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기 경북대 교수·사회학


 

주지하다시피 지금 유로존은 그리스로 인해 그야말로 비상사태다. 그런데 유로존 위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와는 다르다며 다소 안이한 시각이다. 과연 그리스 사태가 우리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첫째, 세계화 때문이다. 이제 전 세계는 지구촌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특히, 경제영역은 발군이다. 비록 그리스가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라고 할지라도 이번 위기로 전 세계가 떨고 있는 것은 바로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 세계화 때문이다. 이렇게 세계 각국이 촘촘히 연결된 상황에서는 아무리 존재감이 미미한 나라라 할지라도 까딱 잘못될 경우 그것이 주는 파괴력은 실로 지대하다. 이는 도미노를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더군다나 세계화의 선두주자 노릇을 하고 싶어 안달하고 있는 ‘대한민국’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따라서 그리스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반정부 시위 참석자들이 긴급세금통지서 사본을 태우고 있다. (경향신문DB)



 둘째,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미국의 대형 금융회사의 농간 때문이다. 그리스 사태의 원인으로 흔히 부채문제가 먼저 거론된다. 그러나 그것이 현 사태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현 사태는 바로 그리스가 단일 통화인 유로를 쓰는 유로존에 무리하게 가입하면서 비롯되었다. 1981년 유럽연합(EU) 가입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유로존 진입을 염원하던 그리스는 마침내 2001년 유로존에 입성한다. 그런데 여기에 흑막이 있었다. 가입 요건을 절대로 충족시킬 수 없었던 그리스를 골드만삭스가 분식회계를 통해 그 요건을 갖춘 것으로 둔갑시켜 주었다. 대신 골드만삭스는 그리스 국채 매각과 관련한 수수료와 공항 및 고속도로 사용료 등을 넘겨받았다. 


이때 골드만삭스가 동원한 것이 바로 파생금융상품이다. 자력으로 국력을 키우기보다는 손쉽게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외양만을 키움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 들었던 그리스 위정자들의 구미에 딱 들어맞았던 것이 바로 골드만삭스의 파생금융상품이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그리스를 돕는 척하다가, 다른 한편으론 그리스가 부도를 내는 쪽에 내기를 거는 파생금융상품을 개발해 팔고 사는 파렴치한 행각을 벌였다. 그 파생금융상품이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활개를 치고 있다. 금융감독기관은 첨단금융상품으로 환영해 마지않고 있으며 일반인들은 대박의 호기로 알고 뛰어들고 있다. 참고로 3년 연속 파생금융상품 거래량 1위를 한 곳이 대한민국이다. 이를 놓고 볼 때 어찌 그리스가 남의 나라 일로 보일 수 있을까?


셋째, 부동산 거품 때문이다. 유로존 가입으로 그리스 국민들은 부동산 가격이 올라 처음엔 희희낙락했다. 잘사는 나라와 동일한 통화를 사용함으로써 그와 같은 체급으로 인정받은 그리스는 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었고, 그 돈은 또다시 싼 이자로 일반 대중에게 대출되었다. 그렇게 시중에 풀린 돈은 한탕으로 일확천금을 거머쥘 수 있는 마땅한 투기처로 보이는 부동산에 흘러들게 되었다. 왜냐하면 유로존의 부자 나라 국민들이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의 그리스 같은 나라의 값싼 부동산을 사들여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 블룸버그는 유럽에서 부동산 거품이 심하게 생긴 대표적 국가로 그리스, 스페인, 아일랜드, 프랑스를 꼽았다. 결국 거품은 미국의 금융위기가 불거지자 갑자기 꺼지기 시작했고, 그 여파는 현재의 그리스를 비롯한 유로존의 위기를 잉태했다. 이는 부동산 거품의 대명사라고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대한민국과 직결돼 있다.


이래저래 그리스의 위기는 대한민국과 깊이 연결돼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은 늘 위기가 코앞까지 다가와도 눈치채지 못한 어리석음을 수도 없이 범했다. 임진왜란도 그랬고 일제강점도 그랬고 6·25전쟁도 그랬다. 외환위기나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 때도 닥치고서야 실감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어리석음을 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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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웅재 한양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


 

최근 국내외 유명 인사들의 표절 문제가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필자의 불만은 이에 대한 공론이 표절 의혹을 받은 사람들 개인에 대한 공격과 책임 추궁의 차원에서 진전이 없다는 데 있다. 물론 이들의 명백한 과오에 대해 인간적으로 동정해야 한다거나 직업적 윤리와 기율, 또는 원칙의 확립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왜 이러한 표절의 문제가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되는지, 불명예스러운 혐의를 받거나 이로 인해 현실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는 이들은 왜 이러한 위험천만한 가능성 앞에서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실수를 반복하는지, 이에 대한 좀 더 깊고 넓은 사회적 공론이 부재함에 대한 의구심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제 몇 명의 개인을 희생양으로 만들고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대한 성찰과 차분한 공적 담론이 필요하다. 


경향신문DB

이는 오늘날 우리 대학들의 결과 지향의 평가 및 제도와 관행 등에서 기인한 근원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일례로 대부분의 대학, 특히 수도권에 근접한 유명 대학일수록 신임 교수 채용이나 승진·승급 시 SCI, SSCI, A&HCI 등 영미권 학술기관이 요구하는 국제인용색인에 등재되어 있는 소위 해외 유명 논문(특히 대부분이 영어로 씌어진)을 요구한다. 필자도 이러한 과정을 거친 터라 ‘누워 침 뱉기’식의 독백이 될 수 있겠지만, 대학의 연구 문화 중 가장 큰 문제는 타자의 언어와 시선에 의존해 우리의 문제를 우회해서 풀어가는 데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당면한 현안과 문제에 대해 모국어를 통한 정치한 논구와 통찰 대신, 타자의 관점과 관심을 반영하는 글쓰기 관행을 따른다. 이는 나아가 일종의 자기검열로 연결되고, 대안을 제시하거나 양질의 연구결과를 생산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특히 공학이나 자연과학에 비해 언어의 사용이 연구 주제와 이론, 그리고 방법론 등과 유리되기 어려운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더욱 그렇다. 


또 다른 문제는 논문 수만 중시하고 전문서적, 번역서, 교양서 등의 저술활동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풍토다. 계량화된 실적 위주의 평가, 특히 영어논문에 압도적으로 높은 평가점수를 부여하고, 제한된 시간 내에 할당된 논문 편수를 채워야 하는 제도는 성과 달성을 위한 전투적 논문쓰기를 강요한다. 이는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을 위한 논문’을 양산해 논문 자체의 질은 물론 교육과 학문 자체의 질 하락도 가속화할 뿐이다. 저술활동을 어렵게 하는 문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또 다른 ‘분서갱유’라 할 만하다. 


오늘날 학제 간 융합 및 통섭이 강조되는 학문적 트렌드를 십분 인정하지만, 이를 충분히 구현하기 어려운 학제 간 특수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학과 교수의 능력을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학의 정체성과 존재방식을 부정하는 일이다. 대학과 교수의 평가를 위해선 최소한의 보편적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신문사의 대학 평가를 과도하게 의식해 교육과 연구의 실제성과 유용성, 이를 통한 대학의 사회 공헌이라는 큰 명제를 소홀히 한다면, 대학 스스로 대학의 존재 근거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일들이 지금 우리 대학사회 안에서 ‘글로벌 경쟁력’ 제고라는 유력한 담론의 자장에 휩쓸려 진지한 의심이나 도전 없이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는 대학의 위기이며 한국 사회가 당면한 지적 역량의 위기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에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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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방통대군, 왕수석 등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오르고 구속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유죄 확정판결이 난 것은 아니나 각종 이권에 부당하게 개입해 알선수재 내지 수뢰의 정황이 짙다. 


올해 초에도 친인척·측근 비리가 지면을 장식했고, 이에 대해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사과(?)를 했다.



이명박 정부 권력실세들의 비리 연루 의혹 (경향신문DB)



 조선사에서 가장 비운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왕 중의 한 사람이 정조였다. 유년시절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을 목격하고, 당쟁으로 인한 역모와 암살 기도에도 불구하고 탕평책 등의 시행을 통해 개혁군주라는 고독한 길을 간 인물이 정조였다. 그런데 이러한 정조가 사도세자에 대한 원한을 갚고 모반의 위기상황 속에서 성군(聖君)으로 평가받는 기저에는 철저한 자기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자신의 과오도 자기의 탓이며, 신하의 잘못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반성했다. 위정자는 자기반성에 철저해야 한다. 국민이 위임한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라, 무거운 책임이 뒤따르는 권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한을 권력이라고 착각하고 권력에 기생하는 자들과 나누는 것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어기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반성의 명령은 위정자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요구되는 가치이다.


