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내가 사는 강원도 산간 지방에 올해 들어 첫눈이 왔다. 밖에 나가보니 온 세상이 하얗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신다. “올 것이 왔구나. 큰일이다.”

눈이 오면 일이 많아지고 불편하다. 무엇보다 고립되지 않으려면 집집마다 필요한 만큼 알아서 척척 제설작업을 해야 한다. 그건 기본이다. 우리 집 같은 경우 설상가상으로 그 와중에 이사해야 한다. 옆구리 간격만큼 붙어 있는 헌 집에서 새집으로 옮겨 가는 이사라 일일이 우리 손으로 날라야 한다. 눈을 맞으며. 눈길 위를 종종걸음치며 책이며, LP며, 냄비며, 옷가지를 날라야 한다.

어라, 근데 이상하지 않나? 내 맘 속에 눈곱만큼도 걱정이 없다. 심지어 은근히 기대가 된다. 혹시 구들 때문인가? 역시나 구들 생각이 들자 돌연 마음이 훈훈해지고 그 어느 때보다 의기양양해지는 나를 느끼게 된다. 내가 뭘 믿고 그러는지 잘 아는 엄마가 말씀하신다.

“하기사 이제 누가 훔쳐 갈 수도 없는 저 엄청난 보석을 바닥에 깔고 살게 될 터인데 뭐가 걱정이냐? 그 방에 누워 있으니 세상만사 부러운 게 없더라. 머리는 시원하고 몸 안에는 뼛속 깊이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진짜 오리지널 토종 불 맛이지.”

미국 건축사의 가장 유명한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가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제국호텔 설계차 일본에 왔다가 부호 투자자 집에 마련된(사실상 경복궁에서 강탈해서 떼어다 놓은) 조선관에서 하룻밤 묶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온돌방은 푸근하다. 그 방에 들어가자 계절이 바뀌어 버렸다.” 그러면서 이렇게 격찬했다고 한다. “조선의 온돌이야말로 ‘마법의 방’이다.” 그리곤 그 마법을 미국에 돌아가 대중을 위한 주택설계에 적용했다. 조선의 온돌방에서 힌트를 얻어 뜨거운 물을 파이프로 흘려보내는 방식의 바닥 난방 시스템을 최초로 실현했던 인물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였다니, 놀랍고도 재밌다.

프랭크씨라고 해야 할지, 라이트씨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 양반도 확실히 불 맛을 좀 알았던 게 틀림없다.


세계 최초의 온돌마루 열차 코레일 '서해금열차'_경향DB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12년 6월 왕이 경상감사에게 전지를 내려 이씨 형제가 수분할 때 생기는 병을 막기 위해 온돌에 기거하도록 하였다’고 전해진다. 민간에서도 아이를 낳고는 뜨끈한 아랫목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그러니까 구들은 왕가 사대부부터 민가를 아우르는 우리네 전통 난방 방식이자 질병 치료의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였다는 말이다.

지난봄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가 잠시 스승으로 모셨던 구들문화원 오홍식 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구들은 두한족열의 가장 이상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난방 시스템일뿐더러 돌과 황토에서 생체 세포에 활력을 주는 원적외선까지 나와서 그 방에 있으면 행복한 기분이 듭니다.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다. 구들만큼 경제적인 난방시스템은 더 이상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축열과 방열을 오랜 시간 유지하는 구들은 전도, 복사, 대류열을 모두 쓸 수 있는 고효율 시스템이죠. 한 번 불을 때면 24시간 정도 난방이 되는 것은 기본이고 필요에 따라서 며칠씩 온기가 식지 않는 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칠불사의 아짜방은 그 온기가 무려 100일이나 갔다고 하죠. 게다가 연료는 주변에 버려진 나무 자재들을 주워다가 때면 됩니다. 화목보일러는 5년, 태양열 시스템은 10년인데 구들은 반영구적이죠.”

‘내 손으로 만드는 황토구들방’ 수업을 들으며 여러 번 전율했다. 이렇게 이상적이고 훌륭한 난방시스템이 우리 고유의 것이라니…. 무엇보다 그 이상적인 적정 기술을 백성 모두가 평등하게 나누어 쓸 수 있다는 점에 감동했다.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유럽에서는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도 온돌을 몰라 벽난로에 장작을 때고 개나 고양이를 끼고 자야 할 정도로 춥게 지낸 반면 우리는 찢어지게 가난한 백성들도 온돌 덕에 추운 줄 모르고 지냈다는 거. 자랑스러운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전 인류가 함께 누릴 만한 지복인 거다. 한식의 세계화로 미는 떡볶이 따위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 부부는 무려 두 달 동안이나 침실과 거실을 구들방으로 만드는 일에 온갖 공을 들였다. 다행히 초보 솜씨임에도 불이 잘 들어가고 온기가 제법 오래 유지된다. 다만 아쉬운 건 함께 구들 수업을 들은 동기들과 품앗이하지 못했다는 거다. 온기는 삶의 본질이다. 구들방의 그 천국 같은 온기도 나누면 더 커진다. 구현하기 더 쉬울뿐더러.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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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