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고객님, 신제품 할인행사가 있으세요.” 요즘 익숙하게 듣는 ‘이상한’ 경어체이다. 고객과 구매할 상품을 동시에 존대하는 이런 말투를 들으면 야릇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문법 파괴를 개탄하는 소리를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는데, 이 문제를 그냥 ‘개념 없는 젊은 세대’ 탓으로 치부하고 지나가기에는 개운치 않은 점이 있다. 고객과 상품을 동시에 높이는 경어체야말로 한국 사회의 노동구조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거울상 같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고객은 무엇인가? 자본을 소유한 특별한 신분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생산자이자 동시에 소비자들이다. 소비자는 화폐를 사용해서 상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신이 생산한 상품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셈이다. 화폐의 매개 없이 상품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횡령 아니면 절도에 해당한다. 근대사회는 이런 행위를 범죄로 규정해 금지하고다. 



(경향신문DB)



화폐는 곧 상품을 가질 수 있는 능력 또는 자격을 동시에 표상한다. 이 표상 관계로 인해 어떤 상품을 소유할 수 있는지에 따라 특정인의 능력이 판가름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객과 상품 모두를 올리는 ‘존댓말’은 실제로 고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상품을 특화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고객은 상품을 소유함으로써 비로소 특정한 자격을 가진 존재로 인준받는다. 상품은 마치 매트릭스처럼 처음 탄생의 순간만 인간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자신을 만들어준 당사자를 배제한다. 루이비통을 만드는 노동자가 루이비통을 가지기 힘든 것은 이 때문이다. 


상품은 생산자의 자격도 규정한다. 일전에 가짜 명품가방을 만들다가 검거된 어떤 이에 대한 보도가 있었는데, 문제의 업자는 과거 명품회사에서 직접 가방을 만드는 기술자였다가 퇴사 후에 몰래 가짜를 만들어 수십년간 유통시키다가 들통이 났다. 그러나 명품을 만들다가 퇴사해서 계속 명품을 수십년간 만들었다면, 그 직공이야말로 최고의 장인이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명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셈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만든 제품은 정당한 상품 유통구조에 들어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짝퉁’으로 취급된다. 이 에피소드야말로 상품이 어떻게 생산자를 소외시키는지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자는 보람보다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즐거움을 누리는 방식이 ‘나’를 구성하는 요소라면,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즐거움이고, 이를 통해 생산자라기보다 소비자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것이 훨씬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생산자가 사라지고 소비자가 부각된 까닭이다.


“고객님, 신제품 할인행사가 있으세요”라는 표현은 그러므로 단순한 말실수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 말이 보여주는 것은 상품의 판매를 위해 매개자가 되는 것 이외에 다르게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어떤 ‘감정노동자’의 궁여지책이다. 자신의 감정을 상품이라는 대상에게 내어주고, 자신을 감추는 태도야말로 지금 목도하고 있는 ‘소비사회’에서 장삼이사들이 살아남는 전략일지도 모른다. 


영국은 중산층 대부분이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반면, 한국은 대조적으로 노동자 대부분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는 통계가 있다. 지금까지 이런 전도현상을 ‘국민의식’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각성하지 못한 대중’에 대한 비판이 이른바 진보를 구성하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어떻게 대중이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다른 삶’을 갈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세상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구분해 악을 제거하면 좀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환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한국 진보의 상황이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가혹한 것일까? 거듭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던 진보세력 중 일부가 선택한 것이 결국 ‘조직 보전’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보수주의였다는 사실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생존이 곧 전략이 되는 상황은 그만큼 변화로부터 격리되어온 그 집단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진보의 고민이 시작되어야 할 지점은 정치공학적인 해결책도, 선거제도의 정비도, 야권연대의 유지도 아니다. 더 이상 특정 세력의 생존이 진보의 전략으로 치환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고객님, 신제품 할인행사가 있으세요”라는 발화를 요구하는, 그 ‘틀린 문법’의 현실에서 진보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필요한 것은 소비주의의 지층에 묻힌 대중의 정치를 발굴하는 작업이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가장 중요한 원칙을 망각하고, 자신을 지키려는 그 의지야말로 권력의 논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신이 옳다고 믿지 않았던 폭군도 없었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은 폭력도 없었다. 이제 진보의 미래를 비춰볼 거울은 소비의 그늘에 가려진 생산자의 정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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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 대중문화평론가


 

돌이켜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노래를 가지고 별별 일을 다 한 대통령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에게는 ‘베사메무쵸’가,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상록수’가 떠오르지만 그건 그저 그들의 애창곡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리면 수많은 노래들이 머릿속에서 엉킬 정도로 복잡다단하다.


그는 노래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이해하는 대통령이었다. 5·16 쿠데타 1주년 기념식에 주문제작한 ‘잘 살아 보세’를 발표해 국민적 애창곡으로 만들었다. 쿠데타 수뇌부가 작사자로 방송극작가 한운사를 낙점까지 했다니 놀라운 혜안이다. 이후 박정희 시대 내내 공공단체와 방송국 등이 추동하여 많은 건전가요들이 쏟아져 나왔고, 길옥윤 작 ‘서울의 찬가’, 신중현 작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 적지 않은 노래가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노래를 작사·작곡하여 전 국민에게 부르도록 했다. ‘나의 조국’과 ‘새마을 노래’가 그것이다. 유신시대 내내, 텔레비전에서는 애국가에 뒤이어 두 노래가 나온 후에야 방송이 시작되었다. 국립합창단의 ‘나의 조국’ 뮤직비디오는 애국가 못지않게 웅장하여,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에 높은 기상 이 겨레 지켜왔네’란 대목에선 여지없이 백두산과 한라산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내 또래들은 지금도 3절까지 입에서 줄줄 나올 만큼 많이 불렀던 노래인데, 대학에 들어가 보니 선배들이 ‘5·16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10월유신 없었으면 이 나라 망했겠네’ 식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며 킬킬댔다.



1958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 2004년까지 2,100여곡 발표. 가장 많은 노래를 가장 오랜 기간 불렀고 음반판매 수익이 가수 중 최고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대중가수. 유신정권 시절 '동백아가씨'는 왜색풍이라는 이유로 '기러기 아빠'는 가사가 불온하다는 이유로 금지곡 반열에 올랐다. (1941.10.30 - ) (경향신문DB)



‘새마을 노래’를 제쳐놓고 하필 이 노래가 야유의 대상이 된 것은, 이 노래가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력이 없는 ‘올드패션’의 선율로 되어 있었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이 노래는 일본식 ‘라시도미파’의 5음계로 이루어진 것으로, 트로트와 동일한 음악언어를 쓰고 있다.(목소리를 꺾으며 느린 템포로 불러보면 영락없는 트로트이다.) 1917년생으로 트로트와 일본 군가의 전성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을 그가 이런 일본색의 노래를 구사했다는 것은, 할리우드 키드들이 할리우드 감각의 영화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애창곡도 트로트의 원조 격인 ‘황성 옛터’라지 않는가. 하지만 그의 집권기 내내 ‘동백 아가씨’ 등의 트로트 곡이 ‘왜색가요’로 낙인 찍혀 금지곡이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런 걸 보면 박정희 정권기의 금지곡이란, 트로트의 일본색이 문제라서, 혹은 가사가 정말 퇴폐·불온해서라기보다는, 그런 금지곡을 몇 개쯤 만들어놓는 것의 사회적 파급력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윤리위원회가 발표한 대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가 ‘불신 조장’을 한다고 금지했다면 너무 우습지 않은가. ‘고래사냥’의 금지 사유인 ‘시의에 적절치 않음’은 또 뭐란 말인가. ‘라라라’(‘조개껍질 묶어’)는 길옥윤 작 ‘사랑이란 두 글자’의 표절이라는데, 난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금지곡으로 묶고, 대마초 사건을 대대적으로 터뜨려 인기가수들을 5년 동안 완벽하게 퇴출시킨 조치는, 확실히 사회 전체를 군기 잡는 효과로는 만점이었다.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 한두 놈만 대표로 세게 ‘빠따’를 치면, 모두 고분고분해지는 효과라고나 할까. 그 ‘한두 놈’을 대중적 파급력이 높은 대중가요로 선택했다는 것 역시 정말 탁월한 판단이었다. 정말 노래가 뭔지 아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수많은 금지곡들은 1987년 6월항쟁으로 제5공화국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야 풀렸다. 그 금지곡들을 모아, 10월유신 40주년과 6월항쟁 25주년을 기념한 ‘금지곡 콘서트’를 홍대앞과 정동에서 연단다. 참, 올해는 이래저래 기념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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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노동자가 가진 건 제 몸뿐… 그걸 망가트리는 게 야간노동이다”

 

“밤엔 잠 좀 자자!” 지난해 5월 야간노동의 폐해를 사회에 확산시킨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주간연속 2교대제’ 투쟁이 1주년을 맞았다. 이 투쟁은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자본과 지배계급 진영의 반응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대통령은 ‘연봉 7000만원 받는 귀족노동자들의 배부른 투쟁’이라 비난했고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교대제 개선은 ‘노동 혁명’을 하자는 거라 주장했다. 그들은 유성 노동자들의 싸움이 단지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하루 8시간 노동이나 주5일제 도입 같은 커다란 역사적 물꼬가 될 것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유성 노동자들은 이미 주5일제 도입을 선도한 이력이 있다. 이정훈은 유성기업이 첫 직장으로 입사한 지 25년째인 노동자다. 작년 3월 민주노총 충북본부장을 마치고 복귀했다가 27명의 동료와 함께 5월 투쟁으로 해고되었다.

김규항 = 주간연속 2교대제는 이미 노사합의가 되었던 문제지요.

이정훈 = 저희가 5년가량 준비해서 2009년에 노사합의를 했습니다. 2011년부터 실시하기로 하고 매달 한두번씩 실무위원회를 했어요. 사측에서 출장비까지 지급했죠. 2011년 5월18일 오전에 주간연속 2교대제 조합원 찬반투표를 하고 주간조 조합원들이 두시간 동안 간담회를 했어요. 그런데 사측이 20시에 직장폐쇄를 하고 용역깡패들이 들어왔죠. 22시에 야간조가 출근해서 용역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냈는데 그날 용역깡패들이 대포차를 인도로 돌진시켜 노동자 13명이 중경상을 입었죠. 농성 6일 만에 경찰 4000명이 들어와 강제진압을 했습니다.

 

유성기업 해고노동자 이정훈씨가 지난 25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서울 덕수궁 앞 농성장을 찾아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글자판 뒤에 서 있다.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김규항 = 회사가 그렇게 나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까.

이정훈 =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실시를 미루고는 있었지만 직장폐쇄를 할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11번이나 교섭을 진행하면서 주간연속 2교대제 실행 자체에 대해선 문제 삼은 적도 없고요. 감쪽같이 우릴 속이면서 주간연속 2교대제뿐 아니라 아예 노조를 깨려고 준비해왔던 거죠.

김규항 = 원청사인 현대자동차가 배후라는 게 밝혀졌는데요.

