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

김철웅 논설실장


필자는 가끔씩 경기·충남 서해안으로 바람을 쐬러 간다.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바로 지명이다. 가령 충남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을 간다. 흥미를 끄는 것은 예외없이 한자 일색인 무슨 읍 무슨 리 다음에 나오는 마을 지명들이다. 기기묘묘한 순우리말 이름들이 넘쳐난다. 뛰밭머리, 큰바탕, 서륙개, 산내골, 그물목, 되네기, 빼미…. 이런 이름들이 언제 어떻게 지어졌으며, 어떤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건 이곳뿐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향토색 짙은 민족문학을 추구한 작가 김정한 선생(1908~1996)은 생전에 우리말 구사에 대한 엄격한 신조로 유명했다. 한 번은 제자 시인 최영철을 이런 말로 꾸짖었다고 한다.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이 어디 있노. 시인이라면 낱낱이 찾아서 붙여줘야지.” 선생이 보기에 ‘이름 모를 새’나 심지어 ‘이름 없는 꽃’이라고 쓰는 것은 게으름 탓이었다. 다 자기 이름이 있건만 명색 문인이 꽃이름 풀이름도 잘 모르고 얼버무려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전남 홍도 (출처:경향DB)


전라남도가 엊그제 이름 없는 무인도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도해에 옹기종기 떠 있는 ‘이름 없는 섬’들이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가스마리도’ ‘무녀도’ ‘넋섬’ ‘살피도’ ‘거멍바위섬’ 등 이름들도 참 곱다. ‘가스마리도’는 섬 꼭대기 옹달샘이 가슴앓이 병에 효험이 있다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내년까지 이름이 아예 없던 무인도 461곳에 작명이 이뤄진다. 작명엔 지역의 사연, 섬의 모습, 주변 특성 등이 고려될 것이라고 한다. 


전남엔 전국 3409개 섬 중 65.1%인 2219개가 있다. 이 중 유인도는 280개뿐이니, 나머지 87%는 무인도이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이름마저 없었던 거다. 그렇다면 태곳적부터 무명도(無名島)로 남아있었던 섬들이 비로소 이름을 갖게 되는 만큼 좋은 이름을 찾아 붙여줘야 한다. 두고두고 이어질 섬 이름에도 정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무인도는 때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천이 된다. 그래서 <로빈슨 크루소> 같은 소설의 무대도 되고, 범인들도 한번쯤 무인도에 표착하는 꿈을 꿔보게 한다. 이런저런 일로 세상이 싫어질 때 그렇다. 또는 자기성찰이 필요할 때도 도움이 될 거다. 오늘 문득, 그 섬으로 떠나고 싶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 1일 국회를 통과한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대중교통법) 개정안이 결국 정부 손에 넘어왔다. 이 법안은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한 뒤 세금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게 주 내용이다. 청와대는 오는 22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 행사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법은 이미 보수·진보 구분없이 언론·학계 모두가 그 문제점을 지적해온 터이다. 택시업계의 어려움을 도외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가 있으면 풀어야 한다. 택시 문제의 핵심은 택시 사업자가 아니라 택시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이 이 법으로 풀리지 않는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연간 1조9000억원의 세금을 업계에 지원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 돈은 대부분 개인택시와 택시 사업자들의 주머니에 들어가게 된다. 택시업계가 그토록 앓는 소리를 해 왔지만 택시회사가 망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택시 노동자들은 어떤가. 그들은 하루 5시간20분으로 돼 있는 법정근로시간은 오간 데 없이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린다. 그렇게 일하고 받는 돈이 고작 한 달 최저생계비에 불과한 100만원 남짓하다. 그들 스스로 ‘막장생활’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 법이 시행돼도 택시 운전사들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이 법을 두고 ‘그들만의 잔치’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택시정류장 가득한 시민들 (출처: 경향DB)



택시 문제는 따지고 보면 지난해 가격이 크게 오른 액화석유가스(LPG)가 발단이 됐다. 택시업계가 “너무 오른 LPG 값 때문에 못살겠다”면서 택시요금 인상을 요구한 게 대중교통수단 논란으로 불똥이 튄 것이다. 사안이 꼬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표 놀음’ 때문이다. 그동안 물가나 LPG 값이 올랐는데도 택시요금을 공공요금이라며 무리하게 억눌러온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 크다. 택시요금을 현실화하고 넘치는 택시 대수를 줄여 문제를 푸는 게 정답이라고 본다. 나라 곳간에 손댈 게 아니라 이용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시장에서 해결하는 게 순리다. 기본요금이 4000원인 모범택시 타는 사람들의 교통비를 서민들에게 주머니를 털어 보태라는 얘기가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인가. 택시 운전사들도 너나없이 “택시가 무슨 대중교통수단이냐. LPG 값이 오르면 택시요금에 반영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만 봐도 답은 나와 있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적잖은 부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데도 여야가 정략적으로 통과시킨 이 법안을 공포할 경우 빚어질 국가적 폐해를 생각해야 한다. 헌법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을 규정한 것도 이 같은 입법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 문제는 차기 정부나 여야 정치권의 눈치를 볼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부당한 법률안에 대한 헌법적 권리 행사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방자치단체장을 포함한 자치단체의 온갖 토착 비리가 무더기로 또 적발됐다. 감사원이 지난해 5~6월 자치단체 60곳을 대상으로 종합감사를 실시한 결과 190건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는 것이다. 비위는 인사에서부터 인허가, 계약과 회계, 공사 등 업무 전반에 걸쳐 만연해 있었다. 일부 자치단체장은 측근을 승진시키기 위해 근무성적을 조작하거나 채용 자격을 바꿨다. 부당한 용도 변경으로 특정 업체에 막대한 개발이익을 안겨주는가 하면, 공유재산을 감정가보다 싸게 팔아 특정인에게 특혜를 제공했다. 계약과 다르게 설계·시공된 공사를 묵인하고 허위 설계변경으로 공사비를 과다 청구해도 눈감아줬다. 자치단체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감사원의 처분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감사원은 대전 중구청장 등 9명을 직권남용,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고 공무원 94명을 징계할 것을 소속 기관에 요구했다.


감사원에서 직원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출처;경향DB)


문제는 이 같은 자치단체의 비위가 감사원 감사에서 처음 적발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자치단체의 인사나 인허가, 공사와 관련한 비리는 고질적인 병폐라 할 수 있다. 검은돈이 오가는 전형적인 부패 행위다. 그동안 수차례 감사원 감사에서 반복적으로 적발됐음에도 근절되기는커녕 줄어들지도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자치단체장이나 자치단체에 대한 상시적 감시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자치제도의 자율성과 독립성이라는 울타리로 보호되고 있는 자치단체는 감사의 사각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체 감사는 ‘지역 대통령’인 자치단체장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하고, 지역 주민의 감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방의회라도 제 기능을 하면 낫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만연한 자치단체의 부패와 비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지방자치를 망치고 지역 주민에게 자치제도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실제 지역 사회를 골병들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자치단체의 비리를 막기 위해서는 감사원이나 국민권익위 등을 중심으로 상시 감시체계가 가동돼야 한다. 비위 적발자는 일벌백계로 엄하게 다스려 부패 유혹을 사전에 차단해야 할 것이다. 지방의회는 물론 지역 주민이나 시민단체의 감시·견제 활동도 더 강화돼야 한다. 비위 관련자는 자치단체장 후보 공천에서 배제돼야 마땅하다. 더 중요한 것은 자치단체장의 각성이다. 자치단체장이 주민 편에 바로 서야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내리고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김한기 | 경실련 경제정책팀 국장


지난 1일 국회는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대중교통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최근 택시업계의 경영난은 심각하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가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연간 1조원 이상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사안에 대해 국회가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합의 없이 서둘러 처리한 점은 심히 우려된다.


우선,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현재 대중교통수단의 수송 분담률은 버스가 31%, 지하철·기차가 23%인 반면 택시는 9%다. 수송 분담률만을 볼 때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또한 관련법에 명시된 ‘대중교통수단’의 정의는 ‘일정한 노선과 운행시간표를 갖추고 다수의 사람을 운송하는 데 이용되는 것’이다. 택시의 경우 하나의 요건도 충족하지 못해 대중교통수단으로 보기 어렵다.


