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자신의 장점이 남의 말을 잘 아는 것이라고 했다. 말은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지만, 말이 그대로 그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음을 우리는 안다. 말을 아는 것 자체보다,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을 아는 것이 관건이다. 맹자가 경계한 네 가지의 말은, 편견에 치우쳐서 객관성을 잃은 말, 무언가에 지나치게 빠져들어서 절제하지 못하는 말, 못된 마음을 품어서 도리에 어긋나는 말, 찜찜한 구석이 있어서 본질을 회피하려는 말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옳음과 틀림, 진정과 거짓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맞으면 저건 틀리고, 어떤 말에 진정성이 있으면 거짓이 아니라는 식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것과 저것 모두 맞을 수도 있고, 진정성만 있으면 맞고 틀리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현상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런 추세를 가장 잘 이용하는 이들이 정치인들이다. 민생, 복지, 경제 민주화. 참 좋은 말들이다. 그런데 지향에 맞는 정책인지 따져 볼 겨를도 없이 자체 정합성마저 의심되는 말들이 진정성의 탈을 쓰고 호소된다. 겨냥했던 실체가 수시로 모양을 바꾸는 가운데, 이전의 기준과 방식으로 지적하고 비판하는 일은 점차 무력해진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철학자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짧지만 묵직한 통찰을 던지는 글이다. ‘개소리’는 터무니없는 허튼소리 정도의 의미다. 의도적인 거짓말의 경우 거짓임을 증명할 방법이 있고 책임도 요구할 수 있는 데 반해서, 신념에 가까운 ‘진정성’을 내건 개소리는 객관적인 분석으로 거짓을 입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애초에 ‘아님 말고’ 식의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상대하기 더 난감하다. 치밀하게 꿰맞춘 거짓말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의도를 감추고 떠벌리는 개소리다.

맹자가 경계한 네 가지 말 역시 의도적인 거짓말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진정성이 있든 없든 간에, 그런 말을 내뱉는 이들이 정치에 참여해서 중요한 결정들을 내릴 때 많은 이들에게 치명적인 해로움을 끼치기 때문에 잘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정치권력을 쥔 이들의 진정성을 문제 삼고 거짓말을 입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연일 양산하고 있는 개소리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새로운 지혜와 전략이 절실하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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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