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9일은 인류사에 ‘기계(인공지능)가 인간을 넘어선 날’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세계 최강의 바둑기사 이세돌이 구글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인 알파고와의 첫 대결에서 패배한 바둑 역사상, 아니 과학 역사상 최대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약 12억원의 상금을 걸고 총 5번기로 벌어지는 이 대국은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라는 점 때문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진행됐다.

“해는 져서 어두워지는데 갈 길은 멀고 보따리는 무겁기만 하다.” 흔히 바둑을 두다가 비세에 몰렸을 때의 심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인간 대표로 알파고를 마주한 이세돌 바둑기사의 심정이 이러했으리라! 그리고 결국 이세돌은 어두워지는 들판에서 속절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대국 시작 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인간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형세가 불리해지자 마치 사람처럼 승부수를 던져 판세를 뒤집는 알파고의 응수에 이세돌은 186수 만에 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해설자들은 물론 생중계로 세기적 대결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본래 바둑은 가장 창의적이고 직관적이며 심오한 영역으로서 인정돼 왔다. 1997년 IBM이 개발한 컴퓨터 체스프로그램이 체스 세계챔피언을 이길 때도 바둑기사들은 별로 괘념치 않았다. 아무리 컴퓨터 프로그램이 발전한다 해도 가로 19줄, 세로 19줄의 바둑판에서 일어나는 천변만화의 복잡성과 의외성을 따라잡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바둑에는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만큼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바둑의 승부에는 직관성과 창의성 등 정신적인 요소가 크게 차지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고 여겨왔다. 바둑의 용어를 살펴보면 그 미세함과 복잡성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두텁다’와 ‘무겁다’는 형태적으로 유사하지만, 전자는 긍정적인 의미이고 후자는 부정적인 의미이다. 이에 상응하는 개념으로는 ‘가볍다’와 ‘엷다’가 있다. 마찬가지로 둘 다 형태적으로는 비슷하나 가벼운 돌은 유리하나 엷은 돌은 불리하다. 이러한 가치는 부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의 주변 돌의 배치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이세돌 알파고와 두번째 대국_구글제공

오래전 ‘돌부처’ 이창호 기사가 십대의 나이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뚜벅뚜벅 돌을 놓으며 강호의 고수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세계 바둑계를 평정했을 때, 일부 애호가들은 바둑에 대한 회의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은 “바둑이란 모름지기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믿어왔는데, 아직 인생을 알지 못하는 홍안의 소년이 바둑의 최고봉에 올라섰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회의는 다소 낭만적인 투정처럼 느껴진다. 아직 5번기의 승부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인공지능이 세계 최고수에게 한 판을 빼앗은 것만으로도 그 충격과 함축성은 매우 심오하다.

미래에 기계가 인류를 지배하는 시나리오는 SF영화를 통해 많이 알려져 왔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차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현시점에서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될지, 아니면 기계가 인간을 전쟁과 질병과 노동에서 해방시켜줄지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설령 기계가 인간의 온갖 종류의 오류를 수정해주고 마침내 우리에게 파라다이스를 만들어준다 해도, 과연 그러한 세상이 정말로 인간이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기계에 인간이 패배한 날, 착잡한 심정을 억누를 길 없다. 이미 우리는 거대 자본에 일상을 지배당하고 있다.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자본과 결합하는 일은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테러방지법이 시행되면 혹시 국가정보기관이 슈퍼컴퓨터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들여다보면서 개인의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빅 브러더’의 세상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 두렵기만 하다.


김기석 |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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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