 

택시들이 서울역 인근 염천교 도로변에 줄을 지어 서 있다. (출처: 경향DB)



둘째, 지원 예산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턱대고 관련법만 통과시킨 국회의 행태는 입법권의 남용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대중교통법이 시행되면 택시는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받아 대중교통 환승 할인, 통행료 인하, 공영차고지 지원 등 연간 1조원을 국고에서 지원받게 되며, 여기에 유가 보조금과 세금감면액 등을 합칠 경우 매년 1조9000억원이 택시업계에 지원된다. 그러나 지난 1일 통과된 2013년 예산안에 택시업계 지원과 관련해서 반영된 예산은 감차 보상비 50억원이 전부다. 국회는 택시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관련법의 대중교통수단 정의도 ‘노선을 정하지 아니하고 일정한 사업구역 안에서 여객을 운송하는 데에 이용되는 것’으로 무리하게 고치는 행태까지 보였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이며 특정 이해집단의 이익에 영합하는 행태를 보이는 국회가 과연 국민의 대표기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셋째, 택시업계가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자구노력 내지는 구조조정 없이 일방적인 지원만 할 경우 자칫 이에 대한 부담을 국민이 떠안게 되는 안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 택시업계가 지금의 어려움에 처하게 된 원인은 공급 과잉이라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대중교통 환승체계가 개선되고 대리운전이 급증하면서 택시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데 택시 공급은 오히려 늘어나 공급 과잉이 되었다. 이것이 결국 택시업계의 경영난으로 이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25만5000대인 택시를 20% 내외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택시는 그간 승객들에게 승차거부와 불친절, 과다요금 징수 등 불편을 끼쳐왔기 때문에 택시업계 스스로 서비스 개선 등의 자구노력을 하지 않은 채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게 된다면 택시업계 지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가 더욱 힘들 것이다. 따라서 현재 택시업계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공급 과잉 문제를 해소하는 등 근본적이며 합리적인 방안의 실행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볼 때 국회의 대중교통법 의결은 대다수 국민의 건전한 상식에 부합하지 않음은 물론 이 법안이 시행될 경우 정책 혼선 초래와 국민 부담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은 이송된 대중교통법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헌법기관인 국회의 입법권은 물론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회가 입법부로서 문제해결을 위한 충분한 의견수렴과 합리적인 대안 모색을 도외시한 채 특정 이해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면서 그 부담을 국민들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 대중교통법 거부권 행사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계기로 여론 수렴과 면밀한 검토를 통해 택시업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기를 희망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광훈 | 충북대 교수·독문학


사람을 많이 만나는 편이 아니지만, 연말 연초에는 모임 횟수가 잦았다. 하지만 주제는 어디서나 돈이고 ‘1등급’과 아파트 시세다. 선배 동료와의 만남에서도 이 주제는 빠지지 않고, 일가친척 사이에서는 더 자주 등장한다. 하는 일과 관심사가 다르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얘기 나누기가 더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내가 가진 생각이 꼭 옳은 것도 아니다. 또 반드시 전해야 할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한두 마디 이어지면 서로 딴곳을 쳐다보고, 재차 물으면 고개를 돌리고 만다. 사실을 정확히 알기보다는 대충 듣고 대충 말하다가 시간이 되면 황급히 일어선다. 옳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다른 세상 일인 것 같다. 우리는 왜 만나고, 무엇을 위해 만나는 것인가?


 

서울의 한 화로구이점에서 직장인들이 송년회를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그럼에도 나는 이들로부터 이리저리 도움을 받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한다. 나는 내가 원하면서도 원치 않는 어떤 것과 바로 접해 있고, 이 모순과 역설의 이웃으로 살아간다. 어떤 사람을 ‘괜찮다’고 여기거나 때로 좋아하면서도 실망시키듯이, ‘사랑’의 이름으로 고통스럽게 하면서도 그 고통에 무관심한 채 ‘다 널 위해서’라고 변명한다. 새벽까지 이어진 선배 동료와의 만남에서 나눈 얘기가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그 끝에서 이 말은 한 것 같다. 모든 만남, 모든 관계가 요즘은 왜 이리 슬픈가요? 한 독일인 의사로부터 받은 연락도 그랬다.


‘문 선생, 한국에서 당신이 보내준 연락을 받고 기뻤습니다. 그렇게 빠르게. 많은 흥미로운 것을 담고 있더군요. 대학은 어디쯤 놓여 있나요? 오송 쪽인가요, 청주 아니면 고수동굴(Gosu Cave) 쪽인가요? 당신은 매일 기차로 서울에서 그곳까지 가나요? 막내아들이 오늘 찍어준 사진을 보냅니다. 아내는 지난해 11월 심장수술을 받고 대동맥 판막을 고쳤고, 회복기를 지나 12월에 퇴원했습니다. 함께 연말을 보내려고 두 손자가 와 있어 기뻐하고, 이젠 얼굴빛도 좋아요. 내가 연극가면(하회탈) 목걸이를 자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 문학 질문을 하나 하지요. 게오르크 리히텐베르크를 아시나요? 그는 독일의 가장 중요한 아포리즘 작가인데, 그가 당신에게 새로운 나라라면, 그 작품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몇 년 만에 본 이 두 분의 사진 속 모습은 여러 가지로 애잔했다. 수술 탓인지 부인은 여위었지만, 두 분은 마치 소년 소녀처럼 어깨를 기댄 채 활짝 웃고 계셨다. 그가 써 보낸 <노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술잔은 가장자리가 넘치도록 채울 게 아니라 반쯤 채우는 게 더 좋다/ 소리가 너무 날카로우면 금세 무뎌진다/ 공을 세우고 나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길이다.’


이 분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이 자리에 쓴 적이 있지만(‘독일에서 온 편지’, 2004년 5월4일자), 나는 독일 유학 당시 그와 일주일에 한 번씩 그의 진료실에서 만나 노자와 장자를 얘기했다. 고수동굴도 이 분에게서 처음 듣는다.


내가 사는 이 땅은 왜 이렇게 낯선 곳인가. 곳곳에 아쉬움과 못다함과 맹목과 피로가 있다. 삶의 어떤 것은 고칠 수 있지만, 또 어떤 것은 어찌할 바 없어 보인다. 이 한계지점은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눈에 띈다. ‘깨끗하긴 어렵단다. 깨끗해지려면 매일 청소해야 하고.’ 걸레가 욕조에 놓인 것을 보고 아이가 투덜거리길래 나는 이렇게 말했다. 경험이 감정을 해명하는 데 도움 될 때는 적다.


어쩔 수 없는 슬픔은 운명처럼 껴안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많은 것이 기울고 떠나고 있지만, 이렇게 떠나가는 것들 중에는 소중한 것도 분명 있다. 어떤 만남, 어떤 미소, 사람 사이의 어떤 믿음, 그리고 이 믿음으로 쓰는 선의의 인사 같은 것들. 낳고도 소유하지 않고(生而不有), 위하고도 자랑하지 않으며(爲而不恃), 으뜸이면서도 지배하지 않는 것(長而不宰)을 ‘깊은 덕(玄德)’이라 했는데(<노자>, 10장), 이 독점과 자만과 지배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이 삶의 슬픔을 조금 줄이게 될까? 


mulmuni@chungbuk.ac.kr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병우 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국정조사 필요 없다는 발언에 대해



지난 10일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쌍용차 국정조사가 필요없다고 했다. 쌍용차 문제와 관련해 나름대로 마침표를 찍고자 한 셈일 텐데, 이 부분과 관련해 대선 후 어떤 일들이 발생했는지 짚어보고 그의 주장에 반론을 펴고자 한다.


우선 지난 4일 이한구 원내대표가 쌍용차 공장을 방문해 사장단과 기업노조 집행부를 만나 그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국정조사 해악론’을 청취하고 정담을 나눈 뒤 예정에 없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철탑 농성장을 방문해 조합원들에게 왜 이러고 사냐고 핀잔만 주고 떠났다. 그러나 철탑 위에는 단 한차례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는 게 당시 현장을 지키고 있던 조합원들의 전언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쌍용차 사측과 노조 사이에서 무급휴직자 복직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고, 바로 이어서 이한구 원내대표는 ‘지금 주장되고 있는 국정조사의 목적이 복직에 있는 만큼 이쯤 되면 국정조사는 없던 걸로 해야 한다. 당내에서 국정조사를 주장하던 일부 인사들도 동의할 것’이라는 취지의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쌍용차 송전탑 농성장 방문한 이한구 원내대표 (출처:경향DB)


먼저 이한구 원내대표에게 국회에서 해를 넘긴 채 어디선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국정조사 요구서를 정말 단 한번이라도 들춰봤는지 묻고 싶다. 쌍용차 국정조사가 복직을 위해서라는 게 여당 원내대표의 인식 수준이라니, 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 요구서 중 앞의 한두 장에 실려 있는 국정조사의 목적만 살펴봤어도 그런 발언은 하지 않았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2009년 전쟁 같은 참화가 지나간 뒤, 23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었고, 3000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차라리 이 재앙이 자연재해였으면 이한구 원내대표의 말에 수긍할 수 있겠다. 피해자는 있으되 가해자는 없으니 시시비비를 가릴 일 없이 그저 복직만 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재앙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존재하는 사안이다. 그래서 국정조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 복잡한 이유도 없고, 풀기 어려운 논리도 아닐 텐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원내대표는 이 재앙의 시시비비가 가려지는 걸 왜 그토록 호통까지 쳐가며 피하려 할까? 나름 논리적이고 가끔 입바른 말씀도 추상같이 해대던 분의 처신치고는 좀 그렇다.


