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업체인 SJM과 만도의 사업장에서 파업 노조원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두른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개인경호를 맡았으며 현 정권 들어 급성장했다고 한다.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이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폭로한 바에 따르면 컨택터스는 이번 사건 이전에도 상신브레이크, 유성기업 등 노사분규 중인 사업장에 들어가 폭력을 휘둘렀으나 단 한번도 경찰의 제지나 고소·고발 없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재개발 현장에서도 청부폭력을 행사했으나 지난 5년간 전혀 조사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 업체가 법과 상식을 비웃으며 노조원들에게 곤봉과 쇠파이프를 휘두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떤 식으로든 정권 차원의 비호가 있었을 것이라는 강한 의심을 하게 된다. 온갖 형태의 반민주적 행태를 일삼아 온 현 정권이 ‘용역깡패 후견인’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말문이 막힐 뿐이다. 


수력방어 특수차량 (경향신문DB)


컨택터스가 ‘든든한 뒷배경’을 두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발표한 ‘사과문’을 살펴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선 이들은 노조원들에 대해 “순진무구한 양민이 아니라 부득이하게 진압할 수밖에 없었던 살벌한 집단”으로 매도했다. 또 “착하고 어지신 마음일랑 접으시라”며 국민들을 조롱하는가 하면 문제를 제기한 장 의원 등 국회의원들에게는 “기득 노동권력과 단절하고 더욱 낮은 곳에 시선을 두라”는 주제넘은 충고까지 했다. 또 경찰과 노동부 등 관련 당국에는 “우리가 없으면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공권력에 부담이 된다”며 은근한 협박까지 했다. 과연 이것이 백번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용역폭력업자’들이 입에 담을 수 있는 언사인지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컨택터스가 지금까지 저지른 모든 폭력행위를 전면적으로 수사한 뒤 위법사실에 대해서는 엄중 처벌해야 한다. 폭력을 사주한 사업주들도 수사대상에 올려야 한다. 또한 이들이 지난 5년 동안 어떻게 무법천지의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는지, 정권 차원의 조직적 지원이 이뤄졌는지 등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국회도 당국에만 모든 것을 맡겨놓지 말고 자체적으로 진상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관련법의 미비한 규정도 대폭 손질해야 한다. 현 정권 출범 이후 ‘기업하기 좋은 나라’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슬로건이 유행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용역깡패 하기 좋은 나라’ ‘청부폭력 프렌들리’까지 등장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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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봉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앞으로 3년 동안 MBC 사장 선임과 방송국의 경영을 관리 감독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을 새로 선임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이번에 새로 선임된 9기 방문진 이사에 지난 8기 방문진 이사로 활동했던 김재우 전임 방문진 이사장과 김광동, 차기환 이사 등 3명을 다시 추천했다. 


 이들을 다시 방문진 이사로 추천한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의 의도는 명확하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사장으로 공영방송 MBC를 친정부 성향의 MB방송으로 전락시켜 국민적인 지탄을 받고 있는 김재철 현 MBC사장을 해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지난 170일 동안 차가운 길바닥에서 공정방송 사수를 외치며 개인적인 피해와 징계, 그리고 갖가지 탄압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맞서 싸운 MBC 노조의 눈물겨운 투쟁을 철저히 짓밟는 행동이다.


국회 문방위 출석한 김재우 이사장 (경향신문DB)


MBC의 운영과 경영을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는 김재우 전임 방문진 이사장은 노조의 파업으로 MBC가 파행을 겪고 있을 때, MBC노조의 파업을 정치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MBC 파업사태 해결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등 MBC 파업을 철저히 외면해 직무를 유기해 왔다. 나아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는 김재철 사장의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진상규명을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김재우 전임 이사장의 이러한 수수방관과 직무유기로 김재철 사장은 사회적 비난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MBC 사장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임기를 반드시 마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공영방송 사장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삼류 막장 드라마 같은 비리의혹이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김재철 사장이 임기를 마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그를 정권말까지 끌고가 올해 대선에서도 지난 4·11 총선 때처럼 온갖 왜곡 편파 방송을 통해 여당 대통령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겠다는 의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여당의 이러한 의도는 김재우 전임 방문진 이사장과 이사 2명의 재임명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편집 자율성과 공영성 말살로 공영방송 MBC를 망친 장본인인 김재철 사장과 함께 지난 8기 방문진은 엄중한 책임을 져야한다. 그럼에도 이들을 다시 3년 동안 MBC를 관리 감독하는 이사로 재임명하는 정부와 여당의 행태는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들을 우롱하는 태도다.


그런데 이처럼 새로운 방문진 이사 선임이 국민들의 공영방송 정상화 여론을 철저히 무시한 채 MBC를 기존의 MB방송으로 끌고갈 수 있는 배경에는 정치권이 방문진 구성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방문진 이사를 선임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 방통위는 독립적으로 방문진 이사를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에서 추천한 인사들의 명단을 받아 임명하고 있어 정치적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와함께 방통위에 방문진 이사를 추천하는 여야 정치권 역시 추천 과정에서 방송 관련 전문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추천 대상자를 선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사례는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마찬가지다. 여야 모두 이사 추천 과정에 방송분야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힘 있는 국회의원들의 정치적인 영향력에 의해 추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이 더 이상 정치적인 영향력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적인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공영방송의 독립과 공영성 확립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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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숙 | 한국여성의 전화 상임대표


 

망연자실, 속수무책, 지난달 23일 범인을 잡은 ‘통영초등학생 살해사건’과 ‘제주 올레길 여성살해 사건’을 보며 느끼는 심정이다. 이제는 분노를 넘어 절망과 무기력을 느낀다. 이 정부는 여성폭력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능하단 말인가?


지난 4월 오원춘 사건 발생 이후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가정폭력과 살해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경찰청장의 사퇴도, 여성가족부 장관의 눈물도, 정부의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호들갑스러운 대책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원춘 사건이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지역에서 112신고를 한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경찰이 출동하지 않아 가해자의 보복 폭행으로 중상해를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7월2일과 4일에는 결혼이주 여성들이 남편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으며, 통영과 제주의 사건들이 일어났다. 이렇게 여성 폭력 사건이 날 때마다 우리 사회는 난리법석을 떨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길어야 일주일이면 여성폭력 사건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혀졌다. 그리고 다시 사건이 나면 또다시 과거와 크게 다른 것 없는 스토리들이 언론을 장식한다.


(경향신문DB)


