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부터 국회의원들만 ‘외유성’ 해외 출장을 간 것은 아니다. 전국 광역자치단체 의회 의장들도 지난 5일 호주와 뉴질랜드의 저탄소 녹색 성장과 관련한 사례를 견학하기 위해 8박10일 일정으로 출국했다. 국회 예결위 의원들이 여론의 지탄을 받은 ‘호텔방 쪽지 예산’을 처리하자마자 중미와 아프리카로 출장을 가면서 파문이 일었지만 그 와중에 이들의 출장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17개 시·도 의회 의장 중 서울시와 경남도, 경북도 의장은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의장단의 출장 일정 중 절반가량이 두 나라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짜여 있다는 데 있다. 오죽했으면 경기도의회 공무국외여행심사위원회의 한 의원이 보도자료까지 내 도를 넘은 동료 의원의 해외 연수를 개탄했을까 싶다.


(경향신문DB)


지방의원들의 외유성 해외 출장·연수가 어제오늘 불거진 사안은 아니다. 20여년 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부터 나타난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의원들의 해외 나들이는 매년 지역 시민사회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아왔지만, 의원들은 ‘외유성’이란 구태를 좀처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재임기간 중 어떻게든 기득권을 향유하고 즐기려 하는 비뚤어진 특권의식의 소산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지방의원들의 그런 행태는 지역주민들의 분노를 살 뿐 아니라 지방의회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틈만 나면 제기되는 지방의회 무용론도 지방의원들의 구태의연한 제몫 챙기기에서 비롯되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정작 지방의원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 알면서도 눈앞의 이익에 빠져 모른 척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지방의원들이 지역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해외에 나가 선진 사례를 직접 보고 견문을 넓힐 필요가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방의원 1인당 연 180만원을 해외 연수·출장 비용으로 정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는 지방의원들이 스스로 외유성 해외 시찰 관행을 깰 때가 됐다. 언제까지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 해외 출장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불신을 받을 수야 없지 않은가. 더욱이 최근 들어 자치단체 재정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해외 시찰이 꼭 필요하면 가더라도 취지에 부합해야 할 것이다. 해외 출장·연수가 외국에 나가 바람을 쐬기 위한 식이어서는 안된다. 주민들이 피땀 흘려 낸 세금을 헛되게 쓴다는 비난을 듣지 말아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빡빡한 시찰 일정이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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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기이하다. 민주당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당이 바로 얼마 전 대선에서 패배한 정당인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말로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뜻을 저버린 역사의 죄인” 운운하며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성도, 절박감도 느낄 수 없다. 당권 등을 놓고 벌어지는 친노-비노의 대립을 보고 있자면 오히려 경기에서 이긴 승자들이 전리품을 놓고 벌이는 싸움으로 착각이 들 정도이다.


대선 이후 민주통합당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패배의 원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입장들이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 같지 않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안철수와 관련한 공방이다. 안 후보 측이 안철수로 단일화됐으면 승리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안철수 진영과 민주통합당 간의 공방을 보고 있노라면 그 유치한 수준에 화가 치민다. 단일화 과정의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단일화 과정 자체가 정치이고 권력투쟁이다. 따라서 후보사퇴가 자폭이었든, 아니면 패배였든, 이것에서조차 이기지 못한 안 후보가 본선에 나갔으면 이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다. 사실 최근의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 이유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야권후보 단일화가 기대에 미흡해서”라고 답하고 있는 바, 이 같은 아름다운 단일화 실패에는 어느 날 갑자기 후보사퇴를 선언하고 나오고 이후에도 선문답 같은 문 후보 지지운동으로 일관했던 안철수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양 진영 간의 유치한 논쟁이 아니라 1997년, 2002년 대선과 달리 이번 단일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다. 이를 위한 기초자료로 양 진영은 단일화 과정을 합동으로 백서로 정리해 공개해야 한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 변수가 어떤 작용을 했는가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다. 안 후보는 여론조사 등에서 박근혜 후보를 누르면서 박근혜 대세론을 흔들어준 중요한 공이 있다. 또 정치적으로 소극적인 20~30대를 선거로 끌고 나온 공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안철수의 ‘빛’이라면 ‘그림자’도 만만치 않다. 우선 민주통합당을 자기혁신하고 대선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세주 안철수’만 바라보고 있는 수동적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지난번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과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이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을 상승시켜 혁신 기회를 가로막는 ‘노무현의 저주’ ‘MB의 저주’로 작동했듯이 ‘안철수의 저주’가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이에 못지않게 민주통합당에 부정적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고 말았다. 아니 누구에게로의 유불리를 떠나 이번 대선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고 말았다.


(경향신문DB)


이번 대선에서 우리는 비정규직, 청년실업, 영세자영업자 등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15년의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에 의해 파탄난 민생에 대한 대안,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파탄난 신자유주의 모델에 대한 대안체제를 놓고 국민적 논쟁을 벌였어야 했다. 그러나 안철수로 인해 그렇게 되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 구체적으로 안철수라는 후보의 존재이유 그 자체, 나아가 안철수의 선거공약이 이를 상당히 가로막았다. 그의 정치적 근거는 정치불신에 기초한 정치개혁이었고 당연히 그는 이를 핵심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물론 정치개혁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 수를 줄이느냐가 아니라 민생문제들이다. 민생문제를 제대로 해결한다면 국회의원 수가 좀 많은들 무슨 상관인가? 따라서 이를 중심으로 여야가 경쟁을 벌였어야 했는데 안 후보의 등장과 함께 지방선거, 서울시장 주민투표 등 지난 몇 년의 선거에서 중심 쟁점으로 부상했던 복지와 민생 문제가 국회의원 수 축소 등 정치개혁에 밀려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는 민생문제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손해보지 않은 장사였다. 한마디로 또 다른 ‘안철수의 저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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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사회의학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듯 ‘정치의 계절’이 지나간 다음에 오는 것은 늘 ‘배반의 계절’이다. 국민을 위해서라면 다 내놓을 것 같던 국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예산을 삭감하고 자신들의 지역구 토건예산을 챙기기에 바빴다. 


또한 하루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도 매달 120만원의 연금을 받는 ‘헌정회 연로회원 지원금’ 128억2600만원은 잊지 않고 챙겼다. 이쯤 되면 배반이 아니라 막장 드라마다.


 

새해 예산안 여야 합의 (출처: 경향DB)



그들이 삭감한 예산 중에는 저소득층 지원 의료급여 예산도 들어 있다. 이 예산은 작년 말 현재 6138억원이 지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려도 시원치 않을 예산을 국회는 되레 2842억원을 삭감해 버린 것이다.


이제 의료급여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진료비 지급은 늦어질 것이고, 이를 우려한 의사들은 미리부터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를 꺼리게 될 것이다. 앞으로 가난한 이들은 병·의원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입원을 하고도 조기 퇴원과 불법 보증금 요구에 시달릴 것이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을 뒤돌아보자. 지난 정치의 계절, 우리 사회는 우리나라가 복지국가인지 아닌지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였고, 여야 할 것 없이 모든 대선 후보들은 복지국가를 외쳤다. 하지만 그들이 외쳤던 복지가 보편적 복지이든, 선택적 복지이든 가난한 이들이 아파도 병원을 갈 수 없는 나라, 가난한 이들의 치료비가 제일 먼저 삭감되는 나라는 복지국가가 아니다. 복지국가는 고사하고 ‘나라다운’ 나라도 아니다. 


가난한 이들도 돌봄을 받고 그들의 존엄을 인정하는 나라, 그것은 한 나라가 나라다울 수 있는 바로미터인 셈이다. 대선 직후 보여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산 삭감은 우리 사회가, 우리 정치가 얼마나 이중적이며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더욱이 이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마지막 사회안전망인 의료급여 정책은 진료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예산을 적게 책정하여 진료비 지급을 미루곤 하던 2000년 이전의 ‘원시적’ 제도로 ‘퇴행’하고 말았다. 


부자들이 좋아한다는 새누리당은 그렇다 치고 민주통합당은 무엇을 했는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은 서민정당을 표방하는 자신들에게 등을 돌린 가난한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보라. 진정 그들을 배반하고 있는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편임을 자처하면서도 이번 예산안 삭감에 동의한 당신들 아닌가? 


극장가에는 영화 <레미제라블>이 인기라고 한다. 그 제목의 뜻은 ‘불쌍한 이들’이다. 그 영화 중 한 장면, 직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고 어린 딸의 치료비와 양육을 위해 거리에서 몸을 팔다 병에 걸린 판틴(앤 헤서웨이 분)이 부르는 노래, “나는 꿈을 꾸었어요(I dreamed a dream)”에서 그녀는 노래한다. “하지만 가을과 함께 그는 가버렸어요(But he was gone when autumn came).” 


정치의 계절이 지나간 자리에 배반만 남았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가 넘는 칼바람 부는 겨울, 해고노동자들은 철탑 위에서 부들부들 떨며 하얗게 밤을 지새울 것이다. 오늘 밤 몇 명의 행려자는 추운 길에서 얼어 죽을 것이고, 연탄을 아끼느라 냉골의 방에서 자야 하는 산동네 할머니는 밤새 기침을 해댈 것이다.


