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권 | ‘야생초 편지’ 저자


 

서울 도심에 흐르는 작은 개천에서 잉어를 보기란 쉽지 않다. 강심이 제법 깊은 청계천 하류에 가면 잉어가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 밖의 다른 하천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다. 얼마 전 서울 사는 동생과 약속이 있어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천변 주차장에서 서성대고 있는데 저 아래 작은 실개천 표면 위로 마치 물고기 등처럼 보이는 물체가 여러 개 왔다갔다 하는 게 보였다. 설마, 하고 내려가 보니 커다란 잉어 여섯 마리가 제 몸 두께보다 얕은 냇물에서 힘겹게 헤엄치고 있었다. 공원 측인지 주민 측인지 모르겠으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일부러 풀어놓은 것 같은데 보는 순간 화부터 났다.


언제부터인가 ‘내추럴 디자인(Natural Design)’이 화제가 되면서 너도나도 살아있는 생물을 이용한 장식과 치장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행사장 입구에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어 전면을 생화로 뒤덮는다든지, 산의 한쪽 면을 통째로 깎아내 회양목으로 글자나 그림을 새겨 넣는다든지 하는 따위다. 그래도 이런 것은 조작과 재생이 용이한 식물이기에 어느 정도는 봐줄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소홀히 하면 죽어버리는 동물의 경우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살아있는 자연을 보여주고 싶은 공원 측의 갸륵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보여주는 생명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갖추었으면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전국의 축제현장에서 행해지는 각종 생물 포획놀이다. 도대체 인간은 무슨 권리로 똑같은 생명들을 물건처럼 멋대로 전시하고 조작하고 내팽개치는가! 


(경향신문DB)


 노예무역이 성행하던 18세기에 영국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흑인노예를 장터 거리에 전시해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구경시켜 주었다. 당시 영국인들은 흑인노예를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인권운동이 확산되면서 그러한 행위가 사라졌지만 서구인들의 뇌리에는 여전히 뿌리 깊은 인종차별 의식이 남아있다. 한국 교과서에 노예해방의 영웅으로 묘사된 링컨 미국 대통령이 실은 노예찬성론자였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는 전쟁 중인 남부를 궤멸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노예해방을 주장했지, 사실은 노예의 인권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링컨이 ‘노예해방선언’(1863년)을 한 지 무려 85년이 지나서야 ‘유엔세계인권선언’(1948년)을 갖게 된 것도 저간의 사정을 짐작케 한다. 그 사이 인류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포함해 무수한 인종학살과 전쟁을 저질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더 이상 같은 인간을 두고 그런 끔찍한 일은 하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일까?


세계인권선언이 구속력 없는 ‘선언’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끼친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반인권적인 독재에 시달리는 전 세계의 수많은 약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빌 언덕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최악의 인권국가라고 비난받으면서도 미국에 “너네 인권이나 잘 챙기라”고 콧방귀를 뀌는 것도 세계인권선언 덕분이다. 여전히 세계의 인권상황은 실망스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우리는 이 시점에 ‘세계생명권선언’을 심각히 고려해 봐야 한다. 제발, “인권도 못 챙기는 처지에!”라는 말은 말아주길 바란다.


먼저 인권을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생명권’에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본질은 ‘살아있음’이고 그것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천부의 권리다. 그 권리를 인간에게만 부여한 결과 오늘날 목격하고 있는 생태계의 위기가 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생명권의 확보는 인류 생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이것을 “모든 생명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고쳐 쓴다고 해서 인권의식이 약해지거나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훼손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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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민주당은 수권정당인가? 아무리 후한 점수를 준다고 해도 통치역량(governability)이나 리더십, 또는 정책에서 지금의 민주당이 많이 부족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아예 일부에서는 민주당을 두고 계륵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정권교체를 위해선 모두 힘을 합쳐야 하니 버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중히 쓰기에는 허술한 데가 많다는 논리다. 이런 태도는 유효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


정치현실주의 관점에서 보면 대개 정권교체는 야당의 대안이 온전해서라기보다 여당의 실정이 크기 때문에 발생한다. 물론 대안을 갖출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후를 따지자면 실정이 대안보다 앞선다는 말이다. 따라서 지금의 민주당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나 아예 부정하는 것은 과도하다. 비록 부족해도 민주당 없이는 정권교체도, 선거 후 새로운 사회의 건설도 불가능하다.


(경향신문DB)


 “정당이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책무를 수행한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 민주당만큼 준비가 덜된 정당도 없을 것이다.” 그냥 읽으면 마치 대한민국의 민주당을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으로 취임할 당시의 민주당에 대해 샤츠슈나이더가 한 언급이다. 이 지질한 민주당이 훗날 30여년 동안 유지된 뉴딜체제의 주축이 되었다. 따라서 이 땅의 민주당에도 이번 대선에서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


1930년대 미국의 민주당이 못난 정당에서 좋은 정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상원의원 와그너 등 당정의 리더십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루스벨트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잊혀진 사람들(the forgotten man)’이란 개념으로 묶어냈고, 와그너는 노동조합의 결성을 정부가 지원하는 법을 만들어 보수세력의 공세를 돌파했다. 흔히 뉴딜체제를 계층과 지역의 절묘한 결합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뉴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정치예술이었다.


민주당을 언급할 때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리더십이다. 후보 단일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더 넓게는 안철수 후보 캠프를 비롯해 야권에 정치 역량을 갖춘 혁신적 리더십이 존재하느냐, 없다면 어떻게 형성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민주당의 변화를 말할 때 그 핵심은 ‘노장(老將)’의 퇴진이 아니라 ‘새롭고 역동적인 리더십’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야권의 두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야권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다. 이 둘만큼 대중적 열망을 충실히 대표하고, 기민하게 응답하고, 온전하게 책임지려는 인물이 또 있으랴. 이 두 후보가 단일화를 계기로 삼아 야권의 새로운 주체를 형성해야 한다. 안 후보든 문 후보든 혼자 힘으로는 어렵다. 힘을 합쳐야 한다. 안 후보는 문 후보의 민주당 쇄신을 거들어야 하고, 문 후보는 안 후보의 혁신 드라이브를 지원해야 한다. 단일화와 대선 승리는 안 후보와 문 후보가 상호 신뢰를 갖고 굳건한 혁신동맹을 유지할 때 가능해질 것이다.


민주당이든 안 후보 캠프든 끝까지 완주하자는 독자파와 후보 단일화에 응하자는 연대파 간의 다툼이 치열할 것이다. 독자파에게도 명분은 있다. 민주당은 당의 존립이, 안 후보 캠프는 정치혁신이 그것이다. 그런데 정권교체와 정치쇄신의 과제를 둘 중 택일의 프레임으로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안 후보가 민주당의 실체와 역할을 인정하고, 문 후보가 비정당적 정치참여의 열망을 인정한다면 두 과제는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다. 문제는 두 후보의 리더십이지 일도양단의 강박관념이 아니다. 케네디의 말에 빗대 두 후보에게 충고하고 싶다. ‘두려워서 연대할 필요도 없지만 연대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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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정치부 기자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대선 후보등록일(11월25~26일) 이전까지 단일후보를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두 후보는 단일화 추진에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새 정치와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의 뜻만 보고 가며, 국민의 공감과 동의를 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안갯속이던 단일화 논의가 ‘국민 우선 정신’을 바탕으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일단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런데 논의 출발선상에 선 시점에서, 두 후보가 그토록 강조하는 국민에 대한 예의와 도리를 조금 더 생각해봤으면 한다. 양측의 합의대로라면 국민들은 앞으로 3주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진행될 단일화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또 단일후보가 결정된 후 대통령 선거일까진 한 달도 남지 않게 된다. 사퇴한 후보를 지지했던 국민들 입장에선 단일후보를 충분히 지켜보고 지지 여부를 결정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다. 제대로 검증해볼 시간도 주지 않고 무조건 지지해달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낡은 정치 행태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병아리 부화하는 데도 3주가 걸리는데 단일화가 병아리 낳는 것보다도 못하느냐”(새누리당 이정현 공보단장)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경향신문DB)


두 후보는 이르면 나흘 뒤 ‘새 정치 공동선언문’을 내놓을 예정이다. 여기에는 정당 혁신의 내용과 정권교체를 위한 연대의 방향이 들어간다고 한다. 두 후보가 진정 국민을 존중한다면 공동선언문에 제대로 된 후보 검증과 공약 제시에 대한 제도 개선안을 담아야 한다. 


