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사고가 일어난다면 어떤 형태일까? 미국의 베크 박사는 1964년까지 21년간 원전 246개의 사건·사고를 분석해 결론을 내렸다. 상상가능한 사고는 반드시 발생한다는 것, 사고 시에는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예상치 못한 때 예상치 못한 원인으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 세 가지다.

전문가들은 다음 원전사고는 테러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건 국토와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안보문제이다. 가령 사용후 핵연료를 임시보관하고 있는 원전부지 내 저장고는 작은 충격에도 폭발 위험이 있다. 그 외에도 위험요소는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산출된 ‘값싼 원가’만을 내세우며 원전을 고집하는 보수언론들의 안보관이 의심스럽다. 원전은 천문학적 폐기비용을 포함하면 그 어떤 에너지보다 몇 배나 비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회복 불능이 되어버린 자연과 삶의 파괴를 보더라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금 급한 것은 노후원전의 해체다. 지금 20개도 안되는 원전을 가동해 필요한 전기의 4분의 1 정도밖에 공급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생산량은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하고, 원전의 내구성은 심히 우려되는 수준이다.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면 이득을 챙기는 이는 있지만 사고가 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중요한 문제는 원전 해체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해체의 전후방 경제효과를 아는 사람도 없고 일을 할 전문가나 기술자도 없다.

하지만 원전 해체시장이 원전 건설시장보다 훨씬 크다. 원전 1개를 해체하는 데 1조~2조7000억원(독일 사례)이 든다고 한다. 전 세계 450개의 핵발전소 수명을 평균 50년으로 계산하면 매년 10조원 시장은 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50년까지 1000조원 시장을 예측하고 있다. 대폭 줄여 계산해봐도 그 정도는 된다.

지난 정권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5조원짜리 원전 하나 수출하려고 5년을 끌었는데 아직도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매년 10조원 시장은 엄청난 블루오션 아닌가. 정부와 국회가 이 경제성을 알고 원전해체센터 설립 예산을 세웠다. 일단 방향은 잘 잡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작년 3월 불교와 원불교가 공동주최한 ‘세계원전안전해체학회 준비 세미나’에 참가한 독일 전문가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첫째, 완전 해체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당장 해체하는 경우와 20년을 거치한 후 하는 경우의 두 가지가 있는데, 둘다 수십년에 걸쳐 해체한 후에도 핵폐기물의 보관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남는다. 둘째, 방사능 가득한 현장에서 고준위폐기물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표피를 벗기고 절단하는 로봇공학과 같은 첨단기술이 중요하다. 셋째, 공정을 세분하고 각 단계마다 숙련기술자의 치밀한 처리작업이 진행돼야 하고 그를 뒷받침하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노후원전 폐쇄를 주장하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들을 모두 잘하려면 원전 위험을 진단해 안전의 수준을 평가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줄 아는 기술적·정책적 능력, 결정을 실행하는 기업 조직, 현장에서의 맞춤형 실행을 뒷받침하는 연구능력, 전문기술자를 키우는 교육훈련 능력 등을 갖추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연구기능 강화와 사람을 길러내는 일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선진국의 지적·기술적 역량을 도입해 그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고, 우리의 기존 인력을 재교육시켜 해체 쪽의 기술자로 기르려면 방향부터 확고히 잡아야 한다.

그 방향은 수명이 다한 노후원전의 즉각적인 폐기와 해체다. 그래야 대내외의 협력을 구축할 수 있다. 무엇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엄청난 불안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에게 ‘안심’을 선물할 수 있다. ‘결단’이란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이원영 | 수원대 교수·국토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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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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