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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은 하나같이 꼿꼿하고 늠름하게 언덕을 지킨다. 허리가 굽은 할망구 나무도 지친 기색이라곤 하나 없다. 모르지, 내가 잠들 때 몰래 뒤따라 눕는지도. 벚꽃나무는 봄눈을 뿌려 아가의 첫걸음마를 반기고 동백나무는 붉은 외등을 종일토록 켜두어 할매들 마실 길을 살펴준다. 새들이 언 발을 녹이던 가지엔 어김없이 꽃망울이 맺혔구나. 나무에게도 따뜻한 부위가 있는데 그곳부터 먼저 꽃소식이 달린다. “앞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거나. 짐 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 왔네. 연분홍 꽃다발 한 아름 안고서 물 건너 우련한 빛을, 우련한 빛을 강마을에 내리누나….” 따라 불러보는 가곡 ‘강 건너 봄이 오듯’. 섬진강, 영산강, 내 고향 탐진강 강마을 어디를 둘러봐도 화원이요 꽃길마다 눈부셔라. 구멍가게 앉아 탁주를 들이켜던 촌로들이 육자배기를 한 소절씩 뽑을 때면 짐 실은 군내버스가 마을길로 스윽 접어든다. 주말에 애갱이 손주들이 놀러오는가. 노란 귤, 사과와 배를 한 개씩 주워 담은 할매의 장바구니. 그러고 보니 과일나무들도 꽃망울을 맺고 있구나. 사과나무 배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모두들 깨어나서 푸른 잎을 손바닥 펴듯 펼치고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욕심꾸러기 과욕으로 괴롭다. 과일 욕심, 과욕 말이다. 밥은 안 먹어도 살겠지만 과일 없이는 분명히 꼴까닥 할 것이다. 주머니에 돈이 생기면 먹고 싶었던 과일부터 한 박스 쟁여둔다. 귤도 한자리에 앉아 박스째 먹으라면 숨도 안 돌리고 먹을 자신 있다. 하지만 혼자 먹으면 그게 무슨 맛이야. 죄를 짓고 영치금으로 사먹는 귤은 맛이 있을까. 과일은 나누어 먹어야 제맛이다. 과일이 둥근 것은 쪼개서 한쪽이라도 나눠 먹으라는 뜻이렷다. 목사, 시인, 수필가, 화가, 음악인, 관장 뭐 많은 직함이 있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과일장수! 과욕이로다. 내가 과일장수라면 손님들한테 덤으로 집어주다가 망하든지 내가 다 먹어치워 망하든지 둘 중 하나일 터. 과일을 궤짝으로 쌓아둔 가게를 보면 부럽고 오지다. 자연재해 없이 올해 과일농사도 풍년 되길. 과일 농가, 과일장수들 다복했으면.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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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