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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한 주 주말마다,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커다란 마음의 파도를 넘고 있다. 내게는 그사이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몇 주 동안의 기억이 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 멀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침대 옆에는 인공호흡기가 있었고, 혈압과 맥박 따위가 나오는 손바닥만 한 모니터가 머리맡에 있었다. 꼼짝하지 못한 채 어머니가 누워 있었다. 눈도 뜨지 못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뇌출혈이었다. 아직 예순이 되지 않은 나이였으니, 아무도 마음의 준비가 없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지병으로 두통을 달고 지냈다. 최고로 꼽힌다는 병원을 찾아다녔고, 온갖 정밀검사를 했으나 의사는 한결같이 ‘이상 없음’이라는 결과를 통보했다. 극심한 통증으로 몇 달을 입원해야 했지만 그래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알 수 없음’이 아니고 ‘이상 없음’. 별다른 이상은 없고, 그저 ‘신경성’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어느 병원에서도 뇌혈관질환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은 적이 없었다. 고통스럽고 건강하지 않은 환자에게, 며칠을 두고 온갖 검사를 한 뒤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진료 결과를 내놓는 일은 그리 낯설지 않다. 환자는 결과지를 받아들고, 갑갑한 마음인 채로 입을 닫고 병원을 나선다. 무언가 처치할 수 있는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는 한 ‘이상’은 없다. 환자는 건강하지 않은 삶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의사는 드러난 질병을 처리하는 데에 골몰한다. 어째서 아프게 되었는지, 어떻게 살아야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의사는 만나기 어렵다.

어머니를 진료했던 의사는 ‘이상 없음’의 환자에게 한 움큼의 약을 처방했다. 이상은 없으나 약은 많이 필요한 상태. 이게 앞뒤가 맞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가장 단순한 과학의 논리에서도 벗어난 것 아닌가. 왜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의사들이 이렇게 많을까. 한 움큼의 약은 부작용도 여럿이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밥 먹는 습관을 엉망으로 뒤틀어 버린 것이었다. 스스로 밥 먹는 것을 조절하기가 어려워졌고, 단것을 자꾸 찾게 되어서 혈당이 높아졌다. 물론 이런 상태에 대해서도 의사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게 약해진 몸에 얼마나 무리가 되는지, 특히나 혈관 같은 것에.

수술을 한 담당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환자가 겪게 될 아픔이나, 앞으로 예상할 수 있는 환자와 보호자의 삶에 관한 것, 건강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의사는 최선을 다해, 사진에 나타난 희뿌연 흔적의 부피, 혈액 검사에서 나오는 수치의 변화, 각각의 조직이 정상인 상태와 얼마나 다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했다. 돌이켜보면, 그 의사 또한 환자나 보호자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잘 몰랐던 것이 아닐까 싶다. 수술을 해서 머리에 고인 피를 뽑아내고, 검사 결과에 따라 출력된 숫자에 맞춰 약물을 투여하고, 환자를 처치하는 일에는 능숙할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의사는 “내가 더 이상 말할 것은 없다. 이번 혈액 검사에서 어떤 수치가 유의미하게 좋아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말할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삶과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의견을 구하고, 이야기를 나눌 상대는 아니었다. 아픈 환자의 몸이 앞으로 어떤 일을 맞닥뜨리게 될지에 대해서, 환자와 보호자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금세 접게 되었다.

지난 몇 주 동안, 다른 모든 것들을 잠시 멈추게 하면서 들이닥쳤던 이 일들은, 첫 책 <스스로 몸을 돌보다>를 내면서 그 책에서 분명하게 다뤘던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문제들이었다. 눈앞에 빤히 있었고, 머릿속에는 제 딴에 그려 놓은 답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몸에 10여개에 이르는 수액 주사들이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아서 혹시나 대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여기에서 지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뇌어 물었다.

전광진 | 상추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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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