대통령 측근비리는 정확히 추적하기는 어렵지만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1987년 노태우 정권 때부터 5년마다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법치(法治)가 아니라 인치(人治)로 국정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자기반성이 없는 인치, 관계에 의한 법집행 때문이다. 권한을 권력으로 착각하는 위정자와 그들을 좇는 권력의 불나방들이 법치를 스스로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정조가 당쟁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개혁 군주로 기억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자기반성과 그를 통한 도덕적 자긍심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또 5년간 새로이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을 뽑을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다음 정권의 말기에도 측근비리로 지면이 얼룩지는 일이 없기 위해서는 사람다운 사람이 만든 실질적 법치가 관철돼야 할 것이다.


100여일이 넘은 언론사 파업이 언론장악의 결과이며, 광우병 현지조사단이 조사단이 아니라 미국유람단이라는 ‘국민의 폄훼’가 국정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것일까? 그보다는 잘못된 인치의 결과가 아닐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정 최고책임자의 진정어린 자기반성과 잔여 임기동안 그를 바탕으로 한 성군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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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혁 경남매니페스토실천본부 공동대표


 

19대 국회 구성을 앞두고 지난 4·11 총선에서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투표를 통해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자질,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경남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총선을 앞두고 17개 경남지역구 18대 국회의원에 대한 의정활동을 검증·평가했다. 그 결과 평균공약이행률은 50%에도 미치지 못했고, 각 의원의 대표발의 법안의 제정·개정률도 매우 낮게 나타났다.


18대 국회 의원발의 법률안 가결건수는 대안반영 폐기를 포함하여 40.0%에 불과하다. 반면 18대가 끝남과 동시에 폐기될 운명으로 계류 중인 법률안은 48.5%에 이르고 있다. 사정이 이런 데에는 정책적 전문성을 검증해 능력 있는 대표를 뽑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탓이다. 더 이상 ‘무능국회’를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책선거가 그 답이다.



(경향신문DB)



 이번 19대 총선에서 경남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16개 경남지역구 입후보자 56명으로부터 ①3개 희망 상임위별 입법활동계획 ②16개 쟁점현안에 대한 찬반 표명 ③3대 국정공약 ④10대 핵심지역공약의 의정활동계획을 제출받아 분석·평가했다. 4가지 영역을 모두 제출한 후보는 17명에 불과했다. 23명의 후보는 1가지 이상을 누락시켰으며, 나머지 16명은 아예 그 어떤 의정활동계획도 준비하지 못했다. 이러한 결과는 출마자들이 국정과제와 지역현안에 대한 정책 아젠다마저 갖추지 못한 채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선거과정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같은 19대 국회의원 선거행태는 전국적으로 비슷한 현상이라고 판단된다. 결국 선거공보상의 공약은 선전문구에 불과했고, 정치적 구호로 변질됐다. 의원 당선자 중 상당수가 여전히 과대선전과 미화된 공약 구호로 유권자를 현혹한 죄가 크다.


정치개혁의 첫걸음은 대표선출의 게임규칙부터 바로잡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이를 위해 선거과정 시스템을 개혁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당 공천 일정의 법정화(法定化)다. 후보등록 개시일 이전 일정 기간을 역산(逆算)한 법정기간 직전 마감일까지 반드시 정당공천이 확정돼야 후보등록이 가능하도록 관련법 규정을 고칠 것을 제안한다. 후보등록일 전날까지도 공천싸움 하는 판에 현안분석과 정책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둘째, 공약작성의 내용요건을 더 세밀하게 법정화하여 후보등록요건의 법적 구속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이 선행되면 선거는 자연히 정책 중심의 후보자 간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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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영화감독


 

우연히 과방에서 보게 된 광주항쟁에 관한 불법 유인물의 희미한 사진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수업시간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사복경찰에 의해 이름도 모르는 어떤 학생이 끌려갈 때 누구도 그걸 막거나 항의할 생각조차 못하던 그날의 부끄러움이 시작이었을 수도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도청 및 시내곳곳에서 벌인 시민들의 시위현장 (경향신문DB)



점심시간, 같이 점심을 먹을 누군가도 없는 상태. 혼자 밥을 먹는 게 뭐해서 학교식당 한편에서 열심히 신입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서클을 선전하던 어느 선배의 선한 눈매가 좋아 보여 시작했던 것일 수도 있고, 가본 적도 없지만 안개 가득한 런던의 아침이 이런 걸까라는 심정으로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매캐한 최루가스 사이를 방황하던 어느 날의 서슬 퍼런 결심일 수도 있다. 


 그렇게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던 나 혹은 누군가에겐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던 그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된 어떤 날이 있다. 내 경우 시작은 시시껄렁했다. 여대를 다니던 나에겐 안전하고 지속적인 흡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차이가 무엇이겠는가! 더 이상 화장실이 나의 흡연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해선 안된다는 어떤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이 나에게 있었다. (흡연은 잘못된 습관입니다.) 그리하여 시작된 서클 생활. 그리고 책상 위에 있는, 분명히 나를 노리고 놓아 둔 것임이 분명한 광주항쟁 자료집. 그 자료집을 집으로 가져가기까지의 그 파란만장한 여정. 시작이 시시껄렁한 만큼 난 누구보다 겁이 많았고 언제나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앞에 선 친구들이 다치고 연행당할 때 가장 비겁한 위치에 나는 서 있었다. 


그런 시간들, 이를테면 파란 하늘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는 것이 무척이나 부끄럽던 그 시간이 지나고 영화를 만드는 일을 선택한 이후, 언제나 내 소원은 ‘이제는 비겁하지 않은 선택과 행동을 하는 나였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원의 언저리엔 항상 그때 내 앞에서 세상을 향해 전진하던 멋진 친구들, 선배들의 모습이 기준점이 되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아주 많이 흘렀다. 광주항쟁이 일어난 지 30년이 훌쩍 넘었지만 발포 명령자는 아직도 모든 권력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말도 안되는 억울한 죽음들은 우리 곁에 놓여있다. 고작 스무 살 주제에 세상의 모든 고민을 껴안고 있는 듯이 결연한 결심을 하던 우리보다 지금의 스무 살이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동안, 현실적 조건과 욕망의 기준점이 이미 시대를 넘어 너무도 달라져 있음에도 “투표도 안 하는 20대 어쩌고”하며 어른인 척 욕을 하는 당신이, 어느덧 당신의 투쟁 경력이 권력으로 보상받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당대의 다양함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과거의 영웅담에 둘러싸여 누구한테나 충고부터 하려는 당신의 그 무게 잡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기필코 당신을 이해하려 애써왔다. 나의 세대니까, 내가 도망쳤던 현실을 이끌어온 당신이니까. 



경향신문DB



그러나 이젠 정말 못 참겠다. 나는 요즘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모습을 보며 이제 나의 세대 즉 1980년대 세대에 대한 존경을 버리려고 한다. 그토록 비겁했던 나의, 아직까지 남아있는 부채와 죄의식은 고스란히 당신들이 아니라 세상의 해고된 모든 분들과 20대에게 드리려고 한다. 정확하게 말해보자. 지금의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모습은 소위 엔엘(NL)과 피디(PD)의 사상투쟁이 아니다.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답게 애쓰며 살려는 태도의 문제다. 민주주의의 문제다. 그렇다. 우리가 적어도 간직해야 할 최소한의 것을 당신들은 버렸다. 


과거의 투쟁경력이, 당신의 청춘이 차가운 감옥에서 소모되던 그 역사가, 당신의 희생이, 한낱 중세 교황이 날려주던 면죄부처럼 현재의 모든 것을 덮어주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이라면 당신은 이미 당신의 청춘이 그토록 경멸하던 그 괴물이 된 것이다. 최소한의 가치도 증발된 당신에겐 더 이상 자유와 권리를 말할 자격조차 박탈되었다. 그 치욕스러운 부정과 반민주적인 폭력사태를 목도한 그날 나는 하염없이 존 레넌의 ‘God’라는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존 레넌 스스로가 믿고 신뢰하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비틀스마저도 믿지 않는다는 그의 통렬한 자기고백에 감정이 끊임없이 동요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 역시 현재를 믿기로 결심한다. 왜냐하면 스스로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신뢰는 어느 순간 증명서처럼 발급되어져 유통기한 없이 인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순간의 결기 같은 선택 속에서 시험받고 선언되어지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적어도 우리의 후배세대들을 걱정하는 심장이 있다면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딛고 서있는 공간에 대해 증명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40대라면 지금까지 해온 무엇보다 해야 할 무엇이 더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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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 건보공단 급여상임이사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인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국민의료비의 증가율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크게 상회하는 상태가 매년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명목 GDP는 2002년 721조원에서 2010년 1173조원으로 63%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건강보험 총진료비는 18조8317억원에서 43조6283억원으로 132% 증가했다. 이처럼 진료비가 크게 증가한 데는 만성질환자의 급증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생활습관의 변화로 2010년 기준 만성질환자는 1376만명, 진료비는 15조2000억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36.3%에 이른다.



