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 꽂힌 뒤로 무엇이든 꽃과 나무로 엮으려는 심사가 발동했으니, 열화당에서 마련한 <매화와 붓꽃>전에 가서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올해 50주기의 근원 김용준과 올해 초 타계한 존 버거의 공통점은 적지 않으니, 시공을 달리한 두 예술가가 식물을 보는 눈이 범상치 않았다는 것도 추가할 수 있으리라. 작게 소리내어 읽으면 달그락거리는 문장들과 손가락으로 허벅지에 따라 그려보는 고아한 그림들. 진달래, 수선화, 노시(老枾) 등의 이름을 필기하다가 한쪽에서 상영되는 다큐를 보았다. 연초에 본 인상 깊은 사진집, <존 버거의 초상>에서 만난 그 사진이 혹 있을까. 안개 낀 눈길에서 출판사 편집자 출신의 아내와 그 뒤를 따르는 존 버거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있었다! “존 버거의 장례식 풍경과 추모의 글”의 중간쯤에 그 사진이 나오는 게 아닌가. 이런 설명문이 붙었다. “1976년 새해맞이 장식물로 쓸 겨우살이를 든 베벌리와 클루아제 농장을 산책하는 존.”

겨우살이는 멀리서 보아도 특징이 확 드러난다. 몽블랑에는 물론 우리나라에도 많다. 잎이 떨어져 헐거워진 산에서 특히 잘 보이는 겨우살이는 그 모양만큼이나 생활사도 독특하다. 얼핏 보면 꼭 새의 둥지 같은 겨우살이는 독립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나무에 더부살이로 기생한다. 그간의 산행에서 자주 보았지만 가장 인상 깊게 본 건 어느 해 어머니 모시고 벌초하러 고향 가는 길에 무주의 적상산에서 본 것이다.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갔더니 정상에 발전소, 안국사, 사고(史庫) 유적지가 있었다. 덕유산 국립공원의 일원으로 함부로 훼손되지 않아 참으로 풍성한 겨우살이를 실컷 보았더랬다. 어머니는 단풍에, 나는 겨우살이에 푹 빠졌던 선명한 기억.

전시장을 나와 지난날을 더듬는데 겨우살이가 막걸리집까지 따라왔다. 나무에 기대고 새의 몸을 빌려 종자를 퍼뜨리는 겨우살이야. 어쩌면 겨우 존재하는 것들을 상징이라도 하는 듯한 겨우살이야. 네 덕분으로 어느 소박한 전시회의 후기로 작년에 나무 밑으로 돌아가신 내 어머니도 등장하는 이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었구나. 겨우살이, 단향과의 상록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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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