다시 국정조사 요구서로 돌아가 보자. 국정조사 요구서에 명기된 조사범위는 열여섯 가지 범주이며, 각 범주마다 몇 항목씩 조사 대상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범주와 항목의 취지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쌍용차 비극이 왜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즉 누구의 의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연히 발생한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이 재앙을 누가 기획하고 누가 도왔는지, 국가는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국가가 이 재앙에 직접 책임이 있는지, 누가 이 재앙을 이용해 돈이나 이권을 챙겼는지 등을 가리는 것이다.


둘째, 피해자는 당시 어떤 상태였고, 현재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국가가 개입된 재앙이라면 지금이라도 긴급 구난 대책을 취해야 한다. 


셋째, 피해자 명예 회복이다. 당시 국가는 노동자를 적으로 간주해 두들겨패고, 테이저 건을 쏘고,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무참히 짓밟고, 이후 빨갱이라며 왕따시키고 재취업도 불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보니 노동자 잘못이 아니라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에 그리된 것이라면 그 명예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명예는 고귀한 분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죄 지은 자들은 응분의 대가도 받고 사과할 일은 사과해야 할 것이다. 넷째, 이 재앙의 발생 원인을 확인하고 앞으로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논의하고 그 대안을 수립하는 일이다. 각종 제도 정비를 비롯해 많은 부분의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이 부분들을 제대로 잡아놔야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급휴직자는 2010년 여름에 복직되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복직이 발표되었으니 늦기는 했지만 환영할 일이다. 그렇다고 국정조사가 필요 없어졌다는 주장은 맥락이 전혀 맞지 않는 뜬금없는 주장이다. 물론 누구라도 자신의 입장을 번복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물며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라면 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가 국민에 대한 헌신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말을 번복하기 바란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명예를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어제 쌍용자동차가 무급휴직자 455명 전원을 3월1일자로 복직시키기로 노사 협의를 통해 결정했다. 쌍용차의 모기업인 인도 마힌드라그룹도 향후 4~5년 내 쌍용차에 9억달러 정도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외신을 통해 밝혔다. 회사와 노조 간의 합의안이 이행되면 무급휴직자는 2009년 8월 2646명에 대한 구조조정 이후 3년7개월 만에 업무에 복귀하게 된다.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쌍용차 사태 해결의 물꼬를 튼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번 노사 합의를 계기로 난마처럼 얽히고 꼬인 쌍용차 문제를 푸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쌍용차 사태는 단순히 개별 사업장의 노사문제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를 대표하는 국가적 사안이 된 지 오래다. 구조조정 이후 23명의 죽음을 불렀고, 해고노동자들의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천막농성과 평택공장 철탑농성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기업노조인 쌍용차노조 조합원 류모씨가 평택공장 생산라인에서 자살을 시도해 중태에 빠졌다. 지난해 9월 국회 청문회에 이어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까지 국정조사를 약속할 정도로 그 심각성이 깊어진 상황이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대한문 옆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얘기하고 있다. (경향신문DB)


그런 만큼 이번 노사 합의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점에서는 다행이지만 그것을 푸는 데는 더욱 전향적 자세와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이번 복직 대상에서 제외된 희망퇴직자 1904명과 정리해고자 159명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구조조정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해고자들을 주축으로 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는 대화조차 단절된 상태다. 회사 측의 복직과 투자 약속 이행도 관건이다. 회사 측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성실한 자세를 보일 때 진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경영정상화를 앞세워 막다른 상황에 내몰린 해고자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점에서는 정부와 정치권도 자유롭지 않다. 쌍용차 사태가 한계점에 이르도록 방치한 책임을 함께 지고 있기 때문이다. 쌍용차 문제의 온전한 해결은 해고노동자의 복직에만 있지 않다. 사태를 유발한 원인을 규명하고 피해 보상, 재발 방지책 마련까지 병행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이번 복직 결정을 국정조사 회피의 빌미로 삼으려는 듯하다. 이철우 원내대변인이 “국조 실시는 기업 이미지 훼손 및 국제 신인도 하락에 따른 판매 감소를 불러 어렵게 성사된 복직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된다”며 사실상 반대 방침을 밝혔다. 거듭 말하지만 무급휴직자 복직과 국정조사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억울하게 고통을 당한 해고노동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쌍용차의 경영정상화를 위해서도 국정조사는 필요하다. 사태의 원인을 진단하고 잘못을 규명해야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쌍용차를 위해 국가가 지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영미 | 대중문화평론가



 

요즘처럼 50대가 관심을 받아본 적이 또 있을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50대에 대한 관심은 그저 ‘은퇴하는 베이비부머’ 정도였는데, 몇 달 사이에 이들은 ‘50대의 역습’의 주인공이 되었다. 10년 전 2번을 찍었던 40대가 이번에 1번으로 선회한 경향을 두고,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보수화되고 앞으로 점점 노령화가 심해질 터이니, 이제 선거로 야당이 집권하기는 틀린 것 아니냐는 비관까지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DB)


그러나 사실 이렇게 치부하기에 지금의 50대는 좀 지나치게 복잡하고 다양하다. 40대 후반부터 50대까지의 사람들은, 전근대인 씨족 부락 농촌공동체와 고속도로는커녕 전기의 혜택조차 받지 못한 사회로부터 근대적 산업사회를 거쳐 최첨단 인터넷 정보통신의 사회까지를 모두 경험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세대이다. 초가집에서부터 초고층 아파트까지 경험하고, 선거가 별 의미가 없었던 종신집권의 정치 지도자의 시대로부터 시민혁명을 거치고 선거를 통한 여야 정권교체의 경험을 고루 하고 있는, 아주 희한한 세대인 것이다.


60대 후반에는 인터넷 안 하고 사는 사람이 많지만 50대만 해도 인터넷 없이 살기는 힘든 사람들이다. 30대와 40대 초까지의 장년층은 적어도 전기 없는 세상, 농촌에서 머슴까지 거느린 씨족 부락의 종갓집에 인사 다녀야 후레자식 소리 듣지 않고 사는 세상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지금 막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후발 국가들은 우리가 밟아온 과정의 몇 단계들은 건너뛰면서 정보통신사회로 접어들었고, 중국은 아직도 직접선거로 총서기를 뽑아보지 못했다. 우리 50대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세대란 말은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여러 단계의 사회를 압축적이면서도 고루 경험했기 때문에, 이들 세대는 그 내부가 매우 복잡다기하다. 한 인간 내면에 여러 사회의 흔적이 좌충우돌하고 있는 것은 물론, 같은 세대라 해도 거주 지역이나 학력, 직업 간의 편차가 심하다. 또 50대 초와 50대 말 사이의 세대 차이 또한 꽤 큰 편이다. 서울에서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을 보며 자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 살 될 때까지 호롱불 아래 살다가 청소년기에 대도시에 와서야 처음 영화란 걸 본 사람도 있다. FM라디오로 엘튼 존과 퀸 음악을 즐겼던 사람부터, 농촌 사랑방에서 머슴 형들과 ‘가련다 떠나련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를 함께 부르다가 최헌의 ‘오동잎’ 정도가 가장 세련된 노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다.


서울시내의 같은 세대라도, 종로와 신촌에서 노는 대학생들의 노래와, 구로공단의 중졸 청년들의 노래가 현격하게 달랐던 시대를 산 사람들이었다. 사회과학 스터디에서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주장하던 소수의 명문대 운동권 대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반유신 데모는커녕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그 영정 앞에서 통곡을 하는 것이 백성의 도리라는 생각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 농촌 청년들도 있는 것이다.


