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글쓴이는 산을 참 좋아한다. 특별한 계획이 없는 토요일엔 어김없이 산에 간다. 예전엔 나홀로 산행을 즐겼지만 3년 전쯤부터는 회사 대선배를 통해 알게 된 산악회에 가입해 단체 산행을 주로 간다.


얼마 전 한 산악회를 따라 경기 동두천시에 있는 소요산에 갔다. 산행 후 ‘뒷풀이’ 장소에서 ‘가온길’이란 회원 옆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됐다. 산악회에서는 서로 본명 대신 ‘닉네임’(별명 혹은 애칭)을 부른다.


우리 말글에 관심이 많은 글쓴이가 호기심이 발동해 ‘가온길’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우리말 ‘가운뎃길’의 옛말이란다.


(경향신문DB)


글쓴이에겐 생소한 말이어서 국립국어원에 ‘가온길’에 대해 질의를 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가운뎃길’이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아 정확한 어원을 파악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가운데’의 어원을 ‘가온대<가온<가’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국립국어원은 “ ‘가온대’ 혹은 ‘가온’이 ‘가운데’의 옛말”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가온길’이 ‘가운뎃길’의 옛말이 되는 셈이다.


한편 앞에 나온 ‘뒷풀이’는 된소리(‘ㄲ’ ‘ㄸ’ ‘ㅃ’ ‘ㅆ’ ‘ㅉ’)나 거센소리(‘ㅊ’ ‘ㅋ’ ‘ㅌ’ ‘ㅍ’) 앞에서는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뒤풀이’로 적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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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웃기는 소리지만, 예순을 넘긴 이 나이에도 군복차림에다가 군모를 쓰고 있는 꿈을 꾸다가 놀라서 깨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젊었을 적에 특별히 험한 군대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악몽’이 아직 따라다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출생 이후 내 최초의 기억은 대개 6·25 전란과 관계되어 있다. 남해의 어떤 섬 해변에서 굴비처럼 철사에 묶여진 사람들의 시체가 떠밀려 와 있는 기괴한 모습을 본 기억, 그리고 피란에서 돌아온 뒤에도 밤만 되면 어딘가에서 터지는 포탄의 굉음에 짓눌려 지낸 기억 따위가 그렇다. 그러나 당시 네다섯 살짜리가 겪은 이 단편적인 장면의 의미를 짐작이나마 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중에 커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보면서였다. 보도연맹이니 빨치산이니 하는 것을 어린아이가 알 도리는 없었다. 


아이 때는 아무리 끔찍한 장면일지라도 그 의미를 모르는 이상, 그게 내면화되기는 어려운지 모른다. 실제로 내게 훨씬 큰 상처가 된 것은 좀 더 커서 고등학교 입학 후의 경험이었다. 그해 초여름은 유난히 가뭄이 심했다. 그래서 어느 날 1학년인 우리들이 농촌 돕기에 나섰다. 우리는 각자 양동이 따위를 들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도중에 난데없이 출현한 지프에서 뚱뚱한 육군장교가 내렸다. 그는 우리들의 선생님을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지휘봉으로 마구 구타를 하는 게 아닌가. 나중에 듣기로는, 학생들의 어지러운 대열이 못마땅했다는 것이다. 5·16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 지역 계엄사령부 지휘관이었다. 쿠데타를 일으켜 헌정을 중단시킨 군인들의 명분은 ‘국가재건’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스승을 구타하는 방법으로 나라를 새로이 세우고자 했다. 


군사독재가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강압적 철권통치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몰상식한 짓을 보고 살아야 하는 고통이 더 컸다. 예를 들면, 해마다 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는 대통령을 영접한답시고 길가에 늘어선 개나리들을 억지로 활짝 꽃피우기 위해서 몇 달 전부터 병사들을 동원하여 ‘개나리 조기개화(早期開花) 프로젝트’를 행하는 것을 나는 군대시절 내내 보아야 했다.


이 비슷한 일은 비일비재했다. 허위보고, 겉치레, 표리부동한 위선적 언행은 사회 전체에 구조화되어 있었다. 살아남으려면 누구든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몰상식과 독재가 결합된 대표적인 만행이 ‘장발 단속’이었다. 멀쩡한 젊은이들의 머리칼이 국가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길거리에서 함부로 잘리는 터무니없는 짓이 오래 계속되었다. 아무 법적 근거도 없이 단지 최고권력자 개인의 취향에 거슬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장발 단속 (경향신문DB)


1970년대 중반 내가 재직하고 있던 어느 지방대학에서 학생들의 부탁으로 저명한 작가 한 분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이 나라 최고급 작가로 내가 존경하고 있던 작가였다. 그분 특유의 해박하고 진지한 강연이 끝난 뒤 우리는 저녁식사를 위해 시내로 나왔다. 그런데 같이 걷고 있던 분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살펴보니 길 건너편에서 경찰의 ‘닭장차’에 막 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분은 몇 해 동안 미국에 머물다가 막 귀국했기 때문인지 장발인데다가 뒷모습만 보면 청년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필 그 시각 시내 중심가를 급습한 장발단속반에 걸려든 것이다.


잠시 멍해 있다가 나는 다급히 경찰관들에게 쫓아가 간곡한 어조로 설명했다. 그리하여 그분을 ‘닭장’으로부터 가까스로 구출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인근 식당으로 들어가기는 했으나 우리는 밥을 먹지 못했다. 작가는 침묵 속에서 말할 수 없는 모욕감과 수치심으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되돌아보면, 박정희 시대는 실로 누추하고 야만적인 시대였다. 작가는 불온한 글로 탄압을 받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다. 그것은 작가로서 명예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나라 최고급의 작가가 장발 단속에 걸려 ‘닭장차’에 실린다는 이 기막히게 누추한 코미디는 대체 무엇인가. 작가·예술가에게 이보다 더 야만적인 형벌이 있을 수 있을까. 


그날 일은 어쩌면 ‘사소한’ 사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은 박정희 시대의 본질을 집약하는 극히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박정희 시대란 영웅의 시대도, 비극의 시대도 아니었다. 비극이란 원래 위대한 정신의 위대한 몰락에 관한 드라마이다. 박정희 시대는 단지 천박하고 저열한 정신이 지배하는 시대였을 뿐이다.


박정희는 농촌을 살린다면서 ‘잘 살아보세’라는 유치한 노래를 밤낮으로 틀어놓고 농민들을 바보나 어린애처럼 취급하고, 토착문화를 가차없이 파괴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삶의 근본 토대를 급속히 해체시켰다. 박정희와 그 추종자들은 이 땅에 면면히 전승돼온 선인들의 지혜와 삶의 기술, 사회적 관계망들을 폭력적으로 제거하며 그것을 ‘경제발전’이라고 불렀다. ‘경제발전’이라고 하면 모든 게 허용되는 사회, 역사도 문화도 전통도 헌신짝처럼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는 사회, 그리하여 깊이도 영혼도 없는 사회가 이 시대를 통해서 굳건히 정립된 것이다.