차기 대선 때부터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기로 하든지, 아니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제안했듯이 선거일 몇 개월 전까지는 대통령 후보를 확정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감동있는 단일화를 연출하려고 애쓸 게 아니라 대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비합리적인 단일화 과정을 더 이상 안 봐도 되도록 해주는 것이 국민에 대한 진정한 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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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욱 | 영상설치미술가 



1987년 대학교 3학년이던 나의 등굣길은 언제나 전경들이 지키고 앉아 있는 살벌한 풍경이었다. 어느 날, 유학파 교수는 한 화가의 꽃그림을 보여주면서 자유를 강조하고 토론을 부추겼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그 그림을 삽화에 견주며 예술작품과의 차이에 대해 논했다. 교수는 화를 냈고 반성문을 써오라고 했다. 그 일로 학교를 그만둔 나는 표현의 자유 논쟁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이 헌법과 세트를 이루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귀결이 뻔한 논쟁이려니, 냉소와 체념을 체화하며 살아왔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 역사가 몇 살이나 먹었나. 그저 성장통을 지켜보는 심정으로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묵념이나 하면서. 그런데 너무나 변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과 위협이 도를 넘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박경신 교수의 ‘검열자 일기’ 재판은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항소심에서 무죄를 이끌어 냈지만 검찰이 상고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록과 축적이라는 학술적 가치와 창조적 행위의 근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불순한 위협으로밖에 볼 수 없다.


박 교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으로서 부당하게 삭제된 게시물들을 자신의 블로그 ‘검열자 일기’에 올리면서 검열기준의 공적 토론을 위한 예시로 써오고 있었다. 나로서는 어떤 법 적용보다 이번 사건에 더욱 특별한 분노를 느낀다. 그런데 하도 웃겨서 화도 안 난다. 예전에는 비판이 주로 검열의 대상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농담을 해도 검찰이 ‘준동하시기’ 때문이다. 박정근의 리트윗 사건에 2년을 구형한 것도 황당했지만 김정도의 북한 가요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는 농담은 ‘찬양고무’ 혐의로 압수수색마저 당했다. 검찰은 이 시리즈에 종영본을 낼 때도 된 것 같은데 그럴 생각이 없고, 영상물등급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집사님’ 정권의 마녀사냥에 동참하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대교수 등이 인터넷 실명제 헌법소원 제기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DB)


허진호 감독의 <위험한 관계>는 한국에서 19금 판정을 받았었다. 그러나 영화 등급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는 중국에서는 엄마 손 잡고도 볼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한국인의 ‘순수함’을 가늠할 수 있는 판정이다.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는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영화 틀지 말라는 뜻이다. 영화인들은 얼마 전 “예술의 기능과 범위를 ‘순수’로 일반화하는 천박한 발상”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무시하는 어이없는 태도”라고 반박하며 제한상영가 판정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청구했다. 


미국 대법원이 “공무원이나 공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에 대한 풍자는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포르노 잡지 ‘허슬러’의 발행인 래리 플린트의 손을 들어준 유명한 사례가 있다. 언론 관련법을 배울 때 반드시 나온다고 한다. 검열하시는 분들이 우리 국민들의 기본권은 무시하더라도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의 중요성을 대표하는 이 사례는 잘 알 것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정작 박경신 교수는 자신이 래리 플린트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표현의 자유는 모든 표현의 자유이지 사회적으로 좋은 표현을 할 자유가 아니다”라는 글과 함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무엇을 차단하고 삭제하였는지를 국민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라고 했다. 


래리 플린트도 검열이 법 위의 권력이라고 문제 삼았다. 그는 문제가 있으면 사법부의 판단을 따르겠다며 “나 같은 쓰레기가 헌법의 보호를 받는다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보호받을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마르키 드 사드의 소설을 음란하다는 이유로 폐기 처분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규제하며 방송사 사장이 언론 탄압에 앞장서는 나라. 래리 플린트처럼 묻는다. 무엇이 더 외설적인가. 폭력과 전쟁에는 관대하고 애정 표현에는 엄격한 시청연령 등급을 눈여겨본다. 그래서일까, 가을비가 군홧발처럼 내리치는 거리에 사랑은 없고 낙엽만 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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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며칠 전 송금을 위해 은행을 찾았다. 은행 직원은 “통장에 서명된 자필사인만으로는 송금할 수 없다”며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아,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화면 속 사진과 은행을 찾은 사람이 동일인임을 증명했다. 통장 속 서명도 재현했고 주민등록번호도 알려주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다음달부터 이런 불편이 사라진다. 인감도장 없이 서명만으로도 은행대출을 받거나 부동산거래를 할 수 있다. 1914년부터 99년 동안 시행된 인감증명제도와 서명제도의 공존시대가 왔다. 인감증명 대신 사용되는 본인서명사실확인서는 동 주민센터나 읍·면사무소에서 본인 확인 후 전자패드에 자필서명하면 발급받을 수 있다. 민원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발급이 가능하다.


(경향신문DB)


그러나 서명만으로 부동산과 자동차 거래 등 민원을 해결하는 제도에 아직은 낯설어 하거나 우려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집을 사는 사람은 인감방식, 집을 파는 사람은 서명방식을 각각 고집할 때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하는 번거로움, 서명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복잡한 서명을 사용해야 하는 부담감도 지적한다. 



도장은 고대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위의 상징이었다. <삼국유사> 고조선조에는 “환인이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게 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신석기 시대부터 왕의 도장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왕권과 왕위 계승의 징표인 옥새는 1949년부터 국새제도로 이어졌다. 개인의 도장은 신라시대에 이미 유행했고, 현대에도 도장 주인의 사주와 이름풀이에 따라 도장의 재질과 서체를 달리하며 사람과 도장을 하나의 운명으로 은유한다. 


서양에서도 교황이나 황제 등 지도자는 도장에 자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고유 문양을 새겼다. 파죽지세로 유럽 전토를 석권한 나폴레옹도 카넬리안으로 만든 도장을 항상 몸에 지녔다. 카넬리안은 심신에 신성한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보석으로 유명했다. 이 도장을 몸에 지닌 사람은 원하는 일이 모두 이뤄진다고 믿었다. 


오는 12월1일부터는 이런 낭만 대신 편리함이 찾아온다. 도장을 함부로 찍어 패가망신했다거나 도장을 잃어버려 중요한 계약을 못했다는 말은 이제 타임캡슐에서나 만나는 옛날이야기가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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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 | 변호사·자유경제원장 


버락 오바마는 시쳇말로 벼락출세한 정치인이다. 그는 중앙 정치무대에 선 지 4년 만에 미국 대통령이 됐다. 경력이라고는 로스쿨 교수와 주 상원의원 그리고 연방 상원의원 초선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흑인이다. 애송이 흑인 정치초년병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을 때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건 그의 책 제목처럼 <담대한 희망>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 오바마에게 청년들과 지식인들이 열광한 것은 그가 변화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는 소수자였지만 참신했고, 기득권과는 거리가 먼 서민 결손가정 출신이었다. 오바마는 월스트리트를 강타한 금융위기로 실의에 빠진 미국민에게 정치개혁과 금융개혁을 내걸고, 워싱턴 정치를 20년 넘게 경험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손쉽게 눌렀다. 난세를 구한 영웅처럼 오바마는 워싱턴을 점령했다. 오늘은 그런 오바마의 재선 여부가 결정나는 날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경향신문DB)


우리 대통령 선거는 40여일 남았다. 나라 안이 온통 뒤숭숭하다. 유럽발 금융위기가 여전한 탓에 성장은 둔화되어 경제가 어렵다며 난리다. 먹고살기 힘들어진 중산층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정권에 등돌린 지 오래됐다. 고용없는 성장 탓에 늘지 않는 일자리로 별다른 희망을 가지지 못한 백수 청년들은 그저 아프다며 징징대는 중이다. 다들 변화를 기다리고 메시아를 기다린다. 


가히 난세라 할 만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도 정치신인들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어 있다. 문재인은 노무현 정권의 핵심참모로 있었지만 정치는 이제 초선 1년차에 지나지 않은 신인이다. 안철수는 아예 정치 문외한이다. 그는 의사였고, 벤처기업가로 유명해진 뒤 이를 발판으로 대학교수를 한 경력이 전부다. 그런 그가 기존 정치에 염증을 느낀 청년층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배경으로 대통령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 중에 대통령이 나온다면 오바마보다도 더 빠르게 정상에 오르는 셈이 된다.