2008년 주요 만성질환자수와 진료비 (단위:명, 억원) 경향신문DB



우리나라의 만성질환자 관리체계는 너무 미흡하다. 독일,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만성질환 관련 의료비의 증가 추세를 억제하고, 국민들의 건강수준 향상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관리하지 않는 환자는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환자에 비해 합병증 발생위험이 고혈압은 3배, 당뇨병은 2.3배 높다. 사전에 질병을 관리했다면 한 달에 몇 만원이면 될 것을 방치함으로써 중증으로 발전해 수천만원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고, 심지어 다리를 절단하거나 실명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만성질환은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가 중요함에도 현재의 건강보험 급여체계가 사후치료 중심으로 되어있어 만성질환의 관리와 서비스 제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4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 제도는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가까운 동네의원을 정해 꾸준히 건강상담을 받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의사협회는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이 제도를 반대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는 하루 아침에 어느 일방에 의해 나온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 가입자, 정부, 의료공급자인 의협이 수많은 논의와 협의, 수정과 보완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2009년 보건복지부와 의협이 논의를 시작한 이래 3명의 장관을 거치면서 커다란 진통을 극복한 산물이다.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에 대한 불필요한 갈등이나 오해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는 환자와 동네의원일 것이다. 의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원들이 이 제도에 동참하고 있다. 이 제도의 취지와 의미를 바로 인식하고 발전시킨다면 환자와 동네의원 모두에게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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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어제 통합진보당의 서울 대방동 당사 등 10여곳에 압수수색차 들이닥쳤다. 한 시민단체의 고발이 검찰 수사를 촉발한 모양이나 통진당의 자중지란도 명분을 제공한 것 같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혁신비대위가 경쟁 부문 비례대표 당선자 및 후보자의 사퇴 시한으로 정한 날이다. 계파 간 충돌이라는 ‘내우(內憂)’에 검찰 수사라는 ‘외환(外患)’이 겹쳐진 꼴이다. 난마처럼 꼬인 채 절체절명의 위기로 치닫는 통진당 사태가 참으로 걱정스럽다.



통합진보당 서버관리업체 압수수색 (경향신문DB)



배경이야 어떻든 현시점에서 검찰 수사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혁신비대위가 비례대표 사퇴 거부자들에 대한 징계를 검토하는 등 본격적 쇄신에 나서려던 차다. 더디지만 당 차원의 조사와 조치도 진행되고 있다. 검찰이 헌법상 보장된 정당활동을 제약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통진당의 자정 노력을 지켜봤어야 한다는 얘기다. 성급한 개입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더구나 고발한 인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보진영에 색깔론을 덮어씌우곤 하는 보수단체라는 점에서 그 진정성마저 의심받고 있는 터다. 정당활동에 대한 검찰 개입은 최소한에 그치고, 최후 수단이어야 한다.


그렇다 해도 당권파들이 검찰 수사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 역시 자명하다. 그들은 예상한 대로 비례대표를 사퇴하라는 혁신비대위의 권고도 거부했다. 혁신비대위에 맞서 출범한 당원비대위만 해도 ‘당원 대책회의’라고 한발 뺐으나 한 정당의 지붕 아래 두 개의 비대위가 뜨는 웃지 못할 사태를 만들었다. 당 중앙위가 의결한 혁신비대위 활동까지 인정하지 않는 당권파들의 행태로 볼 때 통진당이 스스로 현 사태를 해결할 것이라 기대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당권파들은 그동안 비례대표 부정 경선에 대한 책임이 제기될 때마다 당원의 권익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으나 그들이 당을 부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비당권파는 물론이고 당권파도 ‘헌법에 보장된 정당활동 침해’라며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옳은 얘기지만 한사코 국민들의 눈높이를 외면했던 당권파인지라 정서적 거부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부당한 국가 권력에 맞서기 위한 당사자들의 자구 노력은 존중받아 마땅하나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있어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당권파처럼 기득권은 철저히 지키되 책임은 피하려 든다면 그들을 흔쾌히 받아줄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당권파들이 정녕 당을 살려내려면 그들에게 부여된 책무부터 다하길 바란다. 비례대표 사퇴가 그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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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광주지역 MBC, KBS 노조가 1980년 당시 5·18 왜곡보도에 대해 공식 사죄하는 행사를 금남로에서 가졌다. 이들은 사과문을 통해 “계엄군이 휘두른 대검에 찔린 시민들이 병원으로 후송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사실 보도 한 줄 없었다”며 “우리는 언론이 아니었다”고 사죄했다. 이어 “방송은 계엄군이 써준 대로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묘사했다”면서 “만약 방송사들이 단 1초, 단 한 줄이라도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했다면 군인이 자국민을 향해 총을 쏘는 비극만은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현실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정권에 아부하는 김재철 MBC 사장, 김인규 KBS 사장이 물러나지 않는 한 32년 전과 같은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며 끝까지 투쟁해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방문진 이사회 출석하는 김재철 MBC 사장 (경향신문DB)



왜곡보도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광주MBC과 광주KBS 사옥에 불을 지른 날에 맞춰 열린 행사 소식은 다시금 왜곡보도와 오보의 폐해를 성찰케 한다. 그것은 그저 폐해란 표현 정도로는 부족한 가공성을 갖는다. 사과문이 진실보도의 외면이 광주의 비극을 초래했다고 지적한 대로다. 


오늘날 거개의 왜곡보도와 오보는 방송 종사자들의 알아서 기기와 결합해 나타난다. 30여년 전엔 거의 외압에 의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낙하산 사장과 권력의 결탁·야합 성격이 강해진 것이다. 우리는 지난주 MBC ‘뉴스데스크’에서 그 가공스럽고 극단적인 실제 사례에 맞닥뜨렸다. 지난 17일 권재홍 기존 앵커(보도본부장)를 대신해 임시 앵커를 맡은 정연국 앵커는 “어젯밤 권재홍 앵커가 뉴스데스크 진행을 마치고 퇴근 중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어 당분간 방송 진행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배현진 아나운서는 “권 본부장이 20여분간 노조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고 상보를 전했다. 권 앵커의 부상 소식을 톱뉴스로 다루면서 노조원들이 폭력을 행사했다는 인상을 준 것이다. 그러나 노조가 그날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며 신체 접촉 사실을 전면 부인하자 회사 측은 말을 바꿨다. “권 앵커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두통과 탈진으로 치료 중”이란 것이다. 


이런 보도행태는 광주시민을 폭도로 규정한 옛날 방송의 그림자를 감지하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필요하다면 공공 이슈를 다루는 ‘뉴스데스크’마저 사유화해 국민을 상대로 노조원들을 ‘폭도’ 비슷한 존재로 모는 왜곡보도조차 거리낌없는 이들을 도대체 무엇이라 규정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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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 숭실대 교수·언론홍보학