이정훈 = 현대차 총괄이사의 차가 회사 안에 있었는데 저희가 차를 빼주다 ‘유성기업 불법파업 대응방안’이라는 문건을 발견했죠. 창조컨설팅이라는 업체에서 만든 문서입니다. 유성기업의 주간연속 2교대제가 이루어졌을 때 현대차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 전제되어 있고 노조를 깨기 위한 시나리오는 물론 매우 구체적인 내용까지 있었어요. 카메라를 어디에 몇 대 설치하고 용역깡패 인원과 장비 등등.

김규항 = 원청사가 하청사의 노무관리를 하는 건 사실 공공연한 비밀인데요. 창조컨설팅은 ‘창조가 들어가면 노조 깨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분야의 전문기업입니다.

이정훈 = 문건에도 삼신브레이크를 어떻게 했고 발레오전장을 어떻게 했는데 유성노조는 두 회사와 조직적 차이가 있으니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있더군요. 증권거래소에 제출한 현대차 경영 자료를 보니 2011년도에 유성만 단가 인상을 26% 해주었더군요. 보통 2~3% 해줍니다. 노조를 깨기 위해 들어가는 돈을 지원하는 셈이죠. 작년에 용역깡패에게 들어간 돈만 해도 500억원은 되거든요.

김규항 = “밤엔 잠 좀 자자”라는 유성 노동자들의 구호는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습니다. 심야노동이 건강을 해친다는 건 의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독일 의학계는 야간노동이 수명을 13년 단축시킨다고 발표한 바 있고, 국제노동기구(ILO)에선 40세 이상 노동자의 야간노동을 금지하고 있죠. 유성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이 42세가량이라 들었습니다.

이정훈 = 야간노동이 원인이 된 과로사로 한 해 한명 꼴로 죽었습니다. 기계에 말리고 일하다 쓰러지고 퇴근 버스에서 영영 깨질 않고. 야간조가 2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일하고 나와서 두어시간 자면 깨요. 잠을 더 자기 위해 술을 먹고 두어시간 자고 피로가 안 풀린 상태에서 또 야간 들어가는 거죠. 새벽 두시쯤 되면 죽음 같은 졸음이 쏟아지죠.

김규항 = 공장형 닭 사육을 보면 밤에도 대낮처럼 불을 켜놓거든요. 닭이 낮인 줄 알고 계속 사료를 먹죠. 몸이 완전히 망가지지만 중요한 건 살이 얼마나 찌는가일 뿐이죠. 인간의 야간노동은 그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정훈 = 모든 생명들은 낮엔 잠을 잘 못 자요. 가축도 밤엔 자게 해야 건강하죠.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로가 밭주인들은 가로등 설치를 하려 하면 열매를 못 맺는다고 들고일어나고 그러거든요.

김규항 = 가족들의 의견은 어떤가요.

이정훈 = 대환영입니다. 야간 노동을 하면 아이들 얼굴을 거의 못 보고 삽니다. 젊은 동료들이 아이가 아빠라는 존재를 잘 모른다고 호소하곤 합니다. 주말에도 나가야 하고.

김규항 = 어용노조가 작년 7월에 생겼는데 현재 1노조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정훈 = 복수노조 자체를 반대하진 않아요. 어용노조가 있는 회사에 민주노조가 생기면 좋죠. 문제는 민주노조가 있는 상태에서 어용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조를 깨는 거죠. 복수노조법이라는 게 자본이 악용하기 좋게 되어 있습니다. 민주노조가 1노조일 땐 두 노조와 개별 교섭을 하고 어용노조가 1노조가 되면 교섭창구 단일화를 해서 민주노조를 무력화하는 거죠.

김규항 = 한진중공업도 그렇고 복수노조법의 악용이 많습니다. 함께 투쟁한 노동자들도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용노조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정훈 = 조합원은 우리가 14명이 많은데 저쪽에서 관리자 49명을 넣어서 1노조를 만들었지요. 작년 7월1일에 어용노조가 서고 싸움이 힘들어지면서 복귀자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560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넘어갔죠. 어용노조 위원장은 89년도에 노동자 의사를 무시하고 사측과 직권 조인했던 사람입니다.

김규항 = 복귀자에게 모욕적인 전향식을 치르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정훈 = ‘모든 것들을 불법으로 인정하고 금속노조 탈퇴한다’는 각서에 서명하고 정문을 통과하면서 용역깡패들 앞에서 ‘나는 개다’를 세 번 외치게 했죠. 장년 노동자들로선 자식뻘인 청년들 앞에서요.

김규항 = 어용노조로의 이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까.

이정훈 = 오히려 다시 돌아오는 분위기입니다. 어용노조의 단체협상 내용들이 회사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면서 넘어간 조합원들이 꿈틀거리는 상태입니다. 그쪽 집행부도 사측이 너무 막나가니까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어려워 갑갑해하고 있어요.

김규항 = 용역을 비호하는 것도 그렇고 예나 지금이나 경찰 공권력과 검찰은 일방적으로 사측 편이라 노동자들의 투쟁을 힘들게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법원과 노동위원회에선 이기고 있지요.

이정훈 =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부당징계는 천안지원에서 승소했고 대전고법에서도 승소했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도 부당해고, 부당징계,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가 나왔고 사측에서 중앙노동위원회로 올렸는데 이길 거라 봅니다. 특별 근로감독에서도 70여 건의 부당노동 행위가 적발되어서 과태료 10억원이 나온 상태입니다. 손배 가압류도 다 기각되었습니다.

김규항 = 천안지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이 나면서 ‘원심확정 시까지 근로자 지위보전을 해라’ 해서 해고자들이 임금을 받고 있는 건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요즘 이명박 욕하면 ‘개념판사’라고들 하는데 노동자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게 진짜 개념판사죠. 용역깡패를 비호하는 문제라든가 경찰과 검찰의 일방적인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을 많이 어렵게 합니다만.

이정훈 = 대전고법 재판 때 유성 사장이 판사에게 ‘해고자 20여명의 임금을 지급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하니까 판사가 ‘법적으로 부당해고 판결이 났는데 그럼 복직시키면 될 게 아닌가’라고 반문하더군요. 법의 상징이 저울이잖아요. 저희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저울에 입각하여 정확한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김규항 = 법으로 이기면서도 안심하기 어려운 건 현대차는 물론 자본진영 전체가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통령도 ‘연봉 7000만원 받는 귀족노동자가 배부른 투쟁한다’고 비난한 적이 있고 보수언론은 일제히 주간연속 2교대제가 ‘노동 혁명’에 해당한다고 매도하는 것도 그런 맥락인데요.

이정훈 = 유성 특별수사본부가 127명으로 역대 최대 인원이었다고 합니다. 개구리소년 때 60여명, 화성연쇄살인사건 때 100명이 못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국가적인 사태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쪽에선 유성을 본보기로 삼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가 당하고선 부품사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 이야기가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자칫하면 유성처럼 된다는 두려움이 만연한 거죠.

김규항 = 선봉에 선다는 건 언제나 그만큼 많은 고통을 치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그놈의 ‘연봉 7000’ 이야기를 좀 하죠. 우선 유성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한 게 아니라 반대로 임금이 줄어도 좋으니 밤엔 잠 좀 자자는 것 아닙니까.

이정훈 = 저희 요구안으로도 현재 임금에서 30만~50만원 정도 줄어들어요. 노사 합의가 되면 아무래도 그보다는 더 줄겠죠. 그리고 연봉 7000만원을 받는 게 가능은 합니다. 그러려면 저 정도 경력의 노동자도 7000만원을 받으려면 야간노동은 물론 70시간 이상 잔업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 일하면 죽습니다. 7000만원도 적지요. 대통령은 뭐든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합디다만.(웃음)

김규항 = 현대차 같은 큰 이윤을 내는 회사도 공장이나 설비를 늘리지 않고 노동 강도를 높여 생산성을 해결하는 방식이 문제인데요. 일부 대공장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임금을 더 받기 위해 잔업특근을 함으로써 그에 부응하는 경향도 있어 왔지요. 작업특근을 많이 따내는 게 대의원의 능력이 되기도 하구요. 그게 허울좋은 ‘귀족노동자’의 실체죠. 그에 반해 유성 노동자들은 그런 근본적인 문제와 대면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도 10여년째 못하고 있는데 노조원이 100분의 1에 불과한 유성노동자들이 야간노동 문제를 사회적으로 떠올렸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중들이 ‘밤엔 잠 좀 자자’라는 구호에 많이 호응도 했지만 반대의 정서도 여전합니다. 현재 한국 노동자들이 사무직 빼곤 야간노동 안하는 경우가 없는 형편이다보니 냉소적인 반응도 보입니다.

이정훈 = ‘경기도 어려운데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 아니냐’ ‘비정규직은 100만원도 못 받는데 지들은 살 만하니까 야간노동도 안하려고 하는구나’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정서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야간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게 분명한 이상 우린 야간노동을 없애야 합니다. 노동자는 가진 게 몸뚱이뿐인데 야간노동은 그걸 망가트립니다. 당연히 함께 싸워서 없애야지요.

김규항 = 유성 노동자들의 승리가 결국 모든 노동자들의 보편적 현실이 되는 건데 자본과 지배계급은 유성노동자들이 특권을 누리려 하는 것처럼 매도합니다. 서로 반목하게 해서 손쉽게 지배하는 수법은 한국에서 유서 깊은 것입니다. 여전히 대중들이 현혹되는 경향도 있지만 의식수준이 예전 같지 않아서 결국 한계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상급식을 결국 못 막아낸 것과 비슷하죠. 결국 어떻게든 실시가 될 거라 볼 때 자본은 실시는 하되 내용에서 또 뒤틀려고 할 텐데요.

이정훈 = 현대차도 그렇다고 알고 있는데 사측에선 가긴 가더라도 임금의 충분한 삭감과 노동시간은 줄어도 생산량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려 하죠. 그러나 야간노동 폐지의 의미를 가지려면 앞서 말씀대로 노동 강도로 생산량을 유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산 시설을 확대하고 고용도 늘리자는 쪽으로 가야만 합니다. 자본 측에서는 8시간씩 3교대를 제안하기도 하는데 이건 생활 리듬이 깨지면서 건강에 더 해롭습니다.

김규항 = 유성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울 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현실을 함께 생각하며 싸우고 또 연대의 모범을 보여 왔다는 건 잘 알려진 일입니다. 노조의 요구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도 했고 여전히 유성기업엔 비정규직 노동자가 없습니다. 유성 투쟁에 연대한 젊은 활동가가 유성 노동자들을 ‘멋진 아저씨들’이라 말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존경심이 묻어나더군요.

이정훈 =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특별하게 여겨질 때마다 우리 노동운동이 뭔가 많이 잘못 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본과 지배계급은 그렇게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면서도 노동자와 대립할 땐 철저하게 공조하지 않습니까. 이해관계가 일치되어있다는 걸 귀신처럼 알고 말이죠. 우리가 그들에게 밀리는 이유는 언제나 우리가 그들만큼 연대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고 연대하는 건 양보나 희생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싸움입니다.

김규항 = ‘멋진 아저씨들’이라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웃음) 자본과 지배계급이 본보기로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꼭 이겨서 승리의 본보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유성 노동자들이 밤에 잠을 잘 수 있게 되면 머지않아 모든 노동자들이 밤엔 잘 수 있게 됩니다. 많이 분들이 연대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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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숲학교 오래된미래’ 교장 happyforest@empas.com


산중 숲에 사는 나는 세상 소식을 대할 채널이 많지 않다. 하루하루의 소식 정도야 라디오의 뉴스를 통해 주로 얻어 듣지만, 세상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채널은 마땅한 것이 없다.

