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흔히 남김없이 쓴다 해도 결코 완전하게 쓸 수 없으리라는, 아무리 적게 쓴다 해도 너무 많이 쓰게 되리라는 불안을 느낀다. 이 불안이 글쓰기를 절대적으로 가로막지 못하는 이유는 글을 읽는 이들 역시 글을 쓰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글쓰기의 불완전성을 알고 있으리라 간주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 편의 글이 완전하다면 그 이유는 글 자체가 흠잡을 데 없이 정교해서가 아니라 글의 틈이나 군더더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우고 소거하며 읽어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이 그러하듯이 말 또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완전해지는 듯하다.

여러 해 전 작가 체류 프로그램에 참여해 인도에 머문 적이 있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에 속한 오로빌이라는 곳이었는데 일종의 생활공동체였다. 거기에 정착한 사람들을 오로빌리언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 한국인 오로빌리언도 예닐곱가량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내게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인도에서 여러 해를 지냈지만 형편이 닿지 않아 한국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어느 해 여름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그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날아왔다. 공항이 있는 도시까지 마중을 나간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그가 사는 곳으로 왔다.

그가 머무는 공동체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도 현지인들의 마을을 지나야 했다.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노인들이 반얀나무 그늘 아래 주르르 앉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노인들 옆에 앉더니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노부인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뜨거운 여름날 고향 마을 들머리 정자에 모여 잠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그러하듯이 무람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말에 맞장구도 치고 고개도 끄덕이고 혀도 차면서. 그는 재촉하지 않고 두 노부인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그의 심사는 복잡해졌다. 어머니가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노부인은 열다섯 개나 되는 인도의 공용어 중 하나인 타밀어를 쓰는 사람이었다. 어머니 역시 표준 한국어가 아닌 고향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었다.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머니는 족히 한 시간쯤 즐겁게 대화를 나눈 뒤에야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그가 어머니에게 말도 안 통하는데 무슨 얘기를 그리 오래 나누었냐고 묻자 어머니는 그게 대수냐는 듯 한숨을 푹 내쉬더니 “저이도 사는 게 힘든가보더라” 하고는 그만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흔흔히 웃고 말았지만 곱씹어 보면 기이한 사연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지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을 서로에게 비끄러매어준 힘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뜻해졌다.

인종도 국가도 언어도 경험도 다른 두 사람이 서로에게 발견했던 것들, 어쩌면 볕에 그을리고 주름이 고랑을 이룬 얼굴이었거나 염소 목줄에 쓸려 생겨난 손목의 상처였거나 마디 굵은 손가락이었거나 혹은 푸른 하늘에 높이 뜬 부드러운 조각구름 하나였거나 반얀나무 잎사귀를 흔들고 지나는 바람이었을지도 모르는, 눈을 감아도 보이기에 서로에게서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들을 생각하면 ‘저이도 사는 게 힘든가보더라’는 말에 담긴 무수한 의미들이 섬돌에서 튀어 오르는 자디잔 빛 알갱이로 눈앞에 떠올랐다.

두 사람의 언어는 무관했지만 그러한 사실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애틋함과 공감을 느끼는 걸 가로막지는 못했다. 그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본 게 아니라 서로의 삶을 통째로 단번에 알아보았던 거다. 서로의 가슴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감으로써. 물론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나도 여느 소설가들처럼 소설을 쓸 때마다 불안하다. 내 소설이 완벽하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흠투성이의 글이라 할지라도 평생을 두고 쓰게 되면 소설을 쓰며 살았던 세월을 알아봐주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 같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아 기꺼이 지나온 삶을 각자의 언어로 들려주고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손홍규 소설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준표라는 거울  (0) 2017.04.2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민낯  (0) 2017.04.13
글쓰기의 불안함  (0) 2017.04.06
따로 또 같이  (0) 2017.03.30
죽은 시니어의 사회  (0) 2017.03.23
내면과 풍경  (0) 2017.03.0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