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정국을 지나면서 ‘우리’는 박근혜 세력은 단죄하면서, 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작동방식에 대한 질문은 혹 놓쳐버린 것이 아닐까? 혹은 촛불이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이런 질문을 해보려고 한다.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결정했다. 8 대 0. 그러나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대해서 동의했던 법관들이다.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헌재가 박근혜 탄핵 하나로 헌법질서의 수호자로 등극했다. 이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또 결정 주문은 8개의 탄핵사유 중에서 단 한가지, 즉 재벌을 압박하여 뇌물을 받아 자신의 이익을 취했다는 점만을 전적으로 인정했다. 뇌물을 준 재벌들은 졸지에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으로부터 탄압받는 피해자로 둔갑했고, 심지어 기업 경영활동의 자유 훼손이 탄핵인용의 주요 사유다. 이 ‘기업의 경영활동의 자유’가 헌법상의 또 다른 권리인 노동권을 짓밟고 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폭넓게 인정해주는 무기로 작동하는 것은 헌재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헌법해석조차도 균형을 잃고 있다는 이야기다.

제주 다랑쉬굴은 4·3 사건 당시 주민 11명이 집단희생을 당한 곳이지만 현재 안내판만 있을 뿐 입구는 수풀에 가려 흔적도 찾기 힘들다. 박미라 기자

화북동에 있는 곤을동도 군인들에 의해 마을 주민이 사살되고 집이 불타 집터와 돌담만 남아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박미라 기자

촛불 속에서도 한국의 국가는 건재하다. 아니 더 튼튼해졌고 정당성을 새로 부여받았다. 바로 촛불들로부터. 법원은 갑자기 집회·시위의 보호자로 나섰고, 경찰은 갑자기 온순해졌으며, 검찰은 특검을 통해서 다시 살아났고, 법원은 헌법재판소를 통해 민주헌정질서의 최종적인 수호자로 재정의된다.

그러나 지난날에 비춰보면 이렇게도 된다.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으로 지탱해온 정부는 황교안 체제를 통해서 전승되고 있다. 정치체제에 대해 권위주의, 군사독재 할 것 없이 합법성을 부여하는 입법들을 줄창 해오며 유지해온 입법권력도 힘을 받고 있다. 국가에 의한 양민학살마저 정당화하고, 스스로 사법살인을 자행하며 죄 없는 이들을 형장으로 보냈고, 제주 4·3항쟁에서 피를 묻혔던 사법권력도 그대로 온존하고 있다.

이 지점에 제주 4·3항쟁이 있다.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성격, 아니 나아가 그 탄생은 제주 4·3항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제주 4·3항쟁은 식민지 해방 이후 미군정이 물러나면서 대한민국의 수립과정에서 맞물린 숙명 같은 사건이었다. 동시에 대한민국 존재의 정당성에 심각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것은 미군정 3년의 시공간에서 포스트 식민지 해방국가의 성격을 둘러싼 좌우의 투쟁과 민중적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당시 국가 탄생의 주요세력이 자행했던 극악무도한 탄압에 맞서 제주 민중들이 맞선 최후의 저항이기도 했다. 즉 제주 4·3항쟁은 체제를 둘러싼 저항이었고, 국가의 탄생을 두고 벌어졌던 전투이기도 했다.

제주학살은 바로 1947년 5·10 선거, 즉 미군정의 관리감독하에 남한만의 단독국가 구성을 위해 진행된 선거에 대한 반대시위에서 경찰총격으로 촉발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빨갱이 사냥’은 5·10 선거 후 1948년 수립된 ‘신생’ 대한민국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자행됐다. 그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는 2000년 발족한 진상조사위원회에 신고된 수만 1만4028명이고, 1950년 김용하 제주도지사 시절 도청 집계로 2만7719명이었다. 또 진압작전에서 전사한 군인 180명, 경찰 140명,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우익단체원 등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수가 639명이었다.

결국 제주 4·3항쟁의 기억투쟁, 그리고 현재 제주 4·3항쟁이 이 나라에서 기억되는 방식은 이 나라의 정통성이 어디에 뿌리박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친미우익과 반공을 국시로 한 반공병영국가, 민주주의도 넘지 못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건국’ 정신. 주권자를 억압하고 군림해온 권위주의국가. 제주 4·3항쟁에서 드러난 한계는 한국 국가의 ‘초기조건’이 돼버렸고, 민주화 이행 이후에도 공고화됐다.

이제 4·3은 촛불에게도 묻는다. 너의 국가는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있었다라고, 그렇게 국가는 탄생했고 그 역사는 단지 기억이 아니라 현재 국가의 작동방식이라고. 이제 “국가는 없었다”가 아니라 우리의 “국가는 무엇인가”를 질문하자. 촛불 이후 질문이 이렇게 될 때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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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