉이 번졌다.


그제는 모를 낸다고 해 논으로 나가보았다. 이앙기가 녹색줄을 그으며 오갔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백로 한 마리가 긴 목을 연방 주억거리며 녹색줄 친 노트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이웃동네 이장은 가뭄이 오래갈 것 같다며, 비료를 주면 염기가 배가 될 것 같아, 밑거름 비료를 주지 않았다는데…, 걱정하며 농부는 논을 바라다보았다. 논에 심어지고 있는 벼 포기마다 농부의 근심도 함께 심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이천평, 열마지기 농사를 지으면 돈이 얼마나 나와요?”


“기계삯 주고 나면 잘돼야 사오백만원 될라나.”


물걱정은 되지만 농사짓는 일 중에 제일 큰일을 마쳤다고 한턱내는 막걸리를 마셨다. 술을 마시며 25%에 불과한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을 걱정하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식량식민지화를 걱정했다. 이러다가 큰 흉년이 들어 엄청난 기근이 찾아오면 어찌할까, 앞바다에 조력발전소가 들어서면 어떤 영향이 있을까….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의 가뭄도 화제가 되었다.


술을 마시다가 생각난 듯 동네 형은 스프링클러 노즐 뭉치를 가져와 고쳐보려고 이리저리 살폈다. 밭에 논물을 주다보니 이물질이 많아 스프링클러가 자주 고장이 나 벌써 두 개를 새로 사와 바꿔 설치했다고 한다. 기계 뭉치에 기름칠 하는 것을 보며 머릿속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가뭄, 폭우, 폭설 이 모든 것은 우주의, 자연의 스프링클러가 고장이 나서인 것 아닌가. 우주의 스프링클러를 고장 낸 것도 지구인이고 고칠 이도 지구인이다. 지구인들이 각성하지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 우주의 스프링클러는 영원히 고장 나고 말 것이다. 그때는 이 지구에 비도, 눈도, 별빛도, 구름도 뿌려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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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 | 한국외대 교수·문화연구 yckim@hufs.ac.kr


경주 양동마을에 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그 유명한 한옥마을이다. 그곳에 가자 어린 시절에 경험한 한옥과 서당에 대한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오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마석에 있는 한 서당에 간 적이 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알게 되었는데 그 서당은 서예가이자 금석학자이신 청명 임창순 선생이 세운 태동고전연구소란 곳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곳은 젊은이들이 3년 정도를 기약하고 들어와 한학을 수학하는, 그러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보기 드문 한학 교육기관이었다. 나는 어린아이치곤 고전이나 한문, 서예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 서예를 배우면서 안진경체와 구양순체를 구별할 줄 알게 되자 동글동글한 안진경체보다 날카롭고 직선적인 구양순체에 푹 빠져 열심히 먹을 갈며 붓글씨를 연습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대체 이 사람들은 이런 곳에 와서 뭘 하는 걸까 의아해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는데 한학 공부에 지친 젊은이들이 어슬렁거리다 시원한 한옥 마룻바닥에 앉아 매미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부채를 천천히 부치며 바둑을 두던 그 나른한 오후의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양동 이씨와 경주 손씨의 집성촌인 경북 경주 안강의 양동마을 (경향신문DB)


 대학 시절 안동 하회마을에 갔던 기억도 난다. 그때는 그곳을 순우리말 반, 한자 반 명칭인 ‘물도리동’이란 이름으로 불렀는데(지금도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 마을 앞을 굽이굽이 조용히 흐르는 강물과 그 앞에 깎아지른 듯 병풍처럼 턱 버티고 서 있는 절벽이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집들 사이로 난 조그만 길들을 따라 나지막한 담장을 끼고 요리조리 마을을 돌아다니던 기억도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이런 기억을 반추하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 간 양동마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라는데 관광객인 우리를 맞이한 것은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땡볕더위와 마을 곳곳에서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풀 베는 소리, 확성기를 타고 나오는 동네 주민의 목소리,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량들, 그리고 정말로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었다. 외국인들이 많은 것이 이채로웠다. 양동마을은 문자 그대로 ‘문화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하회마을과는 달리 한옥들이 대부분 언덕에 자리 잡은 독특함도 있는데, 그럼에도 그윽하고 고아한 한옥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대표 한옥마을로서 양동마을의 보존 가치를 높이려면 무엇보다 지금처럼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다니지 않도록 하루 방문객 수를 대폭 줄여 쾌적하게 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기대와는 딴판이었던 양동마을의 번잡함을 접하고, 지난해에 갔던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에서의 하룻밤이 떠올랐다. 함씨 집성촌인 그곳의 한옥은 이북식이라 소 키우는 축사가 추위를 피해 집 안으로 들어와 부엌 옆에 붙어있는 독특한 구조다. 무엇보다 마을 전체가 정겹고 고즈넉했다. 한옥 뒷마당에 담장을 끼고 장독대가 있었고 코스모스가 핀 길을 따라 동네 한 바퀴 산책하기도 그만이었다. 그 중 몇 채에는 재미있는 이름이 붙어있고 민박도 할 수 있었는데, 그날 같이 간 일행 모두 방 하나씩 차지하고 뜨뜻한 방구들에 깨끗한 홑청의 이불을 덮고 푹 잘 수 있었다. 창호지 바른 문으로 솔솔 들어오는 가을바람을 코끝에 느끼며. 왕곡마을은 내게 전주 한옥체험관 못지않게 한옥을 잘 체험할 수 있게 해준, 한옥에 사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해 준 곳이다. 