정치의 배반에 가장 아픈 이들은 늘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다. 100% 대한민국을 외쳤던 당선인의 행보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자. 하지만 정치가들만 쳐다보고 있을 수 없다.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이 있다. 


그들에게 투표한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저 “ ‘배반의 바리케이드’는 정녕 넘을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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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의 윤창중 대변인이 엊그제 인수위원 인선과 관련한 민주통합당의 비판을 두고 ‘반대만을 위한 반대’라고 공박했다. 윤 대변인은 “박 당선인이 인선에서 국민대통합 의지를 기본 철학으로 삼아 세심한 고려를 했다”며 “(이를 반대하는 것은) 박 당선인의 진심을 왜곡하는 것으로 유감”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야당의 견제 기능마저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로 “야당에 대한 도발”이라며 윤 대변인의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윤 대변인의 발언은 그릇된 대야관의 투영이라고 본다. 재론할 필요도 없지만 야당의 주된 역할은 견제이고, 그 견제를 통해 여당의 독주를 바로잡는 게 정당정치의 원리다. 이 과정에서 권력 비판은 기본이다. ‘반대만을 위한 반대’는 분명 문제지만 그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이번 인선처럼 비판받을 만한 구석이 있다면 얘기는 180도 달라진다. 정무분과위 간사를 맡은 박효종 서울대 교수를 예로 들자면 5·16을 ‘혁명’으로 표현하고, 유신을 찬양하는 한국 근현대사 편찬을 주도한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의 공동 대표다. 박 당선인조차 선거운동 기간 동안 5·16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야당의 비판은 정당하고, 새겨들을 만한 것이다. 윤 대변인은 야당 후보 지지를 천명한 일부 정치인을 ‘정치적 창녀’로 매도하고, 안철수씨를 ‘더러운 안철수’라고 몰아세우는 등 극언을 서슴지 않은 인사다. 야당 비판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답변하는 윤창중 대변인 (출처: 경향DB)


절차 또한 내용 못지않게 잘못됐다. 윤 대변인은 신문이 나오지 않은 토요일 오후 4시 마치 긴급 기자회견을 하듯 야당을 비판했다. 인수위 인선을 발표한 전날에는 언론의 빗발치는 배경 설명 요구에도 일언반구하지 않았던 그가 아닌가. 국민이나 언론이 듣고 싶은 말은 피하고, 그들이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으면서 ‘100% 국민대통합’을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잖아도 박 당선인이 인수위원장을 발표한 1차 인선 때부터 ‘깜깜이 인사’라는 지적을 받아오던 터이다. 인사는 당선인의 권한이지만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마음대로 주물러도 되는 신성 불가침의 영역은 아니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를 하고, 이에 대한 비판마저 수용하지 못한다면 결코 민주적 리더십의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박 당선인 측은 인수위 때부터 야당 세력을 포함한 ‘국가지도자 연석회의’를 운영하겠다는 입장이다. 박 당선인의 대선 승리 직후 일성이 ‘100% 대한민국’이고, 지지를 보내지 않은 48%를 껴안는 ‘대탕평’이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낼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 같은 구상은 야당과의 신뢰 구축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마당에 인수위 대변인이라는 이가 야당의 존재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건 곤란하다. 그것은 박 당선인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박 당선인이 이를 모를 리 만무하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윤 대변인의 ‘야당 비판’은 박 당선인의 복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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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대형마트, 면세점, 온라인 쇼핑몰은 물론 통신사, 항공사, 보험사, 병원까지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가 대부분 중단되면서 소비자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신용카드 사용금액 가운데 할부 결제 비율은 15%. 연간 67조원에 이르는 적지 않은 규모다. 더욱이 카드사 측이 할부 중단을 제대로 예고하지 않아 곳곳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무이자 할부 중단을 미리 알지 못한 서민들로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꼴이다.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말 정부가 카드 수수료율을 손대면서 바꾼 여신전문금융업법(카드법) 조항이다. 그동안 카드사가 전액 부담했던 무이자 할부비용을 올해부터 카드사와 가맹점이 나눠 부담하게 된 것이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무이자 할부 서비스로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이 유통업계 등 대형 가맹점인 만큼 이를 분담하도록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 가맹점 측은 펄쩍 뛰고 있다. 카드 수수료율을 새로 조정하면서 연간 2000억원의 엄청난 추가 부담을 떠안은 상황에서, 또다시 무이자 할부비용 부담마저 져야 할 경우 연 200억원 정도 비용이 늘어난다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올해부터 무이자 카드할부 중단 (출처 :경향DB)


문제는 카드사와 가맹점의 힘겨루기 속에 소비자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무이자 혜택을 받지 못하면 100만원짜리 물건을 3개월 할부로 살 경우 3만원 정도 부담이 는다. 자동차 보험료같이 한번에 몇십만원씩 내는 경우는 무이자 할부가 안되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카드사나 가맹점이나 이익은 한껏 챙기면서 지금 와서 소비자들의 불편은 나몰라라하고 외면해서는 말이 안된다.


당초 카드법을 개정한 취지는 수수료 정상화와 과당경쟁 자제였다. 하지만 정작 불똥은 엉뚱한 소비자들에게로 튄 셈이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금융감독원 측은 “카드사와 가맹점의 협상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만 밝히고 있다.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막상 시행을 해보니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소비자들을 볼모로 삼아 벌이는 카드사와 가맹점들의 힘겨루기가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카드사와 가맹점 간 협상은 서민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 금융당국도 그저 밀어붙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금융당국과 관련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서둘러 해법을 찾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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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육성신년사를 시작으로 한반도 주변 정세에 정중동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아직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지 않고 있지만 신년 벽두부터 일고 있는 변화의 주제는 경제문제로 집중된다. 당장 이번주 중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주 주지사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등 미국 민간 방북팀이 평양을 찾는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독일 재계 관계자들은 북한이 올해 급진적인 경제개방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과 김일성 탄생 100년을 맞은 지난해 초 한반도 안팎에서 군사적 긴장이 더해졌다면, 올해는 신년 벽두부터 경제문제를 중심으로 변화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달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가 결코 외면해서 안될 변화의 단서들이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간첩 혐의로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배준호씨의 석방을 위한 인도적인 목적의 방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슈미트 회장의 방북 목적은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가 2010년 구글 차이나 철수 이후 전 세계적인 인터넷 접근권 확대를 모색해온 만큼 이와의 관련성이 주목된다. 미국 국무부는 이들의 여행이 비공식적인 것임을 강조하면서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미국 민간 방북단은 관례에 따라 본국으로 귀환한 뒤 국무부 등에 방북 내용을 소상하게 전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 분명한 만큼 결코 미국 행정부와 무관한 여행이 아니다. 유엔 안보리가 지난달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제재 논의를 마무리짓는 대로 북·미 간에 새로운 관계설정을 모색하기 위한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공약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순서로 군사적 대결 완화에 이어 경제공동체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북한 핵·미사일 및 북방한계선 문제와 같이 군사적·정치적 현안의 단기적 해결 전망이 없다면 경제협력으로 우회하는 것도 방법이다. 북한과 경제협력을 재개하는 데 당장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남측의 경공업 원자재와 북측의 지하자원을 주고받는 유무상통(有無相通) 교역을 활용할 수도 있다. 김 제1비서는 올해 신년사에서 경제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강조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박 당선인 역시 남북 간 신뢰를 쌓기 위한 다양한 대화채널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강조해온 터이다. 기왕에 대화를 틀 것이면 미룰 이유가 없다. 가령 다음달 25일 취임식에 북측 대표를 초청하는 역발상을 통해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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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시대의 일이다. 갑이란 사람이 비단을 내다팔려고 시장으로 가고 있었다. 반도 가지 못했는데 야속하게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피할 곳을 찾지 못한 갑은 하는 수 없이 비단을 펼쳐서 우비처럼 걸쳐 비를 막았다.


그때 저만치에서 한 남자가 달려오는데 몽땅 젖은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을이란 이 사내는 갑에게 자기도 함께 비를 피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갑은 비단 자락을 들어올려 을을 맞아들여서 피를 피하게 했다.


이윽고 비가 개자 갑은 서둘러 비단을 등에 메고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을이 갑의 등짐을 잡아당기며 길을 막았다. 그 비단은 자기 것이니 내놓고 가라는 것이었다. 을은 한사코 그 비단이 자기 것이라고 우겼고, 두 사람 사이에 주먹질까지 오갔다. 구경꾼들이 몰려들었고, 상황은 말로도 주먹으로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LK:나뭇가지에 비단 조각이 걸려 있는 모습 (출처: 경향DB)


마침 군 태수 설선(薛宣)이 가마를 타고 지나가다가 두 사람이 싸우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싸우게 된 이유를 듣고 난 설선은 “너희 두 사람 말에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럼 그 비단에 무슨 표시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 대답이 모두 같았다. 설선은 “이렇게 하자. 너희들이 모두 그 비단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포기하려 하지 않으니 본관이 판결을 내리겠다. 너희 두 사람 이의 없겠지?”라고 다짐을 받았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설선은 부하에게 칼을 가지고 오게 해서는 비단을 반으로 자르게 하고는 “똑같이 반반씩 나누었으니 더 이상 싸우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 설선은 바로 사람을 시켜 두 사람의 뒤를 미행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오게 했다. 갑은 만나는 사람마다 불만이 가득 찬 얼굴로 설선을 욕했다. 반면 을은 싱글벙글하며 비단을 싼값에 팔았다.