1979년 10월 새벽, 대통령의 ‘유고’ 소식을 들었다. 문득 옛날 우리 선생님이 군인한테 폭행당하는 것을 본 이후, 나는 한순간도 자유인으로 산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시절은 물론, 대학 선생이 되고 난 뒤에도 끊임없이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에 짓눌려 살았고, 글을 쓸 때도, 글이 발표되고 나서도 늘 불안했다. 그런 비겁한 나 자신이 혐오스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제는 해방이다”--독재자 박정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우리들은 종일 들떠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과 얘기를 해보면, 그들이 박정희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언젠가부터 이 나라에서 사실상 역사교육은 사라졌다. 설령 역사를 배운다 할지라도 박정희 시대의 한국 사회 전체가 거대한 수용소였다는 사실을 그들이 체감할 리가 없을 것이다. 당대 최고의 작가가 어떤 치욕에 노출되던 시대였는지, 그것을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같다. (위에서 언급한 작가는 지금 생존 중이다. 혹시 이 글을 보더라도 용서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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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와 기강해이가 밝혀질 때마다 습관적으로 은폐해온 군의 병폐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번엔 군내 권력기관으로 군림하는 국군기무사령부가 도마에 올랐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엊그제 경찰에 성매매 혐의로 적발되자 민간인 지인들을 대신 형사처벌 받도록 한 국군기무사령부 장교 2명을 성매매 및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군 검찰에 넘겼다. 기무사는 지난 5월 내부 감찰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내부에서 봉합했다. 보스를 보호하기 위해 부하가 대신 사법처리를 받는 마피아 집단을 연상시키는 범죄 내용도 문제지만 더 기가 막힌 것은 기무사의 특권의식이다. 기무사는 지난 5월 내부 감찰에서 이들의 범죄행위를 적발하고도 ‘대외노출 시 부대 위상이 실추된다’는 이유에서 수사기관에 넘기지 않고 소속부대로 복귀시키는 인사조치만 취했다고 한다. 부대예산 4500만원을 횡령한 부사관과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된 영관급 장교 역시 같은 이유로 사법처리를 받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국군 기무사령부 (경향신문DB)


군이 이처럼 부끄러운 자화상을 스스로 공개한 것은 물론 아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어처구니없는 비행과 은폐 기도가 백일하에 드러난 뒤에야 조사에 나선 것이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뒤늦게 진상을 확인했으면서도 이를 묵인한 지휘부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림으로써 한계를 노출했다. 조사본부는 배득식 사령관이 은폐를 최종 승인한 것이 “적법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소속 간부들의 위법사실을 내부종결하겠다고 사령관에게 보고한 대령급 중간간부들만 징계위에 회부했다. 그나마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이 아니라 기무사 자체 징계이다. 은폐를 내부종결토록 묵인한 사령관에게 징계권을 쥐여준 셈이다. 배 사령관은 김관진 국방장관의 구두 경고를 받는 데 그쳤다. “일반 부대였으면 당연히 지휘관이 엄중하게 처벌받아야 마땅한 사안”이라는 지적이 군 안팎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군 병사의 ‘노크 탈북’에서 드러났듯이 잘못을 축소·은폐하는 군의 병폐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특히 부대 위상을 운운하며 치부를 감추려 한 기무사령관의 ‘정무적 판단’은 죄질이 나쁘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정부 들어 사령관의 대통령 대면보고가 부활하면서 기무사의 정치색이 더욱 짙어졌다는 지적을 받아온 터이다. 기무사이기에 소속 간부들의 비행을 감추고, 기무사이기에 처벌에 예외를 둔다면 군율은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일벌백계만이 군의 고질적인 은폐 악습을 고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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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과제로 부상한 검찰개혁을 두고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지난주 ‘권력기관 바로 세우기’ 방안을 밝힌 데 이어 어제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사법개혁 10대 추진과제’를 제시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정치쇄신특위에서 만든 방안을 중심으로 조만간 최종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안 후보가 발표한 검찰개혁안은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 신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검찰의 직접수사기능 축소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문 후보가 내놓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중수부의 직접수사기능 폐지, 검·경 수사권 조정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의 경우 기소 여부를 시민배심원단이 결정토록 하고, 판검사·경찰관의 공권력 남용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토록 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문·안 후보의 검찰개혁안이 비교적 핵심을 짚은 것으로 평가한다. 검찰총장 직할부대인 중수부의 폐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필수적이다. ‘태산명동 서일필’로 끝난 중수부의 양경숙씨 공천헌금 수사만 봐도 중수부 폐지의 당위성은 분명해진다. 중수부 자체를 폐지할 것이냐, 수사기능만 없앨 것이냐는 부차적 문제일 뿐이다. 새누리당은 특별감찰관이 대통령 친인척이나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고발하면 상설특검이 수사하는 방식을 검토 중인 모양이나, 이는 반쪽짜리 개혁에 불과하다. 중수부가 존재하는 한 각 기관의 위상과 기능을 두고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개혁법안 제출하는 민주통합당 (경향신문DB)


문·안 후보의 검찰개혁안에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인사권의 독립 문제다. 문 후보는 검사의 청와대 파견을 금지하고, 검찰 인사에 시민 참여를 확대하며, 법무부를 탈(脫)검찰화하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도 법무부 보직에서 검사를 배제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검찰의 독립성 훼손은 대통령이 검찰총장 인사권을 무기로 조직 전체를 쥐락펴락한 데서 비롯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인 한상대 검찰총장이 민간인 불법사찰, 내곡동 사저 부지, BBK 가짜편지 등 ‘3대 의혹’ 수사에서 이 대통령과 측근들에게 면죄부를 안긴 것을 보라. 


이 같은 사태의 재연을 막으려면 최근 신설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전면 개편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해야 한다. 규정상 추천위원이 9명에 불과한 데다 전·현직 검사가 2명 이상 들어가도록 돼 있는데 이를 바꾸자는 것이다. 추천위원 수를 대폭 늘려 시민사회와 재야법조계의 목소리를 확대하고 검찰의 발언권은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 법무부 장관은 물론 청와대 민정수석도 비검찰 출신 법조인으로 임명해야 한다. 평검사 인사에서는 순환인사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정치검사’가 되려는 유혹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검찰개혁은 권한 축소와 인사 개편의 양축이 뒷받침될 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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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점석 | 비교문학자


 

야합! ‘들판(野)에서 합궁(合宮)한다’는 말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 이 말이 주는 여운은 다를 수 있다. 혈기방장한 젊음의 뒤안길을 벗어난 장년은 야릇한 미소를 지을 것이며, 검은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도록 요조숙녀를 꿈꾸며 살아온 여인은 ‘이런 망측할 데가 있나’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칠 것이다.


하지만 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이 말의 어원적 용례는 의외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예순 살에 세 번째 부인 안징재와 결혼하여 공자를 얻게 되었다(紇與顔氏女野合而生孔子). 이때 그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야생의 질서가 아닌 규범적 인륜을 강조한 공자가 ‘야합의 산물’이라니 역설적이다. 물론 공자 출생의 야합이란, 아들을 얻기 위한 일념에 불같은 정염이 끓어올라 ‘들판에서 정을 통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기>의 해설서에 따르면, ‘여자는 49세(7×7)에 음도(陰道)가, 남자는 64세(8×8)에 양도(陽道)가 끊긴다’고 했다. 양도와 음도가 생기기 전이나 소멸된 후에도 임신이 되는, 아주 특별한 경우의 통정을 야합이라고 한단다. 공자의 출생이 야합이랄 수 있는, 매우 드문 경우인 것은 사실이다. 


 바야흐로 야합과 반역이 난무하는 정치의 계절이다. 정치판의 모리배들이 교언과 허언을 일삼으며 치마끈을 풀어헤치고 날뛴다.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당적을 13번 바꾸며 마침내 본집에 돌아왔다’는 이인제는 정권교체를 위한 야당의 후보 단일화를 ‘야합’이란다. 야합의 결과로 새 시대의 토대를 쌓고 질서를 부여할 공자와 같은 인물의 탄생을 예견하다니! 혜안이 아닐 수 없다.


