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가면 마구간이 있다. 육지 동네엔 외양간이 있고. 그곳엔 통나무를 파서 먹이를 놓는 구유가 있다. 말밥그릇 소밥그릇. 큼지막해서 어린 아기를 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 아기의 첫 침상이 되어준 구유. 나사렛 시골뜨기 부부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다가 산기를 느껴 마구간에서 몸을 풀었고, 아기를 말구유에 뉘었다고 한다. 고갯마루 동네 이름은 베들레헴. 지금은 팔레스타인의 땅. 이스라엘군이 지키는 높게 쌓은 장벽을 통과해야 한다. 라마단 기간이라 가게마다 문을 닫고 무슬림 사원만 인산인해. 해가 뜬 낮에는 금식, 해 떨어진 밤에는 폭식. 베들레헴에는 기독교인보다 무슬림이 더 많다. 이곳 촌락에서 며칠 짐을 풀었다.

엊그제 갈릴리 호숫가에 머물 때도 그랬지만 낡고 헤진 침대. 어느 가난한 여행자가 묵었을 방에 나도 몸을 뉘었다. 속옷을 빨아 햇살에 말리고 쓰디쓴 커피로 역한 냄새를 내몰았다. 건너편 이층집, 아랫니와 윗니로 검정 핀을 벌려 여자아이의 머리를 땋아주는 엄마. 또래로 보이는 소녀를 예수탄생성당 안뜰에서 만났다. 사진을 찍어 보여주었더니 손에 한가득 꽃을 내밀었다. 목동들이 누워 있는 아기를 바라보았을 성당 뜰에는 양떼 목장도 아닌데 풀꽃들이 가득했다. “몇 살이니? 이름이 뭐니?”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저 웃기만 했다.

“우리들 중 여섯이 별나라로 사라졌네. 눈앞에서 한 명은 죽고 다른 한 명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이 구타당했네. 그들에게 피는 메달이고 학살은 영웅적 행동이지. 신이시여! 이곳이 정녕 당신이 만든 세상 맞나요.” 칠레의 전설적인 가수 빅토르 하라의 노래 ‘칠레 경기장.’ 베들레헴의 아이들도 숱하게 학살당했다. 이 경기장, 저 사원, 집단학살의 총탄 자국이 가득하다. 예수 때부터 지금껏. 아이들은 구유에서 태어나 낡은 침대에 버려졌을 것이다. 망아지와 송아지와 강아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의 아이들. 넉넉히 밥을 먹고 편안한 잠자리를 누려야 할 아이들. 가난한 시골집 구유를 볼 때마다 마음이 울컥해진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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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