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공천과정이 시끄러운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시간은 많이 지체됐다. 3월 초면 선거 대진표가 나와야 하는데 공천 규칙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0여일 안에 모든 공천이 마무리돼야 하는 상황이다. 유권자들은 후보검증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투표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공천과정에서의 혼란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인데 이번에는 정도가 더 심하다. 물론 선거과정에서 혼란과 소란은 정치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는 공천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기도 하다. 권위정부 시기 여당의 공천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됐고, 야당의 경우는 분란이 없지 않았지만 ‘제왕적 총재’의 권위와 영향력에 의존해 공천이 진행됐다. ‘위로부터의 공천’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같았다. 정당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상황이 바뀌었고, 공천권을 당원 및 유권자들에게 돌려준다는 원칙이 점차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 원칙의 실현이 간단치 않다. 백가쟁명식 방안들이 제출됐지만 만족할 만한 방안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내의 컷오프와 전략공천을 둘러싼 논란은 정무적 혹은 전략적 판단이 공천에 얼마만큼 영향을 행사해야 하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공천 논란은 대부분 이 두 쟁점을 둘러싼 것이었다.

문제의 근원은 아래로부터의 공천이 제대로 작동하기에는 당원과 유권자들의 참여가 너무 저조하다는 데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진행되는 경선은 소수의 적극적 지지층을 동원하는 세력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어 다른 세력들의 불만을 사고, 유권자 다수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원칙을 포기할 수는 없다. 다소의 문제와 불만이 있더라도 당원과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공천과정에 반영되는 원칙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정당의 민주화와 정치발전의 장기적 방향이다. 이를 위해 최소한 경선규칙은 미리 확정돼야 한다. 미국 민주당의 샌더스 열풍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프라이머리나 당원투표라는 과정이 없었으면 출현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특히 그가 승리한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저녁 늦게까지 줄을 서가며 투표했던 유권자들이 미국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었다. 우리 경우에는 참여경선은 아예 포기하고 여론조사로 경선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 제도적이고 절차적인 면에서 각 정당은 이미 낙제점을 받았다. 선거결과에 관계없이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이다.

더민주전략공천1호양향자출마회견_연합뉴스

전략적 판단이 공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서 발생한다. 아래로부터의 공천이 가지고 있는 결함을 정치적 행위로 보완할 수밖에 없다. 정치신인의 발탁, 전략적 지역에서의 승리, 당의 정체성 강화 등이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주요 내용들이다. 이 점에서 시스템 공천만을 강조한 더민주의 혁신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리가 있다. 계파 갈등에 대한 우려를 피하기 위한 고충이 있기는 했지만 이는 정치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축소시킨다. 시스템 공천도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만들어진 절차 자체가 특정 계파에 유리하다는 논란이 제기된다. 합의된 수준 내에서 전략적 판단이 작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왕적 총재나 살생부와 같은 괴담이 판치는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의 부족한 점을 리더십으로 보완해야 하고, 논란과 갈등이 불가피하지만 이를 통해 리더십을 평가받으면 된다. 이도 선거의 중요한 기능이다. 주요 정당들의 공천에 전략적 판단의 영향이 커지고 있는 것은 객관적 원인이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 사적이거나 계파 이익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지지층의 열망을 반영하며 대국을 위해 결단하는가이다.

본격적으로 선거국면으로 들어가면서 공천이 유권자들의 이목을 모으고 있고, 주요 정당들이 다른 영역의 경쟁에서 큰 차별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공천의 적절성에 대한 유권자들의 판단이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몇몇 지역의 공천이 지금까지의 유리한 흐름을 불리하게 또는 불리한 흐름을 유리하게 뒤바꿀 수도 있다. 이 점에서 각 정당들은 비슷한 출발선에 서 있다. 유권자들도 공천과정에서의 논란을 무조건 백안시할 것이 아니라 이를 즐기고 그 속에서 드러나거나 감추어져 있는 정치성을 투표의 주요 기준으로 삼을 일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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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