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화 |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명예교수


필자의 전공이 생활주변 식물을 조사하고 종자를 수집하는 것이어서 30년간 약 4000일의 현장조사에서 자연환경 오염이 심화되고 있음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이번 피서철에도 어김없이 쓰레기를 계곡과 강, 산속과 도로변의 덩굴식물 속으로 버리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버린 생활폐기물과 농어촌의 버려진 폐자재 및 생활하수와 공장폐수, 축산폐수 등으로 전 국토의 도랑, 개천, 지천, 강, 바다 등이 부영양화와 중금속으로 오염되고 있고, 토양은 썩어간다. 거의 모든 마을 앞에 있는 도랑의 바닥을 파보면 대부분이 썩어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생활방식과 국토관리방식으로는 국토 오염과 그 후유증이 해가 갈수록 늘어날 게 뻔하다. 4대강 사업 초기부터 자연환경의 보존과 물 관리는 상류부터 정화·정비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줄기차게 나왔지만, 지금부터라도 마을 앞 도랑의 정화사업을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


 

강원도 강릉 경포해변에 버려진 쓰레기 (출처: 경향DB)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농업환경이 변화해 식량생산의 지속성이 위협받고 있고, 세계적으로는 애그플레이션의 도래가 우려된다. 국내외에서 녹색성장이 지구를 구하는 방법이라며 화석연료의 절약과 대체에너지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나무와 풀, 작물의 광합성 증가로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녹색환경을 조성해 녹색생활에 역점을 둬야 한다. 


우리나라는 기후변화 영향으로 여름을 전후한 광합성 기간의 증가와 겨울을 전후한 저온성 기간의 감소로 식물의 생육환경이 시나브로 변하여 식물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 자연환경에 관심이 있는 국민이라면 휴가지를 오가면서 도로변, 강변, 자전거길, 농촌 주변 등 온 국토가 덩굴식물로 덮여 있는 경관을 보았을 것이다. 3년 전 고려대에서 ‘덩굴식물의 재앙’이라는 토론회를 개최했으나 관계당국도 환경전문가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올해 말 4대강 정비사업이 완공되고 지속적으로 강변의 식생관리를 하지 않으면 10년 후에는 덩굴식물로 덮여 생물다양성이 감소할 게 분명하다. 


필자가 28년간 특성과 용도를 조사한 식물이 3626종이다. 그중 6%인 218종이 다른 식물의 발생과 생육을 방해하며 자기 생활영역을 넓혀 가는 덩굴식물이다. 특히 가시박, 칡, 환삼덩굴, 나팔꽃류 등을 비롯한 덩굴성식물은 광선을 받기 위해 다른 식물이나 물체에 붙거나 감아 오르는 성질이 있고 넓은 면적을 덮어 다른 식물의 발생과 생육을 억압해 종다양성을 감소시킨다. 가장 문제가 되는 외래식물인 가시박의 종자는 강을 따라 상류에서 하류로 분포가 확산되고 종자가 휴면성이 있어서 땅에 떨어진 후 오랫동안 죽지 않으며, 다시 싹을 틔우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가시박은 하천변과 강변뿐만 아니라 철로변, 도로변, 주택가의 공한지 등에도 많이 자라면서 분포가 확산되고 있으며, 다른 식생을 파괴하고, 가시로 인해 인체에 피해를 주는 ‘식물계의 공룡’이 되고 있기 때문에 분포확산을 방치한다면 국가적인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로움보다 해로움이 많은 식물’을 잡초라고 부르며 방제하고 있다. 논과 밭에서 자라 해로움을 주는 잡초는 농민들이 방제하지만, 가시박이나 환삼덩굴 같이 생활 주변의 자연환경에서 발생해 식물종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인체에도 해를 끼치는 식물은 국가 차원에서 방제해야 한다.


여야 대선 후보들의 선거공약에는 보이지 않지만, 자연환경의 정화와 보존사업을 위해 국토를 청정하게 관리해야 한다. 특히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시박은 올해라도 종자가 성숙하기 전에 전 국토에서 제거해 생물다양성의 감소를 막아야 한다.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스포츠가 강한 나라가 선진국이 아니라 국토가 깨끗하게 유지되고 식량자급률이 높은 나라가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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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첫 공식 행보로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앞서 서울 국립현충원 방문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도 찾았다.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는 실용 행보의 일환이라는 박 후보 측 설명대로 그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일성으로 밝힌 국민대통합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자 하는 의미로 풀이된다. 평소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이벤트에 대한 박 후보의 반감을 감안한다면 가히 파격이라 할 만하다.


박 후보의 노 전 대통령 묘소 참배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새겨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국민대통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점에서 봉하마을 방문의 의미는 폄훼될 수 없다고 본다. 박 후보는 3년 전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봉하마을을 찾았다가 문상을 저지당한 바 있다. 이번 방문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 화합을 도모하는 작은 디딤돌이라도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에 못지않게 주목되는 대목은 그 이면에서 읽히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박 후보의 다짐이다. 박 후보의 봉하행은 대선 캠프의 제안을 박 후보가 전격 수용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선 내내 ‘소통부재’ ‘사당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박 후보로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인식의 일단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후보 고 노무현대통령 묘역 참배 (출처: 경향DB)


문제는 국민대통합 메시지가 여전히 구호에 머무는 인상이 짙다는 점이다. “과거만 보지 말고 미래를 이야기 하자”는 식이 아니라 국가 최고지도자 후보에게 요구되는 과거와 역사에 대한 박 후보의 인식이 수반돼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5·16 논전을 비롯해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이나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등 미래로 가기 위해 선결해야 할 과제들에 대한 박 후보의 보다 명확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 박 후보가 봉하마을 방문을 유족들과의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거듭 강조할 필요도 없이 국민대통합은 연말 대선이라는 파고를 타고 넘으면서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구호나 다짐만으로 해결될 과제 또한 아니다. 이날 박 후보의 봉하마을 방문에서도 박 후보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잠시 충돌하는 소란이 일었다. 국민대통합의 길이 멀고 험하다는 징표이기도 하지만 이번 방문이 그 첫걸음이 된다면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대통합이라는 화두를 선점한 박 후보가 “진정성 없는 정치쇼”라는 야권 공세를 누그러뜨릴 만한 후속조치를 내놓아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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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가 검정 교과서를 교과부 장관의 강력한 통제 아래에 두는 것을 골자로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한다. 장관이 교과서 수정을 명령할 수 있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검정합격을 취소하며 3년간 검정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검인정 교과서 체제를 무력화해서 정권의 입맛대로 교과서를 편찬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국가가 교과서를 전일적으로 통제하는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국정교과서 체제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부는 검정 교과서 관련 사항이 대통령령에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어 각종 행정처분의 근거를 마련하기 어렵다고 개정 이유를 들고 있다지만 설득력이 없다. 핵심은 기존의 대통령령에 명시돼 있는 교과부 장관의 교과서 수정 명령 권한을 아예 상위 규범인 법으로 못박고 교과서 제작업자들에게 사업 취소라는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다.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교과서 제작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데 어느 누가 명령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번 개정안은 18대 국회 시절인 2010년 9월 국회에 제출됐다가 야당이 장관의 자의적 수정명령권을 비판하며 반대하는 바람에 폐기된 바 있다. 이를 현 정권 임기말과 19대 국회의 개원 초기, 대통령 선거 정국 등이 겹치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은근슬쩍 다시 불러낸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교과서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는 교과부의 집념과 끈기가 놀랍기만 하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설명 (출처: 경향DB)


이명박 정권의 교과서 개정을 통한 역사 왜곡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 친정부 학자들의 요구에 따라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거나,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을 미화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이러한 행태는 법원조차도 제동을 건 바 있다. 2009년 9월 서울중앙지법이 “교과부의 수정 명령이 있더라도 저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교과서 내용을 바꿔서는 안된다”고 밝힌 것이다. 


교과부는 교과서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는 시도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과거의 국정교과서 체제를 검인정체제로 전환한 것은 권력의 자의적 개입을 막고 교육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며, 변화하는 사회의 다양성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마당에 교과서를 장관 마음대로 고치겠다는 것은 군사독재정권 시절로 되돌아가겠다는 뻔뻔스러운 시대착오라고밖에 볼 수 없다. 교과서를 그대로 두라. 이것이 임기말 정권의 교과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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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 소설가

김애숙씨는 한마디로 강철여인이다. 오랫동안 공공근로를 다녔기에 길 가다보면 커다란 모자를 쓰고 팔 토시 낀 채 일하고 있는 그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잡초 제거,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를 정리하고 미관사업의 일종으로 개양귀비 심는 일을 했다. 하루도 빠진 적이 없다.


