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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명의 청소년에게 진로강의를 했다. 나와 내 일터를 소개하고 강의를 했다. 세상을 알아가고 부모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것이 진로를 찾는 길이라는 요지였다.


질문에 답한 후 마무리 말을 했는데 질문자가 또 있었다. 담담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역문화재단은 뭐하는 데예요?”

순간 눈앞이 노래지면서 대답이라고 한 설명은 내 귀에도 “웱케쫘앆껴귀 꼮껴서꽛흐으”같이 들렸다. 말을 마칠 땐 “지금 뭔소리?” 안 하고 열심히 들어줘서 고마울 뿐이었다. 그러나 질문은 계속 따라다니며 물었다. 그런 대답 말고 진짜 응답을 해보라고. 돌아볼수록 그 청소년에게 미안해서 이 글을 쓴다.

‘살인적 노동시간’보다 긴 공부시간을 견뎌 대학에 가면 진로를 잃어버린 채 비정규직을 전전할 확률이 더 많은 청소년들 앞에서 진로강의를 한 나에게 “지역문화재단은 뭐하는 데예요?”라는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지역문화재단이라는 데에서 일하는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에요?” 하는 물음이었다. “나에게 (지역문화재단에서 일하는)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물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문화융성’을 천명하고 서울시장이 ‘예술 선언’을 준비하는 나라의 72개 지역문화재단 중 한 곳에서 일하는 나에게 그 청소년은 이렇게 질문한 것이다. 거기서 당신이 하는 일이 나하고 무슨 관계인가요?

그러니까 이 글은 나의 “웱케쫘앆껴귀~” 했던 상념을 정리하는 반성문이자 전국 지역문화재단 종사자들에게 “지금 뭔소리?” 하는지 돌아보자는 권고문이다.

지역문화재단의 역사는 이렇다. 1997년 경기문화재단 설립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매해 평균 3개씩 생겼다. 2011년 이후부터는 매해 평균 5개씩 생기는 추세이다. 이런 증가의 배경에는 2014년에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이 있다. 문화정책을 국가정책으로 삼은 문화예술진흥법이 나오고 32년이 지나 시행된 법이다. 민관이 함께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추진위원회를 구성한 지 10년, 국회에서 입법 발의 폐기된 지 8년이 걸려 탄생한 법이다.

지역문화진흥법의 본격적인 구상은 2004년 6월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문화의 비전-창의 한국’이 출발점이다. “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발전을 위한 핵심과제’가 지역의 문화진흥에 달려있다, 그 ‘선결과제는 지역의 문화역량 제고’이다, 이를 위해 국가-지역-주민의 바람직한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는 요지다.

그리고 10년이 지나서 지역문화진흥계획, 지역문화진흥기금, 지역문화재단 등을 명기한 지역문화진흥법이 나왔다. 너무 늦었다. 경기문화재단이 설립된 1997년 전후거나 2004년 무렵에는 나왔어야 했다. 지각생이라도 지역문화진흥을 제대로 추진하고 있다면 다행이나 현실은 안 그렇다.

법 시행 2년째지만 그 계획, 그 기금, 그 재단은 개점휴업이다. 중앙-광역-기초 지방정부의 전달체계는 아직 일방향이다. 바람직한 분담과 협력체계는 없다.

하여 날로 늘어나는 지역문화재단은 민법의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설립되어 지방재정법, 지방공기업법, 지방출자출연기관법,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라 프랑켄슈타인처럼 짜깁기된 정체성을 가진 채 자신이 누구며 부모가 누군지 세상을 향해 혼잣말처럼 방언을 중얼거리고 있다.

그사이 세상은 많이 변했다. 이미 문화와 예술은 창조경제, 공유경제, 사회적 경제는 물론 도시재생, 혁신교육, 마을만들기, 귀농귀촌 등 사회 모든 영역과 융합 진화했다.

이 사회적 작용 속에서 문화와 예술만 따로 추출해 진흥시켜야 할까? 가능하기는 할까? 문제는 지역문화재단 내부에도 있다. 짜깁기된 정체성 탓에 목적의식과 사명감보다는 행정 대행기관의 전문성 뒤에 숨어서 세상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안정된 직장인의 문화, 그들만의 리그에 젖어 있다.

지역문화재단은 공무원, 대기업, 금융기관을 포함해 대략 400만명의 정규직 언저리에 있는 직장이다. 다수의 동년배 비정규직과 함께 동일업무에 종사하면서 신분 보장과 임금에 격차가 있는 직장이다. 잘 모르는 부모는 내 자식이 정부기관의 공무원인 줄 알고 안심하는 직장이다.

이 직장에서 지역주민의 삶의 질과 지역 발전에 헌신하는 태도와 담대한 기획이 나오려면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온갖 중간지원조직을 따로 두어 각기 부실 위험을 키우기보다 지역문화재단과 합쳐서 지역재단이자 교육재단으로서 문화재단을 강하게 만드는 길이다.

또 하나는 국가와 광역정부가 용단을 내려 지역문화재단의 정규직을 두 배로 키우고 청년과 청소년을 대거 고용하는 길이다. 예산이 부족해 사업을 못한다는 변명 대신 직접 주민을 만나 관계를 형성하고 주민자치를 앞당기는 일에 매진하면서 예술가도 주민으로 살도록 돕는 지역문화재단이 돼야 옳다.

글을 마치는 지금도 나는 “웱케쫘앆껴귀~”라고 쓰고 있는 것 같다. 반응은 “지금 뭔소리?”가 아니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이 질문이 20대 국회와 교육문광위 의원들에게도 생생하게 들렸으면 좋겠다. “거기 뭐하는 데예요?” 나 하고 무슨 관계냐고 그 청소년이 묻고 있다.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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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