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파장 속에서 누구든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보건 당국이 독성화학물질을 만들어 내거나 사용하는 기업 혹은 농장과 결탁을 하고 있다면?” 누구든 했을 법한 질문이다. ‘양심’에 따라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언론이라면 마땅히 해야만 하는 질문이었고. 영화 <공범자들>을 만든 최승호 PD가 집요하게 MB(이명박 전 대통령)를 잡고 늘어지며 하는 대사처럼 “언론이 질문을 못하면 나라가 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렇게 묻는 언론이 있었고 그 언론이 꼽은 최고의 전문가는 조심스럽게 ‘예스’나 다름없는 답을 내놓았다. 서울대 약학과 정진호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민정수석실에서 관리했다는 살충제 계란 문제에 대해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현재 발표되고 있는 인체의 유해성에 대해서 급성독성이라는 게 뭐냐면 단기간 많은 양에 노출되는 거거든요. 그 시나리오가 자꾸만 유해하다 안 하다 하는데 사실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중략) 제 생각에는 정부 부처는 시끄러울 수 있는 문제를 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니터링을 적극적으로 해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거든요.” 이해한다. 그렇게 소극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그의 사회적 위치와 상황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답은 내게 분명히 “예스”라고 읽혔다.

그 ‘예스’라는 희미한 신호음과 함께 읽기 시작한 책이 있다. <죽음의 식탁>이라는 책이다. 마리 모니크 로뱅이라는 프랑스의 한 공영방송 기자 출신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지난 수십년간 암, 백혈병,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불임, 자가면역질환 등의 질병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이유를 조사하기 위해 프랑스, 독일, 미국, 인도, 칠레 등 10개국에서 50명의 과학자, 활동가, 규제기관 대표들과 인터뷰해서 쓴 책이다. 2년간의 방대한 조사와 끈질긴 추적 끝에 저자는 밭이나 농장에서 쓰는 농약, 살충제부터 식품에 들어가는 첨가제와 플라스틱 용기까지 우리 일상에 만연한 독성화학물질이 바로 그 많은 질병의 주요 원인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독성화학물질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에겐 발이 없고 마땅히 신을 만한 신발도 없고, 자동차가 없으며 차표도 물론 없다. 인간에게 가서 인간을 무너뜨리고 싶은 의지나 야망도 당연히 있을 리 없다. 다만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과 규제기관의 논리가 있을 뿐이고, 그 논리로 잘 먹고 잘사는 대기업과 과학자, 규제기관의 기만과 속임수가 있을 뿐이다. 그로 인해 세상은 어디나 구석구석 독성화학물질과 그로 인한 갖가지 질병이 만연한 곳이 됐고.

세상에, 그래도 아무 문제 없단다. 많이 먹으면 나쁘지만 안 죽을 만큼 조금씩 먹기 때문에 괜찮다는 논리다. 그게 ‘살충제 계란’에 대한 정부의 논리고, 대한의사협회의 논리다. 하지만 왜 정부와 전문가가 괜찮다고 하는 독극물의 ‘일일 섭취허용량’ 개념을 비웃으며 하등 이로울 것이 없는 미량의 독을 우리에게 허용하여 결국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소비자이고, 그 이익은 기업들이 가져가게” 되어 있는 것이 현재의 체계라고 했던 영국인 교수 에릭 밀스톤의 말이 계속 귓속에 쟁쟁하게 울리는 것인지.

그렇다면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당분간 계란 섭취를 피하는 건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나는 물론 내 가족을 두고두고 괴롭히는 재앙에 가까운 질병을 피할 수 있다면 앞으로 계속 안 먹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없다. 계란 하나 안 먹는다고 우리 일상에 만연된 그 많은 먹거리의 위험과 질병에서 면제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어떤 면에서 <죽음의 식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던 피터 싱어의 <죽음의 밥상>이 처음 출간됐을 때 생각이 난다. 그때는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업형 농장의 횡포와 이를 숨기거나 묵인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도 컸지만 그보다는 동물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이전까지 인간의 식탁에 오르는 동물들이 사육되고 도축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잔인하고 비윤리적인 상황에 처하는지 몰랐던지라 어마어마한 충격 속에서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육식을 값싸게 즐긴 나 자신을 반성하기에도 벅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피터 싱어의 <죽음의 밥상> 출간과 광우병 사태 이후 나 자신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윤리적 소비에 대해 생각했고 조금 더 비용을 치르더라도 유기농 혹은 친환경이라는 딱지가 붙은 먹거리를 선택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났지만, 친환경 인증에 대한 신뢰는 되레 조금씩 배신당했고 세상은 조금씩 더 나빠졌다.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유기농 채식주의자가 되지 못한 나는 혼자 그렇게 산다고 상황이 나아질까 비관한다. 그 편이 제일 속 편하니까.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에 물어보고 싶다. 국민이 원한다면 농약이나 독극물에 가까운 화학약품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기업이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는 등의 시스템적 개혁에 앞장설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토록 지지율이 높은 국민의 정부라면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 누구도 아닌 국민된 자격으로 물으니 국민에 의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답하길 바란다, 오버.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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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