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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박시백 선생의 만화 <조선왕조실록>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만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릴 적 만화를 보는 것은 마치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았다. 내놓고 보기에는 뭔가 좀 애매한 책이었다. 집안의 어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가 만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 경우만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남들도 그랬던 것인지 지금도 모른다.

어른들이 싫어하거나 말거나 나는 만화 보기에 푹 빠진 아이였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는 박재동 선생의 부모님이 하던 만홧가게 ‘문예당’이 있었고, 그곳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사람들은 어떤 유명한 분이 있으면 공연히 자신과 어떤 관계라고 엮는 습성이 있는데, 나 역시 그런 습성을 충만히 가지고 있다. 박재동 선생은 나와 절친한 친구의 형의 친구이다. 좀 복잡하지만 그렇다.

재작년인가, 박시백 선생이 그린 만화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서평을 써 달래서 써 주었더니 연말에 <실록> 간행을 기념하는 자리에 박시백 선생과 박재동 선생,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열렬한 팬임을 고백하는 이희재 선생 등이 모인다고 나에게 오라고 했다.

하지만 일정이 겹쳐 가지 못해 너무나 아쉬웠다. 박재동 선생의 <실크로드 여행기>와 이희재 선생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가지고 가서 사인을 받는 건데 정말 아쉬웠다.

각설하고, 문예당에는 지나간 만화 중에서 아주 좋은 만화를 따로 튼튼하게 묶어 두었다. 나는 그 책들을 보며 오후를 보내곤 했다.

지금도 그때 본 만화 하나는 또록또록하게 기억이 난다. 임창 선생의 <땡이의 사냥일기>던가? 동물의 습성에 대해 소상히 밝히고 있어 재미와 함께 공부도 퍽 되었던 아주 유익한 책이었다. 자연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보다 이 책에서 동물에 대한 유익한 지식을 훨씬 많이 얻었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번지지만, 이희재 선생이 그린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J M 데 바스콘셀로스의 소설 원작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주인공 제제와 뽀르뚜까의 형상은 이희재 선생의 붓끝에서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1994년에 이 책을 사서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2학년이었다)에게 읽으라고 주었다.


며칠 뒤 어딜 갔다가 지하철을 타고 같이 오는데, 아이는 그 책을 읽고 있었다. “아빠, 이 책은 재미있는데, 읽으면 이상하게 절로 눈물이 나요.” 아이는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청년이 되었다. 아마 그 책과 눈물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 터이다. 아쉽게도 2권으로 된 그 책은 없어졌고 뒤에 양장본을 구입해 갖고 있다. <악동이> <아홉살 인생> <간판스타> 등도 구입했는데, 아마 서가 어디에 있을 것이다(<간판스타>의 리얼리즘이야말로 한국 만화의 새로운 경지다!).

대학교수가 만화를 즐겨본다니, 이상하게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나는 만화를 좋아한다. 너무나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짬이 나지 않아서 실컷 보지 못하는 것이 유감일 뿐, 시간만 허락된다면 좋은 만화를 구해서 하루 종일 보고 싶다.

돌이켜보면 좋은 만화가 적지 않았다. 중학교 때 너무나 좋아했던 고우영! <수호지> <삼국지> <서유기> <십팔사략> <일지매> 등 수많은 작품이 있었지만, 나로서는 <수호지>가 단연 으뜸이다. 그것은 아마도 <수호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일 것이다. 근자에는 허영만, 강풀, 윤태호 등의 작품도 한때 꼬박꼬박 읽었다. <미생>은 연재할 때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보았다. <미생>은 암울한 시대의 정직한 풍경이다! 나는 <미생>이 충실한 리얼리즘으로 끝나기를 고대한다.

최근에 읽은 작품으로 가장 묵직했던 것은 조 사코의 작품이었다. 그의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은 이스라엘의 억압, 학살에 의해 일그러지고 분쇄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 좌절의 삶, 기억을 그리고, 불러내고 있다. <안전지대 고라즈데>보다 보스니아 내전을 생생히 전하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최근에 번역된 <저널리즘>에서 그가 전한 인도 쿠시나가르의 불평등한 신분제, 가난에 몰려 죽음 직전에 있는 빈민들의 처참한 생활은, 명상과 신비의 대척점에 있는 인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르포와 만화가 어울린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처럼 미국 자본주의의 황폐함을 고발한 책도 없을 것이다. 아, 물론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말하면서 우리나라 작가 원혜진의 <아! 팔레스타인>을 말하지 않는다면 실례가 될 터이다. 이 책으로 우리도 좁은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얻었다.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스페인의 아나키즘과 스페인 내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아나키스트 안토니오 알타리바! 그는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했다.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자살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주체적 인간의 주체적 판단이다.

어떤 경우 나는 만화에서 쉽지만 깊이 있는 지식을 얻기도 했다. 장 피에르 필리외가 글을 쓰고 시릴 포메스가 그림을 그린 <아랍의 봄>에서 나는 2011년 일어났던 이른바 ‘아랍의 봄’의 이유와 경과에 대한 요령 있는 지식을 얻었다.

체르노빌의 사고를 다룬 <체르노빌>은 어떤가? 이 책만큼 체르노빌의 비극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책이 있을까? <맛의 달인>의 작가 카리야 테츠가 쓰고 슈가 사토가 그린 <일본인과 천황>은 일본 천황제의 역사와 허구성, 천황제가 일본인을 지배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한국 만화의 역사도 이제 짧지 않다. 훌륭한 젊은 만화가도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조 사코의 코믹 저널리즘, 알타리바의 그래픽 노블에 필적하는 작품은 드물지 않나 한다. 앞으로 깊이 있는 좋은 만화가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앞으로 그런 작품을 읽는 안복(眼福)을 충만하게 누렸으면 한다.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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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