하긴 도시에 살 때와 달리 세상의 흐름에 큰 관심도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흐름이 궁금할 때면 나는 서점가의 신간 소식을 찾아보곤 한다. 신간의 제목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분야별로 대략의 세상 흐름을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의 눈길을 끈 신간 도서의 흐름은 ‘아픔’에 대한 강조다. 이 시대의 세상 전체를 피로사회로 규정하는 책도 있고, 청춘은 본래 아픈 시절이라고 좌절감이 큰 청년층을 위로하려는 책도 있다. 중년의 마음을 끌기 위한 어떤 책은 ‘마흔은 아플 수도 없는 아픔’이 있는 큰 버거움을 안고 산다고 자극한다.

 


청춘이건 중년이건 세상이건, 그만큼 피로하고 그만큼 내상(內傷)을 안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일까? 청년실업과 저임금, 비정규직 취업구조 속에서 삶을 시작해야 하는 청춘, 뜻하지 않게 조직을 떠날 수도 있는 상시 위험의 구조 속에서 삶과 가족을 걱정해야 하는 중년을 생각하면 아픔이 부각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숲과 자연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고, 그 지혜를 세상과 나누며 살고 있는 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스스로를 아픈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을 염려하게 된다. 몸이 겪는 병도 너무 아픔을 크게 받아들일 경우 몸을 추슬러 다시 생기를 되찾는 것을 오히려 늦추거나 방해하듯, 시대적 정신적 통증 역시 지나치게 강조되고 확산되는 것은 우리를 더욱 무기력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된다.

나는 오히려 아픔이 삶의 일부임을 강조하고 싶다. 삶 전체에 희로애락이 순서를 두지 않고 찾아들고 섞이고 또 반복하듯, 아픔 역시 전체 삶의 어느 국면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을 인정하자 말하고 싶다. 역사 역시 그 흐름이 섞이고 다시 반복되는 것이니 찾아든 아픔을 전부로 여겨 그 앞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권하고 싶다. 나의 역설은 숲에서 살아가는 나무와 풀의 삶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단호하게 표현하면 그것이 곧 자연의 가르침이라는 말이다.

내가 사는 여우숲은 아주 오래 전에 산사태가 있었던 곳이다. 산의 한쪽 면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 크고 작은 바위와 돌도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무너진 산의 사면이 모두 천이(遷移)의 과정을 통해 다양한 나무와 풀로 복원되었고 마침내 숲을 이루었지만 표면에는 정상에서 흘러내린 바위와 돌이 가파름을 지탱하고 있는 형상을 보이는 숲이다.

상상해 보라! 여우숲처럼 바위와 돌이 많은 산에서 삶을 시작해야 하는 개별 식물의 삶은 어떨까? 태어날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생명은 하나도 없다. 삶은 오직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도 짐승도 식물도 모두 마찬가지다. 더욱이 식물은 태어난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스스로 움직일 수조차 없다. 광합성이라는 획기적인 능력을 가져 스스로 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재주를 선물로 받은 대신, 오직 태어난 자리에서 제 하늘을 열고 꽃피워야 한다는 형벌도 함께 받은 생명이 식물이다.

바위와 돌이 많은 지형인 이곳에서 삶을 시작한 여우숲의 나무들, 특히 바위 위에서 발아한 나무들은 모두 바위를 끌어안거나 바위를 뚫는 방법밖에는 삶을 지탱할 방법이 없었다.

참으로 큰 아픔이요, 재앙이었다. 바위에서 싹이 튼 여우숲의 그 나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왜 하필 이 자리에서 삶을 시작해야 하느냐고 원망하는 삶을 살았을까? 나는 왜 산사태가 나기 전의 이 산에 태어나지 못했느냐고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부여잡고 아파했을까?

내 삶이 동구 밖의 느티나무보다 너무 척박하다고 여기가 아닌 저기의 삶을 부러워했을까? 이런 곳에서 내가 꽃이나 제대로 피워낼 수 있겠느냐고 아직 주어지지 않은 미래를 걱정했을까?

아니다. 여우숲의 소나무는 바위 틈을 헤집어 뿌리를 박았다. 키는 조금 작더라도 그렇게 제 하늘을 열었고 가을이면 오래된 솔잎을 떨구며 토양의 비옥도를 조금씩 높여나갔다. 여우숲을 이루고 있는 또 다른 나무인 느티나무나 신갈나무들은 바위를 끌어안았다. 자신을 핍박하던 바위를 끌어안음으로써 마침내 어떠한 태풍이나 강우에도 버텨낼 버팀돌로 바꿔놓았다. 참으로 많이 힘겹고 아픈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모두 숲의 주인이 되었다. 지금 이 숲의 신록은 모두 그들이 아픔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결과다. 노루와 살쾡이, 멧돼지가 이 숲으로 되돌아온 것은 모두 아픔의 국면을 담담하게 건너 낸 나무들의 공이다. 지금 여우숲은 소쩍새 소쩍- 소쩍- 노래하고 부엉이 푸호- 푸호- 울어대며 검은등뻐꾸기 뽀-뽀-뽀-뽀 유혹의 소리가 한창이다. 잔치가 따로 없는 날들이다. 이 숲의 잔치는 모두 아픔을 껴안고 제 하늘 열어 꽃피워낸 바위 위의 나무들의 분투가 차려낸 밥상이다.

그렇다. 나만 아프고 인간만 아픈 것이 아니다. 내게만 결핍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픔과 결핍은 생명 모두에게 주어지는 신의 형벌인지도 모른다. 가없이 나약한 생명이 바로 우리 인간이니 어쩌겠는가? 아파하자, 그러나 주저앉지는 않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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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 | 한예종 영상원생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다. 한 달 동안 끔찍한 일들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태와 연이어 벌어진 중앙위원회에서의 폭력 사태, 한 당원의 분신, 검찰의 당원명부 압수수색과 이번 사태들과는 아무런 연계가 없는 몇몇 사회주의 단체들에게 가해진 공안 탄압, 그리고 덕수궁 앞에 차려진 쌍용차 22명의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폭력적으로 철거된 일까지. ‘지옥’이란 게 달리 특별한 고통이 있어서 지옥인 게 아니라면 단체로 ‘멘붕’에 빠진 오늘날의 진보세력이야말로 지옥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사태를 초래한 데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구당권파는 사태의 본질을 ‘마녀사냥’이나 ‘정치공작’으로 치부하면서 맞불을 놓고 버틸 뿐, 자신들이 초래한 파국적 사태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다. 진실공방으로 논점을 흐리며 일정한 정치적 명분을 확보한 뒤 시간을 벌려는 조야한 출구전략을 갖고 있을 뿐이다.

 

통진당 중앙위 결과발표 ㅣ 출처:경향DB

한편 반대편에선 “우린 경기동부가 아니”라며 이 사태가 어떤 악마적 행위들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고 힐난하는 데 열심이지만, 그것은 허울 좋은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저 이 끔찍한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 바라며 변변찮은 제스처를 보일 뿐이다. 이를테면 애국가를 부르겠다든지, 미군철수 요구를 재검토하겠다든지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애초에 이 사태를 불러일으킨 원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오히려 이 사태를 활용해 노선의 우경화를 강제하는 공안당국의 입맛을 채워줄 뿐이다. “국회에서 왜 애국가를 꼭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던 유시민이 정반대편에 서서 ‘빨갱이 사냥’에 나선 것은 오늘날 ‘진보’가 얼마나 모순적이며 우스꽝스러운 파국에 처했는지 잘 보여준다.

소위 진보정치 세력이 집단적으로 멍 때리고 있는 동안,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져 있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는 이른 아침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철거되었다. 영정이나 모금함까지 가릴 것 없이 죄다 쓰레기차에 실려 사라졌다. “그것은 쓰레기가 아니다!”라고 절규했지만 돌아온 것은 폭력적 연행뿐이었다.

우리가 진보의 위기를 돌파하고 ‘진보’의 새로운 이름과 자리를 찾으려면 이 사태를 오늘날 진보세력 전반이 처한 오류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부정경선 말고도 야권단일화 경선 여론조작, 성폭력 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정진후의 비례대표 공천, 성추행 전력 후보에 대한 부실 검증, 현직 지방의원의 사퇴 후 총선 출마 등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으로서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치부를 드러냈다.

이것은 과거 민주노동당이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보다는 의회에 대한 물신적인 태도를 강화하면서 점점 극심해진 경향이다. 국회의원 몇 자리 생긴 이후 인력과 재정의 배치가 의정지원에 편중되었고, 당이 품을 정치적 상상력을 키우고 사회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기보다는 스타정치인들의 의정활동에 주력하면서 그들이 전면에 나서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국회의원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파 간 경쟁도 격화되었다. 활동의 초점이 대안 이념이나 운동이 아니라 당권 장악과 공직 진출에 맞춰지게 된 것이다.

총선과 대선이 몰린 시기 선거공학에 따라 무원칙한 합종연횡과 권력분점을 시도한 산물이 바로 오늘의 통합진보당이다. 이런 한계 속에서 정파들 간의 지분 안배와 당직·공직 진출은 처음부터 첨예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통합 이후 대의기구 지분 분할과 비례대표 선출을 둘러싸고 지난한 논쟁과 치열한 경쟁이 발생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결국 당권파로 새로이 등극한 심상정을 위시로 한 세력이 자유주의 세력과 통합하고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추진한 통합진보당의 노선을 변경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 사이 진보 고유의 대안적이며 급진적인 가능성들은 점차 소멸되어 갈 공산이 크다.

지난 한 달 우리가 목격해온 것이 ‘지옥’이라면, 우리는 이 지옥에서의 악전고투를 거듭할 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끝내고 다시 신발끈 동여맬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그 자리가 소위 진보세력이 허우적거리던 그 순간에도 묵묵히 존재를 위한 저항을 이어온 쌍용차 해고노동자,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비롯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통합진보당은 민주당 옆자리 어디쯤, 정권교체 후 꿰찰 장관 자리 하나쯤이 자신들이 갈 길이라고 횡설수설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는 앞선 세대의 과오를 반복하는 그런 미래는 거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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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혁 | 사회부


대검찰청이 지난 22일 발표한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검찰 입장’(이하 입장)은 검찰이 자신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매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문서이다. ‘입장’에서 검찰은 정치·사회적 갈등의 ‘최종 해결자’ 역할을 자임하는 것처럼 보인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수사의 배경을 설명한 ‘입장’의 첫 단락은 세 문장으로 이뤄져 있다. 먼저 “통합진보당은 지난 4·11 총선에서 민주적인 비례대표 후보자 선출방식을 통하여 높은 정당득표율을 이끌어냈으나, 최근 불거진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의 총체적인 부정 의혹’으로 인하여 국민적인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이어 “ ‘부정경선 의혹’을 해결하여야 할 통합진보당은 당내 각 정파의 첨예한 대립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중앙위원회 폭력사태’는 국민들의 걱정과 우려를 넘어 공분을 초래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끝으로 “이미 총선 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던 ‘야권 단일화 관련 여론조작 의혹’, 연일 폭로되는 ‘핵심 인사들의 각종 금품 관련 의혹’ 등으로 인해 통합진보당 사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규정한다.