이제 한국사회는 여성폭력 문제에 멍하니 제정신을 잃고, 뻔히 보면서도 어찌 할 바를 모르는 형국이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 ‘안전’과 ‘생명’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생명을 박탈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 권리는 그 어떤 권리에 우선한다. 살아있어야 노동을 하고, 살아있어야 아이도 낳고, 살아있어야 그 외의 나머지 일들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기본적 생존 조건을 여성들에게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운동의, 한국 사회의 핵심 의제가 아니었다. 성폭력·가정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여성폭력 근절’이 국정의 제1과제가 되어야 한다. 총체적이고, 유기적으로 각 부처가 협력하여 ‘여성폭력 근절’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단기처방이나 법과 제도의 변화만으로는 ‘여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가정폭력·성폭력 가해자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하며, 형량을 높이는 처벌의 엄격성만이 아닌 처벌의 실효성을 담보해야 한다. 경찰대학, 사법연수원, 로스쿨 등을 포함해 경찰이나 검찰, 법원의 사법종사자들에게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인사고과에 여성폭력 처리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유치원부터 초·중등학교와 대학교 등 모든 공교육 체계 안에 여성인권과 폭력에 대한 교육을 정규 교과로 실시해야 한다.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공기업과 주민자치센터, 평생교육원 등 사회 모든 영역에서 여성폭력과 인권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고, 지속적인 정부 차원의 여성폭력 예방과 근절 캠페인이 시행되어야 한다. 의식의 변화 없이는 여성폭력 근절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등 여성폭력은 나타나는 양태는 다르나 여성 차별의 극단적 표현이라는 뿌리는 같다. 신체적 폭력은 성적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고, 폭력 가정에서 아내에 대한 성폭력과 근친성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가정폭력 피해아동이 가출과 성폭력의 위험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모두가 인지하는 사실이다. 따라서 각각의 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그 특수성을 감안해 지원하고, ‘여성폭력 예방과 근절’에 대해 복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여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참여와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 아이나 아내, 어머니가 그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옆집 가정폭력 가해자의 가스폭발로 우리 집이 무너질 수도 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오늘 국가의 무능과 방조로 억울하게 죽어간 폭력 피해여성들을. 그리고 그 기억과 분노로 여성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해야 한다. 여성은 노동력을 충당하고, 차세대를 생산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그 ‘생명’과 ‘존엄’을 보장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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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민 경제부 기자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흔히 ‘낙수 효과’로 번역한다. ‘물이 흘러넘쳐 바닥까지 적신다’는 뜻인데,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을 깎아 부(富)를 늘려주면 그것이 넘쳐 흘러 중소기업과 중산층·서민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철학이 바로 트리클 다운이다.

지난 22일 정부가 추진키로 결정한 회원제 골프장 개별소비세 인하 정책은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한 해 2500만여명이 즐기는 골프장 이용료(그린피)에 붙는 세금을 줄여주면, 부자들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골프를 치고, 그 결과 내수 활성화와 외화 절약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골프는 아직까진 부자들의 ‘전유물’이다. 수도권에서 골프를 즐기기 위해선 개인당 평균 30만원 안팎이 든다. 1인당 그린피가 20만~28만원에 달하고, 여기에 팀(4명)당 캐디피와 카트 이용료 명목으로 18만~20만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부자들에게 세금 2만원은 그렇게 큰돈이 아니다. “세금 깎아줄 테니, 국내서 즐기면서 돈을 쓰라”는 정부의 주문은 순진하기 그지없다.

 

골프장 ㅣ 출처:경향DB

정부는 이미 부자들에게 충분히 세금을 깎아줬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인한 세수 감소는 소득세 9조4000억원, 법인세 4조7000억원, 종합부동산세 2조3000억원 등 연간 21조3000억원이다.

이렇게 세금을 깎아줬지만, 기업들은 투자에 소극적이고, 부자들은 지갑을 닫고 있다.

국내 10대그룹이 쌓아둔 돈만 34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정부 생각과 달리 부유층에게 준 혜택이 아래로 흘러가지 않고 양극화만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골프장 개별소비세가 인하되면 연간 최대 3000억원의 세금 수입이 줄어든다. 이명박 정부는 앞서 예산 부족으로 0~2세 무상보육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민들 속은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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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훈 | 건축가


어느 아파트단지 주차장에서 고급차 수십여대가 날카로운 물체에 옆면을 긁혔다. 어떤 노상주차장에선 자동차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디선가는 고급 외제차만 골라서 부수는 사건도 있었다. 이른바 묻지마 범죄인데 범인들은 취직이 안돼서, 세상에 화가 나서, 부자들이 미워서 등의 이유를 댔다고 한다. 화풀이범죄, 즉 분노범죄다. 개인적 불만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범죄가 자꾸만 늘어난다. 세상의 실상이 참으로 거칠고 팍팍하다.

 

어느 길가에서 앞유리가 살벌하게 망가진 자동차를 보았다. 주차를 잘못했다거나 차를 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그랬을 것이다. 그만한 일을 서로 참지 못하고 자동차 유리를 ‘박살’내다니, 살풍경한 모습이 전쟁터나 다름없다. ‘박살’이란 뜻은 깨어져 산산이 부서짐, 손으로 쳐서 죽임, 때려서 죽임이다. 말 자체가 거칠며 흉하다. 어디 주차 문제뿐인가. 운동경기의 승부를 알릴 때도 포격, 융단폭격, 격침, 침몰, 함몰, 괴멸, 함락, 몰락, 좌초, 정복, 탈환 등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받아들인다. 삶터를 전쟁터로 여기듯 거친 말을 전하고 따라한다. 말이 거칠어질수록 세상풍경은 흉해진다. 풍경과 말이 서로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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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논설위원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편안하게 보았다. 편안하게 보았다는 건 불편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깜짝 놀라게 하거나 위압감을 느끼게 하거나 주눅 들게 하지 않으면서 감동과 환상과 재미와 친근함을 주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조앤 롤링의 판타지, 007의 오락성, 폴 매카트니의 대중성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영국의 것만으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 그게 놀라웠다.

따지고 보면 자기 자랑 일색인데 거부감이 들지 않은 까닭은 영국이 가진 문화의 저력 때문일 것이다. 그 힘은 문화 콘텐츠의 풍부함에도 있지만 나는 좀 다른 각도에서 다양함에 눈길을 주고 싶다. 한 가지 예로 올림픽이 열리는 런던의 3대 명소, 구체적으로 식물원과 동물원, 자연사박물관을 들고자 한다. 런던 교외 큐에 위치한 큐왕립식물원은 세계유산에도 등재된 세계 최대의 식물원이다. 리젠드파크 북쪽 가장자리에는 과학적 연구를 병행하는 동물원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런던동물원이 있다. 크롬웰가의 런던 자연사박물관은 세계 최대의 소장품을 보유한 자연사 연구 자료의 보고다.

 

런던올림픽 개막식 리허설 중 화려한 불꽃쇼가 펼쳐지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자원전쟁 시대에 선진국이 가장 관심을 쏟고 공을 들이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생물자원이다. 독일이 남미에서 오랫동안 하고 있는 일로 ‘감자 프로젝트’라는 게 있다. 안데스산맥이 원산인 감자는 인간이 이름을 붙인 품종만 1만2000종이 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는 야생종도 있다고 한다. 독일은 원주민에게 거액의 현상금까지 내걸면서 새로운 감자 야생종을 찾고 있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이 세계사를 바꿨듯이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대 작물 중 하나인 감자는 기후변화에 민감하지만 거의 전 기후대에 퍼져 있어 미래의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작물로 꼽힌다.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감자잎마름병이 부른 흉작과 조류인플루엔자·구제역 등으로 인한 가축의 대량 살처분은 유전적 다양성 상실이 낳은 재앙이다.

식물원 하면 단순히 전시공간을 떠올리기 쉽다. 물론 그런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식물원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는 말이 있다. 절대주의 시대에는 왕이 하사한 땅에 조성한 시민 휴식공간이라는 의미가 두드러졌다. 식민지 시대에는 수집·수탈 경쟁을 불렀다. 식민지에 제일 먼저 보내는 게 선교사와 식물학자였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전시·교육·연구기관의 성격이 강화됐다. 지금은 이런 기능들을 채우지 않으면 현대적 의미의 식물원이라고 할 수 없다. 21세기 들어서는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이라는 큰 시대적 문제를 어떻게 다뤄 나가느냐가 현대 식물원이 당면한 과제다.