일이 끝나면 호미 들고 밭으로 부리나케 달려가서 상추와 시금치를 한 다발 안고 내려오기도 한다. 물이 나면 갯것을 수확하러 간다. 특히 커다란 토종 홍합을 따는 데는 독보적인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홍합은 마을 뒤 깎아지른 절벽 아래와 조간대의 암초에 많이 있다. 밀물이면 사라지고 썰물이면 나타나는 곳을 조간대라고 한다.


홍합을 따려면 힘과 뱃심이 좋아야 하고 재빠른 손놀림과 상황판단도 필수이다. 파도 밀려오는 절벽이나 갯바위 아래 약간 튀어나온 곳에 발을 디디고 서서 (몸이 물에 잠기기 때문에 파도가 심한 날에는 할 수가 없다) 빗창이나 호미로 재빠르게 따야 한다. 그리고 배를 대면 불룩한 마대자루를 던져올린 다음 쏜살같이 올라타야 한다. 그래야 배도, 사람도 다치지 않는다.



(출처: 경향DB)

 


그녀는 그렇게 모든 현장에서 빛이 난다. 무엇을 하더라도, 누구보다도 수확물이 많다. 여자들은 그녀의 능력을 부러워하고 남자들은 그녀의 남편을 부러워한다. 말수도 적다. 해야 할 일이 앞에 있으면 거리낌 없이 다가가서 깊은 몰입을 한다. 일이 끝나면 그 다음 일을 향해 움직일 뿐이다. 얼마 전 공공근로 기간이 끝났다. 그녀는 그 다음날부터 공사 현장에 나간다. 벽돌을 지고 사모래도 친다. 비가 와서 그마저도 쉬어야 할 때는 식당 서빙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제는 일 많이 하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닌 세상이니 좀 쉬며 놀며 하라고 해도 고개를 젓는다.


며칠 전에 이 강철여인을 모시고 갯것을 채취하러 가게 되었다. 방파제를 돌아 나가자 거대한 파도가 연달아 밀려왔다. 자그마한 배는 미친 듯 춤을 추었다. 우리의 애숙씨는 순간 몸을 날려 갑판에 납작 엎드렸다. 엎드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싼 채 떨기 시작했다. 세상 그 무엇도 안 무섭고 심지어는 이런 파도에 헤엄치는 것도 두려울 게 없는데 딱 하나, 파도 위에서 배가 요동치는 것만큼은 너무 겁이 난단다. 느닷없이 갑판을 향해 몸을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일행은 웃었는데 나는 어느 누구도 무서워하는 것 하나씩은 있다는 사실 때문에 따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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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 글로벌정치경제硏 연구실장


지난 4·11 총선에서 복지 의제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치권, 특히 말로만 보편복지를 다루는 야권이 원망스러웠다. 대선에선 다르겠지 생각했는데 상황이 심상치 않다. 어느새 후보선출 투표 시점인데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들로부터 복지국가 그림을 접할 수 없다. 몇 가지 사안별 복지 공약을 발표할 뿐 총괄적인 복지국가전략이나 복지재정방안을 내놓는 후보가 아직 없다. 


민주통합당이 얼마 전 세제개편안이라고 내놓은 건 고작 연 5조원 증세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약 1300조원 기준 0.4%다. 이것으로는 GDP 19%대의 부끄러운 조세부담률에 수치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연 1조원 증세안과 오십보백보다. 토목지출을 어떻게 절감할지, 어떤 항목에서 조세감면을 할지에 대한 로드맵도 없다. 실현 방안이 명확하지 않은 장밋빛 약속을 ‘포퓰리즘’이라 한다면 이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복지국가를 주창한다면 근래 국제경제 환경에서 ‘재정’ 의제가 처한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20세기 서구에서 복지국가가 확장되는 과정에서는 ‘재정’이 복지를 충당하는 적극적인 거름이었다. 복지와 증세에 대한 국민적 합의로 조세부담률, 국민부담률이 오르면서 재정은 복지국가를 뒷받침하는 디딤돌로 여겨졌다. 

 

민주통합당 대선 예비후보가 TV토론회에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출처 :경향DB)



그런데 21세기 들어 고령화에 따른 의료·연금지출 증가,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증폭된 재정위기 등으로 재정이 지니는 정치적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재정건전성 프레임이 작동하면서 재정 의제가 보수적 효과를 내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응이 발 빠르다. 작년 4월부터 ‘재정위험관리위원회’를 설립해 운영하고, 12월부터는 ‘장기재정전망협의회’를 가동해 구체적으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기구들은 미래 한국이 직면할 고령화 위험을 강조하는 재정수치를 생산하고 재정안정화를 위해서는 복지확대가 곤란하다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다. 이미 기획재정부는 야당의 보편복지 소요재정을 검증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올해 말에는 국민연금 장기 재정추계 결과를 발표해 연금 소진 불안을 상기시키고, 노인 의료 지출에 대한 위기감도 조성할 것이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어느 나라보다 가파르다. 고령화 담론이 심화될수록 미래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증가하고, 보편복지세력이 내거는 ‘재정 확충을 통한 복지 확대’보다는 보수세력이 주장하는 ‘재정 관리를 위한 복지 억제’ 주장이 세를 얻을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복지국가를 역설하는 정치권이 내놓은 게 선언적인 소규모 증세 페이퍼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보수세력의 재정건전화 공세를 이길 수 없고, 복지국가를 향한 국민들의 열의를 이끌어내기도 어렵다.


복지국가 후보라면 그에 걸맞은 재정혁신을 국가프로젝트로 내걸어야 한다. 올해 우리나라 재정규모는 GDP의 30.0%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2.5%, 유럽 평균 49.2%에 비해 현격히 낮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는 세입을 확충할 여력이 매우 크다.


물론 장벽이 만만치 않다. 국민들의 재정불신, 조세 저항이 크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를 넘어서려는 ‘증세정치’가 없다는 점이다. 모두들 복지국가를 위한 재정확충을 말하지만 이를 구현하기 위한 증세정치에 나서지 않는다. 자신이 복지국가 후보로서 재벌증세를 주창한다지만 재벌총수를 만나고 이를 압박하는 민심을 조직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국민들이 정작 문제를 느끼는 과세형평성이나 토목지출 개혁 방안도 속시원하게 내놓지 못한다. 이렇게 증세정치가 없는 곳에서는 국민들의 조세 저항이 미래 복지국가를 향한 조세 정의로 전환되기 어렵다. 대한민국 복지국가도 요원해진다. 


이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맞설 야권 후보를 뽑을 차례다. 복지국가 재정혁신전략을 국가프로젝트로 삼는 후보가 나오길 바란다. 민주통합당 후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 선거전에 등록도 하지 못한 안철수 원장, 진보정당 후보에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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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섭 | 성공회대 대학원 박사 과정


무더위와 올림픽 때문에 많은 이들이 불면의 밤을 보냈다. 연이은 오심 논란과 예상외의 선전, 운명 같은 한·일전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가 하면 연예계에서는 집단따돌림(왕따) 논란이 있었다. 걸그룹 티아라의 컴백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에 대해, 소속사는 피해자로 추정되는 멤버를 탈퇴시키는 것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했다. 여기에 회사 말단 스태프의 곤궁함을 마치 탈퇴 멤버의 탓인 것처럼 돌리는 이상한 변명이 더해지면서 사태는 더욱 커졌다. 그 결과 일부 팬과 누리꾼들이 소속사에 대해 집단대응을 벌이면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려던 소속사의 의도는 무산됐다. 


그런 와중에 어떤 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노사 분쟁이 진행되던 SJM이라는 중소기업에서 사측이 300여명의 용역을 투입해 노동자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한 것이다. 이 사건의 주역인 컨택터스라는 용역회사는 경찰에 버금가는 진압장비는 물론이고 자체 살수차까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이들은 사태 해결에 나선 국회의원에 대한 조롱까지 벌여가며 그야말로 성역 없는 노동 파괴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세 가지 일이 비슷한 시기에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이 사건들이 사실은 이상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우리 역시 이 연결고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면? 


 

컨택터스 측이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경비 장비 (출처 : 경향DB)

먼저 올림픽을 생각해보자. 한국의 체육은 이른바 엘리트 스포츠다. 선수들은 10대 때부터 극한의 훈련을 견뎌가며 운동하는 기계로 육성된다. 그런데 이 중에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사람은 해당 종목과 체급의 모든 선수들 중 1위를 한 선수뿐이다. 프로리그가 없는 종목의 선수들은 대학이나 실업팀으로 가기 위해 또다시 피땀을 흘려야 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수의 탈락자들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이 탈락자들에게는 별다른 구제책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미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오로지 운동에만 바친 이들은 상대적으로 좁은 시야와 부족한 학습량이라는 핸디캡을 지닌 채 자력구제를 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이들과 연예인 혹은 수많은 연예인 지망생들은 뾰족한 끝부분만 밝게 빛나고 있는 피라미드에서 극적으로 만난다. 피라미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깜깜한 부분에서는 희망고문과 탈락의 불안이 넘실거린다. 