양동마을 역시 방문객들에게 체험의 공간을 충분히 제공하는 한옥마을 모델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기에 여러 가지 제한은 있겠지만, 앞으로의 지향점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우르르 몰려다니는 관광객들로 인해 장바닥처럼 번잡한 곳이 되어 버리거나 아니면 북촌 한옥마을처럼 사람 사는 모습을 제대로 접할 수 없는 한옥마을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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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팔고 떠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의 금융·세금 규제로 피해를 봤다”며 국제중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상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에 의거해 한국 정부를 국제법정에 세우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와 론스타가 향후 협상에 실패할 경우 자유무역협정(FTA)의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지적돼온 ISD가 현실화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론스타 논란 (경향신문DB)



론스타가 그제 보도자료를 통해 주장한 ‘피해’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2006년 KB금융지주, 2007~2008년 HSBC에 각각 외환은행 주식을 매각하려 했으나 한국 금융당국이 매각 승인을 늦추는 바람에 주식을 제값에 팔지 못해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 첫째다. 론스타는 또 지난 2월 하나금융에 외환은행 주식을 팔아 4조7000억원의 매각 차익을 얻은 데 대해 국세청이 3900억원의 양도소득세를 원천징수한 것을 ‘자의적이고 부당한 과세’라고 주장했다. 천문학적 이익을 챙기고도 세금 한 푼 못 내겠다는 투기자본의 ‘탐욕’을 똑똑히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모든 것이 적법하고 비차별적으로 처리됐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정부가 국제소송에 대비해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니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치밀하게 대응하기 바란다.


론스타가 제기한 본안 외에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돌아봐야 할 대목이 있다. 론스타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유죄판결에다 ‘먹튀’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막대한 투자이익을 챙겨 떠났다. 그럼에도 피해를 보상하고 세금 돌려달라며 한국 정부를 국제법정에 세우겠다고 나선 것은 ‘적반하장’ 격이다. 하지만 정부가 그동안 론스타에 베푼 특혜적 조치들을 상기하면 론스타의 이런 자세는 상당 부분 자초한 측면이 있다. 2003년 예외조항을 적용해 외환은행을 넘겨주고, 이후 계속된 자격 논란에도 불구하고 론스타에 대한 산업자본 판정을 미루고, 결국에는 실효성 없는 주식처분명령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한국 정부였기 때문이다. 정부의 투명하고 공정한 법 집행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례다.


이번 사태는 FTA, 특히 한·미 FTA에서 ISD를 폐기해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주체였던 자회사(LSF-KEB)가 벨기에 소재 법인인 점을 들어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상의 ISD 조항을 들고나왔다. 정부가 “론스타의 문제제기는 FTA에 따른 ISD와는 무관하다”고 밝히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가 깨달아야 할 점은 ISD의 위험성이다. 론스타는 외국인 투자자가 국가의 조세주권을 문제삼을 수 있음을 확인시켰다. 또 미국에 소재한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가 벨기에 자회사를 통한 ‘간접투자’였음을 내세워 한·미 FTA의 ISD를 들고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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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엊그제 부산대 강연에서 통합진보당 사태 등 사회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진보정당이 북한에만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건 동의할 수 없다고 했고, 우리 세대의 중요한 과제로는 복지와 정의, 평화를 들었다. 민주통합당 대선 주자 중 한명인 문재인 상임고문이 제안한 공동정부론은 화합정치가 필요하다는 철학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관심사인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선 ‘자문 단계’라고 피해갔으나 그가 정치를 향해 또 한 걸음 내디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힘주어 강연하는 안철수 원장 (경향신문DB)



안 원장의 강연은 각종 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이라는 의미가 있으나 그 수준은 원론을 맴돌았다. 우선 대선 출마를 염두에 뒀을 법한 키워드라 할 수 있는 복지와 정의, 평화는 그간 쏟아져 나온 진보진영의 주장에 무게를 싣는 듯했지만 그뿐이었다. 통진당 사태에 대한 견해도 그 어간을 벗어나지 않았다. 잠재적 대선 주자라는 위상을 의식한 듯 주요현안에 대한 입장 표명을 피하지 않겠다는 다짐만 있었을 뿐 구체적 구상을 가다듬지 않은 탓으로 풀이된다. 정치권 안팎에서 ‘언제까지 강연 정치에 매달릴 것인가’ ‘국민의 피로감을 키우고 있다’ 등 비판의 소리가 나오는 것도 나름 이해할 만하다.


현 정치 상황에 대한 그의 인식도 모호하다. 그는 “유력 정치인을 두고 한쪽에선 10년째 어떤 분 자제라고 공격하고, 한쪽에선 싸잡아 좌파세력이라고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낡은 프레임’ ‘낡은 체제’라고 규정했다. 안 원장이 대학에 머물 요량이라면 모를까 자신의 정치철학과 구상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은 채 양비론으로 몰아가는 접근법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기존 정치권과 차별화하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안별로 분명히 잘잘못을 가리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정치를 변화시키겠다는 구체적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 옳다.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검증과 보수세력의 색깔공세를 같은 차원에 놓고 ‘낡은 프레임’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동의하기 어렵다.


4·11 총선 후 안 원장의 대권 도전설이 나왔을 때 우리는 ‘입장 발표를 더 미룰 일 아니다’라고 촉구한 바 있다. 대선 후보의 비전과 철학을 더 소상하게 알고 싶어하는 국민들에 대한 예의라는 취지였다. 그로부터 45일이 또 흘렀다. 안 원장이 개인적 고민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대권 도전을 굳히고 있다면 이제 논평이 아니라 소신과 정책 방향, 구체적 생각을 내놓아야 할 때다. 그의 자질과 국가운영 구상을 검증하려면 대선까지 남은 200여일은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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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전주의 옛 이름 바꾸기 작업을 하면서 전주 객사(客舍) 앞길인 ‘관통로’를 ‘객사길’로 바꾸려고 공청회를 연 적이 있다. 전주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객사’가 하나의 길 이름으로 만들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때 한 사람이 일어나 질문을 던졌다. “객사는 집을 나가서 죽는다는 객사(客死)와 발음이 같은데 어떻게 길 이름을 객사로 할 수 있습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 “듣고보니 그렇네” 하면서 많은 사람이 반대해 결국 부결되고 말았다. 그 객사 뒤편 자그마한 길에 ‘객사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 후로도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우리 역사 속에는 객사한 사람들이 꽤 많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화순에서 객사했다.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기생인 홍랑과 애달픈 사랑을 나눈 최경창도 그 중 한 명이다. 경성 객관에서 최경창이 객사를 하자 홍랑은 그의 묘를 지키며 3년 시묘를 했다고 한다. 