공영방송사들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MBC노조의 파업은 112일, KBS새노조의 파업은 75일, YTN의 파업은 73일을 기록 중이다. KBS1노조도 5월4일 자정부터 파업에 가세했다. 그동안 방송사들의 파업은 몇 차례 있었지만 공영방송들이 ‘공정방송 복원, 사장 퇴진’이란 같은 목표를 내걸고 장기간의 총파업을 벌이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방송사 측에서는 “노사협상 대상이 아닌 요구를 내세운 불법파업”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번 파업은 정치적인 파업이다. 그런데 방송사가 파업을 벌이는 이유를 되짚어 올라가보면 사장 임명 과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정치권의 욕심 때문이었다. 이 정부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통해 방송을 장악한 것도 행정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었다. 무리한 사장 교체와 이들을 통한 시사 프로그램 폐지나 비판적 언론인들의 해고, 좌천 역시 경영이 아니라 정치적인 권력행사였다. 그러니 정치적인 파업임을 자인하는 노조 측과, 정치적인 파업이라 타협할 수 없다는 사측의 주장이 맞서 있으니 이번 방송 파업은 오래갈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프로그램들의 결방이나 뉴스 파행을 지켜보고 있는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MBC 권재홍 보도본부장의 퇴근 저지 등의 돌발사고도 파업의 피로도가 높아진 데서 발생한 일이다. 이대로 나가면 아무도 바라지 않는 심각한 일들이 발발할 수도 있다. 국제기자연맹(IFJ)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국가적 망신이다. 그러니 정치권에서 나서서 원만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정치적인 파업은 정치적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방송사 희망텐트 투쟁ㅣ 출처:경향DB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은 최시중의 ‘앙시앵 레짐’이 무너진 후 공황상태인 것 같다. KBS의 이사회나 MBC의 방송문화진흥회 그리고 YTN의 공기업 대주주들도 권위를 상실했다. 그러니 이들이 나선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장이 자발적으로 사퇴하고 또 새 인물을 임명한다 해도, 지금의 방송사 사장 임명 체계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공영방송을 공영방송답게 만드는 제도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를 보면, 선거캠프의 특보 등을 사장에 임명하여 방송을 장악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공영방송 사장 임명방식은 폐기해야 한다. 누가 다음 정권을 잡든 방송의 공정성, 공익성, 중립성을 지켜주는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19대 국회 원 구성에 앞서, 여야 수뇌부가 나서서 새로운 공영방송 제도의 구축에 합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영방송 개혁을 위한 현인(賢人)회의’ 같은 것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각계로부터 학식과 덕망 있는 후보를 추천받되,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중립적인 인사로 구성하는 것이다. 2009년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경험을 보면, 여야에서 위원을 추천하면, 피추천인은 추천해준 당을 대변했다. 학자들도 진영논리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당리당략을 떠나 국가의 백년대계를 모색해야 한다. 여는 야쪽에 편향된 인사를 비토하고, 야는 여쪽에 치우친 인사를 비토하는 식으로 하여 양쪽 모두 거부할 수 없는 중립적인 ‘현인’들로 회의체를 구성하는 게 좋다. 그리고 이들로 하여금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하고 바람직한 형태의 공영방송 운영방안을 도출케 하고,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이들 ‘현인회의’가 가동에 들어가는 대로 노조는 파업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하여야 한다.

국격은 G20이나 핵안보정상회의 등의 이벤트를 통해 높아지는 게 아니다. BBC, NHK와 같은 제대로 된 공영방송이 있을 때 국격도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 시청자는, 방송계는 공정하고 품격 있는 공영방송을 가질 때가 되었고 또 가질 자격도 충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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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총선 이후 이 시평에선 진보개혁 세력을 계속 다뤘다. 진보가 그만큼 위기에 처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정치가 진보만으로 이뤄질 순 없다. 이번에는 보수 세력을 주목하고자 한다.

총선에서 내가 새삼 느낀 것은 한국 보수의 힘이다. 새누리당이 이겼던 일차적 원인은 민주통합당의 실책에 있었다. 그러나 정치란 반사이익 이상의 것이다. 총선 국면에선 위기를 헤쳐 나가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리더십이 돋보였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비대위를 마감하고 황우여 대표 체제를 출범시켰다. 일각에선 박 위원장의 독주에 우려를 표하지만, 12월 대선으로 가는 도정에서 박 위원장이 이니셔티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돌아보면 우리사회 총선과 대선에서 보수 세력은 진보개혁 세력에 상대적 우위를 점해 왔다. 보수가 패배한 것은 1997년 대선의 ‘이인제 변수’와 2004년 총선의 ‘탄핵 국면’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 따른 결과였다. 진보개혁 세력이 보수 세력과 일대일로 대결해 승리한 것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경우가 유일하다. 하지만 그것도 박빙의 승리였다.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보수의 정체성 위기를 논하다’ 토론회 ㅣ 출처:경향DB

우리 이념구도를 보면 보수 대 진보의 지지율은 엇비슷하다. 그렇다면 보수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보수의 ‘진화’ 능력을 주목하고 싶다. 진화 능력이란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역량을 말한다.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은 적절한 사례다. 2007년 대선에서 보수 우위의 원동력은 노무현 정부의 낮은 지지율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민주화에 맞서 ‘선진화’를 제시하고, 이에 기반해 보수적 헤게모니를 확장시킨 것 또한 주목해야 한다.

선진화 담론이 일종의 ‘창조’ 전략이었다면, 이번 총선에서 보수가 구사한 것은 ‘모방’ 전략이었다. 복지국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커지자 선진화 담론을 과감히 버리고 야권이 제시하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보수 세력 역시 들고 나와 진보개혁 세력과의 이념적, 정책적 차이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섬세한 유권자들은 무상급식을 반대한 정당이 고교 무상교육을 주장해 당황했을지 몰라도 보수의 변신은 놀라울 뿐이었다. 권력의지에도, 담론 영역에도 담대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오히려 보수였다.

문제는 보수의 전략이 언제나 거기까지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보다 적절한 사례는 없다. ‘선진일류국가’, ‘창조적 실용주의’, ‘중도실용’ 등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담론들은 더없이 화려했지만, 집권을 마무리해 가야 할 현재 시점에서 정부의 성적표는 한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새누리당 지지율이 50%에 육박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엔 ‘박근혜’라는 분명한 대안의 존재가 중요하다. 보수 정치세력에 대한 보수적 시민들의 일관된 지지는 또 다른 요인이다. 보수 정당과 핵심 유권자들은 이익 공동체로서의 확고한 자기인식과 견고한 유대의식을 갖고 있다. 민주화 25년을 지나오면서 이런 자기인식과 유대의식의 경로의존성이 이미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보수의 힘에 담긴 빛과 그늘이다. 담론을 제시하고 시민들을 설득하는 정치적 기민성은 분명 보수의 장점이다. 그러나 보수 세력이 지지 그룹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들을 추진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은 보수의 딜레마다. 일단 선거에서 이겨야 할 절박감이 뻑적지근한 잔칫상을 차리게 하지만,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그 잔치에 초대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국민을 둘로 나눈 ‘두 국민(two nations)’의 대처 정부가 아니라, 둘로 나뉜 국민을 하나로 묶는 ‘한 국민(one nation)’의 디즈레일리 정부가 한국 보수가 가야 할 길이다.

누구는 내게 진보개혁 세력에 대한 걱정부터 하라고 말할지 모른다. 보수에 충고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수가 혁신할수록 그것은 경쟁이라는 정치의 속성을 고려할 때 결국 진보를 강화시킨다. 정치는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간다는 리영희 선생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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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중국 전문가


사마천은 지준이라는 고매한 인품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인생의 바른 길에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고의 가치 기준은 덕행을 수립하는 입덕(立德)이요, 그 다음은 책을 써서 자기주장을 세우는 입언(立言)이며, 그 다음은 공업을 세우는 입공(立功)입니다”라고 했다. 이것이 사마천의 이른바 ‘삼립’이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셋 중에 하나라도 이루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다. 사회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며 나름대로 업적을 쌓게 되면 입신 내지 입공했다 할 것이며, 어느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자기주장으로 일가를 이루었다면 입언했다 할 것이다. 사마천은 덕행을 수립하는 입덕을 최고의 가치기준으로 보면서 자신은 감히 이 경지에 이르렀다 할 수 없고, 그저 입언할 수 있다면 뜻한 바를 이룬 것이라며 자신을 낮추었다. 그러나 그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치른 대가를 생각하노라면 그의 입언은 입덕의 경지를 뛰어넘고도 남는다.

그런데 사마천이 말하는 입신(공)이든, 입언이든 그 결과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기준은 자신과 남을 기만하지 않는 도덕의 수립과 강화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안되면 입공한 자는 권세와 돈으로 세상을 해치고, 입언한 자는 글과 말로 혹세무민하여 사회를 부도덕하고 부정한 쪽으로 이끌게 된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논문표절 실태 조사 결과 ㅣ 출처:경향DB

사마천은 입덕은 언감생심이니 입언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물이 <사기>라는 절대 역사서이다. 하지만 입언도 입공도 입덕으로 가는 과정임을 분명히 했다. 말하자면 입공과 입언은 선택이지만 입덕은 필수라는 것이다. 그래야 입공도 입언도 세상에 유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언의 중요한 과정 내지 그 결과라 할 수 있는 학위논문을 표절로 도배를 하고도 당당한 자들을 보노라면 ‘덕’이 실종된 입신출세가 얼마나 위험한지 절감하게 된다. 입언은 자기주장을 세우는 일이다. 그것을 표절한다는 것은 단순히 남의 것을 훔치는 절도행위의 단계를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과 영혼을 파는 행위다. 이런 사람들은 못할 짓이 없다.