박수치는 새누리당 (경향신문DB)


야합을 일삼는 모리배의 전형을 김무성의 현란한 처세술과 무지한 독설에서 본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 사이에서 권력의 추를 따라 나댔던 것은 그들의 생존법이니 웃어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가계의 친일행적’(매일신보 1941년 12월9일자에 실린 부친 김용주의 조선임전보국단 대구지부 결성식 기사 참조)을 광적인 ‘레드 콤플렉스’로 상쇄시키려는 책동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 사실을 날조하여 적의를 확산시켜 상식과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사회를 광기의 도가니에 빠뜨려 구성원들이 흑백논리에 갇히게 한다. 내부 분란을 야기하여 자신의 치부를 가리려는 게 그들의 술수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친일부역 오명의 굴레에서 자신들의 선친을 구하는 수법을 안다. 대중매체를 장악하여, 쉴 새 없이 ‘종북주의, 좌파 빨갱이, 북방한계선(NLL)’을 들먹이며 막무가내로 떠들어야 한다. 합리적 비판이나 논쟁이 시류를 주도하면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니까. 완장을 찬 김무성과 동업자들은 안다. 5년 전 10월에도 그들의 당대표 강재섭과 한나라당의 모사꾼들이 근거 없이 ‘북방한계선에 관한 대화록’을 들먹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어떻게 물고 늘어졌던가를! ‘한반도와 부속도서들을 영토’로 규정하는 헌법에 비추어 봐도 북방한계선은 우리의 국경선이 아니다.


1992년 노태우 정권의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북방한계선에 대한 재논의를 언급했다. 기존의 합의를 토대로 2007년 노무현 정권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서해에서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려는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설정하자고 합의했다. ‘10·4 선언’에 따라 그해 11월27일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대동강변의 송전각에서 열렸다. 참여정부는 북측이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해상경계선 재설정’ 주장을 철회하게 했다. 북방한계선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뚝심과 일관성이 거둔 성과였다. 


폭로를 가장한 무책임한 언동으로 정치혐오증을 유발하는 정치 모리배들을 청소하는 것이 정치판의 쇄신이다.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정치 쇄신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권력을 좇아 단맛만을 빨며 야합으로 놀아났던 값싼 입들’이 더 이상 국민을 이간질할 수 없도록 도태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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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 | 서울과기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역시 진심만 가지고는 안될 일인가?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안을 두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아마추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부터 프레임 전쟁의 노림수라는 비판까지, 일파가 만파를 부르고 있다. 개혁안의 출발점이 그의 진심이었던 것만은 믿고 싶다. 그러나 과연 국회의원 수와 정당보조금을 줄여 그 돈을 청년실업에 쓰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안 후보의 제안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는데 역행한다는 비판이 넘치니, 여기서는 그것이 그가 대망하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를 해볼까 한다. 


(경향신문DB)


정치학자들은 복지태도의 계급별 차이가 나라마다 편차가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컨대 스웨덴의 경우 하층계급일수록 복지확대를 더 지지하고 상층계급일수록 덜 지지하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런 복지태도의 계급적 차이가 스웨덴에 비해 현저히 낮게 나타난다. 그 이유는, 미국의 하층계급이 스웨덴에서만큼 일관되고 강하게 복지국가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층계급의 태도는 큰 차이가 없다. 


 왜 미국의 하층계급은 스웨덴의 하층계급만큼 복지국가를 지지하지 않을까. 정치학자들은 정당체계를 그 이유로 든다. 비례제를 채택하고 있는 스웨덴의 경우 정책 차이가 뚜렷한 여러 개의 정당이 존재한다. 정당들은 사회경제적 이슈에서 선택가능한 대안과 그것의 계급적 의미를 선명히 집약해 보여주는 초점 구실을 하며, 유권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는 정당을 선택하기 쉽다. 반면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어 양당체제가 수립된 미국의 경우, 자유주의정당과 보수정당이 경쟁하는 구도를 가지고 있어 주요정당 간의 정책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미국의 의원들은 지구당 중심의 당 운영으로 정당기율이 약한 상태에서 교차투표를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정당이 정책 선택의 강한 기호가 되어 주지 못한다. 결국 유권자들은 지역구 현안 중심, 인물 중심의 투표를 하게 되고, 복지나 노동 등 전국적 쟁점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런 정당체계는 결국 시민사회 내 하층의 이해관계가 정치사회에 반영되지 못하게 한다. 교육수준이 높은 상층 및 중간층 유권자들은 이런 제도 속에서도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충실한 투표를 한다. 반면, 대체로 교육수준이 낮은 하층은 인종, 종교, 낙태, 이민 등의 프레임에 이끌려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고의 비논리성과 비통합성을 갖기 쉬운 하층계급은 정당이 지속적으로 이들을 호명하여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지 프레이밍해주고, 실제로 집권하여 그 이익을 실현시켜 줄 때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는 투표를 하기가 쉬워지는데, 미국은 유럽에 비해 이런 기제가 훨씬 약한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한국의 경우 분단체제, 보수적 매스미디어 환경, 취약한 노동시장, 지역주의 정치구도로 계급적 이해를 정치적으로 프레이밍하는 장치가 극도로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독점의 정당체제는 대의 왜곡 문제를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이는 하층계급이 오히려 복지국가 확대에 반대하고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 냈다. 이런 문제의 극복을 위해 여러 정치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비례제의 확대를 주장해왔다. 그리고 국회의원 수를 줄이면서 비례제를 확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에,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도 긍정적 입장을 취했다.


이렇게 본다면 안 후보의 국회의원 정수 감축 주장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복지국가 발전도 저해할 수 있는 위험한 제안이다. 그 돈을 청년실업 대책에 써서 얻는 이익은 대의를 왜곡하는 정당체제의 개혁으로부터 얻는 이익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하다. 논란 증폭 과정에서 나온, 주장의 핵심은 쇄신의 방향이지 숫자가 아니라는 안 후보의 반박 역시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고양이 스스로, 하나도 아니고 줄줄이 목걸이로 만들어 걸어야 한다는, 이 사안의 핵심 측면을 부차적 문제로 보는 현실감각도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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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조상들은 술을 신성한 음식이고 복을 주는 징표로 여겼다. 관혼상제를 지낼 때 술이 없으면 의식을 행할 수 없었다. 조상을 기리는 차례나 제사상에 술을 올리는 기원은 <삼국사기>에서 확인된다. 술은 신에게 바치는 음식이고, 음복(飮福)을 매개로 인간은 신과 하나가 됐다. 미사를 집전하는 천주교 신부들이 포도주를 마시며 예수의 피(희생)를 기리는 의식도 예수와 성직자의 합일을 의미한다. 혼례에서 신랑신부가 술을 나누며 앞날을 맹세하는 의식도 ‘합일’의 상징이다. 흔히 “술이나 한잔하자”는 말도 ‘너’와 ‘나’의 내적 동질화를 이루자는 ‘친밀함’을 담고 있다.


조상들은 또 새해 첫 보름날 아침에 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믿었다. <성호사설>이나 <청장관전서> 등 고서에도 술을 마시면 기혈 순환이 잘되고 묵은 병이 낫는다며 음주를 권장한 기록이 나온다. 손님을 맞거나 떠나보낼 때 인정의 표시를 술로 대신하는 민속례, 어른 공경을 위한 주도(酒道) 등은 생활규범이 된 지 오래다. 


술은 이렇듯 ‘백약지장(百藥之長)’이지만 ‘광약(狂藥)’이기도 하다. 술기운을 빌려 하고픈 말을 고백하는 취중진담(醉中眞談)은 ‘백약’에 가깝다. 그러나 살인이나 성폭행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후 “술김에 저질렀다”고 술 탓을 하는 정신나간 행위는 지탄받아야 할 ‘광약’ 수준이다. 이쯤 되면 취중무천자(醉中無天子·술에 취하면 하늘 아래 두려운 사람이 없음)의 뻔뻔함이 극에 달한 셈이다. ‘광약’ 방지를 위해 미국·캐나다·호주·프랑스 등에선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의 음주행위에 대한 규제법이 시행되고 있다. 