50대의 보수성을 자극했다는 것은 분명 이번 대선에서 야당이 패배한 주요 원인 중 하나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다양한 50대들이 앞으로도 계속 단일하게 보수 일변도의 모습을 보여주리라는 생각은 다소 단순한 예단이다 싶다. 어떤 정책과 실천이 나오느냐에 따라 이들은 매우 다양한 정치적 지형을 드러낼 것이다. 특히 5년 후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대학생이 폭증하던 시대에 가장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좋아했고 가장 진보성을 띠었던 세대, 5년 전 혹시나 하고 1번을 찍었다가 ‘급실망’, 이번 대선 때 우르르 2번에 투표한 세대가, 대거 50대로 진입하게 된다. 게다가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지나치게 다이내믹하여 정신이 없는 나라 아닌가. 그중 가장 복잡다기한 50대들은, 어디로 튈지, 어떻게 분화할지, 예측불가하다 못해 흥미진진하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문재인 후보와 이정희 후보에 대한 시인 김지하의 발언이 화제다. 거의 ‘막말’ 수준이라는 평가다. <나꼼수>의 ‘막말’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보수언론이 김지하의 표현을 여과 없이 내보낸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나에게 김지하의 ‘막말’보다도 흥미로웠던 것은 민청학련 무죄 판결에 대한 인터뷰에서 나왔던 “돈이나 많이 줬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경우에 따라서 이 말은 최근 김지하의 행보를 설명해주는 근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김지하가 ‘돈 때문에’ 박근혜 당선인을 옹호하기로 마음먹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비약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표현수위는 높았지만, 그의 인터뷰에 등장한 여러 문제의식들은 비슷한 연령대의 ‘어른들’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말하자면, 이런 소리들은 시인이라는 권위를 등에 업긴 했지만, 결국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평범한 내용일 뿐이라는 것이 적절한 판단이다.


대선 앞두고 김지하 선생 강연 (경향신문DB)


시인도 그냥 시인이 아니고, 민주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던 김지하가 그 나이 또래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통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만감이 교차하게 만든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질문한다면, 그 대답은 “돈이나 많이 줬으면 좋겠다”는 말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다. 신산했던 과거의 삶을 화폐라는 교환가치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전제가 이 한마디에 들어 있다. 시가 교환되지 않는 것에 대한 송가이며, 그 자체가 교환체계를 벗어남으로써 존립할 수 있다는 시학이 이 지점에서 무너진다. 그는 시인의 자리에서 내려와 버린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마르크스는 단순하게 자본가를 나쁘다고 말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절대화하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필연적으로 해체될 수밖에 없는 모순을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 밝히고자 했다. 당시에 자본가를 ‘놀고먹는 집단’으로 묘사하면서 사회악으로 규정했던 사상가들은 많이 있었다. 요즘 시장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애덤 스미스 같은 이들에게 자본가들은 일하지 않고 부당한 특권을 누리는 대표적인 ‘도둑의 무리’였다.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의 문제는 화폐의 작동에 있었다. 상품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팔지 못하면 이윤을 남길 수 없다. 이렇게 사고파는 행위가 교환 관계를 형성한다. 보통 노동자라고 하면,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력을 파는 존재이다. 이 경우에 노동력이야말로 상품이다. 최근 들어 유행하고 있는 ‘스펙’이라는 말은 노동력의 가치를 높여서 팔아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반영한 용어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렇게 팔 수 있는 노동력의 가치에 따라 능력이 판명나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시인 김지하는 ‘아들들’ 때문에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공부를 시켜야 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그는 ‘아들들’에게 적절한 ‘스펙’을 만들어주지 못한 ‘나쁜 아버지’가 되는 셈이다. 일상생활에 스며든 신자유주의의 논리는 ‘인간 자본’의 확충을 위해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다. 훌륭한 설비를 갖추는 것 못지않게 인재의 창조성을 발양해야 생산력이 높아진다는 ‘경제학적 근거들’이 제시되면서, 자기 자식들의 능력치에 따라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로 나뉘게 된다. 이런 논리가 장삼이사들의 생활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김지하의 ‘평범화’는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과거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고 일갈할 때만 해도 그는 시인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당시에 그는 ‘젊은 벗들’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보여주는 태도는 그것과 한참 거리가 멀다. 이런 김지하의 모습에 비추어 지난 대선 당시 50대 이상 유권자들의 심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참여정부를 지지했다가 돌아선 이들 또한 비슷한 논리를 마음에 품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역사의 굽이에서 도드라졌던 시인마저 ‘평범한 아버지’로 만들어버린 것은 자기계발을 삶의 정언명령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의 위력이다. 87년 체제가 만들어낸 정치구도는 이제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됐다. 생활세계는 보수주의로 장악되어 버렸다. 물론 이 상황이 과거에 연연하는 보수에게도 유리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붕괴해 버린 진보의 유령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냉전이데올로기의 무덤을 파헤치면서 ‘종북논쟁’을 부활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새로운 이념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때 유토피아의 표상이었던 시인이 더 이상 시인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상황이 정확하게 이를 말해준다. 시인은 잠수함의 토끼 같은 존재라고 했다. 산소가 떨어지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이는 토끼 말이다. 저항시인으로서 의미를 가졌던 김지하의 상징성이 끝났다는 것은 진보와 보수를 지탱해왔던 구조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바야흐로 새로운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유인화 논설위원



서울사이버대학에 가면 건물 한쪽 벽을 장식한 세 남녀의 부위별 사진이 눈에 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당대의 우리 예술’을 제목으로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의 미소’, 6세기께 삼국시대의 목조 미륵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등 세 주인공의 눈, 코, 입, 손을 확대한 사진들이 동서양의 공통어인 ‘미소’를 강조하고 있다. 학교 측은 ‘모나리자의 미소’(1503~1506년)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오래된 미륵반가사유상의 넉넉한 미소(6~7세기)야말로 ‘은은함과 신비함’에 있어 견줄 만한 아이콘이 없다고 설명한다.


용산 국립중앙 박물관에 소장된 경주 구황동 3층석탑 출토 '부처와 아미타불' (경향신문DB)


미륵반가사유상은 제목이 상징하듯 로댕의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과 ‘모나리자의 미소’를 아우른 득도의 미소를 담고 있다. 미륵이 부처 열반 56억7000만년 후에 출현할 미래의 부처로 정의되는 만큼 고즈넉한 미소의 깊이를 상상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미소를 머금은 모나리자의 모습도 아직까지 연구가 활발할 정도로 호기심의 대상이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보는 사람의 심리상태에 따라 슬픈 미소가 되기도 하고 기쁜 미소로 보이기도 할 만큼 신비로운 작품이다. 얼굴 표정은 우리 마음을 나타내는 거울이라는 말처럼, 그림 속 모나리자의 입을 가리고 눈을 보면 정색하고 있지만 눈을 가리고 입을 보면 미소짓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심리학자 에드 디너는 저서 <모나리자의 미소>를 통해 모나리자의 얼굴에 담긴 83%의 미소와 17%의 슬픔이 균형을 이뤄 명작으로 완성된 것처럼 일반인도 17%의 부정적인 요소를 포용해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9일 국립중앙박물관이 이탈리아 로마 국립동양예술박물관에서 발굴한 14세기 고려불화 ‘아미타 내영도(阿彌陀 來迎圖)’는 아미타불이 시선을 아래로 낮추고 오른손을 내밀어 죽은 이를 극락세계로 맞이하는 장면이다. ‘엄청난 보물’로 평가받는 그림 속 부처는 극락세계에서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부처답게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일본 130여점, 미국·유럽 20여점, 한국 10여점 등 세계적으로 160여점에 불과한 고려불화는 은근과 끈기의 민족 정서를 상징하는 한국의 ‘역사’이다. 그러나 고려불화뿐이겠는가. 해외 20여개 나라에 반출된 후 ‘미소’와 ‘표정’을 잃어버린 14만여점의 한국문화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시간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전남 해남에서 서울 숭례문에 이르는 삼남대로 천리 길을 혼자서 걸었던 때가 2004년 봄이다. 조선시대의 9대 간선로 중 제7로인 삼남대로는 말 그대로 역사의 길이었다. 


주요 노정을 서울에서부터 살펴보면 동작나루, 남태령, 과천, 인덕원, 청호역(수원), 진위, 성환역, 천안, 차령고개, 공주, 노성, 은진, 여산을 거쳐 삼례에 닿았다. 삼례에서 전주, 남원, 함양, 산청, 진주를 거쳐 통영으로 가는 제6로가 나뉜다. 다시 금구를 지나 태인, 정읍, 갈재, 장성, 나주, 영암 그리고 강진의 성전을 거쳐 해남 이진항이나 관두량에서 제주로 가는 길이었다.