염탐꾼의 보고를 들은 설선은 두 사람을 다시 불러들였다. 태수를 욕한 갑은 잔뜩 겁을 먹었다. 그러나 설선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설선은 을을 향해 호통을 치며 당장 곤장을 치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물에 빠진 놈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걸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하는데 ‘도적놈이 도리어 몽둥이를 들고 큰소리를 친다’는 뜻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도 같은 맥락이다. 새 정권의 밑그림이 나왔다. 그런데 벌써부터 적반하장의 인사가 눈에 띈다. 5년 전 “바닷물을 다 마셔야 맛을 아는가? 한 숟갈 먹어 보면 알지!”라고 했던 말을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나마 설선 같은 현명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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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극단 차이무의 <비언소>(이상우 작)는 추악한 우리 사회를 후련하게 꼬집은 연극이다. 공중화장실에서 다급한 나머지 엉덩이를 감싸쥐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남자가 두 개의 문을 동시에 가로막고 문이 먼저 열리는 쪽으로 들어가려 하자 “오른쪽이야? 왼쪽이야? 어디야?” “중도다!” “양다리 걸쳐 놓고 혼자 다 먹겠다는 도둑놈 심보!” 등의 대사로 화장실조차 좌·우, 중도로 구분하는 세상을 풍자했다. 


연극 '비언소' (출처: 경향DB)


좌·우편으로 갈라 상대를 공격하는 정치병이 문화계로 번지고 있다. 배우 김여진씨가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캠프와 가까운 인물로 분류돼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문 후보의 TV찬조연설 주자로 나섰는데, 최근 방송섭외가 취소됐다는 것이다. 


김씨는 지난 4일 자신의 트위터에 “각 방송사 윗분들, 문재인 캠프에 연관 있었던 사람들 출연금지 방침 같은 건 좀 제대로 공유를 하시던가요” “작가나 PD는 섭외를 하고 하겠다고 대답하고 나서 다시 ‘죄송합니다. 안된대요’ 이런 말 듣게 해야겠습니까? 구질구질하게…”라는 글을 남겼다.


김씨는 트위터 이용자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직접 들은 이야기라며 “그 전에도 여러 번 당했던 일이지만 꼭 집어 그렇게 듣는 건 처음이었어요. ‘문재인 캠프 연관된 분이라 안된다고 하네요. 죄송합니다’라고 들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블랙리스트(출연금지자 명단)를 만들고 있을 방송사의 빗나간 충성심이 참으로 딱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48%를 껴안겠다는 국민대통합의 다짐과 어긋난 풍경이다. 


새 정부는 MB정부가 문화예술계에 가한 정치적 외압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우리는 개그우먼 김미화씨가 2010년 ‘KBS 블랙리스트’ 소문과 관련해 KBS로부터 고소당한 사건과 2011년 8년 동안 진행했던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일, 가수 윤도현씨가 2008년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접고 2011년 KBS 프로그램 내레이션 섭외가 무산된 배경, 2009년 방송계 파워아이콘인 김제동씨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추도사를 빌미로 방송 프로그램에서 중도하차했던 일을 기억한다. 새 정부 아래서는 문화예술인들이 ‘구질구질하게’ 정치색 때문에 추궁당하는 일 없이 본업에 충실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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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덕 | 사회복지사


작년 한 해 우리나라 100세 장수 인구는 1201명이다. 2011년 927명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로 100세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래 사는 것이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늙기 전에 목적과 가치에 맞게 자신을 브랜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2013년, 올해를 ‘현재의 내’가 ‘노후의 나’를 만들어가는 실버브랜딩(노후에 자기다움 갖추기)을 준비하는 한 해로 만들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의미 있는 삶, 개념이 있는 삶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삶을 살 것을 권한다.


 

말춤추는 어르신 (출처; 경향DB)



첫째, 의미 있는 삶이다.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우선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책을 써볼 것을 추천한다. 이를 계기로 자기의 지혜와 경험을 파는 강의를 할 수 있고, 스스로 살아 있다는 의미 있는 증거를 남길 수도 있다. 또한 봉사라는 좋은 습관을 통해 주위를 돕는 것도 가치 있는 삶이다.


둘째, 개념이 있는 삶이다. 목표와 목적 없이 직장에서 정년만 바라보는 생활은 스스로를 안락사시키는 것과 같다. 늙는다는 것은 주름이 늘고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기를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것이다. 개념 있는 삶이란 꿈과 대화가 하얗게 바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고 자기를 정리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이야기가 있는 삶이다. 이제는 ‘생각하는 것’에서 부가가치가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오히려 실패에 따른 경험이 강의의 소재가 될 수 있고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소재가 될 수도 있다. 이 세상의 무대에 주연으로서 자신이 겪은 경험의 조각을 모아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가 되어 보자.


시간은 바야흐로 노년을 향해 가고 있다. 유능한 은퇴자들은 매년 은퇴 인력시장으로 쏟아지고 있어 보통스러움으로는 어느 누구의 관심도 받기 힘들다.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지금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하지만 준비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시간을 잘 활용하여 노후의 자기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생각을 정리하고 메모하면서 의지를 습관화해야 한다. 1년의 새벽은 10년의 미래라는 말처럼 이러한 노력을 정초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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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 | 인제대 법학과 박사과정


이명박 대통령이 공석 중인 헌법재판소장에 헌법재판관을 역임한 바 있는 이동흡씨를 지명했다. 물론 대통령 당선인의 동의하에 지명했다는 단서도 달고 있다.


이동흡은 이전 헌법재판관 지명 시에도 한나라당 몫으로 지명된 사람이었고, 주요 사건들에서도 한나라당과 수구보수세력에 맞는 판결을 해왔던 사람이라 이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이 그를 헌재소장으로 지명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헌재소장의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왈가불가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동흡은 헌재소장에 지명되어서는 안된다. 왜 이동흡이 헌재소장이 되어서는 안되는지를 그가 맡았던 몇 개의 헌재 사건의 예를 통해 살펴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청구사건’에서 헌재가 우리 정부가 나서서 위안부 배상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을 때 그는 반대의견을 통해 “국가가 나서 그런 문제를 해결할 의무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또 ‘친일파 재산 국가귀속 특별법 사건’에서 헌재가 친일재산 환수는 민족정기 복원과 3·1운동 정신을 담은 헌법 이념에 비춰 헌법에 부합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했을 때 그는 “친일행위와 관계없이 얻은 재산도 있을 수 있지 않으냐”는 취지의 의견을 내면서 친일파 재산의 환수를 반대했다. 이 밖에도 촛불집회 당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야간 옥외집회를 처벌하는 근거가 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10조에 대한 위헌제청사건’에서는 야간 옥외집회 금지가 위헌이라는 대다수의 재판관들과는 달리 그는 ‘합헌’이라는 견해를 냈다.


위 세 가지 사건에서 보인 이동흡의 의견들은 일개 헌법재판관 이동흡이나 일개 사인인 이동흡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헌법기관인 헌재소장 이동흡으로서는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신을 심대하게 훼손하고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요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위 사건들에서 이동흡은 구성인인 국민을 보호하는 게 국가의 의무임에도 이를 부인하고 있고,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3·1운동과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21조는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음에도 이동흡은 이를 부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이 헌법질서 유지의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의 장의 자리에 앉는 것은 위험하다. 이동흡에 대한 헌재소장 지명 철회가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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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jrkkk@nate.com


새해 들어서도 여전히 뉴스를 외면하고 산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다. 50대의 일원으로, 지난 대선 때 이런 선택에 내몰렸던 불안한 세대가 안쓰럽다. 춥고 우울하다.


얼마 전 개설된 공동체의 논어집주(論語集注) 강독반에 참여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오래전부터 한문의 문리를 트고 싶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던 터다. 처음부터 강독에 참여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시작하기 전 10명이 채 못 되던 강독 참여 희망자는 30~40대가 주축에 50대가 둘. 그런데 강독이 시작되자 일단의 대학생들이 무리지어 왔다. 정확하게 서른 살이나 어린 친구들이었다. 나이와 직급의 위계가 엄격한 집단에서 잔뼈가 굵었음인가. 아들의 동갑내기와 클래스메이트가 된 것이 어색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강독을 그만둔 이유다.


중국을 찾은 미국 대학생들이 문묘 대성전에서 공자의 논어를 읽고 있다. (출처; 경향DB)



30~40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이들이 같은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 이런 일은 대학 밖 인문학 공동체에서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일상적이다. 이를테면 재작년 여름 시작한 이래 1년 반이나 지속되고 있는 공동체의 고대 그리스 철학 읽기 모임을 보자. 