(경향신문DB)



산을 좋아해서 산을 자주 오르는 사람은 산에서 죽는 것이 영광이고, 마라톤을 좋아하는 사람은 달리다가 죽는 것이 영광이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읽다가 죽는 것이 영광이다. 그렇다면 길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존재한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이다. 걸음을 멈추는 순간 존재의 의미는 상실된다. 평생을 걸어다닌 사람들에게 최대의 영광은 이처럼 홀연히 길에서 임종을 맞는 객사일 것이다.


요즘 통계에 따르면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은 30%에 지나지 않고 병원, 즉 길에서 임종을 맞는 사람이 70%에 이른다고 한다. 집에 있다가도 임종이 임박하면 장례를 치르기 쉬운 병원으로 서둘러 옮긴다. 현진건의 소설 제목인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니고 ‘객사 권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나는 쓰러져 죽을 때까지 자연의 길을 여행하겠다. 그리하여 내가 매일 들이마시던 대기 속으로 나의 마지막 호흡을 반환할 것이며, 나의 아버지가 씨를 얻고 어머니가 피를 얻고 유모가 우유를 얻었던 대지에 깊이 묻히리라….” 


아우렐리우스의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영광을 누리고 싶다. “산다는 것은 떠돈다는 것이고, 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 연산군 때의 풍류객인 용재 성현의 말이다. “봄누에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실뽑기를 마친다(春蠶致死絲方盡)”는 말도 있다. 그 말처럼 죽는 날까지 이 땅을 떠돌고 길에서 생을 마감하리란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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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고객님, 신제품 할인행사가 있으세요.” 요즘 익숙하게 듣는 ‘이상한’ 경어체이다. 고객과 구매할 상품을 동시에 존대하는 이런 말투를 들으면 야릇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문법 파괴를 개탄하는 소리를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는데, 이 문제를 그냥 ‘개념 없는 젊은 세대’ 탓으로 치부하고 지나가기에는 개운치 않은 점이 있다. 고객과 상품을 동시에 높이는 경어체야말로 한국 사회의 노동구조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거울상 같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고객은 무엇인가? 자본을 소유한 특별한 신분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생산자이자 동시에 소비자들이다. 소비자는 화폐를 사용해서 상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신이 생산한 상품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셈이다. 화폐의 매개 없이 상품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횡령 아니면 절도에 해당한다. 근대사회는 이런 행위를 범죄로 규정해 금지하고다. 



(경향신문DB)



화폐는 곧 상품을 가질 수 있는 능력 또는 자격을 동시에 표상한다. 이 표상 관계로 인해 어떤 상품을 소유할 수 있는지에 따라 특정인의 능력이 판가름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객과 상품 모두를 올리는 ‘존댓말’은 실제로 고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상품을 특화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고객은 상품을 소유함으로써 비로소 특정한 자격을 가진 존재로 인준받는다. 상품은 마치 매트릭스처럼 처음 탄생의 순간만 인간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자신을 만들어준 당사자를 배제한다. 루이비통을 만드는 노동자가 루이비통을 가지기 힘든 것은 이 때문이다. 


상품은 생산자의 자격도 규정한다. 일전에 가짜 명품가방을 만들다가 검거된 어떤 이에 대한 보도가 있었는데, 문제의 업자는 과거 명품회사에서 직접 가방을 만드는 기술자였다가 퇴사 후에 몰래 가짜를 만들어 수십년간 유통시키다가 들통이 났다. 그러나 명품을 만들다가 퇴사해서 계속 명품을 수십년간 만들었다면, 그 직공이야말로 최고의 장인이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명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셈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만든 제품은 정당한 상품 유통구조에 들어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짝퉁’으로 취급된다. 이 에피소드야말로 상품이 어떻게 생산자를 소외시키는지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자는 보람보다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즐거움을 누리는 방식이 ‘나’를 구성하는 요소라면,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즐거움이고, 이를 통해 생산자라기보다 소비자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것이 훨씬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생산자가 사라지고 소비자가 부각된 까닭이다.


“고객님, 신제품 할인행사가 있으세요”라는 표현은 그러므로 단순한 말실수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 말이 보여주는 것은 상품의 판매를 위해 매개자가 되는 것 이외에 다르게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어떤 ‘감정노동자’의 궁여지책이다. 자신의 감정을 상품이라는 대상에게 내어주고, 자신을 감추는 태도야말로 지금 목도하고 있는 ‘소비사회’에서 장삼이사들이 살아남는 전략일지도 모른다. 


영국은 중산층 대부분이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반면, 한국은 대조적으로 노동자 대부분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는 통계가 있다. 지금까지 이런 전도현상을 ‘국민의식’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각성하지 못한 대중’에 대한 비판이 이른바 진보를 구성하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어떻게 대중이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다른 삶’을 갈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세상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구분해 악을 제거하면 좀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환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한국 진보의 상황이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가혹한 것일까? 거듭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던 진보세력 중 일부가 선택한 것이 결국 ‘조직 보전’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보수주의였다는 사실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생존이 곧 전략이 되는 상황은 그만큼 변화로부터 격리되어온 그 집단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진보의 고민이 시작되어야 할 지점은 정치공학적인 해결책도, 선거제도의 정비도, 야권연대의 유지도 아니다. 더 이상 특정 세력의 생존이 진보의 전략으로 치환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고객님, 신제품 할인행사가 있으세요”라는 발화를 요구하는, 그 ‘틀린 문법’의 현실에서 진보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필요한 것은 소비주의의 지층에 묻힌 대중의 정치를 발굴하는 작업이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가장 중요한 원칙을 망각하고, 자신을 지키려는 그 의지야말로 권력의 논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신이 옳다고 믿지 않았던 폭군도 없었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은 폭력도 없었다. 이제 진보의 미래를 비춰볼 거울은 소비의 그늘에 가려진 생산자의 정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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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 대중문화평론가


 

돌이켜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노래를 가지고 별별 일을 다 한 대통령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에게는 ‘베사메무쵸’가,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상록수’가 떠오르지만 그건 그저 그들의 애창곡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리면 수많은 노래들이 머릿속에서 엉킬 정도로 복잡다단하다.