연예인들이 TV 토크쇼에 나와 선후배 간의 폭력적인 관행을 즐거운 에피소드처럼 이야기하고, 가혹행위에 대한 사회적 비난에 대해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라며 언성을 높이는 예체능 전공자들의 모습은 이런 비슷한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 오로지 하나의 목적을 위해 길러진 이들에게는, 지금까지의 삶을 모조리 포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출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멀고 먼 합리성이나 정의 같은 관념들보다는 당장 눈앞의 인맥과 작은 권력들이 생살여탈권을 쥔 존재가 된다. 또 그것이 불합리하거나 가혹한 것과는 상관없이, 내부의 관행들은 법처럼 군림한다. 무엇보다도 이 악습들은 어떻게든 성과만 내면 좋다는 협회, 지도자, 관계자, 매니지먼트 같은 결정권자들에 의해 묵인되거나 심지어 권장되기까지 한다. 그 결과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눈부신 한 줌의 성공이고, 거대한 곤궁함과 잔혹한 룰은 그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된다.


이 구조는 우리를 다시 용역들이 늘어서 있는 농성장으로 이끈다. 순위에 들지 못한 이들의 몇 안되는 취업처이자 가난한 청년들의 짭짤한 아르바이트. 나에게서 머나먼 법과 생판 모르는 노동자들 대신에 돈과 선후배를 믿으며 돌진하는 이들. 그리고 이들의 무모하고 무지한 돌진에 속절없이 나동그라지는, 결국에는 “좀 살자”라는 단말마를 공유하는 수많은 노동자들. 우리 모두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나가는 문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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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 한신대 교수·경제학

올여름 여러 ‘전시회’가 있었다. 여수엑스포나 런던올림픽도 전시회의 일종이다.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전시 행사이다. 전시회는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보여준다. 역사는 쓰여서 읽히는 것만이 아니고 전시되고 이미지화되기도 한다. 전시회는 역사와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시도이다. 박람회나 박물관의 전시는 교육의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에 정치성이 들어 있다.


지난주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신축 현장에서 불이 났다. 당장 사람이 피해를 보았고 나라의 체면도 손상되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전시하는 장소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 경복궁 일대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나라의 얼굴에 해당할 것이다. 경복궁 가까운 곳이 화마의 먹구름에 싸인 모습을 보니, “나라가 만년 되고 큰 복 받기를”(君子萬年, 介爾景福) 바라는 기운이 흐트러지는 것 같아 착잡했다.


경복궁 일대는 한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경복궁에 국립고궁박물관이 위치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경복궁 앞에 일본총독부 청사가 들어서고 해방 후 그 건물이 정부청사가 되었다가 다시 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이제는 과거 총독부·중앙청·박물관으로 쓰였던 건물은 철거되고 경복궁에는 고궁박물관이 남았다. 미술관은 경복궁에서 덕수궁으로 갔다가 과천에 신축 이전했다가 다시 서울관을 짓고 있는 중이다. 부수고 짓고 이사 다니느라 정신이 없고, 정작 “우리는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묻지 못하고 있다.


경복궁 옆 공사현장에서 불 (출처: 경향DB)



가까운 이웃인 중국과 대만은 문화재 전시를 통해 치열한 정체성 투쟁을 벌인 바 있다. 청나라가 멸망하자 왕실의 모든 재산은 중화민국 정부로 이관되었고 왕실 문화재를 기초로 고궁박물원이 설립되었다. 1925년 베이징의 고궁에서 소장품이 민간에 최초로 공개되었으나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면서 문화재를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일본에 승전한 후 문화재는 베이징으로 돌아왔으나,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공산당에 밀리게 되자 총 24만점의 중요 문화재를 대만으로 옮겼다. 당시 국민당은 병력 이동보다 문화재 수송을 우선했다고 한다. 국민당 정부는 ‘국보’를 통해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대만은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박물관 전시를 보다 적극 활용하게 되었다. 대만에 옮겨진 문화재는 타이중의 저장고에 보관되다가 마침 1965년 타이베이에 지어진 고궁박물원으로 옮겨 갔다. 1966년 대륙에서 문화대혁명이 발발하자 타이베이의 고궁박물원은 문화재를 ‘보관’하는 곳에서 ‘전시’를 하는 장소로 전환하게 된다. 대만은 중국 대륙의 문화대혁명에 대결해 대만인이 중화문명의 일원이자 수호자임을 일깨우고자 했다. 이에 따라 고궁박물원은 대만인을 ‘중국 국민’으로 만드는 기지가 되었다.


그러나 정세 변화는 대만에 국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1987년 계엄 해제 이후 대만에서는 새로운 정치적 요구가 본격 제시되었다. 이후 대만 정치권에서는 국민당과 민진당이 경쟁하고 있고, 전시회에서도 자신들이 중화문명인가 해양대만인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대만은 토착 유물이 아니라 인접 국가의 최고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이것을 자랑할 일인가 아니면 대만의 역사와 전통을 새로이 보여주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대륙 중국이 조국인가 아니면 타국인가 하는 물음과 연결되어 있다.


중국 대륙도 전시를 국가 만들기에 적극 활용했다. 중요 문화재는 대만으로 옮겨갔으나 베이징의 고궁에는 700여개의 건축물과 100만점의 문화재가 남았다. 1959년 중화인민공화국 10주년을 맞이해 톈안먼 광장 동쪽에 중국역사박물관을 건립했으며 그 이듬해 같은 건물에 중국혁명박물관을 개관했다. 베이징이라는 도시 자체가 국민을 만들고 국가를 견고하게 하는 전시의 공간이 되었다.


여름밤을 흥분시키는 올림픽도 대대적인 국가들의 전시회가 되고 있다. 물론 올림픽도 초기에는 교육혁신과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올림픽운동의 창시자 쿠베르탱은 독일을 공공연한 적으로 간주하는 프랑스의 교육에 반발했다. 그러나 정작 올림픽운동은 국가주의에 편승하면서 성공하기 시작했다.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의 국력을 결집하고 중화민족의 부흥을 과시하는 매개체로 활용됐다. 런던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은 청년의 일원이라기보다는 국가의 대표로 경쟁하고 각국 국민들은 이에 열광했다.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 사죄를 요구했다. 청와대는 독도라는 보물을 ‘보관’만 할 게 아니라 ‘전시’ 이벤트도 한번 벌여 보자는 의도였던 것 같다. 일본 정부는 갖가지 보복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우익들에게는 세력 결집의 호재가 되겠지만, 한국과 동아시아 모두에 경복(景福)이 되지 않을 일들이다. 치열했던 여름 더위가 가시고 나면 국가주의적 역사 전쟁의 소모적 흥분도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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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제민 정치부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독도에 다녀온 뒤 열흘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대통령이 우리 영토에 다녀오는 것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국민들이 속 시원하다며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지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 해결에 무성의하게 나와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이 대통령의 설명에도 공감한다. 일왕이 한국에 오려면 독립운동가 자손들을 찾아가 사과하는 게 먼저라는 것도 백번 옳은 말씀이다. 


 그러면 이 대통령의 방문으로 독도에 대한 한국의 실효적 지배가 더 공고해졌을까. 이 대통령의 질타로 일본인들이 대오각성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 같지 않다.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행을 공언한 뒤 독도는 한발 더 국제 분쟁지역화했다. 일본 사회 역시 반성하기는커녕 반한 감정만 키웠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에 대한 사과 요구는 한국에 우호적이었던 일본 내 좌파세력까지 반발하게 했다”는 강상중 도쿄대 교수의 전언은 그래서 뼈아프다.