충북 경찰과 주민들이 유흥가를 돌며 주폭 척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DB)


환경부가 국립공원을 포함한 79곳의 자연공원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음주로 인한 실족 사고 등을 줄이기 위해 금주지역을 지정하는 규제안이다. 그러나 등산객들은 “높은 산에 오르는 이들은 술을 먹지 않는다. 설사 술을 마신다 해도 산의 정상까지 단속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한다. “국가가 과도한 금주정책을 추진할 경우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무시하고 개인의 기본권인 마실 권리까지 간섭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과잉규제 대신 계도 차원으로 그치기엔 이 땅의 애주가가 과다한 걸까. 조만간 음주 등산객을 단속하기 위한 주(酒)파라치, 산(山)파라치 등 신종 일자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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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 소설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육지에 다녀왔다. 거문도 동창의 아들 결혼식이었다. 이제는 이런 경우가 한 번씩 생기는데 여자 동창의 아들딸들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결혼식은 동창회를 겸해서 치러졌다. 초등학교 동창회는 물만 뿌리면 환하게 되살아나는 말린 꽃다발 같은 것이다. 역시나 말린 꽃 같은 중년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그리고 생생하게 피어났다.


내가 다닌 곳은 거문도 안에서도 동도초등학교였다(거문도 안에는 초등학교가 지금도 네 군데 있다). 빼깽이라고 불렀던 생고구마 잘라서 말린 것, 허연 버짐 자국, 건빵 배급, 왕자표 고무신, 커다란 꽃무늬가 그려진 책보자기 따위가 그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2학년 때 임시교사로 오신 여선생님은 우리반 아이들을 개울가로 데리고 가는 것으로 첫날 수업을 대신했다. 차가운 냇물에 손을 담그게 한 다음 매끈한 조약돌로 아이들 얼굴과 손에 묵어 있는 때를 벗겨내 주신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더러웠고 그날만큼은 아주 깨끗해졌다. 가르치려는 선생님은 많았지만 깨끗하게 만들어주셨던 선생님은 평생 그분 한 분이셨다.


무엇보다도 그 시절 아이들은 콧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하루 종일 누런 콧물이 흘러내렸던 내 친구 하나는 덕분에 별명이 ‘코부리’였다. 양쪽 소매로 콧물을 닦아낸 탓에 입은 옷마다 번들번들 코팅이 되곤 했다. 다른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여자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체구보다 더 큰 나뭇짐을 지고, 물동이도 지고, 밭을 매야 했던 내 여자 동창들은 민망할 정도로 짧게 쳐올린 단발머리에 디디티 뿌려진 머리카락, 그리고 팔이나 다리에 늘 두 군데 이상은 염증을 앓고 있었다. 그 섬 소녀가 자라서 처녀가 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다가 이윽고 결혼을 시킨 것이다.


한복을 차려입은 여자 동창은 한눈에 봐도 우아했다. 주름과 새치는 나이보다는 원숙과 품격을 보여주었다. 순한 눈빛, 조심성 있는 행동. 친구들도 하나같이 다르지 않았다. 세월이 잘 흘러갔다는 증거이다.


5년 전 대선이 끝났을 때 연도를 헤아려보았다. 다음 대선이 되면 쉰 살이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게 마치 제로에서 시작해서 50년 세월을 보내야 하는 것만큼이나 까마득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느새 오십이 되었고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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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으로만 떠돌던 아마추어 농구계의 검은돈 거래 실태가 경찰 수사로 드러났다. 대한농구협회 간부 4명은 2008년 1월부터 각종 대회에서 특정 심판 배정을 대가로 54개 농구팀 감독·코치들로부터 총 256회에 걸쳐 1억9000만원을 챙기고, 심판 16명은 유리한 판정 등을 구실로 155회에 걸쳐 5700만원의 금품을 받았다는 것이다. 비리에 연루된 심판은 협회 소속 전체 25명의 64%나 되고 돈을 상납한 농구팀은 전국 202개 팀의 27%에 이른다. 실업 농구팀은 물론 초·중·고·대학팀까지 포함돼 있다. 아마 농구계에 만연한 금품 거래 관행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이래서는 스포츠라 할 수 없다. 비리 관련자들을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리는 한편, 이 같은 비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먼저 협회 간부들이 심판 배정 권한을 악용해 상습적으로 돈을 받은 것부터 큰 충격이다. 위에서부터 썩을 대로 썩은 것이다. 더욱이 일부 비리 심판의 행태를 보면 기가 차지 않을 수 없다. 경기 전후 농구팀 감독·코치에게 “주 공격수를 5반칙으로 퇴장시킬 수 있다”고 전화까지 해 금품 상납을 강요하다시피 했다. 농구는 심판 판정이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감독·코치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돈을 바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아마 농구계에 금품 거래가 횡행하는 것은 심판의 열악한 처우가 큰 원인이라고 한다. 등급에 따라 월 40만~60만원의 기본급에 경기당 수당으로 2만5000~6만5000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금품 유혹에도 쉽게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심판의 금품 수수가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다.


비리를 저지른 협회 간부나 심판은 농구계에서 영원히 퇴출해야 할 것이다. 팀의 성적을 위해서라지만 심판에게 돈을 상납한 감독·코치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협회부터 환골탈태해야 한다. 돈으로 승부가 조작된다는 의혹을 불식시키지 않는 한 팬들의 발걸음은 멀어질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심판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처우를 개선하는 일도 중요하다. 경찰의 농구계 비리 수사는 강요되는 상납금을 감당하지 못한 학부모의 제보로 시작됐다. 이번 농구계 비리를 보면서 다른 종목은 사정이 어떤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종목별 협회 차원의 점검과 함께 당국의 전반적인 수사가 요구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마 스포츠가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거 때면 늘 투표율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가 돈다. 덴마크 수준으로 투표율을 높이려면 ‘비겁한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투표율을 높이려면 유권자들이 최대한 투표를 하기 쉽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사전투표제를 도입하지는 못할망정, 투표시간을 단 2시간 연장하는 문제도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후보는 소극적이다. 표를 먹고 산다는 정치인이 유권자들의 높은 투표참여를 바라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만약 낮은 투표율에 기대어 권력을 잡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비겁한 발상이다.


투표하고 싶어요 (경향신문DB)


다른 정당들이라고 해서 비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득권 정당들은 신생정당이 살아남을 수 없도록 선거제도를 만들어 왔다. 전두환 정권 때 국회의원 선거에서 2%를 넘지 못한 정당은 등록을 취소하고 그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는데, 민주화가 됐어도 이 조항은 삭제되지 않았다. 동일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부분만 1989년에 삭제됐다가, 그마저도 국회가 2002년에 슬그머니 부활시켰다. 그래서 지난 총선이 끝나고 녹색당, 진보신당 등은 등록취소가 되고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새로운 정당이 자리를 잡으려면 여러 번의 선거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한 번 선거에서 득표율 2%를 넘지 못했다고 정당 이름을 사용치 못하게 하는 법조항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런 조항을 만들어 잠재적 경쟁자의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 ‘비겁한’ 기득권 정당들의 모습이었다. 이제 이런 식의 비겁한 정치를 청산하고 정치제도부터 근본적으로 바꾸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한 정치혁신을 가능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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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측이 어제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게 야권 후보의 단일화 논의를 공식 제의했다. 후보 등록(11월25~26일) 전 단일화를 성사시키려면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안 후보 측도 “단일화를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10일 정책안을 내놓기로 해 그 약속에 먼저 충실해야 한다”고 밝힌 안 후보의 전날 발언을 소개했다. 안 후보가 조건부이긴 하지만 단일화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18대 대선의 최대 변수인 단일화 논의가 제 궤도로 들어서는 국면인 듯하다.


