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간과 몰로치는 지역 엘리트들(정치가, 교수, 건축가 등)이 연합해서 개발을 통해 이익을 보는 순환 양상을 ‘성장기제(growth machine)’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사실 중견은 중견대로, 건축가는 건축가대로 거대한 사업들에 몸이 얽혀있다. 도시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대로 이해관계로 포섭하는 방법은 폭력, 공론 형성의 차단과 함께 국가가 위기를 해소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개발 선호 사상에 함몰되지 말고, 개발을 정치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자는 스스로의 다짐들을, 어쩌면 소위 엘리트 연합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장기제’를 위해 외면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깝다. 바로 광화문광장 이야기다.

최근 서울시에서 발표한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광장은 현재 광화문 앞을 지나는 사직·율곡로를, 새문안로 5길을 확장·활용해서 우회시킨다. 역사광장에는 경복궁의 권위를 상징하는 월대와 해태상을 원위치로 복원한다. 둘째, 시민광장으로 확장·개선되는 광화문광장은 ‘태양의 도시 서울’ 프로젝트와 연계해 태양광 시설을 입혀 친환경 광장으로 조성한다. 셋째, 10차로인 세종대로와 사직·율곡로 일부 구간은 6차로로 축소하며 2021년까지 준공을 목표로 추진한다.

2009년 8월1일에 완공된 광화문광장은 ‘시민의 선택’이었다. 2006년 10월 당시 서울시가 광장 조성 장소에 대해 시민, 인터넷 여론조사와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해 시민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5579명 중 절반에 가까운 2660명이 “중앙배치안이 좋다”고 답변했다. 현 광화문광장은 시민에 의해 일구어진 촛불집회가 열렸던 ‘기억의 땅’이며, 박원순 시장이 촛불집회로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노벨상을 추진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조성된 지 1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 시장에 당선되어, 매년 연말에 보도블록을 바꾸는 것이 예산 낭비라고 그렇게 비판하던 박원순 시장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이미 막대한 공사비용을 투입하여 정비한 광화문광장에 다시 국민의 혈세 995억원을 낭비하고자 하는 현재 시장의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야기된 것인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민의와 시민의식을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구시대 개발 및 계획 논리와 이론의 대체재로 나타난 소통계획(communicative planning), 참여계획(participatory planning)이 유행한 지도 이미 수십년이 지난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이러한 계획 방식이 제대로 자리 잡았는가? 여전히 학생들이 학교에서 이론으로만 배우는 현실과 괴리된 이상향으로 존재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2014년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 대한 민의를 이미 수렴하였다. 서울연구원에서 발간된 ‘시민·전문가가 제안하는 광화문광장의 미래와 20개 개선안’ 중 광장 개선의 접근 방법에 대해서는 ‘전체 형태를 유지하면서 시민 이용 편의와 역사성 회복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문가 52.7%, 방문객 80.7%, 1000인 서울시민의 78.1%로 가장 많았다. 세금을 들여 조사한 여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계획이 어떻게 합리화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가?

계획 과잉은 무분별한 시장주의만큼이나 조화로운 삶, 조화로운 사회를 위협하기 마련이다. 단지 편향된 시장주의가 자유의 기치 아래 평등을 희생시킨다면 계획과잉은 평등의 기치 아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둘은 지난 시대가 낳은 일란성 쌍둥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들의 가족들이 옥바라지하기 위해 머물렀던 옥바라지골목나 재개발사업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박원순 시장은 “도시재생을 강조해온 내 임기 안에 역사의 흔적을 없애는 일이 발생해 너무 안타깝다”며 공사 중단을 지시했었다. 이렇게 역사적 시민사회의 흔적을 중요시 여기는 서울시에서 광화문광장을 또 뜯어내는 것은 서울이 역사 고도(古都)인 것을 알고서도 임기 동안의 치적을 위하여 본인의 가치관을 무시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집회로 시민사회를 일구어 냈던 ‘기억의 땅’인 광화문광장을 뜯어 고치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밝히며 행정을 하는 것이 민주시장으로서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신현돈 | 광화문포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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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