 

임정혁 대검찰청 공안부장 통합진보당 압수수색 브리핑 ㅣ 출처:경향DB

‘국민적인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 국민들의 걱정과 우려를 넘어 공분을 초래하게 되었다 →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층법적 서술에 이어 다음 단락에선 ‘이에 따라’로 시작하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수사와 압수수색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문장이 나온다. 요컨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중대한 사안인 만큼 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검찰의 논리다. 이것은 ‘법의 논리’보다 ‘정치논리’에 가깝다. 기실 특정 정당의 내홍을 놓고 검찰이 해결사를 자임하고 나선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입장’을 보면 검찰이 정서적으로 다소 고양돼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여론의 순풍을 타고 ‘종북세력’을 손볼 호기를 만나 들떠 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입장’에는 ‘종북세력’이라는 어휘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안검사들은 수사의 표적이 통합진보당 당권파, 이른바 ‘종북세력’임을 숨기지 않는다. ‘종북세력 척결’은 한상대 검찰총장의 지론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대통령은 난데없이 ‘종북세력’의 문제를 언급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번 통합진보당 사건은 ‘절차적 정의’와 관련된 것이다. 설혹 당내 부정경선을 주도한 세력이 ‘종북주의’ 성향을 갖고 있더라도 달라질 건 없다. 이들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절차적 정의를 위반했기 때문이지 ‘종북주의’ 성향 때문이 아니다. ‘종북주의’ 문제는 정치적 경쟁의 장에서 투명하게 평가받을 일이다. 불필요한 이념적 투사는 진보를 한 단계 성숙시킬 수 있는 이번 사태를 꼬이게 만들 뿐이다. 이미 징후가 보인다. 검찰과 여권의 ‘종북세력 척결’ 프레임에 맞서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공안탄압에 맞선 대동단결’을 주장한다. 진보세력이 수십년간 절차적 정의를 유예하게 만든 익숙한 구도의 되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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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점석 | 비교문학자


손님으로 초대받은 경우 나름의 식사습관 때문에 나는 가끔 난감한 상황에 빠지곤 한다. 밥알 한 톨을 남기지 않고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까닭에, 수저를 놓으려는 순간에 더 먹으라는 권유를 받고 끝까지 사양할 수 없어 몇 숟갈을 더 뜨고 어쩔 수 없이 포만감에 시달리며 자책하곤 한다. 탁발승이 아닌 속인이 밥알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데 더 권하지 않는 주인이 오히려 이상하겠다는 판단에, 습관을 바꿔 조금 남기며 난처한 상황을 막아볼까도 생각했지만, 학창시절에 경험한 너무도 강렬한 인상은 그런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나는 비구니들만이 수행 정진하는 고향의 도량을 찾아가 대뜸 한 달 동안만 생활할 수 있게 받아주라는 철딱서니없는 부탁을 했고, 용케도 그 억지가 통해 산사에서 행자승의 흉내를 내본 적이 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차가운 마루에 오체투지하며 108배를 올리는 동안 바닥의 냉기는 내 삶을 반추하게 했다. 그렇게 얼핏 닷새쯤 지났을 무렵 볕이 좋아 경내를 거닐며 우물가를 지나다 나는 못 볼 것을 보고만 사람처럼 뜻밖의 광경에 놀란 적이 있다. 설거지를 마친 스님은 한 손에 그러모은 밥알들을 물에 헹궈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넣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내가 바닥에 흘리고 그릇에 남긴 음식물 찌꺼기들이었다. 며칠 동안 묵묵히 나를 지켜보았을 그 마음의 깊이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을 비롯한 전국 25개 교구본사 주지들이 25일 견지동 조계사에서 도박추문을 참회하는 108배를 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ㅣ 출처:경향DB

이렇듯 청빈하지만 자족한 삶을 꾸려가려는 초발심을 되새기며 고여 썩지 않으리라는 서원에 자신을 가두고 용맹 정진하는 일상이 출가 수행승의 삶이다. 불편하지만 견디고 옹색하지만 군더더기가 없는 투명한 삶이,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확인했다. 마음 안에서 불길처럼 솟아나는 욕망과 밖에서 불어오는 탐욕을 잠재우고, 자기 아닌 것에서 벗어나라는 계율은 번잡의 늪에 빠지지 말라는 말일 게다. 사문의 길에 들어서기 위한 출가란 물질과 본능에 예속된 존재에서 떨치고 일어나 초월적 존재를 향한 삶의 의미를 실현하기 위한 고독한 결단이다. 타성에 젖어 안락만을 탐하다 낯선 길에 들어서는 출가란 불교적 선회만도 아니고 일회성에 그치는 반짝 행사는 더더욱 아니다.

‘스(님)들’이 호텔방에서 한껏 풀어 헤치고 술을 홀짝이며 때론 담배연기를 뿜어대며 도박판을 벌였다는 보도나 그 현장을 몰래 찍어 폭로하는 다른 ‘스’들의 원한이 전혀 놀랍지가 않다. 또한 종단을 대표하는 ‘스’가 룸살롱에 가 성접대를 받았네, 아니네 하는 설왕설래에도 별 관심이 없다. 몸집은 비대하고 얼굴에서는 번지르르한 기름기가 마를 날이 없는데 그런 추문을 꼭 들어볼 필요가 있겠는가? 그들도 사람인지라 관능이 팔딱이고 외물에 아찔 하는 순간이 왜 없겠는가? 일말의 연민이 일면서도 한편으론 괘씸하기 짝이 없다. 이중 삼중의 가면을 쓰고 사기행각을 벌이며 해탈을 향한 몸부림은커녕 탐욕을 키우는 데 안간힘을 쓴 그들은, 출가 사문이 아니라 비행을 좇아 집을 뛰쳐나온 가출 건달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괘씸하기는 통합진보당의 본말이 전도된 내홍도 마찬가지다. 스님들이 생산 활동에 참가해 중생을 구제하기보다는 삶의 애환으로 찌든 중생들의 마음을 위무해야 하듯, 정치란 삶의 틀을 바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어야 한다. 더하여 진보정치를 표방하는 자들은 도덕성의 토대 위에서 자신은 한줌 밀알이 되겠다는 초발심으로 선명해야 한다. 더욱이 비민주적 전횡에 당한 인권 유린의 역사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조작된 다수결로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파당적 이익을 구차하게 지켜보려는 그들도 가출 정치꾼들일 뿐이다.

사뭇 비장한 출가가 한순간에 조롱거리인 가출이 되고 마는 까닭은, 탐욕에 빠져 초발심의 결기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남을 향해 소리치기 전에 나를 돌아보고 냉정해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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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모든 일이 한꺼번에 벌어져 난마처럼 얽혀 있다. 한편에서 통합진보당 당원명부 압수수색이 방송 매체의 화면을 뒤덮는 동안, 다른 한편에선 ‘노동해방실천연대’ 사회주의자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긴급체포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이루어졌다. 그런가 하면 22명의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하는 국민대회를 연 대책위를 사법처리하겠다는 검경의 엄포가 쌍용차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소리 높여 외쳐대는 이른바 선진자본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벌거벗은 모습이다. 그 틈을 비집고 이명박 정권 말기의 공안정국을 향한 발톱이 다시 흉측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보수·진보 언론을 막론하고 시대착오적인 진보재구성 논쟁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이 모든 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역사적이고 상대적 의미를 갖는 ‘진보’ 개념을 상투적으로 남용하는 문제이고, 형식으로서의 절차적 민주주의와 내용으로서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분리하는 비변증법적 관념론의 문제이다. 마르크스가 160여년 전 <공산주의선언>을 썼을 때, 그는 자본주의를 진보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자유로운 개인이 연합하는 새로운 생산양식의 건설을 인류의 물질적 필연성으로 보았다. 1차 세계대전을 정점으로 쇠퇴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길목에서 혁명가와 노동계급은 “사회주의냐, 전쟁이냐”를 외쳤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 세계자본주의는 그 모순이 극에 달해 ‘야만인가’ ‘사회주의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자본주의 쇠퇴라는 객관적 사실과 노동계급의 억압을 뚫고 솟구치는 투쟁을 목도하면서 한가롭게 진보를 외치거나 새로운 진보를 내세우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통합진보당 입구 풍경 ㅣ 출처:경향DB

민족주의는 사회주의와 대립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사회주의세력이 조국의 깃발을 들고 전쟁터에 수많은 노동자들을 몰아넣어 살해했을 때, 그 후 나치즘과 스탈린주의가 ‘사회주의’ 탈을 쓰고 노동계급을 억압·착취했을 때, 민족주의는 노동계급의 국제주의를 가로막는 반혁명적 이데올로기가 됐다. 통합진보당은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함으로써 스스로 ‘진보’의 깃발을 내렸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진보라 부르지 않는다. 비당권파가 사회민주주의적 색깔을 일부 지녔다고 해도 그들 역시 진보로 부르기 어렵다. 민족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일부 진보논객이 ‘민족해방’과 ‘노동해방’을 말하는 세력을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추상적 혁명주의로 매도하는 논거와 태도는 두 가지 점에서 해괴한 논리다. 첫째, 민족주의는 21세기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더 이상 혁명주의가 아니다. 민족주의는 오히려 자본주의를 공고히 해 왔고, 파시즘의 위험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노동자 민주주의는 전혀 다른 개념이고 대립한다는 사실이다. 혁명주의는 형식적 민주절차만 강조하는 부르주아 독재에 반대하고 형식과 내용이 통일되는 노동자 민주주의를 옹호한다. 이번 통진당 사태는 노동자 민주주의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고 혁명주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음을 밝혀야 한다.

물론 우리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희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한다. 모든 공안 탄압을 반대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 그렇다고 선거를 통해 의회에 진출하려는 정치세력의 선거부정을 묵과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우리는 밑으로부터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며 막바지에 다다른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 이른바 ‘진보의 재구성’이란 이름으로 개량주의와 혁명주의를 구분하고 자본주의의 틀 안에 노동계급을 가두는 개량주의를 넘어서는 혁명적 실천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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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硏 연구실장


복지국가 운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2010년 무상급식 이후 보육, 의료, 반값등록금, 복지재정 등 계속 몰아칠 것 같던 복지국가 물결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일시적 멈춤으로 보기엔 정황이 심상치 않다. 우선 보편복지의 선봉에 섰던 야권이 그렇다. 근래 민주통합당의 지도부 선거,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내홍 탓이 아니다. 19대 총선에서 야권이 드러낸 모습은 복지국가를 추진할 의지도 힘도 없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민주통합당은 화려한 복지공약을 내걸면서도 엉성한 재정방안으로 기획재정부의 검증 공세에 시달리는 수모를 당했다. 명확한 재정방안 없이는 복지포퓰리즘으로 공격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안이하게 선거에 임한 결과이다. 진보정당 역시 무기력하긴 마찬가지다. 제도권 안에서는 소수정당이지만, 복지공약이나 부자증세를 공론화하기 위해 시민, 노동자, 농민 등 대중적 참여를 조직하는 진보정당다운 활동을 찾아볼 수 없다. 복지 의제가 공약자료집 안에서만 맴돈다.