양측 입장을 보면 온도차가 있다. 경선을 치렀으면 하는 문 후보 측은 서두르는 기색이고, 여론조사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안 후보 측은 시간을 끄는 분위기다. 둘 다 옳지 않은 접근법이라고 본다. 먼저 문 후보 측은 단일화 내용보다 민주당 중심의 대선 승리를 위한 절차와 형식에 집착하는 인상이 짙다. 이른바 정치공학적 접근이다. 또 “방식보다 가치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다”며 정치적 기득권 폐기를 강조하는 안 후보의 언급에선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듯한 고자세가 느껴진다. 안 후보가 주장하는 대로 가치와 정책을 위한 단일화를 위해서라면 논의를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 단일화를 채울 내용과 방식 논의를 병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처럼 단일화 논의가 두 사람의 동상이몽으로 흐르면 국민의 피로감만 커지고, 정권교체라는 가시적 목표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단일화 질문' (경향신문DB)


그런 맥락에서 양측이 정치쇄신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정치는 물론이고 노동과 복지, 경제 등 각종 정책 경쟁으로 범위를 확대해나가야 한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지난 4·11 총선 때 후보 단일화를 위한 야권연대를 하면서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실현 등을 포함한 범야권 공동정책 합의문에 서명한 바 있다. 하물며 국가 운영을 책임지겠다는 대선 후보 단일화를 놓고 정책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다면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범야권 시민사회 원로들로 구성된 ‘원탁회의’가 두 후보에게 단일화를 촉구하면서 ‘아름다운 연합정치’를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단일화 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하는 정치 게임이 아니라 수권능력을 걸고 겨루는 진검승부가 돼야 한다.


문·안 두 후보 측은 각자의 정책들을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으로 단일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가치와 정책의 공유는 물론, 후보만이 아닌 세력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어떤 단일화냐가 더욱 중요하다. 두 사람의 정책은 외견상 차이가 없어 보이나 구체적 실행 방식이나 우선순위 등에선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두 후보 진영은 2002년 대선 당시 정책적 연대 없이 지분 나누기에 그친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가 투표 전날 파기된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빠진 단일화는 그만큼 명분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책 합의는 후보 단일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것이 승리지상주의 단일화의 함정을 실질적으로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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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범 특별검사팀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수사가 급진전되면서 이명박 대통령 일가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핵심 피의자인 이 대통령 아들 시형씨와 그에게 매입자금 6억원을 빌려줬다는 이 대통령의 큰형 이상은 다스 회장의 행태는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법망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을 태세다.


시형씨는 특검 수사가 시작되자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고 있다. 검찰 조사 때와 달리 “내 판단에 따라 매입자금을 마련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진술을 바꾼 경위를 두고는 “검찰에 낸 서면진술서는 청와대 행정관이 대신 작성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고 한다. 대통령 아들과 청와대가 공조해 형사사법 절차를 깔아뭉갠 셈이니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시형씨 측의 어이없는 행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변호인은 시형씨의 재소환과 청와대 직원들의 참고인 소환을 자제해줄 것을 특검팀에 요청했다고 한다. 핵심 피의자의 변호인이 수사방향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못해 황당한 일이다. 더욱이 청와대 측 법률대리인이 아닌 시형씨 개인의 변호인이 청와대 직원 소환 문제를 언급한 것은 월권이다. 청와대가 특검에 외압을 행사하려 한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 씨가 내곡동 사저부지매입 의혹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25일 서초동 이광범 특별검사 사무실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이상은 회장의 측근은 매입자금 6억원의 출처와 관련해 “이 회장 집에 현금 10억원 정도가 들어가는 붙박이장이 있는데, 6억원은 여기서 꺼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인 계좌에서 나온 것이고, (동생인) 이상득 전 의원이 총선에 나가면 도와주려 했던 돈”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다스에서 6억원이 나왔다는 의혹을 차단하려 한 듯하다. 하지만 새로운 의혹만 보태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대통령의 형이 현금 수억원을 장롱 속에 쌓아놓고 살아왔다는 데 충격받지 않을 국민이 있겠는가.


내곡동 사건은 현직 대통령이 국민의 혈세로 부동산투기와 편법증여를 하려 했다는 의혹에서 비롯했다. 검찰이 부실수사로 국민적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 탓에 특검 수사까지 받게 된 ‘부끄러운’ 사건이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 일가는 갖가지 꼼수를 동원해 법의 심판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참담할 뿐이다. 우리는 대통령 일가를 향해 특검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남은 명예라도 지키는 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접어야 할 것 같다. 특검팀은 어떠한 수사 방해 시도에도 흔들리지 말고 철저한 수사로 진실을 밝혀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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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 변호사


 

올해 4월 발표된 ‘유엔세계행복보고서’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덴마크가 뽑혔다. 덴마크는 에너지, 교육, 복지 등 여러 측면에서 관심을 가질 부분이 많은 국가이다. 특히 덴마크는 원자력발전을 아예 시작하지도 않았고, 1970년대부터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발전시켜 온 나라이다. 지금도 풍력으로 전기의 20%를 생산하고 있고, 2020년까지는 풍력으로만 전기의 50%를 생산하려 노력하고 있다. 원전이 없으면 당장 나라가 망하고 전기도 못 쓸 것처럼 얘기하는 정치인들이 많은 우리나라가 꼭 참고해야 할 국가이다.


덴마크의 행복 비결은 물질과 소비에 있지 않다. ‘유엔세계행복보고서’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건강한 사회공동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소득이 높다고 해서, 그리고 소비를 많이 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게 유엔세계행복보고서의 결론이다. 실제로 덴마크 국민들은 유럽연합(EU) 평균보다 전기를 15% 적게 쓰지만, 각종 조사결과에서 삶의 질이 높고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행복이 물질적 풍요나 소비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사회공동체가 건강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정치다. 정치가 잘돼야 사회적 불평등이 심각해지지 않고, 정부가 시민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지속가능한 미래도 보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행복하다는 덴마크의 정치는 한국 정치와 무엇이 다를까?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투표율이다. 덴마크는 1980년 이후에 치른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이 모두 80%를 넘었다. 2011년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81.83%에 달했다. 지난 4·11 총선 투표율이 54.3%에 불과했던 우리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이렇게 높은 투표율은 사회공동체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보여준다. 덴마크는 이런 높은 관심과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여 온 것이다. 이런 높은 투표율은 좋은 정치제도 덕분이기도 하다.



덴마크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사전투표제’를 도입해 선거일 기준 3주 전부터 유권자들이 미리 투표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비례대표성이 강한 선거제도를 통해 다양한 정당이 경쟁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래서 덴마크는 8개 정당이 원내에 존재하고, 어느 한 정당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하기 어려운 의석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거대 기득권 정당 중심으로 정치가 좌우되면서 정책경쟁이 실종된 우리 정치의 모습과는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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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오랜만에 노동계 현안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냈다. 이채필 노동부 장관이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국정감사 기간에 제기된 문제에 대한 향후 조치 계획을 설명하면서다. 이 장관은 철탑 농성 사태로 번진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와 관련해 현대차가 대법원 판결과 중앙노동위원회 결정을 준수하지 않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현대차를 비롯해 중노위의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법정 최고액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노조 파괴 컨설팅 사태에 대해서는 고발된 사업장뿐 아니라 의혹이 있는 사업장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노무사와 노무법인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노무사 사건수임 신고제’를 도입할 뜻도 밝혔다. “노사관계의 암세포가 부당노동행위”라며 이의 근절 의지를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이채필 노동부 장관 (경향신문DB)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강도 높은 근절 의지를 밝힌 이 장관의 말이 진정성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반가운 일이다. 최근 노조 파괴 컨설팅 사례나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 등에서 보듯이 사용자의 불법행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제 경향신문은 노조 파괴 공작이 진방스틸·청주교차로 등 중소사업장에까지 뻗쳐 있는 정황을 보도했다. 대법원 판결과 중노위 결정을 무시한 현대차 불법파견에 항의해 노동자 2명이 14일째 철탑 농성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노동부가 사태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한 것은 다행이지만 실효성 있는 조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런 사태를 부른 근본 원인이 노동부가 사용자의 불법·탈법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온 데 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병승·천의봉씨의 철탑 농성 사태는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과 중노위 결정을 회사 측이 무시한 데서 비롯됐다. 최씨는 7년에 걸친 소송 끝에 지난 2월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면 현대차는 최씨 및 최씨와 같은 조건에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것이 도리다. 노사 문제를 떠나 이 장관의 말대로 “(사법부에 의해) 결론이 난 사안에 대해서는 당연히 이행하는 것이 법치국가에서의 의무”인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2015년까지 300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신규채용 형식으로 정규직화하겠다는 입장만 고수해왔다. 그마저도 어제는 노조와 교섭하기도 전에 400명 신규채용을 강행할 뜻을 밝혀 노조의 반발을 사고 있다. 