그는 노래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이해하는 대통령이었다. 5·16 쿠데타 1주년 기념식에 주문제작한 ‘잘 살아 보세’를 발표해 국민적 애창곡으로 만들었다. 쿠데타 수뇌부가 작사자로 방송극작가 한운사를 낙점까지 했다니 놀라운 혜안이다. 이후 박정희 시대 내내 공공단체와 방송국 등이 추동하여 많은 건전가요들이 쏟아져 나왔고, 길옥윤 작 ‘서울의 찬가’, 신중현 작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 적지 않은 노래가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노래를 작사·작곡하여 전 국민에게 부르도록 했다. ‘나의 조국’과 ‘새마을 노래’가 그것이다. 유신시대 내내, 텔레비전에서는 애국가에 뒤이어 두 노래가 나온 후에야 방송이 시작되었다. 국립합창단의 ‘나의 조국’ 뮤직비디오는 애국가 못지않게 웅장하여,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에 높은 기상 이 겨레 지켜왔네’란 대목에선 여지없이 백두산과 한라산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내 또래들은 지금도 3절까지 입에서 줄줄 나올 만큼 많이 불렀던 노래인데, 대학에 들어가 보니 선배들이 ‘5·16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10월유신 없었으면 이 나라 망했겠네’ 식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며 킬킬댔다.



1958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 2004년까지 2,100여곡 발표. 가장 많은 노래를 가장 오랜 기간 불렀고 음반판매 수익이 가수 중 최고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대중가수. 유신정권 시절 '동백아가씨'는 왜색풍이라는 이유로 '기러기 아빠'는 가사가 불온하다는 이유로 금지곡 반열에 올랐다. (1941.10.30 - ) (경향신문DB)



‘새마을 노래’를 제쳐놓고 하필 이 노래가 야유의 대상이 된 것은, 이 노래가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력이 없는 ‘올드패션’의 선율로 되어 있었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이 노래는 일본식 ‘라시도미파’의 5음계로 이루어진 것으로, 트로트와 동일한 음악언어를 쓰고 있다.(목소리를 꺾으며 느린 템포로 불러보면 영락없는 트로트이다.) 1917년생으로 트로트와 일본 군가의 전성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을 그가 이런 일본색의 노래를 구사했다는 것은, 할리우드 키드들이 할리우드 감각의 영화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애창곡도 트로트의 원조 격인 ‘황성 옛터’라지 않는가. 하지만 그의 집권기 내내 ‘동백 아가씨’ 등의 트로트 곡이 ‘왜색가요’로 낙인 찍혀 금지곡이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런 걸 보면 박정희 정권기의 금지곡이란, 트로트의 일본색이 문제라서, 혹은 가사가 정말 퇴폐·불온해서라기보다는, 그런 금지곡을 몇 개쯤 만들어놓는 것의 사회적 파급력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윤리위원회가 발표한 대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가 ‘불신 조장’을 한다고 금지했다면 너무 우습지 않은가. ‘고래사냥’의 금지 사유인 ‘시의에 적절치 않음’은 또 뭐란 말인가. ‘라라라’(‘조개껍질 묶어’)는 길옥윤 작 ‘사랑이란 두 글자’의 표절이라는데, 난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금지곡으로 묶고, 대마초 사건을 대대적으로 터뜨려 인기가수들을 5년 동안 완벽하게 퇴출시킨 조치는, 확실히 사회 전체를 군기 잡는 효과로는 만점이었다.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 한두 놈만 대표로 세게 ‘빠따’를 치면, 모두 고분고분해지는 효과라고나 할까. 그 ‘한두 놈’을 대중적 파급력이 높은 대중가요로 선택했다는 것 역시 정말 탁월한 판단이었다. 정말 노래가 뭔지 아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수많은 금지곡들은 1987년 6월항쟁으로 제5공화국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야 풀렸다. 그 금지곡들을 모아, 10월유신 40주년과 6월항쟁 25주년을 기념한 ‘금지곡 콘서트’를 홍대앞과 정동에서 연단다. 참, 올해는 이래저래 기념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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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노동자가 가진 건 제 몸뿐… 그걸 망가트리는 게 야간노동이다”

 

“밤엔 잠 좀 자자!” 지난해 5월 야간노동의 폐해를 사회에 확산시킨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주간연속 2교대제’ 투쟁이 1주년을 맞았다. 이 투쟁은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자본과 지배계급 진영의 반응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대통령은 ‘연봉 7000만원 받는 귀족노동자들의 배부른 투쟁’이라 비난했고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교대제 개선은 ‘노동 혁명’을 하자는 거라 주장했다. 그들은 유성 노동자들의 싸움이 단지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하루 8시간 노동이나 주5일제 도입 같은 커다란 역사적 물꼬가 될 것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유성 노동자들은 이미 주5일제 도입을 선도한 이력이 있다. 이정훈은 유성기업이 첫 직장으로 입사한 지 25년째인 노동자다. 작년 3월 민주노총 충북본부장을 마치고 복귀했다가 27명의 동료와 함께 5월 투쟁으로 해고되었다.

김규항 = 주간연속 2교대제는 이미 노사합의가 되었던 문제지요.