두 후보 다 변화와 개혁을 내거는 것도 오바마를 빼닮았다. 아니 박근혜까지 그렇다. 다들 정치쇄신을 외치는 걸 보면 우리 정치판이 썩긴 썩었던 모양이다. 안철수가 주장하는 국회의원 숫자 줄이기, 중앙당 폐지는 늘 듣던 말이다. 문재인은 방향이 틀렸다며 비례대표를 늘리자고 나왔다. 도대체 이런 쇄신이 오바마가 한 것처럼 대중의 갈증을 풀 수 있을 것인가? 정치쇄신이 화두가 된 건 정치판의 부패와 무능 때문이다. 


부패를 청산하려면 패거리 정치를 치워야 한다. 사무총장이니 대변인이니 하는 난센스 같은 자리부터 없애고 크로스보팅(cross voting)을 도입하면 된다. 그러면 지금 같은 ‘보스정치’는 사라질 것이고 정당은 이념과 정책으로 뭉칠 것이다. 정치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국회를 상설화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박근혜는 여성대통령론을 들고나왔다. 여성대통령 자체가 쇄신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정치에 신물이 난 대중에게 이 말이 얼마나 먹히겠는가? 그나마 그녀는 상향식 공천으로 밀실공천을 없애겠다고 나섰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지만 민도(民度)가 따라줄 것인가?


무엇보다도 삶 자체가 빠듯한 서민과 중산층에게 그들이 말하는 정치쇄신이 무슨 희망이 될 것인가? 변화를 구하는 대중에게 그들의 감언(甘言)이 무슨 구원이 될 것인가? 그래선지 후보들 간 설전은 가열되지만 선거 열기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가 코앞에 닥친 여태 한쪽은 최종 주자조차 결정되지 않았다. 후보들의 정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세 후보 다 경제민주화, 일자리, 복지를 똑같이 외치고 있을 뿐 4년 전 오바마가 보여준 것 같은 희망의 메시지는 없다. 마거릿 대처처럼 국민들에게 헌신과 인내를 요구하는 강단도 없다. 있다면 달콤한 사탕발림 말뿐이다. 그리고 단일화 쇼만 있을 뿐이다. 토론이 없다고들 하지만 정책이 없으니 토론이 없는 것이다. 토론이 없으니 검증도 없는 참으로 이상한 선거가 되고 있다. 이러니 누가 난세의 메시아인지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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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균 |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남자아이가 팔을 깊이 베어왔어요. 피가 많이 나지 않는다고 돌려보내야 했죠.” 미국 최대 영리병원 체인인 HCA 소속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의 이야기다. HCA는 작년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 중 8만명을 병원이 정한 응급환자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돌려보냈다. 열만 난다고 돌려보낸 환자가 이틀 후 신종플루로 사망하는 일도 발생했다.


HCA는 응급실에 온 환자들에 대한 보험 청구체계도 바꿨다. 이전까지 25%에 불과하던 가장 비싼 보험 청구코드에 해당하는 환자들의 비중이 76%까지 급증했다. 다른 병원들도 이 청구체계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다. 미국에서 욕창 환자가 가장 많은 15개 영리병원 중 8개가 HCA 소속인 것으로 밝혀졌다. 욕창은 간호사 수가 부족해지면 곧바로 나타나는 대표적 의료사고다.



돈 안되는 환자는 안 받는 병원. 건강보험에 의료비를 과잉청구하는 병원. 의료의 질과 상관없이 간호사를 줄이는 병원. 지금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롬니가 대주주인 HCA 영리병원은 이런 방법으로 천문학적 이윤을 올렸다. 문제는 이 방법이 HCA만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리병원 전체가 이렇게 돈을 번다.


미국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과 비교했을 때 한 환자당 20%를 비싸게 받는다. 또 의료인력 고용은 비영리병원에 비해 매우 적다. 사망률도 비영리병원보다 2% 더 높다. 이 모든 사실은 지금까지 여러 연구에 의해 확인됐고 한국의 국책연구원인 보건산업진흥원의 2009년 보고서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경향신문DB)


한나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던 18대 국회에서도 영리병원 도입 법안이 모두 좌절된 것은 영리병원이 병원비는 높고 의료서비스 질은 낮다는, 너무나 명백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정권이 4개월도 안 남은 시점인 지난 10월29일 현행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고치는 꼼수로 영리병원 허용법령을 기어이 통과시켰다.


이름하여 경제자유구역 ‘외국의료기관’이다. 외국의료기관이라지만 국내자본이 50%를 투자할 수 있고 내국인 진료는 100% 허용된다. 외국의사면허소지자는 10%만 있으면 된다. 경제자유구역에만 한정됐다고 하지만 이미 경제자유구역은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에 걸쳐 있다. 말이 외국의료기관이지 국내자본이 운영하는 국내영리병원이다. 더욱이 병원협회는 “해외자본에 대한 특혜”라며 당장 국내영리병원 전면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대체 왜 4개월도 안 남은 정권에서, 국회도 통과하지 못한 영리병원 허용을 강행한 걸까? 한·미 FTA에서 경제자유구역 영리병원은 한번 설립허가를 내면 취소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는 사실. 그리고 인천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 우선투자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국내자본이 삼성이라는 사실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한번 결정하면 다음 정권은 바꿀 수 없으니 일단 ‘먹튀’를 하고 보자는 것이다.


미국은 전체 GDP의 17.6%를 의료비에 쓰면서도 전체 인구의 6분의 1은 의료보험이 아예 없다. 이러한 재앙적인 미국 의료가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국공립병원이 전체 병원의 35%라서 그렇다. 그러나 한국은 국공립병원이 7%밖에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립병원들이 영리병원으로 전환되는 길이 열리는데 의료비 폭등과 건강보험마저 위협받는다는 지적이 기우일까?


더욱이 지금 의료민영화만 추진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스민영화, 철도민영화도 추진 중이다. 공공서비스 민영화는 재벌들에는 큰 이익이겠지만 서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의료비와 가스, 철도요금 폭등이다. 대선 후보들은 너도나도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말하면서도 현재 진행되는 민영화에 반대하지 않는다. 후보들의 약속을 거짓으로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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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한 달 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는 자신이 집권하면 복지국가 5개년 계획을 즉시 실행하겠다고 말했다. 그것도 스웨덴 등 북유럽 4개 복지국가의 한국 주재 대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말이다. 장하준 교수와 나는 우리나라가 스웨덴 정도의 복지국가로 가려면 지금부터 복지국가 5개년 계획을 세워서 전 국가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렇듯 5개년 계획을 세워 집요하게 노력해야만 5년 뒤에는 선진국 최하위의 복지정책을 펴는 미국 수준으로, 10년 뒤에는 선진국 평균 수준으로 우리의 복지 수준을 높일 수 있고 그래야만 비로소 20~30년 뒤 북유럽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복지국가 5개년 계획을 시행하겠다고 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내용이다. 현재 문재인 캠프에서 나오는 복지공약과 재원조달 방안을 보면, 지난해 말 민주통합당이 발표한 것과 기본 틀에서 달라진 게 거의 없다. 1년 전 민주통합당은 지금보다 연평균 33조원의 추가 복지예산을 마련해 사회복지를 늘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더라도 집권 말기인 2017년에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은 지금의 미국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그런 속도라면 미국 수준에 도달하는 데 10년이 걸릴 것이다.


문재인, 첫번째 복지국가 대통령을 꿈꾸며 (경향신문DB)


물론 문재인 캠프의 복지국가 구상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비해 훨씬 나아졌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여름 ‘비전 2030’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를 보면 2030년까지 우리나라를 미국 수준의 복지국가로 만들겠다고 되어 있다. 미국을 복지국가라고 한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2006년부터 무려 24년 뒤인 2030년에 가서야 미국 수준의 복지를 하겠다고 한 것은 더욱 허탈한 일이었다. 이번에 문재인 후보는 24년 뒤가 아니라 10년 뒤 미국 수준으로 가겠다고 하니 대단한 진전이긴 하다.


아무튼 ‘첫 술에 배부르랴’고 마음을 달래며, 모로 가더라도 10년 뒤 미국, 20년 뒤 선진국 평균의 복지 수준에 도달하면 되지 않겠냐고 조급증을 달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캠프는 스웨덴 수준의 복지국가를 만들려는 의지와 열정이 있는가? 나는 거의 없다고 본다. 문재인 캠프의 사람들에게 진정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분명 그 캠프에는 사회복지 확대의 진심과 진정성이 있는 분들이 있다.


