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문제로 거리의 플래카드가 선거철을 방불케 한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근거 없는 주장은 “우리 아이들이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그런 적 없다)고, 간만에 멋진 말은 “좋은 대통령은 역사를 만들고 나쁜 대통령은 역사책을 바꿉니다”였다. 그렇다. 역사와 역사책은 다르다.

역사책의 내용이 진실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역사는 과거사(事)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해석이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지금, 여기의 이야기이고 현실 정치의 문제가 된다. 진부한 얘기다.

국정교과서는 찬반 이전에 쟁점과 점검 사안이 하나둘이 아니다. 일단 국정(國定)을 국정(國正)으로 오해하기 쉽다. 어차피 국사는 불가능하다. 국사는 국민의 역사는 아니다. 국사는 근대에 이르러 만들어진 국가와 국가주의의 산물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를 포함,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 정확히 말해 그들과 동일시하고 싶은 후대 권력자들의 자기 기록이다. 쓰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문서화된 것만이 역사일까. 구술사는 역사가 아닌가? 그렇다면 일제시대 군 위안부 사건은 없었던 일이 된다. 침략자, 통치자들의 문서 파기가 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료가 없으면 역사도 없다고 믿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마치 자료는 객관적이고, 사람의 경험이나 말은 임의적인 것처럼 생각한다. 여성과 사회적 약자처럼 문서화된 자료가 없거나 비가시화된 집단은 이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해왔다. 작금의 국정교과서 강행은 이러한 논쟁의 역사조차 삭제하는 일이다.

와중에 내가 가장 놀란 사건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지난 16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중·고등학교 학생한테는 사건과 사실의 정확성만 얘기해주면 되는 거고, 교과서에다가 다양성을 어떻게 집어넣습니까? 그건 안됩니다”라는 발언이었다. 그는 북한 관련 기술에 대해서도 “우리 것도 소화하기 벅찬데 북쪽 것까지 같이 들어오니까 이념 논쟁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 발표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_경향DB


중·고생은 일단 ‘하나’만 배우고 ‘다양한’ 내용은 그 이후에 배워라? 언론용 발언이라치면, 이 한마디로 그를 재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용 자체만 보면 그의 인문학적 상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주장이라도 다르게 말할 수 있는데, ‘국정’ vs ‘다양성’, 둘 중 택일이라니?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국사편찬위원장이다.

한 가지 생각과 여러 가지 생각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정론(正論)도 여러 가지 정론의 일부일 뿐이다. 정론이 있고 ‘그 외/나머지/곁가지’ 의견이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하나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다양성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다양성은 아무 상관없는 것들의 독자적인 나열이 아니다. 다양성은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중의 하나가 아니다. 빨강은 연속선을 거쳐 반대색인 파란색(藍色)에 이르고, 다시 보라색이 되는 순환의 일부다. 다시 말해, 빨강은 무지개의 스펙트럼 속에서만 빨강색이지 혼자서는 빨강색이 될 수 없다. 단일성은 다양성과의 관계 속에서 ‘획득’되는 것이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자신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 육상 선수가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연습할 때 기록이 좋아지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페이스(속도)는 주인공과 페이스 ‘메이커’의 합작품이다.

모든 인식의 시작은 다름이다. 인간은 타인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으며, 앎은 그 과정 자체다. 짧은 글도 교차 확인이 필수적인데, 국사가 대조해서 점검할 다른 지식이 없다면? “국사가 어떻게 다양성이 가능하냐”는 국사학자의 말은 정치인의 제스처라면 모를까, 지식인으로서 놀랄 만한 발언이다. 지식은 가르치는(‘주입’) 것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경합의 과정이다. 다양성은 나열된 지식이 아니라 사유의 조건이다.

차라리 국정(國定)교과서가 국정(國政)이 편하므로 “국민 모두 하나가 되자”라고 말하는 것이 낫다. “다양성은 골치 아프다”는 발언은 안일하다. 국정교과서는 독재라기보다 인식 행위와 과정에 대한 무지의 산물이다. ‘그들을 위해 말하건대’, 그들의 목표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지식은 갈등을 통해서만 생산된다. 이것이 지식 자본만의 특성이다. ‘창조경제’ 이데올로기와 국정교과서는 불가능한 조합이다. 사실 현행 검정(檢定)교과서도 별로 다양하지 않다. 어차피 검정 과정을 거친다. 여성사, 민중사, 일상사의 입장에서 보면 검정교과서도 큰 차이가 없다. 인간의 삶과 해석은 얼마나 다양한가. 그래서 유사 이래 가장 흔한 책 제목이, ‘역사란 무엇인가’인 것이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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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