이 모임 참가자의 연령대는 20대 초반에서 50대 후반에 걸쳐있다.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대학 신입생에서 대학원 석사과정, 박사과정, 전업주부, TV방송 그래픽 디자이너, 회사원, 대학 강사, 회계사, 공무원, 피아니스트, 한의사, 신문사 논설위원, 입시학원 원장….


이들이 모인 계기는 물론 공부다. 토론이 뜨거워지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중간에 씩씩거리며 나와 찬물을 들이키고 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이들이 공부하고 토론만 하는 건 아니다. 뒤풀이 또한 공부 못지않게 중요하다. 첫 모임 이래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뒤풀이를 하지 않은 날이 없었을 정도다. 어쩌다 세미나를 쉬기라도 하는 날이면 자기네끼리 어울려 영화관에 가네, 공연장이며 전시회장에 가네 하며 더 바쁘다. 오죽하면 한 40대 참가자가 “학교나 직장에서 만나지 못한 지음(知音)을 만난 듯하다”고 고백했을까.


흔히 “공부에는 때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외국어 공부는 나이 들면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체력도 저하되거니와 무엇보다 암기력이 부치는 탓이다. 그런데 공동체에서 공부하는 이들을 보노라면 나이 듦이 공부에 더 유리한 것 같다. 암기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이해하고 종합하는 힘은 더 뛰어난 것이다. 여기에다 청년들이 잡념이 많고 엉덩이가 가벼운데 비해 이들은 집중력과 끈기까지 갖추었다. 실제로 1년여 전 시작한 일본어 신문읽기반의 경우 평균적으로 나이 든 사람들이 더 낫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생기고 이것이 내면화한 것이 오래된 일도 아니다. 근대 이후 학교 제도를 체계화하고 같은 나이에 같은 내용의 공부를 획일적으로 주입한 이후다. 같은 나이에 같은 내용을 가르쳐 같은 생각을 가진 국민을 길러내는 건 근대국가의 핵심 통치전략이다. 


산업사회에 필요한 노동자와 군대의 양성에 획일적인 교육이 유리했던 탓이다. 전 국민을 같은 틀에 집어넣고 붕어빵을 찍어내는 식의 교육이 빚은 부작용은 크다. 천차만별인 개성이 말살되고 획일적인 사고가 지배한 것부터가 그렇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것으로, 학교를 마치면 공부 끝이라는 생각도 여기서 나왔다. 지식정보화 물결이 세상을 휩쓸면서 평생교육이 강조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학교 교육의 들러리일 뿐이다.





▲ “탐구하는 노년은 젊고 싱싱하다

나이·학번만으로 선후배 따지는 세태

직위·경륜·지역의 벽을 뛰어넘은

퇴계와 기대승의 교분을 배우자”


이 땅에서 특히 심각한 학교 교육의 부작용이 하나 더 있다. 나이와 학번으로 선후배를 따지면서 세대를 구별하는 것이다. 이런 구별 의식은 가정으로, 직장으로, 사회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조금만 나이 차가 나도 세대차 운운하며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나이 든 세대는 젊은 세대를 무시하고 젊은 세대는 나이 든 세대를 경멸한다. 동영상으로 유포되는 지하철 패륜남, 지하철 막말녀나 추태를 부리는 노인의 모습도 이와 거리가 멀지 않다. 나이 들면 신체나 두뇌 조건에 상관없이 뒷방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화한 것도 그렇다. 지난 선거에서 보여준 50대들의 선택도 내몰릴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황은 머리 숙여 두 번 절합니다. 그대의 편지를 기다린 지 오래…. 이제 천리 먼 길에서 사람을 보내 제 글에 대한 가르침과 아울러 틀린 곳을 바로잡은 책 한 권을 보내 주었습니다. 이에 관한 논변이 넉넉하고 자세하여 길 잃은 이를 이끄는 그대의 염려가 남김없이 베풀어졌습니다.”


퇴계 이황이 고봉 기대승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알다시피 퇴계와 고봉은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을 이어감으로써 이 땅의 논쟁사를 빛낸 학자다. 첫 편지를 나눌 당시 58세의 성균관 대사성이었던 석학 퇴계는 이제 갓 과거에 급제한 32세의 새파란 청년 고봉에게 깍듯이 예의를 다한 편지를 보낸다. 퇴계가 고봉에게 첫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뒤 두 사람의 애정과 존경을 담은 편지 교환은 13년 뒤 퇴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됐다. 공부, 즉 자기완성이라는 절절한 화두를 꿰뚫기 위해 나이와 세대, 직위와 경륜, 지역의 한계를 뛰어 넘어 두 영혼이 만난 것이다. 이런 만남을 통해 공부하고 우정을 나누는 게 조선조 선비에게만 가능할까.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 “건축 이전에 그 건축에 머무는 인간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아이들이 명문대에 진학해 삼성에 입사하는 꿈을 넘어선, 보다 자유롭고 폭넓은 꿈을 이야기하게 하기 위해” 엊그제 진행된 공동체의 대안 대학원 등록 예정자들과의 대화에서 지원자들이 밝힌 포부들이다. 이 중에는 안경알을 갈며 평생 공부를 이어간 스피노자처럼 컴퓨터를 고치며 평생 공부하고 싶다는 컴퓨터 수리업자도 있다. 강의와 연구에 쫓기느라 미루기만 했던 근원적인 질문을 좇으며 삶을 제대로 정리하고 싶다는 은퇴 물리학자도 있다. 


직업, 연령, 성별은 다르지만 이들의 꿈은 20대 청년 못지않게 젊고 싱싱하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만 한 시대, 그럼에도 이들의 노후 대책은 재산 축적이 아니다. 공부다. 이렇게 공부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실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함도 잦아들 텐데, 그것이 가능하기나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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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규항


ㆍ“대선은 386 재집권 실패일 뿐인데 왜들 멘붕이란 건지 모르겠어”


김규항 = 필모그라피(영화이력)가 많습니다. 주요한 장편만으로도 <어머니>(2012), <당신과 나의 전쟁>(2010), <샘터분식>(2009), <필승 2―연영석>(2008),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2005)….


태준식 = ‘독립영화계의 남기남’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웃음)


김규항 = 진행 중인 작품도 있죠? 평택에 자주 가시는 것 같던데요.


태준식 = <당신과 나의 전쟁> 그 후 이야기를 찍고 있어요. 큰 싸움 이후, 큰 비극을 겪은 후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라는 주제를 좀 길게 보면서 찍고 있습니다. 하나 더 있는데 조중동에 관한 다큐입니다. 어차피 대선 이후에 완성할 생각이라 여유있게 작업해왔습니다.



고 이소선 여사의 이야기를 다룬 <어머니>, 쌍용차 파업을 담은 <당신과 나의 전쟁> 등을 만든 다큐멘터리 감독 태준식씨가 자신의 영화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_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출처 : 경향DB)



▲ 대선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이

대다수가 어떤 희망을 갖고 사나

뭘 발견해야 할까 등을 그리려 해


▲ 박근혜 당선 후 잇단 노동자 자살 보고

현실의 실체 드러내려 노력해왔는데

대체 난 뭘 한 걸까 회의감 들기도


김규항 = 대선 결과로 멘붕(극심한 정신적 혼돈 상태)이라고들 하는데 작품엔 어떤 관련이 있나요.


태준식 = 솔직히 말해서, 저는 대선 실패라는 게 386이 정권 탈환에 실패한 것뿐인데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과 무슨 큰 상관이 있는지 왜들 멘붕이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대선 결과가 무엇이든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가나, 뭘 발견해야 할까 하는 것들을 그리려 합니다.


김규항 = ‘386의 재집권’에 진보정치와 민주노동운동 역량을 거의 다 쏟아부었기 때문에 그 실패가 모두의 실패가 되어버리는 슬픈 상황이죠. 사실 문재인의 낙선에 멘붕일 건 없죠. 수출 위주에 높은 금융개방도에 대기업 집중인 현재의 한국 경제가 기댈 데는 결국 노동계급의 희생밖에 없는데, 박근혜든 문재인이든 그 구조 안에 존재하니까요. 문재인의 인품을 말하는데 고 노무현 대통령도 개인적 인품은 그만한 사람 없었죠.


태준식 = 저는 다큐를 하는 사람이니까 두 후보의 TV 광고를 흥미롭게 봤는데 게임이 안되더라고요. 문재인 쪽 광고는 감동, 뜨거움, 현장의 분위기 같은 386의 정서로 가득했어요. 박근혜는 완전히 달랐어요. 어머니의 심정, 19일이면 달라질 거야, 심지어 자신을 부정적으로 그린 ‘여의도 텔레토비’ 캐릭터까지 끌어들였어요. 그런데 낙선 후에 나온 문재인 헌정 광고도 똑같더군요. ‘386들이 한풀이 한번 찐하게 하는구나’ 싶었어요.


