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합헌 결정 때문에 소셜미디어(SNS)가 시끄럽습니다. 밥은 3만원 미만짜리밖에 먹지 못하게 하고 선물을 5만원 미만으로 한정하면 내수경제가 무너진다고 언론이 아우성치니 누리꾼들이 조롱을 하고 나선 게지요. 비싼 술집에서 폭탄주 돌리던 일이 사라지니 집에 일찍 들어가 책도 볼 수 있어 좋을 것 같은데 세상사가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입니다.

출처: 경향신문DB

어찌됐든 이번 법을 입안함으로써 많은 사회적 관심과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김영란 전 대법관은 한국 최초로 여성으로서 대법관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우리나라의 부패를 근절하려면 법을 통하는 방법밖에 없겠다고 생각해서 ‘김영란법’을 입안한 분입니다.

그는 최근에 출간된 <책 읽기의 쓸모>(창비)에서 여행 도중에 가지고 간 책을 다 읽어버리면 금단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책 중독, 활자 중독에 시달렸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행갈 때 비행기 안에서 그동안 못 읽었던 가장 어려운 책을 골라 읽습니다. 반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내기 힘든 평소에, 일을 하던 도중에는 비교적 가벼운 책을 읽습니다. 저는 대가족으로 살아온 기간이 긴 탓에 가사노동을 제법 해온 편이어서 차분히 앉아서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생긴 버릇이 책을 여기저기 놓아두고 읽는 것이었지요. 부엌에도 책이 있고 화장실에도 책이 있고 방에도 책이 있습니다. 서재가 따로 없지요. 서재에 들어박혀 있을 여유가 없이 늘 개방된 공간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주부의 특징 때문이지요.”

그는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온 것이 ‘쓸모없는 책 읽기’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왜 책을 읽었을까요?

“생각해보면 슬픈 일이 있어도 책을 읽으면 다 잊어버리고 없었던 일이 되는 적이 많았습니다. 제게는 독서가 일종의 카타르시스, 즉 현실을 잊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지요. 책을 읽으면서 힘든 일을 잊어버린다는 것만 해도 굉장한 쓸모이긴 합니다. 또 최근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쓸모없는 책들을 제가 법률에 관한 책을 쓰는 데 써먹었더군요.”

책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해온 저에게 이만한 실제 증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책을 읽었을까요? 어려서는 동화책을 많이 읽었지만 사춘기 시절부터는 문학서적으로 말을 갈아탔습니다. 이때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토마스 만, 톨스토이 등을 읽으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현실에서 구현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책들을 특별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미셸 투르니에의 <흡혈귀의 비상>, 이사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 어슐러 르 귄의 <빼앗긴 자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등입니다. 대부분 ‘이분법 놀이’를 통해 복잡다단한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그는 법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이 제시한 ‘공평한 관찰자’란 개념에 꽂힌 것 같습니다. “인간의 개별성에 대한 존중과 질적인 것으로부터 양적인 것으로의 환원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 세계에서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 그리고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마치 개미나 기계 부품의 움직임이나 동작같이 개관적인 외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자신의 삶에 다층적 의미를 부여하듯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묘사”가 누스바움이 정리한 소설의 특징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니까요.

누스바움이 말하는 ‘공평한 관찰자’는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와 비슷한 관찰자의 능력을 지닌 재판관”, 즉 ‘문학적 재판관’입니다.          

“모두 똑같아 보이는 집들이지만 제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고, 그 각각의 이야기들은 인간의 정념에 관한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가령 누가 사람을 죽였다고 할 때, 같은 살인이라 해도 그 배경을 보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아버지를 죽인 아들도 있을 수 있고,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마구 때리고 몇날 며칠을 방치해두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부모도 있지요. 그렇게 개별적인 이야기가 다 다릅니다. 재판관은 그런 개별성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소설을 많이 읽어서 ‘공감’이라는 훈련을 한 그가 우리 사회를 혁신하기 위해 ‘김영란법’을 입안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는 상상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상이 없으면 ‘이미 있는 것’에 대해 공부하고 익히는 일밖에 남지 않을 테니까요. 물론 그것만 하기도 바쁜 세상이지만, 그러기만 해서는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무언가 더 나은 것에 대한 상상, 다음에 나아갈 행보에 대한 상상, 그것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책, 특히 소설을 많이 읽읍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모든 책은 하나하나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각자가 듣는 이야기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한한 세상 속을 여행하는 일”이자 “나 자신을 찾는 일”이면서 “나에 대해 기록한 단 하나의 책을 찾는” 행위이자 “세상을 통해서 나 자신을 찾는 공부”이니까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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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