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 동안 나로서는 퍽 간곡한 일들이 차례차례 벌어졌다. 잠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그믐밤에는 벗들에게 짧은 인사를 띄웠다. “설날이 이제 몇 번 남았겠나요. 아껴서 대접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면서…떡국!” 무술년 새해 아침, 모처럼 엉덩이를 높이면서 절을 한 뒤 둥그렇게 둘러앉아 음복을 하고 동그란 떡국과 함께 또 한 살을 먹었다. 모든 건 이렇게 둥글게 맞물리면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인가. 소임을 마친 제기들이 선반으로 올라가듯 언젠가는 나 또한 병풍 뒤로 돌아가겠지.

기름진 음식에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집 안에서 뒹구는 쪽을 택했다. 뱃살처럼 축 늘어진 의자에서 발이나 꼼지락거리면서 우리 선수가 금메달 따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스켈레톤(skeleton)이란 종목의 명칭은 해골이나 뼈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몇 번의 하품 끝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부푼 배를 안고 낮잠을 잤다. 다음날 춘천 나들이하는 길에 기지개를 켜고 있을 멀리 천마산에게는 눈인사로 안부를 전했다.

마지막 휴일에는 안산-인왕산에 오르기로 했다. 행장을 꾸리면서 <설특집, 나의 살던 고향은>을 잠깐 보게 되었다. 고향의 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하던 주인공이 이런 말을 했다. “농사일을 하다 고무신에 흙이 들어가면 밭으로 되돌아와서 흙을 텁니다. 어머니가 디뎠던 흙, 어머니가 만졌던 흙을 대하면 어머니 볼을 비비는 것 같아요….” 호미로 두둑을 팔 때마다 흙의 스켈레톤처럼 누워 있는 고구마. 저녁 메뉴로 고구마를 삶아달라고 부탁하고 집을 나섰다.

고구마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제법 있다. 제사 음식을 마련하는 어머니 곁에서 슬쩍 챙겨 먹던 고구마전이 아닌가. 몇 해 전 경향신문에서 본 ‘100년 만에 피는 고구마꽃 보셨나요?’라는 기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무악재 위의 육교로 감자와 고구마처럼 사이좋게 연결된 안산과 인왕산을 돌아다녔다. 스프링처럼 통통 튀는 참새들이 봄기운을 물어다 주고 있었다. 막걸리 한잔 하고 귀가한 저녁. 명절 끝의 기름진 혀를 닦아내기엔 고구마가 안성맞춤이었다. 동김치 국물로 막힌 목구멍을 뚫어가며 맛있게 먹은 고구마. 목이 조금 메었던가. 고구마, 메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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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