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할 때마다 이재명을 찾아보거나 듣는다. 그게 요즘 내 취미가 됐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른 이재명의 ‘핵사이다’ 발언. 유튜브에 많고 많은 것 중에 하나를 골라 보거나 듣고 있으면 역시나 가슴이 뻥 뚫린다. 국가를 철저하게 모독하고 국민을 개·돼지로 우롱한 자들이 아무리 뻔뻔한 거짓말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도,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청문회와 국회가 아무리 지지부진 시들해 보여도 이재명을 통해 보면 다시금 활기를 되찾게 된다.

예컨대 “돌 맞아도 할 얘긴 해야겠습니다”라는 부제와 함께 올라온 이재명의 경북 구미 거리강연 동영상을 한 번 보시라. 이 모든 것이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박정희 때문이라는 뼈아픈 자각 속에서 이제 정말 그를 떠나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게 된다. 이재명은 어마어마한 박정희 동상이 세워진 도시 구미에서 감히 이렇게 말한다.

“시민들의 피 같은 세금으로 산 사람도 살기 힘든데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꺼내 기념하는데 그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사실은 박정희 덕이 아니라, 그 당시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전략적으로 한국의 경제를 키워준 것인데 그 많은 돈을 박정희 기념사업에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 돈이면 성남시 같은 복지를 무려 10년 동안이나 할 수 있는 돈인데 말입니다.”

불과 몇 달 전 유튜브를 통해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비판적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볼 때만 해도 몰랐다. 유력한 대선 후보가 박정희의 고향에 가서 박정희 신화를 정면으로 짓밟는 얘기를 감히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할 수 있을 줄은….

다행히도 내게는 기회가 있었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지배하는 언론이 아무리 방해해도 <백년전쟁>과 ‘프레이저’ 보고서에 실린 박정희의 진실을 엿볼 수 있는 기회.

‘미국과 한국 관계’를 조사하던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1978년 발행한 ‘프레이저 보고서’에 의하면 박정희는 유신체제에 비판적인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뇌물로 관계자를 매수하고, 각종 이권사업을 기업들에 나눠주는 대가로 불법 정치자금을 모아 스위스은행으로 보내고, 미국의 파격적 지원과 지도에 의한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을 자신의 공으로 돌린 ‘뱀’ 같은 인간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스네이크 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미국 의회가 발행한 보고서에 그렇게 적혀 있어도 우리는 그런 얘기를 공공연하게 할 수 없었다. ‘유사 박정희’인 이명박이 집권하고 뒤이어 ‘진짜 박정희 유전자’인 박근혜마저 집권한, 놀랍도록 잘 속는 나라의 국민이었으니까. 그런데 박정희의 유산이며 비극인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고 우리는 시원스럽게도 이렇게 외치는 정치인을 갖게 됐다.

“법과 안보를 지키려고 하는 보수를 존중하되 그 속에 숨어 있는 강도, 깡패, 사기꾼, 도둑들을 잡아서 감방에 보냅시다. 매국, 친일, 독재, 부패로 기세등등한 세력을 이제 작살을 냅시다. 이거 안 하니까 정의가 없고 희망이 없는 겁니다. 부당한 세력이 기득권이 되어 이 사회 구성원의 기회를 다 뺏으니까. 바로 지금이 최대의 기회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염원했지만 한 번도 이룩하지 못한 나라,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과 복지가 살아 있는 진정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 대한민국을 이제라도 바로 세우기 위한 기회! 그 기회를 위해 끝까지 함께합시다, 구미 시민 여러분!”

예전의 나는 참 어리석었다.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무조건 선을 그었다. 심지어 그 상대가 연인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같은 고속 성장을 위해 박정희 같은 독재가 필요악이었다”고 믿고 있던 그 남자에게 소리쳤다. “위대한 아버지 수령님 덕분에 고깃국에 쌀밥을 먹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자신이 세뇌당한 줄도 모르는 불쌍한 북한 주민처럼?” 이재명을 알고 나서 그랬던 나 자신을 반성할 수 있게 됐다. 성남시 복지를 방해하려는 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단식투쟁을 하던 이재명 시장의 발언 덕이었다.

“상대방에게 판단을 요구하면 안됩니다. 이런 판단을 해라, 저런 판단을 해라, 나를 지지하라, 저쪽을 비판해라. 그런 건 무의미합니다. 판단을 요구하는 순간에 반발심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대신 정보를 전달해 주면 됩니다. 그럼 스스로 판단하니까.”

그러니까 이 말은 그냥 전달만 해 주면 된다는 얘기 아닌가? 시원한 ‘핵사이다 이재명’을 누군가에게 전달만 하면 된다. 그냥 손가락 하나로. 톡~. “어머 아직 박정희 좋아하세요? 그럼 이거 한 번 보세요. 톡~.” 그럼 얼굴 붉히며 싸울 필요가 없다. 적이라고 생각했던 이들과 동지가 될 수도 있다. 헌법을 수호하는 진정 공정하고 평화롭고 희망찬 나라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가 유형으로든 무형으로든 ‘촛불’을 들고 ‘정보’를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오랫동안 염원했지만 너무도 멀게만 느껴진 그 꿈의 나라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가뿐하고 분명하게 느껴진 적이 있던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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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