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는 40대 젊은 여자가 흔치 않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많은 강원도 산골 같은 경우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도 드물고 개 끌고 다니는 사람은 더더욱 흔치 않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젊은 여자가 나타나 개 두 마리를 끌고 다니는가 싶더니 이내 자전거를 타고 개를 끌고 다니는 일이 벌어졌다. 그게 그해 조용한 그 시골마을의 최대 사건이며 구경거리였는지 모른다. 정말이지 모두들 밭일하던 일손을 멈추고 기이한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그 여자’를 바라봤다.

그 이후 우리 동네에서 나는 ‘개 끌고 다니는 여자’로 통하게 됐다. 무슨 체호프 소설의 주인공처럼 여전히 미스터리한 구석이 많은 모양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나라는 여자는…. 개를 데리고 아침저녁으로 마을을 산책한 지 4년이 지났건만 동네 아주머니는 아직도 4년째 같은 질문을 하신다. “근데 개는 왜 끌고 다니는 거래? 덩치가 산만 한 녀석들을…. 고생스럽게 뭐하러…. 게다가 두 마리씩이나…. 내가 당최 알 수가 없어서 말이야.”

경기 용인시 기흥호수공원에 조성된 반려견 놀이터에서 반려견들이 뛰어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런 질문에 처음에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개의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 맨날 끈에 묶여 있으면 답답하고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다행히 저도 산책을 좋아하고 개들도 좋아하니 같이 다니면 좋잖아요?”

그런 생각으로 아침저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마감이나 숙취로 몸과 마음이 괴로운 날이라도 개와 함께 산책하는 일을 웬만해서는 거르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우리 개들이 바뀌었다. 길에서 만나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공격적으로 짖어대던 녀석들이 이제는 누구를 만나든 해맑게 웃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덕분에 요즘은 교대로 한 마리씩 풀어서 다니기에 이렇게 답변할 수 있게 됐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행복해서요. 개도 좋아하고, 걷는 것도 좋아해서 둘 다 같이 하니까 너무 좋아요.”

말하자면 나는 이른바 개를 사랑하는 애견인이다. 요즘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서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문제의 애견인.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은 개의 문제라기보다는 반려인들의 문제라는 걸. 한마디로 개통령이라고 불리는 사람 말이 맞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나쁘거나 생각이 짧은, 혹은 이기적이거나 게으른 견주가 있을 뿐.”

고백하자면 나의 개도 무는 개였다. 갈색개 나무와 검정개 개울이 중에서 더 소심하고 더 겁이 많은 개울이가 사람을 두 번이나 물었다. 한 번은 택배 아저씨를 물었고 한 번은 세탁 세제를 팔러 온 방문판매원을 물었다. 그때 남편은 매정하게 사람 무는 개는 안된다며 안락사를 고민했고, 나는 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울면서 사죄하고 만류했다.

그랬던 녀석이 지금은 얼마나 온순해졌는지 모른다. 심지어 이젠 맨날 보는 가족보다 새로운 얼굴의 손님을 더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 집을 찾아오는 낯선 사람들과 잘 지낸다. 잘 모르는 자동차와 함께 손님이 도착하면 집으로 손님을 안내하고 고기를 굽거나 마당에서 공놀이하는 이들의 발치에 누워 있다가 함께 산책을 나간다. 처음엔 개가 무서워 자동차에서 내리기를 주저하던 아이들도 이내 개의 친구가 되어 단짝 친구인 듯 함께 놀다가 집에 돌아갈 때 개울이와 나무에게 편지를 써 놓고 갈 정도다. 개 때문에 집에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들도 있는가 하면 개 때문에 부모를 졸라 다시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으니 홍보와 영업을 겸한 중독적인 매력의 ‘개부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나는 우리 개들을 이른바 학교에 보낸 일이 없다. 훈련사에게 특별 과외를 시키지도 않았다. 다만 집 안에 갇혀 살면서 인간의 방식과 규율만을 강요받는 현대의 개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키웠다. 개울이와 나무는 늑대의 후예다운 그들의 본성이나 행동방식을 충분히 존중받으며 컸다. 개의 마음으로 판단하건대 하루에 두 번, 세 번 산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야생에서 끈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줬고 그 때문에 마음고생이 크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둘 중 한 마리를 교대로 풀어 키울 수 있게 됐다.

물론 그 이후로도 산책은 계속됐고 사랑한다는 확신 아래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자주 웃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때로는 울면서 걱정이나 슬픔을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개와 인간이 가족의 일원으로서 함께하는 삶의 행복감과 위안을 귀히 여겼고 그 행복감을 기꺼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두려움 없이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모든 것이 저절로 좋아졌다. 물론 시골이기에 가능했지만 시골이라도 개를 대부분 묶어 키운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환경보다는 네 발 달린 짐승답게 움직이고 뛰고 싶은 개의 본성과 욕구를 존중하는 마음과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개와 인간이 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하는 책 <당신의 몸짓은 개에게 무엇을 말하는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개에겐 운동이 필요하다. (중략) 내가 보아 온 수많은 개의 행동상의 문제들이 권태로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개들을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게 하면서 동시에 더 많이 돌봐 줄 때 더 심각해지는 문제다.” 그게 바로 아파트에 살며 오늘날 회자되는 그런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 그 프렌치불독과 진돗개가 가진 문제의 본질 아니었을까 싶다.

<김경 칼럼니스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