김규항 = 386세대의 일원으로서 이래저래 참 민망해요. 386 주류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거치면서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으니 수구 기득권 세력과 정권 다툼을 벌이는 거야 당연하죠. 하지만 그걸 정의와 진보의 전쟁인 양 대중을 미혹하는 건 추했어요. 어쨌거나 대선은 끝났고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중요하죠. 5년을 또 386의 재집권에 올인하면 정말 끝장이고요. 그나저나 대선을 그렇게 한칼로 정리하시니 요즘 분위기에선 이채롭군요.(웃음)


태준식 = 대학 3학년 때부터 20대 내내 노동자뉴스단(노뉴단)에서 활동하다가 30대 들어 회사에 몇 년 다녔어요. 노뉴단에 있을 때는 노동자가 해방되는 좋은 세상이 와야 할 텐데 하는 큰 덩어리의 생각을 했다면 회사에 다닐 때는 노동자의 삶이란 게 이런 거구나,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아요. 노무현 정권이 한참 노동운동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사회적으로 퍼트릴 때인데 저는 오히려 그 반대로 가더라고요.


김규항 = 20대에 활동하던 청년이 30대에 회사 다니면 급진성도 옅어지게 마련인데요. ‘세상이 간단한 게 아니구나’ ‘내가 좀 어렸구나’ 하면서요.


태준식 = 저는 이론이나 이념보다는 생활인으로 살면서 평범해 보이지만 자기 삶을 잘살아가는 사람들, 지혜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면서 좌파적 관점이 더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김규항 = 작가로서 좌파적 관점도 더 자연스러워졌음이 작품에 드러납니다. 사실 사람의 신념이 오래 가는 힘이 교조나 이론이라는 시각은 사실과 많이 다르죠. 그건 청년 시절 한때에나 가능한 것이고 삶에서 얻은 지혜가 신념을 지키는 힘이 되는 경우가 많죠. 주위를 둘러봐도 그래요. 주류 386들이 대중을 부추기고 지도하려 든다면 이쪽은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살피는 태도가 많아요. 지금 급진적인 경향의 청년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태준식 = 좋죠. 그런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대학생들이 <당신과 나의 전쟁> GV(guest visit)에 저를 부르면 대부분 거절했어요. 내가 그 작품 이후 쌍차노동자들의 싸움에 늘 함께해온 것도 아니고, 작품 하나 만들었다고 해서 내가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나서는 건 불편한 일이다, 나 말고 당사자들 쌍차노동자들을 불러서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게 좋겠다면서요.


김규항 = 영화를 통해 현실을 소비하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인가요?


태준식 = 이명박 이후에 ‘양심적인 시민들’이 많이 생겨난 것 같아요. 그분들이 노동 문제나 투쟁 현장에 관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고 제 작품이나 이런 다큐들이 그분들에게 조금씩 도움도 되었고요. 그런데 그분들이 노동문제에 진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무엇보다 자신들을 스스로 조직하고 싸우고 해야 하는데요. 그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울음이나 분노나 이런 것들로 쫙 한번 소비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김규항 =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무엇보다 내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인데요. <어머니>는 그런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었어요. 촬영에만 2년2개월이 걸렸는데 또렷한 기획을 가지고 시작했나요. 하면서 구성이 된 건가요.


태준식 = 이소선 어머니를 만나기 전에는 한 인물의 역사, 남한 사회의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큰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 생각도 했는데 만나면서는 어머니라는 개인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만날수록 어머니의 매력에 빠져들었죠.(웃음) 저걸 잘 살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 오래 만나야지, 방송처럼 한두 달 찍고 만드는 게 아니라 오래 길게 가야지 했죠.


김규항 = 그분의 매력에 십분 동감합니다.(웃음) 작업이 인생 공부가 되었군요. 치유의 느낌도 있고요.


태준식 = <당신과 나의 전쟁>을 만들면서 너무나 힘들었어요. 편집을 하면서도 너무 슬프고 분이 터져서 마지막 시퀀스를 2주 넘게 넘어가질 못할 정도였어요. 어머니를 만나면서 다 위로받고 치유할 수 있었죠. 어머니는 끊임없이 당신이 경험한 일들을 들려주셨어요.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떻게 고문받았고 또 사람들에게 어떻게 멸시당했는지…. 저는 대체 그런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이런 당당함은 대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을까 궁금해졌죠. 그분에게서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가져야 할 태도가 뭔가, 진실을 위해 굽히지 않는 용기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어요.


김규항 = 일각에서 ‘어머니’라는 제목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었죠.


태준식 = 모성의 굴레가 아니냐는 이야기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까지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속상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이래야 하는 건가 싶어서요. 작품을 안 보고 그런 말씀 하는 경우도 많이 보여서 작품을 일단 보시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었고요. 사실 경순 감독이나 김일란 감독 같은 페미니스트 감독들에게 자문과 동의를 얻은 제목이었어요.


김규항 = 전 그 이야기 들었을 때 원론적으로는 의미가 있는데 이소선 어머니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구나 싶었어요. 모성의 굴레를 온전히 벗어난 분이셨죠. 어떤 어머니보다 어머니셨지만 세상 어떤 아버지보다 아버지셨으니까요. <어머니>는 형식적으로 평범한 듯하면서 평범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주제의 다큐를 만들다보면 형식 면에서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자칫 두 측면이 서로 갉아먹기 십상이고요.


태준식 = 형식주의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형식 자체만 고민하는 작가가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걸맞은 다양한 형식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거죠. <어머니>나 <샘터분식> 같은 건 정말 제 마음대로 만들었어요. <샘터분식>은 작품 나왔을 때 주변에서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다들 놀라고 그랬죠.(웃음) 하지만 저는 형식적 시도야말로 독립 예술가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횡포라고 생각해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그래픽 (출처 :경향DB)


김규항 = 당연히 누려야 할 횡포죠. 그걸 누리려고 상업영화 안 하는 건데요. 다큐처럼 사람을 직접적으로 불편하게 하는 예술도 없죠. 진실을 목도함으로써 갖는 관객의 불편함에 대해선 어떤가요.


태준식 = 작품을 마칠 때마다 내가 제대로 했나 되새겨보게 되는데 그건 곧 제대로 불편하게 만들었나 되새겨보는 것이기도 하죠. 사실 최근엔 회의가 들기도 했어요. 단지 박근혜가 되었다고 해서 다섯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나다니 이게 뭔가, 나름대로 현실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열심히 찍고 작업해왔는데 대체 난 뭘 한 걸까.


김규항 = 관련해서 저는 시스템을 그리는 다큐가 나오면 좋겠다, 사회의 전체 얼개를 드러내는 다큐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어지간한 건 다 386의 전략에 종속되어 버리니까요. 2008년 이후에 외국에선 그런 게 좀 나온 것도 같은데요. 


태준식 = <샘터분식>을 끝내고 금융자본주의에 대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누구나 빚을 지고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이고 그 이자의 변화에 따라 사람이 죽기도 살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그 부분에 대한 관심이 적잖아요. 저에게도 남의 일 아니고요. 그래서 기획을 진행했는데 <당신과 나의 전쟁>을 만들어야 했고 또 다른 현안에 매달리면서 못했죠. 지금 하고 있는 조중동 작업도 조중동을 욕하고 비웃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인가, 그 이면에 자본이 있고 조중동 또한 그에 자유롭지 못한 시스템이 있다는 걸 그리려고 해요. 제목이 <슬기로운 해법>이에요.(웃음)


김규항 = <당신과 나의 전쟁>도 나지막하게 시스템을 이야기하고 있죠. 노무현 대통령 죽음으로 노란 물결이 온 나라를 휩쓸면서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은 더 고립되고 그 분위기를 이용해 진압이 강행되는 과정,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기 삶을 생각했다면 노란 물결이 아니라 쌍용차 정문으로 달려갔어야 했다는 이야기….


태준식 = 사회는 가면 갈수록 투명해지는데 사람들이 그걸 제대로 보긴 더 어려워져왔어요. 386 자유주의 세력이 사람들과 사회의 그 중간에 서서 거대한 막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죠.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어주는 다큐가 나오길 기대하고, 저뿐 아니라 그런 조짐은 많이 보입니다. 한국의 독립 다큐가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으로 시작되었는데 ‘착한 카메라’라고 할까요, 그런 작품도 계속 나와야 하지만 다른 형식과 다른 관점을 가진 작품도 많이 나올 겁니다, 이젠.


강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상계동 올림픽' (출처 : 경향DB)


김규항 = 반이명박, 반박근혜도 있고 반자본, 반지배계급도 있으면 좋겠죠. 여태까지 충분치 않았던 건 사회 인식의 문제뿐 아니라 여건의 문제도 있지요?


태준식 = 미국만 해도 이자율을 결정하는 회의 같은 데 카메라가 들어가거든요. 스테이크 썰면서 전 지구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자들을 영상으로 보면 느끼는 게 있을 수밖에 없는데 한국에선 어려운 이야기죠. 또 일개 인물이나 주제가 아니라 시스템을 제대로 드러내는 작품을 하려면 제작비가 많이 필요하고요.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저는 그걸 극복하는 사례를 만들어보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규항 = 기대가 됩니다. 스테이크 썰면서 지구를 쥐락펴락하는 자들 이야기를 들으니 몇 달 전에 본 역대 경제 관료들 모임이 생각나는군요. 그 자체로 그냥 세상의 진실이더군요. 경제를 주물러온 관료들의 면면엔 여도 야도 없는 거죠. 그들이 한동아리로 어우러지는 풍경을 다큐에 담는다면 백마디의 말보다 났겠구나 싶었어요.