“지식 없는 열정은 무모하며, 열정 없는 지식은 무의미하다. 과장된 지식은 허망하며, 거짓된 지식은 사악하다. 그리고 분별없는 지식은 위험하다.”

지금 우리 지식사회와 지식인들은 총체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병폐가 벌써 골수에까지 사무쳐 도저히 손쓸 수가 없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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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욱 | 충북도립대 교수·전자통신


오는 6월1일자로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별 취업률 통계 조사가 발표될 것이다. 전국 모든 대학이 이 결과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다.

각 대학의 취업률은 대학의 생존과 직결된 정부의 각종 재정지원 사업 평가에 가장 중요한 지표로 활용된다. 그러다보니 대학마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 결과 온갖 편법까지 동원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전체 졸업생의 8% 이상을 교내에 취업시킨 경우도 있고, 일부 교수들은 할당된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졸업생들을 지인 업체 직원으로 등록하는 유령 직원까지 만들고 있다.

 

서울 삼청동에서 열린 '대졸자 취업대책 회의'에 참석한 전국 대학 총장들 ㅣ 출처:경향DB

취업률 제고와 관련된 업무가 대부분 교수들에게 떠넘겨진다. 교수들은 연구업적평가와 강의평가, 산학협력, 연구비 수혜 실적, 봉사 실적, 장학금 모금 등 이중 삼중 사중의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모 대학 조사결과에 따르면 교수들이 스승으로 인정받는 것은 고사하고 학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갑과 을의 관계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믿고 싶지 않고 슬픈 일이지만 이것이 대학의 현실이다.

오늘날 대학은 취업률, 기업 맞춤형 인재양성의 요람이 된 지 오래다. 학생들에게 대학은 더이상 학문의 전당이 아니다. 다만 ‘취업의 전당’에 불과할 뿐이다.

대학까지 나온 제자들을 백수가 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교수들이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뛰는 것은 행복한 의무일 수 있다. 그러나 대학교수들이 뛴다고 취업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까. 어림없는 일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대졸자 취업률을 제고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모든 책임을 대학에 전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부의 태도는 ‘나(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돈을 가지고 있다. 너희(대학)는 대졸자 취업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라. 그래서 취업률이 높은 대학은 살려줄 것이고 낮은 대학은 죽이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대졸자들의 취업률은 교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듭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의무는 없는가? 경제를 살리고 기업에 더 많은 일자리를 독려하는 등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을 대학과 교수들에게 모두 떠넘기고 있다는 게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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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재 | 언론인


통합진보당이 혼돈의 수렁에 빠져 있다. 분란의 소용돌이는 날로 거세지는 듯하다. 대화 통로는 없고 퇴로는 막힌 형국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초리는 곱잖다. 적어도 도덕성에 관한 한 여느 정당들을 압도했던 터다. 그 진지성을 믿었던 순수한 지지자들조차 비판적이다. 더러는 배신감을 느낄 법하다. 한쪽에선 야권 대연합의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12월 대권 향방에 애다는 정파들의 주판알 튀기는 소리도 요란하다. 통합진보당 사태 파장은 12월 정치게임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통합진보당 사태의 본질을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책임의 소재를 따질 생각도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 사태를 바라보는 민심이 싸늘하다는 점이다. 적어도 불거진 문제를 해소하는 과정과 자세는 민심과 동떨어졌다. 유권자 10% 이상의 지지를 받은 정당, 정치 발전의 한 축으로 인정받는 정당의 처신으로서는 적이 실망스럽다.

문제가 있다면 해소하는 게 순리다. 더구나 정권을 목표로 하는 대중정당이라면 투명하게 문제를 푸는 것이 유권자에 대한 도리다. 대화와 합리적 노력을 배제한 극한적인 다툼을 대중은 이해하지 못한다. 내부 문제의 복잡성, 계파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대중과 무슨 상관인가.

 

일러스트 ㅣ 김상민


▲ “진리는 언제나 간명하다.
문제 해결엔 명쾌한 행동거지가 필요하다.
부질없는 말장난, 지루한 이론 다툼에 대중은 관심 없다.
통합진보당 내부 정파들이여,
우선 얼굴을 맞대고 수습책을 모색하라.”

어쩌면 옛 선인들의 가르침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주역>은 오늘도 살아 있는 인류의 스승이다. 더구나 <주역>은 진보정신의 요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진보정당이 곱씹어볼 고전이라고 믿는다. <주역>을 관통하는 세 개의 키워드는 ‘변화, 음양, 순리’다. 특히 그 으뜸은 변화에 있다. 무릇 세상만사는 변한다. 하늘의 기운도, 사람의 운명도, 나라의 성쇠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변한다. 아무리 강고한 성채도 무너지는 날이 있고, 쥐구멍에도 언젠가는 볕 들 날이 있다. 동식물의 세계나 사람이 움직이는 조직에서 일어나는 발전과 도약, 변신과 진화는 이 ‘변화 메커니즘’의 산물인 셈이다. 시대의 모순을 깨고 새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진보정신의 아름다움 아닌가. 오늘 저 높은 기득권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르기 어려운 성벽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진보정신의 핵심 가치 아닌가.

<주역>의 핵심인 팔괘는 전설상의 제왕, 복희씨가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문자가 없던 시절인 5000년 전, 세상을 움직이는 두 개의 변수를 음과 양으로 파악한 통찰력은 참으로 경이적이다. 첨단 과학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그 통찰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빛과 어둠, 암컷과 수컷, 작용과 반작용, 선과 악, 부자와 가난뱅이 등등 세상을 이해하는 간명한 도구로서 음양론은 유용하다.

자연현상과 인간관계에 존재하는 복잡 미묘한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꿰뚫어 본 혜안이 놀랍다. <주역>은 인류 최초의 독창적인 저작물로 꼽을 만하다. 문자가 없던 시절, 체계적인 이론이나 선생님도 없던 시절의 작품이다. 때가 되면 태양이 떠오르고 지며, 어김없이 사계절이 오고 가는 자연의 질서 속에서 하늘의 섭리를 터득해 낸 것이다. 오늘 첨단 디지털 과학의 뿌리가 음양론으로 연결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컴퓨터에서 통용되는 셈법인 2진법이, 오로지 0과 1로 이뤄진 것은 우연한 일치인가.

‘변화’에 ‘음양’이 결합하면 한층 오묘한 세계가 열린다. ‘음’이 극한에 이르면 ‘양’이 되고 ‘양’이 임계점을 넘으면 ‘음’으로 바뀐다는 게 <주역>의 시각이다. 자칫 허무맹랑한 견해로 들릴 법하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그 실례를 얼마든지 확인한다. 오늘 입은 손해가 언제까지 손해이며, 오늘 얻은 얄팍한 이익이 정녕 고스란히 이익으로만 남는가. 때로는 오늘 손해를 보더라도 통 큰 양보를 하면 내일의 큰 이익이 되어 되돌아오는 게 세상의 이치다. <주역>은 ‘잘나갈 때 겸손하고 또 겸손하라’고 곳곳에서 가르친다. 대역전극은 프로야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따금 인생역전의 드라마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곤 한다.

<주역>의 유일한 스승, 자연의 메시지는 ‘순리’였다. 순리는 곧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었다.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는 하늘의 응징을 받고, 인간의 지나친 욕심은 헛된 꿈으로 끝나는 게 세상 이치임을 터득했을 터다. 욕심 많은 사람들 사이의 복잡한 문제의 해법도 ‘무엇이 순리인가’라는 화두 앞에서 고뇌할 때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야만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순리’가 강조된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아니, 너도나도 각박한 산술과 작은 이해관계에 집착하는 오늘이야말로 순리가 필요한 시대다.

염치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활개 치는 정치판에서 순리는 효과적인 무기이자 아름다운 덕목이다. 순리는 무지렁이도 이해하는 법도다. 끼리끼리만 배타적으로 용인하는 주의·주장은 순리가 아니다. 헤게모니 싸움, 패권 다툼은 부질없다. 공격하는 쪽이나 공격당하는 쪽이나 순리 대신 정치공학의 힘을 빌린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당의 깃발을 달고 민중의 바다에 뛰어든 이상 민심의 요구를 묵살할 수는 없다. 민의의 바닷물이 노여워하는 데 항해길이 어찌 무사하겠는가.