문제는 그 캠프 전체를 아우르는 생각과 사상에 북유럽식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는 요소들이 약하다는 점이다. 스웨덴과 핀란드, 덴마크를 복지국가로 만든 것은 사회민주당이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이었다. 사회민주주의의 세계관과 정치경제학으로 무장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수십년 동안 집요하게 노력해서 만들어낸 성과가 북유럽 복지국가이다. 그에 반해 문재인 캠프에 모인 정치인과 전직 관료들, 지식인들 중에 사회민주주의자가 몇 명이나 될까? 그 대부분은 사회민주주의의 ‘사’자만 들어도 빨갱이 욕을 먹을까 질겁할 것이다. 거의 대다수가 자유주의의 이념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의 프레임 속에서 복지국가를 만든다? 물론 가능하다. 그게 바로 미국 민주당의 리버럴들이 생각하는 복지국가이고 그게 바로 클린턴·오바마 수준의 복지국가이다. 선진국 최하위의 복지국가 말이다.


현재 박근혜 후보 쪽은 어떻게 하면 연 20조원 정도의 추가 복지예산으로 생색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 같고, 문재인 후보 쪽은 그보다는 좀 많은 연 30조원이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안철수 후보 쪽은 좀 나은가? 그렇지 않다. 안철수 캠프의 발표를 보면 복지구상도 그렇고 재원조달을 위한 증세 구상도 그렇고 문재인 후보와 별 차이 없거나 오히려 더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안철수 캠프의 복지국가 구상이 안철수 후보 자신의 이름으로 지난 7월 말 발간된 책 <안철수의 생각>과 다르다는 점이다. 그 책에서 안철수 후보는 진전된 복지국가 구상을 시사했고, 그 재원조달을 위해 부자증세만이 아니라 보편증세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안철수 후보와 그 캠프 전체가 불과 3개월 전에 출간된 책과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중도 보수적인 학자와 전문가들이 복지·노동 공약 마련에 참여하면서 목표 수준 자체를 낮추고 있다. 그리하여 문재인 후보보다도 낮은 수준의 복지·노동 공약이 발표되고 있다. 요즘 안철수 캠프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진국 최하위인 미국 수준의 복지로 가는 데 15년은 걸릴 것 같다. 더구나 스웨덴식 복지국가나 복지국가 5개년 계획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다.


인사말하는 안철수 후보 (경향신문DB)


안철수 캠프의 이름이 ‘진심 캠프’라고 한다. 그렇지만 안철수 후보와 캠프가 스스로 <안철수의 생각>에 담긴 내용들을 하나하나 요즘 파기하고 있는데도 후보나 캠프가 그 점에 대해 일언반구 사과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진심 캠프’의 진심어린 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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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대물림을 끊자’는 어제자 경향신문 기획기사는 대학입시도 경제력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을 진단했다. 사교육을 시킬 수 있는 부모 경제력이 대학진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어 돈이 없으면 이른바 명문대학, 좋은 대학에 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조사한 결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대학진학 성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9개 명문대학·의과대학 진학률을 조사한 결과 소득 최상위 가정 학생이 최하위 학생보다 17배 많았다는 것이다. 서울대 입학생 65.7%가 특목고와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출신이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던 시절’은 옛날 일로 치부되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현실이다. 


대학입시에 쏠린 관심 (경향신문DB)


빈곤의 대물림 구조가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고쳐질 기미는커녕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게 큰 걱정거리다. 부모가 돈이 없어 학원에 보낼 수 없고, 자녀들의 성적이 오르지 않으니 명문대학에 가기 어렵고, 좋은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 부모 세대의 경제력 양극화가 교육 양극화를 가져오고, 고스란히 자녀 세대의 경제력 양극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자녀 세대의 계층 이동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국민들이 지난해 42.9%를 기록하고 있다. 2009년 조사(30.8%) 때보다 12%포인트 이상 늘어난 것이다.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보다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겼다는 절망감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교육 양극화는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사회통합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마저 위협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KDI는 소외계층(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위한 기회균등선발 학생을 늘리는 한편 학업성적 외에 학생들의 소질과 잠재력을 감안해 선발하는 입학사정관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덧붙일 것은 대학 당국의 각별한 관심이다. 이들 학생의 기초 학력을 나무랄 게 아니라 대학이 책임을 지고 이들의 학습 능력을 높이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정부가 뽑으라고 했으니 마지못해 뽑고 난 다음에 나몰라라 하고 내버려둔다면 이것은 대학의 책임 회피다.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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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엊그제 외교·안보·통일 공약을 발표함으로써 다음달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 3명이 제시하는 한반도 정책의 밑그림이 드러났다. 박 후보가 북한 주민들의 인간적인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인도적 지원과 정치적 상황을 구분하겠다고 밝힌 것은 최소한 이 문제에서만큼은 맹목적 반북(反北) 정서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읽힌다. 이산가족 문제의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겠다는 다짐도 환영할 만하다. 남북교류협력 사무소를 서울과 평양에 두고, 전력·교통·통신 인프라 확충 및 국제투자유치를 지원하겠다고도 약속했다. 문제는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정치쇄신안 발표하는 박근혜 (경향신문DB)


박 후보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 상응하는 정치·경제·외교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해 비핵화가 최종 목표일지언정 이를 북핵 협상과 남북대화의 전제로 삼지 않겠다는 유연성을 보였다. 그러나 비핵화에 진전이 없을 경우 어떻게 하겠다는 구상이 없어 본질적으로 화려한 선거용 구호로만 끝난 ‘비핵·개방·3000’과 같은 운명에 처할 여지를 남긴다.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냉전시대 서방이 인권을 지렛대로 삼아 동유럽 공산블록의 체제전복을 유도했던 헬싱키 프로세스를 ‘서울 프로세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들어내겠다는 약속도 냉전시대 미·소 간의 대립구도와 미·중의 G2시대를 혼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박 후보의 대북정책 공약이 이명박 정부가 차린 반찬들을 그릇만 바꾸어 내놓았다는 비판이 가능한 이유다.


박 후보 스스로 밝힌 바 지난 시절 유화 아니면 강경이라는 이분법적 집착에서 벗어나 최소공배수를 찾으려는 자세는 긍정 평가할 만하다. 대북정책이 극명하게 온·냉탕을 오갔던 지난 15년의 경험을 비추어볼 때 여야 간에 공감대를 찾는 자세는 정권의 향배와 무관하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누가 되든 냉전 이후 남북이 평화를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수렴하되, 통일의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굵직한 방향성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문제에 관한 한 정파다툼을 그만두겠다는 탈정치화의 공감대가 확산돼야 한다. 선거판을 흐려놓은 NLL 논란을 뒤로하고, 박 후보가 대북정책 공약에 담은 균형잡힌 의식이 청와대에서건 국회에서건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신뢰의 정책, 신뢰의 정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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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어제 단독 회동을 열고 ‘후보 등록 전 단일화’ 등 7개 항의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두 후보는 “대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한 단일화, 가치와 철학을 함께하는 단일화, 미래를 바꾸는 단일화라는 원칙 아래 새누리당의 집권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아 나가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또 “단일화 추진에 있어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지 않고, 국민의 뜻만 보고 가야 하며, 국민의 공감과 동의가 필수적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단일화에 쏠린 눈들 (경향신문DB)


문·안 후보가 내놓은 합의문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회동 전에는 단일화의 대원칙을 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달랐다. 통큰 합의가 이뤄졌다. 우리는 특히 공동합의문 가운데 3개 항에 주목한다. 첫째, 단일 후보는 후보 등록일(25~26일) 이전까지 결정한다는 부분이다. 단일화 시기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등록 이후로 단일화가 미뤄질 경우 공직선거법의 규제 등 변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양쪽 지지층 결집을 위해 국민연대를 결성하고, 그 일환으로 ‘새 정치 공동선언’을 내놓기로 한 점이다. 단일화는 후보 개개인의 물리적 결합을 넘어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의 화학적 결합으로 이어져야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두 후보 모두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다짐해온 만큼 국민참여의 정신을 합의문에 담은 것은 옳은 방향이다. 셋째, 투표시간 연장을 위해 공동캠페인을 펼치기로 한 대목이다. 정치쇄신의 첫걸음은 국민주권을 보장하는 데서 출발한다. 더욱이 이 문제는 문·안 후보 지지층뿐 아니라 대다수 시민이 공감하는 사안이다. 단일화의 대의와 명분을 제대로 입증할 만한 소재라는 얘기다.


