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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연휴를 앞두고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가 한국에도 상륙했다. 지난해 여름 출시된 후 한국에서는 속초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가능했던 게임을 전국 어디서나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거리의 풍경이 달라졌다. 연휴 첫날 동대문에서 약속을 잡았다. 1차가 끝나고 나니 주변에 갈 곳이 없었다. 날이 날이니만큼 택시도 안 잡혔다. 20분 가까이 걸어 종로3가까지 갔다. 꽤 추운 날이었다. 일행들의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 다들 조용했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긴 이동 시간 동안 포켓몬 사냥에 여념이 없었던 거다. 시내 중심가다보니 포켓몬도 꽤 많았나 보다.

내가 사는 홍대 앞도 다르지 않았다.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니 포켓몬도, 포켓스탑도, 체육관도 즐비하다. (용어설명은 생략한다.) 내 방에서도 두어마리쯤 잡았다. 연휴 기간 내내 액정을 보며 손가락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다가 멈춰 포켓몬을 잡거나 근처 포켓스탑으로 이동하는 이들이었다. 평소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집 앞 동네 슈퍼 근처에는 새벽에도 빛나는 액정들이 반딧불 군락처럼 반짝였다. 그 슈퍼가 체육관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게임을 시작한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밤에 약속이 끝나고 귀가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몇 갑절은 걸렸다.

나를 포함, 평소 게임은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포켓몬고에 몰두하게 된 걸까. 이미 많은 분석들이 있었다. 어릴 때 포켓몬을 보고 자란 세대가 어른이 된 후 그 시절 감정이입했던 경험을 게임으로 녹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게임들에 비해 직접 행동으로 얻는 성취감이 높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캐릭터들이 귀엽고 친근한 덕에 신규 사용자들의 호기심을 이끈다는 이야기 또한 있다. 이런 분석들에 하나를 더하자면, 결국 증강현실을 통해 경험의 영역을 확장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기술 시대 이후 인류는 그 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는 경험들을 해왔다. 인쇄술의 보급으로 누구나 책을 접하게 됐고, 기차의 등장으로 장거리 여행이 가능해졌다. 영화의 출현으로 회화의 시대엔 불가능했던 시각적 경험이 확장됐다. 녹음 기술과 음반의 발명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누구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PC의 대중화를 거쳐 모바일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네트워크를 통한 간접경험의 세계 안에 있다. 그런데 간접경험은 직접경험과 다르다. 전자가 액정과 이어폰을 통해 언제든 접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후자는 특정한 곳에 가서 모든 감각기관을 활용해야 체험할 수 있는 세계다.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를 가장 쉽게 받을 수 있는 콘텐츠가 음식인 이유가 그렇다. 보고 듣고 읽는 건 누구나 동시에 확인 가능하지만, 맛이란 직접 먹어봐야 알 수 있다. 추천하고 싶은 음악을 아무리 정성스러운 문장으로 올려봤자, 대충 찍어서 올린 맛집 사진보다 반응이 한참 못 미치는 이유다. 라디오의 전성 시대에 친구들의 아침 대화가 “야, 어제 <별밤>에서 무슨 노래 들었냐?”로 시작했던 건, 그때는 음악이 그런 직접 경험의 영역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좀처럼 보기 힘든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 티켓을 오픈할 때마다 서버가 터져나가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단순히 ‘듣는’ 음악보다는 시간과 돈을 할애해야 ‘경험’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한 욕구가 대중을 지배하는 것이다.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의 가치란 마치 공기와 같아지는 법이다.

포켓몬고를 경험 확장의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다른 게임들과 달리 포켓몬고는 언제 어디에서 하든 상관없는 게임이 아니다. 일상의 공간과 익숙한 거리가 몬스터 사냥터가 되고 특정한 곳에 직접 가야 전설의 포켓몬을 잡을 수 있다. 네트워크 속 액정의 세계를 네트워크 밖 현실의 세계와 연결시킨다. 영화 <매트릭스>를 응용하자면 빨간 약을 먹어야 파란 약 또한 섭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육체적 경험이 주는 만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임을, 거리의 포켓몬을 잡으며 새삼 확인한다. 다음 세대의 콘텐츠를 고민하는 이라면 함께 포켓 마스터를 꿈꾸며 손시림을 무릅써보자. 음악이건, 영상이건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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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