런던올림픽이 단지 찬란한 문화를 보여주는 데 그쳤다면 약간 덜 불편했을 뿐이지 편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문화와 더불어 21세기적 가치의 또 하나 중요한 축인 생태적 지향을 보여준 데서 그 까닭을 찾고 싶다. 축구·카누·사격장 등 기존 경기장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 그렇다. 새로 지은 주경기장도 재활용 철재를 사용했고, 올림픽이 끝난 뒤의 재활용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개막식 비용도 베이징올림픽의 3분의 1에 불과했다고 한다. 수준 높은 문화는 수준 높은 생태적 감수성의 기초 위에 꽃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국립식물원·동물원·자연사박물관 가운데 어느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국립수목원이 몇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식물원이라고 보기 어렵고, 충남 서천에 국립생태원이 건립 중이지만 법인화가 추진되는 등 여러 가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선진국 대열에 끼려 하고 국가 품격을 생각하는 마당인데, 생태적 인프라와 연구기반의 빈약을 한탄하는 목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중에 어떤 일을 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거나 받는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국가가 늘 직면하는 고민을 간단하고 쉽게 유형화한 질문이다. 세 가지가 일치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게 세상일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무엇일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다른 사람이 싫어할 수 있다. 해야 할 일이라도 무리수가 따를 때가 있다. 4대강 사업이나 북한 개방 같은 게 그렇지 않은가. 국립식물원 건립 같은 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을 국가가 하고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을 민간이 하는 경향이 있다. 수익성 있는 휴식·관람·놀이시설은 민간이 해도 된다. 막대한 돈과 인력과 관리가 필요한 생태적 기반시설은 국가가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럴 만한 국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 장소도 있고 방향도 있다. 수도 서울 한복판 용산 미군기지에 조성할 ‘자연과 문화, 역사와 미래가 어우러지는 열린 국가공원’이 그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세계적인’ 국립식물원 하나만이라도 갖고 싶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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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 | 경북대 교수·일반사회학과


미국의 의료체계는 최악이다. 고비용저효율로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싼 의료보험까지 더해지면 어디에도 비길 데가 없다. 오죽하면 5000만명이 의료보험 없이 의료 사각지대에 살고 있을까? 이들은 심각한 병이 나도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내고 설사 간다 해도 엄청난 병원비 때문에 파산하고야 만다.

이를 시정하겠다고 오바마 대통령이 전 국민 의료보험 의무가입을 골자로 하는 건강보험개혁법을 밀어붙였다. 이른바 ‘오바마 케어’다. 그런데 이것이 많은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의무적으로 강제한 보험이 우리와 같은 공공보험이 아닌 사보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응할 경우 벌금을 매긴다고 엄포까지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 오바마 케어는 그것이 법제화되는 과정에서 도저히 있어서는 안되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최악이다. 법안의 청문회가 열리는 날 국민에게 개방되었던 국회의사당의 웨스트 프런트는 폐쇄되고, 초청장을 받은 이들만 관람이 허락되는 가운데 암암리에 진행됐다.

또한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 워싱턴 정가에 대한 보험회사와 제약회사들의 로비는 대단했다. 여기에는 건강보험 개혁을 주도한 오바마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백악관을 제집 드나들듯 드나들 수 있었던 사람들은 정치자금을 두둑이 낸 큰손들인데, 이 중에는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 고위인사뿐만 아니라 보험회사 관계자도 다수 포진해 있다고 폭로했다. 이런 와중에 공공보험이 아닌 사보험이 채택됐고, 법안은 로비스트들이 잔뜩 기름칠을 한 국회의원들에 의해 날치기로 통과됐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은 값비싼 보험료를 지불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다. 애초에 국민을 위해 제정한다는 법안이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는 법안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의료개혁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그런데 이때 유의할 것은 이 사안과 관련해 겉으로는 정치권이 여야로 갈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렇지 않다는 점이다. 일례로, CBS에 따르면 이 법안을 폐기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는 공화당의 베이너 하원의장은 2009년 하원 원내대표로 있을 당시 사보험과 경쟁했던 정부의 공공보험 창설안이 부결되기 수일 전에 이 정보를 미리 입수해 사보험사의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해 대박을 쳤다.

이런 문제투성이의 오바마 케어를 두고 무려 26개주에서 위헌소송이 제기되자 결국 오바마는 이 문제를 대법원에 가져갔고, 6월 말 대법원은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합헌보다 위헌으로 판명나면 좋겠다는 의견이 더 우세했던 민의를 대법원조차 묵살해 버린 것이다.

필자는 미국이 이렇게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데는 국민들의 무지와 무관심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번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대법원 판결이 있은 지 일주일이 지난 뒤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응답자의 약 절반은 대법원이 오바마 케어와 관련해 어떤 판단을 했는지 모르거나 오히려 위헌 결정을 내린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국민들 중 많은 수가 신문이나 뉴스를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어차피 어느 나라나 정경유착은 있기 마련이고 정치인들은 부패하기 쉽다. 그러기에 국민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늘 감시해야 한다. 이러한 각성된 시민들이 있을 때 정치인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고 시늉만이라도 국민을 위한 척을 하려들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에 망조가 드는 것은 바로 국민의 무지와 무관심 때문에 그런 것이다.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미국의 젊은이들처럼 정치와 시사에 무관심하다는 점에서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스마트세대’로 가득 찬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해서 그 어느 때보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는 성경 구절을 음미해 깊이 볼 필요가 있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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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철 | 변호사·참여연대 실행위원

 

애초 공정위가 담합이라는 ‘선빵’을 날리고, 감사원이 신한은행의 학력에 따른 대출이자율 차등취급의 후속타를 날렸을 때만 해도 은행과 금융당국은 카운터브로를 맞아 게임이 끝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실제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7월17일 이후 지난 3개월간 꿈쩍 않던 CD금리는 각각 0.01%포인트 떨어졌고, 19일 추가로 0.01%포인트 하락했다. 그러자 20일 금융당국이 반격에 나섰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국회 답변에서 CD금리 담합의혹을 부인한 것이다. 일부 언론도 국면을 진실게임 양상으로 몰고 갔다.

그리하여 CD금리 담합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선 공정위가 CD금리 담합문제를 제기해 당장 눈앞의 시한폭탄인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은 경계하는 것이 좋다. 지금 가계부채는 900조원대를 넘어 1000조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CD금리가 대출금리를 정하는 기준 역할을 했다손 치더라도 지금 가계부채 규모는 CD금리를 움직여 해결할 수준을 벗어난지 오래다. 이 상황에서 공정위가 CD금리 인하를 유도해 가계부채의 부담을 경감하고자 하는 것은 언발에 오줌누기이자, 이 폭탄이 이명박 정부에서는 터지지 않게 하는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CD금리 담합 의혹 조사를 벌이고 있는 공정위의 건물 로비. ㅣ 출처:경향DB

이 문제는 금융권의 탐욕과 부도덕 문제, 나아가 이를 감독해야 할 금융당국의 직무유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겠다. 지금도 도처에서 포탄이 터지고 있는 저축은행 사태에서 볼 수 있듯 그간 우리 금융권이 보여준 부도덕과 탐욕, 그리고 이에 기반을 둔 부정이득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금융위원회는 3월 말 현재 국내 은행의 원화 대출 1080조원 중 CD금리에 연동된 대출은 기업대출과 가계대출을 합쳐 310조원이라고 밝혔다. 만일 CD금리가 0.2%포인트 높게 유지됐다면 은행들이 1년 동안 총 6200억원 정도 추가 이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신한은행의 학력에 따른 이자율 차별도 그런 부도덕과 탐욕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못 배운 것도 한인데, 못 배운 것을 이유로 이자를 더 물라니, 그러고도 박칼린을 내세워 동행(同行)과 동행(同幸)을 노래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부도덕과 탐욕을 감독해야 할 금융당국은 은행 편에 서서 담합의혹을 부인하느라 바쁘다. 꿈쩍 않던 CD금리가 공정위 조사만으로도 내렸다면 담합을 의심해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CD금리에 대한 문제제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이번 일을 계기로 담합이 있었는지, 그 구체적인 경로는 어땠는지, 담합으로 인한 부정이득이 얼마나 되는지, 금융당국은 대체 무엇하고 있었는지 차제에 명확히 밝힐 일이다. 이에 따라 합당한 책임추궁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아가서 금융소비자 보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을 촉구한다.