이정훈 = 저희가 5년가량 준비해서 2009년에 노사합의를 했습니다. 2011년부터 실시하기로 하고 매달 한두번씩 실무위원회를 했어요. 사측에서 출장비까지 지급했죠. 2011년 5월18일 오전에 주간연속 2교대제 조합원 찬반투표를 하고 주간조 조합원들이 두시간 동안 간담회를 했어요. 그런데 사측이 20시에 직장폐쇄를 하고 용역깡패들이 들어왔죠. 22시에 야간조가 출근해서 용역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냈는데 그날 용역깡패들이 대포차를 인도로 돌진시켜 노동자 13명이 중경상을 입었죠. 농성 6일 만에 경찰 4000명이 들어와 강제진압을 했습니다.

 

유성기업 해고노동자 이정훈씨가 지난 25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서울 덕수궁 앞 농성장을 찾아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글자판 뒤에 서 있다.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김규항 = 회사가 그렇게 나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까.

이정훈 =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실시를 미루고는 있었지만 직장폐쇄를 할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11번이나 교섭을 진행하면서 주간연속 2교대제 실행 자체에 대해선 문제 삼은 적도 없고요. 감쪽같이 우릴 속이면서 주간연속 2교대제뿐 아니라 아예 노조를 깨려고 준비해왔던 거죠.

김규항 = 원청사인 현대자동차가 배후라는 게 밝혀졌는데요.

이정훈 = 현대차 총괄이사의 차가 회사 안에 있었는데 저희가 차를 빼주다 ‘유성기업 불법파업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을 발견했죠. 창조컨설팅이라는 업체에서 만든 문서입니다. 유성기업의 주간연속 2교대제가 이루어졌을 때 현대차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 전제되어 있고 노조를 깨기 위한 시나리오는 물론 매우 구체적인 내용까지 있었어요. 카메라를 어디에 몇 대 설치하고 용역깡패 인원과 장비 등등.

김규항 = 원청사가 하청사의 노무관리를 하는 건 사실 공공연한 비밀인데요. 창조컨설팅은 ‘창조가 들어가면 노조 깨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분야의 전문기업입니다.

이정훈 = 문건에도 삼신브레이크를 어떻게 했고 발레오전장을 어떻게 했는데 유성노조는 두 회사와 조직적 차이가 있으니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있더군요. 증권거래소에 제출한 현대차 경영 자료를 보니 2011년도에 유성만 단가 인상을 26% 해주었더군요. 보통 2~3% 해줍니다. 노조를 깨기 위해 들어가는 돈을 지원하는 셈이죠. 작년에 용역깡패에게 들어간 돈만 해도 500억원은 되거든요.

김규항 = “밤엔 잠 좀 자자”라는 유성 노동자들의 구호는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습니다. 심야노동이 건강을 해친다는 건 의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독일 의학계는 야간노동이 수명을 13년 단축시킨다고 발표한 바 있고, 국제노동기구(ILO)에선 40세 이상 노동자의 야간노동을 금지하고 있죠. 유성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이 42세가량이라 들었습니다.

이정훈 = 야간노동이 원인이 된 과로사로 한 해 한명 꼴로 죽었습니다. 기계에 말리고 일하다 쓰러지고 퇴근 버스에서 영영 깨질 않고. 야간조가 2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일하고 나와서 두어시간 자면 깨요. 잠을 더 자기 위해 술을 먹고 두어시간 자고 피로가 안 풀린 상태에서 또 야간 들어가는 거죠. 새벽 두시쯤 되면 죽음 같은 졸음이 쏟아지죠.

김규항 = 공장형 닭 사육을 보면 밤에도 대낮처럼 불을 켜놓거든요. 닭이 낮인 줄 알고 계속 사료를 먹죠. 몸이 완전히 망가지지만 중요한 건 살이 얼마나 찌는가일 뿐이죠. 인간의 야간노동은 그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정훈 = 모든 생명들은 낮엔 잠을 잘 못 자요. 가축도 밤엔 자게 해야 건강하죠.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로가 밭주인들은 가로등 설치를 하려 하면 열매를 못 맺는다고 들고일어나고 그러거든요.

김규항 = 가족들의 의견은 어떤가요.

이정훈 = 대환영입니다. 야간 노동을 하면 아이들 얼굴을 거의 못 보고 삽니다. 젊은 동료들이 아이가 아빠라는 존재를 잘 모른다고 호소하곤 합니다. 주말에도 나가야 하고.

김규항 = 어용노조가 작년 7월에 생겼는데 현재 1노조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정훈 = 복수노조 자체를 반대하진 않아요. 어용노조가 있는 회사에 민주노조가 생기면 좋죠. 문제는 민주노조가 있는 상태에서 어용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조를 깨는 거죠. 복수노조법이라는 게 자본이 악용하기 좋게 되어 있습니다. 민주노조가 1노조일 땐 두 노조와 개별 교섭을 하고 어용노조가 1노조가 되면 교섭창구 단일화를 해서 민주노조를 무력화하는 거죠.

김규항 = 한진중공업도 그렇고 복수노조법의 악용이 많습니다. 함께 투쟁한 노동자들도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용노조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정훈 = 조합원은 우리가 14명이 많은데 저쪽에서 관리자 49명을 넣어서 1노조를 만들었지요. 작년 7월1일에 어용노조가 서고 싸움이 힘들어지면서 복귀자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560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넘어갔죠. 어용노조 위원장은 89년도에 노동자 의사를 무시하고 사측과 직권 조인했던 사람입니다.

김규항 = 복귀자에게 모욕적인 전향식을 치르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정훈 = ‘모든 것들을 불법으로 인정하고 금속노조 탈퇴한다’는 각서에 서명하고 정문을 통과하면서 용역깡패들 앞에서 ‘나는 개다’를 세 번 외치게 했죠. 장년 노동자들로선 자식뻘인 청년들 앞에서요.