태준식 = 카메라가 들어가긴 어렵겠지만.(웃음) 여건 이야기를 좀 했지만 그걸 핑계로 삼을 생각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여건이 나빠서 더 작업이 역동적이고 재미있는 면도 있고요.


김규항 = 인터뷰 초입에 대선을 한칼로 정리하셨으니(웃음) 이제 대선 이후 우리가 뭘 해야 할지도 말씀해주시죠.


태준식 = 저는 그럴 주제가 못되는데…. ‘좌판’에 나올 만한 사람인가 싶어서 많이 망설였거든요.


김규항 = ‘좌판’에 모시는 분들의 공통점입니다.(웃음) 


태준식 = 그런가요.(웃음) 나오면서 급진주의자란 뭘까, 좌파란 뭐하는 사람일까, 곰곰이 다시 생각해봤어요. 결국 ‘끊임없이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구나 싶어요. 박근혜가 되든 문재인이 되든, 아니 노동자 후보인 김소연이 되었다 해도 좌파는 끊임없이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게 세상의 문제와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려내는 사람이 아닐까. 결국 좌파의 숙제는 얼마나 잘 시끄럽게 떠드는가겠죠. 아름다운 시끄러움, 감동적인 시끄러움….


‘대선은 386의 재집권 실패일 뿐인데 왜 우리가 멘붕에 빠져야 하는가’라는 태준식의 말이 선뜻 받아들여질 사람은 오히려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작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우선 두 개를 권한다. <당신과 나의 전쟁>과 <어머니>. 오늘 현실의 얼개가 담겨 있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비결이 담겨 있다. 작품은 어떤 결론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결론을 갖든 멘붕에서 빠져나갈 첫걸음은 될 것이다. 그 또한 다큐멘터리의 힘이다. DVD 문의 : 한국독립영화협회 (02-334-3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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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신임 헌법재판소장에 이동흡 전 재판관을 지명한 것을 놓고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가 떠들썩하다. 이 내정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권을 행사했지만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첫 공직 인선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관심을 끌었다. 박 당선인 측도 인선 과정에 의견을 조율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내정자 지명은 결과적으로 ‘최악의 인선’이라는 혹평을 듣고 있다. 야당이 “보수편향이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정체불명의 인사”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내정자는 헌재 25년 역사상 합헌 의견을 가장 많이 낸 재판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헌재를 거쳐간 40여명의 재판관 중 가장 ‘체제 순응적 법해석’을 한 재판관으로 유명하다. 헌재는 다수의 논리를 앞세운 입법권과 행정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특별법원이다. 국가 최고규범인 헌법 해석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헌재의 존재이유다. 이 내정자는 소수자보다는 다수의 편에 서서 편향된 법 해석 태도를 보여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헌법기관의 수장자리에는 부적절하다고 본다.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이 퇴임식에서 동료 재판관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출처;경향DB)


위험수위를 넘어선 헌재의 보수화 성향을 감안해도 이 내정자 지명은 문제가 있다. 박 당선인은 이 내정자 외에 오는 3월 퇴임하는 송두환 재판관의 후임 지명권도 갖고 있다. 이렇게 되면 헌재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 당선인이 임명한 재판관들로 모두 채워진다. 재판관 9명 중 야당이 추천권을 행사하거나 여야 합의로 추대한 재판관 각 1명씩을 제외하면 보수 색채가 너무 강하다.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헌재의 위상을 감안하면 한쪽으로 치우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법조계에서 “헌재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얘기마저 나오는 모양이다.


공인으로서의 처신과 자질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이강국 소장을 비롯한 재판관 모두가 서울역사박물관에 차려진 분향소를 찾았지만 이 내정자만 불참했다. 헌재 내부에서는 “이 재판관이 일부러 가지 않았다”는 추측까지 나돌았다고 한다. 그는 재판관으로 있으면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헌재 내부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져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다.


무엇보다 박 당선인이 동향 출신을 사법부 수장(대법원장과 헌재 소장)에서 배제해온 오랜 관례를 깨고 같은 TK(대구·경북) 출신의 이 내정자 지명에 동의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3권분립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내정자의 인사청문회는 일찌감치 여야 간에 볼썽사나운 모습이 예고돼 있다. 이른바 ‘고소영’ 내각으로 정권 초반부터 논란이 된 이명박 정권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 헌재가 정권의 들러리 아니냐는 소리를 들어선 안된다. 평소 국민대통합과 탕평인사를 강조해온 박 당선인의 약속을 감안하더라도 이 내정자 지명은 철회하는 게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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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씨의 불법선거운동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어제 김씨를 다시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김씨가 지난해 8월 말부터 진보 성향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16개의 ID와 닉네임으로 대선 관련 게시물 94건에 모두 99번의 ‘추천’ 또는 ‘반대’ 의사 표시를 한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씨가 실명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지 않아도 가입할 수 있는 이 커뮤니티에서 왜 그렇게 많은 ID나 닉네임을 만들어 돌려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씨가 교묘한 방법으로 선거에 개입하려 했고, 김씨의 그런 활동이 개인 차원이 아니라 국정원 조직 차원에서 이뤄졌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경찰이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히 사건의 실체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의혹의 국저원 여직원 (출처; 경향DB)


김씨 사건은 지난 대선 막판에 불거진 최대 논란거리였다. 민주당이 국가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새누리당이 증거도 없이 일단 터뜨리고 보자는 식의 한탕주의라고 맞대응하면서 공방이 치열했다. 이 와중에 경찰은 “김씨의 선거 개입 의혹을 살 만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고, 향후 수사에서도 발견될 가능성은 없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해 경찰의 정치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선거 3일 전, 그것도 대선 후보 3차 토론이 끝난 직후인 한밤중에 발표해 더욱 그랬다. 경찰이 김씨 사건을 무혐의로 서둘러 덮으려 한다는 의혹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이렇게 전개된 김씨 사건은 실제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경찰은 대선이 끝난 뒤에야 김씨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김씨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선과 관련된 활동을 활발히 한 흔적을 찾아냈다. 경찰이 스스로 발표한 중간 수사 결과와 맞지 않다. 물론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란 민주당의 고발 내용과도 다르다. 경찰 수사는 진행 중이고, 현재까지 드러난 내용만 보면 그렇다. 김씨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장래를 위해 반드시 진상이 밝혀져야 할 사안이다. 만일 국정원이 김씨를 통해 선거에 개입했다면 국가 기강을 뒤흔든 것으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사태다. 반대로 국정원의 혐의가 없다면 민주당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경찰은 부실한 중간 수사 발표로 불신과 의혹을 자초한 만큼 성역 없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김씨 사건이 국회 특검으로 이어져 망신을 당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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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끔찍한 비상상황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사태가 갑자기 찾아온 예외적인 상태는 아니다. 벤야민의 말처럼 바닥에 때려눕혀진 사람들, 수렁에 빠질 위협에 노출된 사람들에게는 삶 자체가 언제나 비상사태다. 그러니 냉소와 자학을 멈추고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보아야 한다. 더구나 짓밟힌 사람에겐 짓밟은 이에 대한 증오나 응징보다 제 발로 일어서는 것이 먼저다.


87년 체제가 들어서기 전에 진보와 보수가 맞짱을 뜬 경우는 없었다. 맞대결을 할 만큼 진보 세력이 크지 못했으니 선거판은 항상 수구와 보수의 대결로 짜여졌다. 87년 이후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진보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에 맞서 수구와 보수는 3당 합당으로 35%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구축함으로써 네 번째 권력을 장악했다. 진보 역시 20% 내외의 굳건한 지지층을 기반으로 개혁적 중도나 계산적 보수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두 번 이겼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구미시 상모동 주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두 번의 승리가 기적이었다지만 그 열매가 탐탁지 못했다. 무엇보다 진보가 집권하면 청소년과 여성 그리고 노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가 살 만한 세상이 온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다. 나아가 추락과 몰락이라는 항구적 불안에 시달리는 중장년층과 중산층에게 진보가 지속 가능한 성장과 경제적 안정을 보장한다는 신뢰도 주지 못했다. 그러니 어쩌면 48%의 유권자가 진보·개혁을 지지한 이번 선거는 패배가 아니라 희망의 신호다. 외면당한 자들이 스스로 일어나 새 판을 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절망을 퍼 나르는 자들이 많다. 표계산에만 몰두하는 정치공학자들은 이념과 정책보다 지역과 세대를 중요 변수로 친다. 맹목적으로 여론조사를 뒤쫓는 정치꾼들은 정당보다 인물 중심으로 헤쳐모여를 종용한다. 순수성 경쟁에 파묻힌 사이비 진보는 동지를 늘리는 것보다 쪼개는 것에 여념이 없다. 이들에 의해, 이런 논리로 더 이상 휘둘리지 않으려면 진보·개혁을 재구성해야 한다.