일본 보수성향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16일 도쿄 한국대사관 부근에서 일장기를 들고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및 일왕 사과 발언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경향신문DB)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를 보면 실망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분노를 표출하는 것과 일본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별개다. 감정만 갖고 대응할 일이 아니다. 무력으로 일본인들을 굴복시키려는 게 아니라면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그들과 관계는 유지하면서도 잘못을 계속 지적해 반성하게 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 독도 방문의 뒤처리는 이제 외교 실무자들과 국민 몫이 됐다. 이 대통령은 전에 북한에도 ‘농지개혁을 해야 한다’ ‘지도자가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인즉슨 옳지만, 남북관계는 악화됐다. 시원한 말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어떻게 변화시키느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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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러미스 |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지난번 칼럼에서 나는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이 어째서 전쟁 방식과 법 집행 방식의 어색한 조합인지 밝혔다. 그 논지를 거듭 말하자면, 법 집행의 경우 수사관들은 증거를 찾아, 용의자를 가려내고 그들의 위치를 알아내도록 훈련받는다. 증거가 충분할 경우 그들을 체포하게 된다. 미국 영화에서 수사관들은 종종 용의자를 사살하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저항하지 않는 용의자를 사살하는 것은 살인이다. 용의자는 법정에서 유죄로 선고받은 뒤에야 처벌받는다.


반면 전쟁의 경우, 다른 규칙들이 적용된다. 적군은 범죄자가 아니다. 군인들은 전쟁법을 위반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무슨 행동을 하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군복을 입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상대편 군인에게 합법적으로 죽임을 당할 수 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적(敵)은 ‘테러리스트’ 또는 ‘불법적 전투원’으로 정의된다. 그 말은 그들이 적군도 되고 범죄자도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어느 쪽의 권리도 갖지 못한다. 그들은 군인과 같이 현장에서 사살될 수 있지만, 생포될 경우 군인과 달리 전쟁포로가 아니라 범죄인처럼 대우받는다. 


하지만 범죄 용의자와 달리 그들은 재판이나 인신보호영장 없이도 구금될 수 있다.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은 새로운 범주의 인간을 만들어냈다. 어떠한 법적 권리도 갖지 못한 사람 말이다.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가 이들을 수용하는 미국 감옥으로 선정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가진 법적 지위 때문이라고 한다. 미군이 100년도 넘게 보유한 그 기지에서 쿠바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국 형법이 적용되지도 않는다.(그곳은 법적으로 미국이 아니다.) 미군 법도 적용되지 않는다.(수감자들은 미군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법도 적용되지 않는다.(수감자들은 전쟁포로가 아니고, 미국 정부도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 수감자들은 법의 블랙홀에 있는 셈이다. 어떠한 법도 그들에게 가닿을 수 없다.


손이 묶이고 입에 재갈이 물려진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된 테러 용의자들 (경향신문DB)


이 수감자들이 처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수감자와 간수 사이의 대화를 예로 들어보자.


수감자: 왜 내가 재판도 없이 이 감옥에 갇혀 있는 거죠?


간수: 왜냐하면 당신은 재판받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죠.


수감자: 왜 내가 재판의 권리가 없죠?


간수: 불법적 전투원이기 때문이죠.


수감자: 내가 불법적 전투원이라는 결정이 어떤 공판에서 어떤 증거에 기반해서 이뤄졌죠?


간수: 당신은 그런 공판에 대한 권리가 없어요. 증거를 확인할 권리도 없고.


수감자: 왜 나는 그런 권리가 없죠?


간수: 왜냐하면 당신은 불법적 전투원이기 때문이에요.


일부 용기있는 미국 인권 변호사들이 이 수감자들의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이 포로들 중 일부를 풀어준 것도 사실이다. 미국이 풀어준 이들은 대개 실수로 잡은 사람들이었다. 인권 사각지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그리고 사살도 계속되고 있다. 신문들은 미국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이 그 사살 리스트에 누구를 포함시킬지 논의하기 위해 매주 한 번씩 모인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최고위 관리들은 각각의 용의자에 대해 수집된 정보를 평가한다. 그 정보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스파이와 다른 정보기관에서 나온다. 용의자들은 그런 회의가 열리는지도 알지 못한다. 대통령이 각각의 건에 대해 직접 승인하거나 불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사형 결정이 내려진다면, 그 사람은 로봇 비행기의 로켓에 의해 사살된다. 그 사살 자체는 무작위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테러’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이것의 명칭은 ‘암살’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번역 | 손제민 기자>



 The War on Terror (continued)


In my last column I described how the US-led “war on terror” is an awkward mixture of the methods of warfare and the methods of law enforcement.


To repeat the argument: in the case of law enforcement, investigators are trained to search for evidence, to identify suspects, to locate them and, if the evidence is sufficient, to arrest them. In American movies, investigators regularly kill suspects, but in the real world, to kill an unresisting suspect is murder. A suspect may be punished only after being convicted in a court of law.


In the case of war, on the other hand, a different set of rules apply. Enemy soldiers are not criminals, and what soldiers may have done or not done (so long as they have not violated the laws of war) is not relevant. Anyone wearing a soldier‘s uniform may be legally killed by a soldier on the other side.


In the war on terror, the enemy are defined as “terrorists” or as “illegal combatants”. That is, they are seen as both enemy soldiers and as criminals. But the result is that they have the rights of neither. Like soldiers they may be killed on sight, but unlike soldiers, if they are captured they are treated as criminals, not as prisoners of war. But unlike criminal suspects they can be kept in prison without trial, and without the right of habeas corpus (the right to be released if there is insufficient evidence to bring charges). Thus the war on terror has produced a new category of human being - people with no legal rights whatsoever. It is said that one of the reasons the US military base at Guantanamo Bay in Cuba was chosen for the main US prison for these people was its legal status. In that base, which the US has held for more than a century, the laws of Cuba do not apply; US criminal law does not apply (it’s not legally the US); US military law does not apply (the prisoners are not members of the US military); and international law does not apply (the prisoners are not POWs, or so the US government has claimed). The prisoners are in a legal Black Hole. It is also said that some prisoners are being held on US navy ships, for the same reason: no law can reach them there.


To get a grasp of the situation these prisoners are in, imagine this conversation between a prisoner and his jailer.


Prisoner: Why am I being kept in this prison without a trial?

Jailer: Because you have no right to a trial.

P: Why do I have no right to a trial?

J: Because you are an illegal combatant.

P: At what hearing, on the basis of what evidence, was it decided that I am an illegal combatant?

J: You have no right to such a hearing, nor do you have a right to see the evidence.

P: Why do I have no such right?

J: Because you are an illegal combatant.


It is true that some brave American human rights lawyers are fighting to have these people‘s rights restored, with some success. It is also true that the US has released some of the captives - mainly those who had been captured by mistake. But there are still many who remain in this black hole of human rightlessness.


And the killing goes on. The newspapers have recently told us that the US President and his advisors meet once a week to discuss who to include on the kill list. Information is collected about each suspect, and evaluated by this group of top government officials. Unlike at a trial, this evidence does not come from witnesses who are sworn to tell the truth, and there is no one there to speak for the suspect. Information comes from the CIA’s spies and those of other intelligence agencies. The suspect does not know that the meeting is taking place. The President, we hear, personally approves or disapproves each case. If the sentence is death, the person is killed by rockets from robot airplane.


As the killing is not random, you cannot call it terror. The proper term for this is assass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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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 흥사단청소년연구원 운영위원


 

최근 들어 국제교류 행사가 청소년단체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부상하면서 방학을 맞아 외국으로 출국하는 청소년과 청소년단체가 증가하고 있다. 


청소년 국제교류의 활성화는 우리 청소년들의 글로벌 마인드를 넓히고 한류로 급부상한 한국 문화를 외국 청소년들에게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방문국의 유명한 관광지 위주의 견학 일정과 수백만원에 달하는 참가비로 편성된 외국 방문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청소년계 스스로 한번쯤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설사 관광지가 아닌 역사유적지 탐방 등의 프로그램이라 해도 방문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나 역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참가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준비가 스스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 이는 말만 국제교류이지 사실상 단순한 해외 관광 프로그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에 나가보는 것 자체가 이미 국제적 시각을 넓히는 계기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내실 있는 일정이라면 참가비가 수백만원이라도 찾는 사람은 많을 수밖에 없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방문국에 대한 이해와 우리 문화와 방문국의 문화에 대한 차이, 현지 청소년들과의 교류와 문화체험, 참가자들 간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세밀한 기획의 결과물이 투영되지 않은 해외 방문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경험도 추억도 남기지 못한 채 거대한 사진 촬영을 위한 돈쓰기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경향신문DB)


그런 측면에서 최근 하이서울유스호스텔의 프로그램은 인상적이었다. 


캐나다와 호주에서 온 청소년 13명이 참여한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들은 우리의 전통문화와 음식을 충분히 맛보고 만끽했으며 우리 청소년들과의 교류행사도 했다. 그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13명이 아닌 130명 이상의 코리아 홍보맨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의 유스호스텔도 숙박시설의 역할을 넘어 외국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맛과 멋을 전달하고 있다. 청소년의 국제 교류가 반드시 고가의 해외방문 프로그램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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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 | 중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대통령이 친·인척 비리로 국민 앞에 사과하는 모습은 정권 말기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특히 가장 도덕적인 정부를 표방했었고 공정사회를 줄기차게 외쳐온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와 같았다.


