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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같았다. 끝날 줄 모르던 폭염에 감기를 견디며 빌빌대는데 문득 가을이 와 있었고, 회복됐다. 하나 추석 당일 재차 감기에 걸려 일주일을 흐느적댔다. 핑계를 구한 몽롱한 몸은 연휴 내내 TV와 지냈다. 무료 영화를 찾아 160개가 넘는 채널을 돌리는 족족 <집밥 백선생>과 <백종원의 3대천왕>과 <삼시세끼>와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먹방 프로그램이 무한 재방송 중이었다. 두 눈은 보면서 맛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식욕은 몸살로 무감각한, ‘심신분열의 거짓말’ 같은 상태였다. 이렇게 두세 시간을 멍해지다가 뉴스로 눈길을 돌리면 거짓말처럼 수십 년간 똑같은 추석 풍경이 화면에 있었다. 텅 빈 서울, 꽉 막힌 고속도로, 늙은 부모와 시골, 선물 꾸러미와 어린 자식을 양손에 끼고 환하게 웃는 가족이 거기 있었다.

거짓말 같았다. 한반도의 올해 여름은 1973년 관측 이래 최고의 기온과 최장의 폭염 일수를 남기고 물러났다. 4월 미 항공우주국의 발표대로 올해는 인류의 관측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가 됐고 내년이면 다시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이다. 거짓말처럼 가을이 왔으나 추석을 앞두고 남쪽엔 지진이 일어났다. 관측 이래 최대 규모인 5.8의 경주 지진을 전한 9월12일 속보 이후에도 일주일간 총 409회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뒤늦게 보도됐다. 역시 늦게 전해졌지만 북쪽은 8월 말부터 겪은 10호 태풍 라이언록의 영향으로 533명의 사망·실종자와 11만80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며 ‘해방 후 처음인 대재앙’을 공개했다.

무엇이 거짓말일까. 기록적인 폭염 뒤의 달콤한 추석 연휴가 누구에게나 있었던 것일까. 폭염 직후의 지진과 태풍은 연휴를 마무리할 무렵에나 삽입된 저들의 불행이었던 것일까. 누군가 이 지경을 두고 하늘이, 땅이, 바다가 진노했다고 한탄한다면 미쳤다고 해야 할까. 옛날이라면 벌써 제를 지냈을 것이고 왕은 속죄하고 백성은 기도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을 때 민은 난을 일으켰고 왕은 변을 겪었다고 역사를 썼다. 극심한 가뭄에도 인디언의 제사가 통했던 까닭이 비가 내릴 때까지 속죄하고 기도하길 계속했기 때문이라는 전근대의 방식이 과연 근대 정부를 가진 우리의 방식보다 비과학적이거나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이 거짓말일까. 천재와 인재를 분별하는 근대 이후의 우리는 재난 일체에 대해 “나만 아니면 돼” 하는 무심한 시청자로 동일하다. 이런 자세로 남북의 스타일 차이를 쳐다볼 뿐이다. 북한 방식은 세계에 긴급지원을 요청하면서도 삽과 곡괭이와 맨손의 인민군이 붉은 깃발 아래 일사불란한 ‘피해복구 전투’에 임하는 사진 배포와 “김정은 동지가 보내주신 유압식 굴착기가 도착했다”는 TV 방영이다. 북쪽보다 훨씬 복잡한 남쪽은 다를까. 폭염에는 전기요금 ‘폭탄’ 논란과 한전의 막대한 흑자, 에어컨 판매 300만대 육박과 관련 주식 상승이라는 방식이다. 경주 지진에는 밀양 송전탑 사건 때 그랬고 성주 사드 배치 갈등에서 반복하듯 타 지역의 관망과 해당 지역의 반발을 나누어 ‘민생과 동떨어진 여야 정치권 대립’ 뉴스처럼 소비하는 방식이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 민족대명절에 민족대이동을 거쳐 상봉한 ‘정상가족’은 수십 년간 번번이 화기애애했던 것일까. 아니면 수시로 ‘분노대방출’의 일촉즉발을 간신히 틀어막고 뿔뿔이 흩어졌던 것일까. 이번에도 밥은 누가 짓고 전은 누가 부치고 설거지는 누가 했을까. 성적을 묻고 취직을 묻고 결혼을 묻고 출산을 묻는 일은 누가 했을까. 화투를 치고 술에 취하고 막말을 한 자는 누구였을까. 폭염엔 에어컨을 켜면 되고 지진은 경주와 경남일 뿐이고 태풍은 남쪽을 비켜갔으니 ‘한가위만 같아라’ 하고 방송 진행자처럼 웃는 자는 누구일까. 세월호와 메르스와 옥시의 희생자와 남은 가족에게는, 실업자와 취준생을 오가는 청년과 결혼 및 출산을 유보한 1인가구에게는 ‘똑같은 한가위’란 이미 없는데 나는 누구였을까.

에어컨과 전기요금과 원자력발전소는 결과가 아니라 폭염과 지진과 태풍의 더 큰 원인으로 줄줄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민주주의와 경제정의에 실패해서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대재난의 결과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외면하고도 밀양과 성주와 경주가 아닌 여기에서 내 가족이 무탈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 소박한 거짓말이야말로 당대 최고의 거짓말이다. 그것도 내가 날마다 하는 거짓말이었다.

추석이 있었나 싶게 몽롱·나른했던 감기 몸살기의 연휴 넋두리를 마무리하자. 연휴가 끝나자 바로 회복된 나에게 “당신은 연휴 때만 아프더라” 하는 아내에게 사과하면서 대한민국의 남성 가부장 중년의 어떤 혼합체로 별일 없다는 듯 사는 나에게 그리고 북한의 연속적인 핵 도발과 대통령이 콕 집어 말한 ‘불순분자’에 대해 이제부턴 정신 차리고 살겠다는 뜻에서 옹알거리기만 했던 말을 여기 쓴다. 거짓말이야!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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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