진보정당의 책무가 무겁다. 정치지형과 정치문화 발전의 변수로서 국민적 기대가 고조되고 있는 터다. 그러나 진보정당은 아직 그 튼실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조·중·동’의 사냥감이 되어 조롱의 대상으로 떨어진 것은 비극이다. 내부 헤게모니 다툼의 승리가 대수로운 일인가. 찻잔 속 싸움의 승리가 우선일 수 없다. 대중의 바다에서 통 큰 승부를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는 연습이 필요할 때다.

자연의 이치나 사람의 도리는 간명하다고 <주역>은 가르친다. 진리는 언제나 간명하다. 문제 해결엔 명쾌한 행동거지가 필요하다. 부질없는 말장난, 지루한 이론 다툼에 대중은 관심 없다. 통합진보당 내부 정파들이여, 우선 얼굴을 맞대고 수습책을 모색하라. 어떤 것이 됐든, 합의안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통합진보당의 활로는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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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 한국외대 교수·언론정보학


신문은 시민으로 하여금 특정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해당 사안에 관한 관점 형성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사실과 의견을 제공한다. 신문에서 현저하게 다뤄진 공적 사건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공공의 관심사로 전이되는데, 신문의 의제는 일정 기간의 뉴스들을 검토하면 파악할 수 있다. 이에 관한 추가적인 정보는 개별기사의 헤드라인, 기사의 크기, 게재 면과 같은 단서에 의해 제공된다.

구독료 인상과 더불어 독자서비스 강화를 약속한 5월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일까지 1면과 종합면에 게재된 기사의 내용분석을 통해 경향이 설정하고자 노력했던 의제가 무엇인지를 확인했다. 이 기간 동안 경향이 반복하여 빈번하게 다룬 공적 사건들은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센터(‘파이시티’) 건축 인허가 로비 의혹,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미국의 광우병 발생, 민주통합당의 ‘이해찬-박지원 담합’ 논란, 부실 저축은행 추가 영업정지,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 망명, 아이들 삶의 질 향상(‘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프랑스 좌파 올랑드 집권 등이었다.

기획기사와 외국 관련 기사 2건을 제외하면 경향이 구축하고자 했던 핵심의제는 대통령 주변 인사의 비리개입 및 정부의 잘못된 정책집행, 야권의 정치적 갈등 두 가지이다. 첫째, 여권인사의 비리개입 의혹과 부실 저축은행 추가 퇴출은 집권여당 관계자와 시장의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안들이다. 따라서 경향은 먼저 관련 사안에 관한 과거의 보도가 어떠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경향신문 2012년 4월 11일 1면 ㅣ 출처:경향DB

권력을 가진 개인과 관료들의 정책집행에 대한 감시는 언론의 기본적 책무이다. 따라서 경향은 집권여당 내에서의 문제제기를 권력 갈등 차원에서 조명하고 관련자들의 입을 빌려 갈등을 중계하는 데 그치지 않았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지금처럼 문제가 발생한 후 취재원(실명, 익명)의 입을 빌려 사건을 정의하는 취재 관행은 가장 낮은 수준의 저널리즘 실천이다. 그보다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되풀이되어 발견되는 구조적 문제점을 고발하고 근본적 해결책 모색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프로모션하는 기획 혹은 탐사보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의제를 적극 구축해야 한다.

가령, 광우병 이슈에 관한 보도를 예로 들 수 있다. 일부에서는 경향을 포함한 진보언론의 광우병 보도를 과도한 ‘집착’이라며 그 배경을 의심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국민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감시견으로서 경향의 ‘짖음’은 언론이 마땅히 수행해야만 하는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신뢰할 만한 간접취재원(서울대 수의대 용역보고서)을 인용하여 광우병 발생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육골분 수입현황을 진단(1일 7면)하고 정부의 잘못된 정보제공(2일 3면)과 허위사실 유포(9일 2면)를 비판하며 국가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을 비교(3일 9면)한 것은 적절했다. 특히 광우병이라는 과학적 이슈를 데이터와 팩트를 통해 조명한 것은 안전문제를 이념으로 왜곡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태도와 분명히 달랐다.

둘째, 야권의 정치적 갈등 보도와 관련하여 관계자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전하는 데 그치거나 전략적 관점에서 사건을 조명한 것은 적절하지 못한 보도태도였다. 먼저 ‘이해찬-박지원 담합’ 논란 보도의 경우 민주통합당 당선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1일 1, 8면)에 높은 뉴스가치를 부여했다. 하지만 당선자들의 출신지역에 기초하여 그들의 평가적 의견을 전하는데 그쳤다. 일반 유권자의 비판적 정서는 지역의 정치적 이해를 뛰어넘는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했다. 아울러 언론 인터뷰 내용을 간접 인용하면서 ‘이해찬-박지원 담합’에 반대하는 후보들의 연대소식(2일 6면)을 전했는데, 그 과정에서 손학규 전 대표와는 인터뷰도 하지 않은 채 기자가 예상한 그의 발언을 인용부호를 통해 보도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경선은 ‘파이시티’ 건축 인허가 로비의혹과 더불어 경향에서 가장 현저하게 드러난 핵심의제였다. 2일자 1면에서 진상조사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보도를 시작으로 19일까지 98건의 기사를 보도했다. 무엇보다 기획보도를 통해 진보정치의 위기를 진단하고 해결책 모색의 필요성을 촉구한 것은 아주 적절했다. 특히 이념의 포로가 된 채 추상적 구호만을 내세우는 진보정치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지적(17일 최장집 교수 인터뷰)과 민주주의 규범에 적응 못한 채(17일 3면) 정파·관료화된 진보정치(18일)의 현실을 냉정하게 짚은 것은 진보정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해석적 관점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었다.

권력을 가진 개인과 집단의 최우선 관심사는 다름 아닌 여론이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개인의 의견은 사건에 관한 언론보도에 의해 결정된다. 권력을 지닌 이들이 자신에 대해 호의적인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미디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이유이다(2일 13면). 언론의 감시견 역할과 의제설정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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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혁수 | 신안산대학교 교수·공학


민영화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소유권 구조의 개편이다. 즉, 공공자산을 민간의 소유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민영화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도입하고자 하는 KTX 관련 정책을 들여다보면 소유권 구조 개편과는 거리가 멀다. 국가에서 건설하고 관리하는 철도시설은 공기업인 철도공사가 운영권을 부여받아 독점운영하는 구조다. 따라서 경쟁체제가 도입 되더라도 소유권은 여전히 국가가 가지고 있으며 운영권만 제2운송사업자에 대여해주는 것이다. “국가의 자산을 팔아치운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의문이다.

 

지난 1일 부산을 떠난 KTX 열차가 서울역 승강장에 도착하자 승객들이 하차하고 있다. l 출처:경향DB

이러한 운영권은 제2운송사업자에게 영구적으로 주는 것인가. 그러면 또 다른 독점 아닌가. 제2운송사업자는 철도사업법 제5조에 의거, 철도 운영 면허를 부여받아 일정한 기간의 계약 기간 동안(15년) 운영할 권리를 대여하여 운영하게 된다. 운영권은 국가에서 대여해주는 대신, 사용료를 기존 공기업에서 내던 것보다 더 많이 내도록 유도하고 운임 상한제를 통해 운임을 함부로 올리지 못하도록 하며 오히려 인하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 사업자를 모집한다고 한다.

현재 철도요금은 서울~부산 간 주중 5만3300원, 주말 5만7300원이다. 필자만 해도 강연과 세미나 참석으로 이동하게 되는 일이 잦은데 요금 할인이 아쉬운 건 사실이다. 경쟁이 도입되면 지금의 요금보다 10~15% 할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 주변에도 민간 기업에서 운영하면 철도요금이 오르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이들도 많다. 최근 서울메트로9호선이 임의로 요금을 인상하겠다고 나서면서 그 불안은 더욱 심화된 것 같다. 그러나 9호선 사례와 KTX는 차이가 있다. 9호선은 민간자본으로 시설을 건설하였기에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운임을 올리고자 하였던 것이고 운임은 신고제로 운영되었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KTX 정책은 운임이 상한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민간 기업이 요금에 장난을 칠 수가 없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우물 안 개구리로 머물러 있던 산업이, 공정한 경쟁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세계 시장에서도 견줄 만큼의 경쟁력을 확보한 사례도 있다. 따라서 그동안 이뤄졌던 타 분야의 민영화 정책에 대한 불만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있다고 해서 KTX 경쟁체제 도입에 대한 논의조차 금기시되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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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석|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통합진보당 내분 사태의 불똥이 이곳 남도땅 강진까지 튀었습니다. 지난 4·11 총선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을 관리했던 간부들이 부정선거 책임자로 몰리고 있습니다. 강진군 통합진보당 당원은 몸을 쓰는 노동자, 농민이 많습니다. 이분들이 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당 사무실이기에 같은 컴퓨터로 투표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농민들은 집에 컴퓨터가 있어도 나름 복잡한 인터넷 투표를 직접 하기가 약간 ‘거시기’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같이 나와 투표하셨습니다. 당 실무를 하는 일꾼들은 투표를 할 때마다 곤혹스럽습니다. 단독 후보인 경우에도 기어이 찬반을 물어야 하는 당 규정상 50% 투표 참여는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 총선 후보를 뽑는데도 형님, 동생 부르며 “막걸리 살 테니 나오라”고 소리치면서 투표했습니다.