어제 회동의 내용 못지않게 관심을 끈 것은 만남의 형식 그 자체였다. 1987년 체제 이후 김대중-김영삼의 후보 단일화 논쟁을 비롯해 1997년 DJP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2007년 정동영-문국현 단일화 협상에 이르기까지 주로 개혁·진보 진영에서 진행돼온 단일화 논의의 장에서 처음부터 후보들이 전면에 나선 사례는 없었다. 정권교체와 정치쇄신이라는 단일화의 근본 취지를 감안할 때 직접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은 향후에도 생산적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두 후보 간 신뢰와 국민적 여망을 무슨 내용으로 채울까 하는 고민이 될 것이다. 어제 발표된 7개 항을 바탕으로 논의를 진행하되 궁극적 목표는 공동정부 구성을 위한 축대 쌓기로 모아져야 한다고 본다. 두 후보가 단일화라는 큰 틀에 합의한 이상 양 진영은 그 대의에 걸맞게 성큼성큼 나아가야 한다. 대의가 아닌 방식과 절차에 매달릴수록 단일화의 피로도는 증가하고, 감동은 줄어든다. 두 후보는 어제 단일화를 향한 의지와 결단을 국민 앞에 천명했다. 이들의 약속이 지켜진다면 개혁·진보 진영의 대선운동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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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서울 시내 한 법당 안에 비둘기가 들어와 공양떡을 넘보고 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절을 찾은 신도들은 경계심보다 자비심으로 새를 받아들여 내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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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애 |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국민 사이에 은퇴 후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준비하는 자금이라 할 수 있는 가계의 저축률은 1998년 21.6%에서 2010년 2.8%로 급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치 7.1%와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저축률이 하락한 원인은 첫째, 가계소득 증가율이 빠르게 둔화했기 때문이다. 가계소득 증가율은 1990년대 연평균 12.7%에서 2000년대 6.1%로 크게 낮아졌다. 둘째, 2000년대 들어 저금리가 지속되고 주택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가계부채가 증가했다.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하에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확대돼 저축할 여력이 감소한 것이다. 셋째, 대학진학률이 급등하고 사교육비 부담이 증가했다. 한 설문조사에서 30~40대의 60%가 은퇴준비를 못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들 중 절반은 그 이유로 자녀 교육비 부담을 꼽았다.


(경향신문DB)


 사회안전망이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낮은 저축률은 개인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경기가 하락해 소득이 감소해도 저축이 있다면 어느 정도 소비능력을 유지시키기에 경기가 급랭하는 것을 방지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가계저축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소비에 기반을 둔 서비스산업이나 내수산업의 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수출제조업 위주의 불균형 성장에서 벗어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해외경기에 대한 의존성이 심화돼 대외충격에 취약한 우리나라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기가 힘들다.


가계저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계부채가 축소되거나 가계소득이 증대될 필요가 있다. 주택가격의 거품이 걷히면 주택 보유에 따른 수익률이 하락하고, 가계의 자산에서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해 금융자산 비중이 늘면서 저축률 제고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과정이 고통스러울 수 있으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가계소득이 증대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창업활동을 촉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창업 기업이 자생력을 갖춘 중소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신성장동력산업과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도 육성해야 한다. 취약계층의 자활기반 확충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제고 등을 통해 소득분배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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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돌아보니 성북문화재단의 출범은 참 고즈넉했네요. 개소식도, 초대장도, 누리집도 미뤄 둔 첫날이었지요. 10월 중순에 치른 성북진경 축제를 빼면 그때나 지금이나 재단 직원들의 나날은 성북 ‘학’(knowledge)을 찾아 배우는 일과로 채워지고 있거든요. 성북의 경제학과 사회학을 익히면서 이 앎을 어느 곳 누구하고도 교류하며 상생할 수 있는 인류학으로 발견하고 호명하는 과정이 성북 ‘학’이라는 지역학의 쓰임새임을 새삼 느끼면서요. 같은 이치로 성북문화재단 ‘학’도 만드는 중이지요. 성북에 사는 사람과 성북을 찾는 사람을 더불어 흥하게 하는 문화학과 조직학을 묻고 찾는 것이 성북문화재단 ‘학’이다 하면서요.


‘학’이라고 썼지만 발품 팔고 진땀 흘리며 이곳의 역사와 생활사 현장들을 몸으로 만나가는 학습의 연속이지요. 요즘 지역문화의 진흥이 추세입니다만 그 요체를 찾아볼수록 담담해지네요. 지역문화의 진흥이란 그 지역이 ‘하던 것’을 더 잘되게 하는 것이고 그 지역에 ‘있던 것’을 더 잘 드러내는 일이 바탕임을 깨닫게 되니까요. 이 바탕을 이해하면서 그 지역에 ‘없던 것’을 새로 보태는 일이 지역문화의 진흥이었어요. 이 ‘없던 것’도 어느 지역이든 비슷하지요. 쪼개져서 따로 공급되던 일자리와 복지와 교육과 예술을 수요자 중심으로 붙여놓고, 윗사람이 결정하고 앞장서던 판에 아랫사람도 주도하게끔 여지를 넓히고, 안에서 방어하기보단 밖에서 좋은 것을 먼저 찾아내 들이는 것이 새로움의 양식이니까요.


 같은 발상에서 성북의 문화 진흥을 위해 성북 ‘학’과 성북문화재단 ‘학’을 묵묵히 찾아가는 중이랍니다. 그런데 이들 ‘학’은 홀로 빛나는 것이 아니어서 성북 같은 다수의 생활권을 아우르는 서울시의 핵심 정책과 맞물리는 ‘전략’(strategy)으로 추진되어야 성북 시민이 체감하는 생활의 진흥으로 발현되겠지요. 그러자면 서울시의 사회적 경제와 마을 공동체, 에너지 자립과 복지 기본선 등의 정책 사업이 지역적 삶의 개인 일상에서 마치 깔때기처럼 합쳐져서 실감나게 하는 문화적이고 조직적인 촉매자의 활동이 필히 활발해져야 합니다.


분야별 지원센터와 또 다르게 지역의 촉매 조직 활성화를 꾀한다면 성북의 문화정책과 서울의 문화정책이 합류하면서 비로소 샛길과 큰길이 동시에 날 수 있겠다 싶네요. 하여 성북문화재단의 130여명 직원들이 기꺼이 그런 촉매자를 자임해서 도서관, 미술관, 영화관, 미디어센터, 구민여성회관에서 저마다 지닌 생활문화 ‘술’(knowhow)을 맘껏 발휘할 때 동원이나 수혜가 아닌 자발적 생비자(生費者)로서 동네 예술가의 본성을 표현할 성북 시민과 마주하며 환히 웃겠네 해요. 성북에는 이미 ‘하던 것’과 ‘있던 것’이 좋은 상태로 많아서 약간만 ‘없던 것’을 보태어 한 해가량 농사 지으면 결실이 제법 열리겠지 내심 설레면서요. 이렇듯 서울과 성북이 상호 작용하는 지역 생활문화의 현장을 활성화하는 촉매 역량의 강화와 함께 다른 한편에선 서울과 성북의 동시적이고 지속가능한 도시 경쟁력을 발굴하고 키워가는 4대 특별 정책 사업(killer contents)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양 도성의 생태관광 여행을 널리 알리면서 도성 밑에 자리한 마을 공동체 및 지역 예술가를 한꺼번에 활성화하는 것, 간송미술관의 상징성과 통하며 성북동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을 엮어 한국의 근현대 미술거리로 활성화하는 것,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을 비롯한 고택이나 역사적 문화 인물의 생가 등 서울의 대표적 미래유산을 묶어서 다음 세대를 위한 역사문화의 교육장으로 활성화하는 것, 최근 시민 관람을 개시한 한국가구박물관과 성북 및 종로의 생활민속 사립박물관을 연결해서 서울을 인상짓는 문화외교 명품 코스로 활성화하는 것. 이것이 성북문화재단이 준비하는 2013년의 4가지 특별 정책 사업입니다. 