소설가 박태순의 신 국토기행-삼남대로 고갯길에서 길을 묻다, (경향신문DB)


삼남대로는 역사 속의 수많은 유배객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길이다. 기묘사화의 주역, 김정과 동계 정온, 광해군이 이 길을 거쳐 제주로 갔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권세가 우암 송시열은 그 길목의 정읍에서 최후를 맞았고 추사 김정희도 이 길을 따라 제주로 갔다. 다산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가 유배를 가다가 나주의 율정점에서 이별의 눈물을 흘렸던 곳도 이 길이었다.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던 이 길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서울에서 문경새재 넘어 부산에 이르는 영남대로와 삼남대로, 그리고 흥인지문에서 경북 울진군 평해읍에 이르는 길을 문화생태 탐방로로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모 스포츠그룹과 도보답사 카페가 그와 비슷한 길을 ‘신 삼남길’이라는 이름으로 연결하고 있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동지지>에 표시된 삼남대로는 국도로 연결된 부분이 많아서 걷기에 불편하니 10㎞나 15㎞ 떨어진 곳에 ‘신 삼남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더욱 해괴한 것은 그들의 말도 안되는 강변에 지자체까지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담당자에게 물었다. ‘조선시대의 역사 인물들이나 과객들, 또는 벼슬아치나 동학농민군을 비롯한 여행객들이 걸었던 길, 즉 <대동지지>에 나타난 그 길이 삼남대로지, 어찌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삼남대로라 하겠느냐’고.


연암 박지원은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고 말했다. 자동차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역사 속의 길을 무시하고 다른 곳에 ‘신 삼남길’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길을 만드는 데 피 같은 국고가 쓰인다면, 그 길을 피눈물 흘리며 걸어갔던 선인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역사적인 길은 역사를 공부하고 답사한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고증을 받고 만들어야 한다. 역사의 복원은 흉내가 아니라 사실대로 바로잡는 것이다. 따라서 짝퉁 길을 낼 여력이 있으면 <대동지지>에 나타난 ‘삼남대로’를 찾고 연결하여, 많은 사람들이 길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며 걸을 수 있도록 할 일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결국 한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절반은 환호했고 절반은 좌절했으며, 몇몇 노동자는 자살했다. 48%에게 ‘5년’은 너무도 긴 터널이다. 필자 또한 며칠을 헤매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글을 보냈다. “아무리 삶이 곤고하더라도 기댈 언덕이 있는 한 생은 이어갈 만하고, 아무리 길이 어둡고 험하더라도 거기 별이 빛난다면, 길손은 설레는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우리 서로 별이 되고 기댈 언덕이 되자.”라고.


현실에 발을 디디지 않는 꿈은 공허하다. 선거에는 졌지만,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안철수 현상과 권력의 횡포에 분노하는 도가니 현상, 대다수 국민을 생존위기로 몰아넣은 신자유주의 모순은 그대로다. 절반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이고, 절반의 자영업자들이 100만원도 벌지 못했다. 아파트 전세 시가총액 908조원을 포함한 실질적인 가계부채는 2000조원에 달하는데, 집값은 하락하고 전세와 물가는 폭등했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생존위기에 직면해 있고 미래는 불안하다. 정권은 고환율정책 하나만으로도 174조원을 서민에게 빼앗아 부자들에게 줄 정도로 자본과 유착관계를 맺었으며, 부당한 정리해고에 항의하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정의의 보루여야 할 사법부는 가진 자의 편이고 검찰은 썩었는데, 이를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은 재갈이 물렸다. 


 

처절한 현대자동차 철탑농성 (출처 : 경향DB)



기득권층은 이런 불의에 기초한 특혜체제를 누리며 환호작약했고, 대다수 국민은 불안 속에서 분노했다. 치끓는 분노와 깊은 불안! 결국 불안을 잘 이용한 여권은 승리했고, 분노를 잘 조직하지 못한 야권은 패배했다. 분노는 대선을 기점으로 좌절로 바뀌었다. 단지 선거 패배가 아니라 희망이 없는 정치, 내일이 보이지 않는 진보·노동진영의 현실 때문이다. 국가와 자본, 대형교회, 보수언론으로 이루어진 기득권 카르텔은 너무도 공고한데, 진보는 분열하고 노조조직률은 10%가 채 되지 않고 그나마 갈기갈기 찢겼다. 


하지만, 길은 늘 막다른 곳에서 열리고 희망은 절망의 끝에서 피어난다. 인간은 짐승과 달리 감각뉴런, 운동뉴런, 연합뉴런 외에 거울뉴런을 가졌다. 이를 통해 타자를 모방하고 고통에 공감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더 생존하고 더 잘살아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복제하려는 ‘이기적 유전자’의 결합체다. 생물로서 인간은 악과 불의를 지향하지만, 거울뉴런이 있기에 선과 정의를 지향한다.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거울뉴런에 호소하고 이를 조직하여 혼자만 잘살자는 짐승의 논리와 체제에 끊임없이 맞서면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세상이 꿈만은 아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을 물으면 공동체라 답한다. 농촌은 당연하고, 서울에도 골목문화가 남아 있었다. 동네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골목에 모여 밥과 술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술 한잔, 수박 한 쪽을 건넸다. 품앗이와 두레는 다양한 모습으로 도시 사회에, 신자 사이에, 인터넷 동호회에 존재한다. 우리 민족은 한과 비극을 공동체의 연대를 통한 신명과 흥으로 승화하는 문화유전자(meme)가 있다.


파괴는 창조다. 진보는 더 깨질 필요가 있다. 절망의 극단에까지 나아가서 뼛속까지 성찰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너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임을 직시하자. 반신자유주의로 전선을 명확히 하고 노동을 중심에 놓되, 생태, 복지, 사회정의,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결합하자. 지역에서부터, 아래로부터 거울뉴런에 호소하고 대중의 분노와 공동체의 유전자를 조직하자. 그로 얻어진 굳건한 연대를 바탕으로 신바람나게, 대범하게, 굳세게 운동하자. 시간이 문제일 뿐, 끝내 우리가 꿈꾸던 세상에 이르리라.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민주통합당이 어제 국회의원·당무위원 연석회의를 열어 문희상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했다. 18대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수습하고 당의 쇄신과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중책이 문 위원장의 어깨에 놓인 것이다. 한시적이긴 해도 국정 운영의 또 다른 축인 제1 야당의 새 체제 출범을 축하하는 게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정된 계파간 갈등을 비롯한 불협화음을 목도한 처지에서 그런 덕담을 흔쾌하게 건넬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무엇보다 ‘돌고 돌아’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이는 선출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부터 비대위원장 선출은 난파 위기에 직면한 ‘민주호’를 구하려는 총력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친노’를 중심으로 한 주류와 비주류라는 두 계파의 줄다리기였다. 누가 적임이냐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누구는 안돼’라는 식의 비토 게임이 되고 말았다. 줄곧 계파 색채가 옅은 중진들이 후보군으로 거론된 이유다. 막판에 비토 세력이 적은 박병석 의원과 초·재선 그룹이 옹립하려 한 박영선 의원의 대결구도가 구축되는 듯했으나 그뿐이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은 채 경선도 피하려다 보니 중간 지대의 문 의원이 낙점을 받았다. 문 의원이 추대를 받은 직후 “자다가 홍두깨를 맞은 격”이라고 한 말 속에 많은 것이 녹아 있다.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에 문희상 (출처 : 경향DB)


문 의원 체제의 비대위 등장은 현 위기에 대한 민주당의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 문 의원은 10년 전 이맘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부름을 받은 인사다. 대외적 이미지만으로 본다면 민주당이 정확히 10년 전으로 되돌아간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문 위원장 개인의 능력이나 인품을 평하자는 게 아니다. 그는 비서실장 이력에도 불구, ‘친노’ 울타리에서 자유로울 정도로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다. 문제는 그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선 당을 구해낼 적임자냐는 질문에 대해 선뜻 답할 이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의 비대위 체제는 계파간 타협의 산물이라는 풀이 외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4·11 총선에 이은 18대 대선의 충격적인 패배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추스르면 활로가 열릴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착각이다. 민주당의 패인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하나를 고르자면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그런 민주당이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변화와 혁신을 꾀하지 않는다면 살아날 길은 없다. 하물며 먼저 살고보자는 식의 미봉을 택했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민주당은 지금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는 있는 건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명박 대통령이 설(2월10일)을 전후해 특별사면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 “종교계와 경제계, 정치권 등에서 특별사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다”면서 임기 말 특사를 실시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며칠 전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과거 ‘새 임금이 나오면 옥문을 열어준다’고 하지 않느냐”며 특사설에 군불을 때더니 청와대가 기다렸다는 듯 공식화한 셈이다.


