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통찰을 빌리자면 도구적 존재로서의 사물은 역설적으로 도구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그 존재의 의미가 드러난다. 도구로서 망치가 정상 기능을 하는 동안 우리의 시선은 망치로 내리치려는 못에 고정돼 있을 뿐이다. 망치가 부러져서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비로소 우리의 시선은 못에서 망가진 망치로 옮겨간다.

최근 압구정동 아파트 경비원 노동자의 분신사건을 보면서 하이데거의 철학적 통찰에 가슴이 섬뜩해졌다. 입주민의 막말에 상처 받은 쉰 넘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도구적 존재로서 노동자가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노동을 멈추는 순간이다. 잔인하고 독해진 세상에서 뼈와 살과 영혼을 가진 인격체로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는 이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지난 9월 말에는 경제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정규직 전환의 약속을 믿고 7번의 쪼개기 계약에 시달리던 한 여성노동자가 계약해지 한달 만에 목을 매 자살했다. 계약해지 시점은 수많은 성희롱 사실을 상부에 보고한 직후였고 기간제 보호법상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2년의 근무기간을 채우기 3일 전이었다. 정규직 전환의 ‘희망고문’에 시달리다 직장으로부터 버려진 25살 가냘픈 해고 노동자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일 방법은 스스로 존재를 멈추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죽은 노동자의 빈자리에 바쳐진 조화가 채 시들기도 전 세상은 그를 다시 한번 우롱했다. 지난달 말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기간제법상 비정규직 사용기한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며 사용자의 온갖 횡포를 견뎌내야 할 희망고문의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것을 쪼개기 계약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평생을 ‘성 소수자’로서 세상과 불화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마지막 안식처였던 어머니를 잃고 난 후 <애도일기>에서 “자신의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으며 세상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하긴 세월호와 같은 미증유의 슬픔을 ‘교통사고’라는 메마른 기호 속에 가두려는 짐승 같은 사회에서 바르트의 슬픔을 거론하는 게 공허할지 모른다.

영화 <카트>의 실제 주인공들인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부의 대책을 반대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와 재계는 그렇다치고 노동운동 진영은 비정규직의 슬픔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내년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직선제로 치러지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나선 4명의 후보는 모두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강조하고 있다. 압구정 아파트 장례식장에 모인 노동운동 지도부는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1970년과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한 2014년은 다르지 않다’며 분노의 목소리도 키우고 있다. 문제는 ‘분노’가 아니라 ‘행동’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포기를 강요당하는 비정규직의 처참한 현실은 정규직에 ‘저항의 동력’보다 ‘공포에 대한 복종’을 강화하고 있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해방’이라는 구호는 이제 기억조차 희미해져가고 박노해 시인의 말대로 “노동착취보다 착취당할 기회를 잃는 것이 더 두려운 세상”이 되었다.

전태일의 삶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재단사’로써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시다’로 불리던 어린 여공들의 삶을 고민하다 분신했다는 것이다. ‘재단사’와 ‘시다’는 지금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불법파업 엄단’ 엄포에 노동계의 총파업이 ‘뻥파업’이 된 지 오래된 지금 전태일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고 했던 비트겐슈타인의 가르침대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무수한 언어는 더 낮아져야 한다. 행동할 수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라.


강진구 정책사회부 노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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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