금융은 이자놀이를 통한 수익창출이 원래 속성이다. 그런 속성을 알기에 금융당국더러 감독하라는 역할을 맡긴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모피아들과 금융자본간의 강고한 연대는 늘 감독기구에 낙하산을 내려보내고, 감독은 형식에 그친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고 안심해 온 거다. 이제 금융소비자의 보호를 위해 독립성을 획득한 금융소비자 보호기구를 설립하여 약탈적 금융자본을 실질적으로 감독해야 한다.

이제 대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저마다 경제민주화를 외친다. 경제민주화가 별 게 아니다. 땀 흘린 만큼 가져가게 하는 것이다. 흘린 땀보다 많은 것들을 가져가는 것을 경제학에서는 착취라고 한다. 착취를 없애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요체다. 각 후보진영이 이러한 CD금리 담합을 포함한 은행들의 ‘착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보면 그들의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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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에서 판사를 ‘Judge’라 부르는 것과 달리 대법관을 ‘Justice’로 칭하는 것은 대법관이 정의를 선언하는 최종 판단자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정의인지 선언하는 대법관은 한 점의 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 그 판결이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자있는 후보를 추천하고도 “그 정도 하자라면 대법관 후보로서 크게 손색이 없다”고 한 법무부 장관은 누구와 견주어 손색이 없다고 말한 것일까. 검찰 내에서는 그 정도면 다른 검찰인사와 견주어 보아 못한 점이 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기존의 대법관에 견주어 본 것일까. 대법관 후보의 기준이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일까. 그러나 대법관은 후보자 중 불가피한 차선의 선택으로 임명되어서는 안 된다.

사법(司法)이란 무엇이 법인지, 정의인지 선언한다는 뜻이다. 사법부 최고기관인 대법원은 민주주의와 법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그래서 대법관은 도덕성에서는 완벽에 가까워야 한다. 실정법 위반이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치유되는 것도 아니고, 공정성에 의심이 가는 행동이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는 다짐으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실정법과 법조윤리를 위반한 인사들이 대법관이 되는 것은 대법원의 권위와 명예를 추락시키는 일이다. 하자있는 후보를 대법관으로 임명하면 그들의 판결에 불신이 스며들게 된다. 아무리 공정한 절차를 거쳐 판결이 내려졌다 하더라도 정의롭지 않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도덕성에 흠 없는 인물이 대법관에 임명되는 것은 당장의 공석사태로 인한 재판지연보다 더 중요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마치 야당이 고집을 피워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국회의 검증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흠 있는 대법관에 의한 재판으로 사법부 전체가 불신을 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이며 법치주의는 보이지 않게 잠식되고 만다. 그래서 최고 사법기관이자 최고 국가권력기관 가운데 하나인 대법원은 반드시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겸비한 인사들로 채워져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와 실추된 권위가 바로 세워질 수 있다.

 

대법관인사특위 브리핑하는 박영선의원 ㅣ 출처:경향DB

이제 다시 대법관 임명절차를 시작해야 한다. 사퇴한 후보자 자리를 채우기 위해 다양성이 충족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부터 새로 해야 한다. 대한변협회장, 법원행정처장과 법무부 장관처럼 법조 출신 당연직 위원을 줄여야 한다. 법 개정 사항이라 당장 어렵다면 대법원장이 위촉하는 위원부터 비법조인으로 다양성을 꾀해야 한다. 더 나아가 대법관후보 추천절차를 공개하여 국민과 언론에 의한 도덕성과 자질 검증이 가능해야 한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에서 국민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사와 이익이 반영되도록 직업적 배경, 성별, 정치적 성향 등에서 다양성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대법관을 법관승진의 정점으로 여겨 법원 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재판실무능력이 뛰어난, 그러나 거의 성향이 동질적인 법관을 대법관으로 제청해서는 안 된다. 인적 구성의 다양화는 출신 지역의 안배나 출신 직역의 다양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출신 지역이나 출신 고등학교를 고려한다든지 변호사, 교수, 검사 등 출신 직역을 안배하는 방식의 형식적 다양화가 아니라 성향의 다양화여야 한다.

대법원이 지향하는 정책법원으로서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입장을 포용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수 있으려면 대법관들은 더욱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이들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사법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아니므로 더욱 더 사회적 다양성이 반영된 국민 대표성이 간접적으로나마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후 그랬던 것처럼 산적한 사건을 효율적으로 떼어 낼 수 있는 능력이 대법관 제청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만큼 그 사회적 변화를 대법원 구성에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대법원이 변화하는 시대의 법정신을 해석하고 선도하며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 최고법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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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대투쟁 2년 뒤인 1989년 울산에서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에게 각목과 식칼을 휘두르며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을 기획·주도한 이는 ‘노조파괴 전문가’로 불리던 ‘제임스 리(본명 이윤석)’라는 인물이었다. 말이 좋아 전문가이지 ‘용역깡패 두목’이었던 것이다. 사건 이후 ‘제임스 리’는 노동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사업주들에게는 ‘든든한 해결사’로 인식됐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는 ‘거사’ 직전 노동부 관리들과 현대중공업 측 간부들을 모아놓고 “노조간부는 모두 빨갱이” “노조를 깨부셔야 회사가 산다”는 내용의 강의까지 했다. 국가권력과 재벌기업이 ‘사설(私設)폭력’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았던 셈이다.

민주화가 이뤄졌다는 지금 ‘제임스 리’는 사라졌는가. 그렇지 않다. 노사갈등과 재개발 현장을 비롯해 각종 시위·농성장에서 더욱 교묘하고 진화된 모습의 ‘제임스 리’가 경찰 등 국가권력의 비호 아래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엊그제 자동차 부품업체인 SJM과 만도의 사업장에 용역업체 직원들이 들이닥쳐 파업 중인 노조원들에게 곤봉과 쇠파이프 등으로 무차별 폭력을 휘두른 사건에서도 2012년판 ‘제임스 리’의 음흉한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SJM의 경우 용역업체는 경찰에 ‘오전 6시에 경비용역을 배치하겠다’고 신고했으나 실제로는 새벽 4시에 현장을 급습함으로써 경찰을 따돌렸다고 한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사업장을 완전 장악한 직후 회사 측은 직장폐쇄에 돌입했다. 걸핏하면 정부는 법치와 준법을 강조하고 있으나 법 이전의 최소한 상식마저 짓밟히고 있는 현실이 참담하고 서글플 뿐이다.

 

'용역폭력·국가폭력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배재훈 명동3구역 세입자대책위 위원장 ㅣ 출처:경향DB

정부는 무법천지의 폭력을 행사한 용역업체와 이들에게 폭력을 사주한 사업주들을 철저히 수사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조처해야 한다. 경찰과 고용노동부 등 관련당국이 폭력사태를 뻔히 예상하고도 소극적으로 대처하거나 이를 사실상 용인함으로써 직무유기를 저지르지는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져야 마땅하다.