시민사회 쪽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복지국가 담론 확장에 큰 역할을 해왔던 복지단체들이 19대 총선에서 복지국가운동의 정치세력화 실험을 벌였으나 좌절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작년 7월 참여연대, 여성연합, 한국진보연합, 민주노총 등 무려 402개 노동민중 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는 그 규모가 무색하게 눈에 띄는 활동이 없다. 보편복지를 바라는 일반 시민과는 동떨어진 형식적 상층 활동에만 머물러 있다.

예상 밖의 일이다. 지난 2년 시민들의 열망으로 만들어진 복지 의제였다. 19대 총선에서 오히려 보수세력의 역공에 시달리는 수세적 의제로 전환돼 버리다니. 심지어 새누리당이 총선 복지공약 일부 철회를 검토한다는 보도마저 떠돈다.

 

4.11 총선 주요 정당 복지 공약지표별 점수 l 출처:경향DB

야권 정치세력과 시민단체의 책임이 무겁다. 복지국가 운동의 안이함이 대선까지 이어질 경우 설혹 야권이 집권해도 실질적인 복지 확대는 어려울 듯하다. 지금과 같이 수사로만 존재하는 복지로는, 기득세력이 막강하게 저항할 지출 혁신작업도, 복지 확대에 필수적인 대규모 증세도 수행할 수 없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대의 역설’이라는 부메랑도 있다. 복지국가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불어올 역풍이다. 대한민국에서 상당 기간 복지국가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울지 모른다.

어찌해야 할까? 제도정치권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총선 이후의 야권 행태는 더욱 복지민심의 기대를 빼앗아가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중도로 우클릭하자 하고, 통합진보당은 끝도 없는 진통 속에 허덕인다. 더디더라도 시민들이 직접 나서는 풀뿌리 복지국가 운동이 절실하다. 의제와 주체로 나누어 보자.

의제 영역에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닌 사업이 필요하다.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내서라도 무상의료를 구현하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 능력껏 세금을 내자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동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취지는 좋으나 사업의 초점이 불분명하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료와 보장성 수준을 결정하는 기구인 국민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시민들이 직접 요구를 전달하고, 복지 증세를 위해 중간계층 이상은 모두 누진적으로 세금을 내는 사회복지세 도입 운동도 벌여야 한다.

제도정치권 밖 풀뿌리 주체는 어디에 있을까? 시민들의 실천프로그램 참여가 곧 복지 주체 형성과정이다. 복지를 마냥 기다리기보다 직접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면 위력적인 주체가 된다. 직능별로는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50만명이 넘는 사회복지사가 존재한다. 오랫동안 관료적 복지행정에 갇혀 왔지만, 정부와 시민을 잇는 전달벨트로서 풀뿌리 복지 운동의 잠재적 주역이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냥 기다리면 색깔이 바뀔 것 같지 않다. 시민주체형 참여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사회복지사 내부에서 복지국가 운동의 활기가 생겨난다는 소식도 들린다. 시민들이 나서 파란불로 바꿔 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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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소설가


루이스 터커(Louise Tucker)라는 영국 가수가 있다. 영국 길드홀 음악원 출신으로 팝페라 1세대에 속한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 제2악장의 멜로디에 가사를 얹은 곡 ‘Midnight Blue’를 웬만한 사람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노래가 한창 유행하던 1980년대 초 어떤 외국 잡지에서 그녀의 인터뷰를 읽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인터뷰어가 빤한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이가 들면 고향 브리스톨의 작은 마을로 돌아갈 것이다. 그곳에서 길 모퉁이의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을 하루 종일 구경하면서 살 것이다.”

지금 그녀가 그렇게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나는 날마다 그것을 하고 있다. 우리 마을에는 카페 대신 거문슈퍼의 작은 평상이 있다. 마을에 가게 되면 한참 동안 그곳에 앉아 있게 된다. 거문슈퍼 주인이나 엘지호(낚싯배 이름이다) 형수님이 커피를 타주기에 커피값도 안 든다. 사람들이 한 명씩 지나간다. 이장도, 부녀회장도, 먼 친척 아주머니도, 중학생도, 어부도, 한전 직원도, 해군 수병도 지나간다. 면서기도, 초등학생도, 보건진료소 간호사도, 우편배달부도, 비슷한 등산복으로 통일한 단체관광객도 지나간다. 말을 걸기도 하고 나에게 걸어오기도 한다. 그렇게 있다 보면 마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훤히 알게 된다.

 

세상이 딱 이 정도 속도로만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모두 다 좋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왜, 살다보면 나의 즐거움이 누군가에게는 괴로움이 되는 경우가 간혹 있잖은가.

문제는 아는 얼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을 때 일어난다. 대여섯 명 나란히 앉아 있다 보면 대화에 별다른 내용이 없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더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들 앉아 있으니께 지나가기가 겁나 거시기해요.”

이렇게 말하는 아낙이 있었다. 옳은 말씀이다. 내가 마을로 가려면 해수욕장을 지나가야 한다. 종종 공공근로를 하시는 분들이 쉬고 있다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내 움직임에 따라 고개의 각도가 일제히 변한다. 거문슈퍼 앞에서는 우리가 그렇게 한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것은 괴롭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은 재미있다. 그 딜레마 속에서 나는 날마다 갈등하고 있다. 참으로 쉽지 않는 남 바라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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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이상적’까진 아니지만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깨소금 냄새가 나는 신혼이 지나고 하나둘 아이가 생기면서 아내에 대한 설렘은 사라진다. 소위 정 때문에 사는 시기, 이렇게 내 연애인생이 끝나는구나 싶은 50대에 꿈에도 그리던, 물론 다른 사람 눈으로 보면 그다지 미녀는 아니지만, 한 여인이 나타난다. 그는 그녀와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다시 소년이 된 느낌을 받는 중년의 남자.

하지만 문제가 있다. 자신에게 이렇게 큰 기쁨을 준 그 여인에게 뭔가 보답을 해주고 싶어 죽겠는데, 그러기엔 벌어놓은 돈이 모자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여자가 뭘 하는 사람인가에 따라 방법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니, 여기서는 편의상 그 여자의 직업을 무명 춤꾼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것 중 첫 번째, 비싼 음식 싸주기. 그녀는 생선회나 한우 등 값비싼 음식을 좋아한다. 이런 음식들을 그녀와 만났다 헤어질 때 포장해 주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송사 사장이 되면 된다. 방송사 사장에겐 한도가 꽤 높은 법인카드가 지급되니, 그걸로 애인에게 생선회와 고기, 그리고 호텔의 고급음식을 원없이 사주면 된다. 그래봤자 1년에 2000만원 정도면 충분하다. 누가 문제를 삼으면 어떻게 하냐고? 홍보 담당자를 시켜서 자신은 평소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고, 문화예술계 인사와 교류를 가졌다고 하면 된다.

 

파업중인 MBC노동조합원들이 22일 서울 여의도 본사 로비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l 출처:경향DB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것 중 두 번째, 내연녀 성공시키기. 이건 정말 가정이지만, 그녀는 우리나라 전문가들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듣보잡 춤꾼으로, 춤 실력도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다. ‘장구를 치다가 채를 객석으로 날려버려 관객이 주워 줄 정도’라고 가정하자. 이런 그녀를 성공한 예술인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방송사 사장이 되면 된다. 방송사 사장은 모든 직원이 반대해도 특정인을 전폭적으로 밀어줄 힘 있는 자리니까. 예를 들어 방송사의 창사특집 뮤지컬을 만들어 보라고 그녀에게 12억원을 지급할 수 있다.

그녀는 주연·안무·감독까지 1인3역을 해내고, 아들까지 출연시킨다. 전문가가 보기엔 수준 낮은 공연이고, 티켓도 거의 안 팔려 방송사가 거액의 적자를 보겠지만, 사랑하는 그녀가 그 돈을 고스란히 챙겼으니 아깝지 않다. 누가 뭐라고 하면 홍보팀을 시켜 “그녀는 국내 유일의 최승희 춤 계승자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일갈하면 된다. 물론 그녀는 최승희나 그 제자와 별반 관계가 없지만, 누가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겠는가? 용돈이 부족해? 그렇다면 방송사 행사에 나오게 해 잠깐 춤을 추게 한 뒤 한류가수들보다 더 높은, 수천만원의 출연료를 챙겨주면 된다. 아, 방송사 사장은 정말 능력남이다.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것 중 세 번째, 가족 챙기기. 그녀에겐 오빠가 있다. 백수고, 사기 혐의로 두 차례나 수감된 전력이 있다고 치자. 그녀는 그 오빠가 잘되기를 바란다. 오빠를 챙겨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방송사 사장이 되면 된다. 국내 방송사에 취직을 시키면 눈치가 보이니 중국 같은 곳에 지사를 만든 뒤 거기 지사장을 시켜주면 된다. 물론 오빠는 수백만원의 월급과 업무추진비를 받으며 아무 일도 안 하겠지만, 뭐 어떤가? 국내 방송사의 파업에도 신경을 안 쓰는 우리 국민들이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이나 있겠는가?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것 중 네 번째, 선물 사주기. 사춘기 때의 사랑과 달리 중년의 연애는 사랑을 확인할 징표가 필요한 법, 그녀에게 멋진 선물을 사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방송사 사장이 되시라. 아까 말했던 그 법인카드로 핸드백도 사주고, 뷰티숍에도 데려가 주면 되니까. 누가 뭐라고 하면 어쩌냐고? 자기 방송사 프로에 출연해준 게 고마워서 선물을 줬다고 하면 된다. 게다가 방송사 돈으로 아파트 투기도 같이할 수 있으니, 방송사 사장만큼 능력 있는 내연남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 중년들이여, 장래 희망을 방송사 사장으로 정하시라. 방송사 사장이 되는 건 애인에게 최고의 남자가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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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 경향시민대학 학장·고려대 명예교수


지난 칼럼(5월22일자 31면)에서 만났던 신용불량자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구로구 궁동의 박영신씨(가명)는 현재 다섯 식구를 위한 최소한의 생계비 월 150만원의 절반인 70만~80만원의 수입으로 절대적인 마이너스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증후군을 갖고 있는 큰아이로 인해 월 15만원의 장애수당만 받는다. 지난 총선 때는 선거운동 일을 봤고, 지금은 식당에서 일하는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는 왜 수입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지 않을까. 신용불량자라는 전력이 있기에 점포의 계산대나 콜센터 서비스와 같이 돈·신용과 관계된 일자리를 가질 수 없다. 신용카드도 만들지 못한다. 휴대폰도 갖지 못한다. 사실상 사회로부터 격리돼 있는 상태다.

신용불량자로서 사채업자들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그녀가 겪었던 경제적·육체적·정신적 고통으로,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갖게 돼 좁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무일도 보기 어렵다. 또한 어린 자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장시간 집을 비우는 파출부 같은 것도 할 수 없다. 그녀가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실로 한정된 것이다. “나라에서 불법자로 찍히면 발목 꽉 잡혀 빼도박도 못하죠. 한번은 기회를 줘야 하는데…. 한순간 잘못한 것이 이렇게 큰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어요”라고 그녀가 말할 때, 회한과 항변이 교차하고 있었다.