같은 컴퓨터에서 무더기 투표 행위가 진행됐다는 것은 적어도 이곳 강진 상황에서는 실제로 큰 문제가 아닙니다.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저 같은 사람을 부정 불감증 환자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강진군 농민회는 간부가 어느 정당이든 당원이 되거나 공직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선 일정한 승인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농민회 간부인 저는 후원당원이었습니다. 당비는 내지만 당원은 아닌, 당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비례대표 후보 선거를 할 권한이 없습니다.

농민회 간부 일을 놓고 당에 입당하기 위해 원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글쎄 제가 당원이라고 뜨는 겁니다. 조금 이상했지만 비례대표 투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진보당 혁신비대위 회의 ㅣ 출처:경향DB

합당 전 후원당원은 합당 후 어떤 신분인지 누구 하나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당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든지, 아니면 내용을 제가 몰랐든지 둘 중에 하나겠지요. 투표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쳤을 수 있지만 투표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각자 상황은 조금 다르겠지만, 저 같은 사람들이 한통속으로 ‘유령 당원’이 되었습니다. 당원이 아닌 사람이 부정하게 투표했고, 실제 선거인명부상 투표권자보다 투표한 사람 수가 많은 일이 벌어졌다고 발표되었습니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진보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역사상 남한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제3당이 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이 많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진보정당을 조명한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쓰나미는 순식간에 왔고, 괴로운 긴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일이 벌어진 후 제일 서글픈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함부로 정치적 감투를 씌운다는 겁니다. 출세주의자, 패권주의자, 조직이기주의자 등 어려운 말이 판을 칩니다.

“오야, 자네는 무슨 파인가”라 묻는 상용직 노동자 당원의 질문을 받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는 쪽파를 심었습니다만…”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난감했습니다.

농촌에선 조생종 양파값이 폭락하고 대파를 갈아엎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세상은 온통 ‘파’잔치뿐입니다. 인근 지역 친구는 무슨 파일까? 의심하면서 서로들 말을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친한 선후배들이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해도 가슴이 뜨끔뜨끔하고 의견 하나 내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단절을 믿음과 의리로 회복하는 일이 비대위를 만들어 당을 혁신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하나로 연결해야 할 정치가 사람이 사람을 치는 정치가 되었습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계기로 서울에서 한참 먼 강진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강진에 ‘늦봄 문익환학교’가 있습니다. 대안학교입니다. 이 학교가 갑자기 불순세력이 불순분자를 양성하는 주사파 학교로 지명되었습니다. 통일기행, 강정마을 평화기행이 색깔로 덧칠되고 연좌제를 적용할 기세로 부모의 과거를 공개하고 선생님을 친북으로 몰아갑니다.

이 나라를 뒤흔들 만큼 힘있는 일간지가 작은 대안학교까지 들여다보자고 나선 이유는 이 나라 전체가 썩었다고 경고하고 싶었거나 이 학교의 명예이사인 민주통합당 문성근 최고위원을 겨냥해 사상검증을 하겠다는 것,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이제 종점이 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이 마지막 결론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부정선거에서 조직이기주의로, 주사파에서 야권연대로, 결국 정권 재창출을 위한 보수세력의 결집으로 마무리되는 한 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가 마지막 회를 앞두고 시청률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이 어떻게 될 것인지 시골 촌놈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건 압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누구는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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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중국학


정국이 알게 모르게 대선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미 15일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선출하고 질서 있게 새로운 국면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야권은 여전히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다. 민주통합당도 6월 초 전당대회를 거치며 대선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서겠지만 야권 전체로는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출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라는 의제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최근 민주통합당 내에서 안철수와의 ‘공동정부론’으로 상황을 돌파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했다.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현상을 뒷받침하고 있는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야권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아이디어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통합진보당이 현재의 구렁텅이에서 빨리 빠져나오지 못하면 ‘안철수 변수’는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층 연합이 야권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4·11 총선의 실패가 뼈아프지만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낮은 것은 아니다. 총선 득표수에서 여야는 팽팽한 균형을 유지했고, 여권 내에서는 새로운 후보가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만만치 않은 고비로 남아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로 진보정치세력의 이미지가 악화되었지만 경제사회 영역이나 남북관계 등에서 진보적 방향으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유권자가 여전히 다수이다. 문제는 야권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수권세력으로서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있다.

 

안철수 대선출마에 대한 야권 인사들의 입장 ㅣ 출처:경향DB

이번 총선에서의 실패도 야권이 국민들에게 수권세력으로 신뢰를 받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 문제는 2008년 이후 계속 존재했던 것이다. 반MB정서는 강화되어갔지만 야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시선은 항상 정치세력보다는 대선에서 승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은 인물에게 쏠리게 되었고 이는 다시 야당들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인물에 대한 관심은 일종의 모르핀과 같은 것으로 근본적인 처방과 결합되지 않고서는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야권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이 매우 불안정하게 나타나는 것이 이러한 한계를 잘 보여주었다. 현재 근본적인 처방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정치세력의 혁신이고 이는 정당혁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이 문제로 지적되는 리더십을 강화하고 낮아진 대선승리의 가능성을 다시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다. 현재 시급한 혁신 과제는 세 가지이다.

첫째, 말을 바로 세우는 것(立言)이다. 현재 야권은 원칙을 견지한다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편의적으로 말을 선택하고 있다. 총선 때 한·미 FTA 문제를 둘러싼 혼란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일구이언적 행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따라서 자기혁신은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자기원칙을 세우고 이에 대해 국민들의 판단을 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둘째, 인적 쇄신이다. 2007년과 2008년의 양대선거에서 실패한 세력들이 나서 새시대를 열겠다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총선에서 야권의 인적 쇄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총선 이후 정비과정에서는 더 큰 실망감을 주고 있다. 새 지도부는 당내는 물론이고 당 밖에서 새로운 세력을 발굴해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력은 일단 백의종군 자세로 대선에 임해야 한다.

셋째, 핵심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임기 5년 동안 국회에서 압도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무분별하게 나열하는 것은 국민들의 불신만을 초래할 것이다. 집권 5년 동안 역점을 둘 핵심과제를 명확하게 제기하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국민들이 선거에서 보여주는 선택은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냉정하다. 주권재민의 원칙이 외면당하기 일쑤인 정치현실에서 사실상 유일한 주권행사 기회를 정말 신중하게 하는 것이다. 요행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하고 행동으로 신뢰를 얻어야 새로운 변화의 힘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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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범 | 작가·출판인


새누리당 대표 경선 방송토론을 지켜보며 참 씁쓸했다. 대학을 나왔고 정치에 제법 관심이 있는 나로서도 실체를 잘 모르는 ‘오픈 프라이머리’라는 낱말이 방송 내내 주제어였다. 대통령 후보 경선이 다가오면 더 자주 등장할 말 같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 즈음이면 유권자의 1%도 이해하지 못할 ‘매니페스토’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오리라.

물론 우리 것을 지켜야 할 것 같은 보수진영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주주의를 중시한다는 야당 인사들이나 시민단체, 시민의 심부름꾼인 행정관계자들 사이에서 뻔질나게 쓰이는 ‘거버넌스’라는 말 앞에서도 기가 죽기는 마찬가지다. 거의 은어 수준이다.