따지고 보면 용역폭력이 근본적으로 뿌리가 뽑히기는커녕 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까닭은 정부가 기업들의 입장에 경도된 나머지 이를 묵인·방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허점투성이인 현행 경비업법 규정도 대폭 손질해 용역폭력을 법적·제도적으로 방지하고, 기업들이 직장폐쇄를 남발할 수 없도록 관련법을 정비해야 한다. ‘용역폭력 원조’인 ‘제임스 리’의 후예들이 법과 상식을 비웃고, 민주주의와 산업평화를 유린하는 행위를 도대체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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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보통신업계에서 선두를 다투는 KT의 전산망이 해커에 의해 너무 쉽게 뚫린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5개월간 KT 휴대전화 전체 가입자의 절반가량인 800여만명의 개인정보가 해킹으로 유출된 것이다. 해커는 영업 대리점에서 고객정보 데이터 베이스를 조회하는 것처럼 가장해 매일 수만건씩 정보를 빼냈다고 한다. KT가 해킹으로 그렇게 오랜 기간 많은 고객 정보가 유출되고 있었는데도 그런 사실을 빨리 알아채지 못했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 해킹이 아무리 정상적인 개인정보 조회처럼 교묘하게 이뤄졌다 하더라도 그렇다. KT의 개인정보 보호 시스템이나 보안 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KT가 정보통신망법상 이용자 정보 보호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철저히 조사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다른 정보통신 회사들도 KT가 당한 수법으로 해킹을 당하고 있지 않은지 보안 체계를 서둘러 점검해야 할 것이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한 KT 대리점. ㅣ 출처:경향DB

최근 몇 년간 많은 고객을 관리하는 민간기업에서 크고 작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대형 사고로는 2009년 옥션 1081만명, GS칼텍스 11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고, 지난해에는 현대캐피탈 175만명과 SK커뮤니케이션즈 3500만명, 게임업체 넥슨 130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킹을 당했다. 불법적으로 몰래 빼낸 개인정보를 팔아 목돈을 챙기려는 전문 해커가 설치고 다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해킹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보안에서 기업은 기고, 해커는 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보안 전문가들은 기업이 아무리 보안에 투자를 많이 하더라도 ‘절대’ 뚫리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업의 전산망이 어이없이 쉽게 뚫리는 것까지 불가피한 일로 봐줄 수는 없는 일이다.

해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이 보안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보안 시스템의 기술은 물론 보안 담당자의 의식 수준을 높이는 데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고객정보 보호를 소홀히 한 기업에는 더 엄하게 처벌하는 쪽으로 법령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보안의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자율적인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솜방망이 처벌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동통신업체들이 개인정보 보호에 쓰는 돈은 연간 총 투자금액의 1%도 안된다고 한다. 해커가 자기 집을 드나들 듯이 기업 전산망을 헤집고 다니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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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작은도서관’이란 잡지를 기억하실지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2007년 말에 4호까지 펴내고 중단된 잡지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권양숙 여사는 작은도서관 운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작은도서관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예산도 점차 늘어났지요.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인수위는 작은도서관 지원 예산이 ‘권양숙 여사’ 예산이라면서 전액 삭감해버렸습니다. 아마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사건은 이명박 정부가 출판계에 안겨준 재앙의 시초일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명박 정부의 ‘김윤옥 여사님’ 예산은 한식 세계화로 바뀌었습니다. ‘4대강 사업’처럼 한식 세계화는 혈세만 낭비하고 아무런 소득도 남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판계에 안겨준 본격적인 재앙의 시발점은 ‘일제고사’ 도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90년대에 우리 아동출판은 급격하게 성장했습니다. 1990년대에 우리 출판계는 장기간의 군사정권이 지배한 이 땅에 바람직한 아동서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환경을 바꿔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책,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즐거움을 전하고 억지웃음을 강요하는 TV와 연결된 즉물적 기획상품, 공포물, 유머(?) 소화류(笑話類) 등의 아동서적이 서점 서가의 대부분을 장악했습니다.

1990년대 아동출판의 성장은 세계 저작권협약(UCC) 가입과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따른 저작권 개념의 명확한 확립,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의 아동출판 대거 진입, 386세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좋은 책을 골라 읽히려는 열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합법화에 따른 학교 현장의 긍정적 변화, 좋은 책을 골라 읽히려는 시민단체들의 노력, 아동서적 전문 서점과 전문 도매상의 등장, 일간신문의 아동서적 소개면 신설 등에 힙입은 바 큽니다. 이 시절에 좋은 그림책을 읽고 자란 세대가 그림책 작가가 되어 지금은 세계적인 그림책 관련 상을 해마다 수상하고 있기도 합니다.

일제고사는 학교 현장을 압박했습니다. 그 바람에 아동출판은 해마다 30%씩 매출이 격감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도 동반해서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학교도서관에는 시설과 자료(책) 이상으로 사서교사라는 전문 인력이 필요합니다. 2006년 109명, 2007년 104명, 2008년 109명 등 3년간 총 367명의 사서교사 신규 임용이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2009년 9명, 2010년 24명으로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2011년에는 단 한 명도 뽑지 않았고, 2012년에는 결원보충으로 전북에서 딱 한 명만 뽑았습니다.

 

파주 출판단지를 찾은 가족 ㅣ 출처:경향DB

2010년 4월26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은 국내 시판도 되지않은 아이패드를 이용해 ‘전자출판산업 육성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근본적인 시스템 조성을 위한 방안이 없이 그저 곁가지 대책만 나열하면서 5년동안 6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예산 확보없이 발표한 것이라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올해는 ‘국민독서의 해’입니다. 강단학자들에게 수천만원을 주고 만든 몇 가지 이벤트가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이 행사에 문화부가 투입한 전체 예산이 국민 1인당 10원에 불과한 5억원이었습니다.

최광식 문화부 장관은 지난 7월9일 “한류 확산을 위해 앞으로 유형은 물론 무형의 산업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내년 50개 사업에 5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영화나 게임 산업, K팝 등의 문화산업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모든 문화산업의 근간인 출판에 대한 홀대는 이명박 정부 내내 너무 심화됐습니다.

지난 18일, 정부는 출판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출범시키면서, 초대 원장에 이재호 동아일보 출판국장이 내정됐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출판에 문외한인 특정 대학 출신의 보수 언론인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인사 발표 후 반발하는 출판단체를 찾아온 박영석 문화산업국장은 “출판계가 이렇게 반발하면 출판계만 손해”라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출판계가 더 손해 볼 것이 남아 있나요? 어차피 망할 수밖에 없는 출판인들이 ‘낙하산 인사 규탄 및 출판문화 살리기 실천대회’를 벌인 것이지요. 그들은 원장 자리 하나 꿰차지 못해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낙하산 인사가 도화선이 되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정부의 홀대에 출판인들의 분노가 드디어 폭발한 것입니다.

온라인서점의 할인 경쟁이 가속화된 다음 출판계는 뒤늦게 도서정가제만이 출판 산업이 살기 위한 최소안의 안전장치라고 수없이 아우성쳤습니다. 하지만 문화부는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는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공정위나 규제개혁위의 반대를 핑계로 문제를 봉합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 바람에 서점의 휴·폐업이 속출하면서 출판시스템은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다소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이제야 출판인들은 한마음으로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낙하산 인사 철회뿐만 아니라 도서정가제 확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의 도서관 장서구입 예산 확보, 독서진흥기금 조성, 학교 독서교육의 강화, 출판유통의 현대화 등을 위해 열심히 싸우기로 했습니다. “한숨 대신 함성으로, 걱정 대신 열정으로, 포기 대신 죽기 살기로”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말입니다. 양서 출간이 늘어나기를 기대하시는 국민들의 많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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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 영화감독

 

1995년 4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를 극장에서 개봉하는 날, 대학로의 조그만 극장에 영화에 출연한 할머니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모였다. 첫 상영 종료 후부터 관객과의 대화를 하신 할머니들의 표정이 하루하루 바뀌었다. 자신들이 농담을 하고,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자신의 역사를 카메라에 담아내는 그 모습들을 관객들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할머니들에겐 위로가 된 것 같았다. 영화를 함께 만들어 세상에 그것을 보여주고, 그 보여주는 순간들을 함께하는 모든 시간들이 자신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그것이 가장 기뻤다. 우리가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일로 할머니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이 되었으니.