청소일을 하는 최태일씨(가명)는 궁동의 박씨보다 상황이 나아 보였다. 박씨는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했을 때 장례비가 없어 시신을 병원에 기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씨는 가정형편이 좀 나아 가족들의 도움으로 부채의 급한 부분을 빨리 정리할 수 있었고, 어머니에 의탁해서 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아직 가정을 갖지 않은 건강한 청년으로 고된 노동일을 할 수 있었다. 최씨의 청소노동은, 두 사람이 한 조가 돼서 이루어진다. 먼저 새벽에 나가 아침 9시까지 일한 뒤 집에 돌아와 한잠 잔다. 그리고 오후 4시 반에 나가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일하는 것으로 한 사이클이 끝난다. 그리고 하루를 쉬고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노동시간이 짜여 있다.

 

채무재조정과 신용회복 상담을 받으려는 서민들이 서울 명동 신용회복위원회에 들어서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필자가 최씨를 만난 날은 노동절이어서 “오늘은 쉬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자기는 쉬는 날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가 하루에 처리하는 쓰레기양이 1만가구에 이른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엄청난 양이다. 최씨는 월평균 220만~230만원의 임금을 받는데, 외주업체에 소속된 작업원들은 구청 소속의 작업원들에 비해 일은 더 힘들고, 받는 금액은 훨씬 적다고 말한다. 노동시장의 중심 제도인 파견법, 변형근로제는 인력장수들에게는 커다란 혜택이 돌아가지만 비정규직에게는 가혹하기 그지없는 제도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장재선씨(가명)는 신용불량자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편법에 대해 말한다. 신용불량자인 그 역시 통장에 자기 돈 넣고 찾는 체크아웃카드를 사용하는 것 말고는 은행거래를 할 수 없고, 휴대폰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남아 있는 편법은 구청 사회복지사가 된 딸 명의를 이용해 이를 피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명을 사용하는 수많은 신용불량자들이 자신들을 배제한 제도권 경제 안으로 들어와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헤어질 때 장씨는 조용조용한 인상과는 달리 “이곳 거마(거여·마천동) 지역은 서민 밀집지역이고, 사채업자나 일수업자들이 많아요. 국가는 재벌들 자회사인 금융회사들에 많은 대출도 해주는데, 없는 사람들은 고금리로 내몰고 있지요.”라며 강한 어조로 불만을 토로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궁동의 박씨가 “(인생이) 너무 어려서 시작해 너무 어려서 끝나 버린 것 같아요. 다시 일어나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해요. 하루 먹고 하루 살다가 결국 애들에게 대물림될 거예요”라고 했던 말은 커다란 여운을 남긴다. 경제적으로 박탈당한 그들에게 새겨진 ‘낙인’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관계가 어려워지는 이러한 조건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정치적 참여의 권리, 즉 제레미 왈드론(Jeremy Waldron) 같은 법철학자들이 말하는 ‘권리 중의 권리’(the right of rights)마저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신용불량자 문제가 잘못된 정책으로 만들어진 문제이고, 따라서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어렵게 하는 것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어떤 도덕적 인식과 깊이 연관돼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과시적 허영심이나 자제력 없는 소비욕구 내지 도덕성의 결여와 같이 신용불량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생각을 말한다. 그로 인해 신용불량자 문제가 사회경제적 문제이자 정책결정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정치적 문제라는 인식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제도권 밖에 이리저리 흩어져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 있는 신용불량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문제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면서 정치적 이슈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금융 관련 문제는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포괄하고 있어 전문가 아닌 보통사람들이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내기도 어렵다. 다양한 성격의 광범위한 일반 소비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들을 공통의 정치적 요구를 갖는 하나의 사회집단으로 조직해서 목소리를 갖게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 ‘1인 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민생연대’ 송태경 사무처장의 활동은 진정한 의미에서 진보적인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인터뷰한 박영신씨, 신영환씨는 모두 송 처장의 법률자문 덕분에 파산처리 과정에서 더 큰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 필자가 송 처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영등포구 당산동의 조그만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속초에서 상경한 한 여성 보험설계사 역시 송 처장으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나 송 처장이 누구도 하지 못하는 운동을 통해 여러 사람의 경제적 파탄을 경감시켜 주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다루고 도와줄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신용불량자들을 위한 정치적 대표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잘못된 이념적 급진주의에 의해 주도된 진보정치가 민중의 권익 증진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민주주의 그 자체에 해악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분명히 보고 있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신용불량자 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하는 데는 두 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다. 첫째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포함하여 금융정책을 실제로 다룰 수 있는 당의 제도와 조직체계를 조직하는 일이다. 이는 관련 이해당사자 집단, 예컨대 신용불량자, 비정규직 노동자, 복지수혜 대상자, 청년 등이 정책 이슈 제기에서 아젠다 형성, 정책 대안 마련에 이르기까지 보다 더 가까이 참여하거나 접맥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당 활동의 체계가 달라지는 문제를 말한다. 당의 조직과 역할은 시민의 실생활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업에 부응할 수 있도록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고서 진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실제 사태를 못 보게 만드는 역기능이 될 수 있다.

둘째는, 정책 이슈와 대안들이 이념적 거대담론으로부터 직접 도출되지 않아야 한다. 담론 내지 공론장에서의 논의는 추상 수준이 높은 관념성에서 벗어나, 사회경제적 문제를 실제로 다룰 수 있도록 구체화되고 현실성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이 점에서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재벌개혁과 같은 포괄적이고 추상 수준이 높은 슬로건이나 언어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공허한 구호를 반복하는 것에 그치는 역효과를 갖는다. 추상적 언어가 꼭 필요하다면, 개별적이고 구체적 정책 대안들이 충분히 형성된 후에나 불러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사안으로 민중을 속이기는 쉬우나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추상적 이념에 헌신하나 구체적 실천에는 관심이 없는, 진보의 이름을 딴 습관성 정치구호나 관성화된 행태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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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khhan21@hanmail.net


지난 5월 19일 안면도에서는 누동학원의 총동창회가 열렸습니다. 누동학원은 1975년 6월 15일 문을 열어 모두 8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81년 8월 30일 문을 닫은 중학교 과정의 농촌야학입니다. 제도화된 교육을 비판하며 바람직한 교육의 모델을 제시하려 했던 누동학원을 유신정권은 ‘사설강습소법’을 핑계로 강제 폐교시켰습니다.

저는 6년여 동안 누동학원을 거쳐간 80여명의 교사 중 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학년 9명의 담임이었지요. 마지막 졸업식이 있은 뒤에 한 학생이 저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떠나시는 선생님을 볼 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이 작은 소녀의 가슴에서 벅차 올랐어요. 선생님, 저는 그때 배움의 힘이 크고 돈의 위력이 큰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적어도 11월까지는 지탱이 될 거라고 하시던 말씀이 문득문득 생각나고 사람이 진실성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고 가르치시던 생각도 나고….”

이 편지를 보낸 소녀는 이제 48세의 나이로 대학에서 청소년 교육을 공부하는 3학년 학생입니다. 51세의 남편은 대학 교수이면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두 아이도 대학생입니다. 온 가족의 전공이 같은 계열이랍니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간 뒤 졸업하고,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다른 졸업생은 지금 박사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가르치는 동안 세 번이나 가출했습니다. 저는 당시 우등상과 개근상을 없앴습니다. 바쁜 농사일에 일손이 없어 허덕이는 부모를 모르쇠하고 학원에 오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그런 상은 아이들을 나쁜 심성의 소유자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지요.

 

서울 서대문구 안산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이 교사와 함께 교문 밖을 나서고 있다. l 출처:경향DB

도시락도 못 싸오던 두 아이가 이번 모임을 이끌었습니다. 제가 자신들의 담임이었다고 저부터 인사를 시키더군요. 저는 50여명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4세의 철없는 사람이 1년 남짓 교사를 했다고 평생 스승으로 여겨주는 경우가 세상 어디에 있나요? 제가 스승이 아니라 여러분이 제 삶의 스승입니다. 제가 ‘학교도서관저널’ 같은 잡지를 3년째 펴내며 세상에 헌신하며 살 힘을 여러분이 제게 주었습니다.” 그날 참석한 다른 교사들도 저와 비슷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들과 헤어지고 저는 이 시대 교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오늘의 교육> 6호(2012년 1~2월)의 특집 ‘교육 불가능 시대, 교사는 가능한가’는 좋은 교사를 꿈꿨던 이들마저도 그냥 공무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특집에서 ‘스승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 엄기호는 “교사가 학생과 위계적인 관계를 떠나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이 큰 기쁨이듯이 학생들 또한 교사와 우정을 맺는 것이 배움의 도약을 이루는 큰 전환점이 된다”고 말합니다. “제자의 능동성을 배려하며 진실에 대해 용기를 내게 하는” 교사가 진정한 스승이라고 규정한 엄기호는 “우리 교육 현장에서 스승이 되는 것은 지극히 힘들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교사의 고통은 크겠지요. 한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딱 한 가지만 포기하면 교사가 정말 괜찮은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올해 ‘스승의 날’을 맞이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사 5명 중 4명은 “교직의 만족과 사기가 떨어졌다”고 대답했습니다. <학교의 풍경>(교양인)에서 “학생 안전의 책임을 교사에게 묻는 제도적 안전망이 없는 환경, 힘 있는 학부모들의 교권침해, 수업에 들어와 다과를 들며 수업을 감상하는 이상한 교원평가, 국·영·수 외에는 설 자리가 없는 교육 과정, 학교 밖에서 이미 곪아 터진 문제로 아파하는 학생을 지원하는 체제의 부족함” 등을 질타한 12년차 교사 조영선은 “사랑하는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서로 어깨를 겯는 동지로 거듭나는” 올바른 관계를 꿈꿉니다.

<변방의 사색>(꾸리에)에서 “이제 웬만하면 비정규직, 아니면 청년 실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초·중·고 12년에 대학 4년, 모두 16년을 온통 지옥 같은 경쟁으로 내모는 이 경쟁 교육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비정규직 산업예비군이 되기 위해 이 미친 경쟁에 뛰어들 이유는 없다”고 외치는 이계삼은 이제 우리가 쓸모없는 것으로 내던진 ‘인문학’과 ‘농업’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6년차 교사 안준철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제자들마저 힘겹게 살아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괴로워합니다.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문학동네)에서 “교권은 학생들을 사랑할 권리”라고 해석한 그는 “교사가 한 아이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순간 교사로서의 존재 의미는 상당 부분 훼손된다”고 말합니다.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2011년에 하루 209명, 모두 7만6489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났습니다. 학교에 남은 아이들도 성적만이 살길이라는 아주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구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이 책들을 읽으며 저는 교사와 학생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안준철의 지적대로 모두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사색과 이해”를 하려고 나서는 것이 암담한 교육현실을 극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이게 바로 키가 훌쩍 커버려 이제는 친구가 되어버린 누동학원의 제자들이 어깨동무하며 제게 알려준 진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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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동화작가


지난 16일 한 일간지에 자극적인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부역자 추모사업 조례를 폐기하라!’ 그 전날인 15일, 경기도의회는 임시회 본회의에서 광역의회에서는 처음으로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때 희생된 민간인에 대한 지원사업 등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한 지 5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불길한 단서가 붙어 있었다. 김문수 도지사가 재의를 요구할 경우, 도의회는 재의결 절차를 밟아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례안을 가결할 당시 찬성 63표에 반대가 40표였다. 재의결에 들어간다면, 조례안이 무위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며칠 뒤 한 지방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는, 전쟁 희생 민간인 지원은 국가 사무이며 민간인 부역자들이 실제 인민군에 협력했는지 어떤지 선별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이유로 재의를 요구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경기도 측에서 ‘부역자’라는 표현을 쓴 것인지, 이 신문이 임의로 그런 표현을 쓴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됐든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해 아직도 거침없이 ‘부역’이라는 말을 쓰는 기사에 대해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아, 무식하니까 용감한 것일 수도 있겠다.

