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저마다의 분주함의 무게에 짓눌려 살고 있다. 쫓기듯 밥을 먹고 허둥지둥 회사에 가서 각자에게 주어진 그 많은 일을 한다. 그러다 문득 궁지에 몰리기도 한다. 그래도 숨을 곳이 전혀 없다고 느낀다. 의문도 든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토록 실속 없이 바쁘게…, 무의미하게….”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없고 가슴만 답답하다. 그래도 꾸역꾸역 밥을 먹고 일을 한다, 미련하게…. 산다는 게 이렇게 지긋지긋한 것인가 하는 절망감에 몸서리치다가 삶을 막 대하고 싶은 ‘나쁜 생각’마저 하게 된다.

“에라, 이놈의 미련한 몸 교통사고라도 좀 나라. 그러면 병원에 실려 갈 테고, 그러면 한동안 맘 편히 쉴 수 있지 않겠나?” 뭐 그런…. 하지만 교통사고라는 ‘불운’도 아무에게나 생기는 일이 아니어서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쳇바퀴를 굴리기 마련이다.

혹시 그 때문일까? 어떤 이들은 그러다 문득 덜컥 공황장애라는 병에 걸린다. 남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인데 본인만 혼자 어떤 상황 속에서 당장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 숨막힘, 어지럼, 식은땀, 가슴 두근거림, 혹은 땅 밑으로 꺼질 것 같은 무기력 등을 호소하는 증상. 내가 경험한바 공황장애는 일종의 교통사고다. 정확히 정신적 교통사고로 인한 불안과 공포 후유증이 마치 ‘장애’인 것처럼 계속되는 현상.

복잡한 도심을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이 예기치 않게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을 안고 있듯 현대인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공포와 두려움, 무기력에 휩싸이는 공황장애는 흔한 병이 돼 버렸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의 저자 이명수씨는 시 읽기를 통한 마음의 치유를 제안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런데 그런 장애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해’처럼 흔한 질병이 돼 버렸다. 어느새, 공황장애 10만명 시대가 열렸다. 연평균 15.8%씩 증가해서 2015년 한 해 동안 공황장애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10만명을 넘어섰는데 그중 절반 가까이가 일에 대한 중압감과 스트레스가 가장 큰 40~50대였다고 한다. 특히 40대 같은 경우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공황장애라니 문득 놀라웠다.

내가 아는 한 40대는 인생의 최절정기이다. 이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한 자리씩 차지한 채 일의 숙련도 면에서 무르익는 시기다. 그런데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 이런저런 병에 걸릴 확률이 가장 큰 세대이기도 하다. 왜 일까? 혹시 전 세계가 깜짝 놀랄 만큼 최장 시간 일하면서도 생산성은 낮고, 20대에게 미안할 만큼 월급은 높은데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은 낮기 때문일까? 여하튼 우리 사회의 중추라 할 수 있는 40대가 아프다. 치료하기 힘든 정신적 불치병을 앓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그토록 흔한 공황장애 환자에게 권하고 싶은 재미난 책을 발견했다. 마음 치유자 정혜신의 ‘영감’에 ‘힘’입어 심리기획자 이명수가 쓴 책 <내 마음이 지옥일 때>. 잠깐 읽었는데 대번에 이런 느낌을 받았다. “공황장애면 뭐 어때? 그냥 당신의 몸과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당신의 속도대로 가라는 신호에 불과한데. 그 신호를 따라 가다보면 ‘마음의 지옥’을 벗어나게 되니 되레 ‘축복’일 수도 있고. 물론 ‘부작용 없는 치유제’로서 시 읽기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야.”

제목과 달리 그 내용이 그다지 묵직하거나 암울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방점은 놀랍게도 ‘재미’에 있었다. 한마디로 ‘시’를 좋아하는 심리학자가 시로써 ‘마음이 지옥’인 이들에게 치유적 메시지를 전한다는 의도의 책인데, 제 멋대로, 혹은 제 마음대로 시를 읽고 해석하는 심리학자의 글이 그가 꼽은 참신한 시와 함께 읽기가 매우 즐거웠다.

예컨대 ‘왼쪽으로 기운 것은 오토바이가 아니라 나의 생이야. (중략) 몸이 기운 쪽이 내 중심이야. 기울지 않으면 중심도 없어’라는 이원 시인의 시 ‘영웅’에 저자 이명수는 맞장구치듯 이렇게 대꾸한다.

“(암 그렇고 말고요.) 자전거 처음 배울 때처럼 기우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넘어지지 않잖아요.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으라니 그러면 금방 잘못될 것 같지만 안 그렇잖아요.”

그건 바로 내가 선배로서 공황장애 환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그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너무 오랫동안 쫓기듯 허둥대며 일해서 그래요. 그만 내려와서 당신의 몸과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당신의 속도대로 천천히 가세요. 산다는 게 어차피 죽음을 향해 가는 일인데 좀 천천히 가면 어때요? 그게 옳지, 안 그래요?”

산다는 게 어떻게 지겨운 일이 될 수 있겠는가? 무서운 일도 아니다. 이렇게 멋진 시도 읽을 수 있는데….

‘웃음과 울음이 같은 音이란 걸 어둠과 빛이/ 다른 色이 아니란 걸 알고 난 뒤/ 내 音色이 달라졌다// 빛이란 이따금 어둠을 지불해야 쐴 수 있다는 생각’(천양희 ‘생각이 달라졌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나는 앞발로 툭툭 쳐보며 굴려보며/ 베란다 철창에 쪼그려앉아 햇빛을 쪼이는데// 지옥은 참 작기도 하지’(이윤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산다는 건 크고 작은 ‘마음의 지옥’을 경험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된다. “자기가 열쇠를 가지고 있는데 스스로 수갑을 채워놓고 불편하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 많은 경우 지옥은 사라진다”는 걸. 하나하나 너무도 귀하게 읽히는 82편의 시와 함께 저자 이명수가 다다른 그런 깨달음에 이른다면 그건 분명 산다는 것의 축복이며 독서의 환희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김경 칼럼니스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통령 힐링 시대  (0) 2017.05.19
투표 안 한다는 당신에게  (0) 2017.04.21
공황장애와 시 테라피  (0) 2017.03.24
‘휘게’를 품은 강원도  (0) 2017.02.24
굿바이 박통  (0) 2016.12.29
배신의 아이콘, 밥 딜런  (0) 2016.12.1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