시간은 흐르고 할머니들과 우리는 그후로도 4년 동안 두 편의 영화를 더 만들었고 어떤 할머니들과는 영화 안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3부작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비록 그 영화로 인해 할머니들이 요구하던 많은 것들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아직도 일본 정부는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고 있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 시위도 지속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럽고 더 잘 만들었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영화가 세상의 어떤 것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하지만, 바꾸려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고 위안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2012년 <두 개의 문>이 더 큰일을 해내고 있다. 단순하게 개봉관에서만 독립 다큐멘터리로는 유례없이 6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관객 수를 넘어 <두 개의 문>이 하고 있는 가장 멋진 일은 세상을 바꾸고 있는 일이다. 영화 <두 개의 문>은 용산과 강정과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문제를 하나로 연대하여 마치 깃발처럼 함께 모인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다. 개인적으로 한때 나는 <두 개의 문>이 보다 다양한 관객을 만나기 위해서는 조금은 탈정치적인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로 포장되기를 바란 적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3-숨결' ㅣ 출처:경향DB

그러나 <두 개의 문> 제작진은 뚝심있게 스스로의 영화를 깃발로 높이 올렸다. 폭력에 저항하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야말로 <두 개의 문>이 가장 대중적인 관객과 만나는 방법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믿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부디 이 폭염의 여름, <두 개의 문>이 우리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연대의 방법을 지속적으로 완성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두 개의 문>을 보셨다면 이제 <두 개의 문>을 만든 제작진인 연분홍치마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성소수자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어온 그들의 <두 개의 문> 이전의 작품과 <두 개의 문> 이후의 작품을 눈여겨봐주시길. 그리고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의 다양한 작품들도 봐주시길 바란다.

1988년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 이후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는 지속적으로 당대의 문제들, 세상 안에서 손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왔다. 바로 지금 전국의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모든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작품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비록 그 작품들을 손쉽게 보실 수는 없다. 하지만 <두 개의 문>을 통해 한번 경험해 보시지 않았는가! 지역의 독립영화 상영관에서, 그리고 함께 십시일반 돈을 모아 가까운 상영관에서 지인들과 함께 관람을 하셔도 좋다. 그렇게 이 보석같은 친구들과 손을 잡아주시길. 왜냐하면 독립 다큐멘터리야말로 바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지지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부터 오늘까지 6회에 걸쳐 이 지면을 통해 부족한 글을 실었다. 최근에 여러분께 보여드린 나의 영화가 조금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여서 이 글들만큼은 조금 가볍고 즐거워지려 했지만 실패했다. 세상은 언제나 긴급했고, 여러분에게 호소해야 할 일이 매번 있었다. 그리고 오늘로 이 지면에서의 만남을 끝내려 한다. 한 가지만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우리는 우리를 지지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우리의 희망을 지지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그런 거다. 서로에게 위안이 되며 바로 지금 거리에서 내일을 꿈꾸는 사람과 만나는 것.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당신과 나의 삶의 공통점을 찾고 그 공통점을 더욱 확대해 보는 것. 차이가 아니라 같은 것을 보는 것. 그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제 다음 영화를 준비하면서 나는 매일 꿈꾸듯 바랄 것이다. 새 영화로 당신과 만나는 날, 우리가 함께 일궈 놓은 몇 걸음 더 걸어간 그곳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그 다음의 걸음을 약속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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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환 | 서울대 명예교수·해양생태학

 

올해는 우리에게 ‘해양의 해’임이 분명하다. 여수에서는 ‘살아 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이라는 주제로 엑스포가 열리고 있고 그 옆 창원에서는 ‘블루이코노미’라는 주제로 동아시아해양회의가 열렸다. 요즘 들어서 부쩍 세계인 모두가 바다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사람들은 보통 바다는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세계 어획량이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약 1억t까지 계속 증가했으나 이후 지금까지 그 이상을 넘지 못하고 있다. 어선, 어획 기술이 모두 발달하지만 물고기를 1억t 이상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바다의 속성에 기인한다. 햇빛, 영양소, 식물·동물 플랑크톤, 물고기로 이어지는 먹이사슬 전달 양이 각 단계 모두 한계 값을 가진다. 바다에 도달하는 햇빛, 영양염, 식물 플랑크톤 광합성이 모두 일정한 범위의 한계 값 내에 있는 것이다. 이들 값은 지구 진화과정에서 만들어진 값이어서 인간이 바꿀 수 없다. 인간의 자연이용은 이들 한계 값을 절대 넘을 수가 없고 그 값 내에서 미래세대와 함께 자원을 이용해야 한다.

지구생태계의 서비스를 시장가치로 환산한 생태경제학자 코스탄자는 지구생태계의 1년 서비스 생산가치를 인간 연 총생산의 약 1.8배로 보았다. 바다생태계 서비스는 지구생태계 서비스의 63%이다. 그러나 최근 20년간 열대 홍수림의 약 35%가 파괴되었으며 산호초의 20%가 완전히 사라졌고 연안은 부영양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또 어종의 약 40%가 남획되고 있다.

 

여수세계박람회장 해양생물관 ㅣ 출처:경향DB

지난번 창원 동아시아해양회의를 주최한 동아시아해양환경협력기구는 1994년 지구환경기금의 재정으로 창립한 자발적 협력체이다. 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14개 국가와 유엔개발프로그램, 세계자연보전연맹 아시아사무소 등 19개 협력 파트너기구가 참가하고 있다.

동아시아 해역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동중국해, 황해에 걸친 약 700만㎦의 바다와 24만㎞의 해안선을 포함한다. 인구 19억명 거주 지역으로 해안도시, 항구, 무역항로가 발달해 있다. 세계 수산양식의 80%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고 세계 산호초의 30%, 홍수림의 30%가 여기에 서식한다. 그러나 해양환경이 계속 나빠지고 있어서 발해만, 마닐라만, 타이만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영양화 해역들이 있다.

동아시아 해역의 해양환경 문제는 부영양화 이외에도 오염물질 관리, 서식지 보호, 수산양식 등 다양하다. 여기서 서식지 보호는 마닐라만의 홍수림 보호, 인도네시아 발리의 산호초 보호, 태국 촌부리 슬리라차만의 바다거북 보호 등의 사업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수산양식 관련 상호협력 역시 인도네시아의 발리, 바탄, 바탕가스, 카비트, 촌부리 등에서 진행되고 있다.

해양환경 보호 사업들은 가끔은 제각각이어서 효율을 기하기 위해서는 지역적으로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또 시대정신도 가져야 한다. 지역을 아우르고 시대를 대표하는 개념과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동아시아해양환경협력기구는 그 개념을 ‘동아시아 해역 지속가능발전’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러면서 해양과 육상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연안통합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을 따라 분포하는 농촌과 도시, 해양의 선박 등 육상과 해양의 인간 활동을 함께 묶어서 해양환경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보는 방법이다. 마닐라만, 중국의 샤먼과 발해만, 우리나라의 마산만 모두가 이런 방법으로 해양환경을 관리하는 사례지역으로 선정되어 있다.