김규항 = 어용노조로의 이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까.

이정훈 = 오히려 다시 돌아오는 분위기입니다. 어용노조의 단체협상 내용들이 회사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면서 넘어간 조합원들이 꿈틀거리는 상태입니다. 그쪽 집행부도 사측이 너무 막나가니까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어려워 갑갑해하고 있어요.

김규항 = 용역을 비호하는 것도 그렇고 예나 지금이나 경찰 공권력과 검찰은 일방적으로 사측 편이라 노동자들의 투쟁을 힘들게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법원과 노동위원회에선 이기고 있지요.

이정훈 =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부당징계는 천안지원에서 승소했고 대전고법에서도 승소했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도 부당해고, 부당징계,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가 나왔고 사측에서 중앙노동위원회로 올렸는데 이길 거라 봅니다. 특별 근로감독에서도 70여 건의 부당노동 행위가 적발되어서 과태료 10억원이 나온 상태입니다. 손배 가압류도 다 기각되었습니다.

김규항 = 천안지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이 나면서 ‘원심확정 시까지 근로자 지위보전을 해라’ 해서 해고자들이 임금을 받고 있는 건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요즘 이명박 욕하면 ‘개념판사’라고들 하는데 노동자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게 진짜 개념판사죠. 용역깡패를 비호하는 문제라든가 경찰과 검찰의 일방적인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을 많이 어렵게 합니다만.

이정훈 = 대전고법 재판 때 유성 사장이 판사에게 ‘해고자 20여명의 임금을 지급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하니까 판사가 ‘법적으로 부당해고 판결이 났는데 그럼 복직시키면 될 게 아닌가’라고 반문하더군요. 법의 상징이 저울이잖아요. 저희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저울에 입각하여 정확한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김규항 = 법으로 이기면서도 안심하기 어려운 건 현대차는 물론 자본진영 전체가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통령도 ‘연봉 7000만원 받는 귀족노동자가 배부른 투쟁한다’고 비난한 적이 있고 보수언론은 일제히 주간연속 2교대제가 ‘노동 혁명’에 해당한다고 매도하는 것도 그런 맥락인데요.

이정훈 = 유성 특별수사본부가 127명으로 역대 최대 인원이었다고 합니다. 개구리소년 때 60여명, 화성연쇄살인사건 때 100명이 못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국가적인 사태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쪽에선 유성을 본보기로 삼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가 당하고선 부품사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 이야기가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자칫하면 유성처럼 된다는 두려움이 만연한 거죠.

김규항 = 선봉에 선다는 건 언제나 그만큼 많은 고통을 치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그놈의 ‘연봉 7000’ 이야기를 좀 하죠. 우선 유성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한 게 아니라 반대로 임금이 줄어도 좋으니 밤엔 잠 좀 자자는 것 아닙니까.

이정훈 = 저희 요구안으로도 현재 임금에서 30만~50만원 정도 줄어들어요. 노사 합의가 되면 아무래도 그보다는 더 줄겠죠. 그리고 연봉 7000만원을 받는 게 가능은 합니다. 그러려면 저 정도 경력의 노동자도 7000만원을 받으려면 야간노동은 물론 70시간 이상 잔업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 일하면 죽습니다. 7000만원도 적지요. 대통령은 뭐든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합디다만.(웃음)

김규항 = 현대차 같은 큰 이윤을 내는 회사도 공장이나 설비를 늘리지 않고 노동 강도를 높여 생산성을 해결하는 방식이 문제인데요. 일부 대공장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임금을 더 받기 위해 잔업특근을 함으로써 그에 부응하는 경향도 있어 왔지요. 작업특근을 많이 따내는 게 대의원의 능력이 되기도 하구요. 그게 허울좋은 ‘귀족노동자’의 실체죠. 그에 반해 유성 노동자들은 그런 근본적인 문제와 대면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도 10여년째 못하고 있는데 노조원이 100분의 1에 불과한 유성노동자들이 야간노동 문제를 사회적으로 떠올렸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중들이 ‘밤엔 잠 좀 자자’라는 구호에 많이 호응도 했지만 반대의 정서도 여전합니다. 현재 한국 노동자들이 사무직 빼곤 야간노동 안하는 경우가 없는 형편이다보니 냉소적인 반응도 보입니다.

이정훈 = ‘경기도 어려운데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 아니냐’ ‘비정규직은 100만원도 못 받는데 지들은 살 만하니까 야간노동도 안하려고 하는구나’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정서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야간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게 분명한 이상 우린 야간노동을 없애야 합니다. 노동자는 가진 게 몸뚱이뿐인데 야간노동은 그걸 망가트립니다. 당연히 함께 싸워서 없애야지요.

김규항 = 유성 노동자들의 승리가 결국 모든 노동자들의 보편적 현실이 되는 건데 자본과 지배계급은 유성노동자들이 특권을 누리려 하는 것처럼 매도합니다. 서로 반목하게 해서 손쉽게 지배하는 수법은 한국에서 유서 깊은 것입니다. 여전히 대중들이 현혹되는 경향도 있지만 의식수준이 예전 같지 않아서 결국 한계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상급식을 결국 못 막아낸 것과 비슷하죠. 결국 어떻게든 실시가 될 거라 볼 때 자본은 실시는 하되 내용에서 또 뒤틀려고 할 텐데요.

이정훈 = 현대차도 그렇다고 알고 있는데 사측에선 가긴 가더라도 임금의 충분한 삭감과 노동시간은 줄어도 생산량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려 하죠. 그러나 야간노동 폐지의 의미를 가지려면 앞서 말씀대로 노동 강도로 생산량을 유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산 시설을 확대하고 고용도 늘리자는 쪽으로 가야만 합니다. 자본 측에서는 8시간씩 3교대를 제안하기도 하는데 이건 생활 리듬이 깨지면서 건강에 더 해롭습니다.

