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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이식(耳食)이라는 말이 있다. 소동파가 견양 지방의 돼지고기 맛이 최고라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사오게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술에 취해서 끌고 오던 돼지를 잃어버리고는 동네 돼지를 사다가 바쳤다. 그 사실을 모른 손님들은 요리를 맛보고서 역시 견양 돼지는 다르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처럼 평판에 가려서 실질을 보지 못하는 것을 두고 귀로 먹는다고 한다.

조선시대 하징이라는 사람이 땅딸막하고 절룩거리는 말 한 마리를 헐값에 샀다. 절룩거리던 다리는 어느새 치유되었고 그 짧은 다리로 잘도 걸어서 하루에 수백 리를 갈 정도였다. 하도 볼품없고 특이하게 생겨서 지나는 이들이 가리키며 구경하기에, 하징은 장난삼아 일본에서 들여온 ‘왜당나귀’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들 갑자기 관심을 보이며 큰 값을 치르고 사겠다며 몰려들었다. 그러나 얼마 뒤에 사실대로 말해주니 아무도 돌아보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 두 이야기에서 헛된 이름에 현혹되지 말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은 소중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질이 없다는 데에 있다. 하징의 이야기를 기록한 조구명은 이렇게 반문한다. ‘왜당나귀’라는 이름이 거짓이라는 게 뭐 그리 중요한가? 그 이름이 거짓이라고 해서 하루에 수백 리를 갈 수 있는 능력마저 돌아보지 않는 자들이 어리석은 것 아닌가? 능력만 있다면 ‘왜당나귀’가 아니라 ‘오추마’ ‘적토마’라는 이름을 붙인다 한들 무슨 문제가 있는가? 가짜 견양 돼지처럼 실질이 없이 이름만 있다면 사기지만, ‘왜당나귀’처럼 실질을 갖추고 있다면 이름은 빌려오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직함 하나 바뀌면 대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큰 자산인지 실감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스토리가 곁들여질 때 음식의 맛도 살아나는 게 사실이다. 우리의 눈과 귀를 하루 종일 지배하는 온갖 형태의 광고들이야말로 ‘귀로 먹게 만드는 산업’이다. 이름의 과잉시대를 살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이름에 값하는 실질이다. 듣도 보도 못한 재단 이름들이 갑자기 여기저기서 거론되더니 그 뒤로 생소한 이름들이 망령처럼 떠돌고 있다. 실질이 있다면야 이름이 낯설다는 게 무슨 문제겠는가. 그러나 실질 없는 이름에 무소불위의 권력이 더해진다면 그건 사기다. 그것도 엄청나게 공포스러운.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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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