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급 시각장애 아버지 이온업(48) 씨가

일급 정신지체장애 아들 이기독(20) 군의 허리를

끈으로 동여매고 걷는다

넘어질 때면 무거운 머리부터 넘어지곤 하는 아들을

너펄너펄 걷게 하는 건

등뒤에서 아버지가 붙잡고 걷는 끈이다

새벽 우유배달하는 아버지는 새벽이라서 어둡고

지하방에 누워 있는 아들을 씻기고 먹이는 아버지는

지하라서 어둡지만

담벼락 밑 낮은 패랭이는 알고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이 끈에 묶여 걷는 까닭

아들이 툭툭 패랭이꽃을 더욱 멍들게 하는 까닭

아버지 신발 뒤축이 담벼락 쪽으로 닳아가는 까닭

걷는 게 온통 업(業)이고

걷는 게 기독(基督)이라는 걸

뱃속을 나와서도 끊지 못하는

질긴 탯줄이라는 걸

 

업이 기독을 앞세우고 걷는다

넘어진 꽃이 눈먼 뿌리를 뒤세우고 걷는다 - 정끝별(1964~ )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두 장애인에게 한 걸음은 얼마나 간절하고 아득한 거리인가. 이급 시각장애 아버지의 다리와 일급 정신지체장애 아들의 눈이 한 몸이 되어야 한 걸음이 생겨나지 않는가. 눈이 있어도 넘어지는 아들은 아버지의 발이 받쳐주고, 앞 못 보는 아버지에게는 아들의 성한 눈이 길이 되어주지 않는가. 한 걸음에 바치는 이 지극한 정성에는 건강한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생명의 운동이 보인다.

불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지금 겪는 괴로움은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서 온 필연적인 결과다. 그것을 업(業)이라 한다. 그 괴로움을 감당하고 선한 마음으로 좋은 일을 쌓아야 다음에 올 괴로움을 덜 수 있다.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진 거룩한 희생과 사랑의 가르침이다. 두 장애인의 걸음은 그 업과 죄를 온몸으로 받아 고행하고 속죄하는 수행 같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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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