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의 대암산 용늪은 워낙 중요한 생태계보전지역이라 등산하는 것도 힘들지만 입산하는 것도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여러 기관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고, 생태마을의 주민 가이드와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나무꾼의 후예를 뒤따르는 울긋불긋한 복장의 등산객들. 널찍한 임도를 따라 걷는데 쉬어가라는 표정으로 너래바위가 앉아 있다. ‘대암산에 나무하러 오던 나무꾼들이 쉬어가던 곳’이라는 안내문도 실제 붙어 있다.

지금은 얕은 개울 위의 출렁다리로 건너지만 예전에는 ‘사방이 하나의 넓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어느 깊숙한 평전에 이르니 또 한번 나무꾼이 등장한다. 지명이 어주구리(魚走九里)라는 곳인데 이런 재미있는 사연이 적혀 있다. “용늪에서 살고 있던 물고기가 용이 승천하는 소리에 놀라 도망치다가 나무꾼에게 잡혔는데 다음날 나무꾼이 용늪에서 도망쳐온 거리를 재어보니 십리(十里)에서 조금 모자라는 구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족은 들어보았지만 어족(魚足)은 처음 듣는다. 용은 물론 뱀과 물고기 그리고 나보다 먼저 이 길을 지나간 나무꾼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하나 엮으려는데, 길섶의 난초 하나가 맞춤하게 눈으로 들어온다. 많은 동물들의 발길을 용케 피하고 오늘 나의 눈길에 걸려든 그 꽃의 이름은 감자난초.

평생은 아니었지만 한나절이나마 어설픈 나무꾼이었던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그땐 소먹이도 같이했다. 골짜기에 소를 풀어놓고 멱을 감은 뒤 지게 지고 다시 산으로 갈 때 감자 몇 개를 챙겼다. 이른바 ‘감자산꽃’을 하려는 것이다. 개미집처럼 정교하게 땅을 파고 돌을 달군 뒤, 물을 뿌려 그 증기로 칡잎에 싼 감자를 쪄서 먹는 우리들의 산중놀이였다.

감자난초는 땅속으로 두더지처럼 기어가던 뿌리의 일부가 비대해진다. 그 알줄기가 마치 감자 같다고 해서 감자난초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알줄기에서 단도 같은 잎이 1~2장 나오고 꽃대도 꼿꼿하게 뻗어나온다. 감자산꽃할 때 먹은 퍽퍽한 감자맛을 추억하며 올망졸망 달린 꽃들을 쓰다듬어 주었다. 감자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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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