진보·개혁은 먼저 자신의 편견과 무기력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투사(projection)를 멈춰야 한다. 그러니 수구·보수를 더 이상 악으로 폄하해선 안된다. 악을 물리치겠다는 적개심으로 규합할 수 있는 유권자는 20~30%뿐이다. 대구의 80%와 광주의 90% 사이의 질적 차이를 논할 필요도 없다. 이유야 어떻든 ‘묻지마 지지’는 논리로 바뀌지 않는다. 타락과 변절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을 했을 뿐인 베이비붐 세대를 질타해서도 안된다. 버거운 짐을 진 이 세대도 곧 사회적 약자인 노인이 된다. 약자를 따돌리는 진보가 아니라 그들의 짐을 덜어주는 진보가 필요하다.


새로운 진보·개혁은 지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이기기 위해 가운데로, 심지어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해묵은 논리는 역으로 보수의 가치만 부풀린다. 지더라도 진보의 가치인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분배, 풍성한 자유와 건강한 평화의 틀을 활성화해야 이길 수 있다. 진보·개혁은 가르치는 선생의 태도도 버려야 한다. 몰라서 못 배워서가 아니라, 못 가져 못 미더워 진보를 외면하는 사람들과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다.


보수는 항상 구체적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시장은 공정하다. 자유는 책임이다. 세금을 줄여야 부자가 된다. 부자증세가 집값을 떨어뜨린다. 주식 떨어지면 나라 망한다. 국력이 평화고 안보가 통일이다. 사랑의 매도 교육이다. 1등이 정의다.” 이처럼 보수의 성장주의는 감성적으로 도덕주의와 뒤엉켜 있다.


보수는 또한 자신들이 폭력과 억압의 가해자가 아니라 희생자인 것처럼 위장한다. “노조가 사유재산을 파괴한다. 파업 때문에 서민들만 힘들다. 전교조가 내 자식을 망친다. 북한에 퍼주느라 서민들을 죽인다. 좌파 복지는 세금폭탄이다.” 이와 같은 희생 담론은 왜 사회적 약자가 보수를 지지하는지 말해준다. 그러니 바로 그 지점에서 진보·개혁은 박정희의 ‘마이 홈, 마이 카’에 대적할 수 있는 매력적인 꿈, 예를 들어 ‘자궁에서 천당까지’와 같이 홀로 독식이 아니라 서로 키우는 실천적 긍정의 꿈을 다시 꾸어야 한다. 그래! 이제부터 제대로 맞짱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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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 | 귀농본부 텃밭보급소 상임이사


나는 밀농사를 12년째 짓고 있지만 사실 밀의 발견이야말로 인류의 발견 중 매우 불행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이 전쟁도 제일 잘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을 제일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밀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선 밀은 빵을 만들어 먹기가 좋고 맛있다. 밀은 탈곡을 하면 저절로 왕겨가 벗겨져 나온다. 통밀이 그대로 나와 정미할 필요가 없다. 그 통밀을 돌로 갈아 밀가루를 만들면 발효가 되어 절로 빵이 된다. 쌀·보리·귀리 같은 곡식들은 왕겨 껍질을 쓰고 있어 정미기가 없던 고대에는 불에 껍질을 살짝 그을려 가루를 만들었는데 그러면 발효가 되지 않아 빵을 만들 수 없다. 죽이나 끓여 먹을밖에. 


 



빵은 저장성과 이동성이 매우 뛰어난 음식이어서 전투음식으로 최고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밥은 금방 쉬고,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 없다. 전투음식으로 최악이다. 밀 농사지역은 농한기가 여름인 데다가 초원지대를 이뤄 전투하기 안성맞춤이다. 반면 벼농사는 겨울이 농한기인 데다 물이 담긴 논을 밟고 다니며 전투하기란 너무 힘들다. 


문명의 발원지인 세계 4대강은 밀 농사지역이다. 나일강 피라미드,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론, 중국 만리장성…. 거대한 문명을 건설하려면 수많은 노동자들을 먹일 식량이 관건이다. 그런데 피라미드는 무덤 아니던가? 식량을 낭비하고 자연을 파괴한 문명이 고작 무덤이라니. 만리장성은 또 어떠한가? 전쟁을 위한 문명 아닌가. 나는 이곳들이 황폐해진 건 밀 농사와 무관치 않을 거라 본다. 자기 땅이 망가지니 한 곳에 오래 못 살고 돌아다녀야 했던 것이 밀문명, 서양문명이다. 무역도 큰 몫을 했다.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이집트, 로마, 서유럽, 드디어 아메리카에서 전 세계까지.


가장 평화로운 음식은 고구마다. 주식 중 단백질이 가장 적고 연작이 가능하여 땅을 망가뜨리지 않는 음식이다. 고구마 다음으로 평화로운 음식이 쌀인데 물을 담아 키우기 때문에 연작피해가 적다. 또 고기 대신 먹는 콩은 땅을 비옥하게 해 준다. 벼 수확 후 심는 보리는 여름 내내 수고한 땅을 치유해준다. 그렇게 우리 밥상에 올라온 꽁(콩)보리밥은 자연을 지키고 건강을 지켜주는 고마운 음식이다. 


우리는 밀을 개떡이라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밀을 좋아한다. 빵을 만들어 주식으로 먹는 밀이 아니라 통밀째 해먹는 음식, 통밀가루로 만든 수제비 부식이 워낙 맛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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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우간다의 이디 아민 전 대통령은 자신이 집권하던 1978년 우간다와 국경분쟁이 잦은 탄자니아의 줄리어스 니에레레 대통령에게 “양국 대통령 간 권투시합을 해서 국경문제를 해결하자”고 황당한 제안을 했다. 결국 ‘아프리카의 히틀러’로 불리던 독재자 이디 아민은 1979년 권좌에서 쫓겨났고 2003년 생을 마감했다. ‘인간백정’이라 불릴 만큼 악명높던 그가 스포츠정신의 백미인 권투를 전쟁의 대체수단으로 제안했다는 대목이 씁쓸하다. 


2007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였던 존 매케인은 자신을 ‘권투광신자’라 칭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열흘째 되던 날 WBC 슈퍼웰터급 타이틀전을 보기 위해 유세현장 대신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특설링을 찾을 정도였다. 해군사관학교 생도시절 권투선수였던 그는 막사에 반입금지품인 TV를 들여놓고 금요일 밤마다 몰래 권투경기를 시청했다고 한다. 매케인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존경한 이유도 루스벨트가 하버드대 재학 시 권투선수였고 대통령이 되고도 수시로 권투시합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대본 없이 임의로 진행되는 권투시합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권투 리더십을 배우고 싶었던 것일까. 


강펀치 날리는 지인진 (출처; 경향DB)


BC 3000여년 전 이집트 등지에서 기원했다는 권투는 공정하고 순수한 운동이다. 두 선수가 팬티차림의 맨몸으로 실력을 겨루기 때문에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다.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패배자가 되더라도 승리자를 축하해주는 ‘스포츠맨십’이 진하게 우러나오는 종목이다.


이광준 춘천시장(58·새누리당)과 김영일 춘천시의회 의장(54·민주통합당)이 오는 3월9일 춘천에서 열리는 ‘2013년 춘천 아마추어 선수권대회’의 3라운드짜리 오픈경기에서 맞붙는다. 두 사람은 그동안 지역 현안 해결을 놓고 자주 갈등을 빚었는데, 링 위에서의 대결을 끝으로 더 이상 다투지 말고 서로 화합하자는 취지로 뜻을 같이했다. 사상 초유의 시합일정이 확정되자 두 사람은 체력 다지기와 테크닉 연마 등 경기준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스포츠정신에선 승패보다 페어플레이가 중요하다지만, 인간의 본능상 기필코 승리하겠다는 마음이 왜 없겠는가. 


과연 한번의 주먹대결로 시와 의회가 화합할 수 있을까. 이벤트 시합으로 화합을 이룰 수만 있다면 이제부터 각 시·도청과 국회 앞마당에도 링을 설치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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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기차를 처음 탄 것은 동대구역에서였다. 방학이면 무조건 거창의 큰댁으로 가서 뛰놀았던 나는 부산~거창을 오고갈 때, 천일여객의 시외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어느 해 여름 한철을 보내고 고향을 떠날 때, 버스표를 구하지 못해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갔다. 내 기억에 그때 아마 처음으로 기차를 탔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언저리의 일이다.


그러고 기차를 여러 번 탔다. 가장 길게 탔던 것은 고등학교 졸업식 마치고 대학교 본고사 시험 치러 서울 갈 때였다. 그때 나는 검정 교복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쓰고 검은 책가방을 들고 소위 상경이라는 것을 했다. 선생님 인솔하에 대학교 시험 치러 가는 친구들과 단체로 기차를 탄 것이다. 서울이 무슨 고원지대도 아닐 텐데 왜 상경(上京)한다고 했을까. 서울은 높은 곳이라서 그곳에 살려면 그만큼 아슬아슬함을 견디라는 암시였을까.


