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다 원칙은 알아도 압수수색을 하기 전 대상자에게 미리 알려줘야 한다는 걸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세월호 집회 ‘가만히 있으라’를 기획한 용혜인씨 사건이 이 법조항을 새삼 드러냈다. 용씨 측은 경찰 수사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적인 카카오톡 메시지가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점을 눈치챘다. 법원은 이런 압수수색은 안된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발끈했다. “앞으로 수사하지 말란 얘기냐”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살인·마약 등 강력범 사례를 들면서 “조폭 사무실을 압수수색한다고 미리 알려주면 그들이 가만히 기다리고 있겠느냐”고 했다.

형사소송법 122조는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함에는 미리 집행의 일시와 장소를 당사자나 변호인 등에게 통지해야 한다. 단, 이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시한 때 또는 급속을 요하는 때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압수수색은 당사자에게 사전 통보돼야 한다. 이게 원칙이다.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로부터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고 있다._연합뉴스

그런데 검찰은 해당 조항 뒷부분의 예외를 내세운다. 급할 땐 통보 없는 압수수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그동안 이 예외 조항을 주된 원칙처럼 활용해왔다. 수사의 기밀성을 내세워 사전 통보 없는 압수수색을 당연시해왔다. 압수수색 열에 아홉은 예외적 급속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수사경험상 자신감도 쌓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압수수색 원칙은 사라져갔다.

이번에 법원이 압수된 용씨 카톡 내용을 분석해보니 대부분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이었다. 카톡 메시지는 다음카카오 서버에 보관돼 개인이 인멸하기도 어렵다. 누가 봐도 급속을 요하는 압수수색 상황이 아닌데도 검찰이 ‘급박한 상황’이라고 우기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도심 난투극을 준비하던 범서방파 압수수색을 통보해주지 않는다고 제동을 걸 법원은 없다. 열에 아홉이 아닌 나머지 한 사건에서는 원칙을 지키라는 법원의 이번 결정은, 아홉 개의 급한 수사엔 아무런 악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검찰이 다른 포석을 위해 대법원에 재항고했다는 의심도 든다. 용씨 같은 집회 관련자 또한 강력사건 용의자 수준의 급박한 위험요소란 점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깔린 듯하다. 또 혐의자의 내밀한 정보를 불편 없이 수집하기 위해 법률적인 원칙 자체를 대법원 판례를 통해 조금씩 바꿔가고 싶은 의도도 엿보인다. 물론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검찰은 굳이 이 같은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홍재원 | 사회부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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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