김규항 = 유성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울 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현실을 함께 생각하며 싸우고 또 연대의 모범을 보여 왔다는 건 잘 알려진 일입니다. 노조의 요구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도 했고 여전히 유성기업엔 비정규직 노동자가 없습니다. 유성 투쟁에 연대한 젊은 활동가가 유성 노동자들을 ‘멋진 아저씨들’이라 말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존경심이 묻어나더군요.

이정훈 =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특별하게 여겨질 때마다 우리 노동운동이 뭔가 많이 잘못 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본과 지배계급은 그렇게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면서도 노동자와 대립할 땐 철저하게 공조하지 않습니까. 이해관계가 일치되어있다는 걸 귀신처럼 알고 말이죠. 우리가 그들에게 밀리는 이유는 언제나 우리가 그들만큼 연대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고 연대하는 건 양보나 희생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싸움입니다.

김규항 = ‘멋진 아저씨들’이라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웃음) 자본과 지배계급이 본보기로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꼭 이겨서 승리의 본보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유성 노동자들이 밤에 잠을 잘 수 있게 되면 머지않아 모든 노동자들이 밤엔 잘 수 있게 됩니다. 많이 분들이 연대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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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숲학교 오래된미래’ 교장 happyforest@empas.com


산중 숲에 사는 나는 세상 소식을 대할 채널이 많지 않다. 하루하루의 소식 정도야 라디오의 뉴스를 통해 주로 얻어 듣지만, 세상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채널은 마땅한 것이 없다.

하긴 도시에 살 때와 달리 세상의 흐름에 큰 관심도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흐름이 궁금할 때면 나는 서점가의 신간 소식을 찾아보곤 한다. 신간의 제목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분야별로 대략의 세상 흐름을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의 눈길을 끈 신간 도서의 흐름은 ‘아픔’에 대한 강조다. 이 시대의 세상 전체를 피로사회로 규정하는 책도 있고, 청춘은 본래 아픈 시절이라고 좌절감이 큰 청년층을 위로하려는 책도 있다. 중년의 마음을 끌기 위한 어떤 책은 ‘마흔은 아플 수도 없는 아픔’이 있는 큰 버거움을 안고 산다고 자극한다.

 


청춘이건 중년이건 세상이건, 그만큼 피로하고 그만큼 내상(內傷)을 안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일까? 청년실업과 저임금, 비정규직 취업구조 속에서 삶을 시작해야 하는 청춘, 뜻하지 않게 조직을 떠날 수도 있는 상시 위험의 구조 속에서 삶과 가족을 걱정해야 하는 중년을 생각하면 아픔이 부각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숲과 자연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고, 그 지혜를 세상과 나누며 살고 있는 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스스로를 아픈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을 염려하게 된다. 몸이 겪는 병도 너무 아픔을 크게 받아들일 경우 몸을 추슬러 다시 생기를 되찾는 것을 오히려 늦추거나 방해하듯, 시대적 정신적 통증 역시 지나치게 강조되고 확산되는 것은 우리를 더욱 무기력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된다.

나는 오히려 아픔이 삶의 일부임을 강조하고 싶다. 삶 전체에 희로애락이 순서를 두지 않고 찾아들고 섞이고 또 반복하듯, 아픔 역시 전체 삶의 어느 국면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을 인정하자 말하고 싶다. 역사 역시 그 흐름이 섞이고 다시 반복되는 것이니 찾아든 아픔을 전부로 여겨 그 앞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권하고 싶다. 나의 역설은 숲에서 살아가는 나무와 풀의 삶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단호하게 표현하면 그것이 곧 자연의 가르침이라는 말이다.

내가 사는 여우숲은 아주 오래 전에 산사태가 있었던 곳이다. 산의 한쪽 면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 크고 작은 바위와 돌도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무너진 산의 사면이 모두 천이(遷移)의 과정을 통해 다양한 나무와 풀로 복원되었고 마침내 숲을 이루었지만 표면에는 정상에서 흘러내린 바위와 돌이 가파름을 지탱하고 있는 형상을 보이는 숲이다.

상상해 보라! 여우숲처럼 바위와 돌이 많은 산에서 삶을 시작해야 하는 개별 식물의 삶은 어떨까? 태어날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생명은 하나도 없다. 삶은 오직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도 짐승도 식물도 모두 마찬가지다. 더욱이 식물은 태어난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스스로 움직일 수조차 없다. 광합성이라는 획기적인 능력을 가져 스스로 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재주를 선물로 받은 대신, 오직 태어난 자리에서 제 하늘을 열고 꽃피워야 한다는 형벌도 함께 받은 생명이 식물이다.

바위와 돌이 많은 지형인 이곳에서 삶을 시작한 여우숲의 나무들, 특히 바위 위에서 발아한 나무들은 모두 바위를 끌어안거나 바위를 뚫는 방법밖에는 삶을 지탱할 방법이 없었다.

참으로 큰 아픔이요, 재앙이었다. 바위에서 싹이 튼 여우숲의 그 나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왜 하필 이 자리에서 삶을 시작해야 하느냐고 원망하는 삶을 살았을까? 나는 왜 산사태가 나기 전의 이 산에 태어나지 못했느냐고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부여잡고 아파했을까?

내 삶이 동구 밖의 느티나무보다 너무 척박하다고 여기가 아닌 저기의 삶을 부러워했을까? 이런 곳에서 내가 꽃이나 제대로 피워낼 수 있겠느냐고 아직 주어지지 않은 미래를 걱정했을까?