11월 중순 무렵이면 얼추 내년 사업계획과 예산을 짜놓고서 정릉과 의릉 일대 등 성북의 호젓한 곳곳에서 마을과 경제와 예술을 알아서 함께 일궈왔던 풀뿌리 활동가들을 한 분씩 만나려 해요. 이분들에게 열쇠가 있거든요. 경청하고 거든 다음 한 걸음 물러서 있으면 자물쇠가 풀리겠지요. 왜냐하면 성북(城北)의 ‘성’이 한양 내부를 지키는 예민한 경계감이라면 그 ‘성’의 북에 있는 ‘성북’은 경계에 서서 비움으로써 두터워지는 성숙미가 아닐까 해서죠. 오늘의 다툼이 도드라지는 대신 어제와 내일에 싸인 오늘의 홀가분함이 뭔지를 알려주는 곳이 여기 성북이거든요.


해서 ‘이야기와 꿈이 많은 성북문화 일구기’라는 성북문화재단의 소명이자 좌표는 오래된 서울의 성북 이곳에서 2013년을 준비하는 오늘 하루의 일과를 고즈넉하게 채워가는 중이랍니다. 그러면서 만들어가는 성북문화재단 직원들의 약속이 있는데요. ‘3하4말’이라고 3가지는 하고 4가지는 말자는 건데 궁금하시면 연락 주세요.따로 답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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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박종우 선수가 ‘독도 세리머니’ 파문 때문에 환영 만찬에도 초청받지 못했을 때 홍명보 감독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말끔히 차려입고 참석하라고 일렀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마지막으로 내린 작전 지시였다. 홍명보는 “감독으로서 마지막까지 그 선수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만약 당신이 이런 보스를 만난다면 어떤 마음이겠는가. 아마도 평생을 함께하고 싶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리더십이 부재했다. ‘꼬리 자르기’란 말이 정치권에만 있는 게 아니다. 홍명보는 다르다. ‘내가 대신 군대에 가겠다’는 말로 그는 박주영을 둘러싼 병역 기피 논란을 일순간에 잠재웠다. 요즘 이런 리더십이란 흔치 않다.


 홍명보의 이러한 면모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젊은 팬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것은 단지 그의 뛰어난 경기력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선수들에게 보여준 신뢰, 존중의 태도가 스승이 부재하고 선배가 부재한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사실 홍명보는 ‘예약된 영웅’이었다. 물론 그 절반은 그의 몫이다. 뛰어난 경기력과 단단한 내면의 힘으로 그는 선수에서 행정가를 거쳐 지도자에 이르는 동안 축구계 안팎에 확고한 신뢰의 거탑을 쌓았다.


(경향신문DB)


홍명보의 가치 실현은 축구장 밖에서도 뚜렷하다. 그는 이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다. 남들이 하니까, 유명한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해야 근사해 보이니까 등의 저속한 현시욕으로 한 일이 아니었다. 홍명보의 사회복지 활동은 이미 1997년부터 시작됐다. 그때는 아직 서른이 안된, 20대 후반의 현역이었다. 그 시절 홍명보가 ‘장차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 장학사업도 하는 지도자라면 더욱 근사해 보이겠지’ 하는 식의 저열한 인식을 했을 리가 없다. 요컨대 오늘의 ‘홍명보 신화’는 대부분 그 자신의 힘으로 쓰인 것이다.


한편 그 신화의 절반은 축구계의 여러 복잡한 상황이 쓴 것이기도 하다. 2002년 이후 한국 축구는 영웅 신화를 꿈꿨다. 거스 히딩크라는 낯선 자에 의해 환골탈태의 지평으로 올라섰지만, 그가 떠난 이후, 한국 축구는 난항을 겪었다. 대표팀 감독은 수없이 경질됐고 선수들은 숱하게 대표팀을 들락거렸다. 어수선한 상황이 지속되자 팬들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렸다. 홍명보가 그 말을 타고 왔다. 한국 축구의 진정한 권력자 정몽준 명예회장의 역할도 컸다. 홍명보에게 많은 기회가 제공됐다.


그런 까닭인지 아쉽게도 이 신화에는 공백이 많이 있다. 이를테면 대표팀 감독들이 줄줄이 경질됐을 때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수년 동안 노출된 축구협회의 수많은 병폐에 대해서도 그는 발언을 삼갔다. 이른바 ‘수뇌부’로 표현되는 축구협회의 막후 권력 그룹이 절차와 원칙을 무시하고 종종 무리수를 뒀을 때 홍명보의 발언은 들리지 않았다.


외국의 경우, 인종 차별에 저항한 지네딘 지단이 있고 국제 축구계의 권력자들을 조롱하며 반세계화 운동에 가담한 마라도나가 있으며 그밖에도 수많은 스타들이 저마다 처한 사회적 상황에 저항하거나 적극적인 의견 표명을 해왔다. 그러나 선수들에게 ‘국위선양’만을 강요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라서 그런지 홍명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란 자리가 그런 사안들에 대해 일일이 의견을 내는 자리는 아닐 것이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무조건 각을 세우며 대립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의 과묵한 표정에는 이런 허약하고 모순에 가득찬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이 담겨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발언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홍명보 정도의 ‘맨파워’라면 수십 년 동안 누적된 한국 축구의 온갖 문제가 다양한 형태로 터져나왔을 때, 틀림없이 어떤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것을 차차 현실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비록 그 자신이 부정하거나 진실로 겸손하게 사양한다 하더라도, 명실상부한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다. 선수로서, 행정가로서, 지도자로서 그는 상당한 성취를 이뤘고 그로 인해 기나긴 신화의 여정에 오르고 있다. 언젠가 맡게 될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나 장차 한국 축구 행정의 중추로 역할을 하게 되면 그의 신화는 최종적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 완성의 시점에서 홍명보가 한국 축구의 구조적인 모순과 한국 스포츠의 허약한 시스템을 모른 체하는 ‘영웅’이 된다면 그는 그저 우리 사회의 승리지상주의와 애국주의와 영웅 신드롬으로 만들어진 허명의 신화에 그칠 것이다. 그가 이런 성취에 만족하고 이런 식의 우상숭배식 거탑, 즉 무오류의 신화를 쌓는 데 몰두하는 순간 그 거탑은 무너질 것이다.


홍명보는 ‘국위선양’의 화신이며 ‘태극전사’의 아이콘이며 ‘멘토 시대’의 멘토이다. 그러나 이제 그 스스로 이 화려한 수사를 버리고 진실로 한국 축구의 체질을 강화하는 길이 무엇인지 고뇌해야 한다. 권위적인 위계질서에 의해 퇴행하고 있는 한국 축구의 낡은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자문해 볼 때가 됐다. 지금 한국 축구계에서 그만한 결단력과 능력과 영향력을 발휘할 사람은 홍명보 외에 달리 없다. 그것이 한국 축구의 불운이며 또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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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 이화여대 석좌교수


 

지난 10월26일 한국인문학총연합회가 창립기념 행사를 가졌다. 이 연합회는 인문학 관계 학회들을 하나의 모임으로 엮어 보자는 것이다. 사실의 면밀한 조사 검토가 학문의 기본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연구는 그 연구대상에 따라서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여러 갈래로 쪼개지는 분과적인 학문을 하나로 종합하는 것도 학문 연구의 중요한 과제이다. 학문은 궁극적으로 세계와 사람의 삶을 전체적으로 또 하나로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 기획이다. 이번에 출발하는 연합회 구성에는 26개의 학회가 참가하였다.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등록된 학술단체는 2011년 현재 7621개에 이른다. 쪼개져 나간 학회들을 연합하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는다고 할 것이다.


발표된 ‘인문학 선언문’은, “인문학은 인간의 인간에 관한 이야기로서, 과학조차 이 이야기의 일부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학문이 “이야기”인지 아닌지는 더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지만, 세계와 사람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학문의 최종 목표의 하나인 것은 틀림이 없다. 지난번의 본 칼럼에서 한국 과학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를 소개하면서 필자가 지적한 것도 그러한 종합의 필요였다. 한편으로 종합은 장기적인 과학 발전을 위하여, 다른 한편으로 그 인간 복지에의 수렴을 위하여 필요한 일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을 문학이나 철학의 반성적 사고에, 물론 더욱 넓혀서, 종합적 인문적 사고에 열리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경향신문DB)


그러나 단기적으로 볼 때, 이것은 쓸데없는 일일 수 있다. 인문학총연합회의 토론회에서 건국대의 성태용 교수는 “인문학, 쓸모 있다고 말하지 말자”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다. 발표문의 요지는 유용한 것만을 찾는 세상에서 인문학은 절로 무용지물로 보일 수밖에 없는데, 쓸모가 없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것을 확인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역설을 포함하는 주장이다. 성 교수는 어떤 나무가 쓸모가 없었기에 큰 그늘을 제공해주는 나무로 자라게 되었다는 장자의 우화를 인용하여, “쓸모없음의 큰 쓸모(無用之大用)”를 언급하였다. 성 교수의 정의에 의하면, 인문학은 쓸모가 없는 듯하면서, “성숙한 삶을 살게 해주는 학문”이다.


