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5월 7일자 지면기사 -

첫째도 둘째도 ‘신뢰’였다.

사실 정상회담의 성패는 얼마나 신뢰를 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어떤 면에선 완전한 비핵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경제협력 같은 선언 내용보다 더 중요한 대목이었다.

그동안 남북이 여러 차례 의미 있는 성과와 합의문을 만들어냈지만, 이행 과정에서 번번이 원점으로 되돌아간 전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불신이 쌓였고, 이는 실행 동력을 잃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판문점선언이 국민과 전 세계로부터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찬사가 쏟아지는 것도 어느 때보다 ‘이행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이 높다는 점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곳곳에서 풍겨 나온 모습들이 그랬다.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 북측 땅을 밟은 뒤 돌아올 때 많은 이들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도보다리 벤치 회담. 아무런 소리 없이 30분 동안 전 세계에 생중계된 이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두 정상이 마주 앉아 다정한 형제처럼 진지하고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만으로도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이번에는 뭔가 되겠구나’ ‘더 이상 전쟁은 없겠구나’ 하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북한 지도자가 최초로 전 세계에 자신의 목소리로 ‘철저한 이행’을 약속했고, 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많이 남아 ‘정권교체 위험도’가 적다는 점도 신뢰의 무게를 높였다. 북한 핵실험장 폐쇄 시 대외 공개, 남북 표준시 통일, 확성기 철거, 북한 억류 미국인 석방 등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된 후속 조치들도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90% 이상이 정상회담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인식도 크게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 대통령 지지도는 80%를 넘나든다. 이 또한 커다란 이행 동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두 정상과 판문점선언에 찬사를 쏟아내는 등 연일 북·미 정상회담 전망에 청신호를 켜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의 핵 확산을 막아야 할 핵심 책임자다. 또한 북·미 교류는 궁극적으로 미국 경제에 이익을 안겨준다. 미국도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결국, 이제는 누구도 되돌아갈 수 없게 됐다. 남북 합의 역사에서 지금처럼 전 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기대를 갖게 한 전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판문점선언이 낳은 최대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한반도를 전쟁 위험 지역에서 북방경제의 새 시대를 열 블루오션으로 바꾸어 놓았다. 북한이 정권의 중심을 군사에서 경제로 옮긴 상황에서 남북,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한 북방경제 활성화는 그야말로 역사적 대전환이 아닐 수 없다.

모든 분야가 포화 상태로 한계에 도달한 한국 경제에 이보다 좋은 반등점도 없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에도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가져다줄 신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하기에 따라 한반도가 새로운 경제 모델로 세계 경제를 주도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하늘이 준 기회이다.

야당의 협조가 중요해졌다. 자신이 집권했던 시기의 대선 공약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공약에는 기존 남북 합의문 정신 실천, 신뢰와 비핵화 진전에 따라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 개성공단 국제화와 지하자원 공동 개발,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다방면의 교류, 남북 철도(TKR·TSR·TCR) 연결 등이 있다. 야당이 국민에게 약속하고 실천하지 못한 이 내용들은 판문점선언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여야, 진보·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지난해 네팔 카트만두 대학에서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자문관으로 1년 동안 네팔과 한국 헌법을 가르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학생들이 자주 했던 질문이 있다. “한국 같은 선진국이 왜 남북으로 분단되어 계속 싸우느냐”는 물음이었다. 구구하게 설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보다 창피함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이번 정상회담이 그 학생들에게 훌륭한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다.

<임종인 변호사·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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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