‘부역’의 사전상 의미는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하는 일’이다. 그리고 ‘반역’이란 나라와 겨레를 배반하는 일 또는 통치자에게서 나라를 다스리는 권한을 빼앗으려 하는 일이다.

한국전쟁 기간에 한국인 사망자는 대략 100만명에 달하며 그중 85%가 민간인이라고 한다. 한반도에 투하된 폭탄 수가 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폭탄 수와 같다는 설도 있을 정도니, 민간인 희생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조직적으로 학살된 경우만 보더라도, 국민보도연맹만 그 희생자가 최소 2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거창에서는 빨치산과 내통하였다는 혐의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마을 주민 700여명이 몰살당하기도 했다. 그밖에 전세가 이쪽저쪽으로 기울 때마다 애꿎은 보복을 당해야 했던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소속 한 회원이 울부짖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그런데 그 수십만의 억울한 죽음으로부터 어느덧 반 백년이 훌쩍 지나버린 오늘날에 이르도록 세상의 누군가는 그들을 부역자라고 부른다. 나라와 겨레를 배반하는 일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한국전쟁 민간인에 대한 지원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감히 그들을 일러 ‘부역’이라 부르는, 무식하니까 용감한 말들을 교정하는 것으로부터. 60년 세월 동안 비명조차 질러보지 못했던 희생자와 유족들에게서 부역이라는 덫을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경기도는 전쟁희생 민간인 지원사업을 국가차원의 일이라고 했단다. 맞는 말이다. 국가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일이다. 진짜 ‘부역자들’ 그러니까 전쟁의 와중에 제 잇속을 차리며 겨레를 학살한 자들을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전쟁과 독재의 서슬에 짓눌려 있던 그 죽음들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경기도가 그 첫발을 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기도의회가 조례안을 통과시키던 날, 그 자리에 참석한 유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쉽사리 뜨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언론은 유족들에게 부역자라는 언어의 돌팔매를 던졌다. 경기도는 그 서러운 눈물을 향해 재의를 요청하겠다는 의지가 굳건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밖의 세상은 무관심하다. 사상 처음으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지원 조례안이 통과된 소식도, 그 조례안이 좌초하고 있다는 소식도 언론에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못했다.

경기도의회가 재의결을 통해 반드시 지원 조례안을 통과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른 지자체도, 중앙정부도 한국전쟁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모두가 한번쯤 돌아봐주었으면 좋겠다. 다가오는 6월, 아직도 부역이라는 덫에 걸려 있는 수십만의 그 죽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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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523만 몇 천 몇 개의 벽돌.’ 진보운동의 절정이었던 1990년대 초, 유학에서 돌아와 취직한 한 대학에서 발견한 팸플릿의 제목이었다. 운동권 학생회가 신입생들 교육을 위해 만든 것이었는데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건설현장 현지지도를 나와서 “저 공장을 짓는 데 (정확한 숫자는 잊어버렸지만) 523만 몇 천 몇 개의 벽돌이 들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대로 맞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건을 읽고 유치한 개인 숭배에 너무도 충격을 받았다. 이후 과거사 진상 조사 일을 하면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소위 주체사상파(주사파)들이 김일성 주석에게 충성 맹세문과 생일선물을 보낸 것이 조작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또 한번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건전한 지성과 상식이 마비된 ‘사이비 종교집단’이 아니라면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한가?

그러나 충격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내란행위가 아닌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유엔인권협약의 자유권은 주체사상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틀린 주장도 할 수 있는 자유’의 보장에 있기 때문이다. 남의 주장이 틀렸다고 억압하면 다른 사람들도 내 주장이 틀렸다고 억압할 수 있다. 따라서 주사파의 사상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하고 광화문에서 “김일성 만세, 김정은 만세”를 불러도 처벌해서는 안된다. 그래봐야 결코 체제의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며 국민들에게 “미친 놈” 취급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소위 주사파들부터 북한에 가서 살라면 못 살 것이고 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권력이나 공안논리가 아니라 민심이다.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검찰의 개입은 이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물론 통합진보당은 지난 총선에서 10%가 넘는 240만표를 얻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당을 이끌어온 당권파는 주사파로 의심을 받고 있다. 따라서 검찰이 우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240만명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체사상에 동조해 표를 던졌겠는가? 시선을 통합진보당, 나아가 당권파로 좁히더라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통합진보당 당원 중 당권파 지지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지만 어림잡아 4만명이라고 치더라도, 이들 중 몇 명이 주체사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일까? 사실 당권파라고 지칭되는 세력의 경우도 공안당국이 우려하는 주사파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검찰이 서버를 압수해 떠나려 하자 이를 막는 통합진보당 당원과 경찰들 몸싸움 ㅣ 출처:경향DB

나는 오히려 국가보안법과 공안논리가 이들이 지하에서 자신들의 실체를 감추고 위장된 형태로 움직임으로써 대중을 호도하도록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주사파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한 뒤 다양한 진보세력들이 북한과 한반도 문제, 주체사상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쟁을 하게 하고 국민들이 이를 보고 선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럴 경우 주사파는 몰락하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도 그러하다. 이석기를 비롯한 당권파는 비상식적인 언행이 폭로되면서 고사 직전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출당 조치를 피하기 위해 경기도로 주소를 옮겼지만 이는 위장전입 논쟁으로 비화돼 여론은 더욱 싸늘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국 그들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인 민심의 심판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언론들이 자꾸 문제를 종북주의로 몰고 가고 이들을 겨냥해 검찰이 공권력을 동원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다.

당의 고발도 아니고 외부 제3자의 고발을 받아 정당 내부 문제에 검찰이 개입하는 것은 위험한 전례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문제 해결에도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 물론 검찰이 당권파의 부정선거와 비도덕성에 대한 결정적인 물증을 포착해 이들에게 최후의 한방을 날릴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의 개입이 이들을 공안논리의 희생자 내지 순교자로 생각하게 만들고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킬까봐 걱정이 된다. 게다가 검찰이 이번 수사를 종북주의 문제로 끌고 갈 경우 그 같은 동정심은 커질 가능성이 있다. 주사파에 대한 해법은 공안이 아니라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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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환 경제부 기자


석가탄신일이 낀 황금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5일 오후 외교통상부로부터 문자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메시지의 내용은 ‘외교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글본 정오표 공개’였다.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한·미 FTA 한글본 정오표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협정문의 번역오류로 인한 개정내용이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공표됨으로써 한·미 FTA 협상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여론 형성의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손을 들어줬다.


외교부는 지난 1월 “정정된 협정문을 공개했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는 이미 충족됐고, 협상 관련 문서는 발효 뒤 3년까지는 비공개”라며 항소를 제기했다. 정오표는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라는 것이다.

외교부는 재판부의 결정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하고 뒤로는 ‘딴짓’을 했다. 미국과 은밀하게 협의를 진행한 것이다.

 

박태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FTA 발효시점 발표 ㅣ 출처:경향DB

정오표 공개는 미국의 양해를 얻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협의가 끝나자 정오표를 공개했고, 법원에 낸 항소도 취하했다. 외교부는 미국과 협의를 진행한다는 것도 ‘밀실’에서 결정했다.

외교부는 정오표 공개의 다른 이유로 ‘한·미 FTA가 지난 3월15일 이미 발효됐다’는 점을 들었다. 외교부의 진짜 속내는 바로 이것이다. 국회 비준을 거쳐 한·미 FTA가 이미 발효된 마당이니 정오표를 공개해 여론이 나빠져도 반대론자들이 어찌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게다가 총선마저 끝난 터라 정치적인 이슈가 될 소지도 적다고 생각한 것 같다.

외교부는 지난해 6월 번역오류 296건이 있다고 공식 발표한 뒤 1년 만에 정오표를 공개했다. 외교부의 정치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으로 1년간 침해된 국민의 알권리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한·미 FTA 비준이 절대선’이라는 외교부의 인식은 그들이 생각하는 국익과, 국민이 생각하는 국익을 다른 것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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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철학자


얼마 전 김수영에 대한 10주 강의가 끝났다. 모든 강의가 그렇듯 어쩔 수 없이 내 강의도 일방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말하고 제자는 듣는 식으로 강의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의 도중 나는 종종 티타임을 제자들과 갖는다. 이런 때 나는 스님들의 묵언수행의 교훈을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중생에 대한 사랑을 서약한 스님은 중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듣기 위해 우리는 침묵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내 쪽에서 소음을 내지 않아야 상대방의 소리가 들릴 수 있는 법이니까. 소통은 바로 침묵에의 의지 속에서만 시작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선생은 제자에 대해, 부모는 자식에 대해, 정치가는 국민에 대해, 선배는 후배에 대해, 먼저 묵언수행의 교훈, 침묵의 지혜를 배울 일이다.

지금 우리는 소통하자는 외침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가 불통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증거 아닌가. 고대중국의 철학자 노자가 말했듯이 충효의 가치가 부각되는 시대는 사실 불효와 불충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소통의 외침이 주로 힘 있는 자들, 그러니까 정치가나 최고경영자들의 입에서 울려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소통은 힘 있는 자들의 입에서 발화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게 소통하자는 이야기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대통령이 하급관료를 불러 소통하자고 할 때, 혹은 아버지가 자식을 불러 소통하자고 할 때, 관료나 자식이 느낄 압박감은 명약관화하다.