노동부가 진정으로 사용자의 불법행위를 엄단할 의지가 있다면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부터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검찰 지휘로 2년 넘게 하고 있는 현대차 불법파견 조사부터 조속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 장관의 말이 단순히 현 국면을 모면하려는 립서비스가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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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가 어제 선거대책위원회 발족식을 열고 대선 레이스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땀이 정의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심 후보는 “낡은 질서가 허물어지고 성장제일주의, 시장만능주의, 개발토건주의가 붕괴하고 있다”면서 “가장 낮은 곳, 가장 아픈 곳, 정치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퍼올린 새로운 힘으로 진보적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를 향해선 “우리는 진보적 정권교체의 공동 책임자다. 새로운 연대, 승리하는 연대, 단단한 실천연대를 이뤄야 한다”며 야권 후보 단일화에 참여할 가능성을 열어놨다. 앞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도 선대위를 출범시켜 진보 진영의 대선 경쟁이 뜨거워지게 됐다.


심상정 의원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 (경향신문DB)


진보정의당은 창당한 지 아흐레밖에 안된, 소속 의원 7명의 신생·미니 정당이다. 그러나 대선 공간에서 물리적 조건을 넘어서는 존재감을 보일 책무가 있다. 50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진보정치가 사실상 실종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통합진보당의 4·11 총선 비례대표 경선부정이 근인(根因)인 만큼 진보정당 자체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여기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안 후보가 모두 중도를 지향하면서 진보의 공간이 좁아진 점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서민복지와 재벌개혁 등 진보정당이 발언할 수 있고 발언해야 하는 의제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진보정치의 실종은 아쉬움이 컸다. 오죽하면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노총이 생기고 처음으로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없는 대선을 맞게 됐다”고 탄식했겠는가.


심 후보는 지난 19일과 25일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현장을 찾았다. 그는 현대차 노사와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 실태를 공동조사하고,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규모 및 방법에 합의하자는 등의 5대 해법을 제시했다. ‘정리해고 없는 쌍용차, 비정규직 없는 현대차, 백혈병 없는 삼성전자’를 위한 대선 후보들의 공동성명 발표를 제안하기도 했다. 과거 통합진보당의 위기가 ‘노동자의 정당’을 표방하면서도 노동자 대표성을 상실한 데서 비롯했음을 생각할 때 심 후보의 초기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노동가치 중심성을 확립하는 문제는 진보정치의 부활 여부를 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진보정의당과 심 후보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외된 진보의 목소리를 되살리고 빛바랜 진보의 가치를 회복하는 길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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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남 여수시 회계과 8급 공무원 김모씨(47)가 3년간 76억원의 공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지역주민을 허탈하게 하고 있다. 말단 공무원이 거액의 공금을 빼돌릴 수 있도록 방치한 자치단체의 회계관리와 인력관리 방식, 그런 일을 조기 차단하지 못한 감사 시스템의 부실을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 수사 결과 김씨는 아내가 사채를 빌려 돈놀이를 하다 수십억원의 사채를 제때 갚지 못하자 2009년 7월부터 공금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상품권 회수와 소득세 납부, 급여 지급 과정에서 관련 서류를 위조하는 등의 치밀하고 지능적인 수법을 사용했다. 그동안 여수시 회계과는 전남도의 정기감사와 시의회의 행정사무감사, 시 자체 감사 등 10여 차례 감사를 받았지만 김씨의 공금 횡령 사실을 찾아내지 못했다. 감사원의 감사에서도 적발되지 않았다면 김씨의 범행은 끝없이 이어졌을 것이다.


(경향신문DB)


가장 큰 문제는 여수시의 회계관리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특별회계는 상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전국 공통의 지방재정전산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으나 김씨가 맡은 ‘세입·세출외 지출’ 부문에는 수기(手記) 방식을 택했다. 김씨는 상급자가 전산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을 수차례 독려했으나 “수기가 더 빠르고 정확하다”며 수기 방식을 고집했다 한다. 여수시가 회계 분야에 7년 이상 근무한 김씨를 순환근무시키지 않고 ‘회계 전문가’라는 이유로 계속 같은 업무를 보게 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전문가의 탈을 쓴 도둑에게 곳간 열쇠를 맡긴 꼴이기 때문이다. 전남도와 여수시 등 자치단체 차원의 감사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뤄져 김씨의 범행 사실을 잡아내지 못한 것도 큰 문제다. 결과적으로 자치단체가 김씨의 범죄를 방조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수시 공금 횡령 사건은 전국의 자치단체에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 무엇보다 회계관리 시스템을 정부가 권장하는 전산시스템으로 바꾸고 횡령 사고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회계 업무는 복수의 공무원이 맡도록 하고, 회계 담당자는 순환근무제를 철저히 시행해 회계 부정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인력 확충이나 외부 전문가 활용 등을 통해 자치단체의 감사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자치단체의 자금 흐름을 추적해 비리를 조기 적발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번 김씨 사건 관련자와 책임자에 대해서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엄중문책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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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 고려대 명예교수·경향시민대학장


 

다음 임기 동안 우리 사회를 이끌 정치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선이 되면,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나, 경제는 어떻게 하고 교육과 복지에는 어떤 청사진이 필요한가 하는 등의 큰 문제들이 제기되곤 한다. 그럴 때면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진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최근에는 진보-보수와 여-야를 초월해 사회 각계의 ‘원로’들이 모여 합동으로 개헌을 주장하고 나섰다. 개헌이 지금 그렇게 필요한 것인가? 


우선 그 전에 원로들이 집단적 의사를 표명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말하고, 현실 정치를 계도할 사명감을 갖는 것이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원로들의 개헌 문제 제기는, 스스로 어떤 최선의 국가 목표를 상정하면서, 그에 비해 오늘의 정치와 제도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래서 모든 제도의 근간인 헌법을 바꾸고 사회 구성원들의 행태를 그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여야 원로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개헌을 제안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원로들의 집단적 정치 행위가 비단 개헌 문제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야권에서는 원로들이 모여 첨예한 정치적 사안마다 의견을 내왔고 최근에는 후보 단일화를 압박하고 나서기도 한다. 도덕성과 지식, 지혜를 겸비한 원로들이 대중을 계도했던 19세기 서구의 의회주의 시기에서라면 몰라도, 충분히 교육받고 도덕적 자율성을 갖는 보통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현대의 대중민주주의에서 그러한 정치적 후견자들의 역할이 적절한 것인지, 나아가 정치발전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한 사회와 국가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하고 정의하는 것은 민주적 정치과정을 통해 시민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민주주의 역사는 시민이 쓰는 것이다. 그런 정치 밖에서 혹은 정치의 상위에서 정치를 이끌 최선의 대안을 알고 있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치적 평등의 원리 위에 서 있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양립하기 어렵다.


