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구로 한 일생을 요약할 수도 있겠다. 가갸거겨를 쓰고 구구단을 외울 무렵엔 연필이다. 이 컴컴한 지하자원은 그 품질이 울퉁불퉁해서 가끔 침을 묻혀야 했다. 중학교 땐 만년필이었다가 손가락이 제법 굵어지면서 모나미 볼펜을 잡았다. 귀퉁이에 볼펜똥을 닦으며 공책을 갈아치웠다. 칠판을 등지자 꿈도 떨어져 나갔다. 건조하고 메마른 일상의 연속이었다. 크게 변화할 일도 꾸중 들을 일도 없는 시기. 습관은 딱딱해지고 고집은 힘이 세졌다. 그동안 각종의 볼펜을 사용했고 드물게 만년필을 가까이했다. 이제 육필은 멀어지고 필기는 손가락 담당이다. 쓰는 게 아니라 구타하듯 자판을 때린다.

꿈 대신 꽃을 좇아 산에 출몰하기를 여러 해. 골짜기의 기운을 쬐고 꼭대기에서 고개를 숙이며 먼 곳을 본 효과일까. 부드러운 것은 부드러운 것으로 대접하는 게 마땅하고 옳을 것 같았다. 몸에서 흘러내리는 생각을 받아 적는 것으로 부드러운 붓을 택했다. 요즘 이동할 때를 제외하고 의사표시는 주로 붓으로 한다. 잘 쓸 수는 없지만 그저 많이 쓰고 싶다는 욕심은 낸다. 먹이나 벼루는 그런대로 갖추었는데 마음에 드는 붓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마음에 착 감기는 애인 같은 붓은 어디에 있는가.

우연한 기회에 유필무 붓장을 알게 되었다. 마침 가평의 취옹예술관에서 전시회를 한다기에 단풍 나들이를 겸해서 찾아갔다. 족제비나 토끼의 털만 알았는데 칡, 억새 등 식물을 소재로 한 붓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천하의 기운이 붓 끝으로 고스란히 수렴되고 있는 듯했다. 붓대에 조각을 넣은 것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그중에서 갈대로 만든 붓에 마음이 쏠렸다.

갈대는 갈대. 왜 갈대는 이름이 갈대인가. 왜 갈대는 이 시기에 누군가의 가슴을 깊게 찌르는가. 왜 갈대는 흐르는 강가에 늘 우두커니 서 있는가. 왜 갈대는 항상 저런 특별한 동작을 취하는가. 갈대붓을 만나고서 쬐끔 알게 되었다. 지금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허공에 ‘제 조용한 울음’을 필기하는 중이란 것을! 갈대, 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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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