미국 프린스턴에 있는 고등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낸 에이브러햄 플렉스너의 글에는 성 교수의 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쓸모없는 것의 쓸모”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그는 이 제목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하여, 쓸모없는 이론들에서 나온 발명들을 예로 들고 있다. 1939년에 쓰인 글이기 때문에 오래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맥스웰의 전기와 자기에 대한 쓸모없는 이론이 마르코니의 무선 통신과 같은 쓸모 있는 발명으로 이어지는 것--이러한 것이 과학과 기술의 우회적인 연계의 예가 된다.


그렇다고 큰 쓸모가 나올 것을 기다려, 쓸모없는 것을 참고 너그럽게 보라는 것만은 아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학문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자유로운 인간 정신이라는 점이다. 학문은 그 자체로써 삶의 보람을 이룬다. 이것은 과학에도 해당되지만, 시나 음악이나 그림 또는 다른 인문적 탐구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것 없이 스스로 즐거운 삶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학문은 실용에 봉사한다. “증오가 휩쓸고 있는 세계에서도 사람은 ‘이득이 있든 없든’ 아름다움을 함양하고 지식을 쌓고 병을 고치고 인간의 고통을 완화하는 일”을 한다. 물론 사회 경제 정치의 실제적인 목적에 봉사하는 일도 학문이 할 수 있는 일의 하나이다. 다만 그러한 실용적 기능은 지나치게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플렉스너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는 자유로운 정신을 존중하면서 고등과학원을 운영하고 아인슈타인, 수학자 헤르만 바일이나 폰노이만, 미술이론가 파놉스키 등의 자유로운 학문 생활을 뒷받침했다.


지금은 이러한 자유로운 학문의 이상은 미국에서도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무용(無用)과 대용(大用)은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곳에서 서로 넘나들게 마련이다. 급한 쓸모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쓸모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면서 문제를 초연하게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거리를 두고 보아야 넓은 지평 안에서 해답의 여러 가능성을 찾아내고 문제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현실의 문제를 풀어나갈 사람을 구할 때도, 급한 가운데에도 느긋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자격 요건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이것을 쉽게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문의 사명은 사회적으로 그러한 능력이 나올 수 있게 하는 지적 자산의 축적에 기여하고 그것을 일반적인 문화가 되게 하는 일이 포함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는 어느 때보다도 많은 학계의 인사들이 후보자의 소위 ‘캠프’에 참여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현상이다. 요즘에는 급한 현실 속의 발언만이 학문하는 자의 눈에 띄는 의무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보다 넓은 정신의 자유로운 탐구의 자율 구역도 그렇게 정의되는 쓸모에 따라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경제민주화’는 이번 선거에서 핵심 안건으로 등장한 정책 지표이다. 그 방법 그리고 현실 요건의 관점에서 면밀하게 검토되어야 하는 사항들이 많을 것이다. 이것은 학계의 도움이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그런데 ‘성숙한 삶’이라는 기준에서 경제민주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제민주화는 지극히 단순화하여 말하면, 소유의 평준화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숙한 삶’과의 관계에서 보다 복잡하게 말하면, 그것은 구김 없는 인간성의 실현을 가능하게 하고, 증오와 원한이 아니라 상호존중의 윤리에 기초하는 사회를 위한 물질 질서를 구축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기준은 정치를 맡겠다는 사람들의 현장적 사고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마땅하다. 


정책의 논의가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논의의 근본이 되는 것은 사람들을 하나가 되게 하는 어떤 기초이다. 그 기초가 단단해야, 정책 토의는 파당적 갈등을 넘어 우리 삶에 대한 토의가 될 수 있다. 정책은 궁극적으로는 존재의 깊이에 대한 사회적 탐구에 그 뿌리를 갖는다. 정치지도자에게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정책만이 아니라 정책의 뒤에 있는 바 이 뿌리에서 나오는 인간적 삶에 대한 깊은 인식이다. 이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그의 인격이다. 이 인격이 주축이 되어 정책은 일관성을 얻고 동시에 상황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 것이 된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사람의 생사, 화복, 수명 그리고 일의 연월일을 귀신처럼 예언하는 신들린 무당이 있었다. 제자가 안내하여 호자(壺子)라는 현자의 관상을 보게 하였다. 무당은 그의 상을 보고 한번은 죽음이 임박했다고 하고, 그 다음은 병이 나아 생명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다음 번에 무당은 얼굴의 상이 변화가 심해서 관상을 볼 수 없다고 하면서 호자를 피해 달아나버렸다. 처음 호자는 무당에게 땅의 조짐을 보여주었고, 두 번째는 하늘과 땅의 조짐을 보여주었다. 무당은 이 조짐에 따라 점을 친 것이다. 호자가 세 번째 보여준 것은 표면적인 증상을 넘어 가는 본질적 실체였다. 그러나 무당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이 우화의 뜻은 근본을 알지 못하고 표면적 증상만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상적 증후가 아니면 무엇으로 세상 형편이나 추세를 판단하라는 말인가? 그러나 수시로 나타나고 없어지는 증후에 더하여 그 너머에 있는 사실의 근본에 또 존재론적 진리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노력을 버릴 수는 없다. 학문--인문과학이나 자연과학이 이러한 근본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학문의 근본이 그러한 근본에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사람의 삶을 깊이 있게 하는 일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체제를 다스리는 법술(法術)을 고안하고 스스로 쓸모에 봉사하는 것이 학문의 전부라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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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 동화작가


 

경향신문에 첫 칼럼을 쓴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2차 희망버스에 다녀와서 후기 비슷한 칼럼을 쓰게 됐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린이책을 만드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갔는데 그 날, 비가 참 많이도 내렸다. 영도까지 걸어가다 말고 커피를 사느라 늑장을 부려 대열을 놓쳐 버렸다. 뒤늦게 도착해서는 화장실을 간다, 휴대전화를 충전한다, 툭하면 들락날락하다가 물대포 쏜다는 소리만 들려도 슬슬 뒤로 물러나곤 했다. 그러다 새벽 네 시 무렵, 이 나이에 풍찬노숙이 웬말이냐며 우리끼리 근처 찜질방에 가서 잤다. 


아침이 되어 다시 대열에 합류하고 텐트 아래 짐을 풀었다. 한진, 유성, 쌍용 등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자녀에게 선물하려고 어린이책 동네에서 기증받은 1000여권의 어린이책이었다. 책 받을 어린이들의 명단도 미리 입수해 두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1000여권의 책에 일일이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하고 우편 포장까지 하는 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냥 책만 주자, 이미 이름을 받았으니 그냥 하자. 손으로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지런히 적으면서도 내내 입씨름을 했다.


(경향신문DB)


 그러고도 3차 희망버스 때는 부채를 잔뜩 싸들고 가서 그림을 그려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쌍용차 일일 상주 때는 또 배지에 그림을 그렸다. 2010년에는 <박순미 미용실>이라는 공동 단편집을 출간했고, 그 인세는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에 기부되고 있다. 그때마다 입으로는 내내 투덜거린다. 뭐하러 일을 또 벌였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일을 꾸미고 꾸역꾸역 모여서 서로들 퉁박을 주다가, 아이고 허리야 다리야 해가며 집으로 돌아간다. 한마디로 말해서 참,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비정규직과 연대한다는 대의명분도,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한다는 성스러운 말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문화권력이라는 말이 일상어인 듯 언론에 등장하는데, 권력이라는 말은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 줄여서 ‘더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번에 또 일을 저질렀다. <비정규씨, 출근하세요?>라는 책을 냈다. 비정규직의 현실을 솔직히 털어놓기도 하고, 그들의 노동이 햇살처럼 소중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하는, 어린이를 위한 비정규직 안내서라고나 할까. 열아홉 명의 작가들이 쓰고 그렸고, 인세는 전액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에 기부된다.


