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애국교 지지자와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를 맹신도에 비유한 윤태진 교수의 ‘종교가 된 한국정치’(경향신문 4월10일자)를 잘 읽었다. 그러나 이 칼럼은 한국정치에 대한 기존 연구 결과를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공약보다는 ‘검증’이 더 중요하다는 정치학자도 있는 판”이라며 페이스북에 실린 필자의 주장을 폄훼하기도 했기에 반론하고자 한다.

산 정상에 도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한발 한발 걸을 수도 있고, 암벽타기도 가능하지만 헬기로 한 번에 도달할 수도 있다. 정치현상을 분석하는 시각도 다양하다. 직관이 뛰어난 대가라면 대중문화이론을 통해 한국정치를 정확히 꿰뚫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증이 더 중요한지 공약이 더 중요한지는 논쟁은 가능해도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폄훼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필자는 공약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이번 대선이 다른 때와 달리 검증이 더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박 전 대통령은 좋은 공약에도 불구하고 자질 미달로 탄핵당했다. 언론이 후보시절 제대로 검증했다면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 이번에도 정치권에서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주요 대선 후보가 되었는데 대다수 언론이 검증을 방기하고 있기에 했던 말이다.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벽보가 첩부된 20일 오후 종로구 이화동 예술가의 집 울타리앞에서 시민들이 15명 후보의 포스터를 꼼꼼히 읽고 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15명의 선거포스터를 일렬로 나열하면 10미터가 조금 넘는다. 박민규 선임기자parkyu@kyunghyang.com

검증과 공약의 우선순위는 의견의 차이로 볼 수 있지만, 목표했던 산에 정확히 도달했는지는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본다. 미국 언론이 선거 전문가에게만 발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예측의 정확성을 통해 전문가의 감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윤 교수의 주장처럼 모든 후보의 지지자가 신앙인이라면 지금까지 출렁였던 후보의 지지도 변화를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선거 결과의 예측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역대 선거를 면밀하게 검토·분석해온 필자는 윤 교수의 해석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유권자가 지지후보를 결정할 때는 다양한 요인을 이미 고려해서 결정하므로 윤 교수의 지적처럼 웬만큼 상충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나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으로서 이 분야 학자들에게는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충격적인 정보가 등장하면 지지도는 출렁인다.

박 전 대통령은 과반이 넘는 지지로 당선되었지만 탄핵 기간 지지도가 5%로 줄었다. 남아 있는 지지자 대부분도 고연령층이라 이를 다른 지지자의 문제처럼 일반화하는 건 위험하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도는 4월 초 며칠 만에 전통적 보수층을 새로운 지지로 흡수하면서 급격히 상승했으나, 유치원 공약 파동과 TV토론 이후 다시 출렁이는 형세이므로 팬덤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문재인 지지자의 충성도가 가장 높으니 이들이 가장 종교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박근혜·안철수 지지자가 집단주의, 물질주의적인 데 비해 문재인 지지자는 개인주의, 탈물질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탈물질주의는 한 마디로 탈권위주의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후보의 핵심 지지자는 기자나 교수라고 해서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정보력이나 논쟁에서 웬만한 엘리트를 압도할 만큼 실력이 있다. 서구에서는 이런 특징을 갖는 사람을 ‘비판적 시민’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문재인 후보를 정치변화의 수단으로 선택했을 뿐, 문재인 후보가 호소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말을 따르지는 않는다.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문재인 지지자를 대다수 언론이 공격적이라는 악의적 프레임을 씌웠지만, 한 언론은 빅데이터 분석에 기초해 이들은 상대가 공격하면 대응할 뿐 먼저 공격하지는 않는다고 보도했다. 탈물질주의 연구의 권위자, 로널드 잉글하트 교수는 전체 국민 중 ‘비판적 시민’의 비율은 한 국가의 민주주의 성숙도와 정비례하며, 신앙인의 비율과 반비례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문재인 지지자 중 일부는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항의의 정도가 격렬하기는 하지만 항의의 근거는 맹목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다.

선거과정을 정확히 설명하지도, 예측하지도 못하는 대중문화이론은 산 정상에 도달하지 못하는 헬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이론이야말로 신앙심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국제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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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