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우리가 만나는 곳. 단연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존 버거의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을 오랜만에 펼쳐 본다.

작가 그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화자 존이 리스본에서 늙은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 그 어머니는 이미 수년 전 돌아가신 분이다. 죽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망자와 만나는 그 장소에서 어머니는 존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화를 전망대의 승강기와 비교하며) 그런데 영화도 똑같은 것 같아, 존. 우리를 올렸다가 같은 자리에 다시 내려놓으니까. 그것도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우는 이유 중 하나란다.”

지난 일요일 오전 영화관에 갔다. <귀향>을 보기 위해 갔다. 예전 같으면 서울이나 가야 볼 수 있는 화제의 저예산 독립영화. 근래 군 소재지마다 작은 영화관이 생겼는지 인터넷 검색창에 ‘귀향’을 치니 우리집에서 가까운 영화관이 무려 3곳이나 떴다. 평창시네마, 영월시네마, 제천시네마….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작은 시골 영화관에서 <귀향> 같은 귀한 영화를 볼 수 있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난 이미 너무도 고무되어 승강기를 타고 에펠탑 위로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마을마다 있는 복지회관을 리모델링했는지 1층은 웨딩홀이고, 2층은 영화관인 곳에 왔다. 평창군민으로서 평창군에 처음 생긴 영화관에 와서 그런지 영화관의 모든 것이 ‘리본 달린 일요일의 선물 상자’인 듯 사랑스럽다. 심지어 상영관이 2개고, 상영작이 무려 3개나 됐다. 팝콘을 산 할머니가 영감님 손을 잡고 <동주> 포스터 앞에 앉아 있다가 우리와 함께 <귀향> 상영관을 향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그 장소에 놓인 그 모든 상황이 그렇게 천국인 듯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내 영화가 시작되고 나는 꽃다운 처녀들이 겪는 끔찍한 지옥을 맛보고 말았다. 울었다.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열다섯, 혹은 열넷, 나비를 쫓던 순진무구한 처녀들이 짐승 같은 남자들에게 끝없이 끝없이 찢기고 밟히고 채찍질 당하다 이내 버려지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울지 않을 수 있는 강심장은 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다행히도 아름다웠다. 참담한 아픔을 다룬다 해도 꽃다운 처녀들의 이야기이기에 감독은 그리도 아름다운 영상에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남의 지옥불을 구경하는 관람자가 그렇듯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았다.

마치 살풀이하듯, 눈물과 통곡으로 토해내면 설움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와 얽매였던 마음도 풀리고 몸도 편해지는 식의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아버지가 열네살이나 먹은 딸아이를 지게에 태우고 덩실덩실 춤을 출 만큼 귀하게 자란 주인공 말고도 더 많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 땅에 있었을 테니까. 이미 돌아가셨든 아직 살아 계시든.

그 때문에 얼마 전 사이행성이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25년간의 수요일>이라는 책을 급하게 주문해서 읽었다. 그 안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우리들에게 전하는 가슴 뭉클하고 심지어 미소짓게 하는 희망의 이야기가 가득 실려 있었다.

할머니들은 영화에서처럼 한때 아름다웠지만 전쟁의 폭력으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해진 여자가 아니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이후,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이어온 수요시위를 통해 어느덧 평화를 위한 투사이며 인권운동가가 된 할머니들의 이야기. 예컨대 이용수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용기 있을뿐더러 더없이 멋있고 사랑스러운 여자들이구나 생각했다.

“저는 이제 여러분의 힘을 받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두 번 다시 우리 후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저는 결사적으로 싸울 겁니다. 저는 아직 나이 젊습니다. 나이 88세 뭐 그리 많습니까?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입니다.” 멋있지 않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느 여성인권운동가가 한 말이라고 해도 난 믿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아직도 진심어린 사죄를 하지 않은 가운데 세상을 떠나는 할머니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47명이 생존해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 그까짓 것 ‘10억엔 합의’에도 체념하지 말자. 88세에 비하면 우린 얼마나 새파랗게 젊은가?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탄생이다. “죽은 후에, 손상된 것들을 고칠 기회를 제공받았다”는 존 버거의 메시지가 그러하듯. “그게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라고 했던….

<귀향>을 봤다면 이젠 <25년간의 수요일>을 기꺼이 사서 읽자. -인세가 전 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나비기금에 기부된다- 그러고 난 다음 수요시위에 나가 할머니들의 손을 잡아 드리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던 강덕경 할머니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내가 아프다고 이렇게 쓰러져 있으면 일본은 내가 포기한 줄 알 거야. 가야겠어”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으로 달려갔던 곳.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 공간. 평화와 희망이 나비처럼 날아드는 곳. 거기, 우리가 만나는 곳.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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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