해양환경 보전은 원래 쉽지가 않다.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는 결국 바닷속에 모두 모인다. 배로 그물을 끌어보면 비닐 조각, 플라스틱 병, 스티로폼, 찢어진 그물 등 부끄럽기 짝이 없는 형상이다. 최근에는 플라스틱이 수마이크론 크기로 바닷속에서 쪼개져서 물고기가 먹고 사람에게까지 전달된다는 보고서도 있다. 바다가 겉은 푸르지만 속까지 푸르지는 않은 것이다. 이런 해양환경 문제들을 경제발전, 사회발전과 함께 해결해가려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노력은 매우 특별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여수엑스포와 해양, 또 창원의 1000여명이 모인 해양환경회의는 매우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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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득 | 성동구청장

 

아이들은 한 나라의 미래이며 희망이다. 하지만 출산율 1.24명, 세계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젊은 세대들이 아이를 낳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가치관의 차이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육아에 대한 큰 부담 때문이다. 워킹맘들이 아침마다 아이와 함께 벌이는 전쟁은 이제 모두의 이야기가 됐다.

사실 보육 문제의 해법은 아이를 낳는 여성들의 시선에서 생각해야 한다. 여성 스스로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고 아이를 낳고 싶다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먼저다. 정부의 무상보육 문제가 연일 화두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을 확충하는 것임은 모든 학부모들과 보육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보육은 국가의 미래가 달린 100년 대계로 이것이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파급효과를 생각해 본다면 공적 영역에서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공립 보육시설이 보육 서비스의 가장 기본적인 전달체계가 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필자 또한 구청장 임무를 수행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이 1동 2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이었다.

 

출처:경향DB

마음 같아선 아이들이 있는 곳곳마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지어 워킹맘들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토지 매입부터 건축비까지 25억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는 어린이집 설치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지난달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이 75%에 달한다는 스웨덴에 방문했을 때 매우 부러웠다. 최고의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은 국가가 ‘하나의 가정’이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이 개별 가정이 아닌 국가에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이루었다.

집에서 가깝고 안전하고 수준 높은 곳에 아이를 맡기고 싶어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것은 시장 논리로만 해결하기 어렵다. 스웨덴은 이렇게 시장원리가 원활하게 기능하지 못하는 분야에 국가가 빈틈없이 개입하여 운영한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공보육을 정착시키기 위해 국민 모두가 보육을 내 일이라 생각해야 할 때다.

성동구는 현재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자 수가 1만6000명을 넘어섰다. 구립 어린이집이 31곳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그나마 나은 수준이지만 부모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성동구는 향후 3년간 30여개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사업 추진에 나섰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은 무상보육 시대의 기반을 다지는 핵심이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아이를 키운다는 사명감을 갖고 다 함께 젊은 세대의 육아의 짐을 나누어 져야 한다. 이것이 우리들의 의무이며 젊은 세대가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키울 권리를 보장해주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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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정 |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최근 발생한 ‘통영 사건’에서 보듯이 지역사회 내 위기아동 조기발견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아이의 심각한 상황을 주민들이나 신고의무자들이 관심을 갖고 알렸다면 ‘조기발견체계’는 작동했을 것이다. 이렇게 작동된 체계는 평소 방치되고 있는 아이를 위기상황에서 발견해 내고 지역아동센터와 방과후 교실 등과 같은 지역사회 보호망 속에 들어가도록 조치했을 것이다.

특히 아동의 생활권 내에 범죄자가 생활하고 있었다면, 어른들은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아이를 위해 감시의 눈을 늦추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향한 관심과 신고만큼 효과적인 예방책이 없기 때문이다.

 

아동범죄 예방용 벽화 앞에서 어린이들이 교사로부터 안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또 다른 한 가지는 형량과 제도에 관해서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성범죄자에 대한 형량이 강화돼 있다. 그럼에도 성범죄자의 53%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있는 점과 풀려난 성범죄자 중 절반은 다시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통계가 가슴 아픈 현실이다. 거기에 덧붙여 이미 마련된 전자발찌 제도, 우범자관리 제도, 성학대행위자 정보공개, 화학적 거세 등 많은 대안과 제도들이 있다. 그러나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무늬만 제도라는 것에 분통이 터진다. 이미 밝혀진 대로 우범자 관리 대상이었던 피의자는 사건 발생 이틀 전 주변 탐문으로 ‘생업인 폐기물 수집이 잘 안되어 표정이 어둡다’는 수준의 첩보만 보고됐으며 이게 우범자 관리의 전부였다. 전자발찌 제도도 다를 바 없다. 발찌의 건전지가 방전되거나 발찌를 끊어내고 또 다른 범행을 저질러도 관리는 허술했다. 이런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되려면 예산과 인력 투자, 제대로 된 법이 우선 선행돼야만 한다.

피의자의 범행에 저항하면서 몸부림치며 소리 질렀을 가녀린 아이가 눈앞에 선하다. 간절히 도움의 손길을 기다렸을 아이의 죽음에 애통함과 죄스러움을 느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끔찍한 범죄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는 시작은 아이들을 향한 작은 관심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방치되는 상황이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에 민감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투철한 신고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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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범 | 농협중앙회 중앙교육원 교수

 

전 세계가 기후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100년간 세계 평균기온은 0.74도 올랐지만, 우리나라는 2배 가까운 1.5도가 상승했고 열대야 현상은 지난 30년간의 평균 일수보다 1.4일이 증가한 9.2일이라고 한다. 과밀화된 도시는 아스팔트와 건물벽에 포위되어 주변지역의 기온보다 높아지는 열섬화 현상 등 심각한 환경문제를 안고 있다.

개발에 의한 녹지는 줄어들고 농지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도시숲’의 부활이다. 도시숲은 깊은 산속의 숲과는 어느 정도 의미가 다르다.

급속한 근대화와 산업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95%가 도시화된 지역에서 살고 있다. 이에 비해 도시지역 내 숲은 매년 평균 3.5%씩 감소하는 추세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자료에 따르면 여름철 도시지역 내 온도분포를 인공위성사진으로 관찰한 결과 도시숲의 기온은 15~18도 정도이고 아파트가 밀집된 지역은 30~40도를 보였다. 즉 태양열로 덥힌 콘크리트가 원인인 열섬화 현상과 열대야가 도시숲에서는 발생하지 않거나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전남 광양의 길호지구 도시숲 ㅣ 출처:경향DB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외국의 주요 도시들은 도시숲 조성이 한창이다. 일본 도쿄의 경우 도시의 환경문제를 해소하고 자연재해 방재, 도시의 매력증가와 생물의 서식지 확보를 과제로 녹지배증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런던도 생물 종다양성 증진과 환경개선을 목표로 도시숲을 늘리고 연계성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러한 도시민들의 수요에 부응해 도시의 내·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산림을 주요 거점으로 하여 도시 내의 공원과 학교숲, 가로수들이 생태적으로 그물처럼 연결되는 녹색네트워크 구축에 힘써야 한다.

도시 공원이나 숲과 같은 녹지공간은 도심의 열섬현상을 완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저장하는 탄소흡수원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어 쾌적한 도시 생활환경 조성과 지구온난화 방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도시는 생명의 근원인 자연과 너무나 멀어진 듯하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정부, 시민 그리고 기업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소통하고 공유하며 협력해 간다면 앞으로 어디서든 숲과 함께 숨 쉬는 생명의 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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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중국전문가

 

기원전 697년 중원의 정(鄭)나라에 내분이 일어나 여공 돌(突)은 채(蔡)나라로 도망갔다가 역을 거점으로 재기를 노렸다. 이로써 정나라는 양분됐다. 그 후 재기를 노리던 여공 돌은 정을 공격하여 대부 보하(甫瑕)를 사로잡아서는 자신의 복위를 맹서케 했고, 보하는 약속대로 정자영과 그 두 아들을 죽이고 여공 돌을 맞아들여 복위시켰다.

