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쌀국수를 먹을 때나 보는 고수가 밭에 졸졸 심어져 있었다. 한 평 남짓한 밭에 뿌리를 내린 고수는 새파랗게 잘 자라고 있었다. 그 옆에 다보록하게 자라고 있는 얼갈이배추 어린잎 같은 채소는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먹는 라우 무이 뚜이라고 했다.

집 뒤꼍 푸서리에 일군 손바닥만 한 밭을 보여준 아이는 좁은 두둑을 사분사분 걸었다. 아이는 네 살짜리 동생을 보느라 토요일마다 나오는 공부방을 빠졌다. 어쩌면 내내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아이는 혼자 귀화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다. 벽에 바짝 붙여 놓은 매트리스 위에는 귀화시험 대비 참고서가 펼쳐져 있었다. 베트남어와 한국어가 섞여 있는 참고서에는 여기저기 쪽지가 붙여져 있고, 밑줄도 그어져 있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나 보다고 했더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보려면 삼십만원을 내야 하는데, 두 번만 볼 수 있어요. 두 번 다 떨어지면 다시 돈을 내야 해요. 비싸요.”

한국에 온 지 일 년 좀 넘은 아이는 한글도, 한국말도 꽤 잘했다. 가장 어려운 게 한국 역사라는 아이는 한국의 맨 처음 나라 이름이 뭔지, 고려 다음에 어떤 나라가 세워졌는지도 척척 잘 맞혔다. 아이는 국민의 4대 의무에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어놓았다. 4대 의무를 묻자 어른들은 멋쩍게 웃기만 했다. 아이만 4대 의무를 정확하게 말했다.

“다 외워야 해요. 면접 보려면 애국가도 외워야 해요.”

한국 땅에서 몇십 년을 산 어른들은 애국가를 웅얼거렸지만, 가을 하늘 공활한데를 넘어서지 못했다. 귀화시험 보면 다 떨어질 판인 어른들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구두덜댔다. 귀화시험비가 너무 비싼 거 아니냐고. 고등학교 다니는 애가 그런 시험을 굳이 봐야 하냐고. 그 말에 아이는 배시시 웃었다.

아이를 두고 골목길을 빠져나오면서 빌었다. 낯선 땅에 꿋꿋하게 뿌리를 내린 고수처럼, 라우 무이 뚜이처럼 아이도 이 땅에서 의연하게 잘 자라길. 그러려면 국민의 의무뿐만 아니라 국민의 권리도 제대로 알아야 할 텐데…. 참고서에 그게 있었나?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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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