국민의 머슴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왜 국민이 알아듣기 힘든 말과 글을 사용하는 걸까? 늘 의식적으로 머슴 자세를 지키려는 긴장감이 없고, 그 긴장감을 불어넣어줄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빨리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서울 명동 거리에 즐비한 영어 간판 아래로 외국인이 지나가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한글은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경탄해 마지않는 과학유산이자 한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문화유산이다. 한류의 핵심이다. 신속한 경제 성장에 한글이 생산력의 기초였고 앞으로도 지식경제 발전의 그릇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이유보다도 한글이 민주적 의사소통의 토대로서 민주주의 발전에 크나큰 공헌을 하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한글의 소중함을 단순히 유산의 차원에 묶어두어서는 안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한글의 창제정신은 국민이 소통하는 데에 겪는 어려움을 풀겠다는 애민정신이었다. 국민과의 ‘컨센서스’를 강조하는 정치인들의 말버릇 때문에라도 하루빨리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

최근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국민운동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공무원노총 등의 노동계와 흥사단, 한국작가회의, 한글학회, 한글문화연대 등을 중심으로 폭넓게 벌어지고 있다. 올 4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국민여론에 따르자면 84%가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며칠 전 소설가 이외수씨가 한글날을 공휴일로 만들자고 트위터에 올린 글은 삽시간에 3000회 이상 재전송되었다. 발목을 잡고 있는 건 경제 5단체뿐이다.

문화부 조사에서 20대의 64%가 한글날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결과가 나온 건 당연하다. 한글날은 22년 전인 1990년 노태우 정권이 일 더하기 운동을 벌이면서 노는 날이 많다는 이유로 공휴일에서 빠졌다. 경제단체의 반대는 이 논리의 연장선에 서 있다. 그렇다면 2004년부터 도입한 주5일제(40시간) 이후 한국경제는 곤두박질쳤어야 옳지만, 그런 분석은 없다.

한국은 연중 근로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길다. 평균보다 400시간이나 많은 2200시간을 일하니, 일 년이 열두 달이 아니라 열네 달이다. 네덜란드는 한국의 절반가량인 1300시간을 일한다. 물론 일하는 날 하루가 줄면 그만큼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이를 메꾸려면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이 정도 일하고 있으면 경제계도 양보할 때가 된 건 아닌가?

아이들이 잊어먹었다가는 낭패보는 날들이 있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가 그렇다. 제과업체의 상혼을 비판하는 말도 많지만, 반드시 나쁜 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기념일에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사람들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남들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기념일이란 그 사건이나 사람과 나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치다.

한글날을 공휴일로 되살려 민주적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되짚는 장치로 만들어야 한다. 경제계에도 한글날을 브라질 삼바축제에 버금가는 전 세계의 축제로 만들어 국격을 높이는 일에 앞장서는 게 기업에 훨씬 유리하다는 발상의 전환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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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최근 인터넷 뉴스에 ‘소녀시대 윤아 깜짝 등장에 야단법석’이란 제목이 떴다. 전 세계에 K팝 신드롬을 전파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방송국에 나타나자 그를 보려고 다른 연예인들까지 야단법석을 떨었다는 내용이다. 이번 주 정치뉴스에도 ‘야단법석’이 자주 등장했다. 진보의 본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통합진보당 사건 때문에 정치권이 야단법석의 아수라장이 됐다는 지적이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야외에 자리를 마련해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불교용어이다. 법당이 좁아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경우 넓은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듣게 되는데, 이때 많은 사람이 모여 부산하고 시끄러워진 야외법회를 비유한 말이 ‘야단법석’이다. 부처 말씀을 들으려고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야단법석은 <왕오천축국전>에 나오는 인도 영취산에서의 법화경 설법에 300만명이 모였을 때다. ‘야단법석’은 원래 불교용어이지만 요즘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 됐다.

 

연등으로 뒤덮인 청계천 ㅣ 출처:경향DB

최근 승려들의 도박과 음주 동영상 파문이 폭로전으로 확산되면서 조계종 내부가 어수선하다.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엊그제 조계종 호법부장 서리인 정념 스님이 “스님들의 화투는 놀이문화”이고 “판돈은 수억원이 아니고 수백만원”이며 “스님들이 가진 돈은 각각 30만~50만원”이라고 전한 라디오 인터뷰 내용은 도박 사건으로 실추된 조계종의 위상에 더 큰 상처를 냈다.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 본부장인 도법 스님은 “종단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죽을 힘을 다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성호 스님이) 폭로할 것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지금 당장 터트리면 되는데 마치 거래라도 하려는 것처럼 행동한다”면서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잘 치른 후 야단법석 등 공론을 통해 사건이 처리돼야 한다”고 했다.

야단법석이 주는 종교적 위로가 절실한 시기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야단법석의 연등회(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가 20일까지 서울 전역에서 펼쳐진다. 19일 밤에는 흥인지문부터 종각까지 서울 종로 일대의 가로등이 모두 꺼진 상태에서 연등회가 이어진다. 화려한 수만개의 연등 불빛이 맑은 향기를 전할 때, 조계종단의 아픔도 깊고 큰 성찰과 참회의 틀 속에서 진정한 야단법석의 마중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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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보수의 반대편에서 통진당의 비극을 즐기는 무리도 있다. 통진당과 선명성 경쟁을 벌이며 나 혹은 우리만이 진보라고 말해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른 진보의 파멸을 보며 자신들의 진품성과 유일무이성이 입증된 양 희열을 느끼는 새디스트적 증상을 보인다. 그들만의 진보는 언제나 근본, 혹은 원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들은 순수성과 선명성이 주는 아우라를 붙잡으려다 결국 파괴적 근본주의자들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진보는 처음부터 근본과 원본을 부정하는 과정이다.

남의 비극에서 파멸의 향연에 도취한 두 부류의 구경꾼과 달리 이해 불가능한 당권파의 파괴적 폭력을 이해해 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해석은 크게 세 가지, ① 생계형 진보의 패권적 정파 갈등 ② 대항 전체주의 ③ 진보 테러리즘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①에 따르면 당직이라는 직업을 잃을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직업을 찾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파벌을 등에 업고 발악에 가까운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다. ②의 관점에서 당권파는 군사독재라는 전체주의에 맞서다 스스로 전체주의에 물든 것이다. ③에 따르면 소통과 담론을 통해 자신의 뜻과 의지를 이해시킬 능력을 상실한 당권파에게 물리적 폭력은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 반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킬 유일한 수단이다.

 

고개숙인 통합진보당 당권파 ㅣ 출처:경향DB

이런 표준적 해석에는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지만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폭력이 순전히 당권파만의 것이며 우리 모두는 폭력과 무관하다는 환상을 준다. 하지만 현실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한국은 국가폭력, 시장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조직폭력 등이 넘쳐나는 사회다. 당권파는 이처럼 숨겨진 과잉폭력을 드라마처럼 실재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당권파의 폭력은 자살을 가장한 극한 생존욕구의 표현인 면도칼 자해 행위와 유사하다. 면도칼 자해는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현실에서 사라질 위험이 있는 존재감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가지려는 생존행위다. 자기파괴를 통해서만 자기존재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불안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런저런 면도칼로 자기를 해친다. 자해자의 몸을 타고 흐르는 피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적인 너무나 사실적인 실재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살이라는 허구가 숨어 있다. 가상으로서 자살은 이처럼 희망 없는 사람의 유일한 출구다.

당권파 역시 자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누려온 권력을 사실로서 확인하려는 극한의 욕망을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가짜를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를 가짜라고 외치고 있다. 면도칼 가해자처럼 당권파들도 가장 사실적인 폭력으로 존재감 상실이라는 진짜 현실과 마주치는 참담한 경험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자신들의 뜻과 이념,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길과 방법이 오래전에 가짜가 되었다는 사실, 바로 이 진짜 사실을 감내할 수 없게 된 당권파들이 진짜를 가짜로 둔갑시키기 위해 경선을 부정하고, 경선부정에 대한 진상조사를 부정하고, 심지어 처방전까지 부정하는 물리적 폭력을 저지른 것이다. 이처럼 가상의 늪에 빠진 당권파의 폭력에서 우리는 그들의 도착적 권력 집착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과잉폭력의 극사실적 잉여 유출을 보아야 한다.

당권파만을 감금하고 배제하는 것으로 사건을 덮으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파괴적 폭력은 더 은밀하게 내부로 파고들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폭력의 최소화를 위해 새로운 진보의 집을 짓는 데 최대의 지지를 보내야 한다. 더구나 과거의 진보도 파괴가 아니라 해체해서 새집의 벽돌로 써야 한다. 참비극에는 고통을 견딜 만큼 희망도 있다.

통합진보당의 비극이 해체와 파괴의 경계에서 성황리에 상연되고 있다. 구경꾼 중에는 벌써 잔치를 벌이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당권파의 부정과 폭력을 통진당을 넘어 진보진영 전체의 문제로 확산시키는 잔치다. 이들 보수의 바람은 폭력 없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진보 없는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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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