20년 만에 자리를 되찾은 여공 돌은 당초 약속과는 달리 보하가 군주를 모시는 데 두 마음을 품고 있다며 그를 죽이려 했다. 보하는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했다.

진(晉)나라의 대부 이극(里克)은 헌공(獻公)이 총애하던 여희(驪姬)가 낳은 두 아들 해제(孩提)와 도자(悼子)를 잇따라 죽이고 진(秦)나라에 망명해 있던 공자 이오(夷吾)를 맞아들여 군주로 옹립하니 이가 혜공(惠公)이다.

혜공은 즉위 후 이극에게 “그대가 없었더라면 나는 군주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두 명의 진나라 군주를 죽였다. 그러니 내가 어찌 그대의 군주가 될 수 있겠는가”라며 이극에게 죽음을 강요했다. 그때가 기원전 650년으로 보하가 여공 돌에게 죽임을 강요받은 지 30년 만이었다.

 

사마천 ㅣ 출처:경향DB

그런데 또 한 사람 진(晉)나라 대부 순식(荀息)은 헌공이 죽기에 앞서 어린 해제와 도자를 잘 보살펴 이들을 진나라의 군주로 옹립해달라며 뒷일을 부탁하자 목숨을 걸고 이들을 지키겠다고 맹서했다. 하지만 해제와 도자에 이어 이극에게 피살되었다. 순식은 목숨으로 절개를 지켰지만 해제와 도자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진 못했다.

사마천은 이 두 사건을 함께 거론하고 있다. 두 사건의 성격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정세가> 논평에서 두 사건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갈파하고 있다.

“권세와 이익으로 뭉친 자들은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멀어지기 마련이다. 보하가 그랬다. 보하는 정나라 군주를 겁박하여 여공을 맞아들였지만 여공은 끝내 그를 배신하고 죽게 했다. 이것이 진나라의 이극과 뭐가 다른가? 절개를 지킨 순식은 자신의 몸을 버리고도 해제를 지키지 못했다. 형세의 변화에는 다양한 원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의 상황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데는 많은 원인이 작용하기 마련이라는 사마천의 지적은 참으로 핵심을 찌른 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인간사 변화와 변질의 가장 강력하고도 추악한 요인은 사마천이 첫머리에 지적했던 권세와 이익일 것이다. 다시 이합집산의 시절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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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제민 정치부 기자

 

‘김영환씨 사건’은 처음부터 분명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이 사건은 김씨가 중국 당국에 구금된 지 47일 만인 5월14일 김씨와 함께 일하는 북한인권단체들에 의해 공개됐다. 이튿날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김씨 구금 약 4주 만인 4월26일 김씨와 첫 영사 면담을 가졌다고 소개하며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얘기가 있거나 육안으로 확인한 것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 이외의 3명은 영사 면담도 희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로선 김씨 등 4명이 중국 법의 국가안전위해죄 위반으로 수감됐다는 점 이외에 모든 게 추측의 영역에 속했고 어떤 점에선 지금도 그렇다. 김씨 등을 석방하기 위해 외교당국뿐만 아니라 정보당국이 백방으로 뛰었으며, 국가정보원이 이 사건에 관여했는지 여부가 한·중 간 물밑협상의 최대 쟁점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어쨌든 외교당국과 정보당국의 노력 덕분에 김씨 등은 114일 만에 풀려났다. 그날 밤늦게까지 김씨 등은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았다. 김씨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3월 말 다롄에서 중국 당국에 체포된 뒤 18일간 변호인 접견 등을 요구하며 묵비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많은 이들이 4월26일 첫 영사 면담에서 육안으로 전혀 이상해보이지 않았던 김씨에게 가해졌던 가혹행위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궁금해 했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다. 이튿날 그의 측근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일부 언론을 통해 ‘전기고문’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하 의원은 김씨의 기자회견 때 김씨 옆에서 마이크를 받쳐들고 있었다. 모 언론에는 ‘통닭구이’ ‘비둘기고문’과 같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은어도 등장했지만 정부 당국은 김씨 진술서에 그런 얘긴 없었다고 공식 부인했다.

 

김영환씨 기자회견 ㅣ 출처:경향DB

‘전기고문’이라는 폭로 앞에 중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졌고, 정부는 외교적 대응이 미온하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중국 측에 엄중한 어조로 10차례나 사실관계 확인을 요구했기 때문에 중국 측이 알려오는 재조사 결과를 보고 대응 수위를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본인 진술 이외에는 증거가 없는 전기고문 주장만 갖고 중국을 상대로 모든 것을 걸고 싸울 수는 없다”는 정부 당국자 말에서 고민이 읽힌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김씨 측도 자신들이 중국에서 무슨 일을 했기에 체포된 것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외국인에 대한 고문은 분명 엄중한 일이지만, 우리가 아직 잘 알지 못하는 다른 한쪽 측면으로 인해 상대국을 대하면서 약해지고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기고문이 사실이라면 묵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정확한 진상파악이 먼저다. 그 열쇠는 이 일을 폭로한 김씨 본인이 쥐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본인이 더 이상 얘기하지 않고 주변인들의 입을 빌려 정부를 압박하고 중국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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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7일 김재우 이사장을 비롯해 김광동·차기환 등 8기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3명을 재선임했다. 이들은 공영방송 MBC의 장기간 파행방송사태를 무책임하게 방치한 장본인들이다. 김재철 사장의 퇴진과 공영방송 복원을 외치며 MBC 구성원들이 170일 동안 벌인 파업을 무위로 돌리는 것은 물론, 국회 개원협상을 통해 공영방송 정상화에 뜻을 모은 정치권의 합의정신마저 흔드는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김재우 이사장은 공영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어온 김재철 사장의 행태를 적극 비호해왔다. 지난주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불참해 국회마저 무시하는 태도를 내보였다.

방통위의 이번 결정은 김재우-김재철로 이어지는 공영방송의 걸림돌들을 온존케 함으로써 임기 말까지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외면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방송을 유지하겠다는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노조가 지난 17일 정치권의 합의를 믿고 파업을 철회한 뒤 MBC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절망적이다.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에 대해 대규모 보복성 인사를 단행한 것은 물론,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의 작가들까지 전원 교체하고 있다. 비판성과 공정성을 견인해온 내부역량을 스스로 허물면서 김재철 사장의 MBC가 가려는 길은 분명하다. 김재철 사장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비리의혹과 추문을 뒤로하고 되레 조합원들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이나 주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친정권 논조로 일관해온 ‘MB씨(氏)’의 강화를 꾀하고 있다.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ㅣ 출처:경향DB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는 필연적으로 감독 및 인사권을 갖고 있는 방문진 이사회의 정상화를 전제로 한다. 우리가 9기 방문진 이사회 구성에 앞서 김재우·김광동·차기환씨 등의 배제를 촉구했던 것은 애당초 불통으로 일관해온 이명박 정부의 방송정책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해서가 아니다. “9기 방문진 이사회가 합리적 경영 판단 및 법 상식과 순리에 따라 조정, 처리토록 하겠다”고 약속한 정치권이 이사회 구성에서부터 그 합의정신을 관철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정치권, 특히 새누리당의 의지에 따라 아직 유효한 기대이기도 하다. 9기 이사회는 다음달 9일 임기를 시작한다. 전체 이사 9명 가운데 사실상 여당 몫으로 새로 임명된 김충일·김용철·박천일 이사가 상식과 순리에 따른 결정을 내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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