민주정치의 발전을 위해 ‘정당을 바로 세우는 길’과 ‘헌법을 바로 세우는 길’ 사이의 선택을 해야 한다면, 필자는 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당은 정책을 입안하고 공직 후보를 선정하여, 시민과 정부를 연계하는 대표와 책임의 고리를 만드는, 민주주의의 중심 조직이자 메커니즘이다. 좋은 정당이 없다면 좋은 정치도, 좋은 민주주의도 없다. 


헌법이 잘돼서 정치가 잘 될 수 있다고 한다면, 해방 후 한국 정치가 최고로 좋았어야 했다. 최초의 한국 헌법은 당시 가장 좋은 민주주의 헌법이라고 할 미국 헌법과 독일-오스트리아 헌법의 좋은 점을 취합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헌법 1조는 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조항으로 시작했기에 그 헌법 아래에서 권위주의 통치도 없어야 했다. 


다른 각도에서 말한다면, 헌법은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가 작동할 수 있도록 권력을 조직하고 배분하는 경쟁의 기본 틀과 절차를 제공할 뿐, 그 자체가 좋은 정치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의 몫이고, 민주주의에서 정치를 이끄는 것은 정당이다. 


현재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더 중요하게 논의돼야 할 것은, 있는 헌법도 지켜지지 않는 정치적, 사법적 현실이라 하겠다. 기존 헌법이 지켜지기만 해도 법 앞에 평등과 법의 지배가 상당 정도 실현될 수 있다. 재벌의 전횡과 대통령의 권력남용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 후보 단일화를 위한 인위적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 일이 선거 때마다 반복되지 않도록 하거나,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여 다양한 사회적 이익과 열정이 정치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도 있다. 대통령이 정당을 중심으로 정치를 운영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 권력과 책임을 분점하여 정당을 강화하는 환경을 만들 수도 있다. 지금 헌법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끝없이 열거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원리와 가치가 확대될 수 있는 정치적 실천이고 그러한 경험을 축적해 가는 데 있지, 헌법 탓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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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정 문화부 차장


 

“노벨상이 조선에 온다면 누가 받을까.”


“이불 속에서 활개치기로 주마고 하지 않는 노벨상의 예선(豫選)은 쑥스러울 듯하여 그만둡니다만, 우선 이학상을 타도록 힘쓰십시다.”


질문을 한 이는 일제시대의 대표적 문학잡지인 ‘삼천리’의 편집자이고, 대답한 이는 소설가 염상섭(1897~1963)이다. 이 설문은 1930년 1월호에 실렸다. 이뿐 아니다. ‘삼천리’ 1936년 4월호는 “조선문학의 세계적 수준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물었고, 작가 이무영은 “어느 사람의 어느 작품을 어느 나라의 어느 사람의 어느 작품과 비교하느냐”고 반문하면서도 굳이 답하자면 “민촌(이기영), 현민(유진오), (박)화성, (이)효석, 춘원(이광수), (김)동인, (염)상섭”이라고 꼽는다. 


 이런 사실로 미뤄볼 때 우리 문학이 노벨상을 염원한 역사는 적어도 193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대문학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한국(조선)문학이 세계의 인정을 받는 날, 곧 노벨상을 받는 날을 꿈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1년 만들어진 노벨문학상은 국가가 아니라 작가에게 주는 상이다. 그럼에도 작가 개인의 수상은 그가 창작하는 모국어의 영광이라는 점에서 소속 국가의 영광으로 받아들여졌다. 뜻 있는 이들이 아무리 노벨문학상을 국가 간 올림픽으로 여기지 말자고 해도 수상을 향한 꿈과 열망은 쉽사리 식지 않는다.


노벨상이 작가 개인에게 한정되기 힘든 이유는 그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상이 만들어진 20세기 초반은 강대국의 제국주의와 약소국의 민족주의가 맞서던 시대이며,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수단으로서의 민족주의는 자결과 독립을 주장하기 위해 고유한 정체성과 문화를 만들어내야 했다. 문학은 그 중심에 섰다. 자연스럽게 한 민족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그 문화를 이해하는 지름길로 여겨졌다. 각 민족국가의 작품들을 골라서 구성한 ‘세계문학’은 무지개처럼 인류의 다채로운 정신세계를 보여준다고 오랫동안 믿어져 왔다.


중국 작가 모옌 (경향신문DB)


올해 노벨문학상도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로 끝났다. 특이한 대목은 동아시아 작가들의 경쟁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줄곧 유력 수상후보로 거론됐으나 영광은 막판에 급부상한 중국 작가 모옌에게 돌아갔다. 무라카미도, 모옌도 한국에서는 매우 잘 알려진 작가다. 무라카미는 천문학적인 책 판매량에도 한번도 한국에 오지 않았지만, 모옌은 지한파로 일컬어질 만큼 자주 내왕했다. 그의 편안한 인상과 소탈한 면모는 노벨상 수상작가의 근엄하고 진지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모옌의 수상이 의외라는 듯 일부에서는 스웨덴 한림원이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화가 난 중국을 달래려는 조치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논리는 납득이 안된다. 그보다는 누가 민족문학의 대표자로서 적합한지가 관건일 것이다. 고향을 배경으로 작품을 쓴 모옌은 일찌감치 감각적인 메트로폴리탄이 된 무라카미보다 훨씬 유리하다. 일본에서 ‘공항서점용 작가’로 폄하되던 무라카미가 몇 년 사이 후보로 거론되면서 일본의 학자,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일본적인 것’을 찾아내고자 애쓰고 있다.


한국문학이 ‘민족문학의 대표 작가’를 갖지 못하는 가운데 국내에서 들리는 소식은 우울하다. 지난해 소설 출간종수는 전년도에 비해 19%가 줄었다. 출간부수가 아니라 출간종수가 줄었다는 건 시장상황에 밀려 아예 출간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최근 베스트셀러(한국출판인회의) 집계에서 20위에 든 한국소설은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 유일하다. 현재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시행하는 문학나눔사업도 앞으로 문학 전문가들이 책을 선정하는 대신 시민들의 신청을 받는 쪽으로 바뀐다는 소식도 들린다. 문학의 위축은 큰 흐름이다. 단, 상황을 이렇게 내버려둔다면 노벨상의 꿈도 함께 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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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 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지역 전체 목수들에게 적용되는 임금 협약을 한번 만들어보자!” 지난 6월25일부터 1주일간 파업을 벌였던 대구지역 건설노동자들이 여름 내내 외쳤던 구호다. 건설노조가 이런 주장을 내놓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 2000명에 달하는 대구지역 건설노동자 중 조합원은 400명. 그러나 비조합원들은 임금 협약이 적용되지 않아, 조합원보다 1만5000원가량 낮은 일당을 받는다. 따라서 모든 목수들에게 동일한 임금 협약을 적용한다 함은, 비조합원의 임금 인상폭이 조합원보다 높아야만 가능하다.


대구건설노조는 이를 위해 1년 가까이 새벽부터 건설 현장을 누비며 선전과 교육, 토론을 진행했다. 비조합원들에게 “이번에는 모든 건설노동자가 뭉쳐보자”며 설득을 반복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굳게 닫혀 있던 비조합원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400명이던 조합원 규모는 파업 돌입 시점에 550명, 파업 기간에 700명으로 늘더니, 파업이 끝난 뒤에도 줄기차게 늘어나 1000명을 넘어서게 됐다.