임 전 실장 말처럼 감옥 문이 열리면 누가 나올지는 삼척동자도 짐작할 만하다. 권력형 비리로 수감 중인 이 대통령의 측근들이다.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대통령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 김재홍씨 등이 줄줄이 상고를 포기한 채 은전을 기다리고 있다. 형이 확정돼야 특사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1심 재판 중인 대통령 친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도 이달 말쯤 선고가 날 것이라고 한다. 당사자와 검찰이 모두 항소를 포기하면 특사 명단에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이 이들을 위해 ‘봐주기 사면’을 강행한다면 국민적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계란 공격받는 이상득 전 의원 (출처 : 경향DB)


시선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쪽에 쏠릴 수밖에 없다. 박 당선인 측은 청와대와 사면 문제를 두고 명시적으로 의견을 교환한 적은 없다고 했다. 청와대는 임기 말 특사가 차기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라는 궤변으로 동의를 얻으려 할 것이다. 박 당선인은 그러나 특별사면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이유로 침묵해서는 안된다. 그는 지난해 한 토론회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해 무분별하게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선 후보 수락연설에서도 “권력형 비리에 연루된 사람은 더 엄중한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당선인은 법치를 강조해온 소신대로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혀야 한다. 침묵은 암묵적 동의를 넘어 방조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 대통령에게 묻고자 한다. 대통령이 특별사면이라는 초법적 권한을 부여받은 까닭을 아는가. 형님이나 멘토, 친구나 처사촌을 풀어주라는 뜻이 아니다. 힘없고 아프고 억울한 국민들을 보듬고 일으켜 세우라는 뜻에서 준 권한이다. 이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사면권을 행사할 대상은 측근이 아니라 용산참사 구속자들이다. 현 정권의 원죄인 용산참사를 치유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임기를 마치는 것은 또 하나의 죄과를 더하는 일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5년간 국민들을 너무 많이 힘들게 했다. 남은 46일 동안이라도 국민들의 고통을 보태는 일이 없기 바란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에도 ‘어닝 서프라이즈’를 이어가며 국내 기업 최초로 매출 200조원 시대를 열었다. 연간 영업이익도 30조원에 육박해 세계경제 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세계 IT시장의 신화를 쌓은 일본의 소니와 핀란드 노키아도 시대변화에 적응치 못한 채 하루아침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삼성전자는 반도체-휴대전화-디스플레이를 축으로 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앞세워 20년 가까이 세계 IT 기업사를 새로 쓰고 있다. 휴대전화 실적이 좋지 못하면 반도체가 뒤를 받치거나 반도체가 시원치 않을 때는 액정화면(LCD)이 커버해주는 사업구조 덕이다. 지난해에는 스마트폰이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 삼성 내부에서도 ‘삼성전자’와 ‘삼성후자’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삼성전자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다른 한편 삼성전자 실적 잔치는 부러움의 대상을 넘어 한국경제에서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상장사 전체 순익 중 삼성전자 비중이 25%에 육박한다. 주식시장에서도 전체 시가총액의 19%를 차지한다. 삼성전자가 기침하면 종합주가지수는 감기에 걸릴 정도다. 과도한 삼성 의존도는 착시현상을 부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반도체 신화의 그늘에 가려진 부실의 늪을 보지 못해 외환위기를 초래한 게 좋은 사례다. 당시 정부의 고위 경제관료는 “반도체의 숫자놀음에 빠져 있다 우산 속을 들여다보니 온통 썩어 있더라”고 했다. 물론 삼성전자의 발목에 족쇄를 채울 일은 아니다. 결국 삼성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바꿔 중소·중견기업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일자리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놔둔 채 이미 퇴물 판정을 받은 수출 대기업의 ‘낙수효과’ 타령만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대한상의를 찾아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 생태계의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해외 판로개척을 지원하고 연구개발 및 각종 세제·자금 지원을 통해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 지원에 앞서 공정경쟁의 틀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도 다양한 중기 지원책을 내놨지만 지난 5년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대기업의 고질적인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특허·기술 가로채기 때문이다. 체급이 낮은 중소기업더러 한손을 묶고 대기업과 권투시합을 하라고 하면 싸움이 되겠는가. 교묘한 대기업의 기술 가로채기가 있는 한 중소기업은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설 땅이 없다. 망하지 않을 만큼의 수익만 보전해준 채 매년 단가 인하를 압박하는 대기업 관행도 여전하다. 재벌 계열사끼리 특혜를 주고받는 일감 몰아주기도 중소기업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이 같은 하부구조의 병폐와 부조리를 고치지 않으면 중소기업에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봤자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신동호 논설위원


5년 전 경남 김해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 살 봉하마을의 생가를 복원하고 일대를 공원화하는 계획을 추진하자 많은 언론이 비판을 퍼부었다. ‘참 유난스러운 봉하마을 노무현 타운’ ‘봉하마을, 꼭 그렇게 띄워야 하나’ ‘봉하마을에서 큰 잔치 벌일 때 아닌데’ ‘봉하마을에 붓는 국고, 숭례문에 돌려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봉하마을 관광지 사업 중단해야’라는 식으로 정색하고 반대하기도 했다. 세금을 엉뚱한 데 쓰고,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으며,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숱한 우려와 냉소에도 불구하고 김해시의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봉하마을 사업’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거가대교 개통과 같은 특별한 변수가 작용하기도 했지만 매년 100만명 이상이 찾는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노 전 대통령 추모 열기가 지속되던 2010년과 2011년에는 한 해 방문객이 200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봉하마을 측은 추모 거품이 완전히 빠진 뒤인 올해부터 안정적인 연중 예상 방문객 수를 100만명 정도로 잡고 있다. 김해시로서는 방문객 1위의 관광자원을 얻은 셈이다.


경북 포항 덕실마을에 위치한 이명박 대통령 고향집 전경 (출처: 경향DB)


최근 경북 포항시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흥해읍 덕성리 덕실마을을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2015년까지 국비 60억원과 도비·시비 60억원 등 총 사업비 120억원을 들여 1만6500㎡ 부지에 ‘덕실생태문화공원’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이 대통령이 재임 중 사용했던 물품과 관련 자료를 전시할 기념관, 친환경 농촌체험 농장, 주차장 등이 주요 시설물이다. 포항시는 이 대통령 취임 초부터 생가와 마을 일대를 정비하고 ‘덕실관’을 개관하는 등 덕실마을 관광상품화에 공을 들여왔다. 이 대통령 취임 첫해에는 50만명 가까이, 지난해에는 10만여명이 덕실마을을 찾았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고 기념하며 문화·관광자원으로 삼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문제는 콘텐츠다. 그것은 한 개인의 영웅화·우상화가 아니라 그 상징이나 가치·철학의 공유 또는 공감일 터이다. 봉하마을이 탈권위주의와 진보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을 위한 힐링 관광의 명소가 됐다면, 덕실마을은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관광적 가치를 선사할까. 뒷날 덕실마을을 찾는 사람에게 해볼 만한 질문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


“주상은 평소 희로(喜怒)의 감정이 느닷없이 일어나는데, 꾐에 빠지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숙종실록>)


1686년(숙종 12), 임금의 어머니인 명성왕후가 며느리(인현왕후)에게 충고한다. “(조울증에 빠진) 숙종이 요악(妖惡)한 장씨(장희빈)의 유혹에 빠질 경우 큰 일”이라는 걱정이었다. 그 말이 맞았다. 장씨가 왕자를 생산하자 숙종은 중전을 폐출시켰다.(1689년 5월2일)


“상감이 얼마나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지 미처 가마조차 마련할 틈도 없이 걸어야 했고….”(<인현왕후전>)


 

청와대 영빈관과 붙어 있는 곳에 ‘칠궁(七宮·사진)’이 있다. (출처; 경향DB)



왕후를 버선발로 내쫓은 것이다. 그런 뒤 불과 4일 만에 장씨를 새 중전으로 올렸다. 숙종의 변덕은 5년을 버티지 못했다. 1694년 장씨의 오빠인 장희재가 숙빈 최씨(영조의 생모)를 독살하려 했다는 고변이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인현왕후의 복위가 결정되고, 장씨는 다시 희빈으로 강등된다. 장씨가 “폐비(인현왕후)의 절을 받고 물러나겠다”고 버티자, 숙종은 “빨리 끌어내라”며 앙앙불락한다. 