아니다. 여우숲의 소나무는 바위 틈을 헤집어 뿌리를 박았다. 키는 조금 작더라도 그렇게 제 하늘을 열었고 가을이면 오래된 솔잎을 떨구며 토양의 비옥도를 조금씩 높여나갔다. 여우숲을 이루고 있는 또 다른 나무인 느티나무나 신갈나무들은 바위를 끌어안았다. 자신을 핍박하던 바위를 끌어안음으로써 마침내 어떠한 태풍이나 강우에도 버텨낼 버팀돌로 바꿔놓았다. 참으로 많이 힘겹고 아픈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모두 숲의 주인이 되었다. 지금 이 숲의 신록은 모두 그들이 아픔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결과다. 노루와 살쾡이, 멧돼지가 이 숲으로 되돌아온 것은 모두 아픔의 국면을 담담하게 건너 낸 나무들의 공이다. 지금 여우숲은 소쩍새 소쩍- 소쩍- 노래하고 부엉이 푸호- 푸호- 울어대며 검은등뻐꾸기 뽀-뽀-뽀-뽀 유혹의 소리가 한창이다. 잔치가 따로 없는 날들이다. 이 숲의 잔치는 모두 아픔을 껴안고 제 하늘 열어 꽃피워낸 바위 위의 나무들의 분투가 차려낸 밥상이다.

그렇다. 나만 아프고 인간만 아픈 것이 아니다. 내게만 결핍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픔과 결핍은 생명 모두에게 주어지는 신의 형벌인지도 모른다. 가없이 나약한 생명이 바로 우리 인간이니 어쩌겠는가? 아파하자, 그러나 주저앉지는 않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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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 | 한예종 영상원생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다. 한 달 동안 끔찍한 일들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와 연이어 벌어진 중앙위원회에서의 폭력 사태, 한 당원의 분신, 검찰의 당원명부 압수수색과 이번 사태들과는 아무런 연계가 없는 몇몇 사회주의 단체들에게 가해진 공안 탄압, 그리고 덕수궁 앞에 차려진 쌍용차 22명의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폭력적으로 철거된 일까지. ‘지옥’이란 게 달리 특별한 고통이 있어서 지옥인 게 아니라면 단체로 ‘멘붕’에 빠진 오늘날의 진보세력이야말로 지옥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사태를 초래한 데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구당권파는 사태의 본질을 ‘마녀사냥’이나 ‘정치공작’으로 치부하면서 맞불을 놓고 버틸 뿐, 자신들이 초래한 파국적 사태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다. 진실공방으로 논점을 흐리며 일정한 정치적 명분을 확보한 뒤 시간을 벌려는 조야한 출구전략을 갖고 있을 뿐이다.

 

통진당 중앙위 결과발표 ㅣ 출처:경향DB

한편 반대편에선 “우린 경기동부가 아니”라며 이 사태가 어떤 악마적 행위들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고 힐난하는 데 열심이지만, 그것은 허울 좋은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저 이 끔찍한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 바라며 변변찮은 제스처를 보일 뿐이다. 이를테면 애국가를 부르겠다든지, 미군철수 요구를 재검토하겠다든지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애초에 이 사태를 불러일으킨 원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오히려 이 사태를 활용해 노선의 우경화를 강제하는 공안당국의 입맛을 채워줄 뿐이다. “국회에서 왜 애국가를 꼭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던 유시민이 정반대편에 서서 ‘빨갱이 사냥’에 나선 것은 오늘날 ‘진보’가 얼마나 모순적이며 우스꽝스러운 파국에 처했는지 잘 보여준다.

소위 진보정치 세력이 집단적으로 멍 때리고 있는 동안,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져 있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는 이른 아침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철거되었다. 영정이나 모금함까지 가릴 것 없이 죄다 쓰레기차에 실려 사라졌다. “그것은 쓰레기가 아니다!”라고 절규했지만 돌아온 것은 폭력적 연행뿐이었다.

우리가 진보의 위기를 돌파하고 ‘진보’의 새로운 이름과 자리를 찾으려면 이 사태를 오늘날 진보세력 전반이 처한 오류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부정경선 말고도 야권단일화 경선 여론조작, 성폭력 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정진후의 비례대표 공천, 성추행 전력 후보에 대한 부실 검증, 현직 지방의원의 사퇴 후 총선 출마 등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으로서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치부를 드러냈다.

이것은 과거 민주노동당이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보다는 의회에 대한 물신적인 태도를 강화하면서 점점 극심해진 경향이다. 국회의원 몇 자리 생긴 이후 인력과 재정의 배치가 의정지원에 편중되었고, 당이 품을 정치적 상상력을 키우고 사회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기보다는 스타정치인들의 의정활동에 주력하면서 그들이 전면에 나서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국회의원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파 간 경쟁도 격화되었다. 활동의 초점이 대안 이념이나 운동이 아니라 당권 장악과 공직 진출에 맞춰지게 된 것이다.

총선과 대선이 몰린 시기 선거공학에 따라 무원칙한 합종연횡과 권력분점을 시도한 산물이 바로 오늘의 통합진보당이다. 이런 한계 속에서 정파들 간의 지분 안배와 당직·공직 진출은 처음부터 첨예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통합 이후 대의기구 지분 분할과 비례대표 선출을 둘러싸고 지난한 논쟁과 치열한 경쟁이 발생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결국 당권파로 새로이 등극한 심상정을 위시로 한 세력이 자유주의 세력과 통합하고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추진한 통합진보당의 노선을 변경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 사이 진보 고유의 대안적이며 급진적인 가능성들은 점차 소멸되어 갈 공산이 크다.

지난 한 달 우리가 목격해온 것이 ‘지옥’이라면, 우리는 이 지옥에서의 악전고투를 거듭할 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끝내고 다시 신발끈 동여맬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그 자리가 소위 진보세력이 허우적거리던 그 순간에도 묵묵히 존재를 위한 저항을 이어온 쌍용차 해고노동자,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비롯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통합진보당은 민주당 옆자리 어디쯤, 정권교체 후 꿰찰 장관 자리 하나쯤이 자신들이 갈 길이라고 횡설수설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는 앞선 세대의 과오를 반복하는 그런 미래는 거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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