(경향신문DB)


 한국 경제의 초고속 압축성장은 정치·행정 엘리트들이 국가발전을 주도했고, 그 역할과 공은 상당하다. 이 상황에서 부패는 경제발전의 윤활유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정부패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됐고, 이를 치유하고 개혁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한국전에 파병한 필리핀의 경우를 보자. 필리핀은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 생활을 했지만 높은 교육열과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으로 국난을 극복하여 한때 아시아 국가의 경제선진국이 되었고 건축기술도 대단했다고 한다.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미국대사관이나 장충체육관을 필리핀이 건설했다면 놀랄 것이다. 그런 나라가 지도자를 잘못 만나 아시아 빈국으로 전락하게 됐고, 고학력의 필리핀인들은 선진국으로 가서 노동자로, 가정부로 일하며 달러를 벌어 고국에 송금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영국 유학서 돌아온 리관유는 조국 싱가포르의 부정부패 척결에 일생을 바쳤다. 매춘 ,마약, 조직범죄, 부정부패에 온통 썩어 문드러지는 싱가포르를 반부패법과 제도화된 시스템으로 아시아 국가 최고의 청렴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반부패 성공정책 때문에 그의 장기집권과 독재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 시민들도 서방언론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부정과 부패로 대한민국이 좌초한다면 가장 불행한 것은 누굴까? 우리 국민들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권력형 부정부패나 친·인척 비리를 사전에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와 공직자 재산심사를 실질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장치를 국회나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논의되고 있는 공직자비리수사처는 검찰과의 권한 다툼이나 법에 규정된 공소권과 상치되어 그 실효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검찰은 반부패 수사권을 확실히 하도록 검찰 중립성을 더욱 강화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반부패 유발문화가 확산되도록 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청렴은 교육과 문화가 변화돼야 이루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인과 공직자의 윤리적 의사결정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직업윤리와 행동강령을 강화해야 한다. 공직자의 높은 수준의 윤리적 행동과 품위를 기대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자 당연한 요구이다.


  ※ <이렇게>는 열린 지면입니다. 경향신문에 대한 비판, 제언 등 소재와 글의 형식에 관계없이 독자 여러분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사회 흐름을 짚을 수 있는 독자 여러분의 살아 있는 글로 충실히 지면을 꾸미겠습니다. 적극적인 참여 바랍니다. 글은 op@kyunghyang.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02)3701-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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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학 | 국민건강보험공단 마포지사 과장


 

건강보험제도 시행 35주년이 지났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인 12년 만에 전 국민 건강보험을 달성하였으며, 의료 접근성이 크게 높아져 국민 누구나 보편적으로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선진국에 살고 있는 교포들도 치료를 받기 위해 귀국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고,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에서 배우러 오는가 하면 세계로 수출까지 되고 있을 정도로 모범적인 제도로 칭송받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우수한 건강보험제도가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막대한 급여비 지출 증가로 최근 몇 년간 재정이 불안정하여 적자와 흑자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수입부문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으나(보험료 인상, 국고지원 확대 등) 지출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를 통제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경향신문DB)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고령화로 노인진료비가 급증하고 있으며(2011년 33.3%), 질병 패턴도 급성기 질환에서 만성질환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나 여전히 치료 중심의 급여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높은 약제비(35.3%), 치료 재료의 비중, 취약한 1차 의료 및 의료전달체계, 대형병원 쏠림현상, 행위별 수가제 등은 무분별한 의료이용을 통제할 아무런 기전이 없다.


가입자는 보험급여 여부, 가격 결정 등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있으며 보험자는 가입자의 대리인으로서 선량한 재정관리 책임자 역할을 수행해야 함에도 수입과 연동된 합리적인 지출관리 기전이 매우 취약하다.


급증하는 진료비를 조달하고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정한 수준의 보험료 부담을 통해 재정 건전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험료 부과기준이 상이하여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행 부과체계는 직장과 지역 간에 부과기준이 상이하고 지역가입자는 다시 연간소득 500만원 이하자와 초과자로 다르게 부과함으로써 직장 퇴사 시 소득은 감소하나(집, 자동차 등을 보유한 경우) 지역보험료가 더 높아지는 모순이 발생하여 보험료와 관련된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부과체계를 소득중심으로 단일화해야 안정적 재원마련이 가능하며 더 나아가 형평성 문제 해소와 제도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형평성은 부담능력에 비례한 부담이다. 형평성은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제도 발전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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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1990년대 중반, 만화가 좋아 만화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글을 쓰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일간지 신춘문예 만화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순전히 ‘운빨’이라고 생각한다. (신춘문예 만화평론은 다섯 해인가 지속됐다가 사라졌다.) 햇병아리, 얼치기 평론가이지만, 다른 글쟁이들의 만화에 대한 비유는 영 거슬렸다. 특히 영화평에 자주 등장한 문장이었는데, 뭔가 이야기 전개가 느슨하거나 황당한 연출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만화 같은’이라는 수식이 등장했다. 난 이 수식을 참 싫어했다. 만화를 무시한다고 분개하기도 했고, 그런 표현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자본과 비평이 만나 활짝 피어나던 영화산업, 영화문화가 부러웠고 배아팠다.만화 같은 영화, 만화 같은 드라마, 만화 같은 뮤직 비디오, 만화 같은 인생…. 리얼리티가 떨어지거나, 스테레오 타입이거나 아무튼 뭔가 좀 부족한 모든 것들을 전부 만화 같았다고들 했다. 그게 정말 싫었고, 만화 안에 내재한 가치를 찾으려 동분서주했다.


 만화 같은 것들을 경계하며 세상은 만화가 꿈꾸던 21세기가 됐다. 요즘은 만화 같다는 표현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 그만큼 만화의 시민권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난 시절 만화 같다고 한꺼번에 정의된 사람, 이야기, 사건, 표현 등은 뭔가 유사한 맥락에 존재했다. 그건 조금은 부족하지만 악의적이지 않은, 어수룩한 낭만과 순수한 열정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만화 같은 것들을 광속으로 밀어냈다. 빠름 빠름 빠름!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재빨리 아파트를 사고팔았고, 주식이 오르면 얼른 주식과 펀드에 돈을 넣었다. 만화 같은 것들을 밀어낸 자리를 차지한 건 빛나는 돈의 아우라를 두른 욕망. ‘부자 되세요’ 따위의 카피가 CF에 지겹게 나올 때부터 우리 삶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휘황찬한한 돈의 아우라는 모든 추악한 걸 감추어 버렸다. 그렇게 어떤 이는 대통령이 됐고, 1% 살찌고 99%는 야위어갔다. 심지어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누구는 폐쇄된 직장을 지키고, 누구는 그 직장을 빼앗고 노조를 깨기위해 소화기를 뿌린다. 시끄러운 컨택터스 사건을 보라. TV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 나오는 용역들을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이유는 ‘돈’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난 10여년간 우리가 밀어낸 만화 같은 것들이다. 1970~1980년대에 만화를 본 40대들이라면 명랑만화를 기억할 것이다. 꺼벙이의 어리숙함, 고집세의 밉지 않은 고집, 두심이의 모험, 요철발명왕의 황당한 상상력, 번데기 야구단 주인공들의 끈기, 오학년오반 삼총사의 우정. 아마 하나하나 기억날 것이다. 


1980~1990년대에 만화를 본 30대들이라면 아마 이런 만화가 기억날 것이다. 새엄마를 오해하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오늘도 달리는 소녀 하니, 낯선 이방인들의 짓궂음이 함께하는 고길동씨네, 말썽꾸러기 학동들을 달래기 위해 늘 선대왕 이야기를 해 주는 맹꽁이 서당의 훈장님, 저 멀리 그린우드에서 이 세상으로 온 요정 핑크. 덧붙이자면 수도 없이 나올 그 시절의 만화들이다.


길창덕의 만화 <꺼벙이> (경향신문DB)


꺼벙이처럼 어리숙해지면 삶이 행복해진다. 고집세의 밉지 않은 고집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킬 것이다. 두심이의 모험은 새로운 창의로 미래를 개척하게 할 것이고, 요철발명왕의 황당한 상상력은 놀라운 벤처정신과 다를 바 없다. 번데기 야구단 주인공들의 끈기는 좌절하는 당신의 오늘을 이길 힘이 된다. 오학년오반 삼총사의 순전한 우정은 경쟁이 아닌 협업의 사회를 만들 것이다. 소녀 하니와 새엄마의 화해는 무너지고 있는 가정을 새롭게 돌아보게 할 것이고, 모든 이방인들을 품어주는 소시민 고길동씨는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그들의 모습과 다름없다. 맹꽁이 서당 훈장님의 모습에서 공교육의 모델을 보고, 그린우드에서 온 요정 핑크를 통해 환상과 만난다.


