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에 가면 대웅전 곁에 가지런히 놓인 털 고무신. 스님 보살님 처사님 차례차례 벗고 올라간 석단. 안에 몇 분이 계신지 신발 켤레를 보면 알 수 있다. 전도사 시절부터 나무마루가 깔린 교회를 다녔었는데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을 잘했다. 상갓집에 가면 누군가 그 일을 맡아서 한다. 눈에 띄지 않는, 보이지 않는 음덕들이 쌓여 신발이라도 찾아 신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털신을 찾다가 신발장에 쌓인 먼지를 보고 청소를 시작했다. 끝 구석엔 어머니 신으시던 구두가 장화 뒤에 숨어 있더라. 꼬맹이 때 아이가 신던 신발도 한 켤레 개켜져 있었다. 버리지 않기로 마음먹고 깨끗이 닦아 야물게 봉해두었다.

쓰촨성 청두 출신 바진의 단편소설 가운데 <아버지가 새 구두를 사오실 때>가 있다. 나라의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거사에 뛰어든 아버지는 아이와 약속한 구두를 사주지 못하고 결국 붙잡혀 처형되고 만다. 아이는 눈뜨자마자 구두부터 찾았으나 아버지조차 어젯밤 집에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훗날 아이는 어머니 상을 치른 뒤에야 아버지 소식을 유품으로 알게 된다.

 

윤흥길 소설 <아홉 결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주인공 권씨, 구두 하면 또 떠오르는 인물이지. 광주대단지사건이라고 칠십년대 경기 성남 도시빈민들의 생존투쟁기가 녹아든 소설. 비틀린 인생 권씨에겐 반들반들 잘 닦아놓은 구두란 인생의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가차 없이 돌아오는 건 구둣발과 군홧발. 행방불명된 권씨가 시방 결기 넘치는 성남 시장으로 살아 돌아온 걸까?

신발장을 둘러보니 이건 어디서 났고, 어떻게 샀는지 기억이 새록새록. 신발 고르는 취향도 조금씩 변했구나.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들은 대부분 군화를 몇 해 동안 신게 된다. 군대축구라고, 그거 신고 월드컵 나가면 브라질도 오대빵 십대빵 이길 수 있다. 나도 한 켤레 있었는데 곰팡이가 슬어 그만 버렸지. 박사모나 무슨 연합 어르신들은 어떻게 지금껏 관리를 잘하셨는지 궁금하다. 구둣발차기 하기에도 튼튼하고 좋겠는걸.

임의진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머시락  (0) 2017.01.26
블랙리스트  (0) 2017.01.19
구둣발차기  (0) 2017.01.12
우주의 기운  (0) 2017.01.05
육식에서 채식으로  (0) 2016.12.29
여우골 성탄절  (0) 2016.12.2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