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한 지방의 8층짜리 대형 회센터에서 저녁을 먹고 자리를 옮기려는데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약 2㎞를 걷는데 폐허가 된 도시처럼 보였습니다. 몇몇 관공서가 보이긴 했지만 사람이 산 흔적이 없는 건물이 즐비했습니다. 일행인 한 역사학자가 “모든 도시가 ‘강남 개발붐’을 그대로 닮은 복제품”이라고 말했습니다.

강남을 최초로 다룬 연구서를 쓴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인물과사상사)에서 “강남은 한국의 얼굴”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는 “독특한 아파트 문화의 선구자이자 리더는 단연 강남이다. 강남의 아파트 거주율은 80%에 육박한다. 강남은 욕망의 용광로다. 구별짓기의 아성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왜 아파트가 연구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으려 했듯이 강남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왜 강남의 진실을 피하려는 걸까? 진실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강남을 제대로 천착한 연구서가 왜 나오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의 심장 도시는 어떻게 태어났는가?’가 부제인 강남만을 다룬 최초의 역사서 <강남의 탄생>(한종수·계용준·강희용, 미지북스)에서 저자들은 “강남은 한국 현대사의 얼굴”이며, “강남을 안다는 것은 한국 현대사를 안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는 ‘강남’을 의외로 잘 모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소위 ‘강남 3구’를 ‘강남’으로 보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원래 “강남은 과수원과 채소밭 천지”였습니다. “1968년까지만 해도 강남은 일반 가정에 전화기는커녕 지역 전체에 공중전화 한 대도 없는 ‘벙어리 동네’”였습니다.

그랬던 곳이 “압구정, 반포, 서초, 잠원, 신사, 논현, 역삼, 개포, 삼성 등 오늘날 쟁쟁한 부촌이 된 셈인데, 지난 ‘강남 개발의 시대’는 실로 ‘뽕나무밭’이 ‘강남’이 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강 교수도 “강남은 한국의 초고속 성장을 온몸으로 드라마틱하게 웅변하는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이 보릿고개에서 ‘세계 10대 경제국’으로 달려왔듯이 강남은 ‘말죽거리’에서 ‘타워팰리스’까지 달려왔다. 전자의 달리기는 피땀으로 이룬 반면 후자의 달리기는 일확천금의 투기 광풍이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할 것이나 욕망의 대질주라고 하는 본질에 있어선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강남의 탄생>은 바로 그런 ‘욕망의 대질주’를 세세하게 정리한 역사서입니다. 저자들은 1969년 12월25일 준공된 제3한강교가 ‘강북’으로부터 ‘강남’이라는 지역을 잉태하는 탯줄이 되었는데, 이 다리는 훗날 ‘말죽거리 신화’로 불리는 땅값 폭등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그보다 먼저 착공한 경부고속도로와도 이어져 그 출발점이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검찰청, 국정원, 한국은행 전산본부 등 주요 기관과 경기고, 서울고, 숙명여고 등 강북 명문고의 강남 이전, 지하철 2호선을 강남을 관통하는 순환선으로 바꾼 일 등이 작용해 강남은 명실상부한 서울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여의도는 ‘강남의 원조’이며, 노원은 ‘실패한 강남’이고, 목동은 ‘성공한 강남’이라고 말하는 저자들은 “강남의 성공은 우리나라 도시사(史)에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고 말합니다. 한때 서울을 강타한 뉴타운 광풍은 “강남을 닮고 싶어 하는 강북 시민들의 ‘욕망’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고 보기도 합니다.

‘강남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광역시는 물론이고 인구 10만명도 안되는 소도시도 모두 마치 비법이라도 배운 것처럼 신도심을 개발해 시청, 법원, 방송국, 터미널 등 알짜 시설을 옮겨 놓”는 바람에 “구도심에는 옮길 수 없는 기차역과 전통시장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도 경주와, 성곽이 있는 전주나 공주, 진주, 호수를 끼고 있는 춘천, 몇몇 항구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방 도시들은 특징이 없는 그저 그런 붕어빵 도시들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어느 도시 할 것 없이 ‘구도심 활성화’가 단체장 선거의 단골 공약이 되기에 이르렀지만 “구도심이 활성화되었다는 도시가 있다는 소식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대로 둘 수는 없겠지요. 앞으로 투기나 욕망에 의한 도시 개발은 지양하고 도시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마을>(이승훈 외)은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를 중심으로 마을의 청소년들이 ‘시작된 변화’ 프로젝트에 참가해 마을을 바꾼 지난 5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버려지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땅에 꽃과 잔디를 심고, 놀이터에 적힌 낙서를 지우고,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굴다리에 벽화를 그려 넣고, 얼굴을 모르는 아파트 주민에게 인사하기 캠페인을 벌이고, 동네의 자전거도로를 조사해 구청에 민원을 넣는 아이들의 노력 덕분에 “잠만 자는 곳”이자 “아이들에게는 얼른 벗어나고 싶은 변두리 동네”에 불과했던 공릉동이 이제 좋은 삶과 좋은 교육을 가꾸는 터전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마을은 작은 세계이며, 가장 큰 학교”라고 말하는 저자들은 “경험이 최고의 학습이고, 최고의 경험은 마을 안에서, 일상 속에서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최고의 학습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인 마을 속에서 쌓이는 풍부한 경험은 역량을 키우기 마련인데 그것이 ‘마을 교육력’이라고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마을에 도서관과 청소년센터가 결합된 공간부터 만들어놓고 폐허가 된 도시를 살 만한 도시로 바꿔보시지 않겠습니까?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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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