우리는 이런 만화 같은 것들을 모조리 내 삶에서 밀어내고 팍팍하게도 살았다. 만화 같은 것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만화를 보자. 어떤 만화라도 좋다. 만화를 통해 내 삶을 느슨하게 풀어보자. 증오와 분노를 잠시 내려놓고, 허망한 키보드질도 그만두고, 만화를 보자. 가족이 있다면 가족과 함께 만화를 보자. 어느 순간, 내가 밀어냈던 만화 같은 것들을 다시 만날 때, 우리 삶은 행복의 길로 한 발 더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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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만주 서쪽 변방인 열하에서 복무하던 만주군 중위 박정희가 일제 패망과 한반도 해방이라는 뜻밖의 소식을 접한 것은 1945년 8월17일이었다. 만주군은 일본 관동군의 통제를 받았고 일본군 장교가 직접 지휘하기도 한 ‘황군’이었다. 


 일제 패망 소식을 들은 박정희는 같은 부대에 있던 만주군관학교나 일본육사 선배들인 신현준 상위(해병대 사령관, 모로코 대사 지냄)와 이주일 중위(5·16 쿠데타 후 최고회의 부의장, 감사원장 지냄) 등과 함께 북경으로 갔다. 이들이 9월21일경 북경에 도착했을 때는 그 주변지역 일본군에 복무하던 많은 한국인 청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군국주의 체제에서 더 출세하기 위해 교사직을 버리고 황군에 가담한 박정희와는 처지가 전혀 다르게 대부분 강제 징용군으로 끌려 온 이들이었다. 


당시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에서 일본군에 복무하는 10여만명의 한국 청년들을 광복군으로 편입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박정희가 도착한 베이징에는 최용덕을 광복군 지대장으로 한 북평 잠편지대가 설치됐다. 박정희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광복군에 들어간다. 그의 생애에 첫 번째 큰 변신이었다.


일본군에 학도병으로 징용당한 장준하는 일본의 패망이 보이지 않던 1945년 1월 부대를 탈출한다. 그는 중국 장쑤성 쉬저우에 주둔하던 일본군 부대를 벗어나 윤경빈 등과 함께 무려 6000리 길을 석 달 이상 걸어서 충칭 임시정부에 도착했다. 그는 광복군에서 먼저 합류해 있던 김준엽과 만나 평생 동지가 되기도 했다. 


장준하는 광복군에서 김준엽과 함께 미국의 아시아지역 전략정보기구인 OSS에 파견돼 특수부대원 훈련을 받는다. 연합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기 전 침투해 민중 항일운동을 조직하고 일본 측 요인 암살과 주요 시설 파괴를 담당하는 특수전 요원이었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과 이범석 광복군 참모장이 미군 측과 합의한 이 특수전은 실행되지 못했다. 


1945년 8월 초 장준하가 소속된 광복군 국내 정진대가 훈련을 마치고 막 작전을 개시하려 할 무렵 8월6일과 9일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다. 그러자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준비했고 미국 등 연합국은 한반도를 38도선의 남반부와 북반부로 나누어 분할 점령한다는 합의를 마련했다. 임시정부와 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하고 발언권을 행사할 기회를 잃고 만 것이다. 1945년 11월 장준하가 김구 주석의 수행비서로 입국했을 때는 미군정이 남한을 통치하고 있었다. 미군정 당국은 임시정부나 김구의 주석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장준하는 월간 ‘사상계’를 발행하는 등 출판·언론사업에 투신한다. 


한편 박정희는 광복군과 함께 입국한 후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로 입교해 국군 장교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그의 둘째 형인 박상희가 1946년10월 구미지역에서 농민봉기를 주도하다가 경찰 토벌대에 사살되는 사건이 그를 또 한번의 변신으로 몰아넣었다. 박상희의 절친한 친구로 남로당의 군사부 책임자인 이재복이 박정희에게 남로당 가입을 권유한다. 거기다 1946년 10월 당시는 남로당을 중심으로 한 좌익계가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집권 가능성이 큰 남로당에 입당하고 군내 남로당 프락치가 됐다. 


당시 박정희가 소속한 남조선국방경비대의 주요 임무는 좌익계열에 의한 폭동을 진압하는 일이었다. 그런 조선경비대의 장교가 대립적인 공산주의 남로당에 가입한 것은 변신을 넘어 ‘반란’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 당시 조선경비대에 침투한 남로당 조직은 1948년 한 해만 제주 4·3 사건, 10·19 여·순반란사건, 11·2 대구반란사건 등 일련의 사건들을 일으켰다. 박정희는 여·순반란사건으로 체포된다. 그러나 박정희는 여기서 군내 남로당 프락치 수백명의 명단을 진술한 뒤 풀려났다. 이 또한 박정희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변신으로 꼽힌다. 박정희의 수차례에 걸친 변신은 최소한의 철학·인생관과 관계없는 권력욕과 처세술의 발로였다. 1975년 일본군 출신 권력자 박정희는 극악한 유신독재자였고 광복군 장준하는 그것을 준엄하게 비판하는 언론인이며 야권의 지도자였다. 자신의 출세와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박정희였기에 그 하수인들인 중앙정보부가 1973년 8월 김대중을 납치, 수장하려 기도하지 않았던가. 그로부터 2년 후인 장준하의 의문사 때도 유일한 목격자가 중앙정보부와 접촉선이라는 진술이 나왔다. 


1975년 장준하, 의문의 죽음 (경향신문DB)


박정희의 유신독재는 고문, 테러, 의문사와 같은 체제폭력으로 유지됐다. 체제폭력에 대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제대로 진상을 규명할 의무가 있다. 역사적 정의가 결국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을 반드시 입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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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문화와 소비의 시대인 1990년대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의 수위가 고조되던 시기였습니다.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자마자 책 제목에 가장 많이 들어간 단어가 ‘나’였으니까요. 이 시기를 가장 압도했던 사상은 아마 ‘페미니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른바 ‘공격적 페미니즘’ 소설이 출판시장을, 젊은 여성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1992년이었습니다.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경자의 <혼자 눈뜨는 아침> 등은 ‘사랑(결혼)’이라는 전통적 가치보다 ‘일’이라는 자기실현을 중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후 소설 속에서 여성의 ‘지위’는 나날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천년 동안 못다 이룬 사랑을 완성하려는 연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인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이 등장한 것은 1995년이었습니다. 이때 하병무의 <남자의 향기>, 김상옥의 <하얀 기억 속의 너>, 백금남의 <천상의 약속> 등 남자로부터 무한사랑을 독차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상한가를 쳤습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여성들은 드디어 남자를 ‘고르기’ 시작합니다. <모순>(양귀자)의 25세 주인공 안진진은 ‘몽상’과 ‘현실’을 상징하는 두 남자를 저울질하다가 ‘현실’을 선택합니다.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주인공 진희는 바람처럼 가볍고 분방한 사랑을 추구합니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입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을 정도로 지위가 오른 여성은 최상의 멘토로 자기 자신을 설정하기도 하고, 여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천 매뉴얼을 열심히 익혔습니다. 때마침 알파걸, 골드미스 등 이들을 칭송하는 신조어도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비혼주의자도 늘어났습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경향신문DB)


<브리짓 존스의 일기> <섹스 앤드 더 시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젊은 여성을 위한 문학이라는 ‘칙릿’이 큰 흐름을 이룬 것은 2000년대 중반입니다. 영상화된 이 소설들은 런던, 뉴욕, 맨해튼 등 대도시에 살며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20~30대 미혼여성들의 세속적인 욕망과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거침없이 보여줬습니다. 이런 흐름이 국내에도 자연스럽게 이식됐습니다.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와 백영옥의 <스타일>은 드라마로도 방영되었습니다.


