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41세의 노르웨이 여자를 알게 됐다. 서면을 통해 알게 된 그녀는 현재 방콕에 거주하며 전 세계를 여행하는 멋진 보헤미안이었다. 그런 그녀가 4월에 한국에 온다. 특별히 한국에 와야 하는 이유는 없다. 단지 인터넷을 통해서 강원도에 머물고 싶은 숙소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홀로 12박이나 머물며 컴퓨터로 일도 하고 충분한 휴식도 취할 거라고 했다.

그녀가 예약한 곳은 대체로는 4월까지 눈이 오는 곳이다. 늘씬하게 키가 큰 낙엽송 숲이 마치 집에 딸린 정원인 듯 인접한 강원도의 소박한 시골집. 그 풍경이 마치 자신의 고향 노르웨이처럼 애틋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자기 눈에는 그 민박집이 너무도 사랑스럽게 보인다고 했다. ‘자연’적이고 쉴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고 ‘아취’랄까 ‘우아’랄까 뭔가 그런 취향이 가득 느껴지는 공간처럼 보인다고 했다. 정확히는 ‘테이스트풀(tasteful)’이라는 단어를 썼고 ‘휘글링(hyggling)’이라는 표현도 썼다.

대관령 양떼목장에서 바라본 강원도의 겨울 풍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마침 전 세계적인 연구 대상이 된 덴마크인들의 ‘휘게 라이프(Hygge Life)’에 나 또한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을 때였다. 냉소적으로 빈정대기 좋아하는 영국인들이 이제 막 대학생들에게 ‘휘게’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가디언 표현에 의하면 ‘휘게 혁명이 로마제국보다 더 빨리 세계를 점령하고 있다’는데 내 어찌 ‘휘게’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혹시나 평창올림픽을 치러야 하는 강원도가 보다 매력적인 겨울 여행지가 되기 위해서 적용할 만한 것들이 있을까 싶어서 냉큼 읽어 봤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손꼽히는 나라 덴마크에서 ‘행복의 비밀’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쓴 <휘게 라이프(Hygge Life)>라는 책을. 오, 다행히도 밑줄 긋고 싶은 내용이 너무도 많았다. 예컨대 강원도에서 식당이나 카페, 숙박업을 하는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이런 내용들.

“<론니 플래닛>에 소개되어 있듯이, 덴마크 사람들은 아늑한 분위기에 목숨을 건다. (…) 가격, 상품, 판촉활동 등은 다 잠꼬대일 뿐, 덴마크에서 장사의 승패를 가름하는 것은 오직 휘게뿐이다.”

아 그런가? 그렇다면 ‘휘게’란 무엇인가? 어떻게 ‘휘게’할 수 있는가? ‘higge’는 ‘웰빙’을 뜻하는 노르웨이어 단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그 어원에서 시작하면 너무 광범위하니 영어로 접근해 보자. 번역하면 ‘코지니스(cosiness)’다. 안락함, 특히나 소박하게 운치 있는 안락함. 예컨대 벽난로 같은….

실제로 벽난로는 휘게다. 그 말은 휘게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바로 ‘벽난로’라는 얘기다. 생활인으로서 하는 말이지만 난로는 매우 강원도스러운 아이템이다. 거실을 근사하게 꾸미기 위한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 살기 위해, 혹은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난로를 사용하는 가정이 강원도엔 매우 많다. 벽난로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면 장작난로라고 해도 상관없다. 화려할수록 덜 휘겔리하다고 하였으니 좀 더 검박하게 아궁이에 불을 때는 구들난방장치도 좋다. 

중요한 건 눈앞에서 장작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작은 불똥을 튀기며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특유의 나무 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거다. 장작불이 만드는 그 특유의 시청각 안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돌연 느긋해진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 파자마 같은 편한 옷을 입고 그 불빛을 보고 있는 사람들끼리 강한 유대감마저 생긴다.

덴마크에서 ‘휘게 라이프’를 위해 벽난로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애용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양초다. 촛불이라면 우리에게도 너무도 의미심장한 무기가 아닌가? 평화롭게 혁명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무기. 물론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내겐 너무 소중한 사업장 혹은 집을 전소시킬 위험이 있으니까.

그 때문에 나는 보다 휘겔리한 장소 꾸미기를 위해서 집안 구석구석 작은 램프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조명기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덴마크 사람들처럼 폴 헤닝센의 고급한 램프를 구입할 수도 있지만 그 밖에도 선택의 폭이 무지 많다. 여전히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북유럽 디자인’이라는 검색어만 넣으면 인터넷에 부담 없는 가격의 멋진 조명기구가 얼마나 많은지 말도 못한다.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형광등을 주광색에서 전등색으로 바꾸기만 해도 달라진다. 집안 전체가 금세 휘겔리해진다. 진짜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조도를 낮추어야 한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덴마크인들의 행복의 원천 ‘휘게’는 이미 우리 안에 있다. 특히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강원도 안에 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하얗게 눈이 내린 산과 들, 깨끗한 산 공기, 맑은 물. 마음 편하게 어울리는 이들이 함께 스키나 썰매를 타고 통나무집에 머물며 바비큐 파티를 하고 늦은 밤 장작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그게 바로 최상의 ‘휘게’이기 때문이다.

물론 강원도가 좀 더 휘겔리해지려면 바꾸어야 할 것이 많다. 먼저 삶의 공간을 구석구석 누추하게 명명백백 밝혀주는 주광색 형광등을 떼어내자. 조도를 낮출수록, 빛의 웅덩이가 구석구석 많아질수록 휘겔리해진다. 양철 깡통이라도 좋으니 보다 많은 장작난로를 설치하자. 의자 위에 따뜻해 보이는 담요를 걸쳐두자. 평창올림픽시장 옆 빵집 ‘브레드 메밀’이 그러하듯이 갓 구운 빵 냄새를 풍기자. 강원도의 산과 나무를 연상시키는 소박하고 단순한 나무 가구를 공간 안에 들이자. 하다 못해 산에서 잔가지나 솔방울을 주워다 놓자. 

무엇보다 보기 싫은 ‘스뎅’ 밥그릇이나 플라스틱 그릇을 내다버리고 먹고 마시는 일에 아름다움을 부여할 수 있는 도자기 제품을 쓰자. 그 모든 것이 생각처럼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다. 결단코.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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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