야자타임이란 것이 있다. 나이나 지위가 같다고 상정하고 후배들이 편하게 자신의 속내를 토로하는 자리다. 직장 상사나 학교 선배가 후배들과 소통하려고 벌이는 일종의 의식인 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야자타임은 후배들을 더 경직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후배들은 야자타임을 자신들의 속내를 캐려는 선배들의 책략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긴 어느 후배가 “야, 인마 너는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쁘니. 그러고도 네가 사장이냐!”라고 이야기하겠는가. 똑똑한 후배라면 아마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네가 사장이었다면 나는 기꺼이 네 회사에 취업할 거야!” 야자타임만이 아니다. 소통을 위한 각종 모임도 별다른 결실 없이 변죽만 울리기 쉬우니까. 대체 소통하려는 의도가 번번이 좌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을 포함한 사회지도층 인사 대부분은 소통 자체가 목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다시 말해 그들은 한 번도 소통의 숨겨진 목적을 고민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소통은 사랑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도 없는 개념이다. 그러니까 사랑이 목적이고 소통은 단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의지가 없을 때, 소통을 꿈꾸는 일체의 제스처가 상대방에게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후배가 이혼으로 힘들어 할 때, 선배는 소통의 모임으로 마련된 회식 자리를 취소하는 것이 낫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 아닌가. 반면 남편이 피곤해할 때, 그를 깨워 대화를 시도하는 부인은 지금 소통이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학교에서 제자들이 죽어 가는데, 귀를 막고 있는 총장이 한 사람 있다. 그는 비록 극단적인 형식일지라도 자살이 제자들이 건네는 절박한 하소연이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하긴 경쟁이야말로 과학기술 발전의 동력이라는 신자유주의 이념의 대변자이니, 그에게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애초부터 어불성설인지도 모를 일이다. 놀랍게도 그도 소통에 대한 강조를 게을리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지나친 경쟁으로 인간과 과학에 대한 애정을 잃어가는 제자들의 탄식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그는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그가 외친 소통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레토릭에 불과한 것이다. 그가 제자를 사랑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체제 발전의 프로파간다로 전락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러스트ㅣ 김상민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것, 혹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을 말하라고 강제하는 것. 이것은 소통하려는 애정도 없으면서 소통의 제스처만을 취하는 것이다. 이보다 소통에 대한 더 큰 배신행위가 있을까. 자신이 내려는 소리를 타인으로부터 들으려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교묘한 고문 행위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신념이나 기득권마저도 내려놓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감히 소통을 입에 올려서도 안된다. 상대방이 자리를 내려놓으라고 말한다면 기꺼이 내려놓을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소통의 자리를 감당할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소통이란 한자에도 예견돼 있었던 것 아닐까. 소통(疏通)은 무엇인가 막힌 것을 터버린다는 ‘소(疏)’라는 글자와, 타자와 연결된다는 의미를 가진 ‘통(通)’이라는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 소통의 정신은 연결된다는 의미의 ‘통’이라는 글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소’라는 글자에 응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도 신자유주의적 신념이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카이스트 총장도 자신의 교육 정책이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정치인들도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판단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부모도 아이의 행복을 미리 알고 있다는 확신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다. 단지 자신을 내려놓지 않은 소통은 자신의 신념, 생각, 판단, 확신만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려는 폭력으로 바로 변질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나 무서운 일 아닌가. 타자와 연결하려는 의지가 오히려 타자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제자들과의 티타임 자리에서 나는 가급적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하고자 노력한다. 내가 말하는 순간 제자들은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내 강의를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말이 나올 수 있다는 위험도 충분히 감내할 각오를 다지고 있어야만 한다. 선생으로서의 나의 기득권을 버릴 각오가 없었다면, 티타임 자리는 만들 필요도 없을 테니까. 티타임 자리는 사랑과 소통의 공간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티타임을 마무리하면서 나의 뇌리에는 다시 한번 묵언수행의 교훈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침묵하라! 오직 그럴 때에만 당신의 귀에는 주변 사람들의 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처럼 자신을 버려라! 오직 그럴 때에만 당신보다 지위나 학식이 열등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릴 테니까 말이다. 이것이 바로 소통의 첫걸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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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대통령 임기 단임제는 과거 ‘체육관선거’로 탄생한 제5공화국 정권이 그들의 집권을 합리화하고 국민적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채택한 제도이다. 그 뒤 대통령의 임기는 헌법 개정과정에서 5년 단임제로 확정됐다. 5년 단임제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 만든 제도라기보다 1인 장기집권을 막아보자는 당시의 국민적 여망과 12·12 쿠데타세력들의 정권연장 논리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현행 단임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대통령 자신이 단임으로 끝나 선거에 의한 국민의 심판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책임행정을 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5년마다 공약으로 내세운 선심성 혹은 선거승리용 정책 실천 때문에 대통령이 국가의 중장기발전계획을 추진하기보다는 자기 재임 기간 내에 과시적 업적을 이루려고 임기응변적 정책을 펴는 모순점을 지니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안을 제안 특별담화 발표후 돌아서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둘째, 대통령이 임명하는 직위에 대한 보은인사로 고위공직자의 교체가 빈번하여 업무의 효율성을 기하기 어렵다. 대통령은 정권창출을 도왔던 인사들을 5년 이내에 어디엔가 심어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인사의 합리성과 공정성을 상실함으로써 국민적 신뢰도 저하되고, 정책의 효율적 시행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셋째, 대통령의 권력 누수현상이 조기에 표출되고, 국회와 집권당은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보다는 누가 차기 대권주자가 될 것인가에 정력을 허비함은 물론 고위 공직자들도 자기 업무를 소신 있게 추진하기보다는 무사안일하게 넘기려는 보신주의에 젖어들 수 있다.

지금처럼 대통령 임기가 단임으로 계속된다면 우리는 5년마다 오늘날과 같은 정치적 혼미를 거듭하게 될 것이고, 정치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 임기 5년 단임제를 4년 연임제로 개정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시기는 제19대 국회 개원 직후부터 공론화하여 대통령 임기 4년 연임제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이 법이 통과되면, 금년 12월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으로부터 새 헌법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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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국 | 정보공개센터 간사


지난 5월2일 협상 개시를 선언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외교통상부는 철저한 비공개 원칙으로 관련 정보를 은폐하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발주해 생산한 한·중 FTA와 관련된 11개의 연구용역은 한·미 FTA 때와 마찬가지로 모두 비공개 상태다. 또한 공공기관들은 생산한 정보를 목록화하여 정보목록을 비치해야 한다. 그런데도 외교통상부의 2012년 1월부터 4월까지 정보목록을 보면 한·중 FTA에 관한 정보는 ‘한·중 FTA 공청회’ 책자 송부 단 한 건에 불과하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의 이야기는 불 보듯 뻔하다. 민주적 소통보다 광고와 선전을 선호하는 정부와 외교통상부는 한·중 FTA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또다시 ‘괴담’이라고 치부한 채 FTA 허브국가 대한민국의 장밋빛 미래만을 이야기할 것이며, 국민들은 한·중 FTA 협상의 목적과 전략이 무엇이며 협상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농수축산연합회 회원들이 한중FTA 협상 규탄 기자회견 l 출처:경향DB

한·중 FTA 협상 역시 한·미 FTA 협상 때와 마찬가지로 ‘정보은폐-밀실협상-졸속체결’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는 이야기다.

이미 한·중 FTA 협상 개시에 대해 농·수산업 종사자들의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한·중 FTA가 체결될 시 농업과 수산업에 미치는 충격이 한·미 FTA의 몇 배에 달할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농·수산업계의 격렬한 반대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갈등의 해법은 무엇보다 민주적인 소통과 토론일 것이다. 한·중 FTA의 손익과 정당성을 범사회적 차원에서 따져봐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민주적 토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중 FTA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개가 우선되어야 한다.

정보공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부는 또다시 반대의 목소리들을 ‘괴담’ 취급할 것이고, 그로 인해 겪어야 할 사회적 갈등과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부디 한·중 FTA에서는 ‘정보은폐-밀실협상-졸속체결’로 이어졌던 한·미 FTA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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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송이|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


그래도 세상은 돌아간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지난주 검찰 수사로 통진당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경향신문은 23일자 사설에서 “전방위적 공안몰이로 통합진보당의 존립 기반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비례대표 경선에서 드러난 명백한 불법행위만을 수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통진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이른바 당권파 의원들에 대한 제명 절차에 착수하면서 통진당 사태는 새로운 전환점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통진당 사태 말고도 언론이 놓치지 말아야 할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통진당 사태에 관계없이 세상은 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통진당 사태 이후 진보·보수 언론 모두 관점과 내용은 달랐을지라도 연일 1면에서 통진당 사태를 다루는 등 사안의 엄중함을 드러냈다. 언론 보도를 통해 통진당 사태가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때문에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가려지지 않을까라는 걱정마저 들었다. 사람은 보통 어떤 것에 깊이 관심을 기울이면 나머지 것들에 대해선 무관심해진다.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적 흐름에 따라 중대한 이슈에 천착해 보도해야 하는 것은 자명하지만 그 때문에 놓치고 있는 사건이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다행히 경향신문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문제’ ‘언론사 파업’ ‘정권 비리’ 등 중요한 이슈들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주목해 왔다.

 

통진당 중앙위 결과발표 ㅣ 출처:경향DB

경향은 지난 2월 ‘쌍용차 1000일’ 기획 이후 ‘쌍용차 릴레이 기고’ 등 계속해서 쌍용차 문제를 다뤘다. 지난 2주간 경향 지면에 실린 기사는 총 6개(칼럼 포함, 사진보도 제외)였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송경동 시인, 도법 스님 등의 릴레이 기고를 통해 쌍용차 문제가 단지 한 기업의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일이 아니라 ‘사회적 위기’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23일자 10면에 실린 경향 취재진의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의 1박2일 체험기가 눈에 띄었다. 경향 기자들의 1박2일 분향소 체험 기사에 대한 트위터리언들의 반응은 ‘고맙다’였다. 쌍용차 문제에 대해 보수언론 대부분이 침묵하고 있고 여타 다른 언론 역시 쌍용차 집회현장을 중계하는 것에 그친 데서 나온 반향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경향 지면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물론 경향닷컴에서 신문 지면에 실리지 않은 사진보도와 취재기사, 주간경향 기사 등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언론이 해당 사건에 부여하는 뉴스가치와 기사의 지면화 간의 상관관계를 고려해 보면 쌍용차 문제에 대한 경향의 관심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다. 경향은 지난 ‘쌍용차 1000일’ 기획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현실뿐만 아니라 쌍용차 해고노동자 문제에 대한 핵심쟁점도 함께 짚었다. 그로부터 100일이 넘게 지났다. 사측의 입장과 함께 쌍용차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상황을 다시 전달해 주면 좋겠다.

경향신문은 장기화하고 있는 언론사 파업에 대해서도 계속 주시하고 있다. 23일자 미디어면(10면) 전체에 언론사별 파업현황, MBC 사장의 특혜 의혹, 뉴스 파행 사태 등을 다룬 기사들을 배치했다. 사설에서도 언론사 파업과 관련한 사안을 다뤘다.

파업 언론사 중에서 MBC가 가장 오랜 시간 파업을 진행하고 있고 특히 MBC 사장을 둘러싸고 여러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따라서 언론사 파업 문제를 다룰 때 MBC를 가장 중점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독자 입장에서는 YTN, 연합뉴스 등 다른 언론사들의 사정도 궁금했다. 23일 미디어면 하단에 실린 ‘정부·새누리 방관… 세계 전례 없는 장기파업’ 기사에서 언론사별 파업현황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개괄적인 내용에 그쳤다는 생각이다. 26일자 주말기획에서는 MBC 문지애, 최일구 앵커를 인터뷰한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지난 4월27일과 5월9일에 각각 KBS 정세진 아나운서, 홍기호 PD를 인터뷰한 것과 같이 파업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전한 데서 그 의미가 있었다.

‘4대강 비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등 굵직한 사건이 많았던 한 주였다. 하지만 지난주 경향신문을 보며 가장 눈길이 간 기사는 24일자 1면 하단에 실린 ‘두 여자… “우린 부부다, 서로 사랑하니까” ’였다. 이 기사가 사회면이나 인물면이 아니라 1면에 배치된 데는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과한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식상한 말이 언론에는 결국 시민의 삶과 권리에 계속해 주목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로 읽히는 것 같다. 이보다 세상을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핵심적인 역할이 ‘언론’에 있다는 것이 지금 우리 언론이 새겨야 하는 사실일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경향이 언론이 추구해야 할 근본을 놓치지 않으면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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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