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첫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우리는 거센 비를 뚫고 햄버거 가게에서 만났다. 아주 오래전 국민학교를 다녔던 이는 햄버거를 오물오물 먹는 초등학교 6학년에게 별 시답잖은 것들을 물었다. 쉬는 시간에는 무얼 하느냐? 점심시간에 배식은 누가 하느냐? 담임선생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뭐냐? 아이는 콜라를 마시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조용히 해’죠. 아이는 마흔이 넘은 담임선생님의 고초를 이해하고 있었다. 잘해보려고 이것저것 시도를 하는데 아이들이 도무지 따르지 않아 힘들어 하신다며 나이든 사람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는 선생님 편히 쉬시라고 애들이 다 화장실 가서 놀아요.”

여자아이들이 화장실 거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화장을 하거나, 고민을 털어놓으며 눈을 마주치고 맞장구를 쳐주는 그 시간이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이유일 것이다.

아이는 뭐가 가장 힘드냐는 물음에 별스러운 게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제멋대로 하는 언니는 툭하면 시비를 걸고, 엄마는 언니만 싸고돌며, 친구들은 수시로 변심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지만, 뭐 다들 이렇게 사는 게 아니냐는 열세 살짜리 아이는 힘들어 하는 친구들한테 이렇게 말해준다고 했다.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애쓰지 마.”

아이가 그 말을 할 때 우리는 버스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굵은 빗줄기가 차창을 두드렸고, 아이의 말은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문득 먼 나라에서 왔다는 아이의 엄마가 고마웠다. 그가 바다 건너 낯선 나라까지 온 덕분에 이리 예쁜 아이를 내가 만날 수 있구나. 나는 아이의 엄마가 궁금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었다. 아이는 깜깜한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대답했다. 예멘이오.

아…. 나는 더 묻지 못했다. 아이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나오는데, 3층에서 아이와 아이 엄마가 조심히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들을 올려다보면서 이방인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날 선 말들이 그들의 귀에 닿지 않기를, 부디 그러기를 빌었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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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