중전 복귀를 명받은 인현왕후도 남편을 쉽게 용서하지 않았다. 숙종이 “잘못했다”는 어찰을 내렸다. 그러나 “죄인이 어찌 어찰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버텼다. 예절을 빙자한 복수였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저주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목으로 희빈 장씨에게 사약을 내린다. 그렇지만 왕후를 ‘먼지와 창호를 구별할 수 없는 더러운 집에서 5년이나 살게 한’(<인현왕후전>) 이가 누구였던가. 바로 숙종이었다. 또 숙종은 그렇게 예뻐했던 장씨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사약을 세 사발이나 들이부었다(<인현왕후전>). 그러면서 ‘이제 후궁은 왕후가 될 수 없다’는 법까지 선포했다(<숙종실록>). 모든 책임을 ‘후궁이 왕후가 된 탓’, 즉 여인에게 돌린 것이다. 청와대 영빈관과 붙어 있는 곳에 ‘칠궁(七宮·사진)’이 있다. 희빈 장씨(경종)와 숙빈 최씨 등 왕을 낳은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주변의 반경 100m 사이에 1·12사태(1968)와 10·26사태(1979)가 났던 ‘변란의 현장’이 있다. “자식이나 보고 죽어 구천의 한을 없애 달라”고 구슬픈 눈물을 흘렸던 장씨의 한이 서렸기 때문일까. 아니 그 또한 ‘나쁜 역사’의 책임을 여인에게 돌리는 ‘나쁜 습성’일 것이다. 장씨는 죽어가면서까지 “내게 무슨 죄가 있냐”며 “전하가 정치를 밝히지 않으니 임금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쏘아붙였다. 그렇다. 칠궁에 만약 한(恨)이 서려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못난 남편을 두었던 한일 터….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난해한 주제를 알기 쉽게 풀어냈으며, 해박한 지식과 자신의 경험담이 적절히 교차돼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연이 매혹적이고 극적이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마이런 폭스 박사의 강연은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폭스 박사의 강연은 완벽하게 연출된 것이었다. 연사는 게임이론을 전공한 박사가 아니고 마이클 폭스라는 연기자였다. 강연 내용도 과학 논문을 얼기설기 끼워 맞춘 엉터리였다. 유머와 개인적 사례도 즉흥적인 것이었다.


왜 속아넘어간 것일까. 무자격자의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에 왜 그토록 많은 청중이 찬사를 보낸 것일까. 심지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마이런 폭스 박사의 논문을 읽어보았다는 청중까지 나왔다. 학술대회 참가자라면 그 분야의 전문가일 텐데 어떻게, 어째서 저런 믿기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 것일까. 영국 출신 작가이자 기업 임원 코치인 앤디 하버마커가 쓴 <폭스 팩터>(곽윤정·이현응 옮김, 진성북스)의 도입부에 나오는 장면이다.


하버마커에 따르면, 청중이 가짜 강연에 넘어간 이유는 폭스 박사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 강력한 몸짓, 청중을 다루는 능력 때문이다. 이른바 ‘폭스 팩터’가 작용한 것이다. 폭스 팩터란 “의사결정과정, 특히 사람과 정보에 우리가 부여하는 중요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심리적 효과”를 말한다. 어떤 사람의 말은 영향력이 상당하지만, 또 어떤 사람의 말은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버마커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동원해 폭스 팩터가 우리의 일상생활, 아니 무의식을 장악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말, 몸짓, 외모, 지식, 지위, 자동차, 분위기(상황) 등이 어우러져 폭스 팩터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말의 위력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의사의 말 한마디. 암이 발견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환자의 암세포는 그 이전보다 일곱 배나 더 빨리 퍼진다는 보고가 있다. 폭스 팩터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부류가 정치인이나 대중 스타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미국의 정치인 헨리 키신저가 그럴듯한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유명해지면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내가 말을 지루하게 하더라도 청중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 연설 듣는 청중 (출처; 경향DB)


<폭스 팩터>에 따르면, 두 눈이 보는 것이 아니다. 지식과 경험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뇌를 지휘하는 것은 무의식이다. 우리는 어떤 정보든 단순화하려는 뇌의 하수인이다. 이미지에 즉각 반응하는 리트머스다. 우리는 편견덩어리다.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 못생긴 사람은 노래도 못 부른다,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다, 진보는 위험하다 등등의 편견, 즉 무의식이 우리의 모든 의사결정과정에 개입해 올바른 판단을 가로막는다.


폭스 팩터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폭스 팩터를 활용해 자신의 꿈을 이룰 수도 있다(<폭스 팩터>는 자기계발서다). 문제는 폭스 팩터의 부정적 영향력이 갈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가 미디어 환경을 증폭시키면서 합리적 판단능력은 더욱 떨어진다. 넓게 보면, 자본주의의 상품미학, 피부 색깔에 따른 인종주의, 보수와 진보로 갈려 있는 현실정치가 다 폭스 팩터와 연관된다. 하버마커는 말한다. “외적인 면만 보거나 편향된 인식을 가지거나 그 사람의 지식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할 때 폭스 팩터는 활발히 활동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 생각하지 않는 사회가 폭스 박사를 양산한다.


누가 폭스 박사인지, 무엇이 폭스 팩터인지 가려내는 일이 관건이다. 말, 몸짓, 외모, 지위, 학벌, 재산 너머를 직시하지 않는 한, 이미지의 뒤쪽을 꿰뚫어보지 않는 한 우리는 소비자-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판단을 정지하고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저 사람 혹시 폭스 박사가 아닐까, 저것이 폭스 팩터가 아닐까라고 묻지 않는다면, 이와 함께 자신의 내면을 수시로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더 나은 나, 더 나은 세상은 계속 유예될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양권모 정치·국제 에디터


민주통합당의 집단적 기억력은 딱 2주짜리다. 혹독한 얘기일 수도 있겠으나, 적확한 지적이다. 결국에는 정당에 대한 평가인 선거에서 패배하고도 2주 정도만 지나고 나면 패배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계파적 이해가 살아나 지배하는 것이 민주당의 습속이 된 때문이다.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패배한 뒤에도 그랬고, 이번 대선 패배 뒤에도 어김없이 그렇다.


실제 민주당이 대선 패배 이후 보여주고 있는 궤적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뜻을 저버린 역사의 죄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무능과 태만, 지리멸렬의 모습 그대로다.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에서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반성과 책임의 조치는 아직껏 어디에서도 행해지지 않고 있다. 패배한 정당이 너무도 태연하게 안정과 화합을 외치며 낡은 체제의 연명에만 골몰하고 있는 꼴이다. 몇 차례 진행된 대선 패배의 책임을 둘러싼 논란은 본질의 언저리도 건드리지 못한 채 당권 등을 둘러싼 계파 싸움에 활용됐을 뿐이다.


 

생각에 잠긴 문희상 비대위원장 (출처: 경향DB)



민주당이 대선 패배 3주 만에야 문희상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하고 비상체제를 가동시켰다. 비상대책위원장 선임을 두고 벌어졌던 볼썽사나운 계파 다툼의 난맥상을 환기하자면 과연 얼마나 제대로 된 수습과 쇄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부터 든다.


하지만 그 수습과 쇄신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대선에서 확인된 새로운 야당에 대한 요구를 수용해내지 못할 경우, 민주당은 존폐의 기로에 봉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머지않은 과거에 참고할 교과서도 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 패배 등으로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에서 등장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혁신적인 인물을 영입해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시대정신인 경제민주화 의제를 끌어안고, 당명과 당색마저도 바꾸며 쇄신의 노력을 가해 도저히 이길 수 없다던 총선에서 승리했다.


여기서 민주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방치하고 있는 대선 패배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평가 작업이다. 지나치게 파헤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집요하고 치열하게 패인을 분석하고 정리해야 한다.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패배한 뒤에도 그 당연한 패배의 원인에 대한 분석과 성찰을 회피한 채 봉합하고 넘어갔기에 이어진 대선에서 패배는 어쩌면 예비된 것이었다. 민주당의 고질적인 민심 난독증은 바로 선거에서 패배하고도 제대로 된 평가와 진단을 하지 못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일 터이다.


대선 패배 원인에 대한 분석과 진단은 더욱이 책임의 면피, 주류 세력에 대한 변호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엄정하고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적당한 수준의 구색맞추기 평가가 되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그래서 어떤 쪽으로의 변화와 쇄신을 해야 하는지를 찾을 길이 없어진다. 단순한 패배의 복습이 될 뿐이다.


다음으로 그 분석과 평가를 바탕으로 대선 패배 책임의 소재를 밝혀야 한다. 1469만표의 지지만 얘기했을 뿐, 그들의 새 시대에 대한 열망을 좌절시킨 책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도 나오지 않고 있다. “역사 앞에 큰 죄를 지었다”는 뻔한 수사만 있었을 뿐, 속죄를 실행한 인사나 세력은 없다. 선거에서 패배를 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이 책임정치의 기본이다. 한데 무한책임을 지고 있는 문재인 전 후보는 ‘트위터 정치’를 통해 끊임없이 존재를 과시하며 여의도 정치로의 조기 복귀를 고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선거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친노 주류 세력은 주도권을 놓지 않고 기득의 사수에 총력이다.


무조건 싸우지 말고 단합하자는 미명을 앞세워 또다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런 책임조치도 없이 넘어간다면 ‘낡은 민주당’의 연명은 될지언정, 새로운 야당으로의 진화는 불가능해진다. 그때 그 사람들과 세력이 다시 민주당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그 어떤 변화와 쇄신을 말한들 진정성을 담보받기 어렵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민주당의 주도 세력과 리더십의 획기적 변화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두 달 후쯤 치러질 전당대회에서 낡은 체제와 리더십이 경쟁을 통해 전면적으로 바뀔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당대회에서 리더십과 당의 혁신방향을 놓고 경쟁과 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틀을 구축해야 한다.


