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아 죽는 국민이 있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이 말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이 문제를 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다른 부처 장관들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지명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먼저 ‘치매국가책임제’를 실현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치매국가책임제’는 꼭 필요한 좋은 정책이다. 개인적으로도 이 정책이 성공하길 바란다. 치매환자나 치매환자를 가진 가족들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매국가책임제’는 다른 정책에 비하면, 크게 돈이 들지 않는 정책이다. 정부가 할 일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걱정이다. 만약 대통령에게 이 정책을 제안한 참모가 이런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대통령이 그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문제다.

18대,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대표적인 보건의료 공약은 ‘100만원의 개혁’이다. 실제 진료비가 아무리 비싸게 나와도 1년에 100만원 이상은 내지 않아도 되게 하겠다는 정책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약속했으나 지키지 못했던 정책의 ‘문재인식 정책’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보건복지부 인사나 인수위원회를 대신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활동을 보면 ‘100만원의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 계획과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한 가구의 소득에서 의료비 지출이 전체 지출의 10%를 넘는 가구가 20.6%나 되고 40%를 넘는 가구도 4.7%에 이른다. 이렇게 높은 의료비를 지출하는 가구는 빈곤화할 가능성이 3배 이상 높다. G20 국가에 속하는 나라에서 의료비 때문에 파산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빈번하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돈이 없다는 것은 핑계다.

올해가 국민건강보험 시행 40주년이다. 국민건강보험은 의료보장 수준이 50%대를 넘지 못하는 ‘반쪽짜리 의료보험’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거의 꼴찌에 해당한다. 따라서 ‘100만원의 개혁’은 선택사항이 아니고 기필코 시행해서 성공해야 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왜곡된 의료전달체계, 낭비적인 지불보상제도, 과잉상태에 있는 민간보험시장 등 현실을 보면 가히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정책이다. MB정부 때 대통령이 앞장서고, 모든 부처들이 발벗고 나서 4대강 사업을 추진했듯이 일일점검을 하면서 진행해도 될까 말까 한 정책이다. 또한 국민적 합의 프로세스를 만들어 장기적이고 정교한 로드맵을 마련하는 등 국민과 함께 풀어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매우 어려운 정책이다. 그렇기에 정권 초기부터 적극적인 추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처럼 쉽지 않은 ‘100만원의 개혁’ 정책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치매국가책임제’로 ‘퉁’치고 끝내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에 대한 약속의 파기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100만원의 개혁’의 시행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과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다행히 이 정책은 국민의당과 정의당도 약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정책은 보건복지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퉁’ 치거나 ‘눈 가리고 아웅’하며 그냥 넘어가자는 참모와 관료의 유혹을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과거 참여정부가 정권 연장에 실패한 이유도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아 죽는 국민이 있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라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이제 문재인 대통령의 꿈과 약속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만들고자 하는 나라가 ‘나라다운 나라’ 아니던가?

신영전 | 한양대 교수·사회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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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