선두에 서서 거친 세파를 온몸으로 막아내던 알파걸들의 피로감이 극도로 치솟아서일까요? 지극히 반페미니즘적인 소설 하나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E L 제임스, 시공사) 시리즈는 시간당 10만달러쯤 버는 27세의 억만장자 크리스천 그레이와 대학을 갓 졸업한 21세의 아나스타샤 스틸의 파격적인 사랑을 관능적인 묘사로 그려낸 소설입니다.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이 소설에는 다양한 섹스 장면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와 빌 게이츠를 합쳐 놓은 듯한 하버드 중퇴의 천재사업가인 크리스천 그레이는 섹스로 여자의 몸을 완전히 소유해버리는 마법의 소유자입니다. 아나는 “아름답고 죽이게 섹시하고 부자이며 고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천박한” 그레이에게 점차 빨려 들어갑니다. 그레이는 채찍과 체벌까지 동원한 섹스를 받아들이는 아나에게 “넌 내게 희망을 줬어”라고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네 살 때 ‘약쟁이 창녀’인 엄마를 잃은 크리스천 그레이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릅니다. 부부가 변호사와 소아과 의사인 집으로 입양됩니다. 그 집에는 입양된 형과 누이가 있었는데 다섯 식구 모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습니다. 아나의 어머니는 ‘불치의 낭만주의자’로 네 번째 남편과 삽니다. 친아버지는 아나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아나는 의붓아버지를 엄마보다 더 의지합니다.


크리스천 그레이는 15세부터 엄마 친구인 중년 여성에게 온갖 성적 학대를 당합니다. 그는 그 고통을 아나에게 되돌려주는 셈이지요. 이들의 로맨스는 오로지 섹스로만 이뤄집니다. 이렇게 성에 지배당하는 ‘섹스 판타지’를 20~30대 여성, 특히 도회적이고 교육받고 진취적인 여성들일수록 더 열렬하게 읽는다고 합니다. 이 소설이 유행하면서 ‘성적 복종’이라는 욕망이 하나의 확고한 주제로 떠오른다고 하네요. 


아마존닷컴 사상 최초로 전자책으로 밀리언셀러가 된 이 소설은 종이책으로 인기가 옮겨 붙어 석 달 만에 2100만부나 팔렸습니다. 일본에서는 온라인서점 등장 초기에 <세상에서 제일 쉬운 섹스 어매이징 강좌>가 온라인서점에서 먼저 인기를 끌고 결국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불이 붙었지요. 그렇다면 억눌려 있던 ‘섹스 판타지’에 대한 잠재적인 욕망이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드디어 폭발하는 것일까요? 


자본 증식을 위해서라면 못하는 것이 없는 과학문명에 대한 절망감과 합리적 이성에 대한 신뢰감 붕괴로 말미암아 인간의 관심이 ‘몸’과 ‘마음’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9·11 테러 직후입니다. 지루한 일상에서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개인이 힘겨운 현실에 대한 절망감으로 ‘몸’에 대한 욕망을 키웠다지요. 시대를 거꾸로 가는 ‘섹스 판타지’의 대단한 인기는 굴욕적인 섹스가 ‘해방(구원)’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의 증거일까요? 한때 세상을 주도했던 페미니스트들에게 꼭 한 번 던져보고 싶은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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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의원이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됐다. 박 의원은 어제 당내 경선 개표 결과 84%를 득표했다. 압도적 1위다. 이로써 그는 한국 정치 사상 처음으로 유력 정당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됐다. 승리한 박 후보에게 축하를, 선전한 김문수·김태호·안상수·임태희 경선후보에게 위로를 보낸다.


새누리당 경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박근혜 대세론’이 지배했다. 이변도 드라마도 없이 조용히 치러졌다. 투표율(41.2%)은 전신인 한나라당을 포함해 새누리당의 대선후보 경선 중 가장 낮았다. 반면 박 후보의 득표율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본선은 다를 것이다. 장외 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지율 선두를 다투고 있고, 민주통합당 유력주자인 문재인 의원과의 지지율 격차도 좁혀지고 있다. 박 후보는 이제 대세론이라는 보호막을 떨치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야 한다.


(경향신문DB)


박 후보는 수락연설에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다짐이 수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역사 인식부터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박 후보는 5·16을 두고 “쿠데타가 아니며, 나라 전체가 공산화될 수 있는 위기에서 나온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어제도 “과거로 자꾸 가려고 하면 한이 없다. 미래지향적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도자의 미래비전은 과거에 대한 평가, 역사에 대한 인식의 토대 위에 형성된다. 집권여당의 대선후보가 된 이상 특정인의 딸로서가 아닌, 국가지도자로서의 역사관을 보여줘야 한다.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문제나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에 대해서도 전향적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박 후보가 오늘의 위치에 오른 자산은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다. 하지만 4·11 총선 돈 공천 의혹에 대처하는 자세는 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는 당내에 정치쇄신특별기구를 설치해 공천비리를 뿌리뽑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제도 개혁이 아니다. 기존의 진상조사위조차 파행을 빚고 있는데 새로운 기구를 만든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총선을 지휘한 만큼 진솔한 사과를 하는 게 우선이다.


박 후보는 정책 변화와 가족 문제에 대해서도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2007년 경선 당시 ‘줄·푸·세’로 대표되는 감세·성장론을 내세우다 최근 ‘경제민주화’로 전향했지만 변신의 근거를 제대로 밝힌 적이 없다. 지금도 법인세를 낮춰야 한다며 경제민주화 기조와 배치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핵심정책의 모순적 요소는 정리해야 마땅하다. 동생 박지만씨와 올케 서향희 변호사를 둘러싼 의혹도 적극적으로 해소해 나갈 필요가 있다. 경선 과정에서 빚어진 ‘불통’ ‘사당화’ 논란을 거울삼아 당내 민주주의 회복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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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려워도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이 있기에 견뎌내는 게 삶이다. 그런데 그런 희망이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만한 조사결과가 나왔다. 엊그제 현대경제연구원이 성인 10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향후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으로 올라가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응답이 98.1%나 된 것으로 나왔다. 이 중엔 20대 청년층도 있었는데, 96.3%가 계층 상승 가능성에 대해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무교동 거리를 오가는 건설 노동자의 흙묻은 신발과 사무직 종사자의 말끔한 옷차림. (경향신문DB)


어째서 그런 비관적인 답변이 나온 것일까. 계층 상승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가장 많은 36.3%가 ‘양극화의 진행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그 뒤로는 체감경기 부진(21.5%), 좋은 일자리 부족(12.1%), 과도한 부채(11.4%), 불공정한 기회(9.0%) 등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미래의 희망에 가장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세부적인 분석에 앞서 응답자들이 계층 상승을 포기한 듯한 태도를 보인 것 자체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계층 이동이 비교적 활발한 사회로 꼽혀왔다. 많은 사람들이 계층 상승을 꿈꾸며 불철주야 노력해왔다. 우리의 유난히 높은 교육열도 그 열망의 발로로 여겨졌다. 그런데 청년들까지 계층 상승 가능성에 극히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양극화와 함께 한국 사회가 역동성을 잃은 닫힌사회로 가고 있는 징표 아닌가. 그것이 나쁜 상황을 탈출할 가능성이 봉쇄됨으로써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를 의미한다면 섬뜩하다. “계층 이동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는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의 말에 공감한다. 


이 시대의 삶이 팍팍함을 보여주는 자료들은 오늘도 쏟아지고 있다. 7월 전국 자영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만6000명 늘어나 증가 폭이 2002년 4월(22만명) 이후 10년3개월 만에 가장 컸다. 특히 혼자 또는 무임금 가족과 함께 영업하는 영세 자영업자의 증가 폭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였다. 서울의 실업자 수는 금융위기 발생 직전 해인 2007년(207만명)보다 20% 가까이 증가한 243만명으로 집계됐다. 새로운 빈곤층이 계속 양산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많은 이들이 ‘우린 아무리 해도 안된다’는 뼈저린 좌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 하나를 침소봉대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을 던질 계기로 삼기에는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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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위가 크나큰 사회적 물의를 빚거나 여론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을 때 평소에는 그런 짓을 하던 사람도 당분간은 자제하게 마련이다. 공직자의 무분별한 골프가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 아무리 골프광 공직자라도 한동안은 골프채를 손에 잡지 않는다거나, 도박이 사회문제가 되면 도박중독자라도 단 얼마 동안이나마 화투장을 멀리하는 따위가 바로 그것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결의대회에서 정규직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DB)


노사분규 사업장에서 회사 측이 노조를 말살하기 위해 용역깡패를 동원하는 용역폭력이 초미의 사회적 현안으로 떠올랐는데도 이러한 폭력을 행사한 기업이 있다고 한다. 불법파견 문제로 사내 비정규직 노조와 대립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현대차는 그제 경비용역 30여명을 동원해 노조간부들을 강제로 버스와 승합차에 태운 뒤 공장에서 20분 거리의 장소에 내려놓았다고 한다. 회사 측은 지난 10일에도 농성 중인 노동자와 노조간부들을 승합차에 강제로 태워 밖으로 내쫓았는데 이 과정에서 노조간부들이 용역이 휘두르는 폭력에 근육과 인대를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불법파업을 주도한 노조간부들을 퇴거시키는 과정에서 마찰이 있었을 뿐 폭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지만 설득력이 없다. 우선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로 회사 밖으로 쫓아내는 행위 자체가 폭력이다. 또 용역폭력에 가담했다가 노조 측에 붙잡힌 3명이 GNFM이라는 용역경비업체 직원으로 밝혀진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깁스를 하거나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노조간부들의 모습이 가장 명백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여론의 분노 속에서 형성된 일종의 ‘용역폭력금지령’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담하게 용역폭력을 휘두른 회사 측의 만용과 도덕적 불감증에 할 말을 잃을 뿐이다. 