 파업 결과 기존 협약보다 일당을 1만3000원 올리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기존 협약을 적용받던 조합원은 1만3000원이 올라가지만, 새로 가입한 조합원은 기존에 차별받던 1만5000원까지 합해 2만8000원 인상이 이뤄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희생과 헌신으로 노조를 지켜왔던 고참 조합원들의 임금 인상폭이 가장 낮았지만, 이 합의는 무려 90% 가까운 찬성으로 가결됐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었던 걸까?


“(비조합원과) 일당만 1만5000원 차이가 나고, 조합원은 투쟁을 통해 각종 권리를 누린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 사이에 격차와 계급이 생겨난다. 조합원들은 어느새 현장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돼버렸다. 이렇게 가다가는 열악한 조건의 비조합원에게 둘러싸여 고립되고 말 것이다. 고립을 탈출하는 길은 뭘까? 조합원을 확대하고 모든 건설노동자에게 똑같은 임금 협약을 적용시키자. 조직화에 모든 강조점을 두었고 고참 조합원들도 잘 이해해 주었다.


파업을 이끈 대구건설노조 지부장의 설명이다. 애초 노조는 일당 2만5000원 인상을 요구했지만, 절반의 성과에 만족할 조합원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대구건설노조 조합원들은 자신보다 열악한 미조직 노동자에게 손을 뻗어 단결을 확대하는 길을 선택했다. 비록 올해 임금 인상폭은 높지 않지만, 영리하게도 이들은 1000명으로 늘어난 조직력으로 내년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챈 것이다.


세간에 ‘귀족노조’라 비난받아온 대기업 노조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아무리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성과라 항변해도, 날로 늘어가는 비정규직에게 둘러싸여 고립은 심화되고 있다. 올해 단체교섭에서 따낸 ‘돈’만 봐도 최저임금 노동자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니 말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송전철탑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DB)


대법원 판결조차 지키지 않는 현대차에 맞서 2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30m 송전탑에 올라 고공 농성을 벌인 지 열흘이 넘었다. 법도 무시하는 거대 재벌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지금이야말로 현대차 정규직노조가 ‘귀족’이라는 오명을 벗을 중요한 기회다. 사복경찰이 공장 안에서 비정규직 지회장을 강제 연행하자 곧바로 항의와 잔업 거부에 나선 것은 훌륭한 출발점이다.


“불법파견·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다시 한번 비정규직 파업에 나설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본의 대체인력 투입을 함께 저지해달라!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을 확대하자!” 고공 농성 철탑 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호소하고 있다. 길게 보면 이 싸움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절실한 문제이다.


이웃한 현대중공업에서 관리직 희망퇴직이 시작됐다.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가 곧이어 현대차와 전 산업으로 확대될 것임을 노동자들도 직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로 옆에서 일하는 비정규직과 어깨를 겯고 정규직 전환을 이뤄내는 것이야말로, 더욱 단결된 힘으로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서는 영리한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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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 | 중원대 교수·경찰행정학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2012년 국내 기업인, 외국 기업인 부패인식 조사’를 발표했다. 조사에 응한 기업인 가운데 우리 사회가 부패했다고 답한 이는 전체의 40.1%에 달했다. 공무원에 대해서도 36%가 부패했다고 답했다.


독일에 본부를 둔 세계적 반부패 시민단체인 국제투명성협회도 한국의 부패가 근절되지 않고 있고, 부패인식도 지수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부패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치유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부패가 척결되지 않는 첫번째 이유로 우리 사회가 혈연, 지연, 학연을 앞세우는 문화적 요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웬만하면 아는 사람끼리 청탁과 뇌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 구조적인 분위기가 문제이다.


대통령후보들에게 반부패정책 제안 (경향신문DB)


두번째로는 일부 공직자의 윤리적인 자질이나 관행에 문제가 있고, 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공무원이 공복의 자세가 아니라 탐욕에 어두워 부정부패에 연루되면, 주인인 국민은 대리인인 공무원을 파면해야 하는데 현 법규에 규정된 신분상의 보장으로 처벌이 만만치가 않다. 선출직 공직자처럼 소환명령제를 만들어야 해결한다.


세 번째로는 우리나라의 고비용 정치구조가 문제이다.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 출마하려면 공천헌금이 기다리고 있다. 지방의원 선거 시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나 지역구 당협위원장의 추천없이는 공천받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부터 돈 다발이 오간다. 그러니 당선되고나면 지역발전이나 풀뿌리민주주의가 어디 보이는가? 자기 돈부터 챙기려 들기 십상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공직자의 부패를 발본색원할 수 있도록 제도적·법률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싱가포르는 1만원만 받아도 공직에서 추방된다고 한다. 또 태형을 가한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취업을 못하도록 한다.우리나라는 공직자 징계도 있고 형법상의 뇌물죄도 있는데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패사범에 대해 강력한 법적용과 실행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공직자 개개인이다. 공무원들이 변하지 않으면 부패척결이나 개혁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다산 정약용은 “천하의 나쁜 일들은 모두 돈을 버리지 못한 데서 온다”고 했다. 공직자가 청렴하지 못하다면 국민들은 그 누구를 믿겠는가? 공직자들의 윤리성과 공복정신을 재정립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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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옥 | 경기대교수·국가보훈학


 

우리나라의 보훈대상자는 6·25 전몰·전상군경 등 15만명에서 점차 확대돼 2012년 10월 말 현재 215만명(유가족 포함)에 이르렀고, 제대군인(의무복무자 포함) 지원 등 업무영역 확대로 재향군인회, 호국보훈단체 등을 포함할 시에는 1000만명을 상회한다. 보훈업무의 범위는 국가보훈대상자를 넘어 제대군인, 재외동포, UN참전국(용사) 등 국외까지 확대되고 있다.


러나 국가보훈처 업무는 정부조직 원리상 부(部)나 원(院)으로 격상돼야 적합함에도 국무총리실 소속의 처(處)에 머물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가보훈 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되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나라의 상징적 업무를 일반 사회복지대상 중 하나로 치부하는 현 정부의 형태로 인해 과거 정권 때보다 국민대통합 기능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UN참전용사 전사자 명비 앞에서 묵념 (경향신문DB)


 그 원인은 국가보훈처장이 국무위원으로서 국무회의에서 발언권, 의결권 및 부서권 행사와 독자적 부령권 발령을 통한 정부 내 소관사무의 독립성을 보유하여, 행정각부와 관련된 정책에 관한 협의·조정권 행사 및 지방자치단체 등과 업무 조정·협조처리가 안되는 한계계에 있다. 그러다 보니 관련된 위임사무 부여 및 지방정부의 장에 대한 지휘감독권 행사에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은 국가보훈처의 위상 격하가 국가유공자에 대한 홀대로 인식해 왔으며, 이러한 이유 등으로 국가보훈처를 ‘부와 원으로의 승격’요구는 보훈단체 및 보훈대상자들이 가장 많이 건의한 사항 중에 하나였다. 국가보훈처가 부나 원으로 격상돼야 부령발령권 등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에 대해 법령상의 영향력 행사가 가능해져 국보훈정책의 실효성 확보가 가능해진다. 


외국의 경우 미국·캐나다·호주는 장관급이며, 대만의 경우는 부총리급으로 조직되는 등 강대국일수록 국가공동체 유지·발전에 필수적인 국가기능을 다하고자 국가에서 끝까지 책임을 지고 물질적 보상과 함께 정신적 예우를 병행하고 있다.


당국과 정치권은 오늘날 냉전시대의 다원화된 사회에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고 국가방향에 정체성과 통합을 주는 동기화는 국가보훈 기능만이 가능하다는 점을 직시하고, 국가보훈처를 국격에 맞게 국가보훈부나 ‘원’으로 격상시켜 보람과 사명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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