 

바다를 기고 기차가 달리는 여수의 풍경 (출처; 경향DB)



그 이후 기차를 아주 많이 탔다. 수십 년을 지나온 나의 생애가 제자리에서 그냥 흐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뿐인가. 내 안으로는 몇 개의 터널도 뚫렸고 그 내부로는 숯검댕도 많이 쌓였다. 정거장도 몇 개 생겨났다. 나의 몸도 세월을 감당하면서 방황을 해야 했고 바람을 따라 흔들려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이력이 기차처럼 제법 길어졌을 때. 나의 기억이 석탄을 실어나르는 화물기차 한 칸처럼 어두컴컴해졌을 때. 나는 궁리출판을 세웠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두 번째로 펴낸 책이 독일의 사회학자 볼프강 쉬벨부쉬의 <철도 여행의 역사>였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으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에 대한 미증유의 감각을 체험케 한 것이 바로 기차였다. 이 완강한 쇳덩어리를 타고 인간은 근대를 횡단하면서 도시로 돌진한 것이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거창에서 부산으로 갔다가 다시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떠난 셈이었다.


전도유망한 시인으로 활약하다가 몇 해 전 입산 출가한 분이 있다. 그 이후 소식은 들을 수 없지만 아마 이제는 한 소식을 접하고 수행에 정진하고 계실까. 출가하기 전 발표한 ‘소화(消化)’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차내 입구가 혼잡하오니/ 다음 손님을 위해서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승객 여러분/ 봄 여름 가을/ 입구에서 서성대고 계시는/ 승객 여러분/ 입구가 몹시 혼잡하오니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갈 봄 여름 없이/ 가을이 옵니다/ 다음 손님을 위해서 조금씩/ 겨울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정류장은 봄입니다.”


가까운 분의 황망한 부음을 받고 울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표를 구하느라 이런 자리를 배당한 것일까. 좌석번호가 ‘12호차 1B’였다. 기차를 타고 보니 출입구의 바로 첫자리였다. 그간 기차를 많이 타보았지만 이 자리는 처음 앉아보는 곳이었다. 중간의 창가에 앉았다면 아마 바깥 풍경에 마음이 많이 쏠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두리번거리느라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첫 칸, 그것도 통로 측에 앉고 보니 나의 귀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입구는 조금 혼잡했다. 뻥 뚫린 귀에도 문(門)이 있었던가. 귀문이 활짝 열린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소리들이 그 문을 통과해 들어왔다.


전남 곡성 섬진강변을 달리는 증기기관차 안에서 매점 손수레를 운영하는 윤재길씨 (출처 :경향DB)


발자국 소리, 겉옷 벗는 소리, 출입문 여닫는 소리. 이음칸에서는 소리의 종류도 다양했다. 사람들 속삭이는 소리, 휴대폰 통화하는 소리, 화장실 문 여는 소리. 그 사소한 틈을 타고 찬 공기가 무시로 밀려들었다. 찬 공기는 나의 뒷덜미를 잡아채면서 자꾸 밖으로 불러내려고 했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면서 미리 예방주사를 맞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봐, 자네 차례가 멀지 않았네. 천천히 나갈 준비를 하게!” 


이 자리는 처음 앉아보는 곳이었다. 앉았다기보다는 대기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자리였다. 앉은 자리에서 앞으로 나란한 좌석들을 보았다. 두더지처럼 승객들의 머리가 불룩불룩 솟아있었다. 잠깐 일어나 탁자가 구비된 동반석에 앉아가는 4인의 핵가족을 보았다. 젊은 부부는 까닥까닥 졸고 아이 둘이 새우깡과 초콜릿을 먹고 있었다. 귤 껍질도 흩어져 있었다.


나도 처음 기차를 탔을 땐 저 중앙 언저리의 자리였던 것 같았다. 이젠 차츰차츰 밀려나 오늘은 맨 가장자리가 내 자리였다. 출입문이 하나의 경계가 되고 나는 언젠가 이 실내에서 나가 이음칸에서 서성거리다가 저기 바깥 풍경에 꽂혀야 한다는 암시일까. 이 차에도 정원이 있고 나는 다음 손님을 위해서 겨울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윽고 우리 열차는 곧 울산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속도를 조금 낮추었지만 기차는 계속 덜컹거렸다. 나는 내릴 준비를 위해 일어났다. 선반에서 배낭을 챙기는데 커브길을 도는지 몸이 잠시 휘청했다.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은 곧 무언가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천천히 기차가 섰다. 소화가 끝나고 되새김질을 잠시 멈춘 것인가. 육중한 기차가 나를 바깥으로 탁,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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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법원이 야스쿠니 신사 방화 혐의로 일본 측의 송환 요청을 받아온 중국인 류창의 인도를 거부한 것은 법과 상식을 모두 충족시키는 결정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엊그제 류창의 방화 동기가 “정치적 대의에 대한 정치적 항의를 위해 행해진 것”이라고 규정하고 정치범의 경우 송환을 거부할 수 있는 한·일 범죄인인도조약 3조를 적용했다. 일제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인식과 분노에 기인한 범행인 데다 범행대상인 야스쿠니 신사가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니라 국가시설에 상응하는 정치적 상징성이 있는 곳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나아가 “류창의 인식과 견해는 대한민국의 헌법 이념 및 유엔 등 국제기구, 대다수 문명국가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일제의 반인도적인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통념을 따랐다. 


'야스쿠니 방화' 중국인 류창 석방 (출처 : 경향DB)


류창을 일본에 송환한다면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미화하고 있는 일본 극우세력에게 핍박받을 것이 불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재판부가 인정했듯이 류창은 한국인 외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인 데다 외증조부는 한글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중국인 조부 역시 일제에 항거하다 사망했다. 일본 측 주장대로 방화혐의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국내법과 국제법은 물론 인도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결정이 됐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 사법부가 독자적으로 판단한 것인 만큼 이를 존중해야 마땅하다. 일본이 반발한다면 올해 새 출발을 하는 양국관계에 암운을 던질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남우세를 사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의 누카가 후쿠시로 자민당 의원은 어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박근혜 당선인을 만난 뒤 외교통상부를 찾아 한국 법원의 류창 인도 거부 결정에 유감을 표명했다. 박 당선인은 특사들에게 “양국이 새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계기로 서로 간에 여러 분야에서 노력을 기울여 국민 정서에 맞는 신뢰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일본 측은 박 당선인이 말한 ‘국민 정서’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일 간 과거를 묻고 간다는 식의 안이한 발상은 필연적으로 동티를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임기 초 대일관계에서 창대한 미래를 강조하다가 초라한 결말을 내놓은 역대 대통령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기 바란다. 과거사는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법원이 류창 인도 거부 결정을 내린 날, 또 한 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망백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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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밀실 심사와 쪽지 예산 편성 등으로 2013년도 예산안을 누더기로 만든 뒤 곧바로 집단 외유를 떠나 입길에 오르고 있다. 위원장인 장윤석 새누리당 의원과 여야 간사인 김학용 새누리·최재성 민주통합당 의원, 예산을 최종 조율하는 계수소위 위원인 김재경·권성동·김성태 새누리당, 홍영표·안규백·민홍철 민주당 의원 등 9명이 주인공들이다. 해외 예산시스템 연구를 명목으로 1억5000만원가량의 비용은 예결위 예산으로 조달했다고 한다.


이번 예산안처럼 말이 많은 경우도 흔치 않은 것 같다. 예산안 처리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해를 넘겼다는 절차상 문제는 내용에 비하면 애교에 속한다.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지역·민원 사업 예산을 반영해줄 것을 동료 예결위원들에게 부탁하는 ‘쪽지 예산’이 4500여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300명인 국회의원 1인당 평균 15건씩의 예산 청탁이 오갔다는 얘기다. 여야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성 예산 챙기기가 여전했고, 토목 예산이라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정부안보다 3710억원이나 늘어났다. 이 와중에 하루만 배지를 달아도 매달 120만원씩 연금을 평생 받는다고 해서 의원들의 대표적 특권으로 비판받아온 ‘헌정회 연로회원 지원금’ 128억2600만원도 챙겼다.


새해 예산안에 합의한 최재성 민주통합당 간사, 장윤석 위원장, 김학용 새누리당 간사 (출처 : 경향DB)


문제의 9인은 이처럼 누더기가 된 예산안 처리를 주도한 인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원장과 여야 간사는 국회가 아닌 서울시내 호텔들을 돌며 ‘밀실’ 계수 조정을 했고, 계수소위 위원들은 각자의 재량 범위 내에서 실세나 동료 의원들의 쪽지 예산을 받아 처리했다. 이래 놓고도 중남미 3국과 아프리카 3국을 돌며 해외 예산시스템을 연구하겠다니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이 중 어떤 이는 출국 직전 예산안 내용 취재차 전화를 한 본지 기자에게 “할아버지 산소에 있다”고 거짓말까지 늘어놓은 것을 보면 스스로도 제 발이 저렸던 모양이다.


이번 일이 비단 9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예산안이 처리되면 매년 가는 곳”이라는 국회 예결위 관계자의 해명 속에서 특권의식이 묻어나고, 국민과의 괴리가 느껴진다.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예산 증액심사에 대한 속기록을 의무화한다는 등의 대안이 거론되기 시작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나 다를 바 없다. 인식 전환이 전제되지 않는 제도 개선은 반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회가 주요 임무 중 하나인 예산안 처리마저 제대로 잡지 못하면서 ‘새 정치’ 운운하는 건 면목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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