근 일 년 반 동안 준비한 책이다. 나는 곁에서 구경만 했는데, 다채로운 내용을 보니 그간 얼마나 고심했을지 짐작이 간다. 비정규직 활동가에게 강연을 듣기도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 취재도 했다. 쉽고도 흥미로운 책을 만드느라 수십 번 의논하고 고쳐 썼을 것이다. 


그래놓고도 ‘더작가’는 좀 미안한 얼굴이다. 책이 잘 팔리지 않으니 기부랍시고 얼마 되지도 않고, 이름난 작가들도 아니니 언론에서도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린이책 자체가 그다지 관심 받는 장르가 아니다 보니 우리가 힘이 되어준다거나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다만, 같이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헌신이라는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손이라도 한번 잡아주고 싶다. 누군가 또 이렇게 내 손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힘든 내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도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은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어서다. 그런 글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서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사기를 칠 수는 없으니, 희망을 향한 작은 손짓이나마 하지 않을 수 없다. 체력도 달리고 정신력도 약하고 책도 안 팔리고 이름값도 하찮지만, 일손 보탤 데 없나 하고 앞으로도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작가’의 못난이들이 좋고, 많이 자랑스럽다. <비정규씨, 출근하세요?>라는, 도무지 베스트셀러의 가망이 없어 보이는 이 한 권의 책이 더없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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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요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유력하다. 문화재청은 5일 유네스코 산하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심사소위원회인 심사보조기구의 심사결과 아리랑이 ‘등재권고’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등재권고를 받은 아리랑은 이변이 없는 한 오는 12월3~7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리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인류무형유산으로 최종 결정된다. 2001년부터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14개 종목의 한국 무형유산도 등재권고 후 모두 등재판정을 받았다. 지난 3월 등재신청된 ‘아리랑’은 세대를 거쳐 지속적으로 재창조됐고 한국민의 정체성 형성과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해 온 점에 많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2차 아리랑 광고 (경향신문DB)


그러나 아리랑의 유네스코 등재로 중국의 아리랑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리랑의 유네스코 등재신청이 관심사로 떠오른 배경은 지난해 중국이 옌볜 지린성 조선족의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소수민족의 문화유산 보호차원에서 각 민족들의 문화유산을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유네스코 등재를 신청하고 있다. 이번 아리랑의 등재권고는 중국 아리랑의 유네스코 등재를 의식한 문화재청이 다른 종목에 앞서 아리랑을 우선 등재신청한 결과였다. 그러나 중국이 조선족 아리랑을 유네스코에 신청해 등재판정을 받을 경우, 아리랑은 한국과 중국의 공동등재 무형유산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문화유산을 둘러싼 국가 간 문화전쟁을 치르기 위해선 속도전보다 섬세한 전략이 필요하다. 지난해 만든 한국대표무형문화재목록을 바탕으로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종목을 선정해 유네스코에 등재신청해야 한다. 특히 예능 분야에 치우친 등재신청을 공예, 무예, 음식 등의 분야로 폭넓게 확대해야 한다. 아리랑의 경우 2009년에도 등재신청됐지만 수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유산을 유네스코에 무더기로 신청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심사제한’의 피해를 본 사례다. 아리랑은 당시 심사건수 제한에 따라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처용무 등 5개 등재종목에 밀렸다가 이번에 빛을 봤다. 우리는 향후 나전칠기와 유기장, 씨름과 무예18기 등 다양한 종목을 세계 무형유산의 반열에 올려야 한다. 지난 3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신청한 ‘김치와 김장문화’는 내년 11월 등재여부가 결정된다. 


문화전쟁이 치열한 시대일수록 민족의 문신이 된 무형유산들을 살뜰하게 계승하고, 중요한 민족자산들을 확보해 문화경쟁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류의 힘이 거저 생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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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원자력발전소 5·6호기가 어제부터 전면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원전부품 공급업체 8개사가 미국 품질검증기관 품질검증서를 위조해 공급한 부품이 영광 원전에 집중적으로 들어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부품을 진짜 부품으로 바꾸기 위해 연말까지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품질보증을 받지 않은 부품을 공급받아 원전을 가동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경향신문DB)


한국수력원자력 감사실 조사 결과 이들 납품업체는 2003년부터 최근까지 9년 동안 총 237개 품목, 7682개 제품, 8억2000만원어치를 공급하면서 60건의 품질검증서를 가짜로 만들어 제출했다. 외부 제보가 없었더라면 원전은 계속 가짜 부품을 공급받아 가동할 뻔했다. 한수원은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이 퓨즈, 스위치와 같은 일반 범용제품이어서 원전 안전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올 들어 원전 고장을 일으킨 95개 부품 가운데는 이번에 문제가 된 부품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원전 불신은 이미 최고조에 달해 있다. 한수원은 납품업체가 가짜 품질검증서를 내도 육안으로 식별할 길이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원전 부품 관리가 너무나 허술하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의 1차적인 책임은 건당 300만원씩인 품질검증서 신청 대금을 아끼려고 눈속임을 한 납품업체들에 있지만, 가짜 부품을 공급받아도 까맣게 몰랐던 한수원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제 검찰로 공이 넘어갔다. 한수원 직원들이 품질검증서가 가짜임을 알고도 일부러 눈을 감았는지도 검찰이 추가로 밝혀내야 할 대목이다. 한수원을 관리감독해야 할 지경부,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원전 가동 중단이 예고하고 있는 전력난이다. 영광 원전 2기가 제때 재가동을 못하면 우리 예비전력은 30만㎾로 떨어진다. 지난해 9월15일 전국적인 블랙아웃(대정전)이 일어날 당시와 비슷한 예비전력 수준이다. 더욱이 올겨울은 유난히 예년보다 춥고, 추위가 길다고 한다. 전력대란이 걱정스러운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원전가동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던 정부의 고충도 이해된다. 하지만 문제가 된 부품을 서둘러 교체해야 한다. 현재 한수원은 본부장급 간부를 미국에 보내 교체할 부품을 사들이고 있다고 한다. 부품을 사서, 이것을 품질보증기관에서 보증받는 데만 1개월에서 2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최악의 사태만은 막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원전은 부품이 10만개가 넘는 만큼 언제든 고장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 만큼 원전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덜기 위해 한수원과 지경부는 지금과 같은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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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어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야권후보 단일화 논의와 관련, “우선 문 후보와 제가 먼저 만나서 서로의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 정치 혁신에 대해 합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야권은 물론이고 진보 진영이 강조해온 가치와 정책 연대를 위한 단일화 제안이다. 문 후보는 ‘우리가 단일화하고, 힘을 합쳐 대선에 임할 것이라는 원칙은 하루 빨리 합의하자’는 전날의 제안을 상기시키며 “호응해줘 고맙게 생각한다”며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가 5일 광주 전남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에게 단일화를 위한 회동을 제안한 뒤 박수가 터져나오자 주먹을 쥐어 답례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안 후보의 발언은 무엇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절반이 넘게 정권교체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난 유권자들이 단일화 무산 가능성에 대해 갖고 있는 불안감과 피로감을 씻어주는 효과가 있다. 안 후보가 단일화 공식화 선언의 장소로 야권의 핵심 기반인 호남을 택한 것도 그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읽힌다. 그런 맥락에서 기득권 세력을 이길 수 있는 단일화, 가치와 철학이 하나가 되는 단일화, 미래를 꿈꾸는 단일화라는 안 후보의 3원칙 천명은 문 후보가 아니라 단일화를 촉구해온 국민들을 향한 화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로써 단일화의 밑그림은 그려진 셈이다.


문제는 단일화의 실현 방식이다. 단일화 논의를 공식화한 것은 나름 진전이지만, 의미를 축소하자면 필요하다는 원칙 확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더구나 안 후보의 단일화 목표는 문 후보가 주장해온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총론에서 이견이 없다고 각론에서도 같으라는 법은 없다. 모든 논의의 귀결은 결국 누가 그 일을 맡느냐로 모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사람과 세력이 부딪치는 일인지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단일화의 이상과 현실이 언제든 충돌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또 알차게 전개되느냐에 단일화의 실질적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안 두 후보가 오늘 만난다. 그것도 배석자가 없는 두 사람만의 만남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단일화에 대한 상호 공감대를 확인하는 자리가 돼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 모두 개인적 야심이 아니라 정권교체와 시대 교체라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출마했다고 밝혀온 터이다. 두 후보의 다짐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다면 이번 단일화 논의는 역대 그 어느 연대나 단일화보다 ‘아름다운 협력과 경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단일화는 그 자체가 종착점이 될 수는 없다. 진정한 새정치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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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