경찰은 경비용역들뿐만 아니라 폭력행위를 계획하고 사주한 회사 측 관계자들을 철저히 수사해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은 시기에 보란듯이 용역폭력을 일삼았을 때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것이니만큼 관할 관공서 등의 비호가 있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때마침 경찰이 경비업법 개정안을 마련했으나 실효성이 의문시된다고 한다. 폭력전과자를 용역경비원으로 채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경비업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고는 하나 용역업체를 고용한 회사 측의 책임을 묻는 조항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폭력범만 제재하고 ‘교사범’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현대차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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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 좋은교사운동 대표


 

국가인권위가 학교폭력과 관련한 조치 사항을 학생부에 기록하도록 한 것이 인권 침해의 요소가 있으므로 졸업 전 삭제심의제도나 중간삭제제도 등의 도입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러한 권고안에 대해 교과부는 곧바로 거부한다고 통보를 했다.


교과부는 가해학생의 긍정적 변화 모습도 함께 기록하도록 했고, 학생부 기재 기간을 졸업 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했기 때문에 낙인효과, 상급학교 진학시 불이익, 인권침해 요인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가해학생의 긍정적 변화에 대한 교사의 주관적인 기술이 추가됐다고 해서 학교폭력과 관련해서 처벌을 받았다는 객관적인 기록이 얼마나 상쇄될 수 있을 것이며 대학과 기업이 이를 얼마나 반영해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리고 학생부 기재 기간을 졸업 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인 것은 인권침해와 낙인효과의 기간을 축소한 것이지 이를 해소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교과부의 또 다른 명분은 학교폭력 조치 사항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경각심을 부여해 학교폭력 예방에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조치가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교과부 학교폭력 종합대책 현황 (경향신문DB)



사실 학교 현장에서는 일진에 의한 계획적 폭력 못지않게 아이들이 좁은 공간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하는 가운데 우발적인 폭력도 많이 발생한다. 이러한 우발적인 폭력들에 대해서는 이전 같으면 학교나 교사의 판단에 근거해 상호 화해나 학교 차원의 일정한 처벌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사안들도 반드시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야 하고 그 결과를 학생부에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실수에 의해 학생부에 폭력학생으로 기록되는 억울한 경우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가해학생이나 학부모들은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결사적으로 버티거나 가해학생 학부모들끼리 담합을 하기도 하고 학교의 작은 실수라도 꼬투리를 잡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 교사와 학생, 학부모 관계가 파괴되고 학교는 이로 인한 몸살을 앓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학교폭력 조치 사항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이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효과가 매우 크다 해도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학교가 학생을 교육하는 기관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현재 만연해있는 학교폭력에 대해 학교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학생들의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는 분노와 증오, 좌절감과 이기적인 마음이다. 그러므로 장기적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이렇게 만든 원인을 분석하고 고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도 가해학생들에 대한 적절한 교육적 벌과 함께 그 마음을 치유하는 일에 인력과 시간을 투자해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폭력학생이라는 주홍글씨와 함께 이들의 진학과 취업에 불이익을 준다는 위협이 주는 억제 효과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되면 당장의 억제 효과는 볼 수 있을지 몰라도 학교와 교사에 대한 아이들의 불신만 쌓여가고 학교는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교육적 문제해결 능력만 잃어버리게 된다.


국가인권위가 학교폭력 조치 사항에 대한 학생부 기록 자체를 폐지하라고 권고하지 않고 학교폭력 기록에 대해 졸업 전 삭제심의제도나 중간삭제제도 등의 도입을 권고했을 뿐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자 하는 교과부의 의도를 살리면서도 학생인권 문제와 교육 기관으로서의 학교 역할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교과부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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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 동화작가


 

아주 오랜 옛날, 하늘에 해가 둘이요 달도 둘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을 다스리는 온 세상의 임금이 기이한 꿈을 꾸었다. 해와 달이 입속으로 들어오는 꿈이었다. 암만해도 아들 둘을 낳을 꿈 같았다. 임금은 배필을 찾아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아름답고 지혜로운 총명 아가씨를 만나 혼인을 하고 스무하루 동안 함께 지냈다. 그러다 다시 하늘로 돌아가며 임금은 이런 당부를 남겼다. 쌍둥이 형제를 낳을 것이니, 큰 아들은 대별이라 하고 작은 아들은 소별이라 하시오. 


 세월이 흘러 두 아들은 아버지를 찾았다. 그런데 세상에, 그 아버지가 예사 아버지가 아닌 것이다. 무려 온 세상을 다스리는 임금이란다. 두 아들은 아버지가 남기고 갔다는 박씨를 심었고 거기서 자라난 덩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아버지, 공과 사가 여간 엄격한 게 아니다. 십수년 만에 가까스로 상봉한 아들이 반갑지 않을 리 없건만, 우선 어려운 시험부터 통과하란다. 이승과 저승을 다스릴 소임을 맡겨야 하니 실력을 보겠다는 뜻이다. 


결국 두 아들은 무게가 천근이나 되는 활과 화살을 들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갔다. 해와 달이 두 개씩이나 되어 세상 만물이 고통받고 있으니, 세상을 위해 활시위를 당기기로 하였다. 형인 대별이는 해를, 소별이는 달을 쏘아 떨어뜨렸다. 그것으로 인간 세상은 해와 달이 각각 하나가 되어 조화롭고 살기 좋은 땅이 되었다. 


(경향신문DB)


비로소 대별이와 소별이는 아버지의 아들로 인정받았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태도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식견과 능력. 두 아들은 나라를 다스릴 만한 자격을 증명한 뒤에야 임금의 아들로 인정받은 것이다. 왕조체제인 듯한데 이 임금님, 썩 괜찮다. 옥황상제라고 불리기도 하는 바로 그 분, 천지왕이다.


이것은 우리 신화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신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다. 단군신화처럼 문자로 기록된 경우도 있지만, 그것조차 기록 이전에는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일종의 집단창작 또는 공동창작물이라 할 수 있겠다.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에는 그 기나긴 세월을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이를테면 세상을 다스리려는 자에게 필요한 자격은 혈통 같은 게 아니라 그 자질이라는 사실 같은 것. 


그리고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천지왕은 두 아들에게 이승과 저승을 각각 다스리게 하려 했는데, 문제는 둘 다 이승의 왕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천지왕은 다시 두 아들의 자질을 시험하기 위해 꽃나무를 심은 은대야를 하나씩 주었다. 꽃을 더 잘 키우는 사람에게 이승을 다스리게 하겠노라는 것이었다. 두 아들은 그렇게 내기를 했는데, 대별이가 훨씬 우세했다. 그러자 소별이는 형이 잠든 사이에 형의 꽃을 제 것과 바꿔치기해 버렸다. 그렇게 대별이는 저승왕, 소별이는 이승왕이 되었다. 이승의 왕으로 자질이 부족한 소별이가 그 자리를 훔쳐낸 셈이다. 그 결과, 대별왕이 다스리는 저승은 선과 악의 분별이 지엄한데, 이승은 뭐… 이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지고! 술수 따위 모르는 성품에다 생명을 살릴 줄 아는 대별왕이 이승을 다스렸다면, 우리는 지금 선과 악의 분별이 분명한 세상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을! 


하지만 이제라도 바꿀 수 있는 거 아닐까? 이를테면, 비겁한 술수를 쓰는 소별왕은 자질이 부족하니 땅으로 쫓겨 내려갔다거나… 이승의 백성들이 소별왕의 술수를 알고서 다들 한목소리로 그 잘못을 천지왕에게 고했다거나… 뭐, 이렇게. 


신화란, 본질적으로 그 공동체의 이야기다. 우리 공동체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천지왕 신화는 해피엔딩으로 바뀔 수 있다. 옛사람의 경고에 귀기울인다면 앞으로의 우리는 다른 신화를 만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다른 세상을 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쩐지 자꾸만 대별왕, 소별왕 신화가 떠오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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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