자기 부정에 가까운 당 혁신, 책임과 고통을 수반하는 인적쇄신 없이 기존의 낡은 체제와 문화에 의존해서는 민주당의 미래는 있을 수 없다. 적당한 수준의 면피성 개혁과 주류 세력 내에서 대표선수만 일부 교체하는 인적쇄신에 그친다면 대선에서 이미 확인된 민주당에 대한 국민심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된다. 민주당의 재구성이 대선 패배의 책임 있는 사람과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고 낡은 체제의 외양만 화장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지난 총선과 대선의 결과는 앞으로도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산(大山) 김석진 선생(84)은 고령에도 기백이 생생하고 목소리가 기운찼다. “주역은 삼라만상이 음양(陰陽)으로 돌아가는 이치에서 64괘를 뽑아내 미래를 해석하는 동양사상의 발원지라네. 변화의 학문이요, 때(時)의 학문이지.”


대산이 누구인가 하면 강호 동양학자들이 주저없이 현존 최고로 꼽는 주역 학자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꼭 집어 선견지명할 만큼 주역에 통달했다는 야산(也山) 이달(1889~1958·역사학자 이이화의 아버지다)의 살아있는 유일한 제자며, 케케묵은 주역을 되살려내 오늘에 맞게 대중화한 이다.


어려서는 인기아취(人棄我取·다른 사람이 버리는 것을 거두어 씀)에 길이 있다는 조부의 가르침을 따라 신학문 대신 사서(四書)를 공부했다. ‘이주역’(야산의 별명)이 신묘하다는 소문을 듣고 쌀 세 말을 짊어지고 대둔산 석천암으로 찾아가 문하가 된 게 열 아홉살 때(1946년)다. 그후 13년간을 스승 아래서 주역과 천부경, 시경, 서경을 혹독하게 배웠다.


야산 사후에는 극심한 생활고에도 석과불식(碩果不食·이듬해 씨앗이 될 큰 과실은 아무리 배고파도 먹지 않는다)이라며 세상을 등지고 때를 기다렸다는 그다. 쉰 여덟이 돼서야 야인생활을 청산한 대산은 30년 가까이 주역과 경서(經書)를 강의하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새해 벽두, ‘주역 대가’ 대산을 떠올린 건 계사년 ‘시국’이 어떻게 펼쳐질지 몹시 궁금해서다. 2009년 펴낸 <대산의 천부경>에 ‘여성 대통령’을 예언했다니, 솔깃한 마음도 들었다. 제자 백산(白山) 이찬구(56·동양학 박사)를 앞세워 대전 유성구 반석동 대산 서실을 찾은 까닭이다.


백산은 야산의 또 다른 제자 아산(亞山) 김병호(1918~1984)를 사거 직전에 만난 기연으로 인생이 확 바뀌었단다. 은둔거사로 살던 대산 문하에 들어가 1985년부터 꼬박 9년간 주역을 끼고 살게 된 건 아산의 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수천명 제자 중 첫 호를 백산이 받았다). 국가 대사의 앞날은 짚어도 개인의 운세 따위는 아예 봐주질 않는다는 스승에게 백산이 큰절로 길을 물었다.



(출처:경향DB)



백산 = 초심자를 대신해서 묻습니다. 주역에서 볼 때 지금은 어느 때입니까.


대산 = 양의 시대가 가고 음의 시대가 오는 중일세. 하루로 보면 낮 오시(午時)가 지나 오후 미시(未時)가 오니 주역은 이것을 ‘미래(未來)’ 또는 ‘후천(後天·새로운 세상)’이라 한다네. 양은 동(東) 정신 남자 임금이고, 음은 서(西) 물질 여자 백성이지. 후천은 백성의 시대, 민주(民主)의 시대인 게야. 요즘 여성들이 가렸던 배꼽까지 다 드러내질 않나. 숨어있던 음적(陰的) 요소들이 밝게 드러나는 때란 말이네. 그러니 정치인도 국민을 속이고는 못 살아.


백산 =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게 후천의 기운이 작용한 겁니까.


대산 = 전에 말하지 않았나. 임진년(2012년)은 천풍구(天風구)괘에 구이(九二)효(爻)가 들었네. ‘포유어(包有魚)면 무구(无咎)하리니 불리빈(不利賓)하니라.’ 꾸러미에 고기가 들어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니 손님(賓)에게는 이롭지 않다는 뜻이지.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음이라네. 당선인 개인으로는 산택손(山澤損)괘에 육오(六五)효가 나오는데 ‘혹익지(或益之)면 십붕지(十朋之)’라, 혹 더하면 천하 벗들이 다 찾아온다고 딱 나왔네. 하지만 주역이 운명론은 아니야. 수시변역(隨時變易)이라 했으니 괘가 같아도 시기와 상황, 그리고 보는 이의 직관에서 풀이가 달라지는 법이네.


백산 = 오늘의 대한민국 지도자에게 시대의 천명이 무엇일까요.


대산 = 천명은 지도자에게만 내리는 것은 아니네. 공통의 천명이지. 그러니 힘과 뜻을 모아야 해. 자주 봤잖은가. 지도자가 혼자 하려면 필시 실패하네. 어머니 마음으로 한다고 했으니 모든 것을 포용하고, 미래에 통일의 옥동자를 포태해야 해. 아기를 낳을 때 어머니는 ‘나 죽었어’라고 생각하지. 그게 자기를 철저히 비우는 거야. 머지않아 우리는 민족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맞이하게 돼 있어. 천도(天道)에 요행은 없으니 요번에 이것을 잘 준비하지 못하면 우리는 다음을 오래 기다려야 할 걸세. 주역의 역(易)이 ‘바뀔 역’이면서 ‘쉬울 이’자인 것처럼 따지고 보면 정치란 별 게 아니에요. 자고로 근본은 먹고사는 문제(경제)란 말이지. 하늘은 무친(無親·사사롭게 친함이 없음)이라고 가르치지 않았나. 천명을 맡겼다가도 잘못하면 냉정하게 거두어가니까. 주어진 때를 놓치지 말고 지금 아주 잘해야 해. 집중(執中), 이걸 깊이 새겨서 치우치지 말고 ‘가운데’를 잘 잡아야 성공할 거야.


백산 = 계사년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대산 = 택수곤(澤水困)괘에 들어 아주 어려움(困)이 예상되네. 효로는 ‘래서서(來徐徐)는 곤우금거(困于金車)이니 인(吝)하나 유종(有終)이리라’. 느릿느릿 오는 금수레(돈)를 기다리느라 곤궁하지만 끝에는 좀 풀릴 것 같네. 주역은 아무리 어려운 괘가 나와도 잘 대비하면 허물을 면하는 도리를 담고 있지. 지혜를 발휘하면서 ‘유종’에다 희망을 걸어 볼 수 있겠네. 옛말에 ‘가봐(갑오)야 안다’고 했으니 올해보다 내년 갑오년(2014년)에 좋든 나쁘든, 국운에 뾰족한 수가 나올 걸세.


백산 = 싸이의 말춤이 천지를 진동시키고 있습니다. 거기에도 뜻이 있는 겁니까.


대산 = 있고 말고! 말(馬)은 지지(地支)로 오(午)에 해당하니 때가 오후로 넘어가는 중간의 변화를 말하네. 말은 또 상고(上古)로부터 윷놀이의 그 말판이네. 박달나무를 쪼개니 음양, 윷가락이 네 개니 사상(四象), 앞뒤가 있으니 팔괘, 도개걸윷모는 오행을 의미하니까 주역과 천부경의 우주원리를 다 담고 있어. 그게 정초, 즉 때가 바뀔 때의 놀이 아닌가. 아랫마을 윗마을이 말판에 모여 춤을 추며 윷놀이를 즐겼지. 말춤은 싸이가 만들었지만 어쩌면 새 시대를 맞는 상징적인 춤인 게야. 평화를 사랑해온 우리 민족은 문화로 일어나게 돼 있어. 두고 보라고. 싸이가 말춤으로 지구를 한바퀴 돌고 오면 세상이 슬슬 바뀔 걸세. 우리나라가 주역에서 종만물 시만물(終萬物 始萬物)의 땅 간방(艮方·동북방) 아닌가. 그동안의 긴 역사가 한반도서 매듭짓고, 한반도서 새롭게 시작하는 때가 온 거네. 결국 우리 민족이 세계의 문화와 정신문명을 이끌게 될 걸세.


대산은 대저 ‘간방 시대’의 장엄한 첫걸음을 말하고 있으나, 그걸 알 턱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한겨울 백설 천지 산하는 아직 어제 그대로 아득한 거였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