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분노하고 있었다. 회사가 내게 이럴 수는 없다고 외치다 끝내 눈물을 쏟았다. 경력으로 들어와 16년을 일했다. 출산휴가가 끝난 직후에도 새벽 1~2시까지 일했다. 프로젝트마다 성과도 좋았고, 나름 능력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직원인 김모씨(45)의 이야기다.

지난 1월 인사과는 그녀에게 “3월까지 퇴직하면 1년치 연봉을 챙겨주겠다”며 “그러지 않으면 재교육을 통해 재배치를 받게 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녀는 전산분야의 프로그램 컨설턴트였다. 말이 재교육에 재배치일 뿐 24시간 3교대로 서버를 관리해야 하는 한직으로 밀려날 게 뻔했다. 무조건 나가라는 얘기였다. 그녀는 노조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성실한 근로자’였다. 그녀는 “내가 왜 나가야 하느냐. 진짜 무능한 사람은 따로 있다”고 버텼다. 그러자 팀장이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당신이 안 나가면 내가 아주 곤란해져. 사실 나도 어쩔지 몰라. 연말까지 또 정리해고가 있을 거야. 나는 애가 셋인데….”

어느 날 아침 회사로부터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말을 듣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상을 했든, 하지 않았든 그 충격의 강도는 별 차이가 없다. 눈앞은 까매지고 머릿속은 하얘진다. 만약 가장이라면 아이들의, 아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갈지도 모른다. 미혼자도 마찬가지다. 어디 기댈 사람도 없는데, 무얼 해야 할지 막막하다.

정부에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구조개혁을 해달라고 했더니 옳거니 하면서 ‘노동개악’을 들고나왔다. 저성과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기간제 근무자는 근무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되면 기업의 부담이 줄어들어 취업이 더 잘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해고, 그까짓 것은 좀 견디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노동자·서민 살리기 범국민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있다._경향DB

공무원들의 의도가 악의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칼자루를 쥔 사람들이 해고의 위협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공무원의 가장 큰 고민은 승진이다. 회사가 어려워져서 망한다는 개념도 없다. 임금이 연체되는 불안감도 모른다. 국가부도 사태만 아니라면 말이다.

쉬운 해고를 추진할 묘안은 있다. 퇴직 후 사회보장을 충분히 해주면 된다. 하지만 올해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월 34만원에 불과하다. 보험료를 적게 낸 탓도 있지만 더 받기도 쉽지 않다. 20~30년 장기근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재정지원도 없다. 반면 공무원연금 평균 수령액은 월 240만원이다. 평소 일반인보다 조금 더 떼이지만 훨씬 많이 받는 구조다. 지난해에만 2조9000억원의 혈세가 지원됐다.

고용이 보장되고 연금제도가 잘 갖춰진 공무원들에게 맡기는 노동개혁은 그래서 한계가 있다. 한국은 북유럽처럼 2년에 걸쳐 실업급여가 나오는 구조도 아니다. 50세 미만이라면 최장 7개월 지급되고, 그나마 월 120만원가량이 상한이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실업급여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인식이 그런 수준이다.

지난해 정부는 공무원 임금을 평균 3.8%나 올렸다. 공무원이 임금을 올려야 민간기업도 올린다는 논리를 폈다. 같은 의미로 ‘쉬운 해고’도 공무원부터 먼저 도입해보는 것은 어떨까. 야당도 반대하고 노조도 반대하는 ‘쉬운 해고법’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공무원부터 파격적으로 도입을 해보자는 것이다. 먼저 담당부처인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부터 시범도입하면 되겠다. 공무원의 신분보장은 법률로 정해져 있다지만 두 부처 공무원들이 동의하면 법은 얼마든지 개정이 가능하다. 그 정도의 의지가 없다면 국민들에게 쉬운 해고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다. 그게 공무원만